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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18 (20:01:18)

마른 땅에 단비를 

쿠바에서 일본으로

 

< 허태성 목사_HIS 6MRC 훈련생 >

 

 

 

쿠바 선교를 계획했지만 일본 선교를 준비케 하신

하나님의 이끄심의 과정 

 

사랑하기 힘든 일본에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용서와 사랑을 전하는 선교사가 되고자

 


   19808월의 어느 날 밤 여의도광장에서 한 청년이 일어섰다. 일생에 있어서 전체가 아니어도 단 몇 달이라도 선교사가 되어 자신을 주님께 드릴 사람은 그 자리에서 일어서라는 고 김준곤 목사의 설교를 듣고서 말이다. 그 때 한 여대생도 일어섰다는 사실을 그로부터 36년이 지나서 알게 되었다. 훗날 그 여대생은 내 아내가 되었다. 지난 해 말에 하나님은 강변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던 나를 불러 내셨다. 감히 좀 과장하자면 안디옥교회에서 바울과 바나바를 불러내신 것처럼. 나와 아내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28년간의 목회를 내려놓았다.

 

   지난 해 말에 강변교회에서 목회를 마치자마자 나는 목동에 있는 GMTC(한국선교훈련원)에 입소하여 약 5개월 동안 합숙훈련을 받았다. 목회를 내려놓고 선교를 하겠다고 결정은 했지만 선교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없었던 나는 그 훈련을 통해서 선교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을 얻을 수 있었고 어느 정도 선교 마인드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어떤 나라로 가야할 지를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몇 분의 선교 지도자들과 상담하며 기도하다가 쿠바를 선교지로 결정하였다. 하지만 내 주변에는 쿠바에 가보았다는 사람도 없었고 더구나 쿠바에 살면서 나를 안내해 줄 그 누구도 알지를 못했다. 그래서 기도하기를 시작했다. 몇 다리를 건너서 GMS 소속의 한 선교사와 기적처럼 연락이 되었다. 쉽지 않은 곳이지만 일 단 와보라는 연락을 받게 되었다.

 

   201777일 멕시코 칸쿤 공항을 이륙한 에어멕시코가 한 시간 만에 쿠바 아바나 공항에 착륙하였다. 오후 3시 경에 드디어 약간의 흥분과 두려움을 가지고 쿠바에 역사적인 첫발을 딛게 되었다. 쿠바의 첫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다. 사회주의 정권하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탓인지 공항직원들은 무표정했고 불친절했다. 수하물을 찾는 안내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짐을 찾느라 2시간 이상을 공항 여기저기를 뛰어다녀야 했지만 그 어떤 직원도 도와주지 않았다. 다리도 아프고 화도 났다


 그러자 내 입에서 기도가 튀어 나왔다. 주님, 짐 좀 찾게 해주세요! 그 때 한 쿠바인이 내 앞에 나타났다. 쿠바로 들어오는 비행기에서 바로 옆자리에 앉았던 알베르또라는 40대 청년이었다. 그는 쿠바 동쪽 끝 지역인 올긴에서 민박집을 하는 사람인데 꼭 자기 집에 오라며 명함을 주기에 받아 놓았는데, 그는 내가 사귄 최초의 꾸바노였다. 그런데 그 역시 짐을 찾지 못하고 헤매다가 나와 마주치게 된 것이었다. 결국 그의 도움으로 짐을 겨우 찾을 수 있었다. 미리 그를 사귀게 하시고 만나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에 감사를 드렸다.

 

   나는 쿠바에서 일 주일 동안 머물렀다. 그 이야기를 간략하게 정리해 본다. 쿠바를 방문하는 외국인은 아무데서나 머물 수 없다. 꼭 정부가 허락한 호텔이나 까사(민박집)에서만 숙박이 가능하다. 나는 99년 전 스페인이 통치하던 시절에 지어진 까사에서 숙박을 하였는데 말은 잘 통하지 않았으나 주인 부부가 친절하게 해 주어서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다. 택시를 렌트하여 사용했는데 1951년에 출고된 쉐보레였다. 계기판은 다 고장이 나있고 시트의 쿠션은 푹 꺼져 버린데다가 움직일 때마다 경운기처럼 덜덜거리는 소리가 나는 고물차에 기사까지 여섯 명이 타고 다녔다. 이러다가 언제 멈추어 버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앞섰지만 타이어 펑크가 한 번 난 것 빼놓고는 멈추지 않고 잘도 굴러 다녔다. 나와 아내는 긴장했지만 현지 선교사는 이 정도면 아주 좋은 차라며 연실 웃었다. 그런데 그 차의 값이 3,500만원이나 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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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혁명광장



   쿠바는 선교사가 들어가서 거주하며 살기에 참으로 불편한 나라이다. 몇 가지 실상을 소개한다.

첫째, 쿠바 선교사는 송금을 받을 수 없다. 아직도 미국에서 달러가 쿠바로 들어가는 것을 막고 있는데다가 은행계좌를 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돈을 찾으러 미국 마이애미나 코스타리카까지 나가야 한다. 아니면 쿠바를 방문하는 사람에게 현금을 배달받아야 한다. 이번에 나도 5,000달러를 수송했다.

둘째, 외국인은 차를 소유할 수 없다. 그래서 쿠바선교사 중에는 차가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그냥 걷든지 대중교통을 이용할 뿐이다.


   셋째, 인터넷이 안 된다. 모뎀을 이용해서 겨우 이 메일을 사용할 수 있지만 와이파이는 최고급 호텔에서나 가능하다. 그것도 한 시간에 우리 돈 약 1만원 상당의 이용권을 구매하여야 한다.

넷째, 쿠바 선교사들은 자녀가 없다. 부부만 와 있거나 혼자서만 와 있다. 자녀를 키울 수 있는 교육 환경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섯째, 쿠바에는 한인교회가 없다. 왜냐하면 선교사들을 제외하면 3명 내외의 코트라 직원과 유학생 몇 명 외에는 한인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여섯째, 교회설립이 허락되지 않으며 외국인들에 의한 설교나 전도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선교사는 한글학교 사역을 하고 있다.


   일곱째, 선교사가 종교비자를 얻는 것이 매우 힘들다. 대부분 학생비자로 있는데 수업료로 매달 300달러 이상을 내야하기에 경제적 부담이 크다.

여덟째, 쿠바는 가난한 나라이지만 외국인은 고물가에 시달리고 있다. 수도 아바나에서 방 두 개짜리 아파트를 월세 1,000달러를 내고도 구하기가 쉽지 않다. 또한 외국인은 현지인과 다른 화폐를 사용해야만 한다. 현지인보다 적게는 10배에서 많게는 30배 이상 지불해야 한다.


   아홉째, 한국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오고 가기에 항공료와 시간적인 부담이 있다.

열째, 쿠바는 한국과 아직도 미수교국이다. 오히려 북한과 매우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6.25 전쟁 때는 우리와 친했고 더 잘 살아서 지원물자를 보내준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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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교회 성도(주일예배)


 

   쿠바인들은 가난하기에 아직도 마음이 비교적 순수하다. 그들은 가난 속에서도 웃음과 춤과 노래를 부르며 산다. 쿠바인들은 문맹자가 거의 없다. 성경을 가르치기에 좋은 토양이 준비되어 있는 것이다. 쿠바를 흔히 천주교 국가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미 중남미에서 천주교는 힘을 잃어가고 있다. 현지 선교사에 의하면 성당에 정기적으로 출석하는 사람은 쿠바인구 중 4%에 불과하고 기독교인들은 8%를 상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회가 제대로 신학 공부를 하지 못한 사역자들이 사역하고 있기에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쿠바에는 중국의 삼자교회 같은 친정부적인 교회도 있고 가정교회도 있다. 경제적 어려움과 핍박 속에서도 쿠바교회는 계속 성장하고 있다. 비록 은사중심적인 교회이지만 그들이 뜨겁게 기도하며 찬양하는 모습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생각나게 한다. 주님께 대한 열정과 사랑이 식어 버린 한국교회가 오히려 겸손히 배워야 할 부분도 있는 나라이다.

 

   그러나 나는 쿠바에서 일본으로 선교지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 58년 개띠인 내가 쿠바에 들어가서 선교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현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쿠바를 마음에서 내려놓는 것은 쉽지 않았다. 아무리 그 땅이 어렵고 열악하다 할지라도 나에게 있어서 쿠바는 첫 사랑같은 나라이다. 내가 적어도 한 10년만 더 젊다면 꼭 도전해 보고 싶은 나라이다.


