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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봄을 맞이하면서


| 최에스더 사모, 남서울평촌교회 |



“은혜의 역사, 자녀들에게 전해주기 위해 노력해야”


바람이 달라졌다. 아직 따뜻한 기운은 없지만 확실히 부드러워졌다. 겨우내
두꺼운 옷을 입고 차가운 바람이 몸 안으로 조금이라도 들어오지 못하게 잔
뜩 움츠리고는 동동거리고 다녔는데 이제는 안 그런다.



봄을 맞아 바람도 부드러워져



천천히 걷는다. 게다가 거북이처럼 목을 쭉 빼고 불어오는 바람을 마음 놓
고 맞아본다. 확실히 봄은 가까이 와 있다. 열어놓은 창밖으로 새소리도 들
린다. 기온이 많이 올라갔다는 소리다. 긴 겨울동안 못 들었던 소리인지라
귀에 쏙 들어온다.
이렇게 계절이 바뀔 때 내 몸에서 제일 먼저 신호를 보내오는 곳은 바로 입
맛이다. 몇 개월동안 먹었던 저장음식을 배신처럼 밀어내고 이제 막 땅에서
나온 푸성귀로 만든 싱싱한 반찬들을 마구 당긴다. 사실 제철야채, 제철과일
이라는 개념이 없어진 요즘이지
만 입맛만은 아직 그 경계를 확실하게 구별하
고 있나보다.
겨울에도 늘 살 수 있는 야채였지만 주부의 찬거리 고민 속에 떠오르지도 않
고, 장바구니 속으로 들어오지도 못하다가 그 맛을 찾는 입맛이 이제 그 야
채를 먹어줘야 하는 계절이 왔다는 것을 내 몸에 신호를 보내자마자 거짓말
처럼 머리 속에 떠올랐고 나는 마트로 뛰어가 냉큼 사들었다. 그게 바로 냉
이다.
이 식물로 말할 것 같으면 다듬어본 사람만 알 것이다. 들여다보고 다듬느라
고 숙인 고개가 뻣뻣해질 정도가 돼야 겨우 4인 가족을 위한 밥상에 올라올
만큼의 양이 된다. 들인 수고에 비해서 양은 얼마 되지 않지만, 잘 다듬은
냉이를 끓는 소금물에 데쳐서 마늘과 파를 다져넣고 참기름과 조선간장에 무
쳐서 먹으면 그 향과 맛이 정말 기가 막히다. 바로 봄맛이라는 게 이런 것일
까. 그 맛을 본 사람만이 인내심을 가지고 이 나물을 다듬을 수 있으리라.
그 맛을 어서 보고 싶어서 냉이를 쟁반에 쏟아놓고 열심히 다듬고 있는데 둘
째아들이 옆에 와서 앉는다. “엄마, 이게 뭐에요?” “응, 냉이.” “냉
이?” 하길래 어떻게 가르쳐줄까 하다가 냉이라는 말이 들어가
는 동요를 하
나 불러줬다.


