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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2 no image |노트북을 열며| 석양에 그늘이 지기까지..._변세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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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77 2010-03-03
석양에 그늘이 지기까지... “죽기로 결심하는 ‘죽는 싸움’ 평생 계속해야” 올 겨울은 잦은 폭설과 매서운 한파로 추운 겨울을 보내야만 했다. 경제한파 에 정치한파까지 겹쳐 피부로 느끼는 체감온도는 영하의 날씨 그 자체였다. 인생은 희비가 교차하는 것 거기다 교회까지도 속상한 일까지 한 두가지 겹치게 되면 설교와 기도 외에 거의 말이 나가지 않는 단계까지 이른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늘 불편하고 어색하기만하다. 그런 중에도 밴쿠버에서 날아오는 우리 젊은 선수들의 승전 보는 따뜻한 대화와 따뜻한 분위기로 반전시키기에 큰 도전이 된다. 이렇듯 국가나 민족이나 개인의 삶은 희비가 있는 법이다. 작가인 아그네스 고왈츠는 “사람들은 죽은 뒤에 다 평등하지만 그러나 죽 은 뒤에 꼭 평등한 것은 아니다. 사람은 이 세상에 살면서 이미 평등하게 되 어있다”고 했다. 우리는 주변을 볼 때 이 말에 동의하기가 어렵 다. 그럼에 도 그의 공평의 논리의 핵심은 “사람들은 고통에 의해서 모두가 평등하다” 고 설득한다. 잔 플레이블의 말대로 “때로 하나님의 섭리는 히브리 문자처럼 거꾸로 읽어 야만 이해가 될 때가 많다. 실제로 한 사람이 인생을 살 때 큰 사건을 열 개 로 보았을 때 좌절과 절망 실패로 오는 사건은 일곱, 여덟개 정도가 되고 승 리와 성공으로 오는 것은 한두 개뿐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고난과 고통을 겪 어봐야 깊이 생각하고 인생의 의미를 알기 때문이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우리는 다른 경험과 다른 과정으로 만났어도 도 달해야 되는 격이 있는 사람들이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의도하고 계획한 곳 이기 때문에 그 계획과 의도 속에 우리가 있음을 안다면 우리가 보통 불만스 럽게 생각하는 “우리 교회 목사님은 왜 그런가? 우리 교회 집사님은 왜 그 렇게 내 속을 썩이는가?” 하는 불평거리들은 이런 차원에서 우리에게 이익 이 되며 훈련이 되게 하기 위한 것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교육이나 봉사, 헌신이 먼저가 아니라 같은 일을 얼마나 양보하며 얼마나 아름답게 끝내는가를 보고 계시는 것이 다. 우리가 어떤 기쁜 일을 만났을 때에도 그 기쁨이 며칠이나 갔는가? 사람은 그 기쁨의 자리에 그대로 서 있지를 않는다. 기쁜 일을 경험한 그 장소를 끝 으로 서 있지 않다. 목회자에게는 더욱 그렇다. 지난번 어느노회 시찰회를 보니까 목사님 딸이 서울에 있는 대학에 붙었다고 점심을 사는 것을 보았다. 또한 자녀들 등록금 이 학기 때 마다 해결되어 기뻐한다. 자녀들이 잘되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 는 마음으로 목회를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야 목회하는 보람도 느낀다. 기쁨은 어떤 기쁨이든지 그 순간뿐인 것이다. 우리는 더 나은 기쁨의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 그때는 그것이 최고 수준의 기쁨이었지만 다음에는 더 나은 기쁨의 자리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기 쁨의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이 마음으로 목회를 하고 믿음의 수준을 지켜나 가는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이고 또 우리의 마음이다. 어차피 사람의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사람은 그 속성도 쉽게 변하지 않는 다. 유일하게 변한 것이 있다면 죽는 것이다. 고집을 죽이고 성질을 죽여서 하나님께서 마음대로 쓰실 수 있도록 맡기는 것을 변화라고 한다. 변화야 말 n로 ‘죽기로 결심하는 죽는 싸움’이다. ‘나는 죽기로 결심한 사람이오!’라고 반복할 필요가 없다. 목사는 어쨌든 비진리적인 것으로 성도가 시비를 걸어오면 할 말이 없는 사람들이다. 끝까 지 말해봤자 성결에 상처만 남는다. 말이 안 되는 말에도 “집사님, 그렇게 생각하셨군요. 제가 잘 해보겠습니다.” 이 말 밖에 할 것이 없다. 그러면 서 자폭하지 않고 아슬아슬하게 잘 참고 가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다. 이처 럼 목사는 하루하루 사는 것을 기적으로 알고 살면 더 이상의 원망거리도 없 고 그것이 최고의 실력인 것이다. 하루하루 기적처럼 살아가야 교회를 하나님이 만드셨기에 우리를 그렇게 완성시키고야 말겠다는 하나님 의 의지가 포함된 것을 믿고 순종하며 석양에 그늘이 지는 그 날까지 우리 는 이 길을 걸어가야만 한다.
531 no image |추모사| 故 장승필 목사님을 기억하며..._권형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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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30 2010-03-03
故 장승필 목사님을 기억하며... 편히 쉬시는 장 목사님! 작별 인사도 없이 너무 빨리 하늘에 가셨습니다. 목사님의 사랑과 도움이 여 전히 필요한 분들이 많은데, 먼저 하늘에 가시니 이 땅에 사는 저로서는 아 쉬움과 안타까움이 밀려옵니다. 며칠 전에 목사님께서는 이제 가리봉과 마석에 있는 필리핀 교인들이 예전 과 달리 하나님 말씀으로 조금씩 자라간다고 하셨고, 그들에게 자신이 목사 로 또는 선교사로 복음을 전하다가 때가 되면 망고농장에 집을 짓고 그곳에 서 여생을 보내기를 원하셨는데, 너무 빨리 망고농장에 잠이 드셨습니다. 목사님께서는 필리핀에 저와 올 때마다, 당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하셨지요. 이민가시기 전에 힘들게 사셨던 학생시절, 이민가신 후에 미국에서 생존하 기 위하여 힘겹게 일하셨던 일들, 말씀하실 때마다 그 당시에 당하였던 마음 의 고통도 말씀하셨지요. 저는 목사님의 이야기를 들으면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 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라고 했습니다. 이민 생활의 어려운 현실에서도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고 싶어서 일하면서도 성경학교에 들어가서 공부하셨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국내에 귀국하여 합신에서 공 부할 수 있게 되었음에 감사하셨지요. 또한 말씀과 삶이 일관되는 개혁주의 신앙의 내용을 좋아하셨고, 특히 동기생들과 함께 기도하고 교제하고 소망 을 나눈 일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는 늘 얼굴에 기쁨이 있었지요. 목사님께서는 동생인 저에게 조심스럽게 두 번째 여행에서 자신의 삶을 말씀 하면서, 어렵던 신학생 시절에 아내를 만나서 자신의 마음이 안정이 되었 고,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너무도 많이 채워주는 아내에 대하여 고마움이 늘 있다고 말씀하셨지요. 이번에도 하시는 일로 인하여 마음 고생하시는 사 모님에 대하여 걱정을 하시면서, 아내가 좋아하는 일은 무엇이든 도와주겠 고, 나중에 사모님과 함께 망고농장에서 집을 짓고 살면서 지역주민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필리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자로 남은 생애를 보내고 싶다고 말씀하셨지요. 목사님께서는 이번에 처음으로 제가 부럽고, 심지어 질투가 난다고 하셨지 요 . 제가 학생들을 데리고 함께 생활하는 모습이 너무 좋다고 말입니다. ‘권목사님, 5년만 참으시면 푸른아카데미가 잘 될 것이니 인내하십시오 ’ 라고 가나안농군학교에서 하신 말씀이 기억납니다. 자신은 아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으로 성수를 대할 때마다 자꾸 잔소리를 하 게 되고, 이번에도 성수에게 잔소리만 했다고 안타까워하면서 ‘자신이 좋 은 분들을 인생에서 만났듯이 성수도 좋은 목사님을 만나서 예수 그리스도 를 알아가면 좋아질 것이라고’ 소망을 말씀하셨죠. 그래서 그런 것인지 이번에는 더욱 우리 아이들에게 잘 해주셨습니다. 손수 팬케이크, 된장찌개, 스파게티를 만들어 아이들과 저희들에게 즐거움을 주셨 고, 그리고 농활을 마치는 날에는 삼겹살과 닭도리탕을 하시겠다고 약속하셨 지요. 이 약속은 지키지 못하셨네요. 장목사님. 목사님께서 마지막 가시는 날을 기억합니다. 저는 쉬지 않고 일만 하시는 목 사님을 보았습니다. 저는 더운 날에 이미 지쳐 있었고, 목사님은 지쳐 있으 면서도 계속 일을 하시니 제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목사님은 아이들이 모은 잡풀을 태우며 물끄러미 그 불을 바라보셨죠. 그런데 우리 가 쉽게 생각했던 불은 서서히 커져갔고,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이 빠르고 넓게 퍼져갔지요. 목사님은 센 불을 끄려고 이리 저리 움직이면서 불을 끄려고 하셨지요. 저 도 불을 끄면서 목사님을 바라보니, 목사님의 안타까운 마음을 보면서도, 또 한편으로 불을 끄려고 이리 저리 움직이는 모습이 마치 경사스런 잔치를 위하여 덩실 덩실 춤을 추는 아름다움이 느껴졌습니다. 화사한 날에 마치 주 님을 맞이하듯 즐거운 춤사위로 목사님의 마음을 표현하는 듯 했습니다. 또한, 실종된 목사님을 낮에 찾지 못하고, 밤에 다시 이행구 선교사님의 도 움으로 목사님의 시신을 발견하였을 때, 목사님은 땅을 안고 누워있는 자세 로 계셨지요. 망고농장을 다 품고 가시듯, 깨끗하고 밝은 파란 옷을 입고 우 리에게는 등을 돌리고 있었지요. 목사님의 육신을 보고 순간적으로 당황하고 안타까웠으나, 목사님의 뒷모습 으로 보여지는 목사님의 환한 얼굴이 떠올려지더군요. 그리고 필리핀 형제 자매를 위하여 망고농장을 지키고, 함께 했던 학생들을 지키기 위하여 몸이 지치고 정신이 혼미한 상태로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구하려고 이렇게도 멀 리 비틀거 리면서 오시고, 마지막에 ‘불이야’하고 외치면서 쓰러지신 목사 님의 마음을 제가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이제는 하늘에 계시면서 그렇게 보고 싶어하셨던 예수님과 함께 우리가 신앙 의 경주를 잘 하도록 응원하고 계시겠지요. 장 목사님. 이곳을 위해서 계속 기도해주시고 응원해주십시오. 이곳에 당신께서 하시고 자 한 일을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으련만 쉽지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 니 이웃을 사랑하고, 거룩한 삶으로 복음을 표현하기를 원하셨던 목사님의 뜻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열매가 맺어질 수 있도록 하늘에서 응원해주시 기 바랍니다. 그리고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저도 형님이자 동역자이자 친구였던 목사님을 따라 이 땅에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살다가 그곳으로 갈 때, 천국에서 즐겁 고 환하게 저를 맞이해 주십시오. 하늘에서 목사님을 뵙겠습니다. 2010년 3월1일 동생이자 동역자이자 친구인 권형록 목사 올림
530 no image |채석포에서 온 편지| 새해에 바라는 작은 소망_김영자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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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06 2010-02-03
새해에 바라는 작은 소망 “그리스도의 향기로 즐거움을 함께 나눠주기를” 올해의 겨울은 많은 눈과 심한 추위로 인하여 우리나라 기온이 삼한사온이었 던 것을 잊을 정도의 겨울이었던 것 같습니다. 숲 속에 살다보면 날씨의 영 향을 크게 받게 되어 숲 속의 토끼와 같이 갇혀 있는 시간들이 많이 있습니 다. 유난히 추웠던 지난 겨울 생각나 달력의 마지막 장인 12월은 전 교인이 거의 서리집사 일 수밖에 없는 시골 교회에서는 목사님들의 고민이 다른 달보다 많을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일 년간 성도들의 신앙을 점검해보며 교회 일꾼으로서 조금 부족하다고 생각이 드는 성도들 때문에 고민을 하는 것을 남편을 통해 보았습니다. 금년 새해에는 계획했던 모든 일들이 작심삼일로써 끝나지 않고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것은 금년이 내가 세상에 태어난 지 60년이 되는 해가 되며 또 하나는 우리 집에서 가꾸는 행운목이 또 꽃을 피 웠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길거리나 화원에서 작은 나무토막 같은 것에 잎이 붙어 있는 행운목을 키워 보았겠지만 많이 실패했을 것이고 더구나 꽃을 피운 다는 사 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드물 것 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 또한 몇 번씩이 나 행운목을 가꾸어 보았으나 실패로 끝난 경험이 있습니다. 몇 년 전 큰댁에 갔다가 큰동서에게 행운목이 담긴 화분을 선물로 받았습니 다. 얼마 후에 사택을 지어 입주하고 휑하게 보였던 거실에 1미터 정도의 화 분을 놓으니 참 보기 좋았습니다. 그런데 3년 전 이맘때에 꽃대 하나가 올라 오는 듯싶더니 작은 꽃잎들이 더디게 활짝 피면서 진한 향기를 품어 내었습 니다. 처음 보는 꽃이라 성도들과 같이 즐거워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화원에서도 보기 드물다고 하는 꽃이 이제는 매년 1월에 피는데 금년에는 꽃 대가 두개가 올라왔고 키가 3m 가량 자라서 거실 천장에 닿을 정도가 되었습 니다. 꽃을 보면서 금년에는 어쩐지 행복의 날들이 두 배나 될 것 같습니 다. 사람들은 누구나 삶 속에서 향기로운 꽃이 피어나기를 원하지만 인습적이고 습관적인 삶으로부터 탈출을 두려워하여 새로운 도전을 시도해 보기 전에 스 n스로 포기하면서 희망사항으로 끝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제 인생의 이모작을 준비할 나이가 되고 보니 내 자신과 가족, 그리고 여 러 가지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갖게 됩니다. 그 중에 한 가지는 내 자신과 나를 알고 있는 모두에게 너그러운 마음을 갖고 싶습니다. 남편은 사람들을 좋아해서 많은 사람들이 우리 집을 방문하는데 거의 집에 서 손님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집에서 식사를 하고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 고 싶어서 그렇다고 하지만 음식을 만드는 주부 입장에서는 가끔은 싫을 때 도 있었습니다. 바닷가에 살다보니 밖에 나가 식사를 하는 것도 만만치가 않 아 내 스스로 집으로 손님들을 모시고 오게 할 때도 있습니다. 본래 음식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많은 손님들이 집에 오게 되니 이 왕이면 솜씨 있게 음식을 만들어 손님들에게 먹는 즐거움과 기쁨을 주고 싶 었습니다. 그리하여 기관에 알아보니 요리 학원에서 무료로 요리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교회 일 때문에 결석률이 출석률보다 더 많아 “국가기술자격증(한식조리 사)”을 취득하는데 시간이 좀 걸리기는 했지만 성공했습니다. 어느 일 이나 그 일에 대가를 치르듯이 결석한 만큼의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지만 내가 가 지고 있는 재능으로 여러 사람들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날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즐거웠습니다. 이른 봄비가 내리면서 얼었던 땅들도 풀리고 땅 속 깊은 곳에서 겨울을 낫 던 풀꽃들도 새 싹을 피우기 위해 기지개를 피울 것입니다. 창을 열고 조금 차가운 공기를 마시면서 여러 얼굴들을 떠 올려봅니다. 나이 드신 노 집사님 들의 구부정한 모습들이 눈앞에 선합니다. 추운 겨울에 집에만 계시다 보니 몸이 약해져 있지나 않을까 염려됩니다. 시골의 첫 차는 병원에 가는 노인들로 만원을 이룹니다. 뼈마디가 쑤시고 아 파서 물리치료를 받으면 며칠 동안은 견딜 수 있습니다. 뼈만 앙상하게 남 은 몸을 안아 드리면 좋아하면서도 수줍은 미소들이 어린 시절의 소녀 때를 연상하게 합니다. 자리에 눕지 않고 두 다리로 걸을 수만 있으면 교회 차가 현관까지 갈 수 있 으니 예배에 참석하시라는 목사님 말에 순종하는 집사님들은 천사들입니다. 이분들 중에는 연세가 높아 귀가 들리지 않으면서도 목사님과 교감으로 말씀 을 주고받으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 행운목이 활짝 피어 향기로운 냄새가 집안 가득합니다. 행운목 꽃이 피는 것 을 보면 행복해진다고 하는 속설처럼 노 집사님들께서 금년에도 자신들의 자 리를 지켜 주셨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램입니다. 작년에 시집 온 신부가 교 회에 출석하게 되어 금년에는 오랜만에 새 생명도 태어납니다. 새해에는 행복한 날 많아지기를 새해 들어 작은 소망과 함께 맛있는 음식으로 많은 사람들과 좋은 교제의 시 간들을 나누면서 그리스도의 향기로 즐거움을 줄 수 있으면 하는 것이 또 하 나의 바램입니다.
