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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9 |2014 PMS 선교대회| 하나님의 은혜 가득한 수련회_송혜린 학생 파일
편집부
2676 2014-03-11
하나님의 은혜 가득한 수련회 < 송혜린 _ MK > 아빠로부터 인도네시아에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학교수업을 빠지게 되어 진도를 따라가기 힘들 것 같아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비자 문제도 있고, 좀 귀찮았지만 부모님의 권유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인도네시아에 가게 되었습니다. 사실 마음 한구석이 좀 답답했습니다. 소심한 성격이라서 친구도 사귀지 못하고 심심할까봐 많이 걱정했는데, 성경학교에서 선생님들과 친구들의 미소를 보면서 조금씩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찬양과 율동을 할 때 유치하다고 생각했는데, 친구들과 불러보고 율동을 하다 보니 재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주제가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제가 MK라는 걸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그런 찬양이었습니다. 이 찬양을 부르면서 저도 다음에 부모님처럼 하나님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재미있는 찬양이 많아서 부르기가 좋았습니다. 처음에 동갑친구가 없을까봐 걱정했습니다. 다행히 친구가 두 명이나 있어서 기뻤습니다. 그래서 금방 친해질 수 있었고, 즐거웠습니다. 공과시간 때는 선생님의 말씀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는데, 차츰 선생님들과도 친해지면서 공과시간이 즐거워졌습니다. 다행히 선생님들이 거의 오빠, 언니들이어서 친해지기 쉬웠습니다. 재밌고, 활발하고 착하신 선생님들이 계셔서 아이들과 친해지기도 쉬웠던 것 같습니다. 교제시간에 서로 웃고, 간식도 나눠먹으면서 더 많은 것에 대해 알아가고 다른 나라에 대한 문화나 종교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자유 활동시간이 있어서 더욱더 재밌었고, 매일 다양한 활동들이 준비되어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물총놀이, 부채꾸미기, 달란트 시장, 영화보기 등등 여러 가지 활동들이 우리 MK들을 하나로 모아주는데 큰 역할을 해준 것 같습니다. 성경학교 마지막 날이 되었을 때 부모님 앞에서 율동을 하고, 게임을 하면서 참으로 소중한 시간을 가졌고, 나중에는 선생님들과 카톡 아이디도 나누고 서로의 교제시간을 가지면서 더 많은 추억들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번 PMS 인도네시아 MK성경학교를 통해서 MK의 역할을 알 수 있게 돼서 참으로 감사하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생각대로 만약 인도네시아에 가지 않았다면 정말 후회스러웠을 것입니다. 다음에도 기회가 된다면 이런 성경학교에 다시 가보고 싶습니다. 지금도 친구들과 선생님들과 문자를 주고받고 있습니다. 저를 인도네시아로 이끌어 주시고, 3일 정도였지만 이렇게 좋은 친구들을 만나게 해주신 하나님께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MK답게 이번 성경학교를 통해 배운 대로 다 잘해 나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를 올려드립니다. 언제나 저를 좋은 곳으로 인도해주시는 하나님, 정말로 감사합니다!
1038 |2014 PMS 선교대회| MK들의 아픔을 가슴으로 품으며_김아영 교사 파일
편집부
2703 2014-03-11
MK들의 아픔을 가슴으로 품으며 < 김아영 _ MK교사 > 2014년 PMS 동남아권역 선교대회에 제가 섬김이(MK교사)로서 참석하여 은혜를 누리게 하신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섬김이로서 이번 선교대회 참여했던 제가 가장 많이 느꼈던 것은 선교사 자녀들의 아픔이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목회자의 자녀로 20년 가까이를 살았습니다. 그리고 선교사로 새롭게 출발하신 부모님을 따라 인도네시아 온지 이제 7개월째 접어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선교사 자녀로서 느끼거나 경험한 것은 그 곳에 모인 다른 선교사 자녀들에 비하면 극히 적은 것이었습니다. 또한 저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저의 소명을 분명히 알고 왔기에 적응하기도 쉬웠고, 힘든 부분도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타국에서 거의 모든 인생을 살아온 선교사 자녀들을 만나고 그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저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들의 마음은 상할 대로 상해 있었고, 다들 각자의 상처가 곪아 터져 있었습니다. 짧으면 4년 길면 12년 이상을 타국에서, 문화충격과 언어의 장벽, 소통의 불편을 겪고 인간관계의 고됨과 싸우고 있는 아이들을 만났을 때, 저는 안타까움과 안쓰러움을 느꼈습니다. 부모님께서 사역하시느라 아이들을 돌볼 겨를이 없이 늘 혼자 고군분투했던 이야기, 안식년을 맞아 오랜만에 돌아온 고국에서 만난 텃세와 괴롭힘, 언어를 몰라서 다른 나라 아이들에게 왕따 당했던 이야기,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사역지를 옮길 때 함께 지냈던 친한 친구들과 헤어져야만 했던 이야기, 부모님께서 걱정하실까봐 힘든 것들을 말하지 못하고 숨겨왔던 이야기 등등 아이들이 울면서 이야기들을 해주었습니다. 그 아이들을 보며 저는 제 동생이 떠올랐습니다. 제 동생은 인도네시아어만 사용하는 고등학교를 다니는 중인데 늘 저에게 와 힘들다고 하소연했었고, 울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단순히 제 동생의 노력부족과 게으름이라고 생각하고 동생의 태도만을 꾸짖었습니다. 동생이 겪을 문화 충격이나 언어의 장벽, 힘듦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아이들과 대화하던 중 저는 제가 동생에게 했던 말들과 보여주었던 태도들을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가족들과 주위 사람들의 관심과 도움이 필요했던 아이들의 모습을 제 동생에게서 보았고, 제 동생 또한 그 아이들과 같은 것을 겪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동생의 이야기와 아이들의 생각을 비춰보았을 때 대부분은 외국에서 생활하는 것에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아이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부모뿐만 아니라 자신들 또한 하나님의 종 ‘선교사’로서 부르셨다는 걸 아직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아이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명확히 할 수 있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깨달을 수 있도록 기도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또한 언젠가 하나님께서 저 또한 확실한 ‘선교사’로서 부르셨을 때, 저는 이런 아이들을 섬기고 도와주고 싶습니다. 모든 것을 깨닫고 알게 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감사합니다.
1037 |2014 PMS 선교대회| 성령의 사람 바울_장상래 목사 파일
편집부
2467 2014-03-11
<2월 18일 저녁집회 메시지> 성령의 사람 바울(사도행전 16장 6-10절) < 장상래 목사 _ 은평교회 > 바울은 하나님의 일에 대해 대단한 열정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는데, 특히 성령의 음성에 예민하고 그의 인도하심에 따르려는 마음이 강했다. 아시아를 막으시기 때문에 계획을 다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비두니아를 바라보게 되었다. 성령이 막으시지만 하나님의 사역과 받은 사명완수에 애를 쓰는 모습을 본다. 성령의 사람이란 밤낮 산 속에서 불로 불로 부르짖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에 대해 계속해서 애를 쓰는 사람을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대해 믿는다. 그걸 믿으면 우리는 아무 것도 안 해도 되는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지 않다. 구원에 관한 절대주권이다. 선교에 관한 절대주권은 얼마나 그 일에 대해 애를 쓰는가에 따라 성령의 역사와 인도를 받게 되고 환상을 보게 되는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남겨 놓으신 고난을 생각하며 내 속에 역사하시는 성령을 따라 내가 애를 쓴다고 고백한다. 역사와 수고 중 어느 것이 먼저인가? 바울은 성령이 속에서 역사하심을 느낌에도 불구하고 애를 씀을 중단하지 않았다. 맡겨주신 사명에 애를 썼다. 하나님은 애를 쓰는 사람을 들어 쓰신다. 어떤 목사는 설교 준비하지 않고 성령만 의지하고 강단에 선다고 한다. 이는 정말 잘못 된 것이다. 또 어떤 경우는 설교 준비가 부족한데 성도가 은혜 받았다고 하기도 하고, 설교 준비가 잘 되었는데도 냉랭한 경우가 있다. 요는 하나님은 준비 과정에 애를 쓰는 경우를 귀하게 보시는 것이다. 힘들다고 주저앉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 받은 사명이라면 우리가 애를 쓸 때 성령님이 역사하신다. 어떻게든 애를 쓰는 모습을 요구하신다. 그 이후는 성령님이 맺게 하신다. 애를 쓸 때 뜻하지 않게 지혜를 주시고 일을 주시고 사람을 주신다. 나는 서울 목회를 할 사람이 아니고 목회자 없는 지방에 어울릴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서울 근방을 돌다가 경기도 접경인 천호동에 교회를 세웠다. 오는 사람이 은행원 등 지식인들이어서 부담이 많았다. 설교 10년 동안 너무 힘들었다. 강단 공포증을 절감했다. 주일에 설교 7번씩 3년 하니까 밑천이 떨어졌다. 그런데 사람들이 찾아왔다. 목회의 긴장감은 여전했다. 수면제는 목회 끝나면 끊어지리라 확신한다. 목회의 긴장감이라는 것이 있다. 한 교회에 10년 이상하면 조기 은퇴하고 싶다고들 한다. 그러나 조기 은퇴하면 석 달이 못 가 후회한다. 선교사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힘들지만 두 세 달만 쉬면 다시 회복되어 할 마음이 생긴다. 결론은 주어진 기간 동안 애를 쓰자는 것이다. 거기에 성령의 역사가 있을 줄 믿는다. 성령의 사람은 쉽게 실망하지 않는다. 성령이 막으시는데 실망한 기색이 없다. 우리는 어지간하면 성질부린다. 마게도냐 환상을 보고 자기의 계획이 변경되어도 바울은 실망하지 않았다. 그런데 환상을 따라 온 바울이 형통하지 않았다. 성령을 따라 왔는데도 매를 맞고 감옥에 들어갔다. 그때 바울은 또 순종하고 찬송하며 실망하지 않았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부르심 따라 선교지 왔는데 왜 일이 풀리지 않는지 모른다. 주저앉고 싶고, 가족들에게 성질부리고 싶다. 이때 실망하지 않고 다시 순종하며 애를 쓰는 게 중요하다. 아무 것도 한 게 없어 보여도 그게 성령의 일이고 성령의 사람이 하는 일이다. 요는 열매는 나중의 일이고 일단 애를 쓰는 것이다. 할 만한 일이라면 하여튼 애를 써보라. 뜻하지 않은 환상을 보고 새로운 일을 열어 주신다. 우리 생애가 끝날 때까지 실망하지 않고 나간다면 반드시 주님이 역사하신다.
