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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교육 특강> 

교회와 가정이 힘을 합해야 다음세대가 산다

 

< 김명호 교수, 합신_기독교교육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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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부모를 자녀들의 신앙교육의 책임자요 전문가로 훈련시켜야 

 

교회와 가정이 함께 다음세대의 신앙을 세우기 위한 대책이 시급함 

 

 

   한국교회의 교회학교 교육이 위기에 처해 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굳이 정확한 통계를 들지 않더라도 분명한 것은 대부분의 교회에서 학생 수가 정체되어 있거나 감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앞으로 계속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는 것이다. 저출산으로 인해 학령인구가 감소하기 때문에 교회학교 학생 수가 줄어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치더라도, 학령인구의 감소보다 교회학교 학생 수가 더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우리는 위기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숫자적인 감소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교육의 질적인 면에서도 위기다. 통합 교단에서 어린이와 학부모 교사 1,13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통계에 의하면 어린이의 30.7%가 설교 시간이 가장 싫다고 대답했고, 25.9%는 성경공부 시간이 싫다고 답했다. 교회학교의 가장 핵심적인 시간이 설교와 성경공부인데 이 시간이 싫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세대가 바뀌고 환경이 바뀌었는데 교회교육의 정책이나 방법은 아직도 20-30년 전에 비해 별반 달라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19세기 교실에서 20세기 교사가 21세기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우스갯소리를 하겠는가? 교회교육에 투자하는 시간도 역부족이다. 일주일에 한 번 참석하는 교회교육으로 어린이들을 제대로 된 신앙인으로 키워 내기에는 한계가 있다.


   대안을 찾으려면 문제의 원인을 따져 봐야 한다. 장로회신학대의 박상진 교수와 이만식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교회학교 위기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를 물어본 결과, 부모가 54.3%, 교육담당 교역자가 37.3%, 담임목사가 36.9%를 차지했다. 이런 통계를 통해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오늘날의 교육의 위기가 무엇보다 부모가 신앙 교육에서 손을 떼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부모들이 신앙적 관점에서 자녀교육을 할 수 있도록 세워야 한다. 다시 말하면 교회교육의 위기를 극복하는 첫 출발은 가정이어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 교회교육을 한다고 하면서 다음세대를 위한 교육을 교회학교의 범주에 가두어 버렸다. 교회학교를 말하면서 사실상 가정에서의 신앙교육을 교회가 빼앗아 온 셈이다. 그 결과, 부모들이 영적 가르침에 대해 손을 놓고 말았다. 부모들이 주일에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는 한 시간 정도에 아이들을 교회학교에 맡겨 놓는 것으로 신앙교육의 책임을 다 했다고 생각한다. 일주일에 한 시간 정도, 그것도 교사들과 만나는 분반공부는 겨우 15분 정도 주어지는 현재의 교회학교의 환경 속에서 누군가가 아이들에게 영적 영향을 끼치기는 쉽지 않다.


   어린아이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히 서고 전인적인 성장을 하도록 돕기 위해서는 교회교육과 가정교육이 손을 잡아야 한다. 교회교육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은 부모다. 교회는 부모를 깨우고 훈련시켜야 한다. 그래서 가정에서 신앙교육이 이루어지도록 도와야 한다. 부모는 자녀의 신앙교육을 위해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누구에게 맡겨서 될 일이 아니라 자신이 우선순위를 두고 헌신해야 할 일이라는 패러다임을 가져야 한다.


   구약의 지상명령이라고 말하는 신명기 6:4-9 말씀은 부모가 자녀들을 교육하는 첫 번째 장소가 가정이라고 선포한다. 신약의 교회 역시 가정을 중심으로 교회활동이 이루어졌다. 이렇게 모인 교회의 사역은 늘 가족 중심이었다(2:46, 16:5, 2:19). 그러므로 교회가 교회학교에서 자녀들에게 직접 교육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부모들을 훈련시켜서 부모가 자녀들의 신앙교육의 책임자요 전문가가 되도록 세워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가정과 교회에서 일관성 있는 신앙교육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부모들이 기독교 세계관에 근거한 교육을 제대로 할 수만 있다면 교회학교가 가지고 있는 모든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오늘 위기에 처한 교회학교가 부모를 신앙교육의 달인으로 세워 가기 위한 몇 가지 대안을 찾아보자.

 

 

1) 통합 커리큘럼 

 

   교회학교에서 다루는 교육의 내용을 부모들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대표적인 시스템이 통합커리큘럼이다. 통합커리큘럼(Unified Curriculum)이란 모든 다음세대가 같은 주일에 같은 본문으로 배움의 과정에 동참할 수 있도록 구성한 커리큘럼을 말한다. 서로 다른 부서에 흩어져 단절되어 있는 오늘날의 교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본문을 하나로 통일함으로 극복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부모가 다음세대와 더불어 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근거를 얻게 되는 것이다. 물론 본문은 동일하지만 아이들 각각의 발달단계에 따라 강조점이 달라지고 적용점이 달라져야 한다. 이렇게 통합커리큘럼을 사용하게 되면 비록 부모가 아이들과 같은 공간에서 말씀을 듣고 있지 않더라도 아이들과 배운 말씀을 함께 나누고 영적 흐름을 공유할 수 있게 된다.

 

 

2) 세대 통합 예배 


   세대로교회에서는 세대 통합을 위해 온 가족이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두 가지 형식의 예배를 디자인했다. 그 하나가 온가족 예배로 온 세대가 다 함께 모여 예배 처음부터 마칠 때까지 함께 예배에 참여하는 것이다. 특별한 절기마다 일 년에 여섯 번 정도 이런 예배를 갖는다


   또 하나는 오렌지예배라고 부르는 예배다. 이 예배는 매주 이루어지는데 스스로 활동할 수 있는 유치부, 유년부, 초등부 자녀들이 함께하는 예배다. 예배 시작부터 찬양과 기도, 헌금, 그리고 특별순서까지 함께한 후에 어린이들을 강단 위로 불러 모아 어린이 담당 교역자가 말씀을 들려주고 자녀들은 각 부서로 이동한다. 그 후에 성인들이 성인을 위한 설교를 듣고 나머지 예배를 진행하는 것이다


   처음 시작할 때에는 어려움도 있었지만 자녀들과 같은 시간에 같은 설교를 듣고 가정에서 다시 그 말씀을 나눔으로 세대 간 통합뿐만 아니라 가정과 교회가 자녀의 신앙을 함께 세워 가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보고 있다.

 

 

3) 가정 통신 자료 


   사정상 통합커리큘럼을 도입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부모가 주체가 되어 교회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가정에까지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훈련 자료를 제공할 수 있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할 수 있는 활동이나 아이들이 집에서 스스로 할 수 있는 활동을 준비해서 부모들이 가정에서 아이들과 더불어 점검하고 확인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4) 세대간 연결 고리 

  

   교회가 세대간 연결 고리를 형성해줘야 한다. 우리 사회의 갈등은 이제 지역 갈등보다 세대 간의 갈등이 더 심각해지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났고 이런 상황은 교회에서도 점점 더 부각되고 있다. 세대 간의 단절이 심화되고 있는 모습은 찬양을 보면 안다. 모든 세대가 함께 모일 기회가 있어도 이제는 전 세대가 공감하며 부를 수 있는 찬양도 없어졌다. 어른들의 예배가 학생들에게는 너무나 어색하고 드리기 힘든 예배로 인식되고 있다. 아이들과 부모가 함께 부를 수 있는 찬양을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최근에 우리 교회에서 자주 부르는 나는 예배자입니다라는 찬양이 있다. 이 찬양은 2014년 파이디온 선교회 학령 전 여름성경학교 주제곡으로 불렸던 찬양곡이다. 이 찬양을 유치부부터 유초등부, 중고등부를 비롯해 성인들이 드리는 예배에 이르기까지 전 세대를 아우르는 찬양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제는 어린이들이 부모와 함께 예배드리는 자리에서도 누구나 함께 부르며 찬양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렇게 세대를 아우르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시도들이 많이 이루어지면 좋겠다.

 


5) 부모를 위한 제자 훈련 

 

   교회에서 부모들에게 제자훈련을 시킬 때 일상생활 속에서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는 부모가 되도록 훈련해야 한다. 그래서 자녀들이 아침에 일어나고 저녁에 누울 때, 차를 타고 이동할 때, 식탁에 앉아 함께 식사할 때의 모든 시간을 어떻게 신앙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어야 한다. 아이들과 부모가 함께 캠핑을 하고 운동을 하면서 이런 순간순간을 어떻게 배움의 기회로 삼고 자녀들에게 영적인 지도를 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어야 한다.


   엄마와 함께하는 큐티, 아빠와 함께 하는 침상 기도와 같이 부모가 자녀들과 함께 영적인 삶을 함께 나누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필요하다. 공휴일을 끼고 실시하는 아빠와 함께 하는 12일 캠프도 좋다.

