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79 no image 진실을 들을 줄 아는 사람이 그립다-권형록 목사(안산푸른교회)
rpress
4087 2001-07-26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_special/guan.hwp진실을 들을 줄 아는 사람이 그립다 권형록 목사(안산푸른교회) 양심의 표현을 하기 어려운 시대가 지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시대 로 들어오면서 과거에 감추어졌던 억울한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움직임들이 있다. 얼마전 모방송국에서 의문사 당한 이의 진실을 찾고자 동료들이 목숨 을 건 투쟁을 하여 그 진실이 어느 정도 드러난 사건이 있었다. 그러나 분명 히 밝혀진 고문과 살인사건이면서도 그 당시 고문을 한 사람들은 모두 그 사 실을 부인하거나 멀리 이민을 갔으며, 더욱 더 어렵게 된 것은 사건의 공소시 효가 지나서 더 이상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된 것이다. TV에서는 그들의 이름 을 공개하는 것으로 의문사 당한 이의 억울함을 대신하였다. 방송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세상에 숨겨져 있던 진실을 밝히려고 할 때, 세상은 그 진실을 향하여 저항을 거세게 한다. 왜냐하면 그 진실로 인하여 세 상은 치부가 드러날 뿐만아니라 자신의 생존의 위협을 당하기에 세상은 그 진 실에 대하여 저항하는 것이다. 나는 TV의 내용을 접하면서 진실을 주장하고 밝히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지 새삼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이 한 낱 세상 속에 있는 현상에 국한될까? 참된 진리를 말해야할 기독교에는 없을 까? 한 도시의 변두리에서 작은 교회를 섬기는 나에게도 진리를 소중히 간직 해야할 교회들이 진리를 외면하는 모습을 쉽게 느끼는 것은 나의 부정적인 시 각으로 오는 것일까? 목회를 의욕적으로 하시는 분들이 종종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이 떠오른다. 신 학교 교수들처럼 목회하면 교회가 부흥되지 않는다고. 일리가 있는 말이다. 내가 신학교를 졸업하면서 교회를 개척하고 어려운 목회를 만8년째가 된다. 내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함에서 오는 시행착오를 생각해 볼 때, 한편 그 분들 의 말씀이 이해가 된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지워지지 않는 안타까 운 마음은 경건한 선생님들께서 일평생 지키고자 하였던 진리와 진리로 인한 진실이 부정되는 것을 느낄 때, 그 말에는 엄청난 독소가 있는 것이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타락한 역사를 볼 때, 그들이 심하게 타락하는 과 정이 종교적인 행위가 사 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종교적인 행위는 더해지 는 것을 보게 되며, 이에 반하여 그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 즉 진리에 대하 여는 희미해져 가는 것을 본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과연 굳게 지켜야할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 의 진리이고 진리를 지키고자 노력해 왔던 교회의 진실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종교적인 상황도 서두에 언급한 방송의 내용처럼 진리와 진실을 지키 고자 할 때 세상에서 오는 저항이 너무 크다.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에 대하여 염두할 것이 있다. 진리가 밝혀지는 것은 진 리를 소유한 자로 인하여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시대에 하 나님의 진리를 진지하고 객관성이 있도록 드러내고자 하며, 진리를 고집하며 지키고자 하는 분들이 있다면, 우리는 그 분이 우리 시대에 있음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외모가 못생겼다고, 학벌이 없다고, 내 지역의 사람이 아니라 고, 그리고 목회에 도움이 안된다고 배제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진리를 지켜 온 그 분들의 소리를 알아듣지 못하는 자신의 무지를 주님 앞에 겸손하게 회 개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당장 알아듣지 못하는 천상(天上) 의 소리를 대하여 도, 그 분이 하나님 진리를 위하여 온전히 지키고자 한 분이라면 우리는 겸손 하게 그 소리를 들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 외치는 소리에 하나님의 뜻이 담겨 져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오늘날처럼 시대가 혼탁할수록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하나님의 편에서 외치는 소리를 갈망하게 되며, 그 가치를 느끼게 되어있다. 하나님의 진실은 세상이 즐거운 마음으로 받지 않는다. 세상은 자신의 수치 와 기득권 때문에 그 진실을 외면하거나 저항한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루시 는 세계는 그 진리와 그 진리로 인한 진실만이 드러날 것이다.
78 no image 제비뽑기에 대한 성경적 연구-이화영 목사(남노산교회)
rpress
3641 2001-07-26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_special/lee-2.hwp제비뽑기에 대한 성경적 연구 이화영 목사(남노산교회) 오늘 날 교계일각에서 제비뽑기로 담임목회자를 선택하고 총회의 임원을 선 택하자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참으로 일리가 있고 신선한 의견임에는 틀림 이 없다. 목회자선택이나 임원선택 때문에 심심하지 않게 잡음이 생기는 것 을 볼 때 제비뽑기를 시행하는 용단과 지혜를 발휘하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성경을 보면 제비뽑기는 아무 때나 시행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가 있 다. 그러므로 제비뽑기를 시행하는 데는 반드시 성경적인 이해가 있어야 하 며 제비뽑기를 적용하는 일에 매우 신중을 기해야 하는 것이다. 성경을 보면 제비뽑기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기 어려운 중요 한 일이 생겼을 때나 지도자가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중요한 일이 생겼을 때 만 시행한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모르면 언제든지 제비 를 뽑으라고 가르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다음은 성경이 보여주는 제 비뽑기의 실례 중 일부이다. 1)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이성 공격을 실패한 후에 그 실패원인이 범죄자가 있었기 때문인 것을 알았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범죄자가 누구라고 가르쳐 주지도 않고 확실한 증인도 없자 여호수아는 하는 수 없이 제비를 뽑아서 범 인을 찾아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서 아간이 뽑혔다. 2) 가룟 유다가 죽었을 때 사도들은 가룟 유다의 자리에 누구를 앉힐 것인가 를 알 수 없었다. 너무나 훌륭한 주님의 제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사도들은 하는 수 없이 성도들에게 훌륭한 사람 중에서 두 명을 추천하라고 하여 추천을 받은 후에 그 두 사람을 놓고 제비를 뽑아서 가룟 유다의 자리 를 대신하게 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밝히 알 수 있을 때나 사 람이 판단하기 쉬운 일일 때는 제비를 뽑을 필요가 없이 그냥 사람들이 판단 해서 시행하면 된다고 말씀하셨다. 다음의 성경말씀이 이 사실을 분명하게 증 거한다. [겔 24:6]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피흘린 성읍,녹슨 가마 곧 그 속의 녹을 없이 하지 아니한 가마여 화 있을진저 제비 뽑을 것도 없이 그 덩 n이를 일일이 꺼낼지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어느 성읍이 분명하게 많은 죄를 범하자 그 성읍의 심판 여부를 제비뽑아 알아낼 것도 없이 심판을 시행하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뻔 한 일을 놓고 왜 제비를 뽑느냐는 것이다. 다음은 밝히 알 수 있는 일을 놓고 제비를 뽑지 않고 처리한 경우이다. 1)다윗은 정부의 요인들을 뽑을 때 제비를 뽑지 않고 기도하면서 지혜롭게 임명을 했다. 이로 볼 때 임명제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도임을 알 수 있 다. 2)바울과 바나바는 마가를 전도여행에 데리고 가는 문제로 의견대립이 생기 자 제비를 뽑아 결정하지 않고 각자의 판단에 따라서 동행전도자를 선정했 다. 성경을 사람들이 밝히 알 수 없는 일이라고 해도 어지간한 일은 제비뽑기를 하지 말 것을 가르치고 있다. 예를 들면 성경은 일반적으로 범인을 결정하는 일은 증인을 세워서 결정하라고 하였지 제비뽑기로 결정하라고 하지 않은 것 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이 왜 뻔한 일을 놓고 제비를 뽑지 못하게 하시는가? 추측하건대 다음 과 같은 이유 때문일 것이다. 1) 분명하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데도 제 비 를 뽑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우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고, 2) 분명한 일을 놓고 제비를 뽑는 것은 일종의 직무태만일 수도 있기 때문이고, 3) 분 명한 일을 놓고 제비를 뽑는 것은 시간과 인력의 낭비일 수도 있기 때문일 것 이다. 이상의 증거들을 볼 때 제비뽑기가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좋은 제도임에 는 틀림없으나 제비뽑기는 극히 제한된 범위 내에서만 시행해야 하는 것임을 알 수가 있다. 그리고 제비의 남용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므로 제비의 남용은 반드시 경계를 해야 할 일임을 알 수가 있다. 단순한 일이나 사람들이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은 기도한 후에 사람들의 판단으로 결정하는 것이 하나님 의 뜻임을 알 수가 있다. 그러므로 오늘 날 널리 시행되는 투표제도도 반드 시 나쁜 것이 아니고 대부분의 경우에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제도임을 알 수 가 있다.
