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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24 (11:14:39)

조금만 덜 똑똑합시다

 

<변세권 목사, 온유한 교회 >

 

 

“사람들에게 베풀고 마음을 여는 사람들 많아지길”

 

우리를 그렇게 슬프고 비참하게 했던 긴긴 여름 폭우도 지나가고 숲 속 어디선가 희미하게 들리는 매미의 울음소리만이 이번 여름의 아픔과 상처를 말해 주는 것만 같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 주변에 똑똑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은데도 왜 우리의 사회의 모습은 늘 이렇게 초라하고 슬픔이 많고 별반 달라지는 것이 없을까? 세상 사람들은 그렇다고 치고 목회자 세계에서도 다를 바가 없는 것 같다.

 

똑똑한 목회자들이 많이 있으면 우리 총회와 우리의 교회가 나아지고 달라져야하는데 그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우리의 잘나고 똑똑한 것을 개별적 차원에서 자기 교회공동체만을 위해서 사용했지 다른 교회나 공동체, 더 나아가서는 사회나 이웃을 위한 진정한 나눔과 헌신이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보통 우리들의 말하는 것을 보면 말 못하는 사람이 없이 모두가 다 똑똑하다. 그런데 알아듣기는 금방 알아듣는데 문제는 늘 비판적이고 공격적이다. 남을 배려하는 자세가 부족하다.

 

우리는 소위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똑똑하다는 것의 포로가 되어, 사람을 볼 때도 사람의 됨됨이를 먼저 보기보다 어디 그 사람 똑똑한가 아니한가로 판단하여 우리 스스로 똑똑증후군에 시달릴 때가 많다. 이런 현상은 마치 꼭 공부를 잘 하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것 같은 분위기이다.

 

사실 똑똑하다는 것은 참모 같은 사람에게 맡기고 우리는 사람답게 살면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 말이 “똑똑한 사람은 참모만 해라, 우리는 지휘관을 하겠다” 라는 뜻은 아니다. 이 어지럽고 복잡한 세상에 “아! 잘난 사람도 참 많구나. 우리는 잠시 쉬어나 가자!”와 같은 여유를 가지고 살 필요도 있다. 똑똑하고 잘나서 그것을 어디에 쓰려는가?

 

우리 교단은 조금만 잘못하면 잘난척한다는 말을 듣기가 쉽다. 어쩌다 목회자들과 대화를 하게 되어도 똑똑한 축에 들어가는 목회자들과는 말을 나누기가 불편하다. 그 사람하고만 있으면 긴장이 되어 할 말을 다 못하고 주눅이 들고 별일이 아닌데도 대화를 마치고 나면 결국 진리라는 미명아래 자기주장만 해서 개운치가 않고 어딘가 모르게 나중에는 정죄 받은 느낌마저 든다. 그래서 그런지 총회나 노회를 비롯한 여러 회의 장소에 가는 것이 겁이 날 때도 있다.

 

보통 똑똑하면 다 리더가 되고 싶어하고 덜 똑똑하면 다른 사람의 부족함을 채워간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똑똑해서 예수 믿은 것이 아니고, 사람이 남달라서 남에게 나눠주거나 져주는 인생이 아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부족을 채워주고 져주는 것은 하나님이 그것을 기뻐하시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똑똑하다는 것은 상대방의 무지함이나 어리석음 위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주변사람들에게 똑똑한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어떤 보상들을 나누어주는 데에 그 똑똑함을 본질이 있다. 똑똑한 그가 있음으로 덜 똑똑한 우리 모두에게 혜택이 나누어지고 돌아와야 되는 것이다.

 

우리의 행복과 평안은 내가 내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만 있지 않고 내게 관계된 모든 사람의 현실과 직결되어 있다. 그것을 우리가 고통스럽게 책임을 져야하고 도망갈 수 없게 나를 붙들고 있다고 생각하는 실제적인 삶의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어떤 때는 타인을 위해 덕을 세우는 것이 없고 오로지 자기의 자랑을 위해서 상대방을 넘어뜨릴 준비만 되어 있는 것 같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아야지 똑똑한가, 아닌가를 기능적 차원에서 보는 위험성을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더 가지고 있고 더 배우고 더 똑똑하다고 생각한다면 우리의 가진 것이나 우리의 배운 것을 우리의 지위로 확인할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에게 베풀고 그 마음을 여는 것으로 실천되어져만 우리는 똑똑한 자가 되는 것이다.

 

똑똑하다고 잘난 척하지 말고 먼저는 따뜻한 사람이 되어야한다. 말 가지고 장난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하는 말 속에 따뜻한 피가 흐르고 눈물이 있어야 한다. 훨씬 여유 있게 자기 위치에 돌아와서 사람답게 살아야한다.

 

어느 목사님 말씀대로 우리 모두가 우리 이제 똑똑한 사람은 그만 두기로 하고 “저 사람은 착한데 무능해서 좋아!, 저 사람은 착한데 어딘가 모르게 어설퍼서 좋아!”라는 덜 똑똑함의 평가를 듣는 착한 목회자가 되는 것이 차라리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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