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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교회의 진정성과 교단 신문의 역할

 

 

< 이천우 목사, 부천개혁교회 >

 

 

“교단 신문은 영리업체가 아니다.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에 교회가 서 나갈 수 있도록 언론의 역할을 수행함에 있어 거리낄 것도 없고 주저해서도 안 된다.”

 

 

칼빈은 1533년 11월 1일 파리대학의 학장으로 취임하는 친구 니콜라스 콥의 연설문을 작성할 때 그 연설문에서 교회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한 일로 인하여 투옥되었다가 석방된 후 1935년 초에 미사를 반박하는 글을 쓴 것으로 인해 스위스 바젤로 망명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교회의 개혁운동을 탄압하는 프랑스의 왕 프란시스 Ⅰ세에게 개혁주의 신앙을 변증하는 글인 기독교강요(초판 1536. 3. 출간, 1559. 중보판 출간)를 저술하여 보낸 것은 루터에 이은 제2의 항의문으로서 개혁주의 사상을 신학적으로 정립한 것이라고 평가되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오늘날 교회의 본질을 추구하는 교단신문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막중함을 알 수 있다. 이에 작금의 현실을 바라보며 필연적으로 교회개혁과 연결되어 있는 교단신문의 사명을 재점검하고자 한다.

 

1. 종교개혁과 개혁교회의 전개

 

칼빈은 기독교강요의 저술에 이어서 1536년에 파렐의 요청에 의해서 스위스 제네바로 돌아와 제네바 개혁운동을 전개했다. 이곳에서 칼빈은 크게 두 가지 개혁운동을 하였다. 하나는 제네바시의 개혁이었다. 당시 제네바는 프로테스탄트 신앙에 서 있으면서 제네바시를 주도해 나갈 인물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이러한 제네바에서 칼빈은 제네바시의 목사로 시의회의 인정을 받아 교회개혁을 주도해 나갔다.

 

그러나 급격한 변화의 반대에 따라서 1538년에 칼빈은 제네바에서 추방당하여 스트라스버그로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프랑스 난민들을 대상으로 목회하면서 교회개혁에 힘쓰고 있는 여러 개혁가들과 친분을 쌓아나갔다. 그러던 중 칼빈을 추방한 자들이 실권하고 새로이 제네바의 개혁운동을 펼쳐나가려는 자들에 의해서, 그리고 다시 파렐의 요청으로 칼빈은 1541년에 다시 제네바로 돌아와 교회개혁을 펼쳐나갔다.

 

이때는 전에 행하였던 신앙요리문답에 의하여 제네바시를 다스려나가고 매월 성찬식을 시행하였던 것에서 더 나아가 교회헌법을 만들어 의회의 결의를 얻어 공포함으로써 국가의 간섭이 배제된 하나님의 통치 실현을 구현하였다. 특히 교회의 직분을 목사, 교사, 장로, 집사로 구분하였고 하나님 말씀의 권위에 의해서 교회가 바로 서나가도록 함으로써 교회가 하나님의 긍휼 안에 있도록 하였다.

 

이런 일련의 조치와 더불어 제네바교회와 함께 오늘날의 개혁교회가 등장하게 된 영향력이 있는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다. 그것은 칼빈이 제네바에서 1559년에 세운 제네바 아카데미였다. 칼빈은 교회에서의 설교와 함께 아카데미에서 성경강해를 통해서 개혁교회를 맡아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하고 가르칠 인물들을 양성하였다.

 

칼빈이 55세로 죽은 해인 1564년까지 5년간 아카데미에서 칼빈의 강의를 들은 학생의 수가 1,300명이 넘었다. 그들은 프랑스, 독일, 헝가리, 이탈리아, 폴란드, 스페인 등지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제네바에서 칼빈의 강의를 통해 하나님 말씀의 본의가 지닌 구원의 진리에 대한 깨달음과, 제네바에서 시행되어 결실을 보고 있는 교회개혁을 품고 고국으로 돌아가 교회개혁을 전개하였다. 이로써 유럽 각처에서 ‘개혁교회’를 세워나갔으며 ‘칼빈주의’라고 하는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을 교회에서 전개해 나가게 되었다.

 

2. 칼빈의 종교개혁에 의한 교회개혁의 시행

 

칼빈의 종교개혁에 의해서 시작된 개혁교회는 루터교회와는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성경이 명하지 않는 한’에는 로마카톨릭교회의 옳지 않은 모든 잔재들을 다 버려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혁교회는 ‘성경이 명하는 것’과 ‘성경이 명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취했다.

 

그래서 루터교회가 로마카톨릭교회가 행하고 있는 십자가를 걸고 촛불을 켜고 제단은 강단 위에 설치하고 예배를 위한 제동(祭童)을 앞세운 행렬을 하는 관습 등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에 반대하여 그 모든 잔재들을 척결했다. 개혁교회가 성례와 예배의식에 필요한 것은 오직 강단과 성찬대 뿐이었으며, 이것 외의 장식은 일체 허용하지 않았다.

 

나아가 개혁교회가 ‘개혁주의’에 따라 나아감에 있어 교회에 해악된 것 모든 것을 척결한다는 결연한 자세로 그동안 교회에 유입되어서 행해져 온 모든 교회 절기들도 폐지했다. 사도시대의 교회와 이후 3세기까지의 초대교회에서는 오늘날 교회가 행하는 성탄절, 부활절, 성령강림절, 맥추절, 추수감사절 따위의 교회 절기가 없었다.

