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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7 (10:32:22)

아날로그식 사랑과 행복

 

< 김영자 사모, 채석포교회 >

 

“재래식으로 지은 음식에서 아날로그식 사랑 만끽해”

 

매일 계속 내리는 비 소식을 전하는 아나운서가 미안해하는 긴 장마가 마치 노아의 방주를 연상하게 하였던 여름이 끝나가면서 채석포 앞 바다는 금어기가 해제되어 꽃게 잡이가 시작되었습니다.

 

많은 비로 인하여 농작물들이 피해를 입은 들녘은 벼이삭이 올라오고, 밭에서는 빨갛게 익은 고추를 수확하며 때 이른 가을걷이가 시작되면서 농어촌의 일정이 바빠지는 시기가 시작된 것입니다. 일 년에 한 번 휴가를 내어 가족들과 오붓한 시간들을 보내고 싶어했던 많은 사람들이 비로 인하여 휴가를 도둑맞았다고 합니다.

 

금년에는 적은 수의 교회 수련회가 본 교회에서 열렸기 때문에 바다에 나가지 못하는 성도들과 많은 시간들을 같이 할 수 있었습니다. 교회를 찾는 수련회 팀은 적었지만 나와 남편을 찾는 친구들의 방문으로 잊고 있었던 소중한 친구들과 교제를 나누며 행복한 시간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이분들 중에는 작년에 아버지와 외할머니를 잃고 슬퍼하는 어머니를 모시고 위로여행지를 어머니의 친구가 살고 있는 바닷가로 정하고 이곳에 머물면서 어머니의 슬픔을 잠시 잊게 한 친구의 효자 아들도 있었고, 남편 친구 목사님부부는 휴가를 교회 근처 펜션에 머물면서 많은 대화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처음 방문객들의 전화를 받을 때는 습한 무더운 날씨의 여름 손님에게 부담스러운 생각도 잠시 가졌으나 남편이 했던 말을 생각하면서 내 자신이 부끄러운 생각이 들 때가 있었습니다. 남편은 손님들을 맞이하는데 힘이 들지만 예수님께서 어떠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 올지 모르니까 우리 집에 오시는 손님을 기쁘게 맞이하라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손님들을 위한 음식을 만드는 것이 조금 힘은 들지만 우리 부부를 찾는 지인들에게 이곳에서 생산되는 계절 야채와 성도들이 목사님을 생각하여 바다에서 잡아온 생선들을 아껴 놓은 것으로 음식을 만들어 소찬을 대접합니다. 남편은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식당보다는 지인들과 사랑이 담긴 음식을 맛있게 먹으면서 편안하게 담소를 나누는 것을 좋아합니다.

 

농촌에서도 이제 곳곳에 마트가 있어서 큰 불편함은 없지만 예전에 즐겨먹었던 통닭이나 짜장면이 먹고 싶을 때 시내와 너무 멀리 있어서 배달이 불가능하여 도회지에서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먹지 못할 때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어릴 때 장손 집안인 우리 집은 할아버지와 큰 집에서 함께 살았습니다. 큰 지주였던 할아버지께서는 가끔씩 집에서 돼지도 잡고, 납작한 돌 위에 찐 쌀을 놓고 떡매로 쳐서 노란 콩고물에 인절미를 만드셔서 동네사람들과 나누어 먹기도 했으며 할머니께서는 인절미를 묻히고 남은 노란 콩고물로는 주먹밥을 만들어 주시기도 했습니다.

 

옛 맛을 생각나게 하는 음식들을 마트에서 쉽게 사먹을 수도 있지만 집에서 만든 인절미가 먹고 싶던 때에 남편이 외출을 했습니다. 내가 아는 지식을 동원하여 찹쌀로 밥을 지은 다음 마늘 찧는 절구에 넣고 방망이로 인절미 비슷하게 만들어서 노란 콩을 볶아 분쇄기로 갈아서 뭉쳐진 떡(?)에 콩고물을 묻히니 영락없이 인절미가 되었습니다. 외출에서 돌아온 남편에게 인절미가 담긴 접시를 내밀었더니 놀래면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우리나라 경제와 문화가 발달할수록 우리의 눈과 입맛을 현혹하는 많은 먹거리의 홍수 속에서 퓨전 음식이라는 단어도 만들어지면서 무엇을 먹을까 고민할 때가 많이 있지만 항상 내 머릿속에서는 어릴 때 맛있게 먹었던 음식들의 입맛이 남아 있어서 옛날 음식들이 그리워질 때가 있습니다.

 

외식보다는 집 밥을 가장 좋아하는 남편 때문에 내 음식 솜씨도 조금씩 향상되어지고 된장과 고추장, 그리고 여러 가지 계절 밑반찬을 만들어 놓기도 합니다. 손수 집에서 밑반찬을 만드는 것이 번거롭기도 하고 귀찮지만 소위 아날로그식 사랑이라고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사랑을 남편에게 전해주는 것도 남편의 건강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즐거운 마음으로 날마다 준비하고 있습니다.

 

내게는 어머니가 사용하셨던 오래 된 발재봉틀과 내게 혼수로 해주신 손재봉틀이 지금도 방 한 켠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요즈음 시판되는 모터가 달린 재봉틀보다는 기능과 속도가 뒤떨어지지만 그 재봉틀로 집안 곳곳에 서투른 솜씨로 만든 작품(?)들이 여러 곳에 있습니다.

 

험난하고 먼 길도 길동무가 있으면 가깝다는 말이 있습니다. 디지털 시대의 젊은 사람들보다는 조금 느리고 촌스러운 아날로그식 된장 맛과 같은 사랑을 이웃들과 함께 오래 오래 행복을 누리면서 살아가고 싶습니다.

 

묵은 지와 같이 깊은 맛이 있는 지인들이 지금 내게 가장 소중하며 그들과 같이 살아온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 모두 아름다운 노을 앞에 서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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