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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 no image “세계 교회 개혁 견인차 되기를”_오덕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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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72 2006-02-16
“세계 교회 개혁 견인차 되기를” 오덕교 목사_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총장 합신 교단이 설립된 지도 벌써 25년이나 되어간다. 총회 임원회는 교단 설립 25주년에 맞추어 기념 행사를 크게 열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행사가 성공적으 로 마치려면 전국교회의 전적인 지원과 동원이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 교단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크게 성장하여 760여 교회를 이루고 있지 만 1만 교회를 가진 합동측, 7천 교회의 통합측에 비하면 아직도 군소 교단 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교단이 한국 사회에서 영향력 있는 교 단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은 온 교회가 일심 단결하여 바른 신학, 바른 교회, 바른 생활 운동을 실천해 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교회에 희망을 주는 교단 이념 합신 교단의 설립 이후 한국 교회는 영적 침체기를 경험했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합동신학대학원이 배출한 1,739명의 졸업생들은 박윤선 박사의 가르침처 럼 “침묵정진” “여주동행”하면서 괄목할만한 교회 성장을 이루어왔다. 수 적으로 볼 때 합신인들은 한국 전체 목회자의 2%밖에 안 되지만 수많은 이들 이 중국과 영국, 미국에서 가장 큰 교회들을 섬기고 있고 10여 명이 국제적 인 선교 단체의 책임자로 일하고 있다. 구체적인 예로 성경번역선교회(GBT)에서 지난 25년 간 11개 언어로 성경을 번 역했는데 그 가운데 8개 언어가 합신인들이 하였다. 이는 합신인들이 얼마나 성실하게 주어진 일들을 잘 감당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이다. 그렇지만 10년 후 우리의 장래가 그리 밝지만은 않다. 인구의 감소는 교인의 감소를 이끌 것이고 그 결과 신학 지원자들이 급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는 이미 일반대학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몇 년 전만 해도 대학 교 입시생이 100만 명이 넘었지만 올해는 58만 명이었고 2013년에는 38만 명 이 될 것이라고 한다. 1975년에는 상위 25%에 속한 사람들만 대학에 진학하였지만 올해의 경우 82% 에 속한 사람들도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고 앞으로는 누구나 대학에 진학할 때가 올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대학생의 질을 저하시키게 될 것이고 이는 신학교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지난 세기에는 학문이 약하더라도 기도만 많이 하면 좋은 목회자로 인정을 받 았다. 그러나 지식 정보 사회인 21세기에는 경건만이 아니라 학문성을 겸비 한 목회자를 요구할 것이다. 인구 감소는 목회자의 수급에 차질을 초래할 것 이고 목회자의 수급이 영향을 받게 되면 목회자의 질도 떨어질 것이다. 또한 학문성과 경건성이 떨어지는 목회자가 많이 나오게 되면 교단의 장래에 어두 운 그림자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만인이 우러러보는 학교와 교단을 만들고 인품과 경건 그리고 학문성이 뛰어난 인재들을 양육하는데 최선을 다 해야 할 것이다. 학문, 경건 뛰어난 지도자 요구돼 합동신학대학원은 지난 25년 동안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교수와 학생의 비 율을 낮추는 중에 1:12까지 이르게 하였고 신학의 국제화를 이루기 위해 내년 부터는 신학석사 과정부터 점차적으로 영어로 강의를 할 예정이다. 또한 아시 아 지역의 교수요원들을 초청하여 교육함으로 아시아 신학을 이끌 비전을 가 지고 있다. 이를 위해 학교는 교회가 필요로 하는 씀직한 일꾼을 양성하고 교단은 학교 를 신뢰하고 지원하는 가운데 함께 발전하 고 성장하여 한국교회와 세계교회 의 견인차 역할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162 no image 입맛 따라 설교 평가하는 시대_김원광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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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37 2006-02-16
입맛 따라 설교 평가하는 시대 김원광 목사_중계충성교회 최근에 방송설교를 하다보니 은혜 받아 감사하다는 말들을 종종 듣는다. 그 와 더불어 정반대의 말들을 들을 때도 있다. 일종의 항의성 전화이다. 얼마 전 일이다. 방송을 통해 나간 설교를 듣고 한 분이 전화를 했다. 그분은 전 화 받은 우리 교회 교역자에게 이렇게 항의했다. “방송설교 중에 왜 문둥 이, 혹은 문둥병자라는 말을 사용하는가? 그 교회 목사는 이 용어가 인권위원 회에서조차 사용금지 되었다는 사실도 모르는가?” 설교 용어가지고 항의 받아 그 말을 전해들은 나는 우선 그분이 혹시 내 설교로 인하여 입었을지 모르는 마음의 상처에 대해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성경에 나타나 있는 용어임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항의를 할 정도로 마음에 상처를 안고 사시는 분이 있었지 만 미처 그런 분들을 고려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조금은 안타까 운 마음을 갖게 된다. “아! 이제 더 이상 사람들이 설교를 순전한 마음으로 받지 않는구나!”라는 생각 때문이다. 한번 생각해 보라. 한센병을 앓고 계신 분의 면전에서 ‘문둥이’ 혹은 ‘문 둥병자’라는 말을 사용했다면 그것은 인권을 유린하고 질병 중에 고통하는 성도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방송을 통하여 불특정 다 수에게 설교하는 어떤 목사가 과연 일부러 한센병을 앓고 계신 분들의 인권 을 무시하여 그런 설교를 하겠는가? 더구나 ‘문둥병자’라는 말은 현재 우리말 성경에 분명히 사용되고 있는 용 어이다. 그리고 당시 시대의 상황을 표현하기에 훨씬 정확한 단어는 ‘한센 병 환자’보다는 ‘문둥병자’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 시대에는 오늘날처럼 인권 보호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또한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길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 일을 통해 이런 질문을 해 보았다. “오늘날 사람들에게 설교란 무엇일 까?”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설교는 더 이 상 선포가 아닌 기호품에 지나지 않은 듯하다. 이제 설교를 듣는 이들은 “이 렇게 설교하라, 저렇게 설교하라”고 지시한다. 심지어 자기 입맛에 맞지 않 으면 설교 자를 공격하기까지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늘 설교하는 사람으로 서는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설교가 자기 입맛에 맞다 안 맞다 하기 전에 먼 저 그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앞으로 이런 모습을 찾아보기 란 쉽지 않을 듯 하다. 오늘날은 모든 성도들이 설교를 평가하는 시대이다. 요즘 사람들은 설교에 많 은 해학과 지식, 정보들이 담겨 있는 것을 좋아한다. 그 말씀이 얼마나 정확 하게 해석되었는가는 그 다음이란 생각이 들 정도다. 물론 유머의 사용과 같 은 것들이 모두 잘못되었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문제는 설교의 내용보다는 유머 자체의 강화로 인하여 본질을 놓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현대 교회 목회자들은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사 람들은 매스미디어와 인터넷 등을 통해 언제든 국내외 저명한 설교자들의 설 교를 마음껏 들을 수 있다. 더불어 사람들의 귀는 이전 보다 크게 높아졌고 더 좋은 설교를 듣고 싶다는 욕구를 갖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자연히 설교 자들은 비교가 된다. 그러다 보니 전달 방법도 옹색하고 내용의 탁월함도 없 는 나와 같은 일반 목회자들의 설자리는 갈수록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십분 양보한다 할지라도 말씀이 권위를 잃어서는 안 된다. 성도들은 마땅히 설교를 하나님의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 다. 설교는 흥밋거리가 아니며 사람의 입맛을 채워주는 기호품도 아님을 잊 지 말아야 한다. 바울 사도는 딤후 4장 3-4절에서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 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고 교훈했다. 설교에 대해 내 입맛 에 맞다 안 맞다 하는 것은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귀가 가려워 자기 의 사욕을 좇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 아닐까? 말씀의 권위는 전하는 자 의 권위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다. 설교의 권위는 말씀 자체로부터 나온다. 비록 어린아이의 입술을 통해서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면 그것은 권위 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심지어 나귀를 통해서까지 발람을 책망하지 않으셨던 가? 말씀 자체 권위 인정돼야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생각나는 대로 쓰다보니 두서가 없는 글이 된 것 같 다. 이래서 글 쓰는 사람 이 아니라 말하는 목사가 되게 하셨나보다. 하여튼 글을 쓰다보니 마음에 조금은 여유가 생긴다. 오늘도 나는 기대한다. “건전 한 모든 교회의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들이 권위 있게 성도들에게 전달되기 를 그리고 그로 인하여 한국 사회 전반에 새로운 부흥의 불길이 일어나기 를…”
161 no image 끊임없이 변하는 세상에 바른 길제시하길 _김기영 목사 (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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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20 2006-02-16
끊임없이 변하는 세상에 바른 길제시하길 김기영 목사/ 화성교회 개혁신보 주간 발간을 축하합니다. 무엇보다 빠른 소식을 접할 수 있어서 좋 다고 생각합니다. 신문이란 그 말이 포함하는 대로 신(新)이란 의미가 있습니 다. 지나간 소식은 의미가 퇴색됩니다. 그러므로 격주간에서 주간으로 발간하 는 것에 대하여 모두 원하는 바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재정 능력이 부족하여 부담은 되지만 그만큼 발전하리라 기대를 합니다. 바라던 주간 기대돼 신문이 격주간으로 발간될 때는 시간과 관계되는 광고를 내기가 어려웠습니 다. 교회 임직식이나 큰 행사를 신문 발간에 맞추다 보니 너무 일찍 내어 독 자들에게 잊혀질 수 있었고 너무 늦어 시일을 놓친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제 는 교회의 소식을 제 때 알릴 수 있어 좋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 일을 위하여 각 교회가 아무쪼록 관심을 가지고 헌신해야 할 것입 니다. 구독자 확장과 아울러 교회의 지원이 따라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몇 가지 바라는 바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교단지의 정체성에 관하여 분명히 말하기를 바랍니다. 물론 어떤 것은 의견이 다를 수 있고 어떤 논쟁이 되는 문제는 회의석상에서 만 알고 신문에까지 알리지 않을 것이 있습니다. 쌍방간의 문제는 더욱이 수 차례 만나 논의를 거쳐 합의할 것인바 혹이나 교단지가 양쪽의 싸움터로 보이 지 않기를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교단지는 교단의 신학 사상을 이끌어 가는 사상이 들어 있습니다. 단순히 여러 가지 들리는 것, 보이는 것을 아무렇게 나 모아 올리는 것은 아닙니다. 현재 교회에 배달되는 기독교계의 여러 신문들(구독요청을 하지 않아도 배달 되는)을 보면 각 신문마다 특색이 있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특색이 있는지 가 만히 보면서 그 교단의 신학 방향과 정체성을 신문을 통하여 읽을 수 있습니 다. 같은 사건에 대하여 신문이 말하는 입장은 각각 다릅니다. 심지어 어떤 기독 교 신문은 특정 이단을 연재로 싣고있습니다. 사형제도에 대하여 찬반 신문들 의 입장이 다릅니다. 미국철수에 대하여 신문들의 입장이 다릅니다. 우리 신 문은 현대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하여 개혁주의 입장이 무 엇인지 사회를 향하 여 말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개혁주의 사상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 이 변하는 세상에 바른 길을 계속 말해야 할 것입니다. 옛 사상과 다른 타락 한 새로운 사상이 아니라 새로운 옷을 입고 나오는 개혁주의 사상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가장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마도 갈수록 더할 것으로 생각되는 데, 교회의 본질에 대한 문제입니다. 교회를 백화점에서 물건 사는 것처럼 생 각하고 있는 사람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교인들은 더 이상 교파라는 딱지를 달려고 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들에게 무엇이 도움이 되느냐를 생각할 뿐입니 다. 한국에서 미래 목회 예언에 관하여 책을 쓴 한 어느 목사도 미래는 교파구분 이 없어질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챨스 콜슨은 “이것이 교회다”라는 책에 서 “현대인들은 교회와 목사를 자주 바꾼다. 심지어 거래 은행이나 단골 백 화점 가게를 바꾸듯이 교파까지 쉽게 바꾸어 버린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같은 책에서는 이런 내용도 나옵니다. US Today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 의하 면 전체 미국인중 56%가 교회 교인인데 이중 45%는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에, 26%는 마음의 평화와 정신적 안정 때문에 교회 출석한다고 대답했다 고 합니다. 교리 문제는 중요시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교회 의 본질에서 교리를 빼놓으면 남은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보이지 않는 뼈대 가 되는 교리는 새로운 시대를 향하여 길을 제시하는 원천입니다. 교회의 본질 제시해아 끝으로 많은 구독자들이 원하는 바 교계의 소식, 우리 교단은 물론이고 타 교 단의 소식도 알려주었으면 합니다. 한두 주간 지난 소식이라도 알리고 우리 의 입장에서 간단한 코멘트를 붙임도 때로는 필요할 것입니다. 개혁신문이 이전보다 많이 부드러워졌다고는 하지만 아직 피곤한 머리를 쉬면 서 읽을 수 있는 거리가 적습니다. 어떤 것은 발로 뛰어다녀야 되지만 인터넷 이 발달한 요즘은 앉아서 뒤지면서 얻을 수 있는 것도 많을 것입니다.
