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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no image 개혁주의 교회 건설을 위한 두 가지 제안-최덕수 목사
rpress
3457 2002-02-27
http://www.rpress.or.kr/files/poetry/297si.hwp개혁주의 교회 건설을 위한 두 가지 제안 현산교회 최 덕 수 목사 2000년 정암 신학강좌 때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때 미국 신학교에서 가르 치다 국내에 들어오신 모 신학교 총장 목사님이 '한국장로교회는 순복음 장로 교회다'라고 말했던 적이 기억난다. 당시 이러한 지적에 필자는 동의하지 않 을 수 없었다. 과거에는 '장로교회' 하면 장로교 나름대로의 분명한 색깔이 있었다. 그러나 실용주의, 인본주의 사상이 교회 안에 점점 침투해 들어와 이 제는 예배형식이나 목회 프로그램만을 보아서는 이 교회가 어느 교파에 속해 있는 교회인지를 도무지 구분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안타까운 일은 명색이 개혁주의 신학을 표방하는 우리 교단 교회도 이런 일에서 예외가 아니라는 사 실이다. 물론 해 아래 새 것은 없다. 아무리 개혁하려 해도 온전한 개혁교회의 모습 을 갖출 수는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개혁주의 교회의 이상과 실제와의 갭을 줄이는 일은 결코 포기할 수는 없다. 왜 냐하면 합신교단이 존재하는 이 유가 바로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이에 필자는 이상적인 개혁주의 교회 건설 을 위한 두 가지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세례와 성찬을 바로 시행해야 한다. 이 이야기는 새삼스런 이야기가 아 니다. 칼빈이 말한 교회의 표지 중 하나가 '성례의 올바른 시행'이란 것 정도 는 목회자라면 다 알고 있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세례와 성찬을 올바로 시행 하고 있는가? 일반적으로 한국교회는 봄, 가을, 두 차례에 걸쳐 세례식을 시행한다. 세례 를 주어 세례교인이 되게 하는 일은 한 사람을 영광스런 교회의 회원으로 받 아들이는 매우 중대한 일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교회들은 다른 양육훈련(전도 훈련, 제자훈련)에는 열심을 보이면서도, 세례 교육에는 별로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화란개혁교회가 유아세례 교인이 입교하기까지 수 년 동안 매주일 세례교육 을 실시하는데 비해, 한국교회는 보통 한 두 달로 끝내 버린다. 이는 카톨릭 교회의 영세 교육기간인 6개월에도 훨씬 못 미치는 짧은 기간이다. 이제 한 국 교회는 세례교인으로서 반드시 알아야 할 신앙지식을 구비하게 하 는 일에 충분한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아울러 세례 문답도 엄격하게 시행해야 한다. 세례 문답은 세례 받을 자가 반 드시 알아야 할 구원의 도리를 제대로 알고 있는지, 그리고 분명한 신앙고백 을 하는지를 테스트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이 과정이 대개 통과의례 혹은 붙 여주기(?) 식의 문답이 되기 때문에, 성도들이 세례 문답에서 떨어지는 경우 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세례가 제대로 시행되지 않으면 비회심자가 교회 회 원이 되고 또 직분자도 되기 때문에, 교회가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서의 역할 을 감당하는 일은 힘들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개혁교회는 무엇보다 세례를 올 바로 시행해야 한다. 성찬도 마찬가지다. 성경은 세례교인(입교인)이라고 해서 무조건 성찬에 참여 할 수 없다고 말한다(고전 11:27-28). 오늘날에는 성찬의 참여 여부를 신자 들 스스로 판단한다. 그러나 과거 개혁주의 교회들은 성찬을 앞두고 심방을 실시해서 성찬에 대해 무지하며 믿음도 없이 성찬에 참여하려 하는 자들을 성 찬에서 제외시키는 선별적 성찬참여제도를 실시하였다. 이는 교회의 순수성 을 확보하기 위한 권징의 차원에서 시행된 제도로 써, 오늘날 개혁주의 교회들 도 수용해 볼만한 제도이다. 두 번째로 개혁주의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는 신앙고백서들을 사용해야 한다. 어떤 분들은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신앙고백서, 대소요리문답, 예배모범 등) 나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은 과거 종교개혁의 소산물이었지 오늘의 상황에는 맞지 않다고 하면서, 성도를 세워 나가는 일에 있어 요리문답 사용에 회의적 인 반응을 보인다. 이는 기독교 문화적 자살 행위다. 이 시대에 종교개혁 당 시 만들어진 신앙고백서들보다 더 좋은 신앙고백서들이 있는가? 종교개혁 당시 선진들의 피로써 쓰여진 신앙고백서들은 교인을 성숙한 그리스 도인으로 세우는 훌륭한 도구였다. 한국교회는 이제 더 이상 요리문답서들을 박물관에 놓아두어서는 안된다. 요리문답을 가르치는 일은 이 시대의 성도들 을 견고한 신앙의 사람으로 세우는 일이 됨과 동시에 과거 신앙의 전통을 후 손들에게 넘겨주는 책임 있는 일이 될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노력들이 이 시대정신에 대한 저항 행위가 됨과 동시에 하나님 의 교회를 올바로 세워나가는 건설 행위가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62 no image 창조적 개혁모델 만들자-최충산 목사
rpress
2584 2002-02-06
http://www.rpress.or.kr/files/poetry/296si.hwp창조적 개혁모델 만들자 최 충산 목사(한주교회) 2002년의 첫달을 보냈다. 2002년대에 본격적으로 진입했다. 우리 교단이 합 신 중심으로 한국교회에 얼굴을 내민 지 이십 년이 되었다. 몇 가지 점에서 개혁 노선에 본격적인 논의로 우리의 갈 길을 가다듬어야 한다고 본다. 첫째, 교단 지도력의 중심이 차세대로 옮겨가고 있기 때문이다. 제86회 총회 는 처음으로 합신 출신으로 총회장을 선출했다. 본격적으로 정치적 중심이 다 음 세대로 옮겨가고 있는 증표다. 총회 총대의 구성을 보아도 합신 출신이 사 분의 삼이 넘는다. 이제 차세대 출신 지도자들은 이제까지 진행해온 개혁이 과연 무엇이며, 미래지향적인 현실적 대안은 무엇인가를 설득력 있게 제시할 때가 되었다. 어떤 정신으로 교회를 향도할 것인지 구체적인 논의를 통하여 노선을 가다듬어야 한다. 둘째, 장신 교단과의 연합으로 신학적인 통일을 확인할 필요가 생겼다. 장신 교단과의 연합은 우리 교단이 그동안 고고하게 걸어 온 신선한 이미지가 창출 한 승리의 역사이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형제를 기쁨으로 맞았으니, 같이 기 쁘게 걸어가야 할 바른 신학의 길이 무엇인가를 활발한 논의를 통하여 뜨겁 게 확인함으로서 진정한 신학적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 셋째, 온갖 잡다한 신학과 목회 방법의 범람으로 혼란을 겪고 있기 때문이 다. 그간 우리 교단 산하 교회는 검증되지 않은 잡다한 목회방법과 프로그램 을 분별 없이 적용하는 일 때문에 고통을 많이 당했다. 교회를 향도하는 기초 적인 신학이 얼마나 허약한가를 그대로 노출시킨 과정이었다. 이제 우리는 바 른 신학에서 나오는 목회철학이 무엇인가를 깊게 논의하고, 교회를 섬기는 기 본적인 자세를 가다듬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 개혁 철학의 정립을 위한 정기적인 토론 회를 열어야 한다. 그간 교단적 차원에서 개혁 철학의 정립과 현 단계 개혁운 동의 진단과 활성화를 위한 토론회는 열리지 않았다. 우리 교단은 개혁운동 의 구심체로서 그간 걸어 온 걸음을 반성하고 현재의 상황과 문제점을 정확하 게 진단하고 평가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이러한 토론회로 개혁운동을 확산하 고 운동 구심체를 형성 해야 한다. 둘째로, 개혁운동의 결과로 나타난 현상에 대한 진단과 비판을 통하여 개혁 모델을 제시하여야 한다. 우리의 교단은 한국교회 개혁을 위하여 부름을 받았 다. 한국교회 현실에서 우리의 존재이유는 개혁에 있고, 우리의 생명은 개혁 의 신선도를 유지하는데 있다. 따라서 끊임없는 자기 비판이 있어야 한다. 우 리의 신학은 끊임없이 우리의 교회를 비판적으로 조명하는데 있다. 우리 총회 는 산하 교회의 현실과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수와 양으 로만 교회를 파악할 게 아니라, 신학적 성향을 분석하고 그 질적인 내면을 분 석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모든 치리회의 지도력은 바른 신학으로 무장된 개혁적인 인물이 등용되 어야 한다. 우리 교단이 개혁을 위해 존재하는 만큼 바른 신학으로 무장하고 있는 인물을 통하여 치리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당회도 그래야 하고 노회 도 그래야 하고, 총회도 마땅히 그래야 한다.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 신학과 사상과 삶이 바르지 않으면 지도력을 발휘할 수 없다. 개혁신학에 확신과 실 천이 없는 인물이 개혁을 지향하는 교회와 노회와 총회에서 핵심적 역할을 담 당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목회적 성과가 어떠하든지 간에 그 생각과 지향 하는 바가 바른 인물을 통하여 운동을 해 나갈 때 교회는 내면적 단합을 이 룰 수 있다. 이제 우리는 다시금 한국교회의 희망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 은 개혁신학의 근본에서 필연적으로 나오는 목회 철학을 기쁘게 확인하는 일 이며, 우리 모두가 진정한 개혁자가 되어 철저한 자기 반성과 함께 연계하는 일이다. 새로운 시대의 도전은 개혁신학이 얼마나 교회의 진로를 창조적으로 열어 줄 것인가를 기쁘게 확인하는 일로 이겨나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총회 는 이 시대에 이것을 보여주어야 할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새로운 시대에 개혁 노선을 가다듬자.
