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타락한 인류에게 임한 하나님의 심판

 

< 김영철 목사, 미문교회 >

 

죽음은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모두 잃어버리고 마는 것으로 나타나

 

 

하나님을 배반한 일로 생긴 결과는 사람 사이에서도 나타났습니다. 선악과를 따먹기 이전 아담과 하와의 관계는 서로 상응하는존재로서 조화를 이루며 일하던 동역자(同役者)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들의 관계는 근본적으로 이지러지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그들은 더 이상 상응(相應)하는 관계를 유지하기를 원하지 않고 오히려 상대방을 지배하기를 간절히 바라기 때문입니다.

 

1. 인류의 타락이 가져온 우주적인 부패

 

겉으로 보기에 남자는 단순히 아내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먹었으므로 이 범죄에 관한 한 단순 가담자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 남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금지 명령(2:17)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이 일에 관한 한 그는 자기 아내의 말을 들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녀를 조심시켜서 그 실과를 따먹지 않도록 해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그 실과를 먹었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잘못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그의 행동은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경멸하고 배신하기로 결심하지 않고서는 행할 수 없는 일입니다. 자신이 직접 하나님에게서 들은 말씀보다도 아내의 말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짓말로 판단하였거나 그런 말씀을 하신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단순히 여러 동물 중의 하나로 지으신 것이 아니라, 사람이 더불어 살아가는 모든 환경에 대한 진정한 책임자로 세워 만물을 다스리도록 하셨음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따라서 사람이 하나님을 배신하지 않는 한 사람의 책임아래에 있는 환경 전체가 하나님의 복을 누릴 수 있었는데 불행히도 사람의 배신 때문에 환경 전체가 저주아래에 놓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2. 죽음 아래 놓이게 된 인류

 

하나님께서 심판의 말씀을 하시는 현장에는 뱀과 여자와 남자가 있었습니다. 심판의 말씀은 참으로 준엄한 것이었고 이런 심판의 대상이 된 사람은 이제 저주 아래에서 살아가야 했습니다.

 

저주는 다름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 때에 의도하신 대로 이제껏 에덴동산에서 누려 왔으며 장차 더욱 풍성하게 누릴 수 있는 하나님의 복을 전혀 누릴 수 없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사람뿐만 아니라 사람이 더불어 살아갈 환경, 즉 땅과 온갖 생물들도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 심판의 말씀 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하여 앞으로 행하실 일을 말씀하셨는데 이것이야말로 사람에게는 진정한 소망이 되는 말씀이었습니다.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2:17)는 하나님의 말씀은 빈말이 아니었습니다. 금지된 나무의 실과를 먹지 않는 한 그들은 하나님의 동산에서 살 수 있습니다. 단순히 목숨만 유지하는 정도가 아니라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모든 복을 누리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생명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들은 그 실과를 따먹음으로써 이러한 생명을 누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죽음이란 단순히 목숨이 끝나는 것에만 적용할 수 있는 표현이 아닙니다. 죽음은 살아 있기에 누릴 수 있는 것들을 하나도 누릴 수 없고 모두 다 잃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여기서 의미하는 죽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으로 하여금 더 이상 에덴에서 복을 누릴 수 없게끔 단호한 조치를 취하십니다.

 

마치는 말

 

사람은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뱀의 말을 듣고 실과를 따먹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와의 말대로(3:13) 속은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같이 되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이미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동산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살며 모든 복을 누리는 존재였습니다. 부족하기는커녕 모든 면에서 풍성하고 윤택한 삶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탐욕이 그를 타락의 늪에 빠져들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Selected |반듯하게 성경읽기 <6>| 타락한 인류에게 임한 하나님의 심판_김영철 목사
편집부
3094 2014-01-14
280 |반듯하게 성경읽기 <5>| 타락한 인류의 두 갈레길_김영철 목사
편집부
3004 2013-12-30
279 |반듯하게 성경읽기 <4>| 아담과 하와의 ‘눈이 밝아졌다’는 말의 바른 이해_김영철 목사
편집부
3534 2013-12-17
278 |반듯하게 성경읽기<3>| 돕는 배필을 주신 하나님의 뜻에 대한 바른 이해_김영철 목사
편집부
4655 2013-09-24
277 |반듯하게 성경읽기<2>| 에덴동산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 대한 바른 이해_김영철 목사
편집부
3756 2013-09-10
276 |반듯하게 성경읽기<1>| 창세기의 '흙'과 '생기'에 대한 바른 이해_김영철 목사
편집부
4410 2013-08-27
275 |신학단상<50>-마지막회| 인간의 욕망_조석민 목사 (210)
편집부
10980 2011-11-29
274 |신학단상<49>| 진실과 거짓의 싸움_조석민 목사 (19)
편집부
6232 2011-11-01
273 |칼빈의 편지들(11)| 섭정 시모어 경께_장수민 목사 (266)
편집부
12325 2011-09-07
272 |신학단상<48>| ‘공정사회’와 ‘공생발전’_조석민 목사 (129)
편집부
7167 2011-09-07
271 |신학단상<47>| 성범죄와 노출이 심한 옷_조석민 목사 (101)
편집부
6401 2011-07-20
270 |신학단상<46>| 무상급식을 바라보는 그리스도인의 시각_조석민 목사 (20)
편집부
4577 2011-06-22
269 |신학단상<45>| 민주화된 사회 속의 교회_조석민 목사 (79)
편집부
7608 2011-05-25
268 |칼빈의 편지들(10)| 비레에게 _ 1547년 7월 2일 _장수민 목사 (11)
편집부
5823 2011-04-06
267 |신학단상<44>| 지진과 인간의 재앙_조석민 목사 (13)
편집부
5252 2011-04-06
266 |신학단상<43>| 공정사회를 위한 그리스도인의 책임_조석민 목사 (9)
편집부
4900 2011-03-09
265 칼빈의 편지들(9)쟝 프렐롱 경께_장수민 목사 (142)
편집부
9115 2011-02-23
264 |영혼의두레박<8>| 사랑하는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_유순아 박사 (90)
편집부
6807 2011-02-09
263 |신학단상<42>| 말 못하는 피조물(被造物)들의 신음소리_조석민 목사 (20)
편집부
5442 2011-01-19
262 |영혼의두레박<7>| 우울증, 고통의 터널 지나 치유의 강가로_유순아 박사 (26)
편집부
6308 2010-12-15
Tag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