1036 <2014 PMS 동남아권역 선교대회 결의문> 파일
편집부
2177 2014-03-11
<2014 PMS 동남아권역 선교대회 결의문> 대한예수교장로회 합신세계선교회(PMS)는 2014년 2월 17일(월)부터 20일(목)까지 인도네시아 보고르(Bogor)에서 “아버지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10)라는 주제로 합신세계선교회(PMS) 동남아권역 선교대회를 개최하였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 필리핀 등 6개 나라에서 온 선교사 73명과 자녀 30명, 한국에서 참석한 선교지도자 25명은 본 선교대회를 통하여 동남아시아의 신속한 복음화가 하나님 아버지의 뜻임을 재확신하였고 대회 기간 중 깨닫고 결심한 바를 아래와 같이 정리하였다. <우리의 감사> 1. 우리는 동남아시아 6개국에서 사역하는 합신 선교사들이 한 자리에 모여 예배와 말씀으로 영혼의 쉼과 회복을 경험할 뿐 아니라 동역자간의 교제와 기도를 통한 하나됨, 그리고 전략회의를 통해 선교현장의 이슈들을 함께 나누고 실질적인 선교전략과 방법을 모색할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2. 우리는 본 선교대회를 위하여 기도와 물질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은 후원교회들, 본 대회를 기획한 PMS 본부, 행사를 준비하고 주관한 인도네시아 지부, MK수련회를 위해 수고한 자원봉사자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며 하나님의 위로와 복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드린다. 3. 우리는 예장합신 교단 창립 시 한국 선교사의 숫자가 겨우 100명이었으나 33년 후인 2013년 말 현재 25,725명으로 성장한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였다. 우리 교단은 지난 33년 동안 많은 선교지도자를 배출하면서, 한국 선교의 견인차 역할로 하나님께서 사용하여 주신 것에 감사드린다. <우리의 깨달음> 1. 우리는 선교가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 안에서 인간이 힘쓰고 애써야 할 사역임을 확인하면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주님께 끝까지 충성하는 일꾼으로 섬겨야 할 존재임을 깨달았다. 2. 우리는 그 동안 선교현장에서 부족함과 실수도 있었음을 인정하고 반성하며 선교의 남은 과업을 완수하기 위하여 선교지 진입전략과 이양전략의 분명한 목표를 설정하고 현지교회와의 협력을 전제로 선교사역에 임하여 중복투자를 해소하고, 선교사의 사역별, 지역별 전진배치와 협력선교 및 출구전략을 연구하기로 하였다. 3. 우리는 동남아 전역에서 한류문화가 선교사역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점에 주목하면서 문화선교부분의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개발할 필요성에 공감하였다. 4. 우리는 한국 선교사의 장점과 사역을 한국선교학이라는 이론의 틀에 담아 세계선교계에 기여하며, 한국교회 130년 역사 속에 나타난 한국신학을 기초로 선교관점에서 본 한국신학 개발에 힘써, 그것을 현지신학 개발에 접목할 필요성을 인식하였다. <우리의 다짐> 1. 우리는 바울의 선교전략 중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곳을 향한 그의 개척정신과 담대한 도전의식 그리고 성육신적 선교를 이어받음과 동시에 한국형 선교전략을 더욱 개발하여 세계선교운동에 일조할 것을 다짐한다. 2. 우리는 교회개척(Church Planting)과 더불어 선교개척(Mission Planting)에도 힘써야 하며 이를 위해 '동남아시아 미션 플랜팅 네트워크'(South East Asia Mission Planting Network, SEA-MPN)를 이번 대회에서 설립하였고, 이를 통해 훈련 및 인적자원의 유기적인 연합과 협력을 이루어 나가기로 다짐한다. 3. 우리는 합신의 정신인 ‘바른신학’, ‘바른교회’, ‘바른 생활’과 더불어 ‘바른 선교’를 추가하여 21세기 세계선교에 있어서 고유한 성분을 가진 소금처럼 모범적이고 실천적인 PMS가 되기를 다짐한다. 4. 우리는 한국 선교계와 합신 교단선교 태동시 다짐했던 동반자선교(Partnership Mission)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인식하고 합신선교사간, 타교단 또는 선교단체간, 나아가 서구선교사들 그리고 현지 교회 및 선교지도자들과의 동반선교개발과 실천에 더욱 힘쓸 것을 다짐한다. 2014년 2월 20일 PMS 동남아 권역선교대회 참석자 일동
1035 |리⊙포⊙트선교지방문| 캄보디아 선교 현장의 소회와 잔상_차인환 장로 파일
편집부
2530 2014-03-11
캄보디아 선교 현장의 소회와 잔상 < 차인환 장로, 화성교회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이 말씀은 오랫동안 뇌리 속에서 떠나지 않고 맴돌고 있는 사도 바울의 유훈적인 신앙고백이다. 그래서인지 고희를 향해가는 나이에 사욕이 있을 수 없고 삶의 회한이 없을 수 없기에 구원의 감격과 빚 진자의 사명이 있어 기도해 오던 중에 시작을 하게 된 것이 해외선교였다. 북한선교는 젊은 시절부터 기도해오던 개인적 염원이기도 하지만 사역에 대하여는 사역의 특수성과 보안상 지면에 열거할 수 없기에 캄보디아 선교를 중심으로 선교의 소회와 사역 후마다 겪는 트라우마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1. 선교 사역에 참여하게 된 계기 명예에는 의무가 따르고 복에는 사명이 따른다고 했던가? 25년 전 화성교회에서 주일학교 전도사로 섬기다가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신학자이자 의사가 된 합신 9회 최현재 선교사와 동역을 하게 되었다 전도서의 말씀대로 모든 일에 선후가 있고 같은 일에 효율을 생각하듯이 부족한 사람에게 선교의 동역자이자 신앙의 귀감과 멘토가 되는 귀한 거울이 있다는 것은 주님 앞에서 정말 감사하고도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프리카의 케냐와 멕시코의 오지마을 그리고 인디언 원주민 마을을 대상으로 사역하던 중 지역적 효율성과 복음의 정변적 시급성을 고려하여 결정을 하게 된 대상국이 북한선교를 위한 중국 모처와 동남아의 입헌군주국가 캄보디아이다. 창세 이래 세계 역사는 하나님의 구원역사이지만 동시에 심판역사이다. 이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중심한 고대문명과 성경의 가르치심 그리고 선교의 역사와 근세사를 대입해 볼 때에 확연히 드러난다. 한 나라가 이 땅에서 선교대국으로 자리매김 하는 것에는 그 나라의 국력과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 근세사를 보면 15-16세기에 스페인이 무적함대로 세계의 바다를 제패했을 때 카톨릭의 선교국가가 되었다. 18-19세기에 대영제국의 국력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선교대국이 되었다. 20세기에 들어 미국이 세계 제일의 선교대국이 되었을 때에는 위세도 당당한 아메리카의 평화(pax americana)를 이룩했다. 한국교회는 오늘날 전 세계 160여 국가에 2만 5천여 명에 달하는 선교사를 파송함으로써 선교대국이 되었다. 인구 1,450만 명이라는 캄보디아에 한국인 선교사 가정이 600여 가정이 넘는다고 한다. 합신교단 출신 역시 5가정이 선교 헌신을 하고 있다. 2. 월남전 상처 안고 있는 캄보디아 캄보디아는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아려오는 곳이다. 2003년 2월에 처음 최현재 선교사를 따라 캄보디아에 들어갔을 때 수도 프놈펜조차도 도심 중앙의 대로에 차선이 없었고 무질서의 극치에다 온통 쓰레기 범벅과 곳곳의 악취뿐이었다. 국민소득은 600불, 초등학교 교사 한 달 급여는 100불 내외, 한 해의 대외 무역량이 110억 불이라니 우리나라 무역량의 100분의 1에 불과하다. 전국민의 80%가 전기와 상하수도 혜택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전기도 베트남에 의지하고 있는 나라이다. 그러니 이웃한 베트남이나 태국에 가서 사는 것이 젊은이들의 꿈이기도 하다. 국가재정 수입의 반 이상을 나라 북쪽에 위치한 관광지인 앙코르왓트에 기대어 사는 나라, 일 년에 8개월은 우기철이라 계속 비가 내리고 4개월의 건기철에는 비 한방울도 오지 않아 먼지투성이인 곳. 불교국가라지만 소승불교의 기복적이고 흰두교적이며 샤머니즘적이어서 어느 절에서는 예수님의 초상화까지 모셔놨다니 기가 막힐 뿐이다. 현실 초월주의적 가치관보다 물질주의가 우월하여 퇴폐문화가 급속하게 만연하고, 여성의 문맹률이 70%를 상회하며, 기독교인 숫자는 최근에야 13만 명이라는 통계가 나와 있다. 지리적으로는 월남과 인접한 탓에 미군의 공습으로 억울한 참화를 당하고도 하소연 한마디 못하는 나라로 월남전의 폐해를 고스란히 안고 있다. 게다가 고유 언어인 크메르어가 있기는 하지만 문자가 꼭 라면 깨트려 늘어놓은 형상이라 배우기를 주저하고 필요한 언어는 아예 통째로 외워가야 할 형편이다. 오죽 그 언어가 어려웠으면 문자를 바꾸자는 여론이 팽배했지마는 기득 세력인 고위층 승려들의 반대로 무산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때 묻지 않고 순수한 사람들의 해맑은 미소가 있어 때가 되면 빨리 가보고 싶고, 다녀오면 그 잔상으로 인해 한동안 트라우마가 남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금년 1월로 꼭 열 번째 캄보디아 선교지 사역 방문을 했다. 3. 나눌 수 있을 때 나누어야 미국에서 20여 시간 장시간 비행 끝에 도착한 최현재 선교사를 반갑게 포옹으로 만나고 오랫동안 우리의 사역에 함께하는 현지 선교사댁에 본거지를 두고 그렇게 꼭 한 달간의 짧지 않은 사역이 시작되었다. 수도 프놈펜에서 90키로 내지 160키로 떨어진 농촌의 오지마을인 쓸라엥, 깜뽕츠낭, 깜 등이 오래전부터 사역을 하는 우리의 단골 선교 현장이다. 물반 고기반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지만 이곳은 그야말로 황금어장이다. 