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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 no image 밥이냐? 윤리냐?_남웅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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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91 2008-04-23
밥이냐? 윤리냐? 남웅기 목사_바로선교회 예수께서 세례 받으신 후 광야로 나가셨습니다. 성경은 그 목적을 마귀에게 시험받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시험관인 마귀를 성경에서 유혹자(tempter) 로 표현했지만 예수께서 받으신 ‘시험’이란 잘못된 길로 이끄는 ‘유혹’ 의 의미가 아니라 합격여부를 판가름 짓는 평가의 의미가 더 많다고 생각합 니다. 마귀의 시험은 언제나 계속돼 무슨 과목이냐고요? 메시아로 오셨으니 메시아의 자격 여부 아니겠습니까? 이 시험 때문에 예수께서 준비하신 것은 40일 금식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 님의 사람이라면 피할 수 없는 과제라 하겠습니다. 메시아란 인류를 위해 보냄 받은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을 말합니다. 이스라 엘 백성들은 오랫동안 그런 지도자를 찾으며 기다려왔습니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자칭 메시아가 너무 많아 진성 메시아를 드러내는 기준이 필요했습 니다. 그래서 40일간 굶주린 예수님은 마귀와 대면해야만 했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 라.” 우리는 여기서 마귀의 첫 질문에 주목코자 합니다. 마귀가 돌 하나를 들고 예수께 나와 ‘이 돌로 한번 떡을 만들어 보아라’ 하며 예수님의 능력 자체 를 시험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굳이 십자가를 진다고 누가 알아 주냐? 너 바보 아냐? 굶주린 이 백성들을 먹여 살리는 게 급선무 아니냐? 너, 배고파 보니 알겠지? 땅에 널린 게 돌인데 이 백성들을 두고 볼 것이냐?” 하는 의 미가 담겨 있습니다. 마귀는 지금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이 시험에서 지면 예수는 가짜 메시아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께 엄하게 책망 받는 베 드로가 떠오르는 것은 당연합니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 그 당시 백성들의 가장 큰 문제는 굶주림이었습니다. 먹는 것을 해결해주면 최고의 지도자였습니다. 예수께서 5병 2어의 역사를 일으켰을 때 ‘예수를 왕으로 삼자’는 백성들의 집단적 반응은 좋은 예가 됩니다. 이러한 절체 절명의 순간에 예수께서는 단호하게 대처했습니다. 누구나 잘 아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이에 마귀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진리 앞에 주저앉는 마귀의 모습이라 하겠 습니다. 예수께서 세 관문을 넘어서자 마귀는 떠나고 천사들이 나와 수종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진성 메시아로서의 승인이라 하겠습니다. 여기서 떠오르는 현장은 비극의 에덴동산입니다. 마귀는 거기서도 먹는 문제 로 시험했습니다. 아무리 먹음직하고 보암직했어도, 아무리 하나님 말씀 듣 는데 손해처럼 느껴졌더라도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만 했 습니다. 당시 아담 하와에게 중요한 것은 먹는 문제가 아니라 순종의 문제였 습니다. 마귀의 시험은 과거 에덴동산과 유대광야에만 있었던 게 아닙니다. 오늘 현 재 우리가 직면한 문제입니다. 마귀가 말했던 떡은 서양의 빵을 말합니다. 한글성경 번역과정에서 떡으로 표현했지만 사실 정확한 의미라면 ‘밥’이 맞습니다. 여기서 밥이 돈을 말한다면 말씀은 가치를 말합니다. 밥이 실리를 말한다면 말씀은 명분을 말합니다. 밥이 욕망을 말한다면 말씀은 사랑을 말합니다. 밥 이 소유를 말한다면 말씀은 나눔을 말합니 다. 오늘날로 치면 밥이 경제를 말 한다면 말씀은 진실을 말합니다. 밥을 얻기 위해선 거짓말도 하고, 원칙과 상식도 짓밟아야만 합니다. 말씀대 로 살면 곧 망할 것 같습니다. 그게 바로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마귀의 시험 입니다. 마귀가 먹는 것으로 시험할 때 아담은 하늘의 뜻을 쫓아야했습니다. 아담은 실패했지만 예수님은 승리하셨습니다. 아담이 잃었던 모든 것을 예수님이 다 시 회복해 주셨습니다. 그 방법이 생명을 던진 십자가였고, 십자가는 밥보 다 더 확실한 살림의 방법이 되었습니다. 원칙과 상식이 우선 되어야 밥보다는 윤리가 우선입니다. 교회와 성도에게 있어 원칙과 상식, 말씀 순종 만큼 확실한 윤리는 없습니다.
262 no image 2008총선과 직분의 의미에 대한 단상_최재호 기자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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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87 2008-04-16
2008총선과 직분의 의미에 대한 단상 최재호_본보 객원 기자 2008 총선이 끝났다. 총선결과를 두고 이런저런 추측과 전망이 뒤를 잇고 있 으며, 정치권은 주판을 퉁기며 자신들의 세 불리기에 분주하다. 매번 되풀이 되던 풍경이라 낯설지도 않다. 우여곡절 끝에 끝마친 총선 그런데 금년 총선을 앞두고 그렇게 큰소리치던 J 목사와 사랑실천 기독당은 어디에 있는지 영 조용하다. 국회의사당 수십 석을 예약한 듯 자신만만하더 니 여의도에 명함조차 내밀지 못하는 성적으로 영 초라하기만 하다. 이제는 통일교에 대한 위험성을 알리는 것으로 자신들의 몫을 다했다고 한다. 코미 디 같은 일이다. 사실 목사와 교회가 세속정치로 나서는 일이 얼마나 잘못인지 그들은 진작 알았어야 했다. 그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그들의 직분이 무엇을 위한 자 리인지 알아야 했다.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직분을 주셨다는 자신들의 말 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그들은 잘 알아야 했다. 만약 그들을 진정 하 나님께서 목사로 부르셨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 하도록 세움을 받았으며 세상과 구분되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부름받은 자 임을 직시해야했다. 그 나라를 위해 그들은 세워졌고 세상 속에 남아있는 택 함 받은 자들을 교회로 부르기 위해 부름받고 세워진 존재임을 망각해서는 안되었다. 진정 그들이 하나님의 참된 직분자로서 목사라면 말이다. 그 직분 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소중한 것인지, 그것이 얼마나 두렵고 떨리는 것인지 그들은 바르게 알아야 했다. 아니, 어쩌면 한국교회의 직분은 소명이 아닌 자명(自命)이다 보니 그들은 처음부터 영광스러운 직분과 전혀 관계없었는지도 모른다. 내적, 외적 소명 을 교회를 통해 검증받았어야 할 이들이 그 과정을 무시하고 스스로 소명받 았다, 주의 종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소리 높이다 보니 그 직분을 허 탄한 곳에 써먹는다. 문제 있고 좀 이상한 무리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교회의 내로라 하는 목사들 상당수가 정치판으로 뛰어들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할 이들이 무슨 일을 했던 것인가. 참 어이가 없다. 심지어 예장의 한 교단은 교단 차원에서 이 일에 앞장섰 다. J 목사가 소속된 교단이 라 그러한지 교회 차원에서 이 일에 힘을 보태주었다. J 목사도 그러하지만 그 교단은 왜 또 그러했는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그리스도의 피로 값주고 산 영광스러운 교회가 세상 정치판에서 표를 얻기 위한 도구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아니 몇몇 잘못된 지도자들로 인해 교회 가 그런 존재로 치부되고 대접받은 것이다. 그처럼 자신들의 전유물처럼 목 청 높이던 하나님의 영광은 또 어찌 되었는지 궁금하다. 직분은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기 위해 허락하신 것이다. 말씀과 성찬과 권 징이 교회의 표지라면 그 표지를 지켜가기 위해 직분을 허락하셨다. 그렇다 면 직분은 교회의 교회됨과 직결된 것이며 더없이 영광스럽고도 두려운 것이 다. 당연히 직분자 자신이 직분의 수여자가 되어서도 안되고 수혜자가 되어 서도 안 된다. 오늘날 교회의 지도자들은 교회와 직분을 통해 무엇을 구하 고 있는가. 자카리아스 우르시누스는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광과 그의 백성들의 위로 와 구원을 위해 그의 교회를 세상에서(과) 분명하게 분리시키고자 하신다” 고 단언하였다. 분명 맞는 말이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직분 자들은 이 점을 명심하여야 한다. 교회가 왜 세상과 구분되어야 할 것인지를.... 반면 우리는 이번 한국교회 지도자들의 미성숙한 모습을 보면서 우리 모두 는 정신이 번쩍 들어야 한다. 과연 직분이 무엇인지, 그 직분을 검증하고 하 나님의 뜻을 따라 세워 가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말이다. 목사는 자신의 직분에 충실해야 그러고 보니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은 역시 지도자들이요 선생임에 틀림없다. 스스로가 제대로 가르치고 본을 보이지 못하니 ‘반면교사’가 되어서라도 바른 가르침을 주고 있으니 말이다.