이제 일주일에 한 시간 교회학교에 참석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교육 시스템은 더 이상 안 된다고 선포해야 한다. 부모들이 교육 부서를 담당하는 소위 전문사역자들에게 신앙교육을 모두 맡기려고 하는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그래야 교회교육이 살 수 있다. 교회와 가정이 함께 손을 맞잡고 다음세대의 신앙을 세워 나가기 위한 대책이 시급하다. 부모가 자녀들의 신앙교육의 책임자요 전문가가 되도록 세워 가는 목회로 전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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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no image |송|년|논|단| 종교인과세를 목회직에 대한 성경적 가치관을 재정립하는 계기로 삼자_이강식 장로
편집부
1111 2017-12-20
송|년|논|단 종교인과세를 목회직에 대한 성경적 가치관을 재정립하는 계기로 삼자 < 이강식 장로_오산성도교회 > 한국교회의 모든 목회자들이 탈세하고 세금정책 반대 집단인 것처럼 매도되는 현실 안타까워 종교인과세가 목회자의 거룩한 직분의 성경적인 권위를 회복하는 기회가 되어야 말씀을 선포케 하시는 목회직을 세상의 근로의 기준으로만 평가하고 폄하하는 오류를 범치 말자 필자가 속한 노회에서 지난 가을 노회에 종교인과세에 대한 세미나를 가졌다. 이를 통해 ‘과세의 부당성’이라는 주제보다는 우리가 얼마나 종교인과세의 본질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가를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헌법이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보장하면서 정치와 종교가 상호 간섭하지 않는 정교분리의 대 원칙하에 있다. 이번 시행을 앞두고 있는 종교인과세 입법시행은 정치가 종교를 구속할 수 있는 오해의 소지가 있음이 심히 우려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정부는 기독교의 우려가 오해라고 한다. 그러나 오해이기 전에 그 세법의 적용과 기준이 언제든지 그렇게 변질 될 수 있는 소지를 담고 있다는 것이 문제일 것이다. 기독교는 언제나 국가를 위하여 우리 민족의 자유와 평등 그리고 풍요로운 번영을 위하여 정부의 정책에 협조적이고 늘 기도하며 함께해 왔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작금의 상황은 온갖 왜곡과 폄하의 비난이 기독교를 향해 쏟아지고 있을 뿐 아니라 SNS를 통해 사실이 아닌 거짓을 사실로 포장하여 소문을 내는 악한 세력들도 있음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우리는 대형교회의 세습이라는 부정적 이슈가 종교인과세와 맞물려 교회를 바라보는 사회 여론의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때에 종교인과세의 본질은 사라지고 오히려 세상은 세금이라는 문제에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의 성직의 직분을 덧칠하여 왜곡하고 한국교회의 모든 목회자들이 세금을 탈루하는 집단인 것처럼 또는 국가의 세금정책에 반대하는 집단처럼 매도하는 현실을 보면서 심히 유감스럽고 안타까웠다. 세상의 왜곡된 시각과 안티 기독교단체들의 악의적 활동도 문제이지만 이번 세미나를 통해 사실은 우리 그리스도인 스스로가 종교인과세를 바라보는 시각이 성경적이지 않음에 대하여 더 마음이 아팠다. 세상은 교회를 향하여 종교인과세라는 돌 하나를 던졌을 뿐인데 교회는 이 문제에 대하여 당황하고 소란하고 성경의 가르침의 본질을 떠나 스스로 혼란스러워 하는 것을 보면서 미래의 한국교회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세미나 기간 어느 성도는 이러한 주장과 걱정에 동의 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런 의견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동의 할 수 없다는 것이 한국 교회의 미래인가, 아니면 성경적인 목회직에 대한 개념인가? 성경적 목회직에 대한 개념에 동의 못한다면 그 자체가 또 하나의 한국 교회의 미래에 대한 우려스러운 일이다. 지금 성경적으로 목회자 과세에 대해 바르게 정립하지 않는다면 한국교회는 분명 더 큰 어려움에 봉착할 것이다. 이는 어느 집단의 주장이 아니라 우리가 믿고 따르는 성경의 무오함의 진리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성도는 신앙생활에 있어서 마땅히 성경을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믿으며 성경이 무오하다는 진리를 믿음으로 그 성경의 권위와 가르침에 순종하는 자이다. 그런데 성경적 성직에 대한 가르침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교회는 분명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가 무너지게 될 것이며 교회의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교회는 종교인과세로 인하여 중대하고 새로운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목회자의 직분은 한 개인의 인격적 신분이거나 권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불가항력적인 부르심에 의해 거룩한 종으로 세우신 직분이며 권위이다. 그러므로 구약의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했던 레위 지파에게 하나님께서는 열한 지파에게 주신 분깃 중 하나님께 드려진 소산이 레위 지파의 분깃이 되게 한 것처럼 신약의 사도시대에 사도들에게 마땅히 교회가 그 생활의 양식을 공급한 것처럼 이 시대에도 여전히 하나님은 하나님의 선택된 부르신 종들을 세우시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강도케 하며 축복을 선포케 함으로 그 세우신 권위자(목회자)들의 생활에 책임을 교회가 의무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셨다. 이는 세상의 기준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목회자 신분의 성경적 원리이고 가르침인 것인데 교회인 우리도 그것을 세상의 기준으로 이해하고 적용하려고 한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리스도가 죄인을 위해 오셨고 세상을 사랑하신 것처럼 분명 교회는 세상을 위해 낮아져 섬김의 본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세상에 낮아지셨지만 여전히 그는 하나님이시며 그의 영광과 높으심과 그의 직분은 변함이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목회직도 하나님이 세우신 것으로 인정해야 한다. 이번 종교인과세의 논쟁의 본질은 세금이 아니라 목회직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을 되찾아야 마땅하며 그것을 교회가 감당해야 함을 확인하는 것이다. 덧붙여 우리 스스로 이 문제를 편향된 입장에서 보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종교인과세에 대한 전체 국민의 70%, 기독인 중 62.9%, 목회자 중 50%가 종교인과세에 찬성한다는 여론 조사의 결과는 종교인과세를 인위적으로 반대할 수 없다는 현실을 보여 준다. 그러나 많은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종교인과세의 본질을 단순히 목회자의 세금의 문제로만 보는 경향이 뚜렷하다. 심지어 젊은 목회자들 중에는 자신의 신분을 교회에 종사하는 일꾼 정도로 의식하는 자들도 있다. 달리 말해 지금의 여론대로라면 목회자는 “종교시설에 종사하는 근로자” 정도가 되는 것이다. 또한 성도들의 의식 속에도 목회자를 “교회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 정도로만 의식하는 경향이 다수라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종교인과세에 다른 목소리를 내면 오히려 기독교인들의 의식 속에 그것이 탈세의 합리화나 과세반대로 여기는 비율이 높은 건 당연한 결과이다. 이러한 문제는 전도의 대상인 젊은 세대를 교회와 하나님에 대해 부정적으로 여기게 만든다. 또한 우리의 젊은 자녀 세대에게는 교회를 부패하다고 보는 인식들이 고착화된다. 그로 인해 믿음은 버리지 않지만 교회를 떠나는 행태로 이어지고 있다. 대형교회의 세습의 이슈와 일부 목회자와 장로들의 사회적 범죄 또는 타락의 문제들이 이러한 종교인과세에 덧칠되어 기독교가 적폐세력으로 변질 왜곡되는 사회적 현상을 보면서 우리 스스로가 얼마나 성경적 사고에서 무지하고 성경의 본질적 가르침보다는 그동안 외형적 부흥이라는 치장에만 더 노력해 오지는 않았는지 백번 돌아보아야 할 상황이다. 이제 우리는 종교인과세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봐야 한다. 바로 성경적 사고를 통하여 종교인과세의 본질을 보고 회복하여야 할 것이다. 교회마다 종교인과세가 오히려 목회자의 거룩한 직분의 성경적 권위를 회복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동안 성도들의 의식 속에 언젠가부터 변질되어 버린 목회직에 대한 가치관. 인간적(세속적) 권위가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신 거룩한 권위의 목회직에 대한 성도들의 의식 이 성경으로 회복되어 교회 안에 하나님의 질서가 회복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 교단 헌법 제4장 제2조의 교회의 평범한 항존직원에는 “직원은 교훈과 치리를 겸한 목사와 치리장로와 안수집사이다”라는 조문이 있다. 여기서 평범한 항존직의 의미를 잘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 목회자의 권위와 장로, 안수집사의 권위가 차이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그 세워짐의 방법이 분명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목회자는 불가항력적인 부르심으로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자들이다. 그러나 장로나 안수집사는 허락된 권위라는 사실이다. 교회가 선택하여 세우고 이를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장로나 안수집사는 혹 자신들을 세운 교회에서 부득이 떠나야 할 경우 그 직도 내려놓음이 합당할 것이다. 그 소속 교회에서 일꾼으로 선택하여 세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택으로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목사는 분명 하나님이 부르셨기 때에 그가 현격한 반성경적 범죄로 노회에서 치리를 받지 않는 한 이 땅에서 사역을 마치고 하나님이 부르실 때까지 그 직과 권위가 폐하여지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성경적 가르침이 무너지지 않아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담임으로 청빙하여 위임한 목회자의 생활을 안정적으로 책임져야 할 의무를 부여 받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한국교회에 제시된 종교인과세 문제를 신앙 안에서 생각해 보고 질서 회복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른 신학 안에서 바른 교회를 세워 바른 생활을 교육하고 세상에 빛과 소금으로 살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성도의 궁극적 삶의 목표를 지향하는 우리 교단의 가치이며 자세라 하겠다. 우리나라는 하나님의 은혜 속에 세계경제 11위의 OECD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발전 속에 강력범들을 포함해 사회병리적, 패륜적 범죄율이 매우 높은 것은 마치 소돔성과 같은 현실을 보여 준다. 이러할 때 교회가 노아의 방주 시대처럼, 소돔성의 하나님의 천사처럼, 니느웨를 향하여 외친 요나 선지자처럼 세상을 향해 바른 진리를 선포하고 경고를 외쳐야 할 때이다. 그런데 그 외침의 리더인 목회자들의 목소리를 다스리려 하고 그 권위의 힘을 뺌으로서 결국 외치는 소리를 멈추게 하려는 사탄의 계략에 우리 스스로 속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이번 종교인과세 문제의 본질은 과세의 적용이라 아니라 성경 안에서 교회를 이루는 목회직의 그 본질을 다시 한 번 바르게 정립할 기회로 삼는 데 있다. 그것은, 교회는 주님을 믿는 신자들 자신이 교회인 것과 그 교회들이 공동체의 교회를 이루는 가운데 교회의 머리 되신 주님께서 교회를 세워 가심에 목회직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케 하심으로 그 중요 역할을 하게 하심인데 이 말씀을 선포케 하시는 성직을 세상의 근로의 기준으로만 평가하고 그 의미를 격하해 버리는 폄하의 오류를 우리 스스로 범하려는 건 아닌가. 과세정책에 무조건 반대하자는 것이 아니다. 언제나 교회는 국가를 위하여 기도하며 헌신해 왔듯이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다. 그것이 성경의 가치관에 근거한 것이라면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교회는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최선을 다할 것이다. 다만 세상을 향하여 그게 아니다 주장하기 전에 우리 스스로가 정말 성경의 본질 안에서 목회직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믿고 있으며 그 권위를 인정하고 있는지 먼저 돌아보자는 것이다. 그것이 종교인과세라는 문제를 잘 이겨 내고 교회의 순수함과 거룩함을 지켜 내는 한 방법일 것이다.
1218 |송년특집| 객원기자들이 돌아 본 2017년도 첨부 파일
편집부
1037 2017-12-20
송년특집 객원기자들이 돌아 본 2017년도 리빌딩 건물이 오래되면 보수해도 더는 사용할 수 없을 때가 온다. 이 때 건물을 헐고 새로 짓는데 이를 ‘리빌딩’(rebuilding)이라 한다. 2017년을 돌아보면 떠오르는 단어가 ‘리빌딩’이다. 국가적으로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리빌딩하고 있다. 교회적으로는 500년 전 교회를 리빌딩한 종교개혁을 기념하며 우리 시대 교회를 리빌딩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건물을 헐고 다시 짓는 것은 고통스럽다.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일을 마치고 새로 지은 건물에 들어서면 그 동안의 수고가 한 순간에 사라진다. 2017년은 가파른 산을 오르는 것만큼 힘겨웠다. 허나 높이 올랐기에 새로운 희망을 보게 된 시간이었다. _ 최상규 기자 | 서서울 나, 그리고 우리를 다시 살게 하는 힘 라이프교회를 개척한 지 벌써 삼 년이 되어간다. 지금까지 수많은 어려움과 문제들이 있었지만 나는 여전히 라이프교회의 목사로 봉사하고 있다. 가끔 개척을 준비하는 분들이 그렇게 버틸 수 있는 힘이 무엇이냐고 질문을 한다. 왜냐하면 교회개척이 참 어렵고 힘든 시대이기 때문이다! 내가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생각해보면 개척교회의 어려움은 크게 세 가지다. 먼저 건강이다. 개척교회는 한 명의 목사가 모든 일을 해야 하므로 아프면 안된다. 다음은 성도들과의 관계다. 성도의 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두 세 주만 교회에 나오면 대부분 성도의 이름을 외울 정도로 가까워진다. 가까워질 뿐만 아니라, 얼굴 표정 하나까지도 감출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들과의 관계가 깨어지면 개척교회는 어려워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재정의 문제다. 이것은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더라도, 다들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삼 년이 되어가는 지금은 하나님이 특별한 은혜를 주셔서 힘들지도 않고 전혀 아프지도 않은 강철 체력이 된 것도 아니다. 또한 나 역시 사람인지라 부족한 것도 많고 허점투성이라 관계가 좋지 않은 성도도 분명이 있다. 그리고 재정적인 문제는 아마 평생을 안고 가야할 것 같다. 여전히 모든 문제가 완벽하게 해결되지 않았지만 나는 여전히 라이프교회의 목사로 봉사하고 있다. 그렇다면, 교회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힘은 무엇인가? 나를 다시 살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 그것은 내가 왜 목사로 봉사를 해야 하는지? 왜 상도동에 수많은 교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라이프교회가 존재해야 하는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난 모든 성도들도 동일한 답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우리가 다시 일어서야 하는가? 무엇이 우리를 다시 살게 하는가?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 더 이상 문제가 없기 때문이 아니다. 여전히 죄인인 우리를 용서하시고 또 용서하시며 안아주심으로 여기까지 끌고 오신 주님의 은혜를 알고, 우리에게 그 은혜를 베푸신 목적과 주의 크신 뜻을 깨닫기 때문이다. 그 은혜의 가치를 다시 기억하며 맡겨진 자리에서 각자의 책임을 다하는 12월과 새해가 되길 소망한다. _ 최우준 기자 | 남서울 십자가의 은혜만이 유일한 답 2017년은 여느 해보다 혼란스런 시국의 현실이란 세상 앞에서 많은 생각과 판단 앞에 서야 했으며 각자가 옳다고 주장하는 자신들의 결정에 대해서 그 요구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답답한 감정의 기복에 휘둘렸던 치열한 한 해였다고 되돌아본다. 서로가 옳다고 주장하는 그 정당함이 근거가 되어 편이 갈리고 원수 되어 싸우고 짓밟아 자기를 세우려는 세상 힘의 원리 앞에 우리 믿는 자의 정체성마저 심하게 흔들렸던 자신의 나약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 한 해였음을 시인한다. 세상이 죽음의 진흙탕이 되어 더러운 죄악의 홍수로 쓸려 갈 때 예수의 피로 살아난 자로서 거친 세상의 풍류 앞에서 그 거센 힘의 위협적인 공격과 타협의 유혹을 거슬러 믿는 자의 정체성을 지켜내는 일이 신자가 세상 앞에 부여받고 있는 존재의 책임이며 명예라는 것을 주님의 말씀 앞에서 다시 한 번 정리하게 된다. 이 세상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인간은 결코 답이 없다는 사실을 보게된 시간이었고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만이 우리 인간에게 유일한 답이라는 것을 이 혼돈과 무질서의 세상에서 분명하게 확인한 한해였다. 우리 주께서 이렇게 1년이란 기준을 두어 생각하고 점검하여 살피어 다시 주님 앞에 믿음의 바른 모습으로 설 수 있는 기회는 주시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고맙고 감사하다. 올해 부끄럽고 미약했던 신자로서의 책임과 명예를 다시금 주님을 통해 듣고 보고 배운 대로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어져 가고 있는 새 사람답게 선한 일꾼으로 회복되어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 되는 모습이 되리라는 각오와 함께 주님의 은혜로 새해를 바라본다. _ 고성민 기자 | 전북 복음의 매력을 세상 앞에 제시하는 일 운동에서 힘을 빼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들 하는데, 올 한해 나의 신앙의 여정에서도 힘을 빼는 연단이 인상 깊게 남는다. 다이어리 첫 장에 기록된 ‘소명의 흔들림’이란 제목과 함께 이어지는 ‘연약함 가운데서 온전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어거스틴의 글귀가 눈에 확 들어온다. 중국 강의를 다녀온 후에 마음을 새롭게 하면서 지금껏 충성스럽게 섬길 수 있게 한 장소는 아내와 함께 시작한 새벽기도회 자리였다. 그 어간에 촛불이 켜지고 국내외 사회적 이슈로 인해 마음 졸일 때, 새벽마다 펼치는 에스겔서에서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겔 9:4)인가? 라는 말씀은 바른 길로 인도해 주었다. 50년 만에 이곳 증평에도 큰 비가 내렸고 이후에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지만 그토록 기다리던 새로운 얼굴들로 인해 예배당의 공기는 시원했다. 작은 교회가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방법은 총회에서 발간한 종교개혁 5대솔라 공과를 배우는 것이었다. 역사학자인 제임스 모펫이 ‘교회의 일이란 어떤 면에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아름다운 매력을 세상 앞에 제시하는 것’이라는 말처럼, 종교개혁 정신의 아름다운 매력에 빠지게 하려 무진장 애를 쓴 수고였다. 짠내 나게 살아야 하는데 미루던 책을 구입하면서 덤으로 얻은 2018년 다이어리는 어떻게 채워질까?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주는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의 자세(마 24:45)를 마음에 새기며 존귀한 성도들 얼굴을 하나씩 떠 올려 본다! _ 김현일 기자 | 충청 말씀으로 돌아가자 2017년은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해로서 종교개혁에 대한 세미나가 여기저기 각 신학대학과 교단 성경학회 등에서 열렸다. 우리는 어떤 숙제를 남겼을까? 우리는 이 시대 속에서 얼마나 많이 개혁을 부르짖고 있는가? 그러나 무엇이 진정한 개혁일까? 우리의 교단과 교회(교회는 건물이 아닌 구원받은 성도)는 무엇을 개혁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우선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를 구원하고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원자이심을 고백하고 믿어야 한다. 우리의 신앙은 종교가 아닌 믿음이다. 즉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어야 한다. 우리는 그 믿음 앞에 순종하고 그것을 계승하고 바른 믿음 안에 거하여야 한다. 모두가 개혁이라는 말은 하지만, 어찌 보면 빛 좋은 개살구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성경의 가르침을 반듯하게 따라야 하고 성경의 바른 말씀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비록 이 땅에 살고 있지만 언제나 우리의 삶은 본향인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 세상적이지 않는가? 다시 한 번 나부터 개혁을 다짐해 본다. 오늘 우리들의 교회도 개혁정신으로, 로마가톨릭처럼 성경에 근거 없는 것들을 만들지 말고, 가르치지 말고, 오직 바른 말씀만 지키고 가르치자. 종교개혁은 그냥 스쳐 지나가는 이벤트가 아닌 우리의 삶 가운데 날마다 일어나야 한다. 솔직히 우리 한국교회도 로마가톨릭이 잘못한 것들을 답습하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종교개혁을 말로만 외치지 말고 진정성 있게 루터와 칼빈이 고수했던 것처럼 말씀으로 돌아가자. 이것이 종교개혁의 본뜻이 아닐까 생각해 보는 연말이다. _ 유병도 기자 | 경기서 첫 마음 개인적으로 이번 연말에 가장 의미 깊게 생각하는 일이 기독교개혁신보사 객원기자가 된 사건이다. 대학교 때, 잠시 학보사 편집하는 일을 해보기는 했어도 기자라는 이름으로는 처음 하게 되었다. 보통의 사람들은 처음을 참 좋아한다. 첫 아이, 첫 출근, 첫사랑 그리고 물건도 처음 구입하는 사람을 부러워하기도 하지만 그 감정은 오래 기억되지 않는 것 같다. ‘첫’이 중요한 이유는 시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가질 수 있고 더 발전할 수 있고 기대할 수 있기에 처음이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 잘해보겠다는 마음,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 시작할 수 있다는 행복한 마음이 있기에 처음을 기억하려한다. 그런데 처음 그 마음을 기억하고 간직해 유지해야 하지만 어느 순간, 그 마음은 어두운 구석 창고에 감추어 존재조차 잊고 현실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것 같다. 그래서 첫눈이 내린 아름다운 세상을 바라보면서 그동안 마음 한쪽 창고에 보관되었던 ‘첫’ 마음을 사진첩처럼 꺼내어 펼쳐 본다. “그래, 그때는 그랬지!” 추억이 아닌 다짐을 한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처음인 것 같이 기독교개혁신보와의 만남이 ‘첫’ 마음이 되기를 바란다. _ 위영복 기자 | 북서울
1217 |송년특집| 우리 교회는 성탄절을 이렇게 지내요 | 일산 평강교회의 행복한 성탄절 이야기_이재선 사모 첨부 파일
편집부
1394 2017-12-06