160 no image 25주년을 맞아 기본에 충실하길-나종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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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47 2006-02-16
25주년을 맞아 기본에 충실하길 나종천 목사_한사랑교회 올해는 우리 교단 설립 25주년을 맞은 해이다. 그러기에 2006년도는 그 어느 해보다 중요한 한 해이기도 하다. 교단적으로도 지난 25년을 돌아보고 힘찬 새 발걸음을 위해서 많은 기도와 준비를 하고 있는 줄로 안다. 그동안 우리 교단이 걸어 온 길은 우리만의 감동이 아니라 한국교회와 교단에 작은 감동 과 도전을 주었다. 지난 시간은 감동의 연속 우리 교단을 하나님이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얼마나 귀 한 일을 이루셨는지를 알고 있다. 그러기에 교단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뿐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걸어온 길이 버겁고 힘든 길이었지만 주 님이 기뻐하신 길이기에 묵묵히 여기까지 걸어왔다. 때로는 너희들만이 바르 냐는 질타를 들으면서 또 폐쇄적이고 독단적인 모습으로 비쳐지면서까지 ‘바 름’이란 단어로 처음의 마음을 잃지 않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와 교단으 로서 역할을 위해 어렵지만 주어 진 사역 현장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왔 다. 하나님의 교회가 바르기만 하면 그 시대와 온 세상이 희망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분명히 믿고 있다. 하나님의 교회가 바른 교회가 되기만 하면 세상을 뒤집어엎을 수 있다. 컴퓨터 화면에 예쁜 아이콘이 뜬다. 그 아이콘을 클릭하 기만 하면 프로그램이 작동한다. 그러나 그 예쁜 아이콘 내면에는 강력한 하 부 구조가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교회도 겉으로 보이지 않는 강한 하부 구조로서 성령의 역사가 있다면 강력하게 구동할 수 있다. 이런 강력한 교회 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수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소수의 능력의 그리스도인 이 있으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그러기에 힘들더라도 우리 교단과 교회 가 기본에 충실했으면 한다. 첫째, 법에 충실하자. 우리는 전적인 부패와 전적인 타락을 믿는다. 인간 가운데 범죄하지 않은 인 간이 어디 있겠는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 3:10). 우리가 죄 인임에도 살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다. 그러나 은혜 중에 가장 큰 은혜는 법이라고 생각한다. 교단의 헌법과 노회 규칙 그리고 교회 정관과 규칙을 만 들어 놓았다. 왜 이런 것이 필요한가? 그것은 인간의 부패와 타락상 을 잘 알고 있기에 만들어 놓은 은혜의 선물이다. 많은 사람들은 법을 은혜와 상반된 악한 것으로 보지만 그렇지 않다. 인간의 죄성을 붙잡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머물게 하며 더 큰 하나님의 은혜로 나 아가게 하는 것이 법이다. 큰 교회일수록, 어른일수록 이 법에 더욱 충실한 것이 우리 모두가 은혜 가운데 더 풍성히 거하게 하는 것이다. 둘째, 교단적인 교육이 계속되어야 한다. 사람이 장성할수록 귀가 닫힌다고 한다. 폐쇄적이 된다는 말일 것이다. 우리 교단은 시간이 갈수록 성장할수록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졌으면 한다. 악함이 란 무엇인가? 그것은 죄를 짓고도 듣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듣는 것은 죄 인으로서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지도자가 듣는 것이 없다면 그는 백성 을 망하게 하는 지도자일 것이다. 다윗도 죄를 지었다. 그러나 그는 듣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된 것이다. 삼손도 죄를 지었다. 그러나 말년에 들었기에 믿음 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 상 15:22). 듣는다는 것은 곧 배우겠다는 겸손한 자세이다. 교단 적으로 더 나음을 위해 끊임없이 학습이 계속되었으면 한다. 학습하는 지도자 를 둔 양떼만큼 복된 양들이 있을까? 항상 듣는 겸손을 통해서 새롭게 도약하 는 교단이 되었으면 한다. 셋째, 개혁주의 교회의 참 모습은 노회가 교회를 세우고 목사를 세우며, 목사 를 파송하고 치리하는 일에 있다. 이 일에 원칙과 법을 지켰으면 한다. 개 교 회가 어느 목사를 청빙하고자 할 때 목사 청빙서를 노회에 두 통을 보내고 그 청빙서를 노회가 접수하여 살핀 후 한 통은 노회에 보관하고 다른 한 통 은 청빙받은 목사에게 보내게 된다. 그후 그 목사의 허락을 받은 후 노회가 그를 그 교회에 시무케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중요한 것 중 하나가 교단이 추구하는 개혁주의 교회를 세우기 위함인 줄 안 다. 개혁 의지 실천으로 나타나야 예를 들면 어느 한 교회의 목사를 청빙하는 일은 그 교회만의 목사가 아니 다. 노회의 목사요, 교단의 목사이다. 더 나아가 우리가 걸어온 신학과 신학 교와의 관계이기도하다. 이런 사정들을 개 교회는 잘 살펴야 한 다. 노회 또 한 이런 사정들을 고려하여 투명하게 진행하여야 할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 고 어떤 원칙의 틀이 무너지면 우리가 추구하며 출발했던 기초가 흔들리는 위 기를 초래하고 말 것이다. 개혁주의의 꽃은 목사 청빙이요 파송이다. 이런 기 본이 지켜짐으로 더욱 건강한 교단으로 발전하여 모두에게 희망을 주는 교단 이 되길 바란다.
159 no image 개혁의지 새롭게 다짐해야_우종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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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9 2006-02-16
개혁의지 새롭게 다짐해야 우종휴 목사_황상교회 해가 바뀌었습니다. 새로운 한 해를 맞을 때마다 사람들은 희망을 말합니다. 우리 교단으로서는 상당히 의미 있는 해입니다. 25주년 기념대회를 갖기로 한 것이 그러합니다. 그런 점에서 2006년의 첫 달에는 지나간 25년을 되돌아 보면서 뜻 깊은 한 해가 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25년의 지난날을 돌이켜볼 때 우리 나름대로 감사하고 또 다른 사람들의 부러 움을 살 만한 일들이 많습니다. 어느 교단보다도 깨끗한 편이라고 자타가 함 께 인정할 만합니다. 그 외에도 교단을 초월하여 초교파적인 연합회에서도 적 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단이 이만큼 되기까지 힘쓰고 애쓰신 분들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것이 우리들이 25년 전의 개혁의 기치를 들었던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만에 하나라도 우리가 다른 교단과 비교하면서 개혁의 고삐를 느슨하게 한다면 우리는 주님의 책망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점검하여 개혁의 의지를 다져 야겠습니다. 25주년 기념대회 준비위원회에서 점검하고 새롭게 다짐할 것이라 고 생각합니다만 기념대회를 치르게 되는 새해 첫 달에 우리의 지난날의 발자 취를 되돌아보면서 개혁 의지를 새롭게 다짐을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첫째, 우리는 개혁주의 신학을 고수하기를 결심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신학적으로 매우 혼란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온갖 종류의 건 전치 못한 운동들이 어지럽게 춤추고 있습니다. 사역에 열매가 없는 것이 신 학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마음이 흔들리는 사람들이 없어 보이지 않습니다. 문제가 있다면 우리 자신에게 있습니다. 우리 자신을 고쳐야 합니다. 은근히 우리를 비웃는 자들도 없지 아니합니다. 우리의 처지가 사람들 보기 에 딱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우리의 바른 신학을 붙들어야 합니 다. 혼란한 때일수록 진리를 붙들어야 합니다. 진리를 더욱 잘 배워서 확신 에 서야 합니다. 처음 총회로 모였을 때 천명한 대로 성경적 개혁주의 신학 이 가장 올바른 신학임을 확신하고 그것을 고수하 기로 다시금 굳게 결심해야 합니다. 둘째, 바른 진리 위해 열심을 다합시다. 진리를 가지고 있으면서 우리가 열심히 없으므로 그 진리를 증거하지 못했다 면 우리는 책임을 면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형편이 어떠하든, 우리 에게 맡겨진 일터가 크든 작든 우리의 양 떼를 부지런히 돌보아야겠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가르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온전한 자로 세우고자 힘을 다해 수고한 것처럼 우리가 믿는 바를 열 심히 가르쳐 주님의 교회를 올바르게 세우도록 힘써야겠습니다. 앞서간 신앙의 선배들처럼 진리를 사랑하고 가르치는 일에 집중합시다. 사람 들이 우리를 보고 무어라고 하든지 진리를 가르치고 전하는 일에 골몰합시 다. 눈에 보이는 열매가 적다고 해서 낙심치 말고, 오래 참음 가운데 진리를 끈질기게 가르쳐 지키게 합시다. 셋째, 바른 교회의 모습을 증거합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지역 교회나 노회나 총회가 그리스도의 한 몸입 니다. 교회에서나 노회나 총회가 어느 직분 자나 어떤 사람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이름만이 높이 드러나게 해야겠습니다. 특별한 은사를 받은 개인이나 교회는 주께서 교회나 교단에 주신 귀한 선물입 니다. 선물보다도 선물을 주신 주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게 합시다. 교회는 세 력 단체가 아니라 증거 단체라고 고 박윤선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당회 나 노회나 총회로 모일 때, 나아가서 연합회로 모일 때에도 어떤 사람이나 어 느 교회의 이름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드러나게 하는 교단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넷째, 진정한 부흥을 위해 기도합시다. 우리가 가르치는 바가 우리의 삶 속에서 증거가 되기 위해서 하나님의 도우심 을 구해야겠습니다. 가르치고 다스리는 우리들 안에서 진리가 살아 역사하도 록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합시다. 우리들의 가정에서 부흥의 불길이 일어나 기를 위하여 기도드립시다. 우리들이 섬기는 주님의 교회에서 주님의 거룩함 이 드러나고 주님 나라의 화평을 이루도록 기도드립시다. 같은 신앙을 고백하 고 동일한 정치를 약속한 노회, 총회나 이웃 교회에 하나님의 영광을 함께 나 누는 참된 부흥이 일어나기를 기도드립시다. 지난 25년 동안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일들이 적지 아 니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만족하지는 맙시다. 이제 우리 함께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성령님께 붙들린바 되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더욱 힘껏 달려가 는 그리고 개혁의 깃발을 한 층 더 높이 드는 새로운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 다. 그리하여 우리가 복을 누리고 우리를 통하여 한국 교회가 더 많은 복을 함께 누리기를 소망합니다.
