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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6.16 (00:00:00)
권태진 목사
자부심 가지고 교단설립이념 지켜가야

가정의 달을 지나 6월이 되면 나라와 겨레를 위해 희생한 이들의 가족의
아픔을 생각하게 된다. 오늘날 이만큼 살고 신앙의 자유를 누리게 됨은 하나
님의 은총과 선조들의 피와 땀흘림의 결실이다. 과거가 현재의 환경을 가져오
게 했다면 현재는 미래의 삶의 질을 결정하게 할 것이다. 그러므로 미래에 대
한 확실한 꿈이 없이 살아간다면 불확실한 미래속에 패배자와 방황자로 살아
갈 수밖엔 없을 것이다. 개인이나 가정 그리고 교회나 총회도 예외는 될 수
없다.
우리 교단의 과거를 보면 성경으로 돌아가야 된다는 이념이 있었고 열정도
헌신도 있어 합동신학대학원대학을 세웠고, 인본을 차단하고 신앙으로만 하
나 되길 원해서 지역조정까지 했다. 다른 교단에서는 하지 못하는 것을 하여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했다. 한편 지역조정을 해서 기득권 세력을 흩어버리려
는 고차원의 정치라고 하는 이들도 있었으나 그 열매를 오늘 따고 있으니 모
두는 하나님이 아시리라고
본다.
또 과거 한국교회가 행한 독립운동, 물산장려운동, 민주화 운동은 신선한
운동이었으나 현재는 너무 침체되어 있을 뿐 아니라 그 역사성을 잃어버리고
편의위주로 가는 것 같다. 남의 말보다 우리 총회를 생각해 보자. 장로교회
의 전통을 유지하면서 바르게 하려고 개혁이란 이름을 붙였다. 합신의 역사
가 얼마나 되었는가? 과거의 선배목사님들의 정통중시를 무시하고 '합신'이라
는 이름을 통해 군소교단으로 전락해 버린 것은 아닌가? 염려하는 이들도 있
다.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개혁이 여러 곳이니
본 교단을 구별하기 위해 '합신'이라 한다는 것이 지금은 이해가 가지만 10
년 후에는 그 배경은 없어지고 이름만 남을 것이다.
우리 교단이 잘하는 것도 많다. 그러나 미래를 염려하는 것은 교역자의 단
합이 부족하고 미래에 대한 구상없이 각 상비부가 움직인다는 지적이 있기 때
문이다. 모 상비부의 평신도 전도훈련에 타 교단 목사를 세웠던 것에 대한 일
선 목회자들의 부정적 여론도 있다.
총회에서는 회원의 목회에 도움을 주기보다 평신도 전도훈련에 강단 교류조
차도 꺼리는
교단의 목사를 세웠다는 것에 미래를 생각지 않는 처사라고 말하
는 이들의 소리를 경청해야 할 것이다. 목회자 세미나는 타교단 목사도 무방
하다고 본다. 목회자는 분별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신도 교육은 신학
과 신앙이 같은 본 교단 목사가 바람직하다.
특별히 하나 지적되어야 할 것은 교단의 청소년 교육에도 특별한 관심을 가
져야 한다는 것이다. 미래가 좌우될 중고등학생들의 수련회를 생각해 보자.
본 교단의 교회들이 매우 열악하므로 청소년들에게 많은 혜택을 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므로 좋은 환경을 만나면 속하고 싶은 청소년의 시기에
여러 교회 학생들을 모아 이름 있는 큰 교회의 청소년 담당 강사를 모셔서 훈
련한다면 결과는 어떻게 되겠는가? 교단과 교회의 자부심이 없으니 결과는
좋은 환경을 만들어 놓은 교회를 찾게 될 것이다.
필자를 큰 교회를 미워하거나 교단 이기주의에서 매여 있다고 오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속해 있는 교단과 교회에 대한 자부심은 있어야
한다. 그뿐 아니라 작은 교회에서도 큰 인물을 키울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
는 것이 필요하다. 또 본 교단의 목회
자나 성도들 가운데 상당한 실력자가 많
이 있다. 교단의 평신도 수련회나 학생들, 교사강습회등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본 교단 교수나 목회자들이 하는 것으로 해야 교단의 설립이념을 지켜갈
수 있을 것이다. 혹 부족하다해도 일군을 내부적으로 키워야 본 교단의 미래
가 아름다워질 것이다. 본 교단의 산하기관이나 협력기관의 전직원은 교단
교회에 속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 필자가 주장하는 것은 타교단에서
는 벌써 하고 있는 것을 말할 뿐이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님을 덧붙이고 싶
다.
신앙생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이 있어야 하고 입으로 선을 주장
하는 것 보다 상대가 피부로 느껴져야 선이 이루어지고, 초원에는 양들이 있
어야 하듯 목양지에는 구원 받은 성도들이 풍성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을
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바라기는 총회나 노회에 속한 모든 교회가 물댄 동산처럼 생명이 넘치기를
기도한다. 혹 표현이 직선적이거나 어리석은 생각이라면 지도를 부탁 드린
다. 죄인의 특징은 오해와 불신을 호흡하고 있기 때문에 환경을 잘 분별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
의 공로가 아니면 도저히
소망없는 이라 생각되는 작은 종의 소견을 필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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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no image 춘계 노회에서 미조직 교회에 대한 대책 마련되어야
rpress
3096 2001-03-29
http://www.rpress.or.kr/files/poetry/시론277.hwp 춘계 노회에서 미조직 교회에 대한 대책 마련되어야 정중렬 장로(염광교회, 본사 사장) 장로교에서는 교회의 통치와 가르침을 위해 세운 직분을 장로라고 한다. 그리 고 교회의 구제와 사업을 위해 세운 직분을 집사라고 한다. 그 중에서 장로 를 구별해 말씀을 수종들기 위해 세운 직분을 목사라 하고 교회 치리와 심방 을 수종들기 위해 세운 직분을 장로라고 한다. 따라서 교회가 조직됨에 있어 목사, 장로, 집사라고 하는 세 직분을 필요로 하는데 이 세 직분을 가리켜 교 회의 항존직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장로교는 목사와 장로와 집사 를 임직하는 일에 무엇보다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교회의 체제를 확고히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교회의 치리와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기 위함이다. 그런데 작금 우리 교단의 현실을 보면 교회 항존직에 대한 중요성을 차츰 망 각해 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교회를 조직함 에 있어 항존직의 필요성에 대해 간과하고 있다는 현실에서 찾을 수 있다. 우 리 교단의 약 70%가 넘는 교회가 아직도 미조직 교회라는 점에서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교회가 설립되는 조건으로 일정한 수의 성도와 집회 장소가 있어야 하는 것 은 필수적이다. 그리고 그 교회를 치리하기 위해 최소한 목사와 장로 그리고 집사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일단 교회가 개척되면 목회자와 성도만으로도 교 회 설립이 가능하기 때문에 정작 교회의 항존직인 목사, 장로, 집사의 세 직 분자를 모두 갖추지 않고서도 교회는 하나의 유형의 형태를 이룰 수 있는 것 이 현실이다. 만일 목사가 없는 교회라면 (목회자가 전도사일 경우) 노회에서 임시 당회장 을 파송하는 임시 방편을 취해 교회 설립도 가능해 진다. 또한 장로가 없는 경우라 할지라도 소위 '허위 당회'를 구성할 수 있도록 하여 미조직 교회의 형태로 교회가 설립, 운영되어 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미조직 교회 상 태는 어디까지나 비상 조치일 뿐이지 항구적으로 미조직 형태로 교회가 운영 되어야 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노회를 구성함에 있 어서도 최소 3개의 당 회를 갖춘 조직 교회가 있어야 노회를 설립하도록 한 이 유도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교단 안에는 3개의 당회를 갖추지 못한 미조직 노회 가 있는 것이다. 교단 설립 20년이면 결코 짧지 않은 기간인데 아직도 미조 직 노회로 남아 있다는 것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그 원인을 다른 데서 찾기보다는 아직도 우리 교단의 70%가 넘은 미조직 교회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물론 우리 교단의 특성상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출신의 목회자들이 기성 교회 로 부임하기보다는 대부분 개척에 투신한다는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 다. 새로 시작된 교단에서 기존 교회에 부임할 수 있는 기회가 그만큼 적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개척 위주의 교회 설립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미조직 교회가 그만큼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교단 설립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미조직 교회가 70%를 넘는다는 것 은 아무래도 납득하기가 쉽지 않다. 그것은 합신 출신의 목회자들이 교회 항 존직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장로와 집사를 세우기보다는 먼저 교회를 육성, 성 장하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것으로 밖에 는 해석되지 않는다. 그렇다 면 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교회의 육성과 성장은 무엇보다도 교회의 치 리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데 어떻게 교회 치리를 간과하고 성장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우리 교단이 한국 교회 개혁의 기수로서 정착하려면 총회와 노회는 이 사실 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노회는 임시 당회장을 파송하는 것으로 직무 를 다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미조직 교회가 속히 조직 교회로 성장할 수 있도 록 지도하는 일에 최대의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4월이면 정기 봄 노회가 전국적으로 개최된다. 많은 현안이 있겠지만 이번 노 회에서는 미조직 교회의 조직 교회화에 대한 논의와 대책이 다방면으로 다루 어지기를 기대한다.
42 no image 교회 선거제도의 개선이 시급하다
rpress
2745 2001-03-14
http://www.rpress.or.kr/files/poetry/시론.hwp김 훈(성남중원교회, 증경총회장) 교회 선거제도의 개선이 시급하다 지난해 합동측 총회가 오랜 진통 끝에 제비뽑기 선거제도를 채택하고 뒤이 어 통합측 총회에서도 이에 관한 논의가 있은 후 각 교단에서 총회선거제도 에 관한 개선의 필요를 주장하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또한 지난 2-3년의 총회 후에 있었던 일부 총대들의 문제제기로 우리 총회에서도 이에 관한 개선 책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많아지고 있다. 필자는 나름대로 성경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개선안을 제시하고 이 에 관한 의견 정리가 속히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바이다. 성경에 나타난 선거형태와 방법은 다음의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 다. 첫째는 임명제이다. 이 경우에도 하나님이 직접 불러 임명하신 경우(모세, 사무엘)와 기존의 지도자들이 새로운 지도자를 임명하게 한 경우(모세와 여호 수아, 사무엘과 다윗왕, 엘리야와 하사엘, 예후, 엘리사)로 나눌 수 있다. 둘째는 추천제이다. 이 제도는 일정한 자격기준을 정하고 그에 따라 합당 한 사람을 추천하게 하는 방법이다. 이 경우에도 회중들이 직접 추천하지 않 고 그 대표들(장로회)이 추천하고 그것을 그대로 받아 세운 경우(모세시대의 지도자, 사도시대의 집사), 회중들이 직접 추천하여 지도자가 그대로 인준하 여 세운 경우(사도들의 집사 임직)와, 복수로 추천하여 제비뽑기를 한 경우 (사도들의 사도 보완 선출)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셋째는 제비뽑기제이다. 사무엘시대의 사울왕 선출의 경우가 이에 해당된 다. 위에서 살펴본 성경에 나타난 경우를 종합하면 성경적이고 합리적인 선거제 도는 다음의 몇 가지 조건을 모두 갖춘 것이어야만 된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첫째,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람이 선출될 수 있는 가능성이 많아야 한다(행 1:24, 13:22). 둘째, 대표성이 없는 특정 소수집단이 아닌 공동체 다수로부터 대표와 지도 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이 선출될 가능성이 많아야 한다. 셋째, 기존 지도자의 안목과 뜻이 반영되어 그들의 후원과 협력을 최대한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선출될 가능성이 많아야 한다. 넷째, 위와 같은 조건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성경적인 인격과 더불어 능 력을 갖춘 사람이 선출될 가능성이 많아야 한다. 다섯째, 분쟁과 상처, 그리고 불필요한 힘과 시간의 소모를 최대한 예방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 위에서 살펴본 바에 따라서 성경적이고 합리적이라고 믿어지는 선거제 도를 제한하고자 한다. 첫째안은 임원추천위원회를 구성하여 거기서 추천하는 단수의 후보를 회에 서 그대로 인준하는 방식이다. 임원추천위원회는 각 노회에서 노회 때 1인씩 선출한 위원들(전임 노회장 중에서 선출함)과 전임 총회장에서 선출한 5인의 위원(별도의 규칙을 정하면 될 것임)과 전임 장로 부총회장과 회계, 부회계 등 3인의 장로위원으로 구성함이 최선일 것이다. 둘째안은 첫째안과 같이 각 임원을 복수로 추천하여 회의에서 투표하게 하 는 것인데 후보자 자신과 교회 혹은 동기, 노회별 사전 선거운동이 더욱 치열 하여질 가능성이 많아서 자칫 개악이 될 염려가 있다. 셋째안은 첫째안과 둘째안을 절충한 것이다. 즉 임원추천위원회에서 복수 로 추천하여 총회에서 제비뽑기로 결정하는 것이다. 필자는 첫째안이 성경적인 근거도 있고 선거제도 개선 취지에도 가깝고, 성 경적이고 합 리적인 선거제도의 장점(조건)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다고 믿는 다. 노회의 대표를 역임한 사람들과 총회를 대표한 목사와 장로들을 신뢰한다 면 이 제도가 가장 합리적이고 경제적이고 실제적이라고 생각하며 여러 사람 들의 활발한 논의를 바라는 바이다.