   나는 현재 합신 선교사 훈련과 겸하여 일본선교사가 되기 위한 훈련도 받고 있다. 연말에 훈련이 끝나면 비자를 신청하여, 비자가 나오는 내년 3월경에 출국하려고 한다. 물론 일본도 선교하기에 쉽지 않은 나라임을 잘 알고 있다. 한국인으로서는 과거의 불행한 역사로 인해 사랑하기가 힘든 나라이다. 그래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용서와 사랑을 가지고 찾아가서 남은 생애를 일본선교사로 살아보려고 한다. 독자 여러분께 일본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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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2 |살아가며 섬기며| 소년원에 꽃피는 그리스도의 사랑_박재균 목사 첨부 파일
편집부
1413 2017-12-20
살아가며 섬기며 소년원에 꽃피는 그리스도의 사랑 < 박재균 목사_더사랑교회, 광주소년원 사역 > “달란트와 능력이 닿는다면 사회의 소외된 곳을 병행해 섬기기로” “섬김과 전도는 우리의 몫, 변화는 주님의 은혜로 되므로 실망 않고 최선을” 성탄절과 연말연시가 다가왔다. 평상시에는 별 관심이 없다가도 이 계절이면 그나마 소외계층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다. 추운 날씨 때문이기도 할 것인데 여하튼 그렇게라도 사람들이 그 부분에 관심을 갖게 되는 건 좋은 일이라 본다.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항상 배려하셔서 이들을 위해 곡식을 수확할 때 밭모퉁이를 남겨 두고 떨어진 이삭마저 줍지 말라고 하셨다. 또 포도를 수확할 때도 다 따지 말고 남겨 두라고 하셨고 떨어진 것도 줍지 말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세리, 창기, 병자,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셨는데 그리스도인이라면 항상 약자를 배려하고 소외된 자들을 주님의 마음으로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애써 만들어야 할 것이다. 우리 주변에 소외된 곳이 많이 있지만 그 중에 한 곳이 바로 소년원이다. 우리 교단에도 총회 특수전도부를 비롯, 경북 청송제2교도소(이기학 목사)와 전주소년원(이성원 목사) 등 교정 선교 사역에 헌신하시는 훌륭하고 고마운 분들이 계신다. 그럼에도 필자가 이 글을 쓰는 것은 보다 더 많은 관심을 갖게 하고픈 마음 때문이다. 필자는 2006년도부터 지인의 소개로 광주소년원생들을 섬기기 시작하여 벌써 12년이 되었다. 사실 교회 목회를 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내 달란트와 능력이 닿는다면 사회의 소외된 곳을 병행하여 섬기기를 소원했는데 하나님이 이 일로 인도해 주셨다. 지금까지 매주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광주소년원 기독반 아이들에게 찬양과 설교와 분반공부로 섬기고 있다. 주일 오후 2시가 종교 시간으로 천주교 20여 명, 원불교와 불교는 6~7명씩 모이는데 우리 기독반은 보통 70~75명 정도이다. 지금은 다른 소년원의 리모델링으로 인원이 증가되어 90~95명이 예배에 참석하고 있다. 소년원은 중고등학교 연령층의 청소년들이 범죄하여 들어오는 곳이다. 이곳은 죄를 벌하는 목적보다는 교정이 주목적이다. 그래서 이곳에서 검정고시를 비롯하여 설비, 자동차정비, 지게차, 용접, 포크레인 등 자격증을 따게 하여 대학에 진학하게 하거나 직장을 구하여 사회에 잘 적응하도록 돕는다. 이를 더 효과적으로 돕기 위해서 멘토링 제도를 도입하여 소년보호 위원들이 1~3명의 멘티를 지정받아 상담을 통하여 아이들의 가정과 환경과 심리를 이해하여 효과적으로 지도를 하기도 한다. 매주일 오후 2시, 예배를 통해 그들에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하고, 주중에는 1~2회 점심때나 오후 시간에 그들을 만나 고민을 들어 주고 진로지도를 하고 사회에 나가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그러나 원생들이 그리 쉽게 마음을 열지는 않는다. 지금까지 부모, 형제, 친척, 친구, 교사, 지인 등 많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좋은 말을 해 주었고, 정직하게 살아라, 착하게 살라고 귀가 닳도록 들려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반복하여 잘못을 저질러 결국에 소년원에 다시 들어오곤 한다. 그만큼 여러모로 미숙한 청소년 시절의 범죄나 실수는 인생에 큰 상처를 안겨 주는 것이다. 더 힘든 문제는 시대가 험악해져서 그런지 소년원에 들어올 정도가 되면 이미 사회에서 여러 차례 죄를 지은 경력을 가진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폭력, 강도, 절도, 성폭력, 사기, 치상, 문서위조 등 강력범을 비롯해 죄목도 가지가지이다. 12년 동안 그들을 지도해 왔지만 사실 진정으로 명실상부하게 변하여 나가는 아이들은 소수이다. 물론 서울소년원 같은 경우는 퇴원한 아이들을 모아 공동생활하며 지속적으로 도움을 주기에 그 중에는 목회자가 된 사람도 있고, 선교사로 나간 사람도 있고, 건강하게 직장생활을 잘하며 가정을 꾸린 아이들도 있다고 한다. 그들에 대한 지속적 도움이 절대 필요한 증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밖의 많은 소년원에서는 그런 성과를 내기가 매우 힘들다. 후속 조치에 참여하는 도움 활동이 적어서이기도 하지만 실제적인 난관들도 있기 때문이다. 내 경우, 그들이 퇴원한 후에도 연락하여 도움을 주고 싶지만 내 활동 반경에서 먼 타지역 아이들이 많고 또 소년원에서는 그렇게 잘 따르던 아이들도 퇴원하면 과거 자신의 행적이 사회에 노출될까 봐 연락을 안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바라기는 연락은 안 하지만 사회에 잘 적응하여 멋지게 변화되어 건강하게 살아가는 아이들도 많기를 기대하고 기도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12년 동안 아이들을 지도하며 제대로 변화된 감동적인 경우도 있었다. 그 친구에게 퇴원 후에 집에 놀러오라고 하면서 밥도 사주고 종종 용돈도 주었는데 스스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는 돈을 주어도 자기가 번다면서 안 받고, 다시는 나쁜 짓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었다. 그 친구는 지금까지 반듯하게 직장생활을 잘하고 있다. 그런 경우에는 참으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쁜 마음으로 이 일을 더 열심히 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곤 한다. 하지만 내 능력 밖의 문제들이 발생하면 난감한 경우도 많다. 최근에 목포에서 살다 소년원에 들어온 김아무개(이하 김군)라는 친구가 자신의 멘토가 되어 달라면서 두 장의 편지를 내게 주었다. 그 전에는 옆의 동료가 조금만 거슬리게 하면 욱하며 욕을 해댔는데 지금은 많이 달라져 신앙을 가져 보려고 애쓰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소년원에 들어오기 전에 지은 죄와 연관된 다른 죄 세 건이 더 드러나서 각각 100만 원, 100만 원, 200만 원의 벌금형이 나왔다한다. 이미 수배된 상태이기 때문에 내년 4월에 소년원에서 퇴원하자마자 곧바로 다시 소년원에 들어와야 한다면서 고민을 털어놓는 것이다. 사실 오랫동안 이곳 아이들을 도우면서 내린 결론은 절대로 아이들과 돈거래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퇴원한 아이들에게 너희들이 공부를 하고 싶어 학원에 다니고 싶은데 학원비가 없어 공부할 수 없다면 빚이라도 내서 학원비를 내 줄 테니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공부하라고 말해 주곤 했다. 그런데 그 말을 돈 빌려 줄 테니 어려우면 언제든 연락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문제였다. 황당하게도 학원비가 아니라 그들이 먹은 술값을 갚아 주라고 연락이 오거나 또 돈을 받아내려는 목적으로 교묘하게 나의 심리를 이용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경험이 쌓이다 보니 이제 그런 아이들은 금세 알아낼 수가 있다. 그래서 이번에 목포의 김군의 이야기를 접했을 때 또 무슨 속임수가 아닌가 의심도 들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그렇게 의심만 하기에는 김군은 1년 전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참으로 많이 달려져 있긴 했다. 하나님이 내 마음에 부담을 주셨다. 어떻게라도 도움을 주어 이것을 계기로 평생 변화된 삶을 산다면 하나님께 영광이요 당사자뿐 아니라 그 가족들과 우리에게도 큰 기쁨과 감동이 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관찰하고 있다. 할머니가 영세민이어서 얻을 수 있었던 목포의 작은 아파트에서 동생과 아빠와 할머니랑 살았는데, 이혼했던 아빠에게 새엄마가 생겨 함께 온 딸과 함께 살고 있다. 아빠가 일하던 곳에서 범인을 잡다가 칼을 맞아 몸 상태가 안 좋아 일도 못하신다고 한다. 새엄마는 식당에서 일하시는데 김군과 상담한 결과 그분 역시 힘들어 지금으로선 부모님이 벌금을 내 줄 형편이 안 된다고 하는데 직접 만나서 알아보려고 한다. 사람이 변화될 수 있는 것은 한 순간이다. 인간의 가르침이나 설득으로 쉽게 변하지 않던 사람이 하나님이 어루만지시면 순간에 변화될 수 있음을 보았다. 김군처럼 마음에 갈등을 많이 하고 심리적으로 안정되지 못하여 누군가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때에 조금만 힘이 되어주면 좋은 결과들이 나올 수 있으리라 본다. 도와주면 변화된 인생을 살며 건강한 사회인으로 잘 자라갈 수 있는 청소년들. 우리가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이고 그리스도의 복음과 사랑으로 돌봐 준다면 귀한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몸과 마음이 추운 소년원에도 그리스도의 사랑은 꽃피고 있다. 이 소년원에서 전하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을 통해 거듭난 그들이 언젠가는 사회에 나가서도 반드시 존중받는 건강한 사회인이 될 것을 기대하며 기도한다. 눈이 오고 날씨가 점점 추워진다. 우리 곁에 소외된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 물질도 시간도 사랑도 투자를 하는데 당장에 눈에 보이는 변화나 수확은 미비하다. 그렇더라도 섬김과 전도는 우리의 몫이지만 그 변화의 열매는 주님의 은혜로 이뤄지기에 우리는 여건이 되는 대로 실망하지 않고 기도하며 최선을 다할 뿐이다. 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꽃피우는 일에 동감하고 기도해 주며 협력하는 손길은 더없이 존귀할 것이다.
781 no image |은혜의 뜨락| 하나님이 하실 때까지 기다림 밖에는 없다_김재열 목사
편집부
1247 2017-12-20