261 no image 우리 사회 포악의 어둠을 누가 걷어낼 것인가?_강성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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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82 2008-04-02
우리 사회 포악의 어둠을 누가 걷어낼 것인가? 강성일 목사_세영교회 우리 사회와 국가의 미래요 꿈나무들인 어린이들이 신체적 성적 폭행을 당함 으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생명의 손상과 정신적 육체적 폐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근래에는 점점 더 포악해 지고 잔인하여 선량한 국민들의 마음 에 아픔을 주고 있으며, 무엇보다 피해를 당한 부모와 가족의 고통은 하늘 이 캄캄해지는 슬픔과 분노 속에 있으리라. 어린이 대상 범죄 갈수록 심각해 이러한 포악한 범죄들로 인해 사회는 더 경색되어가고, 서로가 마음을 열고 선한 이웃이 되게 하는데 심각한 병리현상으로 작용한다. 또 자유분방하게 자라야 할 어린이들과 약한 여성들과 힘없는 남성들까지 온갖 폭력에 시달림 으로 인해 정신적 육체적 고통은 국가 사회적으로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최근에 특히 두드러진 어린이와 여성 성폭행의 범죄자들의 경우 그 정신적 심리 상태가 대부분 사회나 가정 등에서 소외되고 경제적 타격까지 겹치므 로 인해 심한 욕구불만이 우울증으로 발전하고, 정신적으로 생을 포기하고 픈 상태에 이르러 이젠 자기 생명의 마지막 발악으로 본능적 욕망이라도 채 우기 위한 방법으로 유약한 자들을 대상으로 나온 병적 현상의 범죄라고 학 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최근 정부는 경찰력을 특별히 배치하여 어린이 보호의 대책 세우겠다고 하는 데 만전을 기해 줄 것을 촉구하며, 그러나 방지적 대책만으로는 근본적 해결 이 될 수 없다. 우리 사회가 자유롭고 평안한 사회 분위기가 되어야 되고, 안정된 사회적 복지 환경이 저변까지 잘 되어서 사회적 욕구 불만이 최소화 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보건 복지부가 더 잘 해주기를 바라며, 더 나아가 시민 사회의 모 두가 소외된 이웃을 배려하는 선한 풍토를 만드는데 모두가 앞장서야 할 것 이다. 이런 참여가 결국 우리 모두의 가족과 자녀의 안전을 이루는 일이며 동시에 아름다운 사회를 만드는 길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러한 사회의 포악의 어둠을 근본적으로 걷어내기 위해서 는 그런 우범자들을 변화시키는 일이다. 그래야만 밝고 화평한 사회가 근본 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이 일에 앞서야 할 자들은 종교계이지만, 특히 우 리 기독교 교회가 이런 사명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산업문명의 발달과 함께 도시 교회는 자신들도 모르게 고급스러워 가고 있지 는 않는지 돌아보아야 하며, 소외되고 병들고 가난한 자들을 최우선적으로 찾아서 치료하고 복음을 전하고 있는지, 오히려 이런 일들은 특수 분야의 사 명자들만이 하는 것으로 여기고 전도 대상자의 우선순위에 두기를 꺼리지는 않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병든 자, 세리, 죄인들, 귀신들린 자들을 우선적으로 치유하시 고 복음전하시고 저들의 친구라고 하셨다면 현대 도시 교회의 일원인 우리 는 생명 구원은 물론이요 사회 병리 현상을 치료하기 위해서라도 이렇듯 병 을 앓고 있는 낙오된 자들을 응급환자 찾듯이 찾아서 복음과 사랑으로 치유 해 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 신앙인들이 이런 이웃을 먼저 돌아보고 치유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행 한다면 사회의 포악한 범죄를 일으킬 수 있는 사람들이 변화되고 어둠의 그 늘이 서서히 걷히고, 밝고 화평한 사회로 변화되어 갈 것이다. 교회가 사회 치유 능 력 펼쳐야 우리 신앙인은 이런 사명에 최전방에 서있는 사명자임을 우리 모두가 명심하 여야 하며, 또 목회자는 목회 정책에 이런 면을 면밀히 반영 실천함으로써 그리스도 제자의 긍지가 있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260 no image 불평등 해소에 교회가 나서야_장귀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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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89 2008-03-26
불평등 해소에 교회가 나서야 장귀복_목사, 새일산교회 허도산 씨가 지은 “세계의 명 연설”이란 책이 있다. 케네디, 플랭크린, 루 주벨트, 링컨, 처칠, 나폴레옹, 히틀러 등 인간과 세계와 역사를 바꾸어 놓 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설 100여 편이 그 책에 담겨 있다. 화제가 된 빌게이츠 졸업연설 그런데 작년에 개인적 생각이지만 그런 책에 들어갈 만한 연설이 행해져 화 제가 되었다. 바로 세계 최고의 갑부인 빌 게이츠가 34년 만에 하버드대에 서 명예 졸업장을 받으면서 행한 ‘창조적 자본주의’라는 제하의 연설이 다. “인류의 위대한 진보는 ‘발견’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발견’이 불평등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기술의 발전은 부와 보 건, 교육 등에서 다양한 불평등을 해소할 때 비로소 의미와 가치를 가진다. 인생의 성공은 일의 성취로서가 아니라 불평등을 바로잡는데 기여한 공로로 평가되어야 한다.” 그는 지금 자신의 연설처럼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을 설립해 엄청난 자 금을 세계의 불평등을 해소하는 일에 힘쓰고 있다. 그는 자신의 전 재산(약 560억 달러) 중 세 자녀에게는 1천만 달러씩만 주고 나머지 전 재산을 사회 에 환원하겠다고 공언했다. 6개월 동안 준비한 연설이라 하는데 그 중심과 방향을 너무 잘 잡은 연설이 라고 생각된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언론과 매스컴의 집중 적 조명을 받았다. 불평등의 해소,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분명 힘써 노력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어느 면에서는 자본주의 틀 속에 자리 잡은 현대 교회들이 힘써 노력 해야 할 일 역시 ‘불평등 해소’라 생각된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교회가 사회에 대해 가져야 되는 책임보다는 대내적 불평등 해소다. 기독교 내에도, 즉 교회와 교회, 목회자와 목회자 사이에도 자본주의의 약점이 그대 로 노출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대형교회들은 넘쳐나는 재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고, 작은 교회들은 월세 를 내기도 힘든 형편이다. 대형교회 목회자들은 모든 것이 풍성한 반면, 작 은 교회 목회자들은 먹고사는 문제 갖고도 전전긍긍해야 한다. 물론 자본주 의 경쟁 사회에서 목회자의 능력에 따라 나타난 결과이니 어쩔 수 없다고 하 면 할 말이 없다. 아니, 그래도 할 말이 있다. 빌 게이츠 역시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을 통 해 최고 갑부의 자리에 오른 사람이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가진 것으로 불평등 해소를 위해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교회와 목회자들은 그보다 한 수 위에 있어야 된다고 생각된다. 더욱이 교회와 목회자들은 모든 것이 하나 님의 은혜라고 고백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내에서 불평등 해소를 위한 노력이 너무 미미한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과거에는 어느 한 지역에 큰 교회가 있으면 그 주변 교회들이 같이 성장했 다. 왜냐하면 큰 교회들이 돕고 세워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어느 한 지역에 대형교회가 들어가면 주변의 교회들은 모두 죽는다. 교인들을 싹쓸이 해가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성전까지 지으면서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는 것 이 작금의 교계 분위기다. 큰 교회들에는 그야말로 ‘사’자가 붙은 교인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작은 교회들에는 그런 교인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작은 교회들은 그런 교인들이 한 두 가정만 있어도 힘을 얻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빈익빈부익부의 자 본주의 모순이 그대로 교회에도 드러나고 있다. 물론 목회자가 조장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최소한 교계에 불평등의 해소 를 위한 인식과 노력과 가르침이 부족한 것만은 부정할 수 없다. 도시교회 와 지방교회, 대형교회와 소형교회, 대교회 목회자와 작은 교회 목회자, 또 교인들 상호간에 있어서 불평등은 자연스러운 것이라 아니라 해소되어야 할 대상이라는 의식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저희 유여한 것으로 너희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평 균하게 하려 함이라. 기록한 것같이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느니라”(고후 8:14-15). 이 가르침을 따른다 면 교회와 목회자들은 기독교 내의 불평등 해소를 위해 힘써야 되지 않겠는 가? 구체적 실현 방법은 차지하더라도 일단 ‘불평등 해소 의식’만이라도 가져야 할 것이다. 교회는 평균의 법칙 따라야 빌 게이츠의 말을 빌려 이런 말을 하고 싶다. “성공적 목회는 교회 사이즈 가 아니라 불평등을 바로 잡는데 기여한 공로로 평가되어야 한다.”
259 no image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인생들_허태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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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93 2008-03-19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인생들 허태성 목사_강변교회 전직 유명 프로야구 선수 L씨가 평소 잘 알고 지내던 네 모녀(母女)를 피살 한 사건이 있었다. 그는 한 시절 수 차례 골든 글러브 상을 받았으며 소속 된 팀을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려놓아 MVP까지 차지한 야구계의 스타였다. 영원한 세계 동경하는 사람들 그는 야구를 그만 둔 후 사업으로 성공하는 듯 했으나 최근에 사업에 실패하 고 사기혐의로 구속되는 등 극심한 자금난을 겪으면서 끔찍한 범행을 저지르 고 말았다. 사건 발생 후 경찰이 자신을 피의자로 확신하고 공개수사를 시작 하자 더 이상 살기를 포기하고 한강에 투신하여 41세로 그의 인생을 마감하 였다. 필자는 그를 잘 알지 못한다. 그리고 이 글을 통하여 이미 고인이 된 그를 비판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 사건이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서 부활의 계절을 맞으며 몇 가지 교훈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첫째, 우리의 의식이 바로 되어야겠다. L씨는 야구를 그만 둔 후에도 ‘스 타 의식’에 사로잡혀서 살았다고 한다. 그는 스타의식, 특권의식, 일류의식 을 버리지 못했다. 그는 한때 일류 야구 선수였고 스타였다. 그러나 야구를 그만 둔 후에 평범한 소(小)시민으로 돌아가지를 못했다. 우리가 어떤 분야에서 괄목할만한 업적을 나타내어 일류가 되는 것은 칭찬받 을 만한 것이고 권장할 일이다. 그러나 그 일류 의식은 겸손한 ‘노블리스 오블리쥬’ 의식으로 남아서 남을 위하여 더 봉사하고 베푸는 것으로 승화되 어야만 하는 것이다. ‘뉴스 후’에 소개된 어느 대형교회의 은퇴 목회자의 모습이 좀 더 소시민 적이고 소박하게 비춰졌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한국교회는 보다 더 건강 한 의식, 청교도 의식, 섬기는 종의 의식을 가지고 살도록 설교하고 가르쳐 야 할 것이다. 둘째, 자신의 집 안방에서 졸지에 세 딸과 함께 죽음을 맞이한 K씨 가족을 생각하며 언제 우리의 인생의 종지부를 찍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 그 밤에 그런 식으로 자신들의 인생이 끝날 것을 꿈엔들 생각이나 했 을까? 매일 신문의 사회면을 펼 때마다 수많은 사건 사고의 소식을 접한다. 국제면 을 펴면 끊이지 않는 전쟁과 테러로, 또는 자연재해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는 소식을 접한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세상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이러 한 현실을 보며 교회는 구원과 생명과 부활의 복음을 전하는 데 보다 더 열 심을 내야 할 것이다. L씨 옆에도, K씨 옆에도 분명히 그리스도인들이 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 고 지금 우리 옆에도 얼마든지 제3의 L씨와 K씨가 살고 있다. 그들에게 참으 로 인생을 사는 법을 가르쳐 줘야할 것이고 죽음 후의 부활의 복음을 전해 주어야 할 것이다. 특히 L씨는 지인에게 남긴 유서에서 “옛 시절이 행복했다. 하늘나라로 먼 저 가 있을게”라고 적었다. 그는 4명의 목숨을 살해하고 떠나가면서도 영원 한 세계에의 갈망을 나타냈다. 그가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었는지 확인하지 는 못했지만 그에게도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었다. 과연 하늘나라에서 그를 받아 주었을지 의문이 가기는 하지만 누구에게도 부 인할 수 없는 영생에의 희구가 마음 속 깊이 자리하고 있음을 본다. 부활의 계절을 맞으며 먼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무엇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 야 할지가 분명해진다. 이 놀라운 복음을 전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부활 복음 전해야 우편의 극악한 강도도 용서해 주시는 예수님의 사랑, 죽은 나사로도 살리시 는 생명의 복음, 무덤 문을 여시고 주안에서 죽은 자를 부활케 하시는 이 복 음을 온 세상에 전하자.
