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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3 no image 1 : 400_홍문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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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64 2007-11-07
시론 1 : 400 홍문균 목사_주은혜교회 “우리에게 자랑할 것 하나도 없어” 사사 기드온 시대 때 이스라엘과 미디안 사이에 물러설 수 없는 큰 전쟁이 있었습니다(삿 7-8장). 이때 이스라엘 군은 3만 2천, 미디안 군은 13만 5천 이었습니다.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 군사력의 비율로는 1:4였습니다. 처음부터 중과부족 이스라엘이 군사력의 열세로 불안해하며 걱정을 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사 사 기드온에게 전혀 예상 밖의 명령을 하셨습니다. “두려워 떠는 자들은 다 돌려보내라.” 이때 돌아간 사람들이 2만 2천. 남은자는 1만. 이제 적과의 군사력의 비율 은 1:13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어안이 벙벙할 즈음,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하나님의 명 령이 다시 내려졌습니다. 하나님은 “아직도 많다”며 “물가로 가서 손으 로 움켜 입에 대고 물을 핥아먹는 자만 남겨라”고 말씀했습니다. 이때 남은 자들은 300명. 돌아간 자들은 9,700명. 비율은 1:400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 는 기드온이나 최후적으로 남은 300명의 이스라엘 군 사들.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요. 아마도 모두가 할 말을 잊었는지도 모릅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처사에 절망하며, 주저앉아 땅 을 치는 자들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이젠 우린 다 죽었다! 아니 세상 에... 이럴 수가...” 왜일까요? 하나님께 분명한 이유가 있으셨습니다. ‘1:400의 군사력이면 이 전쟁은 이미 끝났다. 이스라엘이 날고뛰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이스라엘 너 희 자신으로는 결코 이길 수 없는 전쟁이다’. ‘만약에 군사력이 1:400임에 도 이스라엘이 이겼다면 승리의 원인은 오직 하나, 하나님께 있다!’를 깨닫 게 하심에 있었습니다. 혹시 1:4 나 1:13 정도의 군사력의 비율로 전투에서 승리했을 경우, 하나님 이 도와 주셨다 해도 “하나님께서 승리케 하셨다!”보다는 “우리가 잘 싸 워서 이겼다!”할 공산이 큽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결코 그들 자 신을 내세우지 못하도록 원래 병력의 99%를 돌려보내시고 1%만 의도적으로 남기신 것입니다. 결국 이 전쟁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도우심으로 이스라엘 이 파격적인 대승을 하였습니다. 하 나님 만세!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좇은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 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붙이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 긍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삿 7:2). 불가능을 가능케 하셔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99% 불가능한 최악의 순간에도 나머지 1%로 100% 를 창출하시는 전능하신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 우리 입에서 “우리 (내)가 했어요!”란 말 지워 주시옵소서!
242 no image 섬김과 봉사, 그리고 다스림_구자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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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23 2007-10-31
시론 섬김과 봉사, 그리고 다스림 구자신 목사_부회록서기, 한뜻교회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다스림이 있다. 먼저는 섬김과 봉사적 다스림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 그렇게 하신 이유는 하 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을 섬김과 봉사로 다스리게 하기 위함이었다(창 1:26, 28). 하나님은 섬김과 봉사로 다스리셔 그러나 죄가 세상에 들어오면서 다른 종류의 다스림이 들어왔다. 서로를 억 압하면서 경쟁하고 서로의 우위에 군림하고자하는 살벌한 다스림이 시작된 것이다(창3:16). 그래서 히브리 성경은 이 두 종류의 다스림을 다른 단어로 표기하고 있다. 놀라운 것은 어떤 다스림이냐에 따라서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가 극명하게 구분된다는 점이다. 작금의 정치 현실을 어깨너머로 바라본다. 이미 확정된 대선 후보들은 저마 다 경쟁하며, 상대방을 헐뜯으면서까지 자기가 적임자라는 말을 서슴지 않는 다. 지금까지 출마를 결정한 후보가 몇 명이나 되는지는 정확히 헤아려보지 는 않았다. 하지만 결코 적지 않은 숫자일 것이다. 앞으로도 출마할 후보들 이 더 생길 것이 분명하다. 하기야 누가 말릴 수 있겠는가? 대한민국 헌법상으로는 40세 이상에 피선거권이 있고, 5억 원의 기탁금을 낼 수 있다면 누구나 출마가 가능하니 말이다. 득표율이 15%이상이면 기탁 금 전액을 돌려주고, 10-15% 득표하면 반액을 돌려준다. 그리고 10%미만이 면 국가가 다 가져간다. 그런데 줄기차게 무소속으로라도 출마해서 기탁금 전체를 국가에 헌납하는 분들이 있다. 그러더라도 멈추지 않는다. 어쩔 도리 가 없을 것이다. 질문을 던져 본다. 저들은 어떤 목적일까? 어떤 종류의 다스림을 하고자하 는 것인가? 저마다 자기 밖에는 대안이 없다고 하니 어쩌자는 것일까? 무거 운 마음으로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면서도, 그들에게 많은 기대를 걸 수는 없 을 것이 분명하다. 많이 양보해서 그들은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씁쓸함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저들은 그렇다하더라도 하나님 나라를 구현하고자하는 목회 현장에서 조차, 어쩌면 나 스스로가 이런 싸움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 는 슬픈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섬김의 다스림보다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가 군림하는 형태의 다스림에서 생겨날 수 있는 지저분한 감정들과 싸워야하 는 나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우리 교단의 어른 목사님들께서는 후배들이나 젊은 목회자들에게 결코 억압 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으셨다. 오히려 겸손히 섬겨 주시고 사랑으로 대해주 시는 모습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때로는 먼 곳까지 오셔서 힘들어하는 후 배들을 격려해주시는 어른들이 계시다. 이런 아름다움이 우리 안에 있다. 우 리 교단의 선배님들은 후배를 결코 강제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선배님이 후 배님을 존경하신단다. 그러면 후배는 더 고개를 들 수 없게 된다. 우리 교단 에 아직도 남아있는 행복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태초에 하나님께서는 진흙 한 덩어리를 섬겨 주셨다. 그랬더니 그 진흙이 하 나님의 형상을 가진 아담이 되었다. 아담의 자기 몸의 일부를 내놓는 섬김 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그의 갈빗대로 여자가 되게 하셨다. 세상 시작부터 가 섬김과 봉사적 다스림 가운데서 시작되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놀라운 전율이 느껴질 정도이다. 죄인들을 자기 피로 섬겨 주시니 죄인이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주님을 위해 살고 죽는 자들이 된 것이다. 이처럼 섬김과 봉사적 다스림이 생명을 만들고 우리를 따뜻하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섬김을 두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세상은, 다투고 경쟁 하고 서로 높아지는 것을 추구하지만,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막 10:43).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의 차이를 분명하게 말씀하신 것이다. 한 가지 간절한 기대와 소망이 생긴다. 모든 교회가 이런 섬김과 봉사적 다 스림의 가치를 아는, 진정한 주님의 몸이 되기를 원한다. 머리되시는 그리스 도께서 몸 된 교회를 섬김으로 다스리시는 것처럼, 교회와 노회와 총회도 섬 김으로 다스려지는 거룩한 공동체이기를 원한다. 섬김과 봉사로 다스리는 대통령 기대해 우리나라에도 진정한 섬김과 봉사적 다스림을 아는 대통령이 한번쯤 나오면 좋겠다. 날마다 기도 제목을 삼고 싶다. 하나님 겸손히, 섬김으로 다스릴 줄 아는 은혜를 주옵소서.
241 no image 실적 보이지 않아도 꼭 필요한 위원회_이선웅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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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0 2007-10-24
실적 보이지 않아도 꼭 필요한 위원회 이선웅 목사_부총회장,남문교회 실적이 보이지 않아도 꼭 필요한 총회 특별위원회가 있다. 그 가운데 하나 가 남북 교회 협력위원회이다. 지난 92회 총회 때 한 총대께서 총회 석상에 서 지나가는 말처럼 한마디하시면서 “남북 교회 협력 위원회 같은 위원회 는 왜 그대로 놔두는지 모르겠어요. 없앨 건 없애고 좀 정리가 되었으면 좋 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총회기구 정리의 필요성 나는 그 말을 듣고 그냥 흘려버릴 수가 없었다. 물론 그 자리에서는 아무 말 도 않고 지나갔지만 두고두고 그 말이 여운에 남는다. 그분의 말에 내가 민 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내가 그 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데다 지금도 그 위 원회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후 나는 그분이 그때 왜 그런 말을 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아마 도 이름뿐인 위원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는 일 없이 돈이나 축내 고 있거나 아니면 적당히 놀러나 다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에 그런 말을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크게 하는 일도 없고 두드러진 실적이 없는 것도 어느 정도 사실이다. 그러나 꼭 그렇게만 생각할 일은 아니다. 아시다시피 남북 교회 협력 사업에 는 한계가 있다. 현실적으로 제약이 많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사업 실적을 내보이기란 쉽지 않다. 특별히 남북 교회 협력 위원회가 해야 될 가장 중요한 사업은 통일 후를 대 비하는 일이다. 통일 후 북한의 무너진 교회를 재건하는 일이다. 따라서 한 국교회, 특별히 우리 총회가 이 일에 관심을 갖고 기도하고 준비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이 일을 남북 교회 협력위원회에서 하지 않으면 어디서 하겠 는가? 훗날 통일 후를 바라볼 때 우리 총회 안에 그런 위원회가 있다는 사 실 자체가 매우 중요하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남북 교회 협력위원회가 팔짱이나 끼고 있으면서 지금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껏 위원회가 할 수 있는 일을 계속 해오고 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 교회 협력위원회는 그 사업을 공개적으로 총회 에 보고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다. 또한 남북 교회 협력위원회는 아름다운 전통도 가 지고 있다. 현재 다섯 손가 락으로 꼽을 수 있는 몇몇 교회의 후원을 제외하고는 모든 경비를 위원들이 속한 교회에서 자발적으로 후원하여 사업을 해오고 있다. 그런가 하면 모임 때 일체 여비 지출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위원들이 돌아가면서 식사 대접 을 해오고 있다. 총회 때 남북 교회 협력위원회의 불필요성을 언급한 분 외에도 같은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또 있을 것 같아서 한두 가지만 더 밝혀두고자 한다. 현재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안에는 북한 교회 재건을 위한 상설기구가 설치되 어 있을 뿐 아니라 통일 선교대학원도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각 교단에서 는 각 교단 나름대로 무너진 북한 교회 재건과 남북 교회 협력 사업에 열심 을 내고 있다. 북한교회재건 관심가져야 그들에 비하면 우리의 활동은 매우 미미한 실정이다. 아마도 총회 때의 한 총대의 발언은 우리가 일을 너무 못한 데 대한 책망일 것이다. 이점 충분히 수용하면서 향후 남북 교회 협력 위원회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기를 재삼 부 탁드리는 바이다.
