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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10 (16:00:11)


애소(哀訴)


< 이은상 목사, 동락교회 >

 

때론 하나님 앞에서 연약함 호소하는 것도 건강한 신자 모습

 

 

교회 여성도들 모임에서 합창을 하다 함께 운적이 있었습니다. 그 노래는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한 채 고기 잡는 아버지와 철모르는 딸 있네~’로 시작되는 미국동요 내 사랑 클레멘타인’(Oh, My Darling Clementine)입니다.

 

이 노래는 미국 서부개척시대의 골드러시라 불리던 때에 금광을 찾아 일확천금을 꿈꾸며 서부로 몰려왔던 포티나이너(forty-niner)들에 의해 만들어진 노래라 합니다.


당시 이들은 열악한 환경과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고 영양실조와 인디언의 습격 등으로 많은 수가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또한 자신들이 캐낸 황금이 자본가들의 배만 불려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허탈감에 빠져 자조 섞인 노래를 부르게 되었답니다.


동굴과 계곡에서 금맥을 찾던 한 포티나이너에게 클레멘타인이라는 딸이 있었지


이 노래의 배경처럼 그리스도인들도 가끔은 인생을 한탄하며 자조 섞인 슬픈 노래를 부르고 싶을 때가 있다고 봅니다. 마음이 푹 가라앉고 모든 일을 팍 놓고 싶을 때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이지요.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이 슬픈 정서를 노래하는 것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요? 믿음이 떨어졌다고, 아니면 항우울제 처방이라도 내려줘야 할까요? 혹은 금식기도를 통해 마귀를 무찌르고 영적전투에서 승리하라고 권면해야 할까요? 이에 대한 해답을 성경의 인물의 통해 찾을 수 있는데 바로 욥입니다.


욥은 고통에 빠졌을 때 인생무상을 읊조리게 됩니다. 허무하고 힘든 인생 하루라도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 단 하루만이라도 마음 편한 날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넋두리를 합니다(14:1-6).


이 욥기14장의 내용은 논리적, 이성적 분석보다는 그냥 할 말도 없고 대책도 없는 인생이 혼란가운데서 넋두리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박영선, 욥기설교). 한편 정암은 욥의 넋두리를 끈질긴 신앙의 애소(슬픈 하소연)라고 표현했으며 그리고 이런 신앙인을 높은 차원에 속하는 신앙인이라고 하였습니다(박윤선, 욥기주석).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도 고통과 어려움에 처하면 울고불고 한탄하며 인생 넋두리를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성경은 우는 자들의 울음을 믿음으로 멈추게 하라하지 않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하였습니다(12:15)


그렇다면 왜 신자에게 슬픈 정서가 필요할까요? 그것은 바로 신자는 연약함을 깨달을수록 하나님께 더욱 더 소망을 두기 때문입니다(39:4, 7). 인간이 스스로 비관하게 될 때 자신감은 내려가고 하나님을 향한 신뢰감은 올라가게 된다는 말입니다.


눈물이 반드시 패배나 비겁함이나 연약함의 표현은 아닌 것입니다. 울부짖음은 믿음의 진리를 찾아나서는 문이며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희미하게 알아가는 길입니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전능자 하나님을 찾게 되는 슬픈 정서는 도리어 자신만만하다가 신앙의 길에서 뚝 떨어져버리는 것보다 더 낫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교회지체가 혹여 슬픔에 빠져있다면 믿음이 없어서 그렇다라고 판단하면 안 됩니다. ‘죽고 싶다거나 못 살겠다라는 표현을 반드시 신앙의 타락으로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다만 실존 안에서 겪어내는 정서적표현인 것입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이런 강한 정서도 멋있지만 하나님 차라리 얼른 데려가 주세요. 저는 더 이상 못해먹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이런 정서도 건강한 신자의 고백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매사에 주여, 주여 하는 자들이나 억지로 괜찮아, 괜찮아 하는 자들이나 같은 외식증입니다. ‘울면 안 돼라는 노래가 성탄절만 아니라 가부장적 집안이나 노란리본 현장에서도 히트 치곤 하지만 이 노래는 금지곡이어야 합니다.


세상 밖에서는 눈물 젖은 두만강을 부르다가 교회만 오면 십자가군병들로 모드를 속히 바꾸지 말고 주께 애소를 불러봅시다.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소리 맘이 설레어/다 못 찬 굴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옵니다‘(섬집아기 2).

 

그래서 우리는 주님, 저는 실존 안에서 지금 무지 슬픕니다. 어찌해야 합니까?”라고 울부짖기도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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