258 no image 문제는 사람이죠, 사람이 맞습니다_최영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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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87 2008-03-12
문제는 사람이죠, 사람이 맞습니다 최영묵 목사_화곡언약교회 새 정부가 출범하였다. 그래도 장로님이 대통령이 되었는데 하는 마음으로 새로운 기대를 해본다. 너무 큰 기대였던가? 시작의 축제와 희망의 설렘은 점점 더 멀리 약자들을 외면하기 시작한다. 약자들 외면하지 않는 새 정부 되길 인수위원회의 야심에 찬 교육 정책은 “오렌지 아니죠, 오륀지 맞습니다”라 는 코미디가 소시민들의 허탈한 심정을 위로하더니 강부자, 고소영 내각의 ‘자연을 사랑하였을 뿐 투기는 안 했다’는 해명에 ‘땅 두 번만 사랑했으 면 전 국민이 소작인과 세입자로 살 수밖에 없겠다’는 볼멘 소리가 들려온 다. 막 출범한 새 정부의 불신보다는 사람들에 대한 불신이 문제인 것 같다. “사람을 공천해야지, 새(철새를 지칭)를 공천하면 어떻게 하냐”는 공천의 덧에 걸린 정치권도 아우성이다. 부패에 연루된 사람들, 국감 도중 피감 기 관에서 골프접대 받은 사람들, 음주 후 폭행한 사람들, 신의 없는 사람 들... 윤리적으로 국민의 눈높이에 맞아야 한다는 공천 기준들에 대해 많은 정치인 들이 분통을 터트리고 억울해 한다. 그나마 “정치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도 의를 지켜야 한다”는 모 정당 윤리 위원장의 이야기와 “우리(국민)는 조그 마한 일을 해도 징역을 가고 한번 징역을 가면 어떤 공직에도 들어갈 수가 없는데 이분들은 큰 수십 억, 수백 억, 수천 억을 해먹고 사면되면 그만이냐 고” 반박하는 모 정당 공천심사위원장의 뚝심 속에서 혹시나 하는 기대감 을 가져본다. 과연 특권의 벽은 무너질 수 있는가? 한국 최고의 기업 S그룹이 연일 방송과 신문의 머리말을 채우며 우리 경제계 를 어지럽게 하고 있다. S그룹 일가의 욕심과 이를 용인하는 일부 사람들의 부정부패가 대한민국 전체를 떡 값 공화국 속으로 몰아넣고 말았다. 부정부패의 고리를 끊어 민주주의를 바르게 정착시키자는 정의사회구현 사제 들은 메시지를 전한다. 더군다나 떡 값을 받은 사람들에겐 ‘이번 기회가 영 혼의 내면을 살피는 계기가 되 길 바란다는 간곡함’에 한껏 사람다운 모습 들을 확인할 수 있어서 그나마 희망이 보인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 사회 기득권층 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우리네 교회는 이곳저곳에서 심심치 않는 뭇 매를 맞고 있다. 비록 특정 교회, 일부 목회자 들의 이야기일지라도 사실을 말하고 있으니 어쩌겠는가? 새삼스럽게 몰랐던 일들도 아닌데도 혈압이 상승한다. ‘세대물림, 기업 총수도 정치권도 안 된다고 비판하는 것들을 당당하게 했 으면 뭇 매면 뭇매, 몰매면 몰매 맞아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모 든 것이 내 탓이요” 하고 말이다. 그리고 역시 사람이 문제였다고 변명 할 수밖에 ...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렘 17:9)는 말씀처럼 사 람의 마음이 이런 줄을 우리가 몰랐던 말인가? 개혁을 외치고, 청교도 신앙 을 주장하던 사람들의 능숙한 세대물림과 미덕의 변명거리를 늘어놓을 때 그 저 묵묵히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가여운 우리들.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소 리가 아니었던가? 우리는 자정 능력을 상실했다고... 여론의 몰매가 무서운 것이 아니다. 세상 사람들의 희망과 기대를 저 버린 신실하지 못했던 우리의 이중성이 무서운 것이다. 세속적이고 물량적인 기형 적 모습들을 성공의 모델로 꿈꾸고 비전이라는 자기체면을 걸고 있는 우리 가 무섭고 문제인 것이다. 문제는 교회가 아니라, 내가 문제인 것이다. 사람 의 역할을 바로 해야겠다. 이젠 실용주의 정부 안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 의 역할도 바로 해야겠다. 그리스도인의 역할 제대로 해야 ‘광고에 길들여지도록 만드는 이 사회의 가치관과 경제 발전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희생도 감수하도록 하는 가치관과 싸워야 하며 하나님 없이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려는 모든 노력의 잘못을 폭로하는 일이라는’ 르네 빠딜라 교 수가 전하는 그리스도인의 사명을 실천해 보아야 하겠다. 사회 통합, 즉 그 리스도 안에서 통일시키는 역할을 다하는 그 날까지 말이다.
257 no image “한국교회 위기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_박발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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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14 2008-03-05
“한국교회 위기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 박발영 목사_한우리교회 1. 한국교회를 우려한다 얼마 전 MBC 방송에서 대형교회 목사님들의 화려한 생활을 비난하는 방송을 두 차례나 방영하였다. 대형교회 목회자들의 생활이 너무 호화스럽다는 것이 다. 세습을 한다. 고급외제차를 타고 다닌다. 고급빌라에서 산다. 호화별장 까지 가지고 있다고 비난을 했다. 그러고도 세금 한 푼도 안내고 산다는 내 용이 핵심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귀족목회(?)를 하신 분들이 우리 한국교회 안에 과연 몇 명이 나 될까? 1%로도 안 될 것이다. 90% 이상의 목사들은 가난하게 살고 있다. 또 내가 알고 있는 대형교회 목사님들은 성도들이 벤츠와 BMW를 사주었는데 목사를 죽일 속셈인가? 하시면서 그것을 팔아서 건축헌금을 하셨다. 그런데 문제는 MBC의 대형교회 비난방송 후에 대다수 한국교회 목사님들이 귀족목회(?)를 한 것처럼 인식되어졌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안티 기독교 세 력이 많이 생겨났으 며, 기독교가 가장 인기 없는 종교로 전락했다. MBC 방송 을 보고 흔들리는 성도들도 많다고 한다. 지금 한국교회가 심각한 위기에 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2. 우리의 자성이 필요할 때 MBC의 비난하는 방송을 보면서 처음에는 분노가 일어났다. 그런데 어쩌면 이 것이 짠맛을 잃은 한국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었다. 교회가 짠맛을 잃으면 세상 사람들의 발에 짓밟히도록 내 던지는 것 이 주님의 징계이기 때문이다. 교회가 그렇게 죽을 죄를 지은 집단인가? 교회도 좋은 일을 얼마나 많이 하 는데 사소한 잘못을 가지고 트집을 잡는가? 라고 탓 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왜 이런 비난을 받게 되었는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물론 세상의 잣대로 악의에 찬 비난을 가만히 보고만 있기에 너무나 화가 치밀어 오르지만 하나 님이 짠맛을 잃은 한국교회에 가하는 채찍라면 주님의 징계에 순응해야 하 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무엘하 16장을 보면, 다윗은 시므이의 저주를 하나님의 채찍으로 생각했 다. 시므이가 저렇게 욕하고 저주하고 돌을 던지는 것은, 하나님이 시켜서 하는 것이라고 생 각했다. 그래서 아비새가 분을 참지 못하고 시므이를 죽이 려고 했을 때 다윗이 가로막으면서 이렇게 말을 했다. “하나님이 나를 저주 하라고 시켜서 그가 저주하는 것이라면, 그가 나를 저주한다고, 누가 그를 나무랄 수 있겠느냐?” 다윗은 철저히 하나님의 입장, 하나님의 시각(視覺)에서 사건을 본 것이다. 이 모든 사건은 압살롬, 시므이 탓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죄 때문이라고 고 백한다. 이것이 진정한 회개의 모습이요, 주님의 징계에 순응하는 모습일 것 이다. 고 한경직 목사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목회자는 가난하게 살기로 작정 하고 살아야 한다. 특히 큰 교회 목사일수록 더욱 의도적으로 가난하게 살기 로 작정해야 한다. 큰 교회 목사나 유명세를 타는 목사일수록 자신에게 쏠리 는 부와 명예를 잘 관리하지 않으면 어려움을 겪는다”고 하셨다. 그리고 자 신이 친히 본을 보이는 삶을 사셨다. 성도들이 사준 옷, 선물, 자동차, 템불턴상 수상금(100만 달러), 모든 것을 선교단체에 가난한자에게 가나한 목회자에게 나누어 주셨다. 98세의 나이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그가 남긴 재산은 말년에 타고 다니던 휠체어 와 지팡이, 겨울 털모자, 입던 옷이 전부였다. 템플턴상을 수상하려고 출국을 준비하실 때의 일화는 정말 가슴이 찡하게 한 다. 템플턴상을 수상하기 위해 출국을 해야 하는데 옷을 다 나누어주어서 입 고 갈 옷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부랴부랴 한 목사님을 모시고 백화점에 들러 옷을 구입하여 공항으로 출발했다는 것이다. 목회자들의 자질과 도덕성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한경직 목사님이 그리워지 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청빈하고 겸손했던 모습이 우리의 빛이 되기 때문 이 아닐까? 몇몇 목사님들이 호화스럽게 산다고 해서, 외제차를 탄다고 해서, 교회를 세 습했다고 해서 그것이 옳은가 그른가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것이 덕이 되는가? 그것이 세상의 빛이 되는가는 자성해 봐야 할 것이다. 지금 한국교회가 심각한 위기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면 해결책은 무엇일까? 이번 사건을 짠맛을 잃은 한국교회에 가하는 하나님의 채찍으로 받아드리고 우리 목회자들이 다윗처럼 주님의 징계에 순응하며 자성해야 하지 않을까 하 는 생각이 든다.
