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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의 ‘하나됨’과 신앙고백의 ‘하나됨’

 

< 신재원 집사, 대덕한빛교회, 대덕연구단지 연구원 >

 

 

“고신이 고백하고 있는 수정된 고백서는 알미니안적 사상 포용하고 있어”

 

 

예장 합신과 고신의 교단 통합 논의 소식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원칙적으로 좋은 일이나, 먼저 생각할 것은 두 교단의 신앙고백이 동일하느냐의 문제이다.

 

흔히 두 교단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이하 고백서)라는 동일한 신앙고백을 한다고 오해한다. 지난 2월 7일자 CBS 기사를 보면 “두 교단이 교단통합 논의를 잡음 없이 순조롭게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두 교단 모두 개혁주의 신학을 표방하고 있고 동일한 신앙고백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과연 그러한가?

 

1729년 미국 장로교회는 1647년에 작성된 고백서를 표준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19세기 알미니안 신학의 도전으로 1903년 세 군데 본문 수정과 함께 제34장과 제35장을 추가한 ‘수정된’ 고백서를 채택하게 된다. 원래 고백서는 알미니안주의로부터 교회를 지키기 위해 작성된 것인데, 오히려 알미니안주의로 인해 고백서가 다시 수정된 셈이다.

 

현재 예장 합신은 수정되지 아니한 ‘전통적’ 고백서를 받고 있다. 반면 예장 고신은 고백서 본문의 수정안은 거부하면서도 추가된 제34장과 제35장을 교단의 고백서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 부분에서 차이가 나는 셈이다.

 

몇 가지만 간략히 보자. 우선 성령에 관한 제34장은 개혁신학의 입장에서 보자면 크게 문제 될 바가 없지만, 전통적 고백서의 여러 부분의 내용을 반복할 뿐이다. 이는 전통적 고백서에서 성령론이 부족하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뿐이다.

 

제35장 1항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사역과 희생을 통하여 은혜언약으로, 버림받은 온 인류에게 충분하고 다 적용되는 생명과 구원의 길을 준비하셨고, 이 구원을 복음으로 만인에게 값없이 주신다”라고 한다.

 

물론 예수님의 중보사역과 희생은 온 인류가 구원받기에 모자람이 없고 충분하지만(도르트 신조 둘째 교리 3항), 그렇다고 할지라도 “온 인류에게 적용되는” 구원의 길을 준비하였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아니다.

 

예수님의 중보사역과 희생의 효력은 “오직 택자에게만 적용”된다(도르트 신조 둘째 교리 3항). 또한 영어 본문에서 “freely offer this salvation to all men”이라 하였는데, offer는 ‘제안하다’의 의미가 강함에도 번역본에서는 “만인에게 값없이 주신다”라고 함으로써 더더욱 개혁주의 구원관과 멀어졌다 할 수 있다.

 

이어서 제35조 3항을 보면, 복음에 대한 인간의 반응에 관하여 제2원인으로서 인간의 반응만을 강조하고 있고 제1원인으로서 하나님의 작정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다. 이러한 진술은 인간의 구원이 인간의 어떤 행위에 달린 것이라는 인상을 준다.

 

교단의 하나 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신앙고백의 하나임’일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두 교단이 받고 있는 신앙고백서의 차이는 분명하고 중요해 보인다.

 

물론 현재 고신 교단에서 바른 신학을 지향하시는 분들은 고백서에 추가된 내용을 그대로 고백하는 분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단지, 그간의 신앙고백에 대한 무관심 때문에 오래 전에 채택한 고백서를 지금껏 방치한 저간의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제 교리와 신앙고백서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는 지금, 마침 양 교단의 통합이 논의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두 교단 모두 이 문제에 대해 확실한 입장 정리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만일 고신 교단이 합신 교단과 교단 통합 논의를 계속하고자 한다면 먼저 수정된 고백서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하게 밝혀야 할 것이다. 합신 교단 역시 신앙고백서의 차이점에 대한 신학적 입장을 제시해야 한다.

 

양 교단이 고백하는 신앙고백의 차이점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간과하고 교단 통합을 논의한다는 것은 장로교의 기본 정신을 무너뜨리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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