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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no image 창사 20주년 기념특집-신사참배와 회개/이수만 선교사
rpress
2481 2002-01-23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_special/lsooma.hwp창사 20년 기념 특집-한국 교회 갱신을 위한 제언 한민족의 발전을 위한 제언 (신사참배의 죄악을 교계와 총회가 회개해야할 필요에 대하여) 이수만 목사 (선교사) 최근 몇 년 동안 우리나라가 경험한 경제난과 민족통일 위한 정부 와 민간의 노력들을 보면서 누구나 많은 점들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한마디 로 우리 인간의 노력으로는 남북 통일이나 경제 회복 및 발전이 잘 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이를 보면서 한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하나님은 우리 민족의 역사와 현 상태를 어떻게 보실까? 특히 오늘 의 상황에 직접 연관되는 지난 백년 동안 이 땅의 역사를 하나님은 어떻게 보 고 계실까? 흔히들 역사(history)는 하나님의 이야기(His story)란 말을 한 다.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는 하나님과는 상관없는 인간들의 이야기로 이해되 지만 우리가 성경, 특히 구약에서 배우는 역사는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시고 다스리시는 이야기이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주재하시는 역사진행의 원리를 한 민 족의 역사에 적용하여 그 역사를 해석하는 작업은 그다지 시도되지 않았 다. 신학자와 목회자는 역사학자가 아니고 대학의 역사학자는 신학자가 아니 기 때문인가? 이 글에서는 단순한 적용과 해석을 시도하고자 한다. 핵심 주제는 우리 민족과 교회의 역사청산 또는 과거청산의 문제이 다. 지난해에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이 과연 누가 민족의 정론지로서의 지위 를 가지느냐? 하는 문제로 이념 논쟁을 한 적이 있다. 조선일보는 80년 가량 민족의 정론지 역할을 했다고 주장하고 이에 대해 한겨레신문은 일제시대 삼 사십년대에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친일 행각을 자행했으며 그후 이에 대한 자성이 없었다고 공박하고 있다. 이같은 언론 논쟁과 정치권의 친일파 청산 의 미완 문제는 논외로 놔두고, 우리 기독교계가 다루어야 할 가장 큰 과거청 산 문제는 일제시대의 신사참배이다. 1938년 9월 평양에서 조선예수교장로회 27차 총회에서의 신사참배 가결은 그 절정이었고 그후 해방 때까지 7년 동안 교회를 포함하여 우리 민족 전체가 일 본 태양신을 숭배한데 대하여 민족 전체가 한번도 통회자복한 적이 없다. 우 리 민족은 이스라엘처 럼 민족 전체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은 아니니 민 족 전체는 그렇다 하더라도 교회가 죄의식을 갖지 않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운 일이다. 개인적으로 회개한 경우는 많으나 노회, 총회 등 공회가 한 마음으로 통회자복한 경우는 거의 없다. 우리 합신 총회는 "바른 신학, 바른 교회, 바른 생활"을 개혁이념 으로 삼고 있다. "바른 신학"은 바른 교회와 바른 생활의 바탕이 된다 하겠 다. 바른 신학은 다소 추상적인 개념인데 그 내용이 무어냐를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종교개혁자 칼빈이 드러낸 개혁신학이 바른 신학이다 하는 등 여 러 면으로 설명될 수 있겠으나, 가장 기본적으로 두 가지로 요약될 수도 있 을 것이다. (1)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인간의 구속주이심을 고백하는 신앙 과, (2) 십계명 준수 신앙. 우리 민족은 지난 수천년간 우상숭배를 해오다가 구한말 이후 상당 수가 성경말씀을 받고 예수를 믿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일제의 통치로 인해 예수 대신 일본 천황이 민족 전체 앞에 최고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천황숭배 는 그들이 조상신으로 섬기는 태양여신 아마데라스 오미가미를 숭배하는 것 r 을 의미했다. 우리 민족은 극히 일부 기독신자 외에는 모두 이 태양여신 앞 에 고개를 숙였다. 이미 아는 대로 장로교, 감리교, 구세군 등 개신교단들이 30년대 말부터 총회적으로 굴종하였다. 그리고 한국교회의 다수는 지금까지 이 문제에 대해 침묵해왔다. 해방이 되었으나 민족은 남북으로 나뉘어 서로 경쟁하고 싸우는 상 태가 되었다. 육이오 사변을 통해 민족이 서로 쳐서 수백만명이 죽고 다쳤 다. 전쟁은 멈추었으나 아직도 서로를 주적으로 삼고 경계하는 비극이 계속되 고 있다. 칠천만 민족 중에 평화통일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금강산, 백두산에 여행가보고 싶지 않은 남한 사람이 어디 있으며, 제주도 여행가보고 싶지 않은 북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어쩌다 한번씩 서 로 만나면 온 나라가 눈물바다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분단 상태는 계 속되고 있으며 모든 비극은 아직도 진행되고 있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이것은 한민족의 태양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보 는 것이 자연스러운 해석이다. 이스라엘의 남북분단이 솔로몬왕의 우상숭배 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던 것처럼 대 한민국의 남북분단 또한 하나님의 심 판으로 볼 수 있다. 해방 후 5년간의 집행유예 기간이 있었으나 그 때 한국교 회는 신사참배 문제로 서로 다투기만 하고 심지어 일부 회개를 주장하는 이들 을 쫓아내 버렸다(이것이 고신 교단의 기원이다). 서울이 수복되고 전쟁이 그 쳤지만 원래의 분단상태로 환원되었을 뿐 얻은 것은 하나도 없다. 하나님께 서 통일시키고자 하셨다면 육이오 동란 때 이미 통일되었을 것이다. 지난 50 년 동안 하나님은 한국교회가 신사참배 회개를 하는지 안 하는지 지켜보고 계 신 것이다. 신사참배는 십계명 제1-2계명을 근본적으로 거역하는 행위이다. 우 리 교단이 바른 신학을 추구한다고 할 때 우리 선조가 저지른 이 무서운 우상 숭배를, 신사에 가서 절한 것 만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예배시간에도 자행했 는데 이를 회개하지 않고 바른 신학이 가능한지 한 번 깊이 생각해볼 일이 다. 우선 우리 교단부터 이 문제를 깊이 돌이켜보는 마음을 가짐이 옳을 것이 다. 이스라엘의 멸망에는 태양숭배가 주축이 되었음을 우리는 성경에 서 배울 수 있다 - 북왕국: 열왕기하 17:16, 남왕국: 열왕기하 21:3, 23 :4,5,11, 에스겔 8:16. 북왕국이 망한지 135년만에 남왕국도 완전히 망하였 다. 북한은 지금 식량마저 부족한 비참한 나라가 되었다. 남한도 북한처럼 세 계에 나가 구걸하는 처지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 IMF 경제 위기를 통해 입증 되었다. 통일도 우리의 노력이나 분위기 조성만으로는 안됨을 지난 몇 년간 의 경험을 통해 터득하고 있다. 통일된다 하더라도 세계 최빈국의 하나로 전 락하거나, 자유가 제한된 나라로서 된다면 통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통일이나 경제회복과 직접 관련짓지 않더라도, 즉 평화통일도 되 고 경제가 회복되더라도 신사참배의 범죄는 여전히 우리 민족과 교회가 하나 님 앞에 지고있는 죄짐이다. 독일교회가 나찌에 의한 국가적 범죄를 깊이 회 개하고 지금도 겸손한 모습을 보이듯, 남아공의 교회가 인종차별한 과거를 회 개하듯, 미국 남부의 교회들이 140년전 흑인노예제도를 옹호한 죄악을 깊이 회개하고 화해운동을 벌이고 있듯, 한국교회는 교단적으로, 총회적으로, 범교 단적으로 깊은 회개운동을 벌일 수는 없을까? 신사참배에 대한 철저한 회개야말로 한국교회가 민족 앞에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 최선의 섬김이 될 것이다. 주리고 있는 북한 동포 위해 닫 힌 하늘의 축복문을 여는 행위가 될 것이며, 평화 통일 위한 가장 진지한 화 목제가 될 것이다. 가뭄을 해소하기 위해 물을 실어나르는 수고도 인정되지 만, 흡족한 비가 내리는 것과 비교될 수 있겠는가? 비는 하나님의 축복이다. 우리 합신 교단의 총회가 총회회기 중에 하나님 앞에 엄숙히 27차 총회의 신 사참배 가결과 그후 교회의 우상숭배 행위를 깊이 뉘우치고 용서를 구한다 면, "바다에서 사람의 손만한 작은 구름이"(열왕기상 18:44) 일어날 것이라 기대된다. 또한 우리 총회의 회개운동은 다른 교단으로 전해질 것으로 예상된 다. 그래서 "하늘이 캄캄하여지며 큰비가 내리는지라"(45절)는 축복이 우리 민족과 교회 위에 내리길 간절히 사모한다. 그 "큰비" 속에 평화통일과 경제 회복은 물론이고 민족복음화와 세계선교의 축복이 있을 것으로 소망 중에 믿 는다. 과연 우리 총회는 그와 같은 결단을 할 수 있을 것인가?