256 no image “국가 인재 양성에 관심 가져야”_장재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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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86 2008-02-27
“국가 인재 양성에 관심 가져야” 장재훈목사_군산내흥교회 정권이 바뀌면 국정을 이끌 지도자들을 선임할 때마다 애를 먹고 늘 홍역을 치르는 것이 있다. 전문성과 도덕성을 갖춘 인재를 찾는 게임이다. 너무나 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 각료 찾기 쉽지 않아 이명박 정부의 총리와 장관 후보 명단에 올랐던 210여 명 중 30%(60여 명) 정도가 정부 전산망으로 파악할 수 있는 모든 개인 정보를 가려내는 약식 검 증 과정에서 탈락한 것으로 매스컴은 보도하고 있다. 인수위의 한 관계자는 “조각 팀이 그 결과를 보고 과연 털어서 먼지 안 나 는 사람이 드물다는 말들을 했다”면서 “안타까운 사람들이 적지 않게 탈락 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돈도 많고 많이 배운 화이트칼라들이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도덕적 수준이 약식 검증 과정에서조차 30%나 탈락했다고 하니 정말로 심각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수치는 전반적인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는 것같아 신자 들의 역할과 책임이 그 어느 때보다도 크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정밀 검증을 받으면 얼마나 더 탈락할지 기대마저 든다. 그리고 국 회 청문회 과정에서는 어떨 런 지 걱정마저 든다. 청문회에 임한 모 후보 역 시 각종 투기와 불법 의혹을 받았다. 이러하니 타국은 몰라도 대한민국의 상 당수 부유층과 사회 지도층과 명예와 권력을 쥐고 있는 자들이 존경을 받지 못하고 지탄과 의혹을 받고 있는 것도 매우 자연스럽다고 본다. 한마디로 가정과 학교에서부터의 인성 교육과 도덕성 교육의 실패라고 생각 한다. 그리고 잘못된 성공 개념과 정당하지 않은 취득 개념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것도 또 하나의 원인이라고 본다. 그리고 극단적인 이기주의 도 한 몫을 하고 있다고 본다. 이와 같은 우리 사회의 자화상은 현재나 미래에도 크게 개선될 것으로 보이 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악습을 끊을 수 있는 가정과 학교와 사회의 시스템이 너무나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똑똑하고 바른 인재를 키우 는 전문 양성 기관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으로도 암담하다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외모나 조건이나 학력 등등이 화려한 사람들은 많은데 막상 사람을 발탁해서 쓰려고 검증을 해 보면 너무나도 쓸 만한 인재가 없다는 것 이다. 지금부터라도 국가 차원에서 정치, 경제 사회, 국제 등 각 분야와 부문별로 인재 양성 기관을 세우고 미래의 꿈나무들을 개발하고 투자하여 육성해야 미 래가 있다고 본다. 이 같은 것을 세계 최고의 프로축구리그인 영국 프리미어 리그 시스템을 벤치마킹하면 창조적인 대안이 나올 것으로 사료된다. 교회들도 이삭줍기 식으로 인재를 찾지 말고 장, 단기 적인 유소년부터 인 재 양성 시스템과 기관을 세우고 전략적으로 개발하고 키워서 신학교와 사회 의 각 분야에 거룩한 자로 보내어야 한다. 이 또한 교회의 책임이기 때문이 다. 그래서 똑똑하면서도 바른 인성과 윤리와 신앙을 소유한 신자들을 요소 요소 에 진출시켜 세상의 등대와 소금이 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나아가 국가 의 지도자로 진출시키고 세워야 한다. 그래야 국가와 국민들을 바른 길로 인 도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가정과 학교와 교회에만 의존하기엔 한계점에 이르렀다고 본다. 그리 고 교회 안에도 배운 자들과 똑똑한 자들은 많지만 국가적 사명이 뛰어난 자 들이나 영적 , 도덕적으로 깨끗한 자들이 너무나도 적은 것이 현실이다. 전문적 양성 기관 설립해야 따라서 규모는 작지만 미국의 모 기관처럼 전문적인 정치 지도자를 양성하 는 전문기관을 세워서 꼭 필요한 인재들을 배출해야 한다. 그리하면 머지않 아 지금과 같은 실망과 탄식과 인재 품귀 현상은 없을 것이다.
255 no image “예수님에게 미치자”_권한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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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32 2008-02-20
“예수님에게 미치자” 권한국 목사_연청교회 나는 미친다는 용어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매우 집중하고 열정을 다 하고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든지 예수님을 자랑하고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고 자 애쓰는 모습을 이렇게 한 마디로 표현하고 싶다. 예수님께 집중하고 싶어 나는 이 글을 쓰기 전에 지난 한 해 동안 우리 총회와 각 노회의 결정사항들 과 개혁신보에 실린 교단내의 여러 상황들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우리 노회 산하 교회들의 상황을 생각해 보았다. 교회 가운데 평안하고 활기가 넘치는 교회가 몇 안 되는 것 같았다. 몇 교회 는 지금 상당한 아픔을 겪고 있는 중이다. 무언가 주님이 다스리시는 거룩 한 공회가 아니라 사람들의 냄새가 나는 단체가 되어 가는 느낌을 받은 것 도 사실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것은 주님의 교회가 성장하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생각한 다. 즉 교회가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을 가장 싫어하는 사단이 잠시 사람의 생각을 하도록 충동하여 심하게 흔들어 놓는 결 과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나는 나의 무능함과 연약함을 느끼며 새벽기도를 하면서 이러한 신앙 고백을 하였다. 내가 믿는 주님은 어떠한 분이신가를 되새기면서 드린 고백 이요 기도이다. 주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시고 지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않아 그 말씀과 권세로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나의 주님이십니다. 주님께서 성령으로 항상 나와 함께 하시며 나를 지도하시고 보호하시고 나 를 세워주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리고 주님이 하셔야 할 일들을 내게 맡기시 고 나를 사용하셔서 또 나와 함께 주님의 일을 이루어 가시는 주님이십니 다. 나는 입술도 둔하고 지혜도 부족하여 성경을 읽고 또 읽고 정말 주님 내게 말씀을 주옵소서 하고 부르짖으면 언제든지 말씀을 깨닫게 해 주시고 담대 히 하나님의 사자로 강단에 세워 주시는 나의 주님이십니다. 또한 나는 연약하여 성도들을 일일이 지도해 주지 못하니 주님이 친히 저들 의 목자가 되사 저들을 친히 가르치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여 주옵소서 하 고 주님께 부탁할 때 주님은 마른 지팡이 같은 나를 성도들 위에 세우사 당 신의 뜻을 친히 이루시는 주님이십니다. 이러 한 신앙고백을 진지하게 하면서 나는 새 힘을 얻었다. 또 동시에 새로 운 각오와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 눈에서는 죄송함과 감격의 눈물 이 쏟아졌다. 나는 너무나 어리석고 무능하고 나약해서 주님의 일을 그르치 는 일이 많은데도 이렇게 사랑하시고 귀히 여기시는 사실을 느꼈을 때 존귀 하신 주님 앞에 엎드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기도하였다. “주님 오늘에 필요한 열정을 주옵소 서 예수님께 미치게 하옵소서! 그래서 예수님으로 충만해지게 하옵소서 예수 님의 심장을 갖고 예수님의 생각으로 예수님의 말씀으로 충만케 하옵소 서!” 주님의 사랑과 권위와 자비를 느끼고 일어설 때 새 힘이 솟는 것을 느꼈다. 우선 사람을 만나는 것이 즐거웠다. 마을마다 전도를 다니는 것이 습관적이 아니라 기쁨으로 다니는 모습을 발견하였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동네를 다니 게 되었다. 농촌이란 목사가 곧 사찰이요 청소부도 되지만 이렇게 기쁨으로 이 모든 일을 한 적이 없었다. 코카콜라의 사장은 “내 혈관에 흐르고 있는 것은 내 피가 아니고 코카콜라 이다”라고 했다 한다. 공산당 골수분자들은 공산 화를 위해 생명도 재산도 바치는 미친 사람들이다. 오늘 우리 교단의 모든 목사들이 예수에게 미치기를 하나님께 소원한다. 모 든 장로들과 집사들이 예수님께 미치기를 소원한다. 그래서 존귀하신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풍성한 생명력이 교회마다 노회마다 흘러 넘치기를 기 대해 본다. 풍성한 생명력 가득하길 그러면 총회의 문제, 노회의 문제, 교회의 문제들이 봄기운에 눈 녹듯 다 녹 아 내릴 것이다. 그리고 이 땅에 그리스도의 계절이 올 것이다.
