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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14 (15:15:57)

정치, 권징조례부치글 

 

< 이병태 목사, 시드니 나래장로교회 > 

 

교회 안에서는 하나님의 심정으로 모든 사안들을 보살펴 주기를

 

 

어린 아이들에게 칼은 위험한 도구이다. 그렇지만 성장하면서 걸맞게 사용하게 될 때 이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 도구가 된다.

    

교회들 안에서의 정치라고 하는 것도 그런 성격이 다분한 것 같다. 그러기에 이런 핸디캡을 없애기 위해 어느 노회의 규칙에서는 정치부원의 자격을 목사 시무 7년 이상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목회의 년 수로나 경력으로 규정하는 것만으로는 아쉬움이 있다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교회에서의 정치와 권징은 하나님이 맡겨주신 영혼들로 하여금 진리와 행위로 바르게 인도하되 세상과는 달리 범죄한 자의 영적 유익을 도모할 수 있는 치리회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피력해 보고자 한다.

 

먼저 헌법에서의 권징은 벌하는데 목적을 두지 않고 교훈과 교정과 훈련에 주목적을 두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권징조례안은 마치 세상의 형사법과 같은 느낌이 들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가 있다. 이는 빈틈없는 법 조항으로 사건을 시원하게 속전속결하는 것만이 명수가 아니라 범죄한 자로 하여금 영적 유익을 도모할 수 있게 하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여케 하는 것에 우선을 두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지금 총회에 상정되고 있는 권징 조례안이 어떤 인상을 받고 있는가 하는 것은 중요한 사안이다. 그러기에 무조건 상정하여 통과시키기 위한 것에만 목적을 둘 것이 아니라 그 후유증에 대한 우려와 자제도 지혜로 생각된다.

 

다음으로 정치하는 일은 진리를 수호하고 신앙을 보전하기 위한 목적이 있기에 이는 필연적이고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과목이다. 그런데 정치에서 아쉬운 부분이라면 나와 입장이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할 줄 아는 태도라 하겠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경제적인 부분(보조)이나 여러 가지 이유로 눈치를 봐야 하고 제한을 받다보니 이제는 교회 안에서도 줄서는 문화에 익숙해져 버린 것에 있다. 그 후유증은 미팅에서도 자기의 뜻을 분명히 밝히지 못하는 안타까움이라 하겠다. 이러한 결과가 작게는 집단 이기주의를 조장하고 더 나아가서는 교권주의의 발단이 되었다면 이를 어떻게 하겠는가?

 

그동안 우리교단은 바른 신학을 바탕으로 바른 교회와 생활을 목표로 하여 많은 고난을 감수하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데 이는 우연이 아닌 줄로 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마지막 시대에 해야 할 사명 중에 하나라면 그것은 정치에 대한 부정적인 의미를 긍정적으로 바꾸는 일이라 하겠다.

 

이러한 일은 생각과 마음으로, 그리고 말 한마디에서 시작할 수 있는 일이다. 단지 두 가지 성구만이 우리의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다면 이는 누구든지 부담 없이 내가 있는 곳 어디에서나 이 일에 동참할 수 있는 영적운동이기도 하다.

 

그 하나는 남의 비밀의 누설에 관한 것이고(20:19) 다음은 증거 없는 일에는 함구하고 인정하지 않는 일이다(18:15-17). 이는 신자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어야 할 기본이기도 하다. 더욱이 권징을 시행하는 치리자라면 이런 부분은 당연한 삶의 한 단면이 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서 마태가 왜 마태복음 18장 전장을 통해 그렇게도 심각하고 진지하게 다루었을까를 고민해 본 자라야 하겠다. 이로 인해 영혼의 귀중성과 그 책임감을 가슴으로 느낀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그것이 아닌 권좌에서 그런 부분을 시행할 문제로만 보는 자라면, 그래서 정치나 권징을 지식이나 경력으로 가볍게 접근하는 자라면 그보다 더 큰 불행 또한 없을 것이다.

 

또한 교회에서 정치나 권징에 대한 신중성을 요구하는 이유라면 치리회에서 권징이 시행될 때 하나님은 무엇을 어떻게 하고 계실까 하는 것 때문이다. 교회 안에는 이방인이나 세리와 같은 사람들도 있기에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다(17). 그러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와 동시에 하늘 보좌에서도 그 과정들이 천사들로 하여금 재판장이신 하나님께 보고되고 있다는 사실이다(10).

 

그 결과에 대하여 예수님은 잃은 양의 비유로 교훈하시기를 이와같이 작은 자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니라”(14)는 것에 있다. 때문에 비록 무리가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자녀라면 이는 쉽게 속단하거나 가볍게 처리할 문제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15).

 

무엇보다 치리자의 자세는 소외된 자를 처벌하기 이전에 이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심중을 살필 수 있어야 하고, 법을 다루기 이전에 자신도 모든 빚을 탕감 받은 자임을 기억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서도 이미 천사들의 보고를 받으시고 판정을 내리시게 될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도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하나님은 정치나 권징의 결과에 대하여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7)고 하셨기 때문에 우려와 두려움은 당연한 것이다. 이 사실은 과거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교회사에서 남긴 산 교훈들이고 오늘의 현실에서 우리가 보고 듣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마태가 강조하는 잃은 양을 다루는 그 신중성이 우리의 가슴속에 깊이 자리를 잡게 될 때 정치에 대한 부정적인 의미는 안개와 같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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