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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1 (15:53:19)

외모지상주의로부터 탈피하자

 

< 황대우 목사, 고신대 교수 >

 

교회 안에서도 비인간적이고 비인격적인 시각과 평가 난무해

   

어느 시대이건 외모에 관심이 없었던 적은 없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처럼 외모지상주의가 대세인 시대도 흔치 않아 보인다. 그래서 요즘 젊은이들은 외모에, 특히 얼굴과 몸매에 목숨을 거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이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은 아마도 연예인이 아닐까 싶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생김새가 보통 사람에 불과한데 자신과 다른 사람 모두에 대한 평가 기준이 연예인이니 어느 누가 미달이지 않을 수 있으랴! 이것은 참으로 어리석기 짝이 없는 평가 기준이다. 평범한 사람들끼리는 그냥 평범한 시각으로 서로를 봐주면 안 되나?

 

자신의 신체 일부에 조금만 자신이 없어도 스스로 루저’(:패배자, 불량품)라 여길 정도이니 얼굴이 크다든지, 몸이 뚱뚱하다든지, 키가 작다든지, 머리가 훤하다든지, 목이나 다리가 짧다든지 하는 사람들은 공공연한 외모 루저들로 취급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외모에 대한 평가는 이보다 훨씬 상세하다. 눈이 찢어졌다느니, 눈썹이 처졌다느니, 코가 작다느니, 입이 크다느니 등등. 이러한 비인간적이고 비인격적인 시각과 평가가 바깥세상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공평하신 하나님을 믿는 교회 안에서도 판을 치고 있다. 참으로 안타깝고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이 때 예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린 시절이나 청년 시절이 아름다움의 절정인 사람도 있고, 장년이나 노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아름다움의 향기가 나는 사람도 있다.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 외에는 외모가 아무리 내놓을만하지 못하다 할지라도 그런대로 아름답게 봐줄만한 시기가 한 때도 없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인지 아이 때부터 줄곧 죽을 때까지 외적인 아름다움을 소유한 사람은 거의 없고, 자신이 원하는 아름다움을 끝까지 유지하는 일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충분히 아름답고 부러움의 대상이지만 정작 당사자는 자신의 아름다움에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이것은 외모로 먹고 사는 배우들의 인생만 보아도 금세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사람은 누구나 외면이든 내면이든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누가 무엇을 얼마나 더 가지고 덜 가졌는가 하는 양적 차이가 있을 뿐이다.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잘난 사람은 잘난 대로 살고 못난 사람은 못난 대로 살게 되어 있는 것이 인생이다. 하지만 인생은 우리에게 100% 잘난 사람도, 100% 못난 사람도 없다는 사실을 가르쳐준다.

 

한 사람의 인생을 절대 평가할 때도 그가 누구이든 인생의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두 사람의 인생을 상대 평가할 때도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모든 인간은 각자 공평하신 하나님의 위대한 작품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주어진 24시간이 공평하듯이 한 사람의 인생도 절대평가와 상대평가라는 두 잣대로 동시에 재어보면 나름대로 공평한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지나치게 상대평가만 하다 보니 불공평하게 느끼는 것이 아닌가 싶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인생이 나름대로는 공평하다고 생각할 때 비로소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도 진정한 만족, 절대평가의 만족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야 말로 성경이 가르치는 '분수대로'의 인생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것이 결코 인생의 패배주의나 운명론을 긍정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다음과 같이 고백한 욥이 패배주의자나 운명론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 지니이다"(1:21).

 

하여 오늘도 바울처럼 고백하며 우리는 이 하루를 살아가길 소망한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4:11-13).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자녀, 즉 최고의 사람들이 아닌가! 우리 자신의 환경뿐 아니라 외모에도 '자족의 비결'을 배우면 좋겠다.

 

물론 공주병과 왕자 병에 걸린 환자가 되자는 것은 결코, 결단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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