254 no image “위기의 교회, 지금이 다시 서는 기회”_나종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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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50 2008-02-13
“위기의 교회, 지금이 다시 서는 기회” 나종천 목사_한사랑교회 얼마 전 한편의 영상을 보았다. 한국의 최초 선교사인 토마스 선교사가 목 사 안수 받고 파송받은 하노버 교회와 근대 선교의 아버지인 윌리엄 케리 선 교사 기념교회를 보고 너무 가슴이 미어지는 아픔을 겪었다. 토마스 선교사는 영국 하노버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런던선교회 파송으 로 중국상해에서 사역을 하다 이 땅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대동강에 도착했 다. 그곳에서 들고 온 성경책만을 놔두고 순교하신 이 땅에 최초의 선교사 가 되었다. 그의 피는 이 땅, 이 조국 구석구석을 적시고 온 땅에 십자가 생 명의 불빛이 되어 온 대지를 밝혔다. 토마스 선교사를 파송한 하노버교회는 이미 오래 전에 문이 닫혔고, 사람들 의 발길은 끊어졌으며, 잡초만 무성한 교회를 두 노인만이 쓸쓸히 지키고 있 는 것을 보았다. 근대 선교의 아버지 윌리암 케리 기념교회는 1979년에 이교 들의 손에 넘어갔고 그곳의 강단은 큰 불상이 놓여있 으며, 곳곳에 그들이 섬 기는 우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최근 '기독교 박멸'이라는 섬뜩한 구호를 내세우는 안티기독교운동은 이제 가상공간에서 그치지 않고 일상의 현실로 힘을 뻗쳐나가고 있다. 이를 증명 하듯 기독교를 비하하는 용어가 네티즌들 사이에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신 학자들의 토론회에도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얼마 후 모 방송국에서 한국교 회의 아픈 부분을 칼로 도려내듯이 적나라하게 들추어냈다.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한다는 말을 공식석상에서 할 정도로 기독교는 힘이 있 어졌고, 그리고 장로가 대통령이 되었다. 요즘 우리 한국 기독교는 장로 대 통령이 선출되었다고 기뻐하고 있다. 필자 역시 장로가 대통령이 된 것이 기 쁘고 감사하다. 어찌보면 교회는 지금처럼 가장 강한 힘을 가진 적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 데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기독교는 한국에서 이제껏 겪어 보지 못했던 최고 의 위기를 맞고 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유럽의 교회처럼 예배당만 당그라 니 남고 교회마다 교인들이 없어서 텅텅 빈 교회가 될 가능성이 그 어느 때 보다 높아졌다. 우리 개신교는 이 땅에서 핍박은 받은 적이 있으 나 요즘처럼 세상으로부터 욕을 먹어 본 적은 없었다. 핍박을 받는 것과 욕을 먹는 것은 전혀 다르다. 교회는 핍박받을 때 힘들지만 오히려 성장하고 순수해 진다. 그러나 욕은 그 와 다르다.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하고 욕을 먹게 되기 시작하 면 교회는 몰락하게 되어있다. 지금은 기독교 최고의 위기가 아닐 수 없다. 세상은 더 이상 우리 기독교를 존중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몇 가지로 생각해 보고 기회로 삼았으면 한다. 첫째, 교회는 정치적이어서는 안 된다. 만일 교회가 본질이 아닌데도 한쪽 편에 선다면 이미 교회는 교회로서의 힘을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걱정이 되 면 기도하고 훌륭한 정치인을 키우기 위해 투자해야 한다. 그러나 절대로 교 회가 정치에 일선에 나서면 안 된다. 교회는 교회의 본질인 영혼을 구원하 여 제자 삼는 것을 위해 존재한다. 둘째, 이기적인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 교회의 현실을 보면 나라와 세상 에 대한 소명감을 잊어버리고 자꾸 이기적인 교회가 되어가고 있다. 이제 한 국교회는 누구 때문이라는 책임을 전가하기 이전에 교회가 교회로서 반듯하 게 서는 자성의 운동을 해야 한다. 셋째, 다음 세대를 향한 교회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오래 전에 한국교회 는 어린 학생들이 많았고 장년 성도는 적었다. 그러나 지금은 반대로 장년 성도가 많고 학생들이 적다. 오늘 주일학교 모습은 한국교회가 세태에 물들 어 그냥 따라간 결과이다. 교회가 다음세대를 위해 일어설 때이다. 다음 세 대를 위해 눈물을 흘려야하고 다음 세대를 위해 모든 것을 투자해야 한다.
253 no image “우리의 소망은 어디에 있는가?”_전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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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69 2008-01-30
“우리의 소망은 어디에 있는가?” 전 현 목사_화평교회 인간은 누구나 미래에 대한 어떤 소망을 가지고 오늘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소망이란 어떤 사람에게는 물질일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명예나 지위, 또 어떤 사람에게는 학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소망을 갖기 이전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공통적인 소망이 있습니다. 누구나 소망 가지고 있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의 진실한 소망입니다. 로마서 5장 3절 말씀에 는 “환란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란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환난이 인내를 통해 연단을 가져오고 이 과정을 통해 소망이 확실해 짐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이 세상의 성도가 당하는 환난이 결국 연단을 위 한 것이며 이로써 그리스도의 재림과 우리의 부활에 대한 소망이 더 굳게 세 워지고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바울은 성도가 ‘이미’(already)와 ‘아직 아닌’(n ot yet)의 사 이에 있는 긴장의 상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성취된 믿음의 의로 주어지는 하나님과의 화평은 궁극적으로 그리 스도의 재림으로 말미암아 성취될 우주적인 화해 개념을 예시하기 때문입니 다. 이런 점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즐거움으로 환난을 극복합니다. 후에 바울은 재 림의 소망을 가지고 기꺼이 고난에 참여해야 할 것에 대하여 “자녀이면 또 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롬 8:17)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 안에서 진실 한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귀한 일군이 되어 주기를 바라는 것 뿐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소망은 그리스도인만이 가지는 진실한 소망입니다. 이 소망 은 우리 개인의 어떤 욕구를 충족시키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만을 믿고 따르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디모데는 “우리 구주 하나 님과 우리 소망이신 예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국 속담에 “인간의 최대 행 복은 소망을 갖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 다. 인간이 목적한 바는 다 다를지라도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누구나 소망을 품고 살아갑니다. 사람들의 얼굴이 각기 다르듯이 소망하는 바도 각양각색입 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인간이 흔히 소망하는 재물이나 사랑, 예술, 학문, 지 위, 명예는 인간의 일시적인 소망은 될지언정 영원하고 항구적인 소망은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전도서 3장 11절에 “하나님은 인간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 고 말씀합니다. 인간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영혼이 있고 이 영혼이 갖는 놀 라운 소망도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양극단의 역사 속에서 다양한 구성 요소들 또는 그와 상반되는 요소들까지도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따라 배치, 배열, 정리, 발생케 하심으로써 궁극적으로 참된 의미를 갖게 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만사가 진행되고 있는 역사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셨음 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셔 서 역사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현상의 배후에 있는 궁극적인 의미를 추구하 는 본능을 심어주셨다고 전도자는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렇 게 함으로써 전도 자는 역사 속에서 진행되는 인생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가능성 을 찾았던 것입니다. 마르셀 링크라는 사람은 노년에 이르러서 과거에 걸어온 자기의 삶을 되돌아 보면서 “나의 삶은 기쁨으로 가득한 삶이었다. 나는 진정 행복했다. 그러 나 그보다 더 기쁘고 행복스러운 것은 그런 지난날이 행복이 아니라 아직도 소망으로 저 천국을 바라볼 수 있는 일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천국만이 진정한 소망일 뿐 그리스도인들여! 진정 우리들이 가져야 할 소망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물질 이기 이전에, 명예나 학문이기 이전에 진실로 우리가 가져야 할 소망은 예 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며 순종하는 소망을 먼저 갖게 될 때 우리의 생은 날마다 값있는 소망의 삶이 될 것입니다.
252 no image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_이주형 목사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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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53 2008-01-23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 이주형 목사_오정성화교회 오래 전 어느 교수가 논문을 쓰기 위해 조사한 것 중 하나가 ‘가난하게 사 는 동네와 가난하게 사는 사람은 가난하게 살 수 밖에 없는 요인이 있었다’ 고 말한 적이 있다. 대박집은 잘 되는 이유가 있고, 쪽박집은 안 될 수밖에 없는 원인이 있다는 말이다. 대박집은 잘 되는 이유 있어 무엇 때문일까? 성공자는 성공적인 의식을 가지고 있고 실패자는 패배자의 의식이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즉, 그 사람의 생각이 그 사람 의 행동을 많이 좌우하고 있다는 점이다. 성경의 말씀이 이를 증거해주고 있 다.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잠 23:7). 최근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신년 기자회견을 하면서 연설 중에 긍정이란 단어를 8번 언급했다고 언론이 보도하면서 구체적인 어록을 소개한 것을 보 았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된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제 긍정 적인 변화가 시작됐다.” “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나라의 분위기가 바뀐 다면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대선이 끝나고 대다수의 국민들이 이제 무언가 바뀌겠구나, 이제 잘 될 수 있겠구나, 경제가 살아나겠구나 하는 긍정적인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음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고도 했다. 그러면 지금 모든 것이 바뀌었는가? 경제가 살아나고 있는가? 유가는 급등하 고, 주가는 하락하고, 달러는 약세를 벗어나지 못하는 등 대내외적으로 악 재 요인이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국민들은 왜 이런 속에서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을까? 그 것은 지도자의 믿음과 지도자의 긍정적인 말이 용기와 소망을 주고 있기 때 문이 아니겠는가? 이토록 모든 사람의 말이 중요하지만 지도자의 말은 더욱 중요하다. 대망의 새해를 맞이한 우리 모든 동역자들도 새해는 소망적이고 진취적인 메 시지로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우리 교단도 보수적인 좋은 이미지를 계속 살려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러 나 부족한 부분에는 보완이 필요하듯이 모이기에 힘쓰는 교단이 되었으면 하 는 바램이다. 질적 성장을 강조하지만 진정한 질적 성장에는 양적 성장이 따 라오는 것이 자연적인 현상이다. 생각과 행동부터 바뀌어야 중국의 인구가 13억이 넘었다고 한다. 그중에 아주 잘사는 부유층이 약5%정 도라고 하는데 숫자로 계산하면 남북한 인구와 거의 맞먹는 사람들이 아주 잘 사는 계층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양적 성장 안에 질적 성장도 더 많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이 모든 일을 위하여서는 우리의 생각이 바뀌고 말과 행동이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새해에는 새 정부도 들어서고 새 믿음의 대통령도 취임하고 모든 면이 새로 워지는 해이기도 하다. 우리 교단과 모든 교회들과 선교지에 풍성한 삶과 믿 음의 열매가 많이 맺혀지기를 기도한다.