77 no image 개혁신보의 진로를 진단한다-정보화시대의 개혁신보의 역할/ 진상철목사
rpress
2618 2001-07-12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_special/jin.hwp정보화 시대의 개혁신보의 역할 진상철 목사 1. 서론 지금 우리는 전국민 컴퓨터시대를 맞고 있다. 어디를 보아도 온통 인터넷소식 이다. 전세계가 인터넷으로 정보를 교환하고 인터넷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어 떤이들은 컴퓨터는 666, 마귀의 산물, 사회의 큰 문제를 일으킬 것이요 성령 이 없으며 인간의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다는 부정적인 시각의 의견들을 내놓 고 있다. 또한 세상사람들이 정보화시대를 외치며 정보의 중요성을 이야기하 니까 교회도 괜히 떠드는 것이 아니냐하는 생각도 해왔다. 2. 정보화 시대 일반적으로 '정보화시대' '정보화사회'란 단어는 1950년대 컴퓨터가 발명되면 서 주어진 우리사회의 특징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는 그의 저서 "제3의 물결"에서 농업시대에서 공업시대로 이어 정보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즉 정보시대는 제3의 물결이라고 정의했 다. 정보사회란 전기통신과 컴퓨터의 발달 새로운 정보기술과 정보수집, 처 리, 축적, 전달능력이 획기적으로 바뀌어진 '정보환경사회'를 의미한다 3. 정보화시대 교회 정보라는 것은 어떤 특정상황에 있어서 가치가 평가된 자료로서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는 지식을 의미한다. 이젠 한국교회도 정보화의 거센 도전에 방관자가 될 수 없다. 1) 복음의 가치와 신지식을 신속하게 전하는데 정보화는 필수 불가결하 다. '정보화'로 영혼을 구원해야한다. 2) 교회 정보화는 특히 교회 규모에서도 큰 교회일수록 더 필요하다. 3) 오늘날 정보화시대의 교인들은 단조로움보다 다양함 속에 특별하고 차별 화된 프로그램을 원하고 있다. 예배, 성경공부, 교육, 선교, 신학. 사회, 신 앙, 뉴스, 종교, 이단, 음악, 전도활동, 광고등 다양한 정보를 원한다. 이런 정보화시대의 교회와 신문의 역할은 하나님나라의 확장과 영혼구원에 있으며 기독신자로써 기독문화를 창달하는데 있다. 4) 목회자를 위해 정보화가 시급하다. 교역자들이 컴퓨터를 이용하여 설교, 신학, 전도, 주보작성, 교인관리, 새로운 목회정보, 미래의 목회관등을 교인 r 들에게 제시해야 한다. 4. 총회기관지의 신문의 역할 우리는 오늘날 더욱 초고속 스피드 사회에 살고 있다. 지구촌의 많은 정보와 소식이 더욱 빠르고 정확하게 쏟아져 나오며 보도되고 있다. 가상 공간 속의 정보의 파도가 출렁이고 있는 요즘 우리 총회신문은 격 주관지로서 다른 신문 들보다 항상 늦게 발간되며 지나간 사건들만을 보도하니 그만큼 정보의 가치 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 옛날 어둡고 무지한 백성들을 일깨워주며 일본과 러시아제국과 매국노를 규탄했던 국민의 대변지인 한성순보, 황성신문, 독립신문, 만세보, 대한신 문, 제국신문등은 개항이후 어둡고 무지했던 우리 민족에게 커다란 파문을 일 으키며 새로운 지식과 개혁정신을 깨우쳐주었고 예수교 전파에 앞장서는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오늘날 신문들속의 보도되는 대부분의 불쾌한 기사들은 황금만능주의 로 나가게 만들고 도덕적 가치, 종교적 가치를 무의미하게 만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총회기관지인 개혁신보는 더욱 정보화가 시급하다. 주간지가 아닌 격 주관지로 뒤늦게 나오는 신문의 사정을 감안한다면 먼저 전문 기술 을 갖춘 전문 사역 직원 들의 필요와 그들의 발빠른 사역이 요구된다. (현 사 랑의 교회 인터넷방송 직원은 12명이다.) 우리 개혁신보가 정보화시대에 있어서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기다려지며 신속 한 신문, 다양한 신문, 차별화된 신문이 되려면 경영과 편집이 구분되어 경영 은 신문이 나오는데 도울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주고 편집은 전문 지식 직원 으로 정보화시대의 걸맞은 신문을 발간하는데 있다. 또한 인터넷신문 상에서 최신 긴급뉴스 및 각종소식을 전하려고 할 때 정보화 시대에 맞는 인터넷신 문을 만들기 위하여 더욱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행정 및 제도 개선이 세워져 야 한다. 이제 인터넷 개혁신보는 독자들을 위해 교계뉴스, 교단뉴스, 국제뉴스뿐 아니 라 교육, 선교, 문화, 문학, 예술, 신학, 신앙, 칼럼, 사설, 논평, 만평, 성 경공부, 특집, 큐티, 역사, 독자란, 광고, 각종행사, 유머, 탐방, 목회자료, 이단, 설교, 도서안내, 교양, 추천사이트, CCM, 주소록등등 인터넷상의 장점 을 이용하여 보다 다양하고 새로운 신문으로 개혁되야 하겠다. 5. 결론 이 시대의 문제점들. 과잉정보, 사생활침해, 인간소외, 개인주의, 쾌락추구 등 정보화 에 의한 폐단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점들을 잘 극복하여 개혁적, 도덕적, 복음적인 정보로 대 응한다면 기계에 의한 정보도 결코 나쁜 것만은 아니다.
76 no image 개혁신보의 진로를 진단한다-21세기와 기독교 언론/박병은 목사
rpress
2724 2001-07-12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_special/pak.hwp21세기와 기독교 언론 박병은목사 언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하여도 부족함이 없다. 사건에 대한 보고의 기능뿐 아니라, 보다 요긴한 정보를 제공하고, 방향을 제시하며, 문제의 대안 을 제시하는 장을 마련하는 등 다양한 기능이 있을 것이다. 특히 기독교언론 이 갖고 있는 성격과 목적은 성경에 근거를 둔 확고한 고백을 토대로 이 사역 이 이루어 질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개혁장로교회의 전통이 하나님 의 말씀에 확고한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그 말씀에 의하여 우리의 신앙과 삶의 목적과 목표를 분명히 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마땅히 기독교언론 역 시 이러한 고백과 확신 속에서 앞에서 언급한 언론의 기능을 이루어 가야하리 라 생각된다. 이것은 신문이 단순히 벌어진 사건의 보고와 홍보 및 다양한 정 보만을 제공할 뿐 아니라, 분명한 신앙적 시각 속에서 소식과 정보와 방향을 제시해야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명을 보다 효과적으로 감당하기 위하여서 는 다음의 몇 가지 점들을 의식하고 사역에 임하여야 할 것이다. 먼저 교단지로서의 정체성을 찾는 일에 주력하여야 한다. 우리는 웨스트민 스터신앙고백(Westminster Confession)을 채택하여 고백하는 교단이다. 언론 은 우리의 정체성(Identity)을 항상 분명하게 제시하여 주어야 한다. 먼저, 신문 이사회 회원들이 교단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인식한 이들로 채워져서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재정적인 지원뿐 아니라, 마땅히 언론이 감당하여야 할 사명을 위하여 희생적인 참여가 있어야 한다. 실무진 역시 바른 신앙 고백 을 한 실력있는 이들이 독립적인 사고와 능력이 보장된 분위기 가운데서 사역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물론 교단지라고 하는 한계성을 안고는 있지만, 이 역 시 교단내의 분명한 목소리들이 다양하게 말해질 수 있는 분위기가 보장되어 야 한다. 단순한 홍보의 기능만을 강조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는 일일 것이 다. 두 번째는 개혁 교회를 바르게 세우기 위한 다각적인 방안을 제시하여야 한다. 개혁신앙을 표방한 언론은 개혁신앙과 신학 그리고 개혁 교회를 항상 생각하 여야 한다. 주지하 는 대로 오늘날 개혁 교회의 추락 현상은 심각하다. 무조건 적인 모방은 원칙을 무시하게 만들고, 지나친 경쟁의식은 원리를 진지하게 의 식하지 못하게 한 채 쉽게 헌신짝처럼 버리게 만든다. 무조건적인 수입과 모 방으로 첨단의 길을 가고 있다는 자만과 유행을 따라야 소위 성공할 수 있다 는 세속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러한 의식과 유행은 교회를 세속화하는 데 일조 한다. 문제는 언론이 이러한 상황의 변화를 신속하게 감지하여 전문가들 에게 신학적인 분석과 방향을 제시하는 등 신속한 대안을 제시해 주어야한 다. 말로는 개혁교회라고 하지만, 개혁신앙을 전수하는 원리와 방법을 모르기 에 어떻게 해야하는 지를 알지 못한다. 언론은 교회 세속화의 경향들을 관 찰, 분석하여 분명한 방향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개혁 신앙적 자료와 방법들 을 연구, 소개하게 하여 교단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항상 말씀 위에선 개혁신 앙의 원리가 잘 접목될 수 있는 실천적인 방안들이 논의되도록 하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역사적 개혁신앙의 유산과 정통 그리고 현 상황을 소개하여 전 세계의 개혁교회들과 긴밀한 유대감을 갖고 교회를 세워가도록 힘써야 한다. 개혁교회의 추세는 점점 더 미약해져 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지금도 세 계 곳곳에서는 진지하게 역사적 개혁신앙에 근거를 둔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힘쓰는 곳들이 많이 있다. 언론은 당연히 세계의 개혁신학의 역사와 전통 그 리고 교회 정치 형태와 협의체, 나아가 그 교회 성도들의 삶의 모습들을 소개 하여 교단내의 교회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바른 개혁교회를 세워 가도록 힘써 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이들과 깊은 교류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 같은 신 앙 공동체의 의식을 가지고 보다 성숙된 교회를 이루어가도록 해야 할 것이 다. 본지가 개혁신앙을 확실하게 대변하는 언론 매체가 되길 기대한다.
75 no image 개혁신보의 진로를 진단한다-교단의 미래와 개혁신보의 역할/김종렬목사
rpress
2211 2001-07-12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_special/kjy1.hwp교단의 미래와 개혁신보의 역할 김종렬 목사 요즘 시중에 ‘교회가 죽어야 예수가 산다’는 책이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킨 다고 한다. 이 시대의 교회는 세속의 욕심에 사로잡혀 예수님의 십자가와 영 광을 왜곡시킨 모든 일을 깊이 회개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20여년 전 교회의 교회 됨을 위하여, 하나님의 하나님 됨을 위하여 세 가지 바른 ‘신학, 교회, 생활’의 가치를 드높였다. 이 일을 하는 우리 의 최선의 자세는 우리부터 끊임없이 개혁하자는 목소리를 잊지 않는 것이 다. 우리 교단의 정체성은 무엇보다도 ‘바른’이 최고의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자기 성찰을 통한 성실한 ‘개혁’과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순교를 각오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 일에 균열이 생길 때 필연적으로 그 동안의 성 과가 무의미하며, 교단의 정체성에 극심한 혼란이 오고, 조직의 급속한 와해 를 초래할 것은 분명한 일이다. 필자는 노회의 각종 모임에 참여하며 우리에 게 이런 일이 언제 닥치지 않을 까? 염려가 된다. 그동안 우리는 형제의 깊은 정을 나누었으며 지체의식의 동 질감을 가지고 서로 격려하며 도왔다. 우리는 아직까지 서로에게서 순전함과 진실함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앞으로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몇 년 전에도 있었듯이 지금 우리교단은 타 교단과 연합을 논의하고 있다. 연합에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있다. 그러니 무분별하고 성급한 연합 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 가장 큰 문제의 발생은 양 교단의 정치하는 사람에 게 있다. 이 분들이 그나마 순수하게 정치를 하느냐 아니면 권력의 시녀가 되 는냐는 교단의 세력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고린도교회에는 바울 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가 있었다. 이들에게 사도바울이 제시하는 강력한 해법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였으며 그 결과 성령님의 나타나 심이었다. 교단이 연합하여 더 많은 교회 수가 된다하여도 만약에 한 지붕 안에서 수 많 은 파당을 형성하여 표류하게 된다면 좋은 구실의 연합은 오히려 사탄의 간교 한 술책이 된다. 그러나 교회 수는 많지 않을 지라도 예수 그리스도 와 십자가 로 하나 되고 성령님 능력의 역사로 우리의 사명인 ‘바른’과 ‘개혁’과 ‘하나님의 영광’에 매진한다면 한국 기독교 역사에 의미있는 발전을 가져 다 줄 것이다. 필자는 교단과의 연합운동은 집단적으로 교단적으로 하지 말고 문호는 넓게 개방하되 개별적으로 소그룹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그들이 노회 의 지도를 받으며 자연스럽게 동화되고 세력싸움을 하지 않게 된다. 최근에 힘들게 교단이 연합했다가 쉽게 다시 분리하는 일이 다른 교단에서 있었다. 그러니 교단에서 일어나는 제반 모든 중요한 사항은 신문을 통하여 충분히 공 론화 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단의 일은 기독교개혁신보를 통하여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물어 지혜를 모으고 공감대가 형성되어 일을 추진해야 한 다. 그래야 후유증이 없다. 우리가 더욱 개선해 가야 할 것 중 하나가 공감대 의 형성이다. 공감대가 부족하면 소외감을 느끼고 하나됨의 통일성이 저해된 다. 보다 많은 교회의 관심과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교단에서 하는 모든 일 은 신문을 통하여 심층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 기록된 성경을 통하여 우리 의 생각을 하나로 모아가듯 신문을 구심점으로 하 여 우리의 목표점을 재확인하고 생각들이 구체화되어 말하는 자나 침묵하는 자에게 책임의 소재가 있고 또 역사적 자료를 삼을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기독교개혁신보가 우리 교단의 미래를 선도하는 역할을 감당하 는 신문으로 더욱 발전해야 할 것이다. 본보의 발전과 함께 그 역할을 다하 여 지면을 통하여 우리 모두 활발한 사귐이 있고 기쁨이 충만하게 되기를 소 망한다.
