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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59 no image 총회 비전 21C대회 후기-김성렬 사모
rpress
2328 2001-02-28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_special/사모.hwp가슴을 뭉클하게 만든 대회 김성렬(대동교회·사모) 할렐루야~! 총회 집회는 처음으로 참석하게 되어 조금은 부푼 기대감과 설레이는 마음으 로 설악산 대명 콘도를 향하였다. 그리고 집회 매 시간마다 준비 찬양 부탁 을 받아 더욱 긴장한 마음으로 참석하게 되었는데… 시간시간 은혜로운 말씀 에 접한 우리는 마치 어린아이와 같은 부드러운 심령으로 모두가 하나가 된 느낌이었다. 웅장하고 멋진 울산 바위가 평풍처럼 둘러싼 아름다운 대자연을 창너머로 즐기면서 산 능선마다 하얀 눈의 정경은 마치 한폭의 그림과도 같았 다. 맑은 공기 쾌적한 환경 새로운 만남-! 모두가 신선하였다. 함께! 새롭게! 전진하자!는 표어와 함께 거 교단적인 차원에서 열린 한마당 축제 분위기로 교단의 일체성을 이루기 위해 열린 이번 대회는 시종 일관 은 혜로운 분위기의 연속이었다. 나그네와 같은 인생길에서 같은 길을 걷는 동역자들의 만남 가운데서 누리는 즐거움이야 오죽하랴? 일반 보통인들의 만남과는 또 다른 차원 인 신령적 즐거 움이 더하여 서로 위로 격려하는 가운데 자연의 품, 성도의 품, 나아가 하나 님의 품에 안길 때 진정한 참 행복을 누릴 수 있음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셨 던 개회설교의 김명혁 목사님! 모든 시간 시간 은혜로왔고 특히 순교자 손양 원 목사님의 따님 손동희 권사님의 간증은 기독교 역사의 격동기 시대를 너무 나 뚜렷이 증언해 주는 산 증인으로서 우리모두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 안일한 시대를 살고 있지 않은지…?’를 다시금 각성 케 해 주었다. 정보화시대에 걸맞게 예리한 권성수 목사님의 목회관! 죽음의 길목에서 바른 신앙의 정립을 도와주는 호스피스 선교의 절대 필요성을 역설 하신 원주희 목사님! 그리고 별세의 은혜라는 도통하신 말씀으로 가정목회의 중요성을 강조하신 이중표 목사님! 장로교회의 근본 정신과 욕심 없으신 학자 적 바른 목회관을 조용히 차분히 말씀해 주신 이수영 목사님! 너무 험한 인생 길을 걸어오면서 노숙자에게 관심을 쏟으신 임명희 목사님! 막간을 이용하여 외국인 근로자들에게도 관심을 돌려 그들이 바로 전도의 황금 어장 대상임을 역설해 주셨던 선교사님과 전도사님… 세상에 파송된 교회에 관하여 마무리 말씀으로 폐회 예배 설교를 해주신 최홍준 목사님! 등등… 교육부, 농어촌 부, 전도부 주최측에서 특별히 많이 신경을 쓴 흔적들이 역력하였다. 그리고 또한 감사한 것은 연로하신 목사님들과 장로님, 증경총회장님들께서 끝까지 모범적으로 참석하셔서 자리를 함께 하심만으로도 많은 위로와 힘이 되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전국 여전도회원들의 세심한 배려와 간식 준비 또 한 감사한 일이다. 이러한 귀한 대회에 전국 모든 교회가 보다 적극 참여하여 더욱 뜻깊은 만남 의 기회가 되었으면 더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과 여러 교계에서 바라보는 합신총회에 대한 기대와 이미지에 걸맞게 우리 모두 받은 바 말씀대로 현실 에 잘 적용하여 모든 지교회들이 늘 함께! 새롭게! 전진!하는 우리 합신총회 가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이다.
58 no image 총회 비전 21C대회 후기-김윤영 목사
rpress
2455 2001-02-28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_special/김.hwp기대 이상의 풍성한 수확 얻어 김윤영(초계제일교회·목사) 사실 총회 비전 21C 대회는 나와는 별 무관한 행사였다. 경제적 부담과 장 시 간의 여행, 한 달 전 교직자 수련회를 가족과 함께 한 형편이고, 프로그램을 보니 고등학생을 뺨치는 오전 6시부터 저녁 10시까지의 강의는 좋은 핑계거리 였다. 그러나 어쩌랴, 노회원들을 동원해야 하는 입장이 되고 보니 안 갈 수 가 없었으니, 그러면서 다른 노회원들에게 연락을 하면서 감언이설을 해야 했 다. 비록 힘들어도 이번 강의가 아주 좋지 않겠느냐, 강사와 강의 내용이 우 리에게 큰 도전을 줄 것이라고 하면서(확실하지는 않았지만), 또한 여러 이유 를 들면서 꼭 가야한다고 요청하자 몇 분이 허락을 했다. 한숨이 돌려지는 순 간이었다. 또한 강사와 강의가 마음에 들어서 참석한다는 노회원도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 횡재인가? 긴 여행의 끝에 도착한 우리에게는 생각지도 못했 던 놀라운 은혜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을 어찌 짧은 글로 표현하라? (참여하지 못한 분들은 두고두고 후회할걸!) 12시간의 거리가 아깝지 않았 고, 경제적 지출도 아깝지 않았다. 너무나 기쁘고 벅찬 감동이 3박 4일을 가 득 채웠던 것이다. 첫 시간부터 시작된 은혜는 갈수록 그 도가 넘쳐나고, 둘 째 날은 온통 눈물의 강이 흐르고, 열정과 웃음과 나눔의 기쁨이 차고 넘쳤 던 것이다. 몇몇 불편한 점도 있었지만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수 많은 봉사의 일에 말없이 수고한 모든 분들의 땀과 노력이 이러한 놀라운 은혜를 받게 하였던 것으로 보여진다. 더욱이 많은 총회의 어른들께서 보여주신 가장 앞자리에 앉음과, 매 시간 은 혜로운 참여의 열정을 보면서 또한 우리 총회의 아름다움을 보았다. 그 연로 하신 어른들께서 보여주신 순수함의 모습은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모든 것들이 우리 총회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이 새로운 세기 우리 총 회는 함게! 새롭게! 전진하자!는 그 주제처럼 우리 한국의 새 시대를 열어갈 것이라고 확신한다.
57 no image 총회 비전 21C대회 후기-조인성 장로
rpress
2245 2001-02-28
http://www.rpress.or.kr/files/planning_special/조.hwp비전, 대안 연구 없어 안타까워 조인성(강변교회·장로) 이번 총회(합신) 비전 21C 대회는 총회 20년 사역을 돌아보며 21C를 시작하 는 희망의 새해에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를 새롭게 하셔서 한국교회와 사회에 장로교로서 책임과 사명을 다하고자 하는 소원을 갖게 된 행사로 매우 은혜로 왔으며, 확실한 목회비전을 준 행복한 시간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와 찬 양을 드립니다. 소망 있는 총회에 감사를 드립니다. 은혜로운 시간들을 돌이켜 보면 총회장님의 개회예배 말씀을 통해서 인생, 목 회 그리고 신자의 삶이 만남과 나눔과 즐거움이라며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 게 주신 가장 좋은 축복이라고 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기쁨과 즐 거움의 대상으로 심으셨고 기쁘고 즐겁게 살도록 만드셨다고 하시면서 개회예 배를 기쁨과 즐거운 마음으로 열개 해 주셨습니다. 새벽마다 말씀으로 새롭 게 하시며 은혜로운 말씀으로 맞게 해 주셨습니다. 박병식 목사님은 하나님 의 말씀이 박혀있는 자는 시세를 알기에 어 떤 고난도 어려움도 뛰어 넘는 신 앙이 존재함을, 이중표 목사님은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을 감동시킨 마리아같 은 신자를 찾는 기념할 만한 목회, 목회의 소원이 예수여야 하고 목회의 비전 이 예수여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수영 목사님은 보통목회 즉 욕심없고 거짓 말 않고 겸손한 목사가 되겠다는 그리고 민주적인 목회, 좋은 인력을 최대로 활용하는 목회,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보통목회가 16년간 신학을 가르친 교수 에서 목사로 투신한 목사님의 목회철학임을 겸손히 전하시면서 바른신앙, 건 강한 신앙인을 만드는 것이 목회비전이라고 할 때 참으로 신선함이 있었습니 다. 오전, 오후 특강은 우리 목회자나 장로들이 참석했든 안 했든 테이프를 통해서라도 듣고 또 들어서 자기 목회비전으로 승화시켰으면 합니다. 이번에 강사로 초빙된 권성수 목사(합동), 이수영 목사(통합), 이중표 목사 (기장), 박병식 목사, 최홍준 목사(합신)께서는 각 교단의 지도자이심을 생각 할 때 총회비전 21C 대회에 아주 합당한 강사님들이었음을 감사하며 참으로 기쁨이었습니다. “배운대로 하면 목회가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에 반발했던 제자들에게 본을 보여주고 싶었고 아버님의 목회를 보며 하나님께 대들었던 자기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커서 목회자가 되었다. 사람을 살 리고, 사람을 키우고, 사람을 고치는 것이 목회의 비전”이라며 권성수 목사 님은 균형잡힌 목회를 강조했습니다. 또한 16년간 신학교수로 제자를 육성하 며 교수로 마치려 했는데 목회의 기회를 주신 것은 한국교회의 개혁이 요구 한 것이라 했습니다. 진정 장로교회의 특성이 상실되고 있음을 안타까와 하 며 장로교의 9가지 특성을 제시했습니다. 1. 하나님에 대한 절대주권의 순종과 그의 영광에 대한 삶 2. 성경적 신앙과 개혁의 철저성 3. 자기 정체성, 성도는 하나님나라의 도구, 군사, 그리고 백성임을 의식하 는 삶 4. 고도의 윤리성 5. 학문가 교육의 중요성 6. 말씀 중심의 삶. 설교말씀에 생명을 걸어야 한다 7. 교회조직 중심의 민주적인 목회 8. 경건운동에 힘쓰는 삶 9. 단순성의 원리, 단순한 삶은 진실하다 이들 목사님들의 목회 목표와 비전은 현재 한국 교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고 봅니다. 그리고 목회는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할 수 없으며 목회에 간섭하시는 하나님 의 은혜가 너무 크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십니다. 이어서 이 시대 에 꼭 해야 할 호스피스목회(원준희 목사), 노숙자목회(임명희 목사), 외국인 근로자목회(김해성 목사) 등은 힘들지만 은혜가 있고 감동이 있는 사역임을 모든 교회가 관심을 가져야 할 그리고 협력사역이 필요함을 일깨워 주었습니 다. 한편 농어촌교회나 작은 교회들의 배려와 실상에 대한 총회의 비전이나 대안 연구가 없음은 안타까운 아쉬움이었습니다. 이 대회를 준비하고 진행을 맡아 수고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 감사드립니다.
