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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6 (11:31:06)

진달래꽃과 쭈구미

 

 

< 김영자 사모, 채석포교회 >

 

 

“열심인 듯하다 어느날부터 방학인 성도들이 속상하기도”

 

이웃 나라의 원자력발전소 재난 소식과,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소나무 숲이 짙은 안개로 인하여 희미하게 보이는 것이 봄날에 대한 막연한 떨림과 기대를 져버리게 합니다. 그렇지만 뒷산의 진달래는 꽃봉오리가 솟아오르고 언덕 비탈의 개나리도 노란색의 꽃주머니가 불룩해지고 있습니다.

  

요즈음 변화무쌍한 날씨 때문에 마음까지도 약간 우울한 시간에 전화벨 소리가 주위의 적막감을 깨뜨렸습니다. 개인적으로 사적인 이야기를 나눌 기회는 없었으나 사모세미나에서 서로 웃는 얼굴로 인사를 나누었던 사모님의 명랑한 목소리였습니다. 목사님 두 부부가 우리 집을 방문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낯설고 멀게만 느껴졌던 목사님 두 부부가 우리 집을 방문한다고 하니 조금 이른 듯하지만 봄 대청소를 시작으로 커튼도 바꾸면서 갑자기 일손이 바빠지기 시작했습니다.

 

바닷가에 있으니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해물 요리로 메뉴를 결정하고 손님들을 맞이했습니다. 경기도와 전라북도의 먼 거리에서 두 부부가 이곳에 오셔서 준비한 음식을 맛있게 드시고 여러 가지 말씀을 나누면서 서로에 대해 조금씩 마음들을 헤아리며 즐거운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음악 하는 사람들은 악기를 통해서 마음이 정화된다고 하듯이 각자 다른 사역지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주님을 향한 사랑을 목표로 하는 만남에서 귀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서로 행복을 느끼며 또 하나의 관계를 맺는 것이 기뻤습니다.

 

집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일이 몸에는 조금 힘들지만 날마다 비슷비슷하게 되풀이되는 일상의 반복에서 나에게 긴장감을 가져다주기도 하며 내 삶에 녹슬지 않게 하기 때문에 피곤하면서도 즐거움을 느끼게 합니다. 겨우내 간절하게 햇빛을 그리워했듯이 닫혀 있던 내 마음의 문들이 방문자들로 인하여 조금씩 열리기도 하고 굳어지려는 나의 가슴에 물기를 보태주기도 했습니다.

 

하룻밤을 자고 나면 새로운 정보들과 변화된 모습들의 환경에 적응하며 관심을 갖는 도시인들과는 달리, 농사를 짓고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는 어부들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도 날씨에 모든 삶이 달려 있습니다. 이번 겨울은 많은 눈이 내리고 춥고 지루했던 날들이 많았습니다. 우리는 이런 어두운 기억 속에서 빨리 벗어나 따뜻한 봄날이 되어 삶의 터전인 바다가 그들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싶어합니다. 모든 직장에는 정년이 있지만 농부나 어부에게는 정년이 없고, 자기가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일을 할 수 있는 자유로움이 있습니다.

 

어부들은 해마다 구정이 지나고 해동이 시작되면서 주꾸미의 아파트라고 하는 소라껍질을 바다에 넣고 주꾸미가 아파트에 가득 차는 꿈을 꿉니다. 그러나 금년에는 날씨가 너무 춥고 바람이 많이 불어 바다에 나갈 수도 없고 수온이 낮아 기다리는 주꾸미는 먼 바다에서 아직 돌아오지를 못하고 있으니 어부들의 걱정하는 한숨소리가 들리지만 자연은 그 누구도 어찌할 수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10년을 넘게 살아오는 동안 성도들과 함께 지내온 세월만큼 많은 정이 들면서 대가족의 가장과 같은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열 손가락을 깨물면 다 아프고 그 손가락의 길이가 서로 다르듯이 성도들도 각기 다르다는 것을 많이 생각합니다.

 

도회지에서는 아파트 앞집에 누가 사는지 무관심하지만 모든 공간이 펼쳐진 이곳에서는 집주인보다도 이웃이 내 살림에 더 관심을 갖기도 합니다. 가끔씩 그러한 일들이 불편할 때도 있지만 변화 없는 생활들이 때로는 이웃들에게 편안한 마음들을 갖도록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습관에는 관대하지만 새로운 변화에 대해서는 아집과 두려움으로 반발하고 이질감을 드러냅니다.

 

목회자 가정은 주민들에게는 가까우면서도 먼 이웃 사람들입니다. 도회지에서는 이 교회 저 교회 옮겨 다니는 철새 교인들이 있다지만 이웃들의 삶을 다 알고 있는 채석포에서는 교회를 옮겨 다니는 것이 아니라 1년에 한두 달은 열심인 듯하다가 어느 날부터 방학인 성도들이 가끔씩 속상하게 합니다.

 

지난 주일날에는 예배시간이 다가오자 찬송을 인도하는 목사님의 시선이 자꾸 창 너머에 머물고, 피아노를 치고 있던 나의 손가락도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건반 이탈을 자주 하였는데 역시 기다림 때문이었습니다.

 

10년이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1년에 한두 달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열심을 내다가 어느 날 그 얼굴이 보이지 않으면 또 병이 시작되었나 하고 생각이 드는 성도가 있습니다. 이제는 그 성도 때문에 마음 아파하지 말고 그 얼굴을 잊고 기다리지 말자고 다짐하지만 잃은 양 한 마리를 귀히 여기시는 예수님 때문에 속았다고 생각하면서도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한 영적장애인(?)을 십년 넘게 포기하지 못하고 기다림으로 가슴 조이고 있습니다.

 

토요일 이른 아침에 “목사님, 저.... 교회 나가도 되요?” 하면서 천연덕스럽게 전화가 왔습니다. 그 목소리 한마디에 그동안 서운했던 일들이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주일예배에 행여나 하고 기다렸지만 참석하지 못한 성도에게 서운함 대신 혹여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며 또 걱정까지 하고 있습니다.

 

봄철 주꾸미는 진달래꽃이 필 무렵이 가장 맛있다고 합니다. 주꾸미아파트에 주꾸미가 가득 채워지고 채석포 뒷산에 진달래꽃이 활짝 피기 전에 집나간 성도가 돌아와 미안한 모습을 하면서 고개 숙인 모습으로 그 동안 비워진 제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을 그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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