240 no image 해 아래 새 것은 없건만_이종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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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64 2007-10-17
해 아래 새 것은 없건만 이종연 목사_진명교회 이미 지난 것을 두 번 다시 생각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누구에게나 있다. 그 러나 값어치있는 것일수록 돌아보게 되고 시간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두고두 고 많은 이들에게 좋은 길잡이 구실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이런 성격 을 지닐수록, 참과 보람된 것일수록 사람들은 외면한다. 참됨과 보람 외면하는 시대 일회용에 길들여진 말초적 시대이기에 복잡하다고 느끼거나 시간을 들여 생 각해야 하는 것에 그만 물러서고 만다. 참 해괴한 풍조가 지구를 휩쓸고 있 다. 남녀노소 누구라도 이런 증세가 있다. 우리는 어떤가? 그러니 영상 음 악 매체가 인터넷을 중심으로 무한히 발전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람의 가치관과 본질에 대한 이해가 성경을 벗어나서 새롭게 용트림을 한 다. 온고이지신 같은 말은 보통 구닥다리가 아니다. 자의기 가려운 귓속을 긁어줄 소리를 찾아 헤매는 때이다. 여기에 교회가 앞장서 한 몫을 한다. 별 의 별 프로그램을 앞세워 이미 쇼 무대로 뒤바뀐 지 오래 지난 강단을 보면 세상 풍조에 밀려 떠다니는 몰골을 생각하게 된다. 신학공부만 해도 그렇다. 왠 가짜들이, 거짓 방법들이 진짜인양 둔갑하고 설 치는지 모르겠다. 분별 못하기는 이른바 교인도 마찬가지이다. 신학이 무엇 이고, 어떻게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며, 목사란 어떻게 세워지고 무엇을 강단 에서 가르치는 건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지만 누구 하나 알려고 하지도 않는 다. 해마다 달마다 새로운 방식을 교회에 도입하지만 목마름을 채울 길이 없다. 누구를 위한 몸부림인지도 모르면서 미친 웃음소리에 어둠 속으로 빠져 간 다. 왜 이리도 바쁘고 마음조차 분주해지는지 모른다. 성경을 배울 채비를 도무지 갖추지 못하도록 세상은 잡아 흔든다. 언제 이렇게도 배교현상이 나타난 적이 있을까 싶다. 삶의 방식과 원리가 근 본 뒤바뀐 증거이리라. 온통 수라장이다. 언론이 무법천지로 주름잡는다. 에 덴을 제압했던 사탄의 솜씨가 이제는 너무도 뚜렷하다. 말이 얼마나 빠르게 변하는가? 성경 조차도 이제는 몇 년 안돼서 새로 고쳐 출판한다고 야단이 다. 죄를 인식함과 회개가 없기에 개혁은 없고 역사의 안목도 막연해진다. 지난 날 발자취를 알려고 하지 않는다. 갈 데까지 간 모습이다. 그러면서 새 것 을 모든 분야에서 추구한다. 학교 공부 과정도 보면 장사 목적으로 왠 종류 가 그렇게도 생기는지 모르겠다. 돈들이 안 생긴다면 그런 짓들을 할까? 윗물이 이러니 아랫물들이 일상 생활 에서 보이는 모습은 똑같다. 세상을 모르고 자기를 모르고 마귀를 모르고 죄 를 모르니 이미 끝장난 상태이다. 좋은 것은 배우기 힘들지만 나쁨에 속한 것들은 어찌 그리 거머리 같은지 기어코라도 이루어낸다. 속으로 기고만장 한 모습이 널려 있다. 새 것만을 밝히면 바른 신앙고백도 사라진다. 현대신학이 무언가? 뿌리 기반 이 없는 데서 깝짝거림이다. 그런데 여기에 현대교회가 거의 넘어간다. 그만 큼 어두움이 막바지 발악을 하고 있다. 성경이 경고한 마지막 때 증세가 내 게는 없는지 안팎을 잘 둘러보자. 믿음의 뿌리와 핵심이 무언지 알아야 시대 의 표적을 구별한다. 신앙고백이야말로 파수꾼의 척도인데 여기에서 비롯하는 교회 관련 모든 것 을 분별한다. 새 것을 좋아하던 이의 대표 중에 솔로몬이 생각난다. 전도서 를 보면 얼마나 새 것 을 좋아하는지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생애를 보인다. 그 러나 결론은 무어라고 고백하는가? 옛 지계석을 함부로 옮기지 못한다. 진정 한 개혁신앙이라면 이런 가르침을 중시해야 한다. 옛 지계석 옮겨선 안 돼 시공을 초월하여 옛 것을 중시해야 새 것을 제대로 이루어내는 개혁자로 선 다. 구약과 신약도 하나이지 옛과 새로 적었다고 통일성이 없는 게 아니다. 늘 초심을 버리지 말라고 한다. 어느 사이 배불렀다고 자만 떠는 모습을 지 니지 않는지 돌아보자.
239 no image 하나되는 것이 어려운 일인가?_이주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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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8 2007-10-10
하나되는 것이 어려운 일인가? 이주형 목사_오정성화교회, 총회 서기 92회기 총회가 은혜가운데 잘 마치게 됨을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린 다. 외국에서 오신 사절단 몇 교계 기관에서 오신 분들이 총회를 지켜보시 고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시는 말씀을 들었다. 칭찬 쏟아진 제92회 총회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인데 그렇지 못한 교단들이 있기에 돋보이는 지 도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임원선거에서 정치성이 없고 금권선거니, 사전선 거운동이라는 말을 찾아볼 수 없는 순수함이 감사의 조건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좀 더 마음을 열고 진취적인 자세를 가 졌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법을 잘 지켜야 하는 것은 질서요,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것이라 생각한다. 법이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지, 사람이 법을 위 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면 융통성을 발휘했으면 하는 대목도 있었다. 2년 전 총회 25주년 기념대회를 성대하게 잘 마쳤고, 기억될만한 일 중의 하 나가 합신 총동문회와 합신내 웨신동문회가 하나 됨을 선포하고 목사 임직년 도에 맞춰 하나 되자는 선언이었다. 그 후 합신동문회는 더 전진하지 못하 고 오히려 몸살을 앓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떻게 인위적으로 하나 될 수 있는가? 라고 말들을 한다. 맞는 말일지도 모 른다. 그러나 그렇게 노력한 기수가 한 기수 밖에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웨신동문들이 은근히 마음이 상한다고 한다. 언제 우리가 합신 동문회에 들 어간다고 했나? 마치 들어가지 못해서 안달이 난 사람들인가? 라고 말한다. 동문들이 모이는 것은 보고 싶은 것이 첫째이고 좋은 교제를 나누고 싶은 것 이 그 이유가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합신과 연합한 웨신 동문들은 만나고 싶 지 않겠는가? 더구나 전 교단보다 함께 모일 수 있는 여건들이 훨씬 적은 상 황에서 말이다. 그래서 참다가 보고 싶어 교단 연합 후 처음으로 보고 싶어 모였다. 그리고 모임을 지속적으로 가졌으면 좋겠다 하여 ‘합신내 웨신동문회’가 발족하게 된 것이다. 그 후 많은 분들이 우려하시는 말씀들을 하셔서 더 이 상 모이지 못했다. 순수하고 보고싶어 웨신동문회가 모이면 우려하고 합신동 문회 가 모이면 괜찮은 것인가? 반문하고 싶다. 합신동문회가 순수한 친교 모임이라면 웨신동문회도 같은 모임이다. 합신동 문회에 임원으로 들어가 몇 번 이 문제로 장시간 토론한 적이 있다. 거기서 얻어진 다수의 여론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합신내 웨신동문회가 자연스럽게 만나게 두고 이상하게 생각지 않았으 면 좋겠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모든 기득권 포기하고 후학들을 잘 육성해서 길을 열어주는데 하나되자고 연합했는데 동문회 모인다고 달라지겠는가? 그 런 정도의 신뢰가 없었다면 이 일이 성사되었겠는가? 둘째, 아직 목회연구원에 참여하지 못한 분들 중 여건이 안 되어서 못한 분 들이 다수일진대 학교와 또는 노회 차원에서 특별케이스로 참여케 하여 모두 가 합신동문이 되어 함께 모이는 것이다. 누가 뭐래도 우리는 하나이다. 우리 모두 합신 동문되기를 하나된 것 힘써 지켜 나가는데 서로 마음을 열고 지혜를 모아 최선을 다해 보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238 no image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_박재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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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09 2007-10-04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박재훈 목사 작동교회, 목회자최저생활대책위원회 위원 휴대폰(핸드폰이란 말은 정확한 말이 아니므로 이하 휴대폰으로 표기하기로 하자)은 작지만 만만히 볼 수 없는 물건이다. 우리의 생활 양식을 그야말로 혁명적으로 바꾸어 놓은 물건이다. 사실 출현한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엄 청난 파급 속도로 우리의 삶에 파고 들어왔다. 이제는 한시라도 없어서는 아 니 될 생활의 필수품이요 문명의 이기라 하겠다. 손마다 들고 있는 휴대폰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좋은 점과 나쁜 점, 긍정적이고 밝은 면이 있는 가 하면 동시에 부정적이며 역기능적 그리고 어두운 그늘진 면도 있다. 휴대 폰도 예외는 아니다. 그 편리함과 좋은 점은 이루 말하기 어렵다. 그 성능 과 기능도 정말 다양하고 나날이 눈부시게 진화하여 그 작은 기계가 못하는 것이 없다고 할 정도가 되었다. 깊은 산 속에서 조난을 당하여 위험에 처했 을 때 사람을 구조하는 도구로 쓰이는 등 우리의 삶 속에서 얼마나 편 리하 고 유용한지 모른다. 필자가 못내 아쉬워하는 것이 있다. 바로 이 휴대폰의 등장으로 우리의 감 정 문화가 많이 변질되었다는 점이다. 1970년대, 아직 우리가 척박하고 핍절 한 삶을 이어가던 무렵, 신중현이 작곡하고 김추자라는 가수가 불러서 크게 히트했던 “커피 한 잔”이라는 노래가 있다. 