118 no image ‘사모들의 병원’ 사모 세미나-최남선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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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9 2002-01-23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_special/cns.hwp‘사모들의 병원’ 사모 세미나 최남선(사모·안성 기좌리 교회) 해마다 이 때가 되면 쉼과 양식이 있고 어머니 품속 같은 사모 세미나가 그리 워진다. “새롭게 하소서!(고후 5:17)”라는 주제가 정말 나를 새롭게 할 것 같았고, 세미나 장소가 은혜와 평강이 넘치는 은평교회라서 더욱 나의 마음 을 재촉했다. 하나님께서 세미나 기간 동안 포근한 날씨를 주심을 감사한다. 더구나 메마른 대지엔 단비를 주시고 우리의 메마른 심령에는 성령의 단비로 마음속까지 스며들게 하심을 감사드린다. 사모세미나 진행부나 은평교회의 헌 신적인 섬김을 통해 예수님의 섬김을 보았으며 나도 지체를 이렇게 섬겨야겠 다는 마음이 들었다. 지면을 빌어 감사드린다. 내적 치유와 가정사역, 중보기 도, 저녁부흥회, 성가경연대회, 간증, 전도강의 등 다양하고 재미있고 유익 한 프로그램이었으면서 모두가 조화롭고 통일성이 있어 이 모임 중에 함께 하 시는 성령님을 체험할 수 있었다. 힘들고 지쳐 낙망하고 넘어져 일어날 힘이 전혀 없어 하나님을 향해 원망과 불평의 눈물을 흘릴 때에 “사랑하는 내 딸아 네게 임한 환경을 인하여 슬퍼 하거나 불행해 하지 말고 먹구름 너머있는 찬란한 빛으로 계신 주님으로 인하 여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내게 임한 모든 여건과 환 경은 나를 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훈련장임을 알고 겸허히 받아들이고 인내로 경주하며 감사함으로 살수 있는 힘을 얻었다(롬 8:28). 내적치유(박병은 집사님)강의에서는 나의 존재를 알게되었다. 내가 예수를 25 년 믿어서 기대할 만한 인격으로 성숙하고 자란 존재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 도가 아니면 한순간도 도저히 소망이 없고 고멜과 같은 비천한 존재임을 알았 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내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이 심히 큰 것이 주께 있고 내게 있지 않 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 4:70).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로 강 하고”(딤후2:1). 이와 같은 말씀들이 다시 내게 은혜가 되고 힘이 되었다. 문득 이런 기도가 지금 나온다. “주님 나를 고쳐서 또 다른 힘들고 지친 영 혼들에게 고침 의 근거를 알려주고 섬길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우리가 남편 들에게, 바라고 요구하는 배필로서가 아니라 돕는 배필로 남편을 불쌍히 여기 며 심령과 가정과 교회가 라마 나욧같이(삼상19:18-24) 하나님이 온전히 통치 하여 어떤 악한 심령이라도 와서 회개하고 돌이키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심령 이 되게 하여 지기를 기도합니다.” 폐회 예배 때 장상래 목사님의 “우리는 말과 같이 달릴 자이며 저 창일한 요 단을 넘을 자이지, 보행자와 씨름할 자가 아니다”(렘 12:1-6)라는 말씀은 만 루 홈런 같은 통쾌함과 힘을 주었다. 그 설교 말씀으로 돌아오는 발 걸음이 더욱 가벼웠고 주님이 져 주신 짐 때문에 어깨가 편안했다. 병든 영혼을 3박 4일 동안 치료하시고 새 피조물로 거듭나게 한 사모들의 병원 사모세미나였 다. 샬롬!
117 no image 3박 4일의 특별한 만남-이미애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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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 2002-01-23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 _special/lma.hwp3박 4일의 특별한 만남 이미애(사모·우포교회) 지식과 정보의 홍수속에 ‘세미나’라는 용어가 왠지 식상하게 느껴졌던 이유 가 무엇일까? 흔해빠진 세미나, 어떤 요령이나 가르치는 시간이 아니길 기도 하는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감사하게도 그러한 염려는 출발전부터 이미 사라 져 버렸다. 시찰장 목사님을 비롯한 여러 목사님들의 배웅(?)은 대통령의 외 국방문 환송 모습보다 더욱 성대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모들만의 여행은 또 다른 멋이 있어서인지 서울까지의 여행은 새롭게만 느껴졌다. 3박 4일의 일정이 시작되었다. 사랑과 화합을 외치며 행함이 따르지 못했던 세상이 교단 통합이라는 열매로 맛볼 수 있는 아름다운 시간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시작된 것이다. 준비된 모든 세미나의 내용이 한 분의 강의처럼 흐트 러짐 없이 일관성 있게 나의 마음에 와 닿았다. 그리고 영혼사랑에 대한 열정 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금번 사모 세미나를 통해서 경험한 은혜는 나의 안일함과 무감각을 치유하는 놀 라운 기회였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나의 반응에 문제가 있었음을 깨닫 게 되었다. 감각없는 신앙을 경계하며 살았지만 나도 모르게 무디어져 있었 던 것이다. ‘사모’라는 자리에 안주하려는 안일함이 나의 영적인 감각을 빼 앗아 갔는지도 모르겠다. 감각이 살아있다고 생각했는데 새롭게 하시는 하나 님의 충만한 은혜가 나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했다. 이제 산들바람에도 살랑살랑 흔들리는 갈대처럼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에도 예 민하게 반응하며 살기를 소원해본다. 그리고 사랑하는 남편의 따뜻한 손길에 감격하는 아내이기를 소원해본다. 또한 성도들의 작은 배려에도 몸둘바 몰라 하는 사모이기를 소원해본다. 준비된 말씀과 섬기시는 모든 분들의 손길이 따뜻한 봄기운처럼 느껴졌다. 은 평교회와 담임목사님 사모님을 비롯한 모든 교우들의 세심한 배려는 화려한 수 백송이 장미꽃보다 더욱 아름다웠고 나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사모세미나를 준비해주신 총회와 농어촌부 담당 목사님들의 애쓰심에 깊은 감 사의 마음을 올리며 하나님 사랑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했다.
116 no image 새 역사 창조하는 교단 되길-예종탁 목사(합동 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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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3 2002-01-09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_special/294yjt.hwp새 역사 창조하는 교단 되길 예종탁 목사/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총회장 지난 한 해는 미국의 테러사건으로 인해 온 세계가 불안 공포 속에서 지냈지 만 이제 새로운 희망을 품고 21세기에 들어와서 두 번째 해를 맞이하게 됩니 다. 금년에는 국가적으로는 월드컵 축구대회를 치러야 하고 대통령 선거도 있 습니다. 각계 각층이 모든 분야에서 획기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 있는 분위기 이기도 합니다. 새해에는 좀더 새로워지는 한 해가 되기를 바라며 합신 교단 이 한국 교회의 모범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첫째,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이 좀더 개혁적이어야 하겠습니다. 지 난 날의 발자취를 답습하는 구태의연한 자세에서 탈피하여 좀더 새롭고 올바 른 것을 추구함으로서 지 교회와 교단 그리고 우리나라가 새로운 모습으로 변 화되어야 하겠습니다. 둘째, 새해에는 불우한 이웃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줄 수 있는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한국 교회가 과거에는 민족 앞에 부정적인 모습 을 보여 주었지만 이제는 좀더 아름답고 선하고 의로운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이 민족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한 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셋째, 새해에는 우리 한국교회가 단합된 모습을 이 민족과 세계교회 앞에 보 여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난 12월 17일 한국교회의 주요 교단장들이 모여 서 교단장 협의회를 구성했습니다만 새해에는 명실상부한 교단연합기구가 창 립되기를 기대합니다. 특히 우리 교단은 신학적으로나 기구와 조직이 각각 다 른 교단의 정체성을 인정하면서도 선교와 연합사업과 사회적인 문제나 정부 를 상대로 해서 어떤 중대한 일을 할 때는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한국교회 를 대표할 수 있는 교단연합기구를 만드는 일을 선도적으로 참여하려고 합니 다. 이 일에 합신 교단이 선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넷째, 새해에는 열심히 전도하여 교회의 본연의 사명을 다하며 보다 많은 유 능한 선교사가 온 세계에 나가서 선교 활동을 잘하게 함으로서 이제 우리 한 국 교회가 세계를 향하여 웅비하는 기상을 하나님 앞에 보여드려야 하겠습니 다. 끝으로 새해에는 화목해야 하겠습니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 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 4:12)고 했습 니다. 안으로 화목해야 밖에 나가서 큰 일을 효과적으로 잘 감당할 수 있습니 다. 교회가 화목하고 교회 지도자들이 화목하고 우리 민족이 화합함으로서 새 해에는 새 역사를 창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합신 교단의 진취적인 발전을 기대하며 한국 교회의 개혁을 위해 서로 협조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기독교개혁신보 독자들에게도 하나님의 은혜 가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115 no image 역사 흐름의 주체 되길-전요한 목사
rpress
2131 2002-01-09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_special/johan.hwp 역사 흐름의 주체 되길 전요한 목사/ 고양제일교회 21세기 새 천년의 초입구에서 서게 되는 2002년 새해를 맞이하는 한국교회와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교회가 다 함께 하나님의 음성을 귀담아 들을 수 있는 한 해가 된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신령한 귀를 열고 주의 음성을 들 어 봅시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 4:3). 에덴동산의 아담의 역사는 분열의 역사였으나 골고다의 예수님의 십자가의 역 사는 하나 되게 하는 통일의 역사였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리 요 신앙생활의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고 구원받은 성 도나 교회는 반드시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가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 성령 안 에서 통일됨을 주님의 명령과 교훈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특히 주님의 재림이 가까워 오는 이 말세지말에 교회는 성령이 하나 되게 하 신 것을 힘써 지키라 하신 주 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 우리의 교회 생활과 신 앙인격에 적용시켜야 할 것입니다. 이 통일의 역사는 새 역사 흐름의 주류가 되며 시대적 요청이며, 이 역사를 보수신앙을 지향하는 우리 교단의 소망으로 삼는다면 화목의 십자가를 지신 주님이 기뻐하실 것으로 믿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 전야에 하나님께 소원기도를 올리실 때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다 하나 되게 하심을 기도하셨습니다. 이와같 이 성령 안에서 하나 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신 목적이며 예정되 고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이며 때가 찬 경륜입니다(엡 1:9-10).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통일의 역사는 교회 사역의 우선 과제이며 이것 을 신앙생활의 핵심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교회의 부흥발전에 원동력 으로 삼고 사분오열하며 물고 뜯고 싸우는 혼란한 이 세상을 향해 외치는 복 음의 목소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성령 안에서 통일을 완전히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이바지하는 새 시대의 새 교회, 새 천년의 새 교단, 하나님 보시기에 새 사람으로 완전해지는 성도 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성령 안에 서 하나님과 사람이 하나가 되고 성령 안 에서 사람과 사람이 하나가 되며 성령 안에서 만물이 하나 되는 곳에 그리스 도의 천국이 임하실 것입니다.
