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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2 no image |청진기로 바라보는 세상<1>| 아름다운 만남_전정식 박사 (16)
편집부
2925 2011-12-27
아름다운 만남 < 전정식 박사, 샘여성병원 소아청소년과 과장 > “부자 관계 자체가 즐거움과 만족을 주는 근거” 이제 2012년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왠지 기분이 좋고 모든 일이 잘 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이러한 좋은 기분으로 아침에 신생아실 회진을 돌았습니다. 신생아실에서는 마침 면회 시간이 되어 막 태어난 아기의 가족들이 면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온 식구가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아기를 먼저 보려고 머리를 들이대며 난리가 났습니다. 그리고 이구동성 “예쁘다!”라고 소리칩니다. 밝은 기분으로 점심식사를 한 후 휴식시간에 커피를 마실 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왜 갓난아기를 처음 만났을 때 “예쁘다!”라고 소리칠까? 30년 넘게 소아과 의사로 아기들을 보게되지만 사실 갓 태어난 아기들은 객관적으로 볼 때 “예쁘다”라는 표현이 어색합니다. 아기들이 귀엽고 예쁜 것은 사실이지만 신생아 시기의 아기의 외모를 보면, 이목구비와 신체의 구조가 어른과 다른 균형을 보여 조금은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기를 처음 만나보는 가족들의 기쁨과 진지함을 보고 있으면서 그런 생각을 해본다는 자체가 경망스럽습니다. 그리고 나 역시 첫 손자를 처음 만났을 때 다른 사람들과 똑 같은 기분으로 “참 예쁘다!”라는 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예쁘다”, “아름답다”라는 표현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보이는 대상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눈과 귀에 즐거움이나 만족을 줄 때나, 또는 하는 일이나 마음씨가 훌륭하고 갸륵한 데가 있을 때 쓰인다고 합니다. 그런데 갓 태어난 아기는 균형과 조화 면에서 “예쁘다”라고 표현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아기는 주위 사람들에게 하는 일이나 마음씨를 보여줄 시간조차 없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예쁘다”라는 말이 조금도 지나치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에서 오는 아기의 존재 자체가 우리에게 즐거움과 만족을 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기는 출생이전 잉태되었을 때부터 부모에게 기다려지고 설레임을 주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아기의 출생은 아기와 부모 모두에게 복된 시간이 되며 또 엄마의 산고는 아기를 처음 보는 순간 눈 녹듯이 사라지게 됩니다. 따라서 부모가 아기를 처음 만날 때 느끼는 아름다움은 혈연 관계에서 시작되어 가슴으로 느끼는 아름다움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길고 긴 성화의 과정에 있는 나는 신앙생활에서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가슴으로 확실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 적지 않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과 하나님을 즐거워하라는 교리일 것입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은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를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라고 가르치시며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저도 습관처럼 기도 속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머리로는 아직 내가 감히 하나님의 아들이라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기도 하고 “하나님이 늘 못난 나를 사랑하실까?” 하고 자신이 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갓난아기가 혈육이라는 관계 하나만 가지고도 예쁘다는 사랑과 축복을 받는 것을 보면, 나도 믿는다는 조건 하나만 가지고도 약속하신 대로 아들도 되고 또 아버지의 사랑과 복주심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교회에서 사람의 가장 중요하고 고귀한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 분을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는 웬만한 믿음의 경지에 가지 않는 한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처럼 생각되었습니다. 그런데 신생아실에서 부모와 아기의 첫 만남을 보면서 느낀 것은 아기가 커서 부모의 사랑을 가슴으로 알게 되면 아기도 부모를 기쁘게 하고 또 부모를 즐겁게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드니까, 오늘따라 하나님이 멀리 떨어져 계시는 관념 속의 초월자가 아니라 바로 내 옆에 가까이 계시는 분으로 느껴졌습니다. 새해 첫 달, 오늘 태어난 그 아기는 저에게 참으로 고맙고 귀한 깨우침을 주었습니다. 그 아기가 커서 부모와 가족들에게 받은 사랑과 기쁨을 가슴으로 알게 된 후에는, 부모와 가족들에게 큰 기쁨을 주는 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 역시 올 한해는 아버지를 즐거워하며 살겠다고 다짐을 해 봅니다. 우리 모두 이러한 마음가짐을 갖는다면 올 한해동안 아버지께 기쁨이 될 것입니다. * 전정식 박사는 남포교회 장로이며 가톨릭의대 명예교수 및 샘여성병원 소아청소년과 과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가톨릭의대(의학박사)와 횃불트리니티 신학대학원대학교(M.Div)에서 수학했으며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학 교환교수, 가톨릭의대 교수를 역임했다.
571 no image |채석포에서 온 편지| 채석포교회 잔칫날_김영자 사모
편집부
3783 2011-11-29
채석포교회 잔칫날 <김영자 사모, 채석포교회> “동네에서 처음으로 장로님 배출되어 더 뜻깊은 잔치돼” 여느 계절답지 않게 따뜻한 11월의 셋째 토요일입니다. 20년 전만 해도 농사를 지어 하루 세끼 쌀밥 먹고사는 사람들이 잘 사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때 어촌에서는 농사짓는 사람들의 농산물과 생선을 교환하면서 생활했습니다. 국민들의 식생활이 개선되면서 생선 값이 오르고 어촌의 경제생활이 조금씩 나아지면서 어촌의 모습도 많이 변했습니다. 요즘의 시골 풍경은 추수를 끝내고 짚더미를 말아놓은 하얀 큰 뭉치가 논에 줄지어 서 있고, 김장을 하기 위해 배추와 무를 뽑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휴가철이 아니면서 고속도로가 소통되지 않고 막히는 때는 가을 김장철과 봄에 농작물을 수확할 때입니다. 도시에 거주하는 자녀들이 농촌의 부모님 집에 와서 김장을 함께 하고 추수한 여러 가지 농작물을 사랑의 선물로 받아가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곳에 있으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채석포교회에 잔치가 있습니다. 한 분의 장로님과 세 분의 권사님이 탄생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잔칫날이 있을 토요일의 일기 예보를 보니 약간 흐리며 비가 온다고 해서 걱정은 되었지만 교회 행사를 할 때쯤에는 항상 날씨가 좋았기 때문에 이번에도 좋은 날씨가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채석포교회는 23년 전 가난하고 황폐한 영적인 불모지였던 채석포의 한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교회가 태동하였습니다. 그 가정의 부부는 작은 배를 가지고 함께 고기를 잡으면서 생활을 하였으나 남편은 항상 술에 취해 있어 아내와 자녀들을 괴롭히며 하루하루를 목표 없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이 주일날 예배를 드리기 위해 그 가정에 가면 아침부터 일찌감치 술에 취한 여성도의 남편은 새우등을 하며 아랫목에 이미 자리를 잡고 코를 골며 자고 있어 불땀이 없는 윗목에서 예배를 드릴 때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 가정의 부부가 장로와 권사로 취임하여 이제는 교회의 기둥이 되는 은혜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도시의 직장인들이 주일을 성수하는 것도 귀한 일이지만 어촌에서 주일 성수하는 것도 나름대로 어려움이 있습니다. 특히 바다에서는 그 날의 날씨와 바닷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시간에 맞추어서 작업을 하기 때문에 주일 성수하는 것에 자기 희생의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어려움을 이기고 이 가정은 예수님을 믿기로 한 그 날부터 주일을 한 번도 빼먹지 않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처음 교회가 세워지고 교회에 나오기 시작할 때는 옛 술친구들을 만날 것 같아 산길로 숨어 다녔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날부터 술은 입에 대지 않고, 교회에 나가는 날이면 낮이나 밤이나 하루도 빠짐없이 열심히 다녔습니다. 남편은 열심 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성도들이 교회가 작고, 성도 수가 적다하여 장로로, 권사로 추대되지 않는 것을 항상 마음으로 아파했습니다. 그러다가 이번에 장로 한 분과 권사 세 분이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우리 교회뿐 아니라 채석포 동네에서도 장로가 처음으로 배출되었습니다. 잔칫날은 흐린 날씨였지만 바람이 몹시 불었기 때문에 배가 출항하지 못해서인지 동네의 많은 사람들이 와서 축하해 주었습니다. 과거에 술꾼이었던 남편이 장로로 임직하고 아내도 권사로 취임하면서 회한과 기쁨의 눈물로 자녀들과 성도들, 그리고 이웃들을 울게 만든 축하의 시간이었습니다. 또 새로 취임하는 어떤 권사님은, 어릴 때부터 무속인인 어머니의 굿거리할 물건들을 챙겨 주는 것도 서러운데 무당의 딸이라고 놀림 당했던 지난날들을 파노라마처럼 회상하면서 하나님 때문에 그 서러움조차 기쁨의 눈물이 되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그 모두가 감사뿐인 날이었습니다. 금년 들어 교회 상황은 슬픈 날들이 많았습니다. 연로하신 분들이 노환으로 말미암아 교회 참석을 못하는 분들도 계셨고, 요양원으로 가신 어느 여집사님은 주일마다 얼굴을 보며 위로의 말을 주고받았는데 지난 주일에는 치매가 더욱 심해져서 저의 얼굴조차도 기억하지 못하고 멀거니 쳐다보는 모습을 보고 너무나 슬펐습니다. 어느 때는 어르신들과 생활하다보니 우리들 자신도 동화되어 같이 늙어 가는 것 같아 마음조차 우울할 때도 있었습니다. 성도들도 나이 들고 우리 또한 나이 들어가면서 교회의 앞날이 걱정되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새벽 기도를 마치고 온 남편은 새롭게 깨달은 것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노인들만 있는 농촌교회의 미래가 걱정되지만 그들의 자녀들이 청년의 때를 지나고 언젠가 중년이나 장년이 되면 고향으로 돌아와 어릴 때 그들이 다녔던 교회를 다니면서 아버지, 어머니의 신앙을 이어나가며 고향과 교회를 지킬 것이라는 희망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장로님이 되고, 권사님이 되어 첫 추수감사예배 준비를 하면서 장로, 권사의 호칭이 아직은 어색하지만 “장로님! 권사님!” 하며 불러보는 성도들 모두가 기쁨을 함께 누리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복된 시간이었습니다. 회색빛 하늘에서는 금방이라도 눈이 내릴 것 같고 교회 부엌에서는 김장을 준비하는 권사님들의 웃음소리에서 채석포교회의 꿈과 희망의 미래를 보는 듯 합니다.