41 no image IMF 이후의 한국 교회
rpress
2569 2001-02-28
http://www.rpress.or.kr/files/poetry/275si.hwpIMF 이후의 한국 교회 진상철 목사(성광교회) 우리나라가 지난 1997넌 12월에 국제통화기금의 구제금융을 받아야 될 정도 로 국민경제가 파탄지경에 이르렀다. 그 당시 어느 경제학자가 앞으로의 전망 을 발표하면서 1998년에 한국경제가 긴급병원에 입원를 해서 1999년에는 수혈 치료를 받고 다시 2000년에는 병원에서 퇴원을 하고 2001년에 회복하였다가 2002년에 월드컵과 같은 큰 대회를 잘 치르고 다시 선진 대열에 들어설 수 있 을 거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경제는 지난 IMF보다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 최 근 통계가 말해주듯이 다시 실업자가 100만명에 이르고 대학 졸업자들이 실업 자가 될 지경에 이르고 있다. 정부에서 IMF를 졸업했다고 발표한 지 얼마 못 가서 이런 힘든 상황이 벌어졌다. 상인들은 차라리 IMF시절이 더 낫다고 말 할 정도이다. 집권당에서는 작년에 2-3년 후면 행복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주 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이 나라에 빚과 국가에서 지급 보증한 돈과 앞으로 사 회보장비용이나 통일비용을 생각하면 언제 IMF와 같은 어려운 시절을 벗어날 수 있을까 상상해 보지만 속히 회복하기는 힘들 것같다. 이러한 경제적 한파 회오리에 교회도 예외가 될 수 없음이 나타났다. 한창 IMF 당시에만 해도 각 교단의 집계를 종합해 본 결과 교회당 건축 중에 있는 전국 2천여 교회 중에 다수의 교회가 부도위기에 몰렸으며 이미 부도 처 리된 것으로 보고되었고, 그 뿐만 아니라 1,2층 상가건물 교회를 운영하던 교 회 가운데 IMF영향으로 법원에 부도처리 되어 전교인의 피땀흘린 전세헌금이 다 날리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이런 영세 가난한 상가개척교회의 임대 차 전세금 문제의 관해 정부에 대하여 교회전세금 임대차보호법을 제정해 달 라는 법안도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실 한국경제에 파탄이 이르게 된 것도 한국교회가 물량위주의 성장을 주도 해 왔던 것도 한 원인이다. 무조건 크고 화려한 예배당을 짓고 보자는 식으 로 했으며 심지어 일류호텔이 아니면 이런 저런 기도회조차도 모이지 않는 사 치와 허영에 들떴고 각종 행사만 해도 전국이나 해외로 찾아 다니면서 유람 성 여행을 즐기는 일회성 행사로 시간과 돈을 허비해 왔다 .각 교단 총회장 선 거철만 되면 10억이니 20억이니 하는 선거자금이 소모되고 이 돈은 군소 교단 의 1년 예산보다 더 큰 비용을 소모해 왔다. 내년에는 모 교단에서 제비로 교 단 총회장 선거가 진행될지 비상한 관심거리다. 비록 한국교회가 신사참배문제 하나도 청산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각종 비성경 적인 운동들을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 또한 비성경적인 교회성장운동도 배격 해야 한다. 교회 내에 과소비 풍조도 자제해야 한다. C교회에는 싯가 10억짜 리 독일제 오르간을 구입하자고 결의했다가 취소했던 해프닝도 있었다. 무분 별한 선교운동이나 소모적이고 경쟁적인 선교활동도 자제해야 한다. 무엇보다 도 목회자윤리강령을 준수하여 목회자 자신이 변해야 교회도 달라질 수 있 다. 이제 우리는 경제만 따질 때가 아니다. 종교개혁자 칼빈은 “종교개혁은 교육 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일회성 행사는 이제 끝내고 개혁 백서를 만들어 실행해야 한다. 아직도 겨울성경학교 교본이나 계단공과가 없 어 타 교단 책을 보아야 할 실정이다. 그동안 한국선교의 문제점을 재 진단하 고 다시 선교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리고 장기적인 상비부정책을 세워야하며 교회가 사회에 대하여 사랑의 실천을 나누어야 하며 통일을 준비하는 방안들 을 기독교인 입장에서 재 정비해야 할 것이다.
40 no image 한국은 영어 식민지인가
rpress
2757 2001-02-14
http://www.rpress.or.kr/files/poetry/274si.hwp한국은 영어 식민지인가 오동춘/ 시인, 화성교회 장로 나라가 있는 곳에 겨레가 있고 겨례가 있는 곳에 말이 있다. 말은 그 겨례의 얼이 된다. 그러므로 그 말의 중요성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나라마다 말이 있고 글이 있다. 말과 글은 그 겨례의 뚜렷한 민족의식과 문화의식을 드러내 는 것이다. 우리는 조상 대대로 써 온 한국말이 있다. 이 한국말을 바로 적는 우리 나라 글자인 한글이 있다. 한국사람이 한국땅에서 한국말을 한글로 적는 것은 너무 도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런데 거리를 나가 보라. 외래어 간판이 홍수를 이 루고 있다. 신문, 잡지, 방송을 보라. 외래어와 영어가 활개치고 있다. 우리 한국말은 아예 촌스럽게 생각하고 쓰지 않으려 하고 있다. 딱딱하고 어려운 한자어 말을 쓰면 유식해 보이고 혀가 한참 꼬부라지게 영어를 하면 최신의 현대인처럼 생각하는 한자와 영어 사대주의가 우리 정신문화를 파괴하고 나아 가 나라를 망하게 하고 있다. 말과 글이 그 겨레의 얼인데 한국의 얼이 온통 한자와 영어로 뒤덮혀 우 리 말과 글이 기를 못펴고 죽는다면 자연히 옛날 만 주가 망하듯 우리도 망할 것이 아닌가? 자고 깨면 누구나 하는 말, 누구나 쓰는 글은 자기 나라 자기 겨레의 글을 쓰 는 것이 나라도 겨레도 뼈대가 서고 주인정신이 살아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 민정부였던 김영삼 정권때 세계화, 국제화 한다고 초등학교 3학년부터 영어학 습을 실시하여 영어 사대주의의 멍든 한국인을 만들고 있다. 세살 버릇 여든 간다는 말이 있다. 습관은 제2의 천성이다. 기억력이 좋은 어린이들에게 우 리 말이 아닌 영어부터 가르치면 우리 말과 글은 우습게 여기게 되고 자기도 모르게 영어 사대의식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예사로 영어를 섞 어 말하게 된다. 외국 유학을 다녀온 서울대 교수들이 대개 한 시간의 강의 에 외래어를 5개 이상 사용한다는 조사 통계도 나온 바가 있다. 심지어는 대 통령도 외국에 나가서 자기 나라의 국어에 대한 존엄성을 잊어버리고 영어로 연설하는 잘못을 보이고 있다. 국무총리가 일제 식민지시대 배운 일본말로 유 창하게 일본 규수대학에서 연설한 일도 있다. 지도자부터 언어 문자관이 서 있지 못한 단적인 예가 아닐 수 없다. 지도자부터 자기 나라 모국어를 사랑하 고 자기 나라 글자를 사랑하는 주체성과 애국심을 가져야 나라의 말살이 글살 이가 바로 되고 나라도 발전해 갈 것이다. 그러므로 나라의 지도자부터 나랏 글과 나랏말을 사랑하는 애국애족정신이 투철해야 한다. 지금 서점에 나온 잡지 이름을 보면 레이디경향, 우먼센스, 우플, 에꼴, 레 쎄, 리빙센스, 바벨르, 퀸 등으로 쓰이고 있다. 술집 이름도 라스베가스, 벤 추라, 해커 뉴욕, 니콜, 시실리 등이 쓰이고, 옷가게 이름도 리바이스, 게 스, 보이런던, 마키에끌레, 베르사체 등으로 쓰인다. 이밖에도 거리의 간판 은 외래어 홍수사태를 이루어 여기가 과연 한국인가 의심할 정도이다. 신문을 보면 ASEM(아시아유럽정상회의) NGO(비정부기구) IMF(국제통화기금) IBRD(세계은행) GM식품(유전자변형식품) NMD(국가미사일방위구상) TMD(전역미 사일방위구상)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PDA(휴대용정보단말기) 등이 원어 그 대로 어지럽게 노출되어 쓰인다. 우리 신문은 한글, 한자, 영어 세 나라 글자 로 표기되는 짬뽕 신문을 만들고 있다. 한겨레신문은 한글전용 신문의 횃불 이 되어 있으나 영어 원어를 노출시키는 현상은 다른 신문과 같다. 방송 차례 도 보면 TV는 아예 노출해 쓰며 뉴스네트워크, 디지몬 어드벤처, 부메랑파이 터, 스포츠뉴스, 뉴스퍼레이드, 리얼코리아, 스포츠투나잇 등의 외래어를 마 구 쓰고 있다. 우리 사회에 영어가 큰 산으로 차지해 오고 있다. 우리 한국 말, 한글을 밀어내고 있다. 인터넷(적당한 우리말이 없음)을 쓰는 한글세대 는 우리말을 어지럽게 마구 쓰고 있으며 머리도 노랗게, 빨갛게 서양인을 닮 아가고 있다. 매일 영어 광고가 대문짝만하게 난다. 한글세대가 밀물처럼 밀려오는 새 천년에 서양 외래어가 판을 치고 일본문화 가 우리 고유문화를 좀먹는 이 정신적 문화의 위기를 우리는 어떻게 극복해 야 할 것인가? 한글은 한국의 전도사라 할 수 있다. 쉬운 한글성경이 한국을 오늘의 예루살 렘으로 만든 것이다. 우리 기독교계 지도자부터 우리말과 글과 얼을 사랑하는 데 앞장서서 순수한 한국의 기독교 문화를 창조하며 복음전도에 힘써야 할 것 이다. 올해의 555돌 한글날을 국경일로 만들면서 정부도 우리말 우리글 우리얼 사랑 에 앞장 서야 할 것이며 오늘의 우리 언어 문화위 기를 바로 잡아야 할 것이 다.