송년특집 우리 교회는 성탄절을 이렇게 지내요 | 일산 평강교회의 행복한 성탄절 이야기 “해마다 원주 작은예수공동체를 찾아가 전교인이 함께하는 성탄절” < 이재선 사모 _ 일산 평강교회 > < 작은예수공동체 이명남 사모(좌) 평강교회 임인철 목사, 이재선 사모 > 1. 평강교회는 일산 평강교회는 2003년 11월, 대형교회들이 우뚝 서있는 일산신도시에서 임인철 목사 내외 단 둘이 겁도 없이 시작했다. 선교사로 떠나시는 지역 목사님이 애정으로 가꿔온 예배당을 아무에게나 넘길 수 없다며 몇 번이고 찾아와 간곡하게 호소하는 것을 외면치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기에는 선교교회라는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아 개척을 하게 됐다. 초창기부터 임인철 목사가 꾸준히 견지해 오던 것은 예배, 묵상, 기도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봉사, 구제, 나눔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었다. 성도가 6명이었을 때부터 이웃에 있는 치매 어르신 공동체 ‘은빛사랑선교원’에 한 달에 한 번 목욕봉사를 시작해서 지금까지 14년 동안 이어 오고 있다. 그리스도인에게 평안은 있을지언정 편안은 없다며 몸으로 하는 봉사를 강조했기 때문이다. 물질로는 절기헌금을 이웃에게 나누자는 원칙을 세웠다. 부활절 헌금은 포천의 정신지체 장애우들의 ‘해뜨는 집’에, 추수감사절 헌금은 동대문 쪽방촌에서 노숙인 사역을 하는 ‘등대교회’에 물품 후원을 한다. 성탄절 헌금은 노년 어르신들의 공동체인 원주의 ‘작은예수공동체’에 쓰인다. 개척초기부터 그렇게 정해온 원칙은 지금까지 성도들의 즐거운 헌신으로 계속 이어 지키고 있다. 2. 원주 작은예수공동체 가족들 작은예수공동체를 섬기는 분은 손주완 목사님, 이명남 사모님이다. 일찍이 어르신들을 섬기기로 결심한 손목사님이 여러 곳을 둘러보다 정착한 곳이 이곳 원주 귀래라 한다. 도시출신의 목사님 부부가 농촌에서 어르신들을 모시고 함께 살게 된 것이다. 지금은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시행되어 정부의 혜택을 받는 요양원의 어르신이 아홉 분, 가족이 돌볼 수 없어서 맡겨진 양로원의 어르신이 다섯 분이다. 어르신들을 돌보는 것을 넘어서 마을공동체를 꿈꾼 손목사님은 지역에서 협업할 수 있는 많은 아이디어를 내고 실천하는 삶을 살고 계신다. 지금은 공동체를 섬기며 한편으로는 3명의 목회자가 공동으로 친환경 양계농장을 운영한다. 이곳의 닭들은 AI도 끄떡없이 버텼고, 살충제 계란 파동이 있을 때도 유정란을 생산해 내어 매스컴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귀농 초창기에는 농한기에 별다른 문화생활을 못하는 지역주민들을 위해 슬하에 둔 5남매에게 국악을 가르쳐 공연을 시작했는데, 다른 이를 위해서 시작한 이 일이 자녀들의 진로에도 영향을 주어 모두가 국악을 전공하기에 이른다. 지금은 고3인 막내까지 국악을 전공해서 자녀들로 이뤄진 국악공연단 ‘The 내일’을 창단하여 초청해 준 교회에 가서 공연을 하기도 한다. 선한 뜻을 품고 시작한 일을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내력을 보면 감사와 감동으로 놀랄 뿐이다. < 쉴만한물가교회 전경 > < 작은예수공동체 요양원 전경 > 3. 평강교회와 원주 작은예수공동체와의 연결 임인철 목사가 ‘명지대학교 사회복지사 양성과정’에서 작은예수공동체 이명남 사모와 학업을 같이 하며 연결을 갖게 됐다. 매년 전국을 찾아다니며 전교인여름수련회를 갖는 평강교회가 2006년 전교인여름수련회를 이 작은예수공동체에서 열면서 이곳 상황들을 자세히 접하였다. 당시만 해도 노인요양기관에 요양보험 혜택이 없을 때라 휴일이나 주말이면 사모님 혼자 식사부터 돌봄까지 어르신들을 다 감당해야 한다는 형편을 들었다. 더욱이 명절이나 공휴일에는 그나마 일하던 직원들도 쉬기 때문에 어르신들은 외로움에 시달리고, 목사님 내외는 격무에 시달린다는 사실을 접하고는 바로 그 해 겨울부터 원주의 어르신들과 성탄절만이라도 함께 보내기로 했다. 연약하고 소외된 우리 이웃들과 성탄의 의미를 나누고 싶기도 했고, 더 단순하게는 우리의 작은 힘이라도 이곳에 보태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임인철 목사의 한결같은 목회철학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었고, 그것의 바탕은 항상 몸으로 하는 봉사와 나눔이었기에 배운 말씀을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교회를 개척한지 3년이 되는 해였고, 출석 성도도 15명이어서 모든 성도들의 동의를 받아 가볍고 단출하게 시작된 성탄절 예배였다. 어르신들과 직원 선생님들에게 드릴 선물을 준비하고, 어르신들을 위한 식사 메뉴를 정한 후 미리 장을 봐두고 12월 24일이 되면 원주로 출발을 한다. 그렇게 도착하면 난롯가에 오순도순 모여 그동안 어르신들에게 있었던 일들을 듣고 교제를 나누며 잠자리에 든다. 12월 25일 성탄절 당일이 되면 아침부터 매우 분주해진다. 여성도들은 일단 어르신들과 원주의 가족들, 평강교회 성도들까지 합친 대가족의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즐겁게 식사를 마치면 바로 성탄절 예배가 이어진다. 어르신들이 계신 숙소에서 예배당까지 건강한 사람들의 걸음으로야 몇 걸음 되지 않지만, 누워 계시는 어르신들을 휠체어에 태우고 안전하게 예배당으로 이동하는 일도 그리 쉽지만은 않다. 장정 몇 사람이 바쁘게 오가면서 한 분 한 분 모셔 와야 한다. 어르신들이 정식 ‘예배당’에서 예배하는 단 하루가 바로 성탄절 당일이다. 함께 예배하고 성찬식을 거행한다. 예배를 마치면 평강교회가 준비한 공연으로 어르신들에게 재롱잔치를 열고, 준비한 선물을 어르신 한 분 한 분께 정성껏 전달한다. 여기에 해마다 빠지지 않는 부대행사가 하나 더 있다. 마침 12월 25일이 생일인 평강교회 학생과 이틀 뒤가 생일이신 작은예수공동체의 대표 손주완목사님. 비록 예수님의 진짜 생일은 아니지만 성탄절과 함께 하는 생일잔치가 열린다. 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축복송을 불러주는 것이 전부이지만, 그 축복을 받던 꼬마가 이제 열한 번의 성탄절을 지나 고등학생이 되었으니 정말 특별한 성탄선물이 될 것이 분명하다. 예배 후엔 다시 정신없이 점심을 준비한다. 어르신들은 식사시간이 정해져 있고 그 시간을 꼭 지켜야 하기 때문에 주방은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어르신들 식사를 먼저 챙기고, 설거지를 시작하면 차례차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이들과 어른들이 식사를 하고, 또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교대로 설거지를 하며 분주한 식사를 마친다. 아이들은 마당에서 뛰놀고, 성도들 중 일부는 어르신들 숙소에 가서 말벗이 되어 드리기도 한다. 그제야 비로소 한숨 돌리고 테이블에 둘러앉아 손목사님 내외와 임목사 내외는 교제를 나누곤 한다. 때로는 작은예수공동체가 속한 귀래면의 젊은 친구들과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귀래리그’로 불리는 축구시합을 하기도 한다. 우리의 공식적 사역은 점심식사까지이고 그 이후 시간은 자유롭게 보내다 귀가한다. < 성탄예배를 위해 요양원에서 예배당으로 어르신들을 모시고 있다> < 평강교회 찬양대 성탄 찬양 > 4. 열두 번째 행사를 기대하며 이렇게 진행해 온 행사가 올해로 열두 번째를 맞는다. 15명이었던 식구들도 이제 60여 명 가량으로 늘었으니 차량도 여러 대로 나눠 퇴근시간에 맞춰 시간대별로 움직이고, 현장에서 잠을 잘 때도 발 뻗을 자리만 있으면 비집고 들어가 잠을 자야만 한다. 원주 식구들도 평강교회 성도들도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기도 하지만 그 답은 주님만이 알고 계시리라. 어쨌든 올해도 우리는 작은예수공동체 식구들과 12번째 성탄절을 맞으러 간다. 그동안 어르신들에게 조금이라도 기쁨을 드릴까 해서 다양한 것들을 시도해 봤다. 성가발표, 어린이들의 찬양과 율동, 성경암송, 태권도선교단의 격파시범과 태권도 드라마, 선교사님을 초청해서 선교지 소식을 전하기도 하고, 찬양사역자를 초청해서 찬양을 들려 드리기도 했다. 올해는 또 어떤 것으로 어르신들을 섬길지 모두가 기대하는 마음이다. < 성탄행사 후 단체 촬영 > < 평강교회 가족들의 소감 > ◈… 원주 작은예수공동체와 쉴만한물가교회를 생각하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처음 방문했을 때다. 그곳 이명남 사모님께서 컵을 선물해 주셨는데 가끔 물을 마실 때 그 컵을 보면 그 때의 상황과 감정이 떠오르곤 한다. 12월 25일이 되면 빠지지 않고 꼭 참석하며 느낀 감동은 매번 달랐지만 항상 동일한 것은 ‘안 보이지만 느껴지는 사랑의 온기’이다. 그 온기를 하나님 안에서 나누고 있음을 성탄절에 더욱 특별하게 느낄 수 있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우리 유초등부 아이들, 중고등부, 청년들 등 다양한 연령대가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는 것과 작지만 평강교회 식구들이 준비한 선물을 나누어 주는 것, 다 같이 모닥불 앞에 앉아 귤, 고구마, 커피와 함께 담소를 나누는 사소한 일들로 따뜻한 사랑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다가오는 성탄절에도 다 함께 좋은 추억을 만들고 왔으면 좋겠다. - 신혜지 청년 ◈… 성탄절이 다가오면 예수님 다음으로 원주가, 그리고 작은예수공동체가 먼저 떠오른다. 올해도 변함없이 평강교회 성도들이 준비한 작지만 정성이 가득한 선물들을 안고 1박 2일로 갈 예정이다. 아내가 말한다. "‘특별한 것’이 없어서 오히려 10년 이상 계속 가게 된다." 특별한 것을 위해 이것저것 특별하게 준비하려다 보면 힘들고 지친다. 그런데 평강교회와 쉴만한물가교회의 관계는 마치 고향을 찾는 자식과 자녀를 따뜻하게 맞아 주시는 부모님의 그것과 같다. 가족이다. 사실 우리가 오히려 쉼을 얻게 된다. 그곳 교회 이름처럼. 올해도 그간에 있었던 여러 가지 이야기로 밤 깊도록 시간 가는 줄 모를 것이다. 함께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예배를 드리며 '특별'하진 않아도 '의미'있는 날이 될 것이다. - 정승태 집사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마태복음 25:40). 성탄절마다 이 말씀이 늘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다. 작은예수공동체는 그저 사랑이다. 서로에게 지극히 작은 자가 되어 적은 것을 나누고, 큰 기쁨을 선물로 안고 돌아오는 날이기에 그렇다. 이런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평강교회 가족들에게 감사하다. 3시간 거리를 멀다 않고 달려가고, 누구나 먼저 손을 내밀고 한 상에 둘러앉은 식구들. 원주의 작은예수공동체와 일산의 평강교회는 1년에 한 번 만나고, 또 1년을 그리워하는 기러기 가족이다. - 평강교회 임인철 목사
1216 no image |송년설교| 광야를 행하는 법_성주진 교수
편집부
1365 2017-12-06
송년설교 광야를 행하는 법 < 성주진 교수_합신, 구약학, 본보 주필 > * 이 설교문은 설교집 <합신채플 제4권>에 실린 것으로 저자의 허락 하에 편집상 맥락의 손상이 없는 선에서 축약하여 소개한다. 많은 유익이 있기를 바란다. - 편집자 주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은 각각 자기의 진영의 군기와 자기의 조상의 가문의 기호 곁에 진을 치되 회막을 향하여 사방으로 치라” ( 민 2:1-2, 10:33 ) 하나님을 찾고 이웃이 누구인지를 알아 자기 자리를 정립하는 것이 경건의 연습 광야 이스라엘의 불평은 결핍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앞서려는 태도 때문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시는 이중잠금장치로 보장하심 오늘 미로 같이 복잡한 인생, 세상 가운데서 많은 이들이 길을 잃고 방황한다. 심지어 믿음의 길에서도 방황하기도 하고 사역에서도 그렇다. 1. 광야의 진실 본문은 이스라엘의 새로운 국면에서 주신 말씀이다. 그들은 홍해를 건넌 출애굽과 시내산의 하나님의 현현, 하나님과의 언약식 등 굉장한 경험을 했다. 또한 놀라운 전망이 있었다. 눈앞의 약속의 땅, 그리고 거기 건설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기대에 차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애굽에서 고생한 너희를 해방했다. 이제 가나안을 마련해 두었으니 헤쳐 모여라.”라는 식으로 안 하신다. 만만치 않은 광야를 통과케 하신다. 의식주 등의 모든 결핍으로 상징되는 광야. 게다가 위험하고 불확실한 여정. 그런 곳을 어떻게 건너 안전하게 가나안에 도착할 것인가? 이 당면 과제의 답을 말씀하신다. 2절에 핵심 메시지가 있다. 먼저 “회막을 향하여 진을 치라(새번역-회막을 중심으로 진을 치라).”하신다. 회막은 하나님의 처소의 상징으로 출애굽, 시내산은 물론 광야에서도 함께 행하신다는 것, 즉 이스라엘의 광야 통과를 위한 제1조는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고 통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광야의 진실은 삭막함, 황량함, 결핍, 위험...이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신다.’는 그것이다. 이곳을 통과해서 가나안으로 가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구원만 받고 버려진 것이 아니고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위해 보냄 받은 존재라는 것. 하나님이 그것을 가능케 하실 능력과 지혜, 사랑과 자비와 그 모든 것의 근원이시라는 것이다. 이 숨겨진 하나님의 능력의 비밀이 이스라엘과 함께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훈련을 40년간 매일 매일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추구하면서 자기 자리를 찾기 위해 이웃과 옆 지파를 늘 확인해야 한다. 이렇게 하나님을 찾고 이웃이 누구인지를 알아 자기 자리를 정립하는 것이 일종의 경건 연습이다.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 연습과 이웃과의 관계에서 자기 위치를 설정하는 연습이다. 다음으로 생각할 것은, 2절 원문은 민네게드(םנג), 거리를 두고 좀 떨어져서(‘some distance off’ NIV) 진을 치라고 한다. 회막과 거리를 두라는 것. 이는 첫째, 거룩의 거리이다. 타락한 죄인이 하나님을 거룩하신 하나님으로 알고 바로 모시는 태도, 곧 안전거리이다. 둘째, 이는 또한 은혜의 거리이다. 레위인의 거리가 있고 대제사장의 거리가 있다. 성도들에게도 하나님이 은혜로 열어 두신, 택하신 자는 가까이 갈 수 있는 거리이다. 셋째, 이는 연합의 거리이다. 그리스도와 우리가 상호 거주하는 관계를 말함이다. 이는 실상 거리가 없는 연합의 관계로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으로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되어 이루어진 관계이다. 2. 광야를 통과하는 비밀 그리스도인은 성령이 그 안에 거주하시는 거룩한 성도이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거룩의 거리가 다 취소된 것은 아니다. 이제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니 우리의 거룩함은 얼마나 더 깊어져야 하는가? 구약의 성전이 지극히 정결해야 했듯이 성령의 전인 우리는 더욱 경건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지파들에게 동서남북 사방으로 진을 치라 하신 것은 모두가 공통적으로 하나님을 중심에 모셔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각 지파의 위치는 달랐다. 하나님이 어디 계신가? 내 이웃 지파가 어디 있는가? 그 둘을 축으로 각 지파가 자기 자리를 찾는 것이다. 공동체의 행군은 “나 하나 빠져도 되겠지”하는 생각을 불허한다. 지파마다 자기 자리와 역할과 기능이 있다. 우리는 자신의 좌표를 찾아야 한다. 인생은 미로라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인생은 하나님 나라의 좌표가 다 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있어야 할 자리, 세상에서의 나의 자리, 교회에서의 나의 자리가 있다. 또한 우리에겐 좌표 없이 방황하는 인생들에게 어디에 하나님이 계시는지 자꾸 알려 줘야 할 책임도 있다. 공동체에서 매우 중요한 것은 야영 때나 행군 때나 자기 자리를 이탈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지금 마땅히 있어야 할 그 자리에 있는 것이 경건의 큰 훈련이다. 신학생들도 공부에 대한 강박으로 경건회나 기도회의 시간을 이탈하여 나중에 하면 되겠지 하면 안 된다. 성경의 추천코스는 항상 최단거리가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경건과 성장, 성숙은 단기속성 코스가 아니다. 그것이 가나안을 향하되 먼 광야 길로 가게 하신 하나님의 인도법이다. 하나님의 시간은 빠름도 늦음도 없다. 우리의 계산과 다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앞서 가선 안 된다. 광야에서의 이스라엘의 불평은 결핍 때문이 아니다. 실상은 하나님을 앞서려는 태도 때문이다. 하나님의 계획보다 자기 계획과 생각을 앞세우려는 것이 문제다. 그러나 제자의 핵심적 특성은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진정한 팔로어라는 것이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의 길을 막아서며 앞서다 혼난 적이 있다. 철저히 그리스도만 따르는 것이 광야를 통과하는 비밀 중 하나이다. 3. 하나님의 보장 광야는 오늘의 현실이다. 물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약속의 땅 가나안에 있다. 천국의 시민이다.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이 아직 오지 않은 상황에서 광야적인 특징을 여전히 갖고 있다. 오늘 믿음의 공동체에서 어떻게 이 시대를 보낼 것인가의 측면에서, 하나님을 중심에 모신다는 것이 금과옥조이다. 하나님 앞에서 만 아니라 공동체와 함께 걸어가기 위해 이웃과의 관계에서도 자기 자리가 있으므로 구속사적인 성취인 연합을 이루어 가게 된다. 구속사적인 하나님의 경륜과 은혜의 베풂을 통해 볼 때 당연히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고 연합된 자들이다. 성경은 “내 안에 거하라”고 부단히 권한다. 이것이 성경의 가장 특징적 교훈 중 하나이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이면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라는 것이다. 그 원칙과 은혜를 따라서 제대로 머물게 될 때 열매를 많이 맺겠다는 것이 주님의 약속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해 주신 보장은 이중잠금장치처럼 확실하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거기서 빼낼 자가 없어서 그 자체로 완벽한 장치인데, 또한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신다. 그러면 그가 떠날 일이 없으시다. 이런 이중의 안전장치를 통해 우리는 계속 하나님의 자녀 된 확신 가운데 거할 수 있는 은혜를 공급받는다. 그런데 거기 머무르라 했다. 그냥 있으라가 아니라 그 안에 계속 머루르라는 것이다. 그것은 많은 유혹이 있고 힘들고 어렵다. 일상의 따분함이 있다. 그럼에도 머무르라는 것이다. 아침 운동을 해 보면, 하고 나면 좋은데 그 다음에 일어나 또 하려면 여전히 원점으로 돌아가서 하기 싫어진다. 그런데 하고 나면 또 좋다. 그만큼 쉽지 않다. 치열한 싸움이 늘 있다. 이렇게 힘들고 귀찮은 과정에서 치열하게 견디며 이런 생각을 한다. “성경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신다!” 이런 과정을 통해 책에서만 보고 설교로만 듣던 그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신다! 그러므로 그 과정이 중요하다. 신학교 과정도 그렇다.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는 과정이다. 어떤 사람이 목회할 준비가 됐는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할 수 있고, 더 나아가 나의 하나님으로 알고 신뢰할 수 있는 경건의 연습과 삶의 훈련이 되어 있는 사람이라야 한다! 약속의 땅에 나아가는 과정의 원리를 이스라엘이 진영을 이루고 광야 길을 가는 것을 통해 보았다. 이러한 원리에 따라 나아감으로 결국 연단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바란다.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며 일상을 살고, 또 사역을 준비하고 감당하는 자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1215 |특별기고| 작은 감사, 평범한 일상을 감사하는 마음_전 광 목사 첨부 파일
편집부
1132 2017-11-08
특|별|기|고 작은 감사, 평범한 일상을 감사하는 마음 < 전 광 목사_작가 > “작은 감사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바늘구멍으로 흘러 들어 숨통을 열어 주는 한 줄기 빛” “작고 평범한 일상을 감격하며 작은 것들을 소중히 여기고 감사하며 살아가는 평생감사” 작은 감사’ 속에는 더 큰 감사를 만들어 내는 기적이 숨어 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속고 있는 것 중에 하나가 모든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감사하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받는 사랑은 당연하고, 내가 받는 대우도 당연하며, 내가 하는 일도 당연하고, 내가 지금 건강한 것도 당연하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눈을 크게 뜨고 세상을 바라보면 우리 주변에는 내가 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조차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내가 작은 감사의 기쁨과 행복에 눈뜨게 된 것은 미국 생활을 시작한 지 2년쯤 되었을 때였습니다. 그때 한 장로님의 따뜻한 저녁식사 초대가 나의 삶에 작은 감사를 실천하려고 결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분은 추수감사절만 되면 한결같이 몇몇 가정을 초대해 음식을 대접해 주셨습니다. 장로님 부부는 목회자와 가난한 유학생 가족을 섬기는 일을 20년 넘게 해오고 계신 신실한 분들이었습니다. 그분들 역시 처음 미국에 도착했을 때는 너무 외로워서 눈물로 지새운 날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미국에 도착하고 얼마 안 있어 첫 추수감사절을 맞게 되었는데, 이웃집의 미국인 부부가 초대해 음식을 나누며 위로와 힘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것이 너무 고마워 그때부터 지금까지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외로운 이민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따뜻한 마음을 나누고자 이렇게 몇몇 가정들을 초대해 저녁을 함께 나누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날 우리 가족과 다른 목회자 가정과 유학생 몇 가정이 식사 초대를 받아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습니다.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벽난로 앞에서 훈훈한 이야기들을 나누다 보니 외롭고 서러운 타향살이의 고초가 눈 녹듯 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그 당시 나는 번 아웃 상태였고, 가정도 경제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최악의 상태였으며, 아들로 인해 매주 병원을 다니지만 치료되지 않는 아들을 보며 절망하고 또 절망하며 나약한 나의 모습에 한없이 좌절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야말로 가장으로서 가정과 자녀들을 책임지고 돌보는 일은 고사하고 나 자신을 감당하기도 힘든 무기력한 탈진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밑바닥의 상황에 있었을 때 장로님 가정의 초대는 나와 가정에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모두들 권사님이 정성껏 준비한 식탁으로 자리를 옮겨 앉았습니다. 식탁 위에는 추수감사절 음식인 칠면조 요리와 우리나라 추석 음식인 송편까지 푸짐하게 차려져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서로의 손을 마주 잡고 감사 찬양을 함께 불렀습니다. 찬양 후 장로님은 이런 제안을 하셨습니다. “오늘은 감사절이니까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하나님께 작은 감사를 나눕시다! 큰 감사가 아니라 작은 감사를 한 가지씩만 나눕시다!” 그러고는 장로님이 먼저 감사기도를 시작했습니다. “명절 때마다 목회자, 유학생 가정을 섬길 수 있는 특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함께 모인 식구들은 모두 “아멘”으로 화답했고 계속해서 감사기도가 이어졌습니다. “명절 때마다 초대해 주시는 장로님 가정으로 인해 감사합니다.” “함께 같은 교회에서 주님을 섬기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힘든 생활 가운데서도 학업을 지속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들이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바쁘게 살아갈 때에는 그런 것들이 감사 제목이 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작은 것들을 감사하다 보니 감사하지 못할 것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은 감사는 마치 캄캄한 어둠 속에서 바늘구멍 같은 작은 구멍으로 한줄기 빛이 흘러 들어오는 느낌이랄까. 숨 쉴 수도 없었던 답답한 마음에 숨통을 열어 주는 한 줄기 빛이었습니다. 그날 우리 입에서 나온 작은 감사의 고백들은 삶에서 묻어 나오는 가식 없는 감사의 말들이었고, 범사에 감사하라는 주님 말씀의 진리를 깨닫는 귀한 자리였습니다. 지극히 작은 것을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순간순간 자주 감사할 수 있고, 작은 것을 감사하는 사람이 날마다 감사할 수 있고, 작은 것을 감사하는 사람이 가장 많은 것을 감사할 수 있으며, 작은 것을 감사하는 사람이 가장 행복할 수 있고, 작은 것을 감사하는 사람이 성공한 사람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작은 것을 감사하고 실천하는 마음을 달라고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작은 감사’에 대해 이런 고백을 하나님께 올려 드렸습니다. “주님은 지극히 작은 나를 택하셨고, 작은 나를 사랑하셨고, 작은 나를 기뻐하셨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작은 것에서 출발했다. 드넓은 들판도 작은 들풀 하나에서, 크고 아름다운 정원도 나무 한 그루에서, 멋진 화단도 꽃 한 송이에서 시작되었다. 넓은 백사장도 작은 모래알들이 모여 만들어졌고, 강과 바다 역시 작은 물방울에서 출발했다. 비행기, 자동차, TV, 컴퓨터 할 것 없이 모든 것은 작은 부품들이 모여 만들어졌다. 작은 감사, 작은 사랑, 작은 웃음, 작은 나눔, 작은 기도, 작은 실천, 작은 것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주님의 마음이다. 나 또한 작은 것을 감사하는 인생이 되리라. 지극히 작은 것을 평생 감사하는 인생!”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가 아침에 눈을 뜬다는 것처럼 놀라운 ‘기적’도 없습니다. 문득 정신이 돌아오는 순간, 귓가에 들려오는 주변의 일상적인 소리들과 멀리 자동차가 지나는 소리, 화장실의 물 내리는 소리, 마당에서 지저귀는 새 소리, 바람결에 낙엽들이 부딪히는 소리, 문을 열고 닫는 작은 소리들, 그리고 어제 밤 내가 잠들었고 이제 아침에 깨어났으며 이렇게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된다는 자각... 이것이 우리의 삶이고 행복입니다. 자신의 욕심을 내려놓고 정신을 차려보면 지극히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고, 지극히 사소하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매일 매일의 일상을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물로 허락해 주셨습니다. 단지 그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소중한 것인지 깨닫지 못하고 살아갈 뿐입니다. 오래 전에 어느 의사의 글을 읽고 깊이 공감되어 메모해 놓고 가슴에 새기고 있는 글의 내용입니다. “왜 사람들은 당연한 사실에 대해서는 감사하지 않을까? 손이 둘이고 다리가 둘이어서 가고 싶은 곳 어디든 갈 수 있고 손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를. 또, 아름다운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목소리로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를. 그런데 사람들은 아무도 이런 당연한 사실들에는 감사하지 않는다.” 인간은 평범한 것은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특별한 것이 주어졌을 때에만 감사합니다. 아니 소중한 것을 잃고 나서야 그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할 것인가를 뒤 늦게 깨닫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이 작고 평범한 일상을 한없이 감격하며 작은 것들을 소중히 여기고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이 ‘평생감사’이고 성경이 가르쳐 준 ‘범사에 감사하라’입니다. 작은 감사로 행복한 인생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 전 광 작가는 감사글방에 기거하며 글과 강연으로 한국교회를 섬기는 목사이다. 그동안 <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든 링컨 대통령>을 필두로 <성경이 만든 사람> <평생감사> 등의 연이은 베스트셀러와 최근 <감사가 내 인생의 답이다>를 출간하였다. -편집자 주