114 no image 돌다리도 두드리며...-박진우 장로(본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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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2002-01-09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_special/294pjw.hwp돌다리도 두드리며... 박진우 장로/ 본사 사장 새해가 밝았습니다. 우리는 다시 격변의 시대를 어떻게 살 것인지 설계하는 때를 맞이했습니다. 작년에도 각 분야에 깜짝 놀랄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지 금까지의 상황을 볼 때 올해도 그 변화는 더욱 가속 될 것으로 보입니다. 우 체국의 연하장은 줄어들고 신년인사는 이메일로 넘어가고 있고 중국집 자장 면 배달속도는 오토바이에 의해 번개같이 빨라지고 있습니다. 무담보 무보증 즉시 대출이 인기이며 인터넷 전화도 한방에 해결되야 하는 시대가 되고 있습 니다. 이제 컴퓨터시대에 '빨리'는 그 폭도 각 분야로 넓어져 가고 있고 모든 부분 에 즉각 응답 아니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시대가 됐습니다. 정부도 개인 도 '짧은 시간 더 큰 효과'의 방식 때문에 시행착오가 계속되어도 멈추지 못 하며 컨베이어 벨트같이 세상이 달리니까 나도 달리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오늘의 세태입니다. 이제 우리는 여기서 잠깐 멈추어서 돌다리도 두드리며 깊 이 생각하는 삶을 찾을 때가 됐습니다. 얼마 전에 목사님의 건망증 얘기를 재미있게 들은 일이 있습니다. 아파트의 다른 층집을 자기 집으로 잘못 알고 거실까지 들어갔다가 나왔다는 얘기라든 지 신분증을 갖고 온다는 것이 집사람 '동네의원 진찰권'을 가져 왔다는 얘 기 등입니다. 이런 얘기에 회중들은 폭소하고 즐거워합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에 그 사정을 보면 웃을 일이 아닙니다. 멀쩡한 그분이 그렇게 깜박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 이면을 뒤집어보면 다른 한곳에 대한 정신 집중이 있습 니다. 얼마나 그 일에 집중했으면 자기 집 위치까지 깜박했을까? 나는 이 정 신 집중과 그 몰두에 어떤 무서움을 느낍니다. 어떻게 그렇게 집중할 수 있을 까!!! 고 박윤선 목사님은 한번은 식사 중에 밥만 계속 드시다가 옆에서 반찬을 드 시라고 하자 '아 그렇지'하고 이번에는 계속 반찬만 들었다는 얘기는 많이 알 려져 있습니다. 그 날 식사 중에 목사님은 정신을 한 곳에 집중하고 있었습니 다. 그와 같은 정신집중 속에 깊은 영감이 떠오르고 거기서부터 나오는 말씀 속에 풍성한 은혜가 넘치게 됐으리라 나는 믿습니다. 박 윤선 목사님은 이 정 신집중을 태권도에 비유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태권도 선수가 정신을 집중 하고 힘을 집중하고 시간을 집중해서 내리칠 때 그 부드러운 손에 벽돌이 깨 어져 나가는 것 아닌가!!' 성경에서도 "전혀…, 오직…," 이란 말에는 집중 의 뜻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에바브로디도를 칭찬하면서 '저가 그리스도 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한...'다고 했거니 와 그는 생사의 경계선에서도 그리스도의 일에만 집중했습니다.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야곱이 얍복나루 에서 천사와 씨름할 때 환도뼈가 위골 되어도 놓지 않는 필사의 집념이 있었 습니다. 그러나 오늘에 와서 우리의 삶 속에는 이와 같은 기도, 전념, 몰두, 집중은 드물어지고 되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바람부는 대로, 쉽게 살아 가고자하 는 풍조가 만연함을 볼 때 안타까운 마음이 있습니다. 이제 원점으로 돌아가 야할 때가 됐습니다. 기독교개혁신보사는 올해로 창간 20년을 맞이합니다. 개혁총회보로 출발해서 오늘까지 믿음의 선배들이 말씀 속에 생명을 캐내는데 육신의 진액을 짜낸 그 노고 속에 오늘에 이르렀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새해를 맞이해서 우리는 신앙선배들의 기도와 전념 그리고 땀으로 이룬 개혁신보를 독자에게 믿음과 기쁨과 용기와 희망을 주는데 촛점을 맞추고 집중하고자 합니다. "너희는 가서 하나님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하신 말씀을 붙들 고 달려가고자 합니다.
113 no image 신년 메시지-박형용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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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0 2002-01-09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_special/294phy.hwp2002년 신년 메시지 박형용 박사/ 합신총장 Y2K 문제로 전 세계가 우려와 공포로 2000년을 맞이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02년이 우리 앞에 전개되었습니다. 약 2년 전 수많은 국가의 지도자들 과 개인들이 컴퓨터의 오작동으로 야기될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불 안한 심정을 떨쳐버리지 못한 채 한해를 넘겼습니다. 그러나 약간의 불편이 있었을 뿐 불안해했던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2001년 한해는 정치적으로 불안 한 한해였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한해였습니다. 교회도 이런 저런 일로 평안 하지 못한 한해를 보냈습니다. 우리는 우리 주변 상황을 무시하고 살 수는 없 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이시요 역사는 우리에게 성실성을 요구 하고 있다는 사실은 변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2002년도를 맞이하면서 우리 는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365일을 허락하셨다는 사실에 감사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매일 매일 하나님 앞에서(Coram Deo) 성 실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은 성실한 자에게 복을 주시고 성 실한 노력의 열매를 즐기게 하십니다. 2002년도는 관용과 이해가 넘치는 한해가 되기를 원합니다. 대한예수교장로 회(합신) 교단은 새로운 형제들(전 장신)과 함께 처음으로 새해를 맞이했습니 다. 오랫동안 연애하던 두 청춘 남녀가 결혼을 해도 둘 사이에 의견의 차이 가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교단과 교단 사이의 연 합에는 서로간 약간의 불편이 있을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한 가족입니다. 우리는 이제 한 교단입니다. 우리는 이제 "너"와 "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 "우리"만 있습니다. 한 가족끼리 해야 할 일은 서로 관용하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문 제일지라도 관용과 이해의 마음으로 대한다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을 줄 압니 다. 12개월 후에 2002년을 마무리하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도움으로 성령께서 하나되게 하신 것(엡 4:3)을 관용과 이해로 힘써 지켰다고 감사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2002년은 화목의 한해가 될 것을 확신합니다. 2002년은 우리 모두가 열심히 사는 한해가 되기를 원합니 다. 하나님은 우리 에게 은사를 주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고 수난의 과정을 겪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은사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 도록"(엡 4:12) 우리에게 은사를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의 할 일은 열심히 은 사를 활용하는 일입니다. 2002년은 충성된 한해가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112 no image 신년 메시지-이만신 목사(한기총 대표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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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7 2002-01-09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_special/294lms.hwp 화해와 평화의 메신저 역할을 감당할 터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 이만신 목사 희망과 기대로 가슴 부풀게 하는 2002년이 밝았습니다. 2002년은 생각만해도 흥분되는 축제들이 줄지어 있어 벌써부터 어깨가 들썩일 지경입니다. 국가 지도자를 뽑는 대선과 지방자치단체 선거가 있는가 하면, 월드컵축구대 회와 부산아시안게임이 열려 세계인의 이목을 한반도에 붙들어 맬 것입니다. 2001년이 국내적으로는 정쟁으로, 국제적으로는 테러와 전쟁으로 점철되어 육 체적으로 곤고한 삶은 물론이고 정신과 영혼까지 핍절해지는 질곡의 세월이었 다면, 이 한반도에서 펼쳐지는 2002년의 화해와 평화의 축제 마당에서 희망 의 메시지가 지구촌 곳곳으로 퍼져나가는 해가 될 것입니다. 2002년의 화두는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 습지 아니하리라'(이사야 2 :4)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한반 도가 세계의 중심에 서 있다면 이 화두를 구현해 나가야할 중대한 사명이 한 국교회에 있다고 할 것입니다. 