56 no image 민족 정신을 일깨운 사사 삼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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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4 2000-08-02
-민족 정신을 일깨운 사사 삼손(15:9-20) 송영찬 국장 딤나 사건이 있은 후 삼손은 에담 바위 틈( 는 동굴의 의미)에 가 있었 다. 에담은 소라 동남쪽 약 4 Km지점에 있는 곳으로 지형적으로 절벽이 많고 동굴이 많은 곳이다. 혈혈단신으로 적군을 상대하기 위해 삼손은 이곳을 적합 한 곳으로 판단한 것 같다. 1) 블레셋 사람들의 이간(離間) 작전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을 퇴치할 목적으로 직접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가지 못 했다. 그것은 삼손의 괴력과 에담의 지형적 특성상 대군이 쳐들어갈 수 없었 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벧세메스 근처인 레히에 진을 치고 유다 사람들을 회 유하는 작전을 사용했다. 그것은 유다 사람들로 하여금 삼손을 잡아오도록 하 는 일종의 이간 작전이었다(9-10절). 즉 동족의 손에 삼손이 잡히게 됨으로 써 동족간에 이질감을 심어주고 장차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삼손 을 미연에 처단하는 일거 양득을 노린 셈이다. 2) 민족의 이익을 먼저 생각한 삼손 유다 사람들은 삼손으로 인해 블레셋 사람 들에게 해를 당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에담으로 찾아갔다. 삼손은 "너는 블레셋 사람이 우리를 관할하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11절)고 하는 유다 사람들의 의식 구조에 대해 더 이상의 변 론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에게 여호와의 참 능력을 보여주는 것만이 그 들을 돌이킬 수 있는 방법이었다. 대신 삼손은 그들에게 확답을 구한다. 결 코 그들이 나서 삼손을 치지 말라는 요구였다(12절). 블레셋 사람들을 치기 위해 준비해 온 삼손으로서 당연한 요구였다. 필요 없이 동족과 싸우기 위해 기력을 사용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 순간에도 민족을 먼저 생각 했던 것이다. 3)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삼손 삼손이 레히에 있는 블레셋 사람들 앞으로 끌려나가자 블레셋 사람들이 소리 를 지르며 달려 나왔다. 블레셋은 이것으로 삼손에 대한 염려를 놓을 수 있었 다. 장차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삼손이 결박당한 것으로 블레셋은 승리를 예감했을 것이다(14절). 그리고 블레셋 사람들은 앞선 철기 문화를 바 탕으로 적지 않은 중기로 무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결박되어 잡혀 온 삼손 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 을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의 신에 감동을 받은 삼손은 나귀의 턱 뼈를 주워 그 자리에서 1천명의 블레셋 사람들을 쳐죽였 다. 한 순간에 승자가 바뀐 것이다(15-16). 라맛 레히 사건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민족적 동질 의식을 되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된 것이 틀림없다. 그것은 이 사건을 계기로 비로소 삼손은 그가 죽 을 때까지 20년간 이스라엘의 사사로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다(20절). 그러나 이 사건을 통해 이스라엘 자손들이 독립을 쟁취하거나 민족 의식을 찾으려 하 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너무 오랫동안 블레셋의 지배에 익숙해져 있었던 것이다. 이런 현상은 삼손으로 하여금 새로운 활동을 계획하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55 no image 삼손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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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6 2000-07-20
-블레셋을 공략하기 위해 명분을 앞세운 삼손의 지혜(15:1-8). 송영찬 국장 삼손은 민족의 적 블레셋 사람들을 칠지라도 사적인 감정을 앞세우지 않고 정의와 명분을 앞세웠음을 볼 수 있다. 혼인 잔치를 파경으로 이끌고 간 일 역시 누가 보더라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도록 했었다. 1) 삼손이 다시 딤나로 내려간 이유. "얼마 후 밀 거둘 때"(1절)는 여러 날이 지나 맥추기가 되었음을 시사한다. 그 기간은 딤나 여인의 집에서 이미 파혼이 된 것으로 여길 정도로 충분한 기간이었다(2절). 그러나 삼손은 정식으로 이혼한 것이 아니라는 명분을 앞 세워 당당하게 딤나 여인을 요구했다. 딤나 여인이 타인의 아내가 된 사실 에 대해 삼손이 알았는지 분명하지 않다(14:20). 그러나 소라와 딤나와의 거리는 불과 7 Km도 안되었고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는 것은 삼손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음을 시사해 준다. 이것으로 삼손이 블레셋 사람들을 칠 명분을 세우기 위해 의도적으로 상당한 시간을 보냈음을 알 수 있다(3절). 2) 블레셋 사람들의 손 으로 딤나 여인이 심판을 받게 함. 아내를 타인에게 준 장인이나, 타인에게 간 여자나, 남의 아내를 취한 사람 은 분명 불법을 행한 것이다. 따라서 삼손은 정의를 내세울 수 있는 입지 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삼손은 이 일에 대하여 직접적인 보복을 취 하지 않았다. 대신 농사가 다 된 밭과 감람원을 불사른 것으로 대신했다 (4-5절). 그것은 추수를 앞 둔 블레셋 사람들에게 예상치 않은 큰 피해를 가져다 주었다. 이 일로 분개한 블레셋 사람들은 딤나 여인과 그 부친을 불에 태워 죽이고 말았다(6절). 이것은 삼손의 계산된 행동이었다. 3) 일반적인 정의관(正義觀).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비록 죄로 인해 어두워졌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속성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정의에 대한 관념이다. 이것은 불의나 부정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의를 추구하도 록 하는 양심을 행사하도록 한다. 그러나 이익이나 이권에 어두워지면 양 심도 어두워지기 마련이다. 블레셋 사람들은 추수할 곡식과 감람원 농장이 불에 탔다는 사실만 보았다. 그리고 그 분 풀이로 딤나 여인과 그 부친을 같은 방법으로 불살라 죽였다. 이런 행위는 일반적인 정의 차원에서도 용 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비록 상당한 피해를 받았다 할지라도 정당한 법 절차에 따라 형벌을 내려야 했다. 반면에 삼손은 블레셋 사람들이 무고한 딤나 여자와 그 부친을 죽인 사건 을 빌미로 그들을 원수로 단정할 수 있었다(7절). 그리고 블레셋 사람들에 게 적지 않은 타격을 주었다(8절). 이처럼 삼손은 사적인 감정이 아닌 대의 적인 명분을 가지고 블레셋 사람들을 공략했던 것이다.
54 no image 삼손과 딤나 여인과의 혼인 문제에 대하여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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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27 2000-06-29
삼손과 딤나 여인과의 혼인 문제에 대하여(삿14:1-4) 송영찬 목사(본보 편집국장) 삼손이 블레셋 족속의 딤나 여인과 혼인하고자 한 것에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 가나안 사람들과의 혼인을 금지한 율법에 위 배된다는 것이다. 둘째, 적을 공략할 목적으로 혼인을 이용하는 것 은 혼인의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는 도의적인 책임에 위배된다는 것 이다. 이 두 가지 문제점 때문에 일반적으로 딤나 여인과의 혼인은 부정적인 반응을 가져왔다. 그러나 여호와의 신에 감동을 받은 삼손이 이 문제점을 알고서도 혼인을 감행하려고 한 것(2-3절)과 이 일이 블레셋을 치기 위한 목 적으로 여호와께로부터 나온 것(4절)이라는 사실에서 볼 수 있듯이 삼손의 혼인에 대한 재 평가가 요구되고 있다. 1) 가나안 사람들과 혼인을 금하신 이유와 목적. 여호와께서 가나안 사람들과 혼인을 금하신 것은 그들의 유혹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 숭배에 빠지게 될 것을 염려하였기 때문이다 (출34:16;신7:3,4).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혼인을 하고 그 안에서 안일한 가정 생활에 빠져 사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의 신앙을 바탕으로 민족의 정체성을 살려나감에 있어 적극적으로 인생을 경영해야 할 사명이 그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런 위치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혼인한 이방 사람 역시 완전히 이 스라엘적인 신앙과 사명감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우상 숭배에 젖어들고 그 문화에 익숙해 있는 가나안 사람들이 그 렇게 쉽게 여호와의 신앙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스 라엘 백성의 정체성을 더욱 확고히 하기 위해 가나안 사람들과의 혼인을 금하셨던 것이다. 따라서 가나안 사람과 혼인을 금한 조항은 가나안 사람들과 혼인 해서는 안 된다든지 그것이 죄가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가나안 사 람들이라 할지라도 여호와를 섬긴다면 얼마든지 맞아 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방 여인과 혼인하려 했다는 이유만을 가지고 삼 손을 부정적으로 평가한다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다. 2) 혼인을 통해 기회를 보아 블레셋을 공략하려고 한 삼손의 태도 는 정당한가? 삼손은 개인적인 욕망 이나 행복보다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의 한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민족적 사명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대부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는 이런 의식을 찾아볼 수 없었다 (15:11 참고). 때문에 삼손은 이스라엘이 계속해서 블레세의 속국으 로 존재해선 안 된다는 사실을 중시했다. 또한 여호와께서 삼손을 보내신 것도 블레셋으로부터 이스라엘을 자유롭게 하기 위함이었다. 사람의 제일된 목적은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데 있다(웨스트 민스터 소요리문답 1번). 따라서 개인적인 평안이나 위로를 목적으 로 혼인을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혼인은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 내는데 그 목적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삼손은 평생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일에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충실했다. 이 로써 삼손은 신앙의 용사로 기록된 것이다(히11:32). 삼손이 딤나 여인과 혼인하고자 한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이 사명 을 수행하기 위함이었다. 많은 가나안 여인들 중에서 유독 블레셋 여인을 택한 것도 여기에 있다. 3) 선과 악의 판단 문제. 무엇이 정당한 선택인가? 선은 정당한 기초 위에서 자기의 가 치를 평가하고 드러내는 것에 서 발생한다. 따라서 선의 기준이 명확해야 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선의 속성이 그 표준이다(갈5:22-23). 나아가 선은 단순히 개 인적인 도덕이나 윤리적인 성격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선은 '나' 개인인 동시에 전제 안에서의 '나'를 완성하는데 그 목적을 두어야 한다. 이것은 개인으로서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음 을 의미한다. 거기에는 공동체에 대한 책임 의식이 있어야 하는데 그 이유는 '나'는 하나님의 백성에 속한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삼손은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내는 일에 목적을 두고 블레셋 여인 과 혼인하려 했던 것이다.