570 no image |들꽃향기처럼| 깊어가는 가을에_윤순열 사모
편집부
3130 2011-11-15
깊어가는 가을에 < 윤순열 사모, 서문교회 > “하나님이 주신 자연, 내것이라 생각하면 마음도 넉넉해져” 나는 유난히 가을이 좋습니다. 조그마한 텃밭을 가꾸고 있는 저에게는 봄부터 가꾸어온 고추며 고구마, 호박, 땅콩 등 수확할 것들을 거두어들일 생각을 하면 몹시 기분이 좋습니다. 며칠 전에는 기온이 영하로 떨어질 것이라는 일기예보를 듣고 새까만 산모기에 물려가면서 남편과 함께 서둘러 고구마를 캤습니다. 찬바람에 올망졸망 맺은 풋 호박도 땄습니다. 집에서 멀지 않은 밭으로 향하는 길옆에 핀 이름 모를 하얀 들꽃이 저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들꽃을 보는 순간 ‘아!’ 하는 감탄사가 저도 모르게 나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가에 가지를 뻗어 내려와서 일부는 발에 밟히기도 하면서도 순백의 작은 꽃들을 화사하게 피어 길가는 나그네들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웃을 일도 기쁠 일도 별로 없는 세상에서 이 들꽃으로 인하여 사람들은 잠시나마 마음에 기쁨을 느낄 것입니다. 이름 모를 들꽃 하나도 봄부터 가을까지 수많은 비바람을 견뎌오면서 어여쁜 꽃을 피워 자기의 사명을 다하는 듯 하여 저의 마음이 뭉클합니다. 또한 아파트 산책로 옆에 펼쳐진 논에 누렇게 익은 벼들이 저의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달빛을 머금은 듯 온통 노랗게 익어버린 벼들은 하나같이 겸손하게 고개를 숙이고 주인의 추수를 기다립니다. 노오란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핀 듯 한가위 보름달이 휘영청 떠오른 듯 노오란 벼들의 향연은 저의 마음을 황홀하게 합니다. 또한 이 누런 벼들을 보면 왠지 마음이 넉넉하고 풍요로워 집니다. 누런 벼들을 보니 초등학교 국어책에 나오던 의좋은 형제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한 해 동안 지은 곡식을 추수하던 형제는 서로를 생각합니다. 형님은 동생의 어려운 형편을 동생은 형님의 부족한 살림을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형제는 아무도 모르는 밤에 자기의 볏단을 몰래 갖다 놓고 옵니다. 그러다가 형제는 달 밝은 밤에 볏단을 지고 가다 딱 마주치고 말았습니다. 그곳에서 둘은 얼싸안고 울었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요즘같이 각박한 세상에서 얼마나 훈훈한 이야기인지 가을 들녘에 누렇게 익은 벼들을 보면 이 장면이 떠오르곤 합니다. 가을이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또 있습니다. 처마 밑이나 담장 밑에 피어 있는 국화꽃입니다. 찬 서리를 머금고 담장밑에 처연하게 피어있는 국화꽃들을 바라보노라면 왠지 모를 외로움이 밀려오는 듯합니다. 아마도 모든 꽃들이 찬 서리에 시들어 버린 벌판에 홀로 고고하게 찬 서리를 머금고 피어있는 모습이 외로워 보여서 그런 듯합니다. 국화꽃의 진한 향기는 신록의 마지막 계절이라서 그런지 더욱 빛을 발합니다. 그 진한 향기는 아마도 봄, 여름, 가을을 지나오는 동안 인고의 세월로 만들어진 향이어서 향 중의 향인 것 같습니다. 베란다 창문에서 바라다보는 붉은 단풍 몇 그루도 일품입니다. 아파트를 지으면서 조경을 하느라 어느 깊은 산속에서 옮겨왔는지 날씨가 약간 쌀쌀해 지면서 붉은 자태를 뽐내기 시작합니다. 아마도 이 단풍은 이곳에 오기 전 깊은 산중에서 신선한 바람과 더불어 계곡의 맑은 물소리 산새들의 지저귐 맑은 하늘 하얀 안개 비바람 등과 살다가 시끄러운 도심으로 옮겨왔을 것입니다. 그래도 그 나무들은 자기들이 본래 가진 어여쁜 붉은색으로 삭막한 아파트를 훈훈하게 합니다. 얼마 전에는 남편과 함께 상쾌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저녁 산책길에 나섰습니다, 우리는 늘상 걷는 산책로를 한 바퀴 돈후 다 끝나고 가버려서 한적한 골프장 입구 산책로에 들어섰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하루 종일 잘 단장된 골프장 길에는 최고급 벤츠들이 쉴새 없이 들락거리고 경비들은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경비들도 퇴근했는지 아무도 없고 저녁 늦은 시간이라 한적하고 너무나 조용합니다. 잘 단장된 조경나무들 그리고 카펫같이 깔아놓은 잔디위로 저녁 안개가 피어오르니 황홀합니다. 이 아름다운 골프장 전경을 보며 남편과 저는 말했습니다. “이곳이 다 우리 정원이야! 저들은 다 우리의 일꾼들이지. 날마다 잔디를 깎고 예쁘게 가꾸느라 수고하는 것을 우리가 누리고 있잖아.” 그렇습니다. 다 생각의 차이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연을 보면서 다 하나님의 것이니 그것이 또한 내 것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넉넉해집니다. 골프장 안으로 좀 더 들어가자 그림같이 예쁜 하얀 집이 있습니다. 골프를 치다가 쉬는 집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말합니다. 우리 은퇴하면 저런 집 짓고 방3개 만들어서 아들과 딸이 오면 아들하나 딸 하나 주어서 쉬어가게 하자고 미래의 꿈을 이야기합니다. 낮에 우울했던 마음도 현실의 고통도 미래의 아름다운 꿈을 속삭이면서 다 날아가 버리는 듯 마음이 즐겁습니다. 우리는 캄캄한 가로등 빛으로 환하게 보이는 가을 산책길을 걸으며 누구도 누릴 수 없는 남다른 기쁨을 맘껏 누리며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569 no image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예레미야의 눈과 한국교회 현실_최에스더 사모 (16)
편집부
3907 2011-10-04
예레미야의 눈과 한국교회 현실 <최에스더 사모, 남서울평촌교회> “사람들이 무엇을 하든 하나님 말씀대로 성취될 것” 주님 뵈옵기 너무나 죄송한 시대를 살고 있다. 그렇지 않은 시대가 어디 있었던가하는 생각도 들지만 내가 살아서 숨을 쉬고 있는 지금 이 곳에서는 주님께 예배드리고, 주님께 부탁드리고, 주님의 응답하심을 기대하기가 너무나도 민망하고 죄송하다. 그래서 이전에는 도와달라고, 지켜달라고, 부어달라고, 함께 해 달라고 그렇게도 술술 기도했건만 이제는 정말 입이 떨어지지가 않는다. 차라리 이교도의 급성장을 경계하고, 이단의 미혹을 주의하던 때가 좋았다. 주님 앞에 자신 있게 매어 달릴 수 있지 않았던가. 주님께서 우리를 반드시 도와주셔야 하고 꼭 함께 해주셔야 하는 분명한 이유를 붙들고 주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었던 그 때가 얼마나 행복한 때였던가! 그러나 지금 들려오는 소문들은 뭐라도 손에 잡히는 대로 뒤집어쓰고 얼굴을 가리고 싶게 만드는 소문들이다.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게 이어지는 한국 개신교 목사들의 추태. 나처럼 집에서 살림하고 아이들 건사하고 남편 뒤만 졸졸 따라다니는 아녀자에게도 들리는 소문이 이 정도라면 불꽃같은 눈으로 이 모든 세상을 지켜보고 계시는 하나님의 눈에 보이는 건 도대체 어디까지일까. 참 슬프다. 그 목사들의 한 때, 정말 하나님께서 동행해주시는 것만 같았던 그런 때가 있었건만 그런 시간들을, 그 때의 모습들을 우리가 다 기억하고 있는데 지금 왜 저렇게 되었단 말인가. 이것이 어디 내노라 하는 교회만의 이야기라면 사람의 욕심이 끼여들 여지가 너무나도 많게 풍요로운 교회만의 이야기라면 아직 희망은 있었겠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렘 17:9,10). “여호와의 진노가 그 마음의 뜻하는 바를 행하여 이루기까지는 그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끝 날에 그것을 완전히 깨달으리라”(렘 23:20). “각 사람의 말이 자기에게 중벌이 되리니 이는 너희가 살아 계신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말씀을 망령되이 사용함이니라”(렘 23:36 중). 아이들과 예레미야서를 읽으면서 목사의 아내로 나를 부르신 하나님께서 지금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알고 밑줄을 그어 놓은 말씀들이다. 예레미야서 전체가 너무나도 인상적으로 플롯이 잘 짜여진 한 편의 영화나 소설처럼 감동이었지만 그 중에 백미는 마지막에 나오는 한 대목이었다. 지금 조국 이스라엘을 징계하시는 하나님의 도구로 쓰이는 바벨론을 향한 예언의 말씀을 예레미야 선지자가 모두 기록한다. 그리고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한 이스라엘 사람에게 바벨론에 가거든 여기에 적힌 말씀을 다 읽고 나서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시킨다. “여호와여, 주께서 이 곳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이 땅을 멸하여 사람이나 짐승이 거기에 살지 못하게 하고 영원한 폐허가 되리라 하셨나이다!” 이렇게 외치고 그 기록한 책을 유프라테스 강속에 던지며 바벨론의 멸망을 다시 한번 외치게 한다. ‘스라야’라고 하는 이 사람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시키는 대로 했을 것이다. 거대한 바벨론 제국의 찬란한 영광과 위용을 드러내는 도시가 보이는 유프라테스 강가에 서서 그 누구도 듣지 않는 곳에서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읽고 그 분의 뜻을 선포하고 강으로 그 책을 던져 넣으면서 그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바위로 계란을 수 차례 던지고 난 다음의 기분이었을까. 이 사람의 기분과는 상관없이, 믿음과는 상관없이, 누가 듣고 있었는지, 아무도 안 들었는지 상관없이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히 이루어졌었다. 지금도 내 기분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히 성취되고 있다. 내 눈에 무엇이 보이고, 무엇이 들리는가 하는 것도 중요치 않다. 하나님의 뜻과 생각은 변함 없이 말씀대로 이루어져가고 있다. 그래, 이 슬프고 두려운 마음을 내버리고 말씀으로 가자.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과 마침이요, 처음과 나중이라”(계 22:13).
568 no image |살구나무 그늘 아래서| “주가 크신 은혜 내려 나를 항상 돌아보고”_추둘란 집사
편집부
3305 2011-09-20
“주가 크신 은혜 내려 나를 항상 돌아보고” < 추둘란 집사, 수필가, 홍동밀알교회 > “하나님은 일상의 작은 부분 하나까지 다 신경 쓰고 해결해 주시는 분” 1월 중순, 목사님이 설교 시간에 축구팀을 예로 들면서 “자기가 제일 잘 한다고 설치는 그 한사람 때문에 시합에 지고 공동체가 깨어진다”고 하였습니다. 제일 잘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제일 많은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남편과 나는 그 말에 좌절하고 낙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젠 너희 두 사람 필요 없으니 알아서 교회 떠나라” 하는 말씀으로 들렸습니다.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모질게 마음먹고 아무 사역에도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예배 시간에 목사님 얼굴을 쳐다보지 않았고 새벽기도에도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 와중에 나는 개인적으로 원예치료사 공부를 하기 위하여 서울을 오갔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하나님은 올 한해 내게 ‘안식’을 가르치시려고 일부러 그렇게 모진 방법으로 사역에서 손을 떼도록 하신 것 같습니다. 지난 11년 동안 교회와 집만 오고가며 일에 미친 사람처럼 일만 하고 있는 나를 딱하게 보셔서 이제 일 좀 놓고, 쉬고 누리고 즐기라고 서울을 오고갈 기회를 주신 것 같습니다. 그렇게 칼날 같은 목사님 설교를 듣고 강제적으로 사역에서 손을 놓지 않았더라면, 나는 틀림없이 무슨 일인가를 다시 붙들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작정하고 나를 인도하신다는 생각이 여러 번 들었는데 그 중에서도 제일 감사했던 것이 신발이었습니다. 한 3년 전에 받은 10만 원짜리 구두 상품권으로 학교 옆에 있는 상설할인매장에서 반값 할인하는 샌들 한 켤레를 사서 신었습니다. 신고 보니 얼마나 감사하고 좋은지 구름을 타고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지하철 계단 오르내릴 때 발만 쳐다보며 다녔습니다. 하나님이 올해는 내게 이렇게 꽃신을 다 신겨주시는구나 감동이 되었습니다. 그 꽃신 신고 다니며 원예치료사 자격증 과정을 다 마쳤습니다. 그리고 그 꽃신 신고 사역자 컨퍼런스도 다녀왔습니다. 목사님과의 관계는 여전히 서먹했지만, 컨퍼런스만큼은 몇 년 전부터 꼭 다녀오고 싶었기에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컨퍼런스를 가기 몇 주 전에 지인 한 분이 집 주고 직장 줄 터이니 김포로 올 수 있겠냐고 하시는데, 정말 그 유혹이 달콤했습니다. 집이 너무 작고 불편해서 계속 기도를 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집주인도 집을 비우라고 말한 참이었기에 김포로 가는 것이 주님의 응답인가 착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믿음이 자라기 시작하는 구역 식구들을 두고서 차마 떠날 수 없어서 마음을 접었습니다. 컨퍼런스에 가기 하루 전까지 인근 마을을 다 뒤져도 집을 구할 수 없어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돌아본 집 중에서 가장 깨끗하고 고급스러운 새 집이 있었는데 그 집 주인이 전화를 해왔습니다. 원래 전세를 주려던 사람이 정해져 있던 집이라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우리더러 2년 후에 꼭 사겠다고 하면 그 조건으로 전세를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홀가분하게 컨퍼런스에 다녀오라고 하나님이 새 거처를 주셨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컨퍼런스 첫 프로그램을 위해 강당에 들어섰습니다. 지정된 테이블에 내 이름이 있는 것을 보고 왈칵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김포로 떠났더라면 못 왔을 자리가 아닌지요? 내 이름이 누락되지 않은 것이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시골 작은 교회에 다니는 내가 무엇이라고,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 없는 이곳에서 주님만은 나를 알아보고 내려다보고 계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찬양을 하는 내내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2박 3일 컨퍼런스에서 같은 조에서 만난 조원들이 너무나 열정적으로 영혼 구원에 대해 하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비로소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내 안에 있는 내 모습조차 다 보지 못하면서 목사님과 사모님의 단점만 보고 다른 교인들의 허물만 보았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구원해 주신 것도 감사한데, 영혼 구원 사역에 쓰겠다고 우리 부부를 불러주시고, 오늘날까지 변화시키시고, 다독이시고, 불평도 원망도 다 들어주시고, 집이 불편하다고 하니 새 집도 주시고, 미친 사람처럼 일하지 말고 좀 즐기면서 살라고 꽃신 신겨서 서울로 유학도 보내주시면서 온 우주를 돌아보며 큰일을 하시는 하나님이신데도 나의 작은 부분 하나 하나까지 다 신경 쓰고 해결해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컨퍼런스가 끝나고 목사님과 사모님께 인사를 드리려고 교회로 갔습니다. 떠나기 전까지 목사님을 보면 냉정하기 그지없는 분 것 같았는데 그날 서재에서 목사님을 뵈니 세상에 둘도 없는, 예수님처럼 인자한 모습이었습니다. 이제야 왜 하나님께서 8개월 동안 쉬게 만드셨는지 알 것 같습니다. 한두 달 끌다가 대충 해결되었으면 아마 우리는 몇 년 후에 이 방황을 다시 반복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두 번 다시 허송세월 하지말고, 한번으로 끝내라고 그토록 긴 시간을 건너게 하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무엇이라고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생각해주시며, 내가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 돌보아 주시는지 찬송이 절로 나왔습니다.
