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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139 no image 창사 20주년 기념특집-개혁교회의 외형적인 표지/박대규 목사
rpress
2436 2002-08-14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_special/pdaku.hwp 개혁교회의 외형적인 표지 박대규 목사 선교 200년을 넘긴 한국교회는 복음을 전하여 준 미국교회가 그러하였듯이 분 열에 분열을 거듭하여 왔다. 그러나 해방 이후 동과 서, 남과 북의 분열의 아 픔을 절감한 기독교는 민족적인 비극을 치유하려는 사회적인 압력과 영향을 받고 있다. 그리하여, 한편에서는 종교다원주의 사상을 받아드려 종교의 연합 운동으로 힘을 모은다. 다른 한편에서는 사분오열 된 장로교는 각파의 연합운 동으로 힘을 모아가고 있다. 외적으로는 포스트모던이즘(Post modernism)의 영향으로 절대권위가 부정당함 에 따라서 비성경적인 구원관이 공공연히 말하여지고 있다. 기독교는 사회적 인 요구들을 수용하여 해결하는 운동단체로, 새로운 이상 사회를 건설하는 공 동체로 변질되어 가기도 한다. 내적으로는 교파의 합동으로 인하여 여러 이질 적인 요소들이 홍수처럼 흘러 들어와서 이합집산을 이루어 갈 위험성을 안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인 상황에서 우리는 이 시대 가 요구하는 바른 개혁주의 교회의 외형적인 표지를 선명하게 제시함이 필요하다고 본다. 개혁주의자들의 교회관은 모두 다 같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개혁교회가 추구 하는 참된 교회가 어떠한가를 추구함에 있어서 기본적으로 말하는 교회의 표 지는 말씀과 성례 그리고 권징이라 할 수 있다. 첫째 말씀을 바르게 전파하는 교회 종교개혁시대도 그러하였지만은 오늘날도 여전히 말씀을 향한 도전은 계속되 고 있다. 미신과 우매가 그러하였고,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사상이 그러하였 고, 과학과 실용주위가 그러하였으며 최근에 와서는 기독교내에 불고 있는 종 교다원 주의와 포스트모던이즘의 영향 아래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절대권위가 상대화되거나 거부당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성경을 보면은 우리 주께서는 교회를 세우시기 위하여 사도들에게 권세를 주 시었다. 사도들은 이 권세를 말씀 선포할 때에 만 사용하였다. 그러므로 사람 이나 사람들에 의하여 만들어진 전통에 근거하여 말씀의 존립과 가치가 영향 을 받아서는 아니 된다. 사도 바울이 말한 대로 교회의 권세와 기초는 사도들 과 예언자들의 교훈인 말씀에서 찾아야할 한다. 만일 어떠한 경우라도 교회 가 말씀 위에 서거나 말씀과 분리되면 교회의 존립 자체는 무너지고 마는 것 이다. 장로교 기본교리를 채택하고 있는 역사적인 문서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도 성경의 권위는 성경자체에서 찾고 있으며 존 칼빈(John Calvin) 이후 개혁 주의 대표적인 인물(John Knox, Groen Van Prinsterer , Abraham Kuyper, Herman Barbink, Klaas SChilder, Jonathan EdWard, Charles Hodge, B.B. Warfield, G. Machen)들도 성경의 신적 권위를 주장하였고, 성경중심의 개혁 주의 전통을 초창기 선교사들로부터 전수 받은 한국교회는 교회의 정치 및 신 자들의 교회내의 생활은 물론, 교회 밖에서의 전 생활이 성경중심의 생활을 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신자의 전 삶을 지배받는 좋은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전통을 답습한 개혁교회는 말씀을 순수하게 전파함으로 새로운 시대 에 주역으로 남아야할 것이다. 둘째 성례를 바르게 시행하는 교회 의식보다 말씀의 우위를 두고 있는 개혁교회에서는 로마 천주교회보다는 의식 적인 면에 약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성례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에 다시 한 번 의식에 대한 개혁교회의 전통을 확인하고 바로 잡아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고 본다. 성례에 관한 개혁교회의 대표적 인물인 칼빈의 정의를 보면은 성례는 하나님 께서 우리의 약한 신앙을 강화하기 위하여 자비의 약속을 우리 양심에 인처주 는 유형적 표호(Symbolum)로서 우리편에서는 하나님과 천사들과 사람들 앞에 서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의 경건을 증명하는 의식이고, 믿게 하는 수단이 된 다고 말하였다. 로마 천주교회는 일곱 가지 성례를 주장하는 반면에, 개혁주의 교회들은 예 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보이셨고, 성경에 증거하고 있는 세례와 성찬만을 개 혁교회의 성례라고 주장한다. 개혁교회는 성찬에 대하여서는 로마 천주교회 의 화체설을 강력하게 부인하며, 루터는 공제설, 쯔빙글리는 기념설을 주장하 는데 반하여 칼빈은 영적 임제설을 주장하였다. 성찬식에 사용되는 떡과 포도즙은 표징들로서 그리스도의 살과 피에서 받는 영혼의 양식인데, 그리스도의 몸은 현재 육체적으로는 하늘에 계시지만, 성령 을 통하여 우리는 실제로 그리스도의 살과 피에 참여하여 우리가 그리스도와 한 몸 되는 것을 믿는 우리의 영적 행위로, 우리는 그 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 시는 구속과 의와 성화와 영생과 그밖에 모든 은혜들을 얻게 된다고 칼빈은 말하였다. 세례는 교회의 회원으로 받아지는 입회의 표로서 그 유익은 사죄와 그리스도 의 죽으심과 부활에 동참함으로 세례 받는 자가 함께 죽고 사는 것이며, 그리 스도와 연합함으로 그리스도가 소유한 모든 유익과 복을 그리스도 안에서 누 리는 것을 말한다. 영아세례에 대하여서는 구약의 백성들이 할례로 아브라함 의 약속에 참여함과 같이 신약의 백성들은 세례로 아브라함의 후손인 그리스 도가 성취하신 약속에 참여는 것이므로 그 유익은 주께서 부모들과 후손들의 하나님 되심과 하나님의 복이 천대까지 이른다는 경건한 부모들에게 주시는 약속을 확인하여 주는 것이다. 특별히 말씀은 성례 없이 존재할 수 있는 은혜의 수단으로서 완성적이지만 성 례는 말씀 없이 존재할 수 없는 보충적임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말씀에 대 한 우리의 믿음을 확인하기 위하여 성례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므로 성찬식 은 가능하면 자주 시행함으로 주께서 교회에 주신 은혜를 풍성히 하여야 한 다. 이렇게 개혁교회에서는 성찬과 세례의 참 된 의 미를 강조할 뿐만 아니 라, 말씀을 통한 바른 시행을 강조하여야 할 것이다. 셋째 권징을 바르게 시행하는 교회 루터는 교회의 표지를 말씀과 성례의 시행을 주장하였고, 부쳐는 말씀과 성 례 그리고 권징을 말하였다. 그러나 칼빈은 권징의 중요성은 말하였지만 교회 의 정의에 속한 것으로 보지 아니하고, 교회의 조직에 속한 것으로 보았으므 로 권징을 교회의 표지로 삼지 아니하였다. 이러한 개혁주의자들의 다양한 입 장에 내세우며, 권징의 시행을 보류하고 있는 현실주의자들에게 영합하는 권 징폐지론자들이 작금에는 목청을 높여가고 있다. 그러나 권징을 폐하려는 사 람들에게는‘교회를 해체시키는데 이바지한다’그리고 권징을 피하려하는 사 람들에게는 '아버지의 매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칼빈의 권고를 다시 한번 상 기하여야 하겠다. 대부분의 개혁자들은 교회의 권징은 마 16:19; 18:15-18에 근거한 열쇠의 권 한에 의존한 영적 재판권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악 인들과 교제함으로 부패하는 일이 없도록, 교리의 혼란과 회원들의 건덕상의 문제가 있을 때에 말씀의 순결과 성도들의 성화생활 을 보존하는 수단으로 도 덕적 행위를 처벌에 국한하였다. 마치는 말 결론적으로 개혁교회는 말씀을 선포하고, 성례를 자주 집행하며, 가르치는 교 사로서 성경에 추출된 사상과 교리를 가르치고, 권징을 바르게 실시함으로서 이 시대가 요구하는 개혁교회의 사명을 담당하여야 한다. 또 이 세상 가운데 서 교회의 거룩성을 유지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에 박차를 가할 뿐 만 아니라, 최근에 불고 있는 연합과 합동 그리고 통합의 바람을 개혁교회는 거스르기보다는 교회의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삼아 개혁교회의 확장에 지혜 를 모아야 할 것이다.
138 no image 제언)선교제국주의를 경계한다-이광호 목사
rpress
1746 2002-08-14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_special/308lkho.hwp선교제국주의를 경계한다 이광호 목사(WIN선교회 한국대표) 한일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우리에게 대단한 변화 를 가져다 주리라 생각된다. 아무도 예기치 못했던 월드컵 4강이라는 괄목할 만한 성적과 온 국민들의 단합된 모습, 그리고 성숙한 시민의식 등은 전 세계 에 우리 민족을 홍보하기에 충분했다. 정치가, 경제인, 스포츠인들 등 모두 가 이런 호기를 살려 우리의 위상을 한층 높이려 애쓸 것은 틀림없다. 또한 기독교 선교에 관련된 인사들 또한 이번 기회를 선교에 활용하려 할 것이다. 지난 88올림픽 이후 한국선교가 한층 발돋움했던 사실을 기억한다. 사실 88 올림픽 이전만 해도 한국 사람들의 해외여행은 그리 흔하지 않았으며 해외 선 교 또한 그 영향을 받고 있었다. 그러므로 당시 유럽을 비롯한 먼 지역의 외 국인들이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 조차 알지 못하는 게 전혀 이상스럽지 않았다. 필자는 80년대 초 유럽을 여행하면서 그에 대한 많 은 경험을 했다. 내가 한 국인이라 하면 아프리카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었으며 남미 어디 에서 왔느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중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한 국이 아시아 어디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는 했지만 구체적인 지식은 거의 없었다. 그저 남북이 분단된 나라,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정도로 알고 있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그들의 교과서에는 한국이 6.25전쟁으로 인해 폐허 된 가장 가난한 나라 정도로 가르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시 한국 인, 그리고 한국 출신의 선교사들에게는 자기의 출신국가나 민족으로 인한 자 부심 같은 것은 전혀 있지 않았다. 80년대 초의 그런 형편을 감안하면 88올림픽은 해외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 에게 엄청난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많은 외국인들이 TV를 통해 한국의 모습 을 보며 꽤 괜찮은 나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보다 가난한 나라들에서는 한국을 보는 눈이 급격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우리 선교사들은 대개 경제적으로 가난한 나라들에 편중되어 있었다. 88올림 픽은 그런 선교사들에게 민족적 자긍심을 깊이 심어주게 되었다. 자기의 출신 국가가 발전된 나라로 인정받는다는 것은 상당한 프리미엄이 될 수 있다. 누 구에게나 마찬가지이겠지만 특별한 기술이나 경제력을 가지지 아니한 선교사 들에게는 그 의미가 더욱 살아날 수 있다. 문제는 그것이 아직 신학의 정도나 선교경험이 풍부하지 않은 우리 선교사 들에게 자기도 모르는 사이 제국주의적 사고를 가지게 한다는 점이다. 하나님 의 복음에 대한 자랑만 존재해야 할 선교사들에게 자신의 민족과 나라에 대 한 자랑이 더욱 증폭된다면 문제가 아닐수 없다. 그러다 보면 선교사들은 자 기 나라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되고 선교지의 사람들은 복음 보다 한국이라 는 나라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러한 논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하나님을 믿으면 이 세상에서 잘 살게된다는 기복적 신앙을 전할 우려 가 생기는 것이다. 사실 그러한 사고는 풍부한 선교 역사와 경험을 가진 서 구 선교사들에게 어설픈 오해를 가지게 한다. 88올림픽 이후 선교지에서 발생 했던 여러 문제들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이번 월드컵 경기 이후를 잘 준비해야 만 한다. 선교지의 주민들은 우리나라 선교사 들을 보면, '코리아, 넘버원!'이라며 엄 지손가락을 치켜 세워 보이며 인사할 것이다. 동시에 우리 선교사들은 자랑스 런 조국을 두게된 것을 감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진정한 주 의를 기울여야 한다. 선교지에서 자기 출신국가의 성공을 지나치게 의식하거 나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되면 선교제국주의적 경향으로 흐르게 될 위험이 있 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의 경제적 발전과 함께 한국의 자동차, 전자제품, 컴 퓨터 산업 등을 통해 선교제국주의적 경향에 접어든 우리 시대에 월드컵으로 인한 성공은 그러기에 충분한 것이 사실이다. 선교현지의 사람들이 '코리아, 넘버원!'이라 치켜세울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 앞에서 자긍하는 마음이 아니라 진정으로 겸손한 마음임을 잊어서 는 안된다. 선교사들은 자기의 조국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여 일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선교사들은 복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진리를 전하기 위 해 교회로부터 파송받은 자들이다. 선교지의 주민들이 한국을 부러워할 때 우 리는 그것이 자랑스러워할 만한 대단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복음만을 진정으 로 소중히 여기 고 있는 성도의 삶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위상 이 점차 높아진다 하더라도 그것이 자칫 선교제국주의적 경향에 빠지지 않기 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137 no image 평양을 다녀와서-최종설 장로
rpress
1807 2002-07-31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_special/pyachoi.hwp평양을 다녀와서 최종설 장로/ 새하늘교회 저는 평양에서 만난 한 분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곳에 있을 때,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분이 천국에 소망을 삼고 사는 나 를 늘 인도하시고 동행하시므로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도록 함께 하여주심에 감사하고 감격하여 벅차 때로는 눈물도 흘릴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평양에 서 만난 그 분은 참으로 위대하시고 강하시고 멋진 분이었습니다 6월 14일 인천국제공항에서 대한항공 전세기편으로 출발하여 평양순안비행장 에 도착하였는데 시간은 불과 한시간 정도 걸렸습니다. 기장이 방송으로 삼팔 선을 넘는다고 하더니 곧 공항에 도착한다고 방송이 나왔습니다. 참으로 지척 인 곳인데 멀게 느끼며 살았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항에 도착해보니 우리나라 지방 비행장보다 못하더군요. 비행장에서 버스 로 분승하여 평양시내를 둘러보며 숙소인 고려호텔에 도착하였습니다. 방 배 정을 받고 나서부터 이상한 감이 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측에서 모든 프로 그램을 작 성하여 프로그램대로 진행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막상 도착하고 나니 까 자기들의(북측) 프로그램대로 진행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측 집행부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협상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로부터 호텔에서 정문 을 나갈 수 없었으며 호텔 안에서만 돌아다니게 되었습니다. 내용을 알고 보 니 300여명 모두가 아리랑 축제를 보아야 하고 또 다른 무엇을 요구한다는 것 입니다. 다음날 15일 3층의 식당에서 6시에 새벽기도회를 하기로 되어있어 내려가니 까 들어가지 못하게 하여 문 앞에 모여 있다가 7시가 되어 식당으로 들어가 식사기도만 하고 아침을 먹고 나서부터는 자기들의 뜻을 따르지 않으니까 호 텔에서 한발짝도 정문에 나갈 수가 하였습니다. 저는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을 찾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분명 무슨 뜻이 있으셔서 나를 이곳 평양에 오게 하셨을텐데 그 뜻을 알기 위하여 숙소에 들 어가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내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들었 습니다. "이곳 북쪽에서는 믿음의 동지들이 지금도 복음의 문이 열리기를 위 하여 기도하며 인내를 가지고 기다리고 있단다." 저는 북한 의 믿음의 동지들 을 생각하며 인내하며 참고 기다렸습니다. 16일 주일날, 기대를 가지고 소풍을 가려는 어린이 같은 심정으로 마음이 부 풀어 일찍 일어나 준비를 하고 식당으로 내려가니까 재단 이사장님이 나오셔 서 설명을 하시기를 "내가 협상을 하다가, 우리는 주일 예배드리는 것을 목숨 보다도 중하게 여긴다. 그러니 우리는 여기에서 한발짝도 떠나지 않고 기도하 며 11시에는 정식으로 예배를 드릴 것이다" 라고 말하고 협상장에서 나왔다 고 하시면서 "여러분 우리는 여기서 한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찬양과 기도를 하고 11시 정각에 예배를 드릴 것입니다. 우리들의 의사가 관철될 때까지 금 식하며 기도회를 할 것입니다. 동의하십니까?" 하니 온 회중이 다같이 아멘으 로 동의하였습니다. 60여분의 목사님을 나오시게 하고 한 분, 한 분씩 나오셔서 찬양과 기도를 5 분 내지 10분 정도 인도하게 하셨습니다. 이곳에서 부흥회를 보았지만 강사분 이 많아야 2-3명인데 평양에서는 10여분이 나오셔서 인도하시는데 이런 일은 생전 처음 보았습니다. 7시부터 시작하여 처음에는 조심성 있게 하는 것 같았 으나 한번 시 작하고부터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를 가지고 찬송도, 기도도 북한동포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품고 합심하여 간절히 뜨겁 게 찬송과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평양에서 이렇게 하는 것은 상상도 못한 일이었습니다. 아니 할 수도 없는 일 을 그 분은 지금 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장장 5시간 30분 동안을. 우리 자 신도 놀랐습니다. 11시가 되어가니까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정장으로 갈아입 고 예배에 참석하고 있었습니다. 예배를 드리는데도 그 분은 여전히 임재하 여 계셨습니다. 예배도중에 성찬식도 집례하였습니다. 아침식사를 하려던 빵 과 포도주를 가져다가 성찬식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주관하시니까 호 텔 종업원들도 수종을 들더군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그동안 남조선 사람들 이 많이 왔었지만 이런 모습은 처음입니다" 하더군요. 예배를 마치고 잠깐 휴식을 취하는데 북측에서 협상을 하자고 해서 우리측 대 표가 가서 협상을 하는데 당신들 일정대로 하겠으니 제발 기도회를 그만해달 라고 타협을 하였답니다. 위대하시고 강하시고 멋진 그 분은 우리가 봉수교회 와 칠골 교회에서 예배만 드리 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으셨던 것이었습니다. 북 측에서 우리측의 요구를 순순히 응하였다면 이런 역사는 보지 못했을 것입니 다. 이후에 그 분은 보너스로 봉수교회에 가서 찬양예배도 드리게 하셨고 칠 골교회도 방문하게 하셔서 가지고 간 기념품을 전달했습니다. 이렇게 역사하 시는 멋진 그 분을 저는 보았습니다. 평양에는 두 가지를 가져갈 수 없다고 하는데 하나는 휴대폰이고 다른 하나 는 성경이라고 하는데 휴대폰은 가져갈 수 없었지만 성경은 마음놓고 가지고 다녔습니다. 이 또한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 위대하시고 강하신 멋진 우리 주 님이 계시는 한 북한의 복음의 문은 속히 열릴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 다.