은혜의 뜨락 하나님이 하실 때까지 기다림 밖에는 없다 < 김재열 목사_뉴욕센트럴교회, 본보 객원논설위원 > 기다림의 삶을 통해 성경이 기다림의 교과서라는 것을 깨달음 19년을 기다렸던 비전랜드 새 예배당 입당 감사 예배를 마쳤다. 참 오래 기다렸다. 26,000평 (21에이커)의 넓은 땅에 건물은 겨우 1,600평(6만 스퀘어피트)로 아담한 완공이었다. 까다롭기 그지없는 타운의 허가규제로 인해서 작아졌지만 합력해서 선을 이루게 되었다. 원래 말목장으로 사용하던 대지에 8차선 넓이의 언덕을 쌓고 3천 그루 이상의 소나무 전나무 향나무 단풍나무와 관상수와 화초들을 심어 그림같은 파크를 만들었다. 언덕 아래로 1.4km의 올레길과 어린이 놀이터와 야외 체육시설들, 농구, 테니스 코트, 간이 축구장, 야외 공연장과 3백대 이상의 주차장으로 마무리를 했다. 온통 초록으로 뒤덮인 드넓은 대지에 온 종일 품어내는 스프링쿨러는 보는 이들의 마음을 싱그럽게 해주는 영화의 한 장면과도 같이 아름답다. 종종 질문을 받는다. 어떻게 이런 거대한 건축을 했나요? “하나님이 하셨습니다.”가 전부이다. 굳이 부연 설명을 해야 한다면 그냥 ‘기다림’이라는 말밖에는 해줄 말이 없다. 그냥 기다렸다. 불평과 불만이 일어나도 기다렸고 모함으로 건축위원장이 뇌출혈로 세상을 떠나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도 기다렸고 요상한 사이트의 편파적이고 누명적인 기사들로 도배를 해도 기다렸다. 부정적인 헛소문이 퍼져나가도 기다렸고 국세청의 감사를 받아도 기다렸고, 뉴욕 검찰에 고발을 당해 4년을 조사 받았어도 기다렸더니 14년 만에 건축허가가 나왔다. 심지어 울며 하루 빨리 건축허가 달라고 기도하던 6명의 시무장로들이 허가가 나오자마자 할 수 없다고 물러나도 기다리고 기다렸다. 교인들이 반으로 줄어도 기다렸고 재정이 채워지지 않아도 기다렸다. 건축 위원장이 5번 바뀌기까지 기다렸다. 엄두가 나지 않아도 기다렸고, 앞이 망망해도 기다렸고 적절한 건축 회사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고 기다렸다. 참으로 길고 긴 기다림 끝에 하나님께서는 60년 동안 미국에서 교회당만 1,800개를 건축한 로 매스너 회장을 만나게 하셨다. 참으로 오랜 기다림 끝의 하나님께서는 너무 믿음직한 회사를 선물로 붙여 주셨다. 오래 기다리면서 성경이 몽땅 기다림의 교과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창조를 위해서 한 주간을 기다리셨다. 하나님은 하루를 천년같이, 천년을 하루같이 쓰실 수 있음에도 6일을 기다리셨다. 그렇다면 천지창조를 하시는데도 하나님께서는 6천년을 기다린 셈이다. 노아는 방주를 위해 120년을 기다렸고 아브라함도 약속을 얻기까지 25년을 기다렸다. 이삭도 리브가를 얻으려고 40세까지 기다렸고 야곱도 라헬을 얻기까지 14년을 기다렸다. 모세가 부르심을 받기까지 80년을 기다렸고 출애굽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 40년을 기다려야 했다. 예수님도 구원을 이루기까지 인간의 몸을 입고 33년을 이 땅에서 기다리셨다. 진정한 기다림이란 막연히 시간만 보내는 것은 아니다. 지난 기다림 속에 약속의 땅에서 드린 기도가 15,000번쯤 되었다. 기다림은 인내이고 인내는 믿음이고 믿음은 소망을 가져온다. 우리는 지금도 다시 오실 재림의 주를 소망 가운데 기다리고 있지 않는가? 믿음은 낙심 중에도 소망을 바라보는 것이다. 소망은 끝까지 이룰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 * 김재열 목사(합신 4회)는 30여 년 간 캐나다 토론토를 거쳐 미국 뉴욕에서 이민 목회 중이다. 최근 동역자들과 2만 6천 평의 비전 랜드를 준비, 전인적 섬김의 프로젝트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시작했고 현재 씨드선교회 USA 이사장으로 130여 선교사 가정을 섬기며 뉴욕실버선교회를 설립했다. 저서로는 「예수, 내 삶의 내비게이션, 생명의말씀사, 2014」이 있다. - 편집자 주
780 |마른 땅에 단비를|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온 성탄절 편지_박상준 일꾼 첨부 파일
편집부
1290 2017-12-20
마른 땅에 단비를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온 성탄절 편지 - 선교는 성경을 읽지 않는 사람들에게 성경을 읽게 하는 것 < 박상준 일꾼_인도네시아 반둥 > 2017년은 종교개혁 500주년이었고 그 중심 주제는 성경이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선교의 현장에서도 성경은 언제나 중심 주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올해 특별히 이 성경과 성경을 읽게 하는 일에 집중하였습니다. 대부분 이슬람 신자들은 성경에 대한 거부 반응이 큽니다. 하지만, 이들과 함께 신약성경 중에서 히브리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인도네시아어로 읽었습니다. ‘이둘 아다(Idul Adah)’ 라고 하는 이슬람교의 양 잡는 날 바로 다음 날 성경에 기록된 짐승 제사와 그 영적 의미를 그들에게 바로 알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들 중에서 F라고 하는 친구는 히브리서를 읽은 뒤 더 이상 자신을 나타내지 않고 있습니다. F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F가 읽었던 히브리서 말씀이 그의 속에서 살아서 역사하도록, 그리고 예수님을 깊이 만나도록, 영생의 길로 나아오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히 9:22, “피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없다.”는 구절에 한 학생이 스스로 밑줄을 그었다.> 우리는 계속해서 성경 읽기 사역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현지 교회 성도들, 그 중에서 담임목사님과 제직들을 중심으로 바이블 타임(Bible Time)을 가지고 매일 성경을 읽고 묵상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올해 성탄절에는 인도네시아 우리 사역 현장 중에서 영어를 공부하는 가난한 시골 마을 아이들에게 인도네시아어 성경을 선물해 주고 싶습니다. 얼마나 오래 사용을 했는지 알 수 없는 성경책을 들고 모임에 오는 그 아이들을 볼 때마다 측은한 마음이 들곤 합니다. 이 아이들이 자기의 성경책을 가지고 열심히 읽고 말씀에 사로잡힌 삶을 살아가도록 격려하며 기도해 주는 일에 동참해 주십시오. 그 어떤 선물보다 귀한 선물이 될 것입니다. <오래된 성경책> 우리가 10년 넘게 사역하는 곳은 인도네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종족이자, 여전히 미전도종족인 순다 종족이 주로 모여 사는 곳입니다. 그래서 이 지역의 일반 초중등학교에서는 인도네시아어와 함께 순다어를 공식적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가지고 있던 순다어 성경을 두 명의 순다족 사람에게 선물로 주었습니다. 한 사람은 네니(Neny)라는 분인데 무슬림이었다가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면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입니다. 안타깝게도 2년 전에 남편이 집을 나가 돌아오지도, 연락도 끊긴 상태라고 합니다. 또 한 사람은 빡 오하의 딸 노비타입니다. 내년에 고등학생이 될 노비타는 99%가 무슬림인 산골 마을에 살면서 부모를 따라 기독교 신앙을 지키고 있는 아이입니다. 순다어로 된 성경이 그들의 입과 삶을 통해 순다 사람들에게 전달되기를 위해 함께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순다어로 된 자기 성경책을 선물로 받은 노비타가 부모와 함께 기뻐하고 있다.> 2017년 한 해 동안에도 기도해 주시고, 베풀어 주신 사랑으로 우리들이 최선을 다해 사역할 수 있게 해 주신 모든 동역자님들께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2018년부터 저희들은 보다 세밀하게 영적으로 사람을 키우고, 주의 일을 온전히 감당하는 일꾼을 세우는 사역에 박차를 가하고자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가 영적으로 더욱 깨어 있도록, 성경을 읽지 않아 영적으로 갈급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반둥의 영혼들을 위해 말씀 사역이 견고해지도록 중보 기도해 주십시오. 선교의 동역자 한 분 한 분의 삶과 가정과 섬김 가운데 주의 은혜가 차곡차곡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주 안에서 따뜻한 마음이 가득한 성탄절, 그리고 주님 때문에 더욱 신선한 2018년 새해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성탄절을 맞이하며 박상준 이숙영 * 박상준(합신 17회) 일꾼은 2007년 3월에 인도네시아에 파송되었으나 아직 파송교회는 없다. 부인 이숙영 일꾼과 함께 한국어, 영어교육 그리고 번역출판과 성경읽기 사역을 진행하고 있다. 두 자녀는 현지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금은 한국에서 군생활과 대학생활을 하고 있다. - 편집자 주
779 |살아가며 섬기며| 일기당천 一騎當千_이대원 목사 첨부 파일
편집부
1238 2017-12-06
살아가며 섬기며 일기당천 一騎當千 < 이대원 목사_제주선교100주년기념교회 > 한 영혼이 세상의 일천 명과 방불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살아가게 하는 것이 복된 목양의 목표 젊은 시절 군대 훈련소에서 자대 배치를 받고 신고식을 치르기 위해 긴장 속에 연병장에 대기하던 중 큰 돌판에 쓰인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一騎當千 대통령 박ㅇㅇ’ 내가 근무할 부대의 역량을 일러 주는 글귀라 하겠다. 한 명이 천 명을 상대로 싸워서 승리할 수 있는 강력한 부대의 정신을 고무시키는 사자성어였던 것이다. “아~~ 이제는 죽었구나!” 하고 긴 한숨을 토해낸 기억이 있다. 우리 합신 총회에서 마음과 뜻을 모아 제주선교100주년기념교회를 설립하여 부족한 필자가 이 교회를 섬긴 지도 어느덧 한해를 훌쩍 넘겼다. 그동안 아주 미세하지만 변화가 생기고 계속 일어나고 있다. 제주도는 무속신앙이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고 가족, 친족 간의 전통과 유산이 매우 강한 소위 당문화(眷黨文化)가 정착된 곳이다. 당이란 제주 토속어로 친인척을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한 마을이 대부분 혈족관계로 뭉쳐 있고 섬 전체가 특유의 배타성이 강해 한 영혼을 전도하기란 여간 만만치 않은 특수한 지역이다. 게다가 언젠가 필자가 언급했듯이 현대사의 질곡 중의 하나인 4.3 사건 이후 아픔의 골이 깊어져 타지인과 소통하는 일조차 상당히 버겁다. 그 역시 복음 전도에 큰 걸림돌이 된다. 이런 제주에 섬김이로 오면서 생각했다. 한라산을 오르는 길목에 자리한 교회당 주변에 민가라고는 딱 한 채뿐인 이곳 교회를 과연 어느 누가 찾아올 것인가? 적잖이 걱정이 되었었다.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께서는 믿음 없는 나를 부끄럽게 만드셨다. 1년이 되어 원근각처에서 부르신 15여 명의 영혼들을 교회에 채우셨다. 자발적으로 등록하여 기독교 신앙이 어떤 과정을 통해 풍성해지는지 말씀과 교제 속에서 사이다가 튀듯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또 다른 즐거움을 맛보고 있다. 이들을 볼 때마다 바로 그 ‘일기당천’이라는 글귀가 떠오른다. 한 영혼을 숫자로 보고 계수 하는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목회하면서 한번쯤 유혹받는 생각들이다. 어쩌면 우리는 숫자에 매우 민감하여 자타에 의해 성공한, 혹은 실패한 목회자라는 자랑과 자책하는 자리에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일이다. 햇병아리 목회 초년병 시절에 내게는 평생의 영적 스승이신 박영선 목사께서 항상 해 주시던 말씀이 지금까지 내 귓전과 가슴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 “하나님께서 목사를 먹여 살리기 위해 성도들을 불러 모으심이 아니고 피로 값 주고 사신 양들을 먹이고 살찌우게 하기 위해 목사를 세우고 보내신다.” 는 말씀이다. 교회에 모인 한 영혼이 하나님의 시선에는 어떻게 비추어지실까? 내 눈과 가슴에는 마치 일천 명처럼 다가온다. 아니 그 이상이다. 너무나도 귀하고 소중한 영혼들이다. 단 한명의 영혼을 위해서라도 우리 주님은 기꺼이 가장 낮은 자리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을 결코 외면하시거나 포기하지 않으셨으리라. 한 영혼이 세상에서의 일천 명과 방불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이 땅에 하나님나라를 편만케 하는 삶을 살아가는 자리에까지 이르는 것. 그것을 목표로 목양하고 도우심을 구해야 함이 목사에게 주신 가장 복된 사명이요 명예요 영광인 것이리라. 또한 내 자신도 철옹성과 같은 세상 세력 일천 명을 상대하여 싸울 수 있는 영적 맷집과 실력을 쌓는 일에 부단한 훈련과 인내와 수고를 경주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너 오늘 목회 그만 두어라.” 하시는 날까지, 아니 호흡이 다하는 날까지 모든 어려움들을 감내해야 할 것이다. 일기당천의 믿음의 현장에서 전쟁을 목전에 둔 다윗을 위한 백성들의 간절한 외침을 두고두고 가슴에 새긴다.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시20:7).