74 no image 찬송 어떻게 해야 하는가?-예배와 악기/이종연 목사
rpress
2709 2001-06-28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_special/pralee.hwp개혁주의에서 예배에 속한 찬송의 정의 이종연[서울진명교회 목사] 교회를 개혁한 쟝 깔뱅은 여러 곳에서 "결과보다 원인이 선재한다"고 힘주 어 가르친다. 주류의 신학과 신앙을 계승한 그의 가르침을 이어받은 이른바 개혁주의(칼빈주의)에서 볼 때 모든 방면에서 원인, 원천, 근거, 기본에 얼마 나 충실해왔는지 두렵다. 특히 교회의 여러 규례 가운데 예배모범, 그 가운데 서도 역사적 찬송을 계승하여 과연 우리는 어떤 열매를 내는지 자못 궁금하 다. 교회 개혁의 열매는 한 사람이 한 시대에 모두를 드러내지는 못하지만, 당 대를 놓고 생각하면 "교회는 언제나 개혁되는 것으로 있다"는 원리에서, 개혁 은 예배에서 언제나 온통 드러난다. 무엇보다도 성경을 겨레말로 직역하는 일 과 그리스도의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로서 찬송 드림, 두 방면에서 열 매로 나타내야만 한다. 이 열매야말로 신학의 열매이며 거룩한 이들의 사회에 서 중심이 아니겠는가! 성경과 찬송, 이 두 요소는 예배에서 핵심인데 자칫 이것을 다 아는 것으 로 여기거나, 더 이상 알려고 하지 않는 부패한 면역성에 빠지면 개혁이 아니 라 배교하는 상태에 접어든다. 그래서 두 요소 가운데 '찬송'에 대하여 무엇 보다 성경에서 그 뜻매김(정의)을 살펴서 개혁주의 예배를 개혁함에 한 걸음 내딛어야 할 것이다.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말씀하시니 반석 위에 교 회를 세우자. "이 백성을 나는 나에게 빚었도다 내 기림(찬송)을 그들은 얘기하겠노 라"(사 43:21. 필자 역). 이사야가 43장에서 우리에게 가르친 이 말씀은 평행 법과 도치법을 가지고 있어 그 문장이 매우 힘차 보인다. 한글 개역 성경에서 는 '얘기하다'를 '부르다'로 틀리게 옮겼다. 매우 작은 문제를 꼬집었다고 볼 지 모르나, 계시의 속성에서 보더라도 두 말이 얼마나 큰 차이를 가져오겠는 가? 성경 원문으로 찬송의 진수를 찾아보면 얼마나 우리가 모르거나 그릇되 이 아는가 놀라리라(깔뱅도 '얘기하다'로 옮겼다). 개역 성경에서 '찬송'에 상당하는 낱말들을 찾으면 한글로는 10가지 이상 찾기 어려운데 바른 원어 성경에서는 50가지가 넘는다. 따라서 우리가 그동 안 예배에서 찬송을 얼마나 신령하게 합당하게 드릴 수 있었겠는가? 누가 이 것을 제대로 가르쳐왔는가? 이제는 이 물음에 대답할 때가 되었다. 찬송 방면 에 타락과 무지는 예배 의식을 망가뜨리고 나아가 교회관을 무너뜨린다(참 조, 바른 찬송, 도서출판 깔뱅). 찬송은 계시이다. 또한 찬송은 은혜의 결과를 원천이신 성 삼위일체 하나님 께 드림의 대표적 방편이다. 하나님은 창조와 구속을 통한 계시를 성령님의 역사로 교회에게 맡기셨다. 따라서 마땅히 계시의 말씀을 먼저 찬송의 내용으 로 받아야 한다. 계시를 맡은 선지자와 사도의 찬송관을 보라! 더욱이 말씀 봉사자라면 찬송에도 똑같이 대해야만 한다. 아무나 찬송시를 만들 수 있는 가? 말씀 선포에 대한 객관적 능력을 구비한 사람이라야 한다. 말씀을 찬송하 라고 온통 외치시는데 어찌 찬송을 경시하거나 내용도 아무렇게나 누구나 만 들 수 있는 것으로 무시하는가? 찬송은 은혜의 결과이며 동시에 은혜의 방편이기도 하다. 흔히 말씀 선포 나 성례, 기도 등을 은혜의 수단이라고 하지만, 예배모범을 보더라도 전주에 n서 후주에 이르기까지 찬송이 얼마나 중요한가? 그것은 역사적인 개혁신조를 보아도 얼마나 찬송을 중시하는가 알 수 있다. 도르트레히트 대회 결의에서 는 찬송으로 시편을 부르고 일반 찬송은 가능한 줄이자고 했다. 웨스트민스 터 표준 문서에서도 시편 찬송에 대하여 핵심을 강력하게 가르친다. 같은 신앙고백을 전제하고 같은 교회관과 성경관을 앞세워야 한다. 교회의 속성을 전투하는 교회로서 마땅히 드러내되 드림의 절정이요, 입술의 열매로 서 찬송의 제사를 당대에 개교회마다 언제나 마땅히 드려야 한다. 교회로서 보편한 사명에 참여하여 은혜의 결과를 헤아려 알아서 하나님께 검증된 말씀 을, 거룩한 공회에서 계승받은 개혁파 예배의 찬송으로 드려야 한다. 결과보 다 원인 선재한다!!!
73 no image 찬송 어떻게 해야 하는가?-예배에서의 바른 찬송의 자세/하광영 목사
rpress
2658 2001-06-28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_special/praha.hwp 예배에서의 바른 찬송의 자세 하광영 목사 구원받은 성도들의 전 삶이 하나님을 향해 드려지는 예배이지만 그것은 시 간과 공간을 정하여 드려지는 공적인 예배와 일상적인 삶을 통하여 드려지는 삶의 예배로 나누어진다 할 것이다. 이 두 성격의 예배는 동떨어진 것일 수 없으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러나 온 성도들이 함께 모여 드리는 예배 는 삶의 예배보다 더 공적인 성격을 갖고 있으므로 예배 중에 불려지는 찬송 도 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드려져야 한다. 찬송을 어떤 자세로 드려야 할 것인가 생각할 때 먼저 귀기울여야 할 말씀 은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히13:15)라고 생각된다. 찬송 을 '찬미의 제사'라고 하심으로 찬송을 하나님이 제사로 받으신다고 하신다. 분위기를 잡기 위한 방법이나 성도들의 마음을 북돋우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님께 올려지는 제사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자주 잊어버리 는 일 이 아닌가? 지금 우리의 찬송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려지고 있는 가? 제사에는 두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다. 제사 드리는 사람과 제물이다. 고 라 일행이 자격 없음에도 불구하고 분향을 하려다 망한 일과 나답과 아비후 가 다른 불을 드리다가 심판을 받고 만 사건은 제사는 자격 있는 사람이 드려 야 함을, 그리고 자격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주님이 원하시는 제물을 가지 고 드려야 함을 가르치신 것이다. 결국 온전한 대제사장이오 흠 없는 제물이 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신 것이다.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주님께 나아가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고 해서 신약의 예배에 무제한.의 자유가 주어진 것은 아니다. 예수님을 믿고 난 후 율법을 벗어버리지 않고 사랑함으로 준행하는 것과 같이 주의 백성으로 받아들여진 성도는 주님이 이미 계시해주신 제사의 원리를 버리지 않고 도리어 주님이 원 하시는 제사가 무엇인가를 궁구하여 드리려 한다. 제사 드리는 사람이 중요함을 찬송에 대입할 때 그리스 도를 자기 마음에 주 로 고백하는 사람이 찬송을 제사로 드릴 자격자라 할 것이다. 구원과 상관없 는 사람이 음악 활동의 한 방편으로 부르는 노래라면 아무리 아름답고 음악적 으로 훌륭하다 해도 주님과 상관없는 노래가 될 것이다. 구속의 은혜를 감사 하는 마음으로 부르는 성도의 찬송이 제사다. 제사를 드리는 사람과 함께 제물도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되어야 한다. 찬 송의 제물은 대개 가사와 곡조로 이루어져 있다. 가사는 신학적으로 정당해 야 한다. '천국이 없어도 좋아요' 라는 복음송이 불려진 적이 있다. 자신의 마음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를 강조하려 했다고 감안하더라도 이런 노랫말은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것이다. 또한 지나치게 개인적이어서 다른 사람은 왜 이런 가사를 불러야 하는지 모른다면 공적으로 드리는 예배에는 합당치 않 다. 모든 성도들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가사로 지어져야 한다. 문학적으 로도 잘 다듬어져야 함은 물론이다. 가사를 살펴보아 우리의 신앙 고백과 걸 맞는 것인지 분별하는 이런 작업이 필요하다. 그렇게 분별되어진 가사를 가지 고 우리 마음을 담아 부르는 것이다. 찬송에 있 어서 가사는 곡조보다 훨씬 중 요하다. 곡조는 가사를 잘 표현한 것이어야 한다. 건전한 선율과 경박하지 않은 리 듬, 거슬리지 않은 화성으로 이루어진 곡이 바람직하다. 예컨대 '어둔 죄악 길에서' 같이 부점이 심하여 지나치게 육적 흥겨움을 주는 곡조는 삼가는 것 이 좋다. 곡조에 무슨 선악이 있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물감 이나 붓에는 선악이 없지만 그것으로 그림을 그리면 명화가 나오기도 하고 저 질 그림을 그릴 수도 있듯이, '가나다라'에는 선악을 따질만한 것이 없지만 일단 그것으로 글을 쓰면 사람을 선한 길로 인도하는 좋은 글도 나오고 타락 하게 만드는 악한 글도 나오듯이 '도레미파'에도 선악이 없지만 그것으로 곡 조를 만들면 좋은 음악인지 아닌지 드러나게 된다. 교회 음악 특히 예배 음악 을 젊은이들의 취향에 맡겨둘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분별하는 작업을 목회자 와 신학자와 교회음악가들이 감당해야 할 일이라 생각된다. 우리 믿음에 합당 한 신령한 가사와 건전한 곡조로 된 제물을 가지고 주의 은혜를 묵상하고 감 사하며 부를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제사로 드려질 것 이다.
