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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20 (20:03:12)

인간의 보편적 삶의 원칙

 

< 오영원 목사, 산들교회 >

 

“인간은 상호간에 긍휼히 여길 수 있는 세상의 유일한 존재”

 

‘사회적 원자’라는 책이 있습니다. 미국의 이론 문리학자인 마크 뷰케넌이 저술한 책입니다. 이 책의 핵심은 인간의 집단 광기, 군중 심리를 사회적 원자개념으로 설명하면서 사람도 원자처럼 법칙을 따라 방향성이 생기면 그 흐름을 쫓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뷰케넌은 사람을 사회라는 물질을 이루는 ‘원자’로 보고, 이러한 원자들이 서로 상호 작용을 하면서 패턴이라는 집단의 행동과 기준을 만들어 내고, 그렇게 수립된 집단의 행동과 기준이 다시금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상호 작용의 시각으로 바라본 것입니다.

 

그는 인간을 진화하는 기회주의자라고 정의하였습니다. 인간들은 사회적 여러 흐름에 따라 적응적인 기회주의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의 일부는 이성과 논리로 작용함으로써 본능 시스템이 저지르는 오류를 막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인간의 마음에 있는 의식적인 부분이 강할 수 있는 것은 논리 때문이 아니라 적응하는 능력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사람은 패턴을 알아보고 변하는 세상에 적응하는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세상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세상에서 배운다는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배우며, 사람들이 무엇을 믿고 왜 믿는지는 사람들 사이의 상호 작용에 크게 작용된다는 것입니다. 합리적인 계산기로서 자신보다는 타인의 이야기와 움직임에 자주 영향을 받고 따라 하는 것이 ‘사회적 원자’로서 인간의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비슷한 방식으로 그는 파시즘의 대두와 인종 청소(세계 제2차 대전 때 독일의 유대인대학살과 같은), 집단간 반목과 소득 격차를 설명합니다. 특별히 다른 인종을 싫어하지 않더라도 고립을 싫어하는 인간의 본성으로 말미암아 자연스럽게 인종 간 주거지가 분리된다는 것입니다. 개별 인자들의 차이가 없더라도 ‘사회적 원자’들은 생존에 가장 효과적인 전략을 위해 비슷한 집단끼리 뭉치고, 상대를 공격하며, 진화론으로 설명되지 않는 이타주의와 희생은 집단 생존의 관점에서 보면 설명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독일 태생의 미국 정치 철학자 해나 아렌트(1906-1975년)는 나치의 대량학살을 도운 혐의로 체포되어 재판을 받는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을 지켜보고 ‘악의 평범성’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아이히만은 악마가 아니라 자신이 맡은 일을 충실하게 해낸 아주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다만 그에게는 타인의 처지에서 생각하는 능력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하는 일의 결과와 의미, 그에 따른 타인에 대한 이해 관계를 판단할 능력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은 그렇게 평범한 모습을 하고 뿌리를 내린다는 것입니다.

 

곧 인간은 공유적 존재로서 내가 행하는 그 어떤 일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되는가를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 존재들입니다. 이를 깨닫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은 아집과 독선에 빠지기 쉽고, 그래서 자신이 하는 일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나쁜(악한) 영향을 끼치는가를 아이히만처럼 판단할 능력을 잃게 되면 ‘악의 평범성’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타인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기도 하고, 고통을 주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의 세계를 보면서 인간의 삶을 바르게 세워나가며 타인들에게 선한 영향을 끼치면서 하나님의 창조물들에 대한 사랑을 공유하며 살아가도록 인도하는 곳이 바로 교회여야 합니다.

 

인간성의 파괴는 이기주의와 물량주의로 변하게 하고 인간 생존의 필수조건으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최상의 상태인 자연을 파괴함으로써 인간들 스스로 재난을 불러드리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물량주의와 편리함만을 자극하는 산업의 발달은 인간들을 조급하게 만들고, 창조력을 저하시킬 뿐 아니라 질서를 깨뜨리고 있으며, 서로를 배려하며 안식을 취할 수 없는 상태로 몰고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삶의 질과 방식의 변화는 먼저 ‘인간들의 심성의 악함’(즉 ‘악의 보편성’)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인간은 기계가 아닙니다. 생산의 도구도 아니며, 컴퓨터도, 로봇도 아닙니다. 양육강식하며 사는 동물도 아닙니다. 인간은 어디까지나 인간이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인간됨의 본질성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앞에서 말한 뷰케넌의 이론인 ‘사회적 원자’의 원리에서 벗어나 하나님께서 세상에 정하신 인생의 원칙인 ‘이웃 사랑’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율법은 다른 사람들의 죄를 재고,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는 잣대가 아니며, 자신을 비춰보는 거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는 하나님께서 주신 ‘최고의 법’이 그 안에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주신 ‘최고의 법’인 성경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압축되어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좋은 점 중 하나가 동물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물인 만물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인간 상호간에 긍휼히 여길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할 것입니다. 여기에서 벗어날 때 사회악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들에게 사랑의 씨앗을 심으시고 그 사랑으로 만물을 다스리도록 하셨습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보편적 삶의 원칙이 바로 ‘긍휼’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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