53 no image 선교지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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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5 2000-06-16
선교지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 이재섭 선교사 1. 네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저희 가족은 1997년 1월 23일 카자흐스탄으로 선교를 떠났습니다. 당시 수도였던 알마타에서 서북부 쪽으로 약 2,800km 떨어진 우랄스크에 도착 하자 온통 눈으로 뒤덮힌 백설의 나라였습니다. 혹독한 추위와 연일 내리 는 눈으로 햇볕을 구경하기 힘든 환경 속에서 자녀들 모두 취학을 시켰습 니다. 집에서 비교적 멀리 떨어진 학교까지 약 20여분간 자녀들과 눈길을 걸어가야 했습니다. 저는 이 도시를 지키는 유일한 선교사로서 사역에 들어갔습니다. 현지 교회를 맡은 지 두 달이 채 못되어 60여명이 출석하는 교회로 성장했습니 다. 하지만 선교를 방해하는 악의 세력 또한 만만치 않았습니다. 사단은 멀고도 낯선 땅까지 어김없이 찾아와 갖은 공격을 퍼붓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쌓인 눈을 밟으며 학교를 가던 찬미가 "아빠 나 숨쉬기 힘들 어"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찬미는 숨이 가빠오면서 기운을 잃기 시작했 습니다. 그래서 찬미를 데리고 주립병원으로 갔습니다. 주립병원은 입원실이 없는데다 집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서 오가는 것 또한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담당 의사 선생님이 집에 그대로 두라고 한 후 매일 왕진을 와 주어 고마왔습니다. 하루는 왕진 온 주립병원 소아과 의사가 찬미의 몸을 살리더니 급히 입원실을 갖춘 큰 아동병원에 입원을 시킬 것 을 권유했습니다. 5층 이상 건물이 거의없는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10층 규모의 큰 사립 아동병원이 있어 마음이 조금 놓였습니다. 서둘러 사라 선교사와 함께 찬 미를 입원을 시켰습니다. 외국인이 거의 찾아오지 않는 곳임에 비해 유일 하게 동양에서 온 환자여서인지 아동병원에서 가장 권위있는 의사 선생님 이 주치의로 나섰습니다. 그러나 폐렴과 기관지염 증세가 가라않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호흡장애와 구토가 일어나 점차 상태가 심각해 지고 있음 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2. 사단이 찬미를 노리고 있으니 데리고 이 도시를 떠나라 입원 5일째 되던 날 집에서 찬미를 위해 기도하는 중에, "사단이 찬미 를 노리고 있으니 곧 데리고 이 도시를 떠나라"는 주님의 지시가 있었습 니다. 너무 놀라 가만히 있자 반복해서 똑같은 말이 되풀이 되었습니다. 즉각적으로 병원 치료에 무언가 이상이 발생하고 있음을 느끼고 "예, 알 았습니다. 주님" 하자 그치는 것이었습니다. 다음날 병원을 찾아가자 마침 토요일이어서 주치의가 없었습니다. 월요일에 병원을 찾아가 찬미의 상태 를 묻자 담당 선생님이 호전되다가 다시 나빠지고 해서 뚜렷한 대책이 없 다고 하기에 퇴원을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담당 의사가 찬미에 대한 앞으 로 계획을 묻기에 알마타로 데리고 갔다가 정히 어려우면 한국으로 가게 될 지 모르겠다고 하자 약을 챙겨 주었습니다. 심지어 그동안의 치료비를 안 받겠다면서 호의를 베풀어 주었습니다. 우랄스크에서 알마타로 가는 비행기가 자주 있지 않아 거의 한 주일이 지나서야 찬미와 둘이 알마타로 떠날 수 있었습니다. 알마타에 도착하자 선교사들이 자주 보였습니다. 이들은 알마타 병원은 입원비가 엄청나게 비싼데다 치료에 있어서 안전을 보장할 수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마침 숙소를 방문한 한 선교사님이 찬미에 대해 듣더니 알마타에 경희의료원이 지원하 는 경희크리닉이란 곳이 있는데 거기에 한국 연수를 다녀온 고려족 소아과 의사가 있다면서 내일 데려다 주겠다는 것이었습니 다. 한국에서 알게 된 사이지만 그동안 병원이 어디에 있는 지 모르고 있 었는데 우리가 도착하기 하루 전에 우연히 만나게 됐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밤 찬미는 심한 호흡곤란으로 거의 중퇴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 다. 이국 땅에서 생명이 위태로운 딸을 홀로 바라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으 로 밤을 세웠습니다. 아무도 함께 자리를 지켜주지 않았지만 대신 하나님만 바라보고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당신이 저희를 부르셨기에 이 먼 나라까지 한 겨 울인 줄 알면서도 어린 자녀들과 함께 왔습니다. 또한 불의한 자들이 아 무리 우리를 해치려고 해도 뒤로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버텨왔습니다. 그 렇지만 이 어린 아이가 먼 땅에 와서 이대로 죽게 둘 수는 없지 않습니 까. 주님 우리 찬미를 살려 주세요." 하고 밤을 세워 기도했습니다. 3. 내 딸은 내가 지킨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다시 응답하셨습니다. "내 딸은 내가 지킨다. 너는 찬미가 네 소유라고 생각하지 말라. 찬미는 내 딸 이다. 나는 단지 찬미의 양육을 잠시 네게 맡겼을 뿐이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저의 불찰을 회개 했습니다. 한없이 길게 느껴진 밤을 넘긴 후 이튿날 아침 방문한 선교사 님 차를 타고 함께 경희크리닉을 찾아갔습니다. 소아과 의사이신 함미영 선생님은 고려족인데 비해 남편은 한국인 사업가였는데 비교적 한국어를 잘 해 찬미를 치료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았습니다. 함 선생님은 우랄 스크 병원 기록을 살피더니 "큰일났다. 이럴 수가..." 하면서 깜짝 놀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랄스크 병원에서 찬미에게 너무 많은 홀몬제를 먹여 심 한 중독증세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급히 옆방으로 가서 원로 내과 의사이신 르두밀라 선생님께 알리자 오랫동안 긴급회의가 열렸습니 다. 루드밀라 선생님이 짠 홀몬 감량 및 응급처치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필 요한 약을 사기 위해 르두밀라 선생님이 직접 나서서 온 도시를 두루다니 며 약을 사 모았습니다. 찬미가 복용한 약은 [프레드니졸론]이란 것으로 5mg 용량을 일일 8개 씩 8일간 투약해 심장이나 위, 간 등 신체 주요 기관이 심한 손상을 입었 을 것으로 보인다며 걱정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라가 다르고 해서 이렇듯 치료 방법에 큰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찬미를 데리고 급히 우랄스크를 곧 떠나라 하던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경희크리닉에는 입원실이 없었던 탓에 밤에는 본인이 찬미를 간호하면서 의사가 가르쳐 준대로 주사와 투약을 맡고 아침에는 병원으로 옮겨 놓았 습니다. 르두밀라 선생님은 "찬미가 이미 저항력을 상실한 상태라 감기만 걸려도 죽게 된다. 식사 시간 외에는 반드시 재워야 한다"며 주의를 당부 했습니다. 이미 기력을 상실해 제대로 걸음도 못걷는 찬미를 옮길 때면 대개 업거나 택시를 타야 했습니다. 4. 살아있는 것이 기적이다. 마침 알마타에서 활동하고 계신 외과의 M박사는 찬미에게 청진기를 대 보더니 "살아있는 것이 기적이다. 전혀 숨을 쉬는 것 같지 않다"고 말해 주위를 놀라게 했습니다. 찬미의 응급조치를 시작한지 10일이 지나자 홀 몬제 양이 일일 2개까지 떨어져 서둘러 서울로 후송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한국에 도착하자 마자 천호동 부활내과에 입원을 시켰습니다. 부활내과 한통석 원장님께서는 선 교지에서 긴급히 후송된 찬미를 위해 친절히 무료 진료를 맡아주었습니다. 호흡조차 가다듬지 못하던 찬미를 소생시키기 위 해 2개월 동안 52병의 링거액과 함께 고가의 항생제를 비롯해 약제를 무 상으로 투여하는 등 최선의 노력을 기울어 주셨습니다. 후원자들께서도 찬미의 병실을 찾아와 기도와 위로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심폐 기능이 거 의 상실해 어깨 위로 힘겹게 숨을 쉬던 찬미가 점차 정상을 찾기 시작했 습니다. 그야말로 기적의 소생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하지만 악의 무리로 인해 현지에 남은 가족이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 있 다는 말을 듣고 서둘러 찬미를 데리고 카자흐스탄을 향했습니다. 알마타 에 도착한 다음날 찬미의 건강이 다시 급격히 악화되어 고열과 함께 의식 불명에 빠지는 것이었습니다. 급히 경희 크리닉으로 데리고 가자 함 선생 님이 사태가 심각하다며 바로 앰브런스를 불러 찬미를 큰 병원으로 옮기 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가족들이 있는 곳까지 약 3,000km나 떨어져 다 소 안정을 찾자마자 곧 우랄스크로 향했습니다. 찬미가 다가오는 겨울을 견딜 수 있을 지 다소 염려되었지만 새로운 사 역을 위해 준비해 나가는 동안 현지인과 신뢰가 두터워져 갔습니다. 그러 나 방해 세력이 고위층에 압력을 가해 담당책임자들이 손을 놓고 말았습 니다. 이들은 불법체류자로 만들어 영구추방 하기 위해 거주허가를 3일로 줄이라고 지시했지만 출입관리국 경찰이 찬미가 아직 약한 상태임을 내새 워 10일로 제한하는 것이었습니다. 서둘러 국제공항이 있는 알마타에 있 는 분께 협조를 요청했으나 선뜻 응해 주지 않았습니다. 이번엔 우즈벡 타쉬켄트 공항과 인접한 침켄트 지역으로 연락을 취한 후 기차로 철수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5일간 현지를 수습한 후 기차역으로 나가려 하자 밤 1시에 출발하는 기차였음에도 10여명의 현지인들이 찾아와 석별을 아쉬워 하며 짐을 날라주고 먼길을 가는 동안 기차에서 먹으라며 음식을 챙겨 주 었습니다. 저희 가족은 마치 고향을 떠나는 듯 착잡한 심정으로 기차에 올랐습니다. 5.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무려 36시간 동안 약 2,000km나 떨어진 광활한 대륙을 지나 침켄트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에도 사단의 기세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심지어 아직 카자흐스탄 정부가 이따금 교회 허가를 해 주고 있음에도 누군가가 교회 허가를 받기 어렵도록 조치해 둔 것을 알고 놀랐습니다. 그래서 금식하며 측근 현지인들과 교회 허가를 받기 위해 노력한 결과 드디어 새로운 교회 허가의 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해서 교회 허가를 기다리던 선교사들에게도 길이 열리기 되었던 것입니다. 위기 때마다 역사해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후원자들의 기도 와 측근 현지인 성도님들, 출입관리국 경찰과 찬미가 다니던 영국 선교 부 샬롬 스쿨 관계자들의 적극적인 도움은 두고 두고 잊지 못할 것입니 다. 방해 세력은 저희 가족 여권을 탈취하고 갖은 위협을 가해와 결국 더 이상 거주가 어렵게 되고 말았습니다. 아마 하나님께서 이만큼 사역하라 는 뜻이었나 봅니다. 저희는 방해 세력을 피해 영국선교부가 제공한 숙소에 약 4개월 머물면 서 약 700km 떨어진 한국대사관을 오가며 여권을 재발급받아 무사히 한 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저희는 어떠한 환란과 역경 속에서도 선교가 중단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래서 사역 재개를 위해 기도하며 알아본 결과 러시아 시베리아 지역이 비교적 아직 미전도 종족이 많고 이 시대의 선교지로 비 중이 큰 곳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한 겨울에 영하 40도를 오르내리 는 추위와 선교가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지 않는 현실, 그리고 치안의 부 담을 간과할 수 없지만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 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너는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예레미야 1:7,8)는 말씀을 따라 금 번 6월말 다시 온 가족이 시베리아의 한 도시를 향해 떠나기로 결정했습 니다. 찬미(10세)를 비롯한 기은(12세), 기성(9세) 세 자녀가 시베리아의 기후 에 견딜 수 있도록 위해 기도바랍니다. 또한 오직 믿음으로 선교에 임하 고 있는 저희 가족의 사역을 위해 부족한 부분이 채워지도록 한국 교회 성도님들의 기도를 당부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재섭목사(개신원 77회 졸업, 예장개혁 총회선교사, 한국외지선교회 소속 02-483-0734, 011-9061-6896) 후원구좌: 국민은행 042-21-0457-850(이재섭), 우체국 012740-0038711(이 재섭) 이재섭선교사 홈페이지:prayerhand.org, Email: p rayerhand@yahoo.co.kr