136 no image 창사 20주년 기념특집-한국의 장로교회는 신앙의 표준을 바로 가르치는가?
rpress
5213 2002-07-31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_special/hjanro.hwp한국의 장로교회는 신앙의 표준을 바로 가르치는가? 윤성목 목사 교회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나이다"라고 신앙고백 을 한 백성들의 모임이다. 이 신앙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신다고 예수님은 약 속하셨다. 올바른 신앙고백을 떠나 올바른 교회를 기대할 수 없다. 17세기 청교도 지도자 리차드 벡스터(Richard Baxter)는 사도시대 이후 교회 역사상 가장 훌륭한 웨스트민스터 회의와 도르트 회의에 의해 제정된 개혁주 의 교리들을 귀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을 분명히 밝혔다.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이라는 개혁주의 교회(장로교)의 멋들어 진 표지 아래, 우리는 교회를 향한 뿌듯한 자부심을 가지고 신앙 생활을 한 다. 수많은 곳에 들어서 있는 교회에서는 시간마다 말씀이 선포되며, 사람들 은 말씀을 통해 진리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길 고대한다. 오늘날 모든 교회(다수의 이단을 포함하여)는 하나님의 말씀 중심이라는 은혜 로운 용어를 사용하여 사람들을 개교회로 이끌어 들인다. 그리고 '우리 교회 야말로 하나님의 말씀중심대로 사는 교회'라는 자부심과 자랑거리를 늘어놓는 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이단이라고 규정하는 집단에서도 그들은 '성경을 중심 으로 하여 하나님 말씀 중심의 삶을 살아간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우리는 그들의 주장을 어찌 생각해야 할까? 우리가 성경 중심을 외침과 그들의 외침 의 근본적 차이는 무엇인가? 혹시 우리는 아무 근거도, 의미도 모른 채 단지 우리가 정통 교회에 속해 있다는 사실만으로 "우리야말로 진리의 사수자요, 성경 중심의 신앙관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오늘의 교회들을 돌아보며, 언제부턴가 잃어버린 개혁주의 교회의 역사적 전 통의 의미와 오늘 우리의 교회가 무엇을 회복해야 할 것인가를 살핌으로써, 바른 신앙의 전제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회복되길 소원한다. 개혁 교회에 대한 역사적 이해 1517년 독일에서 마틴 루터로부터 종교 개혁이 일어났으며, 그후 스위스에서 는 쯔빙글리가 1519년 1월부터 취리히에서 마태복음 강해를 시작하여 12일간 r 성경 전체에 대한 강해를 시작하면서 취리히 개혁이 시작되었다. 쯔빙글리가 1531년 10월에 카톨릭과 대항하다 죽게 되자 그후 불링거와 같은 훌륭한 종 교 개혁자가 이를 계승하여 유럽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개혁은 계속 번져갔으며, 이 영향 하에서 존 칼빈이 등장하게 되었다. 그는 성경에서 교회 에 관한 모든 것의 설명을 찾고자 하여 이를 통해 개혁을 추진하였다. 칼빈 은 교회의 여러 가지 규정이나 신앙의 도리를 성경에서 그 근원을 찾으려 하 였고 성경 중심의 철저한 입장에 서게 되었다. 예를 들어, 칼빈은 개혁 작업을 통해 주관적 신앙고백에 기인한 가사의 찬양 을 배제하려는 노력을 했다. 예배 중에 시편이나 하나님의 구속을 찬양하는 객관성 있는 내용을 가지고 찬양했던 흔적을 보게되며, 성경 아카데미를 세 워 유명한 개혁 신학자들을 길러 내었고(1559년 창설, 약 300여명 수학), 그 곳에서 칼빈은 주로 성경을 주석 하는 일을 담당하였다. 결국 칼빈은 개혁 교회라는 특징을 띠고 유럽 전체에 영향을 끼쳤다. 특히, 독일에서는 루터의 영향을 받고 루터에 의해 루터파가 생겼으나, 개혁파는 칼 빈에 와 서 시작되며 그러므로 개혁 교회라고 할 때에는 현재 우리나라에 있 는 감리교, 성결교 등 다른 교파들 즉, 개신교 아래 있는 교파 모두를 개혁 교회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또한 개신교라고 말할지라도 개혁주의 교회는 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용이 없고 껍데기만 있는 교회는 개혁주의 교회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결 국 개혁주의 교회는 칼빈의 개혁을 중심으로 그의 신학과 사상을 계승하는 입 장에 서 있는 교회다. 물론 그 내용은 역사를 통해 더 풍요하게 발전되었으 며 계승되어 왔다. 칼빈의 개혁은 모든 것을 성경에서 근원을 찾으려고 하였 으며 성경의 근원을 두지 않는 것을 철저히 배격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칼 빈주의가 곧 성경 중심의 개혁주의 신학이었음을 알 수 있다. 신앙고백서에 대한 역사적 이해 칼빈의 교회와 일치하는 그런 신앙고백서들이 칼빈 이후 계속하여 나타난다. 그의 제자들이나 칼빈의 사상을 계승해 나가는 사람들이 교회를 세울 때에 전 통의 교리를 중시하였고, 또한 칼빈의 사상과 일치하는 신앙고백서들을 만들 고 그 법에 따라 교회를 이루려고 하였다. 여기서 한가지 기억해 둘 것은 우 리 개혁주의(장로교) 교회가 신조로 삼는 것이 바로 이같은 신앙고백서라는 점이다! 우리의 고백하는 신조는 신앙의 전제요, 매우 중요한 것이다. 따라 서 교회가 무엇을 믿고 어떻게 교회를 이루어야 할 것인가 하는 신앙의 도리 를 공적으로 고백하고 선언하는 작업은 매주 중요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의 신조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성립 배경을 더 자세히 살펴보자. 1643년 7월부터 영국의 개혁 신앙인들이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모여 그들의 신 앙고백서를 작성하고 그의 후손에게 가르쳐서 계승해야 할 문답서를 만들기 로 하였다. 그때 뛰어난 신학성과 경건성을 겸비한 신학자들은 오직 하나님 의 인도하심과 성경에 의해서만 신앙의 표준을 세우고자 하는 입장에서 고백 서를 작성하였고, 1647년에 결실을 보게 되었다. 이것을 작성한 사람들은 칼 빈의 신학과 그의 교리를 전수하고 그 사상들을 받아서 일궈 놓은 사람들이 다. 그러므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소요리 문답서에는 개혁 교회가 가지고 있는 신앙의 내용들이 잘 담겨져 있다. 오늘 우리 장로교 교회는 모 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나 교리 문답서 를 주의하여 마음을 기울여 공부하 며 연구하며 가르쳐야 한다. 역사 속에서 신앙고백서의 위치 칼빈에 의해 종교 개혁이 일어나 칼빈의 사상에 '개혁'이라는 이름에 붙여졌 고, 이 개혁주의의 일맥은 칼빈과 칼빈 후의 개혁주의 신앙고백, 즉 17세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교리문답서 그리고 도르트 신경들을 통해서 계승 되었다. 특별히 장로교에 잘 알려지지 않은 '도르트 회의'의 결정에 대한 중 요성과 그 내용을 안다는 것은 개혁주의 장로교 교회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 의 신학적 전제요, 더 이상 양보할 수도 포기할 수도 없는 신앙 고백의 결정 이다. 도르트 신조는 한 시대에 사변적 신앙으로 그친 것이 아닌, 진리를 왜곡하며 진리를 변질시키려는 무리에 대한 교리적인 투쟁의 결과로 얻어진 산물이다. 이는 알미니우스의 신학이 칼빈의 신학에서 떠나 있다는 것을 인식한 고마루 스(Franics Gomarus)가 이의를 제기하면서, "신앙 자체가 예정의 결과이다, 세계의 기초가 놓이기 이전부터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로 과연 누가 신앙을 가 질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신 것이다"라고 주장한 것 이다. 결국 이 예정 론 논쟁을 통하여 알미니안 주의의 교리인 항변서(Remonstrant)가 정죄되었 고, 개혁주의 교회에서 구원론의 핵심이 되는 전적 타락(Total depravity), 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 제한 속죄(Limited atone-ment), 불가항력적 은혜(Irresistible grace),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the saints)이라는 일명 튤립(TURIP) 교리가 세워진 배경이 되었다. 이 도르트 신조는 한 마디로 말해서 '인간의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로 된다'는 성경적 교리를 분명히 변증한 것이요,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 한 만큼 어떠한 인간의 조건과 노력으로 구원 얻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 나님에게만 의존한다'는 것을 천명한 것이다. 바로 칼빈의 기독교 강요에 나 타난 예정론의 입장을 다시금 정리케 된 것이고, 이 회의의 결정에 있어서 핵 심 내용들은 이후에 웨스트민스터 회의에서 그대로 이어져 내려오게 된 다. 결론적으로 개혁주의 교회의 정신은 교회가 성경에 근거해서 이루어 낸 신앙 전통의 개혁되어진(Reformed) 신앙고백을 통해, 방향이 설정되고 교회의 행진 의 성격을 검토 하며 계속해서 개혁해 나가는(Reforming) 것이다. 진정한 개혁주의 교회라 하기 위해서 교회와 신학은 갑작스레 바뀌어지는 것이 아니다. 역사 속에 나타난 하나님 의 뜻을 드러내고자 하였던 사도신경과 325년의 니케아 신조(예수님의 신성 과 인성에 대한 문제로 아리우스의 도전을 받아 그 주장을 배격하고 삼위일 체 교리를 확립한 신조), 그리고 개혁주의 신앙의 영향을 받아서 계속 보완되 고 만들어진 벨직 신앙고백서,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웨스트민스터 신앙고 백서, 도르트 신조 등에 의해 그 정신과 신학과 신앙이 계승되는 것이다. 오 늘날도 우리 교회가 개혁주의 교회의 입장에 서 있는 교회라고 말한다면 그것 은 위에 열거한 신조와 신앙고백을 전제로 하여 하나님을 아는 지식 위에 서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개혁주의(장로교) 신앙은 어떤 전제와 기준에 서 있는가? 개혁 주의 신앙을 표방하던 우리의 선배들의 신앙과 신학을 저버리고, 아예 '개혁 주의를 포기하려는 조짐'이 보이고 있다. 그것은 이 시대의 정신과도 맞물려 일어나는 반 개혁주의적 이탈 현상이다. 그것은 선교적 차원에서, 복음주의권 의 영향으로, 많은 교회가 영혼 구원이라는 목표 아래 우리의 고백된 신앙과 교리의 핵심 문제들을 변질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교회의 개교회주의 적 현상과 교회 부흥과 성장 원리로 오늘의 교회를 세우려는 목회자의 욕망 때문은 아닐는지…. 이들은 전통적 개혁주의의 풍요로운 신앙고백들을 무시하 고 교회를 움직이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외형적 성장이 있다 할지라 도,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존경의 대상이 된다 할지라도, 분명 진리 를 변질시킨 그들의 모습은 하나님 앞에서 인간 노력의 교만의 극치일 것이 다. 하나님이 하시는 그 역사하심 속에 인간의 인본주의적 원리와 방법을 동원하 여 교회를 세우려는 것은, 참된 교회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물려받은 풍요로 운 전통의 내용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가르치지 못하고 있지 않는가! 진리 에 대한 바른 이해와, 진리가 왜곡되는 현상 속에 역사적 신앙 고백들을 우리 의 믿음의 고백으로 다시 회복함으로서, 어두워진 이 시대에 진리의 외침이 우리의 마음속에 잔잔히 일어날 것을 원하는 바이다. 서로가 자신의 주장을 향해 객관적 진리 라고 외침으로 진리의 기준이 허물어 졌다. '하나님의 말씀대로'라는 구호 속에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외칠지 라도, 그 의미와 전제는 신비주의요, 경건주의요, 합리주의로 세속화된 신학 과 신앙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분명한 입장은 역사적으로 검증된 개혁주의 신앙과 신학의 전제가 우리의 신앙 전통에 전수·계승되었 고, 그 교리들을 전제로 하여 신앙의 고백들이 이루어져야 함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이것 역시 오직 하나님의 은총이 우리 가운데 임하심으로, 그 역사 적 신앙을 고백하고 연구하고, 그것을 계승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135 no image 창사 20주년 기념특집-방언에 대한 이해/이광호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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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5 2002-07-10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_special/lkho.hwp'방언'에 대한 이해 이광호 목사(철학박사, 고신대) 1. 서론 인간은 말하는 존재이다. 이는 다른 어느 동물도 가지지 않고 가질 수 없는 인간에게만 주어진 특권이다. 성경은 인간의 언어로 기록된 하나님의 선물이 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언어를 통해 당신의 구원을 계시하심으로써 자기 사 랑을 확증하셨던 것이다. 성경에는 일반언어 이외에 방언에 대한 기록이 여러군데 나온다. 방언의 목적 은 무엇이며 왜 인간에게 일반언어 이외에 방언이 필요했던가? 그리고 오늘 우리의 시대에도 방언이 필요한가, 그리고 방언이 있는가? 이 글은 방언에 관 한 이해를 돕고자 하여 쓰여졌다. 2. 방언과 언어 방언은 언어의 일종이다. 즉 인격적 의사표현이다. 동물들은 언어를 사용하 지 않는다. 어떤 괴성이나 소리를 지름으로써 의사표현을 하지만 그것은 언어 와 다르다. 인간 역시 언어가 아닌 소리를 동시에 낸다. 그 소리를 통해 감정 표현을 하지만 그것은 언어와 다르다. 그러므로 의 사표현이나 감정표현을 하 느냐의 여부가 곧 언어인가 여부를 결정짓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말하는 언어란 인격자들 상호간에 나누어지는 대화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인격을 가진 자가 자기 의사를 설명하여 표현할 때 상대방도 언어를 통해 반응할 수 있어야 한다. 갓난아기도 이와 마찬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아기의 소리는 미성숙한 언어라 할 수 있다. 언어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이들 의 입장에서 보면 소리에 지나지 않게 여겨질지 모르지만 그것은 다른 동물들 의 소리와는 엄연히 다르다. 즉 동물들의 단순한 소리와는 다른 것이다. 이 글에서는 이에 대해서 논외로 한다. 결국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방언이 언어라는 점이다. 즉 단순한 소리가 아니며 의사전달 방법이다. 성경에는 오순절 성령사건이 있었을 때 방언이 있 었음을 말해 주고 있다. 그리고 사도교회 시대에 교회 안에 방언이 있었던 것 을 보여주고 있다. 그 방언들은 모두가 특별한 언어로써 특별한 목적을 위해 의사표현의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3. 방언의 목적 방언이 있는 목적은 주님의 교회를 세우기 위함이었다. 방언은 하나님으로부 터 주어진 은사 이다. 즉 은사란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있었던 하나님의 특별 한 선물이다. 이러한 방언들이 있었던 것은 아직 신약성경이 완성되기 이전 주님의 몸된 교회를 강하게 세우기 위해 하나님께서 특별히 허락하신 것이었 다. 이는 사도교회 시대에만 있었던 여러 가지 이적들과 동일한 맥락에서 설 명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러므로 방언의 목적은 개인의 사사로운 목적을 위해서 있었던 은사가 아니 다. 비록 개인 성도들이 받은 은사대로 활용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교회 를 위한 은사였던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방언은 단순히 개인의 기쁨 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전체교회의 세움을 위해 주어졌던 것이다. 비단 방언을 말하는 성도들에게 그 은사로 인한 커다란 즐거움이 있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일차적으로 개인 성도를 위해서가 아니라 교회에 속한 전체적인 각 성도들과 교회를 위해서 있었던 것이다. 4. 오순절 사건때의 방언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된 오순절 사건때의 방언은 일반언어였다. 이후 사도교 회 시대에 있었던 방언과는 차이가 나는 것이다. 이 방언은 오순절 강림의 짧 은 시기에 있었던 단회적인 것이었다. 즉 오순절 성령이 오셨음을 세상에 선 포하는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오순절 때의 방언은 사도들을 중심한 성도들이 다른 지역의 언어들을 구사하 는 것이었다. 그들은 다른 언어를 공부하거나 배운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역사적 오순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모여들었던 여러 사람들의 출 신지방 언어로써 성령강림의 '큰일'을 선포했던 것이다. 그러자 각자가 고향 에서 사용하는 자신의 언어들을 거기에서 듣게 되었을 때 심히 놀라와 했던 것이다. 5. 사도시대 교회에서의 방언 사도시대 교회에는 또 다른 특별한 방언이 있었다. 그 방언은 하나님의 은사 로서 다른 일반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그런 언어였다. 이를테면 하나님 이 알아 들으셨으며 통역하는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 그 말의 의미를 알 수 있 었던 것이다. 고린도전서 12장에 의하면 사도교회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방언을 말했다. 어 떤 경우에는 방언을 말하고 있는 당사자가 그 의미를 알지 못할 때가 있었지 만 그렇다고 방언 자체에 의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 는 자는 통역하기를 사모하고 교회에서 공적인 방언을 할 때 통역하도록 요구 했던 것이다(고전14장 참조). 이 말은 곧 방언이 개인의 유익을 위한 것이 아 니라 교회를 위한 방언이었음을 입증해 주고 있는 것이다. 6. 우리시대의 방언은? 우리시대에는 더 이상 방언이 필요하지 않다. 완성된 계시의 말씀이 주님의 몸된 교회에 주어진 후에는 더 이상 방언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다. 교회 를 세움에 있어서 말씀과 성령의 조명으로써 모든 것이 완전히 충족되기 때문 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교회 가운데는 방언을 말한다는 자들이 많 이 있다. 그들은 어느 순간에 방언을 말하게 되었고 그것이 주는 기쁨이 엄청 나다고 고백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방언이 누구를 위해 왜 필요한가 하는 것을 신 중하게 생각해야만 한다. (물론 우리가 더욱 깊이 생각을 해 볼 때 이 문제 가 그렇게 단순하지 만은 않다. 예를들어 지금도 신구약성경이 완전히 번역되 어 있지 않은 지역의 교회들 가운데서 과연 방언이 있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 는 신학적으로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신구약 성경을 가 지고 있으면서 말씀을 통해 신앙을 확인하는 교회시대에 살고 있는 성 도들에 게는 더 이상 방언이 필요하지 않다. 7. 결론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바 방언은 기독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거의 모든 종교들에는 방언이 있다. 그들에게는 방언 뿐만 아니라 방서(方書)도 있 다. 오늘날 우리의 시대에 있는 방언들은 거의가 교회가 견제해야할 대상이 다. 어쩌면 많은 방언들은 이방종교들에서부터 기독교 안으로 들어오는지도 모른다. 즉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죄된 종교성이 교인들 가운데 불건전한 방 언을 말하게 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교회가 말씀의 원리에 올바르게 서있지 않고 타락하게 되면 이방종교에서부터 들어온 방언이 기독교의 행세를 하며 교회를 어지럽힐지도 모를 일이다. 오늘날 우리가 방언을 말하지 않음으로써 불편한 것이 있는가? 방언을 통해 특별히 하나님의 음성을 듣거나 하나님을 노래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가? 우리 에게는 방언이 있지 않아도 이미 완성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진리 를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의 뜻을 방언을 통해서가 아니라 말씀을 통해 확인 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가운데 방언을 말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많이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말씀으로 그것을 확인할 수 없다. 혹 누가 통역한다고 해도 그것 또 한 말씀으로 확인할 방도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온전한 방언으로 말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직접 확인 가능한 것들만 진 리라고 믿고 있으며 그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신앙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134 no image 민간 차원, 평양 직항 입성은 역사적 사건-송영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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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0 2002-06-26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_special/worship.hwp 민간 차원, 평양 직항 입성은 역사적 사건 아직도 남북 연합예배 희망이 있다. 