61 no image 후회-한양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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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18 2002-01-23
http://www.rpress.or.kr/files/poetry/295si.hwp후회 한양훈 목사 "선을 행하는 일에 낙심하지 말아야" 모든 일이 원만하게 진행되거나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둘 때는 자축도 하고 호사를 누리기도 한다. 하지만 영적이거나 주의 깊은 사람이라면 거기에 만족 하지 않고 평온할 때나, 혹은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갈 때는 주저 없이 모든 과정을 면밀히 점검해볼 것이다. 그런 혜안을 가진 사람이라면 아마도 대부분의 개인이나 가정, 교회 그리고 나라 사정에서 그것이 영적이든 도덕적이든 혹 경제적이든 우려할만한 수준 에 도달한 것을 감지 할 것이다. 만일 문제된 부분의 원인을 간파하여 속히 대처한다면 실패를 막고 뒤늦게 후회하며 법석을 떨지 않아도 될 것이다. 후회에는, 개인적 차이가 있겠으나 대부분 그 내용에는 공통점이 있다. 왜 학창시절에 좀 더 학문에 전념하여 실력을 쌓지 못하였을까. 내가 왜 이 사람 과 결혼하였을까. 내가 왜 이 사업에 섣불리 투자하였을까, 내가 선출한 지도 자가 실망스러워 왜 내가 그를 선택했을까 후회한다. 목회자는 교회를 섬기면서 왜 좀 더 성실하게 목회하지 못하였나, 연약한 성 도에게는 실망하거나 꾸짖지 말고 좀 더 인내하며 너그러운 마음으로 대할 수 는 없었을까, 동역자와의 관계에 이르러서는 자신의 무례를 떠올리고 이로 인 해 선후배나 동료의 관계가 깨어진 것은 아닌가, 두고두고 속앓이를 하는 것 이다. 성도들로서는 왜 목회자와 협력하여 교회를 받들어 나가지 못했을까, 성도간에 왜 화목하지 못했을까 뉘우친다. 제 86회 총회의 총대들은 헌법수정 수의건의 집계가 잘못되어 총회장이 지면 에 사과까지 한 것을 보며, 왜 다른 때는 발언도 잘하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정작 헌법수의라는 중대사에서는 좀 더 꼼꼼하게 살피지 못했을까, 나는 총대 로서 직무유기를 한 것은 아닌가 수도 없이 자책하였을 것이다. 이렇게 후회하는 것을 이해한다손 치더라도 애석하게도 모든 잘못들은 없었 던 일로 묻혀지지 않는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실책은 자신에게 큰 상처 로 남고, 그 동안 쌓아온 소중한 것이 무너지기도 하며 주변을 궁지에 몰아 넣기도 한다. 아무리 후회해도 원상회복은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는 모든 일을 급 하게만 서둘지 말고 결정하기 전에 신중 또 신중하고 지혜롭 게 행하여 고난을 자초하는 무리수나 오점을 남기지 않는 견실한 삶을 살아 야 한다. 만일 후회할 일이 있었다면 다시는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 할 것이 다. 한편, 우리 공동체는 공연히 후회하는 어리석음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는 지난 20여년 전 정들었던 총신대학을 떠나 합동신학교에 몸을 담았 다. 그리고 개혁적 합신 교단을 구성하여 바른 신학을 가슴에 품고 바른 교회 와 바른 생활을 향해 매진해 왔다. 현재 우리의 모습에서 누가 부끄러움을 느 끼는가. 또한 합신인은 목회자의 길을 가면서 결코 후회해서는 안 된다. 척박한 목 회 환경 속에서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며, 심적인 고통과 회 의, 가족에 대한 미안한 마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역은 천사도 흠모 하는 영혼을 구원하는 복된 사역이다. 영적인 것은 세상적인 것의 판단을 받 지 아니 한다. 쟁기를 들고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 된다. 뿐만 아니라, 교단과 신학교 등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분도 결코 이 일에 후회를 해서는 안 된다. 대부분 자기 실속을 챙기고 개 교 회 중심적인 요즘 시간과 물질을 드리며 개 교회의 사역이 희생되는 것을 감수하면서 헌신하는 것이 혹시 어리석은 짓은 아닌가 하며 회의에 빠질 수 있을 것이다. 분명히 말하건 데 이것은 격려와 칭송을 받을 일이지 눈총과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특별히 불의와 부정과 부조리, 여러 이단에 대항하여 싸우는 분들은 결코 위 축되거나 이 사역에 후회가 없기를 바라는 것이다. 진리를 위해 산다 하면서 도 어려운 일에는 몸을 도사리고 나 몰라라 방관하고 중용을 취한다는 미명아 래 보신주의에 빠져 공동체를 우울하게 하는 주변을 보며 혹시라도 선을 행하 다가 낙심하지 않을까 염려된다. 이 시대에는 깨어있는 바른 지도자가 절실 히 요구되는 것이다. 나의 사려 깊은 언행은 자신과 이웃을 복되게 하지만 분별 없는 행동은 모두 를 곤경에 빠뜨리는 것이다. 후회 없는 한해가 되기를 소원한다.
60 no image 개혁의 본을 보이자-김상도 목사
rpress
2787 2002-01-09
http://www.rpress.or.kr/files/poetry/294si.hwp 개혁의 본을 보이자 김상도 목사 / 평화교회 원로목사 우리 합동신학교가 설립되고 우리 교단이 세워진 지 어언 20여년이 되었다. 실로 감계무량한 것이 있다. 장로교합동총회가 주류비주류의 분쟁으로 교파 가 분열될 때 이 분열을 막고 다시 하나의 총회로 합동할 것을 위하여 노력하 고 있을 때 총신대의 교수들(박윤선 신복윤 김명혁 윤영탁 박형용)이 총신대 에서는 바른 신학교육이 불가능한 것을 알고, 나와서 남서울교회에서 새로이 신학교를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되어 합동신학교가 시작되었고 마침내 우리 교단이 설립된 것이다. 빈손들고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며 오직 말씀만을 붙 들고 시작한 것이 아닌가! 지난 20년의 세월은 실로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그 말씀은 영원불변하신 진리인 것을 우리 눈에 보여주시고 우리 마음에 세겨주 신 것이 아닌가! 얼마나 많은 이적적인 사역들이 이루어졌는가! 이제 새천년 21세기에 살게 되었다. 그동안 우리 자신들이 얼마나 하나님 말 씀대로 살았는지 또한 한국교회 앞에서 개혁의 본이 되었는지 우리 자신들을 반성해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손이 잘못하였으면 그 손을 잘라내어야 할 것이다. 우리의 눈이 잘못하였으면 그 눈을 빼버려야 할 것이다. 통회자복하 여 주님의 용서와 성령의 충만을 받아 새천년 21세기에도 우리의 나아갈 길 을 바로 잡아가야 할 것이다. 진리 앞에 선 자세로 우리 총회가 세워질 때 결의하고선포한 제1회 대한예수교장로회(합신) 선언문 에서는 아래와 같이 말하고 있다. “… 이와 같은 현재의 상황속에서는 교단 의 개혁과 화합이 절망적임을 알고 우리는 장로교의 정치원리인 양심의 자유 와 교회의 자유를 따라 …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의 신앙과 신학적 전통을 계 승하면서 총회를 소집할 것을 합의하였다. 우리 총회는 바른신학 바른교회 바 른생활을 이념으로 하여 참신한 개혁주의적 신앙운동을 펴나가기로 하고 …” 그런데 오늘날 한국교회의 상황은 어떠한가. 20여년전보다 나아진 것이 있는 가. 여전히 속화타락된 모습 그대로가 아닌가. 모든 부패의 사건들에 교인들 이 안끼인 곳이 없다. 실로 한국사회에서 교회와 교인은 얼굴을 들 수 없게 되었다. 한국교회는 철저한 개혁을 실천하지 아니하면 안된다. 따라서 우리 교단과 우리 교인들은 우리 교단이 세워질 때의 그 결심을 더욱 더 새롭게 더욱더 강하게 다짐해야 할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생각이나 결심 이 약해지기 쉽다. 그러므로 총회나 노회시에는 개회 때에 우리 총회설립의 선언문을 낭독하여 우리 마음을 깨우쳐야 할 것이다. 신학교도 개학때나 기 타 적절한 때에 선언문을 낭독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왜 우리 교단설립의 이념을 이렇게 강조하는가? 국가적으로는 지식과 기술, 수출이 많은 산업을 무엇보다도 강조하고 있다. 교계에서도 교회갱신, 일치 와 화합, 구제와 사랑의 실천을 강조하고 있다. 다 필요하고 시급한 것들이 다. 그러나 이것을 이루어내는 것은 사람이다. 국민이고 교인이다. 그러나 바 로된 사람이라야 되는 것이다. 예수를 바로 믿고 중생한 교인이라야 바른교 회 바른총회가 세워지기 때문이다. 개혁 주체는 성도들 우리는 무엇보다도 우리 교단의 이 설립이념을 “남의 잘못을 지적하기에 앞 서 먼저 우리 자신의 개혁을 다짐하고” 자나깨나 생각하고 실천하기에 총력 을 다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이 이념 을 어디까지든지 실천해 나가기 위해서는 신앙과 인내를 견지 해야 된다. 요한계시록 14:12에는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 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하셨다. 기독교의 인내는 우리 말의 인내의 뜻보다는 아주 깊은 뜻이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교훈을 따라 인 내하되 선으로 악을 이기는 인내이다. 폭력을 폭력으로 대항하지 않는다. 오 른뺨을 때리면 왼쪽뺨을 대주는 인내다. 때로는 손해를 보고 수고를 하고 어 려움을 당하기도 해도 인내하는 것이다. 심지어는 생명을 희생하기까지 하면 서도 인내하는 인내인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인내를 가지고 우리의 이 설립 이념을 기어코 성취하여 우리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가야 할 것이다.
59 no image 교회가 평화의 대로를 열어야 한다-강경민 목사
rpress
3207 2001-12-19
http://www.rpress.or.kr/files/poetry/293si.hwp교회가 평화의 대로를 열어야 한다 강경민 목사/ 일산은혜교회 남북문제가 정치적, 군사적 파도를 탈 때마다 북한을 위한 성도의 관심과 헌 신도 파도를 탄다. 이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왜냐하면 교회의 대북 지 원 논리는 세상의 그것과는 달라야하기 때문이다. 분단 50년이 지났는데도 통 일의 길은 요원하다.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단된 지 210년이 지난 후 북 이 스라엘은 앗수르에 망했고 그 후 136년이 지나서 남 유다는 바벨론에게 망했 다. 한반도의 분단 상황도 그렇게 오래 갈 것인가? 남북한의 운명은 주변강국 들에 의해 어떤 영향을 받을 것인가? 아무도 우리의 역사적 미래를 단정지을 수 없다. 예컨대 사람들이 흔히 말하 고 있는 평화 통일이냐, 무력 통일이냐, 흡수 통일이냐 이런 세 가지 갈래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북한이 중국에 합병될 가능성은 전혀 없는 것인가를 깊이 생각해야한다. 남과 북은 국제법상 완전 독립국이요, 현재의 국민 정서나 국 가적 관계로 보아 남한 정부 보다 중국과의 친 화성이 더 깊기 때문이다. 그러 나 해답은 있고 바른길은 준비되어 있다. 남과 북이 평화의 대로를 향해 함 께 가다가 서로를 얼싸안고 평화 통일을 이루는 것이다. 남북간의 평화의 대로를 누가 열 것인가? 평화 통일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햇볕정책이 아니다. 더 근본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미움과 증오의 옷 을 벗어버리는 일이다. 누가? 이 대사를 행할 것인가! 누가 에스겔처럼 하나 님의 말씀을 대언할 것인가? 한국교회에 이 사명을 주시지 않았는가? 교회가 평화의 대로를 열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교회에서 그 촛대(사명)를 옮길 것 이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백성들의 입을 다물게 하려 는 사단의 속임수를 주께서 어떻게 봉쇄하셨는가? “저들이 찬양치 않으면 돌 들이 찬양하리라.” 그렇다. 교회가 평화의 대로를 열지 않으면 하나님은 그 사명을 다른 곳에 주실 것이다. 운동권이든, 불교이든, 특별한 정당이든, 하 나님은 사용하신다. 모든 진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오고 모든 역사적 선은 하나 님의 것이다. 교회만 진리를 행한다는 것은 독선이다. 세상의 입장에서 독선 이 아니라, 신 학적 입장에서 독선이다. 칼빈이 지적한 일반은총의 영역을 생각해 보라. 하나님은 교회가 아닌 다른 사람을 통해 당신의 일을 하실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고레스르 향해 '나의 기름 부음 받은 자'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한국교회는 지금 너무 나태함 에 빠져있다. 정치가들이, 세상 사람들이, 국제 정세가……. 어떻게 변하든지 우리는 흔들림 없이 사랑의 나눔을 계속해야 한다. 민간 주 도의 통일운동을 압도적으로 전개해 나가야 한다. 사람들이 말고 입술로 통일 을 논할 때 우리는 행함과 진실함으로 통일의 대로를 열어가야 한다. 통일의 그날까지……. 통일 후유증이 치유될 때까지 생명줄 헌금은 계속 되어야 한 다. 이제 한국 교회는 북한동포들을 위해 ‘생명줄 헌금’을 따로 드려야 한다. 2,200만 동포들 특별히 노약자들의 생명의 불꽃이 꺼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영양 결핍의 문제가 아니다. 생명의 문제이다. 2,200만 동포들의 생명 이 위협을 받고 있는데 그것을 외면한 교회를 하나님께서 용납하시겠는가? 교회가 통일 정책을 수립하라는 것이 아니다. 통일 정책은 정책당국자들의 몫 이다. 물론 바른 정책(화해정책)을 세우도록 정부를 설득하고 때로는 감시해 야 하지만 교회는 정책 당국자가 아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끊임없는 평화 의 선포이고, 저들의 눈물과 고통에 성육신적 헌신을 하는 것이다. 교만해서는 안 된다. 성의가 부족해서도 안 된다. 최선을 다해 하나님께 드려 야한다. 진실을 다하면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이번 성탄헌금으 로 북한동포들의 고통을 덜어주자. 나아가서 생명줄 헌금(통일헌금)을 선교헌 금처럼 매월 따로 정해서 드리도록 하자. 통일의 그 날이 올 때까지…….