529 no image |들꽃 향기처럼| 자선음악회에서 누린 은혜_윤순열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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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40 2010-01-13
자선음악회에서 누린 은혜 “마음들이 하나 되어 하모니 이루었을 때 감동 일어나” 우리 교회가 속한 노회는 요즘 여러 곳의 신도시가 떠오르고 세계적으로 몇 번째 안에 든다는 인천대교가 있는 인천노회입니다. 자선음악회 행사 준비로 바쁜 일정 보내 몇 년째 노회에서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남편은 지난 몇 달 동안 새로운 행사를 준비하느라 더욱 여념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노회에서 목 회자 부부 및 자녀들을 중심으로 한 크리스마스 자선음악회 행사를 준비하느 라 바쁜 일정을 보내었기 때문입니다. 노회 안에는 숨은 인재들이 많았습니다. 지휘자로서는 음악을 정통으로 전공 하신 최고학부출신의 사모님이 계셨고 반주자 또한 쟁쟁한 실력자였습니다. 각 파트를 정하는데는 숨은 인재들로 인해 팀들의 실력도 만만치 않았습니 다. 특히 젊은 부목사님들로 구성된 테너팀들은 처음부터 너무 멋진 화음으로 찬 양을 빛내주었습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베이스팀들은 숫자는 2배였으나 왕 년의 실력 발휘가 영 안되는지 도통 소리가 들리지 않아 지휘자를 애태웠습 니다. 그 중에는 저희 남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연습 외에는 왕도가 없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베이스파트에서 도 굵직한 음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너무나 멋있는 화음으로 바뀌었습니다. 연습 2개월이 지나면서부터는 모두의 음감이 활짝 열린 듯 남성의 굵직한 음 과 여성의 청아한 음이 화음을 이루면서 웅장함과 장엄함까지 느끼게 하였습 니다. 처음에는 이 행사가 잘 될 수 있을까 염려하는 분들을 비롯해 바쁜 중에도 매주 화요일 밤마다 2시간씩 모여서 연습해야 하는 부담감 등으로 말미암아 진행하는 임원진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습니다. 저조한 출석률에다 가 이곳저곳으로 옮겨 연습하느라 약간의 혼란을 겪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다 온 세계가 신종플루의 공포감마저 돌아 음악회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올 수 있을까 하는 염려 아닌 염려도 하였습니다. 11월 연습 중에는 아들이 학교에서 신종플루를 옮겨와 저도 신종플루를 앓느 라 2주를 결석하였 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름 답게 하셨고 분위기는 점점 화목하고 아름다운 분위기로 반전되었습니다. 연습 전 미리 모여서 열리는 다과회를 통하여 약간의 서먹했던 회원들 간의 분위기가 점점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변해갔습니다. 3개월간 1주일에 한 번 씩 만나서 차마시고 대화하고 연습하는 중에 모두는 하나가 되어갔습니다. 드디어 갈고 닦았던 실력을 발휘하는 12월 8일이 다가왔습니다. 사모님들께는 결혼식 이후 처음 입어보는 웨딩드레스처럼 눈부신 드레스와 진주목걸이가 선물로 주어져 모두들 탄성을 자아냈습니다. 늘씬했던 몸들이 약간씩 변형되어진 목사님들께는 검은 복대로 배를 가리고 나비넥타이로 한 껏 멋을 내었습니다. 12월 한파에 얇은 반팔드레스 하나만 입고도 우리는 춥 지 않고 행복했습니다. 드디어 무대에 올랐습니다. “기뻐하라 주 오신다.” 첫 스타트곡이 장엄하 게 울려 퍼졌습니다. 무대에서 바라본 객석은 입추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위 층과 아래층이 빡빡하게 채워진체 모두의 눈이 우리를 향해 반짝거렸습니 다. 두 곡을 부르고 반주가 나가는데 객석에서 어린아이 하나 가 “사모님, 사모 님!” 하고 부르는 통에 온 장내는 웃음바다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첫 순서 를 마치고 미리 연습한 대로 질서정연하게 우리는 무대를 내려왔습니다. 순서 중에 있었던 목회자 자녀들의 발표회 시간에는 가슴이 뭉클해왔습니 다. 특별히 재즈피아노를 전공한 자녀들의 발표회가 있을 때입니다. 저는 그 들의 애환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남다른 느낌을 받았습니다. 넉넉지 못한 형편에 어린 자녀를 해외로 유학 보내 놓고 밥은 먹고 사는지, 추운데 떨지나 않는지 노심초사 눈물로 밤을 지새우며 세월을 보냈다는 이야 기를 들은 저로서는 가슴이 몹시 아려왔습니다. 그 부모님들의 눈물어린 기 도와 피땀어린 후원으로 저들은 학박사가 되어 아름다운 기량을 마음껏 드러 내고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 무대에서 세 곡이 끝나고 앵콜송까지 모든 순서는 순조롭게 진행되 었습니다. 앞에서 게스트로 출연한 분이 시간을 지연시키는 바람에 앵콜송 을 열심히 준비한 목사님들의 순서가 생략되는 아쉬움이 있었으나 은혜롭게 모든 순서를 마쳤습니다. 같이 협연한 CBS본부장 및 부장님을 비롯해 많은 분들은 너무나 훌륭한 합창 n이었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특별히 첫 스타트 곡 선정이 온 청중 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어려운 곡들인데도 너무나 훌륭한 화음으로 감동을 주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 추운 한파에 몸과 마음이 시려 떨 고 있는 이웃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할 수 있는 행사였기에 잊을 수 없는 감 동어린 무대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한파에 떨고 있는 이웃에게 위로되기를 우리의 작은 마음들이 하나가 되어 하모니를 이루었을 때 놀라운 감동을 일 으켰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입니다.
528 no image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새해를 맞이하는 각오_최에스더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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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38 2009-12-29
새해를 맞이하는 각오 “마치 우리의 삶 속에 없었던 시간처럼 살기로” 나는 지금까지 세 교회를 섬겼다. 태어나고 결혼해서 떠나기까지 친정교회, 결혼해서 남편을 따라간 시댁교회, 그리고 남편의 사역을 따라서 온 지금 우 리 교회. 이렇게 세 교회를 섬겼다. 세 교회 모두 입당 및 헌당하게 돼 한 가지 신기한 건 이 세 교회에서 모두 입당 및 헌당예배를 드렸다는 사실 이다. 처음에는 친정교회에서 부모님과 함께 드렸고, 두 번째 시댁교회에서 는 남편과 함께 드렸고, 이제 올 봄에는 나의 아이들과 함께 우리 교회 입당 예배를 드리게 된다. 빨간 벽돌건물이 새로운 교회건축양식으로 대유행을 할 때 나는 주일학교 학 생이었다. 그때 우리 주일학교 선생님께서는 내가 드리는 헌금이 우리 교회 건물의 한 장의 벽돌이 될 것이라고 말씀해주셨다. 물론 부모님께 얻어서 내 는 헌금이었지만 그때의 나는 내 이름 이 적혀있는 헌금봉투에 헌금을 넣어 드리면서 내 몫의 벽돌을 한 장 정성껏 쌓는 마음으로 정말 진지했었다. 빨간 벽돌들이 예쁘게 쌓인 건물이 완공되었을 때 그 건물을 혼자서 감상하 면서 어떤 벽돌이 내 벽돌일까 한 장 한 장 유심히 살펴봤던 기억도 난다. 내가 참 사랑했던 나의 친정교회이야기다. 내가 결혼을 할 무렵 나의 시아버지께서는 목사안수를 받으시고 교회를 개척 하셨다. 이미 중형교회로 자리를 잡고 있었던 교회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에 게 결혼과 함께 시작한 개척교회생활은 한 가정을 세우고 그 안에서의 아내 로서, 주부로서의 나의 역할에 대해서 배우는 것보다는 한 교회가 세워지는 뜨거운 영적 태동을 보고 배우며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찾아 서 하는 것이 최우선이었던 시간이었다. 목회자 부부가 되신 시어른들을 돕고 따라다니며 수많은 사연들을 지켜보았 다. 이윽고 신학생이 된 남편을 따라 지금 우리 교회로 오면서 비로소 우리 만의 가정을 세울 수 있었고, 예수님의 몸된 교회라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하 나 배워가고 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네 아이들의 손을 잡고 우리 교회에 입당예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돌아보면 참 감사하다. 내 짧은 인생의 큰 고비마다 교회당을 세워서 하나님 께 드리는 예배를 드렸고, 그 가운데에서 참 많은 은혜를 받았으며 또 교회 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기회들이 내게 있었다. 올 한 해 우리 가정은 철저히 교회중심의 생활을 하려고 한다. 언제 우리에 게 또 이런 기회가 있을까 생각되어 우리 아이들과 함께 좀 원시적인 교회중 심의 생활을 하려고 계획하고 있다. 옛날 목회자들 가정은 교회 울타리 안에 사택이 있었지만 지금 우리 집은 그 렇지 않다. 그래서 아예 교회에 가서 잠을 좀 자려고 한다. 아이들을 새 예 배당에 있는 온돌방에다 재워놓고 우리 부부는 맏아들만 데리고 매일 밤 주 님 전에서 기도를 하려고 한다. 말씀도 많이 읽고 찬양도 함께 부르다가 각 자의 기도를 하리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도와주시기를 바란다. 많은 기도제목들을 주셨으 면 좋겠다. 그렇게 기도하다가 아이들이 잠들어있는 방으로 와서 자다가 우 리는 새벽기도를 드리러 다시 일어나게 될 것이다. 어떤 날에는 기도하다가 새벽기도 드리러 오시는 성도들을 맞이할 수도 있겠다. 정말 그런 날도 있었 으면 좋겠다. 그렇게 기도로 밤을 지새우는 날이 있었으면 좋겠다. 아이를 낳고 백일동안 엄마는 거의 잠을 자지 못한다. 백일이 뭔가, 첫 돌 잔치라는 것을 열만큼 처음 일 년동안은 정말 노심초사하며 아이를 정성껏 키운다. 우리 가정도 그런 마음으로 올 한 해를 우리 교회에 정성을 기울이 려고 한다.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보고 또 봐도 보고싶은 마음으로 우리 교회에 가 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주님의 이름을 불러보려고 한다. 지금 생각하는 기 도제목은 그리 특별한 것이 아니다. 교회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 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싶고, 우리에게 더 큰 믿음 주시기를 기도하고 싶다. 우리집 맏아들에게 뭐 대단한 기대가 있어서 이 아이만 데리고 가는 것은 아 니다. 이 아이 스스로 엄청난 포부가 있어서 가는 것도 아니다. 그냥 이제 는 부모와 함께 기도의 자리에 진지하게 나갈 나이가 되었으므로 동참시키 는 것이다. 이제 중학생이 된 우리집 맏아들이 우리 집안의 명예가 되기 위 하여 이것 저것 해야할 것이 많다고 생각하겠지만, 우리가 내리는 결론은 그 것과 는 거리가 좀 멀다. 이 아이는 하나님 앞에서 정결한 그릇이 되어야한다. 주님 앞에서 기도하면 서 하나님께서 지적하시는 자신의 죄를 끝없이 회개하며 그렇게 계속해서 스 스로를 씻어나가야할 것이다. 깨끗하게 씻어낸 자신을 하나님께서 마음껏 쓰 시도록 자기를 내어드리는 믿음을 배워야할 것이다. 훈련의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외롭게하신다면 외로워야하겠고, 마음을 가난하 게 하시려고 자신감까지 가져가신다면 모든 것에 자신없어하면서 지독한 열 등감과 싸워야할 것이다. 이런 아들을 보면서 나는 괜한 짓을 하고 있는 것 은 아닌지 의심하는 사람이 되어 스스로에게 속지 않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매달릴 것이다. 우리가 밤늦도록 기도하고 새벽기도까지 하느라고 온 식구가 아침 늦게까지 잠을 자고 노곤한 눈으로 해가 중천에 뜨도록 헤매게 된다 하더라도, 그래 서 나의 사남매가 자신의 할 일을 다 못해낸다 하더라고 이게 잘하는 일인 지 올 한 해는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작정이다. 올 해는 그렇게 아무 것도 묻지 않고, 따져보지 않고, 계산하지 않고 마치 우리의 삶 속에 없었던 시간 처럼 그렇게 살 것이다. 오직 하 나님의 교회, 예수님의 몸 된 교회만을 생각 하며 그렇게 보낼 것이다. 오로지 교회만을 생각하며 보낼 것 뭐가 남을는지 아무 것도 예측할 수 없는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 아무 것도 안 남고 피곤만 쌓인다 하더라고 그렇게 한 번 살아보고 싶은 마음 하나로 새해를 계획하고 있는 나는 지금 하나님 앞에서 정말 행복하다.