567 no image |채석포에서 온 편지| 아날로그식 사랑과 행복_김영자 사모 (2)
편집부
3344 2011-09-07
아날로그식 사랑과 행복 < 김영자 사모, 채석포교회 > “재래식으로 지은 음식에서 아날로그식 사랑 만끽해” 매일 계속 내리는 비 소식을 전하는 아나운서가 미안해하는 긴 장마가 마치 노아의 방주를 연상하게 하였던 여름이 끝나가면서 채석포 앞 바다는 금어기가 해제되어 꽃게 잡이가 시작되었습니다. 많은 비로 인하여 농작물들이 피해를 입은 들녘은 벼이삭이 올라오고, 밭에서는 빨갛게 익은 고추를 수확하며 때 이른 가을걷이가 시작되면서 농어촌의 일정이 바빠지는 시기가 시작된 것입니다. 일 년에 한 번 휴가를 내어 가족들과 오붓한 시간들을 보내고 싶어했던 많은 사람들이 비로 인하여 휴가를 도둑맞았다고 합니다. 금년에는 적은 수의 교회 수련회가 본 교회에서 열렸기 때문에 바다에 나가지 못하는 성도들과 많은 시간들을 같이 할 수 있었습니다. 교회를 찾는 수련회 팀은 적었지만 나와 남편을 찾는 친구들의 방문으로 잊고 있었던 소중한 친구들과 교제를 나누며 행복한 시간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이분들 중에는 작년에 아버지와 외할머니를 잃고 슬퍼하는 어머니를 모시고 위로여행지를 어머니의 친구가 살고 있는 바닷가로 정하고 이곳에 머물면서 어머니의 슬픔을 잠시 잊게 한 친구의 효자 아들도 있었고, 남편 친구 목사님부부는 휴가를 교회 근처 펜션에 머물면서 많은 대화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처음 방문객들의 전화를 받을 때는 습한 무더운 날씨의 여름 손님에게 부담스러운 생각도 잠시 가졌으나 남편이 했던 말을 생각하면서 내 자신이 부끄러운 생각이 들 때가 있었습니다. 남편은 손님들을 맞이하는데 힘이 들지만 예수님께서 어떠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 올지 모르니까 우리 집에 오시는 손님을 기쁘게 맞이하라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손님들을 위한 음식을 만드는 것이 조금 힘은 들지만 우리 부부를 찾는 지인들에게 이곳에서 생산되는 계절 야채와 성도들이 목사님을 생각하여 바다에서 잡아온 생선들을 아껴 놓은 것으로 음식을 만들어 소찬을 대접합니다. 남편은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식당보다는 지인들과 사랑이 담긴 음식을 맛있게 먹으면서 편안하게 담소를 나누는 것을 좋아합니다. 농촌에서도 이제 곳곳에 마트가 있어서 큰 불편함은 없지만 예전에 즐겨먹었던 통닭이나 짜장면이 먹고 싶을 때 시내와 너무 멀리 있어서 배달이 불가능하여 도회지에서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먹지 못할 때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어릴 때 장손 집안인 우리 집은 할아버지와 큰 집에서 함께 살았습니다. 큰 지주였던 할아버지께서는 가끔씩 집에서 돼지도 잡고, 납작한 돌 위에 찐 쌀을 놓고 떡매로 쳐서 노란 콩고물에 인절미를 만드셔서 동네사람들과 나누어 먹기도 했으며 할머니께서는 인절미를 묻히고 남은 노란 콩고물로는 주먹밥을 만들어 주시기도 했습니다. 옛 맛을 생각나게 하는 음식들을 마트에서 쉽게 사먹을 수도 있지만 집에서 만든 인절미가 먹고 싶던 때에 남편이 외출을 했습니다. 내가 아는 지식을 동원하여 찹쌀로 밥을 지은 다음 마늘 찧는 절구에 넣고 방망이로 인절미 비슷하게 만들어서 노란 콩을 볶아 분쇄기로 갈아서 뭉쳐진 떡(?)에 콩고물을 묻히니 영락없이 인절미가 되었습니다. 외출에서 돌아온 남편에게 인절미가 담긴 접시를 내밀었더니 놀래면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우리나라 경제와 문화가 발달할수록 우리의 눈과 입맛을 현혹하는 많은 먹거리의 홍수 속에서 퓨전 음식이라는 단어도 만들어지면서 무엇을 먹을까 고민할 때가 많이 있지만 항상 내 머릿속에서는 어릴 때 맛있게 먹었던 음식들의 입맛이 남아 있어서 옛날 음식들이 그리워질 때가 있습니다. 외식보다는 집 밥을 가장 좋아하는 남편 때문에 내 음식 솜씨도 조금씩 향상되어지고 된장과 고추장, 그리고 여러 가지 계절 밑반찬을 만들어 놓기도 합니다. 손수 집에서 밑반찬을 만드는 것이 번거롭기도 하고 귀찮지만 소위 아날로그식 사랑이라고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사랑을 남편에게 전해주는 것도 남편의 건강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즐거운 마음으로 날마다 준비하고 있습니다. 내게는 어머니가 사용하셨던 오래 된 발재봉틀과 내게 혼수로 해주신 손재봉틀이 지금도 방 한 켠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요즈음 시판되는 모터가 달린 재봉틀보다는 기능과 속도가 뒤떨어지지만 그 재봉틀로 집안 곳곳에 서투른 솜씨로 만든 작품(?)들이 여러 곳에 있습니다. 험난하고 먼 길도 길동무가 있으면 가깝다는 말이 있습니다. 디지털 시대의 젊은 사람들보다는 조금 느리고 촌스러운 아날로그식 된장 맛과 같은 사랑을 이웃들과 함께 오래 오래 행복을 누리면서 살아가고 싶습니다. 묵은 지와 같이 깊은 맛이 있는 지인들이 지금 내게 가장 소중하며 그들과 같이 살아온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 모두 아름다운 노을 앞에 서 있기를 기대합니다.
566 no image |치악골의 아침사색| 조금만 덜 똑똑합시다_변세권 목사 (1)
편집부
2867 2011-08-24
조금만 덜 똑똑합시다 <변세권 목사, 온유한 교회 > “사람들에게 베풀고 마음을 여는 사람들 많아지길” 우리를 그렇게 슬프고 비참하게 했던 긴긴 여름 폭우도 지나가고 숲 속 어디선가 희미하게 들리는 매미의 울음소리만이 이번 여름의 아픔과 상처를 말해 주는 것만 같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 주변에 똑똑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은데도 왜 우리의 사회의 모습은 늘 이렇게 초라하고 슬픔이 많고 별반 달라지는 것이 없을까? 세상 사람들은 그렇다고 치고 목회자 세계에서도 다를 바가 없는 것 같다. 똑똑한 목회자들이 많이 있으면 우리 총회와 우리의 교회가 나아지고 달라져야하는데 그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우리의 잘나고 똑똑한 것을 개별적 차원에서 자기 교회공동체만을 위해서 사용했지 다른 교회나 공동체, 더 나아가서는 사회나 이웃을 위한 진정한 나눔과 헌신이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보통 우리들의 말하는 것을 보면 말 못하는 사람이 없이 모두가 다 똑똑하다. 그런데 알아듣기는 금방 알아듣는데 문제는 늘 비판적이고 공격적이다. 남을 배려하는 자세가 부족하다. 우리는 소위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똑똑하다는 것의 포로가 되어, 사람을 볼 때도 사람의 됨됨이를 먼저 보기보다 어디 그 사람 똑똑한가 아니한가로 판단하여 우리 스스로 똑똑증후군에 시달릴 때가 많다. 이런 현상은 마치 꼭 공부를 잘 하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것 같은 분위기이다. 사실 똑똑하다는 것은 참모 같은 사람에게 맡기고 우리는 사람답게 살면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 말이 “똑똑한 사람은 참모만 해라, 우리는 지휘관을 하겠다” 라는 뜻은 아니다. 이 어지럽고 복잡한 세상에 “아! 잘난 사람도 참 많구나. 우리는 잠시 쉬어나 가자!”와 같은 여유를 가지고 살 필요도 있다. 똑똑하고 잘나서 그것을 어디에 쓰려는가? 우리 교단은 조금만 잘못하면 잘난척한다는 말을 듣기가 쉽다. 어쩌다 목회자들과 대화를 하게 되어도 똑똑한 축에 들어가는 목회자들과는 말을 나누기가 불편하다. 그 사람하고만 있으면 긴장이 되어 할 말을 다 못하고 주눅이 들고 별일이 아닌데도 대화를 마치고 나면 결국 진리라는 미명아래 자기주장만 해서 개운치가 않고 어딘가 모르게 나중에는 정죄 받은 느낌마저 든다. 그래서 그런지 총회나 노회를 비롯한 여러 회의 장소에 가는 것이 겁이 날 때도 있다. 보통 똑똑하면 다 리더가 되고 싶어하고 덜 똑똑하면 다른 사람의 부족함을 채워간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똑똑해서 예수 믿은 것이 아니고, 사람이 남달라서 남에게 나눠주거나 져주는 인생이 아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부족을 채워주고 져주는 것은 하나님이 그것을 기뻐하시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똑똑하다는 것은 상대방의 무지함이나 어리석음 위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주변사람들에게 똑똑한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어떤 보상들을 나누어주는 데에 그 똑똑함을 본질이 있다. 똑똑한 그가 있음으로 덜 똑똑한 우리 모두에게 혜택이 나누어지고 돌아와야 되는 것이다. 우리의 행복과 평안은 내가 내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만 있지 않고 내게 관계된 모든 사람의 현실과 직결되어 있다. 그것을 우리가 고통스럽게 책임을 져야하고 도망갈 수 없게 나를 붙들고 있다고 생각하는 실제적인 삶의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어떤 때는 타인을 위해 덕을 세우는 것이 없고 오로지 자기의 자랑을 위해서 상대방을 넘어뜨릴 준비만 되어 있는 것 같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아야지 똑똑한가, 아닌가를 기능적 차원에서 보는 위험성을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더 가지고 있고 더 배우고 더 똑똑하다고 생각한다면 우리의 가진 것이나 우리의 배운 것을 우리의 지위로 확인할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에게 베풀고 그 마음을 여는 것으로 실천되어져만 우리는 똑똑한 자가 되는 것이다. 똑똑하다고 잘난 척하지 말고 먼저는 따뜻한 사람이 되어야한다. 말 가지고 장난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하는 말 속에 따뜻한 피가 흐르고 눈물이 있어야 한다. 훨씬 여유 있게 자기 위치에 돌아와서 사람답게 살아야한다. 어느 목사님 말씀대로 우리 모두가 우리 이제 똑똑한 사람은 그만 두기로 하고 “저 사람은 착한데 무능해서 좋아!, 저 사람은 착한데 어딘가 모르게 어설퍼서 좋아!”라는 덜 똑똑함의 평가를 듣는 착한 목회자가 되는 것이 차라리 어떨까?
565 no image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여름방학과 이사야 통독의 기쁨_최에스더 사모 (1)
편집부
3759 2011-08-02
여름방학과 이사야 통독의 기쁨 < 최에스더 사모, 남서울평촌교회 > “하나님 말씀 읽을 때 위로부터 내려오는 총명함 더해지길” 방학이 왔다. 홈스쿨을 하고 있는 우리 집에서는 그다지 실감나지 않는 단어지만 학교를 다니고 있는 조카들 덕분에, 그리고 유치원을 다니고 있는 딸들 덕분에 마디도 긋고 쉼표도 찍어갈 수 있다. 아들 둘과 앉아서 우리끼리 읽어나가던 성경통독시간에 이제 조카들도 함께 하고 딸들도 끼어들게 생겼다. 아이들과 성경말씀을 읽다보면 항상 느끼는 것인데 혼자 읽을 때에는 분명히 지루하고 재미없고, 심할 때는 무슨 말인지 도통 몰라서 건성으로 읽었던 부분인데도 아이들과 함께 읽어나가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다. 지금 우리는 이사야서를 읽고 있는데 처음에는 다른 말씀을 읽을까 적잖이 망설였다. 예전에 혼자 읽었을 때는 이 긴 말씀이 기승전결도 없이 복을 주겠다고 했다가, 화를 주겠다고 했다가, 또 복을 주겠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속마음을 도무지 알 수 없게 만드는 참 어려운 말씀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들과 읽어나가는 성경목록에서 웬만한 봉우리는 다 정복했고, 이제 대선지서라는 최고봉이 우리 앞에 있었기에 나 혼자라면 모를까, 아이들을 데리고 앞장서야하는 엄마의 입장에서 물러설 수만은 없었다. 그리고 이 여름에 비지땀을 흘려서라도 꼭 정복해보고 싶은 도전의식이 생기기도 했다. 1장, 2장,,,,15장,16장,,,,30장,,,40장을 넘어 이제 49장을 읽었는데 우리는 한창 재미가 나서 한 장 한 장 고개를 넘는 수고도 모르고 이사야 선지자의 이야기에 푹 빠져있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설명이 필요할 때는 설명을 해주고, 주옥같은 말씀이 마구 쏟아져 나올 때는 나는 할 말을 잃고, 그 말씀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가 말씀에 색 펜으로 줄을 긋는다. 그러면 아이들도 나를 따라 줄을 긋는다. 너무나 유명한 말씀이 나올 때는 꼭 말해준다. “얘들아, 이 말씀은 너무나 유명한 말씀이란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라면 꼭 듣게 되는 말씀이지.” 여기까지 오면서 나는 자주 생각했다. ‘이상하다, 왜 이렇게 안 어렵지? 분명히 난해하고, 그래서 좀 답답했는데.’ 아무 것도 어렵지 않고 분명하고 명쾌하게 받아들여지는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서를 읽어가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것은 내가 그동안 부모가 되어 오랜 시간 자식을 키우면서 그래도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왜 그렇게 복 준다고 했다가, 혼난다고 했다가, 다시 복 준다고 하시는지 알 것 같았다. 내가 그러고 있지 않은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발견해 가면서 이전에는 내 눈에 가려져 있던 부분이 드러나 보게 된 것은 어린 아이들을 말씀의 세계로 안내하고자 하는 나의 작은 수고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크게 입혀주신 이유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기도 쉽고, 저기도 쉽구나, 무슨 말인지 다 알 것 같구나, 이렇게 내가 속으로 외칠 때 아이들도 거침없이, 막힘 없이 말씀의 세계로 들어와 여기 저기 구경하며 감탄하며 나와 함께 하나님의 사랑과 신실하심,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에 다함께 고개 숙여 인정할 수 있었다. 나만의 은혜일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사야서를 설명하기 위해 주석이나 설교집을 읽었다면 모를까, 이 준비 없고 성의 없는 엄마교사가 설거지 막 끝낸 젖은 손을 옷에다 슥슥 닦고 ‘얘들아, 모여라, 성경말씀 읽자, 시원한 물 한 잔씩 마시고, 선풍기 틀고, 자, 오늘은 어디지? 어? 이사야서?’ 이렇게 시작한 말씀통독에 하나님께서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꼴이 되지 않도록 우리의 눈을 열어주신 것이다. 이사야서 29장 24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마음이 혼미하던 자들도 총명하게 되며 원망하던 자들도 교훈을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이 말씀에 밑줄을 좍좍 긋고 24란 숫자에 빨간색 펜으로 동그라미를 여러 번 그렸다. 이 말씀이 온전히 우리에게 이루어져 부디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에 혼미한 이 엄마로부터 우리 모두에게 위로부터 내려오는 총명함이 더해지며 교훈의 말씀을 교훈으로 받을 수 있는 깨끗한 심령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비록 100여 년만의 폭우로 우리 모두가 이 여름의 기세에 눌려있지만, 다시는 물로 심판치 않으시겠다는 하나님의 무지개 약속을 믿고 광명한 날, 맴맴맴 울어대는 매미소리 가득한 한반도의 8월을 그의 정하신 질서대로 오게 하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올 여름방학, 아이들과 함께 말씀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시길 강력히 권한다. 부모의 교사됨을 기뻐하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여행이 최고의 여행이 되도록 준비하고 계신다.