1214 no image |좌담회| 제29회 정암신학강좌 ‘종교개혁의 신학과 오늘’ 공개 좌담회
편집부
1009 2017-11-08
제29회 정암신학강좌 ‘종교개혁의 신학과 오늘’ 공개 좌담회 *2017년 10월 31일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강당 *패널 _ 정창균 총장 / 김기홍 목사 / 변세권 목사 / 이승구 교수 / 정요석 목사 / 안상혁 교수 쫟 사회 _ 정성엽 목사 ◈… 개혁신학의 확산 ◈…성경이 최종적 권위 ◈…비개혁주의적 요소 시정 사회자 : 우리가 신학(개혁신학)을 한다는 건 무슨 의미인가? 정창균 총장 : 반성하고 재 논의해야 할 것들이 있다. 신학을 하는 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한다는 것인가? 의례 개혁신학을 한다는 것은 16-17세기 종교개혁자들이 세워놓은 신학의 내용을 학습, 이해, 습득해서 갖는 것. 그래서 그것을 정확하게 재 진술할 수 있는 것. 이걸 갖추는 것을 신학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러나 단순히 신학지식 습득을 넘어 그것이 오늘 여기 교회와 개인의 삶에 대해 해석, 설명하고 신학적 사고력을 발동시키는 데로 이어져야 한다. 신학적 지식과 사고와 실천, 이것을 통합적으로 하는 것을 신학한다고 봐야 한다. 그 다음, 우리가 개혁신학의 순수성 보전에 집중할 것인가. 아니면 동시에 그것의 확산을 지향해야 되는가. 우리가 오순절파를 개혁파 교회로 만들 수는 없다. 그러나 “당신들은 우리와 달라”하면서 담을 쌓고 완전히 딴 세상으로 갈 것인가? 최소한 성경관이라도 개혁파의 성경관을 저들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어야 한다. 이제는 순수성의 보전, 유지, 전수와 동시에 ‘확산하는 일’을 지향해야 하지 않을까? 공적 위치에 있으니 이런 점을 많이 생각한다. 그래서 신학의 현장화, 신학교의 대중화를 말하는 것이다. 사회자 : 오늘날 ‘오직 성경이’라는 의미는 무엇인가? 안상혁 교수 : 16-17세기 우리 선배들이 ‘Sola Scriptura’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말하고 싶다. 한마디로 ‘Primacy of Scripture’ 성경이 ‘최종권위’를 갖는다는 것이다. 마크 A 놀(Mark A. Noll)이 ‘터닝 포인트’라는 책에서 복음주의 시대에 사용했던 ‘Sola Scriptura’와 16-17세기 종교개혁 시대의 그것이 좀 다르다고 했다. 웨슬리가 “나는 한 책의 사람이다.”라고 한 것은 성경 하나만을 말한다. 복음주의 운동을 지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교회 연합을 위해, 교리를 말하면 다툼이 생길까 봐 교리를 최소화하자는 의미로 ‘Sola Scriptura’를 말한 것이다. 그런데 종교개혁자들이 처음 그 말을 쓴 것에는 성경신학과 조직신학적 배경이 있다. 중세의 대표적인 성경 신학 교과서가 표준주석(Glossa ordinaria)인데 교부들이 성경 각 구절에 대해 지난 천년 동안 무엇이라 했는지를 방대하게 모아 놓은 것이다. 이런 것도 의미가 있지만 종교개혁가들의 ‘Sola Scriptura’는 결국 성경이 성경을 해석하는 최종 권위를 갖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유명한 사람들이 많은 말을 했어도 그 구절에 대해 신약성경이 의미를 확정하면 그것이 최종적 권위를 갖는 것이다. 조직신학적으로는 피터 롬바르드의 명제집에 보면 성경에 없는 또 다른 조직신학적 소스들을 활용한다. 예컨대 고해성사는 성경에 없는데 교부 제롬이 “난파선에 첫 번째 널빤지는 세례이고 두 번째 널빤지는 고해성사”라고 말한 것에 근거하여 교리체계를 쓴 것이다. 건전한 해석들도 있지만 종교개혁자들은 성경 이외의 다른 권위로부터 교리체계를 세우는 것을 금했다. 성경 이외의 모든 오류적 소스들을 치운 것. 그것이 ‘Sola Scriptura’의 본래 의미였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그 말을 할 때는 성경신학, 조직신학을 열심히 공부하고 또 선배들이 이 본문에 대해서 어떻게 해석했는지를 연구하고 이런 것을 포함하여 그 위에 프라이머시를 성경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Nothing but the Bible’로만 가면 뮌스터 사건 때 재세례파가 도시에서 성경 이외의 모든 책을 불살라 버렸음을 기억해야 한다. ‘Sola Scriptura’를 그렇게 이해하면 그런 양상도 나타날 수 있다. 이런 점을 생각해 보면 좋겠다. 사회자 : 교리가 삶으로 연결되려면 교육적으로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 정요석 목사 : 교회 개척 후부터 신앙고백들을 가르쳤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 돌트 신경까지. 그렇게 가르치면 성도들의 반응이 어떠했겠나? 학교에 온다는 느낌을 받더라. 이번에 많은 반성을 했다. 교회는 학교가 아니라 예배와 교제 등 여러 요소들이 있어야 하는데 교회를 학교로만 만들었구나. 그 이유를 살피니 내 자신이 교리를 잘 모르는 것이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그 자구에 얽매이지 않고 그것이 본래 무엇을 가르치려 하는 것인지를 이야기 해 줘야 했다. 오직 성경(Sola Scriptura)과 더불어 전체 성경(Tota Scriptura). 그래서 요즘엔 성경 전체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주제별로 정리하고 있다. 조직신학의 경우와도 같다. 이를 표현할 때, 예컨대 원에 대한 정의가 ‘평면에서 한 정점으로부터 일정한 거리에 있는 점들의 자취’라 한다. 그런데 이 정의를 듣고 바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실제로 원을 그리거나 해서 실상을 보며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원을 설명해 주어야 한다. 그래서 내가 먼저 더 많은 공부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이 교리가 역사적으로 어떤 배경에서 나왔는지를 이해하고 우리의 전 삶을 통해 재미있고 쉽게 설명하려고 애쓴다. 교리가 와 닿지 않는 이유는 교리의 추상적인 부분들을 이해하는 능력이 부족해서 그렇다. 그것을 극복하려면 도리어 교리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탁구를 잘 치는 사람은 다른 것보다는 ‘많이’ 쳐서 그렇다. 그렇게 연구도 하고 즐거워진다. 여행과 독서 등, 삶의 여러 소소한 경험들을 활용하여 교리를 더 잘 가르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유력을 높이고 구체성을 갖고 일반 성도들이 쉽고 재미있게 느끼고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사회자 : SNS 홍수 시대에 그것의 활용에 대한 생각은? 이승구 교수 : SNS 활용은 개혁신학의 구체적 현장 속에서의 소통이라 하겠다. 물론 인터넷 윤리, 셀프컨트롤이 필요하다. 그렇더라도 마치 종교개혁시대에 수없이 많은 트랙(track)들, 소책자들이 나왔던 것을 생각하자. 성경만 인쇄된 게 아니라 ‘오직 성경’을 강조한 분들이 수없이 많은 책들을 냈다. 그러나 아무도 안 읽었다면 소용이 없다. 그런데 상당히 많은 책들이 몇 년 안에 20만부가 팔리기도 하고 그랬다. 오늘날 신학 서적들이 그렇게 많이 팔리지 않는다. 많이 읽어야 많이 쓰게 되는 것이다. 그걸 도울 수 있는 것이 SNS이다. 덧붙이자면 나쁜 이야기보다는 좋은 이야기를 해야 한다. 포장해서 거짓을 말하자는 게 아니라 부정적 감정을 직접적으로 노출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기왕이면 우리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들을, 좋은 얘기들을 많이 해야 한다. 마치 종교개혁시대의 그 많은 트랙들처럼 말이다. 사회자 : 목회자에게 종교개혁이란 어떤 의미인가? 변세권 목사 :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나와 좀 더 성경을 깊이 이해해 보자는 것이다. 그래도 우리에겐 기본적으로 개혁주의 씨앗이 있으니까 그걸 키워서 사역지에서 어떤 형태로든지 성경의 정신과 본질에 따라서 수행해 나갈 때 보람 있고 행복한 것이다. 이것이 어색하고 어렵다고 해서 자꾸 피하고 거기에 넘어진다면 목회 현장에서 합신 출신들은 그렇게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힘들어도 개혁주의 교회관을 인식하고 나아가면서 이 사상 체계를 또 다른 후배 사역자들, 성도들에게 이식을 시켜야 한다. 싹을 키워 내보내야만 한다. 같은 체계 안에서 보호자, 울타리가 되어야 한다. 개인이 개척해 나가서 혼자 이런 문제로 방황, 고민하는 게 아니라 잘 짜인 정돈된 질서 안에서, 그 사상 안에서 이 문제를 풀어 줘야 한다. 사회자 : 앞서의 언급에 대해 덧붙여 달라 김기홍 목사 : 여기에는 30대 초반부터 70대 후반과 젊은 신학생까지 모여 있지만 사실 온전하게 생각을 공유하진 못한다. 당부하고 싶은 것은 한 쪽 면만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나만 옳다’, ‘우리만 다르다’고 생각하지 말자. 우리 주변에 우리와 조금 다르지만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수고하고 헌신하는 분들이 많다. 우리는 우리가 바르다는 것 때문에 상대를 비하하는 오류를 범할 가능성을 내포한 연약한 존재들이다. 여기 신학생들, 당연히 학생 시절 공부도 해야 하지만 옆을 볼 줄 알고 함께 갈 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목회사역,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일이 매우 어려움에 직면한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연합과 일치, 화합, 용서하는 것이다.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는 것이다. 합신 재학생 김동권 전도사(3학년) : 종교개혁은 어찌 보면 소통의 활자 개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청소년들과 유대 중이다 보니 그들의 언어로 다가가는 것이 어디까지 가능한지에 대한 고민들이 생긴다. 또 그들과 부르는 ccm들도 많다. 개혁주의로서 어디까지가 허용 범위이고 기준은 무엇인가? 이승구 교수 : 두 가지를 생각하자. 먼저, 어린 대상들과 교수들은 접촉점이 약하지만 학생들은 더 나을 것이다. 많이 소통하며 그들의 언어로 접촉점을 찾는 것은 좋은 일이다. 둘째, 그러나 예배 때는 예배에 맞는 언어와 찬송이 있다. 이 점을 지켜 나가야 한다고 본다. 사회자 : ’나에게 종교개혁은 무엇이다’ 한 마디씩 부탁드린다. 안상혁 교수 : 한스포르트의 경우도 그렇지만. 우리의 사역은 조건적이다. 내가 말씀에 붙어 있는 한 하나님의 사역자이고 그 백성을 위해 쓰임 받는다.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한가? 루터와 종교개혁자들이 사역자들에게 요청하는 것은 그런 것이다. 마치 바울이 인간의 부패한 본성을 지적하고 자신도 회개했듯이 우리는 날마다 그리스도 중심, 말씀 중심으로 자신을 갱신하는 것. 종교개혁의 의미란 나에게 그런 점에서 긴장을 준다. 이승구 교수 : 종교개혁 500주년을 지나면서 최소한 세 가지 실천적 캠페인을 하고 싶다. 개혁주의 교단으로서는 적어도 올해 이 후에는 반드시 시정해야 할 것들이 있다. 첫째, 예배당 앞부분을 제단이라고 하는 것이다. 여기에 아무나 못 올라가고 목사님과 청소하는 자만 올라간다. 루터와 개혁자들의 가장 큰 가르침이 예배는 제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예배 인도자는 제사장, 사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 안에 지금도 사제라 생각하는 일이 있다. 따라서 새벽제단, 가정제단 등, 예배하는 것을 제단 쌓는다고 표현하는 일도 없어야 하겠다. 둘째, 개혁자들은 모든 성지 순례의 관습을 없앴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어디든지 성지이고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삶이 순례자의 삶이다. 따라서 우리 개혁파 교회에서는 성지 순례라는 말이 나오면 안 된다. 그걸로 다른 신자들을 비난하라는 게 아니라 이것을 아는 우리가 먼저 그렇게 하자는 얘기다. 셋째, 예배당 전면에 십자가를 거는 것을 하지 말아야 한다. 개혁파 전통이 그렇다. 루터파는 상은 없앴지만 십자가는 남겨 두었다. 장로교회는 없앴다. 우리는 그 전통이 있다. 당장 없애진 못하더라도 모두가 이 문제를 인식해야 하며 결국엔 그 방향으로 가야 한다. 정요석 목사 : 개혁주의는 옳고 그름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비판하기 쉽고 서로 분리하기도 쉬운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옳고 그름을 드러내는 이들이 자신의 개인적인 이익이 충돌이 되면 더 이상 옳은 것을 취하지 않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러면 옳음(바름)을 드러내고 주장하는 사람이 틀린 길을 가는 것인데 그래서 많이 비판을 받고 미워 보이고 그런 듯하다. 그래서 나는 SNS에 글을 올릴 때도 항상 아내에게 허락을 받고 올린다. 더 자극적으로 표현을 하면 더 많은 사람이 호응할 수 있겠지만 내가 지킬 수 있는 말 정도만 하고 절제하는 것이다. 내게 종교개혁의 의미는 내가 말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내 자신을 얼마만큼 부정하는가. 여기에 있다. 변세권 목사 : 합신 신학을 하고도 교회 밖을 나가면 복음주의의 옷으로 갈아입고 이중적 생활을 하는 상황을 보면서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예를 들자면, 프랑스 신앙고백서.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들을 공부하거나 설교하고 나서 그 뒤에 뒷받침해서 성경본문을 중심으로 그 근거를 가르치면 훨씬 개혁주의 신학으로 설교하고 목회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오늘 내게 종교개혁이란 매우 실제적인 부분으로서 교회나 노회적 차원에서 재산 전부는 아니더라도 사례비나 기타 수입들을 공동의 통장에서 관리하며 필요한 만큼 함께 쓰는 공여의 정신을 실천해 가는 쪽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구체적 실천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정창균 총장 : 돌아가신 지도 교수님이 늘 개혁주의란 것은 두 가지 방향이 있어야 한다고 하셨다. 먼저는 ‘우리는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 즉 ‘어떤 전통을 가지고 있는가’이고 또 하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즉 ‘어떻게 살고 있는가?’이다. 개혁주의의 핵심은 ‘오직 성경’, ‘하나님의 절대주권’이다. 그것을 배우고 그것이 우리의 전부가 되는 삶을 살다 보니 모르는 사이에 지나는 현실에 대해 삶의 현장들에 대하여 매우 담대해진다는 것을 느낀다. 우리 하나님은 참 좋은 분이시다. 오늘 여기서 죽이신다 해도 감사할 것 같다. 개혁신학을 품은 개혁주의자라서 아니라 ‘개혁신앙가’로 사는 것이 나를 담대하게 한다. 김기홍 목사 : 나에게 종교개혁 500주년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들을 위하여 주어진 자리에서 작은 일부터 최선을 다해야 하겠다는 다짐과 실천이다. <끝>
1213 no image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칼럼| 우리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_김수연 목사
편집부
976 2017-10-25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칼럼 우리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 < 김수연 목사_서부제일교회 > 스스로에게 질문하지 않으면 우리는 새로워질 수 없으며 본질로 돌아갈 수 없다 우리의 지식, 경험, 편견이 아닌 하나님 말씀 앞에 진실하게 묻고 그분 안으로 들어가야 사람이 먹는 물은 정수의 과정을 거쳐 생수가 된다. 오랜 세월을 거쳐 땅 속으로 스며들면서 정화될 때 맑고 깨끗한 생수가 된다. 빗물이 지하로 흘러 들어가지 않고 땅 위로만 흐르는 물은 먹을 수 없는 것이다. 진정한 생수는 땅으로 스며들어 정수의 과정을 거치고 그리고 밖으로 분출될 때 생수가 되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에비앙’이라는 생수가 있다. 이 생수는 프랑스 에비앙 마을에서 퍼 올리는 생수이다. 이 에비앙의 생수는 15년 동안 땅 속에서 걸러진 물이라고 한다. 알프스 산의 눈 녹은 물이 땅 속으로 스며들어가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에비앙에 이르기까지 최소 15년이 걸린다고 한다. 그처럼 장기간에 걸친 내면화된 물이 밖으로 나올 때 그 물은 ‘에비앙 생수’가 되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정제된 깨끗한 생수를 마시기 원할 것이다. 하나님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우리의 삶이 그러한 삶이되기 위해서 우리의 공동체가, 교회가 그러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그분에게서부터 정화되는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의 어떤 사고, 관습, 방식… 이러한 것을 그냥 그대로 흘러 보내는 것이 아니라 땅 속 깊이 내면화해서 정제한 후에 나오고 분출하는 생수같이 우리도 하나님 그분 안으로 들어가서 정제되고 새로워진 후에 우리의 삶으로 나와야 하는 것이다. 그리할 때 우리의 삶이 진정으로 의미 있는 삶, 생명력을 가진 삶, 공동체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묻고 또 물어야 한다. 나는 지금 바로 가고 있는가?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하여 하고 있는가? 내가 지금 하나님 앞에서, 말씀 앞에서 옳은가? ‘주님, 내가 지금 주님 앞에서 옳은 삶을 살고 있습니까?’ ‘주님, 우리가 지금 주님 앞에서 옳은지요?’ 이 질문이 없으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속고, 세상에 속고 만다. 지금 나는 잘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자신에 대해, 공동체에 대해서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질문하지 않으면 우리는 주의 이름으로 살고, 주의 이름으로 무엇인가를 한다고 하지만 하나님 앞에 합당치 못한 일을 하고, 그 방법으로 일관하게 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우리는 새로워질 수 없으며 본질로 돌아갈 수 없다. 우리가 스스로에 대해 질문할 때 고민하게 되고, 고민함으로 깨닫게 되고,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가게 된다. 하박국 선지자의 질문은 선민인 이스라엘이 아시리아의 침략을 받고 고통을 당하는데 왜 선민인 우리가 이러한 부당한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그가 보기에 선민이 고난 받고, 침략을 당하는 것은 부당하고 잘못되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 계속 묻는다. 왜 악인은 형통하고 의인은 고난을 당해야 되는지.. 그때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 2:4절). 그 말씀을 듣는 순간 하박국은 자신과 이 민족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 합당치 못한지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옳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바른지를 알고 찬양한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 3:17-18절). 시편의 기자도 선한 사람들보다 악인들이 잘되고 형통함에 대해 분노하고 고민하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된다. 그때 그는 깨닫게 되고 이처럼 고백다.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시 73:17절). 그리고 하나님을 찬양한다. 마틴 루터가 수도사가 되고 나서 어느 날 그에게 찾아온 도전은 ‘이것이 옳은가?’였다. 선행을 한다고 하지만 몸과 마음으로 죄를 짓는 자신이 과연 구원받을 수 있는 존재인가 하는 의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가톨릭의 법에 따라 고해성사를 밥 먹듯이 했다. 하고 또 하고 하루에 일곱 번씩, 많을 때는 스무 번까지 했다고도 한다. 그렇게 고해성사해도 자유롭지 못했다. 그가 27세가 되던 해 1511년 그는 로마를 방문한다. 로마에는 라테라노 대성당이 있는데 그 성당에는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재판 받으실 때 오르셨던 28계의 ‘성계단’이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곳을 무릎으로 기어 오르내리면 죄 사함을 받는다고 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오르락내리락 함으로 계단이 다 닳을 정도였다. 루터도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그 계단을 오르내렸지만 마음의 평안함이 없었다. 이렇게 고행을 계속하고 있을 때, 그 마음속에 성령으로 들려오는 음성이 있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마암아 살리라.” 우리는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바로 말씀 안에 있기 때문이다. 하늘에서 내린 비가 마치 땅 속 깊이 스며들듯이,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안으로, 말씀 속으로 스며들어 갈 때 거기서 정제되고 거기서 지혜를 얻고, 거기서 마음을 얻으며 거기서 새로워진다. 말씀을 볼 때 기도하게 되고 기도하면서 말씀을 보고, 이것이 바로 나를 정제하고 새롭게 하는 길이다. 여기서 우리는 답을 얻는다. 마틴 루터의 개혁의 시작은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전통과 계율이 그를 깨운 것이 아니라 바로 말씀이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 1:17절) 그리고 그는 ‘오직 믿음’, ‘오직 성경’, ‘오직 은혜’라는 기치를 내걸고 개혁을 위해 부르짖었다. 인간이 지닌 모든 문제의 해답은 하나님 말씀 안에 있다. 우리가 어떻게 본질로 변화되어 가야 할 것인가는 바로 성경이 말해 준다. 내가,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 것인지는 학자들의 논리가 아니라 성경이다. 성경이 우리의 나침반이요 성경이 우리의 잣대인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교회가 어떻게 가야하는지에 대해서, 우리가 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해서 묻고 또 물어야 한다. 교회가 무엇인지, 주님이 세우신 교회가 어떤 교회이고, 우리를 통해 세우시고자 하는 교회가 어떠한 교회인지… 그리고 철저히 성경 말씀을 토대로 오늘을 보고 앞으로를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사람에게 좋은 교회로 서기 위해 묻고 또 물어야 한다. 이것은 개인적으로도 마찬가지다. 말씀 속으로 들어가고 하나님 그분 안으로 들어가 나를 정제하고 우리 스스로를 새롭게 할 때, 우리는 그 속에 머물지 않고 분출하게 되는 것이다. 생수의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무엇이 잘못되었고, 무엇이 바르지 못하다는 것을 깨닫고 그 해답을 찾았다면 행동하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물이 지하 깊이 저장되어 있으면 또한 아무 것도 아니다. 그것이 밖으로 분출되어야 생수가 되듯이 우리가 깨달은 것을 가지고 밖으로 분출되어야 하듯이 우리는 깨달은 바대로 행동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자기 자신에게 용기가 있어야 한다. 개혁은 자기 자신의 개혁이다. 이것이 먼저이다. 종교개혁의 시작은 세상의 부조리와 죄악을 개혁하고자 하는 의지나 혁명의식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종교적인 타락, 세상의 모순과 부조리를 비판하면서 그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선 것도 아니다. 또한 혁명을 통해 유토피아를 건설해보겠다는 꿈에서 시작된 것도 아니다. 그것은 나 자신의 개혁이었다. 나의 생명, 나의 영혼,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 이 문제의 고민에서 시작이 된 것이다. 자기 안에 개혁이 이루어지면서 그 힘이 교회 속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먼저 자신의 변화, 새로움에 대한 용기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잘못에 대해서 겸손하게 진실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알기는 알지만 행동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우리는 항상 개혁되어야 할 대상이다. 누구도 예외가 없다. 때문에 우리는 항상 하나님 앞에 묻고 또 물어야 한다. 우리가 잘못 가고 있는 것이 느껴지면 하나님 앞에 진실하게 물어야 한다. 우리의 지식, 경험, 편견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 앞에 진실하게 묻고 그 분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왜냐하면 거기서 답을 얻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답을 가질 때 우리는 개혁자의 삶을 살게 된다. 마치 에비앙의 생수처럼 그 생명력을 가진 값진 인생으로, 그러한 공동체로 우리 모두가 설 것이다.
1212 no image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논단| 개혁파 교회의 정체성과 한국교회_이승구 교수
편집부
