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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23 (00:00:00)
http://www.rpress.or.kr/files/poetry/360si.hwp그리스도의 종의 정체성과 주체성


최성대 목사/ 동산교회


해마다 9월이면 교단마다 모든 교회를 대표하는 총회가 열린다. 금년에 시행
되는 총회 위에 하나님이 은혜 주시기를 기원한다. 각 교회의 사건이 노회에
올려지고, 각 노회의 사건이 최종적으로 총회에 올려진다. 금번 제 89회 총회
는 여러 노회가 헌의한 내용 중 하나로 합동신학교의 총회직영인가, 인준인가
를 다룬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무엇이 총회와 합동신학교를 위한 최선
의 길인가는 지나간 약 25년의 합동신학교의 뿌리와 발전과정의 인식을 종합
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 인식은 합신의 정체성이 되는 뿌리에 대한 인식이다.
합신 뿌리의 태동은 교권주의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진리의 전당을 추구하는 것
이었다고 믿어진다. 합신은 시대적인 격동과 갈등의 상황 속에서 교권주의를
배격한다는 것과 바른 신학, 교회, 생활 삼정(三正)의 건설을 위해 먼저 우
리 자신부터 고쳐야한다는 자기 개혁으로부터 출발했다고 본다. 교권주의의

횡포에 대한 부정적 의지와 신학교의 자유와 보호라는 긍정의 의지가 연합하
여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인준 관계의 뿌리가 내려졌다고 믿어진다. 합신 태
동의 역사적 뿌리의 관점에서 볼 때, 합신의 인준은 당시 한국 교계에 새로
운 것이었다.

두 번째 인식은 합신의 주체성이 되는 발전 과정의 결실에 대한 인식이다.
과거 1000년의 변화가 100년 만에 변화되는 옛날 고대와 중세 시대가 있었
다. 100년의 변화가 10년에 변화되는 현대 시대를 지나서 이제는 10년의 변화
를 1년 안에 단축시키는 감당하기 어려운 초현대(?) 21세기를 맞이하게 되었
다. 이런 때에 총회 산하 교회는 합동신학교의 발전지수를 살펴보는 것 같
다. 그런데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면이 잘 드러나는 것 같다. 신학교는
교회를 위한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25년의 짧은 합신은 교회 부흥말기
에 해당하는 80년대에 시작해서 90년대의 현상유지 내지, 침체분위기를 직면
했다. 교회발전 둔화를 염려하면서 교회를 위한 신학교를 위해 합동신학교는
총회직영으로 해야된다는 여론이다.

세 번째 인식은 신학교와 총회의 정체성과 주체성을 하나로 연결하
는 종합적
인 인식이다.
교권주의로부터 자유를 지향한 합신의 정체성의 태동은 진정한 교회를 위한
인준이었다. 합신의 인준은 무엇을 위한 인준인가. 신학교의 실제는 총회산하
의 교회가 성경에 기초한 교회를 위한 신학교가 아닌가? 그러나 신학교는 총
회의 종은 아니다. 반면에 교회의 생명력을 위한 신학교로서 역동적인 발전
을 기대하는 총회는 교회를 살리는 신학교의 주체성을 위임해 주고, 신학교
의 자유와 발전을 위한 울타리가 되어야 한다.

총회직영은 무엇을 위한 직영인가. 진정한 교회를 위한 신학교라면 진리의 전
당으로서의 신학교의 주체성을 인정해주어야 한다. 그러나 총회는 신학교의
종은 아니다. 주체자가 하나님이지만 신학교와 총회에 권한을 위임하여 주체
성을 발휘케 하신 하나님의 크신 인격 앞에 감사할 뿐이다.

신학교와 총회는 하나님이 정해주신 영역주권(領域主權: Sphere
Sovereignty) 즉 스스로의 책임과 결정할 수 있는 주체성(Subjecthood)을 서
로 신뢰하면서 상호보완적인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서로의 관점의 차이는 이
질과 본질의 다름은 아니다. 교육은 100년 대계라고 했는데 합신은
불과 4분
의 1의 고통의 터널을 통과하고 있는 과정에 있다. 가야 할 길이 너무나 멀
다.

초현대의 더 크게, 더 지름길로, 더 빠르게, 더 외형적으로, 더 많은 정보,
더 많은 소유라는 "더"의 홍수 속에서 역설의 진리로 나아가야 할 때가 적지
않다. 더 알차게, 더 멀리, 더 느리게, 더 단순하게, 더 지혜롭게, 더 심령
이 가난한 방향으로 가야 할 때가 적지 않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
의 근본(잠 1:7; 9:10)이라는 진리 앞에 더 빠른 지름길과 더 쉬운 공식은 없
다. 자기 긍정과 자기 확립의 지름길이 있다면 자기 십자가를 지고, 더 심령
이 가난해지는 길 밖에 없다. 21세기는 진리 안에서 느림이 가장 빠른 지름길
이 될 수 있다.

신학교든, 총회산하 교회든 보다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누구의 종으로 일
하는가에 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정체성을 그리스도의 종(Gil Christ)이라
고 했다(롬 1:1). 교회를 대표하는 것이 총회인고로 총회의 본질은 그리스도
의 종으로서 섬기는 사역이다. 총회는 교회의 주재권(왕권)과 머리되신 그리
스도께 복종하는 청지기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주님이 하나님의 종으

서 하나님께 복종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처럼, 교회를 대표하는 총대는 주장하
는 자세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종된 본을 보여주어야 한다(벧전 5:4).

하나님이 기뻐하는 교회정치의 본질은 그리스도의 종이 되는데 있다. 교회정
치는 그리스도의 복음과 깊은 관계가 있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차고 넘칠
때, 총회를 중심한 모든 교회정치는 아름답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
기에 주님은 바울에게 주체성을 위임해주셨다. 그리스도의 종된 바울은 그리
스도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다는 자신의 주체성을 강하게 말할 수 있었던 것
이 여기에 있다.

빌립보서 4장 13절에 "내게(정체성)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주체성) 모
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하였다. 주체성의 영역 주권을 서로 신뢰하면서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서로를 섬기는 청지기의 길이 신학교와 총회의 사명이라
고 믿어진다. 종된 정체성으로부터 자유로운 주체성으로 계속 역동적으로 발
전되는 신학교와 총회가 되기를 기원한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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