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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no image 기쁨의 동반자 관계, 교단과 신학교-우종휴목사
rpress
4997 2003-10-22
http://www.rpress.or.kr/files/poetry/337si.hwp기쁨의 동반자 관계 : 교단과 신학교 우종휴 목사(경북노회, 총회 서기) 우리 교단과 교단이 인준하는 신학교는 매우 보기 드문 관계를 맺고 있습니 다. 교단과 신학교가 태어날 때에 보다 나은 관계를 가지고자 인준관계를 맺 었습니다. 이런 인준관계를 매우 이상적으로 여기며 자랑스러워 해왔습니다. 그러나 좋은 제도가 언제나 좋은 관계를 만들어 주지는 아니합니다. 제도보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우리는 보 다나은 제도가 있다면 그것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보다나은 사람이 되 기 위해서는 더욱 힘을 써야합니다. 20년이 넘도록 우리 교단과 인준 신학교 는 어쩌면 가장 바람직한 관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교단은 직영 신학교가 아 니지만 그 이상으로 후원을 아끼지 아니하였으며 신학교는 최대한 자율적으 로 운영되어 왔습니다. 둘은 각자에게 주어진 은혜를 따라서 서로를 잘 섬겨 왔습니다. 이따금씩 교단 안에서는 신학교를 직영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고 하는 의견 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아직까지는 인준관계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사 실 법적인 관계는 인준 신학교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직영 신학교라고 해도 지 나친 말이 아닙니다. 교단의 이름을 신학교의 이름으로 한 것도 그런 관계에 서 비롯되었을 것입니다. 가끔씩은 법적인 관계도 실질적인 관계와 같이하고 싶은 뜻을 내 비치기도 했습니다. 이번 총회에서도 신학교에 자율권을 건드릴 수 있는 안건이 몇 표의 적은 차 이로 부결되긴 했지만 학교 당국자들에게는 긴장감을 갖게 했을지도 모릅니 다. 이 세상에서 모든 관계는 크게 둘로 나눈다면 하나는 이해타산으로 맺어 진 관계요 다른 하나는 이해타산을 뛰어넘는 관계입니다. 앞에서 말한 것은 은혜롭지 못한 관계라면 뒤에 것은 은혜로운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교단과 신학교가 이제까지 인준관계를 지켜 온 것은 그것이 은혜로운 관 계를 유지하는데 보다나은 제도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 는 정진시키고 우리의 부패성은 억제될 수 있는 제도라고 여겼기 때문일 것입 니다. 인간의 타락한 본성은 남을 지배하고 종으로 삼으려 합니다. 내가 조 금 베풀면 적어도 그 만큼은 되돌려 받고싶어 합니다. 그것은 섬기는 것이 아 니라 군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그가 받은 대로 살려고 합니다. 그저 받았으니 그저 주려고 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으로 섬기셨습니다. 주님의 섬기심 을 받은 사람은 주님처럼 섬기려고 합니다.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아니합니 다. 진정한 섬김은 은혜를 나눕니다. 또 섬김은 자유자의 특권입니다. 자유자 는 사랑으로써 종노릇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 를 그렇게 사랑하고 섬기십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새로운 세계는 은혜로운 관계입니다. 부부관계가 그러하 고 부모자녀 관계가 그러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고 서도 주종관계를 원치 아니하시고 형제로 신부로 한 몸으로 삼으셨습니다. 하 물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들이야 그 누구와도 주종관계를 가질 수 없습니 다. 모든 것은 다 주님의 것입니다. 우리에게 섬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 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나눌 수 있는 선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 릴 뿐입니다. 우리들이 다른 사람들과 맺는 관계는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 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교단과 신학교의 관계는 서로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잘 나눌 수 있는 관계 가 되어야 합니다. 그 제도가 어떠하던지 간에, 우리가 가진 이름이 무엇이 든 그것으로 형제와 이웃을 섬겨 궁극적으로는 우리 주님을 섬기도록 부르심 받았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교단과 신학교와의 관계도 서로 받은 은혜를 나누는 관계가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교단과 신학교와의 교통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이 드러나야 합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에게 기쁨을 돕는 자가 되기를 원한다고 했던 것처럼 교단과 신학교 역시 서로의 기쁨을 돕는 아름다운 동반자가 되어 야 할 것입니다.
102 no image 이 시대에 필요한 개혁주의-김기영 목사
rpress
4646 2003-10-08
http://www.rpress.or.kr/files/poetry /336si.hwp이 시대에 필요한 개혁주의 김기영 목사(서서울노회, 부총회장) 생산적인 총회가 되자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공감이 가는 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생산적인 총회, 교단이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교단이 추구하는 바에 대하여는 여러 목소리를 들으면 대체로 '정체성'과 '개혁' 그리고 '발 전'으로 생각됩니다. 어쩌면 이러한 방향이 상충된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모두가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방향입니다. 이러한 방향을 어떻게 조화 롭게 이루어 갈 것인가 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입니다. 어느 한 요소만 고집하 면 편하기는 하지만 문제는 남아 있습니다. 만일 정체성을 고집하여 16세기의 방식으로 행동하면 편할지 모릅니다. 그러 나 청교도들이 보여준 삶의 내용뿐 아니라 형식까지 그대로 따라하기는 어렵 습니다. 미국으로 건너온 청교도들만 해도 당시 오르간을 예배에서 사용하는 것을 금했습니다. 이는 감정적인 요소로 사람의 마음을 자극해서는 안 된다 는 지성주의에 의한 것입니다 . 그러나 오늘날 교회에서 오르간 사용을 금하 는 교회는 없습니다. 성경이 쓰여진 초대교회나 구약시대의 문화와 삶의 방식에는 우리가 이해하기 는커녕 알지도 못해 설명 없이는 말씀을 이해하기 어려운 배경이 많습니다. 말씀은 삶의 배경에서 주어지고 그리고 실천되며 배경이 다른 시대에 또한 실 천되어야 할 영원한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빠르게 변한다고 합니다. 변한다는 말은 두 가지 면 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말씀조차 변하는 면이 있고, 또 하나는 삶의 방식 과 배경이 변한다는 말입니다. 세대간에 격차가 두 가지 면에서 생깁니다. 젊 은이들은 윤리의식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변해서는 안 될 부분입니다. 그러 나 삶의 방식에서 변화는 우리가 좁혀 가야할 과제입니다. 좋아하는 음악스타일은 30년 간격의 차이가 있는 사람들끼리 일치될 수가 없 음이 당연합니다. 서로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한 지붕 아래 사는 아버 지와 아들 사이도 단절된 상태를 면할 수 없습니다. 죄악시 내지 금기해야 할 부분이 내용만 아니라 내용을 담고 있는 그릇까지 된다면 세대 차이를 좁 히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 그러나 말씀에서 일치하는 것을 목표 삼고 형식에 서 변화를 수용한다면 가능합니다. 개혁주의의 사상이 우리 가슴에 어떻게 다시 살아 나올 것인가? 진정으로 개 혁정신이 없는 신자에게서는 개혁주의는 살아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 면 개혁주의의 형식만 붙잡고 있는 사람은 진정한 의미에서 개혁주의자가 아 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서 개혁주의가 이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내용까지 온 전히 버리고 실용주의 노선으로 나간다면 결국 침몰하고 말 것입니다. 무분별한 열린 예배나 성공만을 목표로 하는 정책 방향 선회는 한번 잘못되 면 바로잡기 어렵습니다. 목회는 작은 보트가 아니라 큰배와 같아서 방향 선 회가 쉽지 않습니다. 이는 작은 교회나 큰 교회나 마찬가지입니다. 작은 교회 니까 이렇게 저렇게 방향 선회를 자주 바꾼다면 혼란스럽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는 사상이 있을 때 이 시대에 다시 개혁주의로 살아 나올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구속 은총이 날마다 우리의 심령에 새롭게 경험되어지기를 바랍니다. 마치 태양이 날마다 떠오르면서 오늘을 비추듯이 이 시대 를 살아가는 우리를 비추는 빛을 날마다 경험하기를 원합니다. 변해서는 안 될 부분과 변해야 할 부분을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 므로 우리는 안일한 개혁주의에 앉아서 형식만 고집하지 않고 진정한 개혁주 의 사상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낡은 보수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과 생각, 진리가 우리 속에 있을 때 오늘날 진정한 개혁주의 는 나타날 것으로 믿습니다. 거짓을 버리고 진실을 말하며 이 시대를 이기고 나가는 교회와 교단이 되도록 힘쓰기를 기원합니다. 교회의 나아갈 길과 교단의 나아갈 길은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교회들의 문제가 곧 교단의 문제가 됩니다. 다만 크게 표출이 되지 않을 뿐이지 교회들 이 갖고 있는 어려움, 극복해야 할 과제 등이 교단의 과제가 되어서 나아가 야 할 것입니다. 사회에 비취는 교회의 모습은 곧 우리가 몸담고 살고 있는 이웃과 직장입니다. 바른 생활이 저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등대가 될 줄 로 알아서 바른 신학이 바른 교회를 통하여 성도들의 바른 삶으로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101 no image 제88회 총회에 바랍니다.-홍문균 목사
rpress
4570 2003-09-25
http://www.rpress.or.kr/files/poetry/335si.hwp제88회 총회에 바랍니다. 홍문균 목사(남서울노회) 교단의 발전을 위하여 앞서 수고하시는 어르신 목사님들과 선후배 목사님들 을 뵈올 때마다 항상 존경과 감사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평소 가졌 던 생각 몇 가지를 피력하는 일 조차 쉽지 않는 이유는 혹이나 저의 주제 넘 는 생각들이 총회를 위하여 기도하시며 땀흘려 최선을 다하시는 분들에게 누 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입니다. 다만 총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제 용기를 내어 제 88회 총회에 바램 몇 가지를 적어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는 우리 교단이 갖는 정체성에 관한 바램입니다. 바른 신학, 바른 교회, 바른 생활의 이념 하에 우리 총회가 힘있게 출발한 지도 어언 20여 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의 모양새를 돌아 보았으면 합니다. 그 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우리의 개혁정신은 아직도 팔팔하게 살아있는가. 우리는 어디까지 왔으며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언뜻 언뜻 우리 교단의 개혁정신에 의문을 가질 때가 많습니다. n 마치 이루어야할 개혁을 다 이룬 양 팔짱을 끼고 노니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개혁의 과제가 무엇인지. 개혁의 추진 방향은 어떻게 설정되 어 있는지. 총회 차원에서 심도 깊은 연구와 시대상 앞에 고민하는 흔적들이 라도 듣고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두 번째는 사회에 대한 책임성에 대한 바램입니다. 시대적 상황이 이토록 혼란스럽고, 계층 간의 갈등의 폭이 이토록 깊어가 고, 음란한 문화 속에서 이토록 정신세계가 썩어문드러지고 있는 시대의 타락 상을 보면서 총회 차원에서 너무도 무기력하게 대처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 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물론 지 교회나, 노회 차원에서나, 총회소속 상비부별로 주어진 여건 속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부인하지 않겠습니다만 총회차원에서 전국 교 회들을 깨우치며 여력들을 한데 모아 세상 앞에 선지자적인 책임을 다하는 작 은 시작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통일을 대비한 북 한 문제, 영적인 갱신과 문화 변혁을 위한 대안, 소외계층을 향한 사랑의 실 천 방안 등 총회 차원에서 시대 앞에 책임을 다하는 작은 불길이라도 시작이 되어 전국교회에 번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마지막으로 친화력에 대한 바램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분위기로 더 깊이 있는 사귐이 총회 회원들 간에 이루어졌 음 좋겠습니다. 이는 총회 차원이라기보다는 우리 자신들이 감당해야할 몫이 긴 합니다만 우선 목회자들의 사이에 진정한 존경과 사랑의 마음들이 싹트기 를 소원해 봅니다. 고치려하고 바르게 하려는 마음이야 얼마나 귀한 일입니 까. 그러나 인내하고 기다려 주고 조금 희생하고 잠잠히 세워주는 총회가 되 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회의를 할 때마다 딱딱하고 무겁고 재판정 같고 서로를 몰아 세우는 것 같 은 분위기는 정작 바꿀 수가 없는 것 인지요. 회의를 하면서 때때로 너무 많 은 힘들을 소진하지 않나 싶습니다. 자기를 증명해 보이려는 우월 의식보다 는 서로를 위하여 섬기려고 하는 어르신 목사님과 선후배 목사님들을 뵈올 때 마다 행복감을 느낍니다. 개혁교회는 '개혁한 교회'가 아니라 '계속 개혁을 진행해 나아가는 교회'라 고 생각합니다. 우리 총회가 계속 개혁 신앙으로 살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 절합니다.