1001 2017-10-25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논단 개혁파 교회의 정체성과 한국교회 < 이승구 교수_합신, 조직신학 > 개혁자들이 강조한 성경적 교리에 굳게 서서 우리의 믿는 바가 성경에 충실한지 꼼꼼히 따져야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하여 살고, 예배하는 삶이 진정 종교개혁의 충실한 삶 들어가면서 종교개혁 기념일이 다가 왔습니다. 이럴 때에 종교개혁과 그 의미를 돌아보고, 우리가 과연 종교개혁에 충실한 교회인지를 점검해 보는 일은 필수적인 일입니다. 이 글에서는 그렇게 하는 교회를 종교개혁적인 교회라고 상정하고 우리 교회를 점검하는 일을 해 보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개혁교회란 교단명으로서의 개혁교회(Reformed church)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개혁과 그 정신에 충실한 교회를 뜻하는 말로 사용하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는 이 땅의 모든 교회가 개혁 교회가 되기를 지향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성경적 교회인가? 첫째 질문해야 할 것은 당연히 “우리는 과연 성경적 교회인가?”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개혁자들(reformers)은 당대의 교회를 성경에 비추어 점검하고, 당대의 교회 안에 있는 비성경적 요소들을 개혁해 나갔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자신들이 믿는 바가 성경에 비추어 제대로 된 것을 믿는지가 핵심적인 문제였습니다. 종교개혁의 핵심은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날도 천주교회(the Roman catholic church)는 그렇게 믿지만, 당대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이 그 자체로 구원을 위해 충분한 것이 못되는 것처럼, 그 십자가의 공로에 더하여 은혜에 근거하여 인간이 하나님께 순종하려고 노력한 것이 공로가 되어서 구원 받는다는 ‘일종의 이중 공로’적 가르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믿는 자들이 열심히 살도록 하려는 의지에서 나온 것이기는 하나 결과적으로 십자가의 구속만이 유일한 공로라는 것을 손상시키는 가르침이 교회 안에 있었던 것이지요. 그에 따라서 교회의 성례에 대한 이해에도 비 성경적인 이해가 붙어 있어서 신부님이 기도하면 그 축성의 순간에 성찬의 떡과 포도주의 본질이 그리스도의 몸의 본질과 그리스도의 피의 본질로 변화한다는 본질(substance)의 변화(trans)를 가르치는 소위 화체설(化體說, transubstantiation theory)도 나타났고, 그에 따라 성찬의 한 요소인 떡은 성도들에게 주지만 또 한 요소인 포도주는 주지 않는 일과 영성체를 할 때에 무릎을 꿇고 받도록 하는 등 비성경적인 것들을 믿는 것과 그에 따른 실천들이 천주교회 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자들은 이를 성경이 비추어 먼저 우리의 믿는 바의 내용부터 바꾸어 가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일부 사람들이 성경적인 가르침을 받아들이게 되고, 성경적 예배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 종교개혁이 있습니다. 이런 종교개혁을 감사하게 여기며 그 유산을 받아 더 성경적으로 만들어가는 우리들은 개혁자들이 강조한 성경적인 교리에 굳건히 서서 우리의 믿는 바가 과연 성경에 충실한 것인지를 꼼꼼히 따져야 합니다. 성경에 충실할 때 우리는 개혁자들이 강조한 대로 “오직 은혜”(sola gratia)만이 우리를 구원하고 우리를 구원받은 사람들답게 살게 한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행하는 그 어떤 것도 하나님 앞에 공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바울서신이 강조하고 있는 바와 같이, “오직 믿음”(sola fiade)으로 구원 받는 것입니다. 이 둘을 강조하는 것은 결국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께서 행하신 것만이 우리의 구원의 유일한 방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공로에만 의존해 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오직 성경”(sola scriptura)에 근거해서 가르침 받았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에 대한 판단은 다 오직 성경에 근거하고 있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종교개혁의 “형식적 원리”를 “오직 성경”이라고 말합니다. 이 성경에서 배운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그리스도를 합하여 이신칭의 교리라고 할 수 있다면 이 이신칭의가 종교개혁의 “내용적 원리”라고 자주 언급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성경적인 가르침을 전인격으로 온전히 믿고 그에 근거해서 활동하고 생활해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것이 개혁자들이 강조한 “구원에 이르는 신앙”(saving faith)의 본질입니다. 그리고 더 성경의 가르침에 충실해서 믿는 바를 성경적으로 만들어 가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우리는 과연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위해 있는 교회요 그 구성원인가? 그리고 우리들은 개혁자들이 강조한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soli deo gloria)을 위해 존재하며 움직이고 있는지를 심각하게 돌아봐야 합니다. 개혁자들을 움직여 나간 것은 그야말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요,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려고 하는 그 정신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배운 사람들도 오직 그것만을 위해 살았습니다. 충실한 루터파 신자로 살았던 요한 세바스찬 바흐가 그가 작곡한 곡들의 말미에 S.D.G.라고 쓰기를 반복했다는 것은 이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자신들의 집을 지어 놓고 그 앞부분에 Soli Deo Gloria라고 장식한 것들을 많이 본 일이 있습니다. 소박한 사람들까지도 저들의 삶 전체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이라는 그 정신에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고 그것을 잘 전달하며 몇 세대 후의 사람들도 그렇게 집까지 건축해 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라는 것은 그저 구호가 아니었음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개혁자들과 그들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는 그 후예들에게는 저 시골 마을에 사는 사람들까지도 자신들의 모든 것이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하여 있다는 의식으로 가득했던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하여 예배하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하여 사는 그들의 삶이 진정 종교개혁의 충실한 삶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루터가 말하는 진정한 십자가의 신학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종교적인 일을 해도 결국 자신들의 공로를 강조하여 나가는 사람들을 루터는 그의 유명한 하이델베르그 논박(the Heidelberg Disputation, 1518)에서, 영광의 신학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천주교 신학과 그들을 추종해 가는 사람들이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잘 지적한 것이지요. 이에 비해서 진정한 교회의 구성원들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 살기에 이 세상에서나 죽은 후에나 하나님 나라가 극치에 이를 때에나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추구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땅에서 그들은 버림받고, 내쳐지고, 멸시함을 받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길을 따라 가게 되어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기꺼이 그리로 가려고 하는 것이 루터가 말하는 “십자가의 신학”(theologia crucis)의 길입니다. 나가면서 우리는 과연 어떤 교회인가를 다시 물어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적이 아님을 발견하고, 우리가 정녕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 살지 아니하였음을 발견하는 이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을 성경과 성경에 따르는 기독교에서는 회개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교회는 회개하는 교회입니다. 죄를 고백하는 교회입니다. 그것이 출발점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참으로 죄를 고백하는 교회는 또한 성경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라 고백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진정한 고백교회(confessing church)일 수 있습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은 이 시점에서 우리가 이런 진정한 개혁 교회로 나타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는 교회이다”(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라는 말이 우리에게도 잘 구현 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이 말을 사용하는 것만이 능사(能事)는 아닙니다. 우리들 주변에 이 어귀를 오용하는 세력들이 만만치 않게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오직 성경의 가르침에 근거해서 날마다 스스로를 개혁해 나가는 교회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성경이라는 기준이 상실되면 이 땅에 교회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져서 정확무오한 성경을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성경에 근거해서 날마다 우리를 개혁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진정 그런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211 |제102회 총회 섬김의 이야기| 시은교회 봉사팀 첨부 파일
편집부
1129 2017-10-10
제102회 총회 섬김의 이야기 - 시은교회 봉사팀 “역사적 총회, 감사의 섬김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 합력하여 선을 이루심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린다. 바쁘신 중에도 애써 주신 성도님들. 교단의 바른 정체성을 위해 애쓰신 많은 총대님들. 한 회기 총회장으로 수고하신 담임목사님. 102회 총회장님과 임원님들 등 모든 분들께 은혜와 평강이 충만하시길 기도드린다. _ 황의선 장로 ▣ 섬길 수 있게 하신 하나님께 영광 경주에서의 2박 3일은 평생에 잊지 못할 시간들이었다. 준비 과정부터 마치는 시간까지 어떻게 시간이 흘러갔는지 정말 눈 깜짝할 사이였다. 첫날 두려움도 잠시 집사님, 권사님들의 손발이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처럼 척척, 얼굴엔 함박웃음이 가득, 천사의 얼굴이 이보다 아름다울까 싶었다. 차츰 마음의 여유가 생기며 종일 긴 시간 회의에 임하시는 총대님들의 모습이 보이고 그 수고에 자부심과 감사의 마음이 더해지며 102회 합신총회를 더 기쁜 마음으로 섬길 수 있었다. 일 년 전 시작된 시은교회의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_ 조은혜 권사 ▣ 역사적인 총회에 봉사 새벽 6시. 총회가 열릴 경주로 출발했다. 도착하자마자 바삐 움직여 첫 번째 간식 준비를 끝냈다. 회의장 앞 명찰들이 줄어들 즈음, 예배를 시작으로 102회 총회가 시작되었다. 간간히 들리는 찬송과 회의 진행 발언으로 회의장 안 분위기를 추측해 볼 뿐이었다. 시간이 되어 회의장 안으로 들어서자 엄숙함에 긴장감마저 감돌았다. 정성으로 준비한 간식을 내려놓으며 곁눈질한 회의 관련 책자의 두께로 그 분위기를 가늠해 보았다. 종일 이어지는 릴레이 회의. 교회들이 하나님 앞에 날마다 새로워지며 바로서기를 소망하는 마음들이 농축되어 있는 듯한 회의실의 공기. 그 분위기만으로도 우리 합신의 정신이 느껴졌던 2박3일의 총회였다. 역사적인 그곳에 함께 하며 기쁜 마음으로 봉사할 수 있어서 참으로 감사했다. _ 전윤희 집사 ▣ 하나님 앞에 바로 세워 가기 위해 합신 교단에서 헌신하시는 목사님들과 장로님들께 새삼 존경을 보내 드린다. 긴 시간의 회의와 소중한 결의들로 어느 교단보다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세워나가기 위하여 모두가 심도 있게 회의에 임하는 모습에 성도로서 마음 든든했다. _ 이정희 권사 ▣ 오직 감사 금번 우리 합신 총회를 위해 시은교회에 섬김의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먼저 감사드린다. 또 시은교회 담임 최칠용 목사님이 101회기 1년 동안 대과 없이 총회를 잘 받들게 하신 은혜에 더욱 감사드린다. 우리의 섬김에 좀 미흡한 부분도 있었겠지만 총회 기간 중 항상 기쁨과 감사로 화답해 주신 전국의 총대님들과 임원들과 시은교회 봉사 팀에게도 감사한 마음이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다. _ 왕진수 장로 ▣ 합신 교단의 무궁한 발전을 귀한 총회에 개미만한 힘이나마 쓰임 받도록 은혜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릴 뿐이다. 우리 합신 교단의 무궁한 발전을 위해 기도드린다. _ 김현분 권사 ▣ 바른 교회와 총회를 만들어 가심 늘 총회의 결과만 듣다가 실제로 목사님들 장로님들이 모여서 회의를 진행하는 과정을 보며 “정말 진을 빼신다. 무척 힘드시겠구나. 목사님들이 바른 교회와 총회를 만들어 세워 가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구나.”하고 큰 감동을 받았다. _ 윤정숙 권사 ▣ 특별한 솜씨와 세밀한 준비 직장에서 휴가를 허락받고 찬양대로, 간식 서빙으로 일한 경주에서의 2박 3일은 참으로 행복했다. 시은교회 권사님, 집사님들의 특별한 솜씨와 세밀한 준비에 놀랐고 시간마다 겸손히 섬기시는 모습은 은혜가 넘쳤다. _ 김태순 집사 ▣ 미흡한 부분에는 양해를 우리 교회에서 합신총회를 감당하게 되어 감사하다. 총대님들이 기뻐하며 친절하게 격려해 주시는 모습에 감사했다. 우리는 잘 준비하여 섬겼다고 해도 혹 미흡한 부분들이 있었다면 너그러이 봐 주시길 부탁드린다. _ 박정금 권사 ▣ 의미 깊은 총회를 섬김 총회 날은 화창한 가을의 높푸른 하늘이 감동을 더했다. 천년고도 경주에서 제102회 합신총회를 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다. 102회라는 횟수는 역사적 전환점에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의 크기를 생각하게 했다. 특별히 종교개혁 500주년에 열리는 총회이기에 바른 신학, 바른 교회, 바른 생활의 합신의 정체성이 다져지게 하심과 보배로운 개혁의 유산을 물려주신 선진들께 진심어린 감사가 우러나왔다. 시은교회 성도들이 이런 의미 깊은 총회를 섬길 수 있어 참으로 감사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면 인간의 연약함만 나타났을 것이다. 총대님 한 분이라도 편안히 섬기려고 애를 썼다. 준비 기간에는 기도하며 최선을 다했다. 매주 월요일 권사 기도회와 주일의 중보 기도 팀과 및 시은 장로회원들의 기도를 중심으로 모든 지체들이 함께 섬기게 되었다. 101회 총회장이셨던 최칠용 목사님을 비롯, 몸과 마음으로 섬김에 동참한 온 성도님들의 삶이 복되길 소망한다. 또한 함께해 주신 서서울노회 목사님들과 장로님들께도 거듭 감사드린다. 더욱 감사 할 일은 합신의 위상이 한층 높아진 중에 성숙한 모습으로 회의를 진행하고 마친 점이다. 이제 102회 총회의 새 길을 열어 가시는 총회장 박삼열 목사님과 임원 여러분들의 헌신을 위해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기도한다. _ 황인곤 장로 (102총회 준비위원장)
1210 no image |제102회 총회 참관기| 합신 총회에서 누린 하나님의 은혜와 감동_이강식 장로
편집부
1025 2017-10-10
제102회 총회 참관기 합신 총회에서 누린 하나님의 은혜와 감동 < 이강식 장로, 오산성도교회 > 법과 규칙 속에서 서로를 존중하는 질서와 합신의 방향을 바로 세우기 위한 몸부림 부족한 사람이 주님께서 허락하신 귀한 장로의 직분으로 교회를 섬기던 중 총대로 노회에 파송되어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심도 감사한데 노회의 총대로 파송 받아 총회를 섬길 수 있는 은혜 주심에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린다. 1981년 9월 본 합신 교단이 개혁 교단으로 부패한 교권주의에 맞서 분열이라는 지탄과 아픔 속에서도 창립되어 그 해 10월 제66회 총회로 모인 지 올해로 37년. 제 102회 총회가 되었다. 그 동안 합신 총회는 처음의 그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하여 전국 교회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의 기도와 헌신으로 총회의 역사를 만들어 오고 있음에 합신에 소속된 교회의 장로로서 큰 자부심과 감사를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속담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다. 강산이 3번 변하는 동안 문화와 문명은 분명 인간을 편하고 행복하게 만든 것 같은데 세상에 몰아친 거친 바람은 오히려 세상을 더 어지럽고 혼란스럽게 만들고 그 속에서 성도들의 본질적 신앙의 정체성을 유혹하고 흩어 놓고 어지럽히고 있다. 종교개혁의 시발점이 된 그때처럼 교회가 교회의 본질을 잃어버려 갈 때 세상은 그 틈을 타고 동성애와 성 평등, 퀴어(성소수자), 종교인 과세와 같은 주제들을 성경의 진리 안에서 분별하지 않고 세상의 논쟁으로 끌어들여 결국 하나님 창조의 질서와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려는 사탄의 계략으로 이용되고 있다. 신자들은 이러한 세상에서 나갈 방향과 목적지를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이러한 급변하는 혼돈의 세상에서 우리 합신 교단의 102회 총회는 은혜와 감동과 소망을 주기에 충분한 총회였기에 다음 세 가지를 생각해 보았다. 첫째 합신 총회는 감동이 있었다. 어느 교단에도 없는 합신 교단만의 전통이 된 임원 선거의 절차가 102회 총회에서도 그대로 이어졌으며, 각 상비부가 사업 결과를 보고하고 들어갈 때 상비부장들을 일일이 세워 그 수고에 총대들이 진심으로 박수로 격려하고 또 그렇게 회의를 이끌어 가는 총회장님의 회의 진행에서 감동을 받았다. 어렵고 힘든 논쟁의 주제를 두고 비록 늦은 시간이지만 충분히 토론할 수 있도록 회원의 언권을 보장하며 격론이 예상되는 논제는 서로 반대 주장자들이 언성을 높여 상대를 지적하고 폄하하기보다는 인격과 품의를 지키며 부드러움 속의 날카로움을 통해 서로의 주장의 당위성을 회원들에게 설명하는 노력들을 보였다. 둘째, 합신 총회는 질서가 있다. 어느 회나 질서가 무너지면 혼돈을 일으키며 혼돈 속의 결정은 자칫 오류를 범할 수 있게 된다. 질서의 기본은 규칙의 준수이며 법의 준수이다. 우리 총회는 헌법과 규칙의 준수가 잘 이뤄지는 총회이다. 16년 전 처음 총회에 참석했을 때 어느 총대가 “법이요!” 하니 그 때 발언하는 분은 그 ‘법이요’를 외친 총대보다 대 선배인 연세가 많은 총대였다. 그렇지만 그 선배 총대는 그 법이란 말 앞에 자리에 앉았고 총회장은 그에 대한 해석을 증경총회장님 중 한 분에게 물었으며 논쟁은 그렇게 해결되었던 것을 기억한다. 이번 102회 총회에서도 그 전통과 헌법과 규칙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회의 진행과 총대들의 모습을 보면서 몇 해 전 타 교단 총회의 무질서했던 모습이 뉴스를 통하여 이슈화 되던 기억과 교차되며 총회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 총회는 헌법과 규칙 속에서 서로를 존중하는 질서가 있어 감사했다. 셋째, 합신 총회는 새로운 개혁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잘못 표현하면 교만이 될 수 있고 나가서 자가당착에 빠질 수도 있을 것이다. 잠언 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라고 했듯이 혹 우리 스스로 교만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닐까? 성경은 시대를 분별하는 지혜를 가지라 한다. 우리는 현 시대를 어떻게 볼 것인가. 분명 이 시대는 신학의 혼란과 성경의 왜곡 그리고 신자의 삶이 세상에서 본이 되지 못하는 시대이다. 한국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도전 받고 있다. 인권이라는 미명 아래 하나님의 신권에 도전하는 세상이 또다시 바벨탑을 쌓아가는 시대에 한국교회는 당연히 서야 할 자리에 서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총회는 이번 총회에서 우리의 신학적 정체성을 토대로 수없이 고민하고 토론하며 때론 의견의 충돌 속에서도 합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의 키를 바로 세우기 위한 몸부림을 쳤다. 총회의 고뇌의 결정 앞에 순종이라는 성숙함과 우리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고 다짐하는 시간이었다. 합신 총회의 모습은 분명 어두워져 가고 부패해 가는 세상 속에서 주님의 진리의 터 위에 세워진 교회를 그 악한 세상으로부터 보호하고 지켜 나갈 수 있다는 소명을 분명히 보여 주고 그 방법을 제시했다. 1536년 3월 칼빈의 ‘기독교강요’가 스위스 바젤에서 출판된다. 그는 종교개혁자들의 왜곡된 죽음과 이단으로 매도됨을 변론코자 기독교강요를 집필하였다. 우리 합신 교단은 이 시대의 한국교회에 필요한 개혁신앙의 주체로써 교회를 세상으로부터 보호하고 악의 세력과의 싸움에는 분명한 태도로 주저하지 않는 것이 우리 교단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한다. 102회 총회는 나에게 16년 전 처음 참석했던 총회에서의 그 감동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는 은혜의 시간이었다. 주님은 분명 합신 총회에 역사하고 계심을 총회원 모두 인정할 것이다. 이번 총회를 섬기신 모든 총대님들과 회의를 위해 첫날부터 끝날까지 헌신하신 서서울노회, 시은교회 당회와 성도님들의 헌신에 감사드리며 또한 총회 준비를 위해 많은 시간 수고한 총회 총무 목사님과 실장님, 간사님들의 수고와 헌신에 감사하며 부족한 글을 맺는다.
1209 |국토순례 체험기| 하나님을 만나고 서로를 만난 국토순례대장정!_김현규 전도사 첨부 파일
편집부
1113 2017-09-18
역곡동교회 국토순례 체험기 하나님을 만나고 서로를 만난 국토순례대장정! < 김현규 전도사_합신3학년 > 교인들은 소통하며 하나 되고 더 많은 새 친구들이 주님께로 돌아오는 계기 역곡동교회(담임 김병진 목사)에서는 7월 30일(주일)부터 8월 3일(목)까지 4박 5일 동안, Grow within Faith (믿음 안에서 자라라)의 슬로건을 가지고, 강원도 춘천 및 화천일대를 일주하였다. 이 국토순례대장정은 다음세대 어린이, 청소년들이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데 초점을 둔다. 또한 하나님나라의 일꾼으로서 인생을 어떻게 준비하며 어떤 목적으로 살 것인지를 발견케 하는 기획인데 올해로 7회 째이다. 이는 일반 국토순례와는 비교가 안 되는 특별함이 있다. 그것은 경험 쌓기를 뛰어 넘어 참석자 모두가 ‘하나님을 전인격적으로 만나기를 갈망하는 특별함’이다. 하나님과의 만남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우리는 오직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이 시대는 성경 읽기를 거부하며 말씀대로 살아가는 능력과 기쁨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을 진실로 만나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 모든 일에 무기력해 왔던 다음세대 아이들은, 매일 저녁집회의 찬양과 말씀 시간을 통해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우상을 불태워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을 경외하였다. 그 동안 잃어버렸던 예배자로서의 정체성을 되찾고 말씀 앞에 ‘아멘’으로 반응하는 예배자로 서게 되었다. 저녁 집회 마지막 날, 진리의 말씀으로 무장된 자녀들은 강물 같은 하나님의 은혜에 그저 눈물을 흘리며 감사할 뿐이었다. 영적 리더십 4박 5일의 일정은 친밀한 공동체 활동으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낮 기온 35도를 넘나드는 땡볕 아래의 행군은 감사보다는 불평이 나오게 할 법하다. 그러나 놀랍게도 아이들의 모임은 넉넉한 관용과 포용의 모습들로 가득했다. 남의 잘못을 너그럽게 용서하며 감싸 주거나 힘들어 하고 지쳐 있는 친구들에게 다가가 끝까지 손을 잡아 주는 모습은 마치 예수님이 보여 주신 영적 리더십의 모습을 느끼게 했다. 또한 담임목사님은 다른 일정을 제쳐두고 국토순례의 모든 일정에 참여하여 한 명도 빠짐없이 은혜 받기를 위해 끝까지 기도해 주셨다. 특히 하나님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찬양하는 그 모습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예배해야 하는가를 보여 주었다. 전 부서간의 소통 한국교회 안에 유입된 개인주의는 교육부서 아이들의 소통을 방해하는 치명적 아픔을 초래했다. 다른 부서의 형·누나·동생·친구들과 한 공간 안에서 공동체 생활을 한다는 것은 이제 지난한 일이 된 듯하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역곡동교회는 국토순례의 과정을 통해 초등부부터 장년에 이르기까지 전 부서에 속한 구성원 간의 세대를 아우른 친밀한 소통을 체험했으며 장차 교회 안에 든든한 영적 멘토의 관계가 형성되리라 기대하게 되었다. 전도의 매개 역곡동교회의 국토순례는 모든 아이들이 풍성한 은혜 받기에 집중하는 것뿐만 아니라, 잃어버린 영혼을 소중히 여기는 전도의 계기로 삼고 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친구들이 교회에 첫발을 딛는 중요한 매개가 된다. 앞으로 계속될 국토순례대장정을 통해 교인들은 더욱 소통하며 하나 되고 더 많은 새 친구들이 주님께로 돌아오며 이 시대에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1208 |2017년 전국여전도회연합회 수련회를 마치고|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_허인숙 권사 첨부 파일
편집부
1067 2017-09-06
