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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11 (21:04:39)

나를 위한 것이 아닌, 하나님을 위한 신학

 

< 전두표, 시광교회 청년부 >

 

시작하는 말

 

개혁주의자들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진 것으로, 신앙과 생활의 법칙이 된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2. 이하 WC)고 고백합니다.

 

또한 그들은 성경은 하나님의 무오한 진리요 신적 권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써(WC 1:5) 하나님 자신의 영광과, 인간의 구원, 신앙과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에 관하여 하나님이 가지고 계시는 모든 계획은 성경에 분명하게 기록 되어(WC 1:6) 있음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개혁주의자들은 개혁신학이야 말로 그러한 성경을 가장 바르게 해석하는 신학이라고 자부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성경과 그 신학에 대한 개혁주의자들의 고백이 정말 틀림없는 사실이라면 다른 그리스도인들도 그것을 쉬이 받아들이고 같은 고백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에 대한 그들의 고백 중 어느 부분은 동일하게 고백 되지만, 그들의 신학 전반은 심한 반대를 겪고 있습니다.

 

이처럼 개혁신학이 심한 부침을 겪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겁니다. 다음 두 가지가 기장 큰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1.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대한 사람들의 거부감

 

개혁신학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은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그 자신을 수동적인 로봇이나 본능을 따라 사는 짐승이나 무가치한 돌맹이로 취급당하는 느낌을 줍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은 인간에게 일종의 모멸감을 안겨 줍니다. 한 마디로 개혁신학은 인간의 존재성과 가치를 무시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또한 개혁신학은 인간을 발가벗깁니다. 그 깊숙한 곳에 꽁꽁 숨겨둔 죄를 적나라하게 들추어냅니다. 그 죄악된 본성을 만천하에 드러냅니다. 자꾸만 죄를 들추니 수치스럽습니다. 반대로 인간을 자꾸만 범죄자라 하니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특별히 나쁘게 살지도 않았고, 법을 크게 어기지도 않았는데 죄인이라고 하니 기가막힙니다. 범죄자 취급을 하니 모욕감을 느낍니다.

 

자기 인생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라거나 혹은 하나님을 자기 인생에 있어서 부수적 도우미로 여기는 대다수의 인간이라는 존재에게 개혁신학의 특성들은 참을 수 없는 거부감과 고통을 줍니다. 그것은 개혁신학을 받아들일 수 없는 내적 요인이 됩니다.

 

2. 경계해야 할 불경건한 엘리트주의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개혁주의자들에게서 종종, 아니 자주 나타나는 모습이 있습니다. 그들의 삶에는 적어도 외적으로는 경건함이 거의 없어 보입니다. 그들은 성령의 열매를 의미 없는 껍데기로 여기는 듯합니다.

 

다시 말해서 개혁주의자들은 믿음과 행함이 불일치합니다. 그들은 믿음을 크게 강조하지만 행함은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습니다. 개혁주의자들에게 있어 신앙은 믿음만이 전부인 듯 느껴집니다. 행함을 외면하고 그들에게서 신앙인에 어울리는 행함이 안 보이는 것을 보면 개혁신학이 원래 그런 것인지, 과연 개혁신학이 바른 신학이 맞는지 의심스럽습니다. 그들의 신학이 더 나아 보이지 않습니다.

 

개혁주의자들은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이류, 신앙의 미달자로 취급하는 태도를 자주 취합니다. 다른 그리스도인들은 무식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한심한 자들로 여기는 것 같습니다. 반대로 자신들을 특권층에 속한 엘리트 신앙인으로 여기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저 무가치한 영지주의자들처럼 마치 자신들이 가진 지식만이 구원에 이르게 하는 비밀스러운 참 지식으로 여기는 것처럼 보입니다. 자신들만이 옳다는 태도는 독선을 넘어 맹신으로까지 보입니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인데, 개혁주의자들은 메마른 지식으로 형제와 자매들에게 큰 상처를 줍니다. 어떠한 사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 거침없는 독설을 내뱉습니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기에 형제와 자매의 오류와 무지를 겸손한 자세로 알려주기보다는 고압적인 태도로 교정하려 듭니다. 그것은 마치 칼날을 목에 들이대며 위협하는 듯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한 개혁주의자들의 태도는 그 신학에 환멸을 느끼게 하며 그것으로부터 돌아서고 거부하게 하는 결정적인 외적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개혁주의자들은 그러한 자신들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저들은 죄악된 본성 때문에 바른 신앙과 신학을 거부하는 것이라는 잘못된 오만과 판단으로 자신의 행동을 변호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3. 개혁주의자들이 취해야 할 반성적 태도

 

인간은 그 본성상 하나님과 그분의 주권을 거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혁주의자들은 다른 믿음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 기회가 되는대로 긍휼한 마음으로 그들이 가장 성경적이라 자부하는 자신의 지식을 전해주어야 합니다.

 

이때 그 지식을 교만이 아니라, 겸손을 바탕으로 전해주어야 합니다. 그들이 거부하더라도, 그럴 때일수록 더욱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으로 때를 보며 전해주어야 합니다.

 

동시에 자신의 믿음에 합당한 본을 보여야 합니다. 자신의 믿음은 아무도 구원 못하는 죽은 믿음이 아니라 인간을 구원하는 살아있는 믿음임을 삶의 모습으로 증거해야 합니다.

 

자신의 지식은 메마른 지식이 아니라, 살아있는 참 진리임을 증거할 수 있도록 그에 합당한 삶을 살고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은 행위 구원을 말하는 게 아니라 기도와 간구로 그 믿음에 합당한 삶, 즉 성화를 이루어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치는 말

 

개혁주의자들이 자신의 삶 가운데서 개혁신학의 열매를 꽃피운다면 굳이 전령사 역할을 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편향된 모습을 유지한 채 억지로 그 지경을 넓히려 든다면 거부와 반대는 더욱 거세질 겁니다.

 

물론 믿음과 행위가 일치하는 삶을 살더라도 개혁신학은 하나님 주권을 바탕으로 하는 그 특성상 모든 이들에게 환영받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할지라도 개혁주의자는 더욱더 믿음을 굳게 견지하고, 그 믿음에 합당한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개혁신학을 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믿는바 마땅히 받으셔야 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 드리고, 언제 어디서나 늘 그분을 즐거워하기 위해서 말입니다(소요리문답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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