한국과 현지에 도착하여 준비해간 빵과 학용품을 나누어주고 하모니카로 찬송을 들려주고 인간의 소망되시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목청껏 외치는 최 선교사 곁에서 나는 늘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아마도 주님의 눈은 늘 젖어 있으셨을 거라는 선교사의 독백 때문인지 마음에 존경과 감사와 사랑이 가득해진다. “저렇게 쓰시려고 주님께서 저에게 복을 부으셨구나.” “이렇게 쓰시려고 내게 하모니카를 불게 하셨구나.” 말씀을 듣는 사람보다 전하는 우리에게 늘 은혜가 더더욱 넘쳐온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친다고 하셨던가? 현지어가 자유롭지 못하기에 우리의 영어를 캄보디아 신학대학의 쏘카 교수가 현지어로 통역을 하고 프놈펜 대학에 다니는 은혜받은 청년들이 우리의 헬퍼 노릇을 해준다. 많이 모이면 사, 오백 명, 적게 모여도 이백 여명, 생전에 처음 복음을 들어본다는 그들 앞에 설 때 너무 늦게 왔다는 생각에 자책과 함께 미안한 마음을 숨길 수없다. 현지어로 제작된 만화형식의 전도지를 나누어주며, 이 마을 저 마을을 다니며 복음을 소리칠 때 이곳에서 생명을 마치면 주님 앞에 영광이 되겠다 싶기도 하다. 우리는 모두 복음에 빚진 죄인이다. 인생은 그날이 아침 안개와 같다고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너무 늦기 전에, 나눌 수 있을 때 나누어주고 베풀 수 있을 때 베풀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4. 지금은 복음 전할 절호의 기회 비가 오지 않는 건기철, 웅덩이에 고인 물에 소나 짐승이 들어가서 목욕을 하고 아이들도 들어가서 놀고 그리고 그물을 떠다가 마시고 사는 사람들. 이 참상을 바라보며 우물파기를 시작했다. 다행히 교회의 뜻있는 성도들과 친구들이 동참을 해주어 현재까지 6군데의 우물을 준공하고 기증을 하여 깨끗한 생수를 마시게 하였다. 캄보디아! 1979년을 전후한 크메르루즈 일당 의 폴폿에 의하여 당시 인구 750만의 삼분지 일이 넘는 270만 명 내외가 학살된 저 킬링휠드의 무시무시한 학살의 역사가 있었지만, 다행히도 현재는 친한파인 훈센 총리가 집권 중이어서 기독교 선교활동과 NGO에 관대하다. 하지만 현재 불거진 노사문제와 민주화 요구로 언제 어떠한 정변이 발생하여 선교의 문이 닫힐지 알 수 없는 나라이다. 선교의 효율성과 급박성을 볼 때 지금은 울면서 씨를 뿌릴 때이다. 지금은 목사 선교사보다도 일반성도 선교사가 많이 사역을 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번에 프놈펜의 신학대학에서 채플 시간에 말씀을 전할 시간이 주어졌기에 그들에게 간절히 이야기했다. “진실한 목회자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성도들이 이야기합니다. 그대들은 앞으로 세상에 나가면 제발 진실한 종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부족한 사람이지만 50여 차례의 사역이 있었고 건강과 경제가 허락되는 한 하나님 앞에서 이 일을 계속하고자 한다. 마치는 말 오랫동안 이 사역을 행하며 느끼는 안타까운 소회가 있다. 그것은 한국교회에는 연합과 협력에 문제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같은 교단의 선교사끼리도 유기적인 협조가 안 된다니 이런 안타까운 일이 어디 있을까? 전문인 선교시대라고 하는데 언어도 안 되고 전문성도 없는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는 것도 심히 안타까운 일이다. 지교회의 목양을 책임진 교계의 지도자들은 각 교회가 체면으로 그리고 치적주의 때문에 충분한 사전조사 없이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선교지에는 반드시 성경적 교회가 세워져야만 한다. 교회당이 곧 교회라는 일부 한국교회의 잘못된 선교전략과 건물강박관념 때문에 그리고 현지에 진실한 목회자를 키워놓지 못한 시행착오로 인해 현지 교회 건물이 창고로 되어 있는 것도 목격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세상에서는 이야기하는데 이 원칙이 가장 시급히 적용되어야 할 곳이 오늘날 한국교회요 선교의 현장이다. 바라기는 이 땅을 사는 동안 우리 모두 다 복음에 빚진 죄인들인 것을 깨달으며 산을 넘는 발이 내일도 아름답기를 염원한다.
1034 <목회자 자녀 캠프를 마치고> 평생 같이 걷고 싶은 PK들_권 찬 파일
편집부
2544 2014-02-25
평생 같이 걷고 싶은 PK들 < 권 찬, 은혜로교회 > “나만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PK들을 위해 헌신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이번 PK를 마지막으로 이제는 OK로 여러분들을 섬길 권찬입니다. PK 캠프가 끝난 지 벌써 3일이 지났습니다. 참 무엇이라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가슴 벅차고 감동적이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서로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공감하는 사람들이 모인 3박 4일 간의 시간은 마치 3일간의 꿈처럼 느껴집니다. 저는 작년 11회 캠프 때부터 변화하기 시작하여 이제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하심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저를 변화시킨 건 11회 캠프가 아닌 이전부터 주님께서 조금씩 변화시키셔 왔고 11회 캠프 때 한 영혼을 통해 저에게 임하셔서 제 가치관과 삶의 목표를 바꿔놓으셨다고 생각합니다. 이 놀라운 주님의 역사하심에 항상 감사하고 그 통로가 되었던 한 영혼에게 늘 감사함을 느낍니다. 이번 12회 캠프는 여느 캠프보다 설레고 기다려졌습니다. 친구들도 보고 싶었지만 그것보다 이 캠프를 통해 신앙적으로나 내적으로 더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원하는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나만 성숙하고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내가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라는 것입니다. 어렵고 하기 싫을지라도 한 심령을 위해서 용기 있게 나가라고 저에게 말씀해주셨습니다. ‘OK들이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을 더 사랑하고 너와 같은 처지에 있는 아이들을 더 보살피라는 말씀은 제가 이 캠프를 통해 회복되고 위로 받은 것처럼 너도 위로의 통로가 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아직도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합니다. 이렇게 그립고 허전한 적은 캠프를 하며 처음 있는 일입니다. 그만큼 이번 12회 캠프는 저에게 있어 많은 의미가 있었던 캠프였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그냥 일반적인 수련회가 아닌 저에게 있어 가장 소중하고 없어서는 안 될 수련회가 된 것입니다. 여느 친구들과 같은 사람들이 아닌 서로 함께 고난을 겪어갈 그 속에서 서로 의지하며 같이 걸어갈 누구보다도 서로를 잘 아는 평생 친구, 진정한 주님 안에 속한 친구, 그대들이 있어 가슴이 너무 벅찹니다. 이제는 OK로 PK들을 섬기게 되는 데 PK에서 받았던 은혜보다 더 큰 은혜가 있음에 확신합니다. '힘들지?....같이 걷자!' 주님이 맺어 준 인연들과 평생 같이 걷고 싶습니다.
1033 <목회자 자녀 캠프를 마치고> 억지로 참여하게 된 PK캠프_박신지 파일
편집부
2610 2014-02-25
억지로 참여하게 된 PK캠프 < 박신지, 신민교회 > “같은 PK로서 언니 오빠 친구들에게 정말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처음에 엄마아빠가 PK캠프에 가라고 했을 때에는 별로 오고 싶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들이랑 처음만나서 3박 4일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랑 봄방학인데 친구들이랑 놀고 싶은데 내가 왜 가야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엄마아빠가 이미 회비까지 다 냈다고 거의 끌려가다 시피 PK캠프에 갔다. 처음엔 방에 들어갔을 때 다 아는데 나만 모르는 것 같은 느낌이어서 괜히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처음엔 인사만하고 계속 핸드폰만 들고 있었다. 그렇지만 친구들하고 얘기하면서 친해지고 정말 좋았다. 친구들이 전부다 너무 착하고 일단 같은 PK이라서 공감되는 부분도 정말 많았다. 하는 얘기도 서로서로 너무 잘 맞았다. 또 언니 오빠들이께서도 너무 잘해주셨다. 그래서 정말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도시간에나 예배시간에 원래는 친구들이 이상하게 볼까봐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면서 기도나 예배를 그리 깊이 못했던 것 같다. 그런데 PK캠프에서는 다 같은 PK이니까 눈치를 볼 이유 없이 정말 뜨겁게 기도하고 찬양했던 것 같다. 저녁 집회에는 조금 졸기도 했지만 정말 좋은 말씀이 많았다. PK페스티벌을 할 때 마지막에 OK언니오빠들이 한 블랙 라이트 공연에서 나온 말이 정말 감동이었다. “힘들지? 말 안 해도 알아. 같이 걷자. 사랑해.” 이 말이 나왔을 때 정말 내 마음을 너무 잘 알아준 것만 같았다. 같은 PK로서 언니 오빠 친구들에게 정말 많은 위로를 받았던 것 같다. 처음에는 3박4일이라는 긴 시간을 어떻게 모르는 사람들과 보내지 하는 두려움과 걱정이 있었다. 그런데 그 생각은 단 하루 만에 없어져 버렸다. 이 PK캠프에 와서 정말 많은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만약 이 PK캠프에 가지 않았더라면 이런 생각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정말 내가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정말 복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년에도 꼭 PK캠프에 다시 참여하고 싶다.