2017년 전국여전도회연합회 수련회를 마치고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 < 허인숙 권사_대구 동남교회 >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인식의 강화와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자유와 복됨의 확장 할렐루야! 전국여전도회연합회를 창설케 하시고 오늘에 이르게 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린다. 제82회 전국여전도회수련회를 맞이하며 긴 시간 동안 여전도회연합회를 섬겨 주시고 많은 믿음의 후진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일깨우고자 헌신하신 신앙의 선배님들의 뜨거운 사랑을 생각할 때 가슴이 뭉클해졌다. 어느 해나 비슷하지만 올해 여름은 폭염주의보가 유난히 잦았고 더위로 참 힘든 나날들을 보냈다. 그러나 우리에게 있는 것으로는 도무지 알 수도 없고 볼 수도 없으나 초월하신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분명 한반도의 폭염에 마땅한 이유가 있었으리라 하여 무더위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찬양했다. 매년 이 때쯤이면 각 교회의 여름 행사들이 끝나고 이어 전국여전도회 수련회가 열린다. 지교회에서 늘 봉사하고 헌신하는 여종들을 불러 모아 위로와 격려와 도전의 기쁨으로 충만케 하시는 하나님! 특히 올해 수련회는 교회가 아닌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소망수양관에서 열렸다. 이곳 수양관으로 장소가 정해지기까지는 많은 분들의 수고와 애타는 간절한 기도가 있었고 그 수고와 기도가 응답되어 예상외의 많은 분들이 참석하셨다. 우리의 빈약한 믿음에 비하여 늘 풍성한 은혜로 채우시는 하나님을 어찌 찬양하지 않을 수 있으랴! 참석한 모든 분들은 전혀 불편함이 없는 좋은 시설에서의 수련회를 매우 만족해 하셨다. 모든 일에 장단점이 있듯이 아쉬운 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교회의 아름다운 섬김의 모습을 보며 얼마나 감사하고 감격했던가! 또 불편한 가운데서도 여러 연합회가 한자리에 둘러 모여 웃고 얼굴도 익히며 은혜 받았던 시간들이 이제 그리움으로 남았다. 앞으로 어떤 시설에서 연합회를 할 경우 이런 교제의 장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숙제도 주어졌다. 그동안 섬겨 주셨던 큰 교회들도 여성도님들의 직장 생활로 섬기는 손길들이 태부족이고 우리의 생활환경도 많이 개선이 되다보니 수련회의 장소에 따라 참석 인원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이러한 가운데 ‘신앙생활 깊이하기’란 주제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란 표어를 외치며 시작된 2박 3일의 수련회. 초청된 강사 목사님들께서도 매시간 열정적으로 말씀을 전해 주셨다. 성경 속의 많은 인물들, 하나님을 사랑하고 쓰임 받은 인물임에도 하나님은 왜 그들을 극한고난과 고통 가운데 그냥 두셨는지 오늘날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이점은 늘 물음표이다. 그러나 그것은 오늘날의 우리에게 위로와 격려와 소망을 주기 위함이며 우리를 사랑하시고 하나님 그분의 이끌어 가시는 방식이라는 것을 성경말씀으로 증거해 주셨다.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을 다시 깨달으며 이제는 고난가운데서도 씨익 웃을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자고 다짐해본다. 또 이 시대에 사탄이 도구로 사용되는 동성애는 영적 전쟁의 선포라고 하셨다. 그들의 실체는 정말 충격이었다. 온갖 미사여구로 포장이 된 사탄의 도구 동성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안일했던 생각과 무지했던 삶을 회개하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게는 그 시대의 역할에 대한 하나님의 요청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또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의 안식에 관한 말씀에서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 존재에 대한 인식의 강화와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자유와 복됨을 크게 확장시켜 주었다. 한 부분이지만 교회사에서는 오늘날 우리의 예배가 얼마나 경한지 하나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이 땅의 모든 교회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에 합당한 예배가 드려지기를 간절히 소원하며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1207 |2017 농어촌 목회자 가족 수련회를 마치고| 영광, 순교지의 감동과 은혜_박원열 목사 첨부 파일
편집부
1156 2017-09-06
2017 농어촌 목회자 가족 수련회를 마치고 영광, 순교지의 감동과 은혜 < 박원열 목사, 성산교회 > 순교지에서 순교했던 신앙 선배들의 찬양이 들리는 듯 손꼽아 기다리는 모임이 있다. 농어촌 목회자 모임이다. 그리운 농어촌 목회자 가족들을 볼 수 있고 각 교회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공유하는 시간이기에 항상 기다려진다. 지난 2006년 첫 모임이 시작된 후, 각 지역 교회를 돌아가면서 탐방하며 형편을 알게 되었고, 2010년부터는 8월말에 가족수련회로 모이고 있다. 올해는 8월 21일(월)―23일(수) 전남 영광군 야월교회 순교기념관에서 열렸고, 연인원 70여 명이 참석하였다. 이번 수련회의 장소는 순교자의 발자취가 있는 역사적 현장이어서 그 땅을 밟기만 해도 우리의 신앙이 도전을 받을 것 같아 설렘으로 기다렸다. 가는 길에 장대비가 쏟아졌지만 무사히 30분 전에 약속 장소에 도착하였다. 제주노회 회원들은 먼저 와서 쉬고 계셨고, 전남과 전북노회 간사가 와서 회원들을 맞을 준비를 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만남의 배고픔을 안고 전국 각지에서 회원들이 삼삼오오 차에 동승하여 달려왔다. 경북노회 회원들이 마지막으로 도착했다. 강원과 경기북노회 회원들이 보이지 않아 아쉬움이 남았다. 야월교회는 미국 남장로교에서 파송한 유진벨 선교사에 의해 1908년 설립되었다. 이곳 교회는 1950년 9월-10월에 걸쳐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전교인 65명은 공산당에 의해 생매장과 수장으로 잔혹하게 순교 당했으며, 교회당도 불태워지는 아픔을 안고 있다. 숫자와 상관없이 전 교인이 순교 당한 교회는 전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힘든 커다란 사건이라고 한다. 또 가까이에 있는 염산교회(1939년 야월교회에서 분립)는 6.25 전쟁 때인 9월 29일 군경이 영광에 들어왔을 때 미처 퇴각하지 못한 공산주의자들이 10월 7일 교회당을 태우고 성도 4분의 3인 77명을 바닷가 수문통에서 수장시켰다. 이 역사적인 현장에서 시간마다 강사들의 귀한 말씀 선포가 이어졌다. 총회장 최칠용 목사님은 “목회가 행복할 때”란 말씀을 통해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끊임없는 경건의 훈련을 하며 한 영혼에 목숨 걸고 목회하라고 했다. 말씀샘교회 정병선 목사님의 “임마누엘과 성령의 오심”란 말씀으로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을 성전 삼으시기 위해 예수님을 통해서, 성령님을 통해서 하시는 일들을 생각했고 새생명교회 김경렬 목사님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씀으로 30여 년 버틴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며 하나님의 은혜는 오늘도 계속된다는 것을 확인했다. 농어촌교회를 평생 섬기시고 은퇴하신 조효환 목사님의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는 말씀은 하나님은 어려움 중에 찾아오시는데 광야에 내몰리게 하시는 경우 거기서 자신을 돌아보고 겸손해지는 훈련을 하라고 했다. 농목회 회장인 용연교회 이은국 목사님의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을 통해 수련회를 준비하면서 느꼈던 마음들을 나누었고, 농어촌부 부장 김석만 목사님의 “너희 상이 큼이라”는 말씀을 통해서는 신앙 선조들의 한순간의 순교도 귀하고 농어촌교회 목회자들의 삶에서의 긴 순교도 귀하다는 하나님의 세밀한 음성을 듣고 한 마음을 가졌다. 농어촌에서 목회하다 보면 ‘혼자’라는 외로움이 몰려드는데 나 혼자가 아니라 같은 길을 가는 많은 동역자들이 있다. 전국적으로 흩어져 있어도 농어촌목회 현장이라는 공통점이 있기에 소소한 삶의 숨김없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고 공감하며 기쁨과 슬픔을 나누고 기도하는 동지로써 10여 년을 함께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해를 거듭할수록 끈끈한 정으로 이어지는 이 모임을 통해 농어촌 목회자의 자세를 만들어 갈 수 있어서 참 좋다. 농어촌 목회 선배로서 그 자리에서 묵묵히 버티어 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또한 그동안 사역 현장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궁금한 소식들과 어려웠던 일들을 어떻게 극복했는지도 나누면서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 주며 위로하고 기도하며 감사했다. 영광은 볼거리도 많고, 먹거리도 많았으며 특히 야월리 갯벌 체험은 갯벌 구경하기 힘든 제주와 경북과 양산에서 오신 분들이 무척 좋아했다. 백 가지 문양을 가지고 있다고 백합조개라 부르게 되었다는 백합조개와, 걸어 다니다 밟히면 줍기만 하면 되는 동죽, 소라까지 신나게 잡으며 어린아이들처럼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전남노회 임원님들이 맛있는 간식을 가지고 찾아와 격려하므로 또 한 번의 환호성을 질렀다. 이제 우리나라 교회도 선교 2세기가 되어서 기독교 문화와 역사의 중요성 깨닫는 시기가 되었다. 그래서 특별히 최근에는 우리나라 교회들이 기독교 역사 탐방을 많이 한다. 그래서 농어촌 목회자 모임에서도 “순교자의 발자취를 따라”란 주제를 통하여 1차 증도의 문준경 전도사, 2차 손양원 목사 생가와 주기철 목사 기념관에 이어 올해 3차 영광의 염산교회와 야월교회를 방문하게 되었다. “죽으면 천국 가요!”하면서 순교했다는 영상과 강의를 통해서 우리의 무력한 신앙을 다시 한 번 다잡는 계기가 되었다. 세계 교회 역사에 기록되어 있는 순교지에서 한결같은 신앙의 절개로 순교했던 신앙의 선배들의 찬양(울부짖는)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1206 |2017 농촌교회 비전트립| 6월 19일-22일 첨부 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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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 2017-08-23
2017 농촌교회 비전트립 >> 6월 19일-22일 << <노암교회에서> 농어촌은 가까이 있는 선교지 김신영 전도사 농촌은 수많은 영혼들이 하나님의 복음을 기다리고 있는 선교지이다 신학교에 오기 전 직장 일에 관련하여 농어촌교회를 여러 곳 다니며 여러 목회자 분들과 교제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자연스럽게 농어촌교회의 현실을 접하게 되었고 관심을 가지고 기도하게 되었다. 3박 4일 동안 세 곳의 교회를 다녀왔다. 분주한 일정만큼 세 분의 목사님을 만나며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두 번의 노방전도로 농촌도 다 같은 곳이 아니며 지역과 환경에 따라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잡초 제거와 나무 옮겨심기, 페인트칠, 땅을 파는 작업들을 통해서 농어촌의 고된 일상을 잠시나마 느끼며 농어촌 교회의 성도들의 삶을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도달한 생각은 '목회란 무엇인가?'였다. 각 목사님의 성향마다 다양한 목회의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 내가 걸어가게 될 길이 무엇인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교회를 어떠한 모습으로 빚어가기를 원하시는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래에 그것을 적어 보았다. 목회란 밭을 일구는 것이다 이번 비전트립을 다녀오며 농사와 목회는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우리가 가장 많이 했던 일 중 하나가 바로 잡초 제거이다. 새소망교회 목사님은 "농촌목회는 잡초 제거와 같다."고 말씀해 주셨다. 잡초 제거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티가 잘 나지 않는다. 성도들과 함께 살아가며 매일과 같이 섬김으로 마음의 밭을 일군다. 성도들의 마음의 밭에 자라난 잡초들을 말씀으로 그리고 사랑으로 제거해 준다. 주변 사람들은 그 수고를 알 수 없다. 아무리 열심히 수고해도 잘 티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르다.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시는 분이시다. 사역자의 땀과 눈물어린 수고를 다 아시고 기억하신다. 우리의 수고는 사람을 향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한다. 그분을 향한 사랑을 표현 할 수 있는 기회로 여긴다면 특별히 농촌목회는 하나님 앞에 더욱 영광스러운 사역이라 생각한다. 멀리 있지 않은 선교지 농촌 첫 번째 방문했던 증평 노암교회에서 노방전도를 나갔다. 둘씩 짝을 지어 나간 농촌의 들판에서 우리는 가뭄 때문에 힘들어 하시는 어르신들을 만나 뵈었고, 손을 붙잡고 이야기를 들어 드리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여든이 넘은 한 할아버지는 우리를 반가워 하시면서도 젊은 사람들은 농촌에 있으면 안 된다고 이야기 하셨다. 농촌에는 특별한 변화도 없고 기회나 희망이 없으니 당연히 도시로 나가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그렇게 말씀하시는 할아버지의 눈빛은 외로움에 가득 차 계셨다. 가뭄 때문에 말라만 가는 눈에 보이는 농작물보다 보이지 않는 그분들의 마음이 쩍쩍 갈라져 있는 것처럼 느껴져 마음이 아려왔다. 고된 농사일과 생활 형편이 아니라 정말 그분들의 어려움은 바로 외로움이었다. 명절 때마다 잠깐 들리는 자식들에 대하여 서운함 마음을 토로하시는 모습을 보며 외로움과 싸우면서도 주어진 삶에 순응하며 살아가시는 그분들의 외롭고 희망 없는 마음을 느꼈다. 그들의 외로운 마음에는 예수님이 필요하다. 아들, 손자, 며느리가 방문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하지 못하기에 외로운 것이라 생각한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살아가는 삶은 허무하다. 그 마음은 자식도, 돈으로도, 명예로도 채워질 수 없다. 그들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한다. 그들을 지으시고 그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누구보다 안타깝게 여기심을 알게 되었다. 도시의 젊은이들이 농촌의 어르신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 어려울 것이다. 유교적, 샤머니즘적인 관습과 문화에 그대로 순응하며 살아가시는 농촌의 어르신들을 뵈며, 언어적 장벽은 없지만, 문화적으로는 우리와 정말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은 도시와 농촌의 생활환경이 다른 차이도 있지만, 세대 차이가 가장 큰 원인이 되는 것 같다. 이러한 세대 차이와 문화 차이가 존재하는 농어촌은 선교지이다. 새소망교회 목사님은 농어촌 역시 선교지이며 해외선교보다 관심을 안 갖는 일은 잘못된 것이라 하셨다. 동일 언어권이지만, 서로 다른 용어, 정서와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농어촌은 문화적 장벽이 결코 해외 선교지와 다를 바 없는 상황인 것이다. 도시와 농촌이 그리고 젊은 사람들과 농어촌의 어르신들이 하나 될 수 있는 것은 오직 복음으로만 가능하다. 복음은 모든 문화적 장벽을 넘는 것이며 초문화적인 것이다. 농어촌은 분명 선교지이며, 복음이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은 희망이 없다며 가기를 꺼려하지만, 농어촌은 수많은 영혼들이 하나님의 복음을 기다리고 있는 선교지이다. 앞으로 더 많은 성도들과 사역자들이 농어촌에 관심을 갖고 기도하며 다가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이번에 경험한 농촌을 생각하며 주님의 은혜를 간구한다. <노암교회 활동> ‘주님이 부르셨으니 또한 책임지시리라’ 전승훈 전도사 지역을 사랑하는 마음 선한 영향력 처음 농어촌 선교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가고 싶었지만 출산을 40여일 앞 둔 아내와 3살 딸을 두고 방학하자마자 또 집을 비운다는 것에 부담이 있었다. 기도하고 고민하다가 새로운 배움과 도전, 그리고 함께 하는 동기들과의 좋은 추억의 시간들이 될 것 같아서 참석하게 하였다. 이번에 방문한 세 곳의 교회들(노암교회, 새소망교회, 세광장로교회)에서 목사님들의 하나님과 지역을 사랑하는 마음, 열정들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또한 후배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여러 모습으로 섬겨 주시고 격려해 주심에 도전이 되었다. 이번 선교를 통해 느낀 점들은 첫째, 농어촌 선교가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다. 방문한 세 곳은 모두 농촌 마을이지만 달랐던 것 같다. 농사(품목, 규모), 지역 거주 형태(귀농, 고향), 도시와의 접근성 등에 따라 성향과 고민하시는 것들이 모두 다름을 알게 되었다. 지역이 농촌일 뿐 도시의 다양한 사람들과 복음의 접근 방법이 동일하게 요구되는 것을 본 것 같다. 둘째, 선한 영향력, 좋은 이웃이 되어 주기가 중요한 사역이었다. 방문 했던 교회의 목사님께서 8년이 지났을 때부터 마을 분들이 같은 마을 사람, 이웃으로 생각해 주었다고 한다. 그때 쯤 교회의 빚을 다 갚았다고 하신다. 마을 사람들은 특정 목적(전도)을 가지고 다가오는 것은 싫어하지만, 교회의 상황들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고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목사님은 당장을 위해 공격적으로 전도하기보다는 그 마을의 일원, 이웃이 되기 위해 애쓰셨다고 하셨다. 전도가 너무 중요하고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지만 오늘날의 전도의 모습, 동기가 영혼을 향한 근본적인 사랑이나 그 대상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사람 수를 채우는 목적 달성을 위한, 단기간의 결과를 기대하는 식의 전도가 아닌가 다시금 고민하고 반성하는 시간이었다. 셋째, 농촌에는 사역할 일꾼이 없다. 진짜 너무도 없다. 잘 정착한 교회도 있었지만, 아직 개척 단계에 있는 교회가 많았다. 목사님이 모든 사역을 주로 혼자서 감당하고 계시며, 반주자가 없어서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하셨다. 그러면서 어려움 속에서도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는 이유가 ‘주님이 나를 이곳으로 불러 주셨으니 또한 책임지시리라’는 믿음 때문이라는 고백이 큰 감동이었다. 앞으로 내 사역 속에서도 해야 할 진정한 신앙 고백이 아닌가 생각하였다. <새소망교회 목회나눔> 농촌 목회란 주민들과 함께 살아가며 지내는 것 송선주 전도사 농촌 교회의 어려움과 수고, 농민들의 삶의 고단함을 알게 되었다 태어나서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나는 계속 도시에서 자랐다. 그리고 그 이후에 집을 떠나 잠시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되었고 10년 동안 살았던 곳은 내가 자랐던 도시보다 훨씬 큰 대도시였다. 심지어 가족, 친척들 모두가 서울과 경기도 권에서 살기에 농촌에 갈 일이 많이 없었고, 농촌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첫날 노암교회 부근에 도착했을 때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집의 모양과 구조, 마을의 모습에 놀랐다. 그러나 교회는 생각 외로 깔끔하고 최신식 시설로 보였다. 준비한 선물을 들고 흩어져 마을회관과 집을 방문했다. 마을회관 앞 정자에 주민들이 앉아 계셨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 농사일을 할 수 없어 정자에 모여 대화를 하고 계셨다. 작은 마을이라 서로에 대해서 잘 알고 익숙해 보였고 젊은 사람들은 주변의 큰 도시로 떠나고 노인 분들만 남아 계셨다. 그 노인 분들이 농사를 지으면서 자식들에게 보내기도 하고 팔기도 하면서 지내고 계셨다. 그 분들이랑 이야기하며 깜짝 놀란 것 중 하나는 교회를 한 번도 못 가 보았다는 것이다. 근처에 교회들이 많이 없기도 했지만 대부분 농사일로 많이 바빠서 못 가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지금 가뭄으로 인해서 농사가 힘들다는 등 여러 상황들을 들으니 많이 공감이 되었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예전에는 비가 안 온다고 했을 때 살짝 안타깝다는 생각은 했지만, 현장에서 이야기를 듣고 보니 정말 심각한 상황임을 알게 되었고 이 분들의 절박한 삶의 모습에 대해서도 좀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곳 이장님은 논에 물을 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애쓰고 계셨다. 그 분과 짧은 대화를 통해 이미 이단들도 만났었지만 자신이 살아온 인생으로 인해 교회에 나가 신앙생활하기가 힘들고 어려운 입장이라고 했다. 둘째 날도, 셋째날도 교회들을 방문하며 지역 주민들을 만났을 때 그들의 삶에 대해서 계속 듣고 보는 시간이었다. 농사는 그들의 인생에서 거의 전부라고 할 만큼 굉장히 중요하고 그로 인해 인생이 진행됨을 보았다. 농촌 교회와 도시 교회가 서로 다른 모습을 지닐 수밖에 없음을 깨달으며 농촌 교회의 어려움과 수고, 그들이 고민하고 마주하는 현실과 문제들을 같이 생각하고 고민해 보게 되었다. 이렇게까지 농민들의 삶이 고단하고 쉽지 않음을 알게 되었고, 그들의 입장과 삶에 대해 알지 못하면 농촌 사역은 상당히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지역을 방문하면서 농촌의 폐쇄성, 보수성, 고립성, 무속 신앙 등을 경험하고 보는 시간이 되었다. 사람들이 방어적이고 경계하며 마음을 열지 않는 것이 보였고 농촌 사역은 지역 주민들과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3일 내내 경험하는 시간이 되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농촌의 모습과 사람들의 특성, 마을과 지역의 상황들을 배우며 농촌 사역의 필요성을 알게 되었다. 무조건 전도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그 지역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 살아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고 경험했다. 농촌 목회란 지역에 따라, 사람들에 따라 전략과 방법들을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에는 그 지역에서 그 주민들과 함께 살아가며 지내는 것인 듯하다. 그렇기에 주님 앞에서 매일을 살아내는, 하루를 살아가는 연습을 해야겠다. 그리고 다녀온 교회들과 지역들을 위해서 기도해야겠다. <세광장로교회 활동 후> 농촌 목회는 복음과 사랑의 두 기둥으로 감당한다 이예라 전도사 세 교회는 각자 다른 색을 가졌지만 모두 십자가를 드높이고 있었다 기말고사가 끝난 후 6월 19일 월요일 학교를 출발하여 22일 목요일에 학교로 다시 돌아오기까지, 3박 4일간의 일정 동안 세 곳의 교회를 돌아보는 2017년 농촌 비전트립을 무사히 마쳤다. 돌아보면 체력적으로 버거울 때도 있었지만 분명 배운 것과 마음에 남는 것도 많았던 귀중한 시간들이었다. 처음으로 도착한 교회는 경무현 목사님께서 시무하시는 충북 증평의 노암교회였다. 한적한 시골 한편의 전원주택 같은 고즈넉함을 지닌 이 교회가 알고 보니 오랜 시간에 걸쳐서 많은 분들의 눈물 어린 기도와 후원으로 세워진 교회라고 한다. 밝고 따뜻한 미소로 우리를 맞아 주시는 목사님과 사모님께서 그간 얼마나 기도하며 기다리셨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괜히 짠해져 왔다. 전도용품으로 가져온 팔토시에 준비해 간 라벨지를 붙이고 구역을 나눠 전도를 나갔다. 무더운 날씨지만 마을의 어르신들은 심은 농작물이 가물까 걱정이 되어 구석구석마다 물을 대고 계셨다. 밝은 인사와 함께 팔토시를 끼워드리며 짧은 시간이지만 안부를 여쭈었다. 시간의 여유가 더 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해 마주 잡은 손이 아쉬웠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헤어지면서도 우리에게 지어주신 그 분들의 따뜻한 미소가 참 마음에 남았다. 목사님을 통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께서 분명히 일하심을 들으며 늦은 밤 더위를 잊을 수 있었다.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인고의 시간을 통하여 교회가 없는 이 작은 마을에 십자가를 높이 세우셨으니, 이곳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게 해달라는 기도를 드렸다. 다음날인 화요일 오전에 교회의 일을 도와드리고, 임용민 목사님께서 시무하시는 충북 청주의 새소망교회로 이동했다. 예배당 앞 커다란 현수막에 그려진 붉은 칼빈의 심장이 인상적인 교회였다. 예배당 입구에 입교를 준비하며 중고등부 학생들이 작성한 신앙고백이 게재되어있는데 너무나도 선명한 어조와 단호한 말투가 감탄을 불러일으켰다. 서툰 전도사 사역을 통해 신앙을 가르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는 중인지라, 학생들의 신앙고백에서 느껴지는 신앙의 균형과 진정성이 놀랍기만 했다. 함께 모여 목사님께 처음 부임하셨을 때부터의 목회 이야기를 들었다. 교역자가 먼저 탄탄한 교리를 기반으로 한 개혁신학적 믿음을 바탕으로 하며 어린이부터 장년에 이르기까지 성도들을 교리 교육으로 바로 세워 가는 교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씀을 들으며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복음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을 무척 기뻐하신다는 생각이 점차 확신으로 바뀌어갔다. 교리를 바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치고 전하면 그 열매는 더디더라도 반드시 싹을 틔운다는 것을 현장에서 몸소 배웠다.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은 나이에 상관없고 상황에도 매이지 않음을 보았다. 수요일, 마지막으로 최진욱 목사님께서 시무하시는 경기도 여주의 세광교회로 이동했다. 선교사로서 십여 년간을 타지에 계시다 고향으로 돌아와 개척을 하셨던 목사님께서는 한 영혼을 향한 전도의 열정으로 목회를 감당하고 계셨다. 하나님의 사랑을 감격으로 받고 그 사랑에 붙들려 복음을 전하시는 목사님의 아름다운 자원함이 참 인상적이었다. 비록 현실은 녹록하지 않음을 듣지만 하나님께서는 농촌에 자리 잡은 이 작은 교회를 통해서도 분명히 일하고 계심을 보았다. 어르신들의 삶을 돌보고 필요를 채우며, 때로는 말동무로 고충을 들어 드리고 때로는 농사일을 돕고 병원에 모시는 일까지... 복음은 말의 언어와 함께 실질적인 삶의 언어를 통해 전달됨을 배웠다. 그 곳의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함께 드리는 수요예배는 작지만 따뜻했다. 2017 농촌 비전트립은 순간순간 더딘 듯 보였지만 빠르게 지나갔다. 세 곳의 교회는 각자 다른 색을 지니고 있었지만 모두 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그 분의 복음을 전하며 세워진 곳에서 십자가를 드높이고 있었다. 잠잠히 돌이켜 보니 농촌 목회는 복음과 사랑의 두 기둥으로 감당한다는 것을 공통적으로 발견했다. 삶으로 들어가서 행동과 말로서 복음을 가르치고 세우는 것이 함께 가야함을 배웠다. 비록 무더운 날씨에 일이 녹록하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참 값진 배움이었다. 지나온 농촌 교회들과 목사님들을 통해, 모든 교회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구석구석에서 더욱 확장되길 기도한다.