564 no image |들꽃향기처럼|바울 사도의 발자취 담긴 그리스_윤순열 사모
편집부
3180 2011-07-20
바울 사도의 발자취 담긴 그리스 < 윤순열 사모, 서문교회 > “아테네 한복판 산꼭대기에 우상숭배 흔적으로 신전이 남아 있어” 터키에서 트로이를 관광하려고 바쁘게 움직이던 관광버스가 앞 트럭의 후진으로 앞 유리가 박살나는 불상사가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차로 빨리 교체해 주는 덕택에 일정에는 별 차질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로 가는 길을 연결해주는 배를 타려고 서둘러 움직여 다행이 11시 배를 탈 수 있었습니다. 배에서 내린 후 그리스 국경까지 가는 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려 그리스 국경에 이르렀습니다. 국경에는 터키와 그리스로 나누는 국경다리 사이에 에브로스라는 강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강의 크기는 크지 않았지만 아시아와 유럽을 나누는 중대한 강이라고 하였습니다. 국경에서는 간단한 여권 검사 후 우리를 통과 시켰습니다. 국경을 통과하자 그리스 가이드인 여 집사님이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그리스 사람들은 그들 나라를 ‘엘라’라고 부르며 남북한의 1.5배라고 하였습니다. 동쪽에는 에게해가 흐르고 서쪽에는 이오니해가 있는데 합해서 지중해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동방정교회를 국교로 삼고 국민의 98%가 동방정교인이었습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터키와 달리 깨끗한 거리와 가옥들로 잘 정돈된 도시의 모습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거리의 여자들 머리는 히잡을 쓴 사람이 없었고 시원하게 드러내어 한껏 멋을 내었습니다. 모두가 조각처럼 생긴 미남미녀들 같았습니다. 유럽의 면모가 느껴집니다. 우리를 태운 버스는 까발라의 바울 항구라는 작은 도시에 도착하였습니다. 그곳에는 니콜라우스 기념교회라는 정교회가 깨끗하고 화려한 모습으로 이방인인 우리들을 맞이하였습니다. 교회 앞에서 금을 붙여 장식해 놓아 너무나 화려한 성화들을 감상하고 있는데 갑자기 교회의 종소리가 댕그렁! 댕그렁! 울렸습니다. 깜짝 놀라서 무슨 일인가 했더니 그들의 기도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라고 합니다. 마치 우리를 환영하는 종소리 같아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리스는 사도행전 13장, 16장, 20장이 배경이 되는 나라로 바울의 발자취가 흠씬 묻어나는 곳입니다. 바울이 아시아로 가서 복음을 전하려 하였을 때 밤에 환상 중에 성령의 지시하심으로 복음의 방향을 유턴하여 전도여행을 하였던 곳입니다. 바울의 숨결이 봄바람을 타고 진하게 느껴집니다. 호텔에서 하룻밤을 유숙한 후 빌립보로 향했습니다. 특별히 고대도시 빌립보는 모든 것이 잘 발달된 도시였습니다. 지금은 지진으로 무너진 대리석 기둥들만 남아 있었지만 과거의 화려했던 모습들이 살아있는 곳이었습니다. 토굴을 파서 만든 감옥을 보니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 갇혔던 일이 연상되었습니다. 차를 타고 이동하여 자주장사 루디아를 만났던 성문 밖 강가에 갔습니다. 강물은 물살이 빠르고 제법 규모가 있는 동구 밖의 아담한 강가였습니다. 루디아는 평범한 아낙네라기보다는 여류 사업가로서 강인함이 엿보이는 통 큰 여장부였을 것 같았습니다. 여자들이 강가에 모여서 빨래를 하면서 수다를 떨고 있을 때 바울이 다가가 말을 붙이는 장면이 생생하게 연상됩니다. 강가에는 루디아 기념 교회가 있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었습니다. 돔형의 교회는 화려한 루디아의 그림으로 앞면을 장식 해놓아 눈길을 끌었습니다. 노란색은 진짜 황금을 붙여놓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글자로 된 성경보다는 모든 성경의 인물들을 그림으로 표현해놓아 신도들로 하여금 그것을 보면서 신앙심을 키우는 특징이 있었습니다. 전용버스를 타고 2450미터의 한라산보다 높은 산맥을 굽이굽이 넘어 메테오라에 도착하였습니다. 캄캄한 저녁이어서 사물의 분별이 어려웠으나 관광지의 불빛 사이로 희미하게 기암절벽 같은 것이 보여 이곳이 예사롭지 않은 곳임을 느끼게 했습니다. 메테오라에서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아침 일찍 서둘러 하루의 일정에 들어갔습니다. 친절하고 핸섬한 운전기사의 굿모닝 인사에 기분이 상쾌합니다. 이곳은 평범한 시골 마을이 아니었습니다. 나즈막한 마을 뒤로 우뚝 우뚝 솟아올라온 기암절벽들은 하나님의 위대하신 예술 작품들이었습니다. 검고 진한 회색빛을 띤 바위들이 울끈 불끈 기괴한 모양으로 솟아오른 모습들이 장관입니다. 버스는 구불구불 힘겹게 자꾸만 자꾸만 올라갑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놀라운 광경에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사람이 오르기도 힘든 기암절벽 꼭대기 위에 붉은 지붕의 고풍스런 집이 들어서 있어 탄성을 자아 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슬아슬 하게 기암절벽 위에 받쳐져 하늘에 떠있는 듯 한 집들은 신비한 모습을 자아내고 있었습니다. 그곳은 수도원이라고 하였습니다. 과거에는 36개의 수도원이 있었으나 지금은 6개의 수도원만 아슬아슬한 절벽 위에 신비한 모습으로 남아 여행객들의 탄성을 자아내고 있었습니다. 세속을 피해 산으로 올라간 것으로는 부족함을 느껴 아무도 오를 수 없는 바위 꼭대기 위로 올라 간 그들의 기행에 기이함이 느껴집니다. 그들은 사람이나 짐을 운반할 때 도르래나 그물을 이용하여 생활하였고 그곳에서 평생 내려오지 않고 자급자족하여 살다가 죽으면 그곳에 묻힌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서방의 수도원은 재산을 다 팔아서 세상 속으로 들어간다면 동방의 수도원은 세속화를 피해서 산으로 올라간다고 하였습니다.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로 향했습니다. 행 17장 16절에 바울이 종교성이 많다고 말하였던 아덴에 왔습니다. 바울이 말하였던 대로 우상이 가득하였던 흔적이 아테네 시내 한복판 산꼭대기에 신전으로 남아있었습니다. 아테네 시내 어디서나 한눈에 볼 수 있는 가장 전망 좋은 곳에 신전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대리석으로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씌운 웅장한 신전 앞쪽에는 각종 조각상으로 지붕 밑을 장식해 놓았습니다. 범사에 종교성이 많아서 각종 신을 숭배하다 못해 알지 못 하는 신에게까지 제사하였던 역사의 도시 아테네에서 바울의 답답하던 심정을 생각해봅니다.
563 no image |채석포에서 온 편지| 쏟아지는 빗줄기를 보면서_김영자 사모
편집부
4077 2011-07-20
쏟아지는 빗줄기를 보면서 < 김영자 사모, 채석포교회 > “지루한 장마 속에서도 황홀한 석양빛은 다름다워” 한 낮인데도 장맛비의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고 사방은 캄캄하고 빗소리와 바람소리가 요란한 날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쏟아지는 굵은 빗줄기가 잠시 가늘어지는지라 창문을 열고 멀리 보이는 바다를 보니 여느 때와는 달리 온통 흙탕물입니다. 남편은 장맛비가 시작되기 전에 교회의 이곳 저곳을 살피면서 비설거지를 한다고 했지만 여러 날 계속되는 비로 인하여 비가 새는 곳은 없나 하고 교회 주변을 자주 살피면서 비가 그치고 맑은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비가 오는 날에는 음악을 들으며 진한 커피 향과 함께 낭만을 느꼈던 젊은 날들의 아련한 추억보다는 교회의 성도들과 그들의 산업인 바다와 농작물이 걱정됩니다. 지루하게 비 오는 날이면 여러 가지 일들이 생각나지만 이렇게 폭우가 쏟아지는 비는 특별히 생각나는 그리운 얼굴들이 있습니다. 그날은 이곳 채석포에 오기 전 십 수 년전에 남편의 친구 목사님 부부와 함께 여름휴가를 보내기로 했던 날이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여행을 많이 하신 분도 아니고, 운전도 가까운 거리만 오고 가는 정도였습니다. 주일 밤 예배를 마치고 같이 하는 여행을 생각하며 한껏 마음이 부풀어 있었는데 여행을 가기로 한 새벽부터 정말 많은 비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남편과 나는 많은 고민을 하다가 이왕 꾸린 짐을 풀지 말고 그냥 계획된 일정대로 움직이기로 하고 자동차를 탔습니다. 운전대를 잡은 남편은 와이퍼도 잘 돌아가지 않아 많은 비가 걱정이 되었지만 모처럼의 휴가라 태연한 척 했습니다. 친구 목사님 집으로 가서 목사님 부부를 차에 태우고 목적지에 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친구 댁에 도착할 때쯤 해서 비는 장대비로 변했습니다. 험한 날씨와 쏟아지는 비로 인하여 모처럼의 휴가를 같이 하기로 한 목사님 부부가 비가 많이 오니 자기들은 여행을 포기하겠다고 할 것 같아 걱정을 했는데 아뿔싸! 우리들의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고 그분들은 이불과 베게까지 준비한 보따리를 들고 아파트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비 오는 날의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지금과 같이 레저 산업이 발달되지 않았던 시절이라 텐트를 치고 자기도 하고 민박집에서 방 하나를 빌려 두 부부가 사용하면서도 너무나 즐겁고 행복한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추암 해수욕장에 갔을 때입니다. 새해 달력이나 뉴스 시간에 나오는 일출을 촬영하기 위해 많은 사진 기사들이 큰 망원렌즈가 달린 카메라를 가지고 이곳저곳에서 촬영하기 좋은 장소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장 좋은 장소에는 잠을 아끼면서 이른 새벽에 일어난 남편이 떡 버티고 있었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작은 카메라는 그 장소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너무 초라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한 남편을 놀리는 우리들의 놀림에도 관여하지 않고 남편은 사진을 촬영했습니다. 그 때 촬영한 일출사진은 작품이 되어 거실에 걸려 있어 남편의 자랑이 되기도 하고 그 날의 추억들을 기억나게 하며 가끔씩 미소짓게 합니다. 모든 것들이 많이 부족하고 힘든 상황 속에서 마음 고생하던 시기에 목사님 부부와 며칠 간의 여행으로 서로가 나눌 수 있는 아름다운 이야기들로 간직되었고 또 다른 몇 번의 함께 한 여행은 오늘같이 비 오는 날의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고 있습니다. 며칠 전 외출에서 돌아오니 현관 앞에 박스 하나가 있었습니다. 박스를 펼쳐보니 신앙서적과 수필집 여러 권이었습니다. 장맛비가 계속되는 이러한 날에는 추억의 시간들을 회상해 보기도 하지만 습도가 가득한 실내에서 짜증과 무료함으로 무기력하게 있던 중에 꼭 읽고 싶었었던 책들을 보고 너무 기뻤습니다. 책을 보내준 사람을 보니 내 친구였습니다. 늦은 나이에 같이 공부했던 친구는 장로님이 되어 아들 목사를 생각하며 친구 남편의 목사님과 친구인 사모가 생각날 때마다 많은 책들을 보내주고 있습니다. 그 친구는 책을 보낸 사람이 자기라는 것을 밝히지 않고 책을 다 읽을 때쯤 해서 알게 하는 겸손함까지 있습니다. 요즈음과 같이 긴 장마철이거나 겨울에 많은 눈으로 사방이 갇혀 있을 때 변화 없는 일상생활에서 가끔씩 나의 무기력함으로 인하여 매너리즘에 빠져들며 내 영혼의 고갈됨과 갈급함이 나를 짓누르며 실패자의 모습이 나의 모습이라고 생각이 들 때 친구가 보내준 책들을 읽었습니다. 많은 신앙서적을 읽으면서 하나님께서 특별한 분들에게만 주셨다고 생각했던 그 많은 것들을 이미 나는 받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성공보다는 하나님 앞에서 날마다 승리의 삶이 진정한 사명의 길임을 깨닫게 하셨음에 감사했습니다. 남편을 목회자로 섬기는 나의 입장에서는 같이 목회하는 이웃 목사님들이 건강을 잃었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사모들의 얼굴입니다. 그리고 같은 아픔일 수는 없지만 큰 혼란에 빠져들고는 합니다. 늦은 석양에 장대비가 계속 쏟아진 듯하더니 갑자기 주위가 환하게 밝아졌습니다. 서쪽 하늘 한 곳이 온통 불타는 듯 불덩이였습니다. 그때 외출 중이던 남편도 그 놀라운 장면을 차 안에서 목격하고 급히 차를 멈추고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고 하였습니다. 정말 짧은 순간의 일이었습니다. 아마도 장마가 계속될 것 같습니다. 내 영혼의 기름이 바닥나서 위급할 때 친구를 통해서 보내준 책들을 비 오는 날 읽으면서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확신하면서 더 큰사랑을 구할 때마다 기도에 응답해 주셨음을 체험하고 기쁨을 회복한 순간들 같았습니다. 장맛비가 그치고 뜨거운 여름 햇살로 온 시야가 밝고 환할 때가 되면 건강을 잃었던 동역자의 건강이 회복되고 연약한 성도들의 건강이 회복되었다는 기쁜 소식들을 들을 수 있기를 기다립니다
562 no image |살구나무 그날 아래서| 섬김도 헌신도 주님보다 앞설 수 없네_추둘란 집사 (1)
편집부
3341 2011-07-06