39 no image 죄로 얼룩진 세상 극복해야 할 교회
rpress
2240 2001-01-31
http://www.rpress.or.kr/files/poetry/273si.hwp죄로 얼룩진 세상 극복해야 할 교회 양세록/ 대림교회 원로목사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2:49에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다’고 말씀하셨 다. 이는 불을 붙이러 오셨다는 뜻인데 불은 예레미아 5:14에 ‘말씀이 불’ 이라고 하였으니 복음을 전해서 불을 붙이시겠다는 말씀이다. 이렇게 예루살 렘과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에 불을 붙이셨다. 베드로도 사도들과 같이 예 수를 죽인 자들에게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사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 하고 외치니 회개하고 3천명이 세례를 받아 서 불을 붙였다. 안디옥교회는 바나바와 바울이 불을 붙였고, 바나바와 바울 은 제1,2,3차 선교여행으로 불을 붙였고, 바울은 로마에 가서 가이사의 시위 대에게 복음을 전해 불을 붙였고, 가이사의 황실에도 불을 붙였다. 주후 313년에 콘스탄틴대제가 신앙자유를 선포하여 급진적으로 세계에 복음 을 전하여 불을 붙였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로마 가톨릭이 이 불을 껐다. 왜냐하면 말씀이 최고의 권위가 있는데 교회를 최고의 권위로 내세워 말씀이 약화되니 불이 꺼진 것이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데 말씀을 믿고 행해야 구 원을 얻는다고 하니 율법주의가 된 것이다. 성직자의 기준이 믿고 진리와 영 감으로 불이 있어야 되는데 빌라도의 사다리를 무릎으로 통과해야 하니 이는 고행주의이다. 성경은 가감을 못하는데 가경을 더해서 가하고 예수님의 형제 들이 있는데(막6:3) 없다고 하니 성경가감이 아닌가. 성경을 각 방언으로 많 이 번역해야 복음이 널리 전파될 터인데 유렙이 최초로 성경을 번역했다고 해 서 정죄하고 체포령을 내렸는데 이미 죽어서 무덤을 파내어 뼈를 불태워서 두 번 죽임을 당케 했다. 루터가 95개조의 항의문을 제출한 대로 말씀이 없으 니 불이 꺼졌고 중세기 시대를 암흑 시대로 칭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신학자 거룩한 주의 종들과 모든 개혁자들이 가슴에 불이 붙는데 어찌 수수방관하고 침묵만 지키겠는가? 우후죽순처럼 일어나서 개혁운동으로 불을 붙였다. 우선 루터가 이신득의를 주장하여(롬1:17) 불을 붙였고, 칼빈 이 제네바에서 성공적인 개혁으로 불을 붙였다. 미국은 청교도들이 교회를 세 우고 국가를 세워 서 가장 부강한 국가로 불을 붙였고, 영국은 빅토리아 여왕 이 성경말씀을 좌우명으로 삼아 개혁운동으로 불을 붙여 대영제국이 되고 신 사국이 되고 일등문명국가로 식민지가 많아서 해지는 것을 보지 못한다고 과 시했으며, 정말은 독일에 참패를 당했으나 구룬두비 목사의 개혁운동으로 불 을 붙여 가장 좋은 일등낙원이 되었다. 이와같이 개혁운동으로 어두움을 몰아내고 개혁의 아침이 밝아왔다. 지금은 어떠한가? 또다시 불을 꺼서 어두움의 그늘이 다가왔다. 미국을 생각해 보 자. 미국은 기독교 국가요 선진국이요 세계의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 나 믿음은 불이 꺼졌고 윤리 도덕은 땅에 떨어졌다. 감히 누구도 상상못할 동 성연애법을 통과시키는 엄청난 죄를 범하고 있다. 동성연애는 음행죄로 멸망 한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을 되풀이하는 죄이니 하나님의 심판을 재촉하는 것 이 아닌가. 소돔과 고모라의 이웃 고을들이 소돔과 고모라를 본받았다가 소돔 과 고모라와 같이 멸망했다. 이것을 전감으로 삼아야 되는데 미국동성연애법 이 통과하기 전에 캐나다가 먼저 통과시켰다고 하며 유럽은 시간문제라고 하 니 선한 일을 배우기 도 힘들고 실천은 더욱 힘들다. 그러나 악은 그와 반대 로 배우기도 쉽고 실천도 신속하고 빠르다. 이제는 이 죄를 이겨야 한다.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이김같이 우리 도 다 이겨야 되고 이 죄뿐만 아니라 모든 죄를 다 이겨야 한다. 하나님은 악 인은 심판하시고 의인은 구원하신다. 노아가 죄를 이기고 의인이 되어 구원 얻은 것처럼 롯이 죄를 이기고 의인이 되어 구원 얻은 것처럼 우리도 죄를 이 기고 승리하여 구원을 얻어야 한다.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면 별 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단12:4하). 죄는 악한 마귀의 역사이니 성령의 역 사로만 이길 수 있고 죄는 어두움의 세력이니 빛의 세력으로서만 물리칠 수 있으니 성도는 빛이니 집안에서 이웃에서 교회에서 세상에서 어디서든지 힘있 게 어둠의 세력을 몰아내서 빛된 성도의 사명을 다하며 예수님과 같이 청교도 들과 같이 암흑 세계를 광명한 세계를 만들자.
38 no image 새천년 21세기에 우리 교단이 나아갈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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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 2001-01-17
http://www.rpress.or.kr/files/poetry/272si.hwp새천년 21세기에 우리 교단이 나아갈 길 김상도 평화교회 원로목사 2000년을 맞이하였을 때 온 세계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얼마나 야단법석 을 떨었는가. 무엇이 저절로 잘될 것 같이…. 그런데 2000년을 회고하여 볼 때 우리나라의 형편이 어떠한가. 의사들이 동맹파업을 하며 은행원이 동맹파 업을 하여 백성들만 얼마나 어려움을 당하였는가. 정치도 속된 말로 엉망진창 이다. 국회의원들에게 세비를 주는 것이 아까울 정도인데 오히려 세비를 올렸 다고 하지 않는가. 기업이나 은행계의 구조조정이 속히 되어야 한다고 하는 데 구조조정은 되지도 않고 도적질 해먹은 부정부패만 날마다 TV와 신문지상 에 보도되고 있지 않는가. 요사이는 대학교의 부정입학까지도 보도되고 있다. 한국 교회의 형편은 어떠한가. 이 백성 앞에서 빛과 소금이 되고 있는가. 갖가지 불미스런 일로 교회는 끊임 없이 구설수에 오르내리고 있다. 일간신문이 교회문제를 대서특필로 보도하 여 조롱거리로 삼는 것은 다반사가 되었다. 우리 사회의 대형 부정 부패에는 언제나 기독교인이 연루되어 있다는 것은 언제부터인가. 더 이상 이야기거리 가 되지 않을 정도가 되어 버렸다. 참으로 기막힌 일이다. 총회 때마다 총회 장 선출에 부정부패의 말이 이제는 예사로운 말같이 되어 버렸다.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길에 버려져 짓밟힐 뿐이다. 우리 교단은 어떠한가. 하나님 앞에서 자성해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 교단 설립 선언문에서는 “… 이에 합동교단의 부패와 세속화 그리고 분열을 마음 아파하는 동역자들이 … 합동신학원을 설립한 교수들과 함께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의 신앙과 신학적 전통을 계승하면서 총회를 소집할 것을 합의하였다. 우리 총회는 바른신학 바 른교회 바른생활을 이념으로 하여 참신한 개혁주의적 신앙운동을 펴나가기로 하고 남의 잘못을 지적하기에 앞서 먼저 우리 자신의 개혁을 다짐하고…”이 라고 하였다. 우리 교단이 설립되고 우리 합동신학교가 설립된 지 어언 20년 의 세월이 흘렀다. 참으로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를 힘 쓰는 자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역사하시는 것을 체험하였다. 우리와 같 이 부족한 것들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통하여 역사하 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린다. 그러나 이 시점에 선 우리들은 두려운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첫째, 호리라도 교만한 생각을 가져서는 안될 것이다. 자기 개혁하기를 더욱 더 힘써야 할 것이다. 하나님 말씀대로 기도하며 회개하기를 힘쓰고 힘써야 할 것이다. 지금 한국 교회는 무엇보다도 먼저 회개운동을 일으켜야 할 것이 다. 둘째는 교회관이 투철해야 한다. 교회는 주님의 몸으로서 복음을 증거하여 구 원받게 하는 곳이다. 교회가 정치하는 곳, 데모하는 곳, 사회운동하는 곳이 되어서는 안된다. 교회를 통하여 중생한 정치가, 중생한 기업가, 중생한 공무 원, 중생한 교육가 등이 나오도록 해야 할 것이다. 셋째는 개혁주의에 굳게 서서 말씀대로 살도록 교인들을 훈련시켜야 한다. 앞 으로 세상은 과학이 크게 발달되고 생활이 편리하며 물질이 풍부해짐에 따라 죄악이 아주 관영해질 것이다. 모든 종교들은 다 우상종교화 할 것이다. 우상 종교는 윤리는 없고 기복만 있으니까 사람들이 믿기가 좋은 것이다. 심지어 기독교 중에서도 우상종교화 하는 신학이나 종 파가 생길 것이다. 우리는 오 직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경건된 생활을 하도록 우리 교인들을 인도하는 교 단이 되어야 할 것이다.
37 no image 우리가 전념해야 될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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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6 2000-11-24
우리가 전념해야 될 일들 이철호 목사(강성교회) 한국의 목사님들은 목회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헌신적으로 섬기는 일로는 세계적으로도 알려진 사실이다. 1990년 영국에 갔을 때 한 영국 목사님과 대 화하는 도중에 "목사님은 일 주일을 어떻게 지내십니까?" 하는 질문을 받고, 새벽기도회와 수요예배, 철야기도회, 주일 아침과 저녁 예배, 그리고 심방과 성경공부, 교회 행정 등 일 주일의 시간들을 말하자, 그 목사님은 한국의 목 사님들이 대부분 그렇게 목회하시느냐고 다시 물었다. 나는 자랑스럽게 그렇 다고 하자 그 분은 매우 놀라며 한국의 목사님들을 수퍼맨이라는 말을 했다. 어떻게 그 모든 일들을 하느냐며 놀라는 모습을 보면서 흐뭇하기보다는 "이 거 무엇이 잘못된 게 아닌가?"라고 자문을 해본 적이 있다. 정말 목사가 심혈을 기울여야 할 일이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는 기 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라는 말씀처럼 기도하는 것과 말 씀 전하는 일일 것이다. 그 결과 에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라고 했다. 전무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그 일에 전문가가 되어 전적으로 매달린다는 말 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얼마 전 노회 목사님이 자탄을 하면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나 또한 부 끄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 분이 알고 계시는 한 장로님이 판사이신데, 한번은 사무실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던 중에 그 장로님이 묻기를 "목사님, 우 리는 법관으로서 이 법전들을 거의 다 외우고 있습니다. 목사님들도 성경을 거의 다 외우시죠?"라고 묻더라는 것이다. 질문을 받고 너무 부끄럽고 황당해 서 혼이 났노라는 일화를 들려주시면서 말씀하시기를 이제 정신차리고 목사노 릇 잘해야 되겠다는 말씀을 덧붙이셨다. 독일에서 공부하고 온 친구가 하는 말이 논문을 지도받다 보면, 그 지도교수 가 어떤 부분은 몇 년도에 나온 어떤 논문을 참고해 보라고 지도하는 것을 보 면서, 그 지도교수가 자기 분야에 대해서는 논문들까지도 거의 다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고 한다. 우리 는 과연 전문가인가? 이 일에 대해 전념하는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전 하는 일에 전념해야 될 내가 너무 다른 일에 시간과 마음을 빼앗기고 있지는 않은가? 내가 일 주일을 보내면서 기도하는 시간과 성경을 붙잡고 씨름하며 설교를 준비하는 시간은 얼마나 되는가? 항상 나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물론 노회나 총회를 섬기는 일들도 중요하고 목회 현장에서 다른 일들을 도 외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또한 우리가 처한 상황들을 보면 전문 사역자들 이 함께 목회를 동역하며 돕고 있는 상황도 아니다. 담임목사가 모든 일을 처 리해야 할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할 수만 있다면 이런 일 들은 교회에서 제직들과 성도들에게 일을 분담토록 부탁과 지도를 하면서 우 리가 해야 될 가장 중요한 이 일에 전념해야 할 것 같다. 옛날 우리 선배 목사님들은 신학적인 지식은 우리보다 훨씬 미흡했을 것이 다. 그러나 그들은 설교할 때 회개의 역사가 있었고 변화의 역사가 있었는 데, 왜 오늘 우리 교회에는 회개가 없어져 가는가? 그 분들은 한 말씀 하시 면 모든 성도들이 존경하며 순종하고 따랐는데, 왜 지금은 교회에서 목사들 의 지도력이 약화되고 있는 것일까? 그 분들은 신학적인 지식은 적었지만 기 도에 있어서는 우리가 흉내를 내지 못할 만큼 기도의 사람들이 아니었던가 생 각해 본다. 내가 어렸을 때 교회에서 자라면서 성경을 100독, 500독, 1000독을 했다는 이야기를 참 많이 듣고 자랐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이야기를 듣기 어렵다. 오히려 다독이 전부냐고, 성경을 많이 읽는 것이 전부냐고 하면서 신학 서적 만 탐닉하고 있는 우리는 아닌가? 그 신학의 원천인 성경을 옆에 두고 신학 서적만 읽고 있다면 주객이 전도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평생 몇 권씩 성경이 달아 없어지도록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말씀에 매달려 살던 분들이 아니었던가? 사도들, 그들은 박사들은 아니었지만 그들이 설교할 때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돌아섰는데 바로 그 성령 의 역사가 오늘 이 시대 우리에게 있기를 갈망한다.
