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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사도의 삶과 계시록 통독

 

 

< 최에스더 사모, 남서울평촌교회 >

 

 

“평생을 바친 사도 요한 큰 감동으로 다가와”

 

 

사모들 가운데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사람도 적지 않고, 또 청년 시절 학원선교단체에서 말씀과 기도에 강도 높은 훈련을 받은 사람도 많겠지만 이도 저도 아닌, 그저 이제껏 교회에서 배운 게 전부인 나 같은 사모는 말씀을 설명해야 하거나 소리내어 대표기도라도 하게 되면 정말 대책 없이 떨린다. 그래서 고작 우리 집 아이들만 데리고 앉아서 동화구연과 뮤지컬과 모노드라마를 오가는 쇼를 하며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말씀에 복종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런데 덜컥 만난 이번 주의 말씀이 요한계시록이다. 아, 요한계시록! 이제까지 괜히 아이들 앞에서 엄마는 말씀을 잘 아는 것처럼 잘난 척을 했구나. 설명 없이 그냥 읽자고 했다가 유난히 이 말씀만 가지고 요란을 떠는 이단들이 이 말씀만 건너뛰고 자란 우리 아들들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유혹하는 일이 생길 것 같은 불안감이 또 밀려드는 것이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요한계시록을 읽기 전에 이런 이야기를 했다.

 

“이 말씀은 아주 어려운 말씀이란다. 그래서 사람들이 오해를 하거나 아니면 차라리 외면을 했지. 그러나 1장 3절에서 이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다하셨으니 우리 열심히 읽자. 그리고 1,2,3,21,22장을 암송하는 큰 아들은 더욱 열심히 암송하고, 작은 아들은 곧 암송할 것이니 열심히 읽도록 하여라.”

 

설명을 자세히는 하지 않을 것이니 무조건 읽고 암송하자는 말을 돌려서 한 것이다. 그래도 요한계시록의 배경 설명을 해주고 싶어 사도 요한의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해주면서 나는 생각지도 못한 큰 은혜를 받았다.

 

사도 요한. 예수님의 사랑하시는 제자라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사도. 예수님의 공생애의 모든 것을 함께 한 제자. 그 누구보다 열정과 사랑과 확신으로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그 많은 일들을 낱낱이 기록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하다고 썼던, 기적과 이적을 두 눈으로 경험하고 목격했던 사람. 예수님의 능력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사람. 그러나 그는 그 예수님이 죄인처럼 잡혀가 참혹한 모습으로 십자가에 달려있는 그 자리에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서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남으로 철저히 망해버린 이스라엘이 이 나라 저 나라의 능욕을 받고 이제는 대로마제국의 한낱 변방에 지나지 않는,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속국이 되어서도 자신들이 무슨 대단한 존재라도 되는 양, 특별한 옷을 입고 특별한 날을 정해서 특별한 제사를 지내며 수 백 가지 율법 중 하나라도 지키지 않으면 버러지만도 못한 것들이라고 자신들을 경멸하는 제사장이라는 족속들, 지긋지긋하다. 약속된 구세주는 언제 오는 거냐고 원망할 때도 그 구세주는 혁명가요 쿠데타와 해방과 자유와 다윗과 솔로몬의 시대를 가져오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 요한에게 예수님께서 나타나셨고 그 예수님의 존재와 사역은 이 분이 바로 그분이라는 사실을 도저히 의심할 수 없도록 하였다. 그는 정말 신이 나서 예수님을 좇아다녔다. 그런데 그 예수님이 지금 십자가에 달려있는 것이다. 그가 얼마나 혼란스러웠을까.

 

이렇게 끝이 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다리가 굳어버렸는데 십자가 위의 예수님께서 입을 여신다. 그렇지. 저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 이루어지지 않은 적이 없었지. 요한은 분명 대반전의 순간을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다 이루었다.”