100 no image 건강한 총회를 위해서-윤석희 목사
rpress
4310 2003-09-08
http://www.rpress.or.kr/files/poetry/344siron.hwp건강한 총회를 위해서 윤석희 목사/ 부총회장, 인천노회 제88회 총회 소집공고가 헌법 제17장 제9조와 총회규칙 제5장 제13조에 의거 하여 기독교개혁신보 광고란에 게재되었다. 각 노회에서 선출된 모든 총회 총 대들은 하나님의 교회를 더욱 잘 섬기기 위한 긴 회의에 임하게 된다. 총회 를 준비하는 총대들에게 몇 가지 당부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먼저 총회는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를 섬기기 위한 회의이다. 교회의 본질을 이해하고 회의에 임해야 한다. 교회의 사역적인 면을 살펴보면 예배, 교육과 봉사(전도)를 깊이 생각하면서 상정된 사안들을 하나하나 심도 있게 풀어가 야 한다. 각 노회나 상비부에서 제출된 청원건이나 헌의안 그리고 모든 문제들이 성령 의 인도하심 속에서 기안된 안건들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교회가 성경적이면 서 바른 신학과 바른 교회와 바른 생활을 지향하는 총의에 어울려야 한다. 안 건의 내용에 있어 자기 사견을 반영하는 것은 하나님의 전체 교회에 맞지 않 는 안건이거나 총의에 어울리지 않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또 이미 기본적인 회의 자료가 배포되었다. 총회 절차를 참고하면 이번 총회 에서 다루어야 할 문제들이 무엇인지 거의 다 알 수 있는 것이다. 총회 절차 를 보고 성경과 헌법을 연구하여 총회 전에 이미 “나는 어떻게 하겠다”라 는 답을 얻어서 총회에 임해야 된다. 총회석상에서 갑론을박하는 것은 듣는 사람을 생각하여 조심해야 한다. 자기 생각이 헌법은 아니다. 자기 생각은 개 인적인 자기 생각일 뿐이다. 우리들은 총회 회의로 모인 것이지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참조하시 면 좋겠습니다.” “내 말을 알아 듣지요.” 이런 말들은 며칠 동안 발언하 지 않고 듣고 있는 많은 총대들에게 굉장한 실례가 될 수 있다. 회의로 모였다면 “이렇게 하기를 동의합니다.” “개의합니다.” “재청합니 다.” “예, 아니요.” 등의 말들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들은 총회 회의로 모 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총회 총대들은 사명감(책임감)을 가지고 자기 역할을 다해야 한다. 출 석만 부르고 중간에 결석하는 회원들이 종종 있는데 이것은 총회를 약하게 하 는 행동이 된다. 물론 개인적인 사정은 다 있다. 긴급한 집안 일, 교회 일, 직장 일들이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해가 가면서도 하 나님의 총회(교회)를 생각하면 그럴 수 없는 것이다. 때로 상비부가 성원이 되지 않아 회의를 못하거나, 부장이나 서기를 선출하는 데 있어서 참석치 않은 회원을 부장과 서기로 뽑는 경우도 있다. 이런 처사 는 총회(교회)의 지체를 약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15개의 상비부와 10개 부처의 특별위원회는 모두 다 중요한 기능과 역 할을 해야 하는 총회기관들이다. 종종 어떤 상비부는 중요하고, 다른 상비부 는 유명무실한 경우도 있고, 심지어 일년 내내 한 번도 일해보지 못하는 경우 도 분명히 개선되어야 할 문제이다. 건강한 총회(교회)를 위하여 더욱 그렇 다. 금번 제88회 총회에 하나님께서 크신 은혜와 복을 내려 주시고, 총대들이 책 임을 다하여 한국 교회와 세계 교회에 모델로 제시될 수 있는 거룩한 하나님 의 총회(교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99 no image 총회와 총대에 거는 기대-최덕수 목사
rpress
4575 2003-08-27
http://www.rpress.or.kr/files/poetry/siuk.hwp총회와 총대에 거는 기대 최덕수 목사·중서울노회 하나님께서 세속적 질서 확립을 위해 세속 정치를 제정하신 것처럼, 교회 안 에서의 질서 보전을 위해 교회 치리회를 세우셨다. 그런데 이런 교회의 치리회 중에 총회의 역할은 더 없이 중요하다 할 수 있 다. 물론 총회는 당회와는 달리 임시회이며, 당회나 노회보다 더 높은 상회 (Higher court)는 아니지만, 각 노회에서 파송한 총대들이 모인 광회 (Broader Assembly)요 각 노회에서 발의한 헌의안이나 중요한 신학적 논쟁과 양심의 문제에 대해 내리는 결정으로 인한 파급의 범위가 큰 만큼, 총회에 임 하는 총대들의 자세는 매우 신중해야 할 것이다. 더욱이 광회(총회)에서 다루는 문제들은 좁은 범위의 치리회(당회, 노회)에 서 해결되지 못한 민감한 문제들을 다루게 된다. 따라서 이런 사안에 대한 총 회의 결정은 개인과 각 치리회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고 어떤 경우에는 개인 과 개인, 교회와 교회, 노회와 노회 간에 다툼과 분쟁이 야기되기도 한다. 그래 서 개 교회와 노회의 이익과 관계된 민감한 사안이 많은 총회일수록 자 칫 잘못하면 세 대결을 벌이는 장으로 전락되기도 한다. 각 노회에서 파송 받 은 총대들은 각각 자신들이 소속된 노회와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발언하며 권 리를 행사하게 된다. 그러나 총회는 진리를 드러내고 진리에 부합한 결정을 내리는 장이지 집단적 이익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의 장이 아니다. 어떤 경우 당회 혹은 노회의 파송을 받은 총대들이 소속 노회나 당회의 입장 을 대변하는 일에만 치중한 나머지 진리를 드러내지 못하는 경우들이 종종 발 생하는데 이는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물론 총회 총대는 노회에서 피선된 사 람들이기에 소속 노회의 뜻을 전달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총대가 소속 노회의 뜻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만약 총대가 어떤 사안에 대한 문제에 대해 특정한 입장을 취해야만 한다는 명령을 하회로부터 받고 간다면(이런 용어가 바람직하지 않지만) 상회는 표결 로 대결하는 대결의 장이 될 뿐, 교회의 왕이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 모 든 사안을 결정하는 진리 실현의 장이 되지는 못한다. 우리는 교회사를 통해 교회 회 의가 오류를 범한 일이 있었음을 알고 있다. 치 리회의 결정이 하나님의 말씀에 일치할 때에만 권위를 가질 수 있음에도, 바 르지 않은 결정을 치리회 자체의 권위로 강요하려 했을 때 많은 문제들이 일 어났던 것도 알고 있다. 이런 전철을 되밟지 않기 위해서는 모든 결정이 하나님의 말씀에 일치할 수 있도록 총회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 시대는 절대적 진리를 상대화시키는 포스트 모더니즘(post-modernism)의 시대다. 말로는 성경제일주 의를 주장하지만 진리가 자기 집단 이익에 위배되는 경우 불의로 진리를 죽 여 버리는 시대다. 이런 어지러운 시대에 총회는 하나님의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바른 방향과 목표를 제시함으로 개혁을 향한 발걸음이 지체되지 않도록 해 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총회가 진리의 토론장이 되어야 하고 회원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양심에 거리낌 없이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어야 한다. 목 사 안수 순서나 직책의 높낮이, 혹은 나이에 따른 보이지 않는 서열에 따라 발언을 해야만 되는 경직된 분위기는 연출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총회가 온 통 선거 분위기화 되어서도 안 된다. 인정에 치우쳐 거수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며, 사안에 대한 명확한 이해 없 이 건성으로 표를 행사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 무엇보다 각 노회에서 파송된 총대들은 그 역할의 중요성을 자각하고, 총회기간에는 총회에 참석한 목적을 이루는 일에만 마음을 써야 한다. 나이나 직책에 상관없이 회원 중에 예리한 신학적 지각을 가지고 있어 바른 진리를 드러내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비록 자기 의견과 다르고 자기 이익과 배치되어도 찬성할 수 있는 자세를 가져야 하며, 진리를 거스려 말할 때 들려 오는 권면과 책망의 말도 기쁘게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될 때 총회는 교단 안에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는 통로가 될 수 있다. 이제 얼마 후면 총회다. 사도와 장로들이 의논하러 모여든 예루살렘 총회가 내린 결정이 불필요한 논쟁을 종식시키고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바르게 제시했던 것처럼, 금번 합신 총회에서도 산재된 많은 문제가 해결되고 교회 와 교단에 큰 유익을 끼치는 결정들이 내려지길 기대해 본다.