52 no image 지금 개신교의 신앙이 어디로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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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6 2000-05-24
-지금 개신교의 신앙이 어디로 가고 있는가? 석가탄일 축하메시지 보낸 KNCC는 즉각 회개하라! 곽윤영 목사(황치교회) 개신교의 촉발자요 중요한 진행자였던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인지하는바 로 마 가톨릭의 부패한 제도와 타락한 실태에 대하여 단호히 결별을 선언하고, 1517년 10월 31일 95개조의 논제를 비텐베르크 성교회 정문 앞에 내걸고 개혁 의 의지를 선포했을 때, 사선을 넘나들며 죽음을 불사하는 순교적 정신으로 개혁을 이룩하게 된 것이다. 역시 불후의 명작인 기독교강요를 집필한 프랑스 의 신학자이며, 세계적인 신학자요, 오늘의 개혁교회(Reformed churchs)를 설 립한 칼빈도 피신과 옥고를 치루며, 필사의 각고의 결실이 프로테스탄트 (Protestant, 기독교)를 창출해 낸 것이 아니었던가? 그뿐인가? 스위스 종교 개혁자 쯔빙글리를 위시하여 독일 종교개혁자인 부쳐와 아우크스부르크 신앙 고백을 기초하여 종교개혁교회 형성에 큰 공헌을 한 독일 종교개혁자 멜랑히 톤 등등 수많은 종교개혁자들이 천난만고(千難萬苦)의 피흘림으로 이룩한 개 혁주의(Reformationism)가 이 지구상에 어엿이 서서 하나님께 거룩한 영광을 돌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 왜 이들은‘모래알이 조개를 씹듯이, 아파하며 슬퍼하며 울어야 했으 며, 고난과 고초의 개혁의 십자가를 자초해야 했던가? 그 이유는 길지 않다. 부패한 가톨릭의 멘토(mentor)들이 사도적 교회와 속사도 및 교부들의 정통 적 신앙과 신학사상으로 말씀의 토대 위에 든든히 세워 신정정치(신본주의) 를 전수해 주었는데, 성경과 신앙을 희석 내지는 변질로 하나님께서 다스리시 는 하나님의 교회가 아닌 인간이 다스리는 교황 신격화 교황정치로의 이질적 (인본주의) 교회로 변질시켰기 때문이요, 타락한 그들의 세력에 추종하는 양 무리들을 구출하기 위하여 종교개혁자들은 성경이 성경 되게, 교회가 교회 되 게, 성도가 성도 되게 하려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하나님의 종의 양심을 가 지고 십자가 지는 종교개혁을 단행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의 교회와 목회 자들은 개혁자들의 피흘림의 결실로 건전한 신학과 신앙의 반석 위에 열매를 거두면서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목 회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 가? 그러기에 오늘날의 목회자들은 정신차려 개혁자들이 피흘려 전수해 준 개 혁사상을 굳게 지켜야 한다. 그런데 필자가 어려운 기고를 만부득이 하게 된 금번 동기는 2000년 5월 11일 SBS 저녁 8시 뉴스에 경이(驚異)하고 이질적인 보도를 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내용인 즉 “천주교와 각 종단에서 속칭 석가 탄일에 축하 메시지를 보냈 으며, 또한 한국 개신교에서도 화합적인 차원에서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것 이다. 필자는 “개신교에서도”라는 보도를 들은 내 귀를 의심하면서 아니기 를 바랬으나 사실이었으니 어찌하겠는가? 한국의 교회가 세속의 탁류의 물결에 깊히 빠져있음은 인지의 사실이나 이방 종교와 화합의 기화로 예전(例典)에 깊숙히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은 미처 몰 랐던 터에 당혹스러움에 하나님의 공의가 두려웠고 한국 교회의 앞날의 어두 운 그림자를 예견하면서 과연 한국 교회의 타락의 사양길이 어디까지 치달아 갈 것인가? 참으로 암울하고 개탄스러움의 전율을 금할 길이 없다. 그러던 다음 날 필자는 서둘러 보도의 진의를 확인하고저 한국을 대표하는 한 기총(韓基總) 회장댁으로 전화를 걸었다. “아마, KNCC에서…”라고 말한다. 곧 교회협의회(KNCC) 이○○회장과 전화로 일문일답의 결과 “잘 모르는 일인 데요? 김○○총무가…?” 곧 김총무와 전화로 연결했다. 대화 결과 “KNCC가 잘하고 있으니 걱정할 것 없습니다. 목사님은 어느 교단입니까? 응, 그 교단 은 KNCC에 가입하지 않은 교단이니 상관할 것 없습니다”라고 거두절미 불협 화음의 전화를 끊는다. 김총무의 말이 타당하다면 축하 메시지 전달 명의를 한국개신교의 명의로 해 서는 안된다. 이유는 한국의 많은 교단들이 KNCC에 가입하지 않았기 때문이 다. 그러면 KNCC의 명의로 아니면 김총무의 개인의 명의 혹은 몇몇 사람의 추 종자들의 공동명의로 조계종 본부에 축하 메시지를 보냈어야만 경우와 사리 와 교단적 성격의 행정을 인식하는 분이 되었을 것이다. 시시비비를 불문하 고 KNCC 김총무는 하나님 앞에, 한국 교회와 세계적인 개신교(Protestant)에 씻을 수 없는 과오를 다음과 같이 범했음을 주님의 이름으로 천명한다. 첫째, 하나님의 엄위하신 말씀과 뜻을 저버리는 행위를 자행했다(출20:1-6;왕 상11:1-8;고전6:19-20;요이7-11;느13:26;골3:6). 둘째, 그리스도는 지금도 전능하신 신으로 실존하신다. 그러나 석가모니는 신 도 아니요, 우리와 똑같은 성정이 같은 인간이요, 흙으로 돌아간 현 실존의 존재가 아니며, 경배의 대상도 아닌 즉 그에게 절하는 자마다 우상에게 절하 는 것이요 우상을 섬기는 자들과 화친을 도모하고 인정하며, 예전(例典)에 함 께 하는 자들은 죄없다 못할지니(고후6:15;왕상22:4-36;렘10:1-11). 셋째, 한국 개신교가 KNCC를 한국 개신교를 대표하는 단체로 공인한 사실도 없고 또 석가 탄일에 축하 메시지를 보내도록 한 일에 아는 바도 허락한 바 도 없다는 사실인 즉, 명예 도용은 물론 한국 개신교 및 세계적 개신교가 바 알에게 무릎 꿇은 거짓 선지자들처럼 우상의 종교와 화친하고 인정하며 타협 한 꼴이 되었고 그 명예 훼손과 실추를 회복할 길이 묘언하여, 국가 사회 종 교계 모든 크리스천들로부터 신앙의 지조와 절개가 없는 시대 조류의 탁류에 따라 썩어가는 한국 지도자 목사들로 오인케 한 죄이다. 넷째, 그리스도의 피로 나눈 교단과 한 형제의 연합을 외면하면서 소망이 없 는 이방 종교와의 하나 되려는 그 신앙의 저의는 어디 있는지? 이는 큰 위선 n과 가식이요, 주님의 책망을 받을 죄 중의 죄이다. 끝으로 금번 불명예스러운 사건을 한국 대표, 한기총에서는 반드시 사실 진의 를 조사하고 밝히어 매스미디어를 통한 공개가 있어야 할 것이며, 당사자들 에 대한 문책과 지과필개(知過必改)토록 시행할 때, 하나님께 대한 사명을 다 한다고 할 것이다.
51 no image 태국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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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55 2000-05-24
총회교직자 수양회 참석기 성순덕 (사모. 진상동부교회) 금번 총회교직자 수양회를 태국에서 개최하도록 예비하여 주신 하나님께 먼저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농어촌교회와 도시 개척교회 교역자 부부를 참여케 배려하여 주신 교육부와 총회 산하 여러 교회들과 성도님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섭씨 37-8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운 날씨 속에서도 신기하고도, 낮 설은 이국의 정취에 사로잡혀 3박4일의 여정을 마냥 즐겁게 뜻있게 보내었다. 우리 일행은 저녁12시경에 숙소에 도착, 먼저 하나님께 개회예배를 드렸다. 주님! 이번 기간을 통하여 주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세계를 접하게 하시고, 귀한 말씀으로 새 힘을 얻게 하옵소서! 다음날 아침 우리는 금빛 찬란한 에메랄드 사원을 돌아 본 후 수상시장을 관광하기 위하여 배에 승선하였다. 치오프라야 강을 항해하는 동안 작은 배들이 물건들을 가득 싣고서 우리에게로 몰려왔다. 작은 키에, 검고 큰 눈... 12-13세쯤 되어 보이는 어린 소년 소녀들이 바나나와 과일들을 팔기 위하여 애쓰는 모습이 무척 안쓰러워 보였다. 이곳은 물만 흐르는 강이 아니라, 더러운 몸을 씻어내는 목욕탕이요, 더러워진 옷을 빨래하는 빨래터요, 갈증난 목을 추겨주는 식수다. 그리고 그들의 신이 계시는 새벽사원이 있는 곳이며, 병원과 학교가 있는 곳이요, 쉼과 안식을 제공하는 수상가옥이 있는 곳이다. 그러니 물이 흐르는 강이 아니라, 태국인들의 삶의 터전이요, 태국인들의 일터 그 자체였다. 수요예배 시간에 총회장 정판주 목사님께서 "아가페의 사랑에서 필레오의 사랑으로 낮아지셔서 베드로를 찾아오신 주님"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동안 나는 두고 온 교회와 성도들을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주님께서는 나의 부족한 모습까지 낮아지셔서 나를 사랑하시는데.... 나는 성도들의 모습으로까지 낮아지지 않았다. 그리고,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만큼 성도들을 사랑하지 못하였다. 깊은 회개의 눈물과 더불어 새롭게 솟아오르는 성도들에 대한 사랑을 다시 한번 체험하게 하여 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린다. 마지막날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어 태국과 인접국들의 복음화를 위한 선교 비젼 가지고 세워진 은혜학교를 방문하였다. 함께 예배드리며 찬양하고 기도하는 현지인들을 직접 대하고 보니,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큰 감동을 받았다. 태국인들의 가슴이 주님을 향하여 불같이 뜨겁게 타오르고 ,태국인들의 이성이 주님을 향하여 얼음같이 차겝게 깨어나길... 이 사역을 위하여 헌신하시는 정석천 선교사님과 김군섭 목사님의 가정 위에도 주님의 크신 은혜와 능력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하면서 두서 없는 글을 마치려 한다. 2000년 5월21일 밤