158 no image 크리스마스 유감?_박성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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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99 2006-02-16
시론 크리스마스 유감? 박성호목사·푸른초장교회 크리스마스 유감? 미국의 심리학교수 한 분이 학생들에게 단어 연상테스트를 하기 위해 ‘크리 스마스’라는 단어를 주고 생각나는 것 하나씩을 적어 보라고 했다. 츄리, 선물, 전나무, 칠면조, 캐럴, 산타클로스, 카드 등 모두 각각 생각나 는 대로 적은 답변들이 등장했다. 안타까운 것은 “예수” 또는 “그리스도” 라는 단어를 적어낸 학생은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CHRIST)라는 말과 매스(MASS : 경배)라는 말의 합성어 이다. 그리스도를 경배하는 날이라는 말이다. 성탄절은 우리의 왕이시며 구세 주이신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영원한 시간에서 실시간으로 그리고 무한의 세 계에서 유한의 세계로 우리를 구하시려 성육신 하신 날이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님이 이날의 중심이요 경배를 받으셔야 마땅하다. 그런데 그리스도도 모르고 전혀 경배할 의지도 없는 백화점이나 유흥가에서 성탄절 특수를 위하여 제일 먼저 성탄 츄리를 세우고 휘황찬란 한 전등과 장식으로 성 탄절을 선전하고 있다. 반면에 그리스도를 전하여야 할 교회에서는 상대적으로 점점 성탄절의 행사 가 축소되고 초라해지고 있다. 우리가 어렸을 적에는 정말 크리스마스를 손꼽 아 기다렸다.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여러 가지 축하 행사를 준비하여 이웃들 을 초청하여 잔치를 벌였다. 새벽에는 잠도 자지 않고 새벽송을 부르면서 집 집마다 방문하며 예수 오심의 기쁜 소식을 전했다. 새벽송은 믿지 않는 분들 과 파출소나 면사무서 등 관공서에서까지 요청할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물론 이런 행사 자체가 성탄의 의미를 바로 새기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 다. 그리고 오히려 자칫 잘 못하면 사람들끼리 즐기는 모임으로 끝날 수도 있 다. 그러나 이런 성탄 행사가 주는 긍정적인 면이 많음을 부인할 수 없다. 지난날의 주일학교 부흥이 성탈절을 중심으로 많이 이루어졌다. 지금도 전도 를 하다보면 어렸을 때 크리스마스 때에 교회에 갔었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고 고백하는 분들이 많다. 그렇게 고백하는 분들은 쉽게 복음을 받아들인다. 전도를 해도 교회당에 첫발을 옮기는 것이 어색하고 두렵고 무척 힘드는 일이 다. 그러나 어렸을 적에 한번이라도 와 본 사람은 쉽게 적응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수그리스도를 주로 모신 교회가 세상의 성탄 문화를 리드해 나가야 하는 것 이 옳지 안겠는가? 그런데 이렇게 주객이 전도된 것처럼 변한 것은 무엇 때문 일까? 첫째는 물질 문명의 발달과 사회 변화 등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이 유 중 하나는 인간의 타락한 본성에서 나온 자기 중심사상 곧 이기주의 때문 일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 위해 자신의 몸까지 주려고 오셨는데 우리는 성탄 선물 받는 것에만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던가? 주님 중심으로 주님의 사랑을 증거해야 할 성탄 행사를 자기 중심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행사로 참예하지 않았던가? 가정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면서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함께”라는 구호를 외 치며 소외된 하나님의 가족보다 자기 가족 중심으로 지내는 크리스천이 많아 졌다. 예수님은 사랑하기 위해 태어나셨는데 우리는 “당신은 사랑 받기 위 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노래 부르면서 받을 사랑만 생각하지 않았는가? 이렇 게 되다보니 성탄의 참 의미는 사라지고 그저 축복의 통로로만 변질되게 된 것이다. 우리 그리도인도 이럴진대 하물며 상업주의적인 세상은 더 말할 것이 무엇이 겠는가? 우리가 먼저 예수그리스도의 오신 목적과 참 사랑을 다시 한번 확인 하며 회복해야 할 것이다. 둘째로 또 다른 한 가지 이유는 예수님 오신 날을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나타 나는 현상이다. 성경에 예수님의 탄생 기록은 있지만 그 날자는 알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성 경에도 없는 날을 지킬 필요가 없으며 또 이 날이 이교도들이 태양신을 숭배 하는 날이었다는 주장을 펼치면서 아예 성탄절 모임이나 예배조차 드리지 않 는 목회자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이런 현상이 오게 하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물론 성탄절은 절기도 아니다. 또 절기라 할지라도 이제 예수 안에 있는 우리 는 절기도 날짜도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이 날에 전 세계의 거의 모든 민족 이 예수 그리도의 이름을 부르며 그 사랑을 실천하자고 외치는 만인의 명절 로 정착되었는데 이 날 모여서 예배드리며 축하하는 것이 오히려 주님의 오심 과 사랑을 전하는데 크게 유익 되지 않겠는가? 물론 주일 성수하듯 지키자는 말이 아니다. 매일 모여 예배를 드려도 감사해 야 할 우리가 세계 적인 공휴일에 함께 모여 예배하고 찬양하며 예수님 오심 을 전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귀한 일인가? 오히려 권장해야 할 일이라 생 각한다. 특히 이 날을 가족들이 어린이들까지 함께 모여 예배드리고 안 믿는 식구까지 초청하여 복음전하는 교회가 많이 있다. 금년에는 성탄절이 마침 주일이다. 우리 모두 주님의 오신 목적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면서 주님의 이름과 사랑을 전하며 모든 사람들과 함께 평강을 누리 며 주님의 몸 된 교회인 우리가 세상의 잘못된 성탄 문화를 바로 세우며 참 의미를 증거하는 성탄절이 되기를 소망한다.
157 no image 황우석은 이 시대의 메시아인가?_김원광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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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42 2005-12-08
황우석은 이 시대의 메시아인가? 김원광 목사·중계충성교회 지난 주 황우석 교수는 자신의 배아줄기세포연구 과정에 문제가 있었음을 시 인했다. 세계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여성연구원들의 난자를 사용했다는 것이 다. 뿐만 아니라 그 동안 황 교수에게 연구용 난자를 공급한 회사에서 난자 매매를 한 일이 있었음도 사실로 밝혀졌다. 황 교수는 이에 대한 책임을 지 고 자신이 맡은 모든 공직을 사임함으로써 국민들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연구용 난자 채취로 충격 그 후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은 놀랄만한 것들이었다. 황교수를 지지하는 사 람들이 연구과정의 문제점을 공론화시킨 “MBC PD수첩” 광고주들에게 압력 을 행사하여, 광고 없이 TV프로가 진행되는 초유의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또 한 가수 강원래를 포함하여 수많은 시민들이 MBC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며 촛 불시위를 벌였고, 수백 명의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연구용 난자를 기증하겠다 고 서약했다. 사람들이 황 교수에게 이 토록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이 시대 수많 은 사람들에게 일종의 메시야와 같은 존재가 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 다. 그는 앉은뱅이를 향하여 곧 일어날 희망이 있다고 말한다. 나라의 미래 에 대하여 확신을 갖지 못한 사람들에게 앞으로 우리나라는 생명공학을 통해 세계 선두주자로서 복된 삶을 계속해서 누리게 될 것이라고 약속한다. 사람들 은 그의 말을 있는 그대로 믿고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통해 우리는 사람들의 기대가 한순간 얼마나 공허한 것 이 될 수 있는가를 멈추어서 생각해야 할 때가 되었다. 그토록 믿어온 황우 석 교수의 말에 분명히 거짓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세계인들 앞에서 자 신 있게 연구원들의 난자를 사용한 바가 없다고 말했었다. 물론 그것이 여성 연구원들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해 주기 위한 행위였다고는 하지만 명백한 거짓 말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그가 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는 결코 메시야가 아닌 것이다. 앞으로도 그는 얼마든지 실수할 수 있고, 그의 많은 약속들 역시 거짓되거나 혹은 실망스러운 것으로 드러날 수 있다. 하지만 이 n글에서 나는 황교수의 연구에 대하여 가타부타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나의 관심은 기독교에 있다. 앞서 지적한 대로 사람들이 그에게 열광하는 이유는 그가 희망을 주기 때문이 다. 기독교가 이 시대 사람들에게 가장 큰 열광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길이 어 디에 있을까? 그것은 바로 세상에 희망을 주는 종교가 되는데 있다. 기독교 는 과연 세상을 열광시킬만한 희망을 줄 수 있을까? 기독교가 세상에 희망 주어야 황 교수가 주는 약속들은 아무리 굉장해 보여도 결국 유한한 것이다. 사람들 은 영생을 원하지만 이런 일들은 인간에게 결코 일어날 수 없다. 사람들이 좀 더 건강하게, 창세기의 므두셀라처럼 969년을 살게 된다 할지라도 결국은 죽는다. 그리고 죽을 인생의 유일하고 참된 소망은 부활에 있다는 사실을 알 아야 한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이 시대에도 얼마든 지 참된 희망의 종교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거짓이 섞여 있어도 그 모든 것에 눈감고 그저 막연한 희망을 찾고자 하는 이 들에게 이 세상 너머 영원의 세계를 완전하게 약속하는 부활의 희망을 전하 는 일에 우리 전도 자들의 발걸음이 더욱 바빠져야 하겠다.