동무들아 오너라 봄맞이가자
너도나도 바구니 옆에 끼고서
달래냉이씀바귀 나물 캐오자
종달이도 높이 떠 노래부르네


이 노래를 부르고나니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는 아들의 얼굴을 보고
나 혼자 한참 웃었다. ‘21세기에 태어나 아파트에서만 살아온 네가 어찌 알
겠느냐. 바구니를 옆에 끼고 동무들과 나물을 캐러가면서 부를 이 노래
를.’
그래도 나는 지금 내 아들만한 나이, 열 살 때 이 동요를 부르면 이게 무슨
노래인지 알 수 있었다. 비록 달래, 냉이, 씀바귀가 어떻게 생긴 식물들인
지 정확하게 구별할 줄 몰랐지만 친구들과 나물 캐러간 경험이 내게는 있었
기 때문이다.
나는 쑥을 캐러 다녔었다. 연필을 깎는 도루코 칼로 친구들과 동네에서 쑥
을 캤었다. 여럿이서 함께 제법 많은 양의 쑥을 캐서 한 집에 몰아주고나면
그 쑥으로 국을 끓이는지, 떡을 해먹는지는 몰랐지만 아무튼 나물 캔 경험
이 내게는 있지만 내 아들에게는 전무하다.
이 동요를 부르면 내게도 가사와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봄날의 정경과 추억
이 머릿속에 떠오르지만 내 아들에게 이 노래
는 민요다. 전혀 다른 세상이
며 책 속에서나 볼 수 있다. 지금도 이 땅에는 달래와 냉이와 씀바귀가 변함
없이 자라고 있건만 내 아들의 삶과는 정말로 동떨어져있는 것이다. 내 노래
를 듣는 무심한 아들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어떤 것이 세대를 거쳐 전수된다
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것이구나 새삼 절감했다.
내 기억 속에 나물 캐러 간 장면에는 칼과 쑥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나 혼자
조용히 흥얼거렸던 노래도 있고, 재잘재잘 친구들과 끝도 없이 나눴던 이야
기도 있고, 쪼그리고 앉아서 쑥을 캐다가 다리에 쥐가 나서 꼼짝도 못하는
친구를 보고 깔깔거렸던 웃음소리도 있고, 땅에서 솟아나온 여러 가지 식물
들 가운데 쑥만 가려내 찾았던 기쁨도 있고, 그 쑥을 칼로 베면 그 진한 향
이 내 코에 와 닿았던 감동도 있고, 잘못하다 내 손끝을 베었던 쓰라림도 있
다.
쑥을 뜯다가 어느덧 해가 져서 집으로 가는 어둑어둑해진 골목길을 내달리
며 느꼈던 공포도 있고, 내가 오기를 기다렸던 엄마의 따뜻한 목소리까지 있
다. 이렇게 많은 것을 내 아이들에게도 전해주려면 나는 올 봄에 부지런히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니며 함께 뭐라도 뜯어
야할 것 같다.
신앙은 어떨까. 멀쩡히 옆에 있고 빤하게 눈에 보이는 것도 나와 함께 공감
하게하기 위해서는 이런 수고가 있어야하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이
미 지나가버린 은혜의 역사를 나의 아이들에게 전해주려면 나는 어떤 노력
을 얼마나 해야 할까.
가만히 있으면서 저절로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실수를 하지 싶다. 그리
고 그들 스스로 깨닫게 될 것이라고 떠넘기기에는 이미 내가 알고 있는 이야
기들이 너무나 많다. 그 이야기들이 증언할 것이다. 너는 왜 나를 너의 아이
들에게 전해주지 않았냐고.
믿음의 선조들의 이야기, 70년 가까운 세월을 살아오신 우리 집안의 어르신
들이 지켜온 믿음의 이야기, 그리고 40이 넘은 우리 부부의 이야기를 우리
아이들에게 자주자주 들려줘야겠다. 우리가 각자 다른 시대를 살지만 하나
님 안에서 한 그림을 그리며 한 영으로 호흡하는 자들임을 알게 해주고 싶
다.
신앙이라는 바톤을 넘겨주고 가면서 우리 아이들이 그 바톤을 볼 때마다 할
아버지의 눈물을, 할머니의 기도를, 아버지의 순종을, 어머니의 찬송을 기억
하며 그것과 함께 했던 절규도, 후회도, 탄식도, 회개도,
돌이킴도, 벗어남
도, 자유함도 모두 떠올리며 조상들의 삶이 자신의 것과 다르지 않았음을,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 안에서 새 인생을 살 수 있었던 것처럼 자신도 반드
시 그럴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게 해주고 싶다.
수요예배시간, 어른들 사이에 앉아서 찬송가를 부르고 있는 우리 아이들을
보며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우리가 함께 부를 찬양이 쌓여가고, 훗날 우리
가 그 찬양을 부를 때 머릿속에 떠올릴 추억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이기에.



신앙의 유산 더 많이 쌓여가기를



가정을 통한 신앙전수, 이 봄에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겨볼 가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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