58 no image 책임지는 공동체가 아름답다-나종천목사
rpress
2438 2001-12-05
http://www.rpress.or.kr/files/poetry/292si.hwp책임지는 공동체가 아름답다 나종천 목사 지난 제85회 총회시 가결되었던 전국 노회에 수의한 헌법(정치) 수정안이 잘못된 집계 실수로 인해 부결을 가결로 선포된 사건에 대해서 총회장의 사과 의 글은 우리의 연약함이나 부끄러움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들어내어 사 과한 용기는 개혁을 향한 아름다운 헌신의 몸부림이라 할 수 있다. 추사의 글에 이런 것이 있다. '소창다명 사아구좌'(小窓多明 使我久座). 조 그만 창이 밝아 나로 하여금 그 앞에 오래 앉아있게 한다는 말이다.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질줄 알아 마음을 비운 이번 총회장 이하 총회 임원들의 결단을 추사의 '소창다명 사아구좌'(小窓多明 使我久座)라는 말로 격려하고 싶다. 록키히(Roakeach)라는 학자의 조사에 따르면 오래 전에 암살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죽음에 대해 교회에 다니는 사람보다는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 이 훨씬 더 깊은 동정과 애도를 보여 주었다는 것이다. 곧 크리스챤이 크리스 챤이 아닌 사람 보다 더 차갑고, 더 무관심하고, 더 인색하다는 조사 결과는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그러나 싫지만 그와 같은 결과를 우리는 지금도 인정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교단이 이런 일을 더 이상 보지 않기 위해서도 이 번 총회의 용기 있는 결단과 같은 새로운 운동이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 그 새로운 운동은 맡은 일에 성심껏 일하며 책임을 질 줄 아는 자로 설 때 에 더 이상 차갑거나 무관심하거나 인색하지 않는 세상을 주도해 가는 교회 와 교단이 되리라 믿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거짓 나를 먼저 볼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거짓 나 를 버리기 위해서는 늘 빈 마음을 가지고 맡은 일에 성실한 자세가 필요하 다. 거짓 나는 어리석다. 거짓 나는 반듯이 어떤 것을 채우려고 한다. 거짓 나는 이미 현실화된 것을 만족하지 않는다. 30평에 사는 사람은 40평을, 40평 에 사는 사람은 60평을 갈망한다. 이사 가는 날 그렇게도 넓어 보이던 집이 한 달도 못 가 그렇게도 좁아 보이기 시작한다. 결국 서울 시장으로 취임했다 가 며칠이 못되어 물러간 어느 사람처럼, 농지를 불법으로라도 변경 시켜 자 기 집 정원으로 꾸미고 싶어한다. 그 러다가 자동차로 정원을 한참 들어가다 본체가 보이는 대저택을 소유하는 엉뚱한 꿈을 꾸기 시작한다. 혹 교단과 교회의 지도자들 중에서 그런 엉뚱한 꿈을 꾸고 있지는 않는지 깊 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이제 멈추어야 한다. 물러서야 한다. 소유욕이 지속되는 한 모든 기쁨은 유보된다. 기뻐할 시간이 없다. 찬 양할 시간이 없다. '보다 많이, 보다 오래'에 집착하는 사람의 마음속에 무 슨 감격과 감사가 자리 잡겠는가. 물러선다는 것이 무능력한 느낌을 준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미 거짓 욕심에 사로잡힌 사람일 것이다. 물러서는 것이 아름답다. 멈추는 것이 아름답다. 한계 안에서 머문다는 것이 중요하다. 물러 서서 더 이상 갈망하지 않는다면 내가 나다워질 것이다. 그때 비로소 평안을 맛볼 것이다. 거짓 나의 욕심을 부채질하는 것이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 거 짓 나의 욕심을 가라앉히고 보다 고귀한 것에로 우리의 눈을 향하게 하는 것 이 성령의 역사이다. 흔히 '마음을 곱게 먹어라'는 말이 있다. 마음을 곱게 먹으면, 아무리 미 운 사람도 고운 사람으로 감각된다. 고운 사람과 미운 사람이 원래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과 마음이 문제라는 것이다. 상대방의 실수에 대해 "내가 너를 용서해 주겠다"는 말도 기실은 내 시선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용서란, 나는 전적으로 옳고 상대가 전적으로 그르다는 판정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인간사는 다 상대적이어서 엄격히 말하 자면 그런 종류의 판정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먹기에 따라서 상대방 의 실수보다 내 실수가 더 크게 감각될 수도 있다. 마음 한번 달리 먹으면 내 가 용서해 주기보다는, 오히려 내게 대한 상대방의 용서를 먼저 구해야 할지 모른다. 이번 총회 헌법 수정안의 사건을 가지고 총회장과 임원들이 보여준 그 용기 가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인식 전환의 개기가 되어 책임을 전가하는 공동체 가 아니라 책임을 질 줄 아는 그리고 물러서기를 기쁨으로 아는 기회가 되었 으면 한다. 사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생의 규칙인 형태를 생각해 볼 때마다, 애초 가져온 것이 없는데 잃은 것은 또 무엇인가? 마음 한번 달 리 먹으면, 삶의 한 순간 한 순간이 뜨거운 감격의 연속이 아니겠는가?
57 no image 바른 예배 위해 개혁교회는 시편송 사용해야-김 영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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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74 2001-11-22
http://www.rpress.or.kr/files/poetry/Worship2.hwp바른 예배 위해 개혁교회는 시편송 사용해야 김 영규 목사(남포교회 협동목사) 1662년 8월 24일 챨스 2세의 교회 통일령에 동의하지 않는 2,257명에 달하는 목사들이 영국에서 면직되었다. 이 통일령에는 목사의 재 임직을 요구하고, 전통적으로 해왔던 '엄숙한 언약과 맹세'를 거부하는 조항들도 있었지만 영 국 국교회에서 요구하는 의식법을 따라야 한다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조항들에 대한 서명의 거절로 인하여 그들은 설교할 수 없게 되었다. 뿐 만 아니라 1662년까지 제 8판을 발행했으며 웨스트민스터 총회에 의해서 공인 된 그 유명한 존 왈리스(John Wallis)의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해설서를 가지고 더 이상 아이들을 가르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더 심각한 것은 그들의 침묵으로 인하여 교회가 더 이상 공예배에서 퓨리탄들의 상징인 시편송을 부를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후 1688년까 지 18,000여명의 개혁 장로교인들이 사형을 당하거나 유배되었을 때, 그들이 죽기 전 까지 시편송을 불렀던 그 저항과 삶의 유산을 지금의 장로교인들은 거 의 휴지처럼 버리고 있다. 개혁교회나 장로교회의 시편송 사용은 칼빈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칼빈 이 스트라스부르그로 피난하였을 때, 거기에서 섬겼던 불란서 피난민 교회를 위해 처음 시편송을 출판하여 사용하였다. 그 시편송은 주로 끄레망 마로의 것으로 구성되었지만 칼빈 자신도 시편 25편, 36편, 46편, 91편, 113편, 138 편 및 사도신경송과 십계명송을 작사하였다. 시편 25편, 36편, 91편, 138편 등은 이미 스트라스부르그에서 알려진 그라이터의 멜로디를, 시편 46편과 113 편은 다흐쉬타인의 멜로디를 사용하였다고 알려지고 있다. 제네바 시편송은 판을 거듭하여 1562년 베자에 의해서 완성을 보았고 영어, 화란어, 덴마크언 어, 폴란드언어, 보헤미아언어, 루마니아언어 등 많은 외국어로 번역되었다. 화란어 판만 해도 2세기 안에 30판을 거듭할 정도가 되었다. 지금도 일부 화 란 개혁교회에서는 제네바 시편송을 사용하고 있다. 시편송을 제네바에서 두 번째 출판할 때 칼빈은 서문에서 시편송의 의미를 밝 히고 있다. 즉 교회 교부들은 세상을 부패 시키는데 치명적이고 사탄적인 독소 인 당시대의 정숙하지 않고 부패된 노래에 교회들이 푹 빠져 있는 것을 경고 하였다고 지적하고 시편송의 주제나 내용도 중요하지만 멜로디가 중요하다고 지적하였다. 그리고 멜로디는 정숙하고 거룩해야 할 것을 강조하였다.그리고 칼빈은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받았던 것 이외에 하나님께 가치 있는 것을 아무도 노래할 수 없다는 어거스틴의 주장을 인용하면서 "우리의 목적을 위해서 다윗의 시편보다 더 좋고 적당한 노래는 발견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칼빈은 그의 주석에서 신약시대에서 다윗의 시편을 노래하였다는 증거로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엡 5:19; 골 3:16)를 지목하고 이것은 시편 안에 있는 세 가지 노 래 방식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후에 이런 칼빈의 입장에 따라 1647년 존 카튼도 '시편송'이란 책에서 그 구절을 '시편 책에 있는 시편들의 제목들'이라고 논증한 바 있다. 우리는 이미 1647년 익명의 출판물 을 통해 미국의 개척 초기 교회에서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으로 노래한다는 의미로 시 편송 만을 불렀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 다. 영국이나 스코틀란드에서도 제네바 시편송 이외에도 몇 가지 자체의 독립적 인 시편송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웨스트민스터 총회에서 1644년 12월 27일 공적이든 사적이든 시편송으로 가락에 맞추어 무겁게 노래하되 총 명을 가지고 마음에 은혜를 받고자 멜로디를 주님께 드림으로 노래해야 할 것 이라고 결정하였다. 우리도 이러한 개혁교회의 고백에 따라 지금이라도 창조 적 멜로디로 공예배에서 시편송을 사용해야 하며 교단 차원에서 이에 대한 대 책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56 no image 개혁신학에 선 교회들이여, 세계를 품자-김재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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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50 2001-11-08
http://www.rpress.or.kr/files/poetry/si290.hwp개혁신학에 선 교회들이여, 세계를 품자 김재성 교수 지난 10월 25일부터 27일까지 한국에서 세계 복음주의 신학자 대회가 열렸 다. 그동안 세계적인 선교대회나 목회자들의 대회는 많았으나, 한국 신학자들 이 참여하는 모임을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이번에 한국 복음주의 신학 회 제38차 연례 학술대회를 겸하여, 창립 20주년을 맞이하여 세계 신학자들 을 초빙하여 함께 대회를 개최하게 된 것이다. 한국을 제외하고 세계 8개국에 서 12명의 신학자들이 ‘21세기 복음주의 신학의 방향’이라는 큰 주제 하에 각자 연구하여 온 논문을 발표하였고, 각각의 논문에 대해서 한국 신학자들 2 명이 논평을 했다. 한국에서 이러한 세계 신학자 대회가 가능하게 된 것은 우선 복음적인 교회 가 큰 영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가 발전하고, 교회가 성장하고 있 기에 이런 대회를 개최하여 해외 기독교 석학들을 초빙할 때에 큰 영광을 알 고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필자는 이번 대회 프로그램 진행자로서 여러 학자 들의 평가를 가까이서 들을 수 있었고, 이번 기회에 간략하게나마 그 의미와 중요성을 같이 나누고자 한 다. 우선 이번 세계 복음주의 신학자 대회에 대해서 긍정적인 평가를 해외 참여 자 몇 분이 제시해주셨다. 세계 복음주의 협의회 신학분과 총무를 맡고 있는 오스트레일리아 데이빗 파커 박사는 이번 대회에서 큰 인상을 받았다고 소감 을 털어놓았다. 만일 이러한 복음주의 신학자 대회를 오스트리아에서 개최했 다고 한다면 거의 사람이 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다. 이번에 전국 26개 회 원 신학대학교 및 신학대학원에서 연인원 1천여 명이 넘는 참가자들이 운집하 였다. 석학들 한 자리에 모여 미국 트리니티 신학대학원의 반 게메렌 교수는 한국 신학자들이 논평하고, 토 론하는 수준이 가히 세계적으로도 최상급이라고 극찬하였다. 물론 몇 사람의 예외는 있지만, 성실하게 논평을 준비하고, 참여하는 데 있어서 큰 인상을 받 았다고 말했다. 카나다 뱅쿠버 리젠트 대학교에서 온 스텐리 그랜츠 박사는 자신의 교단적 배 경이 침례교라고 밝히면서, 한국에 처음 온 소감이 매우 인상적이라고 했다. 