송영찬 편집국장 6월 14일 오후 1시, 평양 봉수교회와 칠골교회에서 남북 성도들이 한 자리에 모여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는 희망을 가슴에 안고 대한항공 전세기 직항 편 으로 인천 공항을 출발해 50분 후에 평양에 도착한 한민족복지재단(이사장 최 홍준 목사, 호산나교회) 측 방문단 297명은 약간씩 들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평양의 순안 공항에서 간단한 보안 검색 외에는 아무런 통관 검 사 없이 오후 3시 30분에 평양 고려 호텔에 여장을 푼 일행들은 이례적인 북 한 당국의 배려에 앞으로의 일정이 순탄하게 진행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 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성경책을 가지고 아무런 제재 없이 북한에 입국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남북 성도들의 연합예배에 대한 기대감이 무르익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들의 기대감 이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긴장감 이 숨겨 있었다. 그것은 방북단에 대한 비자가 그 시간까지도 발급되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었 다. 우리들은 무비자 상태로 평양 고려 호텔에 투숙되었던 것이다. 무비자 상태로 평양에 들어가 우려했던 대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우리들의 일정에는 호텔에 여정을 푼 후 간략한 평양 시내 관광과 만경대소년학생궁전 공연 관람이 예정되어 있었 다. 그렇지만 무비자 상태에서는 호텔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북측의 통고로 갑자기 때아닌 긴장감이 맴돌기 시작했다. 우리는 비자가 발급될 것을 기다리 며 아무런 불평없이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호텔에서 평양의 첫날밤을 지냈다. 15일 오전 6시에 우리는 고려호텔 3층 대식당에서 식사 전에 기도회를 갖기 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어떤 영문인지 문은 열려져 있지 않았다. 그리고 7시 가 되어서야 문이 열렸다. 이때부터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 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것은 결국 현실로 드러나고 말았다. 오전 9시 우리는 다시 식당에 모였다. 재단측은 우리를 초청한 범태평양조선 민족경제개발촉진협회와 협의 한 내용에 대하여 북측의 아 리랑 축전 운용팀 이 이의를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그것은 4월 말부터 6월 말까지 고 김일성 주석의 생일을 기념하는 아리랑 축전에 우리들 일행이 전원 관람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재단측은 사전에 그러한 내용을 통보 받은 적이 없다고 밝혔으 나 "아리랑 축전 참가를 위해 초청장을 발부한 것이며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비자를 내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양측의 팽팽한 줄다리기 가운데 협상 안이 나온 것은 오후 4시경이었다. 그것 은 희망자에 한해서 아리랑 축전을 참관하며 16일부터 일정대로 진행한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우리는 호텔 안에 반 감금된 상태로 있었고 그렇게 평양의 이틀째 날은 저물고 말았다. 그나마 앞으로의 일정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에 대한 기대감으로 답답했던 하루의 지루함을 달랠 수 있었다. 16일 오전 7시, 어제 합의한 일정대로 진행될 것에 대한 기대감으로 식당에 다시 모인 우리들은 또 다시 두꺼운 벽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재단의 김형 석 사무총장이 "새벽에 북측으로부터 남북연합 예배 대신에 관광을 하라는 통 고를 받았다"고 보고했기 때문이다. 이후 최홍준 이사장은 사태의 심각성을 밝히고 "금식과 더불어 우리들의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기도회를 갖는다"고 선언했다. 기도회는 오전 11시까지 계속되었으며 11시부터는 방북단만으로 예 배를 시작하였다. 그 사이에 북측이 재협상을 제의해 왔지만 원만하게 합의 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남북 연합 예배는 이뤄지지 않았다. 12시 35분에 북측이 재차 협상을 요구해 왔다. 그리고 북측은 남북 연합 예 배 대신에 봉수 교회와 칠골 교회를 방문하는 것으로 대신 하자고 제의해 왔 다. 재단 측은 북측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대신에 재단측에서 후원하고 있는 평양의 고려당 빵 공장과 병원을 방문할 수 있도록 요구했고 양측이 서로 합 의함으로서 우리들의 일정은 새롭게 다시 짜야 했다. 그리고 19일 귀환하기 로 되어 있는 일정을 줄여 18일에 귀환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오후 3시 우리들은 약속대로 봉수 교회를 방문했다. 봉수교회는 350여명의 좌 석 규모였으며 깔끔하게 단장되어 있었다. 봉수 교회당에 자리를 잡은 우리들 은 간략한 순서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 예배후 재단특이 준비한 대형 텔 레비전을 전달하였다. 봉수교회 장승복 목사는 인 사말을 통해 "통일이 빨리 되어 한 자리에서 연합 예배를 하면 좋겠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우리는 봉 수 교회를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마친 후 칠골교회를 방문해 역시 준비한 대 형 텔레비전을 전달한 것으로 3째날의 일정을 접어야 했다. 17일 오전 9시 30분, 북쪽에서 준비한 관광이 시작되었다. 만경대와 대동강 의 쑥섬을 거쳐 제너럴 셔먼호의 격침지(지금은 그 자리에 납치된 미국 함정 프에블로호가 전시되어 있다)를 거친 것이 오전 일과였다. 그리고 오후에는 첫날 가기로 되어 있던 만경대소년학생궁전 공연을 관람하였다. 저녁 7시 북 쪽 책임자인 김병철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최홍준 이사장이 주최하는 만찬과 함께 우리들의 방북 일정을 모두 마쳐야만 했다. 모든 일정이 취소되는 아쉬운 방문 일정이었지만 그나마 봉수교회와 칠골교회 를 방문한 것으로 우리는 위로를 삼아야 했다. 어쩌면 처음부터 지금까지 북 쪽의 계획대로 우리들의 일정이 조정되었는지 모른다. 아니 우리들이 그들에 게 이용당했다는 허탈감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정작 우리들의 발걸음을 인도하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셨다. 성경을 들 고 입 북했다는 사실이 그랬고, 평양 시내에서 5시간 30분 동안 진행된 기도회 와 예배가 그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누가 평양 시내 호텔에서 이렇게 자유롭 게 기도하고 찬송할 것이라고 생각했던가? 비록 방북 일정과 계획은 무산되었 지만 우리들의 발걸음이 어쩌면 7일 동안 여리고 성을 돌았던 첫날 첫 번째 발걸음이라고 여길 수만 있어도 좋지 않겠는가? 남북 관계는 결코 정치적 시각으로만 풀 수 없는 남다른 정서를 가지고 있 다. 그것은 우리가 한 민족이라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특히 우리 기독인들에 게 있어선 사랑의 복음에 근거한 끊임없는 베풂과 관심이 앞서야 하기 때문이 다. 우리에겐 복음의 확장이라는 지상 명령과 더불어 온전한 교회 회복이라 는 시대적 사명이 주어져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18일 오전 11시 무거웠던 마음을 접고 평양 순안 비행장으로 이동한 우리는 입국 때와 같이 간단한 출국 심사를 마치고 이미 대기하고 있던 대한항공 전 세기를 타고 평양을 떠나야 했다. 지난 4박 5일간을 돌이켜 보면서 다시 또 올 것 같지 않은 평양 방문이 이처럼 무력하게 끝나버린 것에 대한 허탈감에 쉽게 발걸음이 움직 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언제든지 다시 오겠다는 기대감 을 결코 버리지 않겠다"는 최홍준 목사의 말과 같이 머지 않은 시일 안에 다 시 평양을 방문할 때가 올 것이라는 기대감만은 평양에 버려 두고 올 수 없 어 가슴에 다시 주어 담아야 했다. 나아가 우리 정부의 탄력적인 방북 허가는 너무나 극적이라고 할 수 있다. 기 자가 방북 수속한 것은 지난 11일, 그러니까 방북 수속 4일만에 평양에 들어 갈 수 있었다는 것부터가 심상치 않은 변화인 것이다. 또한 인천 공항에서의 출국 수속과 귀국 수속도 간략하게 진행되었다는 것 역시 하나님의 손길을 느 끼기에 충분했다. 남북 연합 예배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은 언젠가 남과 북의 성 도들이 함께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는 날에 대한 희망의 등불로 우리 앞에 우 뚝 서 있다. 그 날이 올 때까지 우리는 끊임없이 어버이와 같은 심정으로 북 녘의 동포들을 돌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133 no image 평양의 4박 5일-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하에스더
rpress
2212 2002-06-26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_special/esder.hwp평양의 4박 5일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하 에스더 서울에서 꿈꾸던 동방의 예루살렘--평양에 대한 기대는 어쩌면 환상과 추상 으로만 이루어진 것이었는지도 몰랐다. 평양의 4박5일은 그런 의미에서 북한 선교에 대한 막연한 생각과 환상이 깨어지는 시간이기도 했다. 비행기의 차창 밖으로 내려다본 그 땅은 그저 붉은 흙더미를 속살처럼 드러 내고 속절없이 누워있는 듯 했다. 위용을 자랑하는 평양 시내의 건물들 틈 사 이로 가끔씩 지나가는 사람들과 자동차 그리고 거리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붉 은 색 구호들은 왠지 공허하다 못해 슬프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호텔에서 만 나는 싹싹하고 친절한 영접원들이나 관광지에서 만나는 화려한 한복의 미인들 에게서조차 젊음이 주는 기쁨과 생명의 환희보다는 잘 훈련된 기계적인 웃음 과 미소 뒤로 지나가는 차가운 눈빛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신사참배 문 제로 옥고를 치르다가 순교한 주기철 목사의 피가 뿌려진 땅이기 도 하지만 동시에 신사참배를 가결한 곳이기도 한 그 땅에서 남과 북이 하나 되어 손에 손을 맞잡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찬양과 예배를 올려 드린다는 가슴 벅찬 꿈을 안고 한달음에 달려간 그 땅은 여전히 엉겅퀴와 가시를 내고 있을 뿐이었다. 하나님의 성전은 당과 정권의 거대한 초상화 아래 초라한 장식품에 불과했고 그 어디에도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고 입 맞추지 않은 칠천인은 없는 것 같 이 보였다. 방송에서 끊임없이 계속되는 하나님의 영광을 취한 자들에 대한 찬사 가운데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주 강하게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 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사 42:8)"고 말씀하셨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소리와 신랑 신부의 소리, 그리고 맷돌 소리와 등불 빛 이 끊어진 황무지가 되어 열방 가운데 놀램과 치소거리가 되고 있는 그 땅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은 멸망이 아니라 회복과 치유인 것이다. 그 땅에서 이방 신을 섬기던 산당들이 제거하여 질 것이며 다른 신을 쫓아 섬기거나 숭배하 며 손으로 만든 것을 인하여 하나님의 노를 격동하는 일이 다시는 생기지 않 게 될 것이다. 그 날과 그 때가 이르면 그 땅에서 아무리 죄악을 찾고 찾을 지라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며 모든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데서 해방되 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게 될 것이다. 가을 하늘처럼 유난히 맑고 푸르렀던 평양의 대동강변에서 조차도 복음의 빛 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지만 우리의 인간적인 기대와 환상을 깨어지게 하 신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계시와 환상을 보여주셨다. 백두에서 한라까지 그리 스도의 보혈로 하나된 남북한이 하나님을 섬기는 그 날이 이제 속히 올 것이 다. 그 날을 위해 복음의 빚진 자된 우리 남한의 기독교도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그 땅의 회복을 위해 영적으로 깨어 기도하며 그 날을 위해 준비해 야 할 것이다. 우리의 물질과 힘으로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와 그 힘의 능 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 를 입고 기도와 간구로 성령 안에서 깨어 구해야 할 것이다. 또한 그 땅의 황 폐함을 비웃고 그 땅의 완악함을 비난하기보다는 하나님의 가슴으로 그 땅의 잃어버린 자들을 품고 중보하고 하나님의 눈으로 그 땅의 잃은 양을 찾으며 하나님의 귀로 그 땅에서 고통 당하는 자의 울부짖음을 듣고 하나님의 입으 로 때를 얻든 얻지 못하든 생명의 진리를 전하는데 게으르지 말아야 할 것이 다. 하나님께서는 그 꿈을 이루시기 위해 바로 준비된 '나' 한 사람을 사용하시 기 원하신다.
132 no image 4박 5일간의 평양 방문-다시 함께 예배하는 날을 기다리며/안숙아
rpress
1799 2002-06-26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_special/asya.hwp4박 5일간의 평양 방문 "다시 함께 예배하는 날을 기다리며" 안숙아(한민족복지재단 의료지원 팀장) 2002년 6월 14일. 평양을 처음 방문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비슷하지 않을 까 생각하지만 나 역시 '평양은 어떤 곳일까 북한을 직접 보면 어떤 느낌일 까'하는 기대와 설렘이 있었다. 서해 공해상을 직접 날아 1시간여 뒤 평양 순 안공항에 내렸다. 우리일행 외에는 아무도 출입객이 없는, 외국 비행기 한 대 가 없는 조용하다못해 쓸쓸한 공항. 평양 최고의 호텔인 고려호텔에 여장을 풀고 그들로서는 최고의 성찬으로 준비한 뷰페식사를 먹으면서 내가 가진 북 한에 대한 첫 느낌은 '아픔' 그것이었다. 그 맛있는(?) 식사를, 자꾸만 나오 려하는 눈물과 함께 삼키면서 나는 '내가 왜 이럴까'하고 생각했다. 1998년 10월 11일. 라진·선봉시 선봉군인민병원에 들어갈 의료봉사단 9 인의 한 명으로 몇 개월씩 준비하며 하나님과 많은 지체들 앞에서 파송예배 를 드린 이후, 그 땅을 밟지 못한 채 북한을 마음에 담고 의료지원 일을 시작 한지 4년. 그러나 내가 주님의 심장으로 사랑해야 할 내 동족들의 영혼을 위 하여 기도할 때마다 느끼던 알 수 없는 답답함이 나를 힘들게 했었다. 솔직 히 말해서 나는 '내가 품고 있는 그들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하는 것 아닐 까' 하는 자책에 괴롭기도 했었는데. 그런데 이렇게 북한땅을 밟으며 사람들 을 만나고 인사를 나누는 지금 한없이 불쌍한 생각이 자꾸만 들면서 눈시울 이 뜨거워졌다. 사랑한다는건 '불쌍히 여기는 것' 그래 그런 것인가 보다. 하 나님도 날 보시면 안쓰럽고 측은하고 그러실까...? 그래 그러실 것 같다. 그 러나 우리는 부족한 인간인지라 예정했던 일정대로 약속이 이행되지 못하며 서로 다른 견해 차이로 설왕설래하는 아름답지 못한 모습들을 보면서 곱지 않 은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2002년 6월 18일. 4박 5일간의 내 평생에 잊지 못할 평양방문을 마치고 돌아오기 위해 그들과 작별인사를 나누면서 다시금 나는 하나님의 마음을 읽 고 싶었다. 어두운 땅 가운데에 하나님이 그들을 더 이상 그냥 놔두시지 않기 n를 바라면서. 멀리 있는 것만 같았던 북한. 그들을 바라보며 그리도 마음이 아팠던 며칠. 또 오라며 손을 흔들던 그들의 눈망울을 기억하며 이제는 기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바울이 하나님 앞에 자기의 동족들을 위해 했던 그 기도 를. 우리가 언제쯤 자유롭게 서로 왕래하고 언제쯤 함께 손잡고 하나님을 예 배하게 될지 알 수 없으나 그 날이 올 때까지, 그 날까지는 계속해서 아버지 의 마음을 내게 부어 주시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함께 동행했던 많은 주의 자 녀들 마음속에도...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 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요한일서 3:14)
131 no image 기고)권징조례의 개정안에 대한 이해를 위하여-김상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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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2002-06-12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_special/ksdo.hwp권징조례의 개정안에 대한 이해를 위하여 김상도 목사/ 부산 평화교회 원로목사, 헌법수정위원회 위원장 1. 금번의 헌법개정을 총회가 결정하게 된 경위 1) 우리 교단이 설립된 지 어언 20여 년이 되었는데 근래에 와서 매 총회 때 마다 노회들의 헌법수정 혹은 개정의 헌의가 제안되었다. 이것은 시대와 교회 의 상황들이 많이 변화되어 헌법조항들의 신설 혹은 개정을 필요로 하기 때문 에 나타나는 현상이라 생각된다. 2) 또한 어떤 노회에서는 우리 헌법에도 헌법적 규칙을 제정하여 달라는 헌의 가 제안되었다. 헌법적 규칙이란 합동측 장로교단이 고신측 장로교단과 합동 할 때에 헌법을 보완하기 위하여 만들어 사용해오던 것인데 우리교단 헌법에 도 이러한 헌법적 규칙을 제정하여 달라는 제안인 것이다. 3) 이러한 모든 상황을 살피며 또한 21세기를 바라보고 우리 총회는 교리를 제외한 헌법의 정치·권징조례·예배모범의 개정과 시행세칙(헌법적 규칙이 란 용어를 바꾸어서)의 제정을 하기로 결 정한 것이다. 4) 그리고 헌법개정 및 시행세칙 제정위원을 선정하여 이 일을 맡긴 것이다. 위원들이 법대로 1년 동안 연구하여 개정안을 만들어 총회에 보고하면 총회 가 검토하고 가결하면 법대로 각 노회가 수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노회는 권징조례는 교회정치에 기초를 두고 있는데 교회정치 개정안이 부결되 었으니까 권징조례 개정안의 노회 수의는 필요하지 않다고 수의를 하지 않았 다고도 한다. 교회정치·권징조례·예배모범 등 헌법은 각각 독립적인 법으로서 성경과 개 혁주의 장로교 원리에 기초를 두고있을 뿐 교회정치가 권징조례나 예배모범 의 기초가 되는 것은 아니다. 권징조례는 교인이나 직원이 성경이나 교회정치 ·권징조례·예배모범 등의 헌법규정을 어겨 권징할 만한 범죄가 있을 때 재 판하여 권징하는 법인 것이다. 그런고로 권징조례 개정안은 각 노회가 수의하 여 그 결과를 총회장에게 보고하여야 한다. 2. 권징조례의 개정에 대하여 개정위원들이 가진 중점적인 요점 권징조례의 개정에 대하여 개정위원들이 가진 중점적인 요점은 법조문의 개정 이나 신설에 있어서 알기 쉽게 기억하기 쉽게 또 실제 재판을 하게 될 경우 재판을 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목사된 지 얼마 되지 않는 젊은 목 사나 또는 장로평신도라도 알기 쉽게 적용을 잘할 수 있도록 법조문을 만들 어 보자는 것이다. 헌법개정 위원들은 위에서 말한 취지를 구현하기 위하여 아래와 같이 사역하 였다. ① 먼저 우리 총회 산하 목사들 중에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한 목사 몇 분을 전문위원으로 위촉하여 권징조례 개정안을 초안하도록 하였다. ② 그리 고 우리 개정위원들 중에서 소위원 몇 분을 뽑아서 전문위원들이 만든 초안 을 검토·보완하여 개정안을 만들어 전체위원회에 제출하게 하였다. 전체위원 회에서 이 초안을 검토·보완하여 가결하고 총회에 제안한 것이다. 3. 개정안에 대한 이해를 위하여 1) 권징조례의 전체적인 구조조정 권징조례는 범죄에 대한 재판사항들의 규정인 것이다. 그래서 개정안은 재판 을 중심으로 하는 구조를 가지도록 하였다. 재판의 준비로 제1장 총칙, 제2 장 고소에 관한 법, 제3장 변호인, 제4장 증인, 제5장 재판회 및 재판국을 두 었으며 재판을 위하여는 제6장 재판에 관한 일반적인 법, 제7장 상소와 재심 에 관한 법, 제8장 행정재판, 제9장 위탁재판, 제10장 이의서와 항의서, 제11 장 교회직원에 대한 재판을 두었으며 재판의 결과로 제12장 권징의 시행, 제 13장 권징의 해제를 두었다. 2) 권징조례에 권징에 관계되는 것보다 교회정치에 관계되는 조항들이 많이 있어서 권징조례를 더 복잡하게 하고 있다. 그래서 이러한 조항들은 권징조 례 개정안에서 삭제하고 교회정치로 옮겼다. 3) 예배모범에 있는 시벌과 해벌은 권징조례에 두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되 어 재판의 결과로 제12장과 제13장에 각각 두었다. 4) 권징조례에 나오는 용어까지도 될 수 있는 대로 우리 개혁주의 장로교 정 치원리를 구현하는 방향으로 고쳤다.