1032 <목회자 자녀 캠프를 마치고> 고민과 갈등마저도 막지 못한 수련회_박주영 파일
편집부
2219 2014-02-25
고민과 갈등마저도 막지 못한 수련회 < 박주영, 대동교회 > “갈등 속에서도 캠프에 간 이유는 하나님을 사귀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올해에 고민을 많이 했었다. 갈지 말지 가봤자 친한 사람도 없고 또 할 건 많으니까. 그리고 몸도 사실 별로 좋지 않았다. 작년 후기에는 꼭 간다는 듯이 써놓았지만 여러 고민들이 나를 잡고 흔들었다. 그럼에도 캠프로 가는 차를 탄 이유는 사람을 사귀는 것보다 하나님을 사귀었던 작년의 경험 때문일 것이다. 작년 PK캠프는 나에게 작은 변화를 가져왔다. 기도를 3분 이상 해 본적 없던 나는 5분 이상도 할 수 있었고 성경을 읽으라 하지 않아도 읽을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캠프에 가기 전 까지 그냥 일반인이었다. 딱히 친구들도 날 목사님 자녀로 보지 않았고 나도 별로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다. 아무런 고통도 문제도 없는 내가 고통을 나누고 치유를 얻어간다는 캠프에 가기는 솔직히 많이 부담스러웠다. 이런 고민은 올해에도 했었다. 나는 가서 고민을 해결하기 보단 받아온 유형이었기 때문에 더욱 고민 했었다. 캠프에 갔다 온 이후 전에 없던 새로운 고민들을 하기 시작했다. 왜 나는 기도할 때 눈물이 나지 않지? 왜 나는 하나님을 영접한 적이 없지? 왜 나는 목사님 자녀로써 아무런 일을 하지 않았지? 다른 사람들이 보면 별로 공감가지 않을 어쩌면 배부른 소리라고 할 수 있는 그런 고민들을. 이런 고민들은 누구에게 말 할 수 있을까? 나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말할 수 없었다. 어떻게 말할 수 있겠나. 캠프에 가서 더 큰 고민으로 기도하는 애들을 보고 왔는데.. 사실 고민에는 큰 고민 작은 고민은 없음을 알면서도 항상 그러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고민하는건 배부른 소리에 불과해”라고 항상 그렇게 되뇌면서 그럼에도 고민하면서 그런 시간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캠프에 간 이유는 한번 언급했듯이 하나님을 사귀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사귀었기에 고통스러웠다면 고통스러웠던 시간을 이겨낼 수 있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지만 하나님께 기도는 할 수 있었고 그런 기도를 통해서 치유 받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 번 캠프에 갔고 나는 생각한 것보다 많은 유익을 얻어왔다. 하나님 앞에 좀 더 솔직해질 수 있었고 친구들도 좀 사귄 것 같다. 이번에는 동생과 같이 가서 더욱 값진 시간이었던 것 같다. 어쩌면 이렇게 써놓고 내년에 또다시 고민 할 수 있다. 그래도 지금은 캠프에 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1031 <목회자 자녀 캠프를 마치고> PK 수련회의 진면목을 보여준 캠프_노경찬 파일
편집부
2807 2014-02-25
PK 수련회의 진면목을 보여준 캠프 < 노경찬, 옥계사랑교회 > “PK 수련회에 아직 참여하지 않았던 분들은 꼭 오시길 바랍니다” 저는 PK라는 단어를 생각만 해도 심장이 두근거립니다. 또한 저는 PK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죠.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도 설레는 마음으로 PK 수련회에 갔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번에는 새로 온 동생들과 새로 오신 스텝도 계셨기 때문에 첫 날부터 약간의 거리감이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 잘 알아가게 되었고, 모두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 아래서 하나가 됨을 느꼈습니다. 형제자매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네요!! 그랬기 때문에 더욱 더 인상적인 PK가 완성된 것 같아요. 첫 날에는 구미에서부터 경기도 안성까지 먼 길을 달려오느라 많이 피곤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OK 및 스태프들이 야심차게 준비한 'ice breaking'을 하면서 서로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정말 재밌었습니다. 지금도 머릿속에 생생하네요. 또한 밤에 있었던 조별 모임 시간으로 서로가 더욱더 가까워 질수 있었죠. 시간이 흘러 어느덧 둘째 날이 찾아왔고, 저희는 'Look and dream'이라는 제목의 특강을 들었습니다. 지금 시대에 살고 있는 비전이 없는 청소년들에게는 매우 인상적이고 고무적인 강의였습니다. 덕분에 제 비전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할 수 있었고, 특히 강도사님께서 회개하는 색다른 방법을 가르쳐 주셔서 정말 좋았습니다. 특강이 끝난 뒤, 드디어 'PK리그'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솔직히 작년의 PK리그는 운동이 아닌 놀이에 불과했는데, 이번 PK리그는 그야말로 열정적이었고 힘이 넘쳤던 것 같습니다. PK리그 때 비록 승리하지는 못했지만, 모두가 즐거웠기에 성공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죠? 셋째 날..!! PK 인생을 살면서 난생 처음 들어보는 계획이 잡혀있었습니다. 일명 'PK수다'!! PK들은 모두 목회자 자녀이기 때문에 서로 공유하고 있는 고민들과 어려움들이 많습니다. 그러한 점들을 토로하고 서로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하.. 뭔가 지루할 것 같은데..?' 라는 편협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가면 갈수록 몰입하기 시작했고, 목회자 자녀로서 홀로 가지고 있었던 고민들을 약간이나마 해결을 할 수가 있어서 날아갈 듯 기뻤습니다. 그렇게 보람찬 시간을 보낸 뒤, PK 수련회의 백미라고도 할 수 있는 'PK festival'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PK들은 잘 아시겠지만 'PK festival' 에 대한 부담감은 상당히 심합니다. 이 이벤트를 준비하는 동안 서로 불화가 일어날 수도 있고, 분위기를 흐려놓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부담감을 떨쳐 버리고 모두가 즐기면서 끼를 펼쳤기 때문에 더욱 더 재미있고 인상적인 잔치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일정이 끝난 후 저희는 밤을 새면서 열심히 놀았죠!! 이러한 행사들 이외에도 '기독교인이 보는 음악', 개회예배, 폐회예배, 저녁집회 때 굉장히 값진 설교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고, 특히 OK로 이루어진 PK찬양단의 은혜로운 찬양에 눈물을 흘리고 감동했습니다. 또한 두 번째 날과 넷째 날 새벽에 있었던 기도회 덕분에 힐링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모든 일정이 끝나고 수련회가 끝났는데도, 저의 심장은 아직도 두근두근 거립니다. 수련회에서 받은 하나님의 은혜와 복 아래서 정말로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합니다. 저는 비록 고 3이지만, 수련회에 참여했던 이 4일이 전혀 아깝지 않았습니다. 4일 동안 공부하는 시간보다 훨씬 더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PK여러분들 중에 수련회에 안 오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꼭 오시길 바랍니다!! 강력히 추천합니다. PK 수련회에 오셔서 깊은 마음의 상처를 달랠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저희 PK 모두를 위해 고생하신 목사님들과 강도사님 그리고 스텝 여러분들, 특히 사진 찍으시느라 수고하신 집사님께도, 정말 감사드리고 정말정말 사랑합니다.
1030 <목회자 자녀 캠프를 마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_곽하선 파일
편집부
2809 2014-02-25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 곽하선, 산소망교회 >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삶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가장 기뻤습니다” 샬롬! 12회 캠프도 반주로 섬겼던 곽하선입니다 :-) 캠프가 끝난 지 이틀이나 지났는데도 저는 여전히 PK캠프의 열기가 식지 않았습니다. 그래요. 저는 ‘PK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아직 캠프의 여운이 짙게 남아있는 상태에서 후기를 쓰려니 눈물이 날것만 같아요. 문득 캠프 갈 생각에 너무 설레서 잠 못 이루던 지난 며칠 동안의 밤이 스쳐지나갑니다. 그만큼 저에게 있어 PK캠프는 기다려지고, 기대하게 만드는 두근두근 캠프입니다. 벌써 다음 피케이 캠프가 기다려지네요. 1년 동안 PK친구들이 얼마나 더 멋지게 성장해서 올까, 함께 눈물 흘리며 나누고 기도하던 문제들은 어떻게 풀어서 올까 하는 여러 가지 기대들을 동반하며 말이죠. 이번 캠프는 우리와 함께 울고 웃으신 교육부 목사님들을 통해서 PK를 향한 목사님 사모님들의 미안함과 고마움이 섞인,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그 마음들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잠시나마 PK라는 이유로 원망하고 속상해 했던 마음들이 죄송하고, 목회현장에서 이리저리 치이면서도 묵묵히 좁은 길을 걸어가시는 외로운 목사님들의 삶에 조금이라도 내가 힘이 되어 드릴 수 있는 PK라는 것이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그동안 서러웠던 것들이 위로와 격려가 되며, 지금까지 애써 참으며 꾹꾹 눌러왔던 모든 것이 “힘들지?”라는 한마디에 와르르 무너져 내렸습니다. 3시간 40분 같던 3박 4일 동안 PK 친구들과 OK 언니 오빠들과 함께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면서도 끊임없이 들었던 생각은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나님 안에서 삶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였습니다. 