1205 |2017 총회 『태국』 미션트립| 7월 10일-15일 “프라 예수 쏭 락 쿤캅 !” 첨부 파일
편집부
1300 2017-08-23
2017 총회 『태국』 미션트립 >> 7월 10일-15일 << “프라 예수 쏭 락 쿤캅 !” <공항에서> 주님만이 내 삶의 이유 박선호 _ 작동교회 주어진 자리에 돌아가서도 낮은 마음으로 늘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겠다 나는 대학생 때 교회에서 가는 단기선교에 늘 소망은 있었지만 재정적 이유로 한 번도 가지 못했다. 방학 때는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버느라 단기선교 마음도 먹기 어려웠다. 그렇게 학생 때가 지나고 직장 생활을 하다가 이제 사회인으로서 시간도, 재정도 조금은 여유가 생겨 미션 트립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 나는 이번 미션 트립에서 일생 중 가장 많은 복음 제시를 했다.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정말로 단 한 사람이라도 이 마음이 전해져서 예수님을 알게 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전도지와 선물을 나누어 주었다. 또,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한국의 전통놀이를 가르쳐 주고, 복음 제시를 할 때에는 정말 감회가 새로웠다. 나는 초등학교 교사로 일을 하다가 현재는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 중인데, 잊고 있던 나의 정체성을 다시 끄집어 낼 수 있었다. 아이들이 너무나 열악한 환경 속에서 공부하고 있었고, 양말과 신발에 구멍이 난 모습들에 마음이 참 아팠다. 그들이 예수님을 알게 되어 그 삶속에 소망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많이 들었다. 그러다 떠나기 전날인 목요일이었다. 전도지로 전도를 하고 있는데, 아주 잠깐 같이 하던 친구들이 나와 함께 길을 잃고 일행을 놓쳤다. 그 순간 내게는 낯선 땅에서의 두려움이 밀려왔다. 스데반은 돌로 맞아 죽으면서 까지 예수님을 전했는데 나는 고작 이런 상황 속에서 두려워하는 모습이 너무나 예수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더 예수님을 사랑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는 내 모습이 너무나 죄스러웠다. 그리고 다시 일행을 찾고, 함께 전도를 하는데 그 곳의 사람들은 표정이 참 어둡고, 반응도 좋지 못했다. 그러면서 이 땅의 사람들이 안쓰럽게 느껴지기 시작했고, 우리는 함께 한국어로 찬양과 워십을 하였다. 그때 찬양의 가사들이 내 마음을 많이 후벼 팠다. ‘베드로의 고백’이라는 찬양의 가사 중에 "많은 사람들 참된 진리를 모른 채, 예수님을 떠나갔지만, 내가 만난 주님은 참 사랑이었고, 진리였고, 소망이었소." 라는 부분이 있다. 내게 예수님은 사랑과 진리, 소망인데 내 현재의 모습은 그렇지 못해 마음이 너무나 슬펐다.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에는 베드로와 같이 충성을 다짐했는데 지금은 내 직업, 재산, 그러한 것들이 오직 예수님만이 구원의 길이라는 사실을 흐리게 하고 있었다. 주님만이 나의 삶의 이유인데 삶의 이유가 너무나 많이 생겨버린 것이다. 또, ‘야곱의 축복’을 부르면서 여기 태국사람들이 예수님을 통해 구원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무척 간절했다. 이렇게 떠나기 전날까지 노방 전도와 학교 복음 제시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평소에 알고 있던 또 하나의 찬양이 마음에 계속 울려 퍼졌다. 그 찬양은 유은성씨가 선교지에 가서 느낀 점을 가사로 적은 것이었는데 그 것에 내 마음이 자꾸만 울컥하였다. 내용은 이렇다. "난 주러 왔을 뿐인데 오히려 내가 받고 갑니다. 눈물 닦아 주러 왔을 뿐인데 내 눈물만 흘리고 갑니다. (...) 죽은 영혼 살리러 와 내가 살아서 갑니다. 난 이렇게 많이 받았는데 더 주를 사랑하지 못함이 미안합니다." 이 가사가 자꾸만 떠오르면서 난 정말 이곳에 와서 너무나 큰 사랑과 은혜를 받았는데 더 주를 사랑하지 못하는 내 모습이 너무나 죄송해서 자꾸만 눈물이 났다. 이 마음을 늘 기억하며 예수님이 주신 은혜를 생각하며 하나님을 날마다 알아 가며 사랑을 구해야 할 것 같다. 또한 그 곳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많이 만나 큰 도전과 힘이 되었다. 예수님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배려하고, 함께 하는 모습이 참 즐거웠다. 또 수요일 예배 중에 선교사님의 설교가 너무나 은혜로웠다. 말씀의 요지는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가 의인이고, 여호와를 의지하지 않는 자는 악인이라는 것인데, 하나님을 의지 하지 않고, 다른 세상의 것들에 의지하려는 내 모습을 반성하게 되었고, 늘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기 위해 날마다 기본적 생활을 꾸준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션트립을 마치며, 현실로 돌아가는 것이 실감 나지 않고, 꿈같지만, 주어진 자리에 돌아가서도 낮은 마음으로 늘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야겠다. 이러한 기회를 제공하여 주시고, 우리를 위해 많은 희생과 수고를 해 주신 선교사님들과 목사님들께 큰 감사를 드린다. 아마 앞으로도 이 기억이 내제 삶을 지탱해 주는 하나의 원동력이 될 것 같다. 일주일 동안 너무나 큰 은혜와 사랑을 받아 감사하다. <학교 복음전도> 프라 예수 쏭 락 쿤 캅 ! 송진실 _ 성림교회 땅끝까지 전하라는 말씀을 따라 영원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싶다 "목사님, 곧 출국인데 사전모임도 없고 계획된 어떤 루트도 없나요? 저는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미션트립 출국 전 용기를 내어 답답함을 호소했던 적이 있다. 나는 그저 ‘태국으로 떠난다’ 고만 알고 있었기 때문에 걱정부터 앞섰던 것이다. 그러자 태국에 계신 선교사님이 말씀하시길 ‘준비물은 태국을 사랑하는 마음’ 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나는 한 주가 지나 미션트립이 다 끝나고 나서야 겨우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 같다. 그 분들은 정말 태국을 사랑하셨다. 그리고 지금도 그 사랑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다. 가난한 판자촌서부터 건물이 깔끔한 부자 동네까지 두 발로 거닐며 예수님을 전파하는 그 모습에서 나는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임을 확신했다. 나조차도 처음 전도를 받는 것만 같은 뜨거운 기쁨을 느꼈다. 이를 통해 나의 메말라 죽어있는 것만 같았던 건천의 신앙을 다시금 일깨우기도 했다. 그것이 나에게 일어난 또 하나의 은혜의 역사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영혼들을 불러 일으켜 세우시는 것도 하나님이 하시며, 또한 무기력감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그리스도인들을 다시 살리시는 것도 하나님이 하신다. 땅끝까지 전하라는 주님의 그 말씀을 따라 영원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싶다. 그 은혜에 족하며 그 은혜를 전파하다 그렇게 천국에 이르고 싶다. “프라 예수 쏭 락 쿤 캅 !”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어린이집회> 하나님께 쓰임 받는 모습으로 변화되기를 서혜진 _ 새생명교회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느낀 새로운 경험 나는 한 번도 해외 선교를 해 본 적은 없지만, 지속적으로 해외 선교에 대한 갈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5월 말 쯤 총회 미션트립 지원자를 모집 소식을 듣고 자원하여 다녀오게 되었다. 미션트립에 참여한 인원은 자매 10명, 형제 5명, 담당목사님 2분, 태국에서 사역하시는 선교사님 2분, 현지 전도사님 1분이 함께 하였다. 전국 단위로 모이기 때문에 사전 만남은 가지지 못했지만 계속 기도로 준비하였다. 한 마음과 한 뜻으로 모였기에 하나님의 일을 함께하는 동역자로 서로 의지하며 선교에만 힘을 쓸 수 있었다. 사역을 함께 할 태국 선교사님의 댁에 방문하여 선교사님께로부터 태국 언어를 배웠고 많은 언어는 몰라도 미션트립의 목적에 맞게 예수님을 전할 때 사람들에게 들려 줘야 할 내용을 중심으로 언어를 익혔다. 이 후의 일정은 노방 전도와 학교 전도로 채워졌다. 노방 전도는 주로 시골, 시장, 섬이었다. 태국 사람들에게 전도지와 물품을 전달하며 예수님이 당신을 사랑하신다는 말을 전하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한국이 아닌 태국 땅에서 사람들을 바라보며 찬양과 율동으로 하나님을 전한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부끄러워 작은 목소리로 시작하였지만, 목소리를 높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서로의 모습 속에서 우리가 더 은혜를 받아 기쁨으로 찬양하며 그 땅을 축복하는 시간을 가졌다. 학교 전도의 방법은 제기차기, 투호, 딱지놀이, 공기놀이, 꼬리잡기, 비석치기, 팽이 돌리기 등 우리 민속놀이 중에서 2명이 한 팀이 되어 한 가지 놀이를 익힌 후에 학교 아이들에게 설명해 주며 경험하게 한 후,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복음 전파의 시간을 가졌다. 복음 전도는 스케치북의 사진과 내용을 보여주며 함께 읽도록 하였다. 그 내용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지으신 분이며, 우리의 죄 때문에 이 세상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고 우리는 죄로부터 승리한 삶을 살 수 있으며, 기도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렇게 아이들과 함께 큰 소리로 읽으며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사랑, 은혜를 전했다. 이 스케치북을 한 장씩 넘길 때마다 나 또한 하나님이 태국 땅에 선포하시는 말씀을 들려주시는 것 같아 감사했다. 전도 후에는 아이들에게 각 교회의 성도님들이 후원하신 학용품을 선물했다. 끝으로 단체 사진을 찍은 후에는 선생님들에게도 필요한 생필품을 전달하였다. 4박 6일 동안의 태국 미션트립은 내게 새로운 경험이었고, 새로움 속에는 하나님께서 직접 살아 계심을 보여 주심을 느낄 수 있었다. 열악한 환경, 무더운 날씨였지만 짜증과 불평이 아닌 웃음과 기쁨이 가득할 수 있도록 하셨고, 함께 한 사람들과 서로 마음을 나누고 사역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하나님을 깊이 생각 할 수 있었던 일주일이 참으로 행복했다. 또한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위해 낮은 자세로 태국 땅을 섬기고 계신 선교사님들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였다. 먼저는 선교사님들이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을 나는 과연 알고 있는가? 내 어떤 것보다 하나님을 신뢰하는가? 생각하면서 나의 신앙을 되돌아 봤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선교사님들을 위해 전심으로 기도와 물질로 후원해야겠다는 결단을 했다. 이제는 나를 위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이 부르시는 음성을 듣는 삶이 되어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쓰임 받는 모습으로 변화되기를 소망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에 감사드린다. 태국에서 감사한 일들 한우림 _ 산성교회 전적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은혜였던 미션트립 미션트립을 통해 선교도 하지만 조금은 쉬다 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큰 고민 없이 참여하기로 결정했었다. 그런데 점점 부담이 되었다. 지난 23년간 살면서 이러한 경험을 해본적도 없었고 심지어 초면인 사람들과 타국에서 잘 지낼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걱정했던 것과 달리 주님께서는 내 마음을 점차 감사의 마음으로 바꿔 주시고 시야를 넓혀 주셨다. 미션트립 중 하나님께 감사한 일들이 많이 있었다. 첫째, 많은 성도님들과 팀원들의 기도와 물질을 통해 마련된 많은 물품들이 태국 공항에서 압수되지 않고 벌금을 피해서 온전히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걸렸다면 상당히 큰 액수를 부담해야 했고 그만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도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뻔 했는데 주님의 은혜로 풍성히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둘째, 주님께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치절하고 자상하게 인도해 주신 목사님들을 통해 소외되는 사람 없이 잘 지낼 수 있었고 또한 세 분의 현지 선교사님께서 언어의 장벽으로 막막할 때마다 소통의 창이 되어 주셨다. 학교에서 아이들과 뛰어놀 때, 시장과 마을에서 전도할 때 큰 도움이 되었고 든든했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15명의 팀원들 모두 무덥고 습한 날씨 가운데서 감정이 앞서는 모습을 보이거나 다투지 않고 서로를 배려해 줘서 참 감사했고 서로서로 먼저 섬기려는 마음과 모습이 큰 도전이 되었다. 셋째, 주님께서 태국인들의 마음을 열어주신 점이다. 태국으로 미션트립을 떠나기 전에 따로 태국어를 공부할 기회가 없었고 영어도 잘 통하지 않아서 소통이 힘들었다. 따라서 선교사님을 통해 가장 핵심 문장인 “프라 예수 쏭 락 쿤 캅(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을 배웠고 이 복음을 전했다. 나는 풍선을 이용해 놀이를 하는 파트를 맡아 학교에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냈는데 어린 친구들과 서로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선교사님이 전하시는 복음을 통해 마음이 열리자 먼저 달려와서 안아 주고 떠날 때는 아쉬워하는 모습이 큰 감동이 되었다. 마을을 돌아다니며 전도할 때에는 모든 것이 감사했다. 외국인이 갑자기 집으로 찾아와서 예수를 전한다고 입장 바꿔 생각하면 충분히 냉대할 수 있는 상황이고 불쾌한 감정을 나타낼 수 있음에도 그들은 웃으면서 반겨 주고 오히려 사람들이 모여 있을 만한 곳으로 가이드 해 주어서 감사했다. 그리고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시장 한 가운데서 몸과 입으로 찬양을 했던 것이다. 즉흥적으로 했기 때문에 솔직히 처음에는 민망한 마음이 들었지만 점차 기쁜 마음으로 주님을 높이는 찬양을 했고 평생 잊지 못할 값진 경험으로 남았다. 마지막으로 감사한 것은 건강을 지켜 주셨다. 동남아 지역 자체가 적도 근처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무더운 날씨로 인해 쉽게 지치고 퍼질 수 있었지만 주님께서 날씨와 모든 것을 주관해 주셔서 모든 일정을 무사히 건강하게 마칠 수 있었다. 또한 이질적인 음식과 물의 맛 때문에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크게 불편한 부분 없이 식사를 할 수 있었고 힘을 내서 일정을 소화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매일매일 차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이 많았는데 주님께서 사고로부터 보호해 주셔서 편안하게 움직일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큰 도전이었던 이번 미션트립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음을 깨달았고 감사했다. 또한 많은 분들의 기도가 내게 큰 힘이 되었고 특히 물질로 후원해 주신 분들의 은혜를 잊지 않겠다. 만약 다음번에 또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더 준비된 모습으로 꼭 참여하고 싶다.
1204 |기행문| 서울에서 부산까지 21일 도보여행기_김훈 목사 첨부 파일
편집부
1616 2017-08-02
기행문 “절대고독 중에 여주동행, 침묵정진, 기도일관의 시간이었습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21일 도보여행기 < 김 훈 목사, 한누리전원교회 원로 > 나는 오래전부터 전국도보여행을 하고 싶었다. 바울처럼 걸어서 교회와 교인들을 만나보고, 숙식을 제공받고 교제하는 것이 가능한가를 실험해보고 싶었다(몬1:22, 요삼1:5, 마25:35). 불가능하거나, 남에게 부담을 주는 행동으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 그러나 2월 6일부터 3월 8일까지 중국배낭여행을 다녀온 후에 그 가능성을 확인하고 준비에 착수하였다. 우선 3월말에 도보여행카페에 가입하여 정보를 수집하고, 걷기 행사에 참여하고, 또 혼자서 인근 둘레 길과 20km 이상 되는 도시길 걷기를 하면서 신체적으로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1951년 1.4 후퇴 때, 모친과 함께 갔던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여정을 택하였다. 내가 기억하는 첫 인생길이고, 찾아볼 교회와 사람들이 있는 길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네이버와 다음 지도를 보면서 경부선 기찻길에 인접한 1번 국도를 비롯해, 4번 국도와 25번 국도, 원래는 국도이었으나 지금은 각 지역의 이름을 붙인 지방도로들을 이용하기로 했다. 특히 금강길, 밀양강길, 낙동강길 등 강을 따라 난 길과 이와 연결된 안양천, 오산, 안성, 성환, 조천, 대전, 직지사, 지천, 남천, 청도 등 하천길, 또한 자전거 길을 잇는 코스를 잡았다. 도로원표에는 456km로 되어있으나 이곳저곳 둘러보고, 이리저리 헤매면 567km는 걷게 될 것으로 예상했는데 결과도 거의 같았다. <배낭을 몸에 단단히 매고..> 다음에 숙소를 부탁할 명단을 작성하고, 여정의 진도를 보아서 하루 전, 혹은 그날그날 부탁하기로 하였다. 결과적으로 교단 소속 교회당이나 사택에서 16일, 타 교단 교회당에서 3일, 모텔에서 3일을 묵게 되어서 숙박비로 총 7만원을 지출하였다. 식사는 28끼는 매식하고, 45끼는 대접을 받았다. 매식 메뉴는 콩나물국밥과 순대국밥, 된장찌개와 김치찌개, 냉면과 우동, 라면, 김밥, 빵과 우유, 햄버거 등인데 최고가 8천원이었다. 간식은 땅콩과 방울 도마도, 캔 커피 정도였다. 그래서 간식을 포함해 식비로는 약 30만 원이 지출되었다. 숙소와 식사를 제공받은 교회와 목사는 남문교회(이건희 목사), 군포제일교회(권태진 목사), 은빛선교회(임석영 목사), 안궁나사렛교회(원종혁 목사), 오산성도교회(최부열 목사), 천안예사랑교회(김병곤 목사), 전의성결교회(이성영 목사), 오송승리교회(유창인 목사), 궁평제일교회(이양규 목사), 새터교회(정형조 목사), 이원교회(통합 김은진 목사), 추풍령교회(고신 정경현 목사), 월명교회(안상진 목사), 대구동남교회(김성규 목사), 화양중앙교회(황수경 목사), 밀양안디옥교회(이부형 목사), 양산호산나교회(한치형 목사), 최홍준 목사 등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준비물을 챙겼다. 38리터 배낭, 스틱2, 신발2, 바지2, 긴 티셔츠1, 짧은 티셔츠2, 팬티3, 모자1, 양말 5, 바람막이 점퍼1, 선글라스1, 선불록1, 쿨토시1, 무릎보호대, 깔게, 스마트폰과 보조배터리 2, 충전기, 타월1, 기능성타월1, 샤워용 타월1, 손톱깍기1, 칫솔, 면도기, 수첩과 삼색 볼펜, 진통제, 소독약, 소독밴드, 스카치테이프 등이었다. 그러니 무게를 줄이려고 중간에 스틱, 보조배터리1, 긴 티셔츠, 바람막이점퍼, 깔게는 집으로 보냈다. 혼자 하는 장기도보여행은 예상 밖에 큰 유익을 주었다. 무엇보다 절대고독 중에 여주동행, 침묵정진, 기도일관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하루에도 몇 번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면서 과거를 회상하며 회개와 감사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또 매일 일정을 점검하고, 확인하면서 여생을 규모 있게 살아야 하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매년 1천만이 넘는 사람들이 각각 다른 목적과 사정이 있어서, 다른 길(하늘, 땅, 강, 바다)과 방법(비행기, 기차, 자동차, 배, 자전거, 오토바이)으로 부산으로 간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도 나만의 목적과 의도가 있어서 가장 원시적인 길과 방법을 선택하였다. <끝이 보이지 않는 도보길..마치 우리 앞에 펼쳐진 인생길과 흡사한..> 그러나 가끔씩, 예를 들면 추풍령 골짜기 같은 곳에서는 여러 갈래의 다른 길들이 나란히 달리고 있어서, 모두가 같은 목적지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앞으로는 목적지만 같다고 하면 가는 길과 방법이 다르다고 하여도 그 사람이 택한 길과 방법을 존중하리라 다짐하였다. 대부분의 사람은 서울에서 부산을 걸어가는 나를 이상하게 보았다. 그래서 걸어서 가는 길을 물으면 가리켜 주려기보다는 “못 간다. 왜 걸어서 가느냐? 그 의도와 목적이 무엇이냐?"라고 질문하였다.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으나 걷는 나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솔직하게 말하면 피곤하게 하고 짜증이 나게 했다. 그에 비하여 “대단합니다!. 어떻게 그런 기발한 생각을 하셨습니까! 생각은 할 수 있어도 실행하기는 힘든데!. 응원합니다. 완주하기 바랍니다. 힘내세요. 파이팅” 등 세워주는 말들, 격려와 응원의 말을 해 주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낙동강 길을 걸어 갈 때였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쳐 가던 중년의 남자가 그 자리에 멈추어 서서 나를 기다렸다. 그리고 나를 보고 말하였다. “쉼터에서 어르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대단하십니다. 그 도전정신에 경의를 표합니다. 완주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떠나면서 주먹 쥔 손을 흔들면서 뒤에 있는 내게 “어르신 힘내세요. 파이팅” 소리쳐 줄 때는 벅차오르는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그네 인생에게 가장 필요한, 좋은 말이 무엇인가를. 그래서 결심하였다. 이제부터는 사랑하는 이웃에게 “왜?”보다는 “대단하십니다! 힘내세요!. 성공하기 바랍니다!.”라고 말을 하자고. <동네 강아지가 먼저 와 반겨준다> 6월 25일 정각 오후 8시, 마침내 부산 역에 도착하였다. 의미 있는 6.25일에 도착하려고 쉬지 않고 걸었다. 도착하자마자 광장 분수가 높이 솟구치면서, 웅장하고, 비장한 관현악 연주가 끝난다. 그리고 분수 사이로 흐릿하게 ‘부산역’이라는 네온사인이 보였다. 순간 저 밑에서부터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것이 울컥 치밀어 올랐다.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내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느껴보고 싶은 그런 것이었다. 때마침 분수가 다시 솟구치면서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노래가 나오지 않았더라면 나오는 눈물을 막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 아직 갈 길이 있고, 갈 힘이 있는 거다. 내 나이에 딱 좋은, 딱 맞는 길을 찾아 또 걸어보자.” 나의 여정을 위해서 기도하여 주신 분들과 갑자기 부탁했음에도 불구하고 숙식을 제공하여 준 목사님들과 사모님들과 여러 교인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1203 |제37차 합신 농어촌목회자 참석기 | “고맙습니다!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_이은국 목사 첨부 파일
편집부
2051 2017-07-19