130 no image 창사 20주년 기념특집-가정과 교회/이예원 목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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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3 2002-06-12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_special/leeyw.hwp가정과 교회 -가정 세우기 위한 기초 닦기- 이예원 합신 11회. 영국 Moorlands Bible College에서 Youth and Children's Work 학 과를 졸업. 원주 새동네 교회를 섬기고 있음. 1. 들어가는 말 현 한국 문화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가정 사역의 중요성은 굳이 언급할 필 요가 없을 정도이지만 그리스도인의 가정 세우기를 위해 성경적 기초 세우기 는 참으로 중요 할 것이다. 성경은 과연 그리스도인 가정을 어떻게 세우도록 가르치고 있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본 글은 가정 세우기를 위한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내용들을 논의하 기보다는 가정 사역을 위한 기초 터전에 대해 논의 할 수밖에 없다. 지면상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가정 사역들에 대한 패러다임을 비교 분석하지 못하지 만 가정 사역에 대한 성경적 조명과 그 방향을 간단하게 정리하고자 한다. 2. 가정과 하나님의 교회와의 관계 1]에베소서 5:22-6:4/디모데전서3:15 바울의 가르침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가정의 구조는 각 지역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 즉 하나님의 교회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하나님을 한 아버지로 하는 가정 공동체였다. 이 새로운 가정에서 각 지체들 부부로 이루어진 가정 생활(이것을 본 글에서 는 교회 공동체와 가정으로 구별하여 사용할 것임)과 부부 관계, 자녀 양육, 심지어는 사회 생활까지 새롭게 배워야 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 공동체 지도 자들을 세울 때에도 사회적인 능력이나 재능을 본 것이 아니고 가정 생활의 모범과 그 열매를 먼저 확인하게 한 것이다(딤전3:1-13). 그렇기에 가정 생활을 한다고 할 때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가정으로 서 교회 공동체 생활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그리고 각 개인의 삶은 독신이 든 부부이든 간에 부르심대로 살아가게 한 것이고, 이 각각의 부르심은 각자 가 지체로서 그 기능(은사)을 발휘하여 서로에게 유익을 주는 한 가족 공동체 로서 관계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한국 교회 공동체 속에서 독신에 대한 배려와 결혼과 독신 두 은 사 사이의 협력을 위한 사역이 균형 있게 이루어지지 않고, 단지 부부 관계 에 집중하 는 것은 성경 적인 기본적인 방향을 바라보지 못한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미 언급했듯이 가정과 부부와 자녀 양육의 주체가 교회 공동체가 되지 않 고 각 가정에 두고 있다는 것은 성경에서 가르치는 사역 질서가 바뀐 것이라 고 보아야 한다. 이 순서의 뒤바뀜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으로 이루어 진 하나님의 교회의 통일성과 충만을 충분히 드러내지 못하고 왜곡할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가정이 사회의 기본구조라고 이해하는 현대 사회학은 성경에서 가르치는 교 회 중심의 가르침과는 다른 것이다. 그럼에도 그리스도인의 교회 공동체의 가 장 기본적인 구조가 부부로 이루어진 가정인 것처럼 기초를 닦아서는 안 된 다. 이런 맥락에서 "가정 같은 교회, 교회 같은 가정"이라는 표어는 다시 생 각해 보아야 한다. 이것은 교회가 하나님의 진정한 가정으로 공동체 삶을 살 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문제가 없지만, 가정이 각자의 핵 가정을 의미 하는 것이라면 잘 못된 표기일 수밖에 없다. 만약 그리스도인들 부부 사이에 부부 관계나 가정 생활에서 문제를 갖고 온전 한 삶을 살고 있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교 회 공동체가 진정한 가정의 삶을 모범으로 보여 주지 못했든지, 아니면 개인이 하나님의 말씀과 교회의 가르침 에 순종하지 못하는 죄 때문일 것이다. 결국 그리스도의 교회들이 진정한 하나님의 가정으로 세워져 가고 그 속에서 가족으로 형제애의 삶을 살지 않으면 가정 사역은 교회 공동체 밖의 사역으 로 남게 되며, 그 사역의 근본적인 한계에 부딪치게 될 것이다. 2]신명기 21:18-21 모세의 율법서 중에도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신명기 21:18-21에서 한 아들이 부모의 말을 거역하며 순종치 않을 때, 그 부 모는 그 자식을 잡아 성읍 장로들에게 나아가서 재판을 받게 하고, 불순종하 는 것이 사실이면 성읍 사람들은 그 자식을 돌로 쳐죽이라는 율법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미 이스라엘 공동체에서도 한 개인의 자식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부락을 중심으로 하는 한 공동체의 자녀라는 것을 알 수 있고, 그 자 녀의 모든 것을 공동체가 확인하게 한 것이다. 이것은 한 자식에 대한 모든 권한이 공동체에 있고, 각 부모는 위임된 사람인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스라엘 전체가 하나님의 가정으로서 함께 살아가게 하신 것 이다. 3. 가정 사역의 목적은 무엇인가? 가정 생활의 목적을 말한다면 대동소이하지만 정리한다면 데이빗 필드가 말 하는 것처럼 "각자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하고 작자의 완성을 위해서 함께 노 력하기로 헌신하는 두 사람"(결혼의 일곱 가지 얼굴, 두란노 서점)으로 일반 적으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영적 생활의 강조, 화해, 용서, 대화, 헌신, 재정, 성생활 등등을 가르치게 될 것이다. 그 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될 것은 가정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부부를 만드신 목적은 인간들로 구성된 하나님의 공동체였 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었고, 이 목적 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나라와 교회의 충만 인 것을 새롭게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결국 각 가정의 삶의 목적은 하나님의 공동체를 이루는 일에 헌신되며 또 그 삶을 누리며 사는 것이다. 현대인들이 가장 심각하게 빠져 있는 함정이 있다면 그것은 인본주의적인 가 치관이고 그것의 화려한 열매는 개인주의적인 사고 방식이다. 이는 한 인간 개체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한 발 더 나가면 핵가족 제도 자체도 개인주의적 인 산물로 보는 사회학자들의 지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핵가족을 이루는 것 자체가 개인의 욕심 때문이고, 가정 이기주의를 나타내는 것이 그 열매라 는 이야기가 된다. 내 자식만을 위해 그토록 철저한 헌신과 사랑을 보이는 것은 가정 이기주의라 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부부만 잘되어 행복하고, 자식만 잘 교육하면 되 고, 우리 가정만 평안하면 된다는 식의 부부 중심 생활만을 가르치는 것은 처 음부터 시작이 잘 못된 것이다. 처음부터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요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기 위해선 자기 부정을 요구하지 않았기에 그리스도인이 되어서도 부부가 서로 용서하고 고백 하는 것의 참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 우리는 그리스도인 의 공동체인 교회에서 다양한 지체들과의 만남과 대화와 관계 속에서 갈등을 알게 되고, 용서의 능력을 경험하며, 사랑을 위한 형제의 헌신을 통해 믿음 을 배워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 일 것이다. 교회 공동체 삶은 부부보다 우선 이고, 그리스도인으로서 공동체에서의 기본적인 삶을 통해 부부, 가정의 생활 을 그리스도의 목적에 합당하게 만들어 가게 될 것이다. 모든 신약 성경들은 이러한 교회 공동체 생활을 가르치는 가운데 부부와 가정 의 생활을 언급하고 있는 것을 주위 깊게 볼 필요가 있다. 바울이 에베소서 5 장과 6장에서도 공동체 모임, 그리스도와 교회와 부부 관계, 자녀 양육, 사 회 생활의 문맥으로 가르치고 있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4. 올바르고 건강한 가정 세우기를 위한 기반들 1]이미 언급했듯이, 각 지 교회가 하나님의 가정으로 기초가 닦아져야 한다. 교회는 조직체로 되어 있는 사무적 형태의 구조를 개선해야 할 것이다. 무엇 보다도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유기체로서 관계 중심적인 공동체의 기반 을 만들어야 그 안에서 부부, 자녀, 독신, 과부들이 각자에게 주어진 구원 의 삶을 온전하게 배워가며 살게 될 것이다. 교회 지도자들도 조직을 운영하 는 경영자로서가 아닌, 믿음의 삶의 모범자로서 그 신앙의 전 삶을 보이며 가 르치며 생활해야 할 것이다(벧전 5:1-4). 목회자는 목사이기 전에 믿음의 한 형제요, 아우요, 아들임을 인정하고 믿음의 가족으로서 삶을 실천해야 할 것 이다. 한 지 교회 공동 체는 지체들간의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 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제하심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그것을 방해하는 것이 많은 숫자의 지체들이라면 분가를 하든지 아니면 구조를 적절하게 바꾸 어야 한다. 대형 교회의 몰락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대형 교회보다도 더한 기독교 국가 자체가 몰락하는 것 어려운 일이 아니었음을 역사의 교훈으 로 받아 들어야 한다. 늙은 여자들로 하여금 젊은 아내들을 가르치며 교훈 하게 해야 한다는 사도 바울의 가르침에서 전문 가정 사역자가 누구인지 분명한 것이다!(딛2:3) 2]가정이 올바르게 세워지는 것은 문화적인 반영이 아니라 믿음의 삶이 반영 되어야 한다. 가정 사역이 한 가정을 자칫 가정 이기주의로 더 나가도록 도와 주는 모양이 될 수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한 부부가 바로 세워 진다는 것은 누차 언급했듯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교회 공동체 속에 헌신된 지체로 세워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면에서 현 한국 교회에서의 가정 사역 이 교회 밖의 운동으로 진행됨에는 것은 사역의 한계가 있다. 또 교회를 위 한 사역이 된다 하더라도 교회가 각 가정 을 위한 어떤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식의 사역이 된다면 교회 공동체 중심의 구원의 삶은 더욱 멀어질 위험이 도 사리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바울은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 들에게 할지니라"(갈6:10)라고 가르치고 있다. 하나님의 교회의 지체들에게 서로 착한 일을 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헌금 이외에 우리는 서로 지체들끼리 나누며 돕도록 해야 한다. 물질이 오가지 않는 형제 관계란 있을 수 없기 때 문이다(요한1서 3:16-17). 부부를 위해 사용 될 수 있는 돈을 아끼고 절제해 서 교회 공동체 형제들을 위해 사용해야 된다. 이미 언급했듯이 바울은 디도에게 편지를 보내서 "젊은 여자들을 교훈 하되 그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 근신하며, 순전하며, 집안 일을 하며, 선하며,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라"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 가르침을 문화적으로 해석해야 하는가? 부부가 맞벌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회가 되었기에 '집안 일을 하게 하라'는 것이 여성의 전문성의 가치를 하락시키는 전 근대적인 남 성중심의 사고 방식이라고 일축할 수 있는가? 아내로서, 엄마로서, 주부로 서 의 삶이 전문적 지식과 영적 능력이 별로 요구되지 않는 저급한 일이라고 일 축할 수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치는 삶과 가치관이 현대의 가치관에 의해 훼방 받고 있는 것이다. 성경의 가르침대로 살기 위해 그리스도인이 겪는 고난이 과거의 정치적인 배 경 속에서만 생각할 수 없다. 그리스도인 가치관 때문에 겪을 수 있는 가난 은 자본주의 국가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당연한 고난일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삶을 살게 하는 것이 가정 사역의 목적이라면 이 사 역은 교회 공동체가 주체적 역할을 해야 함을 의미할 뿐 아니라, 각자의 믿음 이 반영되는 삶으로 세워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믿음이 자라 가는 것이라 면, 부부 관계도 이 믿음 안에서 함께 자라 감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3]교회 공동체 생활을 생각하다 보면, 부부가 겪는 갈등의 요인들보다도 더 욱 다양하고 깊은 내용을 보게 된다. 지체들은 서로에게서 수많은 문제들과 아주 작고 섬세한 삶의 일들로 인해 갈등을 겪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갈등을 해결할 능력을 갖고 있다. 도와주시는 분도 있 다. 지혜도 있고 대안도 있다. 그리스도 우리 주 예수님이 계시고, 성령이 계 시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우리 공동체에 있기에 걱정하지 않는다. 화해와 일치의 능력과 사랑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오는 한 길뿐이다. 이 진리로 우리는 함께 살아가며, 공동체를 하나님의 가정으로 세워가며 그리 스도의 분량까지 성장해 가는 것을 소망한다. 부부가 겪는 갈등과 어려움은 몸을 나누지 않는 다른 가족들과 겪는 어려움 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교회 공동체는 서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이 갈 등을 두려워하기보다 사랑과 믿음과 은혜 안에서 한 마음으로 만들어 가는 훈 련의 장소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가정을 세우는 사역이 될 것이다. 3. 나가는 말 무엇을 먼저 해야 할 까? 부부 가정을 세우는 일과 공동체 가정을 세우는 일? 계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의 이론이 아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 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목적과 관계된 것이다. 새 포도주를 담기 위한 새 부대에 관한 논의인 것이다. 새 생명, 새 사람, 새 가정, 새 공동체를 담기 위한 새 부대는 하나님의 교회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한 몸이 되며, 주 하나님을 한 아 버지로 모시며 사는 한 가족이 되는 새 부대가 되어야 한 다. 하나님의 가정은 말이 아니고 삶이며, 신학적 이론이 아니고 삶의 목적을 규 정하는 복음이며, 그리스도 예수의 구원의 열매인 것이다.
129 no image 창사 20주년 기념특집-목회자에게 안식년 아닌 휴가를/김영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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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7 2002-05-29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_special/kyjai.hwp목회자에게 안식년 아닌 휴가를 김 영 재(합동신학대학원 교수) 아마도 1970년대 이후부터 한국 교회는 나라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여러 가 지 특이한 현상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소위 목회자의 안식년은 그 가운데 하나이다. 그간에 목회자의 안식년으로 인하여 교회가 겪었던 여러 가지 문제 점들을 고려한다면, 그것이 한국 교회가 범하고 있는 시행착오임을 반성함직 도 한데, 많은 이들이 목회자의 안식년을 당연시하는 데는 변함이 없는 것 같 다. 그렇게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목회자의 안식년이 목회원리에 맞는 것 인지 고려해 보지 않기 때문이며 목회자의 안식년이 마치 성경에서 유래한 것 으로 해석하는 데에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안식년이란 개념을 빌려 선교사들을 위하여 관례로 삼은 것이 선교회였다. 그리고 대학이 또한 교수들의 연구 활동을 위하여 안식년을 제도화하다시피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관례는 구미로부터 도입한 것이지만, 목회자를 위 한 안식년은 우리 한국 교회에서 자생한 것이다. 목회자에게도 안식년이 있어 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목회자의 직능이 아마도 선교사나 교수들의 것 과 비슷한 점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그러므로 그 유사점과 차이점을 먼저 비교 검토해 보기로 한다. 목회자에게 안식년이 적법한가? 목사 역시 가르치는 직능을 가졌다는 점에서는 교수와 같으나 교수가 종사 하는 학교 공동체와 목회자가 종사하는 교회 공동체는 동일하지 않다. 교수에 게는 연구와 지식 습득이 자신의 직책을 위하여 거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 지만, 목회자의 경우는 그렇지가 않다. 목회자는 설교하고 가르치는 것 못지 않게 사람들을 심방하고 보살피며 그들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일에 많은 시 간을 할애해야 한다. 목회자는 교회를 이끌어 가는 중심 인물로서 가르치는 일과 모든 교인들을 상대로 봉사하는 복합적인 목회를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 교수 역시 학생들과 인격적인 관계를 가지며 그들의 교육을 위해 봉사한 다. 그러나 강의실에서 만나는 학생들은 늘 바뀔 뿐 아니라, 학생을 지도하 는 것은 교수 한 사람의 몫이 아니고 교수들이 공동으로 담당하는 것이다. 그 러므로 교수가 순번으로 안식년을 가진다고 해도 학교로서는 학생 지도에 아 무런 지장이 없다. 사람들은 안식하는 교수의 빈자리를 별로 의식하지 못한 다. 그러나 목회자가 설교하고 가르치는 대상은 평생을 같이 사는 교인들이 다. 목회자와 교인의 밀접한 유대 관계는 교수와 학생의 관계에 비교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목회자의 안식년은 교인들과의 교제에서 이루어지는 목회에 큰 공백과 지장을 초래하기 마련이다. 선교사와 목회자는 다 같이 복음과 그리스도의 교회를 위하여 일하지만 둘 의 직능에는 차이가 있다. 선교사들은 문화와 풍속이 다른 외국에서 일하는 사역자이다. 옛날 선교사들이 고국을 방문할 경우 1년간의 안식을 취했던 일 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범선이나 증기선을 타고 오가는 데에만 두 달 혹은 석 달씩 걸렸으므로 그들에게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다. 오늘날 에는 하루 이틀이면 왕래가 가능함으로 안식년의 기간에 관한 것은 수정될 수 있을 것이다. 여하튼 안식년은 선교사와 가족을 위하여 필요한 제도이다. 선교사가 고국 에 돌아오면 가족과 친지도 만나고 파송한 교회들을 순방하며 선교 사역에 관 한 보고를 함으로서 교회들로 하여금 선교지와 선교 사역을 위하여 새롭게 관 심을 가지고 기도하며 지원해 주도록 요청하며 격려한다. 그리고 선교사의 자 녀들은 조국을 보고 친척을 만나며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다. 안식 년에 선교사와 가족은 위로와 격려를 받으며 힘을 얻는다. 그뿐 아니라 선교사의 안식년은 선교지의 토착 교회에도 유익이 되는 것임 을 관찰하게 되었다. 특히 윌리엄 캐리 이후 선교 정책에서 강조하는 것은 선 교지 교회의 자립과 자영이다. 선교지 교회가 어느 정도 자립할 단계에 이르 면 선교사들은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는 것이 이러한 자립을 위한 원칙의 하나 이다. 이를 일컬어 선교의 '유타나시아'(euthanasia, 安樂死)라고 한다. 선교 사들은 그들이 선교지를 떠나 있는 동안 선교지 교회는 대부분의 경우 기대 밖에 교인들이 서로 도우면서 성장하는 것을 일반적으로 경험하게 되었다. 선 교사의 안식년 기간은 토착 교회의 자립과 성숙을 위하여 스스로를 훈련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목회자의 경우는 다르 다. 목회자가 안식년으로 교회를 떠나 있는 동 안 교회가 더 부흥하고 성장한다면, 그런 경우가 실제로는 거의 없지만, 목회 자가 그 교회에 별로 필요 없는 존재가 되는 셈이 된다. 교회가 목회자를 별 로 기다리는 눈치가 없으면 목회자는 묘한 소외감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위험은 여전히 내재한다. 목회자를 대신하여 설교를 맡은이가 교인들의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교인들은 교회 생활에 흥미를 잃 고 흩어질 수가 있다. 그와는 반대로 대신 설교를 맡은이를 교인들이 좋아할 경우 교인이 흩어지는 시험은 없을 수 있으나 그것이 도리어 안식년을 하고 돌아온 목회자에게는 큰 시련이 될 수 있습니다. 교회가 임시 설교자를 목사 로 모시기로 하는 경우도 있고, 임시 설교자를 좋아하는 그룹이 형성되어 교 회가 분열되기도 한다. 이런 불상사가 없는 경우에도 또 다른 문제가 야기된다. 교인들이 한 해 동 안 담임 목사 아닌 다른 설교자의 설교에 익숙해져버려 나중에 다시 돌아온 담임목사의 설교에 다시 적응하느라 애를 쓰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험은 목 회자와 교회 양측에 다 꽤 오랫동안 상처로 남을 수도 있다. 대신하는 설교자가 주일마다 바뀌는 경우 위에서 언급한 문제점은 피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교인들이 매주 설교만 하고는 가버리는 낯선 설교자의 설교 를 듣는 것은 교회 공동체의 건강을 위해 좋을 것이 없다. 사랑으로 돌보는 목회 부재 대신에 땜질식 설교로 교회는 욕구불만에 빠지기 마련이다. 목회자의 안식년이 한국 교회에 정착하게 된 경위 목회자의 안식년은 대형교회의 산물이다. 1970년대 큰 교회들이 많이 생겨 나면서 안식년이 마치 제도화되다시피 정착하게 되었다. 큰 교회의 목회자들 은 과로하지 않을 수 없다. 3부, 4부, 5부로 반복해서 드리는 주일 예배에 설 교하는 일만 해도 탈진케 만든다. 게다가 많은 교인들과 교회 일을 돌아보아 야 하는 격무를 치러야 한다. 스트레스도 그만큼 많이 받는다. 그래서 큰 교 회의 목회자들이 몸이 극도로 쇠약해져서 장기간 요양을 해야 하는 경우도 더 러 발생했다. 목회자가 안식년을 가지는 것도 우리에게만 있는 특이한 관례이지만, 몸을 부셔지도록 혹사하면서 목회를 하는 경우도 우리 한국 교회에서나 볼 수 있 는 특이한 현상이다 . 건강 회복을 위하여 목회자는 당연히 쉬어야 한다. 그러 나 안식년으로 제도화하면서 쉬는 것은 문제이다. 큰 교회의 경우 목회자 개인에게 기대는 교인들의 의존도가 작은 교회에 비 하여 낮을 뿐 아니라 여러 방면으로 일을 대신할 수 있는 부목사나 전도사들 이 있어서 목회자가 별 어려움 없이 교회를 떠나 있을 수 있다. 큰 교회는 기 구화 된 교회이고 목회자는 경영자의 위치에 있으므로 담임목사가 떠나 있어 도 교회는 비교적 원활히 운영될 수 있다. 그러나 작은 교회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작은 교회는 목회자에 대한 의 존도가 높으므로 목회자가 오랜 기간 자리를 비우면 교회의 목회는 공백상태 에 빠진다. 교인들은 작은 교회에서 누릴 수 있는 장점과 특권을 상실하는 결 과가 된다. 그러므로 목회자의 안식년에 대하여 작은 교회는 큰 교회만큼 관 대할 수가 없다. 그들은 그들의 목회자가 접근하기 힘든 대교회의 목사로 변 신한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되며 그리하여 막연한 배신감까지 가지게 된다. 작 은 교회의 많은 목회자들이 이러한 차이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안식년만은 대 교회의 목회자나 마찬가지로 가지려고 하는데 더 문제가 있다. 목회자에게 안식년이 불가한 것은 이런 현실적이며 실제적인 문제들 때문만 은 아니다. 사실 그런 실제적인 문제가 야기되는 것은 교회가 해서는 안될 불 합리한 일을 성경에서 말씀하는 안식년을 핑계로 결행하기 때문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의 교제를 가지는 사 랑의 공동체이다. 성도들이 함께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으로 지어져 가야하고 함께 그리스도의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가야 하는 사랑의 공동체이다. 하나 님의 성전으로 함께 지어져 가야하는 건설 현장에서, 성도들이 함께 살아가 며 교제하는 중심부에서 모든 것이 원활히 진행되고 이루어지도록 지휘하고 감독하는 직무를 맡은 목회자가 1년씩이나 자리를 비운다는 것은 있을 수 없 는 일이다. 학교의 경우 교수는 안식년을 취하더라도 행정과 운영의 책임을 맡은 총장이 임기 동안에 안식년을 취하면서 자리를 비우는 일은 없다. 구약의 안식년을 목회자에게 적용할 수 있는가? 목회자의 안식년은 성경이 말씀하는 안식년과는 무관하다. 구약 성경은 모 든 생업의 안식에 관하여 언급하는 것 이 아니고 땅의 안식에 관하여 말씀하 심에 유의해야 한다. "너희는 내가 주는 땅에 들어간 후에 그 땅으로 여호와 앞에 안식하게 하 라...(레 25:1, 3-7)." 안식년은 파종하는 것을 쉬어 땅으로 하여금 사람들에 게 봉사는 데서, 혹은 혹사당하는 데서 해방을 받아 쉬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 다. 포도나무 등에서 나오는 소출은 종들과 객과 가축과 들짐승들로 하여금 먹게 하도록 배려하라고 말씀한다. 안식년의 주목적은 땅으로 하여금 쉬게 하는 것이다. 땅을 놀릴 때 쉬게 되 어있는 사람은 농사하는 사람이다. 제사장이나 다른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여전히 일을 해야 한다. 안식년과 목회자의 쉼에는 어떤 유추의 가능성도 없다. 안식년의 규례는 경 작하는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이지 목축하는 사람에게는 해당이 되는 것이 아 니다. 목회를 목양(牧羊)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희랍어로 목사(poimen) 라는 명칭은 바로 목자란 말이다(에베소서 4:11). 목회의 유추는 농사가 아니 라 목축이다. 교회의 유추는 땅이 아니고 양떼이다. 목축을 하는 사람은 심지 어 안식일에도 가축은 돌보아야 한다. 마치 주부가 가족들에게 돌보듯이 해 야 한다. 쉼 없이 돌보아야 될 양떼를 오랜 기간동안 팽개쳐 두는 그런 목자 는 없다. 따라서 구약의 안식년을 목회자의 안식년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말하는 것 은 어이없는 성경해석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교회에서 '목회자의 안식년'이 란 말을 들어 볼 수 없는 것은 그런 합성어가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말 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맺는 말 목회자는 그러면 쉴 틈도 없이 일해야 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목회자 도 사람이므로 쉬어야 한다. 실제로는 한국적인 사정에서 지키기 힘들지만, 목회자도 주중에 하루는 안식을 취해야 한다. 그리고 목회자들도 해마다 적어 도 보통의 근로자들이 갖는 법정 휴가기간 정도나 그보다 많은 기간의 휴가 를 가져야 한다. 교회는 이해와 사랑을 가지고 목회자를 위하여 충분한 휴가 를 배려해야 한다. 그것이 교회를 위한 것이다. 목회자는 휴가 동안에 기도하 며 목회를 점검하고 새로운 계획을 세우거나 혹은 견문을 넓혀 목회에 도움 이 되는 정보와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 한국교회가 목회자의 안식년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것은 해당 성경 말씀 의 피상적인 해석과 교회관의 빈곤에서 온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목회 자는 파수군으로서, 멀리 떠난 주인이 맡긴 일을 충실히 수행하는 청지기로 서 자기 자리를 지켜야 하며 양을 먹이는 목자의 심정으로 교회를 돌보아야 한다. 그것이 주님의 교회를 양육하는 목회이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여러 해 를 쉬지 않고 일하다가 한꺼번에 취하는 안식년은 말고 해마다 몇 주간의 충 분한 휴가를 취하도록, 그리고 교회는 그렇게 배려하도록 감히 제언한다. 이 것은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시행되는 보편적인 관례이며, 옛날 우리의 선배 목 회자들이 따랐던 관례이다.
