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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26 (15:14:07)

 

수(數)를 생각한다

 

< 김성진 목사, 늘소망교회 >

 

“신자는 하나님을 알아가고 그것으로 신앙의 기쁨 느끼는 것”

 

큰 아이 대학입시를 치르면서 수에 대해 민감해진다. 성적, 내신이나 수능 등급, 경쟁률, 수능 반영비율, 학생부 반영비율 등등. 게다가 백분위가 어떻고 변환표준점수가 어떻고 하면 뭔 소린지 모르겠다.

 

그런데 수에 대해 신경을 쓰면서 한 가지 숫자가 일으키는 착각을 발견한다. 지원 학과 정원이 25명인데 지원자가 1430명이어서 경쟁률이 약 57대 1이다. 그러면 56명을 물리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56명이 아니라 1429명을 앞질러야 하는 것이다. 56명이 갑자기 1429명이 되니, 그렇지 않아도 높은 벽이 까마득히 높아진다.

 

목회를 하는데도 수에 민감해진다. 교인 수. 거기에는 수가 일으키는 착오가 없을까? 그동안 우리는 부흥의 시대를 거쳤다. 기독교인이 전 인구의 25%라는 통계까지 나온 바 있다. 그러나 지금 그 수가 허수가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그 숫자의 분량만큼 우리나라에서 하나님이 알려진 바도, 두려워하는 분위기도, 그에 따른 삶의 모습도 없다. 모두가 동감하는 바다. 인구의 4분의 1이라는 수는 무엇의 수일까?

 

그리스도인이란 하나님을 아는 자이다. 그 지식은 단지 개념적 정보만 가진 것이 아니다. 헤르만 바빙크는 성도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왕이시요 주님이시요 지도자이시며 목자이시고 구주시요 의사요 보혜사요 사람이요 아버지이시다. 그들의 구원과 축복, 진리와 의와 생명과 긍휼, 능력과 힘, 평화와 안식 등 모든 것이 그분 안에서 발견된다. 그분은 그들에게 태양이고 방패시며 빛이시고 불이시며 근원이시고 원천이시며 반석이시고 피난처시며 높은 산성이시요 상이시고 그늘이시며 성이시고 성전이시다”라고 하였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그렇게 하나님을 알고 있기에 성도의 수에 포함되었을까? 물론 우리는 지금 하나님을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게 알 수밖에 없고, 장래에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다. 그러나 신자는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는 존재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마지막 계시의 완성이신 그 아들을 아는 것은 성도의 본질이다.

 

신자의 기본적인 정체성은 하나님을 알아가고 그 앎이 그 속에서 생명력을 발휘하며, 그것으로 생동하는 신앙생활의 기쁨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분위기는 그것을 시도하거나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무리요 낯 설은 것처럼 되었다. 교회에 다닌 지 얼마 안 되거나 상대적으로 이해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문제가 아니다. 교회에서 깊이 있게 성경을 상고하거나 진지하게 하나님을 이야기하는 것을 대다수가 짐스러워하고 거리끼는 전반적인 분위기를 말한다. 기독교인의 수가, 하나님을 알고 그를 증언하는 빛과 소금으로서 맛을 내는 수가 아니면 무엇 하겠는가?

 

다시 부흥의 시대를 꿈꾼다. 외연의 숫자만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하나님을 알아가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는 수가 늘어가길 원한다. 바빙크는 말했다.

 

“선지자들과 사도들, 그 후 그리스도 교회에서 나타나는 일반 성도들은 하나님에 대해 추상적인 개념으로 철학화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고 그들이 생의 모든 환경에서 하나님께 입고 있는 은혜가 무엇인지를 고백하고 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있어서 합리적으로 분석해서 나오는 차디찬 개념이 아니라 살아 계시며 인격적인 힘이었고, 그들 주위의 세계보다 무한히 더 본질적인 현실이었으며, 하나이요 영원하신 경배의 존재이셨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에 있어서 그분과 함께 생각했고 그분의 장막 안에 거하고 마치 그분 목전에 있는 것처럼 행했고 그분의 뜰에서 봉사했고 그분의 성소에서 그분을 경배했다.”

 

그렇게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야 주님이 말씀하신 영생이라 할 지식이 아닐까? 오 하나님, 저부터 그런 신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의 말씀이 흥왕케 하옵소서. 또 다른 부흥의 계절이 오게 하옵소서.

 

딸아이가 통계학과도 가고 싶어 한다. 수량만 아니라 질(質)도 세는 통계는 어디서 가르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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