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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종교 현상으로서 ‘방언’에 대한 비평적 소고


<장대선 목사, 가마산교회>




   한국의 100년 남짓의 개신교 역사에서 가장 큰 흐름은 이미 부흥운동과 이를 이은 성령운동이 주도했었기에 한국의 개신교는 어느 교파를 막론하고 공히 성령운동의 풍토를 공유하고 있었다.


   ‘자연종교-신비주의-방언 기도’의 연계성 가운데서 방언 기도는 결코 역사적인 기독교 정통에서의 풍토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으며 이것은 어디까지나 주관적 체험에 근거하고 있다.



   한국에 전파된 개신교의 모습은 그 초기에서부터 이미 부흥운동(revivalism)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상당히 늦은 시기에 조선에 개신교가 전파된 역사적인 배경 가운데서 그렇게 된 것이었다.



1. 한국교회 초기부터 불어 닥친 성령운동
 
   조선에 개신교가 들어올 때 이미 서구사회는 부흥운동 및 대각성운동(Great Awakening)이 큰 물결을 이루어 휩쓸고 간 뒤끝의 시기였다. 뿐만 아니라 이미 조선에 개신교 선교사들이 들어올 당시부터 특정 교파가 아니라 다양한 교파들이 거의 동시적으로 선교사들을 파송하여 보내던 시기였기 때문에 어떤 한 교파의 신앙이 정립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사실 조선에 들어온 개신교의 풍토가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는 한국의 장로교회들에서 한동안 강조했었던 평양대부흥운동, 즉 1905년 원산을 시작으로 1907년 평양에서 정점에 오른 부흥운동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것은 전형적인 부흥운동의 양상이었다.


   이런 배경 아래 1907년에 조선 장로교에 독노회(One presbytery)가 설립되었지만, 이 노회가 갖는 헌법과 신앙고백의 의미는 순식간에 부흥운동으로 말미암은 소란에 잠식되어 버렸다.


   그리고 이때는 일제에 의한 제국주의 정책 가운데서 유일한 신학교였던 조선신학교(현 한신대학교)가 김재준(金在俊, 1901-1987)을 비롯한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주 무대가 되었던 시기로 당시 조선은 그야말로 신사참배(神社參拜)와 같은 반 신앙적인 행위조차도 얼마든지 용인하고 동조할 수 있는 사상적 혼란기였다.


   이후로 광복과 곧바로 이어진 민족분단, 그리고 6·25 전쟁이후 친미정책과 더불어 한국의 기독교는 이미 부흥운동을 넘어서 ‘성령운동’이라는 열풍이 휩쓸고 있던 아메리카 대륙의 풍토에 잠식되어 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5.16 이후 들어 선 군사정권 아래에서 한국 기독교는 ‘민족복음화’니 ‘백만인 구령운동’이니 하는 슬로건이 개신교의 분위기를 송두리째 독점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순복음교회의 등장과 더불어 ‘성령운동’이 사실상 한국 기독교의 분위기를 이끌게 되었다.


   이처럼 한국의 100년 남짓의 개신교 역사에서 가장 큰 흐름은 이미 부흥운동과 이를 이은 성령운동이 주도했었기에 한국의 개신교는 어느 교파를 막론하고 공히 성령운동의 풍토를 공유하고 있었다. 그러한 풍토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것이 바로 방언(γλωδδα)의 추구였다.



2. 방언의 등장과 그 역사적 배경


   성령운동 가운데서 크게 강조되고 유행한 방언은 시대적으로 두 양상을 보였다. 즉 사도행전 2장에서와 같은 외국어로서의 방언과 로마서 8장 혹은 고린도전서 13-14장에서 주로 다룬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고전 14:2)인 방언의 두 양상이 각각 간격을 두고 방언 현상의 근거를 이룬 것이다.


   그와 같은 방언과 관련한 배경과 그 이론적 근거와 관련하여 간단하면서도 분명하게 다룬 종교학자 하비 콕스(Harvey Cox, 1929-)에 따르면, 초기의 성령운동 가운데서의 방언은 주로 늦은 비 운동(Latter Rain revival)과 관련하여 추구되었으며, 그러한 운동 가운데서 방언을 추구했었던 자들은 “방언 기도를 통해서 결코 배운 적이 없는 중국어나 러시아어, 아랍어 등을 말할 수 있는 기적의 능력을 부여받았다고 생각”했다. 이는 그들이 “마지막 때가 다가왔다는 급박한 소식을 만방에 알리라는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중대한 소명이 방언에 담겨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방언에 대한 설명 방식은 불과 10년을 못 버티고 롬 8장 26절의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는 말씀을 바탕으로 “자비로운 성령께서 제공하는 소리를 통해, 주저하며 더듬는 영혼이 힘을 얻어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으로서 이해하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즉 종말론적 바탕에서 세계선교를 위한 도구로써 외국어 방언의 필요가 아닌 “마음은 간절하나 자신의 힘으로 기도가 잘 안 되는 사람들에게 언어의 문법적 고리를 벗어나 초자아적 경지에서 하나님과 대화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은총으로” 이해되고 설명되기에 이른 것이다.