156 no image “걸핏하면 갈라서는 현상 탈피해야”_김수흥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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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6 2005-11-24
시론 “걸핏하면 갈라서는 현상 탈피해야” 김수흥 목사_합신초빙교수 우리 모두는 옛날 1960, 1970년대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사회의 양극화의 현상 을 목도하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 사회는 지금 세대차이가 너무 심각하여 노 인들은 젊은 사람들을 버릇없다고 몰아붙이며 또한 젊은 사람들의 상당수는 노인들을 수구 꼴통이라고 싫어하고 있다. 아무튼 세대차이가 얼마나 심하던 지 쌍둥이도 형과 동생간에 세대 차이를 느낄 정도라고 말들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부부간의 사이가 지금처럼 벌어진 시대는 일찍이 없었다. 걸핏하 면 갈라선다. 그래서 결혼한 사람들의 43%가 이혼한다는 것이다. 그뿐인가. 노사갈등은 도를 넘은 지 오래다. 각 노총(勞總)은 걸핏하면 파업을 결의하 여 실제로 파업에 돌입함으로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게다가 학교 선생님들 사회에까지 전(全)교조가 있어서 걸핏하면 머리에 붉은 댕기 를 두르고 투쟁하러 나선다. 그런데 우리 사회 의 모든 양극화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역시 지역 갈등 이다. 사실 자기 지역의 발전을 도모하는 것은 나쁜 것은 아니다. 미국이나 선진국에서도 자기 지역을 사랑하고 또 자기 지역의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지역 사람들을 원수처럼 미워하고 싫어하는데 문제가 있 다. 아무튼 우리나라의 지역주의는 하나의 질병으로 발전한지 오래다. 또 우리 사회의 가장 우려스러운 양극화는 무어니 해도 이념의 양극화이다. 사람들은 지금 소위 진보, 보수라는 이름으로 나누어져 갈등하며 투쟁하고 있 다. 진보를 표방하는 사람들은 보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을 수구 꼴통으로 혹 은 무식쟁이들이라고 몰아붙이고 있다. 이제는 우리 사회에 갈라지지 않은 곳 이 없는 것 같다. 모두 뿔뿔이요 갈등이다. 그저 나 이외에는 모두 다 싫고 피곤하다는 것이다. 이제 이 양극화 현상은 너무 심각하여 마치 다시 접붙여 지지 않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면 이런 양극화 현상은 어떻게 해서 생겨난 것인가. 정치가들이 만들어 낸 작품인가. 아니면 공산주의자들이 만들어낸 기형인가. 물론 이런 사람들 도 우리 사회의 양극화를 이룩한 책임을 면키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성경 은 어느 나라, 어느 사회의 문제라도 사탄의 개입이 있었다고 말씀하고 있 다. 사탄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았고(창3:1-6) 또 사람과 사람 사이 를 갈라놓았다(살전2:18; 딤전5:15; 계2:9; 계3:9). 그리고 사탄은 지금도 사 회의 분열을 끊임없이 획책하고 있다(엡4:27). 사탄은 최근 한국 교회의 신앙 심이 식은 틈을 타서 사회 각계각층의 양극화를 이루는데 성공했다. 특별히 오늘 사탄은 정치가들을 많이 사용해서 양극화 현상을 두드러지게 성취해 놓 았다. 그러면 이제 이렇게 갈기갈기 찢어진 사회를 접붙일 수는 없는 것인가. 과 연 양극화는 치료되지 않을 것인가. 성경은 벌어진 틈새를 깁는 방법 세 가지 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 예수님께서 쉽게 치료하신다고 말씀하고 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예수 님은 그의 십자가 죽음으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화해시키셨으며(엡2:13- 15) 또 사람과 사람 사이를 화목 시키셨다고 극명하게 진술하고 있다(엡2:16- 18). 우리가 이제 그리스도 십자가의 복음을 더욱 열심히 전파한다면 우리 사 회는 놀랍게 치료될 것이 뻔하다. 많은 사람들의 말에 지금 한국 교회의 대부 분의 강단에는 십자가 설교가 사라졌다고 말씀한다. 우리는 다시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가까이 나아가서 십자가를 붙들고 십자가를 전해야 할 것이다. 예수 님의 십자가를 전하면 오늘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한 이념 논쟁도 사라질 것이 며 소위 지역주의도 타파될 것이다. 그리고 이혼율도 줄어들 것이며 세대 갈 등도 해결될 것은 극명한 사실이다. 둘째, 우리가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할 때 사회의 많은 문제들은 해결된다 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성경은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다(잠 16:7).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더욱 가까이 나아가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하면 우리 주위의 모든 갈등의 문제들이 눈 녹듯 녹아 내릴 것이다. 이제 우리 모 두가 그리스도에게 나아가 모든 죄를 자복하며 그 은혜를 감사하며 찬양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머지 않아 가정에도 사회에도 국가에도 밝음이 찾아 올 것 이다(엡1:23). 셋째, 우리는 기도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야곱이 얍복강 가에서 생명 을 쏟는 기도를 드 린 후에 그의 원수였던 에서의 마음이 녹아져서 형 에서와 화해할 수가 있었다. 기도는 불가능이 없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막9:29). 우리나라의 1,000만 성도가 참으로 예수님을 가까이 하여 기도한다면 우리 사 회의 고질적인 이념 논쟁도 그리고 지역주의도 세대갈등도 노사갈등도 사라지 게 될 것이다. 예수님에게는 불가능이 없다고 성경은 지금도 말씀하고 있다 (막9:23).
155 no image “우리의 사명은 복음 전하는 것”_전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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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5 2005-11-11
“우리의 사명은 복음 전하는 것” 전현·회록서기·명성교회 자기 삶을 다른 사람에게 준다. 이것은 봉사의 단순한 표현이다. 봉사는 주 는 것이다. 나에게 있는 것이 시간이든 물질이든 복음이든 주는 것이 봉사 다. 그런데 봉사의 첫 시작은 전도의 삶이다. 그래서 전도는 가장 중요하면서 도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다른 영혼을 구원받게 하는 것보다 더 큰 봉사는 없다. 이처럼 봉사 중에 제일 큰 봉사는 전도다. 그래서 예수님을 모신 마음은 누구 나 다 선교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선교지란 땅의 개념으로 이해하 기보다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교지는 사람이라는 개념으로 이해되어야 한 다. 예수님이 없는 마음, 바로 그들이 곧 우리의 선교지이다. 그러므로 우리 가 땅의 개념으로 선교지를 이해하면 안 된다. 영혼구원은 최고의 봉사 예수님이 없는 사람들은 우리가 선교해야 할 땅과 같은 존재들이다. 그래서 선교는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만나 려는 사역이 누구의 책임인가를 말할 때 그리스도인 모두의 책임이다. 이 전도의 책임은 그리스도인이라면 그 누구에게나 다 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이 말씀은 예수님의 명 령이다. 명령은 순종할 수밖에 없다. “복음 전파” 이것은 결국 내 책임이라 는 말이다. 예수님이 어느 한 지역을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다. 한 지역이나 한 국가를 위해서 온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는 온 땅에 “복음 전파”를 위해 서 세상에 오셨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진정한 의미는 민족주의나 국가주의가 아니고 그 이상을 넘어선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월드비전이다. 그러니 우리 는 어느 지역이나 국가, 그것만 바라보지 말고 온 천하를 바라 보아야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 복음을 전할 책임이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 를 이 세상에 대사로 보내셨다. 우리가 비록 세상에 살지만 우리는 하나님나 라 일을 해야 한다. 하나님이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은 하나님나라의 일을 위 해서 대사로 보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는 세상을 하나님과 화목시킬 부탁을 받았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바라 볼 때 정죄의 눈으 로 바라본 것이 아니고 회복의 눈으로 바라보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대사다. 회복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누가 하나님의 대 사요 특사요 자녀인가? 이것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관점에 따라서 달 라진다. 화목은 그리스도인의 직책이다. 직책이나 직무는 행하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 서 직무유기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화목의 직분자로 이 땅에 왔다. 최선 의 노력과 열심을 다하여 감당하자.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인하여 죽으시 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 나사.” 이것이 복음 이다.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이다. 인간의 문제는 두 가지 로 요약되는데 하나는 “죄”이고 다른 하나는 “의” 문제다. 십자가와 부활이 곧 복음 예수님이 죽으신 이유는 우리의 “죄”때문이고 예수님이 살아나신 이유는 “우리를 의롭다 하기 위해서”이다. 복음이 무엇이냐고 말할 때 “십자가” 와 “부활” 이것이 복음이다.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모든 죄와 사망, 멸망, 심판을 받는다. 이것이 복음의 키다. 이 중요한 사실을 우리가 모든 사 람들에게 알릴 것을 부탁하셨다 . 우리가 이 열매를 얻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 는 선교해야 하는데 이것이 구원받은 사람의 책임이다. 그러므로 봉사 중에 제일 큰 봉사는 선교다.
154 no image “다양화된 행사 기획하길”_이주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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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86 2005-10-28
“다양화된 행사 기획하길” 이주형 목사_총회부서기, 오정성화교회 지난 주간 노회가 본 교회에서 열렸었고 저녁엔 교역자회 주관으로 타 노회 목사님을 강사로 모시고 두 시간동안 세미나가 있었다. 몇몇 분들의 의견은 회의하는 것도 힘든데 무슨 세미나를 하느냐는 볼멘소리도 있었고 본인도 그 사람 중의 하나였다. 쉬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본 교회에서 하니 빠질 수 도 없어 자의 반, 타의 반 참석을 했었다. 그러나 세미나를 통하여 많은 은혜를 받았고 공감되는 내용이 많았다. 그중 에 하나가 “사고의 개방성”이 있어야 발전할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다는 내 용에 적극 동의를 하고 평소에도 동역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던 말이었다. 합신과 장신의 연합이 있은 이후에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서로의 장점을 살 려 나가고 서로의 부족한 점을 보완할 수 있는 아름다운 만남이었다고 생각했 기 때문이다. 사고의 개방성 받아들여야 공통분모가 있다면 개혁주의 입장에서 보수주의를 지향하는 교단과의 연합으 로 사분오열되어져 가는 한국교회에 연합의 아름다운 모델이 된 것을 하나님 께 영광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 필자는 신학교를 다닐 때부터 기도한 제목이 있었다. “하나님 군소교단, 군소신학교를 나와도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다는 것 을 나타내 주옵소서 그리고 섬기는 교회와 부족한 종이 교단과 신학교와 동역 자들에게 힘을 주는 교회와 종이 되게 하옵소서.” 그리고 시작한 일이 있다. “사고의 개방성”이었다. 내 주장이 얼마든지 틀 릴 수 있다. 그러므로 보수를 지향하는 나의 주장만 옳다고 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의견도 들어 보고 수용할 것은 수용하고, 포용할 것은 포용해 보자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타 교단의 목회자, 부흥사, 신학자와 폭 넓게 교제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교제하면서 내 사고의 틀이 얼마나 좁고, 자기 중심적이었나, 또 전통관습에 젖어 있었나를 발견하면서 사고의 틀을 바꿔보려고 애를 많이 썼으나 보수의 틀은 쉽게 바뀌지 않았지만 삶의 자세는 좀 유연성을 보이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사랑하는 동역자들에게 한 가지 제안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교제의 폭 을 넓혀보자는 것이다. 지난 몇 년 동안 보고 느낀 것은 학생회 수련회나 세미나 형식 강사에 주로 교수들이 초청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총회, 노회, 교직자 수련회나 교회 부흥 회 혹은 세미나에도 교수들이 주로 강의하는 것을 보아 왔다. 교수들이 강의 하는 것은 한 교단의 정체성을 이어 가는데 좋은 효과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기는 힘들다고 본다. 즉 양면성을 보지 못하고 단면 만 보고 흑백 논리로 갈 수 있는 소지가 있을 것이란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제안하고 싶은 것은 이단이 아니면 폭 넓은 교제를 제안하고 싶다. 이제 우리 는 취사선택을 할 수 있는 실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세미나 형식에 서나 부흥회 형식에서 교수들의 강의도 필요하고 유익하지만 때로는 교수들 의 강의와 더불어 건전한 타 교단 목사들의 말씀도 들어 보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획일적 강사 선정 탈피하길 우리들은 자신도 모르게 이미 제한된 틀 속에 갇혀 사는 것에 익숙해 있는지 모른다. 차제에 교단이 주관하는 행사나 세미나에 강사의 폭을 넓히면 우리들 의 굳어진 사고 방식에 좀더 원할한 활력을 보급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 다. 지금까지 익숙해진 교수 위주의 강좌식 진행에서 벗어나 목회자들이 직 접 참여하는 커퍼런스 형식의 세미나도 좋은 대안이 될 것이다. 이제 목회도 점차 전문화 되어가고 있는 추세에 있다. 각자 관심 영역도 그만 큼 다양해지고 있다. 이에 발맞추어 교단 행사에서도 다양한 목회자들의 욕구 를 채워주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때라고 여겨진다.
