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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123 no image 이웃을 사랑하는 생명 운동 전개해야-나종천 목사
rpress
4314 2004-08-09
http://www.rpress.or.kr/files/poetry/357si .hwp이웃을 사랑하는 생명 운동 전개해야 나종천 목사/ 동서울노회장, 한사랑교회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이라든지 최근 유OO씨의 21명의 연쇄 살인 사건을 비롯 해 죽기 싫어서 발버둥치며 도망가는 아이를 잡아다가 아파트에서 던져 숨지 게 한 비정한 어머니, 두 자녀를 물에 던져 죽게 한 아버지 사건, 기분 나쁘 게 쳐다보았다고 따라가서 잔인하게 살해한 청소년의 범죄 사건, 사회 지도 층 인사들의 자살 사건 등은 온 국민을 충격으로 몰아 넣은 정도를 뛰어 넘어 서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회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듯한 생각까지 들 정도이 다. 이제 아무런 이유도 없이 사람을 쉽게 죽이는 참담한 현실 속에 우리가 살고 있다. 최근 10년 동안 살인, 강도, 강간, 절도, 폭력 등 ‘주요 5대 강력범 죄’가 87.8%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 총 범죄는 1994년 130만여 건에서 지난해 189만여 건으로 44.7% 증가했으며, 사이버 범죄는 정보기술 (IT) 발달로 인해 최근 3년 사이 28배나 폭증한 것으로 보 고됐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선 하루 평균 200건 이상 낙태를 집행하고 있다고 한 다. 우리나라의 낙태율은 낙태 반대운동단체의 경우 연간 150만 건에서 200 만 건으로 추산하고 있는 반면 정부기관(한국 보건 사회연구원)에서 1/100인 2만5천근으로 보고 있다. 생명을 경시하는 이런 범죄가 급증하고 있는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전쟁학 에 대한 전문학자는 말하기를 한 사람이 적의 눈을 보고 정면에서 죽이기 위 해서는 2만 번의 죽이는 연습을 해야 가능하다고 했다. 그래서 군사 훈련을 할 때 2만번 이상의 간접적으로 적을 죽이는 연습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 청소년들은 어떠한가? 인터넷 게임이라든지 오락 게임을 통 해서 하루에도 수만 번의 죽이고 파괴하는 게임을 하고 있다. 더구나 죽여도 더 잔인하게 파괴해도 더 비참하게 파괴하는 게임을 즐기고 있다. 결국 인터 넷이라든지 오락게임의 역기능에 우리 청소년들이 모두 노출되고 있다. 그들은 사람 죽이는 것을 가상에서 일어나는 것과 현실을 혼동해서 일을 저지 르며 분노와 파괴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그대로 게임처럼 그대로 실행하 고 있다고 한다. 분명한 것은 이런 모든 사건의 배후에는 사단의 세력이 있 어 부추기고 있음이 분명하다. 오늘 이런 어두운 현실을 보고 교회가 눈을 감고 귀를 막고만 있다면 하나님 의 은혜가 떠나지 안을까 심히 두려울 뿐이다. 이제 교회가 생명운동에 적극 적으로 일서야 하고 범 교단적으로 이 시대의 고통을 끌어안고 예방과 대안 을 제시하며 실천해야 할 것이다. 1. 교회는 더 이상 개교회의 확장에 열을 올리기보다는 소외계층을 위한 많 은 관심과 헌신이 있어야 할 것이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좌절감은 곧 폭력 성으로 이어진다”며 소외계층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이 마련되지 않으면 유씨 의 연쇄살인과 같은 강력범죄는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 제 교회는 정상적인 가정이나 학생들만을 관리하고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사 회로부터 소외와 결손 가정의 청소년들을 비롯해서 학교 중퇴자들을 위한 프 로그램과 대안 교육을 교회 안에서 시행해야 한다. 2. 동국대 곽대경 교수는 “출소자들의 문제를 교정기관 탓으로 돌리는 것은 사회가 책임을 전가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지역별로 노회나 지역교 회 들이 출소자들을 위한 사랑과 관심을 두고 사회 적응 및 정착을 위해서 더 적 극적으로 그들을 위한 후원과 교육 재활을 위한 계획이 있어야 한다. 3. 중앙대 김연명(사회복지학) 교수는 “빈곤이나 소외 그리고 사회적 좌절감 이 범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은 다수의 연구를 통해 확인된 사실”이라 며 “사회적 불만이 최소화할 수 있도록 사회적 안전망을 확충하지 않으면 이 번 연쇄살인 사건과 같은 불행이 계속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사회적 안 전망을 위해서 총회나 노회에서 이 분야에 전문가를 양성해야 한다. 뿐만 아 니라 총회 상비부나 특별 부서를 신설해서 연구하여 노회나 교회와 연대해서 이 사역을 진행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제 교회는 더 이상 교회 안에만 머물러있지 말고 지역 교회들이 연대해서 소외된 청소년들이나 결손 가정 아이들이 돌보고 그 가정들을 섬기는 구체적 인 연합운동이 함께 일어나야 할 것이다. 지역의 한 교회를 예를 들어 보면 청소년들이 약 280여명(중고등학교 중퇴생들의 한 그룹이 약 40여명에 이르 고 있다) 중에서 20-30여명은 교회 안에서 적극적으로 섬기고 예배와 성경 공 부, 대안 센터와 연대해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 청소년들의 문제는 곧 가정들의 문제이기에 가정 회복 없이는 청소년 회복이 어렵다고 보고 그들 가정을 중심으로 사역을 하고 있다. 그들 가정은 대부분 이 깨지고 알코올 중독 가정들이다. 그 중에서 약 15가정 정도 매주 심방하 고 예배를 드리며 자녀를 바라보는 눈을 새롭게 하는 교육을 하고 있다. 이 런 일들이 지역 교회들과 노회와 연관해서 일어난다면 분명 이 세상은 한 층 밝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약 2:8)는 최고의 법은 이웃의 삶이나 행복을 내 자신의 삶이나 행복만큼 소중하게 생각하고 보는 것을 말한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계명은 일시적으로 옆에 있는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주 고 어려울 때 도와주는 정도의 말씀이 아니다. 내 삶의 전체적인 목적과 삶 의 방향을 질문하는 계명이다. 이 최고의 법인 생명 사랑운동을 교회가 회복 할 때 이 땅의 어두움은 점점 살아지고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가득 한 세상이 될 것이다.
122 no image 리더십-최칠용 목사
rpress
4665 2004-07-21
http://www.rpress.or.kr/files/poetry/356si.hwp리더십 최칠용 목사(서서울노회 노회장, 시은교회) 며칠 전 방영된 텔레비전의 한 프로그램에서는 어느 단체장의 리더십이 화두 가 되었습니다. 프로그램 진행자는 이 단체장의 리더십을 한 마디로 '불도저 식 리더십'으로 단정지으며, 과연 이 밀어붙이기식 리더십이 오늘 날 상황에 서 얼마나 효과적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었습니다. 사 실, 개발 위주의 정책이 한창 진행되던 70년대만 하더라도 강력한 추진력을 바탕으로 한 이런 형태의 리더십은 어느 정도 통할 수 있었으며, 상당한 효과 를 거두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날의 상황은 과거와는 사뭇 달라졌습니다. 사회 구조는 안정화 되었고 사회 조직은 다양화 되었습니다. 시민들은 성장을 바라는 것 이상으 로 자율과 자유도 함께 추구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욕구를 여러 방법과 형 태로 적극적으로 표현합니다. 이런 사회 현실에서 개인의 의견이 희생되는 성 과 일변도의 독재성이 농후한 '불도저식 리더십'은 더 이상 환영받을 수가 없 n습니다. 사전에서는 리더십을 '앞장서서 사람을 이끌어 가는 능력이나 자질 또는 통 솔력'이라고 정의합니다. 바로 공동의 목표를 위해 전체 구성원들을 응집시키 고 역동성 있게 만드는 지도력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군사 독재와 문민 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 정부라는 정 치적 격동기를 지나오면서 리더십의 부재와 혼란이라는 과도기를 오랫동안 겪 어왔습니다. 지금도 그 과정이 완전하게 끝났다고 단언할 수 없는 것이 안타 까운 현실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역사를 통해 리더십이 공동체의 진행 방향과 개인의 삶의 질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지에 대하여 체감하게 되었습니다. 바람직 한 리더십의 발휘는 사회의 안정과 번영을 가져오지만 잘못된 리더십은 분열 을 조장하고 혼란을 야기시키며 개인의 행복을 망칩니다. 그럼으로 어떤 리더 십이 사회를 이끌고 있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이러한 리더십은 사회와 마찬가지로 교회 안에서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교 회 공동체의 리더십에 문제가 있을 때 아무리 좋은 역량과 재원을 가지고 있 더라도 그 교회는 교회로서의 사명을 제대로 감 당할 수 없게 됩니다. 리더십 이 제때에 회복되지 못하면 교회 공동체는 정체되고 점점 파괴되며 많은 영혼 들이 상처를 받고 분열되기도 합니다. 교회가 사명을 다하고 교회공동체가 화목한 가운데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 록 하기 위해서는 바른 '신앙적인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모든 리더십은 리더 와 공동체간의 관계가 전제가 됩니다. 그런데 '신앙적인 리더십'에는 여기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우선적으로 바탕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런 측면을 고려 하여 '신앙적인 리더십'이 어떠해야 되겠는지에 대하여 잠깐 살펴보자면 다음 과 같습니다. 첫째, '신앙적인 리더십'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순종하는 신앙의 기초위에 서 있어야 합니다. 지도자의 야망, 욕심, 자기 의지를 내세우지 않기 위하여 지도자는 항상 하나님의 뜻을 점검하고 그 앞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 을 경우 하나님의 교회가 하나님과 상관없는 일에 무분별한 열심을 가지도록 오도할 수 있습니다. 둘째, 지도자 개인의 경건 생활이 뒷받침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인격적 교제가 없이는 아무리 훌륭한 지도자의 자질을 가졌다 고 할지라도 바 르게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셋째, 교회의 지도자는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높은 수 준의 도덕성은 그를 따르는 이들이 지도자를 신뢰할 수 있게 합니다. 교회 의 지도자가 일반 사회의 지도자들 보다 더욱 높은 차원의 도덕성을 견지해 야 마땅한 이유는 거룩하신 하나님이 직접적으로 '거룩함'을 요구하시기 때문 입니다. 넷째, 그리스도의 사랑과 섬김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 은 죽은 믿음이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사람에 대한 관심은 그리스도 안에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섭리의 절정입니다. 목자의 직분을 위임받아 행하는 교회 의 지도자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양무리를 섬겨야 하는 것이 당연합니 다. 다섯째, 지도자에게는 합리성과 포용력이 있어야 합니다. 인본주의적인 합리 성은 배격해야겠지만, 그렇다고 편견에 사로잡혀서 자신의 아집과 고집으로 일하려고 한다면 독단과 독선에 빠지는 위험을 초래하게 됩니다. 상식을 무시 하지 않고 다양한 처지와 입장을 고려하며 여러 의견을 수렴하면서도 진리에 충실한 지도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n 지금 한국교회는 리더십의 이양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제 새로 운 세대를 이끌어갈 젊은 지도자들이 속속 세워지고 있는 것입니다. 앞에서 잠깐 언급한 개인 신앙과 지도자의 좋은 덕목이 조화를 이루며 발휘될 때, 한 국 교회와 사회는 하나님 앞에서 선한 도구로 존귀하게 쓰임 받을 것이며, 모 두가 믿음의 진보를 이루며 소망스런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121 no image 회복되어야 할 한국교회의 순수성-장창수 선교사