그는 독일에서 몰 트만 박사 지도하에 신학박사 학위를 마쳤기 때문에 현대신 학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곳곳에서 날카로운 질문공세를 받았었다. 한국 신학자들의 저술 수준이 세계적으로 손색이 없을 만큼 신장되고 있으 며, 학자들의 연구 의욕과 질의응답, 한국 신학생들의 열심이 매우 높다는 점 을 평가하였다. 이번 기회에 한국의 신학자들과 신학교육 기관의 지도자들은 오늘의 과제가 무엇인가를 절실하게 깨우칠 수 있었다. 지금 한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도 숫 적으로 엄청나게 많은 신학박사와 철학박사학위 소지자들을 배출하였다. 가 히 복음연구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전례 없이 많은 신학교육 기관이 세 워졌고, 한국 교회의 후원으로 유지되고 발전하였다. 문제는 이를 세계적으 로 다시 환원하고, 국제적으로 기여하는 일이다. 보다 많은 학자들이 영어로 글을 발표하고, 저술을 남기며, 활발하게 국제화하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그 리고 이제는 세계적인 학자들이 국내에서도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육성 해야 한다. 국제화에 관심 가져야 끝으로, 한국 복음주의 신학계와 함께 연대하면서도, 일부에서 제기하는 개혁 신학의 정체성 확립이 무엇보다도 중요함을 다시 한번 절감하였다. 합동신학 대학원대학교의 후원으로 참여한 리폼드 신학대학원의 갬블 박사는 “개혁신 학이 없다면 복음주의는 망하게 될 것이다”고 역설하였다. 현대 복음주의 안 에 몇 가지 신앙을 어지럽히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경고하면서 성경의 가르침 을 포기하는 일을 지적했다. 근래에 여러 저술로 명성이 자자한 복음주의자 들 가운데, 마크 놀(휫튼대학에서 오래 강의하다가 최근에 예일대로 갔음), 알리스터 맥스라트(카나다 리젠트 대학) 같은 학자들이 구 프린스턴 찰스 핫 지의 신학을 비판하는 일이 그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부에서는 실용주의를 채 택하고 있고, 심지어 현대 복음주의 대표자들이 로마 가톨릭과 연합하여 일치 선언서를 발표하였다. 제임스 패커를 비롯하여 복음적인 루터파 학자들이 주 도하였다. 이런 일들이 오늘의 복음주의 운동에 큰 오류가 된다고 지적했다. 한국 개혁주의 교회야말로 세계를 향해서 복음을 바르게 전파하는 마지막 보 루라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한국마저도 잘못된다면 정통개혁주의 신학과 신 앙에 입각한 교회는 현저히 위축되고 말 것이다. 우리 모든 개혁신앙인들의 사명과 책임을 절감하면서, 보다 넓고 큰 세계를 향해서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을 더욱 잘 담당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한국 교회에 복 주시기를 소원한다.
55 no image 총회 행정 쇄신, 구체적 방안 찾아야 할 때-김군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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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67 2001-10-24
http://www.rpress.or.kr/files/poetry/289s iron.hwp총회 행정 쇄신, 구체적 방안 찾아야 할 때 김군섭 목사(부천성도교회)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말이 있다. 좋은 일 뒤에는 나쁜 일도 따른다는 의미 로 흔히 사용되는 사자성어이다. 이 말은 어떤 일을 진행할 때 혹시라도 발생 할지 모르는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조심하라는 의미이다. 지난 86회 총회는 매우 특별한 업적을 일궈내었다. 장신 교단과의 연합이 그 것이다. 그동안 개혁의지를 실현키 위해 성실하게 땀흘린 결과 타 교단의 귀 감과 모범이 되었다는 반증으로 매우 고무적이고 긍정적이라 여겨진다. 이처 럼 모범적인 모습은 특별히 총회를 통해 지속적으로 드러나고 발전되어야 한 다. 이럴 때에 연합 사업이 더욱 빛을 발하게 되고 박차를 가하게 되며 한국 교회 앞에 귀감이 될 것이다. 이러한 과제를 앞두고 우리에게 결코 있어서는 안될,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실수가 지난 총회에서 이뤄졌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그것은 헌법수 정안에 대한 노회 수의 결과를 잘못 집계한 사소 한 일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 과정의 전말을 보면 얼마든지 방지할 수 있는 일이었다는 점에서 총회 행 정 업무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는 평범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헌법수정안에 대한 노회 수의 결과에 대해 당시 총회에서는 15개 노회 중 찬 성 9 노회, 반대 6 노회였으며 총투표수 421표 중 찬성 303표, 반대 118표로 서 헌법 제3조 22장 1조 2항 "노회 과반수의 가결과 각 노회에서 투표한 투 표 총수의 3분의 2이상의 가표를 얻어야 한다"는 조항에 따라 가결되었다고 보고되었다. 그리고 이 보고에 따라 총대들이 받아들이고 동 4항 "총회장은 개정안에 대한 투표 결과를 종합하여 가결된 대로 총회에 공고한 후 이를 실 시케 한다"는 조항에 따라 수정안을 공포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 보고는 잘못된 집계 결과에 따른 것이었다. 총회 준비를 위해 한 창 바쁜 가운데 총회가 임박한 시점에서 보고가 안 된 노회의 수의 결과를 집 계하다가 팩스로 접수된 반대 27표, 찬성 0표, 기권 4표의 ○○노회 수의 결 과를 그만 행정 간사의 실수로 찬성 27표, 반대 0표, 기권 4표로 잘못 집계하 고 만 것이다. 따라서 노회 수 의 결과를 정상적으로 집계했다면 15개 노회 중 찬성 8 노회, 반대 7 노회이며 총투표수 437표 중 찬성 276표, 반대 145 표, 기권 13표로 개정안은 부결되어야 했었다. 여기에서 동 3항 "각 노회는 접수된 개정안의 가부 투표수를 종합하여 즉시 총회장에게 보고한다"는 조항을 해당 노회가 이행하지 않았음을 배제할 수 없 다. 총회를 앞둔 시점에서야 노회 수의 결과를 전화로 묻고 급하게 팩스로 결 과를 받다가 집계 과정에서 발생한 실수가 이처럼 노회 수의 결과를 뒤 업는 오류를 범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또한 행정 책임자가 총회에 보 고하기 전에 한번이라도 각 노회별 수의 결과 보고서와 비교 점검했다면 사전 에 방지할 수 있는 사소한 문제였다. 이 과정을 보면 총회 행정에서 몇 가지 문제점을 찾을 수 있다. 첫째, 노회가 수의 결과를 문서로 정확하게 즉시 총회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둘째, 행정 직원이 작성한 노회 수의 집계 결과를 총회 보고서 작성 책임자 인 행정 총무나 보고자인 총회 서기가 해당 문건에 대해 사전 점검을 하지 않 았다는 것이다. 셋째, 총회 총대들조차 노회 투표 수와 총투표수의 찬, 반에 대한 결과만을 구 두로 보고 받고서도 이처럼 중요한 현안을 두고 각 노회 별로 진행된 찬, 반 투표수의 결과를 묻지 않고 지나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총회 행정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서는 노회 보고서의 정확한 제출, 행정 책임자의 점검, 보고자의 재확인, 보고서에 대한 총대들의 적극적인 관 심과 자료 요청 등이 혼연일치를 이뤄야 총회 결정 과정에서 오류를 방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번에 총회에서 행해진 잘못된 결정은 결코 해프닝으로 끝날 수 없는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이처럼 중요한 사안을 두고 총회가 오류를 범한 것은 서로 믿고 방심하는 가운데 아주 사소한 실수로부 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 점을 명심하고 행정 책임자뿐 아니라 모든 관계자들이 총회 행정에 좀더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고 협조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 총회 임원들은 이번 사 태를 발판 삼아 총회의 행정 쇄신에 대한 문제점들을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그 해결 방안을 찾음으로서 우리 교단이 새롭게 도약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54 no image 작지만 성숙한 교단이 되자-박발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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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4 2001-10-04
http://www.rpress.or.kr/files/poetry/288si.hwp작지만 성숙한 교단이 되자 박발영 목사/ 한우리 교회 행 7장 54절~ 59절은 스데반 집사의 순교장면이다. 이 장면은 가장 아름답고 성숙한 교회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군중들이 던진돌에 맞아 스데반이 죽 어간다. 그러나 스데반은 자기를 향해 돌을 던진 군중에게 어떤 항변이나 그 들을 저주하는 모습이 없다. 오직 묵묵히 죽어갈 뿐이다. 그리고 성령으로 충 만하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하며 떠났다. 누가 하 셨던 말씀인가? 예수님이 십자가 운명시 하신 말씀이 아닌가? 스데반의 모습은 세상 죄를 지고가는 어린양의 모습이다. 성령충만하고 가장 예수님을 닮은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했다. 스데반이 죽고 행 9장으로 넘어가 면 사울이 변화된다. 다시 말하자면 죄인을 대신하여 죽어가는 사람이 있고 그로 인해 변화받는 사람이 있다. 스데반의 죽음으로 인해 변화받은 사울, 그 가 바로 기독교 역사에 없어서는 안 될 예수님 다음가는 가장 위대한 인물이 된다. 얼마나 놀랍고 아름다운 사건인 가. 바로 이 모습이 성경이 가르치는 가장 아름답고 성숙한 교회의 모델이 아닐 까? 예수님처럼 대신 죽어 가는 사람이 있고 그로 인해 사울처럼 변화되는 사 람이 있는 교회가 성숙한 교회가 아닐까? 오늘날 교회의 문제는 어디에 있는 가? 사울과 같은 못된 몰상식한 성도에게 있을까? 문제는 그 못된 성도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스데반처럼 성숙한 사람이 없는 것이 문제다. 교회는 하나님이 죄인들을 불러 모으신 곳이다. 온갖 형태의 죄인들이 다 있 을 수 있다. 몰상식한 성도, 완악한 성도, 성격이 못된 성도도 있을 수 있 다. 그러나 그들도 하나님이 불러서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당연히 있어야 할 사람이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 못된 성도들을 대신하여 스데반처럼 대신 죽어가는 성숙한 성도가 없는 것이 문제다. 그들의 허물과 부족함까지 따뜻하 게 품고 세울 수 있는 성숙한 성도가 없는 것이 문제이다. 우리 교회에 저 사람들만 없으면 좋을텐데....... 우리 총회에 저 목사들만 없으면 좋을텐데....... 과연 그 사람이 문제라 할 수 있는가? 아니다. 그 사 람을 따뜻한 마음으로 품고 세울 수 있는 성숙한 사람이 없는 것 이 문제인 것 이다. 오늘날 교회 모습은 어떤가? 교회의 자랑이 지극히 세속적인 것을 볼 수 있 다. 자기 교회안에 연애인이 많다고 자랑한다. 부자가 많고, 정치인이 많고, 학, 박사가 많다고 자랑한다. 그리고 덩치가 크다고 자랑한다.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런 것을 자랑하기 전에 우리 교회 안에 스데반과 같은 성숙한 집 사, 성숙한 장로, 성숙한 권사, 성숙한 목사가 없음을 부끄러워하자. 우리 교 단이 작다고 부끄러워하지 말고 스데반과 같은 성숙한 목사가 없음을 부끄러 워하자. 노회, 총회 석상에서 똑똑하고 말 잘하고 법을 잘 아는 목사보다 따 뜻한 가슴으로 상대방의 허물과 부족함까지도 품고 세울 줄 아는 덕 있는 목 사가 되도록 노력하자. 이번 총회에서 장신교단을 영입토록 결정했다. 누가 낫고 못하다 할 수 있는 가? 상대방에게 부족이 있다면 그 부족함을 우리가 따뜻한 가슴으로 품고 세 우자! 필자는 우리 합신 교단이 비록 덩치는 작지만 성숙한 교단이 될 수 있 기를 기도한다. 성숙한 교단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상대방의 부족함을 탓하기 전에 상대방의 허물과 부족함을 따뜻한 가슴으로 품을 수 있는 성숙함 이 우리에게 없는 것을 탄식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교단은 더욱 성숙한 교단의 모습으로 서게 될 것이다.