153 no image 리더(Leader)와 팔로워(Follower)_장귀복 목사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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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64 2005-10-12
http://www.rpress.or.kr/files/poetry/387siron.hwp 리더(Leader)와 팔로워(Follower) 장귀복 목사_총회서기, 새일산교회 흔히 그 공동체의 미래는 리더에 의해 좌우된다고 말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리더가 어떤 비전과 방향 감각을 갖고 어떤 리더십을 발휘하느냐에 따라 그 공동체의 미래는 좌우되기 마련입니다. 한 마디로 리더의 역할은 결정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리더 혼자 모든 일을 할 수는 없습니다. 리더 혼자 뛰어 난 실력을 갖고 있거나 홀로 고군분투한다고 해서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 은 아닙니다. 리더의 비전을 함께 바라보며 이를 뒤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하 는 팔로워들의 도움이 없다면 리더는 결코 혼자 설 수 없습니다. 성과가 좋지 않거나 일이 잘못되었을 때, 흔히 리더만을 비방하거나 리더에 게 모든 책임을 지웁니다. 조직에서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며 핵심 자리에 있 다는 의미에서 최종 책임을 진다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만한 일입니다. 그 렇지만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지 않습니까? 과연 모든 것이 리더 혼자만 의 책임일까요? 리더가 조금 부족해도 팔로워들이 잘 보필해주면 성공적인 리 더십을 발휘할 수 있고, 리더가 뛰어나도 팔로워들이 잘 협조하지 않으면 훌 륭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드리마 “불멸의 이순신”에 나왔던 한 장면입니다. 이순신이 일개 현감에서 전라좌수사로 발탁되어오자 전라좌수사의 직할 장수들이 처음에는 잘 따르지 않았습니다. “어디 한번 잘해봐라”며 팔짱을 끼고 이순신의 실패를 기다렸 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해보려 했지만 일이 잘 진행되지 않을 때, 한 장수 가 조언을 합니다. ‘혼자만 열심히 해서는 왜군을 격퇴시킬 수 없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그 장수의 조언을 받아들여 그들의 마음을 얻기에 힘씁니다. 결국 장수들이 감동해 각자 맡은 일을 열심히 자발적으로 감당하면서 전라좌 수사는 ‘최고의 수군’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성공한 리더들의 이면에는 거의 항상 훌륭한 팔로워들이 존재해 있습니다. 골 을 넣은 선수 뒤에는 대부분 도움골을 준 선수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1등 만 기억하는 풍토’ 때문에 그들의 존재가 잘 드러나지 않을 뿐입니다. 그리 고 실패한 리더의 이면에는 리더의 노력을 헛되게 하고 조직과 리더를 실패 의 나락으로 빠뜨린 팔로워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한 공동체의 성공과 실패는 리더와 그를 따르는 팔로워들에 의해 결정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훌륭한 리더 못지않게 훌륭한 팔로워가 필요 하고 중요합니다. 그런데 훌륭한 리더는 되려하지만 훌륭한 팔로워가 되려하 진 않습니다. 좋은 팔로워가 되어야 훗날 좋은 리더도 될 수 있음에도 그렇습 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남을 따르는 법을 알지 못하 는 사람은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없다.” 한상업씨는 라는 책에서 훌륭한 팔로워 가 훌륭한 리더로 성장하는 비결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스스로 자신의 리더 에게 바라는 바를 팔로워에게 베풀고, 자신의 아래 사람에게 바라는 것을 리 더에게 실천하라.” 건전한 팔로워쉽을 발휘하다보면 어느 순간 자신이 존경 과 신뢰를 받는 리더로 커가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법입니다. 그런데 팔로워임을 스스로 거부하는 팔로워들이 있습니다. 리더와 팔로워는 분명 그 역할이 다른데도, 팔 로워들이 리더의 역할을 원하고 그렇게 행한다 면 그 공동체는 원활히 굴러갈 수 없습니다. 반면에, 팔로워이면서 구경꾼이 나 방관자, 혹은 훼방자의 위치에 서있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런 팔로워들은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자입니다. 팔로워의 위치에 있다면, 최소한 안철수씨 이란 책에서 말한 것처럼, ‘절반의 책임을 지는 자’라는 의식을 가져야 됩니다. 리더에게만 전적으로 의지하고 책임을 전가 하기보다는 내 몫에 대한 책임을 감당하면서 리더와 함께 성공을 이루어가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공동체를 살리는 훌륭한 팔로워십은 리더의 입장을 이해하고 공감하 는 데 있습니다. 부모가 되어야 부모 마음을 아는 것처럼, 건전한 팔로워는 리더에 대해 다소 불만이 있더라도 왜 리더가 그런 결정을 했는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등에 대해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자입니다. 리더를 마냥 거부하기보다는 서로의 생각과 마음을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 필요하다 는 말입니다. 세상에 있는 어느 공동체이든 리더가 있고 팔로워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 데 흔히 리더는 세우 려 하면서 팔로워를 잘 세우는 일에는 등한합니다. 리더 십 개발에는 관심을 가지면서 팔로워십 개발에는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한 홍 목사는 이란 책에서 “리더와 팔로워와 상황이 잘 조화 되어야만 비로소 완성된 리더십의 가공할 만한 영향력이 나오게 된다”고 말 합니다. 가공할 만한 영향력을 위해, 교회와 노회와 총회에도 리더십 개발과 더불어 팔로워십 개발이 아쉬운 때입니다.
152 no image 교회를 살리는 길_정창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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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58 2005-09-30
http://www.rpress.or.kr/files/poetry/386siron.hwp 교회를 살리는 길 정창균 목사_새하늘 교회 교인들의 마음 한 복판에는 설교를 듣고 싶은 소원이 있습니다. 그들의 믿음 이 자라고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될수록 그 소원은 더욱 확고해집니다. 아직 도 많은 교인들에게 있어서 교회에 간다는 것은 설교 들으러 간다는 것과 같 은 말입니다. 물론 그것이 옳은 것은 아니지만 현실은 그렇습니다. “모든 피 조물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고대”하듯이(롬8:19), 모든 성도들 은 하나님의 말씀을 능력 있게 선포하는 설교자들이 나타나기를 고대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최고 경영자 같은 목회자는 점점 많아지고, 연예인 같은 목회 자도 많고, 이벤트 기획자 같은 목회자도 많으나 말씀에 목숨을 건 목회자는 많지 않아 보입니다. 말씀에 목숨건 설교자 적어 설교를 다른 프로그램으로 대체하면서 설교의 우선 순위를 내려놓는 목회자들 이 흔히 하는 말은, 설교만으로는 목회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설교 가 목회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설교가 목회의 전부는 아니라 할지라도, 설교가 목회의 전부를 좌우하는 결정적인 관건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목회란 설교만 가지고는 안 된다는 말도 사실이지만 설교의 성공 없이는 아무 것의 성공도 불가능하다는 말도 사실입니다. 설교의 성공 없는 제자훈련의 성 공이란 허구라는 것은 제자 훈련의 전문가들이 공공연히 인정하는 사실이기 도 합니다. 설교의 성공 없는 교인 사역훈련 프로그램은 장기적으로는 결국 지치고 곤고한 교인들을 만들어내고야 만다는 것도 현장에서는 다 아는 사실 입니다. 큰 교회 목회자들은 설교 외에도 많은 행사와 프로그램들을 하기 때문에 교회 가 자꾸 부흥하는데 작은 교회라 그런 것들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목회가 잘 안 된다고 생각하는 목회자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 반대입니 다. 큰 교회 목회자들은 거의 설교에만 전념할 수 있는데, 작은 교회 목회자 들은 할 일이 많아서 설교에 전념할 수 없기 때문에 문제인 것입니다. 설교는 신학의 한 과정을 마치기만 하면 그후에 저절로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 다. 설교는 성경을 잘, 그리고 많이 읽기만 하면 그 다음에 자동적으로 되어 지는 것이 아닙니다. 유명한 설교자의 특강 몇 번 듣고 나면 저절로 그 사람 처럼 설교하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말씀 앞에서, 그리고 그 말씀을 들어야 되는 청중 앞에서, 그리고 그 말씀의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서 끊임없이 쏟아 내는 설교자의 고뇌와 몸부림을 통하여 설교다운 설교가 이루어지는 것입니 다. 소위 “설교자”란 평생 그 고뇌를 축복으로 알고 기쁨으로 감당하기로 결단 하고 나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설교에 전력을 투구하지 않으면서 “설교 로는 안 된다”는 변명을 내세우면서 다른 데로 눈을 돌리는 것은 책임 회피 입니다. 그리고 “그래도 설교는 나름대로 잘 하는 편인데…” 하면서 자신 이 당연히 설교를 잘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면서 그것을 설교로는 안 된다 는 증거인 것처럼 내세우는 것은 교만이기도 합니다. 어떤 설교자들의 말처 럼 “요즘 교인들은 설교에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은 사실이 아닌 것을 가지 고 교인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설교자는 평생 고뇌안고 살아야 교인들은 설교에 식상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설교 같은데 설교가 아닌 것에 대해서 식상해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프로그램으로 설교를 대체할 일 이 아니고, 설교로 다른 프로그램을 대체해야 합니다. 설교를 “개그 콘서 트”나 “웃찾사”에 보내도 손색이 없을 우스갯소리로 시종일관하거나, 설교 자 본인 외에는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는 어려운 사변으로 채우는 것도 설교 를 설교 아닌 것으로 만드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해석이 없는 잘 전달 된 설교는 감언이설이 되기 쉽고, 전달이 안 되는 잘된 본문해석은 무용지물 이 되기 쉽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들을 때 교인들은 에스겔 골짜기에서라도 일어나 군 대가 될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설교가 살아야 교회가 살 수 있다는 말 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설교는 설교자가 살아야 살 수 있습니 다. 그러므로 교회를 살리기 위해서 이 시대 교회들에게 가장 긴급한 일은 설 교를 살리는 일이고, 설교를 살리기 위하여는 제대로 된 설교를 위하여 설교 에 목숨을 걸고 나서는 설교자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151 no image 복음을 위해 변해야 한다_이의행 목사
rpress
4370 2005-09-16
http://www.rpress.or.kr/files/poetry/385siron.hwp복음을 위해 변해야 한다 이의행 목사_목민교회 며칠 전 섬기는 교회 형제 및 그 자녀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아이들을 위 해 기도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 기도를 했다. 아침저녁 불어오는 바람을 통해 가을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고 서두를 꺼냈다. 기도가 끝나자 초등학 교 3학년 아이가 “목사님, 가을은 송충이한테서 느끼는 건대요” 한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나무에 붙어있던 송충이가 힘을 잃고 땅바닥에 떨어 진 애처로운 모습을 보면서 그 아이는 가을을 느꼈던 것이다. 그때 신선한 충격을 느꼈다.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와 수많은 세월을 살아오도록 가을은 언제나 찬바람을 통해서 느끼는 것이 공식 이라고 생각했는데 가을을 느끼는 느낌이 이렇게 다르구나! 그렇다면 사람마 다 예수를 구주로 믿게 되는 동기가 다를 것이고 또 신앙생활을 하는 형태 도 다양하겠구나. 그러면서 ‘교단‘에 대해 생각해 본다. 바른 신학, 바른 교회, 바른 생활이라는 설립 이념, 영원한 스승이신 정암 박윤 선, 칼빈주의 5대 강령, 한국 교회 개혁의 모델 교단, 신학교의 나름대로의 자부심, 모두 귀한 것들을 소유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 내부의 뜻 있는 사람들의 마음속 에는 이대로는 안 된다는, 정말 무언가 변해야 한다는 안타까운 생각들이 자 리잡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우리 모두는 주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하나님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으로 교단을 사랑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교단이 진정 하나님의 나라 완성을 위해 아름답게 쓰여지기를 소원한다. 우리 교단의 색깔을 표현한다면 보수라 고 해야 할 것이다. 그 반대적인 색깔은 진보일 것이다. 물론 우리가 좋아하 는 개혁이라는 말을 앞에 붙여 개혁적인 보수라고 댓글을 다는 사람들이 있 을 것이다. 그런데 이 ‘보수’라는 계열의 성향은 변화를 싫어하는 특징이 있다. 그리 고 ‘개혁’이라는 말로 변화라는 의미를 묵살해 버린다. ‘계시의 발전’이 라는 말 속에는 분명 시대의 변화와 함께 하나님의 자기 계시 역시 변화했다 는 의미가 있다. 다시 말하면 진리는 변하지 않지만,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 은 변하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당신을 알리시고, 또 우리가 하나 님을 알리고 섬기는데는 시대의 옷을 바꿔 입을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변화 읽지 못하면 도태돼 아무리 좋은 신기술을 가지고 있어도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지 못한다면 무 슨 가치가 있는가? 마찬가지로 아무리 좋은 신학, 훌륭한 스승, 질 높은 교 육을 받았어도 이 시대에 복음이 전파되는데 사용되지 못하고 하나님 나라 의 발전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대한민국은 이미 선진국에 진입할 수 있는 모든 여건을 갖추어 놓고서도 10 년 가까이 세월을 낭비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한마디로 정치 지도자들 때문 이다. 우물안 개구리가 힘이 있으면 안 된다는 말이 있다. 편협하고 속 좁 고 고집스런 사람에게 힘이 주어지면 그 집단이나 조직은 고스란히 그 폐해 를 입게 되어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 교단이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필자를 비 롯한 교단 산하 목회자들의 탓이다. 우리는 시대를 읽고 변화하려는 마음보 다 전통과 관습을 사수하려는 마음이 더 강하다. 이것은 생명력 없는 바리새 주의다. 조직, 정책 등 새로운 발상 필요해 주님은 ‘새 술은 새 부 대에’라고 말씀하셨다. 복음을 담아내고 전달하고 알리는 형식은 시대와 함께 가든지 더욱 바람직한 것은 과감하게 시대보다 앞서야 한다는 것이다. 교단의 조직, 정책, 운영, 신학교의 목회자 양성 프 로그램 등을 실용적이고 획기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합신교단’은 역사와 전통만 자랑하는 박물관의 유물처럼 되고 말 것이다. 금번 90회 총회는 이런 공감대가 표면으로 공론화 되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 으로 바란다.