제37차 합신 농어촌목회자 모임을 참석하고 “고맙습니다!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이은국 목사(용연교회, 합신 농목회장) 언젠가 앞선 차량의 뒷 창에 '모든 것이 은혜 입니다!'라는 인상적인 글귀를 부착한 것을 보고는 ‘과연 어느 교회에서 이렇게나 장한 생각을 했을까?’하는 작은 호기심이 발동했다. 지체함이 없이 가속 페달을 밟아 잠시 나란히 했던 승합차량 옆면에는 교회와 전혀 무관한 단체 소속의 간판이 들어왔다 순간, 우째 이럴수가... 올해는 합신 농어촌 목회자 모임(합신 농목회)이 출범한지 꼭 십년이다. 지금까지 지내 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오늘에 이르도록 기도로 마음을 같이하며 정성 다해 섬겨주신 총회 산하 여러 교회와 노회 그리고 농어촌부의 지도와 협력은 물론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여러모로 격려해 주신 수많은 분들이 함께 가꾸어 왔음을 헤아려 보노라면 모든 것이 은혜가 아닐 수 없고 동서남북 방방곡곡에 흩어져 있는 농어촌교회들을 순방하는 가운데 차곡차곡 쌓인 은혜의 보따리는 산더미를 이루고도 남는다. 매번 먼 길을 마다않고 모임에 참석해 온 우리는 마치 장마당에 모여든 사람들처럼 소박한 은혜의 보따리를 풀어 놓으며 하룻밤을 함께하는 동안 고군분투했던 얼마간의 삶을 나누며 다시 한 번 우군(友軍)이 없지 않음을 확인하며 시들해진 식물이 물을 공급 받아 생기를 회복하듯 지친 마음을 추스르고 용기를 되찾는다. 하루 일정의 마지막에 자리한 ‘나눔과 기도의 시간’은 정한 시간을 훌쩍 넘기기 일쑤다. 가끔은 자정을 넘기며 멈출 줄을 모른다. 눈물겨운 실패 사례부터 이른바 성공사례에 이르도록 각양각색의 사역현장만큼이나 기도제목 또한 다양하다. 무려 14,000장의 전도지를 인쇄 후 소진 때까지 부지런히 발로 뛰고 있다는 소식부터 계속되는 이농현상에 따른 교인수 감소의 아픔, 정든 사역지를 옮겨가게 되었다는 소식도, 허술한 사택에 뱀이 들어오기도 했었는데 헤비타트의 도움으로 사택을 대수선하게 되었다는 소식도 끝이 아니다. 농촌지역의 새내기가 되었다는 소식, 폐가가 즐비한 농촌마을에서 단 한명의 영혼구원을 위해 사역을 시작했다는 얘기하며 북한선교, 태국사역, 의료봉사, 귀농자(歸農者), 다문화, 양로원, 문화교육, 웰다잉과 노후문제, 기독교테마마을 조성 등 진지한 사역현장 소식을 듣고 있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모든 것이 은혜이고 도전이며 벤치마킹의 현장이 따로 없다. 특강을 맡아 주신 임석영 목사님은 하나님의 은혜로 건강을 회복한 개인 간증을 시작으로 일생동안 농촌목회 현장의 산증인으로서 그리고 합신교단 차원의 농어촌부 활동과 농어촌교회 현장을 생생하게 증언해 주신일은 농어촌사역의 과거를 돌아보며 나아 갈 방향을 제시하는 값진 시간이었다. 안중읍 현덕로에 위치한 새소망교회는 17개 마을을 대상으로 복음의 기치를 드높이며 막강한 영적 화력을 뿜고 있는 교회였다. 임석용 목사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종으로 부름받은 것을 시작으로 목회사역의 동기부여, 다양한 자원 활용을 통해 오늘의 건강한 교회를 이루기까지 농촌교회이면서 여느 도시교회 못지아니한 활발한 전도활동의 전진기지를 이루고 있어 많은 도전이 주었다. 모임을 위해 안팎으로 여러 개의 환영 현수막을 설치한 것을 비롯 드넓은 대지에 각종 시설물들을 견학할 수 있었고 특히 자체 숙박이 가능하도록 곳곳마다 세심한 배려가 돋보였고 참석자들을 위해 성도의 협찬을 받아 마련한 깜짝 선물도 안겨 주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교회, 예원교회의 초대로 도시교회가 펼치고 있는 다양한 사역소개를 통해 도농교회가 이해 협력하고 하나 될 수 있는 기틀을 제공하였고, 김석만 목사님은 물론, 근무 시간을 불구하고 교회의 중직자들까지 총동원되어 만찬을 겸한 환영의 시간을 펼쳤고, 서울 야경을 담을 수 있었던 롯데타워 전망대 관람의 기회 제공은 물론 귀빈을 대하듯 명찰까지 준비하고 귀갓길을 위한 간식꾸러미와 ‘귀한 동역자로 섬길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라는 예쁜 글귀를 담은 사랑의 봉투까지 챙겨 주시며 끝까지 배웅해 주신데 대해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지난 6월 26일(월)-28일(수) 동안의 제37차 모임은 여러 진기록을 남겼다. 정기모임으로는 처음 2박3일을 연장하며 농촌과 도시의 두 교회가 공동으로 개최하였고 수원노회와 동서울노회 노회장 및 임원들이 소중한 시간을 함께하여 설교 봉사와 식사대접을 한 일을 비롯, 전현직 농어촌부장 세 분이 함께한 것과 정창균 합신 총장님과의 만남과 합신에서도 합신농목회를 개최하도록 초청해 주신 일도 이례적이다. 연인원 70여 명이 참석하여 활기를 띠었고 좋은 일에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얻고자 자원하여 식사대접을 한 함께하는교회(김인성 목사)와의 만남도 기쁨을 더 해 주었다. 함께하는 동안 쉽지는 않겠으나 해봄직한 몇 가지 의견도 나누었다. 농어촌부장님의 도농교회간 이해와 협력을 위한 강단교류 희망을 비롯, 도시교회가 재정을 지원하고 농어촌목회자들의 비밀병기라 할 건축과 인테리어 기술을 해외 선교지에서 발휘할 수 있는 기회마련, 합신농목회 출범 십 년을 맞이하여 역대 농어촌부장님과 한결같이 협력해 주신 분들을 모시고 함께할 수 있는 마당을 펼쳐보자 등 이다. “극진한 환대에 감동을 받아 먼 여정으로 피곤하나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시는 분들을 뵌 기쁨이 큽니다” “이번 농목회를 통해 앞으로의 사역에 많은 도전과 지혜를 얻었습니다” “베풀어 주신 사랑과 교제에 큰 기쁨을 얻었습니다” 모임에 참석했던 회원들이 남긴 소감이다. “고맙습니다!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1202 |2017년 제2차 은평교회 세계선교대회 참관기| “다시 힘을 내어 사명을 감당하리라”_서지태 선교사 첨부 파일
편집부
1505 2017-06-21
2017년 제2차 은평교회 세계선교대회 참관기 “다시 힘을 내어 사명을 감당하리라” < 서지태 선교사, 러시아 > 주님, 저희도 이 영광의 길을 힘들지만 계속 가겠습니다! 2017년 5월 6일부터 10일까지 5일간 동서울노회 은평교회당에서 제2차 세계선교대회가 진행되었다. 은평교회의 파송선교사와 후원선교사들 가운데 22개국에서 114명의 선교사들이 참가하였다. 대회의 주제는 “The 힐링”이었다. 지난 2010년의 제1차 선교대회가 많은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었다면, 이번 제2차 선교대회는 선교지에서 지친 선교사 부부가 함께 쉼을 누리면서 은혜로 회복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좀 더 여유롭게 진행되었다. 먼저, 전체적인 분위기부터 말하자면 “감동” 그 자체였다. 5일 동안 눈물을 흘리지 않은 참석자가 있었을까? 또한 기뻐하며 활짝 웃지 않고 돌아간 선교사도 없을 것 같다. 웃음과 눈물은 힐링의 두 가지 요소이다. 대회 전체가 감동과 섬김으로 준비된 잘 비벼진 비빔밥이었다. 삭막한 선교지에서의 노고를 씻어 주려고 한국의 멋과 맛을 마음껏 느끼게 한 듯했다. 선교사들이 잘 쉬면서 힐링(치유)를 경험할 수 있도록 준비한 은평교회의 섬김은 세심하였고 열정적이었다. 몇 년에 걸쳐 재정을 준비하고 기도했다고 한다. 만남 자체부터 준비된 만남처럼 느껴졌고, 안내하는 분들의 따뜻한 미소를 통해 “아, 우리가 진심으로 환영받고 있구나” 라는 마음이 들었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아늑한 호텔에서 아침마다 강물에 반짝이는 햇빛을 감상하며 눈을 뜰 때에는, “주님 정말 행복해요!”, 이런 고백이 나오게 하였다. 식사도 끼니마다 잔치를 하듯이 풍성하게 제공되었다. 이동하는 차량이나 여러 부분에서 섬기는 분들의 봉사의 손길도 세심하였다. 이동 중에도 장로님과 집사님이 잠시 준비한 넌센스 퀴즈까지 하면서 웃음을 주었다. 심지어 화장실마다 비치된 양치 도구와 가글액에서도 작지만 참석자들을 위한 섬세한 배려가 느껴졌다. 오전 강의들은 선교사들의 삶을 돌아보고 점검할 수 있어 유익했다. MCN(멤버케어 네트워크)의 공동대표인 김도봉 목사님과 손은섭 원장님의 강의는 ‘선교사’였고 선교사와 함께 했던 삶을 담아 전한 멋진 강의였다. 셋째 날 오후에는 영화관, 스파, 창덕궁 방문, 뮤지컬 ‘더북’ 관람, 곤지암의 화담 숲 산책 등 현대 문명의 편안함과 공연이 주는 즐거움과 감동, 자연 속에서의 교제 등으로 오래 기억에 남을 쉼의 시간이었다. 하나님은 대회 기간 내내 섬기는 분들을 만나게 하시고 영적 거인들의 귀한 삶을 통해 감동을 주셨다. 우리 앞에 걸어가신 선배 목사님들의 삶과 그분들의 사역의 마무리를 보면서 우리도 저렇게 삶을 마무리하고 싶다는 고백이 나오게 한 큰 감동이었다. 백발이 희끗하시며 약간 무겁게 서 계신 박영선 목사님과, 단단해 보이시지만 주님을 붙잡으며 처절하게 달려오신 장상래 목사님, 이 두 분은 그분들을 따라 달려가고 있는 후배 선교사들을 향해 자신들의 삶의 무게를 토해 내었다. 박영선 목사님은 3일 간의 저녁 집회에서 모세, 엘리야, 바울에 관해 말씀하였다. 우리가 닮기 원하는 대표적 인물들이지만 그분들의 삶에서의 연약함과 아픔을 드러내었다. 임마누엘 주님의 동행하심을 믿었지만 삶의 무게 앞에 선 나약한 영적 거인들의 삶을 그대로 그려 내었다. 박 목사님의 설교는 날마다 한 폭의 그림이었고, 그 그림 속에 흔한 승리자의 모습보다 고뇌하는 인간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표현하였다. 결국은 주님이 모든 걸 이루시며 우리의 삶 또한 현재의 삶에서 미래의 소망을 기대하며 부름 받은 삶을 살아낼 것을 강조하였다. 장상래 목사님의 말씀은 모두를 눈물짓게 했고 이에 참가자들은 자발적으로 일어나 존경을 표하였다. 선교사들을 대접하고픈 마음과 자신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선교 대회를 통한 은퇴식을 하기를 원했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지나간 목회의 자랑보다는 중압감을 고백하셨다. 7년 반이나 수면제를 의지해 잠자리에 들었는데 이제 중단할 수 있겠다고 하였다. 매일 감당해야 할 무게, 바로 모세와 엘리야와 바울이 감당했던 그 무게를 오늘날 사역자들도 겪고 있음을 드러냈다. 이는 듣는 이들에게 공감과 눈물을 짓게 하였다. 선교지에서 “주님 저의 역할이 여기까지인지요? 제가 더 감당할 수 있을까요?” 수없이 부르짖던 우리의 모습이 오버랩 되면서 우리에게 눈물의 힐링이 되었다. 역시 진정한 힐링은 연출이 아니고 말씀 속에서 나오며, 현실의 좋은 멘토들을 만날 때 일어난다. 우리 교단이 이런 훌륭한 어른들을 모시는 것은 큰 감사의 제목이다. 은평교회 세계선교대회를 통해 우리 선교사들은 우리가 외롭지 않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였다. 참가한 모든 선교사들은 교회와 성도들의 헌신적인 기도와 봉사의 수고와 사랑을 통해 생생하게 체험적으로 사랑을 받고 재충전되는 시간이었다. 나는 감격하여 흐르는 눈물 속에서 “주님, 저희도 이 길, 영광의 길을 힘들지만 계속 가겠습니다!”라고 고백하였다. 마지막으로, 선교 대회를 위해 수고해 주신 은평교회 성도님들, 강사님들, 선교위원회의 장로님, 집사님들, 그리고 장상래 목사님, 박지현 목사님 등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건강하고 선교적인 교회를 보고 가는 것이 가장 큰 힐링이다. 우리에게 이렇게 좋은 쉼을 주셨으니 다시 힘을 내어 부름 받은 자리에서 사명을 감당해 나가려 한다. 이 은혜와 감동으로 우리도 넉넉함, 배려, 사랑으로 감동을 주는 선교사들이 되리라 다짐해 본다. 주님의 복락이 모두에게 함께 하기를 빈다.
Selected |교회교육 특강| 교회와 가정이 힘을 합해야 다음세대가 산다_김명호 교수 첨부 파일
편집부
3728 2017-06-21
<교회교육 특강> 교회와 가정이 힘을 합해야 다음세대가 산다 < 김명호 교수, 합신_기독교교육학 > 교회는 부모를 자녀들의 신앙교육의 책임자요 전문가로 훈련시켜야 교회와 가정이 함께 다음세대의 신앙을 세우기 위한 대책이 시급함 한국교회의 교회학교 교육이 위기에 처해 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굳이 정확한 통계를 들지 않더라도 분명한 것은 대부분의 교회에서 학생 수가 정체되어 있거나 감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앞으로 계속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는 것이다. 저출산으로 인해 학령인구가 감소하기 때문에 교회학교 학생 수가 줄어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치더라도, 학령인구의 감소보다 교회학교 학생 수가 더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우리는 위기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숫자적인 감소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교육의 질적인 면에서도 위기다. 통합 교단에서 어린이와 학부모 교사 1,13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통계에 의하면 어린이의 30.7%가 설교 시간이 가장 싫다고 대답했고, 25.9%는 성경공부 시간이 싫다고 답했다. 교회학교의 가장 핵심적인 시간이 설교와 성경공부인데 이 시간이 싫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세대가 바뀌고 환경이 바뀌었는데 교회교육의 정책이나 방법은 아직도 20-30년 전에 비해 별반 달라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19세기 교실에서 20세기 교사가 21세기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우스갯소리를 하겠는가? 교회교육에 투자하는 시간도 역부족이다. 일주일에 한 번 참석하는 교회교육으로 어린이들을 제대로 된 신앙인으로 키워 내기에는 한계가 있다. 대안을 찾으려면 문제의 원인을 따져 봐야 한다. 장로회신학대의 박상진 교수와 이만식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교회학교 위기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를 물어본 결과, 부모가 54.3%, 교육담당 교역자가 37.3%, 담임목사가 36.9%를 차지했다. 이런 통계를 통해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오늘날의 교육의 위기가 무엇보다 부모가 신앙 교육에서 손을 떼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부모들이 신앙적 관점에서 자녀교육을 할 수 있도록 세워야 한다. 다시 말하면 교회교육의 위기를 극복하는 첫 출발은 가정이어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 교회교육을 한다고 하면서 다음세대를 위한 교육을 교회학교의 범주에 가두어 버렸다. 교회학교를 말하면서 사실상 가정에서의 신앙교육을 교회가 빼앗아 온 셈이다. 그 결과, 부모들이 영적 가르침에 대해 손을 놓고 말았다. 부모들이 주일에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는 한 시간 정도에 아이들을 교회학교에 맡겨 놓는 것으로 신앙교육의 책임을 다 했다고 생각한다. 일주일에 한 시간 정도, 그것도 교사들과 만나는 분반공부는 겨우 15분 정도 주어지는 현재의 교회학교의 환경 속에서 누군가가 아이들에게 영적 영향을 끼치기는 쉽지 않다. 어린아이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히 서고 전인적인 성장을 하도록 돕기 위해서는 교회교육과 가정교육이 손을 잡아야 한다. 교회교육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은 부모다. 교회는 부모를 깨우고 훈련시켜야 한다. 그래서 가정에서 신앙교육이 이루어지도록 도와야 한다. 부모는 자녀의 신앙교육을 위해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누구에게 맡겨서 될 일이 아니라 자신이 우선순위를 두고 헌신해야 할 일이라는 패러다임을 가져야 한다. 구약의 지상명령이라고 말하는 신명기 6:4-9 말씀은 부모가 자녀들을 교육하는 첫 번째 장소가 가정이라고 선포한다. 신약의 교회 역시 가정을 중심으로 교회활동이 이루어졌다. 이렇게 모인 교회의 사역은 늘 가족 중심이었다(행 2:46, 롬 16:5, 엡 2:19). 그러므로 교회가 교회학교에서 자녀들에게 직접 교육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부모들을 훈련시켜서 부모가 자녀들의 신앙교육의 책임자요 전문가가 되도록 세워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가정과 교회에서 일관성 있는 신앙교육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부모들이 기독교 세계관에 근거한 교육을 제대로 할 수만 있다면 교회학교가 가지고 있는 모든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오늘 위기에 처한 교회학교가 부모를 신앙교육의 달인으로 세워 가기 위한 몇 가지 대안을 찾아보자. 1) 통합 커리큘럼 교회학교에서 다루는 교육의 내용을 부모들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대표적인 시스템이 통합커리큘럼이다. 통합커리큘럼(Unified Curriculum)이란 모든 다음세대가 같은 주일에 같은 본문으로 배움의 과정에 동참할 수 있도록 구성한 커리큘럼을 말한다. 서로 다른 부서에 흩어져 단절되어 있는 오늘날의 교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본문을 하나로 통일함으로 극복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부모가 다음세대와 더불어 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근거를 얻게 되는 것이다. 물론 본문은 동일하지만 아이들 각각의 발달단계에 따라 강조점이 달라지고 적용점이 달라져야 한다. 이렇게 통합커리큘럼을 사용하게 되면 비록 부모가 아이들과 같은 공간에서 말씀을 듣고 있지 않더라도 아이들과 배운 말씀을 함께 나누고 영적 흐름을 공유할 수 있게 된다. 2) 세대 통합 예배 세대로교회에서는 세대 통합을 위해 온 가족이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두 가지 형식의 예배를 디자인했다. 그 하나가 ‘온가족 예배’로 온 세대가 다 함께 모여 예배 처음부터 마칠 때까지 함께 예배에 참여하는 것이다. 특별한 절기마다 일 년에 여섯 번 정도 이런 예배를 갖는다. 또 하나는 ‘오렌지예배’라고 부르는 예배다. 이 예배는 매주 이루어지는데 스스로 활동할 수 있는 유치부, 유년부, 초등부 자녀들이 함께하는 예배다. 예배 시작부터 찬양과 기도, 헌금, 그리고 특별순서까지 함께한 후에 어린이들을 강단 위로 불러 모아 어린이 담당 교역자가 말씀을 들려주고 자녀들은 각 부서로 이동한다. 그 후에 성인들이 성인을 위한 설교를 듣고 나머지 예배를 진행하는 것이다. 처음 시작할 때에는 어려움도 있었지만 자녀들과 같은 시간에 같은 설교를 듣고 가정에서 다시 그 말씀을 나눔으로 세대 간 통합뿐만 아니라 가정과 교회가 자녀의 신앙을 함께 세워 가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보고 있다. 3) 가정 통신 자료 사정상 통합커리큘럼을 도입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부모가 주체가 되어 교회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가정에까지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훈련 자료를 제공할 수 있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할 수 있는 활동이나 아이들이 집에서 스스로 할 수 있는 활동을 준비해서 부모들이 가정에서 아이들과 더불어 점검하고 확인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4) 세대간 연결 고리 교회가 세대간 연결 고리를 형성해줘야 한다. 우리 사회의 갈등은 이제 지역 갈등보다 세대 간의 갈등이 더 심각해지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났고 이런 상황은 교회에서도 점점 더 부각되고 있다. 세대 간의 단절이 심화되고 있는 모습은 찬양을 보면 안다. 모든 세대가 함께 모일 기회가 있어도 이제는 전 세대가 공감하며 부를 수 있는 찬양도 없어졌다. 어른들의 예배가 학생들에게는 너무나 어색하고 드리기 힘든 예배로 인식되고 있다. 아이들과 부모가 함께 부를 수 있는 찬양을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최근에 우리 교회에서 자주 부르는 ‘나는 예배자입니다’라는 찬양이 있다. 이 찬양은 2014년 파이디온 선교회 학령 전 여름성경학교 주제곡으로 불렸던 찬양곡이다. 이 찬양을 유치부부터 유초등부, 중고등부를 비롯해 성인들이 드리는 예배에 이르기까지 전 세대를 아우르는 찬양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제는 어린이들이 부모와 함께 예배드리는 자리에서도 누구나 함께 부르며 찬양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렇게 세대를 아우르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시도들이 많이 이루어지면 좋겠다. 5) 부모를 위한 제자 훈련 교회에서 부모들에게 제자훈련을 시킬 때 일상생활 속에서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는 부모가 되도록 훈련해야 한다. 그래서 자녀들이 아침에 일어나고 저녁에 누울 때, 차를 타고 이동할 때, 식탁에 앉아 함께 식사할 때의 모든 시간을 어떻게 신앙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어야 한다. 아이들과 부모가 함께 캠핑을 하고 운동을 하면서 이런 순간순간을 어떻게 배움의 기회로 삼고 자녀들에게 영적인 지도를 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어야 한다. 엄마와 함께하는 큐티, 아빠와 함께 하는 침상 기도와 같이 부모가 자녀들과 함께 영적인 삶을 함께 나누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필요하다. 공휴일을 끼고 실시하는 아빠와 함께 하는 1박 2일 캠프도 좋다. 이제 일주일에 한 시간 교회학교에 참석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교육 시스템은 더 이상 안 된다고 선포해야 한다. 부모들이 교육 부서를 담당하는 소위 전문사역자들에게 신앙교육을 모두 맡기려고 하는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그래야 교회교육이 살 수 있다. 교회와 가정이 함께 손을 맞잡고 다음세대의 신앙을 세워 나가기 위한 대책이 시급하다. 부모가 자녀들의 신앙교육의 책임자요 전문가가 되도록 세워 가는 목회로 전환해야 한다.
1200 |목회특강| 목사와 설교_장상래 목사 첨부 파일
편집부
3788 2017-06-21
<목회특강> * 지난 5월 10일 동서울노회 은평교회 담임목사직에서 은퇴하고 원로목사직에 취임한 장상래 목사의 목회자 세미나 초청 강의 중 일부를 발췌, 허락 받아 싣는다. 목회 일선의 동역자들에게 뜻깊은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 편집자 주 목사와 설교 < 장상래 목사, 은평교회 원로목사 > 교회 중심으로 사는 목사에게 설교는 목회의 꽃이요 생명 교회를 잘 섬기는 길은 설교에 진력하고 설교한 대로 사는 것 교회와 목회 중심의 목사 목회자에게 최고의 가치관은 교회뿐이다. 교회가 참되게 부흥하고 교회가 교회다워진다면 더 큰 소망은 없을 것이다. 지난 은혜의 길목에서 나는 복잡한 인생의 문제들도 교회에 유익이 없으면 미련 없이 포기할 수 있었다. 교회 문제 외에 나머지에 대해서는 별 애착이 없었다. 그래서 마음이 편했다. 처음 개척할 때는 매달 첫 주는 반드시 기도원에 올라갔다. 아버님의 소천 때도 장례 후에 바로 기도원에 가버렸다. 그걸 보고는 이웃 교회 목사님이 대단하다고 했는데, 목회자가 교회 중심으로 생활방식이 완전히 확정되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나는 정이 많은 편이나 목회 사역에서는 정에 매이지 않으려 애썼다. 형제 7남매가 다 모여도 때 되면 책 보따리를 싸서 기도원에 갔다. 나는 생각이 너무 단순하다. 중요한 것만 생각한다. 어디 볼만한 곳에 여행을 갔다 와도 모든 것을 금방 다 잊곤 했다. 여행 사진을 다시 봐도 금방 생소할 만큼 다 잊어버렸다. 교회와 목회 외에는 별로 재미있는 것이 없었다. 설교를 목회의 생명으로 삼는 목사 그런데 교회가 참되게 부흥하고 교회가 교회다워지기를 바라는 이 목회의 큰 소망을 이루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설교이다. 나에게 일주일 단위의 가장 소중한 것을 한 가지만 말하라면 당연히 설교이다 이것이 내가 추구한 목회의 가장 큰 주제였다. 목회의 꽃이 설교이다. 설교는 목회의 생명이다. 하지만 내 스스로 설교를 잘한다고는 한 번도 생각 한 적이 없다. 그래서 열심히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는 거의 고정적으로 금요일에 기도원에 가서 설교 준비를 완료하고 다음 주일 본문과 제목도 미리 정하여 토요일 저녁에 내려왔다. 해외에 나가도 어지간하면 금요일에는 들어왔다. 만일 토요일에 혼인 주례를 하면 하루 앞당겨 목요일에 기도원에 올라갔다. 사실 바쁘게 심방을 하고 보니 도무지 설교 본문을 정하는 게 쉽지 않았다. 어떤 경우엔 아무리 뒤져 봐도 설교할 분문이 안 잡히고 설교 할 내용이 없었다. 너무도 고통을 겪었다. 그러다가 기도원에 올라가 기도하며 설교 본문을 접해 보니 어렵지 않게 설교를 준비하게 되었고 다음 주일 본문 제목도 미리 정할 수 있었다. 목사의 영성은 설교를 준비할 때와 설교 할 때에 최고조에 이른다. 외모든 학벌이든 아무리 보잘 것 없는 목사도 강단에서 잘 준비된 은혜로운 설교를 하면 모든 성도들이 아주 감동을 받고 목사를 좋게 본다. 하나님이 그렇게 쓰신다. 목사가 강단 밖에서는 볼품없어 보여도 설교하는 강단에서는 빛나 보인다. 목사가 설교를 할 때는 하나님께서 그를 최고의 상태에서 사용하신다. 언젠가 내 설교 테이프를 듣고 은혜를 받은 사람이 시장에서 일하는데 나를 직접 만나고 싶다며 잠깐 들르라 해서 갔더니 “목사님, 그 장 목사님 맞으세요? 키가 이렇게 작으세요?” 했다. 그래서 “키는 작아도 내가 은평교회 그 장 목사 맞습니다”라고 하며 피차 웃었다. 하나님은 부족한 사람도 그렇게 쓰신다. 이처럼 목사의 영성이 최고조일 때는 설교를 준비 할 때이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스타일은 각기 달라도 설교 준비를 위한 자신만의 시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내 경험으로는, 자신만의 시공간에서 설교 준비를 할 때 다음 주 본문을 미리 정하면 한 주간 내내 그 본문과 주제에 관련하여 생각을 집중할 수 있고 그 설교의 내용도 풍성해진다. 목사에게는 심방과 전도와 교육이 다 필요하다. 그러나 심방하고 전도하고 교육하는 일로만 부산하게 뛰어 다니면 정작 설교가 안 보인다. 재삼 명심할 것은 무엇보다 설교가 우선이라는 점이다. 나는 설교 준비를 철저히 했다. ‘그렇습니다. 저렇습니다’까지 원고에 다 썼다. 너무나 자신이 없기에 그랬다. 사실 심방할 때도 마음으로는 설교에 대해 고민했다. 그만큼 부담을 가졌다. 늘 설교 자료를 고민했고 심지어 텔레비전을 보아도 설교 생각을 했다. 설교 사역으로 가장 잘 섬기는 것, 목사가 설교를 설교답게 하는 것이 목사의 최우선 사명이다. 목회자가 아무리 인품이 착해도 설교에 실패하면 결국 성도를 멸시하는 것이다. 전도를 잘하고 심방도 잘하고 사랑을 많이 베풀고 인간관계가 좋아도 설교를 못하면 제대로 목회하는 것이 아니다. 성도들이 일주일 내내 말씀을 사모하며 어렵사리 주일날 달려왔는데 깨달음을 주고 마음에 흡족한 은혜로운 설교를 못 들으면 얼마나 안 좋은 일인가. 영적으로 갈급한 성도들을 일주일간 방치 한 거나 다름없으니 그 얼마나 성도를 섬기지 못한 일인가. 설교한 대로 사는 목사 설교와 관련하여 중요한 점을 덧붙이자면 바로 설교한 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개척 초기에 교단 세미나에 참석하였는데 강사가 홍정길 목사님이셨다. 그때 “목사가 교회를 가장 크게 잘 섬기는 것이 뭐냐? 설교한 대로 살아 주는 것이 교회를 가장 잘 섬기는 것이다”라는 그분의 말씀에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전까지 교회를 잘 섬기는 것은 그저 죽자 사자 열심히 뛰는 것인 줄 알았는데 ‘목사가 설교한 대로 살아 주는 것이 성도와 교회를 가장 잘 섬기는 것’이라는 홍 목사님의 말씀은 정말 감동과 충격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후로는 그때 배운 바대로 하려고 무척 노력했다. 목사가 설교도 잘 해야 하지만 그 설교대로 살아 주는 것이 성도를 가장 잘 섬기는 것이라고 지금도 믿는다. 요즘엔 좋은 책과 자료도 많아서 부지런히 기도하며 노력하면 설교 준비는 어느 정도 잘 할 수 있지만, 목사가 설교한 대로 안 살면 성도들은 상처를 받고 말씀의 권위를 무시하게 된다. “설교를 하신 목사님도 저러는데 우리는 뭐 특별히 애쓸 거 있나...” 이렇게 성도들의 신앙생활이 가라앉아 버린다. 무엇보다 가정에서 인정을 못 받는다. 설교는 저렇게 해놓고 집에서 하는 언행은 설교대로 하지 않는다고 가족들이 속으로 무시하게 된다. 그러면 가정생활도 자녀교육도 원만할 수 없다. 주의 종들은 하나님에 붙들리고 경건이 깊으면 목회를 해볼 만하다. 이것은 맞다, 저것은 아니다 하는 분별력과 판단력이 생긴다. 그래서 어떤 순간에도 갈등이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 영적인 방황에 빠지는 이유는 균형이 안 잡혀서 그렇다. 몸의 균형이 안 잡혀 있으면 정상적인 활동이 힘들 듯이 영적인 활동도 그렇다. 그 영적인 균형을 잡아 주는 것이 바로 설교이다. 목사가 설교한 대로 살아서 영적인 균형이 잡히면 가정생활도 안정되고 성도들에게도 존경을 받는다. 참 좋은 목사 목사가 교회와 목회 중심으로 살고 일주일 내내 설교로 씨름할 수 있다면 다른 조건은 어쨌든 일단 괜찮은 목사이다. 더욱이 설교한 말씀대로 살고자 부담을 느끼는 목사라면 참 좋은 목사이다. 이 점에서 나는 어떤 목사였는지 생각하면 부끄럽다. 그러나 참 좋은 목사가 되려고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며 발버둥친 것만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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