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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2 (00:00:00)
<경친회의 늦가을 나들이>


야곱의 아름다운 황혼


< 민경희 사모, 평안교회 >


첫째 날.
11월 2일 월요일 아침 9시. 송파제일교회에서 모였다. 박병식 목사님, 엄원
규 목사님 내외분, 임운택 목사님 내외분, 정판주 목사님 내외분, 한재의 목
사님 내외분, 박윤성 목사님. “기온이 갑자기 뚝 떨어져서 많이들 못 오실
것 같던데...” 서로 염려하시며 안부를 물으셨다.
김정식 목사님께서 역곡동교회 버스로 사모님과 함께 오셨다.
출발! 설악산으로! 이번 여행은 문상득 목사님께서 경친회를 섬기기로 하셨
단다. 언뜻 혼자 스치는 생각에 ‘경친회 신고 인사인가?’ 했지만 아무에게
도 묻지는 않았다. 간식 봉투를 받았다. 제주특산품인 백년초 초콜릿, 귤,
음료수, 아~! 양갱! 각종 영양갱이 있다. 양갱은 정말 추억의 간식 아니던
가. 그러면서 별것 아닌 것으로 마음이 따듯해진다더니 좋은 여행을 예감한
다는 것에 피식 웃음이 났다.
경춘고속도로를 가다가 홍천으로 들어섰다. 갑자기 겨울이다. 이
미 함박눈
이 수북이 쌓이고 눈발이 날린다. 아니? 어쩜! 저절로 탄성이 터졌다. 아이
처럼 좋아하시는 목사님들, 사모님들. 카메라를 꺼내고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으시다가 결국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었다. 웃음소리, 웃는 얼굴... 서로
서로의 모습을 보는 것으로 이미 여행은 행복했다.
가슴이 두근거릴 만큼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졌다. 마지막 단풍을 보리라 기
대했는데 노랑, 갈색, 빨강... 그 나뭇가지에, 잎에, 수북하게 쌓인 낙엽위
에 눈이 덮였다. 오묘한 색을 간단하게 말로 표현할 수는 없다. 아무튼 절경
의 단풍과 한겨울 눈꽃을 함께 보는 것은 아마도 일생에서 단 한 번뿐일지
도 모른다. 그리고 원통, 미시령을 넘어 설악으로... 눈은 점점 함박눈이 되
고 짧은 탄성조차 나오지 않는 풍광에 눈이 부시다.
문상득 목사님 내외분과 김정태 목사님을 만났다. 같이 떠난 것보다 눈 속에
서, 설악에서 그렇게 만나서 더 반가웠는지도 모른다.
‘설악 스케치.’ 상호가 멋지다. 들기름으로 무친 얌전한 나물들은 유명한
진부령 쪽의 나물집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맛있었고, 음식점과 나란히 있
는 ‘설악스케치 까페’는 까만색
나무집과 간판이 어울려서 커피 맛도 괜찮
을 성 싶었다.
권금성으로... 눈은 계속 내리고 나는 카메라도 없고 청바지에 얇은 점퍼,
편하다고 신고 온 낡은 구두는 눈 녹은 물이 스민다. 아! 남편 말에 순종할
것을. “뭐 그리 춥겠어요?” 신문을 뒤적여 날씨를 보니 서울 최저기온 2
도, 최고 9도, 그 정도쯤이야.
“카메라? 무거워. 지난주 송계계곡에서 예쁜 단풍 실컷 봤는데요 뭐.”
“등산화? 답답해서 싫어. 운동화? 싫어요.” 주일 저녁 10시에서야 나는
이 여행을 알았고 해야 할 일이 많아서 짐 꾸릴 시간도 없었다. 아! 나는 그
렇게 간단히 길을 떠난 것이다.
남편이 나 모르게 준비한 모자와 두꺼운 머플러를 두르며 고마움을 멋쩍은
웃음으로 때우고 케이블카를 탔다. 생전 처음이다. 이런 눈꽃을 본 것이.
와! 평생처음이다. 이런 단풍과 눈꽃을 함께 보는 것은 진짜 처음이다.
나만이 아니다. 모두들 그 말을 크게 소리 내서 했다. 재미있는 것은 대학생
으로 보이는 청년들이 눈밭에 발이 빠지고 미끄러지면서 멋진 포즈를 잡고
사진을 찍고, 웃고 큰 소리를 지른다. “와우! 내 평생 처음이다~아”. “야
~호! 내 생애 최
고의 날이다아아~~”
잊지 말아야지. 어른들 말씀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기억하자.
2009년 11월 2일. 정상에서 만난 뜨거운 커피한 잔, 게다가 에스프레소 커피
라니...!

동해고속도로를 타고, 검푸른 바다와 거대한 파도, 하얗게 부셔지는 포말.
단풍과 눈과 바다. 오색에 있는 숙소인 그린야드에 도착. 어둠이 내리고 작
은 반짝이 등으로 장식된 동화에 나오는 것 같은 예쁜 호텔에 짐을 풀었다.
서울에서 영월로 영월에서 오색까지 눈길을 오신 윤석희 목사님을 만났다.
호텔 입구에 선채로 다시 영월로 돌아가시겠다고. “문자 메시지 그런 거
잘 못하는 사람인데, 눈이 와서 더 쓸쓸한 것 같다고... 이렇게 문자가 와
서 다시 가보려고요.” 야! 멋있다. 괜한 너스레인지 모두 안다. 사모님의
쾌유를 기도하며 속으로 흐르는 눈물이 우리 안에 있다는 걸.
얌전한 나물들과 더덕구이 멧돼지 구이. 청명한 하늘엔 보름달이 떴다. 아!
글쓰는 사람이 표현력이 부족해서 참으로 촌스럽지만 “처음이다, 이렇게 맑
은 밤하늘과 이렇게 밝고 둥근 달은.”