98 no image 100년만의 변화가 필요하다- 정화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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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52 2003-08-06
http://www.rpress.or.kr/files/poetry/si332.hwp100년만의 변화가 필요하다. 정화영 목사(북서울노회) 여름 성경학교는 지난 100년 동안 한국교회의 명물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더 이상 명물이 아닌 듯하다. 왜 그런가? 시대가 달라진 것이다. 이전에는 사회가 교회를 따라오지 못했다. 티브이와 컴퓨터와 놀이 시설 등 이 없었다. 그러니 즐거운 피아노 반주에 맞춘 율동과 인형극과 구연동화에 도 어린이들은 흥분했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다. 이제는 사회가 교회를 앞서나간다. 어린이들은 세 상에서 더 큰 즐거움과 흥미로움을 느낀다. 그러니 여름 성경학교에 어린이 들을 모으는 일이 힘들어졌다. 더 심각한 일은 여름 성경학교 강습회에 교사 들이 잘 모이지 않는다. 말세가 되어서 모이는 일에 게을러진 것일까? 아니 면 매년마다 똑 같은 프로그램에 지친 것일까?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한다. "교회는 사회와 달라야 돼! 영적인 것으로 승부 를 걸어야지 재미로 승부를 거는 것은 너무 세속적이야!" 의도는 좋다. 그러 나 문제는 현실이다. 그 말이 어린이들에게 얼마나 호소력이 있을까? "선생 님 말씀이 맞아요! 제가 너무나 세속적이에요! 저의 죄를 회개합니다. 이제 는 오직 말씀과 기도에만 열중하겠어요!" 이런 어린이를 본적이 있는가? 중요한 것은 어린이들이 교회에 오도록 해야 한다. 어린이들은 즐거운 곳에 있고 싶어한다. 그 심리는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학교보다, 사회보다 더 즐거워야 한다.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어린이 의 마음을 열게 한 후에 강력한 영성으로 어린이들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변화 시켜야 한다. 필자는 6년 전 어느 날 '어린이는 하나님의 동역자요 하나님의 보물이다'는 믿음이 들어왔다. 어린이가 변화되면 교회와 민족이 변화된다는 확신이 들어 왔다. 그래서 어린이의 변화를 위해서 헌신을 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어린이를 강력한 예배자로 변화시킬까 고민하다가 5년 전부터 여름성경학교 대신 여름 캠프를 실시했다. 신나게 놀고 신나게 먹고 신나게 자고 신나게 은혜 받게 했다. 어린이들의 변화를 위해서 전교인이 1일 금식기도를 하게 했고 어린이의 변화를 위해서 모든 일 에 최선을 다했다. 신나게 놀기 위해서 5톤 트럭 2대 분량의 놀이기 구를 준비했다. 즐거운 윙윙 물축제, 즐거운 윙윙 대모험 등을 실시했다. 어린이들이 세상 어디에도 경험해보지 못한 커다란 기쁨이었다. 윙윙 물축제 는 수중 징검다리 건너기, 상대방 보트 뒤집기, 물보라 속에서 평행봉 건너 기, 딱걸렸어! 등의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었다. 윙윙대모험에는 물속 카드 뒤집기, 물속 매트 위에서 1:1 줄다리기, 라이 언 일병 구하기 등이 진행되었다. 어린이들은 좋아서 미칠 지경이 되었다. 신나게 놀게 한 후에 정성이 긷든 간식을 제공했고 낮잠을 2시간동안 자게 했다. 그리고 맛있는 식사를 제공했고 저녁에 3시간 이상 찬송과 말씀과 기도의 시 간을 가졌다. 어린이들은 하나님은 뜨겁게 찬양했고 뜨겁게 기도했으며 '아 멘!'으로 말씀을 받았고 그 날 밤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했다. 다음 주일에 어린이들의 예배 태도가 달라졌다. 큰 목소리로 찬양하고 기도 하며 참된 예배자가 되어버린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할렐루야! 이런 놀라 운 일이 6년째 계속되고 있다. 필자는 여름과 겨울에 크게 투자한다. 담 임교사와 보조 교사 외에 80명의 자 원봉사자가 어린이 캠프를 위해서 헌신한다. 최고의 놀이, 최고의 저녁 집 회, 최고의 숙박시설, 최고의 간식 등등을 제공한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최고의 것을 투자한 후에 최고의 특산물 열매를 기대한다. 그것은 어린이 예 배자의 탄생, 어린이 군사의 탄생, 어린이 제자의 탄생이다. 이제는 100년 만에 변화를 시도할 때이다. 정말로 여름과 겨울마다 미래를 책임질 강력한 그리스도의 어린 군사들이 일어나기를 기대하는가? 학교를 변 화시킬 그리스도의 어린 제자들이 일어나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크게 심고 크게 거두는 일에 도전하라. 성경의 원리는 심은 데로 거두는 것이다.
97 no image 목회 지도를 다시 그리자-한양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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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75 2003-07-24
http://www.rpress.or.kr/files/poetry/331si.hwp 목회 지도를 다시 그리자 한양훈 목사 우리교단에 속한 교회가 세워진 분포를 보면 대체로 균형이 잡혀 있다고 볼 수 있다. 대도시, 중소도시 또한 농. 어촌에 골고루 교회를 세우고 복음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복음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어디든 가고 전파되 어야 한다. 그러나 요즘은 목회환경이 급속히 변모하고 있다는 것을 누구나 실감한다. 농촌인구는 내리막길을 걷고 국민의 80%이상이 도시에 살고 있다. 자연히 농 촌은 성도 수나 전도대상자가 절대적으로 줄어든 것이다. 그러므로 전형적인 농촌교회의 형편은 극도로 열악해졌다. 도시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새로운 신자가 적은 형편에 대교회 주의가 극성 을 부리면서 왠만한 지역교회들은 성도의 수가 감소하였다. 교회는 저성장 속 에서 무력해지거나 재정적 어려움까지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주변을 보 면 목회자들이 생활이나 자녀교육은 이럭저럭 꾸려간다 할지라도, 질병이나 사고 등 재해를 당할 때에 속수무책인 경우가 허다 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노회나 교단은 과감한 대책을 새워야 할 것이다. 먼저 도시든 농촌이든 장기간 제 자리 걸음을 하는 교회는 과감히 폐쇄나 병합 등 다른 방도들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주로 주민이 소수인 지역이나 복 음을 거절하는 완악한 지역이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교회가 떠났다거나 숫 자가 줄어든다고 단순히 탓만 할일이 아니다. 교회가 힘을 잃으면 주변의 시 선이 곱지 못하고 복음 확장에 열매를 맺지 못한다. 만일 지원을 받아 간신 히 명맥을 유지하는 교회는 재정적으로 독립할 수 있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 상당기간 재정지원을 하여도 복음의 열매가 없을 경우는 모두를 지치게 한 다. 좀 더 적극적인 대책이 있다면 새로운 도시에 교회를 세우는 일에 뜨거운 마음을 가지고 도전을 해야 할 것이다. 넓은 어장에 그물을 내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얼마 전 위성이 찍은 지구 의 야경을 TV뉴스를 통해 본 적이 있다. 도시들은 불빛으로 인하여 하얗게, 그 외의 지역은 검은 색으로 나타났다. 하얗게 드러난 지역은 인구 밀집지역 이며, 한편 죄악이 관영한 곳이다. 이곳은 복음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복음 을 들고 이런 곳으로 달려가야 한다. 황금어장을 놔두고 실개천에서 낚시를 드리우고 한, 두 마리 고기를 위하여 시간을 보낼 수는 없다. 주님도 사람이 있는 곳에 찾아가셔서 복음을 증거 하셨다. 냉정한 의미에서 수요가 있는 곳 에 공급이 요구되는 것이다. 우리 교단은 지금까지 어떤 길을 걸어왔는가. 분당에 도시가 들어서고 십 여 년이 지난 지금 교회당을 확보하고 든든히 복음사역을 감당하며 지역사회 에 영향력을 끼치는 지명도 있는 본 교단 소속교회가 몇 개나 있는가. 일산 은 몇몇 교회가 힘 있게 성장하지만, 수지지역은 또한 어떠한가. 앞으로 3. 4 년 후면 파주와 김포, 평택등지에 대규모 신도시가 들어설 계획인데 아무런 대책 없이 두 손을 놓고 있다가 타 교단이나 특히 영혼을 도적질하는 이단의 무리들에게 황금어장을 내주고 한숨만 짓지나 않을 까 우려된다. 각 지역마 다 합신 교단에 속한 교회들이 능력 있게 복음사역을 감당해야 되지 않겠는 가. 한 영혼도 귀하다는 것이지 한 영혼을 위해서만 사역하라는 것은 아니며 아 골 골짜기나 빈들에도 갈 수 있다는 것이지 애써 그런 곳만 찾아 가야 된다는 것은 아니다. 복음은 넓게 확장되어야 하며 세워진 교회는 안정적으로 사역 할 수 있는 근거를 최대한 확보해나가야 한다. 이 사회에서 교회나 목회자의 곤란함이 더 이상 고귀함이 아니요 복음 확장 에 장애가 되었으면 되었지 결코 덕이 되지 않는다. 적극적인 목회관이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시점이다. 벤처무드에 무모하게 확장해나가는 것도 경계할 일이지만 자신만을 위한 투자나 할 일이 없어 여기 저기 기웃거리는 일도 환영받지 못한다. 주님의 사역을 감당할 시간은 너무도 짧다. 우리는 목회지도를 점검하고 교 회를 확장하며 든든히 세워나가는데 힘을 쏟아야한다.
96 no image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는다-조석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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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63 2003-07-09
http://www.rpress.or.kr/files/poetry/330si.hwp외상이면 소도 잡아먹는다 조석균목사/ 중서울노회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는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현찰이 아닌 외상은 규모 없 이 크게 낭비를 하게 만든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요즘 카드가 그와 같이 큰 낭비를 하게 합니다. 각 가정에 카드가 서너 개 이상 있는 것은 기본입니 다. 그것은 현대 사회생활에 편리를 가져온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 '카드연 체'로 문제가 많습니다. 더구나 심각한 경제불황이 맞물리면서 카드 연체는 큰 고통이 되고 있습니다. 그 카드 빚을 인하여 가족이 자살하는 안타까움 과, 그 빚을 갚겠다고 가족까지 죽이는 등 수많은 죄악이 일어나고 있습니 다. 우리 성도들 중에도 카드 빚으로 인하여 고민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카드 연체로 인해 신용불량자와 범죄의 빌미가 되는 것을 인하여 한편에서 는 카드를 무분별하게 발급한 카드회사를 비판합니다. 그러나 책임은 카드를 쓴 사람입니다. 카드를 쓰라고 등 떠민 것도 아니고, 카드 안 쓰면 죽인다고 한 것은 더욱 아닙니 다. 물론, 카드를 쓰도록 유혹한 면이 없지 않아 있습니 다. 그러나 유혹 앞에 넘어가느냐, 절제하느냐는 그 당사자의 책임입니다. 아담과 하와를 유혹한 사단도 문제이지만, 그 유혹에 넘어간 당사자들의 책임 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벌을 내렸지 않습니까? 따라서 우리는 카 드자체를 원망하거나, 유혹을 불평하기보다는 앞 뒤 가리지 않고 카드를 썼 던 자신의 삶을 탓해야 합니다. 물론 카드를 써야만 하는 피치 못할 상황 때 문에 빚지고 연체된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 규모 없이 낭비한 경우로 인함 입니다. 성경 말씀에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규모 없이 행하고 우리에게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살후3:6)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규모 있는 삶을 삽 니까? 규모 있게 카드를 사용합니까? 습관이라는 것이 무섭습니다. 호황일 때 의 큰 씀씀이의 습관이 불황 중에도 계속되기 때문에 쉽게 카드 빚을 만들고 마는 것입니다. 더구나 오늘날 사회와 문화가 소비지향형이기 때문에 더욱 카 드 연체자들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n 이런 때에 그리스도인들은 규모 있는 삶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습관이 되 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른 소비를 이루고, 바르게 카드를 사용해 나가 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종종 욕망은 우리의 의지를 우습게 넘어갑니다. 더구 나 이 세상은 물질만능의 시대라 '물질에 대한 욕망'이 끝이 없습니다. 물질 앞에서는 도덕도 없고 사랑도 없어, 가족이 서로 반목질시하고 부부가 불화하며, 이웃과 이웃이 다툽니다. 그래서 약육강식의 대 원칙에 따라 서로 경쟁, 대적, 전쟁을 하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그 고명하신(?) 정치인 양 반들이 더더욱 물질 욕망에 빠져 수십, 수백억의 돈을 좇아 온갖 비리를 이루 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에 그리스도인이 빠지지 않습니다. 그것이 문제 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훈련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절제하며, 규모 있는 삶을 훈련하십니까? 우리의 교회들이 성경적 물질관, 경제관을 가르칩니까? 성경 적 소비관을 배워주고 있습니까? 일찍부터 한국교회는 '기복주의'에 빠져있었 고, 대형 교회의 물량주의를 본 삼으며, 여전히 복의 개념이 오직 물질 풍요 에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한국교회가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그토록 경계하 셨던 바알과 아세라(물질풍요의 우상)를 섬기는 상태에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바알과 아세라의 우상주의는 우리 그리스도인 마음과 가정과 교회에 여전히 머물고 있고 도전하며, 미혹하고 있습니다. 명백하게 하나님은 말씀하 셨습니다.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 하는 자들의 다툼이 잃어 나느니라. 그러나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 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 즉 족한 줄 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 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 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6:6-10). 그러므로 이번 여름에 성경학교나, 수련회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신과 자녀들에게 성경적 경제관을 가르치고, 규모 있는 물질관리를 훈련시키며, 바 른 소비관을 배워주어야 합니다. 요즘처럼 심각한 경제의 곤경일 때 그 교육 이 바로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바알과 아세라를 몰아내야 합니다. 그리고 오 직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그분을 드러내며, 그분의 말씀을 따라 살기 위 한 경제관이 심어져야 합니다. 그렇게 하여 참되고 알찬 부요와 삶을 이루도 록 해야 합니다.