36 no image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열매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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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3 2000-11-10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열매를 위하여 박준석장로/ 부총회장, 장로연합회 회장 우리 교단은 뜻 있는 교계 지도자들이 모여서 인본주의로 흐르는 교계를 개탄 하며 “교회 모습, 이대로는 안 된다. 말씀으로 돌아가자”는 굳은 의지로 시 작되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법이나 제도 등의 외형적 개선보다는 교권 내의 인본주의로 타락해진 불의와 부조리를 개혁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하지만 바 른 신학, 바른 교회, 바른 생활의 이념을 외치기에 우리의 모임은 너무 미미 했고, 목소리 또한 약했다. 참으로 외로운 길이었다. 그러나 의로운 길에 늘 힘이 되어주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우리는 이제 수 원의 합동신학교와 17개의 노회, 500여개의 지교회를 세워 명실상부한 중소교 단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참 감사한 일이다. 특히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서 성도간의 은밀한 도움과 기도로 성장해 온 합동 신학대학원대학교가 올해로 개교 20주년을 맞이함은 정말 감격스러운 일이며 역사를 이루어가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놀라우신 섭리에 절 로 감탄이 나올 뿐 이다. 그러고 보면 바른 신학의 원산지는 이루어진 듯 싶다. 그러나 교회는 어떠한가? 말하기가 매우 조심스럽다. 우리의 처음 뜻을 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청산 해야 할 교권과 인본주의로 되돌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말씀에 바로 서야 할 교회가 성도 수에만 의존하여 ‘대 교단’ ‘대 교회’만을 추구하고 있지는 않은가 염려가 되기도 한다. 또한 목사는 어떠한가? 장로교의 원리를 무시하고 일방적인 목사 위주의 절뚝발이 교회를 세워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염려가 앞선다. 총회나 노회에서 장로를 배제한 체 목사만 으로 기구나 조직을 이루어 운영하는 경우를 볼 때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은 한 사람의 힘과 능력을 원치 않으신다. 더불어 함께 힘을 합하여 주 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기를 바라신다. 이 땅에 제일 먼저 대한예수교장로회 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교역자의 교적 은 노회 소속으로 되어 있다. 청빙에 따라 유동성을 지닌 직분이다. 그러므 로 교회의 유일한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지 교역자가 아니다. 그렇다면 장로들은 어떠한가? r 순종과 맹종을 구별하지 못하고 ‘예, 아니오’가 분명하지 못한 장로들이 왜 그리 많은가! 진리를 위하여는 목숨도 두려워하지 않고, 불의에는 ‘아니 오’라고 분명히 외칠 수 있는 장로라야 하지 않겠는가! 사람을 의식하기 전 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장로가 되어야겠다. 장로는 교회의 치리자이자 행정 상의 주체이지만 그 모든 것이 교인의 대표로서 행하는 일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목사와 장로가 서로 협력하며 화해를 이루어 교회를 세워갈 때 교회 의 진정한 부흥이 찾아올 것이다. 다음으로 권징이 사라져 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교회가 사랑이니, 은혜니 하면서 양적인 성장에만 지나치게 연연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하나님보다 사람을 의식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다. 그러나 성경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람하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후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토색하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고전 5:11)고 말씀하신다. 요즘의 우리 교 회는 어떠한가! “봉사 잘하고, 헌금 잘하는데 그까짓 것 가지고 벌을 줘서 괜히 시험 들게 할 필요가 있는가? ” 하면서 합리화시켜 버린다. 이런 모습 속에서 바른 교회가 세워질 수 있을까? 실로 가슴이 아프다. 이제 목사, 장로 들이 주님 안에서 뜻을 같이 하여 성도를 잘 섬기며 말씀의 든든한 반석 위 에 교회를 세워 나가야 할 것이다. 끝으로 교계에 연합 움직임이 일고 있다 한다. 하나됨이 얼마나 좋은가? 그러나 선행되어야 할 일이 있다. 지난날의 잘못에 책임을 느끼고 깊이 회개하는 자세가 없다면 모든 것은 허망한 움직임에 지나 지 않을 것이다. 주판을 놓을 때 한 번 틀린 뒤에는 계속 주판을 둔다할지라 도 정답은 나오지 않는다. 미련 없이 탁 털고 새로 놓기 전에는 계속 잘못된 답만 되풀이 될 뿐이다. 우리도 역시 잘못을 통회하며 주님 앞에 모두 털어놓 기 전에는 하나님의 값진 은혜를 체험하기 힘들 것이다. 회개 운동이 우선이 다. 헌 옷을 벗어버리고 새 옷으로 갈아입지 않고서 연합 운동을 한다는 것 은 자칫 또 다른 분열을 초래할 수 있는 것이다. 풍요로운 가을걷이와 함께 교단 출범 20년을 맞이한 이 때, 개혁 교회의 자태 를 갖추고 여기까지 온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다. 이제 하나님은 그 열매를 우 리에게 요구하실 것이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열매 를 위해 처음 출발했던 마음으로 개혁의 길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35 no image 총회 행정부의 조직개편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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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6 2000-10-26
총회 행정부의 조직 개편 시급하다 송영찬 본보 편집국장 총회 정책위원회(이하 정책위)가 활성화되고 있어 우리 교단의 면모가 많 이 새로워질 전망이다. 교단의 발전을 위한 장, 단기 계획을 수립하고 교단 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기 위해 설립된 정책위가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익히 알고 있듯이 정책위는 현 김명혁 총회장이 교단의 위상을 확고히 세 우기 위한 연구 기관의 필요성을 총회에 제의함으로서 수년 전에 설립된 기구로 그동안 적극적으로 업무 활동을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85회 총회 이후 정책위가 발빠르게 활동을 재개하고 있어 향후 그 활동의 귀추가 주 목된다. 정책위는 10월 16일 모임을 갖고 위원장 및 조직을 정비하고 특별위원을 위촉하는 등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갔다 한다. 아울러 목회와 예배갱신, 교 회 연합과 협력, 선거 정책, 환경과 생명, 통일과 선교, 지역 사회 봉사 등 의 향후 정책 계발 주제를 선정하고 2-3개월마다 총회정책계발발표회를 개 최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처럼 참신한 주제를 선정해 총회의 정책을 계발한다는 것은 참으로 바람 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급변하는 현대 사회에서 고전적인 전통이 나 전근대적인 사고 방식으로 교단을 경영하기보다는 시의 적절한 정책을 계발하고 교회와 성도들에게 교단의 방향과 목적을 제시한다는 것은 그만 큼 우리 교단의 추진력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도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그 내용이 혁신적이고 알찬 만큼 그 틀에 있어서도 구조적인 개혁 이 병행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좋은 정책을 계발한 후 그 정 책을 추진할 수 있는 적절한 조직을 교단이 갖추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교단 조직 형태는 그동안 새롭게 신설되었다 할지라도 대부분 20년 전에 갖추어진 것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 교단의 정책을 실행할 수 있는 실무 기관으로서는 총회 상비부와 몇몇 특별위원회가 전부라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책위에서 계발된 정책은 그에 상응하는 상비부나 특별위 원회가 예산을 세우고 사업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사실 지난 20년간 교단의 크고 작은 일은 상비부가 도맡아왔었다. 그러다 n보니 매 총회 때마다 상비부 부원과 임원이 교체됨으로서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일의 연속성이 단절되는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다행히 선교부나 교육부 등 몇몇 부서는 나름대로 조직을 정비해 가면서도 교단의 발전을 위해 장기적인 계획과 대안을 세울 수 있었지만, 기타 부서에서는 그 일이 쉽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총회 상비부가 직접 정책을 세우고 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예산을 운 용해야 하는 부담감도 적지 않았다. 충분치 못한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교 단 교회들에게 후원을 요청하고 상비부원들이 직접 출연해야 하는 지금의 조직 형태로서는 장기적인 안목보다는 단기적이고 단회적인 행사 위주의 파행이 지속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 교단도 새롭게 조직을 개편해야 한다는 여론도 적지 않 다. 즉 상비부는 정책을 입안하고 그 성과를 평가하는 주된 역할에 충실하 게 하고 그 정책을 실제로 기획하고 실행하는 실행부서의 필요성이 요청되 고 있는 것이다. 모든 상비부가 지금 당장 실행부서를 둘 수 없다면 현재 가능한 선교부와 교육부부터 일차 시작해야 할 것이다. 즉 교단 행정부 안 에 고유 업무를 추진할 수 있도록 선교국과 교육국을 신설하고 그 분야의 전문가에게 실무를 맡기는 것이 정책을 탄력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이상적 인 형태가 될 것이다. 그리고 점차 그 범위를 확장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렇게 행정부 조직이 개편된다면 우선 당장 상비부 총무나 서기가 행정적 인 고유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불편함을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상비부가 정책을 수행하고 자체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이중고와 불 합리성에서도 탈피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각 기구에 적합한 전문 적인 인력을 충분히 활용함으로서 장, 단기적인 교단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아무쪼록 총회정책위원회가 모처럼 기지개를 편 것에 박수를 보낸다. 아울 러 정책위가 정책을 계발함에 있어 그 정책을 실행할 수 있도록 교단의 조 직 개편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교단의 장, 단기적인 발전을 위해 행정부의 추진력이 필요한 만큼 각 분야의 전문 인력들이 우리 교단의 총 체적인 발전을 위해 기여할 수 있도록 교단의 배려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 이다.
34 no image 합신 교단에 자부심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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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17 2000-10-12
합신 교단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가? 최홍준목사/ 호산나교회 초 교파적이고 초 교단 적인 활동에 참여해 오면서 마음 한구석에 교 단에 대한 자부심이 과연 있었는가를 생각해 본다. 장로교 어느 교단이 요? 하고 물을 때면 언제나 민망했었다. 특히 질문자가 목사가 아니고 평 신도일 때 더욱이 당황되며 분열을 거듭해온 장로교단의 치부가 드러나는 것 같아 곤혹스럽기까지 했다. 한번은 모 교단 원로 목사님이 '현재 우리 개신교에서 개혁 교단이 얼마나 되지요?' 라고 물었을 때 얼굴이 달아오르기까지 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부끄럽습니다'. 했더니 그 어르신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교 단이 분열이라도 했다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장로교단이 발전한 것 은 핵 분열하듯 했기에 발전한 것입니다 부끄러워 할 일이 아니에요' 하면 서 위로까지 받은 일이 생각난다. 우리 모두는 다른 군소 교단과 다른 차별화 된 교단이라고 자위하면 서 오늘에 이르렀다. 그런데 과연 차별화를 어디에 기준을 둘 것인가 물어 봐야할 것 같다. 총회가 싸우지 않고 진행되었다고 차별이라고 할 것인가? 선거가 금 전 청탁하지 않게 진행 되었다고 차별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것은 너무 나 당연한 것이기에 자랑할 것은 없다고 본다 제도적인 개혁도 결코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우리의 임원 선출 방식은 아무리 생각해도 합리적인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예를 들어 처음 총대로 참석하는 장로 총대들이 제일 당황해 하는 것 같 다. 각 노회석 마다 장로님들이 '누구를 세울까요?'. '누구요?' 하면서 앞뒤 로 묻는 모습을 매년 보아왔던 것이다. 무기명 비밀 투표가 분명한데도 심 지어는 자기가 찍은 표를 뒤로 옆으로 보여주기까지 하는 모습이 각 노회 석 마다 벌어지고 있음을 누가 부정할 것이며 막을 것인가?.. 그렇다고 '모 르면 백 표 내시오 우리 노회는 그렇지 않다'고 할 분이 얼마나 될 것인지 이런 면에서 이번 합동 측에서 다음 총회부터인가 그 다음 총회부터 인가 교회 갱신 측의 제안을 받아 임원단을 묶어 제비뽑기하기로 했다고 들었다. 사실이 그렇다면 대단한 개혁이라 생각한다. 우리 총회도 차별화에 자부심을 갖도록 연구해야하지 않을까?. 이것 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일이나 교단 개혁이 교회 개혁으로 이어지기 때 문에 매우 중요한 사안이라고 본다 과연 개 교회가 개혁되어 가고 있는가? 타 교단에 비해 교인들이 우리교단 교회에 대한 자부심이 얼마나 있 는가? 목회자는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들이 과연 그 교회에 대한 자부심이 얼마나 있는지 성도의 위치에서 점검해 보았는가? 오늘날 장로등 임직자 선출이 과연 개혁적인지 이 문제부터 논의 되 어야할 것이다. 완전한 제도란 세상에 없겠지만 가장 말썽의 소지와 논란 이 되는 임직자 선출문제 또 임직 받은 분들에게 할당되는 부담금이 과연 전통이다, 관례다 하면서 해야만 되는 것인가? 혹 성직 매매로 오해의 소 지는 없는 것인가?. 또한 가장 중요한 예배 부분에서 우리가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드리 는 예배는 생명력이 넘치고 있는가?. 예배자가 그 예배 중에 얼마나 감격 이 있고 변화되며 생동감이 있는가? 그러기에 우리는 예배를 통해 회심의 역사와 치유의 역사가 어떻게 하면 일어날 것인가를 고심하며 연구해야 할 것이다. 나타나는 제도 뿐 아니라 나타나지 않는 내적인 변화와 개혁이 교 단 교회마다 차별화로 드러나야 할 것으로 희망하는 바이다. 교회에 대한 자부심이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교회다운 교회 그 교회 들이 속한 총회에 대한 자부심도 강해짐으로 누가 어느 교단이라고 물을지 라도 자신 있게 교단을 밝힐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우리 모두 참으로 자랑스러운 교회, 자랑스러운 교단을 만들어가기를 소원해 본다.