778 no image |제언| 합신 총회를 향한 두 가지 제언_김승권 목사
편집부
986 2017-11-22
제 언 합신 총회를 향한 두 가지 제언 < 김승권 목사_봄내로뎀교회 > 총회를 위한 헌금과 교단 일꾼을 세워 나가는 일의 중요성 총회’의 '總(총)'이란 모든 것을 망라하며 포함한다는 포괄적 개념이며, '會(회)'란 모임과 집합체를 뜻하는 것이다. 우리는 '합신개혁총회' 산하에 있는 교회와 거룩한 성도들이다. '합신개혁총회'라는 공동체의 나이는 이제 갓 중년으로 접어드는 37세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면에 '대한예수교장로회'라는 타이틀을 전제하면 제102회 총회이다. 이 넘어설 수 없는 차이는 너무나 아픈 역사와 질고의 시간들 속에 다양하고 복잡한 사건들이 내재해 있다는 것을 인식시켜 준다. 지나간 오랜 역사는 접어 두고 합동신학교가 태동된 이후로부터 지금까지의 총회에 대하여 바라는 것과 지금 우리 앞에 펼쳐진 한국교회 앞에서의 우리의 역할과 책임에 대하여 소견을 드리고자 한다. 우리가 오늘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며, 수많은 주의 거룩한 종들의 절대적인 헌신의 결과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아름다운 전통과 역사를 더 풍성하게 열매를 맺기 위해서 함께 고민하며 깊이 묵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심정으로 두 가지를 제언하고 싶다. 첫째, 총회 산하 모든 교회와 주의 거룩한 백성들은 총회를 사랑하고 아끼고 유지해 가야하는 책임이 있다. 우리 모두는 거룩한 총회를 위하여 모두가 실천해야 하는 사명이 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꼭 필요한 재정이 있다. 따라서 총회의 재정이 정상적으로 확보되기 위해서는 총회 산하 교회와 성도들의 자발적인 헌금이 필수적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 속에서 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발견해야 한다.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인간의 간사함과 연약함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신 것이다. 물질은 관심의 표현이며, 사랑의 작은 실천이고, 믿음의 행동 양식을 말하는 동사적 의미이다. 우리는 총회를 사랑한다며 다양하게 표현하곤 한다. 누구보다도 총회에 관심이 많고 크다고 자기주장을 강하게 피력하거나 관철시키려고도 한다. 우리 모두는 이번 102회기 총회 때 총대들의 거룩한 결의 사항에 대하여 최선을 다해 참여해야 하고,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소도시의 작은 교회를 섬기고 있지만 총회를 사랑하는 마음과 책임을 공유하기 위해 매년 주님 앞에 귀한 헌금으로 섬겨 오고 있다. 총회산하 모든 교회 성도들은, 총회를 사랑으로 섬겨야 한다. 그것이 잘 표현되는 한 축이 총회를 위한 헌금이다. 모든 상비부와 위원회는 총회를 위한 헌금으로 한 해의 사역을 위한 계획을 세워야 할 것이다. 그것은 101회 총회 결산을 참고해 보면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총회산하 교회의 일 년 일반결산이 일천억 원을 상회한다. 그 중 1%만 총회 일년 헌금으로 드린다면 10억이 넘는 큰 액수이다. 이것은 모든 상비부가 정상적이며 효율적인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재정적 헌신이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각양각색의 은사를 허락하셨다. 하나님께서 우리 총회산하 모든 교회와 존귀한 성도들에게 독특하고 다양한 은사를 주신 이유는 각자의 역할을 감당하며 서로를 세워 주는 도구로 사용하시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시대적인 일꾼들을 지속적으로 세워 주고 만들어 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 총회는 여러 상비부와 다양한 위원회가 있다. 이는 각자의 고유한 사역을 통하여 교회와 주의 백성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 위함이다. 지금까지 모든 상비부와 위원회는 최선을 다해 맡겨진 일에 충성하였다고 생각한다. 지금 급변하는 21세기와 다변화된 사회 속에서 제도와 관행을 재점검해야 하는 것은 우리들 앞에 주어진 현실이자, 재빨리 변화를 시도해야하는 당면한 과제이다. 예를 들면, 크고 작은 집회를 위해 부득이한 형편으로 외부에서 강사를 초빙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이제는 각 상비부와 위원회의 사역은 총회의 전체적인 큰 그림 아래 각자의 역할을 감당하되 가능하면 우리 총회에 속한 지도자들을 세워 가는 일에 초점을 맞추었으면 한다. 지금은 모든 영역에서 지도자를 찾아보기 힘든 시대이다. 지도자들은 어느 날 갑자기 세워지는 것이 아니기에 준비된 사람들을 세워 기회를 주고 역량을 키워 나가는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총회를 위한 헌금과 총회 소속 일꾼들을 키워나가는 일. 이 두 가지 제언은 총회산하 한 회원으로서 기도와 장고 끝에 삼가 올리는 글이다. 우리는 여기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왔고, 세워져 가고 있다. 또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 속에서 우리 합신총회에게 거는 한국교회의 기대가 매우 큰 것도 사실이다. 사람의 눈으로는 작은 총회이지만 하나님 앞에서 ‘바른 신학, 바른 교회, 바른 생활’을 끊임없이 추구해 나가야할 것이다.
777 no image |은혜의 뜨락| 아름다운 쉼표와 마침표_나택권 장로
편집부
958 2017-11-22
은혜의 뜨락 아름다운 쉼표와 마침표 < 나택권 장로_호산나교회 > 인생의 마무리를 위해 감사와 용서와 사랑과 봉사를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이사야 40:6-8). 꽃이 영원히 아름답고 향기로울 수가 없는 것처럼 인간의 부귀영화도 영원히 간직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회자되는 말로 우리 인생을 9988하게 살자고 한다. 즉 남은 인생을 간결하게 즐겁고 건강하게 살다가 가자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건강하고 멋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우리들 가슴속에 무겁게 지니고 있는 마음, 원망, 아픈 감정을 다 내려놓고 가볍게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미움은 가질수록 더 거슬리며 원망은 보탤수록 더 분하고 아픔은 되씹을수록 더 깊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면 인생의 마무리는 어떻게 하면서 살아가야 될까? 우리들 인생 마무리는 그것이 신앙생활이든 부부간의 생활이든 간에 모든 것에서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순수했던 그 때 그 시절, 그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지난날의 모든 것을 감사히 여겨야 한다. 감사하는 것은 하면 할수록 더 커지며 그것이 곧 행복이기 때문이다. 또한 인생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용서와 이해와 사랑이다.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되돌아보고 그에 상응한 용서와 이해가 필요하다. 그리고 사랑해야 한다. 사랑은 소리 없는 헌신이고 양보하는 마력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교회 생활에 있어서는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해야 한다(벧전 4:10). 우리가 구원 받은 것은 섬김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섬기기 위해서 구원 받은 것이므로 노인이든 젊은이든 성도들의 본분은 봉사이다. 노인 시대를 일컬어 ‘상실 시대’라고 해서 늙으면 연골이 없어지고 인간관계가 없어지며 할 일이 없어지는 시대라고 한다. 이것 때문에 노인들은 나에게 맞는 일을 찾아 열심히 하려고 하지 않고 편안히 쉬려는 경향이 많다. 그러나 지금도 시니어 클럽에서 택배원, 학원 보조원으로 일하는 분들도 있다. 참으로 존경할 만한 일이다. 반면에 지금까지 내가 열심히 일해서 이나마 이루어 놓았는데 또 무슨 일을 하느냐고 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일이라고 하는 것은 물질적 수입과는 관계없이 자신의 몸과 정신을 드려 활동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 성도들에게는 기도하기 위해 꿇어야 하는 무릎이 필요하고 전도를 하기 위해서는 말도 필요하지만 그와 함께 봉사를 하기 위한 손도 있어야 한다. 독일의 어느 교회 앞에 예수님의 석상(石像)이 있었는데 세계 2차 대전 중에 예수님의 손이 파편에 맞아 떨어져 나갔다. 전쟁이 끝난 후 교회가 이것을 복구하기 위해 의논한 결과 저들은 예수님의 손이 떨어져 나간 석상을 그대로 보존하기로 결정하고 대신에 예수님의 석상 밑에 “예수님은 우리들의 손을 필요 하신다.”는 문구를 새겨 놓았다고 한다. 이것은 곧 봉사를 열심히 하기 위한 다짐이었다고 한다. 우리가 교회에서 봉사하면 형제 화합의 복을 누리기 때문에 노인이든 젊은이든 봉사에 열심을 다 해야 한다. 우리 인생들 모두가 100세까지 건강하게 살고 싶어 하는데 이러한 인생 삶도 하나님 안에서 합당한 삶을 살아야 그 축복으로 장수가 주어진다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돼야 한다. 괜히 엄청난 세상을 바꾸려고 호령하고 기다리지 말고 먼저 나를 바꾸어 무언가 나에게 맞는 일을 찾아 열심히 일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모든 일에 사생결단하지 말고 여유를 갖고 살도록 하자. 되도록 입은 닫고 지갑을 열도록 하자. 잘못에 대하여는 구차한 변명을 하지 말도록 하자. 몹시 추해 보인다. 나에게 있는 것 중 1% 정도라도 이웃과 동료를 위해 투자할 수 있는 여유를 갖고 살자. 불필요하고 과도한 탐욕이나 노욕과 분노를 버리고 우리들 마음속에 기쁨과 희망을 시간에 담고 남은 생애를 즐겁게 살면서 장차 누릴 영생에 대한 산 소망(벧전1:3)을 가지고 성도로서의 합당한 삶을 살아가도록 하자. 그리스도인의 신분은 현재 비록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은 하늘나라의 시민이요 하늘나라를 위해 존재하는 자들이므로 하늘나라를 위해 힘쓰고 애쓰고 수고해야 한다.
776 |마른 땅에 단비를| 고산오지에서 역사하시는 주님_장회주 첨부 파일
편집부