72 no image 찬송 어떻게 해야 하는가?-예배와 악기/이종섭 목사
rpress
2922 2001-06-28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_special/prajon.hwp예배와 악기 이종섭 목사/ 푸른교회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이 영광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유형 무형의 형식이나 도구들을 사용해야 한다. 예배시간에 사용되는 것들은 하나님께 집중하게 하거나, 그것을 사용함으로써 하늘의 거룩한 정서를 맛보 는 것이어야 한다. 예배는 분명 사람들의 친목과는 그 본질이 다른 것이므 로, 예배를 통해 인간이 즐거우려는 모든 시도는 마땅히 경계해야 한다. 인간 의 즐거움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이기 때문이다. 예배를 하나님의 기준 에 맞출 때 예배는 거룩해 지지만 예배를 사람의 기준에 맞추기 시작할 때 예 배는 변질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배시간에 악기를 사용하는 문제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악기를 사용함에 있어서 다음과 같은 중요한 원칙이 있을 수 있다. 첫째, 악기를 어떻게 연주하느냐가 중요하다. 어떤 악기는 되고 어떤 악기는 되지 않는다는 도식은 바람직하지 않다. 예배시간에 사용되는 피아노라고 할 지라도 그 내용과 자세에 따라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피아노 의 음형과 반주법, 그리고 이런 것보다도 더 중요한 연주자의 신앙적 자세가 관건이다. 따라서, 이미 예배시간에 사용하고 있는 일반적인 악기일지라도 어 떻게 연주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질 수 있음을 알고 바른 자세와 마음으 로 다루어야 한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악기들은 예배시간에 부적합할 수 있다. 악기 는 기본적으로 어떻게 연주하느냐가 관건이기는 하지만, 이 문제는 악기의 지 배적인 속성이 없거나 비교적 약할때만 가능한 이야기다. 만일 악기가 그 악 기를 연주하는 사람이나 그 연주를 듣는 사람들을 지배하려는 속성이 강하다 면 그 악기를 예배시간에 사용하는 문제를 좀더 심각히 고려해야 한다. 이런 악기로는 세 가지 부류가 있는 듯 하다. 드럼이나 색소폰 같은 악기들을 먼저 들 수 있다.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악 기로써 그 색채나 사용되는 리듬이 인간의 육적 본성을 반응하게 한다. 악기 가 어떠함을 알려면 그 악기가 어떤 환경에서 많이 사용되는가를 보면 된다. 이 두 악기 인간의 유흥을 즐기는데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다. 색소폰의 음색 과 멜로디나 드럼의 강렬한 비트와 리듬이 울릴 때 인간은 마음으로 반응하 지 않는다. 몸이 먼저 반응한다. 영혼이 반응하지 않고 육체가 먼저 반응한 다. 민족적이거나 토속적인 악기들이 그 다음에 해당된다. 이런 악기들은 오래도 록 사용되면서 그 속성 자체가 어느 한쪽의 성향으로 발전해 온 경우이다. 이 런 악기들은 앞에서 말한 악기군이 인간의 육체와 그 정서를 반응시킴에 반 해, 예배자의 영적 정서와 상충하는 경우가 많다. 전자악기들의 과도한 사용이 또 한 경우이다. 전자악기들은 일시적인 감흥이 있기는 하나, 영적 정서와는 상충되는 기본속성이 있고 모조품적인 소리는 그 질에 있어서 천박한 것들이 많다. 셋째, 이런 악기들은 잘 절제하면서 사용하면 된다는 말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자. 이런 악기들은 공격적인 세속 문화와 인간의 육적 만족을 추구하는 본 성과, 인간의 정서를 주로 생각하는 환경에 맞물리게 되면 ‘오버’하기가 쉬 운 악기들이다. 물론 잘 다스릴 줄 아는 감각과 신앙적 안목이 있는 사람이 연주하면 된다고 할지라도, 그 시대적 환경속에서 준비되지 않은 채 받아들이 r 게 되는 많은 사람과 교회는 어떻게 할 것이며, 하나님을 찬송하는 거룩한 열 망을 가진 사랑이라면 굳이 이런 조심스러운 악기들을 선택해야 할 이유가 어 디에 있겠는가? 이런 악기들을 다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예배시간 이외의 문화적인 현장에서 는 어느 정도 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나 예배 시간만큼은 하나님 앞과 하나님 의 백성들이 가져야 할 거룩한 정서에 맞는 악기나 연주가 되어야 한다. 악기를 선택하며, 악기를 사용할 때, 하나님께 드릴 거룩한 찬송에 합당한 것 인지를 먼저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교회의 거룩한 찬송이 더욱 영광스럽게 되기를 위해서 악기를 사용하려고 하는가? 아니면 단지 어떤 목적만을 위해 서, 사람의 흥미나 관리적인 차원에서 악기들을 사용하는 것은 아닌가? 진리는 영원하나 진리를 담아내고 표현하는 도구들은 문화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고, 또 달라져야 한다는 말은 제한적으로 사용되야 한다. 교회의 영광 과 교회의 세속화는 교회의 혼에 무엇이 들려지는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 다. 진리를 시대와 문화의 그릇에 담으려는 것은 언제나 진리를 훼손하느데 앞장서 왔다. 따라서, 예배중의 악기나 연주법이 찬송이라는 진리에 맞는 도 구인지를 ‘분별’해야 한다. 이것이 레위기와 로마서 12:1-2절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71 no image 동문회에 거는 기대- 김형식 목사
rpress
3163 2001-06-07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_special/김형식.hwp동문회에 거는 기대 김형식 목사(동흥교회) 합동신학교가 개교 된지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약 1,200여 명의 동문들 이 목회와 선교 등 각처에서 사역을 하고 있다. 처음에 개혁의 기치를 들고 일어섰지만 그것이 그렇게 간단하고 쉽지만 않다는 사실을 지나온 세월만큼이 나 뼈저리게 실감 하고있다. 우리 스스로의 문제점과 한계성을 노출하는 시기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개혁 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해주셔야 된다는 사실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이 사실을 대전제로 하여 몇 가지 정리하고 생각해 보고싶다. 먼저, 그래도 개혁은 끊임없이 지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개혁은 일순간에 외치다가 그칠 구호가 아니라 우리와 교회를 향한 주님의 간 절한 뜻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갱신되고 개혁되어야 할 것이다. 주 님이 오실 때까지. 다음, 그러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을 잃지 말아야 할 것이다. 때로는 현실의 늪에 빠져서 허우적거릴 때도 있지만 우리는 분명히 어떻게 시 작을 했고, 무엇을 위해 달려왔는지 잊지 않고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 리의 부족함은 오히려 우리가 누구며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더욱 확실하게 한 다. 다음, 그러기 위해 우리는 늘 본질을 잃지 않아야겠다. 현실적으로 밀려오는 파도가 거세기 때문에 자칫 정신을 잃고 본질을 놓쳐버릴 위험이 항상 우리에 게 있다. 개혁이란 본질을 잘 드러내는 것이라 이해된다. 주님의 주님 되심, 교회의 교회다움, 목사의 목사다움, 신자의 신자다움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이 문제를 가지고 계속 씨름해야 할 것이다. 다음, 우리는 폭넓은 적용의 지혜를 가져야 할 것이다. 개혁이 자칫 편협함 과 고리타분함으로 비쳐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의 사역의 대상에 대한 폭 넓은 이해와 시대적 상황이 요구하는 것과 이들에 대한 원리의 충실한 적용 이 아니겠는가? 우리의 가장 큰 약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을 개인적으로 경험하고 또 고백할 수밖에 없다. 왜 개혁을 부르짖는 교회는 잘 성장하지 않을까? 우리의 부족을 개혁이란 이 름으로 핑계 대는 것은 아닐까? 심각하게 생각하고 목회의 폭을 넓히는 것이 필요하다. 합동신학교 출신들 이 목회를 잘하지 못한다는 소리를 뼈아픈 충고 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다음, 우리는 진정으로 겸손해야 할 것이다. 개혁이란 이름이 우리의 기질의 표현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행여나 우리에게 독선이나 오만이 있다면 그 것은 주님이 기대하는 바와는 거리가 멀 것이다. 우리가 참으로 겸손할 때 개 혁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하는 것이요,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 우리의 소망과 기대를 가지고 인내하며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
70 no image 합신동문회에 바란다- 김 훈 목사
rpress
2864 2001-06-07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_special/281김훈( 교).hwp합신동문회에 바란다 김 훈 목사(성남중원교회) 5월 23일자 기독교개혁신보 사설자는 합신동문들이 개인이 아닌 동문회라는 하나의 단체로서 우리 교단과 한국교계의 개혁의 주체로서 선봉에 나서는데 더 이상 겸양하지 말고 적극 동참할 것을 촉구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역량을 갖춘 주체 세력으로서 영향력을 나타내기 위해서 특히 합신총동문회가 활성화 되기를 우리 교단은 물론 한국교계가 기대하고 있다고 역설하였다. 그러나 본 시론자는 그와는 아주 다른 생각과 바람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총동문회이든지 기별동문회이든지를 물론하고 동문회가 교단과 교계 의 개혁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큰 문제와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염 려가 있는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많은 위험성을 갖고 있 는 발상이라고 느껴진다. 물론 사설자의 본 뜻은 동문회에 대한 적극적인 참 여와 동문회의 활발한 활동을 촉구하는데 있었으리라고 짐작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주장에 대한 오해가 있을 경우 일 어날 부정적인 결과를 좀 더 깊이 생각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된다. 어쩌면 그러한 생각과 주장은 우리 교단과 신학교가 학생들이 주체가 되어서 출범하게 되었다는 무의식적인 사고방식의 결과일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도 아니고 사실이 되어서도 안 된다. 이 문제에 대하여는 이야기 할 시간이 없다. 본 시론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 은 총동문회든지 기별동문회든지 불문하고 동문회의 성격과 목적이 무엇이어 야 하며 교단과 교계의 목사가 된 이후의 동문들이 동문회에 얼마만큼이나 비 중을 두는 것이 옳으냐 하는 것이다. 동문회 특히 이미 목사가 된 졸업생들이 모임 신학교동문회는 어떤 종류이든 지 세력을 행사하는 집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목사로서의 친목 의 도모, 목회정보의 교환, 공동의 기도, 계속 연구와 토론, 합신의 3대 이념 의 현실목회 적용문제 고민, 모교의 후원 등 지극히 평범한 성격과 목적의 단 체가 되는 것이 교단과 교계를 위하여 좋다고 믿는다. 거듭 말하거니와 신학 교동문회가 교단의 정치세력집단이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다른 어떠한 개혁이 주체나 세력이 되는 것도 옳 지 않다. 그것은 성경적인 어떤 근거도 없 으며 역사적으로 현실적으로도 좋은 예가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는 동문회와 학연으로 인한 당파 싸움을 역사적으로 많이 보아 왔 으며 교계 현실에서 뼈저리게 보고 느껴왔으므로 학연과 동문회의 모임에 신 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목사 특히 장로교단의 목사는 그 활동영역과 소속이 지교회와 노회와 총회이 어야 한다. 지교회 교인의 대표인 장로와 모든 교인과 함께 개혁을 위하여 기 도하고 고민해야 한다. 동기회가 아닌 노회 소속 회원으로 노회에서 선후배 모든 목사와 함께 개혁을 논의하고 실천해야 마땅하다. 또한 총동문회가 아 닌 총회에서 선후배 목사와 장로들과 더불어 교단과 교계를 위한 결의를 하는 데 힘을 다해야 한다. 지교회, 노회, 총회 밖에서 특히 동문회 같은 지극히 사적인 성격이 강한 모 임에서 어떤 결의를 하고 성명서를 내고 어떠한 기구를 조직한다면 그것은 학 연에 의한 파벌운동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사설자의 주장대로 합신총동문들은 한국교계는 몰라도 적어도 우리 교단에서 는 주체세력이 되었다. 노회와 총회에서 수 적으로도 그렇고 지위면에서도 주 체세력이 되었다. 그러므로 교단과 교계의 개혁을 위해서 따로 동문회를 활성 화하여 세력을 모을 이유도 필요도 없다. 목사가 된 사람들에게는 지교회와 당회, 노회, 총회가 주어진 일터요 활동무 대이어야 한다. 우리 교단의 개혁은 지교회 목사로서 목회를 통하여, 노회의 회원으로서의 발언과 토론을 통하여, 총회의 총대로서의 바른 토론과 결의에 적극 동참함으로써 이루어야 한다. 따라서 시론자는 동문회에 열심히 참여하여 즐겁고 유익한 시간을 가지는 것 은 마땅한 일이지만 지교회와 노회와 총회보다, 아니 그 십분의 일이라도 동 문회에 비중을 두는 것은 그다지 명분이 없는 행위라고 감히 주장하는 바이 다. 합신동문회의 활성화를 기대한다. 그러나 합신동문회의 성격과 방향이 어떤 정치세력화 되는 것이 아닌가 염려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는 것 또한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 동시에 동기회보다 는 노회의 활성화에 기여하고 총동문회보다는 총회에서 개혁의 주체되기를 합 신동문들에게 기대한다.