33 no image 대한예수교장로회에 걸맞는 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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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95 2000-09-28
대한예수교장로회에 걸맞는 교단 김 훈 목사(성남중원교회) 지난 총회에서는 본 교단의 명칭이 「대한예수교장로회」이며 다른 장로 교단과의 구분을 위하여 「합신」이라는 별명을 덧붙일 수 있다고 결의하였 다. 그러나 아직도 이에 대하여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있음도 사실이다. 이에 대하여 시론자는 그러한 별명보다는 「장로회」라는 본명에 걸맞는 교단이 될 것을 촉구하는 바이다. 1. 대한예수교목사회(합신) 교단이 되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성경적이고 개혁주의적인 교회 정치체제가 장로회제도임을 믿는 다. 그리고 장로회정치체제는 만인제사장, 만인선지자, 만인왕으로서의 모 든 신자에게 교회의 기본권이 있음을 인정한다. 또한 모든 교인들이 대표인 장로들을 뽑아서 그들에게 기본권을 맡겨 행사하게 한다는 점에서 장로회 정 치가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라고 자부한다. 그러므로 모든 장로교회에는 최소한 세례교인이 25명 이상이 되면 교인들 이 기본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장로를 선출하게 함이 마땅하다. 장로의 존재 를 교역자에게 유용한가 아닌가의 차원에서 보는 것은 성경적도 장로회적도 아니다. 필자의 경우는 자격자가 아직은 없다는 생각에서 오랫동안 장로선출 을 미루었고 한편으로는 장로의 자격을 상향 조절하여 선출되기 어렵게 한 경험도 있다. 뒤늦게나마 장로자격자가 없다면 그것은 교인의 잘못이 아니요 전적으로 교역자의 책임이라는 것과 지나치게 높은자격기준을 내세우는 것 또 한 성경적도 아니요 공정한 것도 아님을 깨닫고 장로선출에 적극적 태도를 가지게 되었다. 동일한 성경과 성령을 받은 신약시대에는 기본적인 인격과 양 심 그리고 상식과 분별력을 가진 신자이라면 누구나 장로가 될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교인들의 대표인 장로의 유무는 조직교회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장 로교회냐 아니냐의 문제임을 깨닫고 장로 세우는 일에 성실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교회가 목사회가 되지 않고 장로회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2. 대한예수교회중회(합신) 교단이 되지 않아야 한다. 회중교회는 자유정치 체제로서 교인의 기본권과 그리고 그 결과로서 지교 회의 자치권을 강조한다. 그런데 본 교단의 일부 교역자는 교인의 기본권은 최소화하고 지교회의 자치권은 극대화여 노회와 총회에 대해서는 무관심과 불순종의 경향을 보이는 모순을 범하고 있다고 느껴진다. 성경은 모든 인간은 부패성과 연약성의 소유자로서 오류를 범할 수 있다 고 말한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더 많은 다수 그것도 대표성을 가진 다수 즉 당회, 노회, 총회의 권고와 결의에 따름으로 오류를 예방하고 교정 받는 것이 성경적이고 합리적이다. 그러므로 장로교회의 모든 개인과 치리회는 더 많은 대표자들의 권고와 가르침에 겸손히 순종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교단이 이 점에 약한 것은 교단 형성과정의 특수한 상황과 파라쳐치 출신이 비교적 많다 는 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좀 더 칼빈주의자 답게 자신의 부패성과 무능성을 깨달아 겸손하 고, 장로회 목사답게 다수 대표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특히 85회 총 회를 맞이하여 모든 교역자들의 총회에 대한 관심과 그 결의에 대한 순종을 촉구하는 바이 다. 3. 대한예수교홀로회(합신) 교단이 되지 않아야 한다. 칼빈은 교회 의 표식을 말씀의 바른 선포와 성찬의 정당한 시행에 두었다. 동시에 칼빈은 기독교의 큰 교리가 상처를 입지 않고, 신앙의 근본적인 조항 들이 억압되지 않는 한 설교의 오류가 허용되어야 하며, 전체적으로 부패하 지 않았다면 어떤 오류나 잘못된 행위를 가지고 교회를 부인해서는 안 된다 고 말했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칼빈은 교회연합의 조건을 매우 단순하게 제시했다는 것이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교단은 너무나 많은 조건과 지엽적인 문제를 내 세워서 교회연합에 소극적이고 부정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태도는 성경 적도 아니요 칼빈주의적도 아니라는 것이 시론자의 생각이다. 이번 총회에서 다루어질 2000년도 한국장로교 대회나 가칭 한국기독교연합회 문제에 관해 전 향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를 보여 21세기 남북통일시대에 대비할 수 있기를 바 란다.
32 no image 예수교 장로회 조선총회의 제85회 총회를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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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02 2000-09-07
예수교 장로회 조선총회의 제85회 총회를 바라보며 권한국 목사 예수교장로회 조선총회 제1회부터 5회까지의 회의록을 보면 기록이 하도 상 세하여 당시 총회의 모습을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다. (1980년 발행 예장(통 합) 총회록영인본 제1권) 첫째 당시 총회는 조선에 들어와 목숨을 아까와 하지 않고 선교하는 선교사 들과 전국교회의 대표인 목사, 장로들의 영적교제를 우선하는 그야말로 하나 된 모임인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5회 총회록에 의하면 1916년 9월 2일 토요일 오후8시 평양부 서문밖 신학교에 모여 개회예배, 임원선거, 다음날 3일 주일 오후4시 동신학교에 모 여 성찬예식 거행, 동일 저녁 8시 장대현예배당에 모여 성도들과 함께 전도국 이 주관한 중화민국 선교사 박태로씨의 선교형편보고하니 온 회중이 하나님 께 감사하고 영광을 돌렸다 하였으며 9월 5일 오전 11시 경건회, 저녁8시에 는 또 전도국이 주관하고 제주도 전도목사 윤식명목사의 전도형편보고를 받 고 회원중 2인으로 그곳 교회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였으며 9월 6일 오전 11 시 경건회 저녁8시 성경강론후 북간도 선교사 최성주, 김내범목사를 통하여 교회형편과 전도형편을 듣고 회중이 기쁘게 받고 찬송과 기도하였다고 하였 다. 그야말로 하나님께서 조선에 베푸시는 은혜가 보이는 간증과 감사와 보 고, 그리고 오지에 가서 수고한 이들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총회요, 누구든 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축제기간이다. 이번 85회 총회도 하나님의 은 혜가 충만하여 목사, 장로가 하나되는 모임이 되기를 바란다. 둘째는 당시 총회의 주 임무는 중국, 북간도를 선교하는 일과 미 전도지역 인 제주도에 집중 전도하는 일이었다. 제1회 총회는 총회를 시작하는 것을 기 념하기 위해 중화민국 산동성에 선교사를 파송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예산 250원을 세웠고 제4회 총회에서는 3명의 선교사를 파송하며 예산2518원을 세 웠는데 이는 전국교회가 성찬에 참여하는 세례교인부담금을 모은 것이었다. 그래서 총회때마다 선교사를 모시고 전도목사를 모시어서 전국교회 앞에 전도 형편을 보고케 하고 기도해 주고 위로해 준 것이다. 선교사가 들어온 지 불 과 30년 만에 선교사 를 파송하게 된 것이니 그 감격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 는 것이었다. 따라서 지엽적인 문제들은 노회와 당회에 돌려 보내며 그 교회 상황에 따라 처리하라고 하였다. 예를 들면 6회총회시 정치부가 보고하기를 황해노회가 아내가 천주교인인 사람을 장로로 세우는 일에 대하여 문의한 바 " 어떤 원칙을 세우기가 어려우니 노회가 그 교회형편을 따라서 처리할 것 이다 " 고 하였고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한 사람을 책벌하는 원리와 방법을 제정해 달라는 청원에 대하여는 해 당회가 그때 그때 상황을 보아서 처리할 일이라고 지도하였다. 85회 총회도 지엽적인 문제들은 다 노회와 당회에 돌려보내고 21세기를 향한 선교정책과 총회산하 각 치리회의 영적권위를 세우는 일에 좀더 연구를 하였 으면 좋겠다. 셋째는 이렇게 개회예배, 경건회, 성찬식, 선교보고, 강론회, 각 노회 보고 등으로 마치 부흥사경회를 하는 듯하는 총회임에도 불구하고 각 상비부 위원 들이 그 임무를 얼마나 성실히 시행하는지 본 회의에서는 논의할 필요도 없 이 보고를 받았는데 그 내용이 부록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당시 유 능한 선교사들에게 배우 고자 하는 조선목사들의 겸손과 충성된 결과이다. 본 인은 이 회의록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웠는데 우리 85회 총회와 총대들도 배 우고자 하는 자세와 충성된 마음으로 임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리고 좀더 바른 정치와 장로회 의회정치를 해 주었으면 한다. 85회 총회위에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인도하심을 기도한다.
31 no image 노회 상회비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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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56 2000-08-23
시론 임복남 목사 (기좌리 교회) 노회 상회비에 대하여 필자는 수원노회의 부회계와 회계를 3년에 걸쳐 역임한 적이 있다. 그 때 노회 상회비가 정상적으로 들어오지 않아서 회계로서의 애로점이 많았 다. 얼마 전 노회 회계로부터 상회비 독촉과 함께 현황 보고서를 받아 보 았는데 많은 교회들이 노회 상회비를 못내고 있었다. 수원노회뿐만 아니라 다른 노회도 비슷한 것 같고 하여 여기에 대해 몇 마디 제안을 하려고 한 다. 개교회의 당회와 당회장은 오해 없기를 바라며 조심스럽게 나의 생각 을 적어본다. 노회 상회비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으니, 노회는 노회의 각 상비부의 계 획과 행사에 차질이 있는 것은 물론이고 총회비를 제 때에 내지 못하여 총 회의 업무까지 지장이 생기고 있다. 얼마 전에 총회의 공문에서 각 노회의 총회 상회비들이 많이 밀린 것을 보았다. 어떻게 하면 이런 문제를 잘 해 결할 수 있을까? 독자들과 함께 생각하고 고민해 보고 좋은 방안을 찾아보 고자 한다. 그런데 문제의 해결 방법은 의외로 간 단하다. 각 지교회에서 노 회 상회비를 제 때에 내면 된다. 얼마나 당연하고 간단한가? 그런데 제 때 에 노회 상회비를 송금하지 못하는 교회가 많으니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 이다. 왜 상회비를 제대로 내지를 못할까? 첫째는, 교회 재정상의 어려움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예배당이나 교육 관, 또는 사택의 건축중이라든지, 성전부지를 사고 이자돈 물기에 급박하다 든지, 상가교회로서 임대료 내기조차 힘들다든지… 그렇다면 노회에 그 형 편을 보고하여 노회 상회비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으로 상회비를 조정하여 내면 될 것이다. 사실 대부분 노회들이 이런 점을 참작하여 노회 상회비 책정을 하고 있다. 그래도 사정이 어려운 교회가 있는 것은 사실이나 정말 노회 상회비가 부담되는 교회는 한두 교회에 불과하다고 본다. 둘째는, 교회의 관심 부족이다. 대부분 이 관심 부족 때문에 노회 상회 비가 제 때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당회가 구성된 조직교회와 당회가 구 성되지 않은 교회간의 차이는 있겠으나 결국은 목회자의 인식부족이 아닌 가 생각된다. 각 지교회에서 재정부에 노회 상회비를 달마다 송금하도록 해 놓으면 상 회비를 신경 쓸 것이 없다. 제직회 때에 회계보고를 통하여 노회의 상회비 미납이 확인되며는 당회장이 거기에 대하여 한 마디만 권고 하면 될 것이다. 개척교회나 미조직 교회에서는 재정 지출을 일일이 목회 자가 관리 간섭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에는 노회 상회비를 더 잘낼 수 있을 것 같은데도 반대로 되고 있다. 즉 재정부에 맡겨 놓으면 상회비 를 제때에 송금하는 데 목회자가 일일이 직접 간섭하는 경우는 목회자 자 신이 차일 피일 미루다가 노회기간에 목회자가 직접 가져오는 경우가 많 다. 물론 그럴만한 사연이야 또 있겠지만 그래도 노회 상회비는 제때에 내 도록 각 지교회에서 노력해야 한다. 총회까지 연쇄적인 차질이 없도록 개 교회가 신경을 조금 더 써야 한다. 개 교회에서 성도들이 십일조를 밀려 내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다. ‘급하니까 우선 쓰고 3-4개월 후에 내면 되지?’라고 생각하는 교인이 있 다면 목회자는 어떻게 지도할 것인가? 목회자의 생활비를 서너달씩 밀려주 면 어떻게 되겠는가? 무슨 일이든지 우선 순위가 있다. 재정지출에도 우선 순위가 있다. 노회 상회비가 일순위는 아니더라도 구 제비나 선교비보다는 우선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떤 교회는 여러 명의 선교사들을 후원하고 농어촌교회를 돕는 훌륭한 교회가 있다. 그런데 뜻밖에 노회비를 밀리는 것을 보고 이해가 가지 않았다. 노회 상회비는 세금은 아니다. 그러나 개 교회가 당연히 감당해야 할 하나님 앞에서의 약속이다. 십일조나 약속헌금과 같이 그 성격이 똑 같은 것이다. 각종 헌금에 대하여서는 복 받는 길이라고 열심히 가르치면서 노 회 상회비가 뒷전이 되어서야 되겠는가? 우리 교단은 개혁의 기치를 내걸 고 시작하였다. 큰 것도 고쳐야 하겠지만 작은 것도 생각날 때마다 고쳐야 한다. 우리 교단뿐만 아니라 장로교는 개혁주의이다. 날마다 끊임없이 성경 으로 개혁해 가야 한다. 노회가 마비되고 총회가 마비되고 있는데도 지교 회에서 무사 태평이라면, 이것은 너무나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너 무 염려는 말자. 실제로는 작은 일이니까. 각 지교회에서 상회비를 제 때에 내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힘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너무나 당연한 일 이기 때문이다. 능히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 독자의 교회에서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당연한 일 한번 제대로 할 수 있기를 바란 다. 그래서 지교회와 각 노회와 우리 총회가 더욱 부흥 발전하기를 바란다.