128 no image 창사 20주년 기념특집-성경적 자녀교육의 중요성/유화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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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 2002-05-16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_special/educa.hwp성경적 자녀교육의 중요성 유화자 교수(합동신학대학원 기독교교육학)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교육열이 높은 나라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고학력 자가 많음은 물론, 21세기 산업이라 할 수 있는 정보 통신, 초고속 인터넷 최 강국 등, 여러 분야에서 잠재력과 가능성이 돋보이는 나라로 세계의 관심과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다. 특별히 몇 주 앞으로 다가온 Word cup 개최를 계기 로 많은 외국인들의 방문과 관심이 더욱 고조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렇게 많은 가능성과 잠재력을 가진 한국이 만일 교육 분야에서 그 순기능 을 발휘한다면 한국은 장차 여러 면에서 선진국은 물론, 21세기 세계를 주도 하는 지도국중의 하나로 부상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가정의 달 5월을 맞이하여 우리는 여러 면에서 그 문제성이 제기되고 있는 우리의 교육 현실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특별히 기독교 가정교육의 중요성에 대하여 살펴보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 생각된다. 한국의 역기능적 교육현실을 염려하는 많은 사람들이 "한국은 공교육이 무너 졌으며, 공교육에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라는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이 우려 속에는 공교육에서 인성(人性)교육이나, 윤리, 도덕 등, 더불어 살아가 는 인간의 기본적 삶의 자세와 내용 등 전인(全人)교육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을 염려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인은 세상교육의 순기능은 물론, 하나님의 성경말씀으로 무장된 하나 님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오늘날 우리 자녀들이 가정과 교회 를 통하여 바른 기독교교육을 받지 못한다면 그들 자신의 개인적 삶은 물론, 이 시대에 그들을 통하여 이루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지 못 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여기서는 우리의 가정교육을 돌아보면서 기독교 가정교육의 중요성과 부모 의 model됨의 필연성, 그리고 몇 가지 모델사례 등에 대하여 간단히 살펴보 려 한다. 가정교육의 중요성 성경은 많은 곳에서 가정교육의 중요성과 부모의 교육적 사명에 대하여 말씀 하고 있다. 신명기 6:4-9절은 그 대표적인 말씀 중 하나로, 먼저 부모가 최선 을 다하여 하나 님을 경외하고 그 뜻대로 살아야 함은 물론, 자녀들에게 부지 런히, 철저하게 하나님 말씀 교육에 전념할 것을 하나님의 절대적인 명령과 간절한 소원으로 우리에게 부탁하시고 있다. 따라서 성경적 자녀교육은 부모 의 선택 사항이 아닌, 부모된 자 모두의 의무와 책임이며, 부모자신의 인생 (人生)의 필수 사역이다. 아담 타락이후 하나님은 구원사역과 함께 교육프로그램을 준비하시고 역사 (歷史)를 통하여 그 계획을 계속 진행해 오셨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부모와 선지자, 제사장들에게 교육사명을 주셨는데, 그 중에서 특별히 가정에서의 부 모교육을 강조하셨다. 가정은, 자녀들의 기본적 교육장소이며, 최초의 인생학 교이고, 부모는 자녀들의 가장 중요한 인생교사이다. 어린 자녀들의 인생(人 生)이 시작되는 교육의 장(場)인 가정에서 사랑과 관심을 쏟는 부모를 통하 여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며 하나님의 법도대로 사는 법을 자녀들이 배우지 못 한다면, 장성한 후 어디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법을 제대로 배울 수 있 겠는가? 인간발달을 연구하는 교육학자나 심리학자들은, 한 사람이 일생(一生)을 살 아 갈 성격이나 기본 인격형성의 85%정도가 6세 이전에 형성되며, 그 결정적 인 역할은 부모에게 있다고 말한다. 또 이렇게 형성된 성격은 그 어린이의 무 의식이나 잠재의식 속에 내재(內在)되어 일생동안 영향을 미친다고 하였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중요한 자녀교육 사명을 받고도 자신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였음은 물론, 자녀교육에 실패하여 이스라엘 후 손들이 부패와 타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을 향한 주변 강대 국들의 침략이 계속되고, 이스라엘 왕을 위시한 귀족들과 일반백성들까지 무 수한 사람들이 이방나라에 포로로 끌려가는 민족적 비극과 치욕을 이스라엘 민족은 겪게 되었다. 열왕기상하, 역대상하 등 구약 여러 곳에 이스라엘 민족 의 이런 고난과 비극의 역사가 나타나 있으며, 특별히 열왕기하 25:6-7절에 서 시드기야왕 두 아들의 살해 사건과, 두 눈을 뽑히고 쇠사슬에 묶인 채 바 벨론으로 끌려가는 시드기야왕의 처참한 모습은 하나님의 말씀교육에 실패한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비상교육방법이라 할 수 있다.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이런 성경의 교훈은 오늘 우리에게도 자녀교육에 대한 중요한 역사적 교 훈을 제시하고 있다. 인간은 어떤 강의, 특강, 세미나, 설교 등 단기간의 집중적인 지식의 전달이 나 자극을 통하여 그 성격이나 인품, 도덕성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다. 특히 어린이들은 자신에게 사랑과 정성을 쏟는 부모나 가족, 스승, 선 배, 교회지도자 등, 가까운 사람들의 생활 속에 투영된 진실한 삶의 자세와 삶의 내용을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그들의 model됨을 점진적으로 배우고 익히 며 변화되어 간다. 입술의 교훈보다 진실된 작은 언행일치(言行一致)가 어린 이들에게 설득력과 교육적 효능을 발휘한다. 우리 자녀들을 하나님의 말씀으 로 바르게 인도하는 선결조건은 부모의 model됨이다. 생활 속에 나타나는 부 모의 솔선수범은, 학교나 사회에서 인생(人生)의 모델을 찾기 어려운 현대 사 회에서 더욱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생활 속에 나타나는 부모의 감화와 모델 됨은 그 부모의 교육정도나 경제여건, 사회적 위치 등 어떤 외적 조건들에 결 코 비례하지 않는다. 정직하고 진솔한 부모의 삶의 모습을 통하여 자녀들에 게 전달되고 습득된다. 성경은, 성선설(性善說)을 주장하는 일부교육학자 나 심리학자들과는 달리, 인간의 전적(全的)타락과 부패성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성인(成人)들에 비 하여 그 타락과 부패성이 비교적 덜하다고 할 수 있는 어린이일지라도, 그 본 성(本性)안에 내재하고 있는 인간의 죄성(罪性)은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말씀 을 통한 가정교육과 훈련, 어른들의 model됨을 통하여 생활 속에서 바르게 선 도 받지 않으면 안된다. 가치관의 혼란과 물질만능주의, 극도의 이기주의가 팽배한 현대 사회 속에 서,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성경적 인생관과 가치관을 자녀들이 배우지 못한 다면 무신론적, 인본주의적 현대문화의 탁류 속에 우리자녀들이 침몰할 수밖 에 없을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 부모들이 생활 속에서 자녀들의 모델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하여 지면관계로 몇 가지만 간단히 살펴보려 한다. 1. 성경말씀 크리스챤 부모는 성경을 알고 그 말씀대로 생활하는 모습 속에서 자녀의 모 델이 되어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창조주(創造主) 되심과 인간의 피조물된 신분, 하나님 경외의 필요성 우주만물의 기원과 역사의 진행, 우주만물의 종 말, 인간의 성공적이고 축복받는 삶의 비결 등 우주와 인생(人生)에 대한 모 든 것이 기록된 인생교과서이다.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 선생은, '교육이란 근 본적으로 기독교인이 되게 하는 것'(making Christian)이며, '성경진리를 자 기 자녀에게 가르칠 수 없는 사람은 부모가 될 수 없다라'는 준엄한 경고를 우리에게 하고 있다. 부모는 교회에서 예배와 설교, 성경공부를 통하여 성경을 알아야 함은 물 론, 가정에서도 계속 성경을 읽으며 그런 삶의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여 주어 야 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잠 1:7)이며, "내가 주의 법 을 어찌 그리 사랑 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 하나이다"(시 119:97)라 는 삶의 자세가 부모의 생활 속에 나타나야 한다. 2. 기도생활 또 다른 부모의 model됨은 기도생활이다. 생명체의 생명력(生命力)은 호흡 에 있으며 호흡이 멎으면 생명체는 죽는다. 기도는 하나님을 향한 크리스찬 의 영적 호흡이며, 기도를 통하여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사정을 하나님께 아뢰 고 그의 도우심과 능력을 간구해야 한다. 세상은 우리 힘으로 불가능한 일들 로 가득 차 있다. 특별히 우리 자녀들은 그들의 생활 공동체 속에서 무신론적 (無神論的), 인본주의적(人本主義的) 문화와 날마다 접하고 있으며, 예기치 못한 사건들이 언제 어떻게 발생할지 모르는 불안한 세상 속에 우리는 자녀들 을 내보내고 있다. 성경과 역사를 통하여 우리는 기도로 자녀를 기른 많은 부 모들을 만나게 되며, 그런 자녀들이 개인의 삶은 물론, 역사에 위대한 공헌 을 하였던 사실도 깨닫게 된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5:17)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우리자신과 우리 자녀들을 하나님께 맡기는 기도 없이 우리는 이 땅위에서 평안과 기쁨을 누릴 수 없다. 우리 자녀들은 부모의 이런 기도 모델 을 생활 속에서 보고 체험하면서 동일한 삶의 자세를 배우게 된다. 3. 감사의 생활 '범사에 감사하는 삶'(살전 5:18) 역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다. 사 람들은 일반적으로 '감사'란 예상치 않았던 좋은 일, 기대 이상의 어떤 결 과, 기쁘고 신나는 일, 남들의 축하와 경하를 받을만한 사건들이 우리 삶 속 에 발생했을 때 표현하는 긍정적인 반응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성경적인 감 사의 개념, 곧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감사는 다르 다. 하나님은 문자 그 대로 우리가 '범사에 감사'하기를 바라신다. 이 '범사'라는 단어 속에는, 기 쁘고 축복받은 좋은 일들을 위시하여, 예기치 않았던 불행이나 불의의 사고, 질병, 고통 등, 인생의 부정적인 많은 요소들이 포함될 수 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감사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상식과 논리로 해석이 불가능하지만, 성경은 상식과 논리를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말씀과 섭리로 가득 차 있다. 우 리는 한 치 앞길도 모르는 유한한 시각으로 목전의 현실에 연연하며 인생(人 生)을 살아가지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출생부터 호흡이 멎는 우 리 생애의 마지막 순간까지의 일생(一生)을 한 눈에 조망하시는 분이기 때문 에, 인간의 긍정적 부정적 모든 요소들이 합력하여 우리 생애에 선(善)을 이 루도록 섭리하신다(롬 8:28). 어렵고 힘든 현실 속에서도 항상 감사하며 긍정 적으로 살아가는 부모의 의연한 모습은, 인생의 제 문제에 감사와 긍정적 시 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성경적 인생관을 우리 자녀들에게 체득케 한다. 4. 검소한 생활 인간은 이 땅위에 빈손으로 왔지만 하나님은 햇빛, 공기, 물 등 자연 의 혜택 으로부터, 매일의 일용할 양식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신 다. 물질생활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드리는 십일조는 물론, 이웃과 더불어 나 누며 베푸는 사명도 함께 받았다. 최근 소비성향적 문화의 영향으로 사람들이 필요 이상의 과소비와 낭비 속에 서 자신과 가정은 물론 국가적인 파탄까지 불러오고 있다. 최근 Card 빚 때문 에 발생한 여성 살해 사건으로 우리는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으며, 일정한 소 득도, 갚을 능력도 없는 수많은 젊은이들의 무절제한 과소비는 또 다른 비극 을 암시하는 것 같아 전율을 느끼게 한다. 이 모두는 바른 물질생활과 물질관 리를 가르치지 못한 부모와 사회의 책임이라 할 수 있다. 절약과 절제를 모르 는 부모와 어른들의 과소비와 낭비는 자녀를 파멸로 이끄는 지름길이 된다. 교육국가로 세계에 알려져 있는 유대인들은, 어린이들이 글자를 터득하면 곧 바로 저금통장을 만들어 주어서 용돈을 은행에 예금하는 기쁨을 깨닫게 할 뿐 아니라, 매달 부모의 지도 아래 금전출납부를 쓰게 하여 어려서부터 금 전의 가치와 중요성, 적절한 물질사용법을 가르친다. 따라서 유대인 자 녀들 은 '메이커'니 '명품'등 분수에 맞지 않는 물건 등에 전혀 관심이 없음은 물 론, 금전은, 일차적으로 저축을 위하여 존재한다는 인식을 갖게 된다고 한다. 부모의 적절하고 검소한 물질관리와 사용은 자녀들의 일생에 산 교육으로 귀 중한 인생자산(人生資産)이 될 것이다. 5. 칭찬과 격려 인간은 남여노소, 인종에 상관없이 누구나 칭찬과 격려받기를 좋아하며, 자 신의 가치나 중요성을 인정해 주는 사람이나 공동체 속에서는 엄청난 능력과 잠재력(潛在力)을 나타내게된다. 인간발달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보통 사람은 일생(一生)동안 자신의 능력과 잠재력의 10%를, 천재는 20% 정도를 계발하며 산다고 한다. 이것은 저능아로 낙인찍힌 아인슈타인, 에 디슨, 피카소, 처칠 등 인류역사에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들의 어린시절을 살 펴보아도 알 수 있다. 저능아, 백치, 구제불능의 존재로 모두의 버림을 받았 어도 부모의 격려와 칭찬, 적극적 동기 부여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 쉽게 보이 지 않고 깊숙이 잠재된 그들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폭발적으로 분출케 하는 원 동력(原動力)이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세상에 보내실 때 누구에게나 그 개인 고유의 재능과 잠재력을 주셨다. 다만 그것들이 그 개인이 소속된 가정, 사회, 문화권 속에 서 쉽게 발견, 계발될 수 있는지 아닌지의 차이성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이 렇게 묻히고 감추어진 가능성과 재능은 특별히 가까이에서 함께 생활하는 부 모의 사랑과 관심속에서 발견되고 계발되어야 하며, 부모들은 믿음과 신뢰로 이 가능성을 끝까지 믿고 도와주는 격려자가 되어야 한다. 일년 내내, 언제, 어디서라도 자녀들은 부모의 사랑과 관심의 대상이지만, 특별히 가정의 달 5월에 다시 한번 성경적 자녀교육의 사명과 필연성, 부모 의 model됨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모든 크리스챤 부모님들에게, 그리고 그 귀 한 신앙의 유산을 물려받는 모든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이 함 께 하시기를 기원한다.
127 no image 창사 20주년 기념특집-장로의 세속화/이정석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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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8 2002-04-10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_special/ljs.hwp장로직의 세속화 이정석 박사/Fuller Theological Seminary 조직신학 교수 한국교회의 급성장과 부실한 교육제도는 자연히 자질이 부족한 목사와 장로 의 양산을 결과하였다. 흔히 목사의 저질화를 많이 비판하지만 장로의 저질화 도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과거에 장로는 고매한 신앙 인격을 소유하 여 교회와 사회의 존경을 받는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그런 장로들이 소수로 전락하였다. 급성장으로 인해 갑자기 많은 장로들이 필요하 였고 따라서 선출 절차나 교육 절차가 형식화되고 자질에 대한 기준도 격하되 었다. 이것이 불가피한 현실이기는 하였으나 그 결과 한국교회는 심각한 혼란 과 갈등에 직면하게 되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목사와 장로의 갈등으로 침체 혹은 감소의 상황을 맞 이하고 있다. 이러한 갈등의 책임은 양자에게 공히 있지만 목사의 협력자로 부름받은 장로가 목사의 견제자 혹은 대립자가 되면서 교회의 발전을 기대하 기 어려운 상황에 이른 것이다. 이런 지도자들의 갈등 상황에서 교회의 대다 수를 차지하고 있는 교인들은 무고한 피해자가 된다. 물론 모든 교회가 그런 것도 아니며 모든 장로가 그런 것도 아니지만 이것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가 된 데에는 성경적 원리보다 세속적 원 리가 장로의 선택과정과 자기 이해에 미친 영향을 간과할 수 없다. 한국교회 는 이를 심각하게 반성하고 성경적 원리로 돌아가야 교회라는 수레의 두 바퀴 인 목사와 장로가 나란히 한 마음이 되어 성령의 이끄심이 원활하고 힘차게 효력을 발생하게 될 것이다. 영수제도의 기원 선교사들이 초기 선교 과정에서 교회사에 나타나지 않는 영수라는 제도를 수 용하였다. 영수는 지교회의 대표격이었으며 사실상 장로의 역할을 감당하였 다. 그러나 영수들이 '안수받지 않은 장로'로서 장로들과 갈등을 빚게 되면 서 이 제도가 폐지되고 영수들이 대부분 장로가 되었다. 그러나 영수라는 호 칭은 교단에 따라 20세기 후반까지 사용되기도 하였으며 그보다 더 심각한 영 향은 영수 제도가 한국 장로 이해의 근간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영수(領袖)란 '우두머리'라는 뜻으로서 다분 히 세속적인 사고를 함축하고 있 는 용어이다. 물론 모든 영수가 이러한 자의식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한말의 유교적 사회 상황에서 이러한 직명의 채택이 자타에게 미친 무의식적 혹은 의 식적 영향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조 말의 한국 상황은 기존의 사회 제도가 여러모로 붕괴되고 새로운 사회 계층이 발생하였지만 사고 방식은 여전히 유교적이며 계급적이었다. 이런 상 황에서 기독교가 들어와 전국적인 조직을 형성하기 시작하였는데, 이 때 영수 가 지역 교회를 대표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영수들이 장로가 되면서 자연히 영수의 개념은 장로에게 전이되어 새로운 종교 계급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물론, 성경은 장로에게 존경을 가르치고 있지만 그것은 사랑의 표현이며 결 코 계급적 혹은 신분적 고려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의 유교적 사고 방식과 사회 구조는 장로를 계급화 하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상당수의 장 로들 자신도 그러한 사회적 구조에 적응하여 고자세를 취하는 병폐를 초래하 였다. 유교의 신분주의 기독교는 인간을 사회적 신분에 따라 차별하는 것을 죄악으로 규정하고 그리 스 도 안에서 만인의 평등을 가르치지만 유교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의 인생관에 따라 정치적 입신양명(立身揚名)을 추구한다. 그 결 과, 한국인에게는 신분이 중요하며 직함이 그 사람을 규정하게 되었다. 그래 서 그 사람의 인생을 한마디로 정리하는 묘비에도 직함을 쓴다. 심지어 벼슬 을 못한 사람은 늙어도 계속 과거를 치르기 위해 공부하고 있었다는 의미에 서 '학생'(學生)이라고 쓴다. 그리고 종들은 묘비도 없다. 아무리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할지라도 한국인들은 이러한 전통적 사고 방식 을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한다. 그 단적인 예가 호칭에서 나타난다. 한번 장로 가 되면 이름과 '장로'라는 직함은 불가분리의 관계가 되며 심지어 시무를 중 지한다든지 교회 밖에서도 장로가 호칭이 된다. 직분이 영원한 정체성이 되 는 것이다. 더욱이 장로를 '항존직'(恒存職)으로 보는 한국 장로교 전통과 결 합될 때 이러한 신분화가 정당시된다. 따라서, 장로교회의 모체가 된 개혁교회가 인격과 직분을 구별하여 직분자의 존경과 인정이 그의 인격 때문이 아니라 그의 사역 때문이라고 보는 교회 정 치적 원리나 거기에 근거하여 직분자의 임기제를 시행하는데 거부감을 가진 다. '감독이 있는 곳에 교회가 있다'는 감독중심적 교회관이나 장로중심적 교 회관은 차별 없이 '성도의 교제'(communio sanctorum)를 교회로 보는 사도신 경의 성도중심적 교회관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사도행전 15장 23절이 보여주는 대로, 목사나 장로도 모두 한 형제일 뿐이 다. 그러나, 상하구별과 신분주의가 깊이 뿌리 박힌 한국사회에서 장로직이 겸손히 수용되기란 쉽지 않다. 개혁교회를 비롯한 서구교회의 경우 유교 전통에 영향 받은 한국교회의 장로 호칭은 이해될 수 없는 관습이 아닐 수 없다. 미국교회에서 장로를 부를 때 는 성이 스미스일 경우 '스미쓰씨'(Mr. Smith)라고 부르지 '스미스 장로 님'(Elder Smith)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는 하나의 교인이며 그의 현재 직 분이 장로일 뿐이다. 따라서 그의 임기가 끝나서 평교인으로 돌아가면 그대 로 '스미스씨'라고 부르기 때문에 피차에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경우 장로라고 부르지 않고 서구와 같이 '아무 씨'라고 부 르게 되면 이는 큰 모욕이며 분노를 유발시키게 될 것이다. 그것은 장로와 자 기를 이미 일체화시켜 버렸기 때문에, 즉 장로가 그의 영원한 신분이라는 의 식이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다른 직분도 마찬가지다. 그 결과 한국교회는 세계교회에 유례 가 없는 직분 과잉 현상을 산출하고 있는 것이다. 서구교회에는 교회가 커도 장로 몇 명, 집사 몇 명이 있을 뿐이지만 한국교회는 전교인의 과반수에게 직 분을 남발하고 있다. 이와 같이 직분과 신분을 혼동하는 상황에서 장로야말 로 평신도가 올라갈 수 있는 최고의 신분으로 생각하여 장로가 되기 위해 여 러모로 노력하고 한번 장로가 되면 영원히 그 신분을 유지하려고 한다. 이러 한 유교적 신분주의 사고는 자연히 섬기려는 겸손한 자세보다는 지배하고 주 장하려는 자만한 태도를 가지도록 만든다. 