911 2017-11-21
마른 땅에 단비를 고산오지에서 역사하시는 주님 < 장회주_C국 고산오지 일꾼 > 첫사랑 속의 영혼들 속에 역사하시는 복음은 영혼과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 현지 소수민족 중에서 제자로 키운 후 개척하여 세운 예배공동체의 목회사역을 맡아 왔던 제자의 가정에 인생의 큰 고통이 찾아왔다. 감당할 수 없는 아픔과 고통,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를 열어 가야 할 삶의 무게 앞에 입술로부터 나가는 어떤 위로도 그들에겐 충분한 위로가 되진 못하였다. 우리와 다른, 거의 원시적인 환경과 자급자족 사회에서 당하는 이 어려움을 오늘 우리와 같은 현대를 사는 사람의 입장에서 논한다는 일 자체가 어쩌면 넌센스처럼 여겨지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위로는 오직 복음뿐이었다! 복음은 모든 시대와 환경을 초월하여 우리에게 역사하는 위로와 소망이며 생명이요 구원인 것이다. 함께 붙들고 나누는 복음! 전하는 이나 받는 이 모두 눈물 때문에 진도가 나가기 쉽진 않지만 내 심장의 고동 소리와 눈물 속에 드러나는 진심과 사랑을 그들은 온몸으로 받고 있었다. 십자가의 은혜와 복음의 역사로 새 힘을 얻은 이 가정이 사역을 끝내고 하산하는 내 손에 강제로 쥐어 준 인민폐... 마을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받아야 한다고 강제로 차 안으로 밀어 넣어서 결국 받을 수밖에 없게 된 인민폐는 천위엔(한화 약 이십만 원)이었다. 고산 소외된 곳에서 자급자족하는 사람들의 경제 상황을 고려할 때 이것은 3~4개월 생활비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 땅에 와 12년 여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처음으로 사역지의 영혼들에게 받은 교통비가 3~4개월 생활비라니... 감사의 마음과 짠한 마음이 겹치며 맺혀지는 눈물은 그 지폐를 사용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과부의 두 렙돈! 주님이 그것을 받으셨을 때의 감동이 이러하셨으리라! 그를 향한 사랑 역시 이런 마음이셨으리라! 그리고 그 말씀과 상황이 감동과 함께 밀려왔다! 오늘날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함께. 그리고 다음날 이어지는 다른 지역 사역지의 감사가 넘치는 현장은 전도가 빠르게 이뤄져 예배당을 지어야만 했던 고산 오지 마을! 공사를 완공하여 드리게 된 입당예배는 서울에서 오신 분들과 내 사역지마다 먼 길을 마다않고 달려온 영혼들, 멀어서 당일 못 올까 봐 미리 와서 숙박한 영혼들이 어우러져 영광의 예배를 드렸다. 예배당에 콩나물처럼 좁혀 앉았으나 자리가 부족하여 서 있는 성도들. 아예 마당에 집집마다 끌어 모은 의자를 배열하여 앉은 성도들은 고산 구름에 젖어 추위와 싸우면서도 4시간이 넘어 가는 예배 시간 동안 대단한 인내심으로 영광의 예배를 드림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한국에서 오신 분들에게 감동을 전했다. 이들은 예배 중 설교를 한 번 듣고는 자리에서 일어서지를 않는다. 찬양 특송을 하는 한 팀이 한 번 나오면 3곡은 찬양을 드려야 끝난다. 몇 팀의 3곡씩 드리는 찬양과 대중 찬송, 그리고 은혜를 사모하기에 2~3번의 설교를 통해 은혜를 받고서야 예배가 끝날 수 있기에 예배시간은 통상 3~4시간이 걸린다. 예배 앞에, 은혜 앞에 이토록 순수하고 열심인 영혼들을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그분은 오늘도 첫사랑 속에 섬기는 이 영혼들 속에 살아 역사하시고, 복음은 영혼과 세상을 변화시키는 다이나믹한 능력이다! 고산 오지에 살아 역사하시는 그 분을 향한 찬양이 영원하기를!
775 no image |은혜의 뜨락| 아득하고 그리운 고향의 종소리_이은국 목사
편집부
1120 2017-11-07
은혜의 뜨락 아득하고 그리운 고향의 종소리 < 이은국 목사_용연교회 > 아득한 예배당 종소리는 하나둘 사라지고, 종탑마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어느 신도시에 들어서는 예배당 건축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무렵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붉은 네온 십자가를 설치하는 것만큼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며 입주민들의 반대 시위가 이어졌고, 급기야 교회는 야간을 틈타 기습적으로 그 십자가를 설치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는 얘기를 들으며 왠지 씁쓰레한 감정을 지울 수 없었다. 과연 어느 쪽이 이겼는지는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어쩌다 교회와 십자가가 빛을 잃어가고 혐오스러움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는지 두고두고 뼈저리게 반성해 볼 일이다. 평온한 마을, 그다지 높지 않은 첨탑 그 꼭대기에 자리한 십자가 하나, 화려하지도 않고 어떤 빛도 발하지 않는 작고 초라한 십자가였었다. 종탑에서 울려 퍼지는 뎅그렁 뎅그렁 예배당 종소리가 얼마나 정겹고 아름답게 귓전에 와 닿았던지 언제나 듣는 이들의 마음을 흔들었고, 남녀노소는 물론 부랑아도 걸인도 술 취한 사람마저도 잠시나마 숙연해지고, 스스럼없이 그 예배당으로 달려가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었다. 먼동 트기 전 새벽에 울리는 종소리는 보다 낭랑하게 들려왔다. 단잠에 취한 사람들을 일깨워 일터로 나가는 육신과 마음을 가다듬게 했고, 말씀과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는 성도들에게는 영혼까지도 일깨우는 역할을 넉넉히 담당했었다. 교회와 주민들은 상부상조하는 가까운 이웃이었고 어떤 거리감도 느낄 수 없었다. 되돌아 보면 교회와 십자가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새겨진 흠모의 대상이었고 동네사람들은 주저 없이 예배당을 드나들며 함께 봉사하기를 원했고 다 같이 기뻐했다. 물론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의 완강함이 있기는 했어도... 고요한 한낮에는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예배당 마당으로 몰려왔다. 그 신비스러운 종소리를 손수 울리고 싶어하는 아이들이 종탑 주위를 기웃거리며 목적한 거사를 이루기 위해서 틈틈이 노리는 시간이기도 했었다. 일찌감치 그것을 아는 종지기로서는 아이들의 손에 줄이 쉽게 닿지 않게 되도록 높은 곳에다 종 줄을 꽁꽁 묶어 놓았다. 이에 질세라 아이들도 작대기나 목마를 동원해서라도 이윽고 묶인 줄을 끌러 한두 번 종소리를 울리고는 잽싸게 도망치기 일쑤였다. 기어코 한 번은 치고 말겠다는 아이들과 그것을 지키는 종지기 사이에는 날카로운 신경전과 숨바꼭질이 멈출 줄 몰랐다. 아이들이 종을 치지 못하도록 했던 종지기로서도 당연한 이유가 있었다. 기습적으로 종을 치는 과정에서 묵직한 종의 무게에 매달렸다 넘어지는 탓에 크게 다치기도 했고, 그다지 단단하지 못했던 종 줄은 곧잘 끊어졌다. 흔히 발생하는 일은 숙련되지 못한 탓에 이리저리 종이 움직이면서 줄을 휘감고 올라가 끼어 버리는 일이다. 연세 지긋한 여성도들이 주로 맡았던 종지기로서는 종탑에 올라가 끈을 풀어 놓는 일이 난감할 수밖에... 그 때마다 약간은 위험스럽기도 하고 옷에 먼지며 손에 기름 때를 묻혀가며 흔쾌히 종 줄을 풀어 제자리로 되돌리는 일이 내 몫이었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오늘날 교회를 돌아보며 지난 날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즐겨 수고하며 헌신했던 종지기들을 생각해 본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정한시간 종을 울리기 위해 칠흑 같은 어두움을 헤치며 숨가쁘게 달려왔던 성도였고, 어쩌면 목숨처럼 자리를 지키며 한결같은 봉사로 주님을 사랑했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사랑했던 성도였다. 그들은 어쩌다가 놓칠세라 노심초사하며 철야까지도 마다하지 않았으며, 출타도 자제하며 자리 지키는 일에 온 힘을 쏟았다. 뿐만 아니라 예배당 종소리를 듣는 모든 이들의 마음에 편안함을 전해 주는 데는 숙련된 기술도 따라야 했다. 그냥 줄 몇 번을 당겼다 놓았다 하는 것이 아니었다. 언제나 적절한 거리와 세기를 조정해 가며, 타이밍을 놓치거나 종 줄을 놓아 버려도 안 될 일이니 그 기술 또한 만만찮았다. 그들은 종을 치는 동안에도 허투루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 종을 다 친 후, 줄을 꽁꽁 묶어놓은 그 순간까지 간절한 마음으로 내내 기도는 멈추지 않는다. “이 종소리를 듣는 이마다 이곳 주님의 품으로 달려오게 하옵소서” 라며. 모름지기 종지기의 자리가 최고의 봉사직임을 자타가 인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지기들을 생각할 때 단 한 가지 아쉬움은 남는다. 비록 자신처럼 세련되고 아름답게 가지런한 소리는 내지 못했어도, 너무나 단조롭고 생뚱맞고 어설프기만 했어도, 돌이켜 보면 그토록 간절한 마음으로 예배당 종 한번 치고 싶어했던 아이들에게 ‘너도 주님을 사랑하고 영혼들을 사랑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종지기가 되라, 너도 신실한 주의 종이 되라’며 마음껏 종을 쳐 보라 하지 않은 것은 못내 아쉽기만 하다. 이제는 그토록 아름답고 부드럽게 다가와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던 그 아득한 예배당 종소리는 어느덧 하나 둘 사라지고, 작지만 그토록 웅장하고 늠름하게 보였던 종탑마저 자취를 감추고 말았으니, 고향마을 나직한 곳에 자리했던 그 초라하고 작은 종탑 십자가가 보다 우러러 보았던 가장 큰 능력의 십자가였음이!
774 no image |살아가며 섬기며| 무학숯불갈비교회_강승대 목사
편집부
1157 2017-10-25
살아가며 섬기며 무학숯불갈비교회 < 강승대 목사_합포교회 > 우리교회에도 식당처럼 손님이 찾아오면 좋겠다는 꿈과 소원이 생겼다 1996년도에 ‘합포제일교회’라는 이름으로 개척했다. 시내버스터미널 근처 식당 거리였다. 마침 5층 상가 건물의 빈 사무실을 4년 동안 전세로 얻었다. 1층은 ‘자연횟집’ 2층은 ‘무학숯불갈비’ 3층 바둑학원, 4층 명문종합학원, 5층 영,수 전문학원이었다. 우리 교회는 바둑학원이 있는 3층 절반을 사용했다. 3층 화장실 앞에 예배당 입구가 있어서 교회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돈이 없어 교회 간판을 제대로 달지 못했다. 옥상에 철제 종탑을 세워 교회 이름 네온은 달지 못하고 간신히 십자가 네온만 들어오게 한 것이다. 그렇게만 해 두었어도 근사해 보여 감사했다. 교회를 시작했으니 교회를 알려야 했다. 아내와 함께 일주일에 한 번씩 주위 아파트 호별 전도를 하러 다녔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아파트 초인종을 누르고 인터폰을 향해 교회를 알리면 얼마나 냉담한 반응이 돌아오던지..... 그때마다 전도를 그만 두고 싶은 생각을 갖곤 했다. 어느 날 아파트 전도를 하다 계단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청년을 만났다. 교회에 한번 나오라고 했더니 건네 준 전도지를 보며 하는 말이, “무학숯불갈비교회에서 왔네요.” 했다. “???... 그게 무슨 말인가?” 하고 청년에게 물었더니 “밤에 보세요. 무학숯불갈비교회가 맞거든요.”하고 웃었다. 그날 밤에 교회 건너편 빌딩에 올라가 바라보니 무학숯불갈비 네온 위에 작은 십자가가 켜졌다. ‘합포제일교회’ 네온이 없어 작은 십자가 바로 밑에 큼직한 갈비집 네온이 들어와 합쳐지니 영락없이 교회 이름이 ‘무학숯불갈비’였다. 횟집과 숯불갈비 집과 학원은 항상 손님(?)으로 붐볐다. 부러운 마음에 우리교회에도 식당처럼 손님이 찾아오면 좋겠다는 꿈과 소원이 생겼다. 그러나 개척교회에 찾아오는 손님은 거의 없었다. 고기 굽는 냄새가 예배 시간에도 올라와 후각을 자극했지만 한 번도 그 ‘무학숯불갈비’ 식당에 가서 식구들과 고기를 구워 먹은 기억은 없다. 몇 년 되지 않아 부모 없는 아이들이 교회에 모여들며 ‘무학숯불갈비교회’에다 ‘고아원교회’라는 별명이 하나 더 늘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니 횟집도 숯불갈비 집도 바둑학원, 입시학원도 각자의 사정으로 전부 문을 닫았다. 그러나 그 상가에서 가장 초라했던 우리 교회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그때의 갈빗집과 횟집을 부러워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공간을 하나님이 주셨다. 우리교회에도 식당처럼 손님이 찾아오면 좋겠다는 그 꿈과 소원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꿈은 현실이 되어 갔다. “무학숯불갈비교회”, “고아원교회”라는 소리가 당시에는 우리의 마음을 찌르는 화살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소리도 마냥 그리워진다. 그때를 생각하면 여러 의미가 버무려진 눈물이 맺힌다. 가진 것은 적었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하나님이 꾸게 하시는 꿈을 꾸며 기도하고 순종했던 참으로 복된 개척의 시간들이었다.