30 no image 예배를 어떻게 드려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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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0 2000-08-02
“예배를 어떻게 드려야 하는가?” 황경섭목사/광야교회 교회를 섬기면서 늘 나의 마음속에 자리잡은 질문이 하나 있다. 왜냐 하면 요즘 열린예배를 드린다는 명목으로 기존 전통적으로 드려지는 예배 의 틀을 벗어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교회는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지 참으로 난감할 때가 있다. 그래서 어떤 선배 목사님에게 물어본 적 이 있다. “우리 총회에서는 예배의 동일성과 같은 신앙의 규례에 의하여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예배모범을 정해 예배를 드리고 있고 그 기준에 의하여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하는 말 씀이 “요즘 예배모범에 준해서 그 모범에 맞게 예배를 드리는 교회가 얼 마나 되느냐”고 하는 말씀을 들었다. 그런 소리를 듣고 필자는 너무나 충 격이 컸다. 예배모범을 만들어서 총회 차원에서 다같이 표준으로 삼자는 의미에 서 모범을 만들었을텐데 그것을 지키지 않는다면 이것은 다시 검토를 해서 수정을 하든지 아니면 예배모범을 폐기해야 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필자는 지난주에 제헌절을 지내며 이런 생각을 했다. 법은 우리 모두에게 공평하게 유익을 주기 위하여 만들어 놓았는데 그 법을 지키지 않는다면 또는 지키는 사람은 지키고 안 지키는 사람은 안 지켜서, 지키는 사람이 손해를 본다면 그 법은 우리에게 해가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 았다. 우리는 법 앞에는 만민이 평등해야 된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현실은 그렇지를 못하는 것 같다. 법보다도 힘이 앞서는 것을 보면서 나라 의 앞날이 걱정스럽기만 하다. 힘으로 밀어붙이면 된다고 생각하고 행동하 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더욱 마음이 아픈 것은 누구나가 위험한 시대라 는 생각에 공감할 것이다. 그런데 오늘 우리 교계의 모습을 보면 세상에서 사용되는 방법이 그 대로 교회안에서도 실현되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편치를 못하다. 세상이 물량주의에 밀려서 힘이 센자가 판을 치는 이때에 교회안에서도 교회의 본 질은 망각한 채 교인 모으기에만 혈안이 되어서 스스로 무덤을 파는 행위 는 삼가해야 되지 않겠는가. 세상이 충격요법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고 교회안에서까지 충 격요법으로 교인 확보에만 혈안이 된다면 이것이 될 법 이나 한 말인가? 우리는 예배를 하나님 중심적으로 말씀 중심적으로 교회 중심적으로 드린다고 배웠고 그렇게 하여야만 되는 줄로 알았는데 요즘은 그렇지가 않다. 무엇 중심적이냐가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사람들에게 관심 을 끄느냐가 더욱 관심거리가 되어 버렸다. 그저 법이란 내가 필요하면 지 키고 필요치 않으면 안 지켜도 되는 것쯤으로 알고 교회를 섬긴다면 이것 은 우리가 재고하여 보아야 될 일이 아닌가. 참으로 예배를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인지 자기 만족을 위하여 예배를 받는 것인지 알 수가 없는 시대 에 우리가 살고 있으니 목회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겠는가? 목양 을 하는 우리의 모습이 어떻게 하면 목회를 잘할까 하는 열심은 좋지만 목 회를 방법론적으로만 찾아서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니 목회가 얼마나 복잡 한가? 또 그렇게 해서 얼마나 바르게 되겠느냐 하는 것이다. 목양을 잘해 보겠다고 바른신학, 바른교회, 바른생활을 모토로 개혁을 부르짖고 나온 지 얼마나 된다고 우리의 모습이 이렇게 변했는지 모르겠다. 부족한 필자부터 현실을 바라보면서 혼탁한 이 시대 목회자로서 어떻게 하면 목회 현장에서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법을 운운하면서 가르치고 본을 보여야 될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바르게 할지 고민스러울 따름이다. 어떻든지 제헌절 을 보내면서 준법정신이 미약한 우리의 현실이 교회안에서까지 그 나쁜 영 향이 미쳐서 생각있는 성들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며 교회의 앞날을 어둡게 만드는 것은 우리 모두가 경계하여야 될일이 아닌가 생각을 한다. 우리 목회자들의 바른 목회관이 혼탁한 이 시대의 모든 성도들은 바 르게 복되게 능력있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하나님 앞에 우리가 각성하고 바르지 못한 것은 버리고 하나님이 참으로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 리는, 하나님이 열납하시는,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여 드리는 모습으로 돌 아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가 드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29 no image 바른 것을 멀리서 찾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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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9 2000-07-20
한철형 목사(산성교회) 바른 것을 멀리서 찾지 말자 근세기에 우리는 ‘불확실성의 시대’라는 글을 통하여 많은 도전을 받 았다. 한창 청년기에 있던 본인에게도 그 글은 충격적으로 다가왔고 이러 한 시대에 영적으로 우리는 어떤 준비가 되어야 한느가를 고민하던 때가 있었다. 이제 우리는 한 경제사회학자의 미래 예견의 차원이 아닌 현상적 인 차원에서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컴 퓨터의 발전과 인터넷의 사용, 사상적 갈등의 침잠 등은 이제 전 세계적으 로 어떤 중심축이 움직이고 있는지 도무지 분간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그런데 세계적이지도 못하고 역사적이지도 못한 우리 개혁교단의 내일 도 불확실의 여정을 가고 있지 않는가 하여 못내 아쉬움이 있다. 학교를 위하여 본의 아니게 교단형성이 되었다고 하여 스스로 된 분리 주의자는 아니라고 자부하는 개혁교단이 아직까지도 그러한 피상적인 의식 속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으면서 항상 남들이 인정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 고 있다면 이것은 큰 수치이다. 기왕에 하나님의 은혜로 세워진 교단이라면 우리는 그 의미를 굳게 세 워야 할 의무가 있다. 우리는 바른신학 바른교회 바른생활을 주장하고 있다. 이 말을 좀더 보 편성을 띤 일반적인 용어로 표현한다면 창조적신학, 사회적교회, 도덕적생 활로 표현할 수 있겠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지고 잇는 개혁주의란 방향성 위에서 말이다. 바른신학이 우리의 특징 아닌가? 사실 타 교단에서 교수하는 합신 출신 교수들 중 여럿이 그 교단의 신학적 중심 인물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그런데 본 교단에서는 모든 목사들이 같은 신학을 하여서 교수 수준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신학교에 대한 기대가 예전 같지 못한 것이 사실이 다. 사견임을 전제한다면 그것은 신학의 목회적 적용의 문제에 있다고 보 겠다. 이것은 실천신학에 한정되는 문제가 아니다. 말씀선포에 대한 자신감 도 잃고 있는 것이다. 잡다하게 흩어져 있는 한국 교회의 성장 신드롬 속에서 그나마 가지고 있던 신학적 기반도 느슨해져 버린 탓은 아니겠는가? 주위의 눈치 보지 않 고 신학적 입장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가장 창조적인 목회는 말씀선포 에 살아있는 것이다. 바른교회론에 있어서도 양상은 마찬가지이다. 우리 교단에 큰 교회가 없단다. 그것이 말이 되는가? 큰 교회가 없는 것이 아니라 말을 분명히 하면 어 느 교회를 모델로 삼아야 하는지 즉, 바르게 성장하는 교회가 무엇인지를 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극히 작은 교단 중 하나인 우리 교단에 그 형태는 왜 그렇게 다양하 고 또, 그 교회의 성장 과정이 어떻든지 교세가 웬만하면 대접받는 상황이 라면 ‘바른교회는 무엇인가?’를 외치는 후배들에게 무엇을 예로 들어야 할지 … 난감하다. 사회 속의 교회로 서 가야 할 것이다. 바른생활에 들어가면 더 더욱 곤란하다. 무엇이 바르단 말인가? 영적 재충전을 위하여 귀중히 사용될 수 잇는 기존 기도원은 매각한단 다. 교회 밖의 유일한 사회시설인 예가원은 어떻게 세워 나아갈까? 목사가 보여주는 의와 평강의 모습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구제기관의 목사는 천사 요 지교회의 목사는 할 일 안하는 사람(?) … 우리의 교회와 목회자인 우 리 자신은 도덕적이고 영적으로 세상에 비쳐지고 있는가? 현대그룹은 제 살기도 바쁘면 서도 전 세계가 깜짝 놀랄 계획들을 자꾸 내어놓는다. 우리 개혁교단의 장 단기 계획들은 정책위원회에서 착실히 준 비해서 발표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위원들 본인들의 생각뿐 아니라 분과위 를 두어서 차세대 일꾼들의 비젼을 활용하여서 말이다. 그리고 우리 목회자 개개인들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본연의 임무 가 무엇인지를 다시 살피며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세워져 나아가야 할 것 이다. 특히 겔3:7-11의 말씀과 같이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에 우 리 선포의 중심이 맞추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하면 우리의 자녀들과 제자 들은 ‘확실합니다’를 고백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사족을 단다면 우리 개혁교단이 그렇게 못하진 않다. 참으로 많은 사람 들이 부러워하는 교단이다. 단지 좀더 확실하자는 것은 너무 큰 욕심일까? 해외여행을 비롯하여 세미나 등 목사의 식견과 안목을 넓히는 훈련은 매우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프로그램들을 통하여 무엇을 이루어 나아가 려는지 … 목적과 열매의 불일치가 많이 보이는 듯하여서 못내 아쉽다. 바른 것은 멀리 있지 않다. 우리는 가지고 있고 또, 이미 공감하고 있 n다. 현 사회를 직시하는 안목을 우리에게 주었고 그 길 된 말씀과 그 해석 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우리 자신의 모습이 영악하기만 하고 미숙한 것을 싫어 버림으로 우리의 개혁이 신뢰성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겔3:9의 말씀 같이 우리의 이마를 화석보다 굳은 금강석 같이 하여 시 대를 두려워 말고 선포하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재산은 바른신앙 고백과 여호와의 말씀에 있는 것은 과거나 지금이나 여일하다고 생각되어진다.