527 no image |살구나무그늘아래서| 그 순종이 하늘에 닿아_추둘란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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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05 2009-12-17
그 순종이 하늘에 닿아 “동방박사의 길을 밝혀주던 그 별빛 또 다시 빛나길” 사위는 깜깜합니다. 자욱하게 안개도 흩뿌려져 있습니다. 남편은 핸들을 조 심조심 돌리며 운전을 합니다. 우리 동네 문산마을을 지나 지정리 삼밭골 고 개를 넘고 화신리 보건소 앞을 거쳐서 상반월 마을회관을 지나칩니다. 싱그러운 새벽 기도회 자동차 순회길 박 집사님네 언덕길을 돌아나오고, 김 집사님네 작은 샛길로 접어들고, 김 성도님네 집 앞에 이릅니다. 참 놀라웁게도 어쩌면 한 분도 빠짐없이 차를 기다리며 거기 그 자리에 서 계신지…. 어둠 속에서 차를 기다리며 서 계신 그 모습이 너무도 착하고 아름다워 콧날이 시큰해집니다. ‘어디서 저런 순종이, 어디서 저런 충성이 왔을꼬. 전날에 김장을 하셨을 텐데, 전날에 냉이를 캐셨을 텐데, 전날에 먼 길을 다녀오셨건만….’ 저마다 핑계댈 만한 사정이 없는 것도 아니어서 길모퉁 이를 돌 때마다 행여 못 나오셨을까봐 내 마음은 조마조마한데, 그런 내가 부끄러울 정도로 목원 들은 빠짐없이 채비를 하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12월이 되자마자 일찌감치 시작된 크리스마스 맞이 목장별 새벽기도회에 나오시기 위해 그렇게 새벽을 깨워 기도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맘쯤 시골의 겨울은 도시보다 훨씬 춥습니다. 해뜨기 전 새벽은 더더욱 춥 습니다. 난방을 하여도 워낙 추운 예배당이어서 겹겹이 껴입었건만 어깨가 시리고 무릎이 시립니다. 그런데도 달콤한 새벽잠을 버리고, 따뜻한 아랫목 을 버리고, 하나님 앞에 나아와 기도하는 목원들…. 그만한 까닭이 있기 때 문입니다. ‘영혼구원 124 예수님께 최고의 선물을 드립니다.’ 이번 크리스마스를 맞 이하기 위해 예배당에 내건 현수막의 구호입니다. 124는 12월 24일을 간략하 게 줄인 것입니다. 12월 24일 예수님 오신 그 밤에 예수님이 가장 기뻐하실 생신 선물을 드리자는 뜻입니다. 해마다 예수님께 선물을 드리지 않은 적은 없습니다. 네 살배기 꼬맹이부터 여든이 넘은 어르신들까지 온 성도들이 차례대로 무대에 올라 저마다 찬양 과 율동과 연극과 박수와 환 환 미소를 선물로 드렸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그보다 더 멋진 선물을 준비하기로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가 장 좋아하실 ‘새 영혼’을 선물로 드리기로 한 것입니다. 그래서 목원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실 분’을 정하고 그 이름을 놓고 새벽마다 기도하고 있습니다. 작정하고 있는 24일 그 밤이 되면 예년과는 달리 예배당은 텅 비겠지만, 그 대신 마을 곳곳에서 예수님의 생일잔치가 벌어질 것입니다. 교회와 목장이 낯설어서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했던 영혼들도 그날만큼은 즐거운 마음으로 목자 가정을 찾아와 맛있는 음식도 나눠먹고 윷놀이도 함께 할 것입니다. 예배당에서 성탄 발표회를 할 때에도 마을의 믿지 않는 이웃들을 초청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구경꾼으로 왔던 이웃들은 여전히 구경꾼이었습 니다. 즐겁고 행복한 것은 성도들뿐이요 그들은 성도들의 모습을 구경만 하 다 돌아가고,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주시고 간 참 평안마저도 그저 구 경만 하고 가는 듯이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그들도 함께 잔치자리에 들어오게 하고, 함께 이야기하도록 배려해주고, 함께 웃고 즐길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 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해마다 찬양 연습․춤 연습․연극 연습을 할 그 시간에 올해에는 기 도를 하고 있습니다. 기도도 그냥 기도가 아니라 모든 성도님들이 끼니마다 번갈아 금식하며 기도하는 ‘릴레이 금식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금식기도 라면 특별한 사람이나 하는 것으로 알고 있던 성도님들도 일 주일에 한 끼 니 금식은 할 만 하여서 이번 기회에 기꺼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박 집사님은 남편의 생일날 아침에 미역국을 드시는 대신 두 분이 금식기도 를 드렸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려서부터 예수님을 믿었지만 쉰 살이 넘어 처 음으로 금식기도를 해 본다는 정 집사님은 직장에서 금식기도를 한다고 밝히 니 믿지 않는 동료들도 저들의 간식을 먹지 아니하고 배려해주는 일을 경험 하기도 하였습니다. 단순히 금식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새 영혼 의 초청을 두고 기도하기 위하여 금식하는 것을 하나님이 아시니 이와 같이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벌써부터 들려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특별한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며 저는 두 가지에 놀랍니 다. 늘 성경으로 돌아가도록 믿음생활의 중심을 잘 잡아주는 담임 목사님이 이번에는 이렇게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실 줄 몰랐으므로 첫 번째 놀라고, 그 렇게 하자고 목사님이 말씀하면 어느 누구 하나 토 달지 아니하고 그대로 순 종하는 성도님들에게 두 번째 놀랍니다. 그 순종이 어찌 하늘엔들 닿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 서 24일 그 밤에 친히 새 생명들의 마음과 발걸음을 움직이실 것입니다. 그 리고 하늘의 천군천사들도 함께 보내시어 시골 작은 마을에 평강을 부어주 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일을 축하하고 기뻐하는 그 작은 자리가 영광의 자 리가 되리라고 확신합니다. 크리스마스 즈음이면 온 세상이 들썩거리고 번쩍거리고 요란하기 그지없습니 다. 그 생일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잊어버린 채…. 하지만 동방박사의 길 을 밝혀주던 그 옛날 그 별빛이 오는 24일 밤 대한민국 하늘에도 떠 있다 면, 예수님 생일잔치에 초대받아 설레는 마음으로 자박자박 시골길을 걸어가 고 있을 새 영혼들에게 그 빛을 비쳐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새 영혼들 주님께 초청하기 위해 시작돼 크리스마스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았지만 벌써부터 가슴이 설레고 설렙니다. 세상에 둘도 없는 그 생일잔치에 누가 와서 하나님이 친히 내려주시는 그 복 을 받게 될지요.
526 no image |노트북을 열며| 마음의 경영과 정서적 전염_변세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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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45 2009-12-17
마음의 경영과 정서적 전염 “주변 사람들의 감정 이해하는 공감능력이 필요해” ‘경영’이란 사람을 움직이게 만들어 비전과 목적과 계획을 달성하는 일이 다. 그렇기 때문에 경영이란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활동이라고 정의 할 수 있다. 사람을 움직이는 마인드 가져야 사람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사람에 대한 통찰력이 필요하다. 사람은 어떤 존 재인지, 어떻게 해야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지, 사람의 마음을 사기 위해서 는 무엇이 필요한지를 생각해야 한다. 만나는 순간 끌리는 사람이 있다. 가까이 머물고 싶은 충동이 느껴지는 사람 도 있다. 반대로 보는 순간 기분이 상하는 사람도 있다. 생각만 해도 기분 이 다운되는 사람이 있다. 끌리느냐 끌리지 않느냐에 따라 대인관계는 큰 차 이가 발생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관계와 신앙생활, 직장생활과 가 정, 사업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문제다. 도대체 끌리는 사람의 특징은 무엇인지,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 끌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밝고 웃는 표정을 가져야 한다. 어 떤 사람은 얼굴에 “접근하면 발포한다”라고 써놓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에게는 아무도 다가가지 않게 되며 기회와 행운도 도망칠 수 밖에 없다. 어떤 사람은 들어오는 순간 집과 사무실과 교회를 밝게 만든다. 사람들을 잘 격려하고, 농담도 잘 하고, 순간마다 에너지를 불어넣어주는 사람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들어오는 것만으로 사무실과 집안 분위기를 어둡게 만든 다. 사람들을 기죽게 하고 지치게 한다. 사람들은 그가 없어져야 비로소 숨 을 쉬고 웃을 수 있다. 지나치게 눈과 귀가 밝거나 자기 연민에 빠진 사람들은 가족과 주변 사람들 을 지치게 한다. 이런 사람은 계속 그 사람의 기분에 대해 계속 관심을 기울 이게 만들고 어떤 반응이 나올지 몰라 말하기도 조심스럽기 때문에 에너지 가 많이 소모될 수 밖에 없다. 그냥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불편하고 숨 막 히고 힘이 드는 사람이다. 능력과 실력은 있지만 늘 딱딱하게 굳은 얼굴을 하고 있거나 무거운 표정의 사람 은 인기가 없다. 침울한 표정은 쳐다보는 것 만으로도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심리학 용어 중에 ‘정서적 전염’이라는 것이 있다. 우리는 긍정적인 정서 의 전염자가 되어야 한다. 정서적 전염의 사람들을 살펴보면 그들은 늘 환하 게 웃는 사람들이다. 환한 표정의 사람들은 주변을 밝게 만들 뿐 아니라 다 른 사람의 기분까지도 환하게 만들어준다. 중국 사람들은 웃지 않는 사람과 는 장사를 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좋은 인간관계를 가진 사람들은 얼굴 표정을 잘 관리하는 사람들이다. 끌리 는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의 감정을 이해하는 공감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다. 매력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욕구를 잘 읽고 거기에 공감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다. 다른 사람이 어떤 감정 상태인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비치 는지를 알고 거기에 따라 자신의 행동을 적절하게 조절할 수 있는 배려와 예 의가 몸에 배어있다. 끌리는 사람들은 열정이 넘치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에 게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연말이 바쁘다. 우리는 교우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어떤 일이 있어도 교회 일 로 자폭하고 싶은 심 정을 자제해야 한다. 설사 코에 걸면 코걸이식의 황당 한 일을 만나도 “그렇군요... 제가 한 번 신경써보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나머지 속상한 부분은 동질감을 가질 수 있는 관계의 모임에 가서 풀면 되 는 것이다. 자기 행동 조절해는 배려 갖춰야 우리는 우리 자신의 매력을 높이고 유지하며 뛰어난 인간관계와 표정관리로 마음의 경영을 이루고 그로인하여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정서적 전염 자들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연말에 바쁜 목회사역에 좋은 기술적 방법이 될 것이다.
525 no image |채석포에서 온 편지| 첫사랑의 이별, 그리고 재회_김영자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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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70 2009-12-02
첫사랑의 이별, 그리고 재회 “첫 목회지에서 뿌린 씨앗 아름다운 결실로 다가와” 겨우살이 준비와 한 장 밖에 남아 있지 않는 달력을 보며 지나간 세월의 흔 적들을 생각하면서 깊은 상념에 잠겨있을 때 전화 벨 소리가 울렸습니다. 전 화선을 타고 들려오는 목소리는 20여 년의 시간들이 지났지만 금방 알아들 을 수 있는 목소리였습니다. 20년만에 반가운 목소리 들려와 목소리의 주인공은 우리를 매우 사랑했지만 멀리 이사를 갔기 때문에 떠날 수 밖에 없는 아쉬움이 남는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여 집사님이었고 당시의 몇몇 여집사님들과 함께 사모님과 목사님이 계시는 곳에 방문하고 싶다는 내 용이었습니다. 마당에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니 기러기의 행렬이 보였습니다. 따뜻한 남쪽나 라로 가는 여정을 위해 제 식구들과 일행들끼리 한 무리를 지어 날아가는 기 러기 떼의 모습이 일사 분란한 국군장병의 분 열의식을 생각나게 합니다. 기 러기 떼들은 남쪽나라로 날아가지만 귀소본능이 있어 저희들이 살았던 우리 나라를 기억할 것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내 기억들을 더듬어 보려고 합니다. 남편은 늦은 나이에 신학을 하면서 신학교를 졸업하면 곧 바로 개척을 해야 만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을 즈음에 한 선배로부터 사당동에 위치한 한 교 회를 소개하면서 가보라고 해서 주일 예배를 그곳에서 드리기로 했습니다. 그때 나는 남편과 두 아들의 학비와 생활을 돕기 위해 직장에 나가고 있었 을 때였습니다. 시간에 맞추어 그곳에 가보니 교인 몇 명이 모인 조그마한 상가 2층 교회였 습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남편에게 “이곳은 아니다”라고 내 의사를 전달하 면서 남편과 무언으로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 교회를 맡고 계신 목사님께서 광고 시간에 목사님 후임으로 오실 분을 소개한다면서 우리 부부를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너무나 황당했지만 말씀하신 목사님과 몇 명되지 않은 성도들 앞에서 엉거주 춤 우리 부부는 그렇게 첫 사역지인 교회에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정해 진 사역지로 다음 날 떠나신 목사님께서는 바쁘셨겠지만, 아직 준비되어 있 지 않았던 남편과 나는 그렇게 하는 것이 소개한 성도들에 대한 신뢰의 문제 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때 그 시절은 아파트 재건축과 신도시가 생기면서 많은 사람들이 사방으 로 새 아파트 입주를 위해 떠나가고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입주를 기다리고 있는 성도들 몇 명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남편은 신학교를 졸업하 고 나름대로 뜨거운 열정으로 성도들과 교제를 나누며 사랑을 키워 나가면 서 제자 훈련과 전도를 열심히 하면서 목회자로서의 꿈을 하나씩 이루어나갔 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 근방의 낡고 오래된 건물들이 헐리면서 성도들은 신도시와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였고 이사 오는 사람들은 드물었습니다. 그 성도들과 있을 때 강도사 인허와 목사 안수를 받기도 하고 40일 금식기도를 하면서 서 로에게 힘과 용기를 얻어 가는 듯싶었으나 철새처럼 그들은 하나 둘 떠나가 고 우리들에게 상처와 아픔만 남겼습니다. 아이들 학비와 생계를 위해 직장에 나갔던 나는 나름대로 성도들과 같이 하 지 못함에 늘 죄지은 것처럼 자책감에 시달리기도 했고, 사춘기를 겪고 있 는 큰 아들의 말없는 반항에 마음 아 프기도 했었습니다. 목회 생활을 하면서 헤어졌지만 가끔씩 목회의 첫사랑인 그들을 생각하면서 그들 중에는 행여나 남편의 강직한 말로 인해 상처받았을 사람도 있을 것이 라고도 생각하면서 준비되지 않은 시행착오였다고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 습니다. 11월의 첫 토요일에 첫사랑이었던 그들이 이곳을 방문하겠다고 했을 때 내 마음은 묘했습니다. 목사 사모로서의 처음 가졌던 나의 첫사랑, 아니 그것 은 나의 첫사랑이 아니고 남편의 첫사랑이었습니다. 직장에 나갔던 사모였기 에 여자집사님들과 많은 시간을 보낸 것은 내가 아닌 남편이었으니까....... 이곳에서 같이 식사할 수 있는 곳을 예약하라고 했지만 그들에게 따뜻한 밥 상으로 맞이하고 싶었습니다. 만남의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주름진 나의 모습 이 조금 부끄럽게 느껴졌으나 누구에게나 세월의 흔적은 있을 꺼라 생각하 며 귀한 음식들을 준비하였습니다. 각자 흩어진 곳에서 한곳에 모여 버스를 타고 태안 터미널에 도착하였고 시 간에 맞추어 남편이 마중을 나갔습니다. 조금 후에 낯익은 얼굴들의 모습을 다섯 명이나 볼 수 있었습니다. 준비해 놓은 맛있는 식사 를 하면서 마냥 즐 겁게 이야기 하는 얼굴에서 사랑과 기쁨들이 넘쳐났습니다. 그들에게 들은 놀라운 소식은 서로가 각자 흩어졌지만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 때 같이 했던 사람들 7명이 계속 만남을 유지하며 그 모임의 이름을 그때 를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청목회’로 명명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때 이해할 수 없었던 많은 일들도 이야기했습니다. 내게 가장 큰 아픔으로 남아 있었던 “사모님은 멋 부리며 직장에 나가고 목 사님은 너무나 불쌍했다”라는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교회에서 자녀들의 학비와 목회자의 생활을 책임질 수 없고 물질적으로 비생산자인 목회자를 이 해하기보다는 직장에 나가는 사모가 미웠다고 했습니다. 20여 년 만에 만나서 그간의 아픈 마음도 풀고 다 나누지 못했던 사랑도 나 누었습니다. 이분들 중에는 남편에게 처음 세례를 받고 그 세례증서를 지금 껏 보관하고 계신 분도 있었고 각자 흩어진 교회에서 권사로 중직을 맡아 열 심히 봉사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처음 전도해서 얻은 열매의 신자들이 20년이 지난 지금 도 그 신앙을 잃지 않고 잘 간직하고 있으니 목회 가 헛되지 않았음을 감사하 였습니다. 서로 울고 웃으며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 을 서로가 이야기 하면서 기뻐하였습니다. 처음 목회 헛되지 않은 것 감사해 그들을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에 보이는 시골집 굴뚝의 연기가 너무나 따뜻하 게 느껴지면서 항상 가슴 한 편에 아픔이 되어 떠올랐던 첫사랑 성도들의 얼 굴들이 기쁨의 얼굴들로 승화되는 것을 느끼면 마음껏 행복을 누려보았습니 다.