따라서 한국교회는 다음 사안들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며 한국 기독교총연합회도 56개 교단 16개 단체의 힘을 모아 평화의 메신저로서 앞장 설 것을 다짐합니다. 1. 화해와 연합의 마당을 열어가야 합니다. 새 해에는 선거로 인한 정쟁이 그 어느 때 보다 심화될 것이 예상됩니다. 한 국교회는 지역간 계층간 종교간의 분열과 갈등을 예방하고 치유하는 일에 힘 써야 할 것입니다. 우선 한국교회의 양대 연합 기관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 기총)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가 연합하여 봉사하고 섬기는 자세로 한 국교회의 부흥 발전과 국가와 민족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화해의 마당을 펼쳐나가는데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작년에 생명윤리문제와 사형제도 폐지 그리고 기독교교도소설립 등에 합력하는 전향적인 모델을 실행한 바 있 습니다. 새 해에는 좀 더 다각적이고 깊은 연대가 이루어질 것임을 확신합니 다. 2. 남북의 긴장 완화와 평 화통일을 위한 준비에 힘써야 합니다. 남북의 긴장 완화는 세계 평화와 직결되며 우리 민족의 숙원인 평화통일을 이 루어 나가는 과정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입니다. 통일은 철저한 준비를 바탕으 로 차근차근 진행해야 합니다. 당면한 문제 해결에 급급 대처는 혼선과 불신 을 초래할 위험이 있습니다. 따라서 '햇볕정책'은 인도주의적인 입장에서 지 속적으로 추진되어야 하며 상호 이해의 증진을 위한 민간 교류도 확대되어야 합니다. 이런 바탕 위에서 남북교회의 협력도 진행해 나가야 합니다. 새해에 는 한기총과 조선그리스도교연맹이 2001년 6월에 북경에서 가진 실무 접촉에 서 제안된 협력 방안을 구체적으로 실현해 나가는 원년이 되도록 노력해 나 갈 것입니다. 3. 한기총의 청년시대를 활기차게 열어 가려고 합니다. 한기총의 12년 역사는 정체성을 확립하고 자립의 기틀을 다지는 기간이었다 고 할 수 있습니다. 새해부터는 품어 왔던 포부를 힘껏 펼칠 수 있는 청년의 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짧은 역사 속에서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기관이라는 자 리 메김을 받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제는 이에 걸맞는 위상과 행보를 보여 주 어야 할 때입니다. 조직과 명성 유지를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 아니라 한국교 회의 부흥과 성장을 통한 우리 주님의 지상명령을 성취해 나가는 기관이 되어 야 할 것입니다. 한기총은 새롭게 조직을 정비하여 시대의 부름에 부응하 는 '청년시대'를 활기차게 열어 갈 것입니다. 4. 새생명문화를 꽃피우고 청소년선교에 힘써야 합니다. 새생명문화 다시 말하면 거듭난 문화 예술의 꽃을 피워야 합니다. 퇴폐향락 에 취해 가는 세속문화를 구속하기 위해서는 성경적인 기독교 문화를 개발하 여 사회 구석구석에 확산시켜 나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 2001년에는 '꿈꾸는 사람 요셉'이라는 '오페라'를 무대에 올리고 '목회자 축구대회'를 개최한 바 있습니다. 새해에는 월드컵축구대회 등 스포츠 축제가 펼쳐지는 만큼 성공적 인 개최와 선교 효과 극대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한편 한국교회가 모 두 참여하는 체육대회를 개최하려고 합니다. 또한 21세기는 오늘의 청소년의 몫입니다. 한국교회는 가치관의 혼란과 만연 된 퇴폐 향락의 숲에서 방황하고 있는 청소년들의 인격과 가치관을 바르게 잡 아주어야 할 사명을 외면하지 말아야 합니다. 한국교회와 민족의 미래를 위 해 청소년지도자대학을 더욱 활성화 시켜 청소년 선교와 청소년 문제 해결 방 안을 제시하고 교회 청소년 지도자들을 양성하여 시대적 사명을 감당해 나갈 것입니다. 새해를 맞이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은총이 온 나라 와 민족에게 가득하기를 기원하며, 특히 전쟁을 그치게 하고 평화를 선포하 는 나팔 소리가 온 세상에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02년 신년 아침에
111 no image <초대의 시>나를 위함이라오-정승진 목사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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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20 2001-12-20
110 no image 가슴 뭉클했던 크리스마스 전야(前夜)-박상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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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9 2001-12-20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_special/psj.hwp가슴 뭉클했던 크리스마스 전야(前夜) 박상준 목사 강원도에서 나서 그곳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니고, 대학에 진학하면서부터 나 는 서울에서 주로 생활을 했다. 신앙생활을 시작한 지 만 3년 만에 신학대학 에 입학하게 된 뒤부터였다. 그렇게 서울 생활을 시작하면서 어느 교회에 다 녀야 할 지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마침 춘천에서 만나 알게 된 한 목사로부터 자신의 형이 목회하는 아주 작은 교회에서 사경회(査經會) 를 인도한다고 하여 물어 물어 찾아 간 교회가 곧바로 출석교회가 되고 말았 다. 당시 그 교회의 이름은 보훈(寶訓)교회였다. 보배로운 교훈이 있는 교회라는 뜻이다. 서울 사당동에 있는 정금마을 입구의 상가 지하에 위치한 개척교회였 다. 신학대학생이 스스로 찾아온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인지라 그 교회의 목사 는 어떻게 해서든지 나를 당신의 교회에 붙잡아두려 한 것은 당연지사. 요즘 같이 통풍도 잘 되고 볕도 잘 드는 그런 지하가 아니라 환풍 기를 통해 강제 환기를 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곳이었고, 빛도 전혀 들어오지 않는 그 런 교회였다. 밖에 있다 들어가면 늘 퀴퀴한 냄새가 나곤 했었다. 그래도 뭔 가에 의해서(지금 생각하면 성령의 인도하심이었음을 확신하지만) 꾸역꾸역 그 교회에 다니며 어린 주일학생들을 부지런히 가르쳤던 기억이 잊혀지지 않 는다. 대학생활 거의 내내 그 교회에만 다녔다. 그러다가 4학년 1학기를 마칠 무 렵, 비로소 그 교회를 벗어나고픈 마음이 들었다. 단지 큰 교회에 가서 좀 더 배우겠다는 말만을 남기고 과감히 그 교회보다 몇 십 배, 아니 백 배 이 상 큰 근처 다른 교회 대학부에 등록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새로웠 다. 만나는 사람의 얼굴과 분위기도 영 딴 판이었다.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전혀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주일 오후와 저녁 내내 할 일이 없어 빈둥거리기 일쑤였던 것도 생각난다. 누구를 가르치는 일도 전 혀 하지 않게 되다보니 주일을 준비할 필요도 없었고, 그만큼 주일에 대한 기 대감도 없었다. 자연히 지난 3년 반 동안 몸으로 부대끼며 가족처럼 지내왔 던 ‘내 교회’에 대 한 향수(鄕愁)가 일어나게 되었다. 대학 졸업식을 앞두고 잠시 강원도에 내려와 있었지만, 마음 정하고 갈만한 교회가 없었다. 마침내 크리스마스가 다가왔다. 크리스마스마저 그렇게 의미 없이 보내서야 되겠는가 싶어서 얼마 되지 않은 여비를 얻어 가지고 서울 가 는 기차를 탔다. 이미 서울 거리가 낯이 익은 상태인지라 오히려 고향에 온 기분이었다. 나의 발걸음은 아주 설레는 마음으로 내가 떠난 지 6개월쯤 되는 그 교회로 향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조심스러운 마음이 가 득했다. 손에는 따뜻한 군밤 한 봉지와 호떡 한 봉지가 들려 있었고, 눈빛은 마치 옛 애인을 만나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그 사이 교회는 근처 다른 곳으로 이전을 했고,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와 있었다. 다행히도 전화번호 는 그대로여서 가까이 가서 전화를 했더니 내가 대학 시절 내내 가르쳤던 김 성준이란 학생이 크리스마스 이브 행사를 준비하다 말고 전화를 받았다. 그리 고 어찌나 반가워하던지… 이내 좇아 나와 나를 아주 뜨겁게 맞아 들였다. 내 가 가지고 간 따뜻한 호떡보다 훨씬 더 뜨거운 사랑이 나와 그 교회의 어린 식구들 사이에 오갔다. 나를 더 눈물나게 했던 것은 나의 전화를 받고 달려나와 마중을 했던 그 학생 이 말하기를, 내가 떠난 후에 아무 지도 교사 없이 예배를 드려왔을 뿐만 아 니라 조촐한 크리스마스 이브를 자기네들끼리 열심히 준비하였노라고 자랑스 럽게 말하는 소리를 듣는 순간이었다. 와락 눈물이 속에서 솟구쳤다. 담임 목 사는 그대로 계셨지만, 어린 학생들에게는 목자 없는 양이나 다름없었던 것이 다. 그네들이 목자 없는 양임에도 불구하고 흩어지지 않고 잘 모이고 있으 며, 나름대로 성탄을 준비했노라는 말을 들을 때, 나의 마음은 내가 너무 이 기적으로 생각하고 교회를 떠났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친구들이 살아 있 었구나, 살아서 내가 언젠가는 다시 돌아올 것을 기대하고 있었구나 하는 마 음이 그대로 전달되면서 나의 눈물샘을 크게 자극시켰던 것이다. 이내 담임 목사를 찾아간 나는 지체 없이 다시 와서 봉사하겠노라고 아주 확 신 있게 말씀을 드렸다. 그로부터 8년을 그 교회에서 더 섬기며 나의 청춘을 온통 그 교회에 쏟아 붓게 되었다. 지금도 그 교회가 그립다. 해마다 성탄절 이 다 가오면 가슴 뭉클했던 그 해 크리스마스 전야(前夜)의 추억이 내 마음 속에 한 폭의 명화(名畵)처럼 남아있음을 되새기곤 한다.