28 no image 자신의 주장에 도취된 자들의 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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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7 2000-06-29
자신의 주장에 도취된 자들의 과오 최종규 목사 /대구 경성교회]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 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롬2:5). 종교 개혁자 칼빈은 자기가 개혁자 되기까지에 있어서, 고집이라는 것 때 문에 얼마나 어려웠던지를 고백한다. “… 이것이 너무나 새로운 것이었기 때문에 나는 처음에는 귀를 기울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완 강하게 또 열정적으로 이에 항거했습니다. 사람이란 자기가 지금까지 해 오던 일을 고집하려는 버릇이 자연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진솔하게 기록 하고 있다. 모든 성도가 교회나 공회 앞에 개인적인 경험이나 자칭 명철한 이성적 판단의 아집 때문에 교회 발전의 저해의 원인이 되지는 않는지 참 으로 주의하고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성경에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 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 며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 하며”(딛1:7). 또 “지혜로운 자는 두려워하여 악을 떠나나 어리석은 자는 방자하여 스스로 믿느니라”(잠14:16)라는 말씀처럼 지나친 인간의 고집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거스릴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결국 하나 님의 심판대 앞에 고집도 아집도 다 내려놓고 무릎을 꿇고 회개해야 되기 때문이다.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침공하고 큰 패배를 맛본 것도, 체면과 고집에 기인 되었음을 역사를 통해 우리는 알고 있다. 그 해 겨울이 ‘예년보다 몹시 추우리라’는 전문가들의 충고를 나폴레옹은 사전에 들었던 것이다. 철새 가 다른 때보다 빨리 날아갔고, 여러 가지의 경험과 과학적인 예를 들어, 전문가들은 러시아 원정을 연기할 것을 나폴레옹에게 충심으로 충고하였으 나 나폴레옹은 웃어 넘기고 말았으며, 심지어는 “힘없는 인간의 충고가 나에게 무슨 필요가 있는 것인가? 나는 한다면 할 수 있다”고 하는 엉뚱 한 교만과 고집을 내세워, 결국은 수많은 인명을 얼음 속에 쓰러지게 만들 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불행의 역사는 과거에만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오 늘 우리의 삶의 현장에도 팽배 해 있으니 참으로 가슴이 조이고, 불행한 일 이 아닐 수 없다. 오늘도 나폴레옹의 고집과 같은 국가 공무원들의 횡포는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국록을 먹고 자칭 백성들의 공복이라는 자들이 ‘어떻게 하면 백성 의 어려운 현장의 문제를 도와줄까?’라는 의식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요즈음 ‘전국 의료 대란’에서도 한눈에 볼 수 있다. 의사들의 불 만을 공무원의 시각에서 대응하는 것 그 자체가 문제이다. 처음부터 진솔 하게 그들의 입장을 말할 때에 진지하게 들었다면 오늘의 대란은 없었을 것이다. 전국 의과대학 교수들이 사직을 하는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현장 임을 명철하게 판단해야 한다. 또한 의사들 역시 다 잘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의사의 기본 정신은 희생을 대전제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국가가 얼마나 당신들을 어렵게 하고 약사들이 얼마나 당신들을 악용할지 라도 십자가를 지는 큰 이해와 수용이 앞선 의사라야지 적어도 고귀한 인 간의 육체라도 치료할 자격자라고 생각한다. 지금이야말로 서로 쓸데없는 고집을 버려야 할 때다. 한 일화를 적어보면, 그 누구에게도 양보를 모르는 매우 고 집쟁이 부자(父子)가 살고 있었다. 어 느 날 고집쟁이 아버지가 저녁 식사에 손님을 초대하고 아들에게 고기를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켰다. 아들은 고기를 사 가지고 돌아오다가 외길인 마을 입구에서 한 사람과 마주친다. 두 사람은 서로 길을 양보해 주지 않 고, 팽팽히 맞서서 온갖 시늉을 다하면서 서로가 먼저 가야한다고 주장한 다. 아들이 돌아오지 않자 밖으로 나갔던 아버지가 이 광경을 보고 아들에 게 말했다. “너는 어서 이 고기를 가지고 집으로 가서 구워라. 이 놈은 내 가 맡을 테니까” 하면서 대신 길을 가로막고 섰다고 한다. 노자의 말에도 “사람이 살아 있을 때는 몸이 유연하지만 죽으면 뻣뻣하게 굳어진다”는 말이 있다. 이 세상 만물이나 초목들도 생명이 있는 동안에 는 유연하지만 죽으면 말라서 딱딱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유연성 없이 딱딱한 것은 죽은 것이고 유연한 것은 살아 있는 것이다. 군대 또한 마찬가지다. 강하기만 해서는 전쟁에 이길 수 없다. 나무도 딱딱하면 잘려 서 재목이 디어 버린다. 한참 자라는 아이들을 보라. 세차게 잡으면 터질 것만 같고 뼈가 없는 것처럼 유약하지만 웬만큼 높 은 데서 떨어져도 아주 큰 상처가 생기지 않는 것은 유연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의 생활 에서 유연성이란 참으로 소중한 것이다. 생활 주변에 이런 실례들은 얼마 든지 있다. 자동차 엔진 오일의 역할은 참으로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고급 승용차일지라도 차량에 적합한 오일량을 항상 유지하는 것은 필수요건이 다. 만약 오일이 부족한 상태에서 차를 계속 운행한다면 머지 않는 날에 엔진이 힘이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엔진의 조속한 마모를 초래하기 때문 이다. 오일의 역할이 대소롭게 보이지만 이때에 오일의 유연성은 엔진의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강한 것만이 좋은 것이 아니라 유연 성이 강자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다투거나 분쟁하는 곳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갔다가 개인적 판단 으로 해결하려고 하다보면 전혀 생각지 못하는 어려움에 빠지는 경우가 없 지 않다. 그것은 앞에 두 부자의 비유처럼, 두 고집이 시소를 타고 있는데 또 하나의 고집이 교묘하게 가로막고 서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의 일상생 활 중에 이러한 경우가 다반사다. 그런데 왜 인생들은 잘 한다고 하면서 이처럼 기형적인 결과를 초래할까?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자신의 고정관념 에 객관성을 상실한 경우라고 생각한다. 상대를 수용하거나 이해하는 데 아주 인색한 빈틈없는 자신의 주장이 수많은 심령들을 울렸고, 울리고, 죄 없는 자들을 죄수로 만들고, 자신을 영웅시하며 우월감에 빠진 정신 이상 자(?)들이 우리 사회에 교회(노회, 총회)나 기업체나 국가기관 도처에 앞장 서서 활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누가복음에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에 등장하는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 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 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눅16:8)는 말씀처럼 세속의 주인이 불의한 청지 기의 용의주도한 처세술에 칭찬한 것을 보면 이것이 세상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사회, 발전된 문화배경 뒤에는 직업의 귀천에 관계없이 개개인의 소질과 인격과 능력을 높이 평가하고 인정하며그들을 앞장세울 때, 이들은 목숨을 걸고 희생을 각오하며 온 정성을 다 기우려 문화와 문 명의 발전에 기여한 것을 역사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우리의 삶의 현장에 양육강식의 생존경쟁 그 자체만을 할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인정하며 피차의 장점을 잘 살려 상호 보완적인 대안이 속히 뿌리를 내려 튼튼한 사회의 기 조가 되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다.
Selected no image 자부심 가지고 교단설립이념 지켜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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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9 2000-06-16
권태진 목사 자부심 가지고 교단설립이념 지켜가야 가정의 달을 지나 6월이 되면 나라와 겨레를 위해 희생한 이들의 가족의 아픔을 생각하게 된다. 오늘날 이만큼 살고 신앙의 자유를 누리게 됨은 하나 님의 은총과 선조들의 피와 땀흘림의 결실이다. 과거가 현재의 환경을 가져오 게 했다면 현재는 미래의 삶의 질을 결정하게 할 것이다. 그러므로 미래에 대 한 확실한 꿈이 없이 살아간다면 불확실한 미래속에 패배자와 방황자로 살아 갈 수밖엔 없을 것이다. 개인이나 가정 그리고 교회나 총회도 예외는 될 수 없다. 우리 교단의 과거를 보면 성경으로 돌아가야 된다는 이념이 있었고 열정도 헌신도 있어 합동신학대학원대학을 세웠고, 인본을 차단하고 신앙으로만 하 나 되길 원해서 지역조정까지 했다. 다른 교단에서는 하지 못하는 것을 하여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했다. 한편 지역조정을 해서 기득권 세력을 흩어버리려 는 고차원의 정치라고 하는 이들도 있었으나 그 열매를 오늘 따고 있으니 모 두는 하나님이 아시리라고 본다. 또 과거 한국교회가 행한 독립운동, 물산장려운동, 민주화 운동은 신선한 운동이었으나 현재는 너무 침체되어 있을 뿐 아니라 그 역사성을 잃어버리고 편의위주로 가는 것 같다. 남의 말보다 우리 총회를 생각해 보자. 장로교회 의 전통을 유지하면서 바르게 하려고 개혁이란 이름을 붙였다. 합신의 역사 가 얼마나 되었는가? 과거의 선배목사님들의 정통중시를 무시하고 '합신'이라 는 이름을 통해 군소교단으로 전락해 버린 것은 아닌가? 염려하는 이들도 있 다.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개혁이 여러 곳이니 본 교단을 구별하기 위해 '합신'이라 한다는 것이 지금은 이해가 가지만 10 년 후에는 그 배경은 없어지고 이름만 남을 것이다. 우리 교단이 잘하는 것도 많다. 그러나 미래를 염려하는 것은 교역자의 단 합이 부족하고 미래에 대한 구상없이 각 상비부가 움직인다는 지적이 있기 때 문이다. 모 상비부의 평신도 전도훈련에 타 교단 목사를 세웠던 것에 대한 일 선 목회자들의 부정적 여론도 있다. 총회에서는 회원의 목회에 도움을 주기보다 평신도 전도훈련에 강단 교류조 차도 꺼리는 교단의 목사를 세웠다는 것에 미래를 생각지 않는 처사라고 말하 는 이들의 소리를 경청해야 할 것이다. 목회자 세미나는 타교단 목사도 무방 하다고 본다. 목회자는 분별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신도 교육은 신학 과 신앙이 같은 본 교단 목사가 바람직하다. 특별히 하나 지적되어야 할 것은 교단의 청소년 교육에도 특별한 관심을 가 져야 한다는 것이다. 미래가 좌우될 중고등학생들의 수련회를 생각해 보자. 본 교단의 교회들이 매우 열악하므로 청소년들에게 많은 혜택을 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므로 좋은 환경을 만나면 속하고 싶은 청소년의 시기에 여러 교회 학생들을 모아 이름 있는 큰 교회의 청소년 담당 강사를 모셔서 훈 련한다면 결과는 어떻게 되겠는가? 교단과 교회의 자부심이 없으니 결과는 좋은 환경을 만들어 놓은 교회를 찾게 될 것이다. 필자를 큰 교회를 미워하거나 교단 이기주의에서 매여 있다고 오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속해 있는 교단과 교회에 대한 자부심은 있어야 한다. 그뿐 아니라 작은 교회에서도 큰 인물을 키울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 는 것이 필요하다. 또 본 교단의 목회 자나 성도들 가운데 상당한 실력자가 많 이 있다. 교단의 평신도 수련회나 학생들, 교사강습회등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본 교단 교수나 목회자들이 하는 것으로 해야 교단의 설립이념을 지켜갈 수 있을 것이다. 혹 부족하다해도 일군을 내부적으로 키워야 본 교단의 미래 가 아름다워질 것이다. 본 교단의 산하기관이나 협력기관의 전직원은 교단 교회에 속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 필자가 주장하는 것은 타교단에서 는 벌써 하고 있는 것을 말할 뿐이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님을 덧붙이고 싶 다. 신앙생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이 있어야 하고 입으로 선을 주장 하는 것 보다 상대가 피부로 느껴져야 선이 이루어지고, 초원에는 양들이 있 어야 하듯 목양지에는 구원 받은 성도들이 풍성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을 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바라기는 총회나 노회에 속한 모든 교회가 물댄 동산처럼 생명이 넘치기를 기도한다. 혹 표현이 직선적이거나 어리석은 생각이라면 지도를 부탁 드린 다. 죄인의 특징은 오해와 불신을 호흡하고 있기 때문에 환경을 잘 분별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 의 공로가 아니면 도저히 소망없는 이라 생각되는 작은 종의 소견을 필력합니다.