69 no image 지역교회에서의 교사훈련- 양승헌 교수
rpress
3369 2001-05-25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_special/양승헌.hwp지역교회에서의 교사훈련 양승헌 교수(합신교수) 요나단 신드롬 - 요나단 신드롬이란 한세대가 다음세대를 하나님의 세대로 세 우는 일에 실패함으로 영적인 대가 끊기는 현상을 말한다. 모세의 손자 요나 단이 우상숭배의 진원이되어 자신과 가문과 민족을 무너지게 만든(사사기 18:30) 슬픈 역사를 보고 내가 지은 이름이다. 이 심각한 질병은 오늘날 많 은 가정과 교회와 사회 속에 깊이 파고들고 있다. 우리 교회 역시 이 신드롬 에서 결코 멀리 있지 않다. 우리 아이들은 성경공부를 지겨워 하고, 하나님 께 예배하는 일에 식상해 하고, 교회를 시시하게 여기고 있다. 유아부에서 고등부까지 다음세대의 출석률이 장년예배 출석률의 절반이 넘는 교회가 그리 많지 않다. 교사 사역은 교회의 3D 업종으로 여겨진다. 특별한 경우의 헌신된 교사가 여전히 기둥처럼 주일학교를 받치고 있지만, 대부분의 교사들은 삼년을 넘기지 못하고 탈락한다. 특단의 조치와 노력이 없는 한 30 년 뒤 우리교회는 절반이하로 줄어들 것 을 보여주는 이 급박한 현실을 직시해 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절망적인 것만은 아니다. 요나단 신드롬에 대한 가장 확실한 백신과 치료제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다음세대를 세울 건강하고 바른 교사 를 세우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 교사의 사역에 대한 교회의 관심과 격려가 선행될 필요가 있다. 세상 에 부모들이 자녀교육에 쏟는 정성과 열정을 교회의 교육현장에 비교하여 보 면 언제나 가슴이 답답함을 느낀다. 정말 다음세대가 건강한 하나님의 세대 로 서가기를 원한다면 교사에 대한 인식부터 새롭게 해야한다. 한 교회 주일 학교 교사의 질은 그 교회의 내일의 질을 말해준다. 교사들을 위한 여러가지 세미나와 훈련들, 자료들, 책들은 찾으면 얼마든지 있다. 문제는 교회교육과 교사에 대한 전교회적인 관심과 투자가 작다는데 있다. 둘째, 교사를 훈련하는 가장 시급한 과제는 교사의 역할에 대한 그림을 잡아 주는 것이다. 많은 경우 교사는 누구든지 자원하면 할 수가 있는 상식적인 사 역으로 인식되고 있다. 아이들에게 성경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정도로 기 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삭개오가 올 라간 나무의 종류를 설명해 주는 것이 주 일학교 교사의 일이 아니다. 주일학교 교사는 선생- 성경의 줄거리를 설명해 주는 선생이 아니다. 주일학교 교사는 부모 아이의 전인격이 하나님의 사람 으로 자라도록 돌보는 영적인 부모, 제2의 부모이다. 사랑과 긍휼의 가슴으 로 자식을 키우는 영적인 어미, 아비로 그 역할이 거듭나야 한다. 셋째, 교사 훈련의 내용에 균형을 잡는 일이 중요하다. 많은 경우 교사 훈련 은 어떻게 아이들을 가르치느냐에 집중된다. 그러나 좋은 교사가 되게 하 는 다섯 요소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모델 스승이신 예수님의 경우를 분석해 보면 좋은 교사는 다섯가지 부분의 훈련을 균형있게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첫째는 학생을 사랑하고, 보살피는 훈련, 오늘도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 나님의 음성을 듣는 훈련, 자신이 체험하고 순종한 하나님의 진리를 아이들 의 관심과 흥미의 눈높이에 맞게 가르치는 방법의 훈련, 먼저 자신이 하나님 의 사람으로 자라고 변화되는 모델을 세우는 훈련, 그리고 성령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일하는 훈련이 그것이다. 넷째, 비형식적 훈련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는 교사훈련 하면 그 분 야의 전문가를 모셔다 강의를 듣는 일로 곧바로 연결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 한 형식적인 훈련강좌도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하고 더 실제적인 훈련은 다년간 경험이 많은 선배 교사의 모델과 격려 속에서 이루어지는 비형식적 교 육이다. 교회에는 충성스럽고 경험 많은 교사들이 있건만 이들을 신임교사 훈 련의 조교로 활용하는 부분에서 주저하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어머니 가 되는 교육, 아버지가 되는 교육과정을 통해 훌륭한 부모가 되는 것은 아니 다. 좋은 교사 세미나 강의를 통해 좋은 교사가 되는 것이라기 보다는 좋은 교사의 모델링과 멘토링을 통해 좋은 교사가 자라는 법이다. 다섯째, 공식적인 교사훈련 과정이 필요하다. 모델링과 멘토링이 중요하지 만 교사의 기본 자질과 원리를 배울 기본적인 훈련과정이 공급되어야 한다. 소규모 교회는 몇 교회가 연합하여 이러한 과정을 운영할 수 있다. 훈련의 기 간이나 방법, 주제는 각 교회의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최소 네개의 영역을 커버해 줄 수 있는 커리큘럼은 제공되어야 한다. 첫째는 실제적인 가르침의 기술, 둘째는 가르치는 이 로서의 인격과 영성개발, 셋째는 가르치는 이로서 알아야할 학적 원리, 마지막으로는 가르치는 이로서, 영적인 부모로서 반을 관리하고 이끌어갈 리더십. 파이디온 선교회에서 개발한 교사교육프로그램인 CEE (Christian Education by Extension) 과정 같은 교사훈련 과정을 이용하 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여섯째, 교사를 위한 독서 프로그램을 운영하자. 교사들끼리 위에서 말한 네 분야에 걸쳐 도움이 될 책들을 선정하여 함께 읽고 토의하고 배운 바를 나누 고 적용해 보는 것은 지속적인 교사 훈련에 좋은 방법이다. 어떤 훈련과정을 이수한 것으로 교사로서의 준비가 끝난 것은 아니다. 지속적인 성장을 피차 에 격려하는 제도로서 교사 독서토론회를 갖기를 권장한다. 특별히 지교회 형 편상 공식적인 교사훈련 과정을 갖기도 어렵고 협력 훈련과정도 어려울 경우 에도 교사 독서 토론 모임은 훌륭한 대안이 된다.