rpress
4628 2004-07-07
http://www.rpress.or.kr/files/poetry/355si.hwp회복되어야 할 한국교회의 순수성 장창수 선교사/ 러시아 6.25 전쟁 이후 잿더미에서 일어난 대한민국! 거의 50년 만에 대한민국은 경 제 규모로 보아 세계 제 10위 안에 들어가는 강한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요 즘 한국의 형편은 이런 호시절이 거의 지나갔다는 느낌을 갖게 만든다. 우선 정치의 불안이 사회 전반에 걸쳐 안 좋은 영향을 미쳐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처럼 한국도 장기 불황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경제 학자들은 말한다. 지금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모두 나라의 장래가 어떻게 될지 몰라 불안감에 빠 져있다. 과거 어려움 가운데 경제 번영을 마침내 일으켰고 그리고 그 번영의 맛을 지난 20여년 넘게 맛보았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한국 교회를 비롯한 한 국 전체가 경제 번영이 가져다 준 부요에 빠져 하나님을 잊고 물질을 우상화 했다. 이것이 무너지려 하니 불안감은 더 하다. 불안의 시기 한국 교회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죽음에서 사흘만에 부활하 신 예수님이 이 세상 역사 와 이 민족 역사의 진정한 주인임을 깨닫고 더욱 이 소식을 외쳐야 한다. 다시 말해 한국 교회가 한국의 정치와 경제 불안에 함께 휩쓸릴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이 구세주이며 만물의 주인 됨을 더 욱 높이 외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교인들로 하여금 세속사만 아니라 구속사를 보게 하고 하늘 보좌에 앉으신 예수님을 믿고 더욱 소망하도록 한국 인들을 깨워야 한다. 요즘 한국을 보노라면 입술로 나라의 국운을 망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정치 지도자들이 함부로 말을 하며 인터넷상 온갖 거짓말과 과장된 말과 비방 으로 가득하다. 이런 현상을 보면 한국인들은 모두 어리석다고 느껴진다. 한 국인 모두 같은 배를 탄 사람들임을 잊고 있기 때문이다. 찬성자나 반대자나 결국 같은 배에 탔음을 알고 적당한 선에서 타협이 있어야 하나 이들은 서로 죽이기 식의 배타주의만을 보인다. 여기에 한국 교회도 예외가 아니며 그리 고 그런 백성 가운데 교회가 위치하여 좋지 않은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이 때 비방이나 원망보다 그저 죄인임을 부활 주님 앞에 고백해야 한 다. 이 고백과 회개는 이사야처럼 거룩한 하나님을 만나야 가능하다. 그것은 교회의 강대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누구인가가 성경의 가르침대로 설교 될 때 교회에서 회개 운동이 전개될 수 있음을 말한다. 그것은 목회자가 먼 저 바로 성경을 알고 회개할 때 회개 운동이 한국 교회에서 전개됨을 뜻한 다. 칼빈이 말한 대로 신지식은 인지식이다. 신지식이 강대상에서 풍부할 때 인간 은 자신이 누구임을 알고 주 앞에 회개한다. 이 점에서 한국 교회는 강대상에 서 무엇을 외치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복음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으면 교인 들도 달라지지 않고 그리고 그 사회도 변혁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 강대상에서 부활 주님이 만유의 주됨이 선포되면 반드시 회개 운동 이 일어날 것이며 그리고 많은 성도들이 주를 위해 헌신할 것이다. 이런 수 가 늘어나면 비로소 한국은 사회 전반에 걸쳐 변혁과 개혁이 수반될 것이다. 개혁이 외쳐진다고 변혁되지 않고 주 앞에서 사람들이 달라져야 가능하다. 이 점에서 한국 교회가 불신 사회와 함께 개혁을 외칠 것이 아니라 강대상에 서 복음을 더욱 순수하게 전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한국 교회는 세계 교회 역사가 이전 보지 못한 찬란한 교회 성장과 부흥의 역 사를 한 동안 체험했다. 그러나 백년이 지나면서 교회 성장은 갑자기 급랭한 물결을 탔다. 참으로 어떻게 이것을 돌파해야 하는지 어느 누구도 모른다. 그 러나 이사야가 받은 사명은 한국 교회의 모든 찬란한 과거가 완전히 잊혀져 야 그 다음 진정한 새 출발이 있음을 말한다. 한국 교회는 양적 성장이 주는 잘못된 자부심과 자긍심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 야 한다. 이것들은 영적 순수성을 해친다. 그리고 성경의 가르침대로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은 한국 교회가 텅텅 비도록 조치하실 것이다. 이 이후에야 비로소 새로운 출발이 가능할 것이다. 이사야가 본 환상(사6장)은 교회나 성도가 앞으로 주어진 세월을 어떻게 주 앞에 살아야 할 것인가를 가르친다. 이 세상과 대한민국은 하나님의 심판대에 서 망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 땅의 일시적인 번영보다 하늘 보좌에 앉아계신 부활 주님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소망하기에 더욱 열심히 사명을 감 당해야 한다. 사명 결과가 부정적이며 비관적이라 해도 열심히 그리고 주님 재림까지 복음을 전해야 할 것이다.
120 no image 미자립교회를 생각하면서-장귀복 목사
rpress
4444 2004-06-23
http://www.rpress.or.kr/files/poetry/354si.hwp미자립교회를 생각하면서... 장귀목사/ 중서울노회장,일산은혜교회 최근 부천에서는 개척교회 목회자가 교회성장이 더디다는 이유로 무차별 방 화를 해 사회에 큰 충격을 준 일이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목회자들 의 현실을 보여준 듯합니다. 사명감에 목사는 되었는데, 목회할 자리는 없고, 그래서 많은 목사님들이 힘들게 교회 개척을 시작합니다. 목사가 된 사람들 중에는 다행히도 부목사 가 되어 사역을 시작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이 40이 넘어가면 상황은 마찬 가지가 됩니다. 나이 40에 부목사로 있기에는 눈치가 뵈어 다른 자리를 찾아 보지만 담임 목사로 가기에는 마땅치 않은 현실이다 보니 천상 교회 개척을 하게 됩니다. 크고 좋은 교회에 있으면 나름대로 편안하게 개척을 시작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혼자 어렵게 개척을 해야 합니다. 통계에 의하 면, 목회자 홀로 개척을 시작하는 사람이 48%, 몇몇이 같이 동참해 개척하 는 경우가 30%, 교회에서 개척해 주는 경우가 14.7%, 교단에서 개 척하는 경 우는 6.7%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어렵게 개척을 시작하는 분들이 거의 80% 수준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개척을 시작했다고 일이 잘 풀리는 것은 아닙니다. 개척은 시 작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부흥 속도가 더디고 심지어 침체의 상황에 빠지게 됩니다. 게다가 경제적 어려움까지 겹쳐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지 게 됩니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속에서 다시 결심하고 목회에 열심을 내보지만, 상황은 제자리 걸음이 됩니다. 몇 번 그러다 보면 지치고 의욕을 잃고 점차 목회에 대해 회의에 빠지기도 합니다. 아이는 자라나고, 미래는 보이지 않고, 나이는 먹어가고... 물론 믿음으로 사명을 잘 감당하시는 분들 도 계시지만 현실적 상황은 마찬가지인 듯합니다. 현재 한국교회의 대체적인 통계를 보면 1천명이 넘는 교회는 전체 교회의 4% 정도, 300-1천명 정도의 교회는 6% 정도, 그리고 100-300명 정도의 교 회는 20%, 그리고 100명 미만의 교회가 약 7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 니까 대한민국 목회자 중 10명 중에 7명은 교인 100명 미만의 수로 어려운 목회를 하고 있다는 결론입니다. 그나마 교회를 목회하고 있는 목사는 크든 작든 사역을 하고 있으니 다행인 줄 압니다. 사역지가 없어 그냥 쉬거나 마 지못해 다른 일에 종사하는 목사들은 또 얼마나 되는지 계산도 되어 있지 않 은 상황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현실임에도 이에 대한 구체적인 상황 파 악이나 해결책이 전무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단도 예외는 아닌 듯합니다. 오히려 전체 한국 교회의 퍼센트에 비 해 100명 미만 교회의 퍼센트가 더 높지 않나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어려운 미자립교회들이 그냥 방치된 상태로 있습니다. 기껏해야 노회나 교회들에서 얼마간의 재정적 지원을 해주는 것 외에는 전혀 다른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 고 있습니다. 지교회 목회자들이 알아서 고민하고 노력하고 발버둥이치는 방 법밖에는 없습니다. 과연 미자립교회들이 부흥하고 성장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각 교회 목회자 들이 알아서 해나가도록 그냥 놓아두는 방법밖에 없을까요? 저는 개인적으 로 뭔가 좋은 방법이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특히 제가 사는 일산 지역 에 많은 개척교회들이 있다 보니까 종종 그런 생각을 합니다. 모두 다 안정 되고 잘 성장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가끔 밤거리를 올려다보면 한 곳에서 10 여개의 십자가 탑을 볼 수 있는 곳도 있습니다. 그 목회자들이 어떤 어려움 속에 있을까 생각을 하면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교단 차원에서 미자립교회들의 문제를 좀더 체계적이고 구체적으로 접근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목회자들의 처지와 입장에서 어 떻게 극복해 나갈 수 있는지도 연구했으면 합니다. 더욱이 인재가 많은 대형 교회에서 어떻게 하면 미자립교회들을 도울 수 있는지 살펴주셨으면 합니 다. 대기업도 잘되어야 하지만 중소기업들이 건강하고 든든하게 서야 나라 가 견고해 지듯이, 한국교회도 마찬가지인 줄 압니다. 그런 가운데 개인적으로 미자립교회 목회자님들에게 주제넘은 것 같지만 몇가지 권면해 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첫째, 기신자가 오길 바라기보 다 새신자를 전도하십시오. 주변에 믿지 않는 사람들이 80% 이상입니다. 낚 을 고기는 널려 있습니다. 눈을 크게 뜨십시오. 둘째, 길게 보고 사역하십시 오. 제가 대학부를 지도하면서 네이게이토에 대해 배우려고 일년 정도 나갔 을 때, 그 책임자가 제게 한 말이 머 리에 남습니다. 급하게 마음 먹지 말고 1년에 한 영혼씩 전도하며 키워나가는 기하급수적인 방법을 충실하게 사용한 다면, 10년에 1-2백명의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다고. 실제로 그는 홀로 캠 퍼스 사역을 시작한 이래로 10여년이 흘렀는데 그 지구에 모이는 사람들은 200여명이었습니다. 더딘 듯 하나 빠른 길을 택하십시오. 셋째, 자신의 색 깔을 내십시오. 미자립교회일수록 잘되는 교회의 방법을 닮으려고 하는데, 그것보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사를 찾아 내 목회 색깔을 두드러지게 하십시 오. 거기에 하나님의 역사가 있는 줄 압니다. 이런 제안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위로가 되겠습니까? 그럼에도 우리 교단 과 많은 교회들이 연합해 노력함으로 하나님 은혜 가운데 미자립교회들이 건 강하게 성장하는 날을 소망해봅니다. 미자립교회 목사님들, 힘내십시오!