109 no image 바닷가의 성탄절-최용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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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6 2001-12-20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_special/sea.hwp 바닷가의 성탄절 최용태 목사 예배당에서 크리스마스 준비를 하는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을 보니 벌써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었나 봅니다. 아이들이나 젊은 여인들을 위한 하얀 눈이 펑펑 내리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대해 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기까지 인류를 사랑하심으로 우리 가 갚을 수 없는 사랑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당신의 사랑 을 함께 나누어 가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작금의 세계사를 돌아보면 원 수 갚는 일에 더 열중하고 있으며 피의 보복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구 저쪽에서는 민족주의와 종교적인 원리주의에 의해서 무고한 사람들이 많 이 생명을 잃었고 그 일 때문에 또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거나 몸과 마 음의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나라 안에서는 사람이 그렇게까지 악할 수가 있 을까 하는 잔인한 내용들이 연일 보도되고 있습니다. 또 가까운 이웃들이 여 러 가지 사정으로 고통하는 것을 보면서 한 장 남은 마지막 달력이 내려지고 이 해가 어서 빨리 지나가고 새해 새날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성탄절은 공교롭게도 한 해의 끝과 다른 한 해가 시작되는 시점에 맞물려 있 는데 이것도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이라고 봅니다. 성탄절을 즈음해서 지나간 날들을 정리하고 다시금 새날의 희망을 붙잡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온 몸 과 마음을 기대어 봅니다. 한편 성냥팔이 소녀가 추위 속에서 외롭게 죽어가는 데도 돌아보는 사람이 없 었던 것처럼, 성탄절의 찬란한 조명과 크리스마스 캐롤이 울려 퍼지는 가운 데 우리 곁에서 불쌍한 이웃들이 당하는 고통을 외면하고 그리고 우리 자신 이 스크루지 영감처럼 되어 가고, 마굿간에서 태어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 면서 마굿간을 외면하고 비난하며, 그리고 물신주의를 배격하면서도 물신주의 의 검은 그림자를 교회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지는 않는지 깊이 돌아볼 필요 가 있습니다. 교회의 생명력을 끌어모으는 데서 얻는 것보다 나누어 주는 데 서 힘을 얻는다면 교회 안팎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누리 고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으리라 생각되어집니다. 저에게는 이 년 전 이맘때를 잊지 못합니다.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하나님은 저에게 목회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시고 일생에 가장 큰 선물을 주 셨습니다. 그 기쁨을 잊지 못하고 있기에 성탄절을 맞이하면서 어려움과 고 통 속에 있는 이웃들도 성탄절에 각자에게 가장 필요한 사랑의 선물을 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그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 다. 예배당의 창문을 열면 왼쪽으로는 넓고 길게 뻗은 만이 보이는데 썰물 때면 뻘밭이 되고 밀물 때면 바닷물이 만 안쪽으로 가득 차 오르는 것을 볼 수 있 습니다. 그리고 오른쪽으로는 고깃배들이 오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뒤쪽 으로는 소나무 숲이 향기롭습니다. 바다에는 여러 가지 다른 깃발들이 꽂혀 있는데 그것은 각자의 어장을 나타내는 표지입니다. 포구 어귀나 마을 안쪽에 도 그런 깃발들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무속인의 집인가 의아하였으나 지금은 그 깃발들이 친근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 포구의 어민들의 삶 의 터전을 나타내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앞에 내다보이는 바다는 김 양식장과 어장이 있고 거기에는 각종 바다 고기 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때로는 어민들에게 풍요로움의 잔치를 베풀기도 하지 만 때로는 어민들의 마음을 울리는 사나운 바다가 되기도 합니다. 바닷물이 들고나면서 뻘밭을 살찌우고 고기를 기르며 어민들에게 풍요와 슬픔을 나누어 줍니다. 바닷물이 비워지는 것과 가득 차는 것을 보면서 우리 인생도 비울 때 는 비워야 하고 찰 때는 비워질 때를 생각해야 하는 것을 배웁니다. 머리맡의 양말 속에 산타의 선물이 가득 차기를 바라는 아이들처럼 성탄절에 좋은 선물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108 no image 주의 길을 예비하라!-강병철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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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60 2001-12-20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_special/293kang.hwp주의 길을 예비하라! 강병철 집사 나에게 금방 떠오르는 성탄절 이미지는 선물과 화해 그리고 세례자 요한이 다. 오 헨리의 ‘크리스마스(동방박사) 선물’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델라와 짐 부부가 비록 가난하지만 서로에게 가장 좋은 선물인 시계줄과 빗을 주고 싶어 자기가 가장 아끼는 것을 기꺼이 포기하는 이야기이다. 애착을 포기함 이 없이는 가치 있는 선물도 줄 수 없음을 배운다. 나사로와 부자 이야기를 연상시키는 디킨즈의 ‘크리스마스 캐롤’은 스스로 가 초래한 고립 속에 갇혀 사는(혹은 살되 사는 것이 아닌) 놀부 스크루지가 유령들로부터 인생 공부를 다시 배운 덕분에 크리스마스를 계기로 급격한 존 재의 변화를 경험한다는 이야기이다. 소설은 이 지상에서의 삶이 어떠해야 영 원한 미래를 잘 준비할 수 있을 것인가를 말하고 싶어하는 것으로 보인다. 소 설에서는 크리스마스를 가까운 이들, 때로는 너무 가깝기 때문에 관심에서 벗 어나 있는 주위 사람들을 돌아보고 사랑을 표현하는 초대의 시간으로 그리고 있다. 크리스마스는 함께 지내고자 하는 시간이고, 그런 나눔을 통해 우리 인 생의 분위기가 더 새로워지는 사건으로서의 시간이며, 우리 인생 자체가 선물 로 받은 것임을 알고 기꺼이 우리의 삶을 드려 다른 이들에게 선물이 되는 삶 이 되기를 소망하는 시간이다. 덴마크 영화 ‘바베트의 만찬’(1987)은 파리에서 피난 온 요리사가 자신의 재산을 허비하고 최고의 재능을 활용하여 보수적인 마을 사람들에게 특별한 생일 잔치를 베풀어주는 이야기이다. 식탁 나눔을 통해 사람들 사이의 그동안 의 섭섭함과 벽이 무너지고, 그 자리에 그동안 불가능했던 용서와 화해 그리 고 사랑이 회복된다. 그러한 근본적인 변화는 만찬으로 표현된 아낌없이 드리 는 헌신이 있어서 비로소 가능했던 것이다. 세례자 요한, 그는 광야에서 주의 길을 예비하라고 외치는 소리이다. 그는 때 가 차매 하나님의 경륜을 따라 이 땅에 오신 예수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 없이 온 세상 사람들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선물임을 증거한 다. 요한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돌이켜, 그들이 하나님을 향하도록 준비시켰 고, 회개하라 고 설득하였다. 그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고 외친다. 우리는 시간 이 더 이상 우리편이 아닌 상황이 오기 전에 일을 위한 계획을 세워 그 일에 매진함으로써 주의 길을 예비하는 데 동참할 수 있을 것이다. 꿈을 꾸며 그 꿈의 성취를 위해 계획을 세워 힘써 일하는 것은 지상에서의 몫이다. 성탄절은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는 시간이다. 예수 앞에 나아가 우리의 굳어 지고 높아진 마음을 회개하고 예수의 마음을 본받아, 다른 이들에게 좀 더 너 그러워지고, 용서하고 용서를 구하며, 자기와 자기 것에 대한 집착에서 풀려 나 힘들게 사는 이들을 돌아보는 나눔을 실천할 때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 리는 성탄절을 바르게 축하하고 기억할 수 있다. 크리스마스는 기억과 쇄신 의 시간이어야 한다. 메리 크리스마스!
107 no image 성탄과 성육신의 의미-윤성목 목사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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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75 2001-12-20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_special/293yoon.hwp성탄과 성육신의 의미 윤성목 목사(광주 서부교회) 언제나 12월이 되면 변함없이 거리는 온통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가득합니 다. 크리스마스는 가장 먼저 백화점과 번잡한 도심의 밤거리에 휘영청 찾아오 고, 사람들은 차디찬 겨울 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기 저기 울려 퍼지는 성탄 캐롤에 연일 흥에 겨워 어쩔 줄을 모릅니다. 언제부턴가 성탄절은 그리 스도인의 축제가 아닌 온 세상의 축제가 되어 버렸습니다. 크리스마스의 주인 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저만치 뒷전에 물러나 있고, 이제 크리스마스는 산타클 로스의 축제가 되었습니다. 성탄이 지닌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는 관심도 없 는 채, 교회마저 세속화된 크리스마스의 들뜬 분위기 속으로 자꾸만 걸어 들 어가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의 기원이 로마 이교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은 차지하고라 도,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의미는 실로 심하게 왜곡되어 있는 것이 오늘의 형 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성육신의 의미를 소외 되고 불쌍한 이웃을 위한 사랑과 정의의 실천을 위한 모범이라는 차원에서 이 해하려 하며, 또 다른 사람들은 이 땅과 저 세상에서 자신의 지복(至福)을 돕 기 위한 산신령의 현현(顯現) 정도로 생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살신성인 의 삶을 살다간 성현(聖賢) 중의 하나로 여겨지던지, 아니면 구차하고 힘든 인생살이에서 우리를 벗어나게 해줄 신통한 무당이나 점장이 중의 하나로 여 겨지고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요한복음 6장 38절과 39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로부터 자 신이 내려오신 이유가 다름 아닌 "자신을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었다 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의 성육신이 갖는 의미는 하나 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 곧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자 중에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의 두 가지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는 "자신을 보내신 이 의 뜻을 행하려 함"이라는 표현에서 보듯이 죄인을 구원하기 위한 그리스도 의 성육신이 바로 삼위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을 따라 이루어졌다 것입니다. B. B. 워필드가 말한 것처럼 구원의 큰 일이란 바로 삼위 하나님의 영원한 구 원 계획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구원을 향한 하나님의 주 권과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보며, 나아가 성도를 향한 놀라운 위로를 경험합니다. 마침내 우리는 죄인을 향한 전적인 은혜로 구원의 큰 일 을 이루신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의 확실성으로 인하여 진정한 감사와 찬양을 돌려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그리스도께서 행하시는 아버지의 뜻은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 하나도 잃 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성육신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중심에는 다른 사람 이 아닌 "자기 백성", 곧 교회가 자리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서는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신 자기 백성들을 자신의 무한한 사랑의 대상으로 선택하시고, 그들을 자신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셨습니다 (엡 1:3-14). 