95 no image 버려진 아이를 데려다 키우는 수양부모-한광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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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58 2003-06-25
http://www.rpress.or.kr/files/poetry/329si.hwp버려진 아이를 데려다 키우는 수양부모 한광수 목사/ 수원노회 서구에서는 1900년도부터 고아원을 아동인권침해 또는 복지인간양성 부작용 을 이유로 폐지하고 대신에 수양부모제도(foster care system)로 변환되어 운 영되고 있습니다. 현재는 세계 80개국이상에서 이 제도를 도입하고 있습니 다. 고아원에서 자란 성인은 한 가정 속에서 사랑을 받아가며 부모의 출퇴근 을 보며 자란 성인과 많이 다른 것이 판명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사단법인 한국수양부모협회(www.ngopower.net)가 비영리 민간단 체로 1998년에 박 영숙씨에 의해서 창립되었습니다. 현재까지 350여명의 버려 진 아동을 키워내고 있습니다. 이 협회의 궁극적인 목적은 부모(부양 의무자) 로부터 일탈된 아동이 부모에게 다시 돌아갈 때까지 가정적인 분위기에서 건 강하게 성장하도록 보호하여 친 가정으로 복귀되도록 하는데 있으며 시설에 서 성장하거나 소년소녀 가장으로서 방치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데 있습니다. n그 협회에서는 다음과 같은 자원자들을 찾고 있습니다. 1) 버려지는 아이들을 일시 무료가정위탁보호 희망하시는 분 즉 수양부모를 찾습니다. 2) 가정위탁은 못하지만 협회에서 주중 주말에 자원봉사 하실 분을 찾습니 다. 3) 자원봉사까지는 아니더라도 협회를 1만 원 이상 후원해주실 분들을 찾습니 다.(전화: 02-943-9119/9120) 이것이야 말로 우리 기독교인이 해야 될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제는 고아 수 출국이라는 오명을 벗고 버려지는 아이를 우리 손으로 키우는 선한 일에 교회 가 앞장서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가정은 20년 전에 교회를 개척하면서 자녀들을 키울 수가 없어서 양가 부모에게 맡겼다가 5살이 되었을 때에 데려왔습니다. 부모님들에게 죄송스러 웠고 아이들에게도 미안했습니다. 저는 아내와 함께 교회와 선교원의 일로 무 척 바빠서 자녀들을 키울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나님 의 은혜로 자녀들이 잘 자라났습니다. 지금은 아들은 군에 가 있고 딸은 대학 생인데 선교회 사랑방에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집에는 저와 아내만 있는 날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저희 집에 5살짜리 수양아들이 생긴 것입니다. 수양부모 협회에 서 데려왔습니다. 데려오기 까지는 아내의 큰 결단이 있었습니다. 나는 생각 하기를 남의 아이를 데려다 키우는 것이 우리가 이 사회에 크게 주는 것이라 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과 교회에 주신 은혜와 축복을 생각하니 세상을 향하여 주는 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 리고 교인들에게 모범을 보여주는 목회자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 다. 아이를 데려 온지 넉 달뿐이 되지 않았기에 아직은 미숙한 부분이 많습니다. 그러나 할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합니다. 우리는 아이를 데려 오면서 이름을 요셉이라고 바꾸어주었고 House Rule(1. 나는 울보가 아니 다. 2. 나는 찡찡대지 않는다. 3. 나는 신경질을 부리지 않는다. 4. 나는 멋 쟁이다. 5. 나는 예수님을 사랑한다. 6. 항상 기뻐하라. 7. 쉬지 말고 기도하 라. 8. 범사에 감사하라.)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로 하여금 아침 에 그것을 외치도록 하고 생활 속에서 실천하도록 점검하고 있습니다. 5살짜리 아들이지만 너무 똑똑해서 저희와 싸우 는 일이 많습니다. 예를 들자 면 쌍스러운 말, 친구들하고 싸움, 거짓말, 개다리 춤, 술 먹는 흉내, 먹는 욕심, 억지를 부림 등을 볼 때나 선교원에서 연락이 올 때마다 야단을 치고 고쳐주느냐고 한바탕 전쟁을 치르게 됩니다. 때로는 너무 황당하여 “얘는 아이도 아니야!”라고 우리 부부가 탄식을 하다가도 불쌍한 마음이 들어서 기 도해주게 됩니다. 그래서 점점 신앙적으로 바꾸어져서 기도하는 아이, 성경이 야기 좋아하는 아이, 찬송 부르는 아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아이, 착한 아이 로 바꾸어지는 것을 볼 때마다 사랑스러울 뿐만 아니라 키우는 보람을 느끼 고 있습니다.
94 no image 교회 개척, 이대로 좋은가?-황대연 목사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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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74 2003-06-12
http://www.rpress.or.kr/files/poetry/328siron.hwp교회 개척, 이대로 좋은가? 황대연 목사/ 경기서노회 1. 교회 개척, 정책은 있는가? 해마다 열리는 노회를 보면, 각종 헌의안을 살피고 처리하는 과정에서 교회 개척에 대한 대안을 찾는 정책적 고민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대신, 생활고 에 허덕이는 미자립교회 목회자들을 위해 물질적으로 생활비 지원하는 일을 의결한다. 그런가하면 노회의 상비부중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전도부는 이미 교회 개척 지 물색이나 교회개척을 지원, 장려하는 일은 예산도, 인력도 부족해 엄두를 내지 못한지 벌써 오래이다. 그러니까 교회 개척은 좀 형편이 닿는 교회의 경 우 개척을 나가는 부교역자에게 임대료나 일정한 기간동안의 생활비 일부를 지원하거나, 그렇지 못한 대부분의 경우는 사명 있는 자가 자기 단칸방을 빼 든, 어디 급전을 내든 알아서 해야 하는 형편인 것이다. 총회의 교회 개척 정책은 어떠한가? 한마디로 실감이 나지 않는다. 해마다 달 력 사업을 통해 전도부 기금을 마련하여 개척교회를 세우는 일에 대여해주기 도 하고 지원을 하지만 워낙 총회 산하의 지교회들의 형편이 어렵고 개척교회 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2. 교회 개척, 사람을 키우고 있는가? 교회 개척을 위해서는 사명감 있고 잘 훈련된 목회자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 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노회나 총회는 교회 개척을 위해 사 람을 키우고 있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 부분도 현재 선교사 후보생들 을 키우는 데 쏟아 붓는 관심과 지원에 비해 매우 미흡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예컨데, 총회 선교사로 파송되기 위해서는 선교 헌신자들이 재학 중에 '선교 와 실제'라는 몇 학기를 필수로 이수해야 한다. 그 이후에도 부부가 같이 부 름받았는가에서부터 일정 액수의 선교비 모금 및 기도 후원자 모집 그리고 선 교 현지에 가서 적응훈련을 받기도 한다. 한 사람의 선교사를 키워내는 일에 우리 합신 총회는 초창기부터 안목을 가진 좋은 선배들의 눈부신 활약으로 여 타 교단에 비해 잘 정리가 되어 있다. 그러나 교회 개척자들의 형편은 어떤가? 마치 준비 없이 전쟁터에 내보내는 느낌이다. 지금은 과거 우리의 선배들이 목회하던 때처럼 천막에 십자가만을 세워도 몰려들던 때와 매우 상황이 달라졌다. 90년대 이후로 교회가 마이너 스 성장을 하고 있다는 통계와 해마다 배출되는 수많은 신학생들, 네온 십자 가들의 홍수 속에 이제는 교회를 개척하는 일도 선교사를 파송 하는 것 못지 않게 준비해야 하고 전략을 세워야 하는 시점이 되었다. 3. 교회 개척, 대안은 있는가? 신학교를 다니면서도 정작 성경 읽을 시간이 없어서 3년간의 신학공부는 했지 만, 성경 일독도 못하고 나온다면 딱한 일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3년간의 신 학교를 다니고 나서도 선교사가 되었든, 목회자가 되었든 자기 진로에 대한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다면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교회 개척을 위한 좀더 과학적인 연구와 리서치가 필요하기에 이 일만을 전담 하는 전문 기구가 요청된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인구의 80% 이상이 비기독교 인들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계속 개척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교회 의 이미지나 전도 환경이 그렇게 좋다고 말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교회 개척을 위한 자료, 지원, 정책들을 충분히 갖추고 교회 개척 이후에도 교회가 든든히 서 갈 수 있도록 총회 산하 에 합리적인 컨설팅을 해 줄 수 있는 가칭 "교회 개척(성장) 연구소" 같은 기관을 두는 것이 필요하다 는 것이다. 여기에서 교회 개척 지원자들을 점검하고 온 교회의 역량들을 한 데 모아 후원하는 이를테면, 교회 개척을 위한 저변 확대를 해 가야 한다. 이제는 교회들마다 개혁주의 신학을 바탕에 두고 내실을 기하는 것과 아울러 앞서 개척한 선배들의 경험과 역량들을 잘 응집시켜서 새로운 교회들이 잘 탄 생될 수 있도록 교회를 개척하는 일에 좀더 많은 관심과 힘을 모아야 할 때이 다.
