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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10 (15:59:01)


노인과 교회


< 이예원 목사, 원주 새동네 교회 >


부모를 공경하라는 명령은 하나님의 가족 공동체에 주신 것

 

헤밍웨이 명작 노인과 바다에 등장하는 노인은 바다에서 청새치를 두고 상어와의 외롭고 처절한 싸움을 벌이며 자신의 늙어 가는 삶을 그리고 있다. 과연 나이 늙어 감이 무엇일까?

 

나이 늙어 감은 복일까? 저주 일까? 정말 외롭고 쓸쓸하게 인생을 마감해야 하는 시기인가? 점점 나이가 늙어 감에 따라 기억력도 약해지고 몸도 온갖 종류의 약으로 겨우 지탱하며 통증과 쇠약한 육체를 유지해가야 한다.


이쯤 되면 나이 먹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저항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생리적 현상으로 받아드릴 수밖에 없지만, 늙어갊을 저항할 수 만 있다면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온 삶의 집중을 예방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는다.


치매 예방, 암 예방에 수많은 식물과 운동법이 화두이다. 한국인만큼 음식들이 어디에 좋은지 많이 아는 사람들도 드물다. 심지어는 암 치료를 포함한 온갖 노인 질병 보험이 노인들의 질병을 해결해 줄 것처럼 선전한다.


이제 60을 향해 가며 늙어 가고 있는 시골 교회의 목사인 내가 이러한 현상들을 문화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넘어 공감대를 형성하는 나를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나는 어떻게 준비해야하는지 이제라도 고민을 시작해 본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싸움이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의 소망이 점점 더 가까이에 있을 진데 왜 이렇게 늙어 가고, 죽어 가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와 영생의 가치관으로 이루어 가는 문화가 만들어 지지 않을까? 어쩌면 우리 교회의 본질적 가치를 우리 스스로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가족이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며 섬기는 하나님의 가족이다. 여호와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성령으로 거듭남으로 재창조해주신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이 관계는 피로 이루어진 혈육의 관계보다 더 가치가 있고 더 친밀감이 있어야 한다

 

누구든지 창조주 하나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른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한 아버지 안에서 살아가는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요 아버지요, 아들과 딸들이며, 손자들이다. 그래서 부모를 공경하라는 십계명의 명령은 부모에게 한 명령이 아니다. 이것은 자녀들에게 하신 첫 명령이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교회에게 자녀들에게 다시 확인 시키시는 이유가 여기 있다. 실제로 누가 내 부모일까? 하는 질문이다. 혈육의 부모와 형제들에게만 자녀로서 형제로서 공경하고 돌봄의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


사도 바울은 당연히 개개인의 육체적 부모에 대한 책임을 강조한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딤전 5:8).


그러면서 이전에 다모데에게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버지에게 하듯 하며 젊은이에게는 형제에게 하듯 하고, 늙은 여자에게는 어머니에게 하듯 하며 젊은 여자에게는 온전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딤전 5:1-2)고 명하면서 우리가 돌보아야 할 부모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가족에까지 확대하고 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명령은 개인에게만 주신 것이 아닌 하나님의 가족 공동체에 주신 것이다. 그러니, 노인의 문제는 바로 내 문제이고 내 교회가 해결해야 될 명령이다. 때문에 교회는 노인들이 늙어가며 인생을 쓸쓸히 외롭게 마감하게 해서는 안 된다. 죽음이라는 바다에서 외롭고 처절하게 혼자 싸우게 해서는 안 된다.


교회는 죽음을 하나님 나라 영생의 소망이 가득한 삶이 되도록 함께 삶을 공유해야 할 지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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