50 no image 지금 개신교의 신앙이 어디로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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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4 2000-05-24
지금 개신교의 신앙이 어디로 가고 있는가? 석가탄일 축하메시지 보낸 KNCC는 즉각 회개하라! 곽윤영 목사(황치교회) 개신교의 촉발자요 중요한 진행자였던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인지하는 바 로마 가톨릭의 부패한 제도와 타락한 실태에 대하여 단호히 결별을 선언 하고, 1517년 10월 31일 95개조의 논제를 비텐베르크 성교회 정문 앞에 내걸 고 개혁의 의지를 선포했을 때, 사선을 넘나들며 죽음을 불사하는 순교적 정 신으로 개혁을 이룩하게 된 것이다. 역시 불후의 명작인 기독교강요를 집필 한 프랑스의 신학자이며, 세계적인 신학자요, 오늘의 개혁교회 (Reformed churchs)를 설립한 칼빈도 피신과 옥고를 치루며, 필사의 각고 의 결실이 프로테스탄트(Protestant, 기독교)를 창출해 낸 것이 아니었던 가? 그뿐인가? 스위스 종교개혁자 쯔빙글리를 위시하여 독일 종교개혁자인 부 쳐와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을 기초하여 종교개혁교회 형성에 큰 공헌을 한 독일 종교개혁자 멜랑히톤 등등 수 많은 종교개혁자들이 천난만고(千難 萬苦)의 피흘림으로 이룩한 개혁주의(Reformationism)가 이 지구상에 어엿이 서서 하나님께 거룩한 영광을 돌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 왜 이들은 ‘모래알이 조개를 씹듯이, 아파하며 슬퍼하며 울어야 했으며, 고난과 고초의 개혁의 십자가를 자초해야 했던가? 그 이유는 길 지 않다. 부패한 가톨릭의 멘토(mentor)들이 사도적 교회와 속사도 및 교부 들의 정통적 신앙과 신학사상으로 말씀의 토대위에 든든히 세워 신정정치(신 본주의)를 전수해 주었는데, 성경과 신앙을 희석 내지는 변질로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교회가 아닌 인간이 다스리는 교황 신격화 교황정치로 의 이질적(인본주의) 교회로 변질시켰기 때문이요, 타락한 그들의 세력에 추 종하는 양무리들을 구출하기 위하여 종교개혁자들은 성경이 성경 되게, 교회 가 교회 되게, 성도가 성도 되게하려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하나님의 종의 양심을 가지고 십자가 지는 종교개혁을 단행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의 교 회와 목회자들은 개혁자들의 피흘림의 결실로 건전한 신학과 신앙의 반석 위 에 열매를 거두면서 다시 오 실 주님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목회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기에 오늘날의 목회자들은 정신차려 개혁자들이 피흘려 전 수해 준 개혁사상을 굳게 지켜야 한다. 그런데 필자가 어려운 기고를 만부득 이 하게 된 금번 동기는 2000년 5월 11일 SBS 저녁 8시 뉴스에 경이(驚異)하 고 이질적인 보도를 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내용인 즉 “천주교와 각 종단에서 속칭 석가 탄일에 축하 메시지를 보냈으며, 또한 한국 개신교에서도 화합적인 차원에서 메시지를 전달했다” 는 것이다. 필자는 “개신교에서도”라는 보도를 들은 내 귀를 의심하면서 아 니기를 바랬으나 사실이었으니 어찌하겠는가? 한국의 교회가 세속의 탁류의 물결에 깊히 빠져있음은 인지의 사실이나 이 방종교와 화합의 기화로 예전(例典)에 깊숙히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은 미처 몰랐던 터에 당혹스러움에 하나님의 공의가 두려웠고 한국 교회의 앞날의 어 두운 그림자를 예견하면서 과연 한국 교회의 타락의 사양길이 어디까지 치달 아 갈 것인가? 참으로 암울하고 개탄스러움의 전율을 금할 길이 없다. 그러던 다음 날 필자는 서둘러 보도의 진의를 확인하고저 한 국을 대표하 는 한기총(韓基總) 회장댁으로 전화를 걸었다. “아마, KNCC에서…”라고 말 한다. 곧 교회협의회(KNCC)이○○회장과 전화로 일문일답의 결과 “잘 모르 는 일인데요? 김○○총무가…?” 곧 김총무와 전화로 연결했다. 대화 결과 “KNCC가 잘하고 있으니 걱정할 것 없습니다. 목사님은 어느 교단입니까? 응, 그 교단은 KNCC에 가입하지 않은 교단이니 상관할 것 없습니다”라 고 거두절미 불협화음의 전화를 끊는다. 김총무의 말이 타당하다면 축하 메시지 전달 명의를 한국개신교의 명의 로 해서는 안된다. 이유는 한국의 많은 교단들이 KNCC에 가입하지 않았기 때 문이다. 그러면 KNCC의 명의로 아니면 김총무의 개인의 명의 혹은 몇몇 사람 의 추종자들의 공동명의로 조계종 본부에 축하 메시지를 보냈어야만 경우와 사리와 교단적 성격의 행정을 인식하는 분이 되었을 것이다. 시시비비를 불 문하고 KNCC 김총무는 하나님 앞에, 한국 교회와 세계적인 개신교 (Protestant)에 씻을 수 없는 과오를 다음과 같이 범했음을 주님의 이름으로 천명한다. 첫째, 하나님의 엄위하신 말씀과 뜻을 저버리는 행위를 자행했 다(출20:1- 6;왕상11:1-8;고전6:19-20;요이7-11;느13:26;골3:6). 둘째, 그리스도는 지금도 전능하신 신으로 실존하신다. 그러나 석가모니 는 신도 아니요, 우리와 똑같은 성정이 같은 인간이요, 흙으로 돌아간 현 실 존의 존재가 아니며, 경배의 대상도 아닌 즉 그에게 절하는 자마다 우상에게 절하는 것이요 우상을 섬기는 자들과 화친을 도모하고 인정하며, 예전(例典) 에 함께 하는 자들은 죄없다 못할지니(고후6:15;왕상22:4-36;렘10:1-11). 셋째, 한국 개신교가 KNCC를 한국 개신교를 대표하는 단체로 공인한 사 실도 없고 또 석가 탄일에 축하 메시지를 보내도록 한 일에 아는 바도 허락 한 바도 없다는 사실인 즉, 명예 도용은 물론 한국 개신교 및 세계적 개신교 가 바알에게 무릎 꿇은 거짓 선지자들처럼 우상의 종교와 화친하고 인정하며 타협한 꼴이 되었고 그 명예 훼손과 실추를 회복할 길이 묘언하여, 국가 사 회 종교계 모든 크리스천들로부터 신앙의 지조와 절개가 없는 시대 조류의 탁류에 따라 썩어가는 한국 지도자 목사들로 오인케 한 죄이다. 넷째, 그리스도의 피로 나눈 교단과 한 형제의 연합을 외면하면서 소망 이 없는 이방 종교와의 하나 되려는 그 신앙의 저의는 어디 있는지? 이는 큰 위선과 가식이요, 주님의 책망을 받을 죄 중의 죄이다. 끝으로 금번 불명예스러운 사건을 한국 대표, 한기총에서는 반드시 사실 진의를 조사하고 밝히어 매스미디어를 통한 공개가 있어야 할 것이며, 당사 자들에 대한 문책과 지과필개(知過必改)토록 시행할 때, 하나님께 대한 사명 을 다한다고 할 것이다.
49 no image 입다는 과연 인신제사를 드렸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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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71 2000-05-24
송영찬 국장 입다는 과연 인신제사를 드렸는가? (두번째) ---입다의 서원과 그의 딸에 대한 문제(삿 11:34-40). 송영찬 목사(본사 편집국장) 시작하는 말 사사기 11장 39절에는 입다가 그 서원한 대로 딸에게 행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이 구절은 입다가 암몬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 올 때 가장 먼저 집에서 나와 입다를 맞이하는 사람을 여호와 께 번제로 드리겠다고 서원한 것처럼 딸을 번제로 드렸느냐 하는 문제와 연결된다. 이에 대한 학자들의 몇 가지 해석이 있다. 1. 학자들의 견해 1) 누구든 죽여서 번제로 드리려 했다는 견해 : 이 견해에 의하면, 입다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올 때 자기 집에서 나와 맞이하는 그를 죽여 여호와께 번제로 드리려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입다는 자기의 딸을 번제로 드렸다는 것이다. 이 해석은 오랫동안 많은 학 자들에 의해 지지를 받아왔으며 요세푸스, 어거스틴, 종교 개혁자 루터도 지지했다. 그들은 입다가 이방 돕 땅에 오래 기 거하면서 그 들이 행한 인신 제사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며, 입다는 서원 당시 분 명히 번제 이외의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데에 그 근거 를 두고 있다. 2) 짐승이면 번제로 드리고 사람이면 성막 봉사자로 드리려 했다 는 견해 : 이 견해에 의하면, 입다는 만일 집에서 짐승이 나오면 그 것을 죽여 번제로 드리고 사람이 나오면 평생동안 그를 성막에서 봉사하도록 드리려 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본문 31절에 대한 NASB 의 번역에 근거한 것으로, 무남독녀 외동딸이 나와 맞이하자 평생동 안 성막 봉사자로 살도록 했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이 해석은 짐승 이 전쟁에서 승리한 입다를 즐기며 반갑게 맞이할 이유가 없기 때 문에 처음부터 입다는 사람을 지목하고 있음이 분명하다는 이유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3) 번제로서는 짐승을 잡아 드리고 사람은 성막 봉사자로 드리려 했다는 견해 : 이 견해에 의하면, 입다는 분명히 사람을 염두에 두 고 서원했으며 입다가 번제에 관한 율법의 규정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대신해 짐승을 번제로 드리려 했다는 것이다. 이 해석 은 후기 맛소라 학자들과 중세 시대의 David Kimchi와 Hengstenberg, 구약 학자 Keil과 Delitzsch, K. Campbell 등에 의해 주장되었다. 2. 세번째 견해에 대한 성경적 지지. 1) 입다가 "그를 번제로 제사드릴 것이다"(31절)고 한 말은 그 사 람을 여호와를 위해 드리겠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이삭 을 번제로 드리려 했던 사건에서 그 의미가 명확하게 나타난다(창 22:10-14). 구약 학자 카일과 델리취는 '번제'( )라는 단어는 제사 의 중심이 되는 '제단'도 의미하므로 여호와를 섬기기 위한 제단에 나아감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이러한 정신은 나실인의 규례에서도 나타나며(민6:2,13-21) 아론과 그 아들들의 위임식에서도 볼 수 있다 (출29:1-46). 박윤선 사사기 주석 참고. 2) 구약에는 일평생 동안 여호와께 자기를 바쳐 성막에서 봉사하 는 여인들이 있었다(출38:8;민6:18-21;삼상2:22). 이 경우 아버지가 서 원한 처녀도 있었다(민30:16). 3) 입다는 처음부터 서원의 대상으로 인격체임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사11:31). 한나 역시 아들을 주시면 여호와께 드리겠다고 서원 한 바 있다(삼상1:11). n 4) 인신 제사는 율법에 저촉된다(레18:21;20:2-5;신12:31;18:10). 여호 와의 신에 감동을 받은 입다(29절)가 인신 제사를 서원한다는 것은 문맥의 흐름에서도 위배된다. 만일 입다가 인신 제사를 드리려 했다 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용납하지 않았을 것이다(왕하 3:27 참고). 또 한 입다가 인신 제사를 시행했었다면 사무엘은 입다를 기드온과 함 께 큰 용사로 언급하지 않았을 것이다(삼상12:11). 5) 이스라엘의 젊은 처녀들이 입다의 딸을 위해 기념하였다는 점 이다(40절). 한글역본에 "애곡하니라"는 원문( , 원형 )의 뜻 은 '선물을 주다' 또는 '칭송하다' 또는 '기념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 다. 따라서 젊은 처녀들이 매년 나흘씩 입다의 딸을 칭송한 것은 그 딸이 죽었기 때문이 아니라 여호와께 바쳐진 일을 기념하기 위함이 었다. 마치는 말 이상에서 살펴 본 것처럼 입다는 그의 딸을 번제로 드린 것이 아 님을 알 수 있다. 입다는 분명히 제사법에 따라 번제를 드렸을 것이 며, 그 딸은 여호와의 성막에 드려져 일생을 여호와께 헌신하며 살 았을 것이다.
