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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17 (17:26:43)

종교개혁 정신과 참된 부흥

 

< 황대우 목사, 고신대 교수 >

 

부흥은 하나님의 손에 달린 역사라는 사실 겸허하게 인정해야

 

 

오늘날 한국 교회에 만연한 단어 전도는 오직 하나의 목표, 즉 부흥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다. 혹자는 이 부흥을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한국교회는 부흥하기 위해, 즉 교회 성장을 위해 목숨을 걸고 있다.

 

전도에 목숨을 거는 이유는 하나님 나라가 부흥을 통해, 교회 성장을 통해 확장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논리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만일 이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아마도 한국교회의 반역자요, 나아가 기독교 자체의 반역자로 낙일 찍힐 것이다.

 

하지만 아닌 것은 아니라고 외쳐야 한다. 이러한 교회성장 논리를 뽑아낼 수 있는 근거가 성경 어디에 있는가? 교회의 수적 성장이 곧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라는 공식은 성경 어느 구절에 근거한 것인가?

 

대부분의 한국 장로교회는 신학적으로는 칼빈과 에드워즈를 내세우면서도 실제적으로는 찰스 피니의 부흥 논리로 실리를 채우고 있다. 이 찰스 피니 식의 부흥 논리가 한국 교회를 멍들게 하고 있다. 나아가 한국 초대 교회의 부흥 역사뿐만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전도의 의미까지도 왜곡하고 있다.

 

성경의 가르침에 따르면 전도는 결코 부흥을 위한 수단이 아니다. 왜냐하면 전도 그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도, 구원의 도를 온 세상에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지 전도를 통해 교회가 부요해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은 아니다. 교회의 부요는 나타날 수 있는 하나의 결과일 뿐이다.

 

한국교회는 21세기인 지금도 하면 된다’, ‘할 수 있다’, ‘하자는 구호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아직도 19세기 찰스 피니 식의 부흥 논리에 사로잡혀 있다. 여기서 우리는 19세기 부흥과 피니의 부흥 논리를 동일한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18세기 부흥은 19세기 부흥보다는 오히려 16세기 종교개혁에 더 가깝다. 18세기 부흥 사건과 16세기 종교개혁의 주체는 모두 하나님이신 반면에 19세기 피니 식 부흥운동의 주체는 인간이다.

 

이 둘을 날카롭게 구분하는 것이 교회 현장에서는 별 도움이 안 될지도 모른다. 아니 오히려 방해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독교는 분명 가시적 현상의 종교가 아니다. 성경도 이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한국 교회와 교인들이 가시적 현상, 즉 결과만을 존중하는 듯한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만일 이러한 태도가 소수의 사람들이 우려하는 목소리처럼 인간적인 욕심이 잉태한 결과물이라면 분명 한국 교회는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결코 19세기 부흥운동을 폄훼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찰스 피니 식의 부흥 논리에 심각한 문제가 있고 그것이 전 교회 역사 속의 건전한 부흥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함으로써, 이와는 대조적으로 18세기의 부흥운동과 16세기의 종교개혁운동이 동질의 역사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하자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부흥은 하나님의 손에 달린 하나님의 역사이다. 어디 부흥뿐이겠는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모든 일이 그와 같을 것이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16:9).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고전 3:6-8).

 

이것이 최고의 전도자 바울의 자세이다. 바울은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이돌아가기를 바란다. “심는 이나 물 주는 이, 즉 가시적인 일을 수행하는 사람은 아무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결정적인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최고의 기독교 윤리 즉 겸손의 철학이 숨겨 있다.

 

진정한 부흥은 어느 시대이건 신앙적 겸손과 용기가 함께 만나는 장소에서만 일어난다. 또한 그 두 은사를 함께 소유한 사람을 통해 일어난다. 16세기 종교개혁가들이 그런 사람들이었고 18세기 에드워즈가 그러한 인물이었다.

 

이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겸손과 용기를 소유한 사람들이었음을 잊어선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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