53 no image 합신 교단의 나아갈 길-유기남 선교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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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60 2001-09-20
http://www.rpress.or.kr/files/poetry/yoo.hwp합신 교단의 나아갈 길 유기남 선교사/ 알타이선교회 대표 지난 9월 3일 고신 교단에서는 고려신학대학원에서 "한국교회 목회자 수급조 절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토론의 기회를 가졌다(기독교보, 9월 8 일자 신문, 제532호). 이 세미나는 고신의 총회신학부와 고려신학대학원 교회 문제연구소가 공동으로 주최한 것으로써 우리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 다. 주제발제에 나선 한정건 교수(고신신대원 교회문제연구소 소장)는 "고신 교 단의 경우 2000년도의 교회 수 100에 목회자수 150의 비율을 목표치로 설정 한 후, 신학생 정원을 현행 120명으로 하고, 거기에서 은퇴 목사 수를 뺄 경 우, 목사 수는 2002년부터 이미 목표치를 넘어서서 그 이후에는 기하급수적으 로 늘어난다. 교회 수의 증가가 현재 신대원의 정원인 120명을 따라가지 못하 므로, 교회수 대 목회자수 비율을 이미 신입생을 받아들인 결과인 2005년 수 준으로 유지한다고 하더라도 2002년에는 38명을 줄인 82명을, 2003년에는 107 명 을 줄인 13명을 받아야 하고, 그 이후 몇 년간은 신입생을 거의 모집하지 않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나 이는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으므로 신대 원의 입학생을 줄여나가는 것과 함께 교회를 개척하는 것, 목사 정년을 낮추 는 것, 다양한 목회자를 양성하는 것 등 대안을 찾아나가야 할 것이다."라고 주장하였다. 이어 황성철 교수(총신신대원, 교회선교연구소장)도 '목회자 수급의 문제점 과 그 바람직한 해결 방안'이라는 논문 발표를 통해, "합동교단의 경우 향후 10년 동안 약 2700명 정도의 목회자가 과잉 공급될 것으로 추정된다"며, 목회 자 수급의 해결 방안으로 교단 차원의 장기계획 수립, 지방신학교의 역할 재 정립, 전문사역자 육성을 위한 신학교육의 갱신을 제안하였다. 반면, '고신 목회자 수급 방향에 대한 제언'을 주제로 논문발표에 나선 이복 수 교수(고신대 선교연구소장)는 "목회자 수급에 관한 효과적인 방향으로 교 단의 새로운 교회개척 전략, 전문화된 팀목회 전략, 다양한 기관 및 국내외 선교사역 활성화, 총회와 노회 단위의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기관의 조직과 운영, 해외 선교현장의 인재와 제3세계 신학생 유치"를 제안했다. 위 세미나의 주장들을 보면서, 필자는 합신 교단의 나아갈 길에 대해서 다음 과 같이 제안해보고 싶다. 첫째로, 신학생은 1년에 1만 5천명(무인가 신학교 포함)씩 배출되는데 비해 교인은 오히려 줄고 있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숫자가 많고 외형이 크면 좋다 고 하는 물량주의적 사고와 전략을 바꾸어야 한다. 교단은 교단대로, 목회자 는 목회자대로, 신대원은 신대원대로 자신의 은사와 그릇의 크기에 알맞게 사 역해 나감으로써 주님 안에서 참다운 정체성을 찾을 필요가 있겠다. 그렇지 않을 경우, 사역자들은 공연한 비교로 인해 의기소침과 좌절, 무기력과 탈진 감(burnout)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을 것이다. 둘째로, 우리들 가운데 배출된 훌륭한 교회와 사역자들에 대해 함께 기뻐하 고 협력해 나가야 한다. 교계의 선두 주자인 교회들과 목회자들은 우리 교단 의 자랑이다. 우리는 이들의 사역과 활동에 적극적으로 협력해 나갈 뿐만 아 니라, 앞으로도 계속 좋은 인물이 배양될 수 있는 토양과 분위기를 만들어 나 갈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합신 교단은 80 년대에 이미 늦게 출발한 교단으로써, 물량적 확 대 전략보다는 질적으로 탁월한 지도자 및 사역자들을 계속 배출해 가고 이들 을 힘있게 지원하고 동역함으로써 한국 교회와 세계 선교에 가치 있는 공헌 을 할 수 있을 것이다.
52 no image 하나님 나라 확장에 기여하는 총회 되어야-한광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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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65 2001-09-05
http://www.rpress.or.kr/files/poetry/han.hwp하나님 나라 확장에 기여하는 총회 되어야 한 광 수 목사 사명의교회 담임목사 , 총회 부서기 오늘 우리 교단의 분위기는 밝다고 하겠다. 점차 세대 교체가 이루어지고 있 으며 여러 면에서 개혁이 실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는 총회 장소가 부 총회장의 교회에서 개회하지 않고 총회장의 교회로 결정한 것은 정치색을 배재하자는 것이며 기존의 형식을 탈피하고 축제의 형 식을 도입한 것은 흩어져 있던 믿음의 식구들이 하나됨을 확인하는 자리가 되 어 만남의 기쁨과 선교의 비전을 확인하는 축제의 분위기 속에서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회의가 진행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 동안 약간의 잡음이 있었던 임원 선거의 방법을 수정하기 위하여 규칙 수 정이 상정되어있다. 더욱이 이번 총회에서는 예장 장신측과의 합동을 위한 구 체적인 방안이 총회에 상정될 것인데 기쁨을 가져다주는 소식이요 개혁을 위 해 몸부림치고 있다고 생각된다. 성스러운 총회를 만들기 위하여 총대들은 다음의 몇 가지 를 마음에 새겨두 고 참석한다면 총회가 더 개혁되고 아름다운 축제의 모임이 될 것이다. 1. 총회의 흐름을 알고 참석하는 총대가 되자. 총회의 흐름을 모르는 총대들은 지난 총회 회의록들을 읽고 참석하면 좋을 것이다. 항상 같은 총대가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총회의 흐름을 모를 경우 가 많다. 더 나아가 개회하기 전에 올라온 헌의안을 미리 인터넷에 올려놓고 의견을 받을 수 있다면 광범위한 여러 의견을 수렴하여 좋은 결과가 될 것이 고 시간도 절약하게 될 것이다. 2. 기도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뜻을 찾는 총대가 되자. 어떤 때는 의사 결정에 있어서 지극히 비효율적이고 쓸데없는 논쟁으로 시간 을 허비하는가 하면 어떤 안건들은 다루지도 않은 채 하급기관에 넘겨버리기 도 한다. 반대로 첨예한 문제에 집착하여 시간을 낭비하고 안건을 제대로 다 루지 못하고 실행위원회나 임원회에 떠넘기는 경우에는 건설적인 것을 만들 수가 없게 된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의 나라와 의를 찾으려고 절 제하며 인내하는 마음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3. 임원 선출 방법을 지혜롭게 하자. 총대들은 사심을 가지고 은 연중에 편을 만들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지나가 는 말로라도, 농담으로 던진 말속에서라도 편을 만들어서 일을 처리하면 안 된다. 오로지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성령이 기뻐하는 대로 일을 처리하도록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미리 총대 명단을 거론하지 말아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입에서 입으로 거 론되어 투표 후에 좋지 않은 말들이 무성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런데 이번에 올라온 "총회 임원 선거 규칙 수정 제안의 건"에 나와 있는 수정안대로 투표 하게 된다면 지금 보다는 잘 되리라 생각한다. 물론 실행하다가 미비점이 발 견되면 보완해 가는 것이 개혁이 아니겠는가? 4. 끝까지 진지하게 회의에 임하자. 성령의 인도를 받는 총대가 되어야지 이기적인 의사 관철을 위하여 정당하 지 못한 회의 운영이 되면 총대들은 회의를 느끼게 되고 총회에 대한 부정적 인 입장을 가질 것이며 특히 총회가 개최되었던 교회의 평신도들은 목회자들 의 부당한 행위에 회의를 느껴 신앙까지 잃어버릴 수도 있다. 총대 투표만 마 치면 사라지는 총대가 되어서는 안 되고 대표로 파송한 노회와 수많은 성도 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 을 잊지 말고 끝까지 진지하게 안건들을 살펴보고 최선 을 다하여 교회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되지 않겠는가? 5. 공천은 전문성과 지역 안배를 살리자.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있다. 총회 각 부와 위원회의 인사 배치를 맡은 공천 위원회가 어떻게 공천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총회 공천위원회는 인기 있는 부서에 자기 노회 총대를 들여보내려고 목소리를 높 이는 일 없이 전체 총회를 위하여 일하는 공천위원회가 되어야 한다. 공천은 전문 부서에는 전문인을 배치하여야 한다. 그러면서도 지역 편중의 공천은 지양해야 한다. 왜냐하면 지역간의 균형을 이 루려는 경험에서 나온 것이므로 이 또한 공정하게 시행되어야 한다. 모든 총 대들은 각 노회를 대표하여 총대로 선임되어 성 총회에 참여하게 된 것을 감 사해야 하고 어떤 부서일지라도 작은 일에 충성하는 기본자세를 가져야 할 것 이다. 끝으로 총회의 총대가 주님이 주신 비전을 위하여 정책을 수립하고 조율하여 서 기쁘게 주님의 뜻을 받들어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일에 쓰임 받도록 총회 산하 온 교회와 성도들은 기도를 모을 수 있기를 바란다.