48 no image 나에게 두 다리를 돌려 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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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1 2000-05-15
-“나에게 두 다리를 돌려 주시오” 나는 2년 전에 가만히 굶어 죽을 수 없어 독한 마음을 먹고 두만강을 건너 북 조선을 탈출한 신요한이라고 합니다. 이리 저리 중국 땅을 헤메다가 ○○에서 술집 수금원으로 들어가 사람을 패 주고 외상값을 받아내는 일을 한동안 했습니다. 그럭저럭 먹고 사는데 이젠 자리가 잡혔는가 했을 때 누가 고발을 했는지 갑자기 북조선 보위부 특무대들 이 중국 공안원과 함께 들이닥쳐 그당시 ○○에서 여러명이 잡혔습니다. 밧줄에 꽁꽁 묶여 기차를 탔는데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따라갔더니 감옥에 들어가서야 그곳이 △△감옥소 3층 감방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가 갇힌 감방에 6명이 있었는데 세 명은 나와 같이 잡혀 온 사람이고 세 명 은 우리보다 여러날 앞에 잡혀 왔는데 쇠창살로 막아놓은 창 밑으로 내려다 보니까 이방 저방에서 붙잡혀온 죄수들이 얼굴을 내밀고 내다보는 가운데 먼 저 재판을 받은 사람들이 철사로 팔목을 꿴체 북조선으로 끌려가고 있었습니 다. 우리 감방 여섯 사람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탈옥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허리 띠 고리핀으로 쇠창살이 박힌 벽에 구멍을 후벼파고 엿새만에 쇠창살을 여섯 명이 달라붙어 있는 힘을 모아 잡아당겨 떼어내고는 서로 미루다가 내가 제 일 먼저 뛰어 내리기로 했습니다. 이른 새벽이라 어두컴컴한데 창문 밑 담장 위에는 둥굴게 감긴 철조망이 쳐 져 있어 그 철조망 밖으로 멀리 뛰어 내려야만 되는데 뛰어내릴 길바닥이 잘 보이지 않아 “설마 죽기밖에 더하겠는가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이란 결심 과 함께 뛰어 내렸습니다. 불행하게도 큰돌들이 깔린 위에 두 발이 미끄러져 두 발목이 부러진 것도 모 르고 다리가 아파 죽을 고통인데도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부지런히 돌을 치 워 줬더니 다들 크게 다치지 않고 뛰어 내렸는데, 붙잡힐까봐 나만 혼자 두 고 모두 도망쳐 버렸습니다. 나 혼자 수백리길을 두 다리를 끌고 배가 고프면 눈을 먹으면서 다리에 통증 이 견딜 수 없을 때에는 눈으로 찜질을 하면서 25일만에 ○○가까운 어느 마 을에서 기절을 했는데 다행히 인정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 그분들이 교회로 데 리고 가서 동상이 걸려 시커멓게 썩어 들어가는 나의 두 다리를 엉겁결에 식 칼과 톱으로 잘라내고 소독약을 뿌려서 싸매어 주었습니다. 그분들 말로 나흘만에 깨어 났는데 너무 통증이 심해서 닷새동안 비명과 신음 으로 지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하나님의 은혜로 비록 두 다리는 잃어버렸지만 육신의 생명이 자유를 얻었고 나의 영혼이 예수님을 믿게 되어 할렐루야! 구원의 기쁨을 누 리게 된 것이 얼마나 좋은지 말로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헬렐루야! 내몸이 자유를 얻었네! 내영혼이 죄에서 해방되어 참자유를 얻었다 오! 이 기쁜 소식을 북조선에 있는 가족과 친척들, 우리 북조선 민족들에게 전하고 싶은데 두 다리가 없어 갈 수가 없습니다. 나에게 두 다리를 돌려 주시오. 나의 이 한 몸은 두 다리 두 팔이 다 없어도 몸과 영혼이 자유얻은 것 하나로 기쁘기 한량 없지만, 북조선에 있는 내 민족 에게 예수 믿고 자유 얻게 하는 일을 하지 않고서는 못 살 것 같으니 나에게 두 다리를 돌려 주시오…. 지금 중국땅 어두컴컴한 움막속에서 한국교회의 도움을 학수고대하고 있는 ○ ○형제에게 두 다리(의족)를 달아 주실 의향이 있으신 분은 연락 주시기 바랍 니다. 개 혁신보사 02)747-3600
47 no image 입다는 과연 인신제사를 드렸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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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35 2000-05-15
-입다는 과연 인신제사를 드렸는가? (첫번째) --- 입다의 서원은 경솔하고 잘못된 것인가?(11:30-31). 송영찬 목사(본사 편집국장) 시작하는 말 암몬과의 전쟁을 앞두고 입다가 서원한 행위에 대하여 아직도 성경 해석에 있 어 상반된 이견이 있다. 그 서원 내용은 "그(입다)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가로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 손을 내게 붙이시면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 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삿 11:30-31)는 것으로 마치 입다가 인신 제사를 여 호와께 드리려고 하는 것처럼 본문을 해석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의도로 서원 한 것인가에 대한 이견이다. 특히 본문은 '번제로 드리겠다'고 한 말을 그대 로 받아들여 입다의 서원이 경솔했다는 견해를 야기시키고 있다. 인신 제사 를 금하는 성경의 내용과 상반되는 이 문제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1. 서원( )이란 어떤 행위를 행하거나 또는 금하 기 위해 신성(神性)으로 이 루어진 엄숙한 약속이다. 여기에는 행위(창28:20-22), 예물(레27장) 또는 절 제(시132:5-7)가 포함된다. 일반적으로 서원은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어떤 특별한 은혜를 받고자 간절 히 기도할 때 그 은혜를 주시는 날에는 그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고 선용하 기 위해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가기 위하여 특정한 일을 하거나 자기를 절제 하기로 결심하고 그것을 하나님께 서약하는 행위를 말한다. 반면에 자기의 욕심을 위해 또는 서원의 대가로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이루 어 줄 것을 바라거나 서원을 함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이라고 생각하 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따라서 서원은 어떤 특별한 은혜를 하나님께 받은 다 음에 자기의 약속으로 드리는 것이므로 당연히 그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 2. 그렇다면 암몬과의 전쟁을 앞두고 행한 입다의 서원은 경솔한 행위인가 아 니면 그의 신앙에 근거한 서원인가? 일반적으로 입다가 하나님에 대한 열심만을 앞세워 무모하게 서원함으로써 고 초를 자초했다고 본문을 해석하고 있다. 이것은 입다의 딸을 번제물로 드렸다 는 결론을 전제로 한 것으 로 잘못된 해석이다(34-35절). 1) 전쟁에 임한 입다가 서원한 의도. 입다는 길르앗 전체와 요단 서쪽에 있는 이스라엘 지파들의 평안을 위해 이 전쟁에 임한 지도자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전체를 위해 꼭 승리를 해야 할 것 이며, 여호와께서 승전을 주시면 그 다음에 여호와께 무엇을 하여 드리겠다 는 차원에서 서원을 하게 된 것이다. 또한 입다는 전쟁에 참여한 사람들 모두 가 듣는 가운데 서원을 했는데 이것은 전쟁에 임하는 길르앗 군의 사기에 크 게 관계가 있음을 알고서 행한 것이다. 2) 입다는 율법을 잘 알고 있었다. 입다는 전쟁에 임하기 전 암몬 왕의 침략 구실에 대하여 출애굽의 역사와 율 법의 가르침을 인용해 논박했다. 또한 인신 제사란 적국인 암몬이나 모압에 서 널리 행하여지고 있는 이교 제사의 의식이며 율법서에서는 이를 엄히 금한 다(레18:21;신12:20;18:9-14)는 사실을 모를 리 없다. 율법에서는 자식을 죽 여 제사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레20:1-5). 따라 서 인신 제사를 전제로 서원했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 3) 입다는 서원의 대상을 여호와께 의뢰했다. 입다는 서원에서 승리한 후 귀가할 때 자기를 영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구체 적으로 지명하지 않고 그 조건만을 말하고 있다. 이런 경우 대체적으로 집 안 에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입다는 누가 되든지 받으실 사람을 하 나님께서 내보내실 것을 의뢰하였음을 알 수 있다. 4) 번제로 드리겠다는 말의 의미. 번제물은 비록 짐승일지라도 일정하게 요구되는 조건과 자격이 따라야 한다. 제사를 드릴 때에도 자기가 할 일과 제사장이 할 일이 구분되어 있다. 또한 장소와 제단도 정해져 있다(레1:1-17). 제물의 준비와 제사의 행위는 규정된 절차에 따라 행해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코 사람을 번제로 드리는 제 사는 있을 수 없다. 마치는 말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입다이기 때문에 서원에 따라 그의 딸을 여호와께 드 리고, 그를 번제로 드리겠다는 것은 평소 입다가 번제드릴 때의 정신과 성심 으로 여호와께 경배드리겠다는 의미였음이 분명하다. 또한 입다는 서원한대 로 자기 딸을 여호와께 드리되 임의로 하지 않고 딸의 동의를 얻은 것에서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36절). 그러므로 입다의 서원이 경솔한 것이었다 고 일방적으로 단정짓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
46 no image 부활절이면 생각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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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7 2000-04-24
부활절이면 생각나는 일 포항성안교회 정창석 목사 우리 모두는 신앙생활 중에 갖가지 일들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신앙 연륜이 길면 길수록 할 말도 참 많습니다. 생각만 해도 유쾌한 일이 있는가 하면, 악 몽과도 같이 고통스러웠던 일도 있습니다. 저에게도 수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그중에 부활절이면 항상 생각나는 한가지 일이 있습니다. 저의 신학대학 시절에 타 교단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70년대 후반 저는 원대한 꿈을 안고 신학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모 든 환상은 깨어지고, 교권주의와 광범위한 부정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거 의 매일같이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시위가 일어났으나, 교권주의자들은 튼튼 한 성벽처럼 움직일 줄 몰랐습니다. 항의하는 학생들만 희생될 뿐 교권주의 의 튼튼한 성벽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저는 지방에 있는 그 교단 노회에 신학생 신분으로 참석하게 되었 습니다. 그런데 서울에서 마주섰던 교권주의와 부패는 지방인 거기에도 어김 없이 있었습니다. 저는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평소 친분을 맺고 있던 그 교단 부노회장으로 있는 장로님을 찾아갔습니다. 장로님에게 제가 본 교권주의와 부패상들을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력히 주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장로님은 저에게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정전도사님! 전도사 님도 목사가 되고, 나이가 많아지면 그 사람들처럼 됩니다!” ‘A도 그러다 가 타락했고, B도 타락했고, C도 내가 보니까 타락하더라, 그러니까 정전도 사 당신도 타락하게 된다’는 논리였습니다. 장로님의 그 말씀은 너무나 단정 적이었기 때문에 저는 너무나 충격을 받았고, 굉장히 당황했습니다. 그러나 한동안 멍멍했던 저는 이런 말을 장로님에게 했습니다. “장로님! 저 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그렇게 무능하다고 생각지 않아요! 저는 그렇 게 되지 않을 겁니다!” 제가 당황하고 있는 중에 이런 확신있는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의 십 자가와 부활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신약성경 로마서에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우리에게 어떤 결과를 주었으 며 그 사건의 효과가 어떤 것인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 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롬6:6)이라고 했고,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롬6:4)이라고 했습니다. 또 “그의 죽으 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 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롬6:10-11)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우리로 죄 가운데서는 더 이상 살지 못하게 하시려 는 하나님의 의지의 결과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는 하나님의 그 의지가 현실로 나타나고야 말 것입니다. 저는 이런 말씀을 그대로 믿고 받아들였기 때문에 제가 타락할 것을 두려워하 지 않게 되었으며, 아무런 걱정 없이 목회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45 no image 제3회 전국 중고등부 수련회를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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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2 2000-03-21