773 no image |제언| “자발적” 총회 헌금의 의미_김기영 목사
편집부
1132 2017-10-10
제 언 "자발적" 총회 헌금의 의미 < 김기영 목사, 화성교회 원로 > 각 교회에 대한 재정 요청 규제 결정으로 총회 각 부서가 위축되지 않을까 염려됨 총회 회의 참석은 어떤 때는 설교보다 더 어렵게 느껴진다. 간혹 오가는 토론이 길어질 때는 속에서 열이 나는 것을 꾹 참고 그래도 총회는 중요한 안건들이 결정되므로 끝까지 앉아 있는 것이 각 노회에서 파송 받은 총대로서 의무를 다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모든 총대들의 마음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이번 102회 총회 마지막 날 폐회 시간이 다가오는데 재정부 보고와 함께 세례교인 1만원 헌금에 대한 안건도 간단히 끝나지 않았다. 정치부에서는 A노회에서 올린 청원 그대로 받는 것으로 본회 에서는 찬반 토론 후에 통과되었다. 그 결의 내용은 각 상비부와 특별위원회에서는 총회에서 책정한 예산 안에서 집행하고 각 교회에 어떤 재정 지원 요청을 하지 않는다(단. 부득이 필요할 때는 임원회의 결의를 거쳐야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재정부장이 호소한 대로 교육, 전도, 특수전도, 사회복지등 13개 상비부를 비롯하여 16개의 특별위원회와 기독교개혁신보 등이 할 일을 계획하고 청구한 돈은 많은데 재정부에서 분배할 돈이 턱없이 부족함으로 재정부에서는 각 부서가 요청한 액수를 많이 깎아서 책정할 수밖에 없다는 안타까운 호소였다. 지난 회기에도 각 부서에서는 총회재정부에서 주기로 한 예산을 주지 않아서 일은 해야 하기에 부득이 몇몇 큰 교회에 지원을 요청했는데 요청 받은 교회에서는 세례교인 분담금을 내는데 왜 또 요청하느냐고 말하게 된 것이다. 각 노회에서 총회에 의무적으로 내는 노회비로는 부족하여 12년 전 합신총회가 세례교인 1인당 1년에 1만원 헌금 제도를 만들 때 합신 소속 전국 교회 세례교인이 1년에 1만 원만 내면 각 부서에는 예산으로 쓰고도 남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 절반만 들어와도 대충 꾸려나갈 수 있다는 계산이니 이제는 각 부서에서 재정 때문에 각 교회에 손 벌릴 일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처음에는 그래도 좀 들어 와서 부족한 대로 충당되었다. 그러나 갈수록 총회 일은 더 많아지는 데 각 교회에서 내는 총회헌금은 줄어들어 각 상비부에서는 총회에서 주기로 한 예산을 주지 않으므로 각 부서를 맡은 목사님 장로님들은 일은 해야 하고, 그러다 보니 각 교회에 지원을 요청하기에 이른 것이다. 사실 지원 요청한 부서는 몇 안 되고 대부분 부서들은 예산보다 줄여서 집행했다. 감사부에서는 철저한 감사를 통하여 상비부 지출을 줄이도록 지도하면서 경조비는 상비부에서 지출하지 않도록 지적하였으니 이와 같이 각 부서가 절약해서 꼭 집행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이렇게 각 교회에 재정 요청을 규제하는 결정으로 인하여 각 교회에서는 지원 요청을 받지 않아 부담을 줄여 좋을 것이나 총회 각 부서가 위축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이번 결의에 빠뜨린 것이 있는데 세례교인 1인당 1만원 분담금이 적게 들어온 것에 대하여는 아무런 논의도 하지 않고 그냥 지나간 것이다. 지난 101회기에는 세례교인 총회헌금 예산은 3억 5천 만 원이었는데, 실제 액수는 1억 8천1백 만 원으로 약 절반 밖에 안 들어와서 총회재정부가 책정한 예산을 다 주지 않음으로 어려움을 겪은 부서들이 있다. 금년 102회에 세운 세례교인 총회헌금 예산은 다시 3억 5천이다. 그런데 과연 3억 5천이 들어오지 않으면 앞으로 1년 총회는 어떻게 일할 것인가? 재정부에서는 돈을 주지 않고 각 교회에도 지원 요청은 할 수 없으니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느 목사님은 돈이 있는 만큼만 일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막상 일을 맡은 사람은 그렇지 못하다. 사실 1년에 1만원은 많은 액수는 아니다. 1달에 1,000원도 안 되는 액수이다. 교회에서 여전도회비, 남전도회비로 월 5,000원 내기도 하는데 총회를 위한 월 1,000원 꼴의 헌금을 많다고 할 교인은 없을 것이다. 우리교회에서는 총회주일을 정하여 총회가 하는 일을 주보에 내고 기도와 관심을 부탁하면서 1만원 이상 헌금하도록 한다. 어떤 분은 1만원 이상을 내는 분도 있고 물론 안 내는 분도 있다. 이렇게 총회주일 헌금을 거두어 모자란 액수는 교회 일반 재정에서 채워서 총회로 보낸다. 이렇게 하면 총회에 관심도 갖게 되고 교회 재정도 부담을 덜게 된다. 총회에 특별위원회가 자꾸 늘어난다고 말하는 분이 있는데 요즘 늘어난 것이 이단과 사회문제, 동성애 합법화 반대위원회 같은 것들이다. 될수록 위원회를 늘이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꼭 해야 할 일은 하도록 적극적으로 세례교인 분담금을 총회에 보냈으면 한다. 지금은 내 교회만 지키면 된다는 생각으로는 이 시대의 사단의 공격을 이겨낼 수는 없을 것이며 총회 산하 교회가 하나의 교회처럼 움직일 때 비록 작지만 강한 합신 교단으로 빛을 발할 것이다. “자발적으로”이냐 “의무적으로”이냐의 문구로 논의 하다가 총회헌금이면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지 강제성을 띠면 안 된다고 했는데 생각하기 나름이다. 어떻게 보면 “자발적으로”는 더 강한 의미를 지닌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한다는 매우 강한 의미를 지닌다. 군대에서 상관이 “내가 말하기 전에 스스로 알아서 해.”라고 말할 때 부하는 상관의 뜻이 무엇인지 파악해서 말하기 전에 실행해야 한다. 시켜서 하는 것 보다 자발적이란 더욱 강한 명령으로 듣는다. 우리가 만일 “자발적”이라는 말을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뜻”으로 이해한다면, 총회의 결정은 너무 책임이 없는 결정이 되고 만다. 왜냐하면 각 상비부와 특별위원회를 맡은 목사님 장로님들이 계획을 세우고 재정 요청을 해 놓고 세례교인 총회헌금은 내도 되고 안 내도 된다는 생각을 갖는다면 (그럴 분이 없다고 믿지만) 바람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회원이 “자발적으로”라는 말을 “의무적으로” 로 바꾸자는 의견을 냈는데 일축되어 버렸다. “의무적”이라는 말이 강제성을 띠므로 거스리는가? 정작 “의무적” 이란 말은 좋은 것이다. 특히 하나님을 위하고 교회와 총회를 위하는 일에서 “의무적”은 복된 말이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한 무슨 일이든지 부실하게 될 것이다. 참고로 합동측에서는 교회가 세례교인 분담금을 내지 않으면 교회에서 필요할 때 요청하는 소속증명서 같은 서류를 발급해 주지 않는다고 한다. 세례교인 분담금은 총회 일과 직결되는 만큼 강제성을 띤다. 우리도 합동측처럼 하자는 말이 아니라 “의무적” 이라는 문구 하나만으로 강제성을 띤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아무쪼록 돈이 모자라 해야 할 일을 못한 채 우울한 한 해 살림이 되지 않게 우리 모두 합신총회를 위해 작은 관심이라도 갖기를 바란다. 아울러 “자발적”이라는 의미가 “의무적” 이상의 책임 있는 실행이 되기를 기대한다. 사족이겠지만, 필자는 합신이 태동하기 2년 전 총신을 졸업하고 합동측 교회에서 목회하다가 1991년에 필자가 성장한 화성교회(고 장경재 목사 시무)가 속한 합신으로 와서 처음에는 아는 사람이 없어 외로움을 극복하느라 시간이 걸렸다. 지난 27년간 합신 교단에 몸담아 오면서 합신총회 만큼 좋은 교단은 없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합신으로 나를 인도하심에 감사를 드린다. 만나는 노회와 총회 목사님 장로님 한 분 한 분이 모두 진실하고 개혁주의 신앙에 흔들리지 않는 강한 믿음의 뿌리가 있음을 알게 되면서 마음에 큰 힘을 얻는다. 가끔 총회에서 열띤 토론으로 서로 조금 언성이 높아지기도 하지만 모두 교회와 총회를 사랑하는 동기에서 나온 발언들이다. 신앙 사상이 점점 어두워지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식어지는 혼탁한 때에 합신 교단 소속 목회자, 장로, 성도들은 주님을 사랑하고 서로 서로 사랑하여 이 시대를 더욱 밝히는 빛으로 역할을 다하기 위해 948 교회와 21 노회, 그리고 총회가 마치 하나의 큰 교회처럼 뭉쳐질 때 하나님께서 놀라운 역사를 이루실 줄 믿는다. 합신을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으로 102회기 1년 동안 힘차게 나아가기를 기도한다.
772 |개척, 그 눈물과 기쁨| 개척교회에서 교회 개척을 꿈꾸다_박용주 목사 첨부 파일
편집부
1514 2017-09-18