119 no image 교회의 사역자들이 노동자인가?-김원광 목사
rpress
4357 2004-06-09
http://www.rpress.or.kr/files/poetry/353siron.hwp교회의 사역자들이 노동자인가? 북서울노회장:김원광목사(중계충성교회) 최근 인천의 경인교회(통합)에서 「기독교노동조합준비위원회」라는 것을 구 성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미 지방 노동청에 노조가입신청을 했고, 노조설립 신고증도 교부받아 정식 노조를 구성했다. 담임목사인 이길원씨가 이 일을 주도했다고 한다. 보도된 바에 의하면 그들은 이러한 노조 구성을 통해 향 후 대형교회들의 전횡이나 강단 세습과 같은 폐해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고 한다. 나는 이 기사를 보면서 참담한 생각이 들었다. 어쩌다가 교회의 사역자들이 스스로를 노동자로 여기게 되었나 하는 생각 때문이다. 이 교회는 부교역자 들도 노조에 가입하였다 하니, 교역자들도 모두 월급 받아 생활하는 노동자 라고 생각한 것임이 분명하다. 한기총에서는 전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 박했다고 한다. 그리고 경인교회가 소속한 통합 교단에서도 그 추이를 지켜 보겠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나는 이런 결과는 이미 예견되던 것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언제부터인지 교 역자들도 자신들을 월급쟁이의 하나로 여기는 분위기가 있어온 것이 사실이 기 때문이다. "신학생들이 너무 많이 양산되어 문제"라는 식의 교계 신문기사들은 그 실례 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일 할 수 있는 일자리가 없는 상태에서 그냥 대책 없 이 신학생들을 양산해 내는 것은 부당하다는 투의 보도들은 일면 옳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보도들을 볼 때마다 나는 "신학교에 오는 사람들이 언제부터 일자리를 얻으려고 오게 되었는가? 도대체 일자리가 없다는 말이 무엇인가?" 라는 반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목사로 임직을 할 때 다음과 같은 서약을 한다. "본인은 목사직을 구한 것이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그 독생자 예 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자 하는 마음 때문 임을 고백 합니다." 바로 이것이 신학교에 입학하는 이유이어야 한다. 신학생은 삯을 찾아 일하 는 노동자가 아니다. 그들은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명자이다. 복음을 증거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한다는 사명에 불타는 자들이다. 지금도 복음을 듣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너무나 많다. 사명 자는 이들을 향하여 가는 자들이다. 이런 사명자들의 수는 아무리 많아도 상 관이 없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마치 바울처럼 월급과 상관없이 자비량해 서라도 맡은 사명을 감당하고자 할 것이다. 신학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서 공부하는 학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신학은 복 음을 증거 하는 사명자로 부르심을 받았고, 그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 배 우는 것이어야 한다. 교회의 사역자들은 노동자 의식을 가져서는 안 된다. 교회는 하나님의 권속 (가족)이다. 사역자들은 그 가정을 돌보는 사람들이다. 자기 가정을 돌보는 사람이 그 일의 대가로 노임을 받는 노동자라고 자신을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 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가족이 아니라 삯을 위해 일하는 고 용된 일꾼일 것이다. 물론 우리는 이런 주장들까지 나타나게 된 오늘의 불합리한 교회 운영의 현실 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모든 성도들이 보기에 합당한 교회 운영체계 가 마련될 수 있도록 노력도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 안에서 사역을 감당하는 교역자나 성도들이 스스로 를 일하고 삯을 받는 노동자로 여기는 것은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다. 노동 자는 삯을 위하여 일한다. 그러므로 일을 한 후에 받는 대가가 중요하다. 그 러나 우리는 주님이 맡겨주신 사명이기에 일한다. 사명자는 주님이 맡기신 일이기에 대가가 없다할지라도 사명 자체를 감당하기 위하여 일한다. 교회 안에는 고용된 일꾼들이 아니라 자원하는 주님의 권속(가족)들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는 진정 사명자로 교회를 섬기는가? 진정 우리는 하나님의 권속인 가?
118 no image 노대통령과 변목사 -변세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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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04 2004-05-27
http://www.rpress.or.kr/files/poetry/352si.hwp노대통령과 변목사 변세권 (온유한교회, 강원노회장) 멀지 않은데서 우는 뻐꾸기 울음소리에 새벽기도를 다녀오다 마음이 숙연해 졌다. 인생은 진지한 거라고 노래하는 것만 같았다. 마침 헌법재판소가 대통 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심판 청구를 기각했다. 그동안 모두에게 분열과 갈 등, 아픔과 상처가 있었지만 헌재의 결정문으로 야당에게는 온유를, 대통령 에게는 겸손을 요구했다고 보여진다. 사실 목사는 정부와 정치에 대해서 정부가 어떻고 대통령이 어떻고 얘기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가끔 노회회원들을 만나 정치 얘기를 해봐도 무의미하 고 서로의 생각이 달라 늘 허전함이 남고는 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정직히 살게되면 우리가 살고있는 소돔과 고모라 가 구원을 얻게 될 것이다. 이 시대는 우리의 손에 달려있다. 그러나 그 방 법은 우리가 정치적, 사회적 능력과 지위를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이 이 시대를 구원하시기를 원하시며, 그 구원의 증인이 되고 일군이 되는 사람이 있느 냐 없느냐에 따라서 그 사회가 멸망하기도 하고 구원을 얻기도 한 다. 그럼에도 나는 이념과 노선, 정책을 떠나 노대통령과 내 스타일을 많이 비 교해 보았다. 우리 강원노회는 그동안 노회를 안정적으로 이끌며 전통을 세 우느라 또한 지역특성상 번갈아 가면서 선배목사님 한 두 분이 노회를 잘 이 끌어 주셨다. 그리고는 ‘젊은 후배들이 일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해서 부족한 사람이 노회를 섬기게 되었다. 그런데 노회가 끝나고 그 다음 날 교역자 연합회 친교모임도 예정되어 있 어 숙소에 모였다가 잠시 돌아볼 회원이 있어서 노회원들과 밤을 함께 하지 못했다. 그 다음 날 아침, 식사시간에 들어갔더니 장난삼아 하신 말씀이겠지 만 노회장 탄핵해야겠다고 해서 그렇지 않아도 얼떨결에 노회장이 된 터이라 겉으로는 웃으면서도 마음은 그렇게 편치 못했다. ‘그렇구나! 책임 있는 자 리는 그 마음의 내적 동기를 떠나 행동이 중요하구나 !’ 지난 날 대통령의 리더십 위기를 보면서 나의 대화법을 많이 생각해 보았 다. 사실 지난번 대통령의 각종 발언이 문제가 되었을 때 나는 이미 그전에 속으로 ‘하나님, 정말 목사 못하겠습니다. 너무 힘이 듭니다’라는 기도를 드린 적이 있었다. 이내 하나님으로부터 ‘안하면 자식아, 너만 손해지 임 마 !’ 하는 책망을 받았지만, 나의 대화법이 반어법과 역설법을 통해 솔직 하고 친근하게 다가서는 노대통령의 화법과 비슷하다. 그렇지 않아도 평상시에 지도자로서의 덕이 약하고 말에 절제를 못하고 있 구나 생각하던 터에 교회로 돌아와 집사님들께 물어보았다. ‘집사님, 내가 대통령 말하는 것하고 비슷해요 ?” 했더니 “네 목사님, 그러고 보니 말하 는 스타일이 노대통령과 비슷해요.” 그래서 일단 충격을 받고 또 다른 집사 님에게 가서 정말 그런가 한 번 더 물어봐야지 했더니 그 집사님도 "목사님 은 잘 나가다가 남을 배려한다는게 지나쳐서 오히려 상대방에게 오해가 될 때 가 있어요." 그 얘기를 듣고 있다가 난 기절하는 줄 알았다. 사람은 다 이렇게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구나, 솔직하고 친근한 게 다는 아 니구나, 작은 구멍 하나로 댐이 무너지는 것이구나, 목회는 그렇게 되는 게 아니구나! 하는 깨달음이 더욱 가까이 찾아 왔다. 탄핵이 끝나고 많은 사람들은 대통령에게 변화와 개혁 못지 않게 겸손과 포 용력의 지도력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노대통령이 아니라 순전히 나를 두고 한 말이었다. 내가 이 꼴이니 그동안 이런 나의 결점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목사가 소신껏 일하도록 불평 한 마디 안하고 따라준 성도들 보기 가 민망해진다. 나이가 들어가고 어떤 책임을 받았으면 나이든 멋이 있어야겠다. 넉넉하 고, 분별 있고, 포용력 있고, 잔잔해지고, 말을 새겨서 할 줄 알고, 들을 줄 알고, 표정관리 할 줄 알고, 감정 절제할 줄 알고, 잘난 척 하지 않고, 눈에 힘주지 않고, 교회와 성도들에게 온유와 겸손을 더욱 겸비하여 진실한 주님의 사랑으로 편안하게 다가가야겠다. 우리 모두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 라'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헌신한다면 국가와 사회와 가정과 우리가 섬 기는 교회의 문제가 훨씬 가벼워 질 것이다.
117 no image 생산적인 총회를 기대하며-박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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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89 2004-05-12
http://www.rpress.or.kr/files/poetry/351si.hwp생산적인 총회를 기대하며 박양호 목사/ 은강교회 우리 총회가 보다 생산적이고 발전적인 총회가 되기 위해서 외람되지만 몇 가 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먼저 총회임원선거공영제를 제안한다. 총회만 되면 매년 등장하는 메뉴이기 에 많은 사람들이 식상할지 모르지만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부분 중 한 가지 가 바로 선거제도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시간을 바르게 활용하기 위해서이다. 총회를 한 번이라도 참석해 본 총대들은 대부분 느끼는 바이지만 임원선거를 위해서 너무나 많은 시간을 소 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임원선거를 위해서 총회를 개최하는 듯한 인상 을 지을 수가 없다. 두 번째는 검증된 인물을 선출하기 위해서이다. 누가 누구인줄 모르는 중에 선거를 치르기 때문에 쓸데없는 시간을 많이 소비할 뿐 아니라 많은 총대들 이 자신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다수의 눈치를 따라 선거를 치를 수밖에 없 다. 그런 의미에서 현 제도는 참으로 합리적이지 못할 뿐 아니라 효율적 이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자들은 과열선거 혹은 사전선거운동 운운하면서 반 대를 한다. 그러나 양심적으로 답을 해보라. 과연 현재의 제도에서 사전선거 운동 없이 선거가 치러지고 있는지. 오히려 뒷전에서 쉬쉬하면서 음성적으로 선거운동을 하는 것은 비합리적일 뿐 아니라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세 번째 이유는 총회 일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사전준비를 위해서이다. 적 어도 하나의 총회를 이끌어가기 위해서 많은 부분들을 미리 기도하고 준비하 여야 하지 않을까? 본인의 의사에 상관없이 임원으로 선출된 후에야 정책을 구상하고 생각한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총회의 발전에 불이익을 가져오는 일 이라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선거공영제는 시대의 흐름이다. 선거 문제는 비단 우리 교단만의 문제가 아니다. 교단마다 총회시기만 되면 선거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지 아니 한가? 다행스럽게도 우리 교단은 다른 교단에 비하여 잡음이 적은 것으로 위 안을 삼을 뿐이다. 그러나 과연 하나님 앞에서 양심적으로 깨끗한 선거를 치 르고 있는지 묻고 싶다. 사전선거운동 없이 그 자리에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임원이 선출되 고 있는지? 뒷전에서 양심의 무거운 짐을 지고 음성적으로 선거운동을 하는 것보다 공개 적으로 인물을 평가하고 검증을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나 교회 앞에서 양심 적으로 떳떳하지 않을까? 시대의 흐름을 거슬리지 말자. 혹 개혁주의 운운하 면서 선거공영제를 실시하면 마치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신학에 오류를 범하 고 있는 것처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과연 선거문제가 우리가 추구하 고 믿고 있는 신학에 심각한 오류를 범하는 일이 되는지? 필자의 소견으로는 선거문제는 마치 우리들이 입고 있는 옷에 불과하다고 생 각된다. 사람을 바꿔서는 안 된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을 따라 옷은 갈아입어 야 한다. 마찬가지로 근본적인 신학문제는 시대가 어떻게 변하든 바꿔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지엽적인 문제들은 과감하게 바꿔져야 한다. 그래야 이 시대를 리더해 가는 총회가 되지 않을까? 시대의 흐름에 앞장서지는 못한 다고 할지라도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지는 않는 총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생산적이고 보다 발전적인 총회가 되기 위해서 정책적인 총회가 되기를 바란 다. 총회를 참석할 때 많은 기대와 설렘 속에서 참석을 하고 총회가 끝나면 가슴 뿌듯한 마음을 안고 되돌아가는 총회가 되게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많 은 정책이 개발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총회가 열리면 그 정책을 살펴서 평 가하고 토의를 해야 하지 않을까? 단순히 행정적인 총회에 그친다면 과연 그 많은 시간과 물질을 드릴 필요가 있을까? 이번 총회에는 기대를 해 본다. 보다 생산적인 많은 정책과 더불어 구태의연 한 제도들을 과감하게 개혁해서 많은 시간과 물질을 투자한 만큼의 결실을 거 두는 총회가 되어지기를 바란다.