섬김도 헌신도 주님보다 앞설 수 없네 < 추둘란 집사, 수필가, 홍동밀알교회 > “이제야 참된 군사로 나아가는 첫 발 내디딘 것 같아” 원예치료사 과정 수료식이 있던 날, 모범상을 받았습니다. 15주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공부하러 나온 사람들이 받는 상이니 정확히 말하면 개근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름이 무엇이든, 그 상을 받았다는 것과 주신 분이 주님인 것만은 분명했습니다. 3월부터 홍성과 서울을 오가며 원예치료사 자격증 과정을 공부했습니다. 주님이 하라 하셔서 나섰는데, 하루하루 배울수록 주님의 선택에 대해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누구보다 잘 할 수 있고 아무리 힘들어도 행복할 수 있는 분야를 어쩌면 이리도 정확히 고르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화훼시장에서 식물을 구경하거나 구입하고, 식물의 생리와 사회복지에 대해 공부하고, 복지관과 요양센터를 찾아 원예치료 프로그램 실습을 하는 일은 내게는 즐겁고 신나기만 해서 순간순간 꿈이 아닌가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일주일에 두 번 혹은 세 번을 학교 앞 찜질방에서 자며 야간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 육체적으로 쉬운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5월말쯤 되니 체력이 바닥나서, 하루는 결석을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함께 공부하는 동기 한 명을 통하여 하나님은 ‘일어나라’는 문자를 보내주셨고 그 문자에 힘을 얻어 거짓말처럼 일어나 서울로 향했습니다. 15주 동안 일흔 번 정도 고속버스와 기차를 타고 다녔습니다. 멀미하거나 체하거나 아픈 데 없이 다녔으니 감사했습니다. 옆 차선을 보면 더러 교통사고 난 흔적도 있었는데 내가 탄 버스는 한 번도 사고 난 적이 없으니 감사했습니다. 더욱이 차편을 한 번도 예약하지 않고 다녔건만 차를 놓쳐 애먹은 적도 없었습니다. 한번은 토요일 저녁 막차를 타고 서울서 내려와야 했는데, 입석까지 매진이라 한 표만 어떻게 안 되겠냐고 역무원에게 통사정하고 있는 사이에 기적같이 좌석 하나가 생겨서 앉아 온 적이 있습니다. 또 하루는 홍성에서 입석을 사고, 무심코 빈자리에 앉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평택역까지 편안히 앉아 갈 수 있었습니다. 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토요일 오후에 요양병원 견학이 있었는데, 견학을 끝낸 후에 논문 작성 때문에 부천에서 동기들끼리 모임을 가졌습니다. 시간을 보니 아무래도 막차를 놓칠 것 같았습니다. 주말 오후라 서울로 들어가는 도로마다 꽉 막혀 있어 누구에게 태워달라는 말도 못 꺼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언니가 김포공항으로 가는 길은 한산하니 차라리 그리로 가서 9호선 급행 지하철을 타면 된다고 하면서 공항까지 태워다 주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강남터미널에 도착하여 표를 끊으니 막차의 마지막 좌석이었습니다. 출발 시각이 40분이나 남아 있었는데도 그 정도였으니, 만약 급행을 타지 못했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매번 그렇게 모든 불편을 최소화시켜 주며 공부하는 데에 부족함이 없게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순간들이 하나님이 배려해주시고 의도하신 결과라면 한 가지 의아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한 번의 결석을 결심한 날 ‘꼭 오세요’라고 문자를 보낸 이나, 김포공항까지 태워준 언니, 그리고 자신의 아파트에서 나를 재워준 언니들이 희한하게도 모두 열심 있는 불교신자들이었습니다. 태백에서 온 이는 친정동생의 오피스텔에서 여러 번 나를 재워주었는데, 그이는 불전의 꽃꽂이를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서울 꽃시장에서 생화를 사서 자신의 키 정도 되는 커다란 박스를 들고 태백까지 가는 그 열성에 입이 딱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한번은 그이가 당일에 태백으로 돌아가야 할 일이 있어 조퇴를 했습니다. 그런데 수업이 끝날 무렵 헐레벌떡 되돌아왔습니다. 간발의 차이로 기차를 놓쳤는데 오피스텔에서 나를 재워주기 위해 일부러 학교까지 되돌아 온 것이었습니다. 그이만이 아닙니다. 학교 축제가 있던 날, 평소 나의 전도대상자가 소일거리 삼아 목걸이와 핸드폰 고리 수공예품을 만들어 팔고 있는데, 그것을 가져와 내가 캠퍼스에서 팔아보겠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예상밖으로 많이 팔지 못해서 기운이 빠져 있는데, 한 언니가 와서는 남은 목걸이 30여 개를 한꺼번에 사 주었습니다. 전도대상자에게 위신을 세울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스러웠던지…. 그 언니도 나를 재워준 적이 있습니다. 이튿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공복에 물을 마시냐고 묻더니 차지도 뜨겁지도 않은 물을 온도까지 맞춰서 주고, 머리를 감고 수건으로 닦고 있으니 얼른 눈치를 채고 드라이기를 갖다 주었습니다. 그리고 온갖 나물과 반찬, 전으로 진수성찬을 차려 주었고 숟가락을 내려놓으니 이번에는 핸드드립 커피를 내놓았습니다. 우리 집에 손님이 오면 그리스도인인 나는 과연 그만큼 섬길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이상했습니다. 분명히 45명의 동기들 가운데 교회 다니는 동기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까이 지내고 나에게 친절과 섬김을 베푼 이들은 하나 같이 불교신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뜻을 갖고 계신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 뜻이 무엇인지 이내 알아차렸습니다. 평소 나는 내가 드리는 섬김, 헌신, 봉사로 하나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그것이 있어야 하나님 앞에 떳떳했는데, 어찌 보면 중보자인 예수님보다도 앞세운 것이 그런 사역이었고 내 자존감의 근거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사역들이 내 손발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의 칭찬을 즐기고 그 결과와 열매를 은근히 계수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아시고 그런 사역들은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불교신자들을 보게 하여서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행위로만 보자면 그들의 사역이 훨씬 더 눈부십니다. 그러므로 순전하게 하나님께 드린 것이 아니면, 그들의 사역이나 내 사역이나 다를 바 없는, 헛되고 헛된 수고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올해는 계속하여 주님께서 참된 섬김에 대하여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주님이 원하시면 할 수 없는 일이라도 기꺼이 하고, 주님이 원하시면 누구보다 잘 할 수 있고 간절히 하고 싶은 일도 멈추어야 한다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비로소 나의 생각을 내려놓고 참된 군사로 묵묵히 나아가는 첫 발을 이제야 겨우 내디뎠는지 모릅니다.
561 no image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요한 사도의 삶과 계시록 통독_최에스더 사모 (1)
편집부
3694 2011-06-08
요한 사도의 삶과 계시록 통독 < 최에스더 사모, 남서울평촌교회 > “평생을 바친 사도 요한 큰 감동으로 다가와” 사모들 가운데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사람도 적지 않고, 또 청년 시절 학원선교단체에서 말씀과 기도에 강도 높은 훈련을 받은 사람도 많겠지만 이도 저도 아닌, 그저 이제껏 교회에서 배운 게 전부인 나 같은 사모는 말씀을 설명해야 하거나 소리내어 대표기도라도 하게 되면 정말 대책 없이 떨린다. 그래서 고작 우리 집 아이들만 데리고 앉아서 동화구연과 뮤지컬과 모노드라마를 오가는 쇼를 하며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말씀에 복종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런데 덜컥 만난 이번 주의 말씀이 요한계시록이다. 아, 요한계시록! 이제까지 괜히 아이들 앞에서 엄마는 말씀을 잘 아는 것처럼 잘난 척을 했구나. 설명 없이 그냥 읽자고 했다가 유난히 이 말씀만 가지고 요란을 떠는 이단들이 이 말씀만 건너뛰고 자란 우리 아들들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유혹하는 일이 생길 것 같은 불안감이 또 밀려드는 것이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요한계시록을 읽기 전에 이런 이야기를 했다. “이 말씀은 아주 어려운 말씀이란다. 그래서 사람들이 오해를 하거나 아니면 차라리 외면을 했지. 그러나 1장 3절에서 이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다하셨으니 우리 열심히 읽자. 그리고 1,2,3,21,22장을 암송하는 큰 아들은 더욱 열심히 암송하고, 작은 아들은 곧 암송할 것이니 열심히 읽도록 하여라.” 설명을 자세히는 하지 않을 것이니 무조건 읽고 암송하자는 말을 돌려서 한 것이다. 그래도 요한계시록의 배경 설명을 해주고 싶어 사도 요한의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해주면서 나는 생각지도 못한 큰 은혜를 받았다. 사도 요한. 예수님의 사랑하시는 제자라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사도. 예수님의 공생애의 모든 것을 함께 한 제자. 그 누구보다 열정과 사랑과 확신으로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그 많은 일들을 낱낱이 기록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하다고 썼던, 기적과 이적을 두 눈으로 경험하고 목격했던 사람. 예수님의 능력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사람. 그러나 그는 그 예수님이 죄인처럼 잡혀가 참혹한 모습으로 십자가에 달려있는 그 자리에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서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남으로 철저히 망해버린 이스라엘이 이 나라 저 나라의 능욕을 받고 이제는 대로마제국의 한낱 변방에 지나지 않는,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속국이 되어서도 자신들이 무슨 대단한 존재라도 되는 양, 특별한 옷을 입고 특별한 날을 정해서 특별한 제사를 지내며 수 백 가지 율법 중 하나라도 지키지 않으면 버러지만도 못한 것들이라고 자신들을 경멸하는 제사장이라는 족속들, 지긋지긋하다. 약속된 구세주는 언제 오는 거냐고 원망할 때도 그 구세주는 혁명가요 쿠데타와 해방과 자유와 다윗과 솔로몬의 시대를 가져오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 요한에게 예수님께서 나타나셨고 그 예수님의 존재와 사역은 이 분이 바로 그분이라는 사실을 도저히 의심할 수 없도록 하였다. 그는 정말 신이 나서 예수님을 좇아다녔다. 그런데 그 예수님이 지금 십자가에 달려있는 것이다. 그가 얼마나 혼란스러웠을까. 이렇게 끝이 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다리가 굳어버렸는데 십자가 위의 예수님께서 입을 여신다. 그렇지. 저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 이루어지지 않은 적이 없었지. 요한은 분명 대반전의 순간을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다 이루었다.” 이루어지지 못한 적이 없었던 그 입의 말씀. 그가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지 다 아시면서, 그가 왜 지금 여기에 서있는지 다 아시면서 그리고 지금 그가 분노에 떨고 있다는 것도 아시면서 변함 없는 고요한 눈빛으로 하신 그 말씀. “보라, 네 어머니라.” 정녕 가려나보다. 포기하려나보다. 분노조차 힘을 잃게 하기에 충분했던 그 말씀.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가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변화산 사건, 오병이어 사건,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 같은 건 없었던 것처럼 되어버린 때에 ‘무덤이 비었다’라는 소리를 기어이 듣게 되었고, 그들은 달려갔고, 다시 흩어지고, 다시 고기를 잡으러가고 결국 예수님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하늘로 올리우시는 예수님을 보면서도 십자가 밑에서처럼 저렇게 가시면 이렇게 끝이 나는 건가, 이런 끝이 과연 말씀의 성취인가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을 경험했지만 아직도 증인으로서는 부족하기만 했던 그들에게 오순절 날, 예수님의 약속대로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님께서 오셔서 요한과 제자들을 완전히 변화시키셨고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어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삶을 살았다. 복음이 전파되고 교회가 세워지고 또 교회가 핍박으로 흩어지고 제자들의 순교가 이어지고 한 몸 이룬 형제와 자매들이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며 어린아이와 노인들까지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굶주린 짐승의 밥으로 끌려가는 것을 지켜보며 사도 요한은 자신의 사명을 다하며 살아왔다. 베드로가 순교할 때, 형제들이 순교할 때 자식과 같았던 자들이 죽음으로 끌려갈 때 그도 얼마나 바랬을까. 그러나 그는 끓는 기름솥으로 던져져도 죽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노구를 이끌고 밧모라고 하는 섬에 갇혀있는 것이다. 예수님을 위해 평생을 바친 그에게 남은 것은 죄인이라는 이름과 남루한 옷과 더러운 몸, 헝클어진 머리와 지저분한 얼굴, 죽을 때까지 갇혀서 일해야 하는 굽은 손과 맨 발, 그리고 언제 어떻게 처형당할지 모르는 운명이었다. 그런 그에게 주님의 날, 마치 수십 년 전 어느 오순절의 그 날처럼 성령님의 역사하심으로 사도 요한의 계시록은 시작된다. 아직도 꿈길에서 마주치는 요단강변, 갈릴리 호숫가, 감람산의 오솔길의 예수님이 아니라 해같이 빛나는 영광의 주님으로 오셔서 이제 사랑하시는 제자 요한에게 성경을 완성할 마지막 말씀을 기록하라는 사명을 주시는 것이다. 이 때 사도 요한은 천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흰 옷을 입고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어린 양을 찬양하는 모습을 본다. 이들은 누굴까? 누군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깨끗하고 정결한 모습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 것일까? 예수님을 찬양하는 데도 주리지도 않고 목마르지도 않고 상하지도 않은 이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온 사람들일까? 자유롭고 당당하게 예수님을 찬양하는 이들을 놀라워하는 요한은 이들이 바로 땅에서 큰 환난 가운데에서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한 자들이라는 설명을 듣는다. 그렇다면 이들이 바로 내 옆에서 끌려가고 죽임을 당하고 지하로 산 속으로 숨어 들어가고 짐승처럼 유리하며 살던 나의 형제 자매들이란 말인가. 정녕 그들이란 말인가. 예수님을 믿고 평생을 바친 사도 요한의 모습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영화로운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가 가졌을 감격을 짐작해보다가 나도 따라서 울고 말았다. 이 날의 해설은 여기까지 이야기해주는 것으로 마치고 아이들과 함께 기도드렸다. 우리도 이렇게 살다가 예수님을 만나고 싶다고, 어린 양의 피에 우리의 옷을 씻고 싶다고, 눈보다도 희게 되어 천국에서 영원토록 주님을 찬양하고 싶다고, 썩어질 것을 바라보다가 눈이 멀어져서 내가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 자 되고 싶지 않다고, 평생을 바친 사도 요한의 꼴이 되어도 감사가 넘치는, 그런 믿음을 가진 자 되게 해달라고 기도드렸다. 사도 요한의 삶이 얼마나 고마운지. 아직도 진행 중인 요한계시록 통독이 더욱더 단단한 부활 소망으로 우리를 이끌 줄 미리 확신하며 감격한다.