51 no image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최충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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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31 2001-08-16
http://www.rpress.or.kr/files/poetry/choi.hwp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 최충산/ 한주교회 우리 개혁 교단이 역사적인 출발을 한지 20년이 되었다. 그동안 우리는 한국 교회 개혁을 위하여 부단히 노력해 왔다. 그 개혁은 남을 향한 외침이기보다 는 자신을 반성적으로 돌아보고 겸손히 우리의 둥지를 새로 짓는 차원에서 이 루어졌다. 이제 우리 교단은 장로교회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 자리를 잡게 되 었다. 그동안 우리의 개혁은 혼탁한 물결 속에서 이루어 왔다는 점에서 주목 할 만 하다. 또한 그것은 어느 정도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앞으로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우리가 헤쳐나가야 할 길은 멀고 험 하다. 무엇보다도 그간에 우리를 신선하게 보아주던 고운 시선도 예전같지 않 다. 이제 우리는 한국 교회의 부정적인 현상 때문에 반대급부로 얻은 긍정적 인 평가도 기대할 수 없다. 이제 우리는 축적한 개혁의 역량을 총동원하여 한 국 교회에 개혁의 형상물들을 내어놓아야 할 때가 되었다. 그 개혁의 결과물 은 총체적인 개혁 신학이며, 그것으로 형성된 교회이며 그 것을 실천하는 삶 과 문화이다. 이제 한국 교회는 우리에게 이것을 요구하고 있다. 과연 이러한 때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리의 전략적 진로를 심각 하게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첫째, 우리 교단은 지속적인 개혁과 발전으로 가야 한다. 개혁은 종종 질적인 요소로만 인식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발전을 수반하지 않은 개혁은 역사적으로 공허할 수 있다는 경험을 우리는 목회의 현 장에서 경험했다. 이제까지의 긍정적인 면을 극대화하고 내면적인 질적 우수 성을 발전의 원동력으로 불타오르게 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발전 방안을 가지 고 나아가야 한다. 따라서 개혁과 발전이라는 개념이 결코 상반되는 말이 아 니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개혁을 교단 내 모든 교회적인 기능의 원리로 하되, 그 원리가 우리의 현실 에 단순한 외침이 아님을 보여주어야 한다. 영향력이 있도록 하고, 변화력을 갖도록 하고, 통합능력을 갖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개혁의 용광로에서 발전 이 나오도록 해야 한다. 이제까지는 그것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았던 것이 다. 개혁 정신이 심화될수록 개혁신학을 건축으로 형성해야 발전이며, 교회는 내 적인 진리에서 나온 정치적 구조의 발전으로 그 능력이 표출되어야 하고, 삶 은 더욱 도덕적 변화력을 가져야 한다. 신학과 교회와 삶은 계속 개혁 신학 의 토대에서 발전해 나아가야 한다. 둘째, 우리 교단은 지속적인 개혁과 합동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제까지 개혁은 종종 분립하는 태도로 이해했다. 그러나, 화합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은 개혁의 참 모습이 아니다. 수적 열세를 개혁이라는 명분으로 감내하는 것이 우리의 사고 방식이어서는 결코 역동적인 변화력을 구사할 수 없다. 개혁은 내면적인 질적 요소를 담보하는 외향적인 힘의 표출이다. 정치 적인 비전과 결코 상반되는 것이 아니다. 역사적인 개혁운동은 질적 요소와 정치적인 요소가 잘 어우러진 사건이었다. 그것에는 고도한 원리와 정치적인 존재 표출이라는 작위적 행동이 조화를 이룬 변화력 있는 역사였던 것이다. 우리는 그간 이런 면에 소홀해 왔다. 우리는 이제 자기 정체성을 어느 정도 가진 교단으로 성장했다. 이제 우리가 갖고 있는 신선하고 긍정적인 이미지를 기반으로 한국장로교회 합동운동에 나 서야 한 다. 곧, 개혁과 합동을 연장선상에서 이루자는 것이다. 개혁이 역동적 으로 역사하여 합동으로 결과하는 모습을 보여 우리의 존재가 단순히 군소 교 단으로 자리매김 되는 것을 거부해야 한다. 이미 시작된 새로운 2000년대는 그간의 한국교회사의 분열과 반목을 씻고 하 나로 출발하는 새로운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새로운 시대는 장로교회사를 찬 란한 승리의 역사로 그려가야 한다. 더 이상 과거의 더러운 잔재에 발목이 잡 혀 전진하지 못하는 엉거주춤이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갈 길은 지속적인 개혁이 있는 발전이며, 개혁의 일환으로써의 합동이 다. 이것이 새로운 시대에 우리가 한국교회사 속에서 살아가야 할 큰길이다. 우리는 우리의 걸음을 걷되 다른 이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진리의 대도를 걸어 야 한다. 그곳에 우리의 미래가 있다.
50 no image 은혜를 끼치고 덕을 세우는 수련회-김종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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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59 2001-07-26
http://www.rpress.or.kr/files/poetry/284siron.hwp은혜를 끼치고 덕을 세우는 수련회 김종군(강변교회 협동목사, 합신 생활관장) 여름방학이 되면 대부분의 교회들이 자연을 찾아 여러 형태의 수련회나 캠프 를 연다. 그런 행사를 하는 목적은 평소에 아쉽고 미흡했던 부분들을 채우기 위함 일 것이다. 일상의 생활을 벗어나 지체들이 한데 모인 가운데 서로의 만 남과 나눔을 풍성케 하고, 집중적인 교육과 훈련을 통해 영적 재충전의 기회 로 삼기도 한다. 하지만 수련회를 치르다 보면, 아주 중요하지만 빠트리기 쉬운 것들이 있다. 몇 년 전 오지에 있는 개척교회에서 교회 청년들과 전도를 겸한 수련회를 열 게 되었는데, 수련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날 그 교회 담임 목회자의 얼굴이 밝 지 못한 것을 알게 되었다. 전도를 해 준답시고 가졌던 수련회가 그 교회에 게 유익을 주기보다는 같이 간 청년들이 은혜와 도전을 받고 신앙적인 변화 를 가지게 하려는데 더 역점을 두다보니 허점이 드러나고 말았던 것이다. 개교회의 이기심으로 수련회 프로그램을 진행시키는 데 주력하다보니 목회자 가족이나 주변사람들이 수고하고 애쓰는 것과 저들이 바라고 아쉬워하는 것 에 대해서는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그분들에게 요구만 하였지 따뜻한 사랑 을 주질 못했고, 눈살을 찌푸릴만한 청년들의 행동을 방치했던 것이다. 사례 비와 선물과 사용료를 드리긴 했지만 말이다. 그 다음부터는 시골교회에서 수련회를 열 경우 그때의 실수를 교훈 삼아 프로 그램보다, 청년들이 은혜를 받게 하는 것보다 주변 사람들을 섬기고 배려하 는 데에 역점을 두고 있다. 한번은 어느 시골교회에서 수련회를 가지게 되었 을 때, 그 교회 사모님과 아이들을 섬기고 사랑하는 데에 최대의 역점을 두기 로 한 적이 있다. 수련회를 치른 후에 스트레스와 실망과 쓰레기와 몇 십만 원의 헌금만 남겨놓고 돌아오지 않기 위해서였다. 프로그램이나 전도에 차질이 생겨도 좋으니 사모님과 아이들을 섬기고 사랑하 는 데에 온 힘을 기울이기로 하였던 것이다. 아이들 돌보는 일, 식사 준비하 고 치우는 일, 청소하는 일 등에 전혀 신경을 쓰지 못하시도록 하였다. 어떻 게 하면 저들에게 최대한 스트레스를 주지 않고, 위로가 되고 흐뭇함을 드릴 까 연구하여 준비해 갔다. 그 의도는 적중했고, 피차간에 잔잔한 감격의 은혜 를 입을 수 있었다. 요즘은 개인이기주의를 이미 넘어 집단이기주의까지 걱정하는 목소리가 자주 들리고 있다. 심지어 개교회 이기주의를 비판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교회 행사를 치르면서 남의 눈에 집단이기주의 혹은 교회이기주의라는 판단 을 받게 해서는 안 된다. 수련회를 열면서 참석한 자들이 많은 은혜를 받아 야 하지만, 질서를 잘 지키고 남을 배려할 줄 알고, 주변에서 돕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섬기고 감사할 줄 아는 가르침과 실천을 놓쳐서는 안 된다. 그것은 수련회의 부분이 아니라 핵심이라고 말하고 싶다. 버스를 운전하시는 기사, 식사를 준비해 주시는 분, 청소하고 관리하는 분들 과 주변 사람들에게 돈 몇 만원 주는 것으로 끝났다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저들에 대한 예의와 친절과 따뜻한 섬김과 공공의 질 서를 지키는 것이 있어야 한다. 은혜를 받게 하려는 목적이 무엇이겠는가? 하 나님을 잘 섬기고 개교회에 충성케 하려는 것뿐만이 아니다. 세상에 나가서 이웃을 먼저 생각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게 하려는데 있지 않는 가? 은혜 받는 데에 주력하는 것도 좋으나 주변에 은혜를 끼치고 덕을 세우는 수 련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밀폐된 공간에서 예배형식을 통해 은혜도 입 어야 하겠고, 불우한 이웃들을 돕는 데서도 은혜를 입어야 하겠지만, 가까운 보통사람들을 사랑하는 데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해야 한다. 불신이 팽배 하고 기대감마저 사라져 가는 메마른 이 시대에, 교회는 은혜를 끼치고 덕을 세우는 가운데 희망의 등불이 되어야 하겠다.
49 no image 교회 학교, 기독교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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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1 2001-07-12
http://www.rpress.or.kr/files/poetry/si.hwp교회 학교, 기독교 학교! 이경환/ 성림교회목사, 경기중노회장 2001년 여름 교사강습회를 통해, 공과와 주제에 대한 교사들의 높은 평가를 들을 수 있었다. 총회 교육부의 발전과 노회의 성장을 보는 기회가 되었다. 총회와 노회 교육부의 중요성을 새삼 실감하고 부족한 관심을 돌아보게 되었 다. 우리는 무너지는 공교육과 요원(遙遠)한 교육개혁의 현실을 보며 교회교육을 감당하고 있다. 학교는 이미 지식을 실현하는 삶을 배우는 곳이 아니라, 단순 히 지식을 배우는 곳으로 전락했다. 사람을 길러내는 교육을 기대하기 난망 한 현실이다. 기독교 교육의 시대적 사명을 깊이 가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 다. 21세기의 교육은 다원주의와 상대주의가 일반화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진리의 터인 교회는 마땅히 이에 대응할 수 있는 교육을 준비해야 한다. 온전 한 하나님의 사람을 목표로 우리의 교육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교회는 진리를 배우고 찾는 ‘교육의 장’이라 할 수 있다. 나아가 배운 진리 들을 실현하는 사람을 교육의 목표로 한다. 공교육의 문제를 학교라는 교육현 장에서 찾고, 새로운 ‘교육공동체’를 추구하는 이론과 노력이 생겨났다. 대 안학교는 참 교육을 향한 새로운 교육현장의 대안이며, 진정한 ‘교육 공동 체’의 염원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교회보다 참되고 새로울 수 있는 곳이 있을 수 있는가? 교회 학교는 이 중요한 장점을 갖고 시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장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 교사와 학생 사이에 있어야 할 ‘사랑’에 있어 서도 교회는 비교할 수 없는 우위에 있다. 그럼에도 이 또한 주일학교 중심 의 한계를 갖는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참 교육을 가능케 하는 진리를 주셨다(딤후 3:16). 바울 사도는 이 진리로 ‘하나님께 합당한 사람’을 목표로 사역을 하였다. 그리 고 이 목표를 위해 ‘유모’와 ‘아비’의 사람으로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살 전 2:7-12). 교회는 참 교육의 가능에 대한 믿음과 책무를 함께 받고 있다. 하지만 교회 교육의 현실을 보면 우리의 부족한 역량과 한계를 절감한다. 더 구나 ‘학문’과 ‘신앙’을 겸비한 인재양성의 교육은 요원(遙遠)할 뿐이다. F.쉐퍼 박사의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명제가 떠오른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 여기에 머리를 맞대고 역량을 모 아, 총회와 노회와 교회가 ‘일사각오’의 자세로 임한다면, 하나님께서 ‘어 떻게’를 주시리라 믿는다. 개인적으로 이 ‘어떻게’의 하나가 ‘기독교 학교’라고 생각한다. 대안학교 와 미션스쿨이 아닌 기독교 교육을 더 바르게 지향할 수 있는 학교이다. 교 회 학교와 기독교 학교가 함께 참 교육을 감당할 때 21세기를 이끌 수 있으리 라 믿는다. 개인적으로 알게 된 일들은, 이것이 오늘을 향한 하나님의 뜻임을 생각케 한 다. 같은 노회원 몇 분이 함께 하는 기독교 교육재단을 알게 되었는데, 기독 교 학교 설립이 목적 중 하나이며, 한 분은 미국 기독교 학교를 배우려고 유 학 중 이다. 또 하나는 교육학을 15년간 가르치던 대학교수 한 분이, 교수직 을 사임하고 집에서 기독교 학교를 시작한 일이다. 이 교수님은 한 신앙인과 교육학자로서 지금의 교육 현실을 고민 끝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작은 기독 교 학교를 시작했다.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고백하신다. 우리 총회와 노회와 교회 위에 이 행복 이 넘치기를 소망한다. 시대적 사명을 감당하는 참 교육의 비전을 놓고 힘겨운 몸부림이 있기를 기도 한다. “주여! 이 여름에 기도하게 하소서.”