교회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증시하는 공동체로서 존재합니 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하 나님의 영광을 위한 거룩한 사명을 최 선을 다하여 감당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성육신을 우리로 하여금 본받을 것을 말씀하셨 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통하여 철저한 겸손과 섬김의 마음 을 배우게 되기를 바랍니다. 타오르는 선교와 전도의 열정 속에 혹시나 복음 외에 다른 인간적인 방법을 첨가하고는 있지는 않는지, 우리의 정성과 노력으 로 이 세상 모두를 구원할 수 있다고 장담하지는 않는지, 구령의 결과들을 자 신의 공로와 업적으로 뽐내지는 않는지 겸손하게 돌아볼 때입니다. 소외된 이 웃과 가난한 자들을 위한 관심이 자칫 기독교의 본질을 상실한 채, 자기의 의 (義)를 위한 단순한 휴머니즘의 발로로 이루어지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보았으 면 좋겠습니다. 교회를 개혁하며, 진리를 보수하려는 교회의 순결함을 위한 수고가 혹시나 다른 지체들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바리새적인 교만으로 나타나 지는 않는지 조심스레 자신을 살펴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 의 사랑을 가장한 값싼 사랑을 남발하면서 교회의 거룩함을 해치고, 하나님 의 진리를 무시한 그리스도인의 공허한 일치를 외치지 않기를 간절히 소원합 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바로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위함이었 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입은 자로서,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 을 위한 자로서, 그렇게 겸손하게 "죽기까지 복종하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 면 하는 바램입니다(*)
106 no image 하나님께는 영광, 사람에게는 평화-이승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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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85 2001-12-20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_ special/lss.hwp하나님께는 영광, 사람에게는 평화 이승세 목사(군산새빛교회)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 들 중에 평화로다"(눅2:4). 이 말씀은 천사들이 아기 예수의 탄생을 지켜보 며 찬양했던 내용이다. 예수의 이 땅에 오심이 왜 하나님께 영광이었는가? 예수의 탄생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계획이 이루어진 일이다. 하나님은 영원토록 당신의 백성들과 함께 하고 싶은 사랑의 하나님이 시다(마1:23). 그러나 인간들의 죄 때문에 그들과 함께 하실 수 없을 뿐만 아 니라, 죄인을 심판하여 징계할 수밖에 없는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예수의 탄생은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동시에 만족시킨 십자가의 구속사역 의 시작이었다. 즉 자기 백성들을 저희들의 죄에서 구원하여 영원토록 함께 계시고 싶은 하나님의 뜻이 성자 예수의 성육신으로 인하여 성취할 수 있게 되었으니 하나님께 영광이 되었던 것이다. 예수의 탄생은 하나님의 뜻에 온전한 순종으 로 이루어진 사건이니 하나님께 영광이었다. 먼저는 성자의 순종이다.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 체이나,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으로 오셨고 죽기까지 복종하셨다(빌2:5-8). 하나님으로서 무한한 자유와 권능과 영광을 버리고, 모든 피조물의 경배와 찬 양을 받으셔야 할 그 분이, 성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제한된 인간의 몸을 입 고 이 땅에 오셔서 제한적으로 살아야 했고, 멸시와 천대와 고난과 핍박을 받 고, 하나님과 사람들에게도 버림을 당하여 십자가에 죽기까지 그 백성을 찾 아 구원하려고 오셨으니 어찌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으랴. 그리고 예수의 탄생은 많은 사람들의 헌신적인 순종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당 시에 율법이나 제도가 결혼하지 않은 여자의 잉태나 출산을 용납하지 않았으 나,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눅1:31)는 천사의 말에,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눅1:38)하며 자신에 게 닥칠 위험이나 고난을 감내하려고 했던 마리아의 순종이 어찌 하나님께 영 광이 되지 않겠는가? 요셉의 순종도 작다 할 수 없으니, 자신과 정혼한 마리아가 까닭 모르게 잉태 하였음을 어떻게 용납할 수 있겠는가? 마태는 "저에게 잉태 된 것은 성령으 로 된 것이라(마1:20)고 천사가 말하자, 요셉은 주저하지 않고 그를 아내로 맞아 마리아와 아기 예수의 보호자가 되었다. 이것도 아름다운 순종의 헌신이 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제사보다 순종을 기뻐하시는 분이시다. 예수 의 탄생을 통하여 이루어진 이 모든 순종이 하나님께 어찌 영광이 되지 않겠 는가?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고 하셨다. 예수의 탄생을 기뻐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과의 평화가 이루어졌다. 예수의 이 땅에 오시 기를 참으로 고대하고 기뻐했던 사람은 과연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다른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 자들은 예수를 환영하지 않고 오히려 거부했다. 자신을 의롭게 여기며 자랑하던 서기관, 제사장, 바리새인 모두 예 수를 거부했다. 예수는 거부하는 자들을 위하여 오시지 않았고 기다리는 자들 을 위하여 오셨다. 누가 예수를 기다리고 그분의 오심을 환영하며 기뻐했는가? 자신이 구원받아야 할 죄인임을 통감하고 하나님과의 중보자를 기다리던 사람 들이 다. 주님은 그들을 위하여 오셨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려 함이라(눅5:32)고 하셨으며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 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라(눅19:10)고 하셨다. 그리고 인자의 온 것은 섬 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 로 주려함이라(마20: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실로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환영하고 기뻐한 무리들은 죄인이라고 비난 받는 사람들이거나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이었으며 세상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었다. 예수는 하나님과 원수 된 그들을 위하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하나되게 하셨다(엡2:14) 예수. 그분은 누구며 왜 이 땅에 오셨는가를 깨닫고 그분을 환영하며 그분의 오신 것을 기뻐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과 평화가 이루어진다. 오늘도 하나 님의 평화는 예수를 환영하는 자들에게 임한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 셨으니"(요1:12).
105 no image 귀중한 자산 소요리문답 -정현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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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94 2001-12-06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_special/jhi.hwp귀중한 자산 소요리문답 정현익 목사/중리 늘사랑교회 "본인은 본 장로회 신조와 웨스트 민스트 신앙고백서 및 대,소요리 문답은 신 구약 성경에 교훈한 교리들을 총괄한 것으로 알고 성실한 마음으로 받아 신종 합니다." 우리는 이 문구를 목사 임직식이나 장로 장립식 때에 종종 듣는 소리들이다. 여기에 나타난 웨스트 민스터 신앙고백서나 대,소요리 문답등은 우리 정통 장 로교의 매우 중요한 역사적인 산물들이다. 우리는 어느 누구도 가지지 못한 매우 중요한 것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들의 현재 모습인 것이다. 목사를 안수할 때나 장로로 장립할 때에 는 이와같이 선서를 하면서 정작 개 교회에서는 이 귀중한 자료를 사용하는 교회가 매우 드물다는 것에 우리는 주의를 기울어야 할 것이다. 요즈음의 교회들의 모습마다 성장 일변도의 프로그램이나 조직등을 중시 여기 는 반면 정말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귀한 자산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것에 대 해서 약간의 분노 내지는 아픔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토록 귀중한 것이기 에 선서를 하면서도 교회에서는 전혀 쓰지 않는다면 그 선서가 거짓된 선서 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강도사 인허식 때의 선서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서 "성실한 마음으로 받아 사 용할 것을 승낙합니다" 는 선서를 하고 있다. 본인은 우리들의 교회들이 귀 중하게 전해져 오는 이 자산을 잘 활용하여 올바른 교회 성장의 밑거름이 되 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몇 자 적어본다. 특히 소요리 문답에 대해서 몇 자의 소견을 적어보려고 한다. 저는 청년시절부터 은사이신 고 김갑석목사님으로부터 이러한 사상을 받았었 고 또한 목사님 자신이 평신도를 위한 소요리문답 해설서를 출간하셔서 이것 으로 교회에서 사용하여 약 3년 6개월만에 107문답까지의 내용을 다 배울 수 가 있었다. 배울 때마다 참으로 귀한 것이다 라는 마음을 시간마다 가지게 되었다. 목사님께서는 호주로 가시면서 자신의 손 때묻은 원고지 다발을 주시 면서 목회할 때에 이것으로 책을 만들어 교회에서 가르치라는 유언과 같은 말 씀을 하시고는 떠나가셨다. 지금도 이러한 주관을 가지 고 본 교회에서 주일 저녁마다 소요리 문답강해를 하고 있다. 직접 사용해 본 자로서 소요리 문답 에 대해서 몇가지로 말하고자 한다. 요리문답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1643년부터 1652년까지 장구 한 기간을 거쳐서 156명의 신학자들과 귀족들이 영국 웨스트 민스터 사원에 모여서 학문과 기도와 눈물의 결과로 웨스트 민스터 신도게요서, 대요리 문 답, 소요리 문답등의 교회및 기타의 표준을 세우는 역작을 만들어 낸 것이 다. 특히 이 요리문답은 지극히 교리적이다. 1,4,21,92문답등은 실로 가장 우수 한 문답이요 신앙과 교리에 있어서 최우수한 요약이며 정통성을 시험하는 시 금석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제1문답은 소요리문답을 대표할 만한 요약이라고 할 수 있다. 워필드 같은 사람은 말하기를 제1문의 이 시작은 어 느 문답서보다도 잘되어진 고귀한 것이며 배우는 자들로 하여금 즉시 하나님 과의 관계가 정당한 입장에 들어서 짐을 알 것이다 라고 했다. 다른 문답서들 은 대개 "내가 무엇을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라는 물음에서 시작되나 이 요리문답은 "사람의 제일된 목적이 무 엇인가"라는 것으로부터 시작되고 있 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부끄러움은 우리에게 있으나 모든 영광은 주께만 있 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 요리문답은 다른 어떤 문답서도 추종하기 어 려울만치 주도면밀하게 구성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귀중한 유산을 가졌으니 교회가 이 유산을 실제적인 삶속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다. 개혁주의 교회가 요리문답을 교회와 신학교 에서 반드시 가르쳐야할 것이다. 이러한 귀중한 것을 사용치 않음으로서 오늘 날 성도를 보면 무엇을 아는 것 같으나 사실은 알아야 될 것에 대해서 막연 한 상태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 결과로서 시대사조에 속히 흔들리게 되고 또 한 교회내에 분쟁이라는 불미스러운 사건들이 발생하는 직 간접적인 원인이 된다라고 생각해보는 것이다. 진리와 거기에 따르는 교리가 확실하면 감히 그 말씀의 하나님앞에서 불경스럽고 불신앙적인 언행을 두려워서도 할 수 없 고 또 감사함에서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이러한 모든 면에서 이 요리문답 은 시대사조에 따라 변치 않는 진리의 빛이라고 확신하는 바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교회들 이 성장일변도의 목회방향보다 오히려 성숙한 그리스도인을 만드는 일에 목회의 주안점을 두어야 될 줄로 안다. 이를 위하여 흔들리지 않 는 진리의 빛이라고 하는 본 소요리문답을 교회들이 힘써 가르치기를 소망해 본다.