116 no image 누가 하나님 편에 설 것인가? - 박발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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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92 2004-04-28
http://www.rpress.or.kr/files/poetry/350si.hwp누가 하나님 편에 설 것인가? 박발영 목사 (한우리교회) 남북 전쟁 때의 일이다. 전쟁이 한참 치열하여 어느 쪽이 승리할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한 장교가 염려하는 표정으로 링컨에게 이런 질문 을 했다. "하나님은 이 쪽 편일까요 저 쪽 편일까요? 어느 쪽 편이실까요?" 그러자 링컨은 이렇게 대답했다. "하나님은 이 쪽 편도 저 쪽 편도 그 누구의 편도 아니시다. 다만 누가 하나 님의 편에 서 있는가? 이것이 중요할 따름이다." 이 이야기는 하나님이 나의 편이 되어 전쟁의 승리를 주기를 바라기 전에 우 리가 하나님의 편에 서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잘 지적하고 있다. 나는 링 컨의 말을 이 시대가 큰 음성으로 들어야 할 큰 교훈이라고 생각한다. 첫째, 정치하는 위정자들이 큰 음성으로 들었으면 좋겠다. 국민이 자기 편이 되어 집권하기를 바라기 전에 위정자들이 국민의 편에 설려 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TV에 출연하여 토론을 벌이는 각 당을 대표하는 정치 인을 보면 하나같이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그들은 국민들을 자기 편으로 끌 어들여 자기 당을 지지하도록 하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있다. 망국병이라는 지역감정을 부추기면서, 가당치도 않은 공약을 남발하면서, 거 짓말로 국민을 속이고, 때로는 감언이설로 유혹도 하고, 때론 상대 당을 짐승 처럼 잔인하게 물어뜯기도 하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지 국민들을 자기 편으로 만들어 많은 의석을 확보하여 제 1당이 되려고 혈안 이 되어있다. 그들은 국민의 편에 서서 국민이 원하는 위정자가 되고싶은 생각이 전혀 없 는 것 같다. 오직 많은 의석을 확보하는 것에만 집착할 뿐이다. 이것이 국민 들의 눈에 비치는 요즘 정치인들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둘째, 조국 교회를 책임지고 있는 목사인 우리들이 큰 음성으로 들었으면 한 다. 오늘날 우리 조국 교회 목회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하나님이 내 편이 되어 목회에 성공[?]하기를 바라기 전에 내가 하나님의 편에 서서 하나 님이 원하시는 목사가 되려고 먼저 힘써야 할 것이다. 나는 사랑하는 동료 목사님들에게 묻고 싶다. 조국 교회 대부분 목사들의 꿈 이 대형 교회를 담 임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대형 교회를 담임하는 목 사가 되는 것이 모든 목사의 목표와 꿈이 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하나님의 편에 서서 하나님이 원하는 목사는 꼭 대형교회를 담임하는 목사뿐 일까? 작은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는 다 실패한 목사일까? 그것이 아니라면 교 회가 크고 작은 것에 너무 집착해서는 안될 것이다. 나는 얼마전 수만 명의 성도가 모이는 초 대형교회를 담임하는 H 목사로부터 이런 간증을 들었다. 그는 생사를 넘나드는 간암 대수술을 3번이나 받았다고 한다. 그때 죽음 앞에서 크게 깨달았다고 했다. 하나님 앞에 서려고 하니까 내가 얼마나 위대한 업적을 많이 남겼는가, 내가 얼마나 성공한 목사였는가, 내가 얼마나 큰 교회를 담임하였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어떤 자였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하더란 것이다. 일보다 성공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였다는 것이다. 불의사자[?] 보다, 능력의 목사보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목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목사, 예수님의 성품을 소유한 목사,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한 목사가 하나 님의 편에 서있는 하나님이 원하는 목사가 아닐까?
115 no image 지도자의 덕목을 생각하며-문상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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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27 2004-04-14
http://www.rpress.or.kr/files/poetry/349si.hwp지도자의 덕목을 생각하며 문상진 목사/ 한라산교회 언젠가 한 기독교 기관에서 목회자들이 목회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을 조사한 적이 있었다. 전부는 기억 못하지만 1위는 ‘자기를 다스리는 것’, 그리고 2 위는 ‘사람들과의 관계’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었다. 자신과의 싸움 그리고 사람들과의 화목, 이것은 비단 목회자들만의 고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적어 도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숙제일 것이다. 참 된 리더자는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함과 동시에 다른 사람과 의 관계 속에서 조화를 이루어 낼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인내를 통한 절 제, 그리고 대화를 통한 설득을 필요로 한다. 이런 각도에서 우리나라의 탄 핵 정국을 보면 더더욱 슬퍼진다. 지도자 부재의 시대임을 절감하기 때문이 다. 어떻든 최고 지도자인 대통령은 충동적이고 일방적인 정치 스타일로 오늘이 있게 한 제1 책임자가 되었다. 언행의 절제와 야당과의 대화가 부족했다. 또 한 대다수 국민이 반대한다는 것을 알고도 탄핵을 주도한 야당 역시 그 책임 자임을 인정해야 한다. 탄핵에 찬성하지 않았던 이들 중에 대통령의 말에 기 분이 나빠서 가결에 동참한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감정 위주, 충동적 대응 이었다. 이것을 지켜본 많은 국민 역시 감정적으로 대응했다. 탄핵에 대한 반 감으로 여당의 지지도는 급등했고 ‘3.12때 당한 원한 4.15때 복수하자”라 는 식의 언동은 많은 사람들을 감정의 골짜기에서 헤매이게 했다. 이번 총선 의 결과가 어떻게 나왔든지 간에, 만일 이성에 의한 분별의 결과가 아닌 분노 에 의한 감정적 충동에 의해 투표한 결과라면 그것은, 여·야 누구의 승리도 아닐 뿐더러 국민이라는 마지막 지도자 역시 실패했음을 나타낸 셈이 되는 것 이다. 지난 3월 30일 한라산교회의 헌당 및 임직식이 있었다. 증경 총회장님을 열분 이나 모시고 치러진 감사와 감격의 시간이었다. 예식 순서지를 만들 때 있었 던 일이다. 축하 행사에 몸찬양 순서가 있었다. 서울의 N교회에서 일부러 축 하를 위해 오기로 준비된 자리였다. 그런데 순서지 초안을 보신 한 어르신 목 사님께서 몸찬양 순서를 빼라고 조금은 단 호한 어조로 말씀하셨다. 대외적 행 사에 혹시 경건치 못한 순서가 들어갈 것을 우려하신 보수적인 노(老)목사님 의 배려이셨다. 나는 이를 N교회 목사님께 알렸다. 목사님은 당황하셨으며 난 감해 하셨다. 이미 제주도에 올 것으로 생각하고 연습해 온 단원들에게 뭐라 고 할 것인가를 걱정하신 것 같았다. 얼마 후 N목사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몸찬양에 대해서 어르신께 설명을 드렸다고 하셨다. 어르신께서 걱정할 정도 의 수준이 아닌 경건한 율동이며 율동곡임을 이해시키려 하셨다는 것이었다. 허락을 하셨냐는 나의 질문에 허락은 못받았지만 어쨌든 안하더라도 단원들 을 참석은 시키겠다고 하셨다. 아쉬움과 서운함이 섞인 음성이셨다. 조금 후 에 노(老)목사님께로부터 전화가 왔다. 들어보니 걱정할 수준은 아니니까 원 래대로 하도록 하자는 승락의 말씀이셨다. 결국 몸찬양은 아름답게 드려졌고 이번 행사에서 설교와 함께 참석한 분들에게 가장 은혜를 끼친 순서가 되었다 (감격해서 눈물을 흘리는 초신자도 있었다). 이 일을 통해 나는 다름(異)을 조화시키는 모습을 생각하였다. 거부당함에 감 정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차분히 설 득하여 동의를 얻어내는 모습을 보면서, 절 제와 대화의 힘을 느꼈다. 또한 대화를 통해 기꺼이 설득을 당하시는(?) 노 (老)목사님의 너그러움에 은혜를 받았다. 합신 교단의 어르신들의 섬김과 배 려 그리고 양보의 덕을 볼 수 있었다. 이 두 분 목사님의 대화와 타협의 모습 을 보면서 지도자의 그림이 그려졌다. 목회자이건 정치가이건 지도자의 위치 에 있는 자라면 자신의 욕심과 감정을 지혜롭게 절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 고 어떤 사람과도 대화를 통한 화합을 이끌어 낼 능력이 있어야 한다. 특별히 목회 현장에 이러한 절제와 대화 그리고 이를 통한 화목의 열매가 맺 혀진다면 오늘 이 분열과 반목의 시대를 보고 슬퍼하시는 우리 주님께 드려지 는 최고의 선물이 될 것이다.
114 no image 교회를 돌아보는 일의 중요성-최덕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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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54 2004-04-02
http://www.rpress.or.kr/files/poetry/348siron.hwp교회를 돌아보는 일의 중요성 최덕수 목사/ 현산교회 평안하던 교회가 어느 순간 풍비박산이 나서 교단 신문에 기사화 되고, 각 종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것을 볼 때 비애를 느 끼지 않을 수 없다. 목사가 면직을 당하고 교회는 사분 오열되는 이런 일들 은 과연 누구 탓인가? 물론 교회마다 상황은 다르겠으나 대부분의 경우 교회 지도자들에게 많은 책 임과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작금의 정치 현실도 그렇지 않은가? 어지 러운 정치 현실에 대한 책임이 국민들에게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대부분의 책임은 정치인들에게 있다. 교회문제도 마찬가지다. 필자가 어릴 때 다닌 모 교회는 우리나라 보수교단 에서 유명한 교회였는데 항상 교회 안에 분란과 다툼이 끊이질 않았다. 그런 데 대부분의 문제들은 목사 장로들이 일으켰다. 대개 교회 안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면 목사가 나가든지 장로가 나가든지 한 다. 문제가 더 확대되면 나가지 않고 지도자를 중심으 로 파가 나뉘어 대립양 상을 보이다가 결국에는 명예훼손, 교회당 소유권 분쟁 등 법정소송으로 비 화된다. 자기 이익 추구를 위해 형제를 세상 법정에 고소했던 고린도교회의 문제가 현실로 다가온다. 과연 이 문제를 목회자 한 사람이나 개 교회 탓으로만 돌려야 하는가? 어떻 게 하면 이런 문제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할 수 있으며, 문제가 일어나더라 도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닫지 않도록 할 수 있을까? 우선 노회나 시찰회가 관할 교회를 제대로 돌아보아야 한다. 목사와 개 교회 가 노회의 지도를 받아야 된다는 장로교 치리원칙을 모르는 사람은 없으며, 심방을 통해 교인들의 영적 형편을 돌아보아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목회자 도 없다. 그런데 시찰회가 교회를 돌아보지 않아도 별로 문제의식을 갖지 않 는다. 물론 제대로 교회를 돌아보는 노회나 시찰회가 없지 않겠지만, 이런저런 사 정으로 교회들을 제대로 돌아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조직은 있으나 활동 이 없고, 활동이 있더라도 너무 미미하다. 세속정부에는 감사원과 같은 감 찰 기구가 있어 각 부서가 제대로 일을 하고 있는지, 재정은 원칙대로 집행 되고 있는지 등의 여부를 감찰하며 위법 여부가 드러나면 사법기관에 회부한 다. 그런데 교회는 어떤가? 개 교회의 자세한 상황은 그 교회의 지도자나 교인 들 외에는 알지 못하고 있으며, 교회문제가 바깥으로 흘러나와 알만한 사람 은 다 알고 있을 정도가 되어도 시찰회나 노회 편에서 먼저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개 교회 치리회의 주권을 너무 배려하다가 문제가 곪아터 진 다음에 비로소 노회가 개입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이다. 감사기관이나 사법기관이 존재하는 목적은 범죄자를 검거하는 일에만 있지 않 고 범죄를 예방하는데도 그 목적이 있다. 노회와 시찰회가 이미 일어난 문제 에만 개입하고,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사전에 조처를 취하지 않으면 교회 가 갈기갈기 찢기는 일이 계속해서 일어날 수밖에 없다. 두 번째로 당회가 제 기능을 발휘해야 한다. 당회가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 해서는 신학에 조예가 있고 진리를 분별할 줄 아는 장로들이 많이 세워져야 한다. 요즘 대기업의 사외 이사들처럼 대표이사의 결정에 손이나 들어주는 사람이 아니라 진리에 위배될 때는 견제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세워져야 한 다. 그래야 한 사람에 의해서 교회가 휘둘리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세 번째는 지도자 자신이 욕심을 버려야 한다. 대개 교회 문제가 법정 소송 으로 비화되는 일의 중심에는 금전문제가 있다. 결혼할 때는 그토록 아름다 워 보이던 두 사람, 자기보다는 배우자를 위해서 수고하며 헌신하던 부부가 이혼할 때는 명예나 체면 따위는 내팽개치고, 위자료를 덜 주고 더 받으려 는 줄다리기를 계속하다가 가정법원의 판결을 통해서 비로소 끝을 낸다. 교회 문제가 법정 문제로 확대되는 것도 손해는 덜 보고 이익은 더 얻으려하 기 때문이다. 이왕 막나가게 된 바에 조금이라도 이익을 더 챙겨야겠다는 마 음이 앞선다. 명예와 물질에 대한 욕심이 없다면, 대부분의 교회문제는 일어 나지도 않을 것이요, 설사 문제가 일어나더라도 속히 해결될 것이다. 조나 단 에드워즈는 선별적 성찬론에 대해 심하게 반대하는 교인들을 두고 수 십 년 간 목회했던 교회를 미련 없이 떠났다. 어느 한 편이라도 욕심만 버리면 문제는 해결된다. 시찰회가 명실상부한 시찰의 기능을 강화하고, 당회가 견제 기능을 회복하 고, 지도자가 욕심을 버리면 교회가 갈기갈기 찢어지는 뼈아픈 일은 일어나 지 않을 것이다.