68 no image 우리 교단의 교육현실과 그 대책 - 김세진 목사
rpress
2779 2001-05-25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_special/김세진.hwp우리 교단의 교육현실과 그 대책 김세진 (총회교육부 간사) 우리 교단이 대내외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부분이 있다. 비록 교단 은 작지만, 강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교단이 성장할 수 있 는 가능성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한 가능성을 극대화한다면, 외형적인 미약 함에도 불구하고 규모와 실력을 갖춘 교단으로 세워지고 인정받을 수 있을 것 이다. 우리 교단의 가능성은 교회교육을 위한 준비된 지도자들에게 있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교육목회를 지향하며 하나님 말씀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므로 앞서의 전망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교단차원에서 그들의 역량을 이끌 어 낼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그것을 실용화할 수 있는 기구와 방안을 마련하 는 일이다. 먼저 교단의 기저(基底)를 형성할 인적 결속력을 강화하는 것이 시급하다. 능력은 있는데 협력이 안 된다면 오합지졸에 불과할 것이다. 교회가 바른 정 체성을 갖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교단차원의 협력이 있어 야 하며, 결집된 힘 을 교회교육을 위한 비중 있고 치밀한 투자가 되도록 유도해야 한다. 또한 목회와 교육을 분리하려는 구조적 모순을 극복하려는 시도가 있어야 한다. 가르치고 양육하고 훈련하는 것이 곧 목회이며 교육이라는 의식이 필요 하다. 목회를 교육적 차원에서 접근하려는 의식적인 변화가 이루어지며, 교회 교육의 목적을 지향하려는 목회관의 확립이 절실하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사람을 세우는 교회교육의 목적'이 회복 될 것이다. 사람을 세우고 키운다는 정신을 유지한다면, 교육을 통한 교회의 정상화는 어렵지만은 않으리라 생각한다. 교회교육을 위한 견해로써 교단 차원에서 준비하고 제시해야 할 내용이 많 겠지만, 모두가 생각하고 있는 3가지를 대략적으로 정리하고자 한다. 1) 교단은 교회교육을 위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교단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교회교육의 청사진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속적인 교육활동이 이 루어지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적절한 열매를 기대하도록 도와야 한다. 우리에 게는 비전을 나누고 비전의 성취를 위한 원대하고 진취적인 구도를 마련하 는 것이 시급하다. 현실감을 잃지 않으며 영의 세계로 인도할 수 있는 교단적 비 전제시가 있어야 한다. 2) 교단은 교회교육을 위한 방도를 세워가야 한다. 교단의 이념들이 지교 회 지도자들에게 전달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그래서 체계적인 교육활동이 이루어지도록 자료를 제공하고 훈련체계를 마련하도록 도와야 한 다. 심지도 않고 거두려는 근시안적인 방도를 찾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장단 기의 계획과 정책을 수립하고 실천하며 그리고 교정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전문성을 잃지 않으며 연속적인 방안과 틀을 마련하도록 교단적인 교육방도 를 세워야 한다. 3) 교단은 교회교육을 위한 인간이해의 연구를 수립해야 한다. 틀에 얽매 인 보수성을 탈피하여 하나님 안에서 창의적인 삶을 살아가는 모델을 마련하 는 것이다. 그래서 세대 차를 줄일 수 있는 종합적인 교육활동이 이루어지도 록 도와야 한다. 믿음을 지킨다는 명분 때문에 사고가 경직되지 않도록 하 며, 개혁주의 삶을 구현하는 믿음의 사람들을 키워야 한다. 이를 위해 지도자 는 피교육자를 이해하며 상호간에 유연한 만남이 이루어지는 교육을 지 향해 야 한다. 균형감을 잃지 않으며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세워갈 수 있도록 교단 적인 인간이해의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 교단이 출범한지 20여 년이 지났다. 아직도 해결해야할, 어쩌면 해결 할 수 없는 문제들과 씨름하면서 말이다. 이제는 교단의 발전이 지교회의 발 전이라는 생각을 갖고, 무엇보다도 총회교육부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야 한 다. 총회교육부가 활동할 수 있는 조직을 갖고 필요한 예산을 확보하는 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래서 교단 교회들에게 성장비전을 제시하고, 교육방 도를 제시하고 인간이해의 표본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교단 산하의 교회들이 바르게 성장하기를, 또한 교육을 통한 바람직한 목회가 이루어지기를 소원한다. 목회는 교육행위이기 때문에, 참 교 육 없이 바른 목회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새로운 시대에 참여하기 위 해서는 새로운 프로그램의 기법으로 가능하지 않다. 미래는 하나님 말씀의 권 위와 능력을 회복하는 교회교육에 의해 열려지게 될 것을 믿는다.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사람을 세우는 교회교육의 목적이 회복되기를 바라며, 21세기 를 주도하는 교단으로 남기 위한 교회교육의 확립을 기대해 본다.
67 no image <초대의 시>부활-윤여성 목사(열린문교회)
rpress
3929 2001-04-12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_special/윤여성.hwp 부활 윤여성 목사 여의도 다리 너머 희미한 새벽 불빛이 가물거리고 아직 햇빛은 그날을 위해 떠오르기 전 한 떼의 무리가 가로등 아래로 무리지어 흘러가고 있을 때 나도 강물처럼 그 가로등 아래로 나의 인생을 짖누르는 많은 질문들을 안은 채 한 젊은 날을 방황하고 있었지. 그래! 희미한 불빛처럼 꿈꾸는 듯 손짓하는 여의 도의 빌딩숲 어디에서인가 그 많은 사람들의 얼굴 속에 담긴 사랑과 슬픔과 빛과 어두움의 노래, 결혼 혹은 죽음, 미래에의 약속, 빛나는 면류관 … 뭐 그런 것들 … 그런 것들이었어 … 어느새 사람들의 발길이 강물이 되어 쌓이고 바다를 이루듯 광장 한 편으로부 터 채워지고 찬양이 하늘을 찌르는 듯 하더니만 순간 그 자리, 그 다음 순간 … 그리고 나의 영혼은 하늘로부터 문득 빛 가운데로 던져지는 그분의 음성 을 들었다. “너는 나를 믿지 못하느냐.” 나는, 나의 삶은 그를 보았다. 그 를, 그의 눈빛과 그의 몸, 그의 체온과 그의 실체가 광 장 스피커를 통해 형상 화 되어 나를 향하여 다가서면서 나를 품고 나를 어우르더니 마침내 나를 포 로로 그의 사랑의 포로로 잡은 뒤 드디어 나를 그의 사랑 그의 신부 그의 꿈 과 기쁨 영광 그리고 소망 그의 대사 그의 증인 그의 동역자 그리고 그의 면 류관 그의 나라가 되게 하셨다. 그날 희망은 나의 것이 되고 모든 기쁨이 나의 것이 되고 자랑도 보람도 영광 도 나의 것이 되고 꿈도 사랑도 소망도 … 심지어는 나의 좌절과 죽음까지도 그 안에서 새 것이 되어지는 … 그래서 부활 안에서 그와 내가 하나 되고 내 가 그와 하나 되는 찬란한 빛의 세례를 받게 하셨다. … 고요히 20년의 흐름을 지나 여의도 다리를 건너 한 형제의 고통의 병상을 찾아 위로와 함께 생명, 영원한 그 새 날의 희망을 간증하고 그로 하여금 병 과 죽음을 넘어서는 힘찬 새 출발의 여로에 등불을 밝히고 돌아오는 2001년 의 부활절은 여전히 나에게 잊을 수 없는 감사와 기쁨의 축일(祝日)이 아닐 수 없어라.
66 no image 감격의 눈물 흐르는 부활절 맞이하길-김윤영 목사(초계제일교회)
rpress
3449 2001-04-12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_special/김윤영.hwp감격의 눈물 흐르는 부활절 맞이하길 김윤영 목사 매년 4월이면 어김없이 다가오는 그 날이 있습니다. 바로 부활절입니다. 부활 절이 봄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좋은지 아십니까? 지난 겨울은 몹시도 춥고 힘 들었습니다.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이 죽은 듯이 보였습니다. 아니 어쩌면 죽었 었는지도 모릅니다. 교회 앞마당의 나무들이 그러했고, 특히나 꽃나무들은 너 무도 초라했었습니다. 꽃필줄 모르는 동백과 매화와 벚꽃은 ‘그들만이 봄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약간의 아픔을 느끼게도 했습니다. 그때 저는 매우 놀라운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하늘이 하얘지 고 주변이 붉어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영 가망이 없어 보이는 그곳에 모든 보는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꽃나무들의 놀라운 변신을 보았습니다. “그렇구나! 영 가망이 없어 보이고 아주 더디어 보이는 그 나무들이 그렇게 생동감 있고, 감동적으로 변하는 모습이야말로 죽은 것 같고, 무덤에 누워 소 망없는 것 같은 우리에게도 신비하게 알려주는 봄 소식에 의해 만개하는 꽃처 럼, 주님의 부활의 소식이 알려지면 죽은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부활 체의 모습으로 일어나겠구나!” 하는 확신이 온 몸에 밀려옵니다. 그래서 봄이 오는 어떠한 소식보다도 죽은 우리의 몸이 다시 일어날 것이라 는 사실이 더욱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부딪쳐 옵니다. 봄 소식은 모든 꽃나무 들에게 각기 다른 시간에 각기 그들이 바로 알고 적응하도록 오는 것처럼, 부 활의 소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십자가 곁에 가까이 서 있는 사람에게 서부터, 아니 빈 무덤 가까이 다가간 사람들로부터 시작하여 이 시간의 우리 에게로 각각 다른 은혜의 빛들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2천년 전에 일어났던 그 사건의 감동이 새 천년을 시작하는 올해 마음속에 밀 물처럼 밀려옵니다. 목사이면서 느낀 가장 큰 것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이 일 을 맡기시면서 저로 하여금 하나님의 마음을 읽어보라고 하시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감동이 없는 세대를 볼 때 느끼는 저의 마음이 곧, 십자가에 대하여 감동이 없는 우리를 보시는 하나님의 아프신 마음이 아닐까 요? 만물이 생동하듯, 올 봄 부활의 주일에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능력을 깨닫 는, 그래서 감격의 눈물이 두 볼에 흐르는 부활절을 맞고 싶습니다.