150 no image 90회 총회를 앞두고_한광수 목사
rpress
4032 2005-08-31
http://www.rpress.or.kr/files/poetry/384siron.hwp 90회 총회를 앞두고 한광수 목사_사명의교회 주님의 은혜로 90회 총회를 맞이하게 됨을 하나님께 감사 드린다. 그동안 우 리 교단은 장신과 합하여 잘 화합되고 있으며 이번에는 영입한 교회들을 중 심으로 제주노회가 생겼으니 또한 감사하다. 그리고 지난 총회에서는 늘어나는 선교업무를 더 잘하기 위해서 선교부가 총 회 세계선교회로 개편을 하게 되었으며 이제는 총회 유지재단도 생겼다. 정 말 감사한 일이다. 90회 총회를 더 잘하기 위해서 몇 가지를 함께 생각해보 고자 한다. 1. 총회에 임하는 마음 자세 교회의 총회는 세상의 정당들과 차원이 다르다. 세상의 정당들은 자기 당의 이권을 얻으려고 당원들은 한 목소리를 내도록 지령을 받고 모이는 것이다. 그러나 총대들은 교회의 표로서 주님이 원하시는 방향을 정하고 따르자는 것 이다. 비록 파송한 노회를 대표해서 뜻은 전달해야 되겠지만 더 중요한 것 은 총회 전체를 생각하고 공정한 입장에서 주님의 뜻을 찾는 자가 되어서 신 중하게 말하고 투표 에 참여해야 할 것이다. 총대는 총회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서 이전의 총회 회의록을 읽어올 뿐만 아니라 이번 총회의 헌의안도 미리 숙지해서 많이 기도하고 좋은 생각을 가 지고 참석해야 한다. 그리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령의 뜻을 묻지 않는다면 편견에 이끌려 실수를 범할 수 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총대들은 총회 기간 동안에 새벽기도는 필히 참석하여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있어야 한 다. 서로에게 존경과 사랑이 있으면서도 처음 참석한 총대일지라도 자신들의 의 견을 잘 드러낼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하며 결정된 이후에는 하나 님의 뜻으로 여기고 순복하는 노력이 있는 성숙한 총회를 만들어야 한다. 2. 회의 규칙을 잘 알아야 총대들은 회의 규칙을 배우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총회에 지장을 초래하여 여 러 사람을 힘들게 할 수 있다. 감사하게도 지난 총회 때에 총회절차 자료에 수록된 ‘장로회 치리회 규칙’은 참으로 우리에게 좋은 회의 운영의 기본 을 가르쳐 주었는데 특별히 유의해야 될 몇 가지를 소개한다. ‘제18조 발언권의 규정’에 나와 있듯이 어떤 동의는 회장이 회원의 변론 을 도무지 허락하지 않고 즉시 가부를 물을 것이 있는가 하면, 어떤 동의는 한 사람에게 한 번씩만 발언권을 허락된 것이 있고, 특별한 허락이 없으면 한 동의에 2회 이상 발언권을 얻지 못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모르면 회의 운 영을 힘들게 만들 수 있다. 그동안 잘 모르고 지켜지지 않았던 것 가운데 한 가지는 “제31조 치리회의 허락이 없으면 사무처리가 계속되는 한 회원들은 사담을 할 수 없으며 회장 의 명백한 허락이 없이는 방청인이나 다른 회원을 향하여 설명할 수 없고 회 장을 향하여 발언할 일”에 나와 있는 내용일 것이다. 3. 임원 선거 방법이 비효율적 2001년 86회 때 총대 명수는 목사와 장로를 합하여 130명이었다. 그러다가 장신과 합쳐지고 제주노회가 이번 총회부터 생기다보니 이번 90회 총회는 작 년보다 6명이 많은 182명이 되었다. 총대 회원수가 4년 사이에 52명이 늘어 난 것은 총회차원에서 대단히 기쁜 일이다. 한편 이 숫자는 전체의 숫자에 비하여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그러니 서로를 잘 모르는 총대가 많아졌다 는 것을 염두에 두고 화합하는 총회를 만들려고 노력해야 될 것이다. 지난 89회 총회 총대들 가운 데 이번에 바뀌어진 총대들은 무려 76명이나 되 는데 이것은 전체 총대에 비하여 41.7%가 된다. 이전부터 참석하고 있었던 총대들은 그래도 덜하겠지만 새로 참석하게 된 총대들은 막상 총대 투표를 하려고 하면 고역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누구를 뽑아야 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기 때문이다. 할 수 없이 옆의 사람에게 물어서 투표는 끝낼 수 있겠 지만 주님께 죄송스러운 마음은 지울 수가 없을 것이다. 비효율적인 방법 때문에 투표하는 시간이 많이 소모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투표로 선출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데도 불구하고 현재의 방법으로는 해결되 지 않는다. 미주 한인 총회에서는 공천부에서 임원들까지 선출해서 명단을 내어놓는 것을 보았다. 어쨌든 이제는 신중하게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투표 할 수 있도록 방법을 개선해야 된다. 끝으로 총대들은 주님이 기뻐하시는 총회를 만들기 위하여 기도하면서 배우 는 마음으로 또 기쁘게 참석하자.
149 no image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_김수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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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08 2005-08-18
http://www.rpress.or.kr/files/poetry/383si.hwp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김수홍 목사_합신 초빙교수 최근 들어 우리는 무서운 도청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그래서 좀 과장된 표현 일지는 모르지만 한국은 도청공화국이라는 말까지 생겼다. 전(前) 국가기관 의 모(某) 팀(team)이 모 기업 불법대선자금 관련 도청 테이프를 수천 개나 만들어 가지고 있다는 것이 폭로되어 나라 전체를 충격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 테이프는 정재계의 최고 유력인사들을 상대로 녹음한 녹음 테이프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즈음에는 모 국가기관의 ‘X파일’이라는 기사가 매일 매 스컴을 거의 메우고 있는 실정이 되었다. 그 불법대선자금 관련 도청테이프를 폭로한 모 직원은 말하기를 “고급 음식 점, 요정, 룸살롱 등에서 유력인사들의 회동 장소에 직접 도청기를 설치했 다”고 밝혔다. 마음을 터놓고 얘기하는 사적인 자리에서 무슨 생각을 가지 고 있는가를 녹취했다는 것이다. 그 직원은 말하기를 “최고의 생생한 정보 들이고 가장 심각한, 가장 깊숙한 얘기들”이라며 털어놓았다. 이 녹취 보고 서는 당시 야당 의원들의 약점을 잡는 것 외에도 정권 실세들의 충성도를 파 악하는 잣대가 되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이러한 도청테이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사람들은 도청 공포증에 시달 리고 있다는 것이다. 혹시 내 음성이 도청된 것은 아닌지 의심하면서 불안하 다는 것이다. ‘밤말은 쥐가 듣고 낮말은 새가 듣는다’는 옛 속담이 있지 만 그러나 옛날에는 누군가가 사람들의 은밀한 말을 듣고 옮기는 데서 끝났 지만 요즈음에는 녹음까지 해서 사람을 잡고 있으니 참으로 무서운 세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또 사람들의 무서운 눈길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나라에 서 요즘 각종 분야에서 법규를 위반한 사람들을 신고하여 돈을 타내는 각종 `포상금 사냥꾼`들이 많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가장 전통적인 파파라치 존재 를 우리 사회에 처음 알렸던 것은 교통위반을 하는 차(car)를 카메라에 포착 해 포상금을 전문적으로 타낸 카파라치였다. 하지만 카파라치는 포상금 지급 제도가 폐지되자 일제히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이제는 그 자리를 새로운 신종 파파라치들이 메우고 있다. 예를 들 면 봉파라 치, 넷파라치(저작권법을 위반한 네티즌들을 적발하는 사람들), 과파라치(고 액과외자 적발자), 표파라치, 에파라치, 슈파라치, 노파라치, 주파라치(주가 조작을 고발하는 사람들), 식파라치(식품위생법위반자적발자) 등 수많은 파 파라치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우리 자신들을 누가 보고 있는 지도 모를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또 포상금과는 관계없이 몰래 카메라가 기승을 부린 지는 이미 오랜 일이 다. 중국 식당 배달원이 배달하는 중에 음식에 침을 뱉는 것도 다 포착해서 공개했다. 그리고 배달하는 과정에서만 아니고 음식점에서 음식을 만드는 중 에도 음식에 침을 뱉는 장면도 찍어 공개했다. 그리고 또 몰카는 남녀간의 은밀한 행위도 찍어낸다. 아무튼 우리는 지금 유리로 만든 집에서 살고 있 다. 숨길 수 없이 된 세상에 살게 되었다. 사실 우리는 도청을 무서워하고 몰카만 무서워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하나 님을 두려워해야 한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보고 계신다. 그리고 우리 의 말을 듣고 계신다. 구약 시대 이스라엘의 왕 다윗은 고백하기를 “여호와 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 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 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 를 붙드시리이다”라고 말했다(시 139:1-10). 우리 인생은 하나님 앞에서 피 할 수가 없다는 말이다(히 4:13). 예수님은 제자들의 마음을 훤히 아셨다(눅 16:15). 그들이 교만한 말을 하 는 것도 다 아셨고 바리새인들의 수군거림도 다 아셨다(마 22:18). 또 그들 이 바다의 풍랑 중에 고생하는 사실도 다 아셨고 멀리 거라사 지방의 귀신들 린 사람의 고통도 아셨으며 이방 가나안 여인의 고통을 알아서 찾아가 주셨 다. 예수님은 우리의 얼굴에 두 색깔을 칠하고 다니는 것도 다 아신다. 이 사람 앞에서는 이 말을 하고 저 사람 앞에서는 저 말을 하는 것도 다 아신다. 예 수님은 주일날에만 우리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주중에도 매일 우리를 보신 다. 성도는 혼자 있어도 분명 성도 다워야 한다. 우리는 아무 때 아무 장소에 서든지 예수님 앞에서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딤전 6:14; 벧 후 3:14).
