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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09 (13:17:53)

끝END에 시작이 있습니다

 

< 이영란 사모, 좋은소식교회 >

 

“우리는 벼랑 끝에서도 노래할 수 있는 사람들”

 

 

주보를 펼치는 순간 102장이란 숫자가 눈에 확 들어왔다. 우연인지 한 주간 내내 불렀던 찬송이었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명예와 바꿀 수 없네.’ 이 찬송을 성도들과 함께 부르면서 다시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오직 주님 밖에 없다는 감격의 눈물이었다.

 

얼마 전에 나는 잘 알고 지내는 사람들 앞에서 그동안 쌓여진 인격이 실추되는 어려운 일을 경험했다. 소중히 쌓아왔던 명예를 한순간에 잃어버리고 치졸한 사람이 되어 친구조차 등을 돌리는 듯 했다.

 

‘이것이 끝이라는 것이구나!’ 싶었다. 정말로 밑이 안 보이는 낭떠러지였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에 주님이 계신 것이 아닌가! ‘내 끝에 내 시작이 있다’고 한 시인이 고백한 것처럼 그분은 내가 벼랑에서 떨어질 때 날개를 달아주셨다.

 

오랜 세월 늘 하나님 앞에서 죄를 회개하며 진실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람들 앞에서 죄인이 된 적은 없었다. 매스컴에서 자주 보듯이 유명 인사들의 죄가 천하에 드러나게 되거나 혹 청문회에서 한순간 변명의 여지도 없이 부끄러운 부분이 드러나는 것을 볼 때면 두려웠다.

 

어떤 한 정치인이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책을 쓰고 남은 세월 전국으로 돌며 오열하며 강연하던 것을 들은 기억이 있다. 오해이든 아니든 사람들 앞에서 죄인이 된다는 것은 절벽에서 떨어지는 또 다른 죽음이다.

 

대중 앞에서 죄인으로 판결 받고 우리의 죄와 궁극적 악(evil)의 무게를 짊어지신 채 심판대에 서신 주님이 생각났다. 얼마나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우셨을까! 오랜 세월동안 늘 회개하면서 십자가를 붙들며 살았다고는 하지만 어느새 너무 의인이 되어버려 주님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으니 이렇게라도 사람 앞에서 수치를 당해야 하나보다 하기도 했다.

 

스스로 회개할 자정능력을 잃어버렸다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어거스틴은 감독으로서 아프리카와 유럽전역에서 높은 덕망과 학식으로 가장 존경받고 있을 때 고백록을 써서 자신의 현재를 뒤엎고 과거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는데 이렇게 책을 쓸 수도 없고 말이다.

 

자기의 죄로 인해 애통했던 세리는 주님을 만났지만 바리새인처럼 우리는 많은 종교 활동 속에서 그분을 만나는 참 기쁨을 누릴 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남을 비판하고 가르치기만 하려고 한다. 점점 영혼이 말라버리고 사막처럼 되어가니 어거스틴을 망가뜨린 유쾌한 거짓 명예와 성공, 달콤한 세속적 쾌락과 같은 신기루를 향해 달려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듯 스스로는 도저히 돌이킬 수 없을 때 가고 싶은 데까지 가도록 내버려두시고 결국 벼랑 끝에 서게 하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거스틴도 현재 자신이 걷잡을 수 없이 부서져 있다고 하며 주님의 사랑의 불길에 다 정화되어 그분과 하나 되기까지 이 시련과 번뇌는 계속될 것이라고 했는데 나 또한 끝(end)에 도달해서야 목적(end)이 되시는 주님을 만나게 되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간의 구약이라는 방대한 내러티브도 결국 멸망의 끝으로 가도록 내버려두셨지만(왕하 25장) 영원한 희망, 예수 그리스도께로 향하게 하신 것이 아닌가! 존 번연은 ‘상한 심령으로 서라’에서 “우리를 살리기 위해 죽이신다”고 했다.

 

가장 소중히 여기던 것을 다 잃어버리고 ‘다시는 시작할 수 없다. 이제 정말 마지막이다!’라고 하는 ‘끝의 끝’에 서게 하셨을 때 그분은 새로운 시작이 되신다.

 

끝에 시작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벼랑 끝에서도 노래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를 낭떠러지로 밀어내실 때 오히려 더 높은 곳을 날게 하시니 주님을 어찌 찬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오! 비길 데가 없으신 주님, 주님을 향한 저희의 찬미는 저희의 인간성을 뛰어넘습니다!(‘고백록’ 제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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