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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0.22 (00:00:00)
http://www.rpress.or.kr/files/poetry/337si.hwp기쁨의 동반자 관계 : 교단과 신학교


우종휴 목사(경북노회, 총회 서기)


우리 교단과 교단이 인준하는 신학교는 매우 보기 드문 관계를 맺고 있습니
다. 교단과 신학교가 태어날 때에 보다 나은 관계를 가지고자 인준관계를 맺
었습니다. 이런 인준관계를 매우 이상적으로 여기며 자랑스러워 해왔습니다.
그러나 좋은 제도가 언제나 좋은 관계를 만들어 주지는 아니합니다.

제도보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우리는 보
다나은 제도가 있다면 그것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보다나은 사람이 되
기 위해서는 더욱 힘을 써야합니다. 20년이 넘도록 우리 교단과 인준 신학교
는 어쩌면 가장 바람직한 관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교단은 직영 신학교가 아
니지만 그 이상으로 후원을 아끼지 아니하였으며 신학교는 최대한 자율적으
로 운영되어 왔습니다. 둘은 각자에게 주어진 은혜를 따라서 서로를 잘 섬겨
왔습니다.
이따금씩 교단 안에서는 신학교를 직영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고 하는
의견
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아직까지는 인준관계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사
실 법적인 관계는 인준 신학교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직영 신학교라고 해도 지
나친 말이 아닙니다. 교단의 이름을 신학교의 이름으로 한 것도 그런 관계에
서 비롯되었을 것입니다. 가끔씩은 법적인 관계도 실질적인 관계와 같이하고
싶은 뜻을 내 비치기도 했습니다.

이번 총회에서도 신학교에 자율권을 건드릴 수 있는 안건이 몇 표의 적은 차
이로 부결되긴 했지만 학교 당국자들에게는 긴장감을 갖게 했을지도 모릅니
다. 이 세상에서 모든 관계는 크게 둘로 나눈다면 하나는 이해타산으로 맺어
진 관계요 다른 하나는 이해타산을 뛰어넘는 관계입니다. 앞에서 말한 것은
은혜롭지 못한 관계라면 뒤에 것은 은혜로운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교단과 신학교가 이제까지 인준관계를 지켜 온 것은 그것이 은혜로운 관
계를 유지하는데 보다나은 제도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
는 정진시키고 우리의 부패성은 억제될 수 있는 제도라고 여겼기 때문일 것입
니다. 인간의 타락한 본성은 남을 지배하고 종으로 삼으려 합니다. 내가 조

금 베풀면 적어도 그 만큼은 되돌려 받고싶어 합니다. 그것은 섬기는 것이 아
니라 군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그가 받은 대로 살려고 합니다. 그저 받았으니
그저 주려고 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으로 섬기셨습니다. 주님의 섬기심
을 받은 사람은 주님처럼 섬기려고 합니다.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아니합니
다. 진정한 섬김은 은혜를 나눕니다. 또 섬김은 자유자의 특권입니다. 자유자
는 사랑으로써 종노릇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
를 그렇게 사랑하고 섬기십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새로운 세계는 은혜로운 관계입니다. 부부관계가 그러하
고 부모자녀 관계가 그러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고
서도 주종관계를 원치 아니하시고 형제로 신부로 한 몸으로 삼으셨습니다. 하
물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들이야 그 누구와도 주종관계를 가질 수 없습니
다. 모든 것은 다 주님의 것입니다. 우리에게 섬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
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나눌 수 있는 선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
릴 뿐입니다. 우리들이 다른 사람들과 맺는 관계는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
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교단과 신학교의 관계는 서로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잘 나눌 수 있는 관계
가 되어야 합니다. 그 제도가 어떠하던지 간에, 우리가 가진 이름이 무엇이
든 그것으로 형제와 이웃을 섬겨 궁극적으로는 우리 주님을 섬기도록 부르심
받았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교단과 신학교와의 관계도 서로 받은 은혜를 나누는 관계가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교단과 신학교와의 교통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이
드러나야 합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에게 기쁨을 돕는 자가 되기를 원한다고
했던 것처럼 교단과 신학교 역시 서로의 기쁨을 돕는 아름다운 동반자가 되어
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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