524 no image |하늘이슬로 쓴 편지| 달빛아래서 춤을_ 이영란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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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35 2009-11-18
달빛아래서 춤을 “우리 가족이 경건한 백성으로 세워져 가는 것 감사해” 시월 한 달은 어린이 예배 때에 룻기 말씀을 전했다. 첫 시간에 “나오미가 며느리 룻과 함께 고향에 돌아온 때는 추수를 시작할 때였어요!” 하며 두 여인을 융판에 붙이는데 무척이나 설레었다. 앞으로 전개될 놀라운 은혜의 이야기 때문이었다. 나오미와 룻 이야기 전달해 네 번의 룻기설교를 마치면서 나는 지나온 세월을 자연스럽게 반추하게 되었 다. “너는 맏며느리로는 많이 부족하니 나는 이 결혼을 반대한다”고 하시 는 아버지 말씀에 크게 흔들렸지만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지금의 남편이 ‘그 자격은 마음과 믿음에 있으니 내가 최적격’이라고 하였다. 결혼한 그 이후 25년의 세월동안 나는 아버지 말씀대로 맏며느리의 삶은 나 와 너무도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를 무척이나 좋아하셨던 어머 니께서 내 진면목을 보시며 실망하셨 다고 생각될 때마다 앞으로 어떻게 해 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아! 내 노력으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구나, 은혜가 아니면 이 삶은 위선 과 형식일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엎드리는 중에 믿음으로 시 댁가족에 대한 미래의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어머니를 생각하며는 아련해지고 가끔 회개의 눈물이 맺혔다. 룻의 시모에 대한 애정이 나에게도 싹트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께서 “나도 맏며느리는 일을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더구 나.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하시는 것이 아닌가! 내가 룻과 나오미를 융판에 붙였듯이 하나님께서 앞으로 하실 이야기를 위해 마음이 하 나된 어머니와 나를 붙이시는 순간이었던 같다. 6남매 모두 결혼하고 자손들이 장성하기까지 작고 큰 풍파들이 있었고 그때 마다 어머니와 나는 함께 기도했다. 믿음을 멀리 떠나 살던 가정들이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며 다시금 신앙의 아름다운 가정으로 세워져 갔다. 하나님은 측량할 수 없는 은혜를 베푸셨고 점차로 하나님을 섬기는 대 가족을 이루게 하셨다. 그런데 올해 큰 변화 가 생겼다. 내게 며느리가 생긴 것이다. 일찍 결혼한 아 들 덕에 빨리 시어머니가 된 것이다. 명절을 맞아 어린 며느리를 데리고 장 을 보아 시댁에 가는데 그 느낌을 무엇이라 형용할 수 없었다. 이제 겨우 며 느리가 어떤 것인가 깨닫기 시작했는데 시어머니가 되었으니 어찌 담담할 수 있을까! 어린 며느리가 내가 가르쳐주는 대로 송편을 열심히 만드는 것을 보면서 25 년 전 바로 이 자리에서 있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송편 하나는 잘 만드 는구나!” 하며 칭찬인지 책망인지 깜짝 놀라셨던 어머니 생각이 났다. 너무 도 부족했던 며느리였는데 여기까지 오다니... 넓은 마당에는 큰 보름달이 걸렸고 수많은 별들이 하늘에 매달렸다. 막내 시 동생은 장작불 위에 고기를 구우니 아이들이 젓가락을 들고 몰려든다. 둘째 는 천체망원경을 조립해서 달을 따다가 애어른 할 것 없이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목사의 길을 꿈꾸는 나의 아들은 어느새 아이가 되어 조카들을 리드하 며 마당에서 뛰논다. 그 순간 지난 세월이 영화처럼 스치며 “아!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라는 고백이 보름달만큼이나 내안에 가득 차올 랐다. 아 들도 기쁨이 넘쳤나보다. 갑자기 전등을 비춰주며 “모두 나와 춤추세 요!” 하는 것이 아닌가. 리듬을 맞추어 주는 아들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일 을 멈추고 춤을 추었다. 아랫동서가 따라나와 나보다 더 신나게 추었다. 두 목사 사모의 얼굴이 달빛아래서 더욱 충만했다. “형수님, 그런 모습 처음 봤어요!” 하는 시동생 목사가 크게 웃는다. 절구질을 하시는 어머니도 춤추 시는 듯 했다. 아이들 얼굴에도 웃음꽃이 번졌다. 다음 날 우리 가족의 추수감사 예배를 드렸다. 남편은 시편 말씀을 통하여 감사로 제사를 드리자며 모두 한 가지씩 감사를 나누자고 했다. 맨 마지막으 로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는 무릎을 꿇은 채 “나는 지금 너희들의 이 모습 이 그 무엇보다도 감사하다!”고 하셨다. 평생 무릎으로 사신 그분의 감사의 내용은 놀랍게도 20여 년 전에 은혜를 구 하며 믿음으로 그린 우리 가족의 그림이었다. 그것은 우리 가족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그의 경건한 백성으로 세워져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이삭을 주워 살던 나오미와 룻이 속량자 보아스를 만나게 하시고 그 후손을 통하여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질 왕조시대 가 열리게 하셨다. 하나님의 마음 에 가장 합했던 다윗 왕이 그리고 우리를 속량하신 진정한 왕 예수그리스도 께서 오셨다.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 왕을 낳 으니라.’ 그리고 그 족보의 마지막에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 라’고 기록하고 있다(마 1:5,6,16). 설교를 마친 후에 오히려 나는 그 은혜의 세계에 더 빠져들었다. 그 두 여인 의 이야기는 끝난 것이 아니라 이미 어머니와 나의 삶속에서 이어져왔고 앞 으로도 계속된다는 것이 믿어졌기 때문이었다. 두 여인 이야기로 마음 설레어 부모와 고향을 떠나 온 룻과 같은 나의 외국인 며느리와 나를 상상 속에서 융판에 붙여본다.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은혜의 이야기를 그려보며 다시금 마음 설렌다.
523 no image |들꽃 향기처럼| 가을 산행 길에서_윤순열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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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05 2009-11-04
가을 산행 길에서 "결실 없는 가을은 낙엽지는 쓸쓸한 가을에 지나지 않을 것" 깊어가는 가을에 남편과 함께 가을 산행을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산 입구에 들어서니 붉은 단풍과 노오란 은행잎들이 우리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았습니 다. 때늦은 가을 산행 다녀와 몇 일 전에 성경공부 모임에서 갔던 내장산보다 훨씬 더 아기자기한 모습과 한층 고운 단풍들로 인해 이곳이 더 아름다웠습니다. 멀리가지 말고 진작 이 곳에 올걸, 지난 주에 같이 갔던 일행들이 생각나며 같이 보았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낙엽들은 가지가지 형형색색으로 달랐습니다. 밑에 깔린 소나무 낙엽 위로 붉고 노란 떡갈나무 잎들, 밤색 빛이 도는 도토리나무 잎들, 붉은 색의 단풍 잎들이 다양한 카펫을 깔아놓은 듯 아름답고 멋스러웠습니다. 숲속은 로마에 서 보았던 호화로운 성 베드로 성당 내부보다 더 찬란하였습니다. 어쩌면 하나님은 이리도 멋있는 예술가이실까. 세상에 어떤 작가가 이렇게 멋있는 작품을 계절별로 만들어 놓을 수 있단 말인가. 골짜기 숲에 수북하 게 쌓인 형형색색의 낙엽을 보니 그냥 그곳에 머무르고 싶었습니다. 세상사 온갖 시름 잊어버리고 낙엽과 함께 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일순간 세상에 복잡 다양한 일상에서 놓여지는 듯 마음이 평안하였습니다. 주님을 따르던 예수님의 제자들도 세상의 온갖 풍파에 시달리던 중 변화 산 에서 변형된 예수님의 광채나는 모습을 본 순간 베드로가 주님께 '랍비여 우 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초막 셋을 짓되'라는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피하고 싶은 현실 속에 주님의 신비한 모습은 그들의 마음을 온통사로 잡았 을 것입니다. 내려오는 길에 잘 단장된 무덤을 보았습니다. 큼직한 대리석의 무덤을 보니 반갑게도 모 장로님의 묘비였습니다. '1910년 12월 24일생 모태교인으로 배 재학당재학시절 이화학당 누님 마리아와 광주학생 사건 때 옥고를 치르고 임 시정부 때는 교육 사업에 기여하고 상해 임정 민락 동지들과 백범등 형명가 로부터 인격을 높이 평가받다. 38세에 제헌 국회의원을 비롯 유엔 총회 한국 대표단 국회운영위원장 교회장로로서 인도주의적 전형이요 불의 앞에서는 사 자 형이요 웅변에는 일인자였다. 세계정세와 미래에 밝고 정치인의 사표였 다. 무궁화 훈장을 받다. 1972년 12월 24일 아침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성 역에 안장하다.' 대략 그분의 묘비입니다. 격동의시기에 태어나 짧은 생애였지만 많은 일을 하였고 빛나는 업적을 남기신 생애 같았습니다. 저물어 어두워진 산행 길에 묘비의 주인공으로 인하여 가을 산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문득 저희들의 생애를 돌아봅니다. 더 나은 내일을 향하여 힘겹게 발걸음을 옮기는 저희들의 목회사역을 돌아보았습니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목회자 로 소명받아 무엇을 얼마나 남겼던 생애였던가,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많지 않은 이생애에 과연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우리의 묘비에 무엇 을 기록 할 수 있을 것인가?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흘러가는 세월 속에 시간을 허비하여 무엇 하나 제대로 남긴 것 없이 허송세 월 하지는 않았는지, 무리한 욕심을 목표로 하여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양 착 각하여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양으로 삼지는 않았는지 돌아봅니다. 우리는 언젠가 누구나 공평하게 무덤을 남기고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날이 있 습니다. 봄날의 곱고 화려 했던 꽃도, 여름에 무성했던 숲도 스산한 찬바람 과 함께 단풍 옷입고 낙엽되어 떨어 질 날이 올 것입니다. 우리의 생애가 화려하고 찬란하게 수많은 업적을 남길 순 없어도 진실하고 충성스럽게 작은 일이라도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할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 없이 설 것이며 우리의 묘비도 그리 부끄럽지 않을 줄 압니다. 우리가 지금 가는 길이 힘들다고 포기하고 주저앉아 버린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보고 무엇이라고 말할 것이며 귀중한 우리의 후손들은 우리를 보고 무엇으로 교훈으로 삼을 것인지 생애의 허리끈을 다시 매어봅니다. 가을이 아름다운 이유는 울긋불긋 어여쁜 단풍이 있어서만도 아닌듯 싶습니 다. 봄에 싹을 틔워 봄여름을 지내는 동안 온갖 풍상을 견디어 낸 후 맺어놓 은 풍성한 결실이 있기에 아름다운 것입니다. 풍성한 결실이 없는 가을은 한 낱 낙엽지는 쓸쓸한 가을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온갖 열매가 풍성 하기에 가을은 더욱 빛이 납니다.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 생애의 풍성한 열매로 인하여 주인되신 주님 앞에 부 끄럽지 아니하며 인생의 흔적인 묘비 앞에 충성된 사역자의 흔적을 남겨놓 고 싶습니다. 인생의 열매 부끄럽지 않길 들뜬 마음으로 올랐던 가을 산행 길은 낙엽지는 산길을 내려오면서 보았던 묘비로 인하여 숙연함 속에 저희들의 인생길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 다.