그 가사는 이렇다.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그대 오기를 기다려도 웬일인지 오지를 않네, 내 속을 태우는구려. 8분이 지나고 9분이 오네, 1분만 지나면 나는 가요.” 오 늘날 같으면 이 노래가 통할 수 있을까? 절대 아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누구 오기를 기다리는 그런 호사스런 상태를 누릴 수 없게 되었다. 바로 휴대폰 때문이다. 섬 지방의 할머니는 물론이요 어린 아이마저도 휴대폰을 가지고 다니는 작금 의 시대에 그 당시와 같은 안타까움이란 있을 수 없게 되었다. 약속을 하고 기다리다 바로 휴대폰으로 상대방의 위치 확인에 들어간다. “지금 어디 야?” “나 전철 탔어, 10분이면 도착해.” 곧 도착할 것을 확인했기에 막 상 만나도 가슴 설레는 기쁨은 별로 없다. 또 헤어져도 굳이 만나자는 약속 n도 무의미하다. 휴대폰 버튼 몇 번 누르면 바로 통화가 되기 때문이다. 인생이란 만남의 연속이라 할 수 있고 이 만남이란 서로 대화를 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런데 휴대폰은 언제 그리고 어디서나 상대방과 대화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들어 주기 때문에 늘 만나고 있는 상태를 지속해 주고 있다. 늘 만남의 상태를 유지해 주기 때문에 이제는 당연히 헤어짐도 불가능하게 되었다. 헤어짐이 없으니 만남의 기쁨도 사라졌다. 또한 약속의 기다림도 없고, 옛날 에 흔히 볼 수 있었던 바람맞기, 바람맞히기도 이제는 없어졌다. 또 문자 메 시지 문화가 발달되어 많은 이들의 중요한 통신 수단으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다. 이제껏 필자가 휴대폰에 대하여 장황한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은 결론적으로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할 때 그 물건은 구별된 물건이 된다. 예를 들어 피아노가 있다고 하 자. 이것이 나이트 클럽에서 세속적인 음악을 연주하는 악기로 사용될 수도 있고, 교회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악기로 쓰일 때도 있다. 필자는 총회산하 “목회자 최저 생활 대책위원 회” 위원으로 있다. 본 위원 회는 여러 차례 공문을 보내고, 교단 신문을 통하여 가난한 목회자들을 돕 기 위한 ARS모금에 동참해 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그러나 아직 그 취지나 홍보의 부족 탓인지 모금 실적이 저조하여 가난한 동역자들에게 많은 도움 을 드리지 못하여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어려운 목회자들 안타까워 얼마 전에도 위원들이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숙의하였지만 우리의 능 력의 부족함을 절감하였다. 이제 주의 이름으로 간절한 마음으로 부탁하건 대, 지금 손에 들고 있는 그 사랑스런 휴대폰으로 한번씩 060-700-8291 번호 를 눌러 주시기 바란다. 선지자를 대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얻을 것이라 고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셨다(마 10:41). 고넬료의 구제와 선행을 기억하셨 던 하나님이시다(행 10:4). 광야의 소리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 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갈 5:13)는 바울 의 권고는 자칫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자유를 방종으로 치달을 수 있는 가능 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 권고 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 5:1)는 말씀과 같은 조건에 서 서로 다른 면을 강조하고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는 권고와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는 권고는 결코 다르지 않다. 기독교의 자유 안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들은 법 률적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강요되거나 수행되지 않는다. 그와 같은 행위 가 계율이나 도덕적 규정에 의해 미리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리스도는 그와 같은 율법에서 성도들을 해방시키셨다. 때문에 자유는 주어 진 선물이고 자유롭게 행동하는 일 자체가 이미 받은 은혜의 표시이다. 그러 나 이 자유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자유를 얼마나 잘 표현하느냐 하는 사실 로 입증된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 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2:9-10)는 바울의 말처럼 선한 일을 성취함으로써 진 정한 자유의 삶을 표출하는 것이 성도들이다. 이런 이유에서 바울은 ‘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 라’고 권고하고 있다. ‘육체’란 부도덕, 방탕, 술취함, 증오, 이기심, 질 투의 근원이다. 이와 같은 일들을 하기 위해 성도들이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니다. 대신에 성도들은 선한 일, 즉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기 위해 부 르심을 받았다. 때문에 사랑의 봉사는 자유의 적절한 행위인 셈이다. 이것은 출애굽한 이스 라엘 백성이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됨으로써 얻은 자유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함이라는 사실에서도 확인된다(출 9:1). 그렇다면 이미 종살이를 면제받고 서도 아직도 육체의 종살이를 하고 있다면 그 얼마나 비참한 상태가 아니겠 는가? 사랑, 그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결코 지나침이 없는 진리임을 명심해 야 한다.
237 no image 무리한 일을 하지 말자_오동춘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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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7 2007-09-19
무리한 일을 하지 말자 오동춘_화성교회 장로 진해에서 군생활을 할 때 교관이 사격교육을 하면서 무리를 가하면 방아쇠 를 당겨도 총알이 나가지 않는다고 했다. 이 한마디는 내게 지금까지 큰 교 훈이 된다. 무슨 일이건 순리로 해야지 무리하게 행하면 실패하거나 망한다 는 사실을 알았다. 순리 거스르면 실패해 무리한 정치를 행하던 자유당 정권이 학생들의 4.19 물결에 무너지는 모습 을 보았다. 유신헌법을 만들어 인권을 무리하게 탄압하던 공화당 정권도 10.26 대통령 시해 사건으로 무너졌다. 12.12 쿠데타로 정권을 쥔 군사정권 도 무리한 군사정치로 광주비극사태를 일으켰다. 다 무리한 정치가 빚은 일 이다. 모든 일은 물 흐르듯 순리로 해야 한다. 억지로 무리하게 행하면 실패한다. 하나님 뜻에 따라 사는 삶도 순리의 삶이다. 거짓을 밥먹듯 하고 이웃을 해 치는 무리한 행동은 꼭 하늘의 심판을 받게 된다. 무리한 욕심을 부리면 사망을 낳는다. 그러므로 자기 분수를 알아야 한다. 분 수도 모른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면 가랑이가 찢긴다. 거짓없이 자기 십자 가를 등에 지고 골고다로 예수님 뒤로 따라가는 길이 바로 바른 길이요 옳 은 삶이 아닐 수 없다. 누가 무리한 행동을 하는가? 영리한 꽈배기들이 자기 욕심이 넘쳐 무리한 행 동을 하다가 망한다. 자기 이익의 속셈이 밝은 사람들이 무모하게 무리한 일 이나 행동을 하다가 망하게 된다. 천하를 떠들썩하게 굴던 황 교수의 줄기세 포논문 사건도 조사결과 거짓으로 판명되었다. 황 교수는 거짓의 대가로 파 면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요즘 신정아 교수의 가짜박사 사건으로 세상이 시끄럽다. 미국 예일대학의 거짓 박사로 대학교수가 된 것이다. 교수가 된 사람이나 교수를 만들어준 사 람은 다 양심을 버리고 무리한 행위를 한 것이다. 마귀가 아비인 거짓의 대 가는 실패나 죽음이 뒤따르게 된다. 가짜 신학박사도 많다고 한다. 거룩한 성직인 목사 직분을 더럽히는 일이 아 닐 수 없다. 고 노진현 목사님은 합동신학교 초대 이사장 최삼금 권사님이 소천하셨을 때 그 하관식 자리에서 점심을 드시며 박윤선 목사님에게 축도권 이 없는 박사보다 목사가 더 나은 신분이라 고 농담하시는 말씀을 들은 일이 있다. 이때 박윤선 목사님은 빙그레 웃기만 하셨다. 목사가 목사면 되지 가 짜 신학박사까지 갖는 허위행세를 해서야 되겠는가? 덕스럽지 못한 일이다. 어느 양심 있는 문인 하나가 자기도 돈주고 박사학위를 샀으나 차마 세상에 내놓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는 나중에 모교에 가서 대학원 박사과정을 마치 고 떳떳하게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모교 교수가 되었다. 이번에 온 국민에게 심려를 끼쳤던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에 납치된 한국인 23 명의 인질사건도 무리한 출발이었다고 개신교 지도자 13명의 성명에서 지적 되었다. 끝내 두 명이 총살당하고 19명이 귀국했으나 일부 비신자들의 악평 이 하늘을 찌를 듯 높았다. 그러나 선량한 주님의 일을 하다가 당한 경고적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배형 규 목사와 심성민 청년의 피는 언젠가 아프가니스탄을 기독교 국가로 만드 는 성령의 열매가 있을 것으로 믿는다. 소박하고 진실하게 살아야 과욕이나 허영심에 날뛰는 깜부기나 가라지의 교만을 부리면 멸망의 심판을 면할 수 없다. 우리의 삶은 결코 억지나 무리함이 없이 주님이 지신 십자가 를 바라보며 겸손하게 힘차게 걸어가야 할 것이다.
