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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15 (17:55:37)

 

소요리문답을 넘어 대요리문답으로

 

< 황희상 형제, 안산푸른교회 >

 

삶의 실천적 원리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어

 

한국 교회, 특히 장로교회는 너무 단순한 것만 찾고 짧은 것만 좋아하는 풍조를 버려야 합니다. 갑자기 이런 부정적 멘트로 글을 시작한 것은 얼마 전에 있었던 어느 세미나에 참석한 어떤 분과의 대화 때문입니다.

 

이 분은 3주 후에 목사 안수를 받는데, 저녁 때 세미나 소감을 말하는 자리에서, 지금까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나 대소요리문답을 단 한 번도 배워본 적도, 배워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물었습니다. “헌법에 신조가 나오지 않나요? 목사 안수 받을 때 시험도 본다고 아는데요?” 그런데 이어지는 대화를 통해 이 분이 말하는 것이 어떤 상황인지 정리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12신조 때문입니다. 많은 신학생들이 신조라고 하면 의례히 ‘12신조를 떠올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알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 오늘날 장로교회의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단순하고 짧은 고백만으로 만족하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 대한 관심은 두지 않도록 만드는 이러한 풍조는 우리나라 선교의 초기 때부터 이미 싹튼 게 아닌가 싶습니다. 곧 감리교와 연합했던 초기 선교 역사에서, 인도의 교회들에서 받아들였던 ‘12신조를 가져다 쓰기로 한 그 결정이, 오늘의 결과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모르긴 몰라도, 한국의 교회에서 소요리문답을 가르치는 경우는 있어도 대요리문답을 교육 과정으로 선택하는 교회는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것은 영국과 미국을 비롯해 오늘 날 전 세계 어디에서도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유산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요리문답은 이제라도 성인을 대상으로 충분히 가르칠만한 문답서라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늘 주일학교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소요리문답만을 배워야 하는 점이 안타깝습니다.

 

교회의 전통을 소중히 여기고 성경적 진리가 순수하게 보존되기를 원한다면, 대요리문답을 적절히 가르칠 수 있는 적당한 교재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비록 우리네 교회가 연약함으로 인해 아직까지 시도하지 못했다면, 지금이라도 노력해서 새롭게 만들어 써야 하는 것이 진리의 기둥으로서 말씀을 보존하고 전파해야 할 교회의 사명일 것입니다.

 

물론 소요리문답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라는 의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요리문답과 대요리문답은 단순하게 '분량''난이도'의 차이가 아니라, 그 목적부터 달랐던 문서입니다. 물어보는 질문 자체가 그 질문을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고, 또 그 답변 역시 그 질문에 그렇게 답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대요리문답은 어른 성도 및 목회자 후보생들에게, 그 인생의 다양한 적용점을 두고 실천적 명제를 던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발생하는 여러 의문점이나 논쟁거리를 가지고 성경에서 이끌어낸 성도들이 살아가는 삶의 실천 원리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소요리문답과 완전히 다른 문서입니다.

 

그래서 대요리문답 교육의 회복은 매우 중요합니다. 특별히 교회와 신학교의 교육 과정에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올해들어 총신, 고신, 백석을 비롯한 몇몇 신학교들에서 소요리문답이나 신앙고백서 관련 과목이 '선택과목'으로 추가되었다고 합니다.

 

이는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면서도 한편 아쉬움이 남습니다. 너무 늦은 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차제에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 관련 과목들을 선택과목이 아닌 필수과목으로 편성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개인적으로 청년들과 함께 대요리문답을 2년간 공부한 적이 있었는데, 그 유익이란 뭐라고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어디를 가서든 자랑하고 싶은 경험이었습니다. 그때 함께 공부했던 청년들은 그런 교육이 또 이루어질 수 있다면, 그것을 위해 필요한 일이 있다면 어떻게든 무엇이든 헌신하고 싶다고 약속했고, 실제로 지금 그들은 이 일에 헌신하고 있습니다.

 

바라건대 한국 교회가, 특히 장로교회라면 소요리문답을 넘어 대요리문답 교육으로 그 지평을 넓히길 소망합니다. 특별히 한국 장로교회의 기둥과 같은 우리 교단이라면 의당히 그렇게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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