자본주의의 영향 현대 한국사회는 모든 면에서 자본주의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성경이 장로의 자격을 규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디모데전서 3장 1- 7절에 기록된 감독의 자격을 차용하여 사용하는데, 거기에는 경제적 능력을 요구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돈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규정 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경제적 능력이 그 사람의 능력 지표로 인정되는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 에 있어서 장로에게 경제적 능력이 요구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물론 부자라고 해서 무조건 장로가 되는 것이 아니며 다른 요건들도 고려하지 만 오늘날과 같이 교회가 지나치리 만큼 거대한 예산을 집행하며 모두 교인 의 헌금에 의존해야 되는 상황에서 경제적 능력은 불가피한 조건으로 인식되 고 있다. 따라서, 대개 경제력을 갖춘 사람이 장로로 선출되며 경제적인 능력이 부족 한 장로는 특히 예산과 관련된 문제에 있어서 소외당하거나 스스로 침묵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향은 자연히 교회를 회사와 같이 생각하고 장로는 대주 주와 같은 책임과 권리를 행사하게 되며 무의식적으로 교회에 대한 '소유의 식'을 가지게 만든다. 따라서, 교회 재정을 사용하는데 간섭하고 조종하게 된 다. 이와 같이 과민한 재정 참여는 역시 무리하게 재정을 주관하려는 목사와 충돌하게 만드는 주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성경적으로, 헌금은 본래 집사가 관장하도록 되어 있 다. 초대교회의 헌금은 사랑을 실천하는 구제헌금이었으며 그 분배를 위해 집사제도가 출범하였다. 그리고 이런 집사의 재정관리와 분배는 교회사적으로 주된 전통이 되어 왔으 며 지금도 많은 서구교회들이 재정관리를 철저히 집사들에게 맡기고 목사나 장로는 이에 개입하지 않는다. 헌법에서 규정한 장로의 직무 어디에도 재정관리가 들어있지 않다. 단지 감리 교 헌법에서 '장로는 교회의 재정 유지에 힘쓴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것도 재정관리나 집행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물론 현대와 같이 교회의 재정이 복잡 하고 비대해진 상황에서 장로가 재정에 무관심해서는 안되지만, 장로가 지나 치게 교회재정에 민감하거나 간섭하는 것은 성경적으로나 교회법적으로 정당 화될 수 없으며 자본주의적 영향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젊은 장로의 출현 현대사회가 경제 중심적 사회로 전환되면서 어른을 존경하던 과거의 전통이 점차 사라지게 되었으며 교회의 지도력도 노년층에서 장년층 혹은 중년층으 로 낮아졌다. 이런 경제중심적 사고가 젊은 장로들의 출현을 부추긴 것이다. 20세기 후반 한국이 산업화되고 경제가 급성장 하면서 장로의 년령이 낮아지 기 시작하였다. 과거에 장로들은 연세가 많은 분들이었으나, 오늘날은 년령기 준이 30세까지 낮아지게 되었다. 물론 30대나 40대의 장로들이 활력적이고 적 극적인 면을 가지고 있으나 젊은 장로들의 출현은 성경적 원리보다 세속 정신 의 유입에 의한 것이라고 판단되며 따라서 많은 문제들이 교회 안에 발생하 게 되었다. 본래 장로란 구약의 '자켄'이든 신약의 '프레스뷔테로스'이든 모두 백발 의 '노인'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젊은 장로'란 말 자체가 자체 모순을 내포 하고 있는 말로 성립될 수 없다. 심지어 현대의 사회적 변화를 고려한다 할지 라도 30대의 장로란 성경적 의도와는 거리가 멀다. 젊은 장로의 출현은 여러 가지 문제들을 발생시켰다. 첫째, 사회가 경제적 생활력을 중심으로 노인을 무시하고 부담스러워하는 세 속적 풍조를 교회 안으로 끌어드리고 정당화하는 제도적 장치가 되었다. 교회 에서 노년층은 소외당하고 정상적으로 장로직을 감당할 수 있는 노년에 도달 한 장로는 은연중 퇴출 대상으로 인식되기 시작한다. 둘째, 젊은 장로의 출현은 동년 배 혹은 년상의 집사들을 실망시켜 교회 봉사 를 약화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특히 우리와 같이 계급적 신분주의가 강한 사회에서 50대 집사에게 30대 장로는 부담스럽고 자존심 상하는 존재일 수 있 다. 더욱이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젊은 장로들의 미숙성이다. 성경에서 노인을 장로로 임명한 것은 백발의 노인이 가지는 오랜 경륜에서 오는 심오한 지혜 와 온유한 덕성과 원숙한 신앙 때문일 것이다. 젊은 장로에게는 그런 것을 기 대하기 어렵다. 활력과 열심은 있으나 일반적으로 지혜가 부족하고 혈기가 많 으며 신앙이 미숙하다. 따라서 교인들을 덕스럽게 지도하고 돌볼 능력이 부족 할 수밖에 없다. 장로의 주요한 직무는 교인들을 돌보고 섬기는 것이다. '치리한다'든가 '감독 한다'든가, 또는 '다스린다'는 표현이 세속적 사고에서는 '지배한다(rule)' 혹은 심지어 '군림한다(dominate)'는 뜻으로 오해될 수 있지만 그 성경적 의 미는 오히려 '형편을 살핀다' '관심을 가진다' '돌보아 준다' 또는 '사랑으 로 이끌어준다'는 뜻이다. 장로는 목사가 교인들을 다 돌볼 수 없기 때문에 목사를 도와 교인들을 심방 하고 관심을 베풀며 대화하고 도와주는 봉사자들인 것이다. 그런 일을 하려 면 교인들보다 덕성이나 신앙에서 원숙해야 한다. 그뿐 아니라, 젊은 장로의 관심은 년령의 성격상 교인들을 돌보는 자상한 일보다 사업과 조직에 더 관심 을 가지게 되며, 따라서 장로 본연의 직무보다 교회 업무와 회의에 치중하게 된다. 더욱이, 젊은 장로는 아직 혈기가 강하고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에 단순 한 열심으로 목사나 다른 장로와 충돌하거나 과격하게 행동할 위험을 상대적 으로 더 많이 가지고 있다. 영광스러운 장로 그리스도의 구속이 완전히 실현되기 위하여 그의 몸된 교회는 성령의 도우심 을 따라 힘차게 발전해야 하는데 장로는 교회를 세우는데 있어서 중심적인 직 분이다. 따라서, 요한이 환상 중에 하늘에 갔을 때 하나님 보좌 주위에 24장 로의 보좌가 있음을 보았다: "또 보좌에 둘러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 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옷을 입고 머리에 금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계 4:4). 올바른 장로는 성도의 이상이며 교회의 기둥으로서 영광이 약속되어 있다. 장 로는 세속적인 지배자나 권력자와 달리 목사를 도와 덕과 사랑으로 교인들을 감화시키고 교회의 화평을 도모하며 형제들을 돌보고 세워나가는 교회의 겸손 하고 온유한 봉사자들로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고난과 수고를 자취하는 충성스럽고 헌신된 어른들이다. 따라서 성경과 교회사가 증거하는 대로 올바 른 장로의 몰락은 교회의 몰락을 결과하며 교인들에게 존경받는 덕스러운 장 로의 존재는 교회의 평화와 성장을 가져온다. 실로 장로가 그토록 교회에서 중요하기 때문에 장로의 순종 여부에 따라 교회 의 발전이 좌우된다. 예수님 당시 누구보다도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될 장로들 이 소위 '장로들의 유전(遺傳)'을 '하나님의 말씀'보다도 더 중시하여 그를 배척하고 십자가에 못박는데 앞장섰다. 장로들은 세속적 직업과 훈련을 받았 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보다 세속적 상식과 인간적 전통을 더 중시하기 쉽 다. 이를 극복하고 세상의 지혜가 아니라 하늘의 지혜를 추구하는 것이 올바 른 장로의 길이다. 장로의 세속화는 교회의 세속화를 반영한다. 따라서 여기 지적된 장로의 문제 는 대부분 목사나 다른 직분 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어느 시대나 어는 상황에서나 교회는 세속화의 위험에 직면해 있으며 세속적 영향을 막아내지 못하면 교회가 부패하고 퇴보하게 된다. 물론 교회는 새로운 시대에 창조적으 로 적응하며 발전해야 되지만 세속 정신에 복속해서는 안 된다. 교회는 항상 성경적 원리로 돌아가 자신을 세속적 영향에서 돌이키고 개혁해 나가는 노력 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126 no image 제언)희망이 없는 삶은 배고픔만 못하다-한하룡목사 (4)
rpress
1993 2002-03-28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_special/jacop.jpg희망이 없는 삶은 배고픔만 못하다 (Hunger for hope is worse than hunger for food) *한화룡은 강변교회 교육목사이며 천안대학교 기독신학대학원 선교학 전임강 사이다. 최근 저서로 4대 신화를 알면 북한이 보인다(IVP, 2000)가 있다. "제이콥의 거짓말." 2000년 가을 국내에서 개봉된 이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나치가 점령한 폴란드의 유태인 주거 제한 구역(게토)을 배경으로 하여 진행된다. 이곳에서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과 지독한 수용소 생활 에 지친 유태인들이 자살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수년동안 도대 체 전쟁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 수 없었던 유태인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었다. 제이콥의 거짓말 미국 할리우드에서 가장 재능이 풍부한 배우 중의 하나인 로빈 윌리엄스가 분 장한 주인공 제이콥 하임은 게토에서 팬 케잌 가 게를 운영하고 있지만 감자 가 없는 관계로 몇 해째 케잌을 굽지 못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제이콥은 외부 소식에 목말라하던 나머지 바람에 날리는 한 장의 신문을 쫓아가다 게토 를 벗어나게 되고 통금 시간이 임박하여 독일군 초소병에게 붙잡힌다. 그 결 과 제이콥은 독일군 본부로 끌려가게 되고, 그곳에서 처벌을 기다리다 우연 히 라디오를 통해 외부 소식 한 토막을 엿듣는다. 소련군이 400km 떨어진 베 자니카까지 진격해 왔다는 것이다. 운좋게도 처벌을 면한 제이콥은 다음날 자포자기 상태에 빠진 동료 미샤의 마 음을 붙잡기 위해 기쁜 소식을 귀뜸해 준다. 소련군이 진격해 오고 있다고. 하지만 성미가 급한 미샤의 입을 통해 삽시간에 소련군이 진격해오고 있다는 소식이 마을에 퍼져나간다. 제이콥이 라디오를 가지고 있다는 소문과 함 께.... 물론 유태인 주거 제한 구역에서 라디오를 소유한다는 것은 사형에 해당하는 중죄였다. 하지만 이 기쁜 소식이 전해진 후 마을은 활기를 되찾고 거짓말처 럼 자살하는 사람들이 없어진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계속해서 제이콥에게 전선에 관한 소식을 물어온다. 사실 은 라디오를 갖고 있지 않다는 제이콥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지만 결국에 가서 제이콥은 마을 사람들을 실망시 키지 않기 위해 매일같이 새로운 뉴스를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독일군의 패 배 소식, 미군의 참전 소식, 그리고 유명 연예인들의 위문 공연 소식까 지.... 제이콥은 심지어는 자신이 다락방에 숨겨둔 어린 소녀 리나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 거짓으로 BBC 방송을 하고 처칠 수상의 목소리를 흉내내기 까지 한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게쉬타포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제이콥은 제발 로 독일군 본부를 찾아가 모진 고문을 당한다. 그 때 제이콥이 라디오는 없으 며 자기가 모두 꾸며낸 것이라고 실토하나 진실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오히 려 독일군 장교는 제이콥에게 거짓말을 하면, 즉 라디오를 가지고 있지 않고 소련군의 진격 소식은 다 꾸며낸 것이라고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면 처형하지 않겠다고 꼬득인다. 드디어 광장에 유태인들이 모여들고 독일군 장교는 단에 선 제이콥을 다그친 다. 그러나 제이콥은 미소를 머금은 채 침묵으로 일관한다. 마치 자신이 실제 로 라디오를 갖고 있으며 소련군이 바 로 가까이까지 진격해 왔음을 암시하는 것처럼.... 결국 화가 난 독일군 장군은 권총을 꺼내들고 제이콥은 쓰러진 다. 그러나 게토 안의 모든 유태인들은 삶에 대한 희망과 자유에 대한 확신 가운데 절망을 딛고 일어서게 된다. 제자들의 참말 그렇다면 "제이콥의 거짓말"이 2002년 북한선교에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 까? "제이콥의 거짓말"에 비추어볼 때 오늘날 북한동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 은 무엇일까? 쌀, 분유, 의약품, 비료.... 물론 여전히 경제난에 허덕이는 북 한동포들에게 인도주의적 차원에서나 민족주의적 차원에서 구호물품을 보내 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북한동포들이 처한 상황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구호 물품을 보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극심해 진 식량난으로 현재 북한동포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고 절망의 깊은 바다 에 빠져 침몰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동포들이 존경하던 수령 김일성은 1994년 7월 사망했다. 쌀밥에 고깃국 을 먹고 기와집에 살게 해주겠다는 아직도 실현되지 못한 약속을 뒤에 남기 고.... 설상가상으로 1990년대 중반 이후 수백 만명이 비참하게 굶어죽었다. 또 그 아수라장 가운데서 북한동포들은 인간으로 감내하기 어려운 고통과 참 상들을 경험하고 목도했던 것이다. 부정과 불의, 사기와 협잡, 폭력과 강간, 살인과 식인 등등.... 게다가 1990 년대 후반 이래 지속된 외부 원조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경제난은 이렇다하게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북한 전역에 는 미신행위가 만연하고 있으며, 1990년대에 들어와서는 술풍이 심하게 불고 있다. 또 연좌제의 대상이기 때문에 보고되는 사례가 많지 않지만 실제로는 자살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같은 현상들은 현재의 고달 픈 생활고에다가 미래에 대한 희망마저 없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들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한국교회의 사명은 무엇일까? 그것은 현재의 고난과 고통을 참고 인내할 수 있도록 북한동포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리라. 북 한동포들이 헐벗고 굶주리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 남한동포들이 사실은 잘 살고 있으며, 오히려 진짜로 헐벗고 굶주리고 있는 북한동포들을 돕고자 노심 초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다. 한 편으 로 구호물품 지원을 통해, 다 른 한 편으로 대북방송을 통해 그런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현재 적지 않은 북한주민들이 외부 소식에 목말라하며 라디오에 귀를 기 울이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수십년동안 창살없는 감옥과도 같 은 폐쇄 체제 아래 생활고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북한주민들이 외 부 소식에 민감해 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더구나 구호물품과 함께 잦아진 외부인들의 방북행렬, 그리고 식량난으로 중국을 다녀온 수많은 사람들의 입 소문으로 말미암아 북한주민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 외부에 대해 의문과 호기심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이제 한국교회는 북한동포들에게 구호물품을 지원하는 일에만 신경을 쓸 것이 아니다. 그에 못지 않게 방송과 풍선, 중국 조선족들과 고향으로 되 돌아가는 탈북자들을 통해 북한동포들에게 외부 실상을 알리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희망의 메시지를 전파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일 때인 것이다. "제이콥의 거짓말"이 게토에 갇혀사는 유태인들의 자살을 멈추 게 할 수 있었다면, 예수님의 "제자들의 참말" 은 창살없는 감옥에 갇혀사는 북한동포들에 대해 얼마나 더 큰 역사를 이룰 수 있겠는가!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 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사 55:10-11).
125 no image 어느 개척 목회자의 부활 -전홍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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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 2002-03-28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_special/refbu.hwp어느 개척 목회자의 부활 전 홍구 목사(새출발교회) 교회 개척에 대하여 신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갖고 있었던 꿈을 잊어 본적 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신학생 시절에 "개척 목회는 절망과의 싸움"이라는 개 척 선배의 말도 직접 들었습니다. 그래서 교회 개척이란 겉으로 보여지는 것 이상의 쉽지 않는 그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라는 스쳐 지나가는 생각을 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이러한 꿈을 늘 잊지 않으면서 8년여 부교역자 생활을 끝으로 하나님의 강권 적인 인도하심 가운데 개척을 시작하였습니다. IMF 한파(寒波)의 영향도 있었 지만, 사역하던 교회를 사임한 다음날 현재 장소가 연결되어져서 만 4년 가까 이 개척목회 사역을 수종들고 있습니다. 선배들의 조언을 듣기 보다 내 몸이 앞섰고, 하나님 앞에 드리는 기도보다 젊 은 의욕이 앞서며 뭔가(?)를 보여주리라는 각오도 있었습니다. 땅을 사지 않 고, 수십억 짜리 예배당 건물을 짓기보다는 먼저 사람 성전(고전 3:16)을 짓 는데 투자하는 교 회를 세워가리라는 다짐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나름의 꿈 을 갖고 출항한 개척호. 그러나 막상 이론과 관망이 아닌 몸으로 마주친 개척 의 바다는 결코 만만치 않았습니다. 이야기 하나. 절대로 땅을 사지 않겠다던 치기(稚氣)어린 맹세는 개척을 시작 한지 불과 5-6개월만에 침수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감정평가사라며 낯선 사람 이 카메라를 들고 예배당과 방안 구석구석을 촬영해 가더니 1차 경매 통보가 날라 오고 2차, 3차 경매 통보로 몇 달에 걸쳐서 진행이 되었습니다. 교회와 사택을 포함하여 5천만원이 넘는 전세금을 모두 잃고 쫓겨나든지, 아니면 땅 을 사든지 하는 갈림길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1년이 넘도록 법원으로 땅 주인에게로 경매 신청자에게로 좇아 다녔지만 해결 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앞길이 보여지지 않는 암담함 가운데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쫓겨나리라는 마음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종적 인 마감 일자를 1주일여 남겨 두고 경기서노회 여러 선배 목사님들과 교회들 의 도움으로 개척 2년이 못되어 수천만원의 은행 채무는 있지만 지금의 예배 처소인 조그마한 땅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야기 둘. 신학 재학생 시절에 5년이 넘어도 개척교회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선배 목사님들을 보면서, 사람들이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만이 아시는 불성실 함과 게으름이 있을 것이라는 혼자만의 판단을 한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 는 저들과는 다르리라는 일종의 자신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1년, 2년, 3년이 지나면서 초라한 개척호는 잔 물결, 큰 물결에 일엽 편주(一葉片舟)인양 요동쳤습니다. 왔다가 가는 성도, 서로서로 부딪치면서 깨어지는 성도, 친 형제보다 더 반갑게 개방한 목회자 가정의 삶의 모습을 가 까이 접하면서 시험든 성도, 그리고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인간관계의 부대낌 속에서 기둥같이 여겼던 성도들의 너무나 쉬운 이동 등등이 거센 파도로 몰아 쳐 왔습니다. 3년이 지나 자립은 고사(固辭)하고, 몇 안 되는 성도나마 오히려 감소하는 형 편. 그리고 쉽게 만나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로부터 "성도들이 몇 명이 냐?"는 관심 표현을 받을 때마다 개척 목회자로서의 영적인 자존감과 사명에 대한 자긍심은 무력감으로 전이(轉移)되면서 분노의 감정으로 변하게 되었습 니다. 지난해 8월 어느 새 벽기도 시간. 아무도 오지 않는 예배실 강대상 의자에 엎 드려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잘못한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차라리 나 를 죽여 주십시오!" 낮아질 대로 낮아진 자존심과 완전하게 깨어져 버린 것 같은 목회적 야망(?)에 대한 좌절감은 불빛 하나없는 망망대해에서 표류하는 조각배와 같았고, 로뎀나무 아래에서 하나님께 죽기를 기도했던 엘리야의 심 정(왕상 19:4)과 같았습니다. 그 때에 들려진 하나님의 음성은 "네가 이제야 깨달았느냐!"라는 말씀이셨습 니다.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좇으라'(눅9:23)는 말씀을 개척 목 회 표어로 삼고서도 알지 못했던 것을 한 순간에 기억나게 하셨습니다. 새벽기도 시간에 순간적으로 깨달아진 말씀은 나의 목회적 야심과 교만과 자 만심과 어리석은 우월감에 대한 죽음을 선고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다 음 순간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이 느껴지며, 찬송이 회복되고, 오히려 개척 교회 목회자의 길로 인도하심에 대한 감사의 기도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성 도가 한 사람이든 두 사람이 되었든 하나님께서 지금 현재 맡겨 주시는 일에 최선을 다하자 ."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 2:47)라는 말씀의 위로 와 함께 옛사람이 죽고 새로운 목회적 방향으로의 부활을 체험하였습니다. 그 리고 몇 주일 후 개척이래 최대의 등록 사건(?)이 있었습니다. 근처의 3가정 의 초신자들이 함께 찾아와서 한 주일에 등록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7개월여 지금껏 2가정은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습니다. 어느 개척 목회자의 부활은 만경창파(萬頃蒼波) 거센 물결 속에 빠져가는 듯 한 완전한 좌절의 환경을 통과하면서도, 모든 것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도 록 하신 후에 깨닫게 하여 주신 하나님의 위대한 선물이셨습니다.