113 no image 나라 살려내기-정창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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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4 2004-03-17
http://www.rpress.or.kr/files/poetry/si347.hwp나라 살려내기 정창균 목사/ 새하늘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살지만 세상에 속하여 있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궁 극적 관심은 영원한 나라에 있지 현실 세상에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말 은, 우리가 사는 세상과 현실에 대하여 관련도 없고 책임도 없다는 말이라고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정치와 교회의 관계에 대하여 개혁주의가 표방해온 탁월한 원리 가운데 하나 가 "정교분리의 원칙"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이 교회는 정치현실을 떠 나 별천지에서 따로 뭉쳐 살아야 된다는 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없습니 다. 교회가 현실정치와는 분리되어 살 수 있을지 몰라도, 정치현실과 분리되 어서 살수는 없습니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바벨론으로 사로 잡혀간 이스라엘 포 로들에게 하신 말씀은 이것이었습니다.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 읍의 평안하기를 힘쓰고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렘29:4-7). 원한과 복수 심으로 가슴이 미어졌을 원수 나라를 놓고 오 히려 그 성읍의 평안을 위하여 힘쓰고 그것을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고 하시는 이 말씀이야말로, 하나님 의 백성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 세상에 대하여 얼마나 큰 역할을 감당해 야 할 책임이 있는지를 무섭게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만이 아 니라, 곧바로 우리 자신의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삶을 영위하는 데에도 직결되 어 있다는 것이 하나님의 이어지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나라의 소위 정치가들 가운데는 참으로 질과 수준이 낮은 사람들이 많아 서 그들의 잘못된 정치 행위로 말미암아 백성들이 많은 고통을 당한 것이 한, 두번이 아닙니다. 어떤 친구는 이러한 우리의 현실을 놓고, "우리나라는 정치가들만 없으면 정말 살기 좋은 나라"라며 빈정대기도 하였습니다. 근자에 도 이 나라는 극심한 위기와 불안 가운데 처하여 있어서 모두가 걱정하고, 분 노하고, 또 이러한 나라에 사는 백성인 것을 서러워하기도 합니다. 나라가 망 해가고 있다고 탄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나라가 이 정도 되었으 면, 이제는 여기저기서 이 성읍의 평안을 위하여 힘쓰고 그것을 위하여 여호 와께 기도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습이 개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교회 공동 체 차원에서 나타나기 시작해야 할 것인데, 너무나도 조용한 것입니다. 우리 와 상관없는 정치 문제라고 여겨서 무관심한 것인지, 각자 알아서 묵상으로 기도하고 있는 것인지... 부활절 연합예배 광고와 홍보전단지는 돌아다니는 데, 과문한 탓인지 한국교회가 거 교회적으로 국난에 처한 이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자는 운동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는 아직 듣지 못하였습니다. 저는 90년대 초반 큰 혼란 속에서 대 변혁기를 지나고 있는 한 나라에서 몇 년 동안 산 적이 있었습니다. 남아공이었습니다. 당시 그 나라는 한창 백인정 권에서 흑인정권으로 넘어가는 대변혁의 과정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혼란과 불안 그리고 두려움이 온 나라 사람들에게 팽배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 운 것은 많은 교회들이 나라를 위하여 조직적인 기도를 시작한 것이었습니 다. 교회들이, 지금까지 기도하지 않은 것을 회개한다면서 전국적으로 낮 12시가 되면 종을 치며 기도하는 운동을 시작한 것입니다. 몇 교회가 어떻게 참여했 는지 구체적인 상황은 잘 알 수 없지만, 제가 나가고 있는 교회는 매주일 광 고를 하면서 그 기도운동에 계속적으로 참여하였습니다. 그래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틀림없이 시민 전젱이 일어날 것이라면서 전쟁을 취재하려 왔던 많 은 외신 기자들이 평화롭게 정권이 교체되는 모습을 보고 실망하며 돌아갔다 는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습니다. "정치꾼들이 망해먹는 나라를 신앙인들이, 아니 교회들이 살려내게 해주소 서!" "이 나라가 그 많은 시련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어떤 은혜를 받고 여기까지 온 나라인데... 다시 한번 은혜를 베푸소서!" 지난 주간에도 우리는 울먹이며 하나님께 애원하였습니다. 이제는 온 나라의 교회들이 우리가 사는 이 땅의 평안을 위하여 조직적이고도 열정적으로 여호 와 하나님께 간구하며 일어나는 책임을 감당해야 할 시점임을 이 나라의 교회 지도자들이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112 no image 기도는 하나님을 움직인다-최명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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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11 2004-03-03
http://www.rpress.or.kr/files/poetry/346si.hwp기도는 하나님을 움직인다 최명선 목사(새빛장로교회) 매스컴은 그 시대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매체다. 그래서 현대 의 기독교의 흐름을 보려면 기독교 신문을 보면 된다. 따라서 개혁신보를 보 면 우리 총회의 흐름과 우리 총회 소속 교회들의 흐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신문의 그 방대한 내용 중에서 기도에 대한 내용의 기사가 별로 없다는 것 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현대의 기독교는 물론이고 우리 총회는(여기서 총회 라고 말하는 것은 여기에 속한 모든 교역자와 교회들을 말함이다) ‘기도를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은 아닌가?’ 하는 작은 우려가 마음 속에 늘 자리 잡고 있었다. 우리는 만나면 누구나 다 기도의 중요성에 대해서 서슴지 않고 말하고, 또 그 런 말에 이의 없이 동의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여전히 기도는 콩쥐의 신세 를 못 면하고 있다. ‘왜 그럴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기도 없이 목회에 성공하는(성공이라는 말을 사용할 수밖에 없음을 이해해 주기 바람) 사례 들이 종종 있기 때문이리라. 이런 점에서‘기도 없는 성공은 영적인 아편 이다’는 경고가 어느 때보다도 가슴에 와 닿는다. 신학생 때는 누구나 설교를 잘하는 목사가 되려고 그 목표를 정한다. 누가 뭐라고 해도 목사는 우선 설교를 잘하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신학교에 다 닐 때 어떤 목사님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그 "목회의 성공 여부는 설교에 달 려있다. 목사가 설교를 잘하면 다른 것이 좀 미흡해도 목회에 70%는 성공할 수 있다." 그 말을 들은 이후 설교를 잘하려고 무척 몸부림을 쳐 왔는데 지금 은 그 때의 그 말을 듣게 된 것을 무지무지하게 후회한다. 그때 그분이 ‘목 사가 기도를 많이 하면 목회에 반드시 성공한다’라고 말해 주었더라면 지금 쯤은 많이 달라져 있었을 것인데…! 레오날드 레이번힐이라는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어떤 이가 설교하는데 반드 시 신령할 필요는 없습니다. 기억력과 지식, 야심, 개성, 게다가 상당량의 장 서, 자신감, 분별심 등을 잘 조작할 수만 있다면 형제여 오늘 날 어디로 가든 지 강단은 형제의 것이요 이러한 형식의 설교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그러나 기도는 하 나님을 움직입니다. 설교는 시간을 움직이지만 기도는 영원 을 움직입니다. 강단은 우리의 재능을 전시하는 진열대가 될 수 있습니다. 그 러나 기도의 골방은 전시 효과로는 영점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가볍게 여긴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인 성경을 최고의 권 위로 여기면서도 예수님의 말씀을 가장 무시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예수님은 ‘설교하라’고 명령하신 적은 없다. 그러나 ‘기도하라’고 명령을 하셨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예수님의 명령과는 전혀 관계없는 곳을 향해서 이상한 확신을 가지고 활기차게 걸어간다. 신학교에 ‘기도’라는 과목이 왜 없는가? 하는 것이 늘 궁금하다. 우리는 모 두 다 단체로 주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기로 결심하고 결의를 한 사람들 같 다. 정말 우리가 이래서 되는가? 정말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들인가? 우리가 영적(靈的)으로 두 배 늘어 날 수만 있다면 지적(知的)으로는 절반으 로 줄어들어도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바울 사도는 예수님을 만나고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겨 버렸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들은 그 바울 사도가 버 린 배설물들과 같은 것들을 주어 모으기 위해 서 혈안이 되어 있다. 많은 시간 과 많은 돈을 투자하면서 말이다. 때문에 이런 우리들에게 ‘그리고 예수님 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제 개혁신보에 기도에 관한 글들이 더 많이 실리기를 바라고 따라서 우리 총회나 신학교가 이 기도에 대해서 다시 한번 예수님의 명령을 전제로 조명 할 수 있기를 바란다.