48 no image 합신 총동문회에 거는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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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41 2001-06-28
http://www.rpress.or.kr/files/poetry/siron.hwp합신 총동문회에 거는 기대 심훈진 목사(동작중앙교회) 지난 6월 11-13일간 설악산에서 개최된 합신 총동문회 수련회는 앞으로 전개 될 동문회 활성화에 대한 몇 가지 생각할 점을 남겼다. 하나는 총동문회 성격 을 확실히 규명해야 한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동문들의 참여도를 높여야 한 다는 것이다. 먼저 생각할 것은, 총동문회의 정체성이다(identity). 이번 총회에서는 회칙을 수정하면서 합신 각 과정 졸업생들을 총동문 회원으 로 영입하기로 하였다. 잘 알고 있듯이 합신이 설립될 당시에는 한 과정 (M.div)만이 있었지만 그동안 목회대학원, 여교역자 대학원 등 새로운 과정 이 확장되었다. 때문에 각 과정별로 총동문회가 조직되어 활동해 왔다. 그러 나 합신의 긍지를 세우고 향후 합신의 발전을 위하여 총력을 기울이기 위하 여 통합된 총동문회가 구성되어야 한다는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발맞추어 금번에 각 과정 졸업생을 망라한 총동문회로 다시 출범한 것 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총 동문회의 회원은 대부분 우리 교단의 회원이라는 점에서 그 성격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왜냐하면 동문회의 성격은 어디까지나 친목을 그 기본으 로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기본 위에 서로 교류하며 동문 개개인의 발전 을 도모하는 것이어야 한다. 또한 평생 교육의 차원에서 동문들에게 유익한 프로그램을 개발, 제공해야 한다. 더불어 한국 교회의 미래를 생각해 합신의 발전을 위해 협력할 수 있는 방안도 구체적으로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정체성이 분명하게 보여지게 될 때 비록 많은 사람들은 아닐지라도 총 동문회가 정치적 성격을 갖지 않을까 염려하는 일이 없어질 것이다. 우리 교 단은 건실한 장로교 정치를 자랑한다. 장로교 정치는 당회, 노회, 총회 등의 치리회를 통해 구현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총동문회는 장로교 정치를 존중 하고 교단의 발전에 늘 기여해야 할 것이다. 때문에 동문들이 노회나 총회에 서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타의 모범을 보이는 것도 동문회를 위해 좋은 결과 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 생각할 것은 동문들의 참여도를 높이는 것이다. 총동문회는 명분상의 조직이 되어선 안 된다. 이 말은 총동문회가 실질적으 로 활동하고 그 열매를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다. 총동문회가 주최하는 정암신 학강좌는 이런 점에서 더욱 발전, 계승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또한 이번에 합신 각 과정 졸업생들까지 회원으로 가입하게 되면 그 규모에 비해 활동이 저하될 여지도 없지 않다. 이런 때일수록 그 동안 별도 조직되어 있던 동문회 를 총괄 운영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 동문회간의 협조를 통해 명실상부 한 총동문회로 거듭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선배 위주의 동문회가 아닌 후배들도 적극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아야 한다. 대부분 동문 후배들은 담임 목사인 선배 교회에서 부교역자로 목회 수련을 받는 중이다. 그러다 보니 선배 목사가 수련회나 총동문회 행사 에 참석할 경우 후배는 담임 목사의 공백 때문에 자연히 참여할 수 없는 경우 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이런 경우 선배가 후배들을 먼저 수련회에 적극 참여 하도록 유도한다면 좀더 많은 동문들이 수련회나 동문회 행사에 참여할 수 있 을 것이다. 선배가 후배를 아끼고 사랑하는 것처럼 동문회 활성화에 큰 역할 은 없다. 물론 담임 목사가 후배들과 더불어 참석한다면 이 보다 좋은 것은 없다. 그리고 임원들은 충분한 시간을 갖고 동문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를 분석 하여 프로그램 진행에 참고한다면 유익한 수련회나 동문회 행사를 운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선, 후배들이 골고루 유익을 얻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배치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 될 것이다. 선배들은 목회에 유익을 얻는 프로그램에 관심을 보이는 반면 후배들은 신학적 혹은 성경 이해를 위 한 프로그램에 좀더 관심을 가지기 마련이다. 또한 최근 들어 부부들의 참여 도가 80퍼센트를 상회한다는 점을 감안에 볼 때 사모들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 도 좋은 반응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수련회는 합신 총동문회가 재도약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많 은 사람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전문적인 연구위원회를 조직한 것도 참신 한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아무쪼록 총동문회가 우리 교단의 발전을 위해 그리 고 합신의 발전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기를 기대한다.
47 no image 합동신학대학원의 미래: 동문들의 헌신적인 기여에 좌우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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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84 2001-06-07
http://www.rpress.or.kr/files/poetry/시론김재성.hwp합동신학대학원의 미래: 동문들의 헌신적인 기여에 좌우됨 김재성 교수 (조직신학, 합신 2회동문) 합동신학대학원 대학교는 매우 어렵게 출범하여 지난 21년을 헤쳐 나왔다. 앞 으로도 미래 전망은 반드시 밝은 것만은 아니다. 무섭도록 변모하는 세상을 바라볼 때, 장차 21세기 한국 교회가 치러내야 할 고난과 난관을 함께 견디어 야 할 처지에 놓여있다. 급속한 외형적 교회발전의 시대에 신학교육 기관이 많이 세워졌다. 물론 이 에 따라서 교단들도 많아졌고, 같은 장로교단이 무려 백 여개를 넘어서고 있 는 실정이다. 고 박윤선 목사님을 비롯하여 합동신학대학원을 명실상부한 학 원으로 세우고자 노력하셨던 노진현 목사님, 장경재 목사님, 박도삼 목사님 등 많은 분들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따라서, 앞으로 합동신학대학원을 졸업한 세대가 모교의 앞날을 좌우할 것이다. 첫째로, 학교 발전에 동문들이 가장 건전하게 기여하는 길은 각자 맡은 은사 에 따라서 진리를 드러내고 빛을 발휘하 는 것이다. 합신에 몸 담았던 일천 사 백여 명이 전세계에서 이런 참된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훈련받은 영향력을 발 휘할 때에 합신의 미래에 희망을 가져 볼 수 있을 것이다. 제네바 아카데미는 1559년에 세워진 이후로, 유럽의 종교개혁을 이끌어나갈 인재 양성의 요람이 되었다. 이곳에서 훈련받은 졸업생들이 후기 종교개혁의 선구자들이 되었고, 스코틀랜드의 요한 낙스를 비롯하여, 네델란드의 라이덴 대학교 등 개혁신학을 가르치는 여러 곳에서 교수진으로 활약하므로써 그 영 향을 발휘할 수 있었다. 한국 장로교회의 한 모퉁이에서 합신은 조용하게 노력해 왔다. 이제 그 졸업 생들이 지도자들이 되어서 각종 연합기관과 총회 조직에서 중추적인 사명을 바르게 감당할 때에 합신의 미래가 있는 것이다. 둘째로는, 합동신학대학원 졸업생들이 학교의 발전을 위해서 건전한 제안과 사랑과 물질적인 성원과 기도를 모아 줄 때에만 미래의 난관을 극복할 수 있 을 것이다. 미국의 경우, 명문대학교일수록 그 학교 졸업생들의 기부금과 기 여금이 많다. 명문대학교에 답지하는 후원금이 천문학적인 액수에 달하고 있 다. 반드 시, 물질이 넉넉해야 좋은 교수진이 구비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동문들의 사랑과 관심이 모아지지 않는 한, 후진양성을 위해서 쏟아야할 여력 을 축적할 수 없다. 그동안 비록 숫자는 적지만, 동문들의 사랑이 적었다고 볼 수 없다. 합동신학 대학원과 같이 작은 사립대학이라도 불요불급하게 필요한 교육시설을 지속적 으로 개선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는 동문들의 아낌없는 애교심이 절대적 인 몫을 차지한다. 얼마 전에 서울 원효로에 있는 어느 여자 대학교에서 졸업생들의 모교방문 캠 페인이 있었다. 소위 5학년 등록금을 한번만 더 내서 학교의 교육시설을 세 계 첨단의 정보화로 바꾸자는 총장의 호소가 있었다. 일부에서 비관적으로 얼 마나 모일까?라고 우려하였는데, 놀랍게도 집안 일을 하던 주부 동창들이 대 거 참여하는 등, 무려 2 천 여 명 몰려들어서 모교 살리기 운동에 앞장을 서 는 성공을 거두었다. 지금은 수 백억의 기금으로 한국 제일의 첨단 정보시스 템을 구사하는 학교가 되었다. 앞으로 20년 내에, 한국 대학의 미래는 위기가 닥쳐 올 것이라고 말하고 있 다. 젊은이들이 현저히 줄어들고, 교회를 외면하는 상황에서 합신이 직면하게 될 상황도 비슷할 것이다. 다만, 모교를 사랑하는 이들의 협력하는 손길이 모 아진다면 난관의 파도를 넘어 인재양성의 사명을 다 할 수 있을 것이다.