 

이루어지지 못한 적이 없었던 그 입의 말씀. 그가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지 다 아시면서, 그가 왜 지금 여기에 서있는지 다 아시면서 그리고 지금 그가 분노에 떨고 있다는 것도 아시면서 변함 없는 고요한 눈빛으로 하신 그 말씀. “보라, 네 어머니라.” 정녕 가려나보다. 포기하려나보다. 분노조차 힘을 잃게 하기에 충분했던 그 말씀.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가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변화산 사건, 오병이어 사건,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 같은 건 없었던 것처럼 되어버린 때에 ‘무덤이 비었다’라는 소리를 기어이 듣게 되었고, 그들은 달려갔고, 다시 흩어지고, 다시 고기를 잡으러가고 결국 예수님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하늘로 올리우시는 예수님을 보면서도 십자가 밑에서처럼 저렇게 가시면 이렇게 끝이 나는 건가, 이런 끝이 과연 말씀의 성취인가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을 경험했지만 아직도 증인으로서는 부족하기만 했던 그들에게 오순절 날, 예수님의 약속대로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님께서 오셔서 요한과 제자들을 완전히 변화시키셨고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어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삶을 살았다.

 

복음이 전파되고 교회가 세워지고 또 교회가 핍박으로 흩어지고 제자들의 순교가 이어지고 한 몸 이룬 형제와 자매들이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며 어린아이와 노인들까지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굶주린 짐승의 밥으로 끌려가는 것을 지켜보며 사도 요한은 자신의 사명을 다하며 살아왔다.

 

베드로가 순교할 때, 형제들이 순교할 때 자식과 같았던 자들이 죽음으로 끌려갈 때 그도 얼마나 바랬을까. 그러나 그는 끓는 기름솥으로 던져져도 죽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노구를 이끌고 밧모라고 하는 섬에 갇혀있는 것이다. 예수님을 위해 평생을 바친 그에게 남은 것은 죄인이라는 이름과 남루한 옷과 더러운 몸, 헝클어진 머리와 지저분한 얼굴, 죽을 때까지 갇혀서 일해야 하는 굽은 손과 맨 발, 그리고 언제 어떻게 처형당할지 모르는 운명이었다.

 

그런 그에게 주님의 날, 마치 수십 년 전 어느 오순절의 그 날처럼 성령님의 역사하심으로 사도 요한의 계시록은 시작된다. 아직도 꿈길에서 마주치는 요단강변, 갈릴리 호숫가, 감람산의 오솔길의 예수님이 아니라 해같이 빛나는 영광의 주님으로 오셔서 이제 사랑하시는 제자 요한에게 성경을 완성할 마지막 말씀을 기록하라는 사명을 주시는 것이다.

 

이 때 사도 요한은 천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흰 옷을 입고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어린 양을 찬양하는 모습을 본다. 이들은 누굴까? 누군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깨끗하고 정결한 모습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 것일까? 예수님을 찬양하는 데도 주리지도 않고 목마르지도 않고 상하지도 않은 이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온 사람들일까?

 

자유롭고 당당하게 예수님을 찬양하는 이들을 놀라워하는 요한은 이들이 바로 땅에서 큰 환난 가운데에서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한 자들이라는 설명을 듣는다. 그렇다면 이들이 바로 내 옆에서 끌려가고 죽임을 당하고 지하로 산 속으로 숨어 들어가고 짐승처럼 유리하며 살던 나의 형제 자매들이란 말인가.

정녕 그들이란 말인가.

 

예수님을 믿고 평생을 바친 사도 요한의 모습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영화로운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가 가졌을 감격을 짐작해보다가 나도 따라서 울고 말았다.

 

이 날의 해설은 여기까지 이야기해주는 것으로 마치고 아이들과 함께 기도드렸다. 우리도 이렇게 살다가 예수님을 만나고 싶다고, 어린 양의 피에 우리의 옷을 씻고 싶다고, 눈보다도 희게 되어 천국에서 영원토록 주님을 찬양하고 싶다고, 썩어질 것을 바라보다가 눈이 멀어져서 내가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 자 되고 싶지 않다고, 평생을 바친 사도 요한의 꼴이 되어도 감사가 넘치는, 그런 믿음을 가진 자 되게 해달라고 기도드렸다.

 

사도 요한의 삶이 얼마나 고마운지. 아직도 진행 중인 요한계시록 통독이 더욱더 단단한 부활 소망으로 우리를 이끌 줄 미리 확신하며 감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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