93 no image 복음 증거자의 자세-전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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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89 2003-05-29
http://www.rpress.or.kr/files/poetry/327si.hwp 복음 증거자의 자세 전 현 목사/ 북서울노회 기독교는 반드시 두 바퀴를 가져야 한다. 하나는 영적인 것과 다른 하나는 지적인 것이다. "믿는 것과 아는 것에 하나가 되라"(엡 4:13)고 하신 말씀이 바로 그 뜻이다. 이는 신앙의 균형을 말하는 것이다. 이 두 바퀴 중 어느 것 하나가 크고 작든지 빠르고 느리다면 그 균형은 깨지고 마는 것이다. 기도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울부짖는 것만큼 하나님의 말씀을 먹으면서 살아가야 한다. 성경은 많이 알고 있는데 기도에는 빈약한 태도도 고쳐야 한 다. 오늘 한국교회가 갖고 있는 영적인 바퀴와 지적인 바퀴의 불균형으로 말 미암아 어느 한 쪽 방향으로만 가고 있는 현상에 대하여 목회자의 책임이 큰 것이다. 교회가 똑바로 나가지 못하는 이유는 이 두 바퀴의 균형을 잃어버리 기 때문인 것이다. 특히 한국교회는 지적인 바퀴가 적고 속도가 느린 기형적 현상을 갖고 있 다. 외길로 가지말고 바르게 길을 찾을 때가 되었다. 이에 목회자들이 갖추어 야 할 몇 가지 다짐을 점검하고자 한다. 첫째, 복음 증거가 천직임을 명심하라. 농사일이나 공부하는 일이나 장사하는 일이나 무엇을 하든지 하는 일에 즐거 움을 느끼면 천직이다. 천직을 발견하면 천직을 떠나지 말라. 하나님께서 모 든 이들에게 천직을 주셨다. 목회가 천직인 줄 알고 일하면 즐거움이 있고 반 드시 성공한다. 둘째, 사랑을 가지고 하라. 사랑의 온기가 모든 이들의 심령 속에 들어가야 한다. 사랑은 주면 줄수록 좋은 것이다. 사랑의 눈물은 사랑의 꽃을 피운다. 사랑의 꽃씨를 심을 때 만 족을 가슴에 품는 거목이 된다. 사랑 없는 목회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언제 나 풍성한 사랑으로 변함 없는 사랑의 모습으로 대하고 사랑의 떡을 주어야 한다. 셋째, 진실하게 하라. 우리가 때로는 교인들이 목회자를 속인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그러면서도 정말 생각 못하는 것이 있다. 내가 교인들을 속인다고 생각지 못한다. 베드로 가 예수님을 시험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내가 다른 사람을 시험한다고는 생각하 지 못한다.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도 오히려 하나님의 사업을 방 해하고 하나님의 일을 무 너지게 한자가 아니냐? 문제의 교인은 있는데 문제 의 목회자는 없는가? 자식만 낳을 줄 알았지 자식을 내가 다 가르치고 보여주고 내가 만들어 놓 은 대로 따라 온 것이다. 우리가 진실을 못 지키고 일할 때 그 일을 안하는 것이 차라리 유익이 될 것이다. 우리는 진실을 기본으로 알고 일해야 한다. 진실을 기쁨으로 삼고 거기서 살 고 거기서 죽어야 한다. 주님의 사명을 받은 우리가 때로는 과장하고 때로는 둘러치고 참되지 못한 경우가 있다. 이렇게 둘러대는 표현 방편 속에서 여기 서 얼마나 우리의 인격이 더러워지는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예수 그리 스도의 종이 되어서 진실을 지키는데 바르게 하지 못하는 것 그것을 한번 깊 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말씀을 지키는 면에서 이것을 생각해 보 아야 한다. 넷째, 말과 지혜를 가지고 하지말고 복음으로 하라. 고린도 전서 2:1절에서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 하였나니" 이 말씀에서 하나님의 증거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증거는 십자가의 도이다. "내가 너희에게 나아간다" 예 수 그리스도에 관해서 십자가의 도를 증거한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나 이것 을 전할 때에 말 가지고 지혜 가지고 하지 않았다. 여기서 말이란 웅변술을 의미하며 지혜란 철학적인 용어를 써서 아름답게 묘사하는 것이다. 바울이 고린도에서 18개월을 유하면서 전도하여 고린도 교회가 세워지게 되 었는데 바울이 고린도에 간 것이 말이나 지혜의 아름다운 것을 증거 하려고 간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말 잘하는 사람을 쓰시는 하나님으로 오해되어서 는 안 된다. 전도는 말로 되는 것이 아니며 지혜로 되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 은 가장 약한 자를 들어 쓰신다. 그러므로 약한 자에게도 소망이 있다. 십자 가의 도를 증거할 때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성령을 의지하라. 성령에게 의탁 하고 성령께서 일하시도록 기도하라. 성령의 능력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92 no image 30-40대가 '개혁의 주체' 되어야 한다-최종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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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18 2003-05-14
http://www.rpress.or.kr/files/poetry/326si.hwp 30-40대가 '개혁의 주체' 되어야 한다 최종규 목사(경북노회) 한 시대가 흐르면 또 한 시대가 오기 마련이다. 개혁의 주체 세력도 시간이 흐르면 다음 세대에게 그 바통을 넘겨주어야 한다. 문제는 선배들이 일궈놓 은 개혁의 발판 위에 그 실체를 세워야 할 후배들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는 것이다. 현재 50-60대 중견 목회자들은 한 때 한국 교계의 개혁을 주도했던 목회자들 이다. 이분들은 한국 교계가 교권 및 금권 정치로 가장 혼란스러웠던 70-80년 대의 개혁 주체들이었다. 당시 한국 교계의 어두운 현실을 직시하고 과감히 개혁의 길을 선택함으로써 오늘날 우리 교단의 발판을 굳게 세웠던 것이다. 그 후 20여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이분들의 헌신적인 희생과 노력으로 우리 교단은 개혁의 문을 활짝 열어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바른신학, 바른교회, 바른생활의 모범적인 교단으로 성장하였다. 이것은 더 이상 교권이나 금권 등 과 같은 세력을 동원하지 않고 성경의 가르침과 개혁주의 선배들의 전통을 바 탕으로 우리 교단이 전진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개혁의 엔진을 힘 차게 가동하고 앞으로 전진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된 셈이다. 이제 선배들이 이루어 낸 개혁의 기수는 30-40대 젊은 목회자들이 그 바통을 넘겨받아야 할 시기이다. 개혁 이념을 확고하게 세워 온 선배들의 뒤를 이어 잘 다져진 근거를 바탕으로 후배들이 웅비의 날개를 힘껏 펴야 할 때인 것이 다. 그러기 위해 30-40대 젊은 목회자들이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첫째, 디모데와 같이 성실하게 목회에 전념해야 한다. 목회 현장에서 충분한 실습이 없었다는 이유로 젊은 목회자들의 연소함을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으려 면 개혁주의 목회관을 바탕으로 누구보다 몇 배의 노력과 수고를 아끼지 않 고 목회에 전념해야 한다. 둘째, 선배들이 다져놓은 목회 현장을 존경하고 겸허한 자세로 선배들의 노고 에 박수를 보내는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 선배들은 개혁의 기반을 닦기 위해 온 힘을 기울였다. 기득권을 포기하면서까지 누구보다 많이 희생하고 오늘의 교회와 교단을 가꾸어 나왔다. 그들의 땀과 노고를 기반으로 오늘날 우 리 교 단이 한국 교계 개혁의 발판을 굳건히 세울 수 있었던 사실을 기억하라. 셋째, 이전보다 더 열심히 진리 탐구에 최선을 기울여야 한다. 30-40대에 열 심히 그리고 충분히 공부하지 않으면 20-30년 후에 오히려 개혁의 거침돌이 되고 말 것이다. 지금까지는 개혁의 기초를 놓는 일이었지만 이제는 그 실체 를 세워야 한다. 이것은 실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론뿐만 아니라 목회 현장 에서 다져진 실력을 바탕으로 개혁의 뼈대를 견고히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30-40대 개혁의 기수들은 선배들이 일구어 놓은 기반 위해 개혁의 실체 를 확고하게 세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 게으르지 말아야 한다. 여러분들의 시 간은 언제까지나 기다려 주지 않는다. 목회에 전념하고, 선배들을 존경하고, 진리 탐구에 최선을 기울이려면 절대로 게을러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도 독서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개혁주의 선배들이 유산으로 남겨준 칼빈의 기독교 강요나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서와 같은 책을 몇 번이 고 읽고 이해하고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고 박윤선 목사의 경건과 신학 적 수준에 도달하지 못할지라도 그분을 뒤따르 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목회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이상의 경건과 신학적 수준을 목표로 노력하 고 전진해야 한다. 여러분들이 50-60대가 되면 더 이상 개혁을 주도할 힘이 없게 될 것을 깨닫 게 될 것이다. 그 때 가서 분발하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지금 한창 두뇌가 명석하고 사리를 분별할 수 있을 때에 경건과 학문을 이루는 일 에 촌음을 다퉈야 한다. 어느 시대나 개혁의 실체를 세워야 할 사명은 젊은 목회자들의 몫이다. 청결 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 없는 믿음(딤전 1:5)을 가지고 하나님의 경륜을 밝히는 목회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개혁의 실체를 세우는 일임을 결코 잊어선 안 될 것이다.
91 no image 제주도에 노회를 세우자-이선웅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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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3 2003-04-30
http://www.rpress.or.kr/files/poetry/325si.hwp제주도에 노회를 세우자 선교사 돕는 순회 선교사도 필요해 이선웅 목사 (서서울노회장) 1. 제주에 있는 세 교회 현재 제주에는 우리 교단 교회가 세 교회가 있다. 한라산교회(문상진목사, 서 귀포 구시가지), 본향교회(신호인목사, 서귀포신시가지), 탐라교회(유익순목 사, 제주시) 이렇게 세 교회가 있다. 이들 교회 대표들이 봄, 가을노회 때마다 육지로 올라오는 일이 보통 힘든 일 이 아니다. 시간도 많이 요구되고 경비도 만만치 않다. 그보다도 현지에 교 단 교회가 적어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많다고 호소하고 있다. 예를 들면 여름 성경학교 자체 강습회 같은 것을 하고 싶어도 엄두도 못내는 실정이다. 그렇다고 교사들을 모두 서울이나 부산이나 광주 등지로 보내서 교육을 받게 할 수도 없는 일이다. 교회들 간의 긴밀한 협력사업이나 교역자들 간의 교통 에도 어려움이 많다. 한라산교회의 경우 서서울노회에서 이 교회를 개척한지 도 어느덧 10년이 넘었다. 따라서 이제는 우리 합신총회에서 제주도에 노회 가 세울 수 있도록 다각도로 방안을 모색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2. 전략적 차원의 교회 개척 필요 최근들어 교회 개척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또 개척을 하더라도 자리잡 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개척을 하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다. 물론 지금도 노회마다 전도부 중심으로 교회 개척 계획을 세워서 추진하고 있는 줄 안다. 예를 들면 3년에 한 교회씩을 노회 지역에 개척한다는 목표를 세워서 추진하 고 있는 노회들이 있다고 듣고 있다. 물론 귀한 일이다. 그러나 거기에 머물 지 말고 이렇게 했으면 어떨까 한다. 그것은 노회가 파송한 대표들이 한 자리 에 모여서 총회 차원의 개척교회 설립 전략을 세우는 것이다. 그래서 새로 개발되는 신도시이면 신도시에 정말 교단교회가 필요한 곳에 교 회를 세워서 자립할 수 있도록 힘을 몰아주고 그 후에는 그 교회가 또 다른 개척 교회를 세울 수 있게 하는 일이다. 이 일은 아무래도 총회 전도부가 주 관해야 될 것으로 생각된다. 3. 선교사 돕는 순회 선교사도 필요하다. 현재 우리 교단에서 200명(부부) 가까운 선교사님들이 세계 각지에 파송되어 있다. 이중에 많은 이들이 열악한 환경 가운데서 분투하고 있다. 총회선교부 에서 나름대로 돕고는 있지만 손이 미치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 그중 한 가지 는 선교 현지를 방문하여 선교사님들을 격려하고 그들의 어려움을 청취하고 협력하는 일이다. 이 일을 위해서는 총회 안의 중진급 인사가 참여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이름 을 대면 금방 알 수 있는 분이면 더 좋을 것이다. 그런 분이 일찍 은퇴를 하 던지 아니면 목회 도중 순회 선교사로 자원을 해서 사역을 담당해준다면 선교 사님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이 일도 우리가 해야 된다고 본다.