251 no image 관용과 화합으로 올바른 국정운영 펼치기를_허상길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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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6 2008-01-16
“관용과 화합으로 올바른 국정운영 펼치기를” 허상길 장로_총회부총회장 사람이 살아가는 데 기본적으로 입어야 하고 먹어야 하며 잠자야 하는 것이 충족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한다. 요즘 경기가 없어서 국민들이 살기 어렵다고 말들을 한다. 그렇다면 과거를 돌이켜보면 새마을운동을 시작으로 농촌계몽을 하여 농업 이 선진화되었고 산업이 발달하여 급성장한 우리가 약 10여 년 전으로 돌이 켜서 현재와 비교할 때 지금이 더 못산다는 말인가. 그때보다는 경제가 어렵 다고는 하나 지금이 더 잘 산다고 생각이 된다. 가난은 상대적 개념일 뿐 요즘 대학을 졸업한 고급인력이 일자리가 없어 실업자가 많은 것을 볼 수 있 다. 그렇게 일자리가 없는 것일까. 편하고 월급 많이 받고 좋은 직장을 찾으 려니 그렇지 않은가. 외국 근로자들은 좀 힘들고 어려운 3D업종에서 잘들 하 는데 우리들은 왜 못하는 것일까 생각해 보게 된다. 우리 젊은이들이 대학 을 졸업하지 않은 사람이 얼 마나 될까? 현재 우리 경제는 세계 11위라 들었다. 이번에 선출된 이 당선자는 국정운영 을 잘 할 것으로 믿는 국민이 80퍼센트 이상이나 된다고 한다. 경제가 활성 화되어 더욱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큰 기대를 하고 있는 것이 다. 하지만 기대가 큰 것만큼 큰 부담을 갖게 되고 만일 기대만큼 충족이 덜 되었을 때 실망 또한 클 수도 있다. 인수위원회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언론을 통해 볼 때 현재 인수위원회는 업무 를 인계하고 인수받는 업무라 생각한다. 전자의 모든 업무는 잘 했든 못 했 든 결과를 보고 국민이 판단하며 역사가 판단할 것으로 보며 인수위는 잘한 것은 장점을 살려 더욱 노력하고 미흡한 점은 보완하고 잘못된 것은 폐지하 거나 수정하여야 하며 새로운 일은 넓고 깊이 연구하여 소신있고 무거운 책 임감으로 신속하고 과감하게 실행으로 옮길 때 큰 성과를 거둘 것으로 생각 된다. 큰 국정을 운영할 때 혼자의 힘으로만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고집과 아집 으로 밀어 부쳐도 문제가 될 수 있고 나의 생각과 나와 코드가 틀린다 하여 서 발목을 잡는 것보다는 국익이나 국민에게 바른 일이면 여야가 서로 협 조 하여 그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도록 도와야 하며, 우리들은 잘하는 것은 칭 찬을 보내고 잘못된 것은 질책도 하며 또한 위로의 격려도 아끼지 말아야 한 다. 겸손하고 낮은 대통령 되길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막 10:43,44)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당선 소감에서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국 민을 섬길 것이라고 처음에 말한 것처럼 이 당선자는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국민을 주인으로 섬기며 국민의 종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고 관용과 화합으 로 일할 때 정의로운 민주주의가 더 한층 정착이 되고 더욱 행복하고 풍요로 운 사회가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는 국가와 민족을 위하고 위정자들이 올바른 국정운영을 펼칠 수 있도 록 쉼 없이 하나님께 기도해야 할 것이다.
250 no image 모처럼 좋은 모습 보여 주었다_이선웅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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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89 2008-01-09
모처럼 좋은 모습 보여 주었다 이선웅 목사_남문교회 지난 12월 중순은 대선을 코앞에 두고 있는 데다가 태안 앞 바다에서의 기 름 유출 사고까지 겹치는 바람에 우리 국민들의 마음을 더 분주하게 만들었 다. 그런 가운데서도 너무 감사한 것은 태안 해변의 기름 방재 작업에 많은 사람이 봉사 대원으로 참여한 일이라고 하겠다. 자원봉사 손길 넘쳐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서로 돕고 협력하는 우리 국민들의 따뜻한 마음씨 와 변할 줄 모르는 봉사 정신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우리 국민이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태안 기름유출사고 방제작업 현장에 갔다가 크리스천의 한 사람으로서 무엇보다 흐뭇하게 느껴진 것이 있었다. 그것은 이번 봉사에 한국 교회가 앞장서서 참여한 일이다. 환경 단체들, 대한적십자사, 병원협회, 약사회, 여러 봉사단체들, 회사들, 학교들, 가족단위, 개인 등이 참여하여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고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한국 교회가 자리잡고 있었다. 사실 한국 교회 로서는 그동안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장에는 교회가 앞장서 고 있다는 인식을 국민들에게 심어주는데 미흡했었다. 참여를 하면서도 효과 적으로 참여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봉사 대원을 가득 실은 교회 차량들이 줄을 이어 모여들었다. 그 차량들에 는 “태안 주민 여러분, 힘내십시오. 한국 교회가 여러분과 함께 합니다”라 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종교가 제법 많다. 그러나 불교, 유 교, 로마천주교 등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때만 그랬는지는 모르지 만 말이다. 어쨌든 한국 교회가 앞장서서 힘껏 참여한 일이라든가 어떤 교단 이나 개 교회를 내세우려고 하지 않은 것이 마음에 든다. 필자는 그동안 개인적으로 우리 국민들이 한국 교회에 대해 가지고 있는 부 정적 인식을 지우고 호감을 갖게 하는 일이 매우 절실하게 요청되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렇지만 그 일은 그냥 저절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 다 교회가 사회봉사의 책임을 다해야 하고 크리스천 각 사람의 언행이 일치 해야만 가능하다. 그래야 기독교에 대한 불신을 해소할 수 있다. 사회봉사에 적극 참여해야 r 특별히 섬김의 공동체로서 교회의 책임은 우리 자신들에게 선택권이 있는 것 이 아니다. 우리는 말씀을 귀로 듣고 지식으로 아는 데는 익숙했으나 실천하 는 신앙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처럼 교회의 사회봉사 책임에 소홀함으로 써 그것이 교회에 대한 실망으로 이어지게 만들었다. 그동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에서의 신앙생활만을 신앙의 전부로 착각 할 정도였다. 배우고 익힌 말씀을 삶의 현장에서 잘 적용하지 못했었다. 그 러나 우리가 언제까지나 그러고만 있을 수는 없다. 이제는 한국 교회에 대 한 비판과 실망을 교회 스스로가 나서서 불식시키고 교회의 아름다운 모습 을 보여줘야 할 때이다.
249 no image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에게 바란다_나택권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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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66 2007-12-26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에게 바란다 나택권 장로_호산나교회 지난 2002년 12월 대선 이후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이래 5년이 지난 지금 정 치는 여전히 혼란스럽고 한반도 안보 역시 북한문제로 안개 속이다. 또한 많 은 젊은이들은 직장이 없어 애를 태우고 있고, 빈부격차가 확대되었으며, 서 민들은 살기가 더 어려워졌고, 일부 공직자들의 부정부패는 심각한 상황이 다. 서민들의 고난 돌아봐야 대체로 국가적인 고난이 오면 늘 가난한 사람이 더 큰 고통을 겪게 되어 있 다. 성경에 보면 예루살렘이 함락된 후 남은 백성들은 먹고살기 위해 소유물 을 저당잡히고 심지어 자녀들을 종으로 팔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졌을 때 가진 자들이 그것을 이용하여 높은 이자를 받고 그들의 자녀들을 다른 사람 들에게 종으로 팔아넘기기까지 하였다. 이러한 시대에 나타난 유다 총독 느헤미야는 사리사욕을 버리고 자기 희생 을 하면서 백성을 위해 향한 일을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은혜 베풀어주시기 를 기도했다. 느헤미야는 총독으로 재직하면서 봉급을 받지 않았으며 땅을 사서 그 차익금을 노리는 부동산 투기를 하지 않았고 백성들을 대접하되 공 적 자금을 사용하지 않고 자비(自費)로서 그 식대를 감당했다고 한다. 느헤미야가 이와 같은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보시 며 계산하고 있음을 믿었기 때문이고 약한 자들을 돕는 것은 하나님께 꾸이 는 것이며 하나님은 반드시 갚아주시는 분이심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느 5:15). 이제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에게 부탁하는 몇 마디의 글을 드린다. 먼저 선거공약에서 약속한 원칙과 소신의 리더십, 실천하는 경제대통령, 희 생과 봉사의 리더십, 안전과 신뢰의 지도자, 국민 모두가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성공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공약을 반드시 지키기를 바란다. 그리 고 당선이 확실시되었을 때 국민과 기자들 앞에서 말한 대로 매우 낮은 자세 로 국민을 섬기기 바라며, 분열된 사회를 통합하고 경제를 살리는 일과 국가 를 위해 최선을 다해 주기를 부탁한다. 느헤미야와 같이 사리사욕을 버리고 백성의 모범이 되어 열심히 일하고 공 적 자금과 예산을 최대한 절약하여서 백성들에게 짐을 지우지 말고 힘든 일 들을 가볍게 해 주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도덕성 면에서 여타후보자들 중 제일 낮은 평 가를 받았다. 교회장로로서 무엇보다도 장로의 신령한 직분을 망각하지 말 고 나라와 백성을 위해 주야로 기도하며 말씀 묵상과 실천에 많은 시간을 가 져야 하며 자신의 주변을 깨끗하게 잘 관리하는 등 성도로서의 본분을 다하 기를 바란다. 느헤미야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하여 백성들에게 정규적인 육체노동 을 금했고(느 13:15) 또한 레위사람들을 정결케 하여 성문을 지키게 함으로 써 안식일에 사적인 목적을 위해 활동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그 결과 안식일 이 오직 하나님만으로 기뻐하고 예배하는 거룩한 날이 되게 하였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히 지켜야할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듯이 주일에 치러지는 각종 시험, 각종 행사 등을 행하지 못하도록 이를 제도적으로 통제하여 금하고 오직 하나님만으로 기뻐하고 예배하는 거 룩한 주일이 될 수 있도록 지혜롭게 대처해야 한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는 성도들에게는 사단의 방해와 같은 반대가 필수적으로 따르게 마련이다. 기도와 기다림은 같은 길을 간다 고 했다. 이제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늘 해 왔듯이 하나님께 무릎으로 기 도하고 하나님의 뜻과 역사하심을 기다리는 장로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 무릎꿇고 하나님께 기도하길 항상 기도하고 성령 충만함을 받는 것만이 국민을 잘 섬기고 국민에게 희망을 주겠다 는 초심을 지킬 수 있는 길이다. 약속한 일들은 반드시 성공적으로 지킴으로써 역사에 남는 훌륭한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
248 no image 상한 마음으로 통회하는 이들을 위한 성탄절_김용봉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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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11 2007-12-20
상한 마음으로 통회하는 이들을 위한 성탄절 김용봉 목사_신석교회 2007년은 한국 개신교가 큰 어려움을 겪은 한 해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단기 선교팀의 아프칸 피랍 사건으로 인터넷에서 반기독교 정서가 소용돌이 쳤던 기억이 너무 컸고 충격적이었다. 이렇게까지 거친 언어로 비난한다는 것은 예상 못한 일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어려움 많은 한 해 지나 그래도 사회에 대한 긍정적인 기여가 많았다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긍정적인 평가를 내심 바란 때문이 아닌지 모르겠다. 사실 사건 그 자체 때문만이 아 니다. 그동안 교회의 행태를 보며 가졌던 모든 부정적인 인식들이 그 사건 을 표적 삼아 표출된 것이라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교회를 향한 부정적인 인식은 비단 불신자들에게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26 년 전 교회의 개혁을 외치며 교단 분열을 경험할 때, 이미 우리는 교회가 세 상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며 도리어 버려져 발에 밟히는 소금이 되 고 있음을 탄식하였다. 이런 생각이 바른 교회, 바른 생활을 갈망했던 이유 이다. 그리고 그 해결책으로 바른 신학을 목표로 삼았던 것이다. 26년이 지난 지금 많이 달라지고 좋아진 것은 아닐까 긍정하고 싶은 심정이 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번 입증한 것이 우리가 지금 겪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너무 쉽게 만족하고, 분명한 결과를 바라보 고 충분히 증명하기까지 끝까지 인내하며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는 것 같아 안타깝다. 지금 우리는 시대적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 지 자문해야 한다. 여전히 초심으로 돌아가서 한국교회를 위한 개혁의 짐을 지고 계속 나아가야 할 것이다. 1907년 한국교회의 부흥의 역사를 사모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00주년을 맞아 “다시 한번 부흥을 주소서” 더욱 절실히 외치게 된 한 해이기도 하였 다. 정말 소망한다. 회개와 삶의 변화를 이룬 참된 부흥을 주시기를, 그래 서 다시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여 세상 사람이 우리의 착 한 행실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러한 갈망으로 통회하는 마음, 가난한 심정이 된 우리에게, 2007년 성탄절 은 얼마나 큰 위로와 소망과 감사가 되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허물 많고 죄 많은 우리를 심판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께서 탄생하신 날, 지금도 우리 를 크게 용서하시고 새롭게 하여 주시기를 소원하면서 긍휼을 구하는 마음이 다. 찢기고 상한 한국교회를 치료해 주시고 회복하시는 은총의 시간이 되게 하시기를 간구한다. 비록 세상은 비난하지만 그리고 우리 또한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하나님께서 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회복하시리라 믿는다. 그래서 그 크신 긍휼의 사 랑을 힘입어 비난하고 있는 세상에 대하여 겸손과 사랑으로 응답하여, 다시 빛이 되기를 바란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겸손과 사랑으로 응답해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 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1:15).