26 no image 한국교회의 미래를 준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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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3 2000-05-24
한국 교회의 미래를 준비해야 성희경 삼척만민교회 얼마전 모 일간지를 보니 향후 40년 후면 영국의 복음화 비율이 0.5% 까지 떨어질 전망이라고 한다.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미국도 현재 종교 다 원화 현상이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고, 그 세력 또한 만만치가 않다고 한다. 이제 미국에서도 터번을 두른 서양 회교도, 까까머리 서양 불교승려 를 만나는 것이 어렵지 않으리라.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준 소위 기독교국 이라고 자처하는 나라들이 이렇게 신앙적으로 무너져 가는 것을 보면서 남 의 일 같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들 나라들이 어떤 나라들인가? 우리가 소 유하고 있는 청교도 신앙이 싹이 되고, 꽃이 핀 나라들이 아닌가? 역사는 아무리 기독교 세력이 왕성할지라도 그 자체가 영원한 기독교의 미래를 보 장해 주지는 못한다고 말한다. 초대교회 기독신앙의 중심지가 되었던 소아 시아가 그렇고, 중세 기독교의 중심지가 된 유럽이 그렇다. 이제는 그 당시 찬란했던 먼 과거의 종교적 유산만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이 제 우리는 조국 교회의 장래를 깊이 생각해야 할 때다. 우리는 곧잘 6만 교회, 1,200만 성도라고 자부하며 한국 교회의 기적적 부흥을 이야기 한다. 기독교 전파 100여년만에 이 만큼 교회가 성장한 것은 물론 대단한 일이고 감사할 일이다. 그러나 방심하고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다면 또는 안일하게 미래를 대처한다면 우리 한국 교회의 앞날은 어두울 수밖에 없 다. 한국 교회는 벌써 성장에 있어서 침체 현상을 보이고 있다.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의 교회 출석도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 또한 일반인들의 교회를 보는 시각도 긍정적이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대로 간다면 한국 교회도 30 년 뒤엔 심각한 현상을 보이게 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현재의 부흥에 만 족할 것이 아니라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한국 교회의 미 래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며, 대책을 철저히 세워야 한다. 2세 교육 먼저 우리의 2세들인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 큰 관심과 투자를 아끼 지 않아야 한다. 현재 한국 교회가 부흥을 맛본 것은 과거에 어린이 전도에 힘을 쏟았기 때문이다. 어린이 전도협회를 위시하여 많은 어린이 선교단체 들의 역할도 큰 몫을 담당하였다. 실제로 8,90년대의 장년 부흥은 6,70년대의 주일학교 부흥이 그 중요한 요인의 하나가 되었다. 그런데 90년대 후반부터는 교회 학교 학생수가 크게 줄어들고 있는 현상을 현저히 보임에도 불구하고 교회 는 교회 밖을 맴도는 많은 불신 어린이들과 중고등부 학생들을 교회 안으 로 들어오게 못하고 있다. 물론 6,70년대의 시대적 상황과 2000년대의 시대 적 상황은 크게 다르다. 지금은 어린이들을 유혹하는 것이 워낙 많아 어린 이들을 전도하는 것도 예전 같지가 않다. 예전에는 북을 치면서 동네만 한 바퀴 돌아도 많은 어린이들이 따라왔다. 그러나 지금은 어림도 없다. 그렇 다고 해서 우리의 사정이 언제까지나 환경 타령만 할 형편이 아니다. 지금 씨를 뿌리지 않으면 2,30년 후에는 추수하지 못한다. 이제 신나는 추수는 끝났다. 지금은 땀을 흘리며 씨를 뿌릴 때다. 교회는 미래를 내다보며 어린 이들과 청소년 선교에 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철저한 신앙교육 다음으로는 우리의 성도들을 보다 철저히 신앙훈련을 시켜야 한다. 우리 개혁교단은 개혁주의 교회를 하자고 뭉친 교단이다. 우리가 섬기 는 교회 교인들은 개혁신앙을 가진 성도들인지 반성해 봐야 한다. 목사만 개혁신앙 가진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교인들도 개혁신앙이 무엇인지 바로 배워서 개혁파 교회 교인답게 살아야 한다.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끝까 지 굴복하지 않은 분들은 대개가 개혁주의 신앙을 가진 장로교 목사와 전 도사와 성도들이었다. 기독교 역사를 보아도 현대 선교 운동의 시조가 된 인도 선교사 윌리암 캐리가 칼빈주의자였고, 성경을 영어로 번역 완성한 죤 위클리프가 칼빈주의자였다. 또 18세기 미국의 대부흥의 중심에는 칼빈 주의자였던 요나단 에드워드가 서 있었다. 이처럼 역사는 왜 우리가 개혁 주의 신앙을 해야만 하는지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교회 현실은 어떤가? 한국 장로교회는 개혁주의(칼빈주 의) 신앙 전통 위에 세워졌음에도 불구하고 세월이 흐르고, 시대적 상황이 바뀌면서 개혁신앙은 점차 퇴색하고 온갖 종류의 잡다한 신앙 유입으로 그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다. 우리 교단은 나부터, 우리부터 개혁하자고 생긴 교단이다. 그렇다면 한번 쳐든 깃발을 끝까지 흔들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훌륭 한 개혁주의 신앙 유산들이 있다.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 대소요리문 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등이 그것이다. 이 귀한 것들을 바로 가르쳐서 교인들을 철저히 신앙무장 시켜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미래에 빈 예배당 을 보지 않으리라.
25 no image 지역감정 치유 위한 회개운동이 일어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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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1 2000-05-15
시론 지역감정 치유위한 회개 운동 일어나야 박성호(개금교회) 고향을 사랑하며, 고향 사람을 만나면 반가운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누가 애향심을 나쁘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러나 이것이 지나치게 될 때 지역 이기 주의로 변하고 분열하게 된다. 금번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서 나타난 결과를 볼 때 너무도 서글프다. 좁은 땅 덩어리를 동서로 나누어서 그 지역을 지지하는 당이 석권했다. 아니 다른 당 의 이름으로는 출마조차 힘들었다고 한다. 우리는 지역주의의 원조가 정치인임을 지목하고 규탄했다. 그것이 사실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 기독교계는 지역 이기주의 탈피를 위 해 얼마나 노력했는가? 지역주의를 타파하고 공명선거를 위해 정당 중심이 아 닌 인물 중심으로 투표할 수 있도록 좋은 후보자들이 공천되어야 한다. 그래 서 금번 선거 때 시민연대모임에서 몇몇 후보들의 전력을 조사하여 발표하게 된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행히도 우리 기독 교계에서도 공선거 위(공명선거실천기독교대책위원회)를 만들어 공명선거를 위 한 운동에 참여하였다. 정치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 우리 교회에서도 이번에는 공명선거 실천운동에 적극 참여했고 또 온 교우들이 기권하지 않도록 교육하며 선거 당일 투표에 방해되는 행사를 금했다. 그러나 결과를 볼 때 너무 가슴이 아프다. 이런 지역주의 타파는 캠페인이나 선거법 개정으로만은 근절될 수 없고 도덕 성 회복이라는 인간 본질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 해결책은 오직 신앙으로만 가 능하다고 흔히들 말해왔다. 그런데 과연 우리 기독교는 지역주의 타파에 앞장 설 준비가 되어 있는가? 어느 교단에서는 지역별로 돌아가면서 총회장을 선출한다. 왜 지역별인가? 정 말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지역별로 뽑아야 일이 되는가? 이것도 지역주의의 부산물일 뿐이다. 도 교단 총회를 앞두고 교계신문에 경쟁이라도 하듯 지역중 심의 모임들이 크게 광고되고 있고 그 지역 인물 총대 광고까지 나오고 있 다. 다행히도 우리 교단에는 그런 관행이 없다. 그러나 우리 교단 안에서 정 말 지역주의가 전혀 없는가? 이제는 우리 기독교계가 먼저 변해야 한다. 지역주의를 깨고 인물 중 심의 지 도자가 선출되도록 앞장서야 한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지역 神이 아니다. 토착 神도 아니다. 우주와 만물을 통치하시는 만유의 대주재가 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다. 우리 목회자가 먼저 지역주의를 타파한 후 성도들을 가르 치자. 그리고 지금까지 먼 산 바라보듯 했던 공명선거운동, 지역주의 타파운 동에 앞장서자. 그러기 위해 먼저 우리 안에 지역감정을 치유키 위한 회개운 동이 일어나야 한다. 그리고 먼저 기독교 안에서부터 인물 중심의 지도자를 선출하자. 또 지역주의 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들을 연구하고 실천하자. 예를 들면 경험적으로 볼 때 영호남 총각처녀들의 결혼운동을 벌이는 것도 동서화합에 큰 도움이 될 것 이다. 다시는 이 좁은 땅에 동서분열이 되지 않도록 우리가 힘써야 할 것이다. 우리 는 모두 한 하나님의 자녀요, 형제임을 잊지 말자. 다음 총선에는 이런 지역 주의 결과가 나타나지 않도록 힘쓰자. 후손들에게 이런 악순환이 되지 않도 록 하자. 지역감정 없는 아름다운 유산을 물려주자.
24 no image 부활절의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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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8 2000-04-23
부활절의 의의 정두섭 목사/ 전주소망교회, 전주공업대 교목 모든 만물이 소생하는 완연한 봄이다. 사람들은 봄을 가리켜 부활의 계절 이라고 부른다. 이 봄에 우리는 또 다시 부활절을 맞는다. 주님의 부활을 찬미하며, 부활의 복음이 온누리에 널리 전파되기를 우리 모두 두 손 모아 하나님께 기도한다. 그러나 우리는 부활절을 자연의 순환처럼 연례행사로 보내서는 안되며, 다시 한 번 부활하신 주님의 빛 아래서 우리 자신과 오 늘의 교회 그리고 이 세대를 조명하면서 부활의 의의를 되새길 수 있기를 바란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인류 최후의 원수인 사망의 권세를 깨뜨린 역사 적인 사건이었다. 그리고 부활생명은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복 음이 전파되는 현장에서 다시 사람들에게 역사적인 사건으로 재현된다. 그 러므로 부활절에는 부활절 잔치나 달걀 나누기 등의 떠들썩한 행사가 중심 이 되어서는 안되고, 그 무엇보다 부활의 메시지가 충실하게 선포되고, 이 를 음미하면서 세상에 널리 전파하는 일을 해야 한다. 그래서 부활 절을 복 음전도주일이나 초청주일로 하는 것이 좋겠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기독교가 서 있는 근거이며 동시에 우리 개개인의 신 앙의 근거이다. 바울은, 부활하심으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능력으로 증명하셨다고 했다(롬 1:4). 그러므로 부활을 부정하면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부정하는 것이며, 기 독교의 모든 것을 파괴하는 것이다. 우리는 부활을 관념적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런데 사실 오늘 현대 교회와 성도들이 점점 더 부활신앙이 관념 적으로 흐르고 있다. 부활의 그리스도를 주(主)로 고백하고 부활을 소망한 다고 하지만 얼마나 무기력하고 침체되어가고 있지 않는가? 주일낮예배의 출석률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새벽기도회나 철야기도회의 열기가 식고 있 으며, 주일오후는 아예 야외에서 즐기는 날로 변하고 있다. 이처럼 초대교 회의 신앙생활과 한국의 전통적인 신앙이 점점 퇴색하여가고 있는 것은 바 로 우리의 부활관이 관념으로 흐르고 있다는 것을 대변한다. 주님의 부활을 처음 목격한 제자들은 어떠했는가? 여인들은 뛰어가서 제 자들에게 알렸고, 베드로와 요한은 무덤으로 달려갔다. 곧 이어 엠마오로 갔던 두 제자들이 돌아오고, 흩어졌던 제자들이 모여들었다. 모두들 눈동자 가 빛나고, 호흡이 차고, 얼굴들이 붉게 물들어 상기했다. 부활신앙은 바로 이런 것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절망에 처한 인간에게 희망과 환희와 새 로운 삶의 감격과 열심을 불러일으킨다. 지금 우리는 체험적인 부활신앙을 회복하기에 힘을 써야 한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성도 부활의 첫열매이시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의 부활은 신자들의 부활의 전조(前兆)요, 그리스도께 속한 자들에 대한 영생 의 보증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생명과 삶과 고난에 동참 하지 않는 자의 내세의 부활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현재 우리의 삶이 부 활의 세계로 연결되어야만 한다. 부활의 소망이 없는 사람은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고전 15:3 2)”고 할 것이다. 그러나 진실로 부활신앙을 가진 사람은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살전 5:8)”고 고백하고, 깨든지 자든지 주님과 함께 살고자 한다. 주님은 성도의 부활의 완성을 위해 도적같이 오신다. 지금 주님이 내 앞 r 에 또는 우리의 생활현장과 교회안에 오신다면 우리는 주님을 어떻게 맞이 할까? 우리는 지금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없이 피상적으로 부활을 고대한 다거나 현재의 고난이 없는 부활의 영광을 버려야 한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 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고전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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