111 no image 참된 개혁자의 삶-오광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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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46 2004-02-19
http://www.rpress.or.kr/files/poetry/345si.hwp참된 개혁자의 삶 오광석 목사/ 한별교회 오늘날 교회 안팎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말이 있다면 그것은 '개혁'이란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으로 개혁이 된 곳을 찾아보기는 매우 어렵 습니다. 그 이유는 진정한 개혁자를 이 세상에서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입니 다. 그래서 이 시대는 개혁이란 말은 있지만 진정한 개혁자는 없는 세상에 우 리는 살고 있는 것입니다. 왜 이 시대가 개혁자가 없는 시대가 되었을까요? 자신은 개혁에 대상에 포함 시키지 않고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를 개혁의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진 정한 개혁자는 자신을 개혁의 대상에서 제 1순위로 삼는 사람입니다. 어느 나라에 한 젊은이가 살았습니다. 이 젊은이는 죄악으로 썩어져 가는 이 세상을 탄식하고 '주님, 세상을 변화시킬 힘을 주십시오' 라고 기도했습니 다. 그는 계속해서 이렇게 기도했지만 어른이 된 뒤에도 세상을 변화시킬 힘 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는 기도 내용을 바꿨습니다. 그는 '주님, 제 가정 을 변화시킬 강한 힘을 주십시오' 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이 기도 역시 나이 들어 죽게되기까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임종이 다가와 죽기 직전 마지막으로 기도했습니다. '주여, 나 자신만 이라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주십시오'라고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길 '이제야 네 기도가 이뤄졌느니라'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개혁자의 삶을 사는 자는 자기 자신을 제 1순위로 개혁 의 대상으로 삼는 사람입니다. 성경의 인물들 중 한 사람을 말하라고 한다면 유다 나라의 황혼기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람이자 종교 개혁자 요시야 왕을 들 수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아몬의 악정과 우상 숭배에 빠져 하나님의 진노를 유발시켜 심복들의 모반으로 즉위 2년 만에 비참하게 살해당했습니다(대하 33:21-25). 이러한 악한 아버지의 보위를 이어 요시야는 8세의 나이에 왕으로 즉위하여 (왕상 22:1) 대개혁을 단행하고 자신과 그가 다스리는 모든 백성이 평생 하나 님만 바라보며 살게 하였습니다. 요시야는 성전을 수리하다가 하나님의 율법 책을 발견하게 되고, 이 율법 책 에 쓰여 있던 말씀을 보고 옷을 찢으면서 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율법 책에 쓰여 있는 가르침에 따라 개혁자로서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우리들도 모두 요시야처럼 하나님 중심, 교회 중심, 성경 중심의 삶을 살아 간다면 나 자신이 먼저 개혁되고 변화되어서 가정과 이웃, 교회와 민족이 거 룩하게 변화되는 기점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나를 먼저 개혁의 제 1순위로 두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왔을 때 마음을 찢으며 회개로 응답하는 신앙 을 소유하여야 합니다. 나를 개혁의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고 교회와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하지 맙 시다. 그러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는 '개혁'이란 말만 있을 뿐 개혁자 가 없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또 우리의 시야에서 개혁되어진 것을 찾아 볼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향해서 "네 눈 속에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마 7:5)고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이 하신 이 말씀을 항상 오늘의 말씀, 우리에게 주신 말씀 으로 계속 받아들일 때 진 정한 개혁자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110 no image 계단공과를 준비하며-이경환 목사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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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40 2004-02-05
http://www.rpress.or.kr/files/poetry/344si.hwp계단공과를 준비하며 이경환 목사/ 총회 교육부장 총회 교육부를 섬기다 보니 교단 목사님들 또는 동역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기회가 생긴다. 그 때마다 교육부와 총회공과에 대한 귀한 말씀을 들을 수 있 었고, 깊은 애정과 관심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허심탄회하게 부족한 소견 을 밝힐 수 있었다. 참으로 나에게는 소중한 자리요 시간이었다. 이 지면을 통해 감사를 드린다. 그동안 나눈 대화들 중에서 특별한 관심은 아무래도 '총회 계단공과'에 대 한 것이었다. '시론'을 통해 '기독교개혁신보' 독자들에게도 계단공과를 알리 고 더 큰 이해와 사랑을 부탁드리고자 한다. 여러 대화들 속에 나오는 의견의 하나는 "기존의 공과들 중 하나를 총회 계 단공과로 활용하는 방안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는 의견이다. 이에 대한 답 변을 드리면 다음과 같다. 교육부에서 계단공과 준비과정으로 가장 먼저 한 일이 기존 공과의 활용 방 안 논의였다(2002.12.2). 우리가 높게 평가하는 한 공과를 놓고 심도 있게 토 의하였다(비판적 분석을 주의하며 교과 과정, 신학, 교육 목표, 교육 여건 등 을 평가). 그리고 '계단공과 채택안'을 논의한 후 '총회 계단공과'를 준비하 기로 의견을 모았다. 다른 하나는 "계단공과를 만들기에 앞서 먼저 공감대 형성과 홍보가 필요하 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소견은 다음과 같다. 우리 교단이 시작된 지 23년이다. 그럼에도 아직 계단 공과를 갖지 못한 것 은 '진리에 대한 직무 유기'라 생각한다. 하나님과 교단 산하 교회들 앞에 큰 죄를 짓고 있다. 그리고 몇 번의 공청회를 거친 '총회 교육정책안'이 이 미 있다. 그동안 전문성과 여건의 미흡함 때문에 진전이 없었을 뿐이다. 여전 히 전문성과 여건은 미흡하지만 계속 여기에 머무르면 계단공과 발간은 요원 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교육부는 용기를 내어 '교육정책 수립 연구모임'(2003.1.12-14, 2.24)을 가진 후 계단공과를 준비하고 있다. 작은 눈덩이가 굴러서 멋있는 눈 사람이 되기를 소망하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 그리고 교육부는 노회들과 협 력하며 계단공과를 준비하려고 한다. 이를 위한 좋은 방안들이 필요하다. 노 회와 함께할 때 교단적인 공감대도 이루어질 것이다. 또 다른 의견은 "공과를 만들었으니 부족해도 무조건 사용하라는 식이 되어 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총회 공과가 부족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미 평가할 수 있는 공과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눈으로 볼 수 있는 공과가 있기 때문에 조언과 편달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부족한 공 과이지만 계속 펴낼 때에 발전하며 집필자도 성장한다. 교육부는 계단공과를 위해 최선을 다 할 것이다. 또한 좋은 공과를 위해서는 교단 모든 교회의 관 심과 사랑 또한 절실하다. 그리고 총회 공과에 대한 부족함을 말할 때, 우리 공과의 진리(신학)에 대 한 자부심과 공과로서의 미흡함은 구별되었으면 한다. 열악한 여건 속에서 교 육부 연구위원 중심으로 공과가 집필되고 있다. 우리 교단의 숨은 인재들이 함께 하면 좋은 옷을 입은 훌륭한 공과가 될 것이다. 학생들이 배우고 있는 혼탁한 진리를 생각하면 바른 공과가 절실한 현실이 며, 교회교육이 교육 담당자에게 맡겨지고 바뀌는 현실이다. 이 시대 속에서 교육부가 지향하 는 계단공과는 '통합성'을 갖는 공과이다. 성경 교리 교회사 세계관 생활이 교육내용이다. 참으로 쉽지 않은 공과를 준 비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좋은 인재들과 함께하면 가능할 것이다. 노회와 동역자들의 추천과 자천(自薦)을 바란다. 멋있는 계단공과의 꿈을 함 께 하기 원한다. 쉽지 않은 2005년 발간이지만 하나님의 긍휼을 믿는다. 모든 교회의 기도와 사랑을 부탁드린다.
109 no image 급진적 개혁의 선동성-강경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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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0 2004-01-20
http://www.rpress.or.kr/files/poetry/343siron.hwp급진적 개혁의 선동성 강경민 목사/일산은혜교회 지난 한 해 동안 우리 사회는 급진적 변혁을 추진해 왔다. 과거의 정치형태 가 얼마나 부패했는가에 대해 모는 국민이 지금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과 거에 대한 전면적 부정은 곧 사회 각계각층의 권위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지 고 있어서 세대간의 갈등과 불신의 골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깊어지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개혁은 필연이다. 개혁하지 않으면 민족공동체의 번영은 기대할 수 없기 때문 이다. 민족공동체의 번영 없이는 선교한국의 비전도 없다는 것을 교회는 각성 해야 한다. 교회가 훗날 역사가들에게 수구세력이었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구 속사의 진전을 위해서도 부끄러운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바른 개혁을 위해 극히 조심해야 할 것이 급진적 개혁주의 가 내포하고 있는 선동성이다. 선동이란 사람들을 부추기어 자기 일을 꾸려 가는 행위를 말한다. 사람들을 부추길 수 있는 타당한 명분이 선동의 성공여 부를 가름하는 핵 심이다. 다시 말하면 어떤 명분 없이는 선동이 성공할 수 없 다는 뜻이다. 개혁이라는 명분은 사람들을 설득시키기에 충분한 명제이다. 개 혁이 만능처럼 여겨지기 쉬운 것은 그것이 갖는 명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개혁을 주도하고 있는 세력은 소위 386세대이다. 40대 초반의 젊은이 들이 노무현 대통령의 개혁 성향을 엎고 정치, 경제 개혁의 핵심적 역할을 독 점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문제는 이 사람들이 너무 이상적이 고 이론적이어서 현실감각이 뒤떨어진다는 데 있다. 386세대를 가리켜 3.1절 도 모르고 8.15도 모르고 6.25도 모르는 세대라고 비아냥거리는 말이 사람들 에게 먹혀 들어가고 있지 않는가. 지금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는 개혁논리는 좌우를 두루 살피면서 좌와 우에 함 께 있는 양극의 진리를 외면한 채 한쪽의 진리만 강조하는데서 문제의 심각성 이 발생하고 있다. 참여 정부가 감당해야 할 역사적 책무는 마땅히 통합과 개 혁을 동시에 붙드는 것이었다. 이념갈등, 계층갈등, 지역갈등을 해소하는 일은 개혁 못지 않게 민족공동체 가 해결해야 할 중심 과제임은 두말을 요하지 않는다. 그러 나 참여 전부는 개 혁이란 이름아래 이념갈등과 계층갈등을 더욱 심화시켰을 뿐 아니라 세대갈등 까지 부추겨 놓았다. 바람직한 한미관계의 정립을 위해서도 참여정부는 동일한 우를 범하고 있다. 소위 자주파와 동맹파의 대립은 급기야 외교통상부장관의 갑작스런 경질을 가 져왔는데 자주외교라는 논리는 허구로 가득한 논리임을 직시해야 한다. 한미 외교문제를 다루는데 5:5의 지분을 요구하는 것은 국제정치의 역학관계를 전 혀 무시하는 허구요 비진실이다. 예컨대 우리나라와 후진국인 어떤 나라와 외교협정을 체결한다고 할 때 5:5 의 지분을 요구한다고 해서 우리가 수용하겠는가? 진정한 한미 자주외교란 3:7의 현실을 인정하고 우리가 3을 어떻게 극대화시킬 것인가를 위해 국력을 모으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자주외교인 것이다. 외교적 현실을 모르는 사람들 에게 5:5의 명분은 기분 좋은 발상일 따름이다. 그것은 민중에 대한 기만 외 에 아무것도 아님을 직시해야 한다. 민감한 문제지만 정치자금에 대한 단죄도 마찬가지이다. 불법선거자금 모금과 정에서 노무현 캠프가 이회창 캠프보다 도덕성이 탁월했기 때문에 십분 의 일 만 쓴 것인지 혹은 모금 능력이 그 정도 밖에 안됐기 때문에 그 정도 밖에 못 쓴 것인지 정직하게 물어야 한다. 돼지저금통만 가지고 선거를 치렀다고 선전할 때는 언제이고 우리는 당신들 보다 덜 썼기 때문에 더 깨끗하다는 논 리는 또 무엇인가? 한나라당을 비호하기 위함이 아니라 현재의 개혁논리가 허 구와 선동성으로 가득 찬 것을 지적하고 싶은 것이다. 기독교는 수구세력이 되서는 안 된다. 그러나 개혁만능의 허구성도 직시해야 한다. 개혁은 과거의 아픈 역사를 함께 책임지고 국민통합의 기저 위에서 한 걸음 한 걸음 꾸준히 이루어낼 과제이다. 정치문화를 바꾸고 정치 체제를 바 꾸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한쪽의 잘못은 덮어둔 체 한쪽의 잘못만을 확대 해서 마치 그것이 전부인양 선전하는 것이 선동이다. 급진적 개혁주의 안에 내포되어 있는 선동주의를 직시하고 역사발전의 균형 추 역할을 감당하는 한국교회가 되길 소망한다.