148 no image 섬기는 총회를 위하여_김 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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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13 2005-08-03
http://www.rpress.or.kr/files/poetry/382si.hwp섬기는 총회를 위하여 김 훈 목사_총회 정치부장, 한누리전원교회 총회는 전국의 모든 지교회와 노회들이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필요한 일 에 봉사하는 전국 교회의 회합이다. 총회는 그 봉사를 위하여 노회를 통하 여 합법적으로 제출된 지교회의 각 중 청원과 (때에 따라서는 한 사람의 교 인의 청원도 포함된다) 노회 자체의 결의에 의해서 헌의된 갖가지 안건들을 심의 처리한다. 특별히 전국의 지교회와 노회의 하나 됨(단합)을 위하여 중요한 청원과 헌 의 안을 규칙과 헌법에 의하여 총회총대의 3분의 2이상 전국 노회의 목사 장 로 총대의 3분의 2이상의 찬성이라는 압도적 다수 결의를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총회는 그 직무를 원활하고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 상비부를 조 직하고 때를 따라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기도 한다. 상비부와 특별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모두 총회에서 조직하도록 결의되고 총회총대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 (신학연구위원회와 같이 총회총대가 아닌 사람도 포함된 아주 특별한 위원 회 제외)에서 모두 총회적 성격과 권위를 갖는다. 둘째, 따라서 총회에서 맡겼거나 총회에 청원하여 허락된 안건만을 처리한 다. 셋째, 양자 모두 필요하다면 인원보충, 재정지원, 기간연장, 수단과 방법에 관한 허락을 청원할 수 있다. 넷째, 양자 모두 그 처리안이 총회에서 받기로 결정하면 총회적인 결의가 된 다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양자에는 다음과 같은 차이점도 있다. 첫째, 상비부는 교회에 항존하는 직무를 처리하기 위하여 항존직이 있는 것 처럼 교단이 존재하는 한 항상 일어날 일들을 처리하는 기관인데 특별위원회 는 그 사건이 특별하고(희귀성, 전문성, 복잡성)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 문제 기간이 임시적이고 한시적이라는 것이다. 둘째, 상비부는 총회 공천부(경우에 따라 총회총대가 아닌 노회장이나 노회 장을 대리한 노회대표가 참여하기도 한다)에서 총회에 공천하여 허락을 받 아 조직하는데, 특별위원회는 대개 총회에서 선출하여 조직한다. 셋째, 상비부는 총회 폐회 전에 사업계획과 그에 따른 청원을 총회에 제출하 여 허락을 받은 후 그 범위 내에 서 시행하는데, 특별위원회는 총회 폐회 후 에 사업계획과 방안을 수집하여 처리하고 다음 총회에 보고하여 허락을 받는 다. 총회 총대 중 10인 이상이 긴급동의한 안건도 그것이 전국의 지교회와 노회 들을 하나 되게 하고 섬기는 행위가 된다고 판단되면 총회가 받아 처리하기 도 하지만 제안자가 총대들이라는 점에서 상비부와 특별위원회와 공통점이 있으나 그 숫자, 연구기간, 총회적인 권위 등으로 볼 때 위의 두 기관과는 비교할 수 없다. 총회가 전국의 지교회와 노회가 하나가 되도록 일을 처리하고 전국의 지교회 와 노회가 그 직무를 수행하도록 섬기는 기관이 되기 위해서는 총회내의 상 비부와 특별위원회가 연구 계획하고 역동적으로 봉사하는 길 밖에 다른 길 이 없다고 생각한다. 상비부와 특별위원회는 총회의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선출 구성된 전문기관이고 대리기관의 성격을 가진다. 지교회의 제직회와 위 원회 그리고 노회의 상비부와 위원회가 그러하듯 총회의 두 기관도 능동적이 고 적극적으로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100년이 된 장로교 총회 역사와 회의록을 보아도 그렇고 우리 교단의 역사 와 25여년의 총회 회의록을 보아도 그렇다. 그리고 앞으로도 노회, 상비부, 특별위원의 헌의와 청원들에 대해 총회는 일을 처리 할 수밖에 없다. 총회 를 앞두고 상비부와 위원회의 성실한 준비가 있기를 기대한다.
147 no image 가진 자의 불행_김수흥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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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1 2005-07-22
http://www.rpress.or.kr/files/poetry/381si.hwp가진 자의 불행 김수흥목사_합신초빙교수 얼마 전(2005.7.1) 우리나라 국세청이 강남 아파트 값 상승의 주된 요인을 캐냈다. 지금까지는 강남의 집 값이 올라가는 요인(要因)이 강남 지역이 다 른 지역들보다 자녀 교육시키기에 환경이 좋아서 올라가고 또 생활하기에 편 리해서만 올라가는 줄 알았는데 그러나 실제는 아파트 투기 때문이라는 것이 다. 경향신문 보도에 의하면 그 주요한 요인이 2000년부터 금년(2005년) 6월까 지 강남 아파트를 구입한 사람의 58.8%가 3주택 이상 다주택 보유자라는 것 이며, 또 연합뉴스에 따르면 투기적 가수요로 인해 강남지역의 집 값이 최 근 5년 새 약 3배 가량 치솟은 것으로 조사됐다는 것이다. 연합신문은 계속해서 3주택 이상 보유자의 투기적 가수요가 심한 9개의 아파 트단지는 서울 강남 5개, 송파구 1개, 서초구 1개, 강동구 2개로 보도했다. 그리고 한국 경제신문에 의하면 강남 지역 5만여 세대가 20만여 가구의 집 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들이 한 채씩만 팔아도 강력한 강남주택 공급확대 효 과가 나타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다주택소유가 부동산급등 불러와 그러나 사실 투기라고 하면 그들뿐인가. 전국적으로 아파트 투기나 땅 투기 를 하는 일은 오래 전부터 있어 온 일이다. 많은 국민들이 부동산 투기에 열 을 올린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필요 이상 무엇인가 를 가지고 있을 때 불행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가진 자의 불행, 이것은 우리 국민이 알아야 사항이다. 첫째로 많이 가지면 참으로 마땅히 가져야 할 것을 못 가지게 된다. 별것아닌 세상 것을 많이 가 지고 있으면 꼭 가져야 할 하늘의 보화를 놓치고 만다. 이야말로 엄청난 손 해이다. 어느 청년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고 청년 답지 않은 놀라운 질문을 했다. 예수님은 그 청년이 부자인 것을 아시고 재 산을 다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라고 하셨다.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가 있을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고 나서는 예수님을 따르라고 하셨다(마 19:21). 이 런 말씀을 들은 청년은 도저히 자기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가 없었다. 결국 이 청년은 예수님 의 제의를 거부해서 영생은 물론이고 하늘 의 모든 복을 잃고 말았다. 둘째로 세상 것을 많이 가지면 다 없어진다는 것이 예수님의 교훈이다. 예수 님은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 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한다”고 말씀하신다(마6:19). 땅에 쌓아두 면 좀과 동록이 재산을 못쓰게 만들 뿐 아니라 도적이 가만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다 허무하게 없어지고 만다. 그리고 셋째로,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않으면 가난한 자들의 호소가 하나님께 올라가 가진 자들에게 불행으로 돌아온다는 것이 다. 야고보는 “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지르 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고 증언하고 있 다(약 5:4). 가진 자가 불의하게 재산을 모았다면 피해를 당한 사람들의 호 소가 하나님께 상달한다는 것이다. 가진 자들이 정당한 방법으로 재산을 모 았다고 해도 집 없는 사람들의 서글픔을 생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 들에게 서글픈 날이 닥쳐오게 된다. 일용할 양식이 주는 평안 누리길 하나 님은 우리에게 매일 신령한 양식을 주시고 또 매일 육신의 양식을 주시 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매일 그것을 받아먹을 때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느끼 게 되며 더욱 감사하게 된다. 하나님 앞에 매일 기도해서 사는 삶은 결코 감 질나는 삶이 아니다. 오히려 재미있는 삶이다.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을 더 욱 깊이 느끼는 삶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재산을 주시고 부요를 주신다. 우리는 그 재산을 잘 관 리할 줄 알아야 한다. 결코 우리는 그 재산을 땅에 쌓아 놓아서는 안 된다. 하늘에 쌓아서 행복을 소유하고 살아야 한다.
146 no image 6.15 남북 공동선언-최성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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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65 2005-07-07
http://www.rpress.or.kr/files/poetry/380si.hwp6.15 남북 공동선언 최성대 목사/ 동산교회 제5주년 6.15 남북 공동선언(2000년 6월 15일)을 기념하는 6.15 통일대축전 이 평양에서 있었다(2005. 6. 14-17). 6.15 남북 공동선언 전문의 실현을 위 해 우리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가? 첫째, 6자회담의 주변국에 의존(依存) 자세. 우리조국의 통일문제를 전적으 로 이웃에게만 의탁하는 자세는 주체성 없는 미숙한 태도이고, 과거 외세에 끌려가는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자세이다. 조국 통일과 평화의 밥상을 남이 차려주기만을 기다리는 자세는 21세기의 신한국이 취할 자세가 아니다(사 31:1; 36:6). 둘째, 주변국과 관계없는 남한과 북한의 독자(獨自) 자세. 이제 지구는 정치 와 경제와 인종과 언어와 지리와 문화를 교류하는 지구촌(global village) 이 되었다. 일반은총의 차원에서 지구촌은 한 혈통의 한 가족의 통일성을 이 루면서도 하나님이 정해주신 거주의 경계로 인한 민족의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행 17:26). 한 민족을 넘어 일하시는 하나님 경륜 의 관점에서 보면(롬 3:29) 민족적인 지향성은 좋지만 오직 한 민족의 일변도로 나아가는 민족주 의는 위험하다. 왜냐하면 민족주의는 이웃 민족을 배타하는 고로 국가분쟁 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의 통일과 평화를 우리의 힘만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한반도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이상주의이다. 모든 만물 은 구별되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셋째, 주변국가와의 친(親) 자세. 국제관계는 대립을 넘어선 ‘친’의 자세 를 취해야한다. 하나님은 남유다가 기울어지는 도탄 가운데 예레미야에게 친 바벨론 정책을 지시하셨다(렘 29:4-7). 비록 과거 전범자와 같은 주변국 일본, 중국, 소련과 친노선을 유지해야 경제와 문화 교류는 물론 동남북아시 아와 북방선교가 가능하다. 그러면 어디까지 친노선인가? 일본과 중국과 소련과 협력하지만 협력할 수 없는 장벽이 있다. 이것은 이데올로기를 넘어서는 문제이다. 지금의 일본과 중국과 소련은 복음이 약하다. 복음을 잘 수용하기 어려운 나라와의 친노선 은 상호보완적으로 어느 정도 유익하지만 본질적으로 한계에 부딪치게 된 다. 하나님의 친 바벨론 정책은 바벨론의 복음화와 선민의 갱신과 안식을 위 해 잠정적으로 70년 동안(대하 36:21; 렘 24:5-7) 허용할 뿐 영구한 허락은 아니다. 넷째, 6.15 공동선언의 주체자로서 하나님이 사용하는 나라를 동반(同伴)하 는 초월(超越) 자세.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리시고, 모든 한계를 초극(超克) 하시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지도자와 백성을 통해 6.15 남북 공동선언의 통일을 이루는 것이다(시 33:12). 하나님은 주변국을 사용하신다. 역사적으 로 보면 하나님이 미국을 사용하여 우리 민족을 보호하는 방패가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런고로 신세대의 반미(反美)와 구세대의 친미(親美)의 자 세를 지양하고 용미(用美)의 동반자(partner)적인 초월자세를 유지하는 것 이 성숙한 중도의 자세라고 믿어진다. 6.15 남북 공동선언의 한반도 통일은 우리 선조들이 소망한 것이다. 우암 이 승만 대통령의 실용적 친노선은 그동안 친미로 오해받고, 백범 김구 선생의 이상적 독자노선은 반미로 오해받은 것 같다. 우리 민족을 위한 두 분의 애 국자를 한반도를 둘로 분리하듯, 우암과 백범을 분열시키는 이분법의 과오 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 성숙한 국민의 태도라고 여겨진다. 한반도를 둘러싼 역사의 격동의 파도가 크기에 일엽편주의 배는 상하좌우로 흔들리는 한계를 드러낸 것은 아닌가? 기독교는 우리 북한동포를 품어야한다. 북한인권과 북핵개발의 폐지와 통합 한국의 문제들을 심도있게 다루어야 한다. 동서독 통일의 역사적 사례에 비 추어볼 때, 한반도의 통일은 서로의 인격을 인정하고 문화와 정신의 동질성 이 무르익어 가면서 통합되는 점진적 검증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혼란과 무질서를 초래할 수 있다. 하나님이 사용하는 주변국 가와 협력하면서 미국을 동반자(partner)로 하는 하나님 중심의 초월자세를 추구하는 것이 균형잡힌 온건한 자세라고 믿어진다(마 6:33). 평화 후 전쟁 의 악순환(욜 3:9-10)이 한반도에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 6.15 남북 공동선 언의 한반도 통일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지도자와 백성을 통해 평화 한국 으로 지향되기를 기원한다(사 2:4).
