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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6 (11:40:27)

하나님만이 전능자

 

< 임종태 집사 · 대림교회 >

 

“전능자이신 하나님과 손잡을 때 예수님 안에 거하게 돼”

 

 

십 수년을 한 이불 덮고 몸을 맞대고 부부(夫婦)의 연(緣)으로 살았는데도, 어떤 때는 “자기는 내 마음을 너무 몰라줘요. 그렇게 몰라줄 수가 없어요”라는 말이 쉽게 나온다.

 

그때의 서운한 마음을 사람들(남편, 자식)을 대상(對象)으로 위로를 받으려고 하면 안 된다. 그때는 눈동자 같이 지켜주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 감추어 주시는 주님을 찾아야 한다(시 17:8). 그리고 생수 같이 흐르는 아름다운 찬양을 불러야 한다. “사랑합니다. 나의 하나님.”

 

주님께서는 말씀하신다. “사랑한다. 내 딸아 내가 너를 잘 아노라” 하시면서 “사람들이 어떻게 네 마음을 알 수 있겠니?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또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너무 크게 기대하지도, 요구하지도 말고 항상 네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을 찾으려므나(시 46:1). 오직 성령님만이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고전 2:10)”라고 말씀하신다.

 

젊은 세대의 이혼률이 급증하는 것도 남편의 온전함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능력 있고, 건강하고, 키 크고, 미남이고, 성격 좋고, 학벌 좋고 이 모든 것을 갖춘 자는 세상에 없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 3:10). 예수님 외에는 온전한 사람이 없다. 상대의 허물을 보기 전에 나의 허물을 바라보고 개선하는 마음이 더욱 필요하다(마 7:12).

 

목사님들도 가끔은 파랗게 멍든 가슴을 끄집어 내보이고 싶을 때가 있다. 억울하게 욕을 먹고, 이유 없이 비난받고, 말도 안 되는 누명까지도 뒤집어쓴다. 그렇다고 목회자가 똑같이 대적할 수는 없다. 한 영혼이라도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다 끌어안고 가야하기 때문이다.

 

목회 사역의 아픔과 고통을 누가 다 알아줄 수 있을까? 부교역자? 장로님? 사모님? 천부당 만부당 어림없는 이야기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알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목회가 힘들 때에는 사람들에게 의지하지 말고 나에게 직접 이야기하려므나, 기도로...” 오직 하나님만이 위로자요. 전능자이다.

 

성령 안에서의 베드로와 세상 밖의 베드로를 관찰해보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날 것이니라” 말씀하실 때 성격 급하고 덤벙되는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들고 항변하여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라고 하자 예수님께서는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마 16:21-23)라고 하셨다. 베드로가 너무나 당연한 말을 한 것인데 사탄아 물러가라니? 아니 그럼 자기 선생이 죽으러 가는데 “주님 잘가세요”라고 말할 제자가 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조금 전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했을 때는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아버지시니라” 하면서 칭찬하더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예수님의 행동이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알고 계셨다. 조금 전에는 베드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나아갔지만 나중 것은 베드로 자기 생각으로 이야기하였으므로 당연히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하게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성령님 안에 있어야만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다. 영하 10도 이하의 날씨가 40일 이상이나 계속 되었다. 눈도 1m 이상 내린 지역도 있었다. 내가 섬기는 교회는 사는 곳에서 조금 떨어져 있다. 금요심야예배를 마치고 늦은 밤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릴 때면 찬바람이 더욱 세차게 분다. 그러나 찬바람보다 더 가슴을 시리게 하는 것은 외로운 고독이다. 아무도 내 몸을 대신하여 아파할 수 없고, 또한 죽음의 길에 같이 하여 주는 자도 없다.

 

교회 안에서조차 마음을 열고 얘기할 사람이 그리 많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이럴 때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는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서 하나님께서는 땅 위의 삶과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죽음과, 죽음 뒤에 오는 삶에도 영원히 함께 하여 주실까 하는 깊은 상념에 빠져보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분명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그 말씀을 확실히 믿어야 할 것이다.

 

죽음 뒤에 오는 영생의 삶이 영광되기를 소망하면서 지금 살고 있는 세상에서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갈망하며 간절히 기도드린 적이 많다. 그런데 묘하게도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여 외로울 때에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바라볼 수 있는 힘을 주시는 것 같다. “이는 내가 약한 그때에 강함이라”(고후 12:10).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우리의 삶이 외로울 때 성령님과 대화가 더 많이 이루어지는 것 같다.

 

우리가 태어나서 살다가 세상을 떠날 때에 남기고 가는 것은 무엇일까? 수고와 슬픔 그리고 썩어질 육신, 그것이 전부이다. 만물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오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때문에 나의 것은 하나도 없다. 시간도, 물질도, 육신도 모두 하나님의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영혼, 육신, 시간, 물질 등 이 모든 것을 잘 사용하다가 우리의 주인 되신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돌려드리고 떠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복음 전파는 영원토록 생명의 씨앗이 되어 우리가 열매를 많이 맺음으로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우리의 삶의 목적이 되는 주님을 증거하는 삶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 마음을 표현 할 때 곧장 손을 끌어들여 말하기도 한다. ‘누구와 손을 잡았다. 누구와 손을 끊었다. 그 일에 손을 씻었다.’ 그렇다. “외로울 때 하나님께서 내 손을 잡아주셨다.” 이렇게 외치고 싶다. 전능자이신 하나님과 손을 잡으면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 안에 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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