오후 7시 30분. 예배.
김정식 목사님 사회, 기도 정판주 목사님, 설
교 엄원규 목사님.
찬송가 405장입니다. 김정식 목사님 말씀에 머리가 잠시 사고를 못했다.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상은...도 아니고,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도 아니
고.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와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
다.”
어르신들이 힘차게 찬양을 하신다. 눈을 감고 몸을 박자에 맞춰 흔들흔들 하
시면서. 말년에는 38Kg이던 아버님은 돌아가시던 날 숨을 거두시기까지 자녀
들과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고 찬송하셨다. 군대천사가 보이신다던 시아버님
모습이 오버랩 되면서 나는 목이 메어 소리가 나오질 않는다.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거기서 우리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 찬양하리라.”

“설교는 엄원규 목사님이 해주십니다. 본문은 창세기 48장 15절-20절. 제목
은 ‘야곱의 아름다운 황혼’입니다.” 아~! 무엄하게도 나는 순간 “캬! 설
교 제목 죽인다” 그런 생각을 했던 거다. 그러나 생각이랄 수도 없는 것이
그냥 번개처럼 스쳤다.
“황
혼, 석양, 낙조는 해가 넘어가기 직전을 말합니다. 해가 넘어가려는 찰
나의 빨간 광채입니다.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해는 빛의 소임을 다하고
지는 순간에 사람들이 볼 수 있습니다. 넘어가는 해가 아름답게 보이듯이 나
의 황혼도 아름답게 보였으면 좋겠습니다. 야곱처럼 아름답게 보였으면 좋겠
습니다.” 설교는 이렇게 시작됐다.
야곱의 황혼은 자녀들의 복을 구하고, 하나님의 기업이 계승되기를, 자녀들
의 믿음이 계승되기를 기도했습니다. 잔잔하게 조금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그러나 우렁찬 소리로 설교는 이어졌다.
요셉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위한 기도를 하는 감동적인 장면은 설
명이 필요 없었다. 아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면서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지기를 위해 기도해야 하기에 “아들아 안다. 내가 안다” 조용히 읊조리며
안타까워하는 아들의 마음을 다독이는 아버지. 믿음의 후손인 손자를 축복하
는 할아버지.
침상머리에서 경배 드린 후 자녀들을 위한 축복기도를 마치고 열조에게로 돌
아간 야곱. 그의 험난한 인생여정을 끝내고 평안히 주께 돌아가는 야곱의 아
름다운 황혼의 모습이다. 그가 가장 아
름답게 빛나는 순간이다.
설교가 끝나고 539장 찬송.
“이 몸의 소망 무엔가 우리 주 예수뿐일세. 우리 주 예수 밖에는 믿을 이
아주 없도다. 굳건한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
라.”
예배가 끝나고 기도하시는 목사님들과 사모님들을 둘러보며 찬송가 가사를
조그맣게 읽는다. “세상에 믿던 모든 것 끊어질 그날 되어도 구주의 언약
믿사와 내 소망 더욱 크리라. 바라던 천국 올라가 하나님 앞에 뵈올 때 구주
의 의를 힘입어 어엿이 앞에 서리라.” 얼마나 아름다운 찬양시인가, 얼마
나 아름답고 귀한 분들인가.
기다리시는 주님을 바라고 사시는 분들, 그분들 곁에서 같은 믿음으로 잠잠
히 따르는 고운 자태의 사모님들. 아름다운 노을을 본다. 이제껏 보지 못한
눈부신 석양을 본다.
저녁 10시. 예배가 끝나고 대구영안교회 장로님과 권사님들이 마련하신 따듯
한 마음이 가득담긴 선물 보따리를 받아들었다.



둘째 날.
한파주의보, 바람이 차다.
임석영 총회장님과 사모님께서 눈길에 오셨는데 ‘설악스케치’ 주소만 가지
고 계셔서 평택에서 안동, 안동에서 속초로 새벽 2시까지 얼어붙은
낯선 도
시를 헤매시다가 불편한 잠을 주무시고 아침에 합류하셨다.

하조대에서 심호흡도 하고, 속초 앞바다를 보면서 회도 먹고, 말린 생선도
사고, 엿도 사먹고.
바람결에 눈이 날린다. 바람결에 낙엽이 떨어진다.
하얀 눈, 노랑 눈, 빨강 눈, 갈색 눈.... 모두모두 눈꽃이 되어 떨어진다.
“야곱의 아름다운 황혼....”과 경친회 귀하신 목사님들을 보면서 겨울나무
를 생각한다. 봄에 싹 티울 새잎을 위해서 우거졌던 잎을 모두 떨어뜨려 발
가벗고 서서, 떨어진 잎들은 쌓여 거름이 되고, 마른가지 위로 뻗어 하늘을
향하는 겨울나무와 목사님들이 비슷한 것 같다.
경친회가 더 풍성한 모임으로 견고하게 자리잡으면 좋겠다. 나들이 할 때마
다 버스가 가득 차서 힘있는 여행을 하면 좋겠다. 믿음의 후손들과 섬기시
는 교회와, 합신과 총회를 위해 기도하고, 세계선교 사역지를 위해 기도하시
는 귀한 분들을 섬기는 교회가 더 많아지면 좋겠다.

아! 그리고 나는 현장을 사진으로 남기는 것과는 다른 일, 정지된 추억이 아
니라 그 풍경 속에 고운 웃음과 탄성, 감사와 찬양을 담아 기록하는 일꾼으
로 한자리를 내 주셨으면 좋겠
다. 그 충만한 은혜의 자리에서 아름다운 노을
을 계속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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