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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김도 헌신도 주님보다 앞설 수 없네

 

< 추둘란 집사, 수필가, 홍동밀알교회 >

 

 

“이제야 참된 군사로 나아가는 첫 발 내디딘 것 같아”

 

 

원예치료사 과정 수료식이 있던 날, 모범상을 받았습니다. 15주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공부하러 나온 사람들이 받는 상이니 정확히 말하면 개근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름이 무엇이든, 그 상을 받았다는 것과 주신 분이 주님인 것만은 분명했습니다.

 

3월부터 홍성과 서울을 오가며 원예치료사 자격증 과정을 공부했습니다. 주님이 하라 하셔서 나섰는데, 하루하루 배울수록 주님의 선택에 대해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누구보다 잘 할 수 있고 아무리 힘들어도 행복할 수 있는 분야를 어쩌면 이리도 정확히 고르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화훼시장에서 식물을 구경하거나 구입하고, 식물의 생리와 사회복지에 대해 공부하고, 복지관과 요양센터를 찾아 원예치료 프로그램 실습을 하는 일은 내게는 즐겁고 신나기만 해서 순간순간 꿈이 아닌가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일주일에 두 번 혹은 세 번을 학교 앞 찜질방에서 자며 야간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 육체적으로 쉬운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5월말쯤 되니 체력이 바닥나서, 하루는 결석을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함께 공부하는 동기 한 명을 통하여 하나님은 ‘일어나라’는 문자를 보내주셨고 그 문자에 힘을 얻어 거짓말처럼 일어나 서울로 향했습니다.

 

15주 동안 일흔 번 정도 고속버스와 기차를 타고 다녔습니다. 멀미하거나 체하거나 아픈 데 없이 다녔으니 감사했습니다. 옆 차선을 보면 더러 교통사고 난 흔적도 있었는데 내가 탄 버스는 한 번도 사고 난 적이 없으니 감사했습니다. 더욱이 차편을 한 번도 예약하지 않고 다녔건만 차를 놓쳐 애먹은 적도 없었습니다.

 

한번은 토요일 저녁 막차를 타고 서울서 내려와야 했는데, 입석까지 매진이라 한 표만 어떻게 안 되겠냐고 역무원에게 통사정하고 있는 사이에 기적같이 좌석 하나가 생겨서 앉아 온 적이 있습니다. 또 하루는 홍성에서 입석을 사고, 무심코 빈자리에 앉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평택역까지 편안히 앉아 갈 수 있었습니다.

 

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토요일 오후에 요양병원 견학이 있었는데, 견학을 끝낸 후에 논문 작성 때문에 부천에서 동기들끼리 모임을 가졌습니다. 시간을 보니 아무래도 막차를 놓칠 것 같았습니다. 주말 오후라 서울로 들어가는 도로마다 꽉 막혀 있어 누구에게 태워달라는 말도 못 꺼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언니가 김포공항으로 가는 길은 한산하니 차라리 그리로 가서 9호선 급행 지하철을 타면 된다고 하면서 공항까지 태워다 주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강남터미널에 도착하여 표를 끊으니 막차의 마지막 좌석이었습니다. 출발 시각이 40분이나 남아 있었는데도 그 정도였으니, 만약 급행을 타지 못했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매번 그렇게 모든 불편을 최소화시켜 주며 공부하는 데에 부족함이 없게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순간들이 하나님이 배려해주시고 의도하신 결과라면 한 가지 의아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한 번의 결석을 결심한 날 ‘꼭 오세요’라고 문자를 보낸 이나, 김포공항까지 태워준 언니, 그리고 자신의 아파트에서 나를 재워준 언니들이 희한하게도 모두 열심 있는 불교신자들이었습니다.

 

태백에서 온 이는 친정동생의 오피스텔에서 여러 번 나를 재워주었는데, 그이는 불전의 꽃꽂이를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서울 꽃시장에서 생화를 사서 자신의 키 정도 되는 커다란 박스를 들고 태백까지 가는 그 열성에 입이 딱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한번은 그이가 당일에 태백으로 돌아가야 할 일이 있어 조퇴를 했습니다. 그런데 수업이 끝날 무렵 헐레벌떡 되돌아왔습니다. 간발의 차이로 기차를 놓쳤는데 오피스텔에서 나를 재워주기 위해 일부러 학교까지 되돌아 온 것이었습니다.

 

그이만이 아닙니다. 학교 축제가 있던 날, 평소 나의 전도대상자가 소일거리 삼아 목걸이와 핸드폰 고리 수공예품을 만들어 팔고 있는데, 그것을 가져와 내가 캠퍼스에서 팔아보겠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예상밖으로 많이 팔지 못해서 기운이 빠져 있는데, 한 언니가 와서는 남은 목걸이 30여 개를 한꺼번에 사 주었습니다. 전도대상자에게 위신을 세울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스러웠던지….

 

그 언니도 나를 재워준 적이 있습니다. 이튿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공복에 물을 마시냐고 묻더니 차지도 뜨겁지도 않은 물을 온도까지 맞춰서 주고, 머리를 감고 수건으로 닦고 있으니 얼른 눈치를 채고 드라이기를 갖다 주었습니다. 그리고 온갖 나물과 반찬, 전으로 진수성찬을 차려 주었고 숟가락을 내려놓으니 이번에는 핸드드립 커피를 내놓았습니다. 우리 집에 손님이 오면 그리스도인인 나는 과연 그만큼 섬길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이상했습니다. 분명히 45명의 동기들 가운데 교회 다니는 동기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까이 지내고 나에게 친절과 섬김을 베푼 이들은 하나 같이 불교신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뜻을 갖고 계신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 뜻이 무엇인지 이내 알아차렸습니다. 평소 나는 내가 드리는 섬김, 헌신, 봉사로 하나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그것이 있어야 하나님 앞에 떳떳했는데, 어찌 보면 중보자인 예수님보다도 앞세운 것이 그런 사역이었고 내 자존감의 근거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사역들이 내 손발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의 칭찬을 즐기고 그 결과와 열매를 은근히 계수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아시고 그런 사역들은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불교신자들을 보게 하여서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행위로만 보자면 그들의 사역이 훨씬 더 눈부십니다. 그러므로 순전하게 하나님께 드린 것이 아니면, 그들의 사역이나 내 사역이나 다를 바 없는, 헛되고 헛된 수고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올해는 계속하여 주님께서 참된 섬김에 대하여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주님이 원하시면 할 수 없는 일이라도 기꺼이 하고, 주님이 원하시면 누구보다 잘 할 수 있고 간절히 하고 싶은 일도 멈추어야 한다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비로소 나의 생각을 내려놓고 참된 군사로 묵묵히 나아가는 첫 발을 이제야 겨우 내디뎠는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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