  

   한국에서 순복음교회를 필두로 크게 번진 성령운동은 방언기도의 두 번째 양상이 이미 보편적으로 유행하던 시기를 배경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하지만 순복음교회의 조용기는 그 두 가지 양상을 모두 활용하여서 “방언 기도가 유일하고 명약관화한 성령 세례의 증거(초기의 방언 이해)”라고 믿도록 함과 동시에 “방언의 은사를 성령의 여러 은사 중 하나라고 생각(후기의 방언 이해)”하도록 하는 창의성(혹은 순발력)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사실 1세기 이후 2-3세기에 걸쳐서 기독교의 역사 가운데서 방언이나 은사 혹은 이적 등은 전혀 기록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특별히 2세기 말 몬타누스(Montanism)나 17세기의 야콥 뵈메(Jacob Boehme, 1575-1624)와 같은 신비주의자들 가운데서 종종 등장하는데, 특히 뵈메는 태초의 “아담이 히브리어 같은 지각 언어(known language)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인 감각 언어(sensual speech)를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뵈메는 “이 감각 언어를 의미에 대한 즉흥적 감각을 표현하는 대화의 직접적 형태이자……타락하거나 왜곡되지 않은 동물의 언어에 가깝다”고 하여 자연 언어(natural language)라고 불렀다.


   바로 그러한 사고를 바탕으로 재세례주의자들과 20세기 초의 성령운동에 참여하는 자들이 공히 자연 언어로서의 방언 기도에 대한 두 번째 입장(성령께서 제공하는 소리를 통해, 주저하며 더듬는 영혼이 힘을 얻어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신약성경의 관점으로 회복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이론을 수립할 수 있었다.



3. 자연종교의 공통적 현상으로 나타나는 ‘방언’
 
   1세기 이후로 기독교 역사 가운데서 사라졌다가 종종 등장하곤 하는 방언 기도는 기독교 역사 가운데서 이단으로 정죄되었거나 불건전한 신앙풍토를 지닌 인물이나 그룹들 가운데서 주로 추구되었는데, 아직까지도 상당하게 추구되고 있는 방언 기도는 주로 언어의 한계를 뛰어 넘어서 기도할 수 있는 방법(은사)의 하나로 이해되고 있다.


   결국 기독교 역사 가운데서 방언 기도의 추구는 항상 신비주의 혹은 그와 유사한 분위기를 배경으로 전수되었던 것임을 알 수가 있는데, 그러한 방언에 대해 원초적 언어(primal speech)라고 말하는 성령운동 그룹의 주장은 구조주의 언어학자 노암 촘스키(Noam Chomsky, 1928)가 주장한 ‘보편 문법 구조’와의 관계성 가운데서 이론적으로도 치밀한 기반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성령운동 그룹의 방언 기도가 갖는 종교적 특성을 가장 잘 함축하여 설명한 것은 소설가이자 문학비평가이기도 했었던 수잔 손탁(Susan Sontag, 1933-2004)이다.


   그녀에 따르면 “언어가 어떤 실재의 참된 의미와 중요성을 전달하는 데 있어서 근본적인 한계를 보일 때, 인간은 신비주의 종교의 극단적인 형태 속에서 새로운 표현의 탈출구를 찾는다”고 하면서 “이 같은 언어에 대한 신비주의적 회의(懷疑)와 새로운 표현 방법의 제시가 모든 다양한 종교 속에 존재”하는데, “회교의 수피즘, 힌두교, 도교, 불교, 유대교 그리고 기독교 내의 신비주의” 등을 그 예로 언급하고 있다.


   사실 종교학에서는 정통(正統, orthodox)적인 기독교가 아니라 비정통적인 기독교에 주로 관심을 두어 연구하곤 하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모든 종교들의 공통분모인 자연종교의 성격이 비정통적인 기독교, 그 가운데서도 신비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성령운동과 같은 그룹들에 뚜렷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정통적인 기독교에서는 종교학이 선호하는 자연종교의 특성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신앙(신학)을 정립했으며, 신약성경에 기록된 내용들에 대한 오늘날까지의 연속성(복음 뿐 아니라 구약성경과의 연속성까지를 포함한 정통교리)뿐 아니라 불연속성(사도시대에 팽배했던 여러 이적적인 현상들과 그것이 지향했던 복음의 확증 이후로 사라진 사실) 가운데서 일관된 믿음을 정립했다.


   이런 점에서 방언 기도를 추구하는 성령주의적인 양상 가운데서 기독교는 흔히 자연종교로 퇴행한다고 보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마치는 말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방언과 관련한 역사와 배경 가운데서 우리들은 충분히 그 맥락을 파악할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연종교-신비주의-방언 기도’의 연계성이다. 그와 같은 맥락을 이해하는 가운데서 방언 기도는 결코 역사적인 기독교 정통에서의 풍토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으며 이것은 어디까지나 주관적 체험에 근거하고 있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따라서 가장 분명하고도 객관적인 교리와 신앙고백 위에 서 있는 장로교회들의 신앙 가운데서는 이러한 자연종교-신비주의-방언 기도와 같은 주관적인 종교 현상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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