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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21 (11:08:03)

남편이 차려준 밥상


|김영자 사모, 채석포교회 |

 

“살아 있는 물은 멈추지 않고 늘 흐르기 마련”


오늘은 가까이 지내는 동료 목사님 부부와 만나는 약속의 날입니다. 서해안의 끝자락에 있는 내가 사는 동네 채석포에서 그 어느 곳을 가더라도 1시간 이상을 달려가야 그 누구라도 만날 수가 있기 때문에 가슴 부풀게 하는 나들이가 됩니다.

  

지도책을 보면 채석포라는 이름 대신에 그 옛날 이름은 생금포라는 이름으로 표기되기도 했었습니다. 달리는 차의 창밖으로 보이는 일상 풍경이 그림같이 다가옵니다. 마당가에 널려 있는 잡초라고 뽑아버렸던 개망초가 들판에 무리지어 하얗게 핀 모습들까지도 내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오랜만에 만났지만 바로 어제 만난 것처럼 친숙한 형님 목사님 부부와 아우 목사님 부부가 함께 칠갑산 자락 저수지의 파란 물이 햇빛에 반사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는 통나무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나누면서 맛있는 대화도 나누었습니다.

 

요즈음 들어서 이번 모임과 같은 몇 번의 식사 자리가 있었지만 모든 경비는 남편이 맡았습니다. 40년 가까이 살았지만 저의 생일을 한번도 제대로 받아보지 못하였는데, 금년 생일은 내가 회갑이 되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 생일이기 때문에 모든 회갑 기념을 위한 식사자리는 남편이 계산을 한다고 했습니다.

 

나의 만 60세가 되는 날은 총동문회로 모이는 날이었기 때문에 회갑이 되는 생일을 챙기기가 쉽지 않은 듯 하였습니다. 그런데 회갑을 앞두고 며칠 전부터 큰 아들에게 아내의 회갑을 위해서 무엇인가 준비 시키는 것 같았는데, 회갑을 일주일 앞둔 주말 저녁을 택하여 두 아들 가족과 함께 좋은 곳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두 아들들에게 이번 식사는 엄마를 위해서 아버지가 내겠다고 멋진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주일날에도 예배 후에 성도들 모두에게 점심을 대접했습니다. 그동안 성도들에게 사랑만 받았으니 오늘은 목사인 본인이 대접하겠다고 했습니다. 모든 것들이 참 멋지게 보였습니다.

 

과거에 서울에서 친구들과 식사를 하면서 옷걸이에 양복 윗옷을 걸어 놓고 집에 거의 도착해서야 없는 옷을 찾는 남편은 택배로 두고 온 옷을 배달 받기도 했을 만큼 심한 건망증 때문에 생일을 한번도 제대로 챙겨보지 못했고 무관심 같아 보여서 젊은 날에 숱하게 속상해 하며 원망을 하기도 하면서 드디어 포기하는 단계에까지 오면서 이것이 인생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기도 했습니다.

 

요즈음 넌센스 유머인 노숙자 씨리즈에서 마누라에게 밥 주라고 했다가 노숙자가 된 사연의 노숙자를 보면 내 남편은 진정 간이 큰 남편인가 봅니다. 하루 세끼 중 분식이나 빵으로 한 끼를 준비하면 그것은 간식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오직 ‘밥’ 만이 주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내 남편입니다. 음식 만들기를 좋아하면서 맛있는 것을 챙기는 내가 ‘남편의 입맛과 버릇을 그렇게 만들었다’라고 생각들 때가 있습니다.

 

젊은 날에는 특별히 생각하고 싶은 날을 기억하지 못하는 남편이 무척이나 섭섭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끔 한번씩 엉뚱한(?) 이벤트로 모든 서운함을 상쇄시키기도 했습니다. 오랜 직장생활을 그만 두고 미래를 걱정하는 나에게 분위기 좋은 곳에서 내가 좋아하는 피자를 사주면서 “그 동안 가족을 위해 고생 많이 했다”고 하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남편에게 있는 건망증이 남자들에게는 거의 일반적일 수는 없지만 흔히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나이가 들면서였습니다. 그리고 경제관념이 거의 없어 손에 그 무엇을 사가지고 들고 오는 일도 없는 남편이 어쩌다 물건을 사는 일이 있는 날은 사고를 치는 날입니다.

 

건망증에 간 큰 그러한 남편이 나의 회갑을 위해서 2년 동안 모아놓은 비상금으로 아내인 나를 위해 잔치를 베풀어 주었습니다. 그러한 남편이 마음속으로는 반갑고 기뻤지만 나는 잔소리 아닌 불만을 쏟아냈습니다. 당신은 아들들이나 성도들에게 멋지게 보였겠지만 주인공인 당사자인 나나 그들이나 똑 같이 밥 한 그릇 밖에 먹은 것이 없다고 종알거렸습니다. 나에게 다른 뭐 하나 없냐고 하면서......
그러한 나에게 남편은 생각해 보니 그렇다고 하면서 얇은 봉투를 하나 주면서 옷이나 한 벌 사 입으라고 했습니다. 남편은 근근히 모은 비상금이 바닥나고 이제 빈껍데기만 남았다고 했습니다.

 

지난 달 남편의 동문 목사님들이 일년 전에 계획했던 북경 21세기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21쌍의 부부들이 세계 각국에서 모여 4박 5일의 여정을 보냈습니다. 북경 21세기 박태윤 목사님과 성도들이 동문들을 맞이하여 진정한 나눔과 사랑을 실천하면서 행복해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역사 속에 있는 천안문과 만리장성을 사랑하는 동문 가족들과 거닐었던 것이 꿈만 같기도 했습니다. 사랑을 베푸는 사람들과 그 베풀어 주는 사랑을 받는 자 모두가 행복해 하며 감사했습니다. 주님 때문에, 그 주님의 사랑으로 모두를 사랑하고 싶은 마음을 선물로 받은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생일 날 미역국을 끓여 주는 대신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밥 한 그릇으로 사랑을 나누어 준 남편이 고마웠습니다.

 

물은 고정된 모습이 없다고 했습니다. 둥근 그릇에 담으면 둥근 모습, 뜨거운 곳에서는 증기로, 그리고 차가운 곳에서는 얼음으로, 이렇듯 물에는 자기 고집이 없고 자기를 내 세우지 않고 남의 뜻을 따른다고 합니다. 살아 있는 물은 멈추지 않고 늘 흐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남편이 차려주는 회갑의 밥상을 사랑으로 받으면서 더욱 더 부부라는 관계 속에서 신뢰를 꽃피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1세기 교회에서 다음 날을 기약하며 송별회 때 작은 음악회를 열어 여러 가지 재능으로 우리들을 즐겁게 했으며 답사로 앨토 섹소폰을 연주하신 키 큰 목사님의 멋진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나의 특별한 생일 회갑을 기억하고 준비해준 남편과 마치 이날을 기념하듯이 주위에서 여러 가지 형태의 기억에 남을 일들을 생각하면서 지금도 내 귓가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열창했던 그 소녀의 목소리가 나의 노래가 되어 갚을 길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가만히 불러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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