46 no image 목회의 성패는 가정목회에서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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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52 2001-05-25
http://www.rpress.or.kr/files/poetry/280시론.hwp목회의 성패는 가정목회에서 결정된다 박형택 목사(디딤돌 교회)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사람들이 사회속에서의 자신은 늘 생각하는데 가정속에 서의 자신은 잊어버리고 사는 경우가 많다. 아마 가족들은 자신의 말이나 행 동에 대하여 신경을 쓰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해서 일 것이다. 그런데 생각 외로 현대인들에게 가정문제는 외면할 수 없는 심각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에 하루에 결혼하는 가정은 작년 통계로 1005쌍이고 이혼하는 가정 은 339쌍이라고 한다. 서울에는 하루에 233쌍이 결혼하고 71쌍이 이혼한다고 한다. 결국 이혼하는 가정이 결혼가정의 3/1이라는 통계다. 가정해체가 점점 많아지고 있는 추세다. 기독교인들이라고 예외는 아닐 것이다. 지금 교계에서 는 가정을 살리자는 켐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는 가정이 무너지고 파괴되며 해체되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나온 무브먼트다. 오늘날 가정에서 부부간의 문제도 심각하지만 자녀와 부모간의 문제도 심각하 다. 부모가 자녀를 학대하는 아동학대는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것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보건복지부에 접수된 아동학대건수를 보면 97년에 807건 98 년에 1283건 99년에 2150건 작년 2000년에는 11월까지 무려 4200건이 접수되 었다. 4년만에 5배가 증가했다는 결과다. 그런데 학대행위를 한 부모는 30대 가 37%로 제일 많고 40대가 31% 20대 14% 기타 18%로 나타났다. 이는 젊은 세 대들의 이혼률과 비례한다. 이혼도 30대가 제일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체험적인 얘기지만 부모에게 학대를 받으면서 자란 아이는 자기가 부모가 되 었을 때 같은 방법으로 자녀학대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동학대가 늘어 나는 비례로 봐서 앞으로의 가정파괴와 아동학대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해질 것 이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또한 자녀가 부모를 상대로 존속유기나 존속상해, 그리고 존속살인을 하는 패 륜사건도 너무 자주 발생하고 있을 뿐 아니라 계속해서 빠른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이는 정말 가슴아프고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 부모를 상대 로 범죄를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두렵기도 하고 한탄도 하지만 대부분 부모가 자녀를 이기적으로 키운 결과에서 오는 경 우가 많다는 것이다. 왜곡된 사랑 이 자녀를 망치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는 말이다. 가정은 사랑과 용서와 이해의 샘이며 가족 구성원의 안식처이다. 부모만큼 자식을 사랑함이 어디 있으며 용서와 이해를 해줄 자가 어디 있겠는가? 아내 나 남편의 품만큼 안식할 수 있는 곳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이러한 한 가정에서 가해자가 있고 피해자가 있다는 것은 정말 불행 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내 자신도 목사이지만 과거 자녀로써 가정의 피해자였 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결국 목사가 되어서도 가해자 노릇을 하기도 했 다. 목회자로서 본의아닌 가해자로 첫째 아내에게 피해를 입혔다. 목회하면 서 깨달은 것이지만 아내를 한 마리의 양으로 본 것이 아니고 당연히 나와 꼭 같이 십자가를 지는 사람으로 생각하여 십자가를 강요하여 많은 상처를 안겼 고 둘째 자녀를 교인들에게 하듯 권면하고 설득하지 아니하고 강압적인 태도 와 강요로 언어폭력과 폭력을 행사하였었다. 지금은 웃으며 지난 날을 얘기 할 수 있지만 대학생이 된 아이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 있다. 목회자가 가정목회에 실패한다면 과연 그는 교회목회를 제대로 할 수 있을 까?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목회자는 연기자가 아니다. 자신의 삶이 하나님앞에서 온전하지 못하면 성도들에게 말씀을 선포할 수 없다. 설교는 연 기자의 연기가 아니다. 자신의 삶과 체험을 나누며 삶에 필요한 하나님의 말 씀을 선포하는 것이다. 따라서 목회의 성공과 실패는 가정목회에 달려있다고 확신한다. 엘리 제사장의 가정을 보면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며 하나님을 알지 아니하 였다. 백성을 대신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제사장의 아들들인데 어떻게 불신 자요 불량자가 되었을까? 성경에서는 그 책임을 엘리 제사장에게 돌리고 있음 을 본다. 말씀을 선포하는 제사장이 자녀들에게는 말씀을 가르치는데 소홀했 다는 말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불량자를 제사장으로 세워서 사역을 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두 아들이 얼마나 가증한 일 을 행하였을까? 하나님은 그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엘리 제사장은 아버지로서 금하지 아니하였다고 말씀하신다. 이것이야 말로 세습이 아닐 수 없다. 하나 님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자식이라하여 제사장 사역을 하게 했으니 자녀에 대한 왜곡된 사랑을 한 것이다. 결국 왜곡된 자녀사랑은 가정의 파멸을 초래 했다. 엘리는 오랜 세월을 제사장으로 살아왔다. 그러나 왜곡된 자녀사랑으 로 가정을 파멸시킨 장본인이 된 것이다. 본의 아니게 가정에서 가해자가 된 것이다. 어느 누구도 엘리 제사장을 제사장 사역에 성공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목회자들이 가족들에게 가해자가 되기 쉽다. 목회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가족 에게 터트릴 수도 있고 가족들에게 자기와 같은 십자가를 억지로 지울 수도 있다. 그리고 가족이기 때문에 말씀을 가르치는 사역에 소홀할 수도 있고 가 족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이해할 것이라 생각하여 너무 해이한 태도로 행동하 므로 위신이 떨어질 수도 있다. 우리 목회자들이 가정에서 아내에게도 존경받는 목회자로, 자녀에게도 존경받 는 목회자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가정목회를 한다면 어디서나 훌륭한 목회자 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45 no image 교회의 성장 모델 '안디옥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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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88 2001-05-03
http://www.rpress.or.kr/files/poetry/279시론.hwp 교회의 성장 모델 '안디옥 교회' 신종호 목사(대동교회) 며칠전 인도에서 온 T. 캄프 목사를 만났다. 그는 한국 교회의 눈부신 성장 을 매우 부러워하며 감탄을 감추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이 교수하고 있는 신 학교 교과 과정에서 교회 성장학을 개설하여 교회 성장 모델로 한국 교회를 다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있어서 인도의 교회는 한국 교회를 모델 로 하여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교회가 미국의 대형 교회를 모델로 교 회 성장을 도모하고 있는 요즈음에 그는 한국 교회를 모델로 삼고자 하는 것 이다. 그만큼 한국 교회 성장은 적어도 아시아권에서는 초미의 관심 대상이 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과연 한국 교회가 인도 교회의 모델로 적합한 것인가 집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시대적 여건과 지역적 조건을 무시하고 인도에서 한국의 교회를 모델로 교회 성장학을 가르친다는 것에 대하여 의문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대형 교회든지 그 교회의 성장 배경에는 그 나 름대로의 교회 성장 프로 그램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이 과정에서 목회자의 카리스마도 적지 않게 작용 하기 마련이다. 요즘 상당수의 한국 교회가 교회 성장의 모델로 일컫고 있는 미국의 W 교회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한국 교회가 그러한 대형 교회를 모델로 삼고 성장할 수 있는 것은 결코아니다. 그리고 그들 교회 의 프로그램을 도입한다고 해서 비슷한 결과를 얻는 것도 아니다. 교회는 각 시대마다 시대적 특성을 가지기 마련이다. 또한 그 교회가 위치하 고 있는 각 지역마다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대형 교회의 대 명사인 여의도의 J 교회나 서초동의 S 교회 등의 성장은 그 교회가 발생한 시 대적 배경과 지역적 특성을 고려해서 판단해야 한다. 따라서 그들 교회의 성 장 과정이 모든 시대, 모든 지역에서 그대로 적용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 다. 오히려 우리는 교회 성장만이 아니라 교회의 전형을 초대 교회인 예루살렘 교 회와 안디옥 교회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계시록에 기록된 아시아의 7 교회의 특성을 살피거나 교회에 보낸 바울의 서신서에서 교회가 무엇이고 어떻게 성 장해야 할 것인가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언급하고 있는 이 교회들의 실상은 바로 우리들에게 계시로서 주어진 매우 중 요한 교회의 모델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경에서 언급하고 있는 교회들은 시대적, 지역적 조건을 떠나 오고 오는 모든 세대, 모든 지역 교회의 모델로 서 의미를 가진다. 그 중에서도 교회 성장의 모델로 가장 확실한 교회는 안디옥 교회를 들 수 있 다. 안디옥 교회는 히브리파 유대인들이 주축이 된 예루살렘 교회와는 달리 헬라파 유대인들이 주축이 되어 설립되었다는 점에서 그 특성을 찾을 수 있 다. 대신 예루살렘 교회는 사도들에 의해 기독교의 신학적 기초 작업과 교회 의 전형을 세웠던 것이다. 이러한 터 위에 안디옥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 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안디옥 교회를 통하여 소아시아와 유럽에 교회를 세 울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던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안디옥 교회가 성장하게 된 배경에는 성령께서 예루살렘 교 회가 아닌 안디옥 교회를 사용하시기 위함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교 회 성장 이면에는 누구보다도 교회를 세우신 성령께서 그 교회를 사용 하시고 자 하신 목적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이다.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신약교회는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것은 교회의 발생과 성장에서 성령 님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 성장의 모든 것은 안 디옥 교회만을 보아도 얼마든지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몇몇 대형 교회를 모델로 삼고자 하는 것은 그 교회가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아무런 각 성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44 no image 개혁과 역동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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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84 2001-04-11
http://www.rpress.or.kr/files/poetry/278시론 .hwp개혁과 역동성 김종렬목사 / 참빛교회 목사 한국 정치와 신학의 두 거물인 김대중 대통령과 고(故) 박윤선 목사의 닮은꼴 을 생각해 본다(물론 인격의 비교는 아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오랜 민주화 의 투쟁과 옥고 끝에 국민의 정부를 출범시켰고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유명인 사이다. 그리고 그의 통치의 핵심사상은 개혁이다. 고(故) 박윤선 목사도 오 랜 세월 교수하며 연구한 말씀사역에 탁월한 업적을 남겼고 합동신학대학원 을 설립하였다. 그리고 우리 마음에 지울 수 없는 감동으로 자리잡은 개혁주 의 신앙의 아버지다. 그런데 요즘 김대중 정부가 심상치 않다. 개혁을 외쳤지만 나라의 전반이 휘 청거리고 정부의 신뢰와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 특별히 이번 개각에서 그 실 체가 여실히 드러났다. 의식있는 많은 사람들이 이번 개각의 중요성을 경고했 는데도 정략적인 나눠먹기이고 방어적인 편협한 인사였다. 그러면 고(故) 박 윤선 목사의 개혁주의 신앙을 계승하는 우리 학교와 교단은 어떠한가? 20여 년 동안 개혁주의 이름으로 바른신학 바른교회 바른생활의 기치를 들었지만 이 사회와 현실 목회에 어떠한 열매를 거두었는가?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동 참하고 있는가? 아쉬움이 많다. 대통령은 벤처정신을 강조한다. 벤처는 모험정신을 가지고 역동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것을 생명으로 한다. 그런데 벤처를 말하는 대통령 자신은 보호막 을 치고 현실에 안주하고 있다. 우리는 항상 개혁해야 한다는 역사적인 개혁 주의를 추종한다. 그런데 우리는 개혁주의의 기본적이고 모범된 틀 안에 갇 혀 있다고 생각된다. 우리는 모범이라는 틀 안에 갇혀 있는 방어적인 개혁주 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모범이 우리의 발목을 잡고 올무가 되어 형식과 자기 만족의 깊은 수렁에 빠져들게 한다는 것은 명백하다. 필자는 합신과 교단에서 모범된 신앙을 배웠다. 그런데 목회 현장에서 비로 소 알게 된 것은 신앙의 모범이 역동성을 낳고 그 역동성이 비로소 하나님 영 광의 빛을 비추며 우리를 신령하고 자유하며 형통하게 한다는 것을 깨달았 다. 참다운 개혁은 모범이라는 틀을 뛰어넘어 이웃 사랑과, 또 대적과 전투하 는 역동적인 믿음의 역사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역 동적으로 역사하시는 하나 님의 은혜를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다. 그런데 필자는 학교와 교단에서 이런 신앙의 역동성을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황금보다 귀한 목회 초기 시간을 시 행착오를 겪으며 보냈다. 우리의 좌표는 부활하시어 통치하시는 예수님이다. 우리는 과거의 모범의 틀 에 단순히 매여 있는 자가 되지 않아야 한다. 우리 모두는 과거의 모범이 현 재의 역동성이 되게 해야 하고 하나님 나라의 새 역사를 창조해야 할 것이 다. 대통령학을 전공한 한 학자는 다음 대통령은 젊음의 유연성, 경제적 지 식, 통일의 리더십, 정서적 안정 이 네 가지를 갖춘 자이기를 소망하였다. 우 리도 젊음의 패기가 있으며 기도와 말씀에 굳게 서 있어 신령한 영적 은사가 있고 개혁주의적 신학을 가진 분이 학교와 교단의 리더가 되도록 해야 한다. 고(故) 박윤선 목사의 개혁주의 신학을 이어받기 원하고 합신과 교단을 사랑 하며 오늘도 음지에서 수고하는 동문이 많다. 그들이 젊다는 이유로 배척 당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늙었다는 이유로 배척하는 것과 같이 악하고 서러운 일이다. 얼마 전 참석한 노회에서 확인한 선배의 겸손함과 섬김 그 리고 후배 에 대한 배려로 내 마음은 감사가 넘쳤다. 노회에서 선후배의 아름다운 조화 를 발견하고 기뻤다. 선배의 살신성인이 오늘의 학교와 교단을 세웠다. 후배 들은 이런 선배가 있는 한 우리의 자리를 자랑스럽게 지킬 것이다. 과거의 모범은 현재의 역동성이 되어 힘차게 나아가야 한다. 이제는 역동성 을 가로막는 모범은 버려야 한다. 학교의 교수진과 교단의 일꾼이 보다 젊어 지는 것을, 그리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신앙의 모범은 우리에게 십자가의 은총을 깊게 알게 한다면 신앙의 역동성은 우리에게 부활의 크나 큰 은총을 알게 한다. 우리에게 또 주님에게 부활이 없는 십자가의 고난이 계 속되지 않기를 기도한다. 교회가 먼저 개혁의 역동성을 보일 때 정부의 개혁 도 비로소 가능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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