-제3회 전국중고등부 심령수련회를 다녀와서 갈급한 눈물의 기도 반창욱/강변교회 고등부 2년 부족한 저를 이 자리에서 간증을 할 수 있도록 세워주신 하나님께 감사드 립니다. 솔직히 수련회를 가기에는 마음에 큰 부담이 있었습니다. 고등학생 의 신분으로 학업을 몇일동안이나 미뤄야 하는 현실과 여러 가지 세속적인 욕심과 미련 때문에 수련회를 향하는 발걸음이 왠지 모르게 무거웠습니다. 하지만 2박 3일 연합 수련회를 지내는 동안 저의 모든 걱정들이 얼마나 부 질없었는가를 깨닫게 되었고 주님 안에서 변화하는 제 자신을 체험하게 되 었습니다. 이번 수련회는 기존의 수련회와는 달리 여러 교회가 연합하는 수련회였기 때문에 과연 집중해서 주님을 영접할 수 있을까, 생각했지만 그 상황은 도 리어 주님을 영접하는데 더욱 더 큰 작용을 했던 것 같습니다. 1000여명의 인원이 모여 서로 주님을 찬양하며 눈물을 흘리고 소리쳐 주님의 사랑을 갈급해 하는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저 역시 저녁 집회 때 저 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며 소리내어 기도를 드렸습니다. 제가 흘린 눈물이 과연 진실로 주님을 영접한 것인지 한때의 분위기에 휩싸인 순간적인 감동 에 의한 감정의 발로였는지 아직 알 길이 없지만 그 눈물이 정말 주님을 위해 흘렸던 눈물이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저는 가족과 친구들, 또 주위의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불쌍하고 힘없는 이, 믿지 않는 이들을 위해 기도도 하였습니다. 또한 지금까지의 나의 삶에 있어 잘못된 것들에 대해 회개도 하였습니다. 또한 주님을 사랑한다는 고 백을 하면서도 아직은 모자란 제 믿음이 부끄럽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저 의 부족한 모습과 부끄러움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저를 더욱 더 사랑하 시리라 믿어지고 저 또한 이번 수련회를 계기로 제 믿음이 더 굳건해 지기 를 바라고 한 발자국 더 주님께로 다가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 고 항상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고등부 선생님들과 전도사님 그리고 교 역자님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44 no image 제3회 중고등부 수련회 백일장/수필 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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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4 2000-03-21
-수필 / 가작 우릴 사랑하시는 예수님 김안나/도산제일교회 고1 나는 어제 2월 21일 우리 교회 수련회 참가자들과 함께 통영에서부터 기차 로 5시간, 차로 2시간 정도를 타고 이곳 양수리 수련원에 왔다. 한번 오려 면 경비도 많이 들고 피곤하지만 살아계신 하나님과 예수님을 다시 체험하 고 변화되어 오리라는 소망에 우리들은 교회 건축 중인 시골교회의 사정에 도 불구하고 이번 수련회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 나뿐만이 아닌 이 수련회에 참가한 인원 대부분이 그런 소망을 품고 왔겠 지만 난 정말 이 수련회 안내문이 개혁신보에 실린걸 안 그날부터 너무나 들떠 있었다. 난 지금 고1 예비반이면서 주일학교 교사생활 3년째(히히^0^) 이기 때문에, ‘이번 수련회를 통해서 정말 내가 변화되어 돌아와서는 우 리반 아이들에게도 변화된 모습을 보여줘야지 그리고 이번 수련회 때 느낀 하나님의 큰 사랑을 아이들에게도 심어줘서 그 아이들을 변화시켜야지’ 이런 소망이 너무나 간절했다. 그리고 수련회에서 은혜받고 찬양하면서 눈 물을 흘리는 내 모습이 그려지기도 했다. 어제 이곳에 도착해서 처음 드린 개회예배 때는 지금도 그렇지만 처음 들 어보는 찬양들이 많았다. 그 찬양들은 나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그리고 설교 시간에는 정말 우리가 평소에 많이 들어왔지만 망각하고 있었던 진리 들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특히 어제 두번째 드린 저녁예배 때는 “정말 하나님께서 나에게 얼마나 실망하셨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난 내가 죄를 지었을 때 진심으로 회개하면 죄를 용서받고 다시 그 죄를 없는 것으로 해 주신다고 생각했는데, 어제 설교시간엔 성경에서 우릴 어 떻게 할 수 없는 문제아(?)라고 기록하신 것을 배우게 되어 다시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훌륭하신 목사님과 깡패 아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 속 에서 마치 그 목사님같은, 아니 그 보다 비교할 수 없이 사랑이 많고 공의 로우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약속을 어긴 아들과의 약속을 지 키기 위해 매를 들었다가 아들에 대한 사랑과 공의가 충돌해 자기의 무릎 이 터지도록 자신에게 매질을 했다는 목사님처럼 우리의 죄를 오래 참으시 다가 끝내 힘든 수치와 고통의 십자가를 대신 지게 하시려고 세상에 보내 신 그분의 독생자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다. 자신이 겪게될 끔찍한 십자가 의 고통을 이미 다 아시면서도 자신이 지으신 사람들의 죄 때문에 마음 아 파하시는 하나님을 보고 그 뜻에 순종하여 하늘의 모든 영광 다 버리고 이 땅에 내려오신 예수님…. 그분은 내가 여태까지 살아가면서 혼자 맘아파하 고 힘들어 할 때마다 내 곁에서 함께 그 아픔을 나누어 주신 분이다. 그때 그때 기분내키는 대로 행동하기 좋아했던 나. 그동안 정말 잊어서는 안될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 그건 바로 나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이다. 정말 그분을 뼈저리게 체험했다면 평생을 주님을 위해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난 아직 불쌍하게도 그런 경험이 없어서 예수님을 생각해도 ‘참좋 은 나의 친구’로 밖에 생각이 안된다. 그래서 내일 폐회예배를 드리기 전 까지는 꼭 예수님을 정말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정말 ‘예수님’ ‘십자가’라는 단어를 생각할 때마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도록 가슴속 깊이 예수님을 모시고 싶다. 그리고 다시 돌아가서는 내 삶속에서 내가 체험한 그분의 사랑을 전 하고 싶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선 그것을 원하시기 때문이 다. 그리고 수련회 예배와 선택특강에 참석해서 배운 것처럼 아직도 믿지 않는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할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은 그분을 믿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자랑이기 때문이 다. 나뿐만이 아닌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큰 은혜를 주시고 이번 기회로 인해 변화시켜 주시기를 간절히 원한다.
43 no image 제3회 중고등부 수련회 백일장/시 우수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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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2 2000-03-21
42 no image 시베리아에서 온 편지/ 길 아닌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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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0 2000-02-12
-길 아닌 길 장창수 선교사 러시아의 숲속 길을 보면 러시아인이 한국인과 비슷한 점이 있음을 금방 알 수 있다. 러시아의 숲속에는 사람들이 항상 다니는 길 외에 이리저리 편하게 통하는 다른 길들이 있다. 서구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숲이나 잔디 를 보호하기 위해 많은 길을 만들지 않는다. 그리고 국민들은 자연을 보호 하기 위해 불편해도 주어진 길로만 다닌다. 그러나 러시아인들은 이런 길 을 택하기보다 편리한 길을 만들어 걸어간다. 다시 말해 자신의 편리를 위 해 ‘길 아닌 길’을 만들어 나아간다. 이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잔디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길 이외 가로질러 생겨난 길을 우리들은 무의식적으로 잘 걷는다. 한국인도 ‘길 아닌 길’을 좋아한다는 뜻이다. 예전 한국의 어느 신학원에서 공부할 때 였다. 장래 목회자들인 신학생들이 하학(下學) 버스를 먼저 타려고 큰길을 놔두고 조경(造景)되어 있는 언덕을 따라 급히 내려갔다. 원칙을 준수한 신 학생은 항상 서서 가기 마련이며 자리 양보 는 생각할 수도 없다. 교회 성 장을 위해서라면 수단 방법을 안 가릴 목회자 후보생들이었다. 이곳 러시아도 엄청난 문화유산을 자랑하지만 사람 사는 건물이나 공장 건 물들 그리고 도로들은 부실 공사 같은 인상을 받는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러시아의 중앙 도시들은 이 점에서 좀 예외일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의 건 물들은 단단하게 보이지만 대체로 투박하며 편리성하고는 거리가 멀다. 그 리고 건축 마무리가 잘 안되어 있다. 그 결과 새집에 들어간 사람은 큰 불 편을 겪는다. 다시 일일이 손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차량 도로는 헝겊을 댄 헌옷 같다. 그리고 울퉁불퉁하고 야트막한 구덩이가 많아 자동 차들이 쉽게 망가진다. 러시아에 도로나 개인 집들이 모여 있는 동네에는 하수구가 없다. 비만 오면 도로에 물이 고인다. 증발될 때까지 지나가는 자 동차들과 사람들에게 많은 불편을 준다. 이렇게 러시아에는 모든 것이 구 비되어 있지만 제대로 된 것이 없다. 이런 것들을 보면서 우리 사회에 항상 잠재하는 부실공사가 생각되었다. 우리의 경우 건설 현장에서 정품이 아닌 비품 건축자재들이 사용된다. 규 격은 같지만 설계도가 지시하는 질보다 떨어지는 자재들을 사용한다. 공사 비를 남겨 부당한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이다. 이 때문에 하청이 거듭될수 록 공사는 부실하기 마련이다. 감독 관청도 뇌물을 먹고 눈감아 주었다. 우 리도 선진국처럼 다 하지만 제대로 된 것이 없다. 이 오래된 나쁜 관행이 결국 김 영삼 정권때 사회적인 문제로 한꺼번에 터졌다. 이는 그의 실정 (失政)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김영삼정부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는 행위는 비 겁한 행위였다. 정치인의 책임보다도 국민 의식이 문제였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우리 사회 지도자들과 지식인들은 정당히 비판하지 못했다. 자신들 을 탓해야 했다. 우리들은 여전히 이성보다는 감정으로 남을 비판한다. 한국인의 문화는 반칙에 기반한다는 말이 있다. 이는 우리 사회가 중병 수 준을 훨씬 너머 고질병을 앓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므로 힘든 원칙보다 자신에게 편리한 비원칙을 더 좋아하는 한국인과 러시아인의 정치는 당연 히 혼난스럽기 그지없다. 이 때문에 외국인들은 두 나라의 정치와 경제 현 상을 전혀 예측할 수 없다. 그 결과 외국인 자본가들은 두 나라에 마음놓 고 투자할 마음 을 갖지 못한다. 여차하면 자본을 철수할 기회를 찾는다. 이 는 결국 제2의 IMF사태를 초래시킬 수 있다. 이렇게 비원칙과 무원칙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행위와 같다. 한국 교회라고 이런 잘못된 사회 현상에서 제외되는가? 교회에서 성도들을 질적으로 바르게 양육시키지 못한 결과 일천만이라는 기독교인을 자랑해도 얼마전 한국은 IMF사태를 맞았다. 한국 교회의 외적 성장은 냉철한 반성 과 비판을 받아야 함을 암시한다.