236 no image 교회의 무책임과 성도의 이중성_남웅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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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78 2007-09-13
교회의 무책임과 성도의 이중성 남웅기 목사_바로선교회 제가 주일학교에서 처음 배운 성경말씀은 마태복음 5장 14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가르치는 선생님마다, 설교하시는 목사님마다 빛 과 소금을 강조하셔서 저는 의심 없이 자신을 세상의 빛이라고 확신했습니 다. 저뿐만 아니라 모든 교회와 성도들이 그렇게 확신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빛인 성도들 그런데 세상은 전혀 밝아지지 않습니다. 도심의 불빛은 전에 없이 휘황찬란 하지만 세상의 어둠은 더욱 기승을 부립니다. ‘세상이 타락했다’ ‘정치인 이 부패했다’ ‘언론이 문제다’ ‘교회가 빛을 잃었다’ 제마다 말들은 하 지만 대책은 없습니다. 세상을 바로잡을 대책은 교회가 내 놓아야 하는데 교 회가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 ‘세상은 어둠이고 우리는 빛이다’는 선언 적 구호밖에 없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 교회를 세상의 빛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이 는 교회도 자인하는 부분입니다. ‘빛이 되기는 되 어야 하는데 우리는 빛의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어떻게 아느냐고요? 세상이 여전히, 그리고 더욱 어두워져만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세상을 놀라게 한 유명인들의 가짜 학력문제는 세상의 어둠을 드러내는 빙산의 일각입니다. 모두가 거짓이고, 속임수입니다. 부끄러움도 죄책감도 없습니다. 어디 학력 문제뿐이겠습니까? 농약 친 유기농채소, 유해 첨가물이 든 과자, 사학의 불 투명 학사운영, 부동산 투기, 부실시공, 거짓 정보, 언론의 왜곡보도, 의사 의 과다보험료 청구 등등. 이루 말로 다 헤아릴 수 없고, 글로서 표현 할 길 없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문제점이라면 구원 이후의 가르침이 없다는 점입니다. 여 기서 가르침이란 제자훈련을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공부를 말하지 않습니 다. 신학연구를 말하지 않습니다. 참과 거짓, 선과 악, 의와 불의 등 진선미 의 가치 개념에 대한 가르침을 말합니다. 그것은 하나님 편이냐 세상 편이냐 의 기준이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진면목을 드러내는 덕목이기 때문입니 다. 그러므로 이 가르침에 진력하는 것 이상의 어둠에 대한 대책은 없습니 다. 요즘 교회마다 실적을 쌓기에 이 성을 잃고 있습니다. 꼭 벽돌로 쌓아올리는 것만이 바벨탑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목회자마다 교회마다 최고가 되고 싶은 욕망만 있지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일엔 관심이 없습니다. 물론 최고 가 되는 그 자체를 하나님의 뜻으로 확신하는 사람이 많으니 문제입니다. 우리의 실적은 추구할 일도, 자랑할 일도 아닙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도 감 격은 할지언정 자랑할 일은 아닙니다. 교회성장의 비법을 배우기보다는 하나 님 뜻을 드러내는 일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교회가 목회자에게 성경을 가르쳐달라 함은 세상의 가치관말고 주의 뜻을 가 르쳐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온갖 예화를 다 재미있게 들으면서 유독 정치예화만큼은 귀를 막아버립니다. 하나님은 어둠의 거짓 세상에서 빛 된 진실을 드러내길 원하십니다. 그러므 로 목회자는 하나님의 뜻에 민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현실상 황에 적용하여 무엇이 길인지, 아닌지를 가르쳐 줘야만 합니다. 그러나 교회 는 정치에 관한 한 목회자의 가르침에 귀를 막습니다. ‘내가 더 잘 안다 고...’ 오늘날 교회는 무책임하게도 신앙윤리를 손 놓아버린 지 오래입니다 . 그 결 과 거짓과 짝하며 대로를 걷는 자가 박수를 받고, 하나님의 뜻은 분명 하나 인데 상반된 개념을 서로가 진리인양 주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 비일비재합니 다. 신앙윤리 손놓은 시대 교회에서는 하늘 이야기를 들어만 주고, 삶의 현장에서는 각각 제 소견대로 살아가는 성도들의 이 이중성이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235 no image 효율적인 총회 운영 방안_나종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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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4 2007-09-05
효율적인 총회 운영 방안 나종천 목사_한사랑교회 현대사회는 날로 복잡해지고 있다. 이러한 사회에서 소수의 의견이 존중되 고 다수의 의견이 주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활발한 의견의 교환이 필요하 다. 활발한 의견 교환이란 무질서한 자기 고집과는 다르다. 그것은 함께 갈 통로를 먼저 만들어 놓고, 나와 반대되는 의견에 귀를 기울이면서 자신의 의 견을 설득력 있게 주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회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어떻게 최상의 것으로 이 끌어내느냐 하는 것이다. 다수의 횡포나 소수의 독선을 다같이 경계하면서 전체 의견의 공통분모를 찾아내는 회의가 되어야 한다. 회의는 의사 결정뿐 만 아니라 협력과 교류를 통해 공동체의 정신을 확보하는데 있어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다. 회의가 원활하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회의의 규칙과 절차 그리고 예절이 필수 이다. 따라서 회의에 참여하기 전에 회의를 위한 사전 준비과정이 필요하 며, 회의에 참여해서는 회의 규칙과 예절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 이러한 회 의 구성 요건이 갖추어졌을 때 다양한 의견들이 창출되고 원하는 목적을 달 성할 수 있게 된다. 1. 총회회의 내용 숙지 총회를 효과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총대들의 회의 내용을 숙지하고 있어야 한 다. 총회 총대들에게 배부되는 회의안을 총회전에 각 노회별로 총대들이 모 여 충분하게 함께 의논하고 공부함이 필요하다. 총회의 흐름과 사역의 공유 함이다. 그 자리에서 총대의 입장과 노회의 입장에 대한 충분한 토론을 통 한 총회 전체 회의 흐름을 숙지해야 한다. 특히 총대들의 전문성과 은사를 파악하여 상비부에서 활동하도록 해야 할 것 이다. 그리고 상비부에 들어간 총대는 개인의 자격으로서만이 활동이 아니 라 노회를 대표한다는 의식을 가지고 총회에 임하면 총회 회의는 성숙되어지 고 진지한 총회가 될 것이다. 2. 총회 개회 시간 우리나라는 이제 교통수단의 발달로 인하여 어디서든지 3-4시간이면 함께 모 일 수 있다. 지금은 화요일 오후 2시에 총회회의 전 예배를 드린다. 이 시간 을 오전 11시로만 앞 당겨도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을 것이다. 오전에 예배와 성찬예식을 거 행하고 오후 시간에 회무를 진행한다면 시간적인 효율 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3. 상비부활동 상비부는 총회 사역의 꽃이다. 총회는 모여 회의가 끝나면 파회되지만 그 결 정된 사항은 회기 중에 지속적으로 사역을 진행해 나가는 것이 상비부 활동 이다. 상비부는 총회를 통하여 지난회기 동안에 결정된 사안들이 어떻게 진 행되었는가를 보고하고, 그 사역을 통한 하나님의 역사와 함께 헌신했던 교 회와 사역자들의 수고를 격려하고 감동하는 시간들이 총회 기간 동안에 이루 어져야 하는데 간단한 보고만으로 끝냄은 참 무성의하다. 그리고 상비부원들이 바뀐 상태에서 보고를 하기에 현실감도 떨어지고 본인 도 이해를 하지 못하고 보고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뿐만 아니라 지난 회 기 동안 했던 사역에 대한 평가를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문제점의 보 안을 위해서 지난 회기 보고는 지난 회기 책임자가 사역을 보고하면 좋을 것 이다. 4. 총회장 총회장으로 당선되면 지금까지 본인을 통한 하나님의 간섭하심을 알고 계실 것이다. 그렇다면 총회 기간 동안에 그런 비전을 총회 회원들과 공유해야 하 며 총회장의 사 역에 대해 상비부서에서도 우선순위를 인정하고 움직여야 한 다. 즉 총회장의 정책에 초점을 맞추어서 모든 상비부서가 함께 움직인다면 그 시대마다 하나님께서 우리 총회를 통해서 이루실 귀한 역사가 더욱 풍성 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234 no image 9월 11일부터 13일까지_우종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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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5 2007-08-29
시론 9월 11일부터 13일까지 우종휴_황상교회 목사 언제나 그러했어야 하였겠지만 새로 모이는 총회가 총회의 성격을 제대로 보 여주는 총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맨 처음 총회를 소집할 때에 작성 한 총회 소집 선언문과 헌법에서 우리 총회의 성격을 명백하게 드러내었습니 다. 총회소집 정신 나타내야 교회의 개혁을 표방하며 이러한 선언문과 헌법을 만든 지 어언 26년이 되었 습니다. 지금 우리는 총회를 시작할 때에 다짐한 것을 얼마나 열매맺고 있는 지, 아니면 처음 먹은 마음이 사라지고 있진 않는지 총회로 모일 때마다 하 나님 앞과 한국교회 앞에서 우리 자신을 잘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헌법에서 읽는 대로 총회는 합신 교단에 속한 모든 교회들의 전체 회의입니 다. 전국의 교회들이 흩어져 있으나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든 교회 성도들이 한 몸입니다. 우리는 매 주일 지교회에서 모일 때마다 우리들 모두가 주 안 에서 한 몸인 것을 고백합니다. 교회의 대표들이 총회로 모 여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한 몸이라는 그 신앙고백을 확증합니다. 그래서 ‘총회의 주요 임무는 지교회와 지교회 사 이 또는 노회와 노회 사이의 연합을 공고히 하는 것(박윤선 박사의 헌법 주 석)’입니다. 연합을 굳건히 하기 위해서 먼저는 교훈의 통일성을 기해야 합니다. 예루살 렘 총회가 할례문제 때문에 함께 모여 의논한 후 합당한 결론을 내려 교회 로 하여금 따르게 한 것과 같습니다. 교훈에서 일치하지 아니하면 연합을 이 루지 못합니다. 또 연합을 굳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삶을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궁핍할 때에 넉넉한 이방인의 교회들이 연보를 보내어 나누어 가짐으 로 주 안에서 하나됨을 나타내었듯이 교단 안에 있는 재정이 넉넉한 교회들 은 연보를 총회로 가져와서 어려운 교회에 나누게 해야겠습니다. 이렇게 함 으로써 우리가 주 안에서 한 몸이요 형제라는 신앙고백을 증거하게 될 것이 며 교회들은 기뻐하고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시게 될 것입니다. 노회에서 보냄 받아 총대가 된 분들은 총회의 결정사항을 노회나 교회에 전 하여 총회의 결의가 잘 이행되도록 연락할 책임이 있습니다. ‘총회를 과대 평가하여 노회나 교회를 지배하려는 과오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박윤선 박사의 헌법 주석)’ 하지만 반대로 총회를 과소평가해서도 안 됩니다. 지금은 총회를 과대평가한다기보다는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두드러져 보입니 다. 특별히 납득할 만한 이유도 없이 총회의 결의를 적게는 이행하지 아니하 고, 심지어는 총회결정을 무시하는 것이 그러합니다. 총회는 언제나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고, 노회나 지교회는 진리의 문제가 아 닌 이상 그 결정을 따르는 것이 마땅합니다. 우리가 믿는 바대로는 총회의 결정이나 노회의 결정이나 당회의 결정을 다같이 따르는 것입니다. 거꾸로 말하면 어떤 지교회의 특수한 사정과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 교회의 결정은 노회에서나 총회에서도 결의할 만한 것이여야 합니다. 총회의 결의 가 노회나 지교회를 기쁘게 하는 것이 되어야 하듯, 지교회나 노회의 결의 역시 전국의 교회들에게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에 지교회의 자유가 지나쳐서 개교회 주의의 모습을 띄 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행정적으로는 교단 내의 교회이지만, 실제로는 독립교회 같아 보이는 것은 저 한 사람의 기우에 그쳤으면 좋겠습 니다. 총대들의 자긍심 지켜야 하나님께서 이번 총회에 복을 주셔서 의논하는 과정이나 결정하고 그것을 시 행하는 것을 통하여 우리가 다 주 안에서 한 몸이요 형제라는 신앙고백을 체 험하므로 하늘의 기쁨을 누리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233 no image 집요한 공격에 대한 교회의 반응_김수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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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14 2007-08-22