서로를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너무나 많아서,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고, 어쩌면 친구들이 나보다 더 나를 잘 알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에 나도 모르는 내 모습을 꾸밈없이 보여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벌써 6번째 참가하는 PK캠프인데도 매번 더 새롭고, 더 좋은 것을 얻어가는 것 같아 너무나 감사합니다. PK로서의 캠프는 마지막이었던 이번 캠프에서 특별히 다짐했던 것은 넘치는 사랑으로 우리를 섬겨주신 OK언니 오빠들을 보면서 나도 이제 OK가 되면 저렇게 PK를 섬겨야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받은 사랑이 너무 커서 내가 받은 이 사랑을 누군가에게 나누지 않고서는 나 혼자 감당하기에 너무 벅찼다고 하면 이유가 설명이 될까요ㅎ.ㅎ PK캠프는 사랑이 마구 마구 샘솟는 캠프입니다. 나와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는 PK여러분, 즐거웠던 캠프를 뒤로하고 이제 각자의 삶으로 돌아간 지금, 다시 시작되는 일상에 이전보다 더욱 기쁨이 넘치는 하루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각자 부르신 교회에서 섬기며 헌신 할 때마다 여러분들의 그 섬김이 천국에서 해 같이 빛날 것을 기대하며 감사가 넘치는 PK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한명 한명을 볼 때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울까’하는 생각과 함께 여러분들을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들이 너무나 기대가 됩니다. 김찬호 강도사님이 하신 말씀처럼 나를 만드신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심을 인정하고 그 하나님이 얼마나 전능하고 대단하신 분인지를 나의 삶을 통해 나타내는 PK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의 힘되고 내일의 소망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PK가 되시길! 언제나 한결같이 사랑하고 축복해요*.*♥
1029 <목회자 자녀 캠프를 마치고> 함께 동행 길에 들어선 PK들_김예림 파일
편집부
2640 2014-02-25
함께 동행 길에 들어선 PK들 < 김예림, 호산나교회 > “1년 동안 서로를 그리워하며 이 PK캠프를 기다리겠습니다” 꿈만 같았던 3박 4일이 지나가버렸습니다. 사랑하는 오랜 친구들을 만났는가 하면 귀엽고 파릇파릇한 어린 친구들도 만났습니다. 목회자 자녀라는 공통점으로 만난 PK캠프는 은혜롭고 감사했으며,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모두들 같은 생각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처음 만난 그 자리는 어색하고 부끄러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함께 시간을 지내다보니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서로 공통점도 많았고 받았던 상처도 비슷했다는 것입니다. 이제 막 중학교에 입학하는 귀여운 막내에서부터 대입을 바라보는 큰누나 형님, 그리고 우리들을 위해 피땀 흘리며 섬겨주신 OK분들까지! 지금 와서 다시 돌아보면 조금은 아쉽고 미안하고, 또한 여전히 보고 싶습니다. 3박 4일 동안 캠프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게 너무나도 빠르게 지나가버렸지만 분명 그 캠프동안에 우리들은 함께여서 즐거웠을 것입니다. 이렇게 즐거웠던 PK캠프이다보니 자연스럽게 내년을 또 기대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1년 동안 서로를 그리워하며 이 PK캠프를 기다리겠죠? 우리들은 마지막 날에 "1년 후에 다시보자"라며 다시 볼 그날을 약속했습니다. 이 약속이 꼭 이루어지길 기원하고 기원합니다. 저는 이제 나이가 들어 PK에서 OK가 됩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다녔던 PK는 제 학창시절 동안 힘이었고 제 마음속 기둥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느꼈던 PK캠프에서의 그 감정을 어린동생들에게도 느끼게 해주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PK여러분! 여러분은 복된 자리에 있다는 것을 항상 잊지 않고 살아가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은 이 시대의 희망임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보고싶을 거예요. 우리 꼭! 1년 후에 봐요...♡
1028 <목회자 자녀 캠프를 마치고> 미래를 열게 해준 PK 캠프_윤광성 파일
편집부
2456 2014-02-25
미래를 열게 해준 PK 캠프 < 윤광성, 보성화평교회 > “신앙이 두터워진 것을 확인하며 은혜에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PK를 다녀 온지 벌써 3일이나 지났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부르짖을 때가 어제 같은데 말이다. PK캠프는 작년부터 가기 시작했는데, 그때는 참 미성숙하고 어리바리했다. 하지만 이번 캠프에 다시 가서 조금이나마 성숙하고 신앙이 두터워진 것을 확인하며 하나님의 은혜에 더욱 감사하게 되었다. PK 수련회에서 참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는데, 그중 김찬호 강도사님의 특강 ‘LooK and Dream’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재미있기도 했지만 나에게 와 닿는 말들을 많이 하셨기 때문이다. 강도사님은 청소년기에 피아니스트가 꿈이셔서, 피아노에 대한 열정과 노력을 아끼지 않으셨다. 그러나 성공을 눈앞에 두고 그저 손톱을 잘못 자른 것으로 실패를 겪고 화려하고 장래가 탄탄한 꿈으로부터 급 추락했다. 설상가상으로 군대 영장을 받아들며 원망 가운데 입대를 했고, 영창의 위기를 앞두고 우여곡절 끝에 그토록 원망하던 하나님께 목회자의 사명을 받았다고 하셨다. 군대에서의 오해가 풀리고 휴가를 받았을 때 강도사님은 집으로 돌아가서 하나님께 부르짖으셨다고 한다. 왜 나냐고. 다른 사람도 많은데 왜 꼭 나를 이렇게 쓰려고 애쓰시냐고. 그런데 이 순간 하나님께서 마음속에 대답을 주셨다고 한다. ‘미안한데, 정말 미안한데 너를 쓰겠다. 너는 보았지 않느냐, 너의 아버지가 또 너의 어머니가 그토록 고생하시며 교회를 세우시는 것을. 또 그것을 너의 세대들이 보았고 내가 그들을 통해 놀라운 기적을 일으킬 것이다.’ 하나님의 비전을 듣고 강도사님께서는 울며 회개와 감사의 기도를 드리셨는데,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도 ‘아, 하나님. 저희가 무엇이간데 미안하다 하시고 저희를 써주시옵나이까. 부르시옵소서, 제가 나아가겠습니다’ 하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고 계시는구나. 그리고 우리 아버지의 괴로움을 듣고 계시는구나. 그리고 나도 하나님의 계획을 위해 쓰시길 원하시는구나 하고 느꼈다. 참 감사하면서도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주님이 나를 어떻게 쓰실지 기대로 마음이 부풀었다. 또 기억에 남는 것은 PK페스티벌이 끝나고 청년 PK 형과 누나들이 우리들을 위해 멋진 공연을 선사해준 것이었다. 손에 하얀 장갑을 끼고 야광을 이용하여 우리에게 희망과 마음을 울리는 메시지를 전달해주었는데, 정말이지 너무 큰 힘이 되었다. 앞으로 힘들고 어려울 때 이 공연을 다시 떠올리며, 힘을 낼 것이다. 이렇게 이번 캠프 가운데 있었던 멋지고 감동적인 시간들을 되돌아보니 다시 마음이 찡해온다. 내년은 물론이고 그 다음 그리고 그 다음 해에도 꼭 갈 수 있었으면 한다. PK~사랑해요~~
1027 <목회자 자녀 캠프를 마치고> 목회자 자녀만 느끼는 아픔과 기쁨_김하영 파일
편집부
2890 2014-02-25
목회자 자녀만 느끼는 아픔과 기쁨 < 김하영, 창원감사교회 > “주님은 얼마나 필요한 존재인지, 큰 존재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꾸준히 캠프에 오면서 느끼는 것은 ‘PK캠프는 나를 여러 가지로 성숙하게 한다’였습니다. 개척교회를 10년 넘게 해오면서 너무나도 힘든 때가 많았기 때문에 아버지가 목사님인 것과 내가 남들과 다른 ‘목회자 자녀’라는 것이 싫었습니다. 심지어는 하나님을 안다는 것까지 싫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하루하루를 ‘왜 이래야만 해?’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전혀 성숙해지지 않는 내 자신을 발견할 때면 주체할 수 없는 증오감에 많이 울기도 했습니다. 이런 고민들을 친구들에게도 부모님께도 털어놓지 못해 저 혼자 끙끙대곤 했었습니다. 하지만 PK캠프를 다녀오고 나서 영적으로 얼마나 건강하고 성숙해졌는지 모릅니다. 나처럼 목사님 아버지를 둔 PK와 OK언니 오빠들. 감사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나의 아픔을 이해해주고 위로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게 큰 복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함께 웃고, 함께 울며, 끈으로 연결된 듯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는 것이 얼마나 좋던지. 고민을 털어놓으면서 각자 자신이 어떻게 해쳐나갔는지 들을 때엔 저에게 굉장한 자극이 되고 힘이 되었습니다. 가장 감사한 것은 제가 그렇게 물어댔던 수많은 질문들을 주님께서 목사님과 강도사님의 설교를 통해 모두 응답해주셨고 찬양을 부르는 순간순간 은혜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기도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을 때, 과거에 제가 어리석었다는 걸 알게 해주신 주님이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감사했습니다. 넘어진 나의 영이 다시 굳게 일어선 느낌이었습니다. 주님은 나에게 얼마나 필요한 존재인지 얼마나 큰 존재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이번 PK캠프를 통해서 정말 많은걸 느꼈고 많은걸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 PK캠프를 갈 때, 가는 내내 ‘가기 싫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이젠 꾸준히 참석할 정도로 ‘내년에도 또 와야지’라는 생각만 내내 듭니다. 나에게 일부가 되어버린 PK는 절대 잊을 수 없는 가족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다음 캠프는 OK로 섬길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두근거립니다. 내년에 왔을 때도 변함없이 사랑스럽고 은혜로운 캠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사랑합니다.