560 no image |들꽃향기처럼| 초대교회의 땅, 터키 방문록_윤순열 사모
편집부
4405 2011-04-06
초대교회의 땅, 터키 방문록 < 윤순열 사모, 서문교회 > “지하로 숨어 신앙 지켰던 선배들 기억해” 11시간을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터키 이스탄불은 새벽 4시 30분이었습니다. 밖에는 봄을 시샘하는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었습니다. 매서운 찬바람 속에 선교사님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가이드인 선교사님의 안내에 따라 한인 식당서 아침 식사를 하고 조금 이른 시간에 첫 번째 일정으로 블루모스크 사원에 갔습니다. 눈보라 속에 떨면서 간 사원은 너무 일찍 간 탓에 문을 열지 않았고 우리는 할 수 없이 일정을 바꾸어 보스포러스 바다에 가서 유람선을 탔습니다. 특이한 사항은 양쪽에 큰 도시를 끼고 바다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한쪽은 아시아 한쪽은 유럽인 특이한 나라였습니다. 배에서 내린 후 너무 일찍 갔다가 되돌아온 블루모스크 사원을 방문하였습니다. 먼 곳에서부터 웅장하게 보이는 돔형의 모스크 6개의 탑 끝에는 노랗게 금을 입혀놓아 반짝반짝 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압도적이고 성스러운 분위기가 이교도의 신성을 한껏 자극하는 듯 했습니다. 맞은편에 있는 성 소피아 성당의 본을 따 만든 건축 양식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돔형 건축양식은 그들이 원조가 아니라 교회가 원조인 것을 그들이 본떠서 짓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 그곳을 나온 후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성 소피아 성당을 방문하였습니다. 성당은 화려하고 웅장하였습니다. 6세기에 지어진 성 소피아는 비잔틴 건축의 걸작으로 세계의 8번째 불가사의로 여겨진다고 하였습니다. 그 후 오스만 터키가 이스탄불을 점령하는 날 성당은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되었고 그들은 성당 내부의 화려한 모자이크 그림들 위에 회칠을 두껍게 해놓아 그림을 모두 없애 버렸습니다. 나중에 성당을 되찾은 후 두꺼운 회벽을 벗겨보니 놀라운 그림들이 나타났지만 복원하는 과정에서 그림의 원본도 떨어져 나가 군데군데 얼룩의 모양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아무리 웅장하고 화려하여 예술적 가치가 뛰어난 예배당도 신앙이 타락하면 이교도에게 빼앗겨 우상을 숭배하는 곳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경종으로 다가왔습니다. 순례 후 공항으로 이동하여 비행기를 타고 아다나에 도착해 하룻밤을 유숙한 후 수리아 안디옥교회를 방문하였습니다. 동굴 안 안디옥교회는 저에게 말할 수 없는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외국에서 만나는 교회당들은 그 인물이나 장소를 기념하는 교회당으로서 후대인들에 의해 세워진 것이라면 이곳은 역사적인 현장 그대로 보존된 아주 역사성이 뛰어난 동굴 안의 작은 교회당이었습니다. 이방 땅에 세워진 최초의 교회당이며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사로 파송한 성령과 은혜가 충만하였던 사도행전 11장의 현장에 제가와 있다는 것이 꿈만 같습니다. 제자들이 비로소 안디옥에서 이방인들에게 ‘그리스도인’이라 칭함을 받은 안디옥교회는 크거나 웅장함도 없었고 더군다나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작고 척박한 교회였습니다. 앞쪽에 돌로 된 강대상이 있고 동굴 안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경건함이 흠씬 묻어나는 아늑한 분위기였습니다. “주의 손이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주께 돌아오더라”는 말씀이 떠오르며 표현 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밖에 나오니 관광차 앞에서 어린 소년들이 비를 맞으며 야생화 꽃을 건네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관광객들에게 무언가를 바라고 하는 행위인 것 같았습니다. 남북한의 4배나 되는 드넓은 땅 초원 위에 풀을 뜯는 하얀 양무리들과 넓은 오렌지 농장 푸른 잔디밭처럼 펼쳐진 밀밭 끝없는 초원 위에 노랗고 하얗게 핀 야생화 봄꽃들이 성경의 배경이 되는 신비의 나라를 나는 순례하고 있습니다. 차창 밖으로 펼쳐진 시골 마을의 집들은 너무 낡고 초라합니다. 마을마다 세워진 모스크는 우리나라 마을마다 우뚝 우뚝 세워진 교회와 너무나 대조적입니다. 국민의 98%가 모슬렘이며 이슬람이 국교인 그 나라를 보면서 성경이 배경이었던 나라가 어떻게 이렇게까지 되었는지 아이러니로 다가옵니다. 이곳에서 다섯 시간을 달려 카파도기야로 이동 중입니다. 한참 졸고 있는데 남편이 옆구리를 찌릅니다. 조금 전까지 보았던 푸르른 들판과 달리 흰 눈으로 뒤덮인 토로스 산맥을 넘어가는 중입니다. 기상이변 현상이랍니다. 무사히 카파도기아 까지 가길 기도드립니다. 사도 요한의 유배지 밧모섬 관광을 이번에 생략한 이유도 3월의 기상 이변을 생각해 생략했다고 하였습니다. 얼마 전에는 선교단체 대학생들이 밧모섬에 들어가다가 유라굴로를 만나 모두 선교사로 헌신하였답니다. ‘목숨만 살려 주시면 선교사로 헌신하겠습니다!’라며 배 안에 있던 학생 전체가 헌신하는 이변이 있었다고 합니다. 어느덧 카파도기아입니다. 지형의 변화로 요정의 마을처럼 변해버린 모양들이 장관입니다. 사람이 흉내낼 수 없는 창조물 앞에 경외감이 느껴집니다. 조금 지나자 기독교 박해 시대 때 핍박을 피해 지하로 숨어서 신앙을 지켰던 지하도시가 나타납니다. 그들은 캄캄한 토굴 속에서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목숨이 다하면 그곳에 묻히며 신앙을 지켰습니다. 100개가 넘는 지하 도시가 있지만 36개가 발견된 그곳은 지하 20층까지 된 곳으로 너무도 방대하여 세계 9대 불가사의라고 하였습니다. 모진 핍박 속에 목숨을 건 그들의 신앙에 머리가 숙여집니다. 소아시아 일곱 교회를 방문 중 특별히 에베소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고대도시 에베소는 너무나 아름다운 도시였습니다. 대리석 거리를 따라 눈앞에 펼쳐진 도시의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워서 눈이 부실 정도였습니다. 지금은 지진으로 대리석 기둥들만 그 흔적들을 남겨두고 있었지만 대극장, 캘수스 도서관, 사랑의 집, 하드리안 신전, 목욕탕, 화장실 등 과거의 화려했던 흔적들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도시였습니다. 특히 은장색 데메드리오 사건으로 소동이 일어나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들어가 [지금 그 연극장이 그대로 있음] 사도행전 19장의 영문도 모르고 외쳐대는 그들의 함성이 들리는 듯해 생생한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새벽 5시면 모스크의 새벽기도를 알리는 종소리에 어김없이 눈이 떠집니다. 구슬픈 종소리가 그들의 영혼의 울부짖음 같이 들려옵니다. 고국의 교회를 위해, 터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합니다. 구약이 시작된 곳, 신약의 마지막이 된 곳, 유부라데 강이 있었고 노아의 방주가 머물렀던 5450미터의 아라랏산이 있고, 아브라함이 태어난 곳, 욥이 태어난 곳 등이 지금은 어이해서 이슬람의 도시가 되었는지 가슴이 아플 뿐입니다. 가도 가도 십자가 하나 없는 둥근 돔형의 모스크의 첨탑이 마을 곳곳을 장악하고 있는 슬픈 나라가 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그들의 알라는 풍요를 못 주는지 가는 곳마다 어리디 어린 소년 소녀들이 ‘원 달라’를 외치며 관광객들에게 구걸을 합니다. 여행 중에 일본의 대지진 쓰나미 비보를 들었습니다. 내일이면 국경을 넘어 그리스로 넘어갑니다.
559 no image |채석포에서 온 편지| 진달래꽃과 쭈구미_김영자 사모
편집부
3736 2011-04-06
진달래꽃과 쭈구미 < 김영자 사모, 채석포교회 > “열심인 듯하다 어느날부터 방학인 성도들이 속상하기도” 이웃 나라의 원자력발전소 재난 소식과,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소나무 숲이 짙은 안개로 인하여 희미하게 보이는 것이 봄날에 대한 막연한 떨림과 기대를 져버리게 합니다. 그렇지만 뒷산의 진달래는 꽃봉오리가 솟아오르고 언덕 비탈의 개나리도 노란색의 꽃주머니가 불룩해지고 있습니다. 요즈음 변화무쌍한 날씨 때문에 마음까지도 약간 우울한 시간에 전화벨 소리가 주위의 적막감을 깨뜨렸습니다. 개인적으로 사적인 이야기를 나눌 기회는 없었으나 사모세미나에서 서로 웃는 얼굴로 인사를 나누었던 사모님의 명랑한 목소리였습니다. 목사님 두 부부가 우리 집을 방문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낯설고 멀게만 느껴졌던 목사님 두 부부가 우리 집을 방문한다고 하니 조금 이른 듯하지만 봄 대청소를 시작으로 커튼도 바꾸면서 갑자기 일손이 바빠지기 시작했습니다. 바닷가에 있으니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해물 요리로 메뉴를 결정하고 손님들을 맞이했습니다. 경기도와 전라북도의 먼 거리에서 두 부부가 이곳에 오셔서 준비한 음식을 맛있게 드시고 여러 가지 말씀을 나누면서 서로에 대해 조금씩 마음들을 헤아리며 즐거운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음악 하는 사람들은 악기를 통해서 마음이 정화된다고 하듯이 각자 다른 사역지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주님을 향한 사랑을 목표로 하는 만남에서 귀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서로 행복을 느끼며 또 하나의 관계를 맺는 것이 기뻤습니다. 집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일이 몸에는 조금 힘들지만 날마다 비슷비슷하게 되풀이되는 일상의 반복에서 나에게 긴장감을 가져다주기도 하며 내 삶에 녹슬지 않게 하기 때문에 피곤하면서도 즐거움을 느끼게 합니다. 겨우내 간절하게 햇빛을 그리워했듯이 닫혀 있던 내 마음의 문들이 방문자들로 인하여 조금씩 열리기도 하고 굳어지려는 나의 가슴에 물기를 보태주기도 했습니다. 하룻밤을 자고 나면 새로운 정보들과 변화된 모습들의 환경에 적응하며 관심을 갖는 도시인들과는 달리, 농사를 짓고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는 어부들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도 날씨에 모든 삶이 달려 있습니다. 이번 겨울은 많은 눈이 내리고 춥고 지루했던 날들이 많았습니다. 우리는 이런 어두운 기억 속에서 빨리 벗어나 따뜻한 봄날이 되어 삶의 터전인 바다가 그들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싶어합니다. 모든 직장에는 정년이 있지만 농부나 어부에게는 정년이 없고, 자기가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일을 할 수 있는 자유로움이 있습니다. 어부들은 해마다 구정이 지나고 해동이 시작되면서 주꾸미의 아파트라고 하는 소라껍질을 바다에 넣고 주꾸미가 아파트에 가득 차는 꿈을 꿉니다. 그러나 금년에는 날씨가 너무 춥고 바람이 많이 불어 바다에 나갈 수도 없고 수온이 낮아 기다리는 주꾸미는 먼 바다에서 아직 돌아오지를 못하고 있으니 어부들의 걱정하는 한숨소리가 들리지만 자연은 그 누구도 어찌할 수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10년을 넘게 살아오는 동안 성도들과 함께 지내온 세월만큼 많은 정이 들면서 대가족의 가장과 같은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열 손가락을 깨물면 다 아프고 그 손가락의 길이가 서로 다르듯이 성도들도 각기 다르다는 것을 많이 생각합니다. 도회지에서는 아파트 앞집에 누가 사는지 무관심하지만 모든 공간이 펼쳐진 이곳에서는 집주인보다도 이웃이 내 살림에 더 관심을 갖기도 합니다. 가끔씩 그러한 일들이 불편할 때도 있지만 변화 없는 생활들이 때로는 이웃들에게 편안한 마음들을 갖도록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습관에는 관대하지만 새로운 변화에 대해서는 아집과 두려움으로 반발하고 이질감을 드러냅니다. 목회자 가정은 주민들에게는 가까우면서도 먼 이웃 사람들입니다. 도회지에서는 이 교회 저 교회 옮겨 다니는 철새 교인들이 있다지만 이웃들의 삶을 다 알고 있는 채석포에서는 교회를 옮겨 다니는 것이 아니라 1년에 한두 달은 열심인 듯하다가 어느 날부터 방학인 성도들이 가끔씩 속상하게 합니다. 지난 주일날에는 예배시간이 다가오자 찬송을 인도하는 목사님의 시선이 자꾸 창 너머에 머물고, 피아노를 치고 있던 나의 손가락도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건반 이탈을 자주 하였는데 역시 기다림 때문이었습니다. 10년이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1년에 한두 달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열심을 내다가 어느 날 그 얼굴이 보이지 않으면 또 병이 시작되었나 하고 생각이 드는 성도가 있습니다. 이제는 그 성도 때문에 마음 아파하지 말고 그 얼굴을 잊고 기다리지 말자고 다짐하지만 잃은 양 한 마리를 귀히 여기시는 예수님 때문에 속았다고 생각하면서도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한 영적장애인(?)을 십년 넘게 포기하지 못하고 기다림으로 가슴 조이고 있습니다. 토요일 이른 아침에 “목사님, 저.... 교회 나가도 되요?” 하면서 천연덕스럽게 전화가 왔습니다. 그 목소리 한마디에 그동안 서운했던 일들이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주일예배에 행여나 하고 기다렸지만 참석하지 못한 성도에게 서운함 대신 혹여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며 또 걱정까지 하고 있습니다. 봄철 주꾸미는 진달래꽃이 필 무렵이 가장 맛있다고 합니다. 주꾸미아파트에 주꾸미가 가득 채워지고 채석포 뒷산에 진달래꽃이 활짝 피기 전에 집나간 성도가 돌아와 미안한 모습을 하면서 고개 숙인 모습으로 그 동안 비워진 제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을 그려봅니다.