90 no image 고난과 영광-최칠용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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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50 2003-04-15
http://www.rpress.or.kr/files/poetry/324si.hwp고난과 영광 최칠용 목사/서서울노회 우리가 잘 아는 민담 중에 짚신 장사를 하는 아들과 나막신 장사를 하는 아들 을 둔 늙은 어머니의 이야기가 있다. 짚신이 맑은 날 신는 신이라면 나막신 은 비 오는 날에 신는 신발이다. 그러니 맑은 날에는 나막신 보다 짚신이 더 잘 팔릴 것이요 비 오는 날에는 짚신보다 나막신이 잘 팔릴 것이다. 이렇게 서로 상반된 장사를 하는 두 아들을 둔 늙은 어머니는 하루도 편히 지낼 수 가 없었다. 비 오는 날에는 짚신 장사 아들이 걱정이 되고 맑은 날이면 나막 신 장사 아들이 걱정이 되었다. 매일 걱정만 하고 사는 노인을 지켜보던 어떤 사람이 기발한 말로 위로해 주 었다. "할머니 왜 날마다 걱정하며 사십니까? 할머니께서 마음만 고쳐먹으면 매일 매일 행복하게 살수 있습니다. 비 오는 날에는 나막신 장사하는 아들 돈 버는 것만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맑은 날에는 짚신 장사하는 아들 돈 잘 버 는 것만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비 오는 날은 비 오는 날대로 행복하고 맑 은 날은 맑은 날대로 행복할 것입니다." 기막힌 가르침이다. 그렇게 쉬운 것을 미처 생각지 못해 바보처럼 걱정만 하 고 살았구나 라고 한탄 할 정도의 획기적인 깨우침이다. 그동안 걱정을 사서 했다고 후회 할 만큼 매력 있는 가르침이다. 소위 말하는, 행복하게 사는 비 결이다. 그러나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 보라. 정말 늙은 어머니가 이 가르침을 받은 후에 행복했을까? 인식전환의 비결을 배운 노인이 비 오는 날이나 맑은 날이 나 걱정 없이 살았을까? 아마도 늙은 어머니는 "그래 좋은 쪽으로 생각해야 지, 잘되는 쪽으로 생각해야지..."라고 수없이 다짐하면서도 아침에 일어나 맑게 개인 하늘을 보면 어김없이 나막신 장사하는 아들이 생각났을 것이고 비 가 오면 짚신 장사하는 아들이 먼저 생각나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한숨을 지었을 것이다. 자기가 행복해 지기 위해 두 아들중 한 아들이 당하는 불행 에 대해서 애써 외면하는 것은 어머니의 사랑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기 때문 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주변에는 적극적인 사고 방식을 가져야 신앙생활도 성공 하고 인생에서도 성공하고 목회도 성공한다고 외치는 분들 이 큰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매사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다그친다. 안 된다고 생각하지 말고 된다고만 생각하라는 것이다. 실패는 생각지도 말 고 성공만 생각하라는 것이다. 멋진 말이요, 매력적인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가르침 속에는 마약과 같은 무서운 유해 요소가 숨어있다. 짚 신 장사와 나막신 장사를 둔 어머니에게 조언해준 것처럼 한쪽은 외면하라는 말이다. 좋은 쪽만 생각하라는 것이다. 고난은 생각지 말고 영광만 생각하라 는 말이다. 이런 가르침은 십중팔구 십자가는 외면하게 되고 부활만 생각하 게 하는 함정이 있다. 인생이란 짚신장사와 나막신 장사를 둔 어머니처럼 어느 한쪽도 외면하거나 피할 수 없는 양면성이 있다.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고 기쁨이 있으면 괴로움 이 있고 성공이 있으면 실패가 있고 합격이 있으면 불합격이 있다. 이 두면 이 어우러져 온전한 삶을 만들어 간다. 십자가 없는 부활이 어찌 온전한 복음이라 할 수 있겠는가? 부활 없는 십자 가가 어찌 온전한 복음이 될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도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보라! 하나님이 굽게 하 신 것을 누가 곧게 하겠느냐?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당장 내일을 헤아리지 못하게 하셨느니라"라고 했다. 형통한 일과 곤고한 일을 통해 우리를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훈련 시켜 가시겠다는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겠는가? 4월은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의 영광이 어우러진 달이다. 삶의 한편을 외면 해 버리는,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은 있지만 속이 비어버린 반쪽 신앙이요 허 탄한 성공만을 외치는 천박한 신앙이 되어서는 안되겠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라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라.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친다는 말씀의 의미를 생각해 보라. 십자가와 부활의 믿음으로 건 강하게 균형 잡힌 참 신앙이 그리워지는 때다.
89 no image “세계 평화 위해 기도할 때”-박봉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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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84 2003-03-27
http://www.rpress.or.kr/files/poetry/323si.hwp“세계 평화 위해 기도할 때” 박봉규 목사/ 한장연 사무국장 현재 국제 정세는 미국의 힘의 논리에 의해 매우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다. 국 내 정세는 참여정부의 개혁에 찬 조각으로 보수계층이 불안해 하고 있고 젊은 층은 손뼉을 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국민들은 매우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교계적으로는 평화기도회와 국민대회를 통해 사상적인 좌우 이념의 성격이 여 실히 나타났으며 이는 마치 6.25 전의 극우 극좌의 상황을 방불케 하였다. 최근 통일교에서는 천주평화통일가정당을 창당하고 문선명의 정치적 야심을 드러내고 있다. 또 수백억 원을 투자하여 World Peace King’s Cup 축구대회 를 준비하는 등 통일교 사상 전파에 혈안이 되어 있다. 신학자 풀턴 제이 신은 그의 저서 「공산주의와 서구의 양심」에서 “서구의 기독교인은 진리는 가지고 있으나 열심은 없고 빛은 가지고 있으나 열은 없으 며 이상은 가지고 있으나 정열은 없다”고 말했다. 이 말은 과거 서구의 기독 교인에게만 해당 하는 말이 아니라 현재 한국 기독교인에게 해당하는 말이 아 닌가 생각된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난세의 극복은 정치적인 논리도 아니 고 힘의 논리도 아닌 기독교 세계관으로 접근해야 한다. 국내 학자 중에는 남북한 문제를 민족주의로 접근하는 분이 있다. 그러나 이 것은 유대민족이 유대민족주의로 세계국가를 만들려고 결속했으나 하나님 나 라는 구현하지 못하고 수천년동안 세계를 떠돌아 다니는 유랑민이 되고만 사 실을 되풀이할 위험성이 있다. 그들의 민족주의는 예수 없는 민족주의였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지금 강대국은 정치 논리나 힘의 논리로 세계를 지배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나폴레옹이 전쟁으로 세계를 제패하지 못한 것 같이 장기적으로는 성 공하지 못할 것이 자명하다. 이제 세계의 문제는 기독교 세계관으로 접근해야 만 해결할 수 있다. 기독교 세계관은 기독교적 민족주의나 기독교적 민주주의가 아니라 기독교 복 음주의이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 복음주의가 기독교 세계관인 것이다. 이 기 독교 세계관은 예수님 메시지의 중심주제인 하나님 나라의 구현이다. 기독교 세계관은 첫째로 하나님의 의가 인간관계에서 실현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 는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통해서 실현될 수 있 음을 믿는 믿음에서 시작된다.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평화가 이루 어지도록 주의 사랑을 전해야 한다. 예수님의 사랑만이 인류를 화목하게 하 기 때문이다. 셋째로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자들이 갖게 되는 참된 기쁨과 소 망을 전 세계에 전파해야 한다. 다민족과 다국가, 그리고 다문화의 융합은 오직 하나님의 코이노니아와 하나 님의 디아코니아로만 가능하다. 따라서 사순절 기간동안 우리가 먼저 주님 앞 에 무릎을 꿇자. 믿음이 없었음을 회개하자. 사랑을 전하지 못했음을 회개하 자. 세계에 소망의 복음을 전심으로 전하지 못한 것 또한 회개하자. 그리고 이 시간 부활하신 주님께 세계평화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자. 그분만이 세계의 주인 되신 왕이시기 때문이다.