집요한 공격에 대한 교회의 반응 김수영 목사_나눔교회,횃불트리니티 신대원 교수 극단으로 흐르는 사회의 현상이 우리나라를 덮고 있습니다. 세브란스 병원에 는 지난 18년 동안 이렇다할 큰 데모가 없었습니다. 민주노총은 그동안 호시 탐탐 노리다가 지난 7월에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 노조 데모를 주도하였습니 다.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사회 현상 그들의 전략은 언제나 이분법입니다. 의사 대 직원! 의사는 부르주아고 직원 은 프롤레타리아입니다. 병원과 의사는 많은 것을 빼앗는 집단이고, 직원은 빼앗기는 집단입니다. 그들은 항상 적군과 우군으로 나눕니다. 그래서 이분 법적인 극단적인 집단주의를 통해서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려고 합니 다. 그런데 여론과 세브란스의 확고한 입장에 밀려 실패했습니다. 의사까지 동원 되어서 병원을 정상화하려는 노력과 하나둘씩 직장으로 복귀하는 노조원들 때문에 실패하였습니다. 여론의 비판도 한몫을 했습니다. ‘이랜드’ 사태는 약간 다른 양상입니다. 민노총은 비정규직의 사람들을 정 규직으로 다 고용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지금도 기습 시위를 할 기회를 노 리고 있습니다. 몇몇 시민단체들을 움직여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데모에 참여한 ‘홈에버’ 비정규직 직원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왜 이렇게 까지 데모하십니까?” 그러자 “저희도 관두고 싶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끝 까지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끝까지 해서 뭐라도 건져야 하지 않겠어요?” 라고 했습니다. 데모하는 과정에서 많은 비정규직 개인들이 희생당할까 염려 됩니다. 민노총은 개인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데모하다가 안 되면 빠져버릴 수 있습 니다. 그러면 데모하였던 개인들에게 아무런 보상도 없이 끝날 수 있습니 다. 무엇이 잘못되었습니까? ‘이랜드’라는 회사가 그들의 주장처럼 악덕 기독교 회사입니까? 문제의 발단은 악법에 있습니다. 정부가 법을 섣불리 만 들어놓고, 회사와 일하는 사람들에게 강요한 것이 비극의 발단입니다. 사실 국가가 먼저 책임은 져야 합니다. 만약 이 법대로라면 회사를 제대로 운영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부채 비용이 높은 회사는 고용 비용이 회사 의 존재 자체를 흔들어 버릴 수 있습니다. 회사가 망하면 데모가 아무 의미 가 없습니다. 망한 다음에 민노총은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이는 회사가 사회에 환원한다는 금액으로 고용하면 된다고 주장합니 다. 그러나 1%의 회사 환원은 이익이 나왔을 때의 1%를 의미합니다. 아무 이 익도 없으면 1%의 환원도 없습니다. 회사가 망하고 나서 무슨 이익의 환원 이 있을 수 있습니까? 그러나 정규직 환원은 당장 돈이 들어가는 부분입니 다. 하루하루 운영하면서 피를 말리는 전쟁에서 회사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 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물론 약자인 비정규직의 사람의 형편도 돌아보아야 합니다. 회사가 함부로 할 수 없도록 감시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가 먼저 이 런 문제들에 대하여 대책을 마련하고 법을 시행해야 옳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련의 사태 속에서 생각해볼 것이 있습니다. 집요하게 기독교 를 대표하는 단체를 공격하는 세력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기독교의 치부를 드러내려는 보이지 않는 세력을 말합니다. 어떤 집단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핵심은 기독교가 흠 잡히지 않 을 만한, 거룩 하고 성실한 교회로 다시 태어날 때입니다. 기독교가 이때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생각할 때입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시험의 기간에 교회를 포함한 기독교 전체가 정 직하고 정결케 되어야 합니다. 건강한 교회를 위해서 수고하는 분들이 더 많 아져야 합니다. 둘째, 우리는 이번 일들이 회사나 노동자에게 좋은 방향으로 끝날 수 있도 록 기도해야 합니다. 노동법이 현실적인 상황에 맞는 법으로 수정 보완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셋째, 나라의 경제가 살려면 병원이나 기업이나 장사하는 분들이 힘껏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또한 힘없는 개인들도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노동 환경과 사회 보장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미흡한 법적 조건부터 재정비해야 넷째, 건강한 노조활동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은 한국 교회 전체 의 기도 제목입니다. 지금은 깨어 있는 때입니다. 그리스도인 개인, 모임, 단체들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참여할 때입니다.
232 no image 권력과 종교_이의행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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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15 2007-08-16
권력과 종교 이의행 목사_목민교회 어릴적 추억 한가지가 문득 떠오른다. 여름 방학이 되면 지금 아이들처럼 학 원에 다니느라 바쁜 것도 아니어서 말 그대로 공부하는 일을 잊어버리고 마 냥 뛰놀기에 열중이었다. 특히 여름방학 때 무더위를 피해 나무 그늘 아래 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두했던 놀이 중 하나가 땅따먹기 놀이였다. 땅따먹기 하던 시절 기억나 우리는 서로 따먹은 땅에 영역 표시를 하면서 마치 그 땅이 내 땅이라도 된 듯이 흐뭇해하곤 했다. 그러다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면 약속이라도 한 듯 이 손을 털고 일어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어쩌 면 인간은 속성적으로 어릴 적부터 권력을 추구하며 사는 것이 틀림없다 하 겠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생존을 위한 본능으로 권력을 추구한다. 그러나 권력 의 특성은 절대로 자기보호를 위한 수단으로 만 사용되지 않는다. 창세 전 에 사탄은 하나님의 자리를 탐내어 권력을 손에 넣으려다 실패하자 이번에 는 아담을 유혹해서 권력 을 손에 넣도록 충동했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을 저 주에 빠뜨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사람이 하나님의 권위를 거슬려 권력을 손아귀에 넣으려는 순간 자신은 물 론 많은 사람들까지도 불행에 빠지게 만들뿐이다. 탈레반이란 말은 ‘구도 자’라는 뜻이라고 한다. 소위 이슬람의 구도자들이라고 자처하는 자들이 자 기 동족들을 도우러간 선량한 사람들을 죽이고 목숨을 볼모로 잡고 있는 이 유는 무엇인가? 권력에 대한 욕심 때문이다. 거룩이라는, 종교라는 탈을 쓰 고 세속적 권력을 손에 넣기 위해 무고한 목숨을 무참히 살해하고 있는 것이 다. 며칠전 화려한 휴가라는 영화를 보았다. 잊지 못할 대사가 있었다. “자네 총보다 더 무서운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그것은 사람이야.” 그렇다. 총보 다 더 무서운 것은 권력을 추구하는 인간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권력을 빼앗 으려는 집단과 그 권력을 절대 빼앗기지 않으려는 집단과의 피터지는 쇼가 벌어지고 있다. 온 나라 온 국민이 날만 새면 벌어지는 쇼를 바라보며 일희 일비하고 있다. 심지어 교회와 목회자들조차 그 분위기에 편승하고 있는 모 습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어디 그뿐인가. 교회 안에도 권력바이러스가 침투한지 오래다. 거룩한 은사 와 직분이 권력화된 지 이미 오래다. 교회 안에서 돈을 앞세우고, 직분을 앞 세우고, 사람들의 숫자를 앞세워 자기 권력의 바벨탑을 쌓고 있다. 신성한 직분을 자기를 위해 휘두르고 있는 것이다. 바야흐로 교단마다 정치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우리 교단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정치가 있고 정치가 있는 곳에는 권 력이 따르기 마련이다. 혹 교단 정치에 자의나 타의에 의해서 깊숙이 연루되 어 있는 분들은 동의하기가 쉽지 않겠지만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그런 가운 데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권위와 권력만이 유일하고 거룩한 것임을 인정해 야 한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종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혹시 우리에게 어 떤 책임있는 위치가 부여된다면 그것은 내 이름을 알리는 기회로 주어진 것 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알리는 기회로 활용하도록 주어진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물론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에게 가장 먼저 적용해야 할 말임을 명심한다. 정치는 누군가 해야하는데 나는 진흙탕에 몸을 굴리기 싫으니 하고싶은 사 람 들이나 하게 하자는 말들을 듣기도 한다. 대타를 앞세워 진흙탕에 뒹굴게 하 자는 발상이 과연 거룩한 생각인가? 비겁한 거룩은 거룩이 아니다. 그렇다 고 거룩으로 포장된 권력 추구는 절대로 용납되면 안 된다. 혹 교단정치의 한자리를 자기를 위해 꿈꾸는 사람이 있다면 이 글을 읽는 순 간 조용히 한걸음 물러나는 것이 훨씬 유익할 것이다. 그런 분은 나중에 조 용히 차 한잔하면 좋겠다. 인류 역사 이래로 권력은 끊임없이 이동을 거듭해 왔다. 미래학자들은 미래 권력은 종교집단으로 이동할 것임을 예견했다. 만약 이것이 사실로 이어진다 면 엄청난 비극이 초래될 가능성이 크다. 신앙과 신념과 확신이라는 허울로 권력을 휘두를 것이기 때문이다. 권력의 허울쓰는 것은 비극 신의 이름을 빙자해서 자기들을 도우러온 선량한 이웃들을 무참히 살해하고 도 눈 하나 끔쩍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시 한번 기도하자. 우 리 모두 하나님의 종임을 잊지 말자.
231 no image 극단의 위험_구본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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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0 2007-08-06
극단의 위험 구본형_충청노회장, 반석교회 목사 옛날에 들은 이야기이다 외국선교사들이 말하기를 “한국에는 기독교와 예수 교가 싸운다”고 했다 한다. 예수교장로회와 기독교장로회, 예수교성결교회 와 기독교성결교회, 예수교하나님의성회와 기독교하나님의성회 등등 더 있겠 지만 간단히 떠오르는 이름들만 해도 이렇다 신학과 교리와 행정을 달리 하 면서 나온 이름들이겠지만 “기독교와 예수교가 싸운다”니 얼마나 어이없 는 이야기이며 웃지 못할 관찰인가? 명칭만으로도 갈등 부각돼 최근 혹은 이전의 교계의 신앙형태를 살펴보면 또한 웃지 못할 이런 구분이 있다. 말씀을 강조한다고 하면서 성령을 무시한다든지 성령을 강조한다고 하 면서 말씀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에 대한 표현은 이렇다. “말씀, 말 씀 강조하면서 부흥하는 교회 보았느냐?” 이는 소위 성령 운동한다는 사람 들의 주장이다. 반면에 성령의 은사 충만 등의 단어가 나오면 거부 반응을 일으키며 마치 신비주의나 은사주의자를 보는 듯한 자세 역시 모두 극단적이 다. 이런 형편을 보면 마치 말씀과 성령 혹은 말씀주의자와 성령주의자가 나뉘어 서 싸우는 것 같다. 여호수아 1장에 보면 하나님은 가나안 정복을 앞두고 있 는 여호수아에게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고 하신다 그 당시 배경 하에서 주신 말씀이지만 극단으로 치우치지 말라는 말씀은 아닐까? 어떤 분은 신비주의에도(좌) 이성주의에도(우) 치우치지 말라고 하신 말씀이 라고 했다.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듣고 생각해 보니 일리가 있어 보인다. 신앙의 두 극단은 한쪽은 신비주의요(좌측) 한쪽은 이성주의다(우 측). 그렇다면 중간노선, 요즘 정치계에서 말하는 중도노선을 걷자는 말인 가? 그것은 아니다. 또한 말씀을 강조하면 이성주의자가 되라는 말도 아니 다. 신앙에는 신비도 이성도 모두 정당한 위치가 있다. 그러나 어느 한쪽을 붙잡 고 ‘주의’(ism)로 나가는 것은 확실히 정도를 벗어난 극단으로 가는 것이 다. 말씀과 성령과의 관계만 해도 그렇다. 칼빈은 “성령은 말씀에 대한 우 리의 확실성의 원인이고 말씀은 성령에 대한 우리의 확실성의 근거이다. 성 령이 없이는 우리는 말씀의 빛 을 상실하게 되고 말씀이 없이는 우리는 성령 의 조명을 잃게 된다”고 말했다. 말씀을 낮추고 성령을 높인다고 하는 신령주의자들을 경계하고 반면에 성령 의 자유를 강조하면서 동시에 말씀과 더불어 말씀을 통하여 일하기를 기뻐하 시는 성령님의 주권을 세우는 이 관계를 잘 포착해야 하겠다. 워필드는 칼빈 을 가리켜 종종 ‘성령의 신학자’라 불렀다 하니 우리에게 얼마나 신선한 충격을 주는가? 성령 없이 말씀을 내세우는 것이 불합리한 것처럼 말씀 없이 성령을 자랑하 는 것 또한 터무니없는 일이다. 개혁주의 신학은 성령의 자유를 강조하며 ‘말씀과 더불어’라는 말로 성령의 주권을 표현해 왔다. 또한 성령은 말씀 을 통하여 말씀에 의해 일하기를 기뻐하신다고 말함으로써 말씀의 권위를 표 현해 왔다. 이 관계는 분리 될 수 없다. 종교개혁당시 성령을 말씀으로부터 분리시킨 로마교회나 말씀을 낮추고 성령 을 높인 신령주의자들 외에도 재세례파나 방종주의 모두가 그릇 갔거나 극단 주의자들이 되었다. 오늘 우리 주변에 이런 경향은 없는가? 말씀과 성령 늘 함께 있어 “너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이 말 씀을 오늘 우리시대엔 무슨 의 미로 주셨을까 생각해 보자.