104 no image 바른찬송-전용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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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41 2001-12-06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_special/jyk.hwp바른찬송 전용국 목사/ 충만 교회 공 예배에는 예배의 부름으로부터 시작하여 축도로 마치는 여러 순서들이 있 다. 이 순서들이 조화를 이루어 하나의 예배가 되는데 이중에서 가장 중요한 순 서는 말씀 선포일 것이다. 이것은 단지 시간을 많이 차지하기 때문이 아니 라 우리 기독교가 갖고 있는 독특성, 즉 계시적 성격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알려주셔야만 그분을 알 수 있고 그분을 알아야만 올바른 예배를 드 릴 수 있는 것이다. 김영재 교수님이 예배라는 말뜻에서 그 의미를 찾기보다 는 예배의 대상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하신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일 것이 다. 예배 시간이 딱히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한 시간 전후의 예배 시간을 갖는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설교 시간이 짧아 져 가는 추세인 것 같다. 선, 예배의 다른 순서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 때문일 것이다. 예를 들면 찬양, 신앙 간증, 또는 최근에 유행되는 말씀을 듣기 위한 도입 순서 등 등. 또 한 가지 이유는 짧게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일 것 이다. 이유는 다르지만 설교자나 성도 모두가 짧게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강박관념 이 있는 것 같다. 공예배 시간에 부흥회처럼 길게 설교할 수는 없지만 주어 진 말씀을 충분히 증거할 수 있도록 예배 순서를 잘 조정하는 일과 또한 마음 의 여유를 갖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말씀 선포가 예배 중에 중요한 요소라 한다면 예배가 차분하게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예배자의 마음을 열고자 열광적으로 찬송하는 경우와 이에 더하여 요란하고 시끄러운 전자 악기나 타악기 등을 동원하는 경우가 있는 데, 이는 자칫 예배자의 마음을 흥분시켜 말씀에 집중하지 못하게 한다. 하 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라고 한다면 선포되어 지는 말씀이 성령님의 역사로 우리 심령에 이해되어지며 이루어지도록 차분하 고 조용한 가운데서 예배를 드려야 할 것이다. 말씀 선포가 중요하다 함은 예배 준비에 있어서 설교자의 책임이 크다는 말 일 것이다. 물론 성도들이 준비해야 하는 것도 있다. 토요일부터 미리 준비 하는 자세와 빠짐 없이 예배에 참석하되 정한 시간 전에 참석하여 마음을 준비 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 아마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성도들에게 요구하 는 바가 이것일 것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책임은 예배, 특히 말씀을 준비 하는 우리 설교자에게 있다. 이 사실은 설교자가 자신의 한 주간의 삶을 무 엇에 초점을 맞추며 어떻게 시간을 활용해야 할지를 알려준다. 목회를 위해 여러 가지 사역들을 감당해야 하겠지만, 특히 말씀을 준비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확보 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한 것이다. 우리의 예배에 있어서 말씀 선포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모든 예배 순서 가 부족함이나 치우침이 없이 조화롭게 이루어져야만 한다. 여기서 '조화롭 게'라 함은 말씀 선포가 예배에 있어서 정당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을 말한 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온전하게 선포되어 우리의 경배의 대상이신 하 나님을 바로 알아 그분께 돌려야 할 영광과 찬양을 드리며, 우리의 피곤하고 지친 영혼들이 새 힘을 얻는 예배가 되어야 할 것이다.
103 no image 개혁교회의 예배 형식-최덕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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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4 2001-12-05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_special/choi.hwp개혁교회의 예배 형식 최덕수 목사(현산교회) 예배는 교회 생활의 중심이며 예배를 돕는데 있어서 예배 형식은 필수적이 다. 그런데 요즈음 새로운 변화를 좋아하는 이들이 내용은 두고 형식은 바꾸 어도 무방하다는 생각에 신학적인 고려 없이 그저 좋아 보이는 예배 순서가 있으면 무조건 끼워 넣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각 교회들의 예 배 형태는 가지각색이다. 예배는 신앙고백의 문제요 각 교회와 교단의 통일성 에 관계되는 공적인 일이다. 이런 면에서 예배 형식은 참으로 중요하다. 결 코 목회자 한 사람이나 한 지역교회의 기호에 따라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문 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한국교회의 예배 순서들을 살펴보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던 사사시대와 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다. 개혁주의자들은 성경을 신학과 신앙의 최종적인 원칙으로 삼는다. 따라서 예 배형식 역시 성경이 명시하고 있는 원칙에 근거해야 한다. 이 세상의 왕을 알 현하는 것도 왕실의 제도를 따라야 만 하는데 하물며 왕 중 왕이신 하나님께 나아오는데 인간의 생각대로 해서야 되겠는가? 어떤 이들은 성경에 금하지 않 은 것은 도입할 수 있지 않느냐 하며 명시적으로 금하지 않은 순서들은 예배 순서에 첨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에 명시되지 않은 것은 칼빈 의 고백처럼 '성경에서 금하고 있는 법만큼이나 강력한 금지의 법'이기 때문 에 금지된 것이 아니라고 해서 그것을 예배순서에 도입할 수는 없다. 우리가 아는 대로 구약제사는 철저하게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원칙에 따라 드 려졌다. 그 순서를 잘못 행할 때는 심지어 죽임을 당하기도 하였다. 물론 그 리스도께서 구약의 모든 제사를 완성하셨기 때문에 이제는 구약 희생제사 제 도의 원칙을 따를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의식법의 철폐가 모든 것을 할 수 있음을 보증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신약성경은 예배 형식의 문제에 대해서 어떻 게 가르치고 있는가? 우리는 '신령과 진리로 예배하라'(요 4:24)는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그리고 고린도교회를 향한 바울의 가르침(고전 14장) 등에서 예 배의 원칙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신약성경은 예배드리는 방법이나 형식에 대해 깊이 관여하지 않는다. 예배 순서와 방법에 대한 세세한 가르침이 없 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는 그 해답을 개혁주의 전통에서 찾아 야 한다. 현재 대부분의 장로교회들이 따르고 있는 예배형식은 개혁주의 전통 에 근거한 것들이다. 따라서 개혁주의 전통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있어야 한다. 그 이유는 이미 시도된 개혁교회 예배형식의 관례를 따르면 시행착오 를 줄일 수 있고 시대적인 유행에도 놀아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개혁교회의 예배형식을 결정하는데 있어 또 하나 고려되어야 할 것은 이 시대 의 문화적인 상황이다. 개혁교회는 끊임없이 개혁하는 교회다. 이 말은 종교 개혁시대의 전통이 최종적인 권위를 가질 수는 없다는 말도 된다. 개혁주의 전통의 정신은 고려해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그 전통을 그대로 답습한다고 해 서 바람직한 개혁교회 예배형식이 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성경이 제시하는 신학적인 대원칙 위에 개혁주의 전통에 대한 분명한 이해와 아울러 이 시대 의 문화적인 상황까지 고려될 때, 개혁교회가 추구해야 할 예배형식이란 무 엇 인가? 에 대한 대답은 자연히 도출 될 수 있는 것이다.
102 no image 노래위의 노래, 찬송-신혁 목사 (97)
rpress
3999 2001-12-05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_special/sinhk.hwp노래위의 노래, 찬송 신 혁 목사(예랑교회) 찬송이라는 단어가 성경에서 신약에는 48회, 구약에는 351회 가량 나오는데 이 단어의 전후에는 반드시 "하나님을", "하나님께", 또는 "여호와께", "여호 와를" 등의 말이 있다. 이것은 찬송의 대상이 하나님밖에 없고, 찬송을 받으 실 이는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심을 강조하는 말씀들로써 우리가 참으로 위엄 있으시고 거룩하신 하나님께만 찬송을 드려야 할 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다. 따라서 찬송은 제사라 했다.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 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 라'(히13:15). 찬송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라는 이 말은 여러 가지 의미를 함축하고 있으나 그중 무엇보다도 우선되는 사실은 찬송을 받으실 분이 여호 와 하나님이시라는 데 있다. 하나님께 드린다 할 때 그것은 우선 그 가사가 하나님께 드리기에 합당한 것 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가령 찬송가 395장같은 경우 가사가 '너 시험을 당 해 범죄치 말고 ... ' 이렇게 나간다. 이런 종류의 노래는 하나님께 드린다 고 하기에는 적합치 못하다. 이 노래의 대상이 하나님이 아니라 곁에 있는 사 람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찬송드립니다"라는 말을 하고서 이런 노래를 부 른다면 실제로는 하나님께 불경죄를 짓는 것일 것이다. 이런 류의 노래들은 엄밀히 말하면 '찬송'의 범주에서 제외된다. 그 대상이 하나님이라 할 수 없 기 때문이다. 찬송은 주로 찬송가의 앞쪽에 많이 배치되어 있다. 곡조도 마찬가지이다. 음악의 선택도 중요하다. 음악은 가사처럼 명백히 드러 나지는 않지만 그래도 자세히 들어보는 수고를 기울이면 구별이 된다. 왜냐하 면 음악이라는 것도 그 색깔에 따라서 그것이 품는 내용이 다르기 때문이다. 음악이란 그것이 표현하고자 하는 그 내용을 따라 형식을 달리하기 마련이 다. 가령 빠름과 느림, 슬픔과 기쁨, 장엄과 초라함, 불안과 평안함, 경건과 연애 등은 그 음악적 표현이 절대 같을 수가 없다. 따라서 행진곡이나 춤곡, 또는 조곡이나 명상곡 등이 소리만으로도 구별된다. 그 때 그런 음악의 요소 를,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생각하고 그분의 성품에 합당하다 여겨지는 최 선의 음악을 선택해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찬송이다.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 한 영광을 그에게 돌려야 하는 것이다(시96:8). 성경은 그 영광을 '아름답기 도 하고 거룩하기도 한'(시96:9) 예물로 표현한다. 찬송은 아름답기도 하고 거룩하기도 한 요소가 동시에 요구된다는 것이다. 여러 음악들 중에서 우리 는 그 점을 유의해서 택해야 한다. 그런 것들과 함께 본질적인 것이 또 필요하다. 찬송의 본질이란 다름아닌 찬 송자 자신의 마음이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려 야 한다. 예배와 마찬가지로 찬송 또한 입술로 나오기 이전에 마음이 먼저 요 구된다. 사람이 입으로는 찬송 부르면서 마음은 얼마든지 다른 곳에 가 있을 수 있다. 마음의 기울임 없이 습관적으로 따라 부르면서 그저 노래에 취해 있 거나, 아예 딴 생각으로만 채워질 수 있다. 그것은 찬송자의 바른 자세가 아 니다. 찬송한다고 하면서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지 않고 다른 곳에 가 있는 것 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로써 합당치 않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베풀어 주신 구원에 진심으로 반응하여 하나님께만 향하는 감사와 기쁨의 마음을 드 려야 한다. 찬송의 가장 우선되는 조건은 이처럼 모든 것이 하나님께 향하는 것이라는 점 에 있다. 이외에도 여러 중요한 원리들이 있겠지만 이 점이 무엇보다 우선한 다고 하겠다. 이 점에서 찬송은 세상에 존재하는 다른 모든 노래들과 구별된 다. 세속음악은 말할 것도 없고 복음성가나 다양한 교회음악, 또는 성도의 삶 에 위로와 힘을 주는 여느 노래들과도 구별된다. 어떤 노래에 기독교적 요소 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다 찬송은 아니다. 찬송은 노래위의 노래이다. 찬송 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이며, 하나님을 칭송하며, 온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 는 것이다. 때에 따라 사람들이 여러 다른 교회음악들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찬 송은 그것들과 엄연히 구별되어야 하는 최상의 음악이다. 그래서 옛제사장들 은 정성과 두려움을 가지고, 흠 없는 자신과 흠 없는 제물로 하나님께 나오라 고 했던 말씀을 철저히 지키려 했었다. 그 정신은 오늘날의 찬송에서도 요구 된다. 우리의 교회는 이와 같은 영광의 찬송을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이다.