558 no image |치악골의 아침사색| 인생을 제대로 아는 자에게는_변세권 목사
편집부
3396 2011-04-06
인생을 제대로 아는 자에게는 < 변세권 목사 · 온유한교회 > “우리는 강요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긍휼로 사는 사람들” 또다시 춘설이 내리고 아파트 뜰 안의 꽃 몽우리들이 혼란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떨구고 있다. 인간들은 쓰나미에 쓰러지고 동물들은 구제역에 죽어갔는데 긴 겨울 찬바람을 뚫고 용케도 살아온 자연이 위대하기만 하다. 이것이 어찌 자연뿐일까? 하나님께서도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세상에 오셔서 역사를 간섭하시지만 구원이 완성되고 심판이 이루어지기까지 이런 혼란과 훈련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우리는 은혜로 다시 출발한 인생이다. 세상의 거대한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우리를 하나님은 결코 외면하시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실패하든 고통스럽든 그런 삶의 과정과 공동체의 신앙훈련을 통해 우리를 더 속 깊은 사랑으로, 더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깊은 지식으로 이끌어주실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못난 것을 하나님도 아시고 우리도 잘 알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교회를 바라볼 때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실천의 유무보다, ‘하면 된다’ 보다 기초에 따라 결과가 다르다는 것과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실천적 대안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때다. 살면서보니 인간에게 옳은 것과 진심을 말하는 것은 어렵다. 몰라서 안 되는 것이 신앙이고 인생인 것 같다. 믿음이 모든 것을 알고 현실적인 것으로 보상이 된다면 그것은 진정한 믿음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열매를 얼마나 맺었는가보다 열매로 증거되는 나무가 되라고 말씀하신다. ‘무엇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되라’는 것이다. 열매가 달리지 않았어도 그 열매의 나무로 존재하라는 것이다. ‘하면 된다’는 이런 식의 고민은 몇 몇 사람의 이야기지 많은 사람들은 실제로 그렇게 살고 있지 않다. 그래서 믿음으로 그 현실을 보는 것이다. 그런 것과 비추어 혹자는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언제까지 우리의 본질과 존재성, 정체성만 이야기할 것인가? 당연히 전도와 성장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고 전도하면서 교회를 성장시켜야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했어도 기초의 훈련을 받지 않는 한 나중에 일을 만들어놨어도 죄의 본성으로 우리는 또 돌아가서 같은 고민을 반복하게 된다. 이제 우리는 기독교 신앙에 참여하고 있는가를 볼 줄 알아야 한다. 박영선 목사님 말씀처럼 옳은 것도 사랑이 아니고 진심도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상대방의 잘못을 용서하고 고치는 일이다. 다만 진심, 다만 의, 다만 정답만이 답은 아닌 것이다. 사랑은 상대방의 허물을 믿음으로 기다리고 참아주는 것이다. 부부사이가 나이가 들면 그냥 넘어갈 줄 아는 것처럼 말이다. 그것이 사람에게는 기적이다. 체념이 아니고 사람이 사람을 고칠 수 없다는 것을 이제야 아는 것이다. 인간은 가진 것이나 배운 것으로 항복하지 않고 이해와 용서하는 성품 앞에 인격이 항복하는 것이다. ‘너희가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주님의 경고에 귀 기울여야 한다. 우리는 도덕적 온전함도 아니요, 성결도 아니요, 성품적으로 놀라워해야 한다. 이런 곳에는 외형적인 비교만 있지 신앙의 방향과 내용을 가질 줄 모르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존재로 살아야 한다. 이것을 알면서도 세상에 붙잡혀 있다보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러나 정신 없는 그 일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만들어져간다고 생각된다.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그 일과 주어진 현실이 치열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때로는 사람에 대해서도 내 말을 들으라는 식의 무례함을 보이기도 한다. 상대방은 바보인가? 그럴 리가 없다. 어떻게 하다보니 우리는 진실과 옳음과 효과가 있기만을 바란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방법으로 일하심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의 강생은 논리도 강요도 필요 없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우리는 하나님이 무한히 일하시는 경우와 계획만이 자리하는 것을 믿어야 한다. 기독교 신앙은 적극적인 측면에서는 사랑이고 소극적인 측면에서는 용서다. 성경이 가라는 대로 갈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용서하고 바보가 되는 것이다. 우리 주 예수 안에 있는 성령의 열매 외에는 우리에게 더 이상의 자랑이 있을 수 없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 다해놓고 ‘주여!’ 해서는 안 된다. 신앙은 하나님을 알아도 하루도 이 세상에서 쉴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신앙은 인간 관계속에서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성질내고 복수하는 것으로 되는 사람이 아니고 우리의 못남에도 끊임없이 기다려주시고 강요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긍휼로 사는 사람이다. 사실 인생을 기가 막히게 아는 자에게 인생은 정상으로 못 가는 법이다. 그러니까 ‘하나님 이게 말이 됩니까?’라고 질문하는 사람은 아직도 어린 사람이다. 하나님은 오늘도 현실의 많은 문제로 우리를 인도하신다. 우리의 못난 인생을 하나님께 드렸기 때문에 쓰시고 잘난 인생은 쓰시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 안에서 부르신 사랑으로 살기 때문이다.
557 no image |살구나무 그늘 아래서| 작은 불편도 헤아리시는 주님_추둘란 집사
편집부
3761 2011-03-23
작은 불편도 헤아리시는 주님 < 추둘란 집사, 수필가, 홍동밀알교회 > “사소한 모든 것까지도 배려해 주시는 주님의 손길 느껴” 그날 밤 이불 속에서 주님께 간곡히 기도했습니다.“주님! 내일부터 시작이군요. 저는 두렵습니다. 지금이라도 하지 말라 하시면, 등록비 환불받고 그만두겠습니다. 넉 달 동안 서른 번을 찜질방에서 자고 새벽기차를 타고 다녀야 하는데 시간, 체력, 돈 어느 모로 보나 도저히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은 여전히 똑같은 대답을 주셨습니다. “가라. 너의 행복을 위해 가라. 너 자신보다 내가 너의 행복을 더 잘 아노라.” 그리고 이튿날 아침, 주님은 주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던지던 베드로 이야기를 QT 본문으로 주셨습니다. 3년 전입니다. 성경공부 과정 가운데 하나님은 제게 1년 계획과 10년 계획을 써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10년 계획 가운데 원예치료가 있었습니다. 그때까지 한 번도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던 분야였는데 막상 써 놓고 보니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이 설레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여러 여건상 바로 시작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이 하라 하신 일이기에 기도수첩에서 제목을 지우지 않았고 계속하여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올해 1월 마지막 주에, 하나님이 자꾸만 건대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라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홈페이지를 열어보니 그 주 월요일부터 건대 미래지식교육원에서 원예치료사 과정을 모집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염려와 걱정을 뒤로하고 등록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개강일이 되어, 함께 공부하게 된 동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예년에 비해 일주일 앞당겨 모집하는 바람에 2월초에 모집 공고가 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등록을 하지 못하고 대기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학기마다 두세 번 대기자로 밀려 있다가, 이번에는 아예 컴퓨터 앞에서 등록 시작 시간을 카운트다운 하면서 기다렸다가 간신히 등록을 하게 되었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남들처럼 열심히 정보를 검색하며 준비한 사람도 아닌데, 하나님이 종용하지 않았으면 나 같은 시골뜨기는 등록조차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계획한 일이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잇달아 일어났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 야간 수업을 들으러 서울을 가야 하니, 아이들 끼니를 미리 챙겨놓고 가야 합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친정 어머니가 마을 추첨 행사에 당첨되었다며 전기밥솥을 보내왔습니다. 우리집에 있던 전기밥솥은 고장은 안 났지만 10년 넘게 쓴 것이라 냄새가 좋지 않습니다. 그것을 아시고 하나님이 가장 좋은 때에 새 전기밥솥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생각지도 않던 승용차도 한 대 주셨습니다. 영어학원을 운영하고 있던 언니가 학원차로 쓰던 것인데, 자기에게는 애물단지이니 제발 가져가라며 무상으로 주었습니다. 우리 마을에서 홍성역까지 버스편이 많지 않아서 불편한데, 하나님이 시간 낭비하지 말라고 남편과 차를 따로 쓸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것입니다. 전기밥솥이나 승용차는 내가 기도하지 않은 것이었고, 불편을 감수하라고 하면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딸의 마음을 어여삐 여기셔서 어떻게든 불편이 없도록 섬세하게 배려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마음도 정리되고 스케줄도 확정되니 희한하게도 유혹이 밀려왔습니다. 인턴교사 자리가 있다고 소개가 들어오고, 생협 직원으로 오지 않겠냐는 제의가 들어오고, 오카리나 지도자 과정 이수하면 수천만원 연봉을 보장해줄 테니 함께 하자는 제의도 들어왔습니다. 한 푼이 아쉬운 우리 형편에 그 가운데 한 가지 제의만 받아들여도 당장 이번 달부터 빚내지 않고 살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베드로의 그물만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결정하고 내가 책임지고 살았지만 이번만은 하나님이 책임지겠다는 그 약속을 믿기로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꼼꼼하고 철저하신지 대중교통 시간을 확인해 보면서 나는 ‘아!’하고 감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홍성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동서울터미널에 내린 다음, 건대입구까지 지하철을 타면 수업시간 20분전에 도착합니다. 저녁으로 샌드위치라도 먹을 여유 시간을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찜질방에서 자고 일어나 건대입구역의 첫 전철을 타면 왕십리역에서 중앙선으로 갈아타야 하는데, 갈아타는 곳에서 1분만 기다리면 전철이 도착합니다. 그것을 타고 용산역에 내려 무궁화호 기차를 타면 출발 시간까지 딱 5분이 남습니다. 부정맥이 있어서 지하철역 계단을 숨가쁘게 뛰는 것을 두려워하는 나에게, 하나님은 평상시의 내 걸음으로도 기차를 놓치지 않도록, 혹여 피곤한 몸으로 지하철역이나 기차역에서 오랜 시간 기다리지 않도록 모든 것을 조정해 놓으셨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다음 주부터는 야간에 듣는 수업말고도 낮 시간에 임상실습을 해야 하는데, 서울 강남과 강서에 있는 치매센터와 장애인복지관, 요양원, 경기도 성남의 어린이집을 돌며 실습보조를 합니다. 그런데 그 어떤 곳도 시간이 터무니없이 남거나 부족한 곳이 없습니다. 모든 실습지에 정시에 도착하거나 10분전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내가 결정자요 책임자이면 이런 준비된 행운을 만나도 기쁨이 없을 터인데, 결정권과 책임을 하나님께 내어드리니 사소한 모든 것을 조정하시고 배려해 주시는 주님의 손길을 곳곳에서 느끼게 됩니다. 그러므로 지하철 안에서도 버스 안에서도 강의실 안에서도 내가 있는 어느 자리이든, 감사의 기도를 올려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556 no image |하늘이슬로 쓴 편지| 끝END에 시작이 있습니다_이영란 사모
편집부
3625 2011-03-09
끝END에 시작이 있습니다 < 이영란 사모, 좋은소식교회 > “우리는 벼랑 끝에서도 노래할 수 있는 사람들” 주보를 펼치는 순간 102장이란 숫자가 눈에 확 들어왔다. 우연인지 한 주간 내내 불렀던 찬송이었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명예와 바꿀 수 없네.’ 이 찬송을 성도들과 함께 부르면서 다시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오직 주님 밖에 없다는 감격의 눈물이었다. 얼마 전에 나는 잘 알고 지내는 사람들 앞에서 그동안 쌓여진 인격이 실추되는 어려운 일을 경험했다. 소중히 쌓아왔던 명예를 한순간에 잃어버리고 치졸한 사람이 되어 친구조차 등을 돌리는 듯 했다. ‘이것이 끝이라는 것이구나!’ 싶었다. 정말로 밑이 안 보이는 낭떠러지였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에 주님이 계신 것이 아닌가! ‘내 끝에 내 시작이 있다’고 한 시인이 고백한 것처럼 그분은 내가 벼랑에서 떨어질 때 날개를 달아주셨다. 오랜 세월 늘 하나님 앞에서 죄를 회개하며 진실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람들 앞에서 죄인이 된 적은 없었다. 매스컴에서 자주 보듯이 유명 인사들의 죄가 천하에 드러나게 되거나 혹 청문회에서 한순간 변명의 여지도 없이 부끄러운 부분이 드러나는 것을 볼 때면 두려웠다. 어떤 한 정치인이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책을 쓰고 남은 세월 전국으로 돌며 오열하며 강연하던 것을 들은 기억이 있다. 오해이든 아니든 사람들 앞에서 죄인이 된다는 것은 절벽에서 떨어지는 또 다른 죽음이다. 대중 앞에서 죄인으로 판결 받고 우리의 죄와 궁극적 악(evil)의 무게를 짊어지신 채 심판대에 서신 주님이 생각났다. 얼마나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우셨을까! 오랜 세월동안 늘 회개하면서 십자가를 붙들며 살았다고는 하지만 어느새 너무 의인이 되어버려 주님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으니 이렇게라도 사람 앞에서 수치를 당해야 하나보다 하기도 했다. 스스로 회개할 자정능력을 잃어버렸다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어거스틴은 감독으로서 아프리카와 유럽전역에서 높은 덕망과 학식으로 가장 존경받고 있을 때 고백록을 써서 자신의 현재를 뒤엎고 과거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는데 이렇게 책을 쓸 수도 없고 말이다. 자기의 죄로 인해 애통했던 세리는 주님을 만났지만 바리새인처럼 우리는 많은 종교 활동 속에서 그분을 만나는 참 기쁨을 누릴 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남을 비판하고 가르치기만 하려고 한다. 점점 영혼이 말라버리고 사막처럼 되어가니 어거스틴을 망가뜨린 유쾌한 거짓 명예와 성공, 달콤한 세속적 쾌락과 같은 신기루를 향해 달려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듯 스스로는 도저히 돌이킬 수 없을 때 가고 싶은 데까지 가도록 내버려두시고 결국 벼랑 끝에 서게 하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거스틴도 현재 자신이 걷잡을 수 없이 부서져 있다고 하며 주님의 사랑의 불길에 다 정화되어 그분과 하나 되기까지 이 시련과 번뇌는 계속될 것이라고 했는데 나 또한 끝(end)에 도달해서야 목적(end)이 되시는 주님을 만나게 되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간의 구약이라는 방대한 내러티브도 결국 멸망의 끝으로 가도록 내버려두셨지만(왕하 25장) 영원한 희망, 예수 그리스도께로 향하게 하신 것이 아닌가! 존 번연은 ‘상한 심령으로 서라’에서 “우리를 살리기 위해 죽이신다”고 했다. 가장 소중히 여기던 것을 다 잃어버리고 ‘다시는 시작할 수 없다. 이제 정말 마지막이다!’라고 하는 ‘끝의 끝’에 서게 하셨을 때 그분은 새로운 시작이 되신다. 끝에 시작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벼랑 끝에서도 노래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를 낭떠러지로 밀어내실 때 오히려 더 높은 곳을 날게 하시니 주님을 어찌 찬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오! 비길 데가 없으신 주님, 주님을 향한 저희의 찬미는 저희의 인간성을 뛰어넘습니다!(‘고백록’ 제1장).