230 no image 교회의 부흥을 염원하면서_최용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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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19 2007-07-25
교회의 부흥을 염원하면서 최용태 목사_충남노회장, 채석포교회 지난 7월 8일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1907년 평양대부흥 100주년 기념대회 가 열렸다. 기록에 의하면 이날 행사에 목회자, 성도 10만 여명이 모였다고 한다. 아마도 1907년의 교회 대부흥에 대한 감격을 다시 한번 이루어보고 싶 은 열망이 이처럼 많은 성도들을 모이게 하였다. 대부흥감격 다시한번 느껴 이번 집회는 ‘교회를 새롭게! 민족에 희망을!’이라는 주제로 ‘회개와 성 령’ ‘일치와 통일’ ‘선교와 평화’ ‘나눔과 생명’이라는 4개의 소주제 로 다양한 행사와 모임을 가졌다. 교회의 부흥은 어느 교회, 어느 교단, 어느 교파를 막론하고 이루어 내고 싶 은 소망일 것이다. 이런 열망과 소망에도 불구하고 한국 교회에 관련된 모 든 분들이 이구동성으로 한국교회의 성장이 정체되었다고 평가하고 있으며, 그에 대한 원인과 대책들을 논의하고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 기념집회 역시 이러한 문제점들을 생각하 면서 모임을 가졌다고 여겨진 다. 특히 이번 대회의 설교를 맡은 옥한흠 목사는 ‘행함이 없는 믿음’ 때 문에 한국교회의 성장이 멈추었고, 그 일차적인 책임이 올바른 설교를 하지 못한 목회자들에게 있음을 지적하였다. 사실 교회에 제기되고 있는 모든 문제점의 출발점은 목회자에게 있음이 분명 하다. 만약 모든 목회자들이 성경에 근거하고 예수님처럼 사람들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진정한 마음으로 목회를 하였다면 오늘날 제기되는 여러 가 지 문제점은 최소한으로 줄었을 것이 틀림없다. 교회를 이끌어 가면서 성장해야 된다는 압박감이 목회자들을 다른 길로 이끌 었을 수 있으며, 오직 믿음이라는 명제가 행함을 약화시키게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더불어서 믿음에 다른 행함이 삶속에 녹아져서 보여지는 행함이 아 니라 성장을 위한 행함으로 유도되었을 때 그에 따른 폐해가 오늘날 교회의 많은 폐단을 야기했다고 할 수 있다. 교회의 부흥은 교회가 외치는 복음이 힘을 얻었을 때 가능하다. 그 복음을 맡은 목회자와 성도들의 삶이 복음을 증거하지 못한다면 그 복음은 한낱 가 식에 불과한 모습으로 비춰지게 될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부흥은 기대 할 수 없다. 오늘 교회가 진정한 부흥을 원한다면 복음의 일선에 있는 우리 목회자들이 자신들의 삶을 통하여 보여주고 증명하여야 한다. 물론 지금도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복음의 최전선에서 한 영혼 한 영혼을 진 지하게 사랑하고 아끼고 보살피고 있다. 그러나 우리 자신들의 내면을 진솔 하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만약에 나의 교회와 성도가 심히 미약할지라 도 감사하면서 오직 주님을 위한 길만을 찾고 있는가? 성령께서 내 영혼의 깊은 곳에서 들려주시는 말씀에 충실하고 있는가? 세상이 변하여 물질만능주 의로 달려가고 있는데 여기에서 나는 자유로울 수 있는가? 이스라엘 민족이 블레셋 사람들로 인하여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에 사무엘 은 이스라엘의 죄를 먼저 지적하고 회개할 것을 촉구했다. 그들이 철저하게 회개했을 때에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며, 잃었던 성읍들을 회복할 수 있 었다. 사무엘은 백성들에게 당당히 그리고 철저하게 회개할 것을 요구했다. 오늘 우리 목회자들이 신자들 앞에서 그들의 잘못을 철저하게 지적하고 회개 를 촉구할 수 있는가? 이번 대회의 설교자는 이 점을 뉘우치 며 회개한다고 하였다. 목회자와 교회가 신자들의 안색을 살피면서 진정한 부흥을 찾을 수 없으며 진정한 성장을 이루어낼 수 없을 것이다. 수많은 세미나와 성경연구 가 하나의 코스가 된다면 이것은 허례에 불과할 따름이다. 어떤 면에서 한국교회는 이미 부흥하고 성장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진정한 부흥을 원하고 있으며 여기에서부터 교회의 바른 성장이 이루어지기를 바라 면서 민족에게 신앙을 통한 희망을 안겨주기를 원한다. 이번 평양부흥 기념 대회를 통하여 모든 교회들이 회개하고 성경으로 돌아가기로 다짐하였다. 신앙통해 민족에 희망 줘야 이제 목회자들이 행동으로 모범을 보일 때이다. 성령께서 우리의 깊은 내면 에서 들려주시는 음성에 충실하여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를 세워가기를 간 절히 소원한다.
229 no image 여행 중에 폐가를 바라보며…_최태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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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19 2007-07-19
여행 중에 폐가를 바라보며… 최태호 목사/ 전북노회장, 군산우리교회 여행 중 도로 양옆의 자연 화가이신 하나님의 작품들을 감상합니다. 산, 들, 바다, 호수 ... 산과 들에는 온갖 종류의 꽃들이 저마다의 색채로 아름 답게 자태를 드러냅니다. 하나님의 정한 시간 속에서 리모델링을 거듭하다 가 씨앗을 남겨두고 흔적을 지워버립니다. 모든 것은 때맞춰 달라져 한가로운 시골마을 지나다보면 폐가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옹기종기 모여 정 을 나누며 꿈을 키웠을 앙증스러운 마을입니다. 지금은 폐가라 불리는 이곳 에 신혼의 한 부부의 소망이 담겨있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방을 하나씩 더 만드는 리모델링을 합니다. 그리고는 그 방마다 행복을 가득히 채웠습니 다. 그 방의 주인들은 무럭무럭 자라납니다. 그리고 저마다의 꿈을 찾아 어디론 가 떠나 갔고, 집주인은 조금씩 조금씩 무너져 가는 그 집을 바라만 봅니 다. 더 이상 리모델링의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신혼의 꿈도, 아이들의 추 r 억들도 더 이상 지탱하지 못하고 허물어져 갑니다. 겸손하게 폐가를 수용하 고, 그 누군가의 손길로 다듬어지기를 숙연히 기다립니다. 인생의 발자국!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꿈을 펴보고자 리모델링을 시도합니 다. L가수의 가녀림으로, J 탤런트의 우람함으로 리모델링을 시도합니다. 눈 으로 보이는 모양만 리모델링을 합니다. 가끔은 잘못된 리모델링으로 어려움 을 겪기도 한다지요. 겉 사람은 날로 날로 후패한다 하셨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폐가로 가는 것 이 정상이고 또 그렇게 되어야만 합니다. 모두가 L양 같은 모습일 수는 없 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독특한 창조를 감사하며 긍지를 키워 가는 젊음을 소 유해야 하지 않을까요? 70세의 노년은 노년다워야지 20세의 청년 같은 외모만 추구해서야 되겠습니 까? 깊게 새겨진 주름살이 후대에 교훈을 주어야 합니다. 젊은이의 인생에 방향타가 되어주는 진정한 스승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인생은 속사람부터 바꿔야 진정한 리모델링을 시도합시다. 백발이 면류관이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외 모 지상주의를 뛰어넘어야 합니다. 내면의 끊임없는 리모델링은 인격의 성숙 함으로 결실되리라 생각합니다. 인격의 성숙은 나와 우리 모두에게 큰 유익이 될 것입니다. 서로에게 진정 한 평강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인품을 꿈꿔야 합니다. 모두에게 덕을 끼칠 수 있는 인격을 소망해야 합니다. 속사람은 날로 날로 새롭다고 하셨습니 다. 교회마다 속사람이 새로워지기를 기원합니다. 개혁신보 독자에서부터 새 로운 문화를 창출합시다.