108 no image 영적 혼란기에서 벗어나는 길-나종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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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38 2004-01-07
http://www.rpress.or.kr/files/poetry/342siron.hwp영적 혼란기에서 벗어나는 길 나종천 목사/ 한사랑교회 한 해가 끝나고 새해가 시작되었다. 그 시작에는 다시 시작해 보고자 하는 희망의 싹이 있다. 지난 한 해 우리 사회는 진보와 보수간의 무서운 대립을 가져왔으며, 이 대 립은 사회 전체는 물론 교회까지 분열 시켜 놓았다. 권위나 서열의 파괴는 새로운 질서가 아닌 겉잡을 수 없는 혼란을 가져왔다. 빈부의 격차는 갈수 록 벌어져만 가고 이제는 가난을 영원히 대 물림 할 수밖에 없는 두려운 현 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로또 복권으로 몰리게 했다. 카드 연체자가 300만 명에 이르며, 카드 부채로 인하여 차마 들을 수 없는 뉴스들을 우리는 듣고 있다. 중고생 2만 명이 유흥업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 다는 충격적인 보도와 스와핑이라는 도덕적인 타락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 을 받을 수밖에 없는 오늘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는 어떠한가? 교인 수는 점점 감소하고 있으며, 미 자립 교회의 교역자들은 목회의 의욕을 상실하고 주저앉아 있으며, 대형 교회는 사회의 비난 대상이 되고 한국의 대표적인 교회 담임목사의 구속 사건은 한국 교회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 이제 교회는 교회가 가지고 있는 모든 능력을 상실하고 만 것 같다. 한 마디로 오늘 이 시기는 영적인 심각한 혼란기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 민 족의 초창기 기독교는 어떠했는가? 기독교인이 전체 인구의 2%도 되지 못했 을 때 기독교는 병든 사회를 인도했다. 3·1운동 당시 독립선언문을 작성한 33인중에 기독교인이 16명이나 되었다. 당시의 사회를 이끌어 가는 지도자들 은 대부분 기독교인이었다. 교회는 당시에 술, 담배, 여성차별 등 각종 악습 을 타파했다. 오늘의 역사 현실을 바로 직시하면서 다시 한번 한국교회가 새롭게 나아갈 방 향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1. 회개운동과 거룩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오늘 이 시대의 죄의 심각성을 깨닫고 통회 자복하면서 다시 하나님께 돌아가 는 운동을 해야 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는 회개와 거룩 운동을 전개하자는 것이다. 죄는 인간간의 관계보다 하나님 앞에서의 문제이다. 종교개혁자인 선배들이 외쳤던 하나 님 앞에서 운동이 일어나야 할 것이다. 2. 교회가 사회와 역사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 기독교가 사회사업, 교육사업, 선교 사업에는 작은 관심만을 배정하고, 오 직 더 넓고, 더 높은 건물을 건축하려는 데 그 관심의 대부분의 집약시킨다 는 것은 스스로를 물질의 종교, 바알의 종교로 전략시키는 일이 될 것이다. 피터 드러커의 말대로 "현재와 미래 사회의 정신적 지주는 정부도 아니요 학 교도 아니다. 오직 도덕적 부패와 물질적 부정으로부터 자유함을 받은 비영 리 단체이다"라고 했다. 3. 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한국교회의 특징 중 하나가 분열이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든지 한국인 교회 는 분열되고 있다. 괌 같은 경우에 교민이 8천 명에 불과한데 교회의 숫자 는 20개이고, 교회에 나가는 숫자는 1천 여명 정도라고 한다. 그러고도 한국 교인들은 세계에서 성령 충만을 가장 좋아한다. 그것이 잘못된 성령 충만이 다. 총회장께서 연합과 일치를 말씀했는데 연합과 일치를 위해 우리 교단이 구체 적인 대안과 방법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우리 교단부터 연합 운동에 적극 나서야 한다. 이 연합을 위해서 교회도 지도자도 모두 희생해야 한다. 그리 고 지역 감정, 계층간의 갈등을 교회가 앞장서서 해결해야 한다. 4. 교회 부흥운동을 해야 한다. '교회 살리기 운동' 담당자의 말을 빌리면 한국교회 5만 교회 가운데 2만 교 회가 농어촌 교회를 제하고도 30명 이하의 교회라고 한다. 그 중에서 1차로 훈련받은 120개 교회 가운데 35개 교회를 선정해 매월 30만원씩을 지원하며 복음전파를 위한 헌신을 다짐하고 목회하게 한 결과 1년이 지난 지금 어느 교회는 20배의 부흥을 가져왔다고 했다. 부흥도 부흥이지만 교역자들이 영혼 을 사랑하는 뜨거운 열정과 복음전파의 힘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국교 회는 제2의 부흥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믿음이 선배들이 말씀의 본질을 지키 고 말씀의 정도(正道)를 따랐을 때 부흥했던 것처럼 기복의 신앙을 넘어서 신앙의 본질을 회복해 진정한 제 2의 부흥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5. 나눔과 섬김의 공동체로 회복되어야 한다. 어느 날, 손도 없고 발도 없는 자가 스승에게 물었다. "저는 무엇으로 나눌 수 있습니까?" 그 때 그 스승이 대답하기를 "네 얼굴로 하거 라. 얼굴로 얼마 든지 남의 필요를 채워 줄 수 있단다." 남의 필요를 채워주는 새해가 되었으면 한다. 대형 교회는 미자립 교회와 개 척교회를 도시 교회는 농어촌 교회를 그리고 모든 교회는 소외된 이웃과 그늘 진 곳을 섬기고 함께 나눔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또한 이 나눔과 섬김의 운 동은 북한으로까지 계속 확대되어가서 한 시대를 아름답게 이끌어 가는 하나 님께로부터 사랑 받은 교회 공동체와 교단이 되었으면 한다.
107 no image 빼앗긴 들에도 크리스마스는 오는가?-허태성 목사
rpress
4779 2003-12-17
http://www.rpress.or.kr/files/poetry/siron341.hwp빼앗긴 들에도 크리스마스는 오는가? 허태성 목사(은곡교회) 다사다난했던 2004년의 성탄절을 앞두고 문득 한국 근대의 대표적인 단편 소 설 작가중 한 사람인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라는 제목이 필 자의 뇌리를 스친다. 암울했던 조국의 현실을 가슴에 묻고서 조심스럽게 해방 의 봄을 갈구했던 작가의 마음이 갑자기 필자를 찾아온 이유는 무엇일까? 이 것은 우리 모두가 공감하는 대로 성탄을 앞둔 한국교회의 현실이 그리 밝지만 은 않기에 당연히 기쁨에 가득 찬 감사의 기도를 드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근 심이 가득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요즈음 큰 위기를 맞이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어야 할 교회가 맛을 잃은 소금이 되어 밖에 버림을 당하여 밟히고 있음을 시 인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단지 세상의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일부 대형교 회만의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실하게 따르는 좋은 교회들이 없 는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모든 교회들이 세상의 비판으로부터 자유 로울 수만은 없는 것 같다. 이것은 또한 목회자만의 문제도 아닌 것 같다. 불신 세상의 보편적 상식으로 도 이해하기 어려운 목회자의 윤리문제가 왜 이리도 자주 세인의 입에 오르내 리고 있는가? 목회자의 도덕적 수준이 그러하다면 일반 교인들의 수준이 어떠 할지를 짐작해 보는 것은 그리 큰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금 표류하고 있는 것은 이 나라의 국정(國政)만이 아니다. 이 나라의 영적 지표가 되어야 할 한 국교회도 뚜렷한 방향을 잡지 못한 채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심각하 게 고민해 보아야 한다. 필자는 이 글을 쓰면서 '안티기독교' 사이트가 있다 는 말을 듣고 한 번 들어가 보았다. 거기에는 매우 악의적이고 설득력이 전혀 없는 주장이 대부분이었지만 몇! ! 몇 글에서는 이미 세상도 다 알아버린 한국교회의 치부가 드러나 있기에 그 저 회개의 기도를 드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등을 돌리 고 있다. 그 사이트 중에는 전에 교회에 다니다가 실족을 하여 믿음을 포기 한 사람들로만 이루어진 것도 있었다. 그들은 교회 의 어떤 모습을 알고 있다. 불행하게도 그들은 영적인 깊은 진리 를 알아서 성장하기도 전에 알지 아니 했으면 더 좋았을 교회의 현실들을 보 고서 반기독교 정서를 대변하는 전사가 되고 만 것이다. 누가 이들의 목에 연 자맷돌을 달아 깊은 바다로 빠뜨린 것인가? 한국교회가 이렇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필자는 지난 11월 5일부터 7일까지 신반포교회에서 열렸던 WEC주최 '작은 교회들의 선교대회'에 참석하여 큰 은혜와 감동과 도전을 받았 다. 둘째 날 저녁에 현재 WEC 유럽권역 대표이며 웨일즈복음주의 신학교 교수 로 사역하고 있는 콜린 니콜라스 선교사의 '유럽의 영적 붕괴'라는 제목의 강 의를 들으며 필자는 한국교회의 현실을 오버랩하면서 조심스럽게 미래를 조망 해 보았다. 콜린 니콜라스 선교사는 유럽교회의 영적 붕괴의 원인을 ①교회의 권위와 전 통만을 강조함 ②명목상 그리스도인을 그대로 방치함 ③물질만능주의의 철학 을 교회가 수용함 ④무신론주의 - 이론적으로는 유신론자이나 실천적으로는 무신론자의 삶을 살아감 ⑤포스트 모더니즘을 따르는 현대인에 대한 무감각 등 다섯 가지를 꼽았다. 그는 매우 진지한 어조로 한국교회의 각성을 촉구하였다. 아직은 한국교회가 잘 모이고 열심히 봉사하고 있지만 이미 나타나고 있는 영적 붕괴의 조짐을 미리 간파하고 적절한 대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유럽교회의 전철을 밟게 될 것 이라고 그는 눈물로 호소하였다. 기독교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유! ! 럽 은 그 귀한 영적인 축복을 빼앗겨 버렸다. 지난 달 한국일보의 보도에 의하 면 유럽인들은 교회를 이미 떠나 버렸다. 대표적인 가톨릭 국가인 프랑스에서는 현재 20명당 1명이 매주 교회를 찾고 있다고 한다. 성공회를 국교로 삼고 있는 영국도 주일에 교회를 가는 신자는 2,500만 성공회 신자중에서 120만 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러한 현상은 교회 가 영적으로 힘을 잃었기 때문이며 영적인 힘을 잃은 결과로서 기독교의 쇠퇴 를 가져오고 말았다. 주5일제 근무 시행을 앞두고 있는 한국교회도 미리 대책 을 세워야 할 것이다. 성탄을 맞으며 한국교회는 조용히 자기를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육신을 입으시고 찾아오신 그 목적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다. 2004년을 향하여 무작정 뛰어가기 전에 말씀의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진 면목을 발견하고 회개의 기도를 드려야 할 것이다. 한국 교회는 이미 성탄절 을 세상과 마귀에게 빼앗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지한 자기 반성을 하면서 성탄을 맞이해야 할 것이다. 성탄절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 대신에 산타클로스가, 아기 예수께 드려야 할 찬미 대신에 크리스마스 캐롤이, 경건한 감사와 축하의 예배 대신 죄악과 향락의 파티가 점령해버린 2003년의 마지막 들판에서 그래도 우리는 진정한 경배와 기쁨의 크리스마스가 오기를 기도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 스도 그분은 아직도 살아 계셔서 당신의 교회를 포기하지 않고 거룩한 나라 로 세워 가시기 때문이다. 그분의 말씀은 이제도 죽은 자를 살리실 수가 있으 며 성령은 아직도 얼어붙은 이 대지 위를 운행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106 no image 아날로그냐, 디지털이냐?-안만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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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6 2003-12-04