522 no image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성경말씀 암송으로 얻은 평화_최에스더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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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4 2009-10-21
성경말씀 암송으로 얻은 평화 "말씀 암송의 힘 앞에서 예상 밖의 평화 찾아" 베란다 밖으로 멀리 내다보면 벌써 나무들이 붉고 노란 옷으로 갈아입은 게 보인다. 가을만 되면 오히려 나태해져 가을이 책을 읽고 공부를 하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이라고들 하지만 무더운 여름을 날씨탓하면서 의미없이 보내게 될까봐 오히려 발을 동동 구르며 열심 을 내는 경향이 있는 나는 가을이 오면 그만 나가떨어지게 된다. 게다가 봄의 아름다움과는 달리 사람을 좀 쓸쓸하게 만드는 가을의 아름다움 에 빠져서 일을 하다가도, 아이들을 돌보다가도 문득문득 가을 풍경에 시선 이 빼앗기고 생각도 빼앗긴다. 이런 계절에는 생각까지 쓸쓸해지는 것들이 줄을 선다. '내가 그 때 그러길 참 잘했지, 내가 생각해도 그 때 나 참 멋있어' 이런 생 각들보다는 '내가 그 때 왜 그랬을까, 왜 그렇게 말했을까. 아, 정말 그 때 n로 돌아가서 그 사람들 붙잡고 해명하고 싶다, 다시 한 번 기회는 오지 않았 고 나는 영영 바보가 되는구나' 뭐 이런 생각들만 든다. 그런데 나는 늘 그래왔다. 계절의 탓인양 지금 이 가을에 유독 반성의 시간 을 갖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은 좀 다르다. 예수님을 믿는 가정에서 태 어나 학교 외에는 교회밖에 모르기를 예수님 믿는 가정에 시집갈 때까지였 고, 신혼을 벗어나면서 사모가 되어 지금에 이르렀으니 나는 사십 평생을 예 수님 그늘 아래에서 살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늘 후회하는 사람이었다. 아이스크림을 고 르는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전공을 선택하는 조금 중요한 일까지. 그 가운 데에서 언제나 나를 괴롭히는 후회는 늘 사람과의 관계에서 왔다. 아이스크림이야 다음에 또 기회가 있고, 전공이야 지금에 와서 보면 내가 뭘 전공했든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사람을 대하면서 내가 했 던 말과 행동들은 두고두고 나를 괴롭혔다. 후회막급인 일일수록 기억에서도 너무나 선명하여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 도 흐려지지도 않는다. 떠오를 때마다 어디론가 숨고 싶고, 그 때로 달 려들 어가 모든 것을 지우개로 빡빡 지우고싶다. 나 혼자지만 너무나 부끄러워서 변명의 말이 나도 모르게 입밖으로 나오기도 한다. 십 년 넘게 지난 나의 옛날 사진을 보는 건 이 민망함에 갖다댈 것도 아니 다. 예수님 그늘 아래에 산다고 하면서 진리의 말씀과 인생의 비밀들을 많이 도 들었을 터인데, 그리고 내 인생에도 신앙이 고비고비를 넘기고 성장하던 순간들이 없지않았는데, 그래서 나도 좀 지혜를 발견했다고, 사람사이에서 사람 노릇하면서 사는 것 좀 알겠다고 생각했었지만 돌아서고나면 정말 후회 가 낙엽처럼 쌓였었다. 사모가 되고나서 이 부분이 가장 어려웠다. 후회만 쌓여가는 스스로를 보면 서 모든 것에 자신이 없었다. 교회에서 사모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 되어 있는가.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있나.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에 둘러싸여 있음에도 늘 후회만 하는 나는 고민이 참 컸다. 나의 최선 이, 그것이 사랑이든, 지혜이든, 동감이든, 긍휼이든, 언제나 후회가 남는 일로 끝이났다. 나의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예수님을 믿는 인생은 후회없는 인생이어야할 것 같은데 나는 왜 이렇게 모 든 것이 후회로 끝이 날까, 나는 무엇을 알아야 하는 것일까? 이렇게 고민 많은 내게 하나님께서 말씀 암송이라는 길을 하 나 보여주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암송한다는 것은 이런 종류의 문제 해결과 별로 상관이 없 어보인다. 나의 언행과 인격에 문제가 있는 것을 다만 하나님의 말씀을 외우 는 것으로 해결한다는 것은 말씀의 능력을 믿는 우리에게도 억지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을 나도 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을 해도 내 후회막급한 인생 이 그래도 어느 정도는 후회예방 가능한 인생으로 돌아선 지점을 말씀암송 의 때라고 나는 말해야겠다. 내 인생에 회개도 있었고, 성령님의 임재하심도 있었고, 말씀의 충만함도 있 었고, 찬양의 기쁨도 있었지만 이런 놀라운 은혜의 능력이 증발되지않고 압 축시키고 응축시켜 내 안에 깊이 박혀있는 쓰디쓴 죄성의 뿌리를 뒤흔들어 놓고 뽑아내기 시작한 파워는 말씀암송에 있었다. 사람과의 관계에 최선을 다하고 더 이상의 무엇은 불가능할 것처럼 살았었지 만, 얼마 지나지않아 돌아보면 그 때의 나는 숨겨놓은 욕심도 많고, 나만 아 는 교만도 많고, 내 마음대로이고, 지극히 이기적이며 개인주의 적이고, 도무 지 희생하려 들지 않는 내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가진 지극히 소량 의 지혜를 가지고 얼마나 큰 만용을 부렸는지, 마치 모든 대답을 쥐고 있는 사람처럼 굴었고, 지혜를 찾지못한 사람들이 보이면 아주 마음껏 비웃어주 던 내 모습이 보였다. 예전에는 좀 더 고상하지 못하고 좀 더 침착하지 못하고 흥분하지 않고 냉정 을 유지하지 못한 내 모습에 대한, 어쩔 수 없이 드러나기 마련인 내 이기적 인 모습이 탄로나버린 것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는 후회였지 만, 이제는 말씀 앞에서 다 보아버린, 완전한 죄인인 나를 인정하는 반추이 다. 내가 아무리 고상하려해도, 침착하려해도, 냉정을 유지하며 지혜롭게 행동하 려 해도 죄인인 내 안에서는 그런 것들이 나올 수 없고, 당황하면 실수하 고, 흥분하며 거칠어져서 화부터 치미는 야수와도 같은 것이 나라는 것을 말 씀암송의 힘 앞에서 나는 철저히 인정하였다. 이것을 인정하고 나니 예상 밖 의 평화가 찾아왔다. 잘 보이고 싶은 사람 앞에 서면 먼저 뛰기 시작해서 나를 당황하게 만들던 그 열등감의 심장도 좀 잦아들어가고, 다른 방법으로 자녀를 양육하는 사람 들을 보면 순식간에 불이 붙던 쌍심지도 시들시들해지고, 잘난 사람을 도저 히 인정 못하던 내 교만의 렌즈도 자꾸 불편해졌다. 내가 찾은 평화가 너무가 귀해서 나는 내 아이들에게 열심히 암송을 시킨 다. 살면서 후회만하는 인생되지 말라고. 엄마인 나보다는 훨씬 일찍부터 말 씀 앞에서 자신을 비춰보면서 늘 통제받고 살라고. 그래서 후회없는 인생을 살다가 하나님을 뵈오라고 암송을 시킨다. 말씀 암송 통해 평화 누리게 돼 독한 엄마 만나서 매일 암송한다고 후회막심한 얼굴일 때가 많다. 하지만 500절이 넘는 자신만의 말씀의 샘에서 갈한 심령을 넉넉히 축이며 은혜와 감 사로 인생을 채우는 내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또 다른 기쁨이다.
521 no image |살구나무그늘아래서| 기도와 콩나물국_추둘란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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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59 2009-10-21
기도와 콩나물국 추둘란 집사, 홍동밀알교회 “발걸음 옮겨 사랑 전해준 분들에게 감사해” 지난 수요일 아침, 옷깃으로 파고드는 기운이 더없이 차게 느껴지는가 싶더 니 오후쯤 되어 신호가 왔습니다. 목이 잠기고 코가 콱 막히는 것이 예사롭 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예사롭지 않은 감기 기운 느껴져 여느 때에도 골골하는 체질이라 일찌감치 한의원으로 가서 약을 받아 왔습니 다. 다행히 중간고사 기간이라 오전만 일하고 일찍 퇴근하여 쉴 수 있었습니 다. 약을 먹고 오후 2시쯤 누웠는데 어둑어둑해지도록 이불 속에서 꼼짝 할 수 없었습니다. 스르르 잠이 들었나 싶더니 깨어나면 땀으로 온 몸이 젖어 있었고 그러다 이내 다시 잠들기를 거듭하고 있었습니다. 저녁에는 예배드리러 가야 하는데 그마저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시간 맞 춰 교회 버스 운행을 해야 하는 남편은 아이들을 씻기고 밥을 먹이느라 눈 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도무지 도와줄 수가 없었습니다. 남편과 아이들이 교회로 가고 나니 집안은 더없이 조용하고 휑하였습니다. 어느새 또 잠이 들었나 싶었는데 ‘집사님!’ 하고 누가 부르는 소리에 잠 을 깼습니다. 집안에 불을 다 끄고 있었는데 누군가 스위치를 찾아 켰습니 다. 명 목자였습니다. “목사님도 오셨어요.” 겨우 5분 정도 잠이 든 것 같은데 한 시간이 훌쩍 지났는지 예배를 마치고 목사님과 사모님, 목자 몇 분이 심방을 온 것입니다. 방안에 빨랫감도 개켜 두지 않았고, 머리칼은 땀에 젖어 흐트러져 있고, 목소리는 코맹맹이가 되 어 있는 몰골이었지만 그 심방이 반갑고 기쁘고 고마워서 헤헤 웃으며 앉았 습니다. “독한 감기에요. 옮으면 어찌하려고 오셨어요? 멀찍이 떨어져 앉으셔야 해 요.” 목사님에게 감기가 옮기면 어쩌나 싶어 한 마디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병자를 고치러 가실 적에도 병이 옮은 적은 없고 고치기만 하셨 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심방 걸음을 내디딘 목사님의 사랑 가득한 대답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다 같이 찬송을 부르고 또 부르고, 내 머리와 어 깨와 손을 붙들고 목자들이 함께 기도하였습니다. 그 기도를 받으니 예수님 이 나를 찾아 오셔서 얼른 나으라고 기도해 주신 듯 기쁘고 힘이 났습니다. 다음날 아침 여전히 몸이 무거워 출근을 하지 못했습니다. 직장에는 점심때 쯤에는 나가겠노라고 기별을 넣었지만 몸 상태로 봐서는 그마저도 못할 듯싶 었습니다. 그런데 10시쯤 되었을까요? 트럭 소리가 대문간에서 들려왔습니 다. “이게 웬일이여? 평소에는 가만히 누워 있질 못하는 사람이. 하나님이 이참 에 푹 쉬라고 하시는 게지.” 쾌활한 웃음으로 목장을 화목하게 만드는 영 숙 씨였습니다. 그이는 오자마자 부엌으로 들어가 무엇을 끓이는지 달그락달 그락 소리를 내었습니다. “먹어봐. 이거면 감기는 아주 똑 떨어지지.” 그이는 따뜻하게 데운 석류즙 에 가루로 된 한방감기약 녹인 것을 건네면서 말했습니다. 그 감기약이야 나 도 한의원에서 받아왔지만 왠지 석류즙까지 곁들인 그이의 약이 더 좋아 보 였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한 컵을 다 비우니 몸이 훈훈해지면서 약 기운이 스폰지처 럼 몸속으로 스며드는 것 같았습니다. 다 마시기를 기다리던 영숙 씨는 주전 자에 남아 있던 것을 마저 더 따라주었습니다. “우리집에 와서 밥 먹구 출근혀. 어제 저녁밥 도 오늘 아침밥도 안 먹었다 며? 점심이라도 든든히 먹구 가야지.” 오후에는 출근을 해야겠다고 말하였 더니 혼자서 뭘 차려 먹겠느냐고 그이 집에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감기 옮으면 어쩌려고?” “걱정 말어. 나는 이미 왔다가 벌써 지나갔은께.” 그러마고, 보건소에 가서 주사 한 대 맞고 점심 때 맞춰 가겠노라고 약속을 하였습니다. 영숙 씨가 가고 나니 어디선가 힘이 막 솟구치는 듯하였습니 다. 씻고 옷을 차려입을 때에도 힘든 기색 없이 즐겁고 평안했습니다. 영숙 씨가 차려준 식탁에는 따끈한 콩나물국과 여린 갓으로 무친 겉절이가 올라와 있었습니다. 밥은 조금 남겼지만 시원한 콩나물국을 두 그릇이나 뚝 딱 해치우고 출근을 하였습니다. 언제 쑤시고 열이 났나 할 정도로 몸이 가 뿐하였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깜깜한 가을밤에, 솔숲에 달빛 걸려 있는 그런 밤에 작은 시골집 단칸방에 몇 사람이 모여 찬송하고 주의 이름으로 아픈 사람을 위하 여 기도하는 모습을…. 아픈 사람 집에 석류즙을 들고 찾아와 따뜻하게 데 워 먹이고, 콩나물국을 끓여 식탁을 차려주는 모습을…. 몇 백만원짜리 선물 을 받은 것도 아닌데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생각하면 할수록 감동이 되어 서 코끝이 찡했습니다. 일부러 한 병자를 찾아가 고쳐주는 일은 예수님에게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 는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그 일로 예수님에게 이득 될 것이 얼마나 있었을까 요? 그런데도 예수님은 수가성의 여인을 찾아가고 베데스다 연못가의 병자 를 찾아가셨습니다.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아프다는 말을 듣고, 있는 그 자리에서 기도만 해 주어도 감사하건만 발걸음을 옮겨 직접 찾아와 사랑을 전해준 그이들을 생각합니다. 그이들도 무슨 이득을 바라고 나를 찾아와 준 것은 아닐 것입니다. 본을 보여주신 예 수님의 사랑과 본질적으로 닮은 그 사랑이 그이들의 마음속에 있었기 때문 에 망설임 없이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사랑의 실천에는 망설임이 없어야 사랑 그 자체이신 하나님이 이렇게 아름다운 성도들의 모습을 내려다보시며 어찌 긍휼을 베풀지 않으시겠는지요? 저는 감기가 다 나았습니다. 그리고 마 음에는 감사함이 더욱 넘치게 되었습니다.