228 no image 아름다운 땅 제주도_조용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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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55 2007-07-11
아름다운 땅 제주도 조용대 목사_제주노회장, 중문교회 우리나라의 제일 남단에 위치하고 있는 이 곳 제주도에 정착한 지도 어느새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제주도가 어떤 곳인지도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오직 하나님의 강권하시는 은혜를 따라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우고 자 하는 일념으로 걸어온 시간들이 마치 꿈만 같이 생각됩니다. 벌써 20년 된 제주도 목회 제주에서 살아가는 중에 늘 느끼는 것은 제주도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아름답 게 창조하신 땅이라는 사실입니다. 또한 제가 목회하는 이 중문지역은 그 중 에서도 가장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지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 주도에 온지 얼마 안되어 그러한 사실을 깨닫게는 “하나님 정말 아름다운 땅으로 인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기도를 드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인도하심을 받았던 것 처럼 제 눈에는 제주도가 그러한 땅으로 비쳐지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사 실은 한 해에 오백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이 곳 제주를 찾는 것을 보아서도 증명되는 것이며, 또한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는 사실일 것입니다. 그러나 20년 동안을 제주도에 몸담고 살아오면서, 세상적으로 볼 때에는 정 말로 아름다운 땅이지만 영적으로 볼 때에는 척박하고 황폐한 땅이라는 사실 을 절감하게 됩니다. 이제 명년이 되면 이기풍 선교사님에 의해서 제주도에 복음이 들어온 지 백주년이 되어지는 시점입니다. 그러나 제주도는 여전히 복음의 불모지와 같아서 국내에서도 복음화 율이 가장 낙후된 지역(약 4%)으 로 평가되어지고 있습니다. 교회의 수는 약 350여 개를 헤아리지만, 지금도 미신과 갖가지 우상숭배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대다수 제주도민의 생활풍습이 이러한 범주에서 벗 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러한 미신 종교와 풍습 가운데서도 대표 적인 것들이 있는데, 바로 신구간과 괸당문화와 벌초방학과 같은 것들을 꼽 을 수가 있습니다. 신구간이라는 것은 음력으로 대한 5일 후부터 입춘 3일 전까지의 약 1주일간 의 기간을 가리키는 것으로, 신신(新神)과 구신(久神)의 인사 이동 기간이라 고 합니다. 이 지상 에 있는 모든 신들이 옥황상제에게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 기 위해서 하늘로 올라간 때라서, 이 기간에 집을 고친다든지 이사를 하면 동티를 막을 수 있다고 해서 집중적으로 이사를 하는 풍습입니다. 그래도 다 행인 것은 요즘 들어서는 외지인들이 많이 들어와서 살기 때문에 그런지 몰 라도 전보다는 많이 약화된 모습이 보여집니다. 또한 괸당(친척) 문화라는 것은 친인척들 간에 똘똘 뭉쳐서 생활을 하기 때 문에 복음을 받아 들였다고 해도 신앙 생활을 지속해 나가기가 매우 힘들다 는 것입니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전도를 받아서 교회를 다니게 되면, 그 사 람은 집안 친척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게 되며, 심지어는 부모의 유산을 상속 받지 못하게 되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중도에 믿음에 서 떠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제주도에 있는 학교들은 벌초방학이라는 것을 하는데, 이것은 음력 팔월 초하루를 벌초하는 날로 정해 놓고서 초, 중, 고가 일제히 방학을 하는 풍습 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날 벌초를 하지 않고 주일을 이용해 서 하는데, 한 주는 직계 조상의 묘를 다음 한 주는 문중에 속한 조 상의 묘 들을 벌초를 합니다. 이때가 되면 제주도에 있는 교회의 대부분이 주일날 성 도들이 출석을 하지 못함으로 비상이 걸리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심지 어 “제사는 못 지내도 벌초는 해야 한다!”는 말이 있어서, 벌초를 하지 않 는 자식은 큰불효자로 취급을 받게 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좁은 지면을 빌려서 제주도의 풍습과 문화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소개를 해드 린 것은, 이 곳 제주도를 위해서 기도해달라는 간절한 바램이 있기 때문입니 다. 현재 제주노회에 속한 교회의 수가 열둘이지만, 아직은 미약한 교회들 이 더 많은 실정으로 육지에 있는 교회들이 더 많은 관심과 기도의 후원이 필요한 상태입니다. 내년에 우리나라의 굴지의 교단들이 이 곳 제주도에서 총회를 가진다고 하 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제주 복음화 위해 기도하기를 모쪼록 우리 교단도 국내 최초의 선교지인 이 제주도의 복음화를 위해서 더 욱 많이 기도해 주시고 협력해 주심으로 제주도가 명실공히 영육 간에 아름 다운 땅으로 변화되어지는 그러한 날이 속히 이를 수 있어지기를 두 손 모 아 기원합니다.
227 no image 교회 지도자의 삶_이연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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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8 2007-07-04
교회 지도자의 삶 이연재 목사/ 인천노회장, 대은교회 교회는 바른 신앙고백 위에 예수님께서 친히 세우신 그분의 몸입니다. 그 몸 에는 예수님의 생명이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반드시 건강 하게 부흥해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교회는 침체되고, 더 나아가 쇠퇴 하고 있는 실정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한국교회 침체 부인할 수 없어 그 이유를 어디서 찾아야 하겠습니까? 교회의 지도자들에게서 찾아야 할 것 입니다. 교회의 지도자가 바른 신학 위에 서서 바른 생활을 통해 바르게 교 회를 섬길 때 교회가 건강하게 부흥할 수 있습니다. 이런 지도자는 교회의 침체되고 쇠퇴하는 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또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성도들에게 제시하며 잘 순종하게 하므로 교회를 부흥시킬 수 있습니다. 첫째. 지도자는 성경에 근거를 둔 목적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땅에 교회를 흔드는 악한 영의 활동이 계속되고 있고, 악령의 지 배를 받아 진리를 대적하는 집단들이 우후죽순처럼 자생하여 활동하고 있 기 때문입니다. 지도자가 목적의식이 분명해야 이런 세력들로부터 교회를 지 켜낼 수 있습니다. 교회의 지도자들이 그들 자신들의 삶과 사역에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지게 되 고, 하나님의 계획을 깨닫고 실천하기를 추구하게 되면 교회가 힘을 얻고 갱 신되어 부흥할 수 있을 것입니다(잠 4:26-27). 둘째. 지도자는 일생 동안 건전한 발전을 지속적으로 이루어 가는 삶을 살아 야 합니다. 그 이유는 사역의 현장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고 일어나 면 새로운 것이 쏟아져 나옵니다. 안일하게 시간을 보내다가는 세상에 뒤떨 어진 사람이 되고 맙니다. 세상은 결코 뒤떨어진 지도자의 외침에 귀를 기울 이지 않을 것입니다. 한국 기독교는 초창기부터 20여 년 전 까지만 해도 사회 전반에 걸쳐 영향력 을 행사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교회의 영향력이 현저하게 줄어들었습니 다. 뿐만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손가락질과 조롱을 당하는 실정입니다. 때문 에 지도자들은 자신이 발전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딤전 4:12-15). 셋째. 지도자는 하나님이 주신 확실한 비전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지도자의 비전에 따라 교회의 모습은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지도자에게는 하 나님이 주신 교회에 대한 확실한 비전이 살아 있어야 합니다. 미래의 비전 에 대한 확실성은 과거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이 행하신 일에 대한 관점을 통 하여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비전은 언제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 안에 서 찾아야합니다. 수년 전, 미국 국무성에서 외교관 공개채용시험이 있었습니다. 최종 구술시 험에 쟁쟁한 박사학위 소지자, 대대로 미국에 뿌리를 박고 사는 백인 엘리트 들 그리고 국제외교 분야에서 이미 상당한 실무경력을 쌓은 실력자들이 첨예 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한국 출신 이민 2세인 정주리도 필기 시험에 합격되어 구술시험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아무런 경력도, 배 경도, 박사학위도 없는 처지에서 쟁쟁한 실력자들과 경쟁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어느 모로 보나 지원자 중 가장 불리한 여건에 있었습니다. 드디어 구술시험 날짜가 되었고 정주리가 시험관 앞에 앉았습니다. “당신 은 한국인의 후예로 한국에서 태어나 지금은 미국시민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 런데 만약 이번 시험에 합격하면, 앞으로 미국정부의 외교관이 되어 활동 을 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이익과 한국의 이익이 서로 충돌하는 현장에 있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당신은 어느 쪽의 이익을 선택하실 작정입 니까?” “저는 미국이나 한국, 그 어느 편에도 서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다만 정의 의 편에 설 따름입니다.” 가장 불리한 위치에 있던 정주리를 당당히 합격시 킨 결정적인 요인은 바로 이 한마디였습니다. 그녀는 철저한 신앙생활을 하 는 부모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성경을 읽으면서 정의 구현 에 대한 비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외교관이 되겠다는 꿈을 꾸게 된 것은 바로 자라온 과거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정의에 대 한 확실한 비전을 찾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성경 통해 정의관 가지게 돼 하나님은 오늘도 성경에 근거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건전한 발전을 지속적으 로 힘쓰는 지도자들에게 과거의 삶을 통해 계속해서 심어주신 비전을 발견하 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난날에 경험한 사건들과 만난 사람들을 깊이 통찰해 보며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찾 는 지도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226 no image 바른 지도자_안만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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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58 2007-06-27
바른 지도자 안만길 목사/ 중서울노회장,염광교회 서울 외곽 지역에 사는 성도를 심방하고 돌아오는 차안이었다. 오는 길이 멀 고 지루해서인지 서로 재미있는 이야기들로 꽃을 피웠다. 한참 얘기가 재미 있게 나가는데 어떤 분이 대통령에 대한 유머를 한두 편하게 되었다. 대통령 관련 유머에 웃음 나와 그 이야기를 상세히 할 수는 없어나 얼마나 웃기는 이야기든지 배를 잡고 웃 었다. 그야말로 실컷 웃었다. 한참 웃고나니 이게 잘하는 일인지 왠지 모르 게 약간 우울해 짐을 느꼈다. 한편으로 이 시대야말로 탈 권위주의시대로구 나 하는 것을 직접 체험할 수 있었다. 또 생각하면 우리나라도 민주주의가 매우 발달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었다. 군부 독재시절에는 꿈이라도 꿀 수 있는 일이었는가? 또 한편으로는 한 나라의 대통령이면 그 나라의 대표요 옛날로 생각하면 그 나라의 아버지인 셈인데 해도 너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야말로 대통령하기가 쉽지 않은 시대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았다. 지도자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는 것을 새삼 느낀다. 사사기 에 보면 여룹바벨의 아들 아비멜렉이 세겜에 가서 외가의 도움을 입어 세겜 사람들을 현혹하여 드디어 왕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그 과정에 있어서 아 비멜렉은 자기의 형제 칠십 명을 죽였다. 이 사태를 보고 요담이 그리심산 에 올라가서 백성들에게 사실을 규탄하면서 비유를 들었던 내용이 있다. 하루는 나무들이 나서 기름을 부어 왕을 삼으려고 하는데 감람나무에게 우 리의 왕이 되어 달라고 하였다. 그랬더니 감람나무가 말하기를 나의 기름은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는데 내가 어찌 그 사명을 버리고 나무들 위에 서 왕노릇 하겠는가 하고 사양하였다. 이번에는 무화과나무더러 왕이 되어달라고 하였더니 나의 단 것, 나의 아름 다운 실과를 내가 어떻게 버리고 가서 왕이 될 수 있겠는가하고 사양하였 다. 자기는 맛있고 아름다운 과실로서의 사명이 있는데 그것을 버릴 수 없으 며 쓸데없는 자리를 탐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포도나무에게 요청하였다. 우리의 왕이 되어 달라고. 그랬더니 포도나무가 하는 말은 자기가 맛있는 포 도주, 새 술이 되어서 하나님과 사람 들을 기쁘게 하는데 어찌 그것을 버릴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아무리 높은 자 리를 준다고 해도 이 좋은 일을 놓칠 수 없다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가시나무에게 왕이 되어 달라고 하였더니 하는 말 ‘너희가 참으 로 내게 기름을 부어 너희 왕을 삼겠거든 와서 내 그늘에 피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불이 가시나무에서 나와서 레바논의 백향목을 사를 것이니라’고 하였다. 가시나무는 그렇게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지 못하는 나무가 아닌가? 그저 도 둑을 막을 수 있는 울타리 역할을 하지 좋은 열매를 주지는 못한다. 그가 하 는 말이 도리어 자기는 불을 내어서 레바논의 백향목을 불살라 버리겠다고 하였다. 지도자의 좋은 그릇됨이 참으로 필요한 것이다. 가시나무는 그렇게 유익한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도 왕이 된다면 한다는 것이 불을 토하여 내겠 다는 의미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벌써 대선 정국으로 들어가서 후보들의 열띤 경쟁이 시작되고 있 다. 서로 검증을 일삼으며 자기의 지도력을 부각시키려고 하며 또한 상대방 흠집을 내기 위하여 온갖 말들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시대의 국민들이 바라는 지도자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겸손한 지도자가 필요하다. 국민들 위에 새로운 모양으로 군림하려는 자세 를 버리고 자기를 낮출 수 있는 지도자를 원한다.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지도자여야 한다. 우리 사회는 너무나 과거 지향적 이다. 물론 과거의 아픈 역사의 골이 깊은 까닭이 되겠지만 그래도 앞날의 비전을 제시하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중국이 바짝 뒤쫓아오고 일본은 저 멀 리 달아나고 있는데 우리는 엉거주춤하고 도리어 뒤로 밀리는 느낌을 받고 있지 않는가? 이때야말로 앞날의 비전을 명백하게 보여주는 지도자가 필요하 다. 국민은 덕성 지닌 지도자 원해 지도자다운 덕성과 품격을 지닌 지도자여야 한다. 지도자는 말 한마디를 해 도 깊게 생각하고 품위 있게 말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국민들을 진심으로 사 랑하는 지도자라야 한다. 이런 지도자를 기대하는 것이 꿈이 아니기를 바란 다.