개척, 그 눈물과 기쁨 개척교회에서 교회 개척을 꿈꾸다 < 박용주 목사_나주혁신장로교회 > 나주혁신장로교회의 개척은 한 개척교회와의 만남에서 시작했다. 2012년 초에 유학을 계획하고 잠시 부모님 곁에 있기 위해 광주에 내려왔다가 인터넷을 통해 출석할 교회를 만났다. ‘개혁신학을 충실하게 실천하는 다문화교회’를 지향하는 3개월 된 ㄱ교회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다문화교회는 센터중심(구제사역)형이 많은데, 그 교회는 말씀을 바르게 가르치는 말씀사역 중심의 교회였다. 잠시 머물기 위해 간 그 교회를 2년이 넘게 출석했다. 그리고 그 개척교회에서 교회개척을 꿈꾸기 시작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 교회가 실천하는 복음중심적 말씀과 훈련, 목양이 나와 우리 가정을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교회가 개척하는 교회 돌아보면 그 교회에서의 2년은 어디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교회개척 인턴십 기간이었다. 무엇보다 그 교회에는 우리 부부를 가장 잘 이해하고 코칭해 주는 탁월한 목회자 부부가 있었다. 그들은 교회개척부터 지금까지 때론 교사로 때론 친구로 동행해 주었다. 2014년 10월에 나주혁신도시에서 교회를 개척하기로 목표를 정하고, 그해 6월에 광주 집에서 개척감사예배를 드린 후 4개월 동안 가정예배에 익숙해지며 그에 따른 예배 형태와 인터넷 공간 등을 준비했다. 이 시기에 광주의 ㄱ교회는 목회자의 중학생 딸과 유일한 한국인 남성 싱글 성도를 주일예배를 위해 파송해 주었다. 우리는 모교회로부터 재정 지원은 없었지만 그보다 더 귀한 코칭과 최고의 지원을 받고 교회를 시작했다. 아파트에서 교회를 시작하다 2014년 10월 드디어 나주혁신도시 아파트에서 예배를 시작했다. 첫 예배에 그해 6월부터 토요일 놀이터 전도에서 만나고 교제한 한 가정이 교회에 왔다. 이후 매주 1가정 이상 집 문을 두드리는 일이 일어났다. 한 달 남짓 지나자 6가정 정도가 모였다. 이제 광주에서 주일이면 내려오던 모교회의 두 사람은 더 이상 올 필요가 없었다. 새로운 사람들의 방문은 그 정도에서 멈췄다. 이 시기에 새로운 방문자가 멈춘 것을 두고두고 감사한다. 우리는 큰 변화 없이 4개월 동안 서로를 이해하고 교제하며, 교회의 기초를 닦는 시간을 가졌기 때문이다. 3개월의 등록 준비 기간을 보낸 5가정과 함께 12월 초에 1박 수련회를 가졌다, 둘째 날 아침에 모든 멤버들이 예배당을 알아보기로 결정하고, 당일에 태권도 도장을 빌려 쓸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태권도장을 빌려 예배를 드리다 2015년 1월부터 태권도장은 주말이면 예배당이 되었다. 집에서 층간 소음을 걱정하다 체육관으로 옮기니 온 교우가 신이 났다. 문제는 예배 시간에도 애들이 집중을 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체육관 바닥에 장판을 깔고 책상과 의자를 세팅하기로 했다. 토요일엔 1시간 남짓 체육관을 예배당으로 꾸미고, 주일 예배가 마치면 건물 밖에 준비한 천막에 모든 물건을 보관하는 것을 반복했다. 자칫 지칠 수 있었으나, 도리어 교우들로 하여금 교회를 품는 기회가 되었다. 집에서 모일 때, 체육관에서 모일 때, 매번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공동체가 더욱 견고해 지는 방향으로 풀리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상가시대가 열리다 체육관에서 6개월 정도 지내면서 교회는 조금씩 성장해 갔다. 교우들은 여전히 에너지가 넘쳤다. 그러나 목회자로서 장마가 다가오는 것은 큰 부담이었다. 옥상에 설치한 천막에 음향장치도 둬야 했기에 여러모로 신경이 쓰였다. 그렇다고 높은 상가임대비를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이때에 가족의 지인을 통해 저렴한 가격으로 상가를 임대하게 되었다. 세 번째 예배 장소로 이동을 하게 된 것이다. 드디어 2014년 7월에 상가 5층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교회의 공간은 초기부터 늘 고민이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회중과 함께 공간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 함께 걸음을 떼는 것이었다. 성경에 충실한 복음중심적인 교회로 더디지만 자라가는 교회 모임 장소가 바뀌는 속도만큼 교회의 걸음은 참으로 역동적이었다. 하지만 실제 우리 교회는 이벤트가 거의 없다. 주일예배에 집중하고, 오후 소그룹 모임에서 그날 말씀을 나눈다. 말씀을 잘 듣는 교회로 서는 것에 방해가 되는 행사와 모임은 최대한 지양하고 있다. 수요일 오전에는 성경학교를 열어 말씀을 충실하게 가르치려고 한다. 리더 모임에서는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을 가르친다. 모든 모임을 통해서 강조하는 것은 성도의 교제이다. 서로를 돌보는 일에 힘쓰기를 강조한다. 이런 강조 속에 젊은 회중들이 반응하고 있다. 율법주의와 물질주의, 신비주의에 물든 신앙 패턴에서 자라온 젊은 회중들과 장년 교우들은 복음적 원리에 따른 가르침과 교회 방향에 조금씩 젖어 들고 있다. 이 과정 속에 배우는 것이 성경에 충실한 복음중심적 교회는 긴 시간 속에서 성장해 나간다는 것이다. 그 더딘 성장 속에서 속이 뒤집어 지고, 답답하고, 낙심할 때도 있다. 더딘 길을 가며 더디다고 불평하는 것이다. 개척 3년이 지나고 이제 더욱 확신하는 것이 있다. ‘말씀의 바른 선포가 있다면 사람이 자라고 그들이 자라면 교회의 사역이 세워진다’는 것이다. 틀리면 고치면서 가면 되지 젊은 회중들과 함께 하는 것은 장점과 함께 어려움도 있다. 애들이 많기에 조용히 집중해서 모임을 가져본 적이 없다. 자신의 가정에 집중된 시선을 공동체로 돌리는 것도 매우 어렵다. 기성교회에 대한 반감, 목회 지도력에 대한 반감을 가진 이들도 있다. 그래서 내 자신은 한국교회의 30년 후의 좋은 지도력을 생각하며 그들과 함께 교회를 세우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젊은 회중과 목회하며 가장 뼈저리게 배운 것은 ‘균형의 중요성’이다. 결국 기존 교회에 대한 반감으로 늘 극단으로 가 있는 그들을 바르게 세우는 것은 손뼉을 쳐주는 것도, 저편의 반대를 말하는 것도 아니었다. 성경에 충실한 균형 있는 가르침과 삶이 젊은 세대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메시지임을 배우고 있다. 문제는 개척자 자신이 균형을 잡지 못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개척교회 목사의 장점이 있으니, 즉시 바로 잡는 것이다. 처음에는 틀리지 않으려고 긴장했는데, 이제 틀리면 인정하고 바로 고치려고 한다. 개척교회 목사의 고통은 아마도 복음 안에 있는 정체성이 아닌, 사역으로 자신을 증명하려는 시도에서 나오는 완고한 고집이 깨어지는 것이리라. 3년이 지나 배우고 소망하는 것 ‘교회를 세우는 교회’ 개척하고 3년이 지났다. 누군가는 가장 어려운 시기를 지났다고 할 것이고, 누군가는 아직 갈 길이 멀었다고 할 것이다. 둘 다 맞는 말이다. 내게 지난 3년은 최소한 스스로를 이해하는 시간이었다. 내가 얼마나 믿음이 없는 사람인지, 사랑이 없는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으로 만족하는 사람인지 아는 시간. 진짜 목회에서 소망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배우는 시기였다. 나의 간절한 소망은 ‘복음으로 변화된 제자들’을 보는 것이다. ‘복음을 기뻐함으로 도시를 섬기는 교회 공동체’를 보는 것. 이 비전은 오직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이다. 그래서 3년이 지나고 교우들에게 자주 하는 말은 “기도하자”이다. “말씀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오직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기도해야 한다”는 말이다. 3년이 지나 처음과 비교할 수 없는 외적 조건을 가졌지만, 우리 교회는 알면 알수록 별 것 없는 허당이다. 생각해 보니 예수님의 제자들도 허당이었다. 그래서 앞으로 갈 길이 분명하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교회와 목회, 그 안에서만 소망이 있음을 믿는다. 그렇게 가다 보면 우리 교회도 ‘교회가 세우는 교회’에서 ‘교회를 세우는 교회’로 서게 될 것을 믿고 기도한다.
Selected |마른 땅에 단비를| 쿠바에서 일본으로_허태성 목사 첨부 파일
편집부
1905 2017-09-18
마른 땅에 단비를 쿠바에서 일본으로 < 허태성 목사_HIS 제6기 MRC 훈련생 > 쿠바 선교를 계획했지만 일본 선교를 준비케 하신 하나님의 이끄심의 과정 사랑하기 힘든 일본에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용서와 사랑을 전하는 선교사가 되고자 1980년 8월의 어느 날 밤 여의도광장에서 한 청년이 일어섰다. 일생에 있어서 전체가 아니어도 단 몇 달이라도 선교사가 되어 자신을 주님께 드릴 사람은 그 자리에서 일어서라는 고 김준곤 목사의 설교를 듣고서 말이다. 그 때 한 여대생도 일어섰다는 사실을 그로부터 36년이 지나서 알게 되었다. 훗날 그 여대생은 내 아내가 되었다. 지난 해 말에 하나님은 강변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던 나를 불러 내셨다. 감히 좀 과장하자면 안디옥교회에서 바울과 바나바를 불러내신 것처럼. 나와 아내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28년간의 목회를 내려놓았다. 지난 해 말에 강변교회에서 목회를 마치자마자 나는 목동에 있는 GMTC(한국선교훈련원)에 입소하여 약 5개월 동안 합숙훈련을 받았다. 목회를 내려놓고 선교를 하겠다고 결정은 했지만 선교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없었던 나는 그 훈련을 통해서 선교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을 얻을 수 있었고 어느 정도 선교 마인드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어떤 나라로 가야할 지를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몇 분의 선교 지도자들과 상담하며 기도하다가 쿠바를 선교지로 결정하였다. 하지만 내 주변에는 쿠바에 가보았다는 사람도 없었고 더구나 쿠바에 살면서 나를 안내해 줄 그 누구도 알지를 못했다. 그래서 기도하기를 시작했다. 몇 다리를 건너서 GMS 소속의 한 선교사와 기적처럼 연락이 되었다. 쉽지 않은 곳이지만 일 단 와보라는 연락을 받게 되었다. 2017년 7월 7일 멕시코 칸쿤 공항을 이륙한 ‘에어멕시코’가 한 시간 만에 쿠바 아바나 공항에 착륙하였다. 오후 3시 경에 드디어 약간의 흥분과 두려움을 가지고 쿠바에 역사적인 첫발을 딛게 되었다. 쿠바의 첫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다. 사회주의 정권하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탓인지 공항직원들은 무표정했고 불친절했다. 수하물을 찾는 안내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짐을 찾느라 2시간 이상을 공항 여기저기를 뛰어다녀야 했지만 그 어떤 직원도 도와주지 않았다. 다리도 아프고 화도 났다. 그러자 내 입에서 기도가 튀어 나왔다. 주님, 짐 좀 찾게 해주세요! 그 때 한 쿠바인이 내 앞에 나타났다. 쿠바로 들어오는 비행기에서 바로 옆자리에 앉았던 ‘알베르또’라는 40대 청년이었다. 그는 쿠바 동쪽 끝 지역인 올긴에서 민박집을 하는 사람인데 꼭 자기 집에 오라며 명함을 주기에 받아 놓았는데, 그는 내가 사귄 최초의 ‘꾸바노’였다. 그런데 그 역시 짐을 찾지 못하고 헤매다가 나와 마주치게 된 것이었다. 결국 그의 도움으로 짐을 겨우 찾을 수 있었다. 미리 그를 사귀게 하시고 만나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에 감사를 드렸다. 나는 쿠바에서 일 주일 동안 머물렀다. 그 이야기를 간략하게 정리해 본다. 쿠바를 방문하는 외국인은 아무데서나 머물 수 없다. 꼭 정부가 허락한 호텔이나 까사(민박집)에서만 숙박이 가능하다. 나는 99년 전 스페인이 통치하던 시절에 지어진 까사에서 숙박을 하였는데 말은 잘 통하지 않았으나 주인 부부가 친절하게 해 주어서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다. 택시를 렌트하여 사용했는데 1951년에 출고된 ‘쉐보레’였다. 계기판은 다 고장이 나있고 시트의 쿠션은 푹 꺼져 버린데다가 움직일 때마다 경운기처럼 덜덜거리는 소리가 나는 고물차에 기사까지 여섯 명이 타고 다녔다. 이러다가 언제 멈추어 버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앞섰지만 타이어 펑크가 한 번 난 것 빼놓고는 멈추지 않고 잘도 굴러 다녔다. 나와 아내는 긴장했지만 현지 선교사는 이 정도면 아주 좋은 차라며 연실 웃었다. 그런데 그 차의 값이 3,500만원이나 된단다. 쿠바혁명광장 쿠바는 선교사가 들어가서 거주하며 살기에 참으로 불편한 나라이다. 몇 가지 실상을 소개한다. 첫째, 쿠바 선교사는 송금을 받을 수 없다. 아직도 미국에서 달러가 쿠바로 들어가는 것을 막고 있는데다가 은행계좌를 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돈을 찾으러 미국 마이애미나 코스타리카까지 나가야 한다. 아니면 쿠바를 방문하는 사람에게 현금을 배달받아야 한다. 이번에 나도 5,000달러를 수송했다. 둘째, 외국인은 차를 소유할 수 없다. 그래서 쿠바선교사 중에는 차가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그냥 걷든지 대중교통을 이용할 뿐이다. 