520 no image |선교단상(2)| 유럽의 이슬람화를 지켜보며_이기종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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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21 2009-10-07
유럽의 이슬람화를 지켜보며 이기종 총무·합신세계선교회 “기독교가 힘이 없는 곳에 이슬람 확산되고 있어” 작년 1월에 한국을 방문했던 영국의 기독교 역사학자 앤드류 월스(Andrew F. Walls)가 자기 고향을 방문했던 때를 회상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지금은 여든 살이 넘은 그는 자신이 출석했던 교회뿐만 아니라 고향의 많은 교회들이 모스크나 식당, 술집으로 변한 것을 목도했을 때의 착잡했던 심경 을 토로했었다. 그가 서아프리카에 선교사로 떠날 때는 상상하지도 못한 일 이었다. 그는 “교회와 선교는 모든 곳에서 시작하여 모든 곳으로 갈 수 있 다. 단 하나의 중심(Single Center)은 없다.... 서구를 재복음화 해야 할 필 요가 있다”고 강조했었다. The Economist 지(誌)는 에펠탑 꼭대기에 이슬람의 상징인 초승달이 걸린 합 성사진을 표지에 싣고 ‘유라비아’(Eurabia)라는 표제를 내 건 적이 있다. 현재 유럽은 가히 ‘유라비아’(유럽과 아라비아의 합성어)라고 불릴 정도 로 이슬람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한때 융성했던 기독교가 점점 힘을 잃 어가고 있는 반면, 이슬람은 파죽지세로 유럽 전역에 확산되고 있다. 이슬람에 흔들리는 유럽 이처럼 유럽이 숨죽이고 이슬람을 바라보고 있는 상황은 남의 일 같지 않 다. 유럽인의 출산율은 계속적으로 낮아지고 있는 반면, 유럽에 진출한 무슬 림의 출산율은 여전히 높은데다 취업, 이민 등 유입 인구도 증가하고 있어 서 유럽의 인구 판도가 크게 변하고 있다. 유럽인 가운데 무슬림의 수는 약 5,400만 명(2007년)으로 전체 인구의 7%에 달한다. 언론들은 2015년까지 유럽의 무슬림 인구가 지금의 두 배가 될 것이 라며 ‘유럽 이슬람화의 심각성’을 보도하는 한편, 유럽의 이슬람화가 보 다 빠르게 진행됨에 따라 유럽 각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주 택, 외교 정책 등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게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영국은 1,000개 이상의 교회가 모스크로 바뀌었으며, 무슬림 인구가 250만 명으로 지난 30년간 30배 이상 증가하였다. 20세기 초반 강력한 개혁주의 국 가였던 네델란드는 이제 태어나는 신생아의 50%가 무슬림이며, 15 년 후면 전 인구의 절반이 무슬림이 될 것이라고 한다. 프랑스는 무슬림 인구가 500 만 명이며 20세 미만의 30%가 무슬림이고 특히 파리, 니스, 마르세이유 등 은 20세 미만의 45%가 무슬림이다. 독일, 벨기에 등 다른 나라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무슬림 증가에 따른 사회적 갈등 확대 이슬람의 확산은 유럽의 주요 국가들에 사회적인 문제들을 야기하고 있다. 무슬림의 주류사회 진출을 견제하려는 세력과 이에 맞서는 무슬림의 반발은 점차 과격일로를 치닫고 있다. 유럽의 각 국가들은 이러한 사회적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골머리를 앓고 있다. 1988년 9월 영국에서 출간된 살만 루시디(Salman Rushdie)의 소설 ‘악마의 시’는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살만 루시디는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숨어 지내야 했고, ‘악마의 시’를 번역한 이탈리아인이 습격을 당했으며, 일본 의 이가라시 히토는 살해당했다. 2005년 7월 런던의 지하철과 버스 폭탄테러로 52명이 죽고 700명이 부상을 당하였는데 영국에서 자라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 의해 감행된 것으로 보 도되었다. 최근 영국에서는 ‘영국내에 더 이상의 모스 크는 허용할 수 없 다’며 이슬람 반대 극우단체가 나서는 등 이슬람에 대한 반감이 심해지고 있다. 2005년 프랑스에서는 무슬림에 의한 전국 규모의 폭동으로 한 달 이상 비상 사태가 선포되었으며 350개 도시에서 6,400대의 차량이 불타고 1,600명이 체 포되어 사회가 일시 마비되었다. 지난 6월에는 사르코지 대통령이 부르카(무 슬림 여성의 전통의상)를 입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을 발표한 이후 무슬림 사 회의 분노가 커지고 있다. 지혜로운 대비책 필요 이러한 시점에서 한국교회는 유럽의 상황들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대비해야 할 것이다. 토요 휴무제, 저출산과 인구의 고령화, 외국인 근로자와 다문화 가정의 증가 등 여러 정황들로 볼 때 우리가 유럽의 전철을 밟지 않으리라 는 보장은 없다. 2005년 11월 서울에서 개최된 중동 이슬람지도자 선교대회에서는 한국을 2020년까지 이슬람국으로 만들겠다는 전략이 구체화됐다고 한다. 모스크 건 립, 이슬람 문화센터 설립, 이슬람 대학 건립, 이슬람 관련 서적과 자료 출 판이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한국 내에 들어온 무슬림들에게 어떻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복음을 전 해야 할 지 지혜롭게 생각해야 할 때이다. 무슬림들이 모두 과격한 테러리스트는 아니며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적대감을 갖거나 두려워 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 곁으로 다가온 이웃들이다. 성도들을 보호하고 동력화하기 위하여 이슬람과 코란을 바르고 구체적으로 이해하도록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여러 신학교 내에 이슬람 관련학과를 신설하여 전문가를 양성할 필요도 점증하고 있다. 이슬람 전문가 양성 필요 참고로 현재 세계인구 66억 명 중 이슬람은 14억 명(21%)으로 세계인구 5명 중 1명은 무슬림인 셈이다. 개신교 인구는 4억 명이다. 이슬람은 높은 출산 율과 다양한 세계화 전략으로 2025년에는 30%에 달할 전망이다. 세계인구 3 명 중 1명은 무슬림이 되는 것이다.
519 no image |선교단상(1)| 선교보안:선교사 보호를 위해 주의할 필요_이기종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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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98 2009-10-07
선교보안 : 선교사 보호를 위해 주의할 필요 이기종 총무·합신세계선교회 “위험지역 선교사의 실명을 인터넷, 주보에 사용치 말아야” 이기종 총무·합신세계선교회 이슬람권, 불교권, 힌두권 그리고 사회주의권 국가에서 사역하는 선교사의 신분 보호를 위해 주의할 필요가 있다. 선교사 신분 노출 주의해야 2009년 8월 현재 합신세계선교회(회장 한광수 목사이하PMS) 소속 선교사 중 상당수의 선교사가 사역하는 곳이 보안지역과 위험지역에 위치해 있으며, 앞 으로도 PMS는 복음의 불모지인 전방개척지역에 우선적으로 선교사를 배치할 계획으로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선교사의 신분 노출은 선교사의 생명 위협, 추방, 선교사역 의 제약 등으로 이어질 뿐만 아니라 선교계와 기독교계에도 큰 영향을 미치 고 있다. 2년 전에 있었던 아프간 사태와 최근 예멘사태 등 인질 피랍사건 때, 선교사의 신분이 언론에 보도되어 사태를 자극하 며 악화시켰던 일이 있 다. 해외에서 인질, 피랍, 테러와 관련된 일이 발생했을 때 일부 언론사나 반기 독교인들은 인터넷 등을 통하여 사건 당사자와 연관된 교회나 선교단체의 정 보를 1차적으로 수집한다. 그리고 선교지의 사건, 사고 당사자가 기독교와 관련된 인물이라고 확인되면 그들은 문제를 확대하여 개인과 교회 혹은 선 교 단체를 어려움에 빠뜨리거나 기독교에 부정적인 영향을 확산시키려고 한다. 일반적으로 선교사 신분의 노출은 소포, 편지, 종교관련 책, 테이프, 비디 오 와 같은 것과 전화, 이메일, 인터넷 등 통신 수단을 통해 이루어 진다. 인 터 넷의 검색 사이트에서 선교사의 이름으로 검색하면 선교사에 관한 정보가 올 라 온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렇듯 교회나 개인이 선교사의 실명을 교회 홈페이지나 카페와 같은 인터넷상에 올리면서 선교사의 신분이 손쉽게 드러 나는 문제점에 대해 유의해야 한다. 우선 1차적으로 한국 내에서는 위험지역 선교사의 실명보다 가명(사역명)을 사용해야 한다. 이미 인터넷이나 게시물에 본명으로 기재된 것은 조속히 가 명으로 변경해야 한다. 한편, 선교지 내에서는 본명을 사용하는 경우가 대 부 분이다. 각 교회 홈페이지나 개인이 운영하는 카페 등에서 몇 가지만 조심 한 다면 예상치 않은 피해로부터 선교사를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선교사가 위치하고 있는 국가나 지역명은 영문 이니셜(예컨데, X국, Y국)로 표기하고 메일이나 편지 그리고 전화 등을 사용할 때도 선교사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말고 선생님, 부장님 등과 같이 표기해야 하며 내용에 있 어 서도 기독교적인 용어는 삼가야 한다. 또한 보안지역과 위험지역으로는 개인이나 교회가 직접 전화나 편지, 이메 일 등을 발송하지 말고 선교단체의 자문과 확인을 거친 후 발송하는 것이 안 전하다. 설교 테이프, 종교서적의 발송도 유의해야 한다. 한 예로 금년 U국에서는 선교사의 요청이 없었는데도 선교사와 친분이 있는 사람이 좋은 의도로 한국에서 보낸 우편물이 해당 정부의 검열에서 적발돼 선교사가 수 차례 끌려가 조사를 받고 벌금을 내게 되었고 그 선교사는 요 주 의 인물로 감시 대상이 된 사례가 있다. 신분노출로 인한 불이익 발생해 우리교단 내의 모든 교회의 홈페이 지, 주보, 게시판 그리고 개인의 카페, 블 로그 등을 다시 한번 점검해보고 위험지역에서 사역하는 선교사의 실명이 사 용되지는 않았는지, 이메일 주소나 우편물에서도 이름이나 용어 사용이 잘 못되지는 않았는지 점검해야 할 때이다.
518 no image |채석포에서 온 편지|고향으로 가는 길_김영자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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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68 2009-10-07
채석포에서 온 편지 고향으로 가는 길 김영자 사모_채석포교회 “영원한 고향 바라보며 끝까지 최선 다하는 삶 살아가길” 얼마 전 노회에서 친목 체육대회가 온양의 한 체육관에서 열려서 그곳에 참 석하기 위해 태안 지역의 목사님과 사모님들이 모여서 같이 갔습니다. 황금빛 벼이삭 출렁이는 가을 길가에는 코스모스가 피어있고 시야에 펼쳐지는 모습은 여러 모양의 가을 빛 깔로 행사장에 가기 전에 우리들의 마음은 초등학교 운동회처럼 설레었습니 다. 넓은 들판에 익어 가는 황금빛 벼이삭을 보는 것만으로도 풍요로운 마음 이었습니다. 초등학교 운동회처럼 만국기가 휘날리지는 않았지만 반가운 얼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뻐했으며 여러 가지 경기를 하면서 자기편을 응원하며 큰 소리 로 웃으면서 마냥 즐거워했습니다. 경기에 임하는 선수는 선수들대로 열심이 었고 응원하는 사람들은 응원을 하면서 간간이 그동안의 소식을 나누며 정 을 나누기도 하면서 즐거운 하루를 보냈습니다. 여름이 끝날 즈음부터 심신이 많이 아프고 지쳐있어 무기력한 날들을 보내 고 있었는데 교역자 가족들과의 만남을 통해 새 힘을 얻었습니다. 고열로 인 한 고통 속에서 육체의 아픔도 있었지만 내 자신을 반추해 보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내 속에 있는 또 다른 나의 모습을 볼 수 있었음으로 다시 나의 작은 모습에 실망하면서 간구하기도 했습니다. 로뎀나무 아래 앉아 죽기를 구한 엘리야처럼 마음이 약해질 때도 있었고 바 울 사도가 괴로워했던 것처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를 묵상하며 깊이 생각했습니다. 여러 가지로 아파하는 나를 보면서 남편은 자기는 무슨 일이든 즐거운 마음 으로 한다고 했습니다. 내가 생각할 때, 힘들고 때로는 무시당한다고 생각되 는 일인데도 본인은 그 일이 즐거우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많은 것을 생각하면서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나 의 모습은 불평이 많고 참을성이 없으며 때로는 상대방의 약점까지 들추면 서 그들을 정죄까지 할 때도 있었는데 나와는 다른 모습을 보았습니다. 20여 일간 누워 있었는데 자리를 털고 일어났습니다. 짧은 추석명절이지만 부모님이 계시는 곳에 오겠다는 두 아들의 가족을 맞이하기 위해서였습니 다. 내 마음 한 구석에는 모든 것이 귀찮은데 연휴도 짧으니까 이곳에 내려 오지 않아도 섭섭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누워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동안 치우지 않았던 방안 구석구석을 정리하면서 아이들을 생각했습니다. 장성해서 한 가정을 이룬 자식이지만 나에게는 어릴 적 그 모습일 수밖에 없 었습니다. 작은 아들의 결혼으로 처음으로 시댁에서 명절을 보내는 며느리 가 있으니 더 신경이 쓰이고 예민해집니다. 온 동네가 바빠지고 있는 듯했습니다. 고속도로마다 교통 체증으로 많은 시 간이 소요된 다는 뉴스 시간을 빼 놓지 않으면서도 오로지 서해안쪽으로 신 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자식하고 부모는 보이지 않은 탯줄 같은 줄로 연결되어 있어서 어쩔 수 없나 봅니다. 동네 집집마다 보이지 않았던 자동차들이 줄지어 있습니다. 자녀들이 고향집 에 모인 것 같습니다. 웃음소리도 들리고 간간이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리 지만 모든 것이 즐거움입니다. 멀고도 먼 고향 길이지만 가족들을 생각하면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들 은 즐거움 속에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준비한 선물을 서로 나누 며 사랑을 나누기도 하면서 어릴 때 먹었던 어머니의 손맛을 맛보며 모두가 즐거워합니다. 사랑의 색깔은 다르지만 많은 것들을 희생하면서 그것을 희생 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서로가 나누는 것이 사랑일 것입니다. 부모님이 계신 고향집을 마음에 그리며 힘들고 어려운 귀향길에 나선 이들 의 마음에 그리움과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서 고향 가는 힘든 길을 이겨낼 수 있듯이 우리의 마음에도 주님을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이 있으면 힘든 나 그네 길을 즐거움으로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고향에서는 어릴 적 같이 놀던 친구들도 만날 수 있었고, 또 어릴 때부터 성 장한 모습들을 보아왔던 어르신들에게 인사를 나누면서 사랑을 나누기도 합 니다. 이렇게 고향은 항상 어머니의 품 같다고 표현들을 합니다. 고향을 찾 는 사람들은 고향에서 주는 사랑과 배려를 통해서 나약해지고 무기력한 생활 에 새 힘을 충전시켜 또 내일을 향해 갈 것이고 또 고향을 찾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힘 들고 지친 답답한 영혼들도 그 마음속에 주님이 활화산이 되 어 영원한 고향으로 가는 길까지 즐거운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는 삶이기를 노력할 것입니다. 나그네 길도 즐겁게 가고 싶어 모든 일에 항상 기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남편의 말대로 즐거 움 속에 내게 주어진 오늘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싶은 것이 나의 바램입니다.