247 no image 교육에 대한 교단적 대책 시급하다_손종국 목사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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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01 2007-12-13
손종국_목사, 청소년교육선교회 대표 교육에 대한 교단적 대책 시급하다 기독교교육현장이란 ‘기독교교육이 일어나는 자리’를 의미한다. 기독교교 육이 일어나는 자리란 ‘구원이 일어나고 경험되는 자리’를 뜻한다. 그것 은 단순히 어떤 내용이 교사에 의해 학생들에게 전달되고 또 수용되는 물리 적 공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내용이 전달되고 수용되는 과정 속에 서 발생하는 구원의 사건을 의미한다. 기독교교육 정의부터 정비해야 기독교교육현장이란 단순히 공간적 의미로 축소될 수 없는 그 이상의 의미 를 함축하고 있다. 스튜워드(David S. Steward)는 3가지 기독교교육현장을 이야기한다. 첫째는 물리적 공간이다. 도시, 건물, 교실, 가정 등으로 설명되는 공간적 자리이다. 이것이 기독교교육을 구성하는 일차적 자리라는 것이다. 바로 이 공간적 자리를 통해 기독교교육이 발생한다. 두 번째 차원은 심리적 자리이다. 인간과 인간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생겨나는 관 계의 자리이며, 동시에 영적인 사귐이 일어나는 코이노니 아(koinonia)의 자리이다. 이 자리는 교사와 학생 사이의 인격적인 관계를 포함하여, 인간과 인간 사이의 수평적 관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관계의 자리 이다. 이런 점에서 이 자리는 심리적 현장이요, 사회적인 자리이다. 그런데 이상의 두 가지 자리에 대한 이해에만 머물 경우 기독교교육의 정체 성이 상실된다. 제3의 자리는 ‘영적인 자리’로서, ‘우리가 살아 움직이 고 존재의 근거가 되는 하나님의 사랑’이 존재하는 자리이다. 바로 이상의 세 가지 자리가 하나로 통전화 될 때, 그것은 기독교교육이 일어나는 신비 의 장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사이 교회학교의 현장은 어떠한가? 예배시간에 지각하는 학생들, 설교시간에 옆 사람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혼자인 듯 행동을 하면서 때로는 휴대폰으로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 학생들, 그러나 정작 공과시간에 는 생각하기도 싫어하고 묻는 말에 대답도 하지 않은 학생들. 나아가 교회당 을 나서면 전혀 기독학생 답지 않은 학생들. 예전과는 달리 각자의 삶이 바쁘고 할 일이 많아서 학생들을 전심으로 돌볼 수 없고 공 과시간에는 준비된 말씀보다는 삶을 나눈다는 말로 대신하는 교사 들. 학생들에게 말씀을 전한다고 하면서 본문에만 천착하여 삶의 자리와 성 경의 교훈의 다리를 놓는 일에 실패하는 설교자들. 여기에는 기독교교육이 없다. 이제 한 개인, 한 교회만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총체적인 문제 앞에 놓 여 있다. 최근 10여 년 동안 타교단에서는 교육국을 중심으로 교육학을 전공 한 목사들로 연구하는 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런 결과로 교단내의 교 회교육에 대한 현실진단과 함께 “교육백서”가 발간되고 교단 공과가 날로 새로워지며 지도자교육에 대한 프로그램이 다양해지고 있다. 우리도 서둘러 서 다음 세대의 신앙 대잇기를 위해 전문적 기구를 만들어 다양한 연구를 실 시하고 합신에서는 세대별 교육을 위한 전문과목을 실시해야 한다. 한국교회 선교 1세대는 고난 가운데서도 신앙의 바톤을 그 다음 세대에게 잘 넘겨주었다. 그래서 오늘 우리들도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게 된 것이 다. 그런데 불과 몇 세대가 되지 않았는데, 그 다음으로의 신앙의 대잇기가 불안하다. 한국교회가 다음 세대에도 저절로 오늘의 한국교회의 모습 으로 유 지되는 것이 아니다. 다음 세대를 위한 대책 마련해야 자녀의 신앙교육에 대한 깊은 관심과 헌신 없이는 우리도 텅빈 서구교회의 전철을 밟게 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세계선교에 힘써야 하지만 ‘자녀선 교’ 없는 세계선교는 가능하지 않음을 기억해야 한다.
246 no image 미래의 성실한 교회로 거듭나자_박형용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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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42 2007-12-05
박형용_교수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미래의 성실한 교회로 거듭나자 산타야나(George Santayana)는 “역사를 통해 배우지 않은 사람은 잘못을 재 연하게 된다”는 금언을 남겼다. 그렇다. 우리는 과거의 역사를 통해 교훈 을 배워야 할 뿐만 아니라 역사의 흐름 속에 인간의 타성과 습성이 어떻게 변하고 발전하는지를 관찰함으로써 앞으로의 역사 발전에 대비하는 지혜도 가져야 한다. 지난 역사 통해 교훈 배워야 지난 한국 장로교회는 20-30년이라는 주기로 큰 소용돌이 속에 빠졌었다. 1953년 예수교장로회와 기독교장로회가 김재준 목사의 자유주의적인 신학 입 장을 추종하는 사람들과 박형룡 목사의 신학을 지지하는 보수주의 그룹이 분 열하게 되었다. 그 후 1959년 대한 예수교 장로회가 통합측과 합동측으로 분열했다. 통합측 과 합동측의 분열은 W.C.C.(World Council of Churches)와 연관된 신학적인 문제가 전면에 대두되었으나 그 이외에도 다른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 여 분열하기에 이르렀 다. 그리고 합동측과 통합측이 분열 된지 20년이 지난 1979년에 합동측이 주류 와 비주류로 분열되고 그 와중에 1980년에 합동신학교와 합신교단이 설립되 었다. 이렇게 지난 한국교회의 분열을 언급하는 것은 과거의 상처를 되씹고 자 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난 역사의 교훈을 통해 현재와 미래를 잘 준비하자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지난 한국교회의 역사를 일별해 보면 20-30년이라는 주기를 주목하게 한다. 20-30년이란 주기는 한 인간의 생애에서뿐만 아니라 한 단체의 역사에서도 중요한 변화를 일으키는 기간이다. 한 개인이나 한 단체가 무엇을 시작한 후 첫 사랑과 첫 열정을 잊을 만한 기간이 20-30년의 기간이다. 합신과 합신 교단은 지금 설립 된지 27년 정도 지나가고 있다. 합신은 1980 년에 설립되었으니 27년을 지나가고 있고, 합신 교단은 1981년에 시작했으 니 26년의 세월을 보낸 것이다. 그동안 합신 교단은 장신 교단과 합동하여 큰 힘을 얻게 되었다. 다른 교단들은 합동한 후에도 다시 분열되고 분열되 지 않을지라도 내부적인 갈등이 계속되는 등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는 반 면 합신 교단은 약간의 지엽적 인 문제를 제외하고는 비교적 평화롭고 건강하 게 발전하고 있다. 26여 년 전에 합신과 합신교단은 바른신학, 바른교회, 바른생활의 기치를 들 고 시작했다. 합신 교단이 한국교회 내에서 현재의 위상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도 세 가지 모토를 실천해 보려고 노력한데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자아 성찰을 하면서 전진해야 한다. 바른 신학이란 모토는 우리가 바르다고 주장해서 되는 것이 아니요 다른 사 람들이 우리의 신학을 바르다고 인정해 주어야 성취되는 것이다. 바른 교회 란 모토는 우리가 바른 교회 한다고 주장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요 다른 사람들이 우리가 섬기는 교회가 바른 교회임이 틀림없다고 인정해 줄 때 성 취되는 것이다. 바른 생활이란 모토 역시 우리가 바른 생활한다고 주장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요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생활을 보고 바른 생활을 한 다고 인정할 때 성취되는 것이다. 현재 합신교단은 교단을 설립했던 제 1세대가 거의 다 떠났고 이제는 합신 초기 졸업생들이 앞장서서 교단의 일을 하는 형편이 되었다. 26여 년 전 성 경중심의 바른 신학, 그리스도가 주인이 되는 교회,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 시는 바른 생활을 실천하자는 세 가지 모토를 가지고 시작한 합신과 합신교 단은 이제 다시 한번 우리의 중심을 다잡고 전진해야 한다. 합신과 합신교단은 작은 학교요 작은 교단이지만 많은 장점들을 가지고 있 다. 합신교단은 그동안 쌓아 온 장점들을 살리고 단점들을 교정하면서 서로 서로 칭찬과 격려로 미래를 창조해 나가야한다. 부정적인 비평과 불만은 상 처를 아프게 하는 역할을 하지만 칭찬과 격려는 근육을 튼튼하게 하는 역할 을 한다. 칭찬과 격려로 튼튼해져야 성경 말씀은 “시간을 사라 때가 악하니라”(엡 5:16)고 명령하신다. 26년 전이나 지금이나 때의 악함은 비슷하다. 우리는 지난 26-27년의 세월을 되돌 아보며 앞으로의 시간을 사기 위해 서로 칭찬하고 격려하면서 전진하도록 하 자.