http://www.rpress.or.kr/files/poetry/340resi.hwp아날로그냐, 디지털이냐? 안만길(염광교회 담임목사) 변화산 기념관(도서관) 준공 감사예배에 참석하기 위하여 모처럼 모교를 찾아갔다. 교정에는 아직도 지지 않은 붉은 단풍이 반겨주었고 무수한 낙엽 들이 늦가을의 정취를 더해주었다. 새롭게 지어진 변화산 기념관은 본관과 더불어 생활관과 조화를 이루어 훌륭한 작품으로 보여 졌다. 은은한 벽돌의 색감이 좋았고 건물이 튼튼하게 보여 믿음직스러웠다. 합신의 초창기 반포 남서울 교회 지하실에서 공부하던 때를 회상해 보니 감개무량하였다.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만 주신 놀라운 복의 하나이 다. 너무 재미있어서 손에서 놓기 싫은 책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복 이 될 것이다. 필자는 최근에 죤 그리샴(John Grisham)의 소설에 푹 빠진 적이 있었다. 제목은 ‘유언장’이라는 소설이었는데 그 내용이 많은 것들 을 생각하게 하였다. 재벌 사업가인 트로이 필런이 투신자살을 하면서 그 소 설이 전개된다. 그 안에 이런 글로 시작된다. “내 불행의 근원은 돈이다.” 그는 110억불이라는 어마어마한 재산을 유산으로 남겨 놓았는데 그것을 앞 에 놓고 배다른 자식들과 그들을 돕는 변호사들에 의하여 소동이 붙기 시작한 다. 그러나 막상 유언장을 공개해 보니 그 유산은 레이첼이라는 그의 첫 번 째 부인의 딸에게 지정되어 있었다. 레이첼은 지금 아마존 정글 깊은 곳에 서 선교사역을 하고 있었다. 네이트라는 변호사가 그녀를 만나기 위하여 브 라질의 아마존 깊은 정글을 찾아 나선다. 당시 네이트는 알콜 중독자로 그의 가정은 파산나 있었고 인생의 막다른 골 목에 처해 있는 형편이었다. 그는 천신만고끝에 아마존의 정글에서 원시부족 을 위하여 헌신하고 있던 레이첼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온갖 역경을 다 겪고 만난 레이첼은 그 유산에 흥미가 없었다. 반면에 네이트는 레이첼을 만 나면서 그의 영혼이 변화되기 시작하였다. 이 책은 오직 돈만을 위해 살아왔던 자기의 부서진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순 수한 영혼 앞에서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되어 간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물질 문명과 황금만능주의에 빠져서 허덕이고 있는 현대인들의 실상을 폭 로하면서 아울러 순수하고 깨끗한 영혼의 소유자와 그의 이타적인 삶을 통하여 진정한 인간의 회복이 이렇게 가능하지 않은가 하는 소망을 보여주고 있다. 아날로그 시대는 갔고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여 최첨단의 고성능 컴퓨터와 인터넷이 온통 사람들의 마음을 휘어잡고 있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 그 래서 점차 책은 우리의 손에서 멀어져 가고 컴퓨터 화면을 대하고 있는 시간 이 더욱 늘어가고 있는 것이 요즘 현대인들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한다. 정보 의 바다 속에서 정보의 보화를 건져내는 것이 아니라 정보의 쓰레기 속에서 헤매고 있지 않은가 염려된다. 온라인상의 설교 서비스도 많아서 풍부한 자 료들을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책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깊이와 맛을 얻기란 어려울 것이다. “여섯 권의 다른 책을 읽는 것 보다 시간의 간격을 두고 한 권의 책을 여섯 번 읽는 것도 독서의 즐거움이다”라고 로렌스(D.H.Lawrence)는 말하였 다. 특히 목회자는 많은 독서량을 필요로 하고 있다. 자신의 지적인 성장과 더불어 설교준비라는 실용적인 차원에서 더욱 그러할 것이다. 목회 자에게는 6중 독서가 필요하다고 한다. 소설, 역사, 전기, 일기나 시 등이 그것이다. 인터넷이라는 정보의 바다도 좋겠지만 디지털 방식이 아닌 아날로그식의 방식이 우리의 영혼에 미치는 영향력은 더 클 것이다. 인터 넷 만능주의에 빠져서 아날로그식의 독서를 포기한다면 그 정보가 한낮 얄팍 한 지식으로 끝나지 않을까 염려된다. 작가 장정일은 말하기를 ‘어떤 책을 들고 3일 이상 뭉그적거리면 그 책은 당신 손에서 죽은 거라고 봐야한다’ 고 하였다. ‘피로 쓰여진 책은 게으른 독자를 거부한다’고 니체가 말하였 다. 변화산 기념관은 합동신학대학원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여 주신 귀한 선물이 다. 그리스도안에서 지성의 변화가 일어나는 도서관이 되어야 하겠다는 생각 을 가져본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진주를 찾으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더불 어 경건한 지식과 지혜를 캐어내는 보고가 되어야 될 것이다. 아울러 이미 학교를 졸업한 우리도 가끔 이 도서관에 들러 우리의 둔해진 지성에 다시 한 번 경건과 학문의 예리한 날을 세우는 시간을 가져 봄이 유익할 것이다. 하 나님께서 합신에 허락하신 귀한 선물에 다시 한번 감 사한다.
105 no image 이라크 전쟁과 파병-신종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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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86 2003-11-19
http://www.rpress.or.kr/files/poetry/339siron.hwp 이라크 전쟁과 파병 신종호 목사/북서울노회, 총동문회장 전에는 이라크 전쟁 시비로 온통 뜨겁더니 이제는 파병 시비로 다시 논쟁이 뜨겁다. 여기에 북핵 시비와 육자 회담까지 맞물린 터라 더욱 열기는 더한 다. 먼저 전쟁을 두고는 그 동기와 목적에서 여러가지 견해가 논의 되는데, 석유자원을 두고 경제 전쟁이니 또는 이슬람과의 종교 전쟁이니, 악의 축과 의 테러 전쟁이니 나아가 이라크 국민을 위한 인권해방 전쟁이니, 후세인 독 재 정권에 대항하는 민주화 전쟁이니 아니면 제국주의의 아랍권 우위 확보 전 쟁으로 그 관점과 해석이 역시 분분하다. 여기서 심각한 문제가 더불어 발생되는 것은 소위 좌익과 우익 세력의 이념 갈등 싸움, 찬성과 반대 세력의 흑백 논리 싸움, 진보와 보수 세력의 신앙논 쟁 싸움으로, 이는 사회 단체의 시위 모임에서, 종교 단체의 기도모임에서, 정치 집단의 국정토론에서 사회와 교계가 양분되어 혼란이 야기되는 것으로 참으로 염려되며 유감스러운 일이다. r 예를들면 한 쪽에선 반미 반전 시위가 SOFA개정을 주장하는가 하면 다른 쪽에 서는 친미 반핵 시위가 한미우호를 천명하는 일이다. 기독교계 또한 반미반전 평화모임을 시청 앞 광장에서 갖는가 하면, 친미 반핵 기도 모임을 여의도 고 수부지에서 갖는 일이다. 이와같은 일들이 국론을 분열하고 교회 연합을 저해 하며, 나아가 각 개인의 찬미,반미 감정에 깊은 상처를 주며 인권존중에 손상 을 입힌다면 문제는 더욱 안타깝고 심각한 우려를 낳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문제들을 조심스럽게 다루지 않을 수 없으며, 서로 상대방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는 가운데 이라크 전쟁과 파병의 당위성을 논 해야 할것이다. 얼마전일이다. 교회의 한 부교역자가 기도회를 인도하면서 반전이야말로 하나 님의 뜻이라고 하면서, 교회가 이면에 방관해왔으며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을 질책하면서 반성을 촉구하였는가 하면, 찬양 인도 시간에는 그 중간에 반전을 위해 함께 기도시간을 갖자고 제의해 담임목사로서 조금 당황한 일이 있었다. 물론 젊은 부교역자를 이해못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문제에 성경적 견해나 개인의 입장이 서 로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교역자나 어던 개인 의 입장이 교인 전체의 교인 입장이 될 수 없을 뿐만아니라, 어느 입장을 찬 동, 지지, 선동하는 일은 위험의 소지가 큰 것이다. 우리는 그 정당성의 문제를 두고 성경적으로나 국가 사회적으로 충분한 연구 와 교리가 필요하겠으나, 시위 참여나 입장표명은 교회적으로 하지않고 개인 적으로 함이 타당할 것이다. 얼마든지 교역자 간에 또 교인들 간에 마찰로 인 한 신앙과 인격의 손상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우기 이와 같은 국제적 인 복잡한 문제는 드러난 외형적인 면이 있는가 하면 신앙방면의 드러나지 않 는 숨겨진 하나님의 뜻이 있으므로 더욱 유의하지 않을 수 없다. 그 한예로는 과거 교회의 신앙의 선배들 중에는 한국전쟁을 두고, 한국장로교 회가 신사참배를 총회에서 결의했는가 하면, 한 호주선교사는 성경의 무오설 을 부인하고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발언등의 큰 파문과 함께 큰 죄악으로 인 한 하나님의 징책로 공산당을 몽둥이로 들어 쓰신 것이라는 간증과 고백은 우 리에게 깊은 교훈을 준다. 이러한 관점을 가지고 성경적, 영적 입장에서 숨 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서 더욱 삼가 조심함이 옳을 것이다. 이런 일련의 모든 사건들이 이땅의 모든 교회에 신앙의 유익과 국제 사회에 대한 교회와 신자들의 사명과 그 책임을 다하고 결코 잃지 말아야 할 것이 다.
104 no image 가슴을 두드리는 글들을 실으며-박진우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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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1 2003-11-06
http://www.rpress.or.kr/f iles/poetry/338si.hwp“가슴을 두드리는 글들을 실으며” 박진우 장로/ 본보사장, 부총회장 기독교개혁신보사 운영이사회는 지난 10월 20일 정기회의에서 개혁신보의 발 전을 위해 내년에는 격주간에서 주간으로 발행하는 데 최선을 다하기로 결의 했습니다. 개혁신보는 21년전 1982년에 ‘개혁총회보’라는 이름으로 창간되었습니다. 본보는 대한예수교장로회(합신)의 기관지로서 개혁주의 신앙에 입각한 기독 교 언론 문화 사업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한 발자국 씩 착실히 성장해서 8년전에 격주간 8면으로 증면하고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우리 개혁신보는 특히 최근 수년 사이에 크게 성장 변모해 왔습니다. 현재 6 천부 발행에 전국 800여 교회와 해외 13개 국의 독자에게 송부되고 있습니 다. 또한 편집기자재의 확충과 담당자의 열성과 노력으로 지면의 쇄신과 함 께 편집과 디자인이 시원하고 친근감 있게 개선되었습니다. 이처럼 본보는 하 나님의 성역에 쓰임받는 깨끗한 도구로서 항상 깨어 있으면서 살아 움 직이는 모습이 되고자 힘써왔습니다. 이제 제88회기를 맞아 보다 생산적이고 적극적 인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내일을 바라보며 일해 나가고자 합니다. 그러나 격주 8면이란 제한된 조건 때문에 기사의 다양성을 살리지 못하고 독 자의 요구에 부응하는 데에 부족한 점이 많았습니다. 교계소식이지만 격주간 신문에 실릴 때 상당부분 신선도가 떨어지고 따라서 독자의 관심에서 멀어지 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요구는 주간발행이 되 면 대부분 해결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오래전부터 증면을 기다려 왔었 습니다. 이런 다양한 요구에 부응하여 금번 운영이사회는 이 격변의 시대에 본보가 맡 은 바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주간발행으로 발전해야 하며 이를 위해 전국 교회가 힘을 다해 줄 것을 요망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본보 운영이사회가 창 간 21년만에 주간발행의 여건을 조성하도록 결의해 주신 데 대해 우리는 감격 하고 또한 감개무량했습니다. 그동안 본보에 기고해 주시는 목사님의 글들은 풀도 없고 물도 없는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같이 주님만 붙들고 땀과 육신의 진액을 짜내어 쓴 글들이 었다 고 믿습니다. 한 편 한 편이 신앙적인 면에서 가슴을 두드리는 글들이었고 유 머러스한 글도 다시 보면 송곳으로 심장을 찌르는 듯한 감동의 글들이었습니 다. 우리 신문은 많은 독자들이 또박또박 읽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언제나 간절했습니다. 이제 주간신문으로 발행하게 되면 예산문제가 따르게 되고 여기에 따른 후원 이 필요합니다. 저희 개혁신보사는 이번 이사회 결의에 따라 주간 발행에 필 요한 재정을 위해 조심스럽게 두려운 마음으로 기도하고 전국교회에 후원을 부탁하기로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후원해주신 교회는 새해부터 좀더 상향조정해서 후원해주시도록 그 리고 지금까지 기도해 주신 교회는 후원에 참여해 주시도록 공문서신을 발송 했습니다. 각 지교회 목사님의 도우심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본보 의 광고와 출판부를 활용해 주시고 동시에 적극 구독해 주시기를 아울러 부탁 드립니다. 전국 교회의 뜨거운 기도에 감사드리며 본사는 앞으로 더욱 힘차게 사명완수 에 진력하면서 사랑하는 우리 교회와 성도 여러분을 섬겨 나갈 것을 다짐합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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