65 no image 부활에 동참하며-한철형 목사<산성교회>
rpress
3390 2001-04-12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_special/한철형.hwp부활절에 함께 읽는 설교 한철형 목사 부활에 동참하며 본문: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 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 째 나타나시리라”(히9:27,28) 해마다 절기를 맞이하면 혼자 조용히 감사하는 작은 제목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지금 지구의 북반구에 위치한 지역에서 목사로서 말씀을 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내가 지구의 반대편에 있다면, 낙엽이 떨어져 구르 는 것을 보면서 부활을 증거해야 할텐데… 감사하게도 목련 봉오리가 아침마 다 새로운 것을 보며 부활을 말하게 됨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함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러나, 이제 다시 지면을 통하여 더듬어 보고자 하는 것 은 “성경이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어떻게 동참해야 하는가?”입니 다 . 본문은 죽임 당하신 주님과 다시 오실 주님을 말씀하며 우리와의 관계를 드러 냅니다. 1. 죄를 담당하심을 먼저 인식해야(27절)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요… 부활은 죽음이 전제됩니다. 주께서 죽으심은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기(사 53:6) 위함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부활의 계절을 지나면서 가져야 할 가장 중 요한 묵상입니다. 카톨릭에서는 사순절이라 하여서 이 절기를 중히 여깁니다. 우리 개혁 교회 는 드러내며, 가시적인 모습을 보일 것은 없으되 진정 예수님이 말씀하신 골 방의 기도, 진정한 금식기도의 표상(마6:16-18)이 그대로 드러나도록 죄에 대 한 깊은 신음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2.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하시기 위하여(28절) 주님의 부활과 다시 오심은 우리로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는 당 신이 부활의 첫 열매 되심으로 나중 열매된 자들에게 바른 믿음과 참 소망을 가지게 하셨습니다. 주님의 이 사역의 흐름은 바로 나의 구원을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부활에 대한 감사와 찬양은 나의 입술로, 나의 온전한 헌신으로 나타 나야 합니다. 세상의 어느 유명인의 찬양 과, 대중이 모인 집회로서가 아니라 나의 진정한 감사와 감격이 주님의 이 사역의 영광을 높여 드리게 되며 진정 부활의 목적 을 재확인하게 됩니다. 3. 죄와 상관없이 다시 오실 이(28절) 우리는 부활을 확신함으로 인하여 장래에 다시 오실 구주를 담대함으로 영접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그를 바라는 모든 자들에게 죄와 상관없이 다시 오시리라고 하십니 다. 그날에는 죄와 상관없이 주님과 내가 만난다는 것입니다. 죄에 대한 부 담 없이, 주님을 못 박은 자라는 곤고함 없이… 즐거이 그를 만날 수 있는 것 입니다. 이 사실은 진정한 부활신앙 가운데서 우리가 소망할 수 있는 중요한 관계입니다. 부활의 의미를 아는 자여 진정 다시 산 자의 마땅히 하여야 할 일이 무엇이겠 습니까? 입으로 주를 찬미할 뿐 아니라 정말 죄와 상관없이 그를 맞이할 수 있도록 하늘의 평강을 덧입고 사는 자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죄 사함을 받은 자의, 좀더 부요한 심령을 가지고 넉넉히 세상을 바라봅시다. 그리고 담 대한 믿음을 가지고 흔들리지 않으며 점점 더 어지러워져가는 세상을 향한 중 보기도를 쉬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64 no image 중고등부 수련회를 마치고/ 원보람
rpress
2438 2001-03-30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_special/원보람.hwp솔직히 자신의 부끄럼 인정할 수 있어… 예수님 위해 살아 갈 목표 깨달아… 원보람/ 한양교회 여고2년 당신은 알고 있나요 우리 위해 걸어야 했던 주님 비난과 손가락질에 물과 피를 흘려야 했건만 험난한 주님의 십자가 몹시도 무거웠건만 우리의 비난과 채찍에 재물 돼야 했던 주님의 아파하심으로 나 구원받았으니 이제는 주님을 위하여 이 한 몸 바치리다 당신은 알고 있나요 죽음을 사랑을 하신 것을 우리의 주님께서 자기 몸 다해 죄인 사랑하신 것을 우리 주위엔 하나님을 모르며 방황하고 이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점 점 타락해 가는 우리들의 친구들, 그들이 그렇게 헤매고, 갈증을 느끼는 것 은 무엇일까? 세상에서 무엇을 얻기 위해, 몸과 마음을 내버리고 있는 건 지… 어디선가 삶의 의욕을 잃고 혼자 앉아 울고 있을 그들을 생각해 봅니 다. 세상에서 버려진 자들, 비난받고 있는 자들, 무엇 하나 할 수 없는 무기 력한 자들, 자신을 잃어버린 자들, 의지할 곳 없 는 자들... 이들은 무엇이라 도 의지하고 싶을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에게 무언가 하나가 함께 한다면, 쉽 게 삶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주저앉아 있지 않을 것입니다. 처음 들어선 교회라는 곳은 너무도 새로운 곳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많았고, 여러 가지 일들에 나는 흥미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시간을 때우고, 어울리기 에도 좋았습니다. 하나님이란 분, 예수님이란 분이 계시다는 것을 전혀 생각 하지도 않고 교회를 다니던 나였습니다. 그곳에서 사람들과의 사이에서 나는 만족을 얻고 있었습니다. 사실 나는 여러 가지 일들로 힘들어하고 있었고, 외 로워하고 있었습니다. 나의 환경에 만족하지 않았고 마음의 문도 굳게 닫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내게 다가온 그분은 참 따뜻한 분이셨습니다. 나의 아픔과 상처를 위 로하여 주시고 치료하여 주셨습니다. 예수라는 그분... 난 그저 종교적인 인 물로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면서 그분은 더 이 상 나에게 종교적인 인물로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동화 같던 성경이 조금씩 믿게 되면서 정말 그분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때론 나쁜 일들 이 하나둘 생기기도 했고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해서 사람들에 게 다가설 수가 없었습니다. 두려웠고 무서웠습니다. 집을 나가고 싶을 때도 있었고, 세상의 친구들처럼 마음대로 즐기고도 싶었습니다. 내 마음엔 기쁨 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비참하고 초라한 내게도, 늘 혼자이기만 했던 내게 도, 주님은 언제나 내편이 되어 주셨습니다. 조금 불안하고 두려운 일들이 생 겨나면 나의 가장 큰 빽이 되어주시는 그분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도와 주세요.” 작은 기도였지만,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정말 그분이 도와주셨구 나 정말 계시는구나 라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나를 지켜주고 계시다는 것, 나의 죄 때문에 피 흘리며 죽 임 당하신 예수님은 찾아오셔서 나의 닫힌 마음을 열어주시고 삶의 희망을 주 셨습니다. 그후 내 인생은 변했고, 빛이 들어왔습니다. 연약하게 쓰러지고,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내게 누군가 믿을 분이 계시다는 것, 누군가 의지할 분 이 계시다는 것은 나에게 자신감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솔직히 지금의 내 모습 이 너무나 부족하다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얼마나 부끄러 운 죄인 이라는 것도 말입니다. 늘 회개하고 돌아서면 또다시 돌아서게 됩니 다. 이런 간증이란 것을 할 수 있는 믿음도 되지 않는 아주 부족한 사람입니 다. 다만 세상의 사람들에게 내가 느낀 예수님에 대해 조금이지만, 그분에 대 해 마하고 싶습니다 아무리 보잘것없고, 초라하고 지금의 모습에 내세울 것 하나 없지만, 그래도 우리를 너무나 사랑해 주시는 분이 있다고... 그동안 몇 년 아니었지만, 예수님을 믿게 되면서 참기쁨이란 것을 알았습니 다. 우리가 그분을 만나게 되면 반드시 우리의 인생이 바뀔 것이라고, 한번 도 느껴보지 못했을 기쁨이 있다고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술과 담배를 피는 것이 너무나 당연시되고 있는 이 사회에서 방황하며 목표 없이 살아가는 자들 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들은 의지하고 싶을 것입니다. 예전에는 나도 예수님을 믿으라고 떠드는 사람들을 손가락질했습니다. 그저 종교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젠 아닙니다. 예수님을 위해 살아갈 목 표가 생겼습니다. 돈이나 명예가 아닌 그분을 위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만 약, 우리 가족이 이 이야기를 들었다면, 나를 미쳤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너무나 든든한 것을 지니고 있습니다. 수천 명이 나를 미워하고 비난하 더라도 아직 모르는 우리 가족이 외면하더라도 그분은 여전히 살아 계시다는 것입니다. 내게 만족함을 주시는 분이 있다고... 이 사실을 아는 사람들의 삶 은 기쁨과 희망으로 변할 것입니다. 아직도 좌절과 고통으로 그리고 많은 문 제들로 방황하며 삶의 소망없이 기쁨없이 사는 친구들이 있다면 나에게 소망 과 기쁨을 주시고 힘든 상황도 해결하도록 도와주신 예수님을 만나길 원합니 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63 no image 평암 장경재 목사님 영전에 드리는 시
rpress
2824 2001-03-15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_special/오둥춘.hwp해처럼 달처럼 밝게 밝게 사신 임이시여 - 평암 장경재 목사님 영전에 드리는 시 - 오동춘 유난히도 하이얀 눈이 금수강산에 많이 내리던 정 이월도 다 가고 새파란 소망의 새 봄이 힘차게 걸어 오는 이 밝고 푸른 봄날에 일찍부터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한평생 양을 치는 바른 목자로 해처럼 달처럼 밝게 밝게 살아오신 우리 모두 존경하여 우러러 모시던 평암 장경재 목사님 새봄보다 더 새파란 하늘나라 거룩하신 하나님 부르심을 받아 아주 평안히 너무도 곱게 이 어지러운 세상을 떠나시는 모습 바로 천사였습니다 죽도록 주님께 충성 다 하시고 마지막 가시는 그 인자하신 얼굴 너무도 아름다웠습니다 장경재 목사님 품어주시는 우리 인류의 구세주 예수님께 감사 찬송드립니다 영광 높이 드립니다 온유 겸손하신 유제신 어머님 간절한 기도로 만주 봉천에서 푸른 꽃나이 스물 한 살에 죽음에서 살려주신 우리의 피난처 하나님을 영접하시고 정숙한 신앙의 아내 강정채 사모님을 한몸으로 만나 모진 눈비 다 이기시며 만주, 북한, 남한 땅에서 주님 축복 속에 다섯 아들 낳으시고 바른 목회, 모범 목회를 하신 우리 장경재 목사님은 우리 한국교회 목사님 중에도 더더욱 존경받는 목사님 바위처럼 믿을 수 있는 한국교계의 큰 지도자 큰 별이셨습니다 당신의 스승 정암 박윤선 목사님을 하나님 다음으로 모시던 우리 존경하는 장경재 목사님 손수 개척하신 화성교회라도 팔아 바른 신학, 바른 교회, 바른 생활의 신학교육으로 목회자를 가르치는 합동신학교를 바로 세우자 외치면서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를 위하여 그야말로 눈 감으시는 그 순간까지 헌신하신 장경재 목사님이야말로 이 나라 개혁주의 신앙의 횃불이요 해와 같은 기독 신앙의 교육자셨습니다 자유주의, 교권주의, 거짓목자, 사이비 교단, 이단의 무리는 과감히 비판하고 물리치시면서 칼빈주의 신학사상으로 선량한 양들을 믿음, 소망, 사랑의 십자가의 길로 길과 진리, 생명의 길로 여든 넷 한평생 바로 이끌어 주신 이 나라 교계의 큰 별 장경재 목사님을 우리 어찌 잊으리오 베 드로, 바울같이 사신 빛과 소금의 장경재 목사님 그 거룩한 모범신앙 우리 다 본받으며 십자가 든든히 붙잡고 주께 충성 봉사 합시다 우리 어지러운 교계 거짓이 판치는 오늘 진리의 기둥으로 우뚝 서시어 바른 말 곧은 소리 은혜롭고 신덕 높은 말씀으로 우리 바르게 이끌어 주시던 참으로 소탈하시고 인정많고 눈물 많으시던 우리 장경재 목사님 일제시대 만주 봉천에서 봉천시청 다나까 과장과 싸워가며 하나님을 거역하는 일본은 망한다는 신념으로 주일성수 하시고 광복된 조국의 북한에서 주일날 김일성 투표 반대하고 바른신앙, 성경말씀 바로 지키며 자유 찾아 월남하신 장경재 목사님 하늘나라 가시는 이 순간까지 복음을 뿌리시며 할 일 다 하시고 통일 없는 조국 평북 義주 고향 땅 다시 밟지 못하시고 마지막 말씀 우리 천국에서 만나자 인자한 말씀 남기신 우리 존경하는 장경재 목사님 이 푸른 봄날 오늘 천사처럼 훨훨 하늘나라로 가십시다 사랑하는 가족과 우릴 두고 평안히 곱게 가시는 우리 존경하는 장경재 목사님 아무 근심 걱정없는 하늘나라 주님 품에 부 디 편히 쉬십시오 우리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나 봅시다 부디 평안히 가십시오 할렐루야 아멘