124 no image 부활절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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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70 2002-03-28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_special/buhis.hwp부활절 유래 부활절을 뜻하는 영어의 Easter는 'Eastre' 라는 이교도적인 이름을 고대 영 어에 맞추어 바꾼 말이다. 이는 튜튼족의 신 중 봄과 새벽의 여신의 이름이었 다. 이 여신의 축제는 해마다 춘분에 열렸다. 부활절의 원래 명칭은 유월절 을 뜻하는 히브리 말인 파스카(Pascha)였다. 주님의 고난과 부활이 유대인의 절기인 유월절과 같은 시기에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자연스러운 명칭이었다. 죽음과 부활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새로운 유윌절, 즉 죽음의 노예 상태로부 터의 해방을 이루었다는 뜻을 부여했다. Easter가 일반적인 명칭이 되기 전에 는 이날이 '주님의 부활절' 및 '부활의 유윌절(Paschal Day of the Resurrection)'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이는 유대인이었던 사도들과 개종자들이 그들의 옛 절기인 유월절에 대한 새 로운 기독교적인 의미를 부여해 보고자 하는 노력으로 부활절을 지켰기 때문 이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16장 6, 9절에서 그리스도를 가리켜 "유월절 양"이라고 한 것은 이러한 사 실을 잘 말해주는 말씀이다. 그런데 북부 유럽에서는 봄에 "이스트르(Eastre)"축제를 계속하고 있었다. 그 리스도인들은 바로 이 시기에 "파스카(Pascha)"를 경축하였다. 그 후 기독교 인들은 이 파스카 축제를 "이스터(Easter)"라고 부르게 되었다. 어떤 의미 로 '파스카'를 '이스터'라고 불렀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부 활, 봄, 빛의 영광됨이 의미상 일치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짐작만 있을 뿐이다. 파스카는 거룩한 주간으로 지켜졌다. 부활주일 전(前) 주일은 종려주일로 정 하고 주님의 승리의 입성을 기념하여 저녁 때 성도들이 감람산에 올라가 예배 를 드리고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행진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며 '호산 나'를 불렀다. 목요일에는 '성만찬‘과 금요일에는 ’성 금요일'을 생각하여 주님의 고난과 관련된 금식을 하였다. 그러므로 부활절 축제는 부활하신 그 날만의 축제가 아니라 사순절의 마지막 주간의 고난 주간과 연결되어 맞이하 는 것이기 때문에 고난과 부활의 연결을 자연스럽게 하여야 부활의 기쁨이 보 다 크게 체험되는 것이다. n"너희는 누룩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 의 누룩없는 떡으로 하자"(고전 5:7-8) 이 말은 신약 시대의 교회가 부활절 을 지켰음을 알려주는 예이다. 고대 유대인의 출애굽 기념은 예수그리스도에 와서 새롭게 완성되어 그 십자가를 지심으로 죄와 죽음에서 놓여난 새로운 의 미로써 말하여지게 되었다. 부활절은 기독교 축일 중 가장 오랜 것이며, 교회력에서 다른 축일의 근원이 된다. 그 주간의 첫 날에 예수가 죽은 자 중에서 살아나셨기 때문에 이것은 기독교의 사실과 헌신의 절정이었다. 따라서 매 주일이 '작은 부활절'로서 축 하되었다. 결국 부활이 매주간의 첫 날에 지켜졌기 때문에 예배일이 안식일 (토요일)에서 주일로 바꿔었다. 동방교회에서는 부활절이 교회력의 시작이 다. 고대교회는 8일, 즉 다음 주일까지 매일 부활절을 축하했다. 부활절에 세례받 는 사람들은 그 예배에 모두 참석해야 했다. 그들이 흰 세례복을 입 었기 때문 에 부활절 후 첫째 주일은 '백의 주일'이라고 일컬어 왔다. 원래 부활절은 부 활절에서 오순절까지가 한 절기였지만 나중에 부활절, 승천절, 오순절로 나누 어졌다. 현재 지키고 있는 부활절은 325년 니케야 종교회의에서 "부활의 날"을 정하 여 주일에 지키기로 하였다. 그러나 이 날은 일정하지 않았다. 그 후 제8세기 부터 3월 21일(춘분)이나 춘분 이후 만월(滿月) 첫 주일을 지키기로 하였으 며 만월이 주일이면 그 다음 주일로 부활의 날을 정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 원칙에 의해 부활주일은 3월 22일과 4월 25일 사이에 결정되는 것이다. 이 부활주일부터 40일째가 주님 승천하신 날이요, 50일째가 오순절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부활절이 항상 축일 중의 축일이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보다 더 중요한 사건은 없는 것이다. 그것의 우위성은 매주마다 부활이 축 하되어진다는 사실로써 잘 알 수 있으며 그 때문에 교회력의 각 주일이 축하 로 진행된다. 부활절의 중요성은 그것에 앞서 40일 간의 사순절이라는 준비기 간이 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다른 축일과 절기가 해마다 바뀌어지는 것 은 부활절의 날짜에 따라 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들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일으키신 하나님의 지상 행동에 근거한 부활절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 게 중요한 사건임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 부활절을 통하여 교회의 새로운 생기를 되찾을 수 있어야 한다.
123 no image 창사 20주년 기념특집-이슬람 선교에 대한 반성 및 전망/이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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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1 2002-03-13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_special/298lkh.hwp이슬람 선교에 대한 반성 및 전망 이광호(목사, 실로암교회) 지난 9. 11 미국 테러사건 이후로 이슬람에 대한 정보들이 일반인들에게 매 우 가까이 다가왔다. 많은 사람들이 이슬람에 대해 생소하게 여길 때도 교회 는 이전부터 이슬람 선교를 위해 다각적인 활동을 해왔다. 이러한 상황들을 접하며 이슬람 선교에 대한 반성 및 전망을 해 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 하겠다. 흔히들 이슬람 선교가 매우 어렵다고 한다. 이슬람 세계 가운데서 살고 있는 선교사들이 특별히 어려운 이유는 역사 가운데 있었던 상호 적대적 감정과 이 슬람이 기독교 이단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은 기독교의 진리를 모 방하고 있는 종교이다. 그러므로 성경에 나타나는 인물들이 코란에 대거 등장 하게 된다. 기독교에서 중요한 인물이라 인식되는 거의 대다수 사람들이 이슬 람에서도 매우 중요한 인물들이다. 아담, 노아, 아브라함, 모세, 다윗, 솔로 몬, 예수 등이 그렇다. 특히 예수는 이슬람에서 마호메트를 제외한다면 지금 도 여전히 가장 중요한 인물로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1. 기독교와 이슬람의 역사적 관계 AD 7세기 초반 이슬람이 등장하던 초기부터 이슬람은 유대교와 기독교 사이에 서 저항하는 종교가 된다. 당시 아라비아 반도에 있던 유대교 세력과 갈등을 빚게 되고 기독교에 대해서도 갈등관계에 놓이게 된다. 특히 632년 마호메트 가 사망하고 나서 이슬람 세력이 당시 동로마제국의 영토를 잠식해 들어갈 때 기독교는 사막으로부터 밀려드는 이슬람 세력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인식하 게 되었고, 이슬람의 입장에서는 기독교 영토를 정복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되 었다. 그러던 중 11세기 말에 일어난 십자군 운동은 기독교와 이슬람의 적대적 관계 에 대한 인식을 확대시키는 계기가 된다. 이슬람에 의해 성지를 빼앗긴 기독 교의 성지 탈환 운동이 곧 십자군 전쟁이다. 그 때는 이미 팔레스틴을 비롯 한 성지들은 이슬람의 땅이었다. 아브라함, 다윗, 솔로몬과 관계 있는 땅이 요 예수와 연관된 땅이 이슬람의 땅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슬람의 입장에 서 본다면, 그 땅은 악한 유대교와 기독교인들에 의해 유린을 당하다가 알라 의 은총을 힘입어 이슬람이 회복한 땅이다. 그런데 서구의 기독교인들이 십자 가를 앞세워 자기의 땅이라며 다시 침범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슬람의 입장 에서 볼 때 그것은 악한 서구 기독교 세력의 침략이었다. 이슬람의 입장에서는 서구의 십자군 운동을 알라의 은총으로 기독교 세력을 성공적으로 물리칠 수 있었다. 그 후 60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그 땅은 이 슬람의 성지로 인정되어 오던 터였다. 그러던 중 19세기 말이 되면 유대인들 의 시오니즘(Zionism) 운동이 일어나 다시 팔레스틴을 회복할 꿈을 키워가게 된다. 19세기 후반부터 활발하게 진행된 서구의 과학문명이 이슬람을 위협하 다가 급기야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당시 이슬람의 종주국 역할을 하던 오스 만 터키가 전쟁에 패망함으로써 팔레스틴을 서방의 기독교 세계에 넘겨주게 된다. 현대사 가운데서 이슬람의 짓밟힌 자존심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절정에 달한 다. 팔레스틴 지역에서 이스라엘이 독립하게 되고 뒤이어 이슬람의 성지 예루 살렘을 기독교 세력에 빼앗기게 된다. 이스라엘의 독립에는 기독교 국가인 영 국의 역할이 컸으며 이슬 람의 눈에 비치는 유대교는 기독교의 한 분파일 따름 이었다. 그들이 볼 때 역사 속에 잠복하고 있던 십자군 운동이 고개를 들면 서 급기야 팔레스틴에 이스라엘이 건국됨으로서 서구 기독교 세력의 교두보 가 마련된 것이다. 이 후 이슬람의 눈에 비쳐진 것은 신 십자군 운동이었던 것이다. 1991년 걸프전은 종교전쟁이었다. 적어도 이슬람의 숨겨진 시각은 그러하다. 당시 다국적군이라는 군대는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이스라엘 등 모두 기 독교 세력이었던 것이다. 정치가들이나 지도계층의 인물들은 다양한 목적에 따른 나름대로의 이해를 했겠지만 적어도 이슬람의 잠재된 사고들은 그러했 다. 다국적군이 기독교를 중심으로 뭉쳐진 군대가 아니었으나 그들의 눈에는 충분히 그렇게 비쳐질 수 있었던 것이다. 2. 이슬람선교에 있어서 교회의 반성 서구 기독교는 사실상 이슬람을 정치적 갈등 대상으로 생각지 않는다. 정치가 들이나 경제인들은 자기의 목적으로 인해 어떤 사고를 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기독교인들은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우리 가운데 아무도 그들의 땅 을 정복하는 것이나 경제적 우위를 점하 는 것을 목적으로 생각지 않는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적잖은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 시대에 들어와 성지순례는 보편화되었다. 오늘날은 해외여행이 어느 정 도 보편화되었지만 불과 수 십 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조차 어려웠다. 해외여 행의 보편화는 교통과 통신, 경제적인 여건이 현대적으로 발전한 후의 일인 것이다. 이는 비단 우리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라 서구인들에게도 마찬가 지이다. 불과 30여 년 전만 해도 일반 성도들은 이스라엘이나 소아시아 지역 을 방문한다는 것을 생각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시대에는 마음만 먹으면 누구 나 한번쯤 그 지역을 다녀올 수 있을 만큼 보편화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 다. 그런 만큼 이스라엘이나 소아시아 지역 등을 다녀오는 사람들의 수가 많 아졌다. 우리는 기독교 신앙인으로서 별 생각 없이 성지를 방문하지만 이슬람에서 볼 때는 그것이 기독교인들의 '탐심'에서 일어난 반응이다. 우리가 성지라고 하 는 지역들은 모두 이슬람과 이해 관계가 있는 땅이다. 실제로 기독교인들이 성지를 방문하는 것은 그 땅이 자기와 어떤 관련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물 r 론 그 땅은 성경에 나타난 지명들과 깊은 관련이 있다. 신앙을 가진 기독교인 들 가운데 그곳을 정복할 마음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지만 이슬람 의 입장에서 보아, 그 땅을 자신의 종교 혹은 자신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 는 기독교인들이 있다는 사실은 예사 문제가 아니며 거기에는 어떤 불순 한 '탐심'이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 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기독교인들의 구체적인 종교적 대응 방법이다. 1990년대 초반이래 많은 이슬람 선교단체들에서 '역라마단 운동'을 하고 있 다. 해마다 11월 중순부터 한 달 간 이어지는 모슬렘의 금식기간에 맞추어 기 독교에서는 특별 기도회를 계획하고 있다. 역라마단 운동이라 일컬어지는 이 기도회 안내책자는 35개 이상의 언어로 출간되고 있으며 2천 만 명 이상의 교 인들이 이 기도 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필자는 우리 시대에 들어와 시작된 역라마단 운동은 심각하게 반성해야 할 부 분이라 여긴다. 다수의 이슬람 관련 선교단체들과 이슬람 선교 관심자들이 그 일을 먼저 시작했다. 이슬람의 라마단은 그들 의 생각에 성스러운 금식의 달인데 기독교인들은 그와 때를 같이 하여 이슬람을 위한 특별기도를 하며 도 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의도가 나쁘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런 식으로 기도 하는 동안, 그들은 우리를 적으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속된 말로 맞불지피기 처럼 오해될 소지가 다분히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불교의 사월 초파일날에 맞추어 기독교에서 불교도들을 위한 대대적 기도회를 하는 것과 흡사하다. 이는 종교적 마찰을 야기할 우려가 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되 나팔을 불며 광고를 하는 가운데 떠들썩하게 하지는 말아야 한다. 우리의 그러한 자세가 그들의 마음 문을 닫을 수 있음 을 생각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가 자기들을 위해 기도하는 줄도 모 르는 사이 우리가 진정으로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면 어쩌면 그들 가운데 감격해 하는 자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3. 이슬람에서 생각하는 기독교와 우리의 자세 기독교인인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모슬렘들 중 다수는 기독교 에 대해 상당한 오해 를 하고 있다. 그들은 서구인과 기독교를 동일한 개념으 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기독교 문화란 곧 서구 문화를 일컫는 것이다. 그들의 사고에는 서구인은 기독교, 동양인은 불교라 는 식이다. 모슬렘들 중 다수는 기독교인들을 상종해서는 안될 악한 자들로 여기는 경향이 짙다. 물론 그들은 그 속내를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원래 동 양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라 면전에서 면박을 주거나 당황하게 만들지는 않지만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 한국사람처럼 동양인이 기독교인이라면 어떻게 동양인이 기독교인일 수 있느냐고 생각하는 자들이 많다. 그들의 생각에는 얼굴이 희고 코가 큰 노랑 머리를 가진 사람이 기독교인이지 동양인은 원래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생각하 는 것이다. 이는 마치 우리나라의 옛날 사람들이 선교사라 하면 서양인을 생 각했던 것과도 같다. 얼굴 피부가 새까만 아프리카 사람이나 동남아시아의 가 난한 나라에서 온 사람이 선교사라 하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과 도 흡사하다. 극단적인 이슬람 지성인들은 동양의 기독교인들은 서양 기독교 세력의 용병이 n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세계정치와 경제력을 장악하고 있는 서양 기독교인들 에게 돈을 받거나 정신적인 어떤 영향을 받고 기독교인이 된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우리는 이슬람에 대해 좀 더 겸허한 자세를 가져야 할 것 같다. 이슬람 세계 에 복음을 선포하려면 그들 앞에서 종교적 정복자의 모습을 가져서는 안 된 다. 그들로 하여금 우리가 믿는 종교인으로 바꾸려는 듯한 자세를 보여서는 곤란하다. 우리는 단지 그들의 좋은 이웃이 되어줄 수 있을 따름이다. 우리 가 그들의 좋은 이웃이 되었을 때 그들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진리에 관심을 가지고 물어올지도 모른다. 4. 마무리 세계는 지금 인간이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형태의 전투적 정황가 운데 놓여있다. 직접 전투에 참여하지 않는다 해도 온 세계가 그러한 분위기 기에 휩싸여 있는 것이다. 우리는 정치적으로 문화적으로 이슬람의 우위에 있 기를 원하지 않는다. 나아가 경제적 과시를 할 것도 아니다. 우리가 관심을 가지는 대상은 하나님의 진리를 알지 못한 채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는 이슬람 의 사람들이다. 우리의 목적은 그들을 서구의 종 교를 가지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아닐 것이 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그들의 눈과 귀가 열리기를 바랄 따름이다. 우리 가 목적하는 바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에게 전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들의 경계 심을 덜어주어야 한다. 그들이 우리를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는 한 그들의 좋 은 이웃이 될 수 없다. 지난 해 미국이 테러를 당한 이후부터 시작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세력 과 지상에서 가장 강력한 이슬람 원리주의를 추구하던 아프가니스탄의 탈레 반 정부를 바라보는 범 이슬람 세력 사이에는 이미 종교적 갈등이 야기되었 다. 그것을 종교적 갈등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쉽 게 그렇게 단정할 수 없다. 일반적인 측면에서 보기에는 그렇게 인식될 수도 있다. 일본이나 한국 같은 나라는 서양인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편 에 서 있다. 물론 테러 세력을 응징한다는 훌륭한 명분이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이슬람의 시각에는 단순히 그렇게 비쳐지지 않을 수 있다는데 문제 가 있다. 원리주의 이슬람 국가인 아프가니스탄을 적극적으로 응징하고자 하 는 국가들은 대개 기독교 국가들이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호주 등은 이슬람에서 보기에 한결같이 서구 기독교 세력들인 것이다. 그들이 보기에는, 미국이 주도하는 서구 기독교주의는 인간들을 세속화시키는 데 앞장서고 있으며 인간을 타락시키고 있다. 강력한 살상 무기들을 대량생산 할 뿐 아니라 더러운 모든 서구의 영화산업은 미국이 주도하고 있다. 성생활 이 문란하고 윤리도 도덕도 없는 나라이다. 그렇지만 그들에게는 돈이 있고 힘이 있으니, 자존심이 상해도 할 수 없이 참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그들 의 생각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기독교란 그런 종교이다. 그들에게 가서 '기독 교를 믿으라' 든지 '나는 기독교인이다' 라고 이야기하면 그들의 머리에는 부 정적인 것들만 떠오를 따름인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이슬람 선교인데 더욱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될 우리 는 이제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여기서 결론적으로 유념해야 할 것 몇 가지 를 정리해 볼 수 있다. 우선, 그들이 오해할 수 있는 어떠한 공격적 자세도 버려야 한다. 역라마단 운동 등을 통한 기독교적 대응을 알면 그들은 즉시 저 항적 자세를 취하게 될 것이다. 다음으로, 서구와 기독 교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그들이 자연스럽게 알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의 무분별한 서구적 복식 이나 행동양식은 잘 점검되어야 한다. 그리고, 자국의 정치적, 경제적 위상 은 아무런 자랑거리도 아니다. 그들 앞에서 한국의 위상이나 부는 전혀 자랑 스러워 할 것이 못된다. 이슬람 지역에 퍼져있는 한국산 자동차나 제품들을 보고 자부심을 가지는 것은 결단코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다. 우리는 그러한 것을 보고 도리어 겸허한 자세를 취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들의 문화를 우러나는 마음으로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 문화 적 우월주의는 복음전파의 길을 가로막을 따름이다. 그들의 문화를 통해 우리 가 배우려는 자세가 있음을 그들로 하여금 알게 해 주는 것은 많은 신뢰를 얻 게 할 것이다. 지금까지도 이슬람 선교는 매우 어려웠다. 앞으로는 더욱 힘 들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기를 원한다.