225 no image 반기독교시민운동에 관하여_박영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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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18 2007-06-21
반기독교시민운동에 관하여 박영수 목사/의정부성광교회,북서울 노회장 얼마 전 일간지의 한 칼럼을 보다가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이유인즉 한 단 체가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순과 궤변을 엮어놓은 허구이고, 저주와 악담을 뭉쳐놓은 무서운 내용의 책이며, 포르노 따위의 음담패설이 난무하 는 악서”라고 규정해놓았기 때문이다. 성서를 악서로 규정한 반기련 이 단체는 반기독교시민운동연합(일명 반기련)이라는 단체로 2003년 11월 반 기독교운동을 표방하고 나선 회원 1만 명 규모의 시민운동단체이다. 이들은 최근 어린이들의 마음을 더럽히지 않고 깨끗하게 지켜주기 위해 어린이들 주 위에서 성경을 철저히 차단시키겠다는 목적으로 “악서 바이블 어린이 금서 제정운동 1000만 명 서명운동”까지 벌이고 있다. 또한 이들은 인터넷을 통 해 기독교는 개독교로, 목사는 먹사로, 교회를 개집으로, 기독교인을 개독으 로 비방하는 등 말할 수 없는 폄하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런 현상을 보면서 참 으로 통탄을 금할 수 없었다. 이들이 과연 기독교에 관하여 얼마나 깊이 이해하려고 애써 보았으며, 또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을 몇 번이나 읽어보았는지, 얼마만큼 심도 있게 살펴보고 이런 궤변을 늘어 놓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민족, 가장 뛰어난 두뇌를 가진 민족을 꼽으라 면 단연 유태인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의 인구는 약 1300만 명 정도요, 이들 의 면적은 남한의 1/3 크기 정도에 불과하지만 전 세계에 퍼져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의학 등의 각 분야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그 한 예로 현재 전 세계의 노벨상을 수상한 약 600여 명 중 1/3이 유태인이라는 사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들의 뛰어난 두뇌와 우수성 은 어디에 근거한 것일까? 수많은 학자들이 연구를 통해 그들의 우수성은 그들이 정신적 지주로 삼는 토라, 즉 성경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디모데 전서 3장 16절 에는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 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와 같이 성경은 수많 은 사람들을 바 르게, 의롭게, 뛰어나게 만든다. 우리나라는 유구한 반만년의 역사를 갖고 있지만 불과 120년 전까지만 해 도 지극히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나라였다. 그러나 120년 전 이 땅에 복음 이 들어옴으로 인해 우리나라는 놀랄만한 부흥과 성장을 이루어왔다. 이러 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기독교의 가치와 생명력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한편, 기독교의 복음의 능력은 인간을 완전히 바꿔놓기도 한다. 유명한 장 군이요 문학적인 천재였던 루 웰리스와 그의 친구인 무신론자 잉거솔은 “기 독교인들은 그럴 듯한 굴레에 씌워져 그곳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성 경은 공허하고 황당무계한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함께 기독 교를 바로 파헤쳐서 기독교인들이 믿고 있는 교리와 그들이 따르는 예수 그 리스도란 자를 영원히 말살해버리기 위해 책을 쓰기로 했다. 그리하여 약 2년 간 영국을 비롯한 유럽과 미국 등 유명한 도서관에서 연구 하던 중, 그는 그의 책 제2권을 쓰던 중 무릎을 ‘탁’치면서 울부짖고 말았 다. “Oh my Lord! Oh my God!”(오! 나의 주! 오! 나의 하나님!). 성령이 그를 감화시킴으로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 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기독교인들을 사기꾼으로 폭로하려고 했던 그가 예수 그리스도에 게 완전히 사로잡히게 되었고 그 앞에 굴복하고 말았다. 그후 루 웰리스는 그의 뛰어난 문학적 재능으로 예수에 관한 뛰어난 작품을 남기게 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그 유명한 ‘벤허’이다. 이처럼 복음의 능력은 인간의 마음 을 180도 바꿔놓기까지 한다. 지금의 반기독교세력들 또한 복음의 능력을 체 험하고 그들에게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면 루 웰리스와 같이 복음을 증거하 는 데에 앞장서는 자들로 바뀔 것이다. 성서에 대한 연구 앞서야 현재 우리는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이 일어난 지 100년이 지난 시점에 살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의 반기독교적 운동은 우리가 더욱 기도하는 일에 힘 쓰며 더 나아가 이들에게 기독교의 진리를 증거하는 일에 앞장서라는 하나님 의 섭리로 이해해야 하며 또한 실천해야 할 것이다.
224 no image 자녀에게 꿈을 심는 교회_임영문 목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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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70 2007-06-13
자녀에게 꿈을 심는 교회 임영문 목사/ 부산 평화교회,부산노회장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다음 세 대를 준비시켜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키워내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세 대 뿐 아니라 다음 세대를 준비하고 키우라고 하십니다. 다음 세대의 일군들 키워야 신명기 6장 2절은 “곧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로 평생에 네 하나님 여호와 를 경외하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며 또 네 날을 장구케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저는 어릴 때엔 교육에 관한 도전을 거의 받지 못했기 때문에 자라나는 우 리 아이들의 교육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저의 목회 방침 중 하나 가 “자녀에게 꿈을 심는 교회” 입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훌륭한 교육도 하나님의 진리 기초 위에 세워있지 않으 면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주일학교 교육은 매우 중요합니 다. 저는 주일학교 출신으로 어느 정도 주일학교 교육을 잘 받았다고 봅니 다. 그 이유는 저희 동네 30여 명의 제 또래 중에 주일학교 출신인 저만 탈 선하지 않고 믿음 안에 잘 자라서 목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목사가 된 후에도 교회 안에서 자라나는 다음 세대를 볼 때마다 늘 아쉬움을 갖습니다. “교회가 어떻게 해야 자라나는 세대를 영성과 지성을 갖춘 자로 양육해 세상과 경쟁력이 있게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목사가 이것을 위해 항상 고민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는 이유 는 교회가 이 세상의 유일한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외국에 나갈 때마 다 뼈저리게 느낀 사실은, 성도가 믿음이 있어야 하지만 언어 실력도 있어 야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자신의 신앙고백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영성이 있는 자들보다 영성과 지성의 실력을 골고루 갖춘 사람들을 더 원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영성 있는 사람은 많지만 영성과 실력을 제대 로 갖춘 자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섬기고 변화시키려면 교회가 영성과 실력을 갖춘 인재를 세워내는 일에 전심전력해야 합니다. 이 소임을 다 할 때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속히 임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교회는 이런 신앙과 믿음 배경 아래 영어교실과 독서스쿨(비전스쿨)과 기독교대안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영성과 실력을 겸비한 다 음 세대를 키워내기 위해서라면 방과 후 교실과 유치원도 과감하게 세우고 싶은 소망이 있습니다. 요즘 저는 자라나는 자녀들에게 꿈을 심어주기 위한 하나의 대안으로 부산에 서 약간 떨어진 시골에 주말교회(전원교회)를 설립하는 소원을 품고 기도합 니다. 우리나라가 몇 년 전부터 격주 토요 휴무 제를 실시하고 있는데 곧 전 영역에서 주 5일제가 적용 될 것입니다. 그 때 우리교회의 소그룹 단위 인 기관, 가족들이 금요일 저녁에 전원교회로 이동해 함께 먹고, 자고, 기도 하며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자녀교육, 부부교육, 가정세미나, 부서별 세미 나 시간을 통해 신앙 안에서 더 풍성한 주말을 갖길 원합니다. 다음 날인 주일엔 시골교회 성도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교제하면서 섬길 때, 자립이 어려운 시골교회 성도들에게 한없는 위로와 격려가 될 것입니 다. 이러한 시도는 교회 안의 다음 세대에게 새로운 꿈을 심어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영성과 실력을 겸비한 세상이 감당치 못할 주님의 일꾼이 되게 하 는 방법이 될 것입니다. 영성과 실력 갖춘 인재 되길 저는 오늘도 우리 교회 자녀들에게 꿈을 심어주기 위해 소원을 품습니다. 그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기뻐할 만하고 선하고 온전한 꿈이면 속히 이루어 질 수 있게 도와 달라고 성령님의 도움을 간구합니다. 여러분도 이 기도에 함 께 동참하고 싶지 않으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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