517 no image |하늘이슬로 쓴 편지| 뒤바뀐 자리_ 이영란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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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69 2009-09-23
뒤바뀐 자리 이영란 사모_좋은소식교회 “이 가을과 함께 주님의 마음으로 속속들이 채워주시길” 여름이 떠나고 가을이 들어오는 때에 내 안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강아 지 한 마리 때문이었다. 폭염의 막바지 교회수련회를 앞둔 중요한 때에 한바 탕 소동이 있었고 모든 것이 엉망이 될 뻔했는데 오히려 자리가 잘 정돈되 는 계기가 되었다. 예기치 못했던 큰 수확이다. 한바탕 소통 일으킨 강아지 사건 수요일 예배 전에 한 성도가 강아지를 안고 들어왔다. 반갑게 맞으면서도 내 심 걱정이 되었다. 키우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그녀의 마음이 심상치 않았 기 때문이었다. 어느 새 교회당에 나와 돌아다니는 강아지를 보다가 깜짝 놀 랐다. 배설물 때문이었다. 나보다 더 화들짝 놀란 그녀가 얼른 치웠다. 갑자 기 머리가 혼돈스러워졌고 강한 거부감이 들었다. 직장에 다녀야 하고 교회에서 이틀을 자면서 새벽기도를 하는데 생각 없이 받아온 것 같았다. 어떻게 키우겠냐고 빨리 주라고 했다. 그녀의 형편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녀를 위한 최선의 해결이라 생각했다. 강요 아닌 강요를 했 다. 그러나 강아지는 계속 교회에 왔고 그녀의 직장에도 갔다. 그 때만 해 도 그 애정이 얼마나 큰 것인지 몰랐다. 한번은 예배 중에 다른 성도에게 강아지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목사에 게 꾸중을 듣게 되었다. 결국 압박에(?) 못 이겨서 강아지를 주고는 다시 찾 아오는 것을 번복하다가 모욕을 당하게 되었다. 원래대로 모든 것은 돌아갔 지만 해결은 커녕 상실감과 수치가 원망으로 증폭되고 있었다. 새벽예배 때 하나님께서는 빌립보서를 통해 자기를 비워 종이 되신 주님을 본받으라는 말씀을 계속 하셨지만 귀에 스쳐지나갔다. 그런데 주일 오후 제 자훈련 시간에 내 생각에 전환이 일어났다. 공부 중에 갑자기 귀가 열렸고 마치 나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리스도인들의 교제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진정한 교제는 상호의존과 공감과 자비를 반드시 경험하게 되며 그것은 충고를 하거나 빠르 고 표면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문제는 우리가 문제를 급 하게 해결하려고 것이며 공감 이 메마르는 이유는 우리가 자신의 문제들에 사 로잡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아, 그렇다면 그녀가 아닌 내가 문제였 단 말인가!” 그런데 바로 이어 그룹토의 시간에 그녀가 상한 감정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해받지 못한 마음을 토로하며 간섭받는 작은 교회의 피곤함까지 피력하고 있었다. 우리교회의 가족 됨을 늘 감사하며 충성스럽게 섬기는 성도였기에 숙연해졌다. 그 순간 이 모든 상황이 자비와 공감이 없었던 나 때문에 일어 났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다음 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갔다. 강아지 사랑 운운하며 깊 이 이해하지 못하고 상처를 준 나의 모습을 보게 하셨다. 오래전 남편과 사 별하고 일 때문에 자식과도 떨어져 지내는 중에 강한 애정을 느낄 수밖에 없 었다. 그것도 모르고 키울 형편도 아니면서 데리고 왔다며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것은 치명적이었다. 아무리 합리화를 하려 해도 나의 잘못을 피할 수 없었다. 주의 일을 한다면 서 책임과 분주함 속에서 정작 주님은 내안에서 멀어졌고 내가 나의 주인이 되어 있었다. 성도를 섬겨야 할 내가 주인의식에 젖어있다는 것과 그녀를 교 회의 일군으로서 더 비중을 두었다는 것을 정말 몰랐다. 우리를 섬기기 위해 종으로 오신 주님이 계실 자리를 점점 내가 차지하고 있 었으니 진심으로 성도를 섬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뒤바뀐 나의 자리 를 보게 하시니 마음을 찢는 탄식이 나왔다. 다음 날, 나는 그녀에게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고백했다. 성령께서 우리들의 마음을 녹여주셨고 그녀 또한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며 이전보다 더 온전 케 우리의 관계를 회복시키셨다. 나는 양 인형을 슬그머니 그녀에게 내밀었 다. 강제로 빼앗았다고 생각한 강아지 대신이 될까 싶어서였다. 이틀 뒤 우리 모두는 가평 ‘시간이 멈추는 마을’이라는 곳으로 날개를 단 듯이 떠날 수 있었다. 힘들었던 시간을 뒤로하고 행복해 하는 그녀의 모습 을 보니 감사가 넘쳤다. 소감을 나누는 중에 요한일서 말씀 중 ‘세상을 사랑치 말라’는 의미를 깊 이 깨달았다고 하니 ‘혹여나 자기가 강아지를 너무 사랑했다는 것을 깨달 은 것이 아닐까’ 하며 속으로 웃었다. 내년에는 2박3일을 하자고 덧붙이는 말에 우리는 한바탕 소동만큼이나 크게, 아니 그것을 완전히 불식시키고도 남을 만큼 한바탕 속 시원히 웃었다. 수련회를 가지 않겠다고 하여 찬물을 끼얹던 그녀가 아니던가! 그 소동이 잠잠해지기까지 힘들기도 했지만 오히려 내가 있어야 할 내 자리 를 되찾게 되어 정말 기쁘다. 종이 주인의 자리에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던 여름! 여름이 자리를 내어주듯 나도 나를 비우고 주님께 자리를 내어드린 다. 하루하루 들어오는 가을과 함께 주님의 마음으로 나를 속속들이 채워주 시니 이보다 더 큰 수확이 어디 있을까! 내 자신의 마음 자리 비우는 계기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 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빌 2:5-7).
516 no image |노트북을 열며| 말하는 지혜_변세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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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5 2009-09-23
말하는 지혜 “주님의 겸손과 온윤 닮아가기를” 변세권 목사·온유한교회 새벽문을 열고 집을 나서면 가을의 성정과 속도가 빨라진다. 그리고 새벽 영 혼이 되면 하나님과의 깊고도 친밀한 사귐이 시작된다. 집 앞에까지 다가 온 가을 코 끝에 와닿는 가을향기가 더없이 좋기만 한 이 계절을 붙잡아 놓을수만 있 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겨운 오누이 같은 코스모스, 높푸른 하늘, 어머니품 같은 누런 들판, 가을이 중년의 문턱을 넘어서고 있다. 앤드류 매튜스는 그의 저서 ‘관계의 달인’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인격적으로 성숙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싫은 소리를 할 때 쉽게 화내지 않 는 사람이다. 사람들은 때로 나의 인내심를 시험이라도 하는 듯이 듣기 싫 은 소리를 골라서 할 때가 많다. “당신이 돈 때문에 그 사람하고 결혼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있어?” “그렇게 많이 먹으니까 살이 찌지... 돈도 한 푼 못 버는 주제에...” “직장생활을 그렇게 하는데 안 잘리는 걸 보면 참 신기해... 그것도 재주 야...” 사람들은 때로 질투심 때문에 빈정거리기도 하고, 싫은 소리를 하는 것이 본 능인 사람들도 있다. 동기가 무엇이든지 이런 말을 대처하는데 가장 지혜로 운 좋은 방법은 아무 말 없이 한번 싱긋 웃어주거나 그 사람 말이 맞다고 맞 장구쳐주는 것이다. 이웃사람이 나의 새 차를 보고 “일도 별로 안하는 것 같은데 월급은 많이 받는 것 같네요”라고 말한다면 그냥 빙그레 웃어준 후 이렇게 말하는게 좋 다. “진짜 좋은 회사죠?” 내가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시간외 근무 를 얼마나 많이 하는지 그에게 설명할 필요는 없다. 자신을 정당화하려고 애 쓸 필요도 없다. 그냥 빙긋이 웃어주고 잊어버리는 것이 중요하다. 남들이 싫은 소리를 할 때 같이 싫은 소리를 해봐야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 다. 남들에게 싫은 소리가 듣기 싫어서 사람을 피해다니기도 하는데 불필요 한 자기 방어일 뿐이다. 억울하고 분하지만 그저 싱긋 웃으며 그 사람의 말 을 맞받아주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태도이다. 사람들을 가르치거나 대중연설을 하는 사람들, 앞에서 조직을 이끌어가는 사 람들은 청중 가운데 인신공격을 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날 수 밖에 없다. 이 런 사람들을 다루는 최선의 방법도 사람 좋은 미소를 띠며 그들의 말에 맞장 구치는 것이다. 만약 그런 사람들 앞에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하면 사람들의 신뢰를 더 이상 유지할 수가 없게 된다. 무디가 설교할 때 맨 앞에 앉아서 문법과 맞춤법이 몇 번이나 틀렸는지를 기 록했던 한 사람이 있었다. “오늘은 89번이나..”라고 말하는 그에게 무디 는 빙긋이 웃으며 “혀를 내밀어보세요” “왜요?” 의아해하는 그에게 이렇 게 말했다. “저는 제 서툰 혀로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는데 당신은 정확한 그 혀를 어디에 사용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세요.” 속 좁은 사람들이 싫은 소리를 하고, 속 좁은 사람들이 그런 말에 화를 낸다 고 했다. 우리는 상대방의 싫은 소리에 조용히 미소지으며 맞장구를 칠 수 있는 너그러운 사람이 되든지, 아니면 듣고 싶은 말만 골라 듣는 능력을 얻 어서 듣기 싫은 말들을 무시하고 사는 법을 익혀야 한다. 우리는 모든 일에 주님을 닮아가는 겸손과 온유의 인격, 마음이 넓은 사람들 이 되어야 한다. “마음의 정결을 사모하는 자의 입술에는 덕이 있으므로 임 금이 그의 친구가 되느니라”(He who loves purity of heart [And] whose speech is gracious, the king is his friend. 잠 22:11). 마음 넓은 사람들 되기를 주님의 미소가 느껴지는 따뜻한 말이 사람들의 마음에 온기를 주며 오래도 록 그 마음에 기억될 것이다.
515 no image |살구나무그늘아래서| 한 마디 말에 심어두신 그 크고 비밀한 일_추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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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63 2009-09-23
한 마디 말에 심어두신 그 크고 비밀한 일 추둘란 집사_수필가, 홍동밀알교회 “15년전 무심코 한 말이 기억 속에서 되살아나” 원고를 고치느라 국어사전을 한참 뒤적이다가 새삼 그 기억이 떠올라 싱긋 이 웃었습니다. 국어사전과 씨름하며 시간 보내 15년 전입니다. 대학원 건물 입구에 커다란 산수유나무가 있었습니다. 그 아 래에서 가까이 지내던 선배와 동기 두서너 명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 습니다. “내가 번역을 하게 되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읽을 때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그러면서도 원작자의 뉘앙스는 그대로 살리는 그런 번역을 할 거에 요.” 평소에 번역가를 꿈꾸었다거나, 번역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거나, 그럴 만 한 공부를 하고 있어서 한 말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아마도 교재로 배우던 번역본 소설 이론서가 너무 어려워서 그런 말을 한 듯합니다. 지나가는 이야 기로 그야말로 무심결에 한 말이었습니다. 그런 데 내 말에 정색하며 대답하 는 선배 때문에 나는 머쓱해져버리고 말았습니다. “그거야 말로 최고의 번역이지. 그게 얼마나 어려운 건데 그렇게 쉽게 얘기 하냐? 우리말에 도통하듯이 영어와 그 문화에도 정통해야 그만한 수준이 될 수 있는 거야.” 선배의 말에는 약간의 비아냥거림이 묻어 있었습니다. 학부에서 국문학이나 영문학과는 전혀 다른 분야를 공부한 사람이 어쩌다 운 좋게 대학원 국문과 에 입학하게 되었다고 해서, 영어 해석을 좀 한다고 해서 언감생심 번역을 꿈꾸느냐는 어투였습니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대꾸할 말이 딱히 떠오르지 않 았습니다. 선배의 말이 다 맞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잊어버릴 만했습니다. 번역과는 전혀 관련 없는 분야에서 직장을 다니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15년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5년 전 참 희한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수필집 한 권 을 내고 나니 여기저기서 생활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 데 하루는 어느 출판사에서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제법 손꼽히 는 출판사였는데 어린이책을 기획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파브르가 곤충에 대한 책을 여러 권 썼지만 말년에 식물에 대한 책도 썼습 니다. 다른 식물학 책과는 달리 아이들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듯이 책을 썼지요. 그 취지를 살려 우리 어린이들에게 이 책을 꼭 읽히고 싶습니다.” 그러면서 영어로 번역되어 있는 책 한 권을 내밀었습니다. 나는 되묻지 않 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왜 저를 찾아오셨나요? 저는 번역하는 사람도 아니고 식물학 공부 를 제대로 한 사람도 아닌데...” 여러 번 사양하였으나 그이는 어렵지 않은 일이라며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습 니다. 전문 지식을 전달하기보다는 아이들이 읽기 쉽게 번역하면 된다고 매 달리다시피 말하였습니다. 원래 거절을 잘 못하는 나는 그만 얼떨결에 승낙 하고 말았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산수유나무 아래에서 내가 했던 말 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번역일이 시작되었습니다. 막상 일을 시작해보니 후회막급이었습니 다. 내용은 대학에서나 배울만한 식물형태학이었고, 분량도 방대하였습니 다. 더욱이 둘째를 임신하고 있었기에 집중하는 일이 몹시도 어려웠습니다. 몇 달 뒤에 출산을 하고 산후조리를 하고 모유수유를 하고, 정신없이 시간 은 흐르고, 제대로 번역을 했는지 퇴고할 여유도 없이 겨우 초고를 넘겼습니 다. 너무 지쳐서 더 이상은 손댈 수 없었습니다. 출판사에서는 원고를 받으 며 나름대로 고민을 해보겠노라고 한 다음 감감무소식이었습니다. 그리고 5년이 흘렀습니다. 그때 세상 밖으로 나오지도 않았던 둘째가 훌쩍 자라나 어린이집에 다니고 한글을 깨우쳐 책을 읽고 있습니다. 그사이 나는 그 번역 일에 대해서 완전히 포기했습니다. 계약금을 돌려달라고 하면 돌려 줄 생각까지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올해 성경공부 과정 중에 ‘홀로 있기’ 훈련 시간이 있었습니다. 두 시간 동안 볼거리, 들을거리, 읽을거리를 완전히 없애고 오로지 하나님 의 음성만 들어보는 훈련이었습니다. 나는 그 시간에 나를 향한 하나님의 1 년 계획과 10년 계획을 알게 되었습니다. 참 놀랍게도 그 안에 번역일이 포 함되어 있었습니다. 새로 용기가 솟아 출판사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런데 또 놀라운 일! 담당 자는 하루 이틀 뒤에 나에게 전화를 할 참이었다는 것입니다. 책에 나오는 식물에 대해 직접 자료를 찾고 채취하여 세밀화 기법으로 삽화를 그리는 데 에 그 5년을 썼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방대한 분량 가운데 어린이들에 게 필요한 부분만 추려 놓았으니 그것을 다시 매끄럽게 손보아 달라는 것이 었습니다. 그리하여 올 여름내 국어사전과 원고를 끼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한참 문장 을 고치다가 ‘아하!’ 하며 무릎을 쳤던 것입니다. 어느 순간 기억의 창고 한쪽이 열리며 산수유나무 아래에서 내가 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나는 무심코 내뱉었을 뿐인데 하나님은 들으셨고 잊지 않고 이루어주셨습니 다. 아니, 아니, 어쩌면 그 반대였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이미 계획하셨 고, 그 ‘크고 비밀한 일’을 15년 전 그 순간에 내 입술에 미리 주셨는데 도 나는 미련하여 알아차리지도 못했던 것입니다. 입술로 내뱉는 한 마디가 이리도 소중한 줄, 나는 새삼스레 알았습니다. 익히 아는 낱말이라도 국어사전을 다시 뒤집니다. 아이들이 더 쉽게 읽을 수 있는 낱말을 찾고 찾으며 원고를 고칩니다. ‘아이들이 읽을 때 전혀 불 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그러면서도 원작자 파브르의 뉘앙스는 그대로 살리 는 그런 번역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n 어느 순간 기억의 창고 문 열려 하나님이 직접 내 입술 속에 심어두신 그 소망을 하나님과 함께 이루어 나가 는 나날이 행복하기만 합니다.