122 no image 창사 20주년 기념특집-시편과 예배찬송/김영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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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2 2002-02-27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_special/297kyj.hwp시편과 예배찬송 김영재(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예배에서 시편 찬송을 불러야 한다는 글이 기독교개혁신보에 두 번이나 실린 것을 보고 예배와 찬송에 관심을 가진 사람으로서 필자의 견해를 말씀드리고 자 합니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찬송가]에 시편 찬송이 그렇게 많지 못한 것은 유감입 니다. 더 많이 수렴되기를 바랍니다. 예배 시간에는 시편 찬송이나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은총에 감사하며 경배하는 내용의 찬송을 드려 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시편을 가사로 한 찬송만이 올바른 경배 찬송이라 고 생각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1) 예배에서 찬송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말씀에 대한 우리의 응답입니 다 기독교의 예배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부분과 주시는 은혜에 응답하 는 부분으로 구성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부분은 말씀, 즉 성경 봉독 및 설교이며 우리가 응답하는 부분은 찬송과 기도입니다. 시나 동요에 곡을 붙이면 노래가 됩니다. 감사하고 찬양하며 간구하는 기도 의 시에 곡을 붙이면 찬송이 됩니다. 우리가 진심에서 울어나는 감사와 찬양 을 노래하면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찬송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의 은혜, 즉 하나님의 말씀에 응답할 때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인 구약의 시편 으로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칼빈이 시편으로만 찬송하기를 좋아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네덜란드의 일부 보수적인 개혁파 교회 가운데서는 예배에서 시편만을 찬송하는 교회가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개혁주의 교회가 그것을 모델로 하여 따르는 것은 아 닙니다. 칼빈은 시편만을 찬송함으로써 찬송가 발전에 나름대로 기여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찬송하는 일을 두고는 칼빈은 오르겐 반주도 마다하고 초 기에는 화성으로 부르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하나같이 개혁운동이 일어나자 예배 개혁에 착수했습니다. 그 중 중요한 것이 성경봉독과 설교를 회중이 알아들을 수 있는 모국어로 하 는 것과 온 회중이 이해하는 말로 함께 찬송하는 것이었습니다. 칼빈이 비음 악적이라는 오해를 받을 정도로 오르간도 없이 찬송을 단음으로만 부르도록 한 것은 예배의 명료성을 위해서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배에서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찬송하는 일이 방해받지 않아야 한다는 취지에서 취한 조치였습 니다. 2) 시편 찬송을 우리의 가락으로도 부를 수 있습니다 시편 찬송만을 옳은 찬송으로 보는 이들은 시편 곡도 구약 시대의 성도들이 부르던 곡을 되살렸으면 하고 희망합니다. 그래야 더 순수한 시편 찬송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져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 생각 하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은 다니엘서의 한 부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히브리어로 쓰였습니다. 언어는 문화의 산물이고 문화의 한 부분입니다. 음악도 역시 그렇습니다. 히 브리어가 특별하고 거룩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히브리어로 쓰인 것은 아닙니 다. 단지 하나님께서 히브리 백성을, 즉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하 셨으므로 그들의 언어로 말씀을 주시고 기록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신약은 헬 레니즘 문화권에 살던 일반 대중들이 사용하는 코이네 헬라어로 쓰였습니다. 코이네 헬라어는 고전 헬라어에 비하여 격조가 낮은 말이었습니다. 성 경은 일찍부터 다른 나라말로 번역되었습니다. 다른 말로 번역된 성경 말 씀 역시 하나님의 말씀임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중세에는 로마 카톨릭교회가 라틴어 번역만 인정하고 유럽의 나라말로 번역하는 것을 금했습니다. 종교개 혁자들은 이런 이상하고 편협한 고집에 반대하여 성경을 자기들 나라말로 번 역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오늘 우리말로 된 성경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위 클리프 번역자들은 지구상에 사는 각 부족들이 자기들의 말로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성경 번역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쓰인 구약을 번역할 수 있다면, 아니 이제는 우리의 주제인 시편 을 다른 말로 옮겨 쓸 수 있다면, 구약 시대의 히브리인들이 거기에 붙여 부 르던 곡 역시 다른 나라말들을 낳은 문화와 같은 산물인 음악으로 옮겨 부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언어는 그 언어권 밖에 있는 사람에게는 소통이 되 지 않으나 음악은 그렇지 않고 소통이 됩니다. 그 점에서 언어와 음악에는 차 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민족을 따라 음악이 띠는 정서가 다릅니다. 음악에는 국경이 없습니 다. 그러나 각 문화의 특색은 지니는 것입니다. 영국 과 독일에 얼마간 살아 본 사람은 양국의 찬송곡이 다름을 느낌으로 알 수 있습니다. 시대를 따라 문 화가 변하고 언어도 변합니다. 그래서 이미 번역된 성경을 새로 번역할 필요 성이 생기는 것입니다. 설교자는 세속에 사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로 설교합 니다. 교회 음악 역시 세속 음악과 교류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가운데서 발전해 왔습니다. 그러므로 시편을 구태여 구약 시대의 히브리인들이 부르던 곡으로 부르는 것 이 가장 이상적인 양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시편을 중세 사람들은 그 들에게 익숙한 가락으로 불렀습니다. 칼빈은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스트라스부 르크와 제네바 교회에서 부를 시편 찬송을 위하여 프랑스인 루이 부르좌 (Louys Bourgeois)로 하여금 작곡하도록 했습니다. 강약의 박자를 가진 서양 음악은 강약의 대조가 뚜렷한 거센 엑센트를 가진 서양말과 잘 어울립니다. 우리말에는 엑센트가 없고 높고 낮은 어조가 있을 뿐입니다. 중국어나 일본어도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동양과 서양의 음악이 언 어에 걸맞게 발전되어 온 것입니다. 물론 언어뿐 아니고 미술과 사상이랑 어 우러져 발전해 왔습니다. 그러므로 서양 사람들이 시편을 자기네들 특유의 가 락으로 불러 왔듯이, 우리는 우리말로 쓰인 시편을 우리의 가락으로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시편을 위한 곡으로 쓰일 수 있는 우리의 가락이 어떤 것이냐고 의문할 수 있 습니다. 그것을 찾거나 짓는 것은 음악하는 성도들의 몫입니다. 이를테면 서 정적인 김소월의 시에 유행가 곡을 붙여 부른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소월의 시의 분위기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거룩한 시편은 거기에 걸맞은 곡을 요청하므로 우리 성도들이 보다 감동적으로 부를 수 있 는 좋은 시편찬송이 많이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우리 것을 고집하려는 폐쇄적 인 생각에서가 아니고 우리 것도 시편찬송의 목록에 올려 서로 나눔으로써 시 편찬송이 더 풍성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3) 예배에서 우리는 시편보다 더 많은 노래로 찬송해야 합니다 그러나 예배에서 시편으로 찬송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시편이 구약시대의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에 대한 단순한 응답의 찬 송일 뿐 아니고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습니다. 시편에는 하나님께서 지 으신 만물로 인하여 창조주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만물을 다스리시는 은총을 노래하는 찬양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과 성도의 감사와 기쁨을 노래하는 시가 있으며, 사죄와 긍휼과 자비를 빌며 구원을 호소하는 기도도 있습니다. 그밖에도 하나님을 찬송하는 주제와 내용이 풍성하게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시편은 구약 성도들이 부른 찬송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 이스라엘이 된 신약 시대의 성도들은 구약의 시편을 물 론 우리의 찬송으로 노래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족하게 여길 수는 없습니 다. 구약 시대의 사람들은 막연한 가운데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기를 멀리 서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들이 믿고 바라던 것이 성취된 새 언약 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신약 시대에 사는 성도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되신 일, 그 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삼위일체 하나님이심이 계시된 사실, 그 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죄 사함을 주시는 구속의 은혜, 오순절 성령 강림 과 더불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출범하게 된 일, 하나님의 백성 아니던 민 족들이 복음을 듣 고 구원에 참여하게 된 감격과 기쁨, 구약의 백성들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던 선교의 사명과 특권 등으로 인하여 성삼위 하나님께 감사하 며 영광을 돌리는 찬양을 덤으로 부르기 마련입니다. 우리에게는 구약 시대 의 성도보다 하나님을 찬양할 제목이 더 풍성합니다. 그러므로 시편 찬송만이 옳은 찬송이라거나 시편 찬송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 써 구약 시대의 성도들보다 더 큰 기적과 더 크신 하나님의 은총을 경험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찬송의 내용과 제목들을 제한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감격을 찬송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열정을 위축시키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구약의 시편은 오랜 세월에 걸쳐 성도들이 불렀던 찬송의 모음집입니다. 초 대 교회 시대에 주로 구약의 시편을 불렀을 것이라는 사실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이유는 없습니다. 신약 시대의 찬송도 세월이 흘러서 비로소 풍성해 질 수 있는 것이었기에 말입니다. 말씀이 빈곤했던 중세 시대에 찬송만은 풍 성했기를 기대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종교개혁 이후 17세기에 경건 한 삶을 추구한 성도들, 18세기와 19세기에 부흥을 경 험하고 중생과 새로워지 는 삶을 경험한 수많은 성도들이 그들의 신앙을 간증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를 쓰고 찬송을 작곡함으로써 신약 시대의 찬송이 비로소 풍성해진 것입니 다. 교리의 역사는 신약 시대의 교회가 성경을 이해하는 일을 두고 발전을 거듭 해 온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에 대한 응답인 찬송도 말씀에 대한 이해의 발전과 함께 그 만큼 더 풍성해질 수가 있었습니다. 현재 여러 교회에서 부르 는 복음송 가운데는 비신학적인 가사도 있고 세속적인 티를 탈피하지 못한 곡 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 그런 것이 아니므로 무조건 모두 다 타부시하는 것 은 옳지 않은 일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복음송 등 건전한 노래들도 있습 니다. 이런 노래들 가운데서 앞으로 예배 시에 찬송가로 부를 수 있는 것들 이 조만간 선별될 수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시편 찬송만을 고집하거나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그리스도의 교회가 이미 향 유하고 있는 귀한 유산을 별로 가치가 없는 것으로 치부하게 만들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의 찬송은 날이 갈수록 더욱 풍성해져야 합니다. 예수 그리 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격하여 경건한 시를 쓰고 작곡을 하는 성령에 충만한 성도들이 많이 일어나기를 기원합니다.
121 no image 목회사역의 즐거운 내조자 되길../김성렬 사모 (4)
rpress
2038 2002-02-06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_special/samo.hwp 목회사역의 즐거운 내조자 되길.. 김성렬 사모/ 대동교회 할렐루야~! 금요 심야 기도회를 마치고 새벽을 기다리는 늦은 시간! 지금쯤 모두 고요히 잠들어 계실 뭇 사모님들의 그리운 얼굴들을 떠올리면서 합신 총회 농어촌부 주최로 열린 제 9회 전국 목회자 사모 세미나에서 그동안 전국 각처에서 오 신 여러 사모님들과 함께 동거 동락 하였던 3박 4일간의 즐겁고 은혜로 왔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이 글을 씁니다. 먼저 아무 보잘 것 없는 부족한 사모이지만 그래도 목사의 아내라고 해서 귀 한 자리를 만들어 은혜 받게 하시고, 섬김 받게 하시고, 위로 받게 하여 주심 에 대해 마음 깊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일에 수종들기보다는 걸림 돌이 된 적이 더 많은 나를 그래도 신분이 사모이기에 황송한 마음으로 큰 사 랑과 은혜 듬뿍 받을 수 있도록 재충전의 좋은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또한 총회 농어촌부와 여러 임원진께 감사의 마음 가득합니다. 특별히 그 많은 사모님 모두에게 충분한 서비스를 제공하여 주신 은평 교회 목사님을 비롯한 당회, 그리고 봉사하신 모든 교우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 니다. 성도님들의 가정까지 모두 제공하여 마음 편히 쉬실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와 모든 분야의 도우미들! 아낌없는 풍성한 간식 거리와 식사 제공 또한 찜질방 서비스까지! 아무튼 모든 사모님들께서는 사랑에 빚진 마음으로 오직 할 수 있는 건 축복의 기도뿐이기에 모든 것 잘 감당하신 은평교회가 더욱 부 흥 발전하여 모든 면에 더욱더 풍성하여지기를 간구하였을 것입니다. 아마 앞 으로도 은혜 받은 생각이 날 적마다 은평교회의 아름다운 섬김의 모습을 떠올 리면서 은평교회에 하나님의 크신 복이 풍성하게 임하시기를 간구 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세미나 시간시간 은혜로웠고 사모로서 필요 적절한 말씀으로 도전 받게 해주 셔서 참으로 유익된 시간이었습니다. 노회별 찬양의 시간은 마치 천사들의 찬 양인 듯 모든 사모님들의 표정도 한결 같이 밝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모습 이 너무도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기도와 설교, 봉사는 천국에 가면 더 이 상 필요가 없겠지만 아마도 찬양은 천국에서도 영원토록 계속되어질 것이기 에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은 항상 아름답고 은혜스러운 것 같습 니다. 두 분 사모님의 간증 또한 마음에 와 닿았고 많은 도전이 되었습니다. 농촌에 서 많은 자녀를 낳고 기르고 지금 또한 복중에 7번째를 가진 몸으로도 시간시 간 아이들을 챙기면서 늘 밝은 웃음을 잃지 않던 수더분한 이재순 사모님의 인상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같은 여자로서 연민의 정을 느끼면서 한편으론 마음 아프기도 하고 우리 9남매를 키우셨던 어머님 생각이 나기도 하여 자꾸 만 눈물이 났습니다. 고생이 훨씬 더 많았던 그 시절에는 이런 사모님들의 모 임조차 없었으니 이 시대의 우리는 그래도 누가 뭐래도 참으로 행복한 것 같 습니다. 또한, 전도에 특별한 집착과 애착을 가지신 윤두경 사모님의 전도에 대한 뜨 거운 열정에 도전 받았습니다. "조금이라도 흉내내 보리라!"는 다짐을 하고 저녁 늦은 시간이지만 둘째 아들 학부모의 소개로 가까운 동네에 고시원을 운 영하는 친구 분을 찾아갔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허심탄회하게 몇 마디 주고 받는 가운데 삭막한 분위기의 고시원에 내부 인테리어를 하고 그림도 좀 걸었 으면 좋겠다는 말을 듣고 제 그림을 보여드리면서 원하시면 드리겠노라고 하 니 아주 만족해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엔 교회엔 관심 없다고 하더니 자신의 어머님께서 권사님이신 것과 과거 에 교회에 다닌 적이 있다고 고백하여 전도하기가 훨씬 쉬워짐을 느꼈습니 다. 어떤 관계이든 관계성을 가지는 것이 참으로 중요함을 느꼈습니다. 그동안 사실 전도는 해도 안 되는 것 같아 힘을 잃은 상태였지만 다시 도전 을 받아 내일도 선교 유치원 선생님과 2시에, 그리고 집사님과 5시에 전도 약 속을 하였습니다. 전도가 되든 안되든 힘을 잃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되어지기 를 간구하면서........ 모든 어렵고 힘든 십자가는 주님께서 이미 다 이루어 놓으신 것이기에 우린 쉽고 가벼운 것, 주님께서 원하시는 전도에만 힘쓰면 되겠기에 "사모 수련 회"에서 받은 바 은혜를 다시 생각하면서 실천에 힘쓰고자 합니다. 그동안 함께 지냈던 모든 그리운 사모님들의 얼굴들을 떠 올리며 각자의 목양 지에서 뭇 성도님들과 함께 하나님과 늘 동행하시는 즐거운 목회 사역의 내조 자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하 며 이 새벽 주님의 이름으로 안녕을 고합니다. "모든 사모님들, 주 안에서 늘 기쁨으로 승리하며 살게 하소서~!" "아멘~!" Love in Christ~!
120 no image 창사 20주년 기념특집-개혁 교회 역사에 있어서 시편송/배현주 강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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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2 2002-02-06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_special/bhj.hwp개혁 교회의 역사에 있어서 시편송의 위치 배현주 강도사/ 소식교회 역사적 개혁 교회가 예배시(禮拜時)에 찬송의 규범으로 삼았던 시편송 (Psalter)을 부르는 정신을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시대 교회에서는 찾아보기 가 상당하게 어렵게 되었다. 오늘날 다양하게 변해 버린 교파(敎派) 교회적 (敎會的) 현실 속에서 우리 장로 교회는 역사적 개혁 교회의 유산에 대한 심 중한 숙고를 간과(pass over)하고 시대에 발 맞추어 가기에 급급하고있다. 이런 시대적 상황 속에서 오히려 역사적으로 개혁 교회가 찬송(Hymnal)의 규 범으로 삼고 노래하였던 '시편송'을 부르는 그 정신을 살피는 것은 시대가 바 뀌어도 바뀔 수 없는 진리가 있음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대에 맞는 예배의 찬송을 늘 고민하고 연구하여 갈 때, 개혁 교회를 지향하는 교회 들은 역사적인 개혁 교회의 유산들을 좀더 심도 있게 살펴야할 것이다. 그 중에서 역사적 개혁 교회가 즐겨 불렀던 '시편송' 에 대한 논의(論議)를 하 는 것은 급변하는 시대에 변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진리를 소유하고 있는 자(者)로서 교회가 예배의 찬송으로서 사려 해야할 중요한 사안이다. I. 초대 교회에 있어서 '시편송'의 역사적 위치 새 언약 아래에서 교회가 주일에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의 은혜로 교회가 받 은 진리를 드러내며 하나님을 온전히 찬송하고자 사도와 선지자들이 의하여 서 제정되어 새 언약 아래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성 삼위일체 하나님께 드리 는 영적 제사 이다. 언약의 경륜은 바뀌었지만 그 언약의 백성들에게 말씀하 시는 성 삼위일체 하나님은 변하시지 아니하신다. 그러므로 새 언약 아래에 서 예배는 제사와는 다른 방식으로 바뀌었지만 그 정신이 사라진 것이 아니 고 여전히 사도와 선지자들의 가르침을 따라 구약을 계승하고 구약의 제사를 온전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주일 예배에 하나님께 드려지는 찬송은 아주 중요한 가치와 의의를 가 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예배의 방식에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찬송 을 부르는 방식에 대하여서 생각해보는 것은 매우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교회의 기 초 시기라고 할 수 있는 초대 교회가 불렀을 찬송이 무엇인가를 살 피는 것은 아주 중요하리라 생각된다. 역사적으로 초대 교회의 음악이 무엇인 지 알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는 거의 없다. 즉 남아있는 초대 교회 시대의 자 료로서 주후 1세기에서 주후 3세기까지의 음악의 악보라든가 음악에 관련된 자료는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주후 5세기쯤에 신학자 보에티우스가 교 회의 음악에 대해 언급한 것이 가장 최고(最古)의 교회 음악 자료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러 역사적 문헌을 통하여서 알게되는 것은 주후 3세기까지는 '시편 송' 만을 부르는 것이 교회의 전통으로 되어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후 4 세기 이후 교회가 로마 제국에 흡수되어 국교화가 진행되면서 점차적으로 교 회의 순수성을 상실하고 교회의 예배가 세속화되었고 그 이후로는 점차적으 로 '시편송'을 부르는 전통이 사라진 것으로 아려졌다. 그리고 주후 7세기쯤 에 오면 교회 음악이 점차적으로 세속화되어서 비록 그 음악성에 있어서 고 대 교회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할지라도 '시편송'을 부르는 정신은 희미 하여지고 사라지기 시작했 다. 결국 '시편송'을 부르는 정신이 사라지자 교회는 점차적으로 그 '시편송'을 부르기에 합당한 곡조와 가락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것이 중세 교회의 음악 의 역사이다. 주후 11세기가 되면 당대의 유럽 세속 음악가들에 의해 불렸 던 '관능적이고 부패한 음악들'이 교회의 음악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런 대 표적인 음악은 프랑스의 세속 음악가들의 음악인 투르바두르와 투르베르이 다. 이 음악들은 12세기와 13세기를 거쳐서 로마 교회의 중요한 미사곡으로 들어오게 되고 교회의 음악은 중세가 되면서 더욱 심각하게 부패하게된다. 그 렇게 부패하게된 교회의 음악은 르네상스 시기가 되면서 '아르스 노바'라고 하는 새로운 음악 정신에 의해 교회 음악과 세속 음악이 전반적으로 혼합되 어 버린다. II. 개혁 교회에 있어서 시편송의 역사적 위치 종교 개혁 이후 많은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그런 로마 교회의 종교 음악을 거 부하고 초대 교회의 전통에 기초한 새로운 교회 음악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 것은 초대 교회가 전통으로 삼고 불렀던 '시편송'을 다시 부르는 것이었다. 이 결실은 요 한 칼빈과 그가 목회한 제네바 교회에서 보게 되었다. 그것이 바 로 칼빈의 제네바 교회가 편찬한 제네바 시편가이다(Geneva Psalter). 이 제 네바 시편가는 후대에 여러 판을 거듭하면서 개혁 교회 안에서 중요한 찬송가 로 사용되었다. 비록 다른 개혁 교회들인 영국이나 스코틀랜드 그리고 미국에 서도 자체적인 '시편가'를 편찬하여서 불렀을지라도 '제네바 시편가'는 개혁 교회의 '시편가'의 역사(歷史)에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우리가 사 용하는 찬송가 1장이 바로 '제네바 시편가'의 가락으로 부르는 찬송이다. '제네바 시편가'의 정신은 후에 스코틀랜드에서도 자체적인 시편가를 편찬하 게 하였고 현재 스코틀랜드의 장로 교회의 음악 정신으로 여전히 보존되고 있 다. 미국에서는 순수한 장로 교회 시대에까지 시편송을 사용했다. 그러나 시 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후대에 시편송을 다른 찬송과 대체하여 부르기 시 작했다. 시편송에 다른 가사를 첨부하거나 시편송의 가사를 전부 삭제하고 개인적인 신앙의 체험으로 찬송을 지어서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노래들은 후대 가 되면서 새로운 찬송가 편집에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 대표적인 인 물이 아이삭 왓츠이다. 이 사람은 18세기에 일어난 '유니테리언' 운동의 영향 으로 '전적 타락' 교리를 신봉하는 칼빈주의를 거부하였다. 그는 '제네바 시 편가'를 나름대로 작사하여 불렀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실험적인 가락을 넣어 서 흥겹게 찬송을 부르기도 하였다. 이런 정신이 후대 미국 교회에 전해져서 찬송의 본래 정신인 장엄미와 엄숙함 과 거룩함과 정결함은 사라지고 조잡하며 조급하고 어수선한 노래들로 점차적 으로 교회 음악이 채워지기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시편송의 부패의 역사는 후대에 무디와 그의 전도 팀의 일원이었던 생 키가 불렀던 복음송가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오늘날 우리 찬송가에 담 겨있는 생키의 복음송가는 하나님의 교회에서 주일 예배에 부르기에 적합하 지 않은 노래들이다. III. 시편송에 대한 성경적 근거 주후 1세기에 사도들은 그들의 가르침을 따라 교회에 시편송을 부르도록 하였 다. 그것을 성경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그 대표적인 구절은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 보낸 서신에서 찾 아 볼 수있다. 사도 바울은 신자들의 생활에 대하여서 권면하면서 신자들에게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 라'(엡 5:19)고 권고하고 있다. 여기에서 '시'는 곧 시편(Psalter)을 의미하 는 것이다. 그리고 '찬미'는 초대 교회 시대에 '의식을 위하여서 불렀던 노 래'(The Liturgical Song)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은 '예배에 합당한 노 래'(The Song for the Worship)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신령한 노래'란 세속적인 가락으로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시편 송'을 부르기에 합당한 가락으로 부르는 노래를 의미한다. 사도 시대로 소급 하면 '신령한 노래'란 그 당시에 회당에서 불렀던 '시편가'를 의미하는 것으 로 어느 정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당시의 여러 노래들 즉 세 속적인 노래들과 구별되는 교회의 예배에서 불렀던 신령한 노래가 있었음을 시사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시편'을 가사로 하는 예배에 합당한 신령한 노래 라고 할 수 있다. 결론 베토벤은 그의 저서에서 '노래 는 사상을 표현하는 가장 좋은 도구'라고 하였 다. 예배를 드릴 때에 하나님을 찬송하는 노래를 가장 부패한 세속적인 사상 을 표현하는 가락을 넣어서 자기의 개인적인 신앙의 체험을 가사로 삼고 부른 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예배에 부적절한 노래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이것은 유대 땅에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직전 예루살렘 성전에서 많은 유대인들이 제 사 제도를 더렵혔던 죄악과 같은 것이다.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찬송은 가장 좋은 표본으로서 '시편'을 가지고 하나 님을 찬송하기에 가장 합당한 '가락'으로 '거룩하고 아름다우며 경건하고 엄 숙하고 장엄하게' 불러야 하는 것이라고 사려된다.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예배는 바로 그의 진리를 따라 성령 안에서 드려지 는 예배이다(요 4:24). 진리와 성령은 불가분리적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는 이 시대에서도 '성령과 진리 안에서 예배 드리는 자'를 찾으신다. 참으로 '성령'이 충만한 예배는 '진리'가 충만한 예배여야 하며 '진리'가 충 만한 예배가 '성령'이 충만한 예배인 것이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신자 n들의 예배를 역사(役事)하시는 것은 오직 '성부와 성자로부터 받은 진리 안에 서' 일뿐이다. '진리'를 떠난 예배는 더 이상 예배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잔치'일 뿐 이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만을 따라 가고자 하는 것이 개혁주의 신학의 가장 핵심적인 사상이다. 이것을 요한 칼빈은 '적정과 절도의 원리(Regula modestae et sobrietatis)'라고 하여서 그의 '성경 해석'과 그의 '생활의 실 천 원리'로 삼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개혁 교회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증거하지 않는 것은 행하지 않 으려고 하는 강한 정신을 가져야 한다. 오늘날 교회들이 춤추고 교제하는 교 회가 되어 가는 것은 하나님을 거부하고 우리만의 '놀이'를 하고 싶은 우리 의 부패성의 표현일 뿐이다. 이러한 시대 상황 속에서 '시편송'은 다시 회복되어야 할 교회 예배 음악의 중요한 내용이며 예배가 합당하게 드려지는 중요한 방식이다. 예배에서 합당 한 찬송을 폐기하고 하나님께 자의적으로 예배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공로를 만홀히 여기는 것이다.' 예배에 있어서 말씀의 선포와 찬송은 예배의 본질을 구성하는 것이다. 그 중 에서 교회가 찬송을 부를 때에 '시편가'를 부르는 것은 찬송의 본질을 구성하 는 것이다. 왜냐하면 '시편가'를 부르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 는 '찬송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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