 

교회가 유일하게 갖고 있는 절기란 오직 ‘주일’이었다. ‘주일’은 성도들이 믿음의 주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하여 공적으로 모이는 유일한 ‘날’의 개념이었다. 따라서 오늘날에 교회가 매년 구약의 절기와 같은 절기를 지키는 일들이 없었으며 또한 절기예배라는 것도 없었다.

 

그런데 종교개혁이 있었던 16세기에 이르러서 로마카톨릭 안에는 온갖 절기가 교회절기로 자리하고 있었다. 대강절-성탄절-주현절-사순절-부활절-성령강림절로 구성되는 순서에 의해서 “OO절 후 몇 번째 주일”이라는 식으로 교회가 운영될 정도였다.

 

이에 루터와 칼빈은 교회가 주일 외의 절기를 가지는 해악을 제거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1520년에 루터는 “주의 날이 유일한 절기의 날이어야 한다”고 하였으며, 칼빈은 1536년에 제네바교회를 개혁할 때 처음부터 “주의 날이 유일한 절기의 날”임을 강조했다.

 

이렇게 ‘주의 날’(주일)만을 교회가 가지는 유일한 날로 인정하여 존중하고, 이것 외에 어떠한 절기도 허용하지 않았던 것은 루터와 칼빈만이 아니라 그 시대에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교회의 본질에 따라 참된 교회를 이루고자 하였던 모든 개혁가들의 공통적인 견해였다.

 

3. 개혁교회에서 교회개혁으로 있어야 할 교단신문

 

그리스도의 교회로서 참된 교회를 추구해온 개혁교회는 언제나 이러한 잘못된 행실들에 대해 항의문을 발표하는 일을 해왔다. 그 역할을 하는 기관이 기독교신문과 교단신문이다.

 

특히 교단신문의 경우 교단 교회들이 주장하는 언론의 역할을 하게 된다. 따라서 교단신문은 교회가 하나님 말씀의 순전함에 서있을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교단신문이 교단 소식을 비롯해서 여러 정보를 주며 유익한 글을 각 지면에 싣게 되는데, 그 모두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지닌 믿음을 바르게 서게 하는 데 있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의 대표적인 교단의 하나라고 자부하며 자기 교단이 역사적 정통주의, 보수주의, 개혁주의, 복음주의라고 하며 온갖 좋은 용어들을 내세우고 있는 모 교단 신문을 보면 신학을 가르치는 신학교만 아니라 교회에서조차도 비성경적이며 비신앙적인 것임을 명백히 지적하여 주의를 주고 경계하는 비 복음적인 글들을 버젓이 싣고 있다.

 

한 예를 들면 천국과 지옥을 수차례 갔다 왔다며 자신이 보았다는 천국과 지옥을 한 면 가득히 연재하고 있다. 교단신문이 천국과 지옥에 갔다 왔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연재하여 소개함으로써 마치 정당한 것인 양 오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 교단에 속한 목사든 신자든 그 누구도 이에 대한 항의문을 내걸고 있지 않다. 그런가 하면 다른 모 교단신문에서는 교회의 목회자와 성도들이 읽게 되는 기독교신문으로서 교회에 끼칠 해악을 생각하면 실을 수 없는 글, 성도들의 신앙이 미혹 받을 수 있는 불건전한 부흥회 광고를 아무렇지도 않게 싣고 있다.

 

이런 작태들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25장 ‘교회’의 제5항에서 말하고 있는 “지상에서는 아무리 순수한 교회들일지라도 혼잡함과 과오를 범하는데 어떤 교회들은 극도로 타락하여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라, 사탄의 공회당이 되기도 한다”고 지적하는 것처럼 교단신문이 사탄의 공회당을 조장하는 일에 동조하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마치는 말

 

교단신문은 영리 업체가 아니다. 사실 교단신문이라고 한다면 본질상 개혁주의가 아닌 신문이 없어야 한다. 개신교는 개혁신교, 곧 개혁파 신교로서 구교로 불리는 로마카톨릭교회에 대항하여 등장한 교회이다.

 

이런 교회의 신문으로서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며 교단의 지원으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니만큼 교단과 교회의 소식 및 유익한 정보를 알려주고,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에 교회가 서 나갈 수 있도록 언론의 역할을 수행함에 있어 거리낄 것도 없고 주저해서도 안 된다.

 

그렇다면 개혁교회는 교회개혁에 있어서 먼저 교회의 언론 역할을 하는 교단신문부터 개혁해 나가야 할 것이다. 교단신문으로서 교회가 말하는 언론으로 존재하게 해야 한다. 잘못된 신앙, 즉 비성경적이며 비신앙적이며 비복음적인 주장을 하는 것에 대해 그 문제점과 잘못을 지적함으로써 올곧은 신앙이 어떤 것인지를 변증하는 언론으로 존재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개혁교회가 교회사 속에서 추구해 온 하나님 말씀의 순전한 전파에 교단신문도 동참하도록 해야 하며, 이는 필연적으로 교회개혁과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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