514 no image |채석포에서 온 편지| 내 생명의 삶 속에서 피어난 꽃_김영자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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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51 2009-08-18
내 생명의 삶 속에서 피어난 꽃 김영자 사모, 채석포교회 “자식에 대한 부모 마음은 항상 미안함과 아린 마음뿐” ‘모라꼿’이라는 이름을 가진 태풍으로 며칠간 심한 폭우와 비바람으로 많 은 상흔을 남겼지만 오늘의 아침 햇살은 눈이 부신 또 다른 모습의 아침입니 다. 태풍 후에 찬란한 아침 맞이해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여름에 휴가를 얻어 잃어 버 렸던 꿈을 만나기 위해서, 그리고 자녀들에게 꿈과 추억을 실어 주기위해 여 행을 준비하고 떠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채석포 바닷가에서는 예년과 달리 15일 빠른 금어기를 맞이했습니다. 금어기 에는 어장이 쉬기 때문에 금전적인 어려움이 따르지만 한편으로는 어민들에 게는 휴가라고 생각할 수 있는 황금같은 시간입니다. 어민들은 그동안 바다 일을 하면서 몸이 아팠지만 병원 갈 시간을 가질 수 없었는데 아픈 곳을 진단 받고 치료를 받기도 하고, 가을 바다에 나가기 위 해 그물 손질을 하기도 합니다. 어떤 분들에게는 특별한 목표를 세우고 노력 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여름동안 운전 면허증을 취득한 50대의 젊은(?) 여자 집사님에게 격려를 했 더니 운전면허를 취득한 수줍은 미소 뒤에 숨겨진 자랑스러운 모습을 엿볼 수도 있었습니다. 교회 뒤에 소나무 숲이 있는 산과, 앞으로 바닷가가 내다보이는 이곳에 여름 마다 많은 교회에서 수련회를 갖습니다. 우리나라의 문화와 생활수준이 향상 되어지는 모습들을 이곳에서도 느낄 수가 있습니다. 10여 년 전만 하여도 교인들이 모여서 예배드리고 며칠간 같이 생활할 수 있 는 장소만으로도 만족 했지만 이제는 에어컨에 온수가 기본 사양입니다. 만 족한 시설은 아니지만 지친 영혼들이 며칠간의 공동생활로 인하여 재충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며 남편과 나는 이곳에서 한 여름을 보내고 있습 니다. 금년 여름은 남편과 나에게 슬픈 추억이 될만한 일이 있었습니다. 우리 집에 는 여러 마리의 애완견이 있습니다. 동물을 몹시 사랑하는 사람으로 외관상 보여지는 남편의 인상 때문에 이들 모두가 다른 집에서 우리 집으로 거처를 옮겨온 것입니다. 서 울 아파트에서 주인과 같이 거주할 수가 없어서 우리 집에 맡겨진 ‘똘 이’가 있었습니다. 퍼그종이라 굳세게 보이는 모습과 이름과는 달리 암컷으 로 착하고 온순한 녀석이었습니다. 이곳으로 보내 질 때 동물병원 진료 카드 와 ‘똘이’가 사용하였던 치약과 칫솔, 그리고 샴프 등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인이 바뀐 이곳에서는 아파트 생활이 아니라 마당 한 쪽에 집을 만 들어 주고 그곳에서 자유를 만끽하며 자연과 더불어 기거하도록 했습니다. 오는 날부터 우리들이 외출해서 돌아오면 수문장이 되어 현관을 지키고 검 고 큰 눈은 사람들에게 호기심과 측은지심을 일으키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녀석은 누구보다 아이들이 모이는 주일날을 기다렸습니다. 주일학교 아이들에게 간식을 주고 난 부스러기라도 맛보고 싶어서였습니다. 우리들이 외출할 때면 차에 오르기까지 못 본체 하고 무관심속에 있는 것 같았으나 집 으로 돌아오는 우리를 현관에서 길게 누워서 기다리고 있던 ‘똘이’였습니 다. 그 ‘똘이’가 며칠 전부터 이상했습니다. 먹을 것이라면 콧소리까지 내고 숨을 헐떡거리며 좋아했는데 먹을 것을 보고도 시큰둥했습니다. 뜨겁게 햇볕 이 내리 쪼이는 한낮에 풀밭에 누워서 우리가 있는 사택을 바라보고 있었습 니다. 그날 저녁에 먹이를 주러 똘이 집에 다녀 온 남편이 “편히 가셨네” 하면서 울적해했습니다. 처음에 그 말이 무슨 말 인줄 몰랐었는데 똘이가 죽은 것이었습니다. 우리 와 같이 보낸 시간이 10년이었습니다. 우리가 이곳 채석포교회에 부임할 때 함께 왔던 녀석이 하필이면 남편의 생일날 저녁 시간에 고개를 묻고 얌전히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교회 뒷산 소나무 숲에 ‘똘이’를 묻고 온 남편과 나는 한 동안 말을 잃었 습니다. 친한 이웃을 잃은 것 같은 허전함이 몰려왔습니다. 말 못하는 짐승 이지만 우리와 정을 주고받은 시간들이 10년 세월이었으니 깊은 정이 들었 고 녀석의 빈 자리가 눈에 선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똘이’가 우리 곁에 있어서 즐거웠던 일들을 기억하며 허전 하고 슬픈 생각들은 엷어지게 되겠지요.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사랑하고 만나 고 헤어지면서 그렇게 추억은 하나하나 쌓여가나 봅니다. 잠시 동안 ‘똘이’로 인해 우울했던 시간들이 우리 집에 새 가족이 생겨서 쉽게 벗어 날 수가 있었습니다. 둘째 아들이 결혼을 해서 며느리를 가족의 일원으로 합류시켰습니다. 아들만 있는 나에게 둘째는 딸과 같은 자상함으 로 위로가 되기도 했습니다. 늦게 신학을 공부한 아버지 때문에 부모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에 많 은 것을 놓아 버리게 한 부모 마음은 항상 미안함과 아린마음뿐이었습니다. 자녀를 가진 부모들은 누구나 자녀를 위한 기도가 있을 것입니다. 나의 기도 제목은 이러했습니다. 큰 아들을 위해서는 “다윗과 같이 하나님 말씀에 합당한 자”이기를 원했고, 둘째 아들은 “요셉과 같이 꿈을 가지고 다니엘과 같이 나라와 민족을 위한 아이”가 되기를 원하면서 기도 했습니 다.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다고 했습니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은 생 수 같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마르지 않고 물이 펑펑 솟아나는 그러한 샘물 일 것입니다. 둘째 며느리가 새 가족으로 아버지 집에 와서 같이 예배를 드리는 날, 감사 찬송으로 즐거워했습니다. 목회를 하는 부모님 때문에 많은 것들을 참으면 서 자기들 나름대로 고통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목회하는 부모님들 때문에 행복하다고 말하는 큰 아들에게 고마움을 느끼면서 많이 성 장했구나 하는 생 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주위를 두루 살펴보니 걱정 했던 목회자 자녀들도 다 잘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장마의 비구름이 걷히고 뿌연 안개 속으로 살짝 얼굴을 내미는 햇살 속으로 고추잠자리가 맴돌고 있고 오케스트라의 연주처럼 수많은 풀벌레 소리와 매 미의 합창이 마지막 여름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꽃 피워가길 나뭇가지 하나는 금방 부러지지만 나뭇가지를 여러 개 묶어 놓으면 누구라 도 함부로 부러뜨릴 수 없듯이 내 생명의 삶 속에서도 가족이라는 이름의 끈 으로 꽃을 피워가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513 no image |하늘이슬로쓴편지| 왕이 남기신 지상명령_이영란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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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71 2009-07-22
하늘이슬로 쓴 편지 왕이 남기신 지상명령 이영란 사모_좋은소식교회 “아이들과 학부모들에게 겁도 없이 전도해” 성경학교를 위한 교사모임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예배당 입구가 환해졌다. 화려한 진홍색 원피스를 입은 그녀가 들어왔다. 꽤 체구가 있는 그녀를 보 고 우리는 놀랐지만 기쁘게 환호했다. 화려한 옷차림에 주변이 달라보여 나는 “와! 그 색은 주로 영부인들이 자주 입는 색인데...” 라고 말했다. 아마도 좀 어색해서 무의식적으로 말했나 보다. 전도하려고 꺼내 입었다고 했다는 말에 마음이 찡해왔다. 그 때 마침 교사들이 성경학교 홍보를 위한 명함만한 전단지를 어떻게 전할 까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녀가 전단지를 이미 돌리고 있었다. 우 리의 대화 중에 그녀는 그 전단지를 확대 컬러복사해서 동네 곳곳에 붙이자 고 했다. 포스터를 어떻게 만들지 내심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 말을 들으니 갑자기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작년 전도 집회 때도 새신자임에도 불구하고 초청장을 열심히 돌렸는데 교회 를 쳐다보게 하려고 교회 입구에서 전했다고 했다. 그녀는 즉시로 A4 크기 의 멋진 포스터를 복사 해왔다. 그 날 새벽에 동네약국에 가서 포스터를 붙 이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세상 끝날 까지 함께 하겠다고 하셨는데 언 제 이 지역에서 제자를 삼겠습니까. 정말 이루어지겠습니까...’ 막막하기 만 했던 개척 초기시절 교회당에서 속 깊이 주님께 드렸던 탄식이 그녀를 볼 때마다 생각난다. 지상명령이 어떻게 성취될지 목말랐던 우리를 주님께 서 시원케 해주셨다. 우리보다 더 전도를 갈망하는 한 영혼을 주셨기 때문이 다. 교회에 와서 예수님을 믿고 성경을 통해 지상명령을 알게 되었다. 이런 절대 적인 명령이 있다는 것에 크게 놀라며 왕의 분부를 받잡는 태도로 받아들였 다. 지상명령을 어떻게 이루어드릴지 목마르게 사모하게 되었으니 놀랍기만 했다. 올해 세례 받을 때 우리 모두 알게 된 사실이 있다. 그녀가 처음 교회 발걸 음 했을 때는 어린 아들의 병을 고치고 싶었다는 것이었다. 동네 분들의 인 도로 교회에 왔다. 마음으로 하나님의 존재는 믿었지만 교회 다니는 사람을 경멸하고 교회를 욕했었는데 성경말씀을 공부하면서 우리 죄 때문에 하나님 께서 예수님을 보내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사랑에 크게 감복되었다. 만일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면 아들이 병이 낫지 않았기에 원망하면서 분 명히 발걸음을 끊었을 것이라고 고백했다. 지금은 아들의 약함 때문에 자신 이 구원받았다고 감사하게 까지 되었다. 우리 부부가 아들의 결혼 때문에 두 주간 출타해야만 했었는데 나는 그녀에 게 이 지역의 전도를 위임(?)했다. 그녀는 남아있는 전도지에 친필로 교회 와 예수님을 소개하는 글을 썼다. “나는 초신자입니다. 음식이 맛있으면 그 식당을 소개하듯이 저는 이 교회를 통해 큰 기쁨과 인생의 목적을 얻었습 니다. 부디 교회에 꼭 관심을 가져보세요”라는 식의 전도지를 팔이 아플 정 도로 썼고 심지어는 딸을 시켜서 쓰게 했다. 전도지를 다 사용하고 나서는 자기가 직접 전도지를 사다가 전했다. 자기를 위해 죽고 새 삶을 주신 사랑하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그 열심에 우리 뿐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힘을 얻고 있다. 월 요일에 우리는 학교 앞에 갔다. 많은 아이들과 학부모들에게 그녀는 겁도 없이 전한다. 당당하다. 전단지 500장이 많이 없어졌다. 나는 다른 성도들 이 할 것을 몰래 숨겨 놓았다. 동네에 오래 살았기 때문에 아는 사람도 많았 다. 전하지 않으면 자기가 얼마나 나쁜 사람이냐고 울먹이기도 잘하는 그녀 는 성격조차도 직선적이고 행동하는 신앙이다. 중보기도라는 것을 배우자마자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데 그 기도가 짧지 만 얼마나 진실하고 신선한지 정신이 번쩍 날 때도 많다. 그 눈물과 다른 사 람의 고통을 많이 헤아릴 줄 아는 마음으로 찾아가니 더욱 감사하기만 하 다. 그녀가 교회에 막 나오기 시작한 때였다. 과거에 160cm 쯤 되는 키에 70kg 이 웃도는 몸무게였다는 말과 함께 살을 빼게 해준 생명의 은인이 있다고 했 다. 물리치료를 동네 병원에서 받으러 다니다가 치료사의 진실 된 권면에 마 음이 크게 움직여 감량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천사를 우리 교회에 서 만났다. 그녀보다 몇 달 먼저 등록한 새 신자였다. 둘이는 너무나 반가 와 했고 같이 신앙의 양육을 받으며 잘 정착하게 되었다. 최근에 같은 빌라로 이 사 오신 분을 늘 만나더니 설마 했는데 이번 주일에 교회에 데리고 왔다. 누구든지 거침없이 만나고 또 찾아가고 집으로 교회로 초대하고 편지와 전도지를 나눈다. 좀 무리했다 싶었던 진홍색의 옷을 보며 나도 모르게 영부인 운운했던 말을 생각해 보았다. ‘그래, 맞아, 그녀는 왕의 명령을 전하는 왕의 자녀가 아닌 가, 그녀 자신도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던 게야.’ 전도하는 일에 누구보다 열정보여 주님의 지상명령을 절대 순종하는 그녀를 생각하니 우리에게 사명을 주신 주 님이 너무도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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