245 no image 스트레스는 내가 해결해야 할 사항 아니다_김수흥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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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56 2007-11-21
김수흥_합신 교환교수 스트레스는 내가 해결해야 할 사항 아니다 스트레스(stress)란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적응하기 어려운 환경에 처 할 때 느끼는 심리적, 신체적 긴장 상태’라고 정의하고 있다. 국립국어연구 원에서 만든 ‘표준국어 대사전’에는 ‘긴장, 불안, 짜증’으로 풀어놓았 다. 캐나다(Canada)의 내분비학자 H. 셀리에는 스트레스란 ‘생체(生體)에 가해지는 여러 상해(傷害) 및 자극에 대하여 체내(體內)에서 일어나는 비 특 이적인 생물 반응’이라고 정의한다. 최근 미국인들의 48%가 스트레스로 인해 밤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있 다고 보고되었다. 이 같은 조사 결과는 미국 심리학회(APA)가 미국 전역에 흩어져있는 1,848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라고 한다. 이 조사는 미 국인들은 과거 5년 전보다 더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며 그 결과 밤에 잠을 이 루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는 원인은 75%가 돈과 일에 관련된 것으로 지적 되 었다. 그들은 집 렌트(rent)나 주택 모기지(mortgage)와 관련해서 스트레 스가 많다고 응답했다. 그들은 스트레스로 인해 배우자와 다투고 혹은 이혼 으로 들어가며 또 75%의 사람은 건강이 악화되는 경험을 털어놓았다는 것이 다. 우리나라의 경우 20대들도 요즈음 견디기 어려운 스트레스를 경험한다는 것 이다. 직장 없이 백수로 지낸다는 것은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고 털어놓는 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IMF이후 평생직장이 사라지고 말았다고 한다. 언 제 갑자기 해고될지 모르는 불안한 삶을 살고 있으며 직장 스트레스와 고용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튼 요즈음 가족은 ‘쿨한 관계’로 변했고 불안한 사회에서 믿을 것은 돈뿐이라는 공식이 나왔다는 것이다. 이런 시점에서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위해 각가지 방법을 제시하 고 있다.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위해 ①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를 노력해야하며 ② 독서나 운동, 등산으로 스트레스를 풀어야 하고 ③ 인스 턴트식품을 피하며 패스트푸드 음식을 피하고 ④ 신선한 과일과 생선 녹황색 야채와 식이섬유가 많이 들어있는 음식을 자주 먹어야 한다는 것 이다. 그러 나 이런 치유법으로 얼마나 큰 덩이의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이제 스트레스는 내가 해결해야 할 사항이 아니라는 것을 배워야 한 다. 잠시만 아니라 한 생애 동안 절대로 스트레스는 내가 해결해야 하는 것 이 아니라는 것을 배워야 한다. 우리의 스트레스는 모두 예수님의 것임을 알 아야 한다. 예수님께서 그것을 맡으시기를 원하고 계신다고 성경은 말씀한 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에 그리스도로부터 평안함이 임할 때까지 모두를 그리스 도께 맡겨야 한다. 기도해도 아직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지 않았다면 아직도 내가 염려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긴 시간이라도 좋다. 마음에 그리스도께 서 평안을 주실 때까지 기도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는 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의 염려거리를 다 맡으셨다는 증거이다. 그러니 까 예수님은 우리의 근심, 염려거리를 맡으시고 대신 우리에게 평안을 주신 다. 다시 말해 맞바꾸신다는 말이다. 시골 엿장수들은 양은냄비 깨진 것, 숟 가락 부러진 것, 삼베걸레 떨어진 것, 고무신짝 찢어진 것을 사람들로부터 받고, 대신 가위로 엿을 잘라준다. 예수님은 우리의 우중충한 것들을 가져가 시고 평안과 기쁨을 선물로 주신다. 앞으로 아무리 험한 세월이 닥치고 불안한 세월이 닥쳐도 우리는 스트레스 가 생기는 즉시 예수 그리스도에게 드려야 한다. 그리고 대신 그리스도로부 터 기쁨을 받아야 한다. 우리는 내가 무엇을 걱정하는 교만한 처신을 하지 않아야 하고 염려 대신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안과 기쁨의 삶을 살아야 한 다.
244 no image 우리는 부흥을 원하는 만큼 회개를 원하는가?_김기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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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40 2007-11-14
김기영_화성교회 목사 우리는 부흥을 원하는 만큼 회개를 원하는가? 교회마다 교역자마다 부흥을 원하는 마음은 간절하다. 그만큼 회개하는 마음 은 간절한가?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한다.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마음이 간절 한 만큼 자신이 변화되기를 그렇게 원하는가? ‘나는 더 이상 변화할 수 없 어’ 라고 생각하면서 여전히 세상이 변화하기를 기다리고 또 외치지는 않는 가? 1907년 부흥을 다시금 되새기는 마음이 간절한 것은 그만큼 부흥이 잘 되지 않을 뿐 아니라 회개하는 것도 미흡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회개 없는 부흥 있을 수 없어 사실 1907년 일어난 부흥에서 그때 성도들은 오늘날 생각하는 그러한 부흥 을 위하여 기도한 것 같지는 않다. 그 보다도 하나님 뜻을 거스르는 모든 죄 를 하나하나 회개하는 그러한 회개운동이었다. 운동이라고 하니 누가 일으켰 다고 생각하면서 그 어떤 한 두 사람에게 돌리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나도 부흥운동의 주동자가 되려는 공명심도 작용한다. 1907년 부흥은 누가 먼저 시작하였다고는 할 수 있을 것이나 그렇다고 그 어떤 사람에게 그 모든 것 을 돌리기는 무리다. 또 어떤 조직을 가지고 일으킨 그러한 것은 아닌 것 같 다. 그러므로 어느 한 사람의 경건함으로 시작되었다고 하기보다는 그 시대 교회 의 영적 분위기가 회개의 분위기가 아니었는가 생각한다. 물론 그러한 회개 를 앞장서 누구보다 철저히 하는 그러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렇다고 한 사람 이 회개했다고 다른 사람도 항상 따라 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역시 회개 운동은 사람이 한 것이지만 사람이 일으킨 것은 아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회개 운동과 부흥을 위한 조직이 결성되고 또 흐지부지 사라지는가? ○○뉴 스파크 운동, ○○영성운동 등 이름도 매우 듣기 좋은 그러한 운동이지만 실제 회개는 미흡하다. 삶의 변화도 미미하다. 지난번 정암신학 강좌에서 지적된 것 같이 부흥이란 구약시대 이미 있었고 하나님은 그 시대에 복을 주셔서 이스라엘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셨다. 야곱 의 회개와 부흥으로부터 제사장 비느하스, 사사기 시대의 사사들을 통하여 타락한 시대의 부흥, 왕정시대 나 타난 여호사밧, 히스기야 그리고 요시야왕 같은 시대의 부흥 등등. 그 시대 외치는 선지자들의 소리를 들은 왕들은 마음이 뜨거워지면서 회개하 였고 그 회개는 온 나라에 전파되었다. 특히 왕이나 제사장 같은 지도자들 의 회개는 온 나라에 영향을 미쳤다. 선지자들은 그 시대 하나님의 심판을 외쳤지만 대부분 왕들은 경시하거나 무시하고 핍박하였다. 결국 선지자의 말 은 땅에 떨어지지 않고 무서운 바벨론 침략과 포로로 이어지면서 그들은 눈 물로 70년을 보내면서 바벨론 강가에서 울었다. 우리는 부흥을 원하지만 하나님은 회개를 먼저 원하신다. 우리는 형통을 원 하지만 하나님은 고치기를 먼저 원하신다. 하나님 백성의 모습이 보이지 않 는데 하나님이 어떠한 복을 주시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회 개하지 않으면서도 부흥이 되기를 원한다면 이는 매우 그릇된 생각이다. 일 시적으로 부흥이 될지 모르는 그러한 부흥은 쉽게 꺼져버리는 거품에 불과하 다. 이 시대 회개할 것이 무엇인가? 내가 회개할 것은 무엇인가? 높아지는 데는 마음이 앞서지만 낮아지는 데는 쉽게 시험이 든다. 초신자 때는 오히 려 순수하다가 오 래되고 직분이 더 중요한 직분일수록 이러한 현상은 더해진 다. 왜 그렇게 조직은 많은가? 왜 그렇게 회(會)는 많은가? 부흥을 위한 조직도 참으로 많고, 영성운동의 조직도 참 많다. 개인적으로 하는 것 보다 단체로 하는 것은 좋으나 문제는 하나님 보시기에 진정한 회개와 경건한 삶이 보이 는가에 달여있다. 세상 사람들은 구원의 도리는 모르지만 나타난 삶을 볼 줄 은 안다. 그들 앞에 보이는 삶이 ‘아니올시다’이라면 어떤 운동이 제대로 되겠는가? 칼로 쪼개듯이 하나님 말씀으로 책망해 주기를 바라면서 막상 그러한 설교 를 듣거나 권면을 들으면 마음이 몹시 상하여 뒤틀리게 되는 것이 오늘날 사 람들의 마음이다. 심령의 만족을 원하면서 회개하여 경성하기를 원치 않는다 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실까? 하나님이 은혜주시지 않는데 사람이 어떻게 사람을 영적으로 만족시킬 수 있을까? ‘○○심령부흥회’라는 이름이 60-70년대를 휩쓸었다면 지금은 ‘○○축복 대성회’, ‘○○ 컨퍼런스’가 판을 친다. 컨퍼런스란 말은 ‘집회, 연합회 의’ 등의 의미일 뿐이다. 집회라고 하면 촌스럽고 컨퍼런스 하면 신령해 보 이는 것 도 겉멋에 물든 우리들의 심령이 아닌가 싶다. 회개와 부흥은 그러 한 영적 환경이 이루어지는 때 일어나는 것으로 생각된다. TV 앞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기도가 나오지 않는 것처럼 그래도 교회 나가 앉아 있으면 세상 생각이 사라지고 마음이 맑아지는 것이다. 우선 모이고 모 여서 다른 것보다 말씀을 듣고, 진심으로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고, 나를 바 라보고 회개하려고 애쓴다면 조금이라도 어떤 변화가 있지 않을까? 먼저 교회에서 말씀부터 들어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하여 모이고 기도하고 말씀을 연구하고 듣 고 전하고 회개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힘을 다해도 “이것뿐입니다, 불쌍 히 여겨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주시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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