555 no image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부부로 사는 것과 현실_최에스더 사모
편집부
3934 2011-03-09
부부로 사는 것과 현실 < 최에스더 사모 · 남서울평촌교회 > “부부가 살아가는 모습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 볼 수 있어” 젊다못해 어린 나이에 담임목회자의 아내 자리에 서게 되면서 나는 이제까지 참 많은 부부들을 보아왔다. 고작 내 집안의 어르신들을 보거나 아니면 교회에서 만나는 다양한 연령의 부부들의 겉모습만 볼 수 있는 나이였는데 담임목회를 하면서 보다 깊고 보다 현실적이고 보다 진한 부부의 모습을 옆에서 참 많이 지켜볼 수 있었다. 떼려야 뗄 수 없는 부모자식간의 정은 내가 이미 경험하고 있는 바이고 문학과 문화를 통하여 많이도 보고 배워왔으나 부부 사이에 대해서 아는 거라곤 내 부모의 모습 외에는 전무하였다. 근래에 들어 새롭게 알았다는 것이 그저 젊어서는 자기 일과 생활에 바빴던 남편들이 나이가 들면서 부인 뒤를 졸졸 따라다니게 되는 때가 온다는데 그 때의 남편들을 한 번 붙으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젖은 낙엽이라고 부른다는, 누구나 아는 농담 정도이다. 우리 교회는 유난히 가족중심의 교회이다. 부인 혼자서 교회에 다니는 경우가 아직도 한국교회에 흔한 모습일 것인데도, 우리 교회에서는 잘못하다가는 이런 분들이 소외감을 느끼기 십상일 정도로 부부가 함께 신앙생활, 교회생활을 하며 자녀들까지 한 울타리 안에서 한 교회를 섬기고 있는 가정이 많다. 우리 교회 가정 출신의 신학생, 목회자, 선교사들도 짧은 교회 역사에 비해 꽤 많은 편이다. 이런 분위기여서 내가 더욱 연세 지긋한 부부들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 내가 이런 부부들의 모습을 더욱 가까이 볼 수 있는 기회는 그들에게 위급한 일이 닥쳤을 때이다. 배우자가 중한 병에 걸렸다는 의사의 통보를 받았거나, 큰 수술을 앞두고 있거나, 수술 후 경과를 기다리거나, 회복과 재발이 반복되고 있거나, 혹은 힘든 투병을 거쳐 소천하였거나 하는 다양한 순간들마다 함께 울고 함께 기도하기 위하여 우리 부부는 그들과 같이 있었다. 그럴 때 부부가 서로에게 의지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나는 깊은 감동과 깊은 생각에 동시에 빠지게 된다. 부부라는 것이 뭘까. 우리가 타인이자면 얼마나 먼 타인인가. 마음이 안 맞을 때는 얼마나 낯선 타인인가. 함께 아이를 낳고 키우고 있지만 서로 자란 환경이, 그래서 각자 안에 자리잡은 가치관은 얼마나 무섭도록 다른가. 그런데도 부부라는 것은 어떤 관계이기에 차라리 자기 자신에게 일어났으면 좋았을 일이라며 이토록 서럽게 울고, 이토록 안타까워하고, 이토록 몸부림치며 우는 것인가. 병상에 누워있는 사람의 눈은 오직 한 사람, 자신의 배우자만을 애타게 찾고 기다리는 눈이었다. 완전한 의지. 또 그 의지를 조금도 버거워하지 않고 기쁘게 받아내는 바로 그 사람, 배우자! 한 사람과 또 한 사람이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만나 부부가 되어 서로 측은히 여기며 한없이 서로에게 의지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나는 그 순간 정말 하나님의 사랑의 그림자를 조금은 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어쩌다 식당에서 음식을 기다리다 텔레비젼으로 드라마라도 보게되면 아직 벽에 신혼부부 사진이 크게 걸려있는데도 만나자마자 정말 원수처럼 으르렁대며 싸우는 부부의 모습을 볼 때, 나는 그 모습이 얼마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지 모른다.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이 세상의 부부와 저 텔레비전 속의 부부의 모습 사이의 간극이 너무나 엄청나서 다시는 안 볼 사람처럼 싸우고 있는 그 부부의 모습이 마치 코메디처럼 느껴져서 대사를 들으며 실소를 금치 못한다. 어떤 것이 현실이고 어떤 것이 비현실일까. 나도 알고 있다. 내가 보고 있는 드라모 속의 부부 모습이 비현실에 가까운 모습이라는 것을. 현실은 참으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그러나 어쩌랴. 내가 말하고 있는 이 병상에서 보고 있는 부부의 모습은 가상이 아니라 내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진 바이거늘. 우리가 다 그런 존재라고 생각한다. 비현실을 현실에서 사는 존재. 죄뿐인 이 세상에서 천국을 이미 소유하고 있는 존재. 봄이다. 만물이 또다시 살아나는 계절.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이 계절에 결혼을 꿈꾸겠는가. 젊은이들이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이 비현실의 세계로 어서 오라!
554 no image |치악골의 아침사색| “당신은 알지”_변세권 목사
편집부
3706 2011-02-23
“당신은 알지” < 변세권 목사 · 온유한교회 > “신앙은 하루가 아닌 평생을 살아감으로써 이루는 것” 며칠 봄 햇살 내리던 거리에 다시 칼바람이 불고 강원 영동 지역에는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다. 하지만 그렇게 힘들었던 겨울도 이내 끝자락이 보이게 될 것이다. 연말이 지나고 새해가 밝아 왔을 때 나는 언제나 신실한 청교도적인 장로교 목사가 되고 싶다고 다짐했었다. 이런 자세로만 목회할 수 있다면 다른 것은 조금 부족하고 힘들어도 잘 참고 가게 해 달라고 기도했었다. 하지만 그런 소원은 며칠 못가고 사정없이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기독교신앙의 본질과 원리를 추구하면서 목회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닐 것이다. 진리는 그렇다 치고 인생과 인간을 모른다는 것이 더 힘든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 목사들은 성경이 말하는 것을 전하는 것과 그 말한 것을 살아내야 하기 때문에 사실은 더 어려움이 많은 것이다. 가족을 가지고 허덕이면서 지지고 볶으며 살아봐야 현실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안 되는 현실을 보면서 아우성을 쳐봐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은 살면서 이해하는 것이다. 신앙도 지난 시대에는 복음선포 차원에서만 진행이 되었지 삶으로 살아내는 것은 걱정을 하지 않았다. 복음으로 이끌어만 냈지 살아내는 모습은 없었다. 우리도 그동안 이성주의, 합리주의, 계몽주의 등 자유주의에 대항하면서 삶과 선포를 묶기 위해서 분리주의자가 되면서까지 이 길을 지켜왔다. 아마 한국 보수주의자들이 여기에 포함될 것이다. 그래서 성수주일, 십일조, 전도와 선교 등 이런 차별화로 밖에는 자기정체성을 확인할 길이 없었다. 몇 가지 형태로 신앙을 축소해서 하느냐, 못 하느냐로만 신앙을 평가했다. 그래서 하나님이 존재하는가, 복을 주시는가, 천국이 있는가만 강조했다. 물론 분명해서 좋다. 하지만 평생을 이것만 가지고 싸우다보니 인생을 살아내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마치 말이 멋대가리가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폭이 넓은 충만함이 없고 오직 은혜로 부흥만을 강조했다. 현실의 고민과 실패에서 오는 인간 성품이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을 예정론에 밀어 넣고 대강 인생을 살았던 것이다. 보통 알미니안주의자들은 신앙의 책임을 강조하면서 공로주의 사상이 강한 특성을 보인다. 반면에 우리 칼빈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한 나머지 비판이 앞서고 무책임으로 가는 경향이 많다. 그러나 그것은 누구를 따르느냐, 무엇을 강조하느냐 보다 우리의 죄성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 죄성을 극복하는 것은 하나님의 신비에 속한다. 그래서 인생은 하나만을 붙들고 갈 수 없는 것이다. 즉 거기서부터 출발해서 자라가야 하는 것이다. 한 우물로 사람을 다 먹일 수는 없다. 우리는 신앙이 발전하고 채워져 나가는데 있어서 각자의 강점이 있음을 인정하며 가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한다. 다른 사람들이 책임으로 하다 안 될 때 우리한테까지 올 것이다. 살다보면 분리를 책임 맡은 사람이 있게도 되는 법이다. 우리는 할 수 없이 합신 교단이 만들어졌다. 꼭 이래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때 그때 시대와 형편에 맞는 사람과 역사가 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복 있는 것임을 우리가 해내면서 가르쳐야 한다.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 성공과 실패에 대한 답이 나오는 것이다. ‘예정론과 책임론, 어느 것이 진짜냐?’를 묻기보다는 듣는 사람들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이 더 중요하다. 지금까지 우리는 ‘예수 믿는 내 인생이 왜 이렇게 고달프지?’가 모든 인생과 모든 교파의 공통분모가 되어왔다. 우리는 이제 우리 명분론과 이상론이 얼마든지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네가 져줬느냐?, 네가 누구냐?’의 정체성의 문제가 더 중요한 것이다. 사랑이 정열과 능력의 문제가 아니듯이 신앙도 설사 우리가 안다고 해도, 알아도 안 되기 때문에 다시 평생을 가는 것이다. 하나님을 알아도 이 세상에서는 하루도 쉴 수 없다. 우리는 승리하든, 실패하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묶여져 있는 사람이다. 따라서 우리는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도함 받는 것, 당신은 알지?” 하면서 서로 세워주며 격려하며 이 길을 가야 하는 것이다.
553 no image |채석포에서 온 편지| 그리움을 가슴에 묻고_김영자 사모
편집부
3507 2011-02-23
그리움을 가슴에 묻고 < 김영자 사모, 채석포교회 > “돌아가신 어머니가 남겨 주신 신앙의 꽃 활짝 피우고자” 어느 해보다도 눈이 많이 내리고 매서운 추위로 움추렸던 겨울이지만 한낮에 비치는 햇살로 응달과 골짜기의 눈이 차츰 녹아 내리고 지붕의 고드름 녹는 물소리가 들립니다. 짙은 해무 때문에 앞의 사물이 잘 보이지 않는 중에도 먼 곳의 앙상한 나뭇가지의 끝자락이 빨갛게 물이 올라 기지개를 펴는 모습을 보니 우울했던 겨울도 지나가고 안개가 서서히 걷히면서 사물이 제 모습으로 보이듯이 그렇게 이 고장에도 봄이 오는 것 같습니다. 이 겨울에는 나이 들어 거동이 불편하신 성도들을 부축하여 자동차에 태워 교회에 모셔와 자리에 앉히시면 조금 나이 젊은 성도들은 어른들께 얇은 이불로 무릎과 허리를 감싸고 의자에 기대게 해 줍니다. 그 모습들을 보면서 서로에게 감사와 위로를 받으며 예배를 드립니다. 부축을 받으며 자리에 앉은 성도는 자기 자신이 이렇게 목사님과 성도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또 곁에서 지켜보는 성도들은 “그만해도 감사합니다”라고 생각하며 서로 보이지 않는 사랑을 주고받습니다. 눈이 많이 오는 날이면 오르막길이 있는 교회 언덕길의 눈을 치우다가 남편은 며칠씩 감기로 인하여 자리에 눕기도 하지만 소나무가 길게 뻗어 응달진 곳이 얼기 전에 눈을 쓸어야 한다고 하면서 하루 종일 눈과 싸울 때도 있습니다. 이번 겨울은 몹시 추웠던 만큼 나에게도 춥고 아픈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동안 행복한 모습으로 자신을 포장했었지만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주지 못한 사랑 때문에 회한과 통곡, 그리고 많은 눈물을 흘린 겨울이었습니다. 청개구리의 슬픔에 공감하고, 내 이성과 지식으로 통제할 수 없는 감정의 흐름도 맛보았고, 어머니의 집착과 간섭으로 나를 아프게 했던 것도 깊은 사랑의 표현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작년 추석 다음 날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92세를 사셨던 어머니는 내 곁을 떠나시던 날까지 정신을 잃지 않으셨고, 노환으로 인하여 몸이 조금 불편 하셨지만 끈임 없는 기도와 매일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맞이했습니다. 주위 분들은 이런 어머니를 모두 존경하고 본받고자 했습니다. 오직 하나님과 교회 중심적으로 살았던 어머니에 대해서 유복자로 태어난 나는 이런 어머니의 모습이 늘 불만이었습니다. 어머니의 딸에 대한 사랑은 율법적으로 무척 엄하셨고, 애착과 집착이 짐으로 생각되어 나는 항상 비판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돌아가신 그 순간 모든 것들이 딸을 향한 사랑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작년 가을에 어머니께서 돌아가시면서 “내 영혼은 하나님 곁에 있을 테니 남은 것은 죽은 육신 뿐”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시신을 대학병원에 기증하셨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내게는 아픔이었습니다. 우리의 형편을 아시는 노회 목사님들께서 많은 시간 자리를 지켜 주시고 멀리 있는 동문 목사님들께서 오셨기에 외롭지는 않았습니다. 충남대 의대에서 화환을 보낸 것을 보고 문상객으로 오신 분들은 의아해했지만 어머니의 시신 기증 사실을 아시고 숙연해 하면서도 귀한 일을 하였다고 하셨습니다. 발인식 예배가 끝나고 곧 바로 병원차가 와서 어머니를 실고 갔는데 견딜 수 없는 슬픔이 몰려왔으며, 장례를 치른 후에도 오랫동안 섭섭함으로 남아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머니의 생전 모습이 재조명되면서 어머니에 대한 회한과 다 하지 못한 사랑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밥상을 차리다가도 어머니가 좋아하셨던 반찬과 음식을 보면 눈물이 나서 음식을 먹을 수 없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어릴 때 가정예배를 드리면서 불렀던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나 “내 영혼이 은총 입어”는 어머니의 노래이면서 나의 노래였던 것도 슬펐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사후 시신기증으로 어머니가 보고 싶어도 갈 곳이 없고, 어머니와의 추억을 이야기로 나눌 사람 하나 없이 내 기억 속에서만이 어머니와 같이 있을 뿐입니다. 주민등록번호 하나 없어지는 것으로 이 세상에서의 흔적은 없어졌지만 어머니가 살다간 이 세상에서의 자취는 노을처럼 내게 남겨져 있어 그리움이 눈물이 되어 더욱 사무치게 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어머니의 일생은 청상으로 많이 외롭고 힘들게 사셨지만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 뜻대로 세상을 사셨고 예수님을 신랑삼아 사셨기에 많이 행복해 하셨습니다. 어머니가 내게 말 할 수 있으시다면 지금 이렇게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슬퍼하고 있는 딸의 모습을 원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머니의 기도가 나를 일으켜 세우셨듯이 자식하고 엄마는 보이지 않는 탯줄 같은 것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어머니를 그리워하겠지만 잊는다는 것은 머리가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 가슴에만 남아 있을 것입니다. 노인들이 혼자 있는 것을 가장 두렵게 생각하는 것은 외로움이 무섭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남편은 성도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듣고, 읽고 싶어도 연약한 몸이 되면 할 수 없으니 두발로 걸을 수 있고 건강할 때 열심히 교회에 나와서 외로움도 달래고 예배도 드리고, 바깥 세상을 구경하라고 합니다. 거실에는 나의 게으름과 거름 부족으로 늘어져 있던 행운목에서 꽃대 두 대가 올라옵니다. 이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가슴에 묻고, 어머니만큼 기도하며, 어머니만큼 성경 말씀 읽는 것이 내 기도의 제목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생활 속에서 어머니를 만난 것처럼 몸이 불편하고 노쇠하여 연약한 성도들에게 외롭지 않게 섬김으로 어머니가 나에게 남겨 주신 신앙의 꽃을 활짝 피우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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