88 no image 지금은 의인 열 명이 필요한 때-나종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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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64 2003-03-12
http://www.rpress.or.kr/files /poetry/322si.hwp지금은 의인 열 명이 필요한 때 나종천 목사/ 한사랑교회 얼마 전 외국에서 공부하던 아들이 대한민국 국민의 의무인 국방의 의무를 하 기 위해서 귀국했다. 그때 어느 분이 이런 말을 했다. “왜 하필 이 때에 귀 국했느냐, 지금 시국이 굉장히 어순선하여 전쟁의 위기에 직면해 있는데 더 있다가 오지”하는 것이었다. 아들에게 물어보았다. “그곳에서는 조용했 니?” 그랬더니 “그곳에서도 한국에 전쟁이 곧 일어날 것처럼 말해요. 그런 데 한국이 더 조용하네요”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우리 조국이 굉장히 큰 위기에 직면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북한의 핵 문제가 세계의 초미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고, 우리 조국에는 생사를 생각 해야 할 중요한 시점에 와 있다. 주변국들은 한국에서 곧 전쟁이 일어날 것처 럼 생각을 하고 있다. 얼마 전 서울 시청 앞에 약 1백여 개의 보수단체 약 10만명이 ‘반핵반김 자 유통일 3·1절 국민대회’를 가졌다. 위기의 순간에 국민을 각성시키고 국민 의 힘을 하나로 묶어 보겠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자리에 한 국교회를 대표하는 한기총의 C목사, 공동대표 G목사, K목사 등이 참석하여 그 들과 함께 낭독했던 선언문은 “북한의 핵개발로 7천만 한민족이 떨고 있다” 며 "한반도와 세계 평화를 지키고 자유민주주의와 국가 번영을 위해 정부는 경찰국가인 미국과 손 잡으라"고 촉구했다. 그리고 함께 외치길 "북한은 우리 의 주적, 미국은 우리의 혈맹"이라는 피켓과 "성조기여 영원하라"가 울려 퍼 졌다. 우리 조국의 안녕과 번영이 경찰국가인 미국의 손에 달려 있기에 우리가 미국 을 의지하고 미국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으면 곧 나라가 망할 것처럼 생각하 고 행동하는 교계 지도자들의 행동에 큰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솔로몬이 이스라엘의 안녕과 번영을 위해 애굽으로 말을 구하려고 사람과 돈 을 보냈다. 그렇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말은 국가를 보호하고 지키며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무기인 것은 틀림이 없다. 그러나 하나 님은 분명히 말씀하셨다. 국가의 힘과 안정 번영은 여호와의 손에 달려있는 것이지 말의 힘에 달려있지 않 으며 말을 가지려고 애굽으로 사람을 보내지 말 라고 했다. 그러나 솔로몬은 그 말씀을 거역했고 결국 이스라엘은 솔로몬의 한 세대도 지나지 않아 둘로 나뉘어졌으며 영원히 원수처럼 싸우다가 망하고 말았다. 이 말씀을 생각 할 때마다 두려운 생각이 든다.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시요 하나님께서 한 나라를 세우기도 하시고 무너뜨리 기도 하시며 왕을 세우기도 하시며 폐하기도 하시는 분이심을 믿는 성령의 공 동체가 바로 교회이다. 그렇다면 오늘의 문제를 하나님 자신을 계시해 주신 성경을 통해서 성령님의 조명을 받아 교회는 말하고 행동해야 할 것이다. 이 제 우리 조국이 주의 은혜의 빛 아래 있기 위해서 몇 가지 제언한다. 1. 성령의 공동체인 교회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열어야 한다. 하나님의 경 고하신 목소리에 더 이상한 귀를 닫지 말고 귀를 열고 들어야 한다. 최근 대 구 지하철 사고의 아픔은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막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임 할 심판의 경고의 메시지이다. 우리가 살려면, 조국이 살려면 세상의 소리를 크게 듣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열고 크게 들어야 한다. 2. 성령의 공동체인 교회 는 회개 운동을 해야한다. 돈이 주인이고 왕의 자리 에서 교회와 성도를 주장하는 불행한 일, 우상숭배, 물량주의, 배금주의, 약 하고 아픈 곳에 함께 있지 못한 죄를 회개해야 한다. 지금 교회는 예수님께 서 말씀하셨던 강도의 굴혈과 도적의 소굴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마귀가 천하만국과 그것들의 영광을 보여 주며 예수님을 유혹했다. “네가 할 일은 지극히 간단하다. 내게 한 번 엎드려 경배하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해결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아무도 없는 자리에서 한 번만 경배하면 된다” 는 것이다. 오늘 이런 불로소득, 일확천금의 망상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아무도 없는 자리에서 그것도 “단 한번만 무릎을 꿇어라. 그러면 그 대가로 상상을 초월하는 이득이 주어진다”는 사단의 유혹에 오늘 교회들이 얼마나 깊이 빠져있는가? 소돔 고모라 성이 망한 것은 군대의 힘이 없어서도 아니요, 경제적으로 어려 워서도 아니었다. 의인 열 명이 없어서였다.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지 금 우리 조국의 안녕을 위해서 찾으신 것은 의인 열 사람이다.
87 no image "졸업은 또 다른 시작" -윤석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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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52 2003-02-26
http://www.rpress.or.kr/files/poetry/321si.hwp"졸업은 또 다른 시작" 윤석희 목사(천성교회, 부총회장) 졸업시즌이다. 학교마다 졸업식이 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졸업식장에 밀가 루를 덮어씌우고, 까나리 액젓과 마요네즈, 계란과 간장, 심지어 식초와 케첩 까지 등장했다. 교복을 찢고, 바지와 셔츠를 찢는 일은 예사로운 일이 되어버 렸다. 장난치고는 너무 심하다. 아마도 철학적으로 포스트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아니면 전문가의 말 대로 가상세계와 현실계를 혼동해서 생긴 일인지는 모르지만 보는 이들의 입 맛이 씁쓸하다. 더군다나 좋은 일과 나쁜 일, 다른 사람을 의식하는 일과 의 식하지 않는 일, 선과 악의 구분점이 없어졌다는 생각까지 든다. 졸업은 졸업일 뿐이다. 모든 것의 끝이 아니다. 어떤 과정을 마친 것에 불과 하고, 또 다른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에 불과한 것이 졸업이기에, 자기 눈앞에 또 다른 출발점이 기다리고 있다는 점 을 생각해야 한다. 사려 깊은 사람이 될 때 무모하고 난폭에 가까운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사료된다. 신학교 졸업은 사회와 사뭇 다르다. 소명의식과 사명감에 불타는 하나님의 사 람들이 졸업과 함께 3년 혹은 7년 동안 연마한 실력을 가지고 목회 현장으로 달려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누구나 나름대 로 할 말이 있고, 주관이 있겠지만 돈벌이가 많은 곳으로 가는 형편이고 보 면 사명감과 소명 의식은 옛말처럼 느껴진다. '교회가 아니면 안 된다'는 신성한 생각이 구시대 사람들에겐 있었다. '밥먹 고 살 곳은 오직 교회뿐이라'고 생각했던 미련한 시대의 사람들도 있었다. 넓 은 의미에서 직업관이 일찍 목회쪽으로 굳어져 버린 시대도 있었다. 그것이 소명감인지, 사명감인지는 하나님만이 평가하실 일이지만 나는 그런 시대에 목사님들을 보았다. 그리고 그런 시대의 사람이다. 부름받은 것에 대한 자부심보다 자기 집과 교회의 거리를 따져보거나 다른 직 장과 교회의 대우를 비교해 보기도 한다. 더 나은 일자리를 제공하면 학원이 든, 과외든, 아니면 아내가 벌든 그것을 추구하기도 한다. 굉장히 실리적이 다. 그런데 문제는 교회의 짐을 덜어주는 것 같이 보이기도 하지만 한국교회 를 그런 사람들에게 맡길 수 있겠는가? 목회는 돈 좀 벌어 놓고 하거나 이 다음에 여유 있을 때 하는 것으로 생각하 는 모양이다. 심지어 '이것 저것 해보다가 다 안되면 목회하지 뭐?'라는 말 도 들어 보았다. 그것도 저것도 아니면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을 흉내라도 내 는 모양이다. 자기도 '수퍼 목사'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목사 중 99%는 수 퍼 목사가 아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그렇게 한가롭고 여유 있게 섬길 수 있 는 단체의 일이 아니다. 자기는 그렇게 섬길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지 모 르지만 하나님은 기뻐하시지 않으실 것이고 교회는 수용하지 않는다. 가난하게 살아도 좋다는 사람들이 신학교를 지원해야 한다. 많은 사람을 모으 지 못해도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졸업해야 한다. 신학교 지망생 들이 점점 줄어드는 일이 긍정적인 측면에서 서글픈 일만은 아니다. 참 사명 자와 소명자가 들어오면 되는 것이다. 올해도 신학교를 졸업하는 이들을 축하하면서 하고 싶은 말은 '항상 배우는 자세를 가지라'는 것이다 . 선배가 잘하는 것도 배우고, 못하는 실패의 원인 도 배우라. 졸업은 졸업으로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다. 정암은 '죽기까 지 공부하라'고 했다. 어디 책보는 것만 공부겠는가? 하나님과 인간, 세상과 교회를 열심히 공부하 라. 죽기까지 배우면 실패가 적을 것이다. 아니 승리만 있을 것이다. 졸업은 졸업이 아니라 또 다른 공부를 해야 하는 시작이기 때문이다.
86 no image '인간복제' 법으로 규제해야 한다-이선웅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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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6 2003-02-12
http://www.rpress.or.kr/files/poetry/320si.hwp '인간복제' 법으로 규제해야 한다 - 그대로 놔두면 인류 재앙 불러 - 이선웅 목사 복제인간 '이브' 출생 발표 지난 해 12월 27일 사상 첫 복제인간인 '이브'의 출산에 성공했다고 인간복 제 회사를 자처하는 미국의 '클로네이드'사가 발표한 바 있다. 1996년에 영국 에서 복제 양(羊) '돌리'를 만들어 낸 일이 있기는 하지만 복제인간이 만들어 졌다고 발표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클로네이드사 측은 복제아 출생을 발표하면서 어머니는 불임 남편을 둔 31세의 미국 여성이라고만 했을 뿐 출산 장소를 비롯하여 어머니의 고향, 모녀의 국내 주소 등을 아기와 가족 보호를 이유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유사종교 집단에서 주도 클로네이드사는 미국의 대표적 사이비 종교집단인 '라엘리언 무브먼트'의 산 하 회사로서 그 동안 인류는 외계인에 의해 복제된 존재이며, 인간복제는 인 류가 영생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주장해온 바 있다. 영국의 주간지 ' 뉴스 오브 더 월드'는 지난 달 30일 '라엘리언'은 미국의 유 사종교 집단으로서 그 동안 혼음과 동성간 성교 등을 조장해왔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와 같은 사이비 집단의 계열회사가 인간복제를 성공시켰다고 발표 한 사건은 그것의 진위 여부를 확인해야 되겠지만 인간복제가 가능성의 영역 에서 사실의 영역으로 접어들었다고 하는 것과 특히 사이비 종교집단이 생명 를 담보로 위험한 실험을 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심각한 우려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 피부세포에서 DNA 추출 난자와 융합 모든 인간은 정자와 난자의 수정에 의해 출생하도록 되어있다. 그러나 소위 인간복제에는 이러한 생육법이 완전 무시된다. 인간복제란 인체의 특정 부분 을 추출하여 말 그대로 인간을 복사해 내는 것을 말한다. 클로네이드사가 '이 브'를 만들어 내는데 사용한 복제 방법은 체세포 복제로 '돌리' 양(羊)을 복 제해 냈을 때 사용한 방법이다. 뼈나 살, 혈액 등 인체의 어느 부분을 이용하든 모두 가능하나 주로 귀의 피 부세포를 일부 떼어내 사용한다. 복제를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추출된 피부세 포에서 DNA가 담겨있는 핵을 따로 떼어 내야 한다. 그 후에도 여성의 난자를 채취해 핵을 제거한 후 복제하고자 하는 체세포 핵과 핵을 제거한 난자를 융 합시킨다. 합쳐진 세포는 복제인간을 키우게 될 대리모의 자궁 속에 심겨지 게 되며 9개월 동안 키우면 복제된 인간이 완성된다. 그런데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인 '배아복제'의 경우는 조금 사정이 다르 다. '배아복제'는 수정란이 만들어 졌으나 뼈나 간 등의 장기들이 형성되지 않은 14일 까지의 세포 덩어리를 말한다. 줄기세포를 얻기 위해 배아 단계에 서 복제하는 것을 배아복제라고 한다. 줄기세포란 아직 구체적 장기가 형성되 지는 않았지만 원하는 특정 부위의 장기로 키울 수 있는 특수한 세포를 말한 다. 배아복제(체세포 복제기술)는 잘 활용하면 난치병 치료와 예방 장기 이식 등 여러 분야에 선용될 수 있다. 그래서 이러한 생명공학이야 말로 21세기 산업 의 꽃이라고 까지 말할 정도이다. 인간복제는 범죄 행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제인간'은 남녀 중 하나의 성(性)만 존재해도 생식이 가능하다는 것과 체세포 복제를 통해 육체를 얻었다고 하더라도 영혼이 복제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하는데 더 큰 문제가 있다. 그렇게 되면 전통적 인간 개 념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남녀의 결혼과 가정 그리고 부모와 자식간의 관 계, 친척 관계를 파괴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도전이 되기 때문 에 커다란 범죄행위가 아닐 수 없다. 인간복제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인간애와 여러 가지 다른 이유들을 내걸지만 그러나 인간복제는 결국 인간이 창조주 노릇을 하겠다는 것과 조금 도 다르지 않다. 부패한 인간과 통제받지 못한 생명과학 기술은 또 다시 바벨 탑을 쌓음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키고 있을 뿐이다. 인간복제 금지 법제화 서둘러야 한다 교회는 생명윤리를 보장할 수 있는 규정이 들어 있는 생명 윤리법을 만들어 서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의 영역에 도전함으로 재앙을 불러오는 일이 없도록 하는데 힘을 모아야 한다. 지난해 9월 보건 복지부가 인간복제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내용을 담은 생명윤리 법안을 입법 예고한 바 있기는 하지만 그것마 저도 치료용 배아복제의 광범위한 허용을 요구하는 과학계의 반발에 부딪쳐 국회에 상정조차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생명윤리 기본법이 조속히 제정되 어 야 한다.