145 no image 남을 속여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_김수흥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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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38 2005-06-24
http://www.rpress.or.kr/files/poetry/379siron.hwp남을 속여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 김수흥 목사_합신초빙교수 YTN 뉴스에(2005.5.13) 의하면 수돗물을 팔아 30억을 챙긴 현대판 ‘봉이 김 선달’이 소개되었다. 일당 4명은 정수기로 걸러낸 수돗물을 ‘아스타나골 드’라는 ‘고농축 산소수’라고 속여 암과 당뇨 그리고 고혈압 치료에 특효 가 있다며 1.5리터 1병에 36,000원씩 많은 사람들에게 팔아 30억원을 챙겼다 는 것이다. 그리고 5월 21일 YTN 뉴스 보도에 따르면 가짜 진단서를 꾸며 억대의 보험금 을 챙긴 사기범 70명이 무더기로 경찰에 적발되었다. 이 사기단은 병원장 의 사와 병원직원, 보험설계사까지 동원되어 아픈 데도 없는 사람들에게 가짜 진단서를 떼어주게 하여 억대의 보험금을 타냈다는 것이다. 이 사기극으로 병원장은 6,000만원을 챙겼고 보험가입자 90여명은 가짜 환자 행세를 하여 보험사 10여 곳으로부터 2억 천여만원이나 타냈다는 것이다. 경향신문 5월 26일자에 의하면 항상 깨끗하게만 보였던 한국 노총의 지도부 도 ‘ 차떼기’를 뺨치는 사기를 연출하였다. 이들은 서울 여의도 중앙근로자 복지센터 건설과정에서 시공, 설계, 감리업체뿐 아니라 철거업체로부터도 수 십 억 원의 발전기금과 부정한 자금을 받아 세인(世人)을 놀라게 했다. 검찰 은 말하기를 “자기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지상 15층짜리) 건물과 발전기 금 30억원에 가까운 뒷돈까지 챙겼다”며 이들의 수법의 치밀함에 혀를 내둘 렀다는 것이다. 5월 30일 뉴스에 의하면 대전에서 20대 중반의 남자 두 사람이 어떤 사업가 에게 접근하여 휴대전화를 도매가로 대량 구입하여 되팔면 차액을 많이 남 길 수 있다고 속이면서 휴대전화 500개가 들어있다는 자루를 넘겨주고 돈 1 억원을 받고 도주하였다는 것이다. 확인결과 이 자루에는 휴대전화가 아니 라 진흙만 들어 있더라는 것이다. 갤럽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람 중 대략 63%는 정직하게 살면 잘 살 수 없다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외국 언론이나 연구기관을 통해 발표되 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 국민이 세계에서 머리가 가장 좋을 뿐 아니라 또한 가장 부정직한 국민 중의 하나라고 소개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 국 민들이 얼마나 남을 속였던지 연합뉴스(2005.5.21)에 보면 울산 경찰청직원 2,000 여명은 부정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신념을 담은 4개 결의문 을 채택, 선언했다. 이들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정을 생각하며 굳은 결의 를 다졌다는 것이다. 사실 사회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속이는 일은 우 리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큰 죄인지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성경에 남을 속이지 말라고 하는 말씀을 들어야 할 것이고(출20:16; 23:1; 마19:18; 막 10:19; 눅18:20), 남을 속이면 하나님으로부터 형벌을 받는다는 것을 알아 야 할 것이다(신19:16-21). 구약 시대의 야곱은 그의 형 에서가 배고픈 틈을 이용하여 장자권(家長의 권 리)을 샀고(창25:27-34), 또 야곱은 장자의 축복을 쟁취하기 위하여 어머니 와 합작하여 별미를 만들어 자기 아버지를 속였다. 그가 이렇게 아버지를 속 이고 장자의 복을 받았으나, 실상은 그 속인 것이 축복을 받는데 어떤 역할 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장자 기업의 축복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예정에 근거하여 된 것이다(창25:23; 롬9:12-13). 신약시대의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유대의 종교가들에게 팔아 넘길 때 예수님 에게 접근하여 입을 맞추었다. 유다는 결국 세상에 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사람이 되고 말았다(마26:24). 우리는 내 마음의 평안을 위해서라도 남을 속이는 일을 금해야 한다. 거짓말 을 하고 나면 양심에 가책을 느껴 그 거짓을 회개하기까지 마음에 평안이 없 다. 그리고 또 하나님으로부터 혹독한 벌을 받기 때문에 감히 남을 속여서 는 안 된다. 거짓말을 하고 혹은 남을 속이고서 벌을 받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었는가. 반드시 발각이 날 뿐 아니라 벌을 받는다. 혹시 이 세상에서 벌을 받지 않는 다면 예수님 재림하신 후에라도 인류의 심판장이신 예수님에게 심문을 받게 된다(고후5:10). 그런고로 남을 속이고 잘 되어보기를 바라는 것은 천지분 간 못하는 행위이다. 우리는 심판 날을 생각하고 이웃을 사랑하면서 살아야 할 것이고 형제를 위하여 우리의 목숨을 버려야 할 것이다(요일3:13-16).
144 no image 장로역할 극대화 하여야_박진우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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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88 2005-06-13
http://www.rpress.or.kr/files/poetry/378si.hwp 장로역할 극대화 하여야 박진우_전국장로연합회 고문, 본사 사장 “오면 반갑고 가면 더욱 반갑고…” 젊은이들에게서 많이 듣는 말입니다. 부모가 자식의 가정을 방문할 때도 집의 구조라든지 부부의 직장 사정으로 잘 모시기 힘들고 따라서 부모라 할지라도 ‘가면 더욱 반가운’ 존재가 되 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대체로 자식들의 집을 방문할 때도 잠깐 들렀다가 얼른 돌아와야 좋은 소리를 듣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자기들 중심의 가정의 인식은 더욱 굳어지고 이들의 이기주의적 삶은 교회 에까지 번져가는 것 같습니다. 교인중에는 이런 사정등으로 고독감에 젖어 있는 신자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몸의 지체가 하나인 것같이 신앙으로 건강중에 하나되도록 하기 위해 현재 온 교회가 노력하고 있지만 특별히 장로님들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신자들 이 세속화의 탁류에 힘쓸려 가는 것을 막아내고 세상에 물들지 않도록 하는 일에 적극 참여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r 이런 일들에 대비해서 전국장로연합회 모임에서 장로님의 성장과 발전을 위 해 생각하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입니다. 우리 교단 전국장로연합회가 금년 제13회기에 들어와서 회장님과 임원들이 자주 임원회를 열고 동분서주 노심초사하는 모습은 보는 이에게 감동을 줍니 다. 지난 5월 30일에는 전국장로연합회가 전국 노회장 초청 친목회를 임진강 푸 른 물이 보이는 파주의 ‘반구정’에서 가졌습니다. 총회장님 그리고 합신 총장님을 비롯한 많은 노회장님이 참석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목사님들의 장로연합회에 대한 깊은 관심과 사랑의 격려에 깊은 감동과 은혜를 받았습니 다.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이었습니다. 작년에 처음 시작한 전국장로연합회의 노회장 초청 친목행사는 목사님의 격 려에 크게 고무되어 작년 8월 수련회에 처음으로 전체 장로의 30%와 권사님 들이 참석해서 놀라운 은혜의 행사가 된 바 있습니다. 6월 2일에는 동서울노회 장로연합회가 화평교회당에서 열렸는데 예상을 뛰 어 넘는 많은 장로님이 참석했고 노회장 목사님의 뜨거운 격려로 장로님들 이 새출발을 다짐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r 6월 20일에는 전국장로연합회가 마련한 원로 은퇴 장로 위로회가 강화도에 서 있을 예정이고 몇 차례의 준비행사를 거쳐 8월 말에 동해안 낙산에서 수 련회를 갖고 기도와 회개로 변하여 새로워지는 행사를 예고하고 있어 기대감 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 교단 장로연합회는 모든 교회와 목사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아 왔습니 다. 장로님도 이에 응답해서 본교회 일처럼 노회와 총회일에도 새로운 인식을 가 지고 적극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어떤 노회에서는 지난 4월 노회때도 그랬지 만 장로 총대의 30% 가까이 출석하지 않았고 출석 총대들도 오후에 자리를 떠났습니다. 안타까운 일이고 앞으로 있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목사 총대님 은 양해할 사정이 있을 수 있지만 장로 총대님은 그래서는 안 됩니다. 그리 고 장로 총대님은 앞으로 노회나 총회 때 충분히 연구하여 나오셔서 맡은 일 을 감당하시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는 우리 모두의 일에 유익이 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자색옷을 입고 날마다 열락하던 부자가 죽어 불꽃속에서 고통중에 고민한 것 은 그의 대문 앞에서 고통당한 거지 나사로에 대한 ‘무관심’ 때문이었 음 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교회에서 자기를 수발하도록 보냄을 받아 온 에바브라 디 도를 칭찬하면서 “저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 을 돌아보지 아니하였다”고 한 말씀같이 이 아름다운 모습을 생각하고 결 심해서 주님이 예비하신 우리 모두를 향한 큰 일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담대 히 달려가야 하겠습니다. 최상의 예배 속에 최고의 영광이 있다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할 때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 이것 은 그리스도가 교회의 주관자이심을 의미한다. 이러한 관계 아래 있을 때 교 회는 그리스도를 주(主)라고 호칭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교회의 주(主)이심을 확인하였다면 그 다음 단계로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친히 우리의 주가 되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가 될 만한 위치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출 19:4-5). 나아가 교회가 하나님의 소유 라는 점에서 교회는 세상의 어떤 것보다 귀한 자리에 있음을 각성해야 한 다. 그렇다고 교회의 회원에 속한 우리에게 어떤 자격이나 가치가 있어서 하나님 의 소유라고 하는 거룩 한 위치에 다다른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성자 예수 께서 성부 하나님 앞에 약속하여 친히 우리를 택정하고 구속하기로 결정하 신 공효에 따라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다는 사실을 바로 알고 있다면 (엡 1:3-4) 우리의 위치라든지 신분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것인가를 알 수 있다. 더 놀라운 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그의 소유로 삼아 주셨을 뿐 아니라 이 제는 친히 우리와 하나가 되어 주신다는 사실이다(엡 4:6). 그리스도의 영으 로 오신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친히 하나님 나라의 왕권으로 우리를 통치하신다는 점에서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 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는 약속과 같이 부활하 신 그리스도는 여전히 성령 하나님으로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이다. 교회 안에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계신 분이 바로 성령이시다(롬 8:1-11 참 조). 성령께서 교회에 임재하시어 교회의 마음(heart)과 인격이 되어 주심으 로써 교회는 그리스도의 품성(person)을 발현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교회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성령님이 친히 그 가운데 자존(自尊)하심으로써(고전 6:18-20) 하나님이 친히 만나 주시며 교통이 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교회만 이 하나님과 교통하며 그의 통치를 받는 유일한 기관이다. 이러한 근거 아래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며 교회는 항상 그리스도의 몸 을 이루는 유기적 공동체이다. 이것이 교회가 가지는 속성의 중요한 한 모습 이다. 이제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본체로서 그리스도의 거룩한 품성을 드러 내어야 한다. 즉 그리스도의 인격이 교회를 통해 발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교회 공동체의 회원으로 매주일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예 배는 매우 특별하며 우리에게 남다른 의미를 가진다.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 로서 성령 하나님의 임재아래 그리스도의 품성을 발휘하는 가장 온전한 모습 이 바로 예배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최상의 예배야말로 성도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영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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