101 no image 바람직한 교회선거제도-김 훈 목사
rpress
2419 2001-11-22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_special/291je.hwp바람직한 교회선거제도 성남중원교회 김 훈 목사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총회가 장신측과 하나가 되는 결의를 하게된 것과 총 회 후 모든 노회가 총회의 결의에 따라 장신측 교회와 동역자를 영입하여 온 전히 하나됨을 이룬 것을 진심으로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돌리는 바이다. 필자는 이른감이 있지만, 하나가 된 후 처음 맞이하는 임원선거가 있는 내년 봄노회와 가을 총회를 생각하면서 바람직한 교회 선거제도에 대한 평소의 소 신을 밝히면서 전국의 동역자와 나아가 성도들의 의견을 듣고자 한다. 필자는 필자의 의견을 제안하기 전에 먼저 합동측 총회에서는 제비뽑기식 선 거제도가 성공적이었다는 안팎의 평가에 따라 총회는 물론 나아가서는 노회에 서도 채택하여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과 통합측 총회 에서는 부결되기는 했으나 앞으로 검토할 여지를 남겨 두었다는 사실을 볼 때 우리 교단도 총회와 노회 등의 선거제도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는 바이다. r 양 교단이 하나가 된 후의 우리 교단은 내년 4월 봄노회와 9월 총회의 임원선 거가 은혜롭고도 원만하게 치루어지느냐의 여부에 따라서 그 하나됨의 결속도 와 분위기가 결정될 것이라고 예상된다. 즉 임원선거 결과 어느 한쪽이 소외 되거나 혹은 심한 불균형을 이루게 되면 그것이 의도적이든 아니든 서로를 의 심하게 되고 경계하는 일이 생겨서 자칫 잘못하면 고의적인 편가르기나 그 정 도는 아니라도 분위기가 어색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우려 가 한낮 쓸데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합동을 했던 교단들이 동일한 문 제 때문에 결국은 다시 헤어지고 갈라진 전례를 볼 때 분명해진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우선 필자는 필자가 소속되어 있는 경기중노회에서 개정 한 임원선거제도를 소개하는 것이며, 아울러 차후 기회가 주어지면 성경적이 고 합리적이면서도 실용적인 선거제도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제안을 하고자 한다. 경기중노회에서는 다음과 같은 선거제도를 채택함으로 앞에서 말한 염려를 상 당 부분 해소하게 되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모든 임원은 임원추천위원회에서 추천하여 노 회에서 과반수의 찬성을 받은 자로 한다. 둘째, 후보추천은 단수로 하든 복수로 하든 추천위원회의 결정에 따라서 한 다. 셋째, 노회에서의 선거는 노회에서 결의한 투표방법으로 한다. 즉 기표로도 할 수 있고, 거수로도 할 수 있다. 넷째, 임원추천위원은 공천부에서 공천하되 그 구성은 증경노회장 중에서 3인 (선임자 순서), 3개 시찰회 전임시찰 중에서 각 1인씩 3인(선임자 순서), 전 임 회계장로 중에서 3인(장로 부노회장이 있을 경우 장로 부노회장 중에서) 이렇게 모두 9명으로 한다. 경기중노회의 경우 위와 같은 규칙에 따라 금년 봄노회 임원선거에서 다음과 같은 유익을 얻었는데, 첫째는 선후배 순서를 적절히 살리고, 둘째는 시찰별 안배가 이루어지고, 셋째는 타교단에서 가입한 회원들의 안배가 이루어지고, 넷째는 각 후보를 다수로 추천하고 노회원이 만장일치로 찬성하여 실질적으 로 임원선거에 소요되는 시간이 10분 정도 밖에 안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선거제도는 40여명이 새로 영입된 후 열리는 내년 봄노회 때 더욱 그 가치를 나타낼 것이 틀림없다고 확신한다. 모든 노회 그리고 우리 총회가 성경적이고, 민주적이고, 합리적이고 또한 실 용적인 새로운 선거제도를 찾는데 긍정적이고 진취적이기를 바라마지 않는 바 이다.
100 no image 어거스틴(Augustine)의 눈으로 본 교회의 연합-이홍년목사
rpress
2911 2001-11-22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_special/leehon.hwp어거스틴(Augustine)의 눈으로 본 교회의 연합 이홍년 목사/ 광양산수교회 우리 교단의 오랜 준비와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 모든 이해 타산의 벽을 넘 어 장신교단과 우리 교단이 하나가 된 것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한 생명에 연결된 모든 교회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오직 하나의 교회이며, 통일 된 한 생명체인 까닭에 서로 연합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기에 우리 교단은 향후에도 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으로 보이 고 또 마땅히 그리하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교회의 연합과 일치는 반드시 신 앙고백의 동질성과 교리적 일치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하나님의 아 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됨"(엡 4:13) 이 교회가 표방해야 할 진정한 하나됨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에서 어거스틴(Augustine)의 행적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 다. 어거스틴은 도나티스들과 맹렬히 싸웠다. 그들은 완전주의 교회관을 내세 우면서 자신들만의 세례가 유효하고, 그들의 교회만이 참 교회라고 주장하여 교회의 통일성을 부정하는 분파주의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지상의 교회는 그 자체에 가라지와 알곡을 함께 담고 있는 까닭에 결코 완전할 수 없으며, 세례 는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시고 친히 베푸시는 까닭에 그 자체로 유효하다는 영 적인 깊은 통찰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거스틴이 오직 분파주의자들과만 싸운 것은 아니다. 그는 한편으로 는 도나티스트들을 경계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수많은 이단들을 대항하여 쉼 없이 싸웠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펠라기우스와의 논쟁이다. 도나티스 트가 완전주의 교회관을 주장하면서 교회의 통일성을 부정한 반면, 펠라기우 스는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주권의 절대성을 공격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구원 방식에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보다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더 강조하고 악 을 행할 자유와 선을 행할 자유가 동등하니 인간은 얼마든지 선을 행함으로 써 구원을 획득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그러니 그의 가르침은 자연히 인간의 자유에 절대 의존적이 되었고, 반대로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이 크게 침해를 받았다. 따라서 복음 의 도리를 밝히 깨달았던 어거스틴은 이 또한 맹 렬히 싸워야할 대상으로 지목하고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예정) 과 은혜로만 가능하다고 했다. 어거스틴은 결코 완전주의 교회관을 갖지는 않았지만 교회를 교리적으로 순결 하게 보존하려는 노력을 결코 게을리 하지 않았다. 만약 이 때 어거스틴이 이 러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지 않았다면 향후 기독교의 운명이 어떻게 되었 을까? 도나티스트들을 경계하여 교회는 화해와 일치의 길로 갈 수는 있었겠지 만, 복음의 순수성은 깨뜨려지고, 교회의 순결은 파괴되고 말았을 것이다. 갈 라디아 교회들에 유대주의의 망령이 들었을 때, 이에 대항하여 맹렬히 싸웠 던 사도 바울의 눈물겨운 투쟁이 없었다면 그 때 이미 기독교는 유대주의의 한 분파로 전락하고 말 뻔하였듯이, 펠라기우스에 대항한 어거스틴의 도전이 없었다면 하나님은 인간의 의지에 끌려 다니는 보통 신(神)으로, 기독교는 인 간의 부름과 요청에 부응하는 보통종교로 전락하고 말았을 것이다. 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위하여 뜻을 결집하고 교단 전체가 한 덩어리가 되어 맹렬한 기세로 달려가더라도 잠깐의 여유와 자성(自省)이 필요한 이유가 바 로 여기에 있다. 오늘 우리에게 어거스틴의 균형이 필요하다. 모든 것을 현상 적인 결과에만 의존하여 평가할 것이 아니라, 무엇이 하나님의 교회를 비로 소 교회 되게 하는지 심사숙고하는 노력이 아쉽다. 믿음을 가졌으되 인간이 연약하여 넘어진 형제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하면서도 동시에 교회를 진리 안에서 순결하게 보존하고자 애썼던 큰 스승의 흔적이 그래서 이 시대에 더 크게 남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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