85 no image 미래의 과제에 대한 오늘의 열쇠-최종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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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53 2003-01-28
http://www.rpress.or.kr/files/poetry/319si.hwp 미래의 과제에 대한 오늘의 열쇠 최종규 목사/ 대구 경성교회 클리퍼드 스톨은 미래 문명의 허상을 지적하기를, 교육은 멀티미디어를 통해 이루어지므로 스승과 제자의 인간 관계는 시간과 비용 계산의 대상일 뿐이 며, 데이터베이스의 도서관은 종이에 인쇄된 그윽한 저자의 사상과 사색을 파 괴하고, 정보홍수로 민주 정치도 미아가 될 위험에 있으며, 가상의 다중화 사 회는 친구와의 대화를 사라지게 하며, 인터넷에 여과되지 않는 정보홍수는 오 히려 정보의 황무지 화를 낳을 것이라 했다. 파올리니 교수도 강대국 중심의 문화 식민지화는 문화제국주의에로 민족의 자 아정체성을 상실케 될 것이라 했다. 또 스티븐슨은 자본주의의 횡포는 빈부격 차가 심화되고, 획일화 문화는 단조로운 유니폼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예측했 다. 또한 미래사회의 큰 문제로는 정보절도, 정보파괴, 컴퓨터 중독, 비정상 적인 가정과 사회생활, 비인간화, 정보격차 등으로 문명의 대혼란이 초래되 고, 얼굴 없는 문명이 지배하게 될 것이며, 마침내 통제불능 상태가 도래할 것이다. 이러한 비관론과 더불어 미래학자들은, 사탄의 극성으로 종말화가 가속화되 어 현대인은 신앙성장이 한계를 맞게 되고, 인류는 기로(岐路)에 서게 될 것 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이상과 같은 암울한 미래의 그라운드에서 우리가 대비 해야 할 과제는 무엇일까? 1. 계시(啓示)의 다양성이 그 열쇠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어떻게 다스리시고, 교육시키셨는지를 살펴보면, 출애 굽 사건을 통해 하나님은 자신을 다양하게 계시하셨다. 모세가 호렙산에서 하 나님을 만나 '당신은 누구십니까?'라고 물었을 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 라"(출3:14)라고 대답하셨다. 하나님은 인간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논리적으 로 계시하지 않으셨다. 그 대신 출애굽 사건을 통하여 열 가지 재앙으로, 또 홍해를 갈라지게 하면서, 당신이 누구인지를 저들에게 알려 주셨다. 뿐만 아 니라, 광야에서 만나를 주시며, 반석에서 물이 나게 하시고, 시내산에서 저들 과 만나 율법을 주시면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 40년 생활동안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몸으로 체험했 다. 그러나 다양한 하나님의 계시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은 그 하나님 을 확실히 알지 못했다.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정복과 사사시대, 왕국 시대 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스리시는 분임을 자신들의 삶을 통해 생 동감 나게 익히 배웠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하나님의 말씀과 능력은 문자화되 고 경전화되면서 경직되고 형식화되고 말았다. 이스라엘의 경직되고 사장된 의식을 일깨우기 위하여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셔서 표적과 기사를 행하시고, 천국복음을 선포하시며, 영생의 길을 가르치신 예수님의 복음사역은 구약 계시의 성격들을 더욱 구체화 하셨고, 십 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심과 오순절의 성령의 역사는 계시의 다양성을 완성하셨다. 2. 신앙을 교리화, 의식화, 문자화할 때는 다양성의 퇴보에 주의해야 한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당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나 율법학자들에게는 전혀 생소한 것들이었고, 저들이 고수하여 온 율법주의와는 정면으로 대립되었다. 저들에게는 영성이 사라졌고, 영(靈)의 세계인 하나님의 나라를 문자화된 율 법 속에 고정 시킴으로서 그 나라의 역동성을 상실케 하고 말았다. 유대인들의 율법이 가르친 하나님의 나라를 파피루스에 기록된 문헌에 비유한 다면,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나님의 나라(복음)는 대화가 가능한 오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보이신 계시의 완전성은 글자 속에 갇혀 있던 하나님의 나라를 생생하게 인간의 삶의 현장으로 이끌어내고 있다. 기독교 역사를 회고해 보면, 교회발전에 큰 위기가 도래할 때 신앙을 교리 화, 문자화하던 때가 있었다. 니케아 신조, 콘스탄틴노플 신조 등이 만들어 질 때에는 동(東)-서방(西方)교회가 갈라졌고, 종교개혁시대가 도래하면서 종 교의식의 개혁에 대한 찬반(贊反)으로 신교와 구교(카톨릭)가 갈라졌고, 신교 는 성경해석과 교리 논쟁과 지도자에 따라서 여러 갈래의 교파로 나뉘게되었 다. 그러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문자화, 교리화는 4세기가 지나도록 아직도 우리의 귀감이 되고 있다. 이 사실은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귀중한 귀 감이 되고 있다. 우리 교단에서도 최근 헌법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차제에 노회나 총 회에서 수고하는 분들은 좀더 넓고 큰마음으로, 자신의 의지나 결단을 앞세우 기보다는 객관적인 심정으로, 또한 말없이 목회 현장에서 주님 앞에 삶을 바 쳐 충성하고 있는 동역자들의 노고를 함께 담을 수 있는 자세를 가지고 진정 한 계시의 다양성에 부합한 태도로 법(法)들을 다루어 주기를 바란다. 계시의 다양성에 충실한 선택만이 미래가 보장된 복된 길이다.
84 no image 포기하지 않는자가 받는 복-박진우 사장
rpress
3330 2003-01-16
http://www.rpress.or.kr/files/poetry/318si.hwp 포기하지 않는자가 받는 복 박진우 사장/ 본사 사장 2003년 새해 새시대의 문이 열렸습니다. 이 시대는 핵문제와 복제인간 그리고 발전되는 컴퓨터와 인터넷 등으로 우 리의 삶은 더욱 변화되고 정치, 경제, 사회의 각 분야에 걸쳐 그 변화는 더 욱 가속화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 변화의 시대에 우리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 하나님은 성경말씀을 통해 거듭 경고하고 촉구하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포도원의 일꾼과 품삯의 비유(마 20:1-16)에서 교훈을 봅니다. "천 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주인은 품꾼과 한 데나리온 씩 약속하고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낮 12시, 오후 3시와 5시에도 품꾼을 들여 보냅니다. 날이 저물어 품삯을 줄 때 나중 온 자가 한 데나리온씩 받는 것을 본 먼저 온 자들이 더 받을 줄 알았다가 같이 받자 주인을 원망했습니다. 주 인은 약속대로 주지 않았느냐 이것이 내 뜻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 의 하루는 저녁 6시부터 다음날 6시까지입니다. 그러므로 저녁 5시 에 품꾼으로 고용되면 일할 시간은 6시까지 한시간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주 인은 왜 아침부터 수고한 자에게 먼저 품삯을 주지 않고 나중 온 자부터 먼 저 온 자와 같은 삯을 주었을까요. 이것을 얼른 보면 불공평하게 보입니다. 당시의 포도원 품꾼은 최하층 노동자인데 아침 일찍 포도원에 들어간 품꾼들 은 먹는 문제를 비롯한 하루의 문제를 해결했다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을 것입 니다. 그러나 고용주로부터 부름을 받지 못한 일꾼들은 시간이 지나감에 따 라 초조한 마음이 더했을 것입니다. 낮이 기울고 해가 넘어갈 때의 절망감은 말로 할 수 없을 것이고, 필사적인 심정으로 종일 서서 기다리던 이들의 심정 은 생각만 해도 처절한 데가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은 과거와 달리 넉넉하고 편리하고 살기 좋은 세상이 됐지 만, 젊은이를 포함한 이 시대의 우리들은 시련을 이겨나가는 인내심은 부족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무슨 일에든지 즉시 응답이 없으면 일찍부터 포기하 고 돌아선 예를 우리 주변에서 많이 보아왔습니다. 이 품꾼도 오늘은 틀렸다 하고 돌아갔 으면 기회는 영영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마침내 일할 시간 한시간을 남겨두고 포도원 주인이 나타나 '너희도 포도원 에 들어가라' 라는 말을 듣게 됐습니다. 이 말을 들은 사람은 감사와 안도의 눈물이 쏟아져 내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불러준 주인 앞에 감사와 겸손한 마 음으로 순종하며 한시간 밖에 남지 않은 일할 시간에 죽으라고 일했을 것입니 다. 그러나 먼저 온 자들은 자기들이 나중 온 자보다 삯을 많이 받는다 생각 하고 고참의 오만한 눈으로 나중 온 자들을 보았을 것입니다. 주님은 먼저 들어왔다고 교만한 마음으로 남 잘되는 것, 곧 나중 와서 한 달란트 받은 일꾼을 시기하고 약속된 품삯보다 더 받기를 바라는 자를 뒤에 세우고 오직 주님 의지하며 절망적 상황에서도 끝까지 낙심하지 않고 기다리 다가 부름을 받은 후 눈물로 감사하며 겸손, 순종으로 열심히 일한 사람을 앞 세워 먼저 되게 하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베데스다 못가의 병자들(요 5:1-17)중에 38년 된 병자를 주님은 말씀으로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이 38년된 병자는 병 고치 기 위해 백방의 노력도 다했을 것이고 최후로 불편한 몸을 이끌고 베데스다 못에 와서 물이 동할 때 못에 넣어줄 사람을 기다렸습니다. 38년의 이 절대 적 절망 상황에도 낙심하지 않고 그 기나긴 세월을 주님 오셔서 은혜 받기를 결코 포기하지 않고 기다렸을 때 그에게 예수님은 찾아주셨습니다. 병 고침 을 받은 후 그는 용감하게 유대인에게 가서 자기를 고치신 분은 예수님이라 고 증거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입니까. 새해에 우리의 앞길이 순탄하기를 바라지만, 혹 어려움이 올 때라도 할 수 없는 처지를 오히려 좋은 기회로 삼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그 역사를 기다리 고 마침내 성취하는 아름다운 한해가 되기 바라는 마음 간절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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