1026 <목회자 자녀 캠프를 마치고> 뜯어보니 하나님의 선물_우영경 파일
편집부
2702 2014-02-25
뜯어보니 하나님의 선물 < 우영경, 황상교회 > “우리를 자녀로, 비전의 아이들로 불러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매 해 2월은 특별하다. 나흘 간 사랑스러운 사람들과 꼭 붙어 있는 날들이 있기 때문이다. 나와 같은 청년 PK(Old-PK, 이하 OK)들은 연중 모임과 교육부 목사님들과의 만남을 통해 회의하고 기도로 준비하며 이 캠프를 고대한다. 그리고 캠프를 섬기고 나면 다시 한 번 분명히 깨닫는다. 되로 주고 아니, 곡식 한 톨을 드리고 말로 받는 은혜를. 합신 PK캠프에는 남들이 모르는 비밀이 있다. 우선 우리들에게 연중의 안식일이라는 것이다. 합신 PK들이 연합하여 동거하는 이 캠프는 잠시 세상일을 모두 내려놓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성도 간의 교제로 천국을 맛보며 소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PK캠퍼들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확신하며 찬양하며 돌아간다. 또 하나의 비밀이 있는데, 이는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과 넘치는 감사를 품게 되는 이유이다. 그것은 이 캠프를 주관하는 분은 100%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OK들의 준비와는 별개의 문제이다. 그러나 이를 준비하게끔 감동을 주시고 이끄시는 분도 그분이시다. 그리고 말씀 가운데, 찬양 가운데, 기도 가운데 PK들에게 준비하신 선물들을 나눠주신다. ‘더 이상 우리의 처지를 비관하고 불평하거나 동정하지 않음’, ‘회개하게 하심’, ‘위로’, ‘감사’, ‘서로 사랑함’ 등등. 이번 제12회 캠프 동안 우리가 받은 큰 선물 둘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먼저 말씀이다. 매 저녁 집회 시간 김병훈 목사님께 기독교가 유일한 참된 종교인 것과 칭의와 참된 믿음에 관해 들었다. 기본 교리에 대해 아주 명확하게 배우고 아침 경건회 시간에 복습하며, 우리는 그리스도의 공로와 성령님의 역사하심 그리고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고백을 드리는 매일을 보냈다. 또 특강 시간, 합신 PK출신의 강도사님에게 간증과 복음을 듣고 우리는 울며 정말 하나님의 사역에 참여하는 ‘비전의 아이들’임을 믿는 귀하고 거룩한 소망을 선물로 받았다. 그리고 마지막 날 밤, 캠프 내내 함께 듣고 기도하고 먹고 자며 뛰놀며 각자 받은 은혜를 서로 꺼내어 보이는 시간이 찾아오고, 또다시 하나님의 선물보따리가 풀어졌다. 각 조마다 성경적인 주제로 창의적이며 기승전결이 분명한 회심의 연극들을 펼치는데, 도대체 이 아이들 누구를 닮은 걸까? 내숭일랑 던져버리고 누구에게 질세라 다량의 끼를 방출하며 서로를 웃기고 또 울렸다. 정말 올해도 어김없이 PK아이들의 대단한 달란트에 혀를 내두르며 감탄했다. 그리고 피날레의 순간. 하얀 장갑과 검은 옷을 차려입은 OK들이 선물을 전했다. “하나님이 날 참 사랑하시네”라는 찬양에 함께, 조명을 끄고 캄캄한 어둠 속 가운데 하얀 손들이 모여 글자를 만들어 진심을 수놓았다. ‘힘들지? 말 안 해도 알아…, 같이 걷자. 사랑해.’ 목회자 자녀로서 살아가는 삶 가운데 누군가에게 그토록 듣고 싶었던 그 말을, 누구보다 이해하며 위로해주고 싶은 OK들이 전해주었다. 이는 사실 세상의 넓고 평탄한 길이 아닌, 좁은 길을 걸어가는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들려주시는 음성이다. 또한 우리 PK들이 아버지들의 손을 잡고 드릴 말씀이기도 하며 하나님의 자녀 모두가 동역자로서 서로에게 건네 줄 평생의 인사이다. 참 약한 우리들이지만 이제 예수님의 의를 덧입고 감사하는 당차고 사랑스러운 하나님의 자녀임을 다시 깨달았다. 이제 또한 서로를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고 여기며 그렇게 부를 것이다. 우리 합신 PK들이 캠프를 통해 각자 받은 하나님의 선물을 삶 가운데 묵상하며, 받은 선물을 나누는 은혜의 통로가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리고 우리를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자녀로, 비전의 아이들로 불러주신 하늘의 아버지께 넘치도록 감사드린다.
1025 <목회자 자녀 캠프를 마치고> 신앙과 신학과 실천은 하나_오영은 파일
편집부
2583 2014-02-25
신앙과 신학과 실천은 하나 < 오영은, 부천은혜교회 > “언젠가는 부모님에게 든든한 동역자가 될 날이 올 것입니다” 저는 처음으로 PK캠프를 참여했고 OK로서 섬기게 되었습니다. PK캠프에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은 순전히 고등학교 1학년 동생 때문이어서 사실 큰 기대 없이 일하는 기분으로 PK캠프를 준비하였습니다. 캠프를 시작하기 전에 OK 모임이 있었는데, 속으로 '왜 이렇게까지 열심히 준비하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캠프 또 한 수많은 청소년 캠프 가운데 하나일거라고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이러한 기분은 캠프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바뀌었습니다. PK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하고 조원들의 명단을 확인하게 되니 알 수 없는 두근거림과 책임감이 생겼습니다. 부조장 권능이를 시작으로 경찬이, 지현이, 경현이, 예준이, 예은이, 혜원이, 축복이, 은비. 이렇게 저를 포함하여 10명의 팀이 꾸려졌습니다. 조원들을 보고 있자니 알 수 없는 사랑이 생기고 또 한편으로는 충분히 기도로 임하지 못한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됐습니다. 각 교회의 어려운 상황 가운데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어린 꼬마들을 보면서 도전이 되기도 했습니다. 공통된 고민을 가진 PK를 만날 수 있어서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것은 특강, 저녁집회 그리고 QT시간이었습니다. 김찬호 강도사님의 특강인 'LoOK and Dream'을 통해서 불분명했던 비전이 굳게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간증 형식의 설교를 통하여 나의 정체성을 다시 한 번 보게 되었습니다. “나라는 사람은 하나님께 예배할 때 가장 기쁘구나. 나의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은 오직 주님밖에 없구나. 어느 곳에 있든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으로, 복음의 증인으로서 살아가자”라고 고백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녁 집회 때는 조직신학을 가르치시는 김병훈 교수님께서 강의를 하셨습니다.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접근으로 기독교에 대해서 짚어주시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맹목적이고 근거 없이 무비판적으로 성경을 수용했던 모습을 반성하게 되었고,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교수님께 배운 내용을 잘 활용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칭의는 무엇이고 믿음은 어디로부터 오고, 선행은 왜 해야하는 지에 대해서 꼼꼼하게 짚어주셨습니다. 만약 이런 내용이 큐티에서 선행되지 않았더라면 교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저는 큐티를 통해 이 부분에서 크게 깨졌습니다. 나의 의를 드러내려고 했던 행동들이 떠오르면서 크게 부끄러워졌습니다. 봉사활동을 하고 선교를 가고, 교회에서 일을 하는 것이 나의 의를 드러내려고 한 것이 아니었나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특강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신혁 목사님의 강의였습니다. 음악의 1500년 역사를 짚어주시면서 음악의 정신과 시대별 변천사를 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신혁 목사님께서는 찬송이란 무엇인지 성경적인 개념으로 이해시켜주셨습니다. 하나님만을 찬양하던 음악이 점점 인간을 찬양하기 시작하고 결국에는 인간의 자리마저 잃어버리게 됐습니다. 이 시대에는 각종 음악들이 쏟아져 나오고 그 음악에 춤을 추고 기뻐하는 젊은이들이 많습니다. 그 가운데에서 깨어있지 않으면 저 또한 하나님을 위해 춤을 추는 것이 아닌 세상의 우상 앞에 절하고 춤추는 꼴이 되어버릴 것입니다. 예전에 다른 교회에서 전도 축제를 할 때에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세상의 음악과 춤으로 공연한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 교회도 그러한 전도 방법을 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신혁 목사님의 강의를 듣고 나서는 완전히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주님의 교회에서 만큼은 주님만을 찬양하고 경배드려야 합니다. 세상의 모습을 교회가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먼저 교회가 모범을 보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열심을 다해야 합니다. 또 한 나의 몸은 주님의 성전이므로 나 또한 주님만을 찬송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PK캠프가 끝이 나고 집에 돌아와서 여러 가지 의문들이 들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저에게는 좋은 성경 사전인 아버지가 있습니다. PK캠프가 끝난 지 한참이나 지났지만 아버지와 밤새 성경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며 나의 비전과 신앙생활을 점검 받고 있습니다. 질문 100개가 있으면 아버지께서 명쾌하게 100개를 모두 답해주십니다. 성경을 찾아가면서 꼼꼼히 알려주십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저는 아버지로 부터 계속적으로 훈련받길 원합니다. 성장하고 또 성장하여서 언젠가는 부모님에게 든든한 동역자가 될 날이 오겠지요? 평생을 저를 위해 기도해주셨던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이제는 제가 부모님을 기도로서 섬기고자 합니다.
1024 <목회자 자녀 캠프를 마치고> 기쁨과 감사로 가득했던 캠프_정봉채 목사 파일
편집부
2087 2014-02-25
기쁨과 감사로 가득했던 캠프 < 정봉채 목사, 총회교육부장 > “이들이 한국교회의 지도자가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하였습니다” 이번 제12회 목회자 자녀(PK)캠프를 은혜 가운데 마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 중고등학생 57명과 스텝으로 수고한 청년 19명 등 약 80명이 모여 기쁨의 잔치를 벌였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는 주제로 김병훈 교수를 통하여 복음의 핵심을 들었습니다. 우리가 가진 믿음이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에 세상 앞에서도 위축되지 말고 담대하게 믿음을 밝히며 살아가라고 권면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사람은 심판받을까 두려워하지 말고 기쁨으로 주님을 섬길 것을 말씀하였습니다. 교리적으로 충실한 설교, 학생들과 즐겁게 소통하면서 전한 말씀이어서 학생들이 기쁨으로 듣고 적용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아버지를 이어 목회자의 길을 가는 김찬호 강도사의 특강은 학생들로 하여금 방황을 끝내고 주님과 주의 나라를 위해 살아가고자 소원하며 간절한 기도를 드리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신혁 목사를 통해서는 2000년 교회음악의 역사를 한 눈에 살펴보며 찬송이 어떠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하는 시간으로 삼았습니다. 어떤 학생들은 목회자 자녀가 되는 것이 왜 좋은가라는 질문에 대해 목회자 자녀캠프를 올 수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주 안에서 하나인 것을 확인하고 위로를 얻는 집회였습니다. 캠프에 참여한 자녀들의 환한 얼굴, 말씀을 진지하게 듣는 자세, 서로를 배려하고 섬기는 모습에서 이들이 장래에 하나님 나라의 지도자가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하였습니다. 자녀들을 보내주시고 기도해주신 교회 목사님들과 사모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시간을 내어 후배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힘을 다하여 섬겨준 OK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내년 캠프가 돌아올 때까지 우리 PK들! 주 안에서 은혜 풍성히 누리다가 다음 캠프 때 기쁨으로 만납시다. 고맙습니다.