41 no image 한국 교회가 해야 할 개혁의 과제/ 박기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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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9 2000-01-27
-한국 교회가 해야 할 개혁의 과제 박기민 목사 우리는 뉴밀레니엄 시대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21세기 새시대로 들 어섰다. 한국 교회는 우리 민족에게 무언가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개혁 을 촉구할 뿐만 아니라 우리 교회가 개혁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그러하기에 앞서 우리 교회 자체 내에도 고쳐야 할 점이 많 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 몇 가지를 지적해 본다. 1. 교역자의 인격과 실력문제 해방 후 한 때, 교회 밖 일부 언론인들로부터 교역자의 무식을 지적 받았 었다. 성경만 알지 현대의 여러 사조와 문명에 대한 지식이 없다는 것이었 다. 그러나 그것은 지난 날의 이야기요,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목사가 되려면 적어도 신학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치고도 강도사 수련을 거쳐 목사 고시에 합격해야만 한다. 하지만 일반 사회인들도 그 학력과 지식정도가 크게 향상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성직이라는 그 전도활동은 하나님의 구 원사업 - 신앙인격의 창조와 인간본질의 변화운동에 수종드는 일인 까닭에 교역자 자신이 성령에 의한 내면적 변화를 체험하지 못한 사람은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소명이 확실하고, 성직이라는 중책을 질 수 있는 능 력을 받아야 한다. 거기에 더욱 교역자로서의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다. 예전에 도쿄신학교의 무라다 교장이 당시의 신입생 입학식장에서 했다는 말을 소개해 본다. “여러분은 장차 천국의 장병이 될 분들이니, 학구적인 열의에 있어서는 도쿄대학을 능가해야 되고, 투지에 있어서는 육군사관학 교보다 앞서야 한다.” 그리고 오늘의 교회는 교회확장과 함께 수많은 사람들의 개인구원은 물론 사회구원에 힘써야 할 입지에 있다. 그리고 일보 전진해서 일반사회의 병 인을 똑바로 진단해 주고, 부패한 사회를 개혁하고, 새시대의 새역사 창건 의 주체세력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다각적인 활동을 하기 위해선 교역자 의 실력이 크게 향상되어야 한다고 본다. 2. 불건전한 세력과 집단의 정리 그간 심한 격동기의 혼란상황을 거치면서 일부 자격 없는 교역자들이 생겨 났고, 물론 일률적 으로 푸닥거리라고 단정할 수는 없겠으나 불건전한 소위 푸닥거리식 집회가 아직 잔존해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 지도자가 아닌 지 도자 중에는 소속이 불분명하거나 안수받은 일도 없는 사람들도 있다. 대 개 신비주의를 지나치게 강조하거나 순수한 복음전파는 뒤에 두고 신유의 은사와 방언 등을 힘주어 떠들어 댄다. 그 중에는 부흥사 행세를 하며 전 국을 누비고 돌아다니는 사람도 있다고 하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사람들이 흔히 돈과 여자에 관계된 스캔들도 일으키곤 해서, 그때마다 교 회는 타격과 손해를 입게 된다. 건전한 교단들은 연합기구라도 만들어 그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3. 오도된 기복 신앙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는 뜻의 말씀이 있다. 그러나 일부 교역 자들은 이에 지나치게 치우침으로써 교인들로 하여금, 마치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은 아주 자비하셔서 불의하고 부도덕한 부자들까지도 그 재산을 자 자손손 보호해 줄 뿐만 아니라 더욱 많은 재산을 증대시켜 준다는 것으로 잘못된 생각을 갖게 한다. 교인들로 하여금 어떤 신상 앞에서 양손을 모아 빌고 수없이 머리를 조아리는 그런 샤머니즘 이나 동양종교들과 동일한 것 으로 잘못 인식케 한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결코 하늘의 ‘부자방방 이’를 믿는 것이나 ‘재정보증인’으로 믿는 것과는 다르다. 그보다는 그 리스도께서 마태복음 6:33에서 해주신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 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말씀을 잘 설 명해 줌이 좋을 것이다. 주님의 요구에 따른 순종의 의무를 우선적으로 실 천하면 주님의 복된 약속은 반드시 따라온다는 사실을 이해시켜야 한다고 본다. 4. 교회분쟁의 청산 물론 예전 같지는 않으나 한국 교회는 아직도 이 분쟁을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 파벌이 생기고 세력다툼을 하는 일보다 더 큰 교회 파괴 행위는 없 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하나의 몸을 이룬 공동체다. 그 리스도의 몸을 찢어내는 행동은 너무도 큰 아픔을 많은 사람들에게 주고, 그 상처는 오랜 세월에 걸쳐 좀처럼 치유되지 않는다. 새 천년을 맞이한 한국 교회는 이제 사랑과 화합과 평화의 모습을 사회와 국민 앞에 보여주 어야 할 것이다. 5. 말뿐이 아닌 행함이 따르는 신앙 비기독교인에게 비춰진 한국 교회는 어떨 것인가? 긍정적인 평가가 없지 않으나 우리가 귀담아 들어야 할 점은 그들의 부정적인 평가이다. 이것은 우리 교회의 미래를 위해서도 그러하다. 그것은 대충 말해서 한국 교인들이 ‘이기적’이고, ‘위선적’이라는 평 이다. 물론 전체는 아니지만 한국 교회 교인들이 말은 많고, 그대신 실행은 없다는 중론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야고보서 3:17에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다. 죽은 자가 무슨 일을 할 것인가? 이러한 때에 한국 교회는 실로 믿는 바를 실천하는 교회로서의 새로운 면모를 보 여줘야 할 것이다. 현재 한국사회는 총체적으로 타락해 있다.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그것 은 정권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오늘의 정치인으로부터는 많은 것을 기대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 아닌가? 국민 전체의 의식개조를 필요로 하는 상황이라는 데서 도리어 그것은 기독신자의 몫이라 해야 할 것이다. 참다 운 개혁은 종교적 개혁이 없고서는 절대로 안된다고 본다. 이제 새시대에 들어선 한국 교회는 신속히 자체를 개혁하는 동시에 더욱 나아가 일반사회 의 개혁을 이끌어 나가는 주동세력이 되 어야 하겠다. 전체 크리스챤의 분 발을 촉구하는 바이다.
40 no image 21세기와 교회/ 안만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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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6 2000-01-27
21세기와 교회 안만수(화평교회 담임목사) 미국의 미래학자 다니엘 벨(Daniel Bell)은 21세기가 첨단 과학 기술의 발달로 인류에게 새로운 발전과 가능성을 줄 후 기 산업사회가 될 것이라고 보았다. 이 시대는 어떠한 특징을 가질까? 이 시대는 무엇보다도 컴퓨터의 대량 보급으로 정보 의 혁명이 가속화될 것이다. 유전 공학의 발달로 식량 및 불임 등의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산업사회가 초래한 생태계의 파괴 및 위기의 반작용으로 환경을 중시하게 될 것이다. 고도의 기 동성을 기반으로 하는 여가의 시대가 될 것이다. 기존의 가치 와 권위가 무시되는 개인주의가 주된 삶의 방식이 될 것이다. 다양한 정보의 교환으로 다양한 가치와 삶의 방식이 받아들여 지는 다원화된 사회가 될 것이다. 또한 21세기는 불확실성의 시대이다. 인류에게 혜택을 끼친 과학 문명은 이제는 도리어 인간을 지배하게 되었고 인류의 내일이 보장받지 못하도록 하 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뿐 만 아니라, 새로운 세기는 과학 기 술의 발달로 인간 소외가 더욱 깊어지게 될 것이다. 과학의 지배, 합리적 사고, 발전의 신념 및 낙관주의로 특 징되는 현대를 지나는 이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사람들은 불안 과 고독 및 삶의 무료감을 극복하기 위해 말초적 쾌락을 최고 의 가치로 두고 향락 추구에로 치닫게 될 것이다. 이러한 삶은 자연히 성의 개방을 불러 올 것이고 이것과 더불어 전통적인 윤리와 도덕은 무너지게 될 것이며 마침내 결혼 질서와 가정 이 무너질 것이다.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데에 필요로 되는 것 이 물질이기 때문에 물질 만능주의로 흐르게 될 것이다. 특히 새로운 세기는 기독교 신앙을 위협하는 여러 요소들 이 만연할 것이다. 예를 들면, 인간이 구원받는 길이 기독교 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에도 있다고 하는 종교다원주의, 성적 쾌락과 물질에서 채우지 못한 정신적인 공허를 뉴에이지운동 등과 같은 초자연적 신비주의 종교 행위들에서 찾으려고 하는 움직임, 그리고 전통적 교리와 교회 의전을 부정하는 해체주의 등이다. 이러한 시대에 교회는 먼저 종교개혁자들이 물려준 신앙의 전통인 하나님 영광 중심의 기독교적 영성을 회복해야 한다. 이 영성은 하나님의 뜻과 어긋나는 가치관을 높이고 따르는 세속주의를 극복할 때에 회복할 수 있다. 21세기 교회는 이 세 속주의의 주 형태인 쾌락주의와 물질만능주의를 물리쳐야 한 다. 또한 이 영성을 되찾는 일은 그리스도가 인류의 유일한 구 세주라는 성경적 진리가 받아들여 질 때에 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21세기의 교회가 종교다원주의와 해체주의 및 혼합종교 적 신비주의 등을 물리치기 위한 신학적 목회적 문화적 노 력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이다. 한 걸음 나아가, 이 영성은 하나님 말씀의 실천을 요구한 다. 새로운 세기에 한국교회는 말씀을 듣는 것에 그치지 말고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선포된 말씀을 따라 살 때에 사회의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 이러한 실천의 항목들 중 에 중요한 것을 들면, 첫째 노인에 대한 섬김의 일이다. 경제 논리는 노인이 사회의 짐이라고 판단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 을 행동과 판단의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 교회는 이 경제 논리 를 넘어가야 한다. 노인은 여전히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 루는 일에 막강한 자원이며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실천하는 대상이다. 둘째는 이웃에 대한 사랑의 실천이다. 한국교회는 이제 그것의 담을 헐고 이웃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모든 사람 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로서 그 존엄성을 인정 받고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국교회가 이러 한 사회 봉사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사회에 나타내지 않으면 이 사회로부터 고립되고 따라서 선교의 문도 닫히고 만다. 셋째는 청소년 신앙 교육이다. 청소년들이 죄악된 가치 관이 범람하는 사회에서 믿음의 전통을 지키고 바른 믿음의 삶을 살아가도록 교회는 온갖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교회의 미래는 기대할 수 없다. 마지막은 환경 보 호이다. 교회가 자연과 조화롭게 사는 일에 실패하면 전인 목 회의 기반을 잃어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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