62 no image 고 장경재 목사님을 그리며- 김기영 목사(화성교회)
rpress
3095 2001-03-14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_special/김기영.hwp김기영 목사(화성교회) 고 장경재 목사님을 그리며 장경재 목사님을 생각합니다. 역시 사람은 한번 왔다가 가는구나 라고 생각하 면서 아쉬움을 갖습니다. 평소에 건강하셔서 오래 사실 분으로 생각하면서 곁 에서 든든함을 주셨던 분이셨습니다. 단순함, 진실함, 그리고 강직함과 아울 러 약한 사람을 이해해주시는 융통성을 가지신 분이셨습니다. 형식을 싫어하시는 단순함을 좋아하셨습니다. 바른 교리를 생명같이 여기시면 서 인간적인 장식을 싫어하시는 분이셨습니다. 배운 그대로 단순함을 좋아하 시는 것은 그분의 설교와 기도에도 나타났습니다. 그분의 설교는 단순함으로 인하여 깊은 진리가 없는 듯 보이지만 매우 바른 교리와 해석에서 나온 말씀 이었습니다. 인간적인 수식이 없고 이리저리 돌아가는 것이 없이 그저 있는 대로 말씀하시는 분이셨습니다. 그의 설교는 수준이 높았습니다. 박윤선박사 주석을 그대로 해석하시는 분이셨기에 그렇습니다. 사람을 진실하게 대하시는 분이셨습니다. 처음에는 사람을 잘 믿지 않으시다 가 겪으신 후에는 믿어주시는 분이셨습니다. 제가 화성교회 와서 신학교를 들 어가면서 저에게 75년도 8월부터 중고등부를 맡겨주시면서, 처음에는 설교를 맡기지 않으셨습니다. 안수집사 1년되신 남정복 집사님에게 설교를 맡기시고 저에게는 심방만 하라고 하셨습니다. 명색이 신학생인데 마음은 좀 불편했지 만 저를 위해 여전도회에서 등록금 한 학기를 대주시고 지도하시는 분이시라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열심히 심방하면서 사회를 보고 설교는 안 집사님이 하 고, 그리고 다음해가 되면서 중고등부를 다 맡게되었습니다. 제가 깨닫기에 는 장목사님으로서는 설교 잘하고 못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바른 신학 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이었습니다. 무엇이 더 중요하고 우선적인가를 가르쳐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남정복집사님은 좋은 분이셨습니다. 얼마 안 있 어 직장관계로 멀리 이사하셨지만 좋은 인상을 남겨주셨습니다. 장목사님의 진실함과 강직함에 때로 이해할 수 없는 융통성은 저도 잘 알 수 없습니다. 진리를 생명같이 따르면서도 약한 자에게는 개개인으로서는 융통성 을 가지고 대해주셨습니다. "나는 이렇게 강직한 사람이다"는 자신을 과시하 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한 생명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양보하시는 것 같았습니 다. 자기를 강하게 주장하시는 것 같지만 자기가 아니라 주님과 바른 말씀을 주장하시는 것으로 자신의 위신 때문에 메달리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주님을 높이시고 바른 말씀을 사랑하시고 그것을 기뻐하시는 분이셨습니다. 시대를 초월하여 흔들림 없이 사시는 분으로 때로는 시대에 맞지 않는 점도 있었습니 다. 예배전후에나 기도회에서도 복음송 부르는 것을 반대하셨습니다. 목사님 보시기에 이유가 있으셨겠지만 1년에 교인이동이 많은 때에 화성교회는 너무 은혜가 없고 찬송이 힘이 없다는 오해를 받기도 했습니다. 제가 화성교회를 맡으면서 복음송 부르는 것을 이해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어떤 복음송 한 두곡은 좋아하셨습니다. 동쪽으로 가다가도 박윤선 목사님이 서쪽으로 가라 고 하면 묻지 않고 서쪽으로 방향을 전환하시는 분으로 생각되는! 장목사님은 겪어본 사람을 신뢰하시는 분이셨습니다. 장목사님을 가까이 겪은 여러분들이 생각하시는 것이 많으시겠지만 잠시 몇 가 지 생각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은 영적으로 승리하시고 주님의 품 안에 안기셨습니다. 우리에게는 영적싸움에 남아있습니다. 자신의 부패성과 사단과의 싸움을 싸우는 우리는 좀더 주님을 바라보는 연습을 하여야겠다고 생각됩니다.
61 no image 고 장경재 목사님 소천 특집- 순교자 정신의 숭고한 스승/신복윤명예총장
rpress
2242 2001-03-14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_special/신복윤.hwp순교자 정신의 숭고한 스승 신복윤 명예총장 우리는 존경하고 사랑하는 목사님, 장경재 목사님을 잃었습니다. 목사님은 지금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어 영광중에 주님을 모시고 찬양하며 기 쁨이 충만한 가운데 계실터인데, 우리는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슬픔을 금 할 길이 없습니다. 더 오래 우리곁에 계셔서 꿈을 같이 이야기하고, 못다하 신 일들을 하셔야 했는데 왜 목사님은 벌써 가셨나요. 아직 어린아이와 같은 우리 교단과 신학교를 두고 왜 벌서 가셨습니까? 아직 할 일이 많은시고 지도해 주실 일들이 많은데 왜 우리를 고아처럼 버려두시 고 혼자 떠나셨습니까? 우리 뒤에서 묵묵히 지켜주는 큰 산이 무너져 내린 것 같습니다. 목사님의 신앙과 인격, 그리고 성격에서 우리는 늘 고 박윤선 목사님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박윤선 목사님을 그렇게도 좋아하시고 그렇게도 많이 닮으신 목사님이기에 사람들은 목사님을 ‘제2의 박윤선’이라고 하였답니다. 목사님 은 신앙의 정열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으며 복음 진리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순교자의 정신을 가지고 매일을 숭고한 삶으 로 살아가셨습니다. 사람들을 대할 때 있는 그대로 꾸밈이 없었으며 따뜻하 고 다정하셨습니다. 그러면서도 한 번 뜻을 정하면 굽힐 줄 모르는 강한 성격 의 소유자이기도 하였습니다. 목사님은 이런 면들을 설교에서뿐만 아니라 매 일의 생활에서 보여주심으로 우리의 큰 귀감이 되어주셨던 것입니다. 목사님은 교단 합동문제로 한때 교단이 시련에 처했을 때, 합동해서 혼란하 고 복잡해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교단의 순수성과 평화를 지키는 것이 지금으 로서는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심으로 우리 교단의 방향을 분명하게 잡아주신 일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목사님의 주장이 참으로 백번 옳았습니다. 목 사님은 교단의 총회장으로 신학교의 이사장으로, 교단과 신학교 발전의 산 증 인이었으며 모든 일에 항상 앞장서서 몸을 던져 헌신하신 우리의 개척자였습 니다. 목사님의 이런 모습들이 생각이 납니다. ◆화성교회당을 팔아서라도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를 돕고싶다던 목사님. ◆신 학교 앞에 있는 땅 2천평을 빨리 매입해서 그 자리에 고 박윤선 박사 기념도 서관을 세우시겠다던 목사님. ◆앞으로 백억원 정도만 있으면 학교의 나머지 시설들을 다 건설할 수 있을 터인데 하시면서 희망섞인 안타까움을 말씀하시 던 목사님. ◆신학교 동문들의 일이라면 몸을 아끼지 않으시고 어디든지 달려 가서 도와주시던 목사님. ◆만주 봉천에서부터 시작해서 마산 문창교회 사건 들을 수없이 반복 말씀하셔도 조금도 지루하지 않고 그때마다 새로운 감동을 주셨던 목사님의 그 은혜로운 설교의 말씀. 이외에도 목사님의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너무 많으셨습니다. 그래서 다른 목 회자들의 도움을 위해서 ‘목회 수상집’을 출판해 보시라는 저의 조언을 기 억하고 계시는지요. 지금도 목사님의 그 성스러운 모습이 눈앞에 생생합니다. 고이 잠드소서! 장경재 목사님. 장차 주님이 계시는 낙원에서 목사님을 만나 뵙는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60 no image 총회 비전 21C대회 후기-김희자 사모
rpress
2255 2001-02-28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_special/사모2.hwp교단행사에 적극적인 참여를 김희자(충남노회 청라교회·사모) 매년 1월에 개최 되었던 사모세미나를 통해 보고 싶고 만나고 싶은 사모님들 을 사모함으로 기다리던 중 올해는 총회 비전 대회로 인하여 할 수 없게 되었 다는 소식에 섭섭한 마음이 없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총회적인 큰 대회인 만 큼 함께 참여한다는 사명감, 내지 남편과 함께 은혜 받을 수 있는 기회이기 에 기쁨과 즐거움으로 새벽부터 서둘러 집을 나서서 거리 여행을 시작한 지 9 시간만에 드디어 목적지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3개도를 거쳐 강 원도에 들어서니 20여년전 신학교를 막 졸업하고 뜨거운 열정 하나만 가지고 무엇이나 할 수 있었던 것 같았던 남편을 따라 아무런 두려움 없이 누구 하 나 아는 사람 없었던 곳이었던 신남에 이르니 남다른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마음이 찡한 채 인제가면 언제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라는 험하고 험한 산길 을 지나니 병풍과도 같은 거대한 장관의 울산바위 앞에 하나님의 위대하신 솜 씨를 찬양할 수밖 에 없었습니다. 어느 분의 지혜인지 제비 뽑아 배정받은 숙소는 바위의 병풍이 창문을 쳐 드 리웠으며 밤이 맞도록 이야기 꽃을 피우는 사모님들과의 교제는 그야말로 만 남과 나눔과 즐거움의 사역 그 자체였음을 실감케 되었습니다. 교제증 사모님 의 모임이 아닌 진정 주님이 원하시는 일꾼이 되어 오직 예수께만 소망을 두 어 옥합을 깨뜨린 마리아처럼 되기를 기도드렸습니다. 나 자신이 죽어지고 희 생되어 나로 인하여 남편이, 교인이, 나를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기를 주님께 부탁드렸습니다. 올바른 교회관을 정립시켜 한 영혼이 자라 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감을 얻을 수 있기까지 욕심을 버리고 거짓 이 아닌 진실함만으로 겸손한 보통 사모가 되기를 소원해 봅니다.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었던 손양원 목사님의 순교, 죽음을 다시한번 생각케 한 샘물 호스피스, 막가파 인생들의 장례를 책임지신 목사님의 사역, 시간시 간마다 너는 죽어야 된다는 주님의 음성, 3박 4일 동안의 비전 21C는 그야말 로 말씀의 은혜와 능력으로 인한 도전과 위로, 결단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어려움 속에서도 승 리하고 있는 어느 사모님의 눈물은 곧 한 방 식구였 던 우리 사모님들의 눈물이었고 100원짜리 사모들이 10원짜리 목사님들의 머 리에 감히 고무줄로 꽃을 피우게 하여 어디에서도 볼 수 없고 믿을 수 없는 무례함과 폭소는 우리 개혁 합신 교단만이 가질 수 있는 아- 하나님의! 은혜 였던 한마당 축제였습니다. 총회적인 행사가 있을 때마다 풍성한 간식과 봉사로써 섬기시는 전국 여전도 연합회 임원들의 수고는 모든 분들의 즐거움이 되었으며 늘 배울 때마다 사랑 과 격려의 위로 말씀으로 힘을 주시는 여러 목사님들과 사모님들, 각 부서에 서 이번 행사를 위해 여러 방면으로 애쓰시고 수고하신 목사님들의 사랑에 감 사드립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총회적인 행사에 더 많은 목사님들과 사모님들이 참여하 여 이번 주제처럼 함께! 새롭게! 전진하는 우리 합신 가족이 되었으면 합니 다.
Tag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