1023 <재해지역 방문 보고서> 필리핀 태풍 재해지역 ‘타클로반’과 ‘헤르나니’_윤여성 목사 파일
편집부
2526 2014-02-11
필리핀 태풍 재해지역 ‘타클로반’과 ‘헤르나니’ < 윤여성 목사, 총회사회부 서기 > “현지인들이 거주할 수 있는 목조 가옥인 ‘쉘터’ 건축 시급해” 지난 1월 15일, 총회사회부장 안두익 목사와 함께 부원으로서 필자 및 신성문 목사가 태풍을 맞은 필리핀에 있는 레히테 섬의 중심도시인 타클로반 공항에 도착했다. 우리는 이미 이틀 전인 1월 13일 오전 마닐라에 도착하여 2일 간의 일정을 마닐라에서 가진 후 본격적으로 재해 현장인 이곳 레히테 섬의 주도인 타글로반에 도착한 것이다. 이곳과 우리가 주로 사역하기로 내정된 레히테 사마르 섬의 헤르나니 지역까지 탐사할 계획이었다. 마닐라의 일정에서 중요한 것은 몇 차례의 회의를 통해 이번 방문은 우리 교단의 구호 사역 상대로 삼을 주 선교사를 결정하기로 한 것이었다. 현지에서 잠정적인 결정 이후 서울에 가서 충분한 논의를 거쳐 최종 결론을 내기로 했다. 먼저 도착한 이곳 타클로반은 인구 20만 명 중 거의 1만 명 가까이를 잃었다고 한다. 우리가 이곳에 도착해 본 공항의 모습은 어떻게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지 의심이 갈 정도로 청사 자체가 폐허 상태였다. 물론 청사의 규모로 보아 평소 공항 규모가 얼마나 작고 열악한가도 상상이 가지만, 태풍이 할퀴고 간 뒤에 허물만 남은 그 좁은 공항의 모습은 가관이었다. 그런 형편에 오백 여 명의 승객들이 발 디딜 틈 없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질서 있게 내리고 뜨는 일정들을 기다리는 모습이 기이할 뿐이었다. 태풍을 맞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동안 너무 놀라서 급히 모든 경제력을 동원해 마닐라 등지로 피난했다가 이제야 조금씩 안정을 되찾고 한 가정씩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고 있는 중이었다.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 우리와 같이 세계 각국으로부터 온 구호팀의 모습들도 여기저기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이 곳 타클로반 공항에서 정오부터 약 5시간을 사마르 섬의 주도인 보름간으로 달리면서 주변을 일별해 보았다. 헤르나니까지 가는 동안 본 광경들은 참으로 참담했다. 불편한 도로를 몇 시간 동안 달려가는 내내 레히테섬의 동네 동네마다 집이 있던 흔적과 쓰레기 더미를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태풍이 몰고 온 12-14미터 높이의 해일이 온 마을을 순식간에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넘어진 수많은 전봇대들과 어지러이 엉킨 실처럼 길에 흐트러진 전선줄들, 태풍과 수마가 할퀴고 간 가옥들의 흔적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이곳을 탐방한 연유는 문권익 선교사를 통해 소개받은 GP선교회 소속의 이병호 선교사가 이미 진행 중인 구호 사역을 관찰하기 위해서였다. 우리 교단 출신의 문권익 선교사가 추천하여 살펴보기를 원한 곳은 헤르나니란 곳으로 바랑가이 몇몇 동을 탐방해 보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미 마닐라에서 선교사들의 모임을 통해 우리는 다른 선교사가 다녀온 곳에 비해 구호현장으로 이곳을 선정했다. 선정의 이유는 그동안 태풍 피해 이후 2달이 지나는 동안에 가장 피해가 컸던 레히테섬은 구호의 손길이 나름 미쳤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대신에 문 선교사는 구호팀의 손길이 비교적 미치지 않은 이곳 사마르의 헤르나니를 강력 추천했다. 사마르섬으로 건너는 다리를 통과할 때부터 오히려 얕은 산자락들에는 조금은 푸른 야자나무숲들이 보였다. 그 위에 비교적 피해를 적게 입은 마을들의 정경은 아름다운 필리핀의 옛 풍경을 간직하고 있어서 생경스러웠다. 그러나 태풍 하이엔의 피해를 가장 많이 받은 헤르나니의 바랑가이(동) 3, 4(바랑가이 번호) 마을들은 철저히 파괴되어 있었다. 앞서 미국 구호팀들이 식량과 생필품 등을 나누어 주고 갔으나 그들이 살아가는 삶의 기본이 될 가옥 등 구체적 생활 대책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 옆의 무너진 교회 터를 가보니 목회자 부부가 살던 곳에서 교인 5명이 함께 죽은 곳을 보며 슬픔에 젖기도 했다. 초등학교는 많이 피해를 입었으나 다행히 복구만 하면 될 듯 보였다. 그럼에도 공동묘지의 석관들이 길을 건넌 마을 지역에까지 널려있는 모습은 애처롭기만 했다. 현지 선교사들은 이곳에 목조 가옥인 ‘쉘터’를 지어주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래서 두 곳의 바랑가이를 지정해서 몇 년간이라도 생활할 목조 가옥에 대해 귀국 후 우리 교단 차원에서 방안들을 강구해 보기로 했다. 이 지역에 이런 ‘쉘터’를 마련해 주는 일은 한 가정 당 약 50만 원 정도이며, 우리가 생각한 바랑가이 4의 가구 수는 178 가구였다. 바랑가이 사역에 대한 임원진의 의견은 첫째로 그 지역의 교회 건축, 둘째로 반파된 학교의 복구, 셋째로 바랑가이 4 등 200여 주민의 ‘쉘터’를 지어주는 사역으로 모아졌다. 우리는 보름간에서 짧은 밤을 여독으로 피곤한 만큼 길게 잠을 잔 후 이른 아침 라면으로 조식을 때우고 타클로반 공항을 거쳐 다시 마닐라로 돌아왔다. 감사한 것은 이곳 필리핀에 있는 우리 교단 선교사들은 단합이 잘 되어 있어서 우리가 선정한 선교사를 주요 창구로 정할 때 모두 적극 협조해 주기로 결의해 준 것이었다. 한국에 돌아오는 우리 귓전에는 타클로반 공항 근처 주민들과 헤르나니 바랑가이 사람들이 외치는 ‘코리아, 코리아’ 소리가 맴돌았다. 우리를 반겨주던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의 도움이 얼마나 그들에게 갈급한지, 그리고 우리의 섬김의 크기가 그들에게 얼마나 큰지 실감나게 만들었다.
1022 no image <개혁주의 신앙강좌> ‘칭의와 성화’ 개념에 대한 이해_노승수 목사
편집부
3469 2014-02-11
‘칭의와 성화’ 개념에 대한 이해 < 노승수 목사, 새물결플러스 편집부 > “행위구원론에 맞서기 위해 칭의와 성화의 개념 도입하게 된 것” 본래 종교개혁시기 이전에는 칭의(Justification)와 성화(sanctification)를 구분하지 않았다. 이 말은 칭의와 성화가 본래 하나의 국면을 가진 하나의 개념이었다는 의미다. 사실 칭의와 성화의 개념은 로마 가톨릭에서 흔히 쓰는 ‘의화’(義化:하나님의 은총으로 인간 내면의 변화를 통하여 죄인이 의롭게 됨)라는 용어만으로 충분했다. 그런데 종교개혁자들은 이 ‘의화’를 두 개의 개념으로 나눠서 설명했다. 그 배경에는 어거스틴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어거스틴의 후기 논쟁에서 뺄 수 없는 인물이 펠라기우스다. 펠라기우스의 주장은 원죄 교리를 부정하고, 인간의 선행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교리였다. 이에 대해 어거스틴은 원죄의 교리와 은총에 의해서만 구원받는다는 교리를 확증했고, 펠라기우스는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그 이후로 공교회는 한 번도 원죄 교리를 의심치 않았고, 행위구원론은 이단사설에 불과했다. 그런데 중세에 들어오면서, 우리가 은혜로 부름을 입지만 그 부르심과 구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시 행위가 필요하다는 교의가 부상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반-펠라기우스주의'다. 이 ‘반-펠라기우스주의’는, 원죄 교리를 인정하고 스스로 구원의 길에 들어설 수 없다는 점도 인정한다. 은총에 의해서만 구원이 시작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구원이 그렇게 시작했다면 우리에게 행위가 요구되고, 요구될 뿐 아니라 그 행위에 의해서 구원과 심판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결국 어거스틴 시대에 이미 결론이 난 은혜의 교리를 뚫고 트로이 목마처럼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말하는 저주를 받는 이단 교설인 반-펠라기우스주의가 교회 안에 다시 들어오게 된 것이다. 여기에 생각해볼 것이 있다. 곧 반-펠라기우스주의의 발호가 종교개혁자들이 칭의와 성화를 나누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은혜 교리를 뚫고 들어온 행위구원론에 대응해서 사도들이 전한 원천적 교리로 돌아가는 방식으로 종교개혁자들은 칭의와 성화를 나누었다. 이 이유를 모르면 사실 칭의와 성화의 교리를 오해하기 쉽다. 칭의와 성화가 구분되는 시점이 이 지점이기 때문이다. 흔히 칭의가 법정적이라는 말은 우리 신분이 변화되었다는 뜻이자 죄책이 제거되었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말하는 죄책은 어거스틴이 이미 다루었던 아담의 첫 범죄로 우리가 아담의 언약안에서 물려받게 된 죄책과 그 결과로써 얻게 된 사망을 일컫는다. 이에 대해서는 로마서 5장에서 잘 성명하고 있다. 그리고 그 죄책을 기반해서 우리에게 조상 특히 부모로부터 유전하는 부패와 오염을 제거하는 것으로 성화를 설명한다. 다시 말해서 실제적인 죄의 세력으로부터의 자유 개념으로 성화를 설명한다. 이렇게 설명하는 구조에는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은혜의 교리의 확증에도 불구하고 펠라기우스주의가 다시 트로이 목마처럼 교회 안으로 들어 왔기 때문이었다. 이 절반의 펠라기우스주의의 시작은 은혜다. 그러나 그 구원이 완성되려면 다시 행위구원으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겉모양은 어거스틴의 은총론을 닮았지만 그 내용은 어거스틴의 논적이었던 펠라기우스를 닮았다. 종교개혁자들은 이런 교리적 변종에 맞설 생태학적 백신이 필요했다. 반-펠라기우스주의의 위장은 매우 매혹적이며 사람의 감성에 맞아 사람들이 변별을 하지 못하고 결국 갈라디아 교인들이 바울이 전한 복음을 떠나 행위구원론의 변종 복음에 감염된 것과 같은 경로를 가졌다. 그래서 원천적으로 행위구원론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종교개혁자들은 구원의 실체를 두고 의화의 개념을 칭의와 성화의 개념으로 구별해 설명해야 했다. 그것이 종교개혁적 칭의론의 출발점이다. 이런 점에서 개신교 500년의 신학적 유산으로 칭의 교리는 변종 행위구원론에 맞서는 교리다. 인간의 행위가 발붙일 곳이 없도록 만든 것이다. 그래서 이 칭의에는 ‘법정성’이 강조되고 있다. 그리고 이 법정성을 얻는 유일한 근거 역시 그리스도의 순종과 대속 외에는 없다. 그리스도의 행위가 바로 하나님의 법정에서 우리가 의를 얻는 유일한 근거이고 원천이며, 이것이 우리에게 유효하게 적용되는 방편이 바로 믿음이다. 더불어 '전가' 교리도 이런 방식으로 전개가 되었다. 이런 이유에서 성화는 칭의와 항상 같이 설명되었고, 칭의를 근간으로 해서 죄의 세력을 제거하는 성화 역시 정당화 되었다. 마치 아담의 첫 범죄로 모든 인류에게 죄의 책임을 묻는 것이 정당화되어서 모든 사람에게 사망이 이른 것과 같은 방식으로 한 사람 그리스도의 온전한 순종이 근거가 되어서 그를 믿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최종 법정에서 의롭다는 판정이 정당화된 것이다. 곧 하나님의 법정에서 ‘죄 없다’('not guility)라고 선고를 받은 것이다. 그리고 그 선고에 근거해서 우리가 죄의 세력으로부터 실제적 자유가 이뤄지도록 '성령'이 선물로 약속되었다. 이것은 바울의 신학에 의하면 아브라함에게 이미 약속되었던 내용이기도 하다. 그런데 최근 바울에 대한 새관점 학파는 이런 신학적 구조를 상당히 약화시키도록, 아니 아예 무너뜨리고 새롭게 세우도록 교회와 신학계를 압박하고 있다. 과연 그렇다면 그들이 주장하는 성경 해석이 정당한가? 1세기 유대교의 연구가 아무리 많아도 우리가 최종적으로 다루어야 할 텍스트는 여전히 성경이고 이 성경이 과연 1세기 유대교의 색안경으로 해석되는 것이 정당성이 있느냐를 평가해 줄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새관점의 이런 신학적 진행은 다시 교회 안에 공로주의를 들여 놓을 개연성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그것을 분별할만한 지점이 있는데, 이런 새관점이 전반적으로 원죄 교리를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우리는 예의주시해야 한다. 이 새관점 학파들은 지난 500년의 신학을 허무는 방향으로만 논의를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어거스틴 이후 지난 1500년 이상의 신학적 체계를 허무는 방식으로 논의를 진행시키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새관점 학파와 같은 유의 행위구원론에 대한 신학적 판단은 그들이 원죄의 교리를 다루는 방식에서 더욱 명확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다.
1021 no image <탐방기> 일생 세 번은 가야하는 슬로우 시티 ‘증도’_김용진 목사
편집부
2553 2014-02-11
일생 세 번은 가야하는 슬로우 시티 ‘증도’ < 김용진 목사, 도산제일교회 > “교인들 위해 6.25때 공산당에 의해 순교한 목회자 정신 깃든 곳” 전남 신안군에 있는 순교자 문준경을 따라 걷는 길, ‘천국의 섬 증도’라는 책을 보면 이런 글귀가 있다. “증도는 최소한 두 번은 가야 하는 섬이다. 첫 번째는 아무것도 모르고 무작정 가야 한다. 두 번째는 문준경 전도사에 대해 알고 나서 공부 좀 한 다음에 가야 한다. 이렇게 두 번을 가고 나면 가지 말라고 해도 세 번째로 증도를 찾게 된다.” 지난 해 8월 19일부터 21일까지 총회 농어촌부 주관으로 전국농어촌목회자대회를 통해서 천국의 섬 증도를 첫 번째 방문을 하게 되었다. 59의 나이로 6.25때 순교한 문준경 전도사(1891-1950) 순교기념관과 증도 일대를 돌아보면서 증도를 ‘천국의 섬’ 또는 ‘보물섬’이라고 부르게 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증도의 첫 번째 보물은 소금이다. 증도에는 140만 평에 달하는 전국 최대의 천일염 생산단지인 태평염전이 있다. 이곳에서 전국 생산량의 60% 가량을 생산한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끝없이 펼쳐진 은빛 모래사장과 짱뚱어와 게들이 마음껏 뛰노는 청정 갯벌로 증도는 때 묻지 않은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춘 섬으로서 2007년 12월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슬로시티(Slowcity)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 증도를 보물섬이라고 부르는 두 번째 이유는 1976년 도덕도 앞바다에서 어부들이 그물을 끌어 올리다가 도자기를 발견한 이후 대대적인 유물 발굴 작업이 이루어지면서 14세기 송원대의 유물 2만 3천여 점을 발굴했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신안해저유물발굴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처음에는 어부들이 그물에 걸려든 깨어진 도자기를 바다에 던져버리고 깨어지지 않은 것은 가져가서 개 밥그릇을 했다는 우스운 이야기도 있다. 증도를 ‘천국의 섬’ 또는 ‘보물섬’이라고 부르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증도면에는 11개의 교회가 있고, 2,200여 명의 주민 가운데 90% 이상이 예수 믿는 섬이라는 것이다. 그곳에는 사찰이나 굿당, 점집이 없고 풍어제도 열리지 않는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증도의 어머니라 불리는 문준경 전도사가 임자진리교회를 비롯하여 11개 교회를 개척하였고, 신안군 일대 120 여개 교회가 그 분의 영향으로 세워지게 된 때문이다. 문준경 전도사는 일 년이면 무려 고무신 아홉 켤레가 떨어지도록 섬마을을 오가면서 전도하였고, 6.25 전쟁 당시 공산당들에게 끌려가 교인들은 해치지 말라고 통사정하면서 자신이 순교를 당하므로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지금은 신안군 복음화율 35%, 증도면 복음화율 90%라는 경이로운 열매를 맺게 되었다. 지난 해 10월 이웃 교회들과의 모임인 한무리교회연합회를 통해서 두 번째 방문이 이루어졌고 배를 타고 임자도에 건너가서 48명의 순교자를 배출한 임자진리교회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지난 1월 20일부터 21일까지 경남노회 신년하례회 및 교역자수양회를 이곳에서 가짐으로써 세 번째 방문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목회자 가족 39명이 참석한 가운데 문준경 전도사의 삶을 통해 큰 은혜와 도전을 받았으며 증도 일대의 유적지를 돌아보면서 서로 교제하는 귀한 시간을 가졌다. 당시 문준경 전도사의 주일학교 제자였던 김성환 원로목사로부터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들음으로써 더욱 큰 은혜와 감동을 받을 수 있었다. 우리는 문준경 전도사 순교기념관과 증도 일대를 돌아보면서 자신이 사역하고 있는 모습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이구동성으로 지금은 목회하기가 가장 어려운 때라고 한다. 실제로 한 해에 약 3,000여개의 교회가 사라진다고 한다. 문준경 전도사처럼 일 년에 고무신 아홉 켤레가 닳아지도록 전도하며 순교자의 신앙으로 목회한다면 우리가 사역하고 있는 지역도 증도와 같은 ‘보물섬’으로 변화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1020 |청소년수련회를 마치고| 성경공부의 중요성 일깨운 수련회_김예찬 학생 파일
편집부
3389 2014-01-28
성경공부의 중요성 일깨운 수련회 < 김예찬, 고1, 화원중앙교회 > “내가 믿는 하나님이 참으로 살아계시는 분이심을 느꼈습니다” 처음에는 장소도 멀고 2박 3일이라는 시간이 길게 느껴져서 조금 막막했었지만 막상 도착해보니 숙소도 좋았고 주변 경치도 좋았다. 소리엘 찬양콘서트와 찬양도 은혜로웠고, 이영표 선수의 삶속에서 하나님에 일하심에 대한 얘기를 듣고 나서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는구나’를 생각하게 되었으며 내 삶 속에도 하나님께서 일하신다는 것에 감사했다. 저녁에 찬양할 때는 너무 좋았던 것 같다. 하지만 찬양하는 시간이 짧아서 조금 아쉬웠다. 이은성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정말 놀라웠기도 했고, 또한 도전도 받았다. 목사님의 어린 시절은 나보다 훨씬 힘들고 어려웠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그런 어려움들을 잘 극복한 것, 그리고 그렇게 행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놀라웠다. 지금의 나의 상황에 불평하지 않고 감사해야겠다는 것과 힘든 일이 있을 때 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잘 이겨내야겠다고 느꼈다. 선택특강을 들을 때는 내가 평소에 관심이 많았던 것과 알고 싶었던 이단에 대한 특강과 음악에 대한 특강을 들었다. 음악과 신앙이라는 특강은 과거 음악에서 현대 음악까지 어떻게 변절되었고, 음악을 들을 때도 잘 분별하여서 들어야한다는 것을 배웠고, 이단들의 수단이라는 특강에서는 이단들이 어떻게 우리들을 이단에 빠지게 하는지에 대해서 배웠다. 우리가 이단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성경을 꾸준히 읽기로 결심을 했다. 부별특강 때 설교하신 목사님은 살면서 정말 위험했던 순간들이 많았지만 그 순간들마다 하나님께서 그 위험한 상황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또 그것들을 계기로 목사님께 당신의 뜻을 전달하시는 것을 보면서 진짜 내가 믿는 하나님이 살아계시는 분이라는 것을 느꼈다. 2박 3일이라는 시간동안 느낀 것도 많았고 은혜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서 좋았다. 다시 일상생활에 돌아가면 이번 수련회를 통해서 얻은 것들을 잘 간직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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