셋째, 인터넷이 안 된다. 모뎀을 이용해서 겨우 이 메일을 사용할 수 있지만 와이파이는 최고급 호텔에서나 가능하다. 그것도 한 시간에 우리 돈 약 1만원 상당의 이용권을 구매하여야 한다. 넷째, 쿠바 선교사들은 자녀가 없다. 부부만 와 있거나 혼자서만 와 있다. 자녀를 키울 수 있는 교육 환경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섯째, 쿠바에는 한인교회가 없다. 왜냐하면 선교사들을 제외하면 3명 내외의 코트라 직원과 유학생 몇 명 외에는 한인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여섯째, 교회설립이 허락되지 않으며 외국인들에 의한 설교나 전도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선교사는 한글학교 사역을 하고 있다. 일곱째, 선교사가 종교비자를 얻는 것이 매우 힘들다. 대부분 학생비자로 있는데 수업료로 매달 300달러 이상을 내야하기에 경제적 부담이 크다. 여덟째, 쿠바는 가난한 나라이지만 외국인은 고물가에 시달리고 있다. 수도 아바나에서 방 두 개짜리 아파트를 월세 1,000달러를 내고도 구하기가 쉽지 않다. 또한 외국인은 현지인과 다른 화폐를 사용해야만 한다. 현지인보다 적게는 10배에서 많게는 30배 이상 지불해야 한다. 아홉째, 한국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오고 가기에 항공료와 시간적인 부담이 있다. 열째, 쿠바는 한국과 아직도 미수교국이다. 오히려 북한과 매우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6.25 전쟁 때는 우리와 친했고 더 잘 살아서 지원물자를 보내준 나라다. 쿠바교회 성도(주일예배) 쿠바인들은 가난하기에 아직도 마음이 비교적 순수하다. 그들은 가난 속에서도 웃음과 춤과 노래를 부르며 산다. 쿠바인들은 문맹자가 거의 없다. 성경을 가르치기에 좋은 토양이 준비되어 있는 것이다. 쿠바를 흔히 천주교 국가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미 중남미에서 천주교는 힘을 잃어가고 있다. 현지 선교사에 의하면 성당에 정기적으로 출석하는 사람은 쿠바인구 중 4%에 불과하고 기독교인들은 8%를 상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회가 제대로 신학 공부를 하지 못한 사역자들이 사역하고 있기에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쿠바에는 중국의 삼자교회 같은 친정부적인 교회도 있고 가정교회도 있다. 경제적 어려움과 핍박 속에서도 쿠바교회는 계속 성장하고 있다. 비록 은사중심적인 교회이지만 그들이 뜨겁게 기도하며 찬양하는 모습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생각나게 한다. 주님께 대한 열정과 사랑이 식어 버린 한국교회가 오히려 겸손히 배워야 할 부분도 있는 나라이다. 그러나 나는 쿠바에서 일본으로 선교지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 58년 개띠인 내가 쿠바에 들어가서 선교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현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쿠바를 마음에서 내려놓는 것은 쉽지 않았다. 아무리 그 땅이 어렵고 열악하다 할지라도 나에게 있어서 쿠바는 ‘첫 사랑’ 같은 나라이다. 내가 적어도 한 10년만 더 젊다면 꼭 도전해 보고 싶은 나라이다. 나는 현재 합신 선교사 훈련과 겸하여 일본선교사가 되기 위한 훈련도 받고 있다. 연말에 훈련이 끝나면 비자를 신청하여, 비자가 나오는 내년 3월경에 출국하려고 한다. 물론 일본도 선교하기에 쉽지 않은 나라임을 잘 알고 있다. 한국인으로서는 과거의 불행한 역사로 인해 사랑하기가 힘든 나라이다. 그래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용서와 사랑을 가지고 찾아가서 남은 생애를 일본선교사로 살아보려고 한다. 독자 여러분께 일본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
770 no image |목회수상| 목회자 칼라 calla_조봉희 목사
편집부
1879 2017-09-18
목회수상 목회자 칼라 calla < 조봉희 목사_지구촌교회 > 순교지에서 순교했던 신앙 선배들의 찬양이 들리는 듯 인도 격언에 ‘남의 신발을 신어보기 전에는 그 사람의 걸음걸이를 평가하지 말라’고 한다.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기 전에는 함부로 평가하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유대의 훌륭한 랍비 힐렐은 이렇게 가르쳐준다. ‘네가 그 사람의 환경이나 입장이 될 때까지는 그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 우리는 겉모습만 가지고는 남의 사정을 다 알 수 없다. 우리는 전체를 보지 않고, 단면만 보고 판단하는 만큼 잘못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목회 현장에서 변명이 궁색할 때가 있다. 우리 지구촌교회에 처음 오신 분 중에 간간히 이런 질문을 한다고 한다. ‘목사님은 왜 고개(목)가 뻣뻣한가요?’ 교회를 처음 방문한 분에게 긴 설명을 해드릴 수가 없어 죄송할 뿐이다. 나는 공수특전사에선 군복무중 허리골절상을 입었다. 5요추골절 융합을 위해 골반 뼈를 잘라 이식수술을 받았다. 그것도 실패한 수술을 받았다. 졸지에 상이군인이 되었다. 41년 전 일이다. 사실 죽지 않고 산 것만도 감사하다. 이런 허리의 장애와 강직성 후유증으로 결국 그 동안 견뎌오던 목 디스크가 터져 큰 수술을 받았다. 13년 전 일이다. 목뼈 하나는 인공디스크로 대체했고, 또 하나는 뼈 양쪽에 지지대(플레이트)를 넣어 고정시켰다. 평생 통증을 친구로 삼아 살아가고 있다. 이런 문제 때문에 나는 넥타이를 장시간 매는 것이 매우 힘들다. 목을 돌리기가 그만큼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차이나칼라 셔츠나 소위 목회자칼라 셔츠를 입는다. 넥타이를 매지 않고 남방 차림으로만 설교하거나 목회하기에는 덕이 되지 않을 수 있어서다. 그 어떤 다른 이유도 없다. Y셔츠와 넥타이를 대체할 만한 것으로 적합하여 입을 뿐이다. 내가 입을 수 있는 다른 옷이 없어서다. 그런데 최근 클러지칼라 셔츠(Clerical dress)의 역사를 알게 되었다. 흔히 목회자칼라라고 하는데, 그 시작은 스코틀랜드 장로교다. 1700년대 초기 스코틀랜드 장로교 도널드 맥러드 목사가 그 당시 명예와 지위를 상징하는 Y셔츠에 넥타이를 매는 권위로부터 낮아지려고 창안한 복장이다. 순수하게 겸손해지려고 시도한 것이다. 이런 마음가짐은 이미 찰스 핫지, 벤자민 워필드, 조나단 에드워즈, 조지 휘트필드, 존 오웬 같은 위인들께서 넥타이 대신 목을 감는 옷(neck cravat)이나 스카프를 매기 시작한데서부터 유래한다. 존 웨슬레도 목회자칼라 셔츠를 입었고, 우리나라 기독교 초기 선교사 스크랜턴도 클러지칼라를 입고 왔다. 18세기 당시 천주교에서는 개신교 복장이라고 거부해 오다가 지난 1967년 제2바티칸 공회 이후 사제복장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로만칼라로 불리기도 하는데, 잘못된 표현이다. 그 출발은 천주교가 아닌, 개신교다. 그것도 스코틀랜드 장로교다. 권위를 거부하고, 겸손해지려는 목사의 심정에서 시작한 것이다. 신분의식을 낮추려는 겸허의 의상인 줄도 모르고 입어 온 것이 죄송스럽다. 내가 이 글을 쓰는 목적은 우리도 목회자칼라 셔츠를 받아들이거나 제도화시키자고 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나도 이런 역사적 배경을 알고 옷을 입은 것이 아니다. 그냥 필요 지향적으로 입었을 뿐이다. 내 개인 사정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옷을 입는 것에 대하여 신학화할 사안이 아니다. 아무 문제나 ‘개혁주의, 또는 비개혁주의’라는 단서를 붙여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는 지엽적인 문제로 에너지를 쏟거나 빼앗겨서는 안 된다. 에너지를 생산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요즘 한국교회는 정체 상태에 놓여 있다. 많은 분들이 의욕과 용기를 잃어 가고 있다. 이처럼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목회하는 우리들에게는 서로 격려와 세워주기가 필요하다. 용기와 비전을 잃지 않도록 희망을 심어 주어야 한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이 최악의 위기에 처했을 때 한 저널리스트가 이런 제안을 했다. “지금은 비판할 때가 아닙니다. 지금은 전시(戰時)이고 지금은 국민에게 희망을 주어야 할 때입니다. 비판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이제 잠시 동안만은 우리가 승리할 수 있다는 희망을 우리 민족에게 주도록 합시다.” 이런 희망운동으로 영국 국민들이 용기를 갖기 시작했고 승리를 믿기 시작했다. 따라서 우리는 무의미한 비판보다는 비전 지향적인 대안 제시를 우선할수록 좋다. 물론 건설적이고 바른 비판이야말로 지극히 성경적이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선지자적인 날카로움과 제사장적인 온후함의 균형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나라는 율법과 은혜의 신비로운 조화다. 참된 개혁주의는 예수님을 중심으로 더 나은 해법을 찾아가는 것이다. 더 나은 대답을 가진 자가 더 나은 사람이다. 사랑으로 풀어 가는 자가 큰 사람이다. 지금 사랑하기도 역부족인데, 비판할 여력이 어디 있겠는가? 이렇게 호소하고 싶다. 『비판하면 밤이고, 사랑하면 낮이다. 비판하면 어둠이고, 사랑하면 빛이다.』
769 no image |생각하는 신앙| “가라지가 있어도 교회 맞습니다”_최광희 목사
편집부
1291 2017-09-06
생각하는 신앙 “가라지가 있어도 교회 맞습니다” < 최광희 목사_행복한교회 > 가라지 뽑는 데 혈안이 되기보다는 곡식이 잘 자라게 하는 데 심혈을 기울여야 요즘 교회가 많이 타락했다고 신자도 불신자도 걱정합니다. 심지어 이건 교회가 아니라며 뿌리채 뽑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천국은 원래 그런 모습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은 마치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고 마태복음 13장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원수는 왜 이렇게 했을까요? 남의 농사를 망치려면 그냥 뽑아버리든지 발로 밟아버리는 것이 더 쉬울 수도 있는데 굳이 가라지 씨를 구해다가 덧뿌리는 수고를 했을까요? 고대 사회는 수치심 문화였습니다. 그래서 남을 괴롭히려면 그에게 수치를 안겨 주곤 했습니다. 수치를 주는 일환으로 남의 곡식밭에 가라지를 뿌리기도 했습니다. 모름지기 농부라면 밭에 잡초가 없이 깨끗하게 관리하고 밀을 잘 자라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밭주인을 칭찬합니다. 어떤 사람의 밭에 밀만 자라야 하는 데 가라지가 잔뜩 나 있으면 그것을 보는 사람들이 밭주인을 욕할 것입니다. 그렇게 수치를 주는 것이 원수의 목적이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는 하나님이 좋은 씨를 뿌려서 성도가 잘 자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밤에 원수 사탄이 몰래 가라지를 뿌렸습니다. 그 가라지가 곡식보다 더 키도 크고 무성해서 가라지밖에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 가라지가 자라서 집사도 되고 장로도 되고 목사도 되었습니다. 이제 교회가 더 이상 교회가 아닌 듯이 보입니다. 지금 교회는 매우 수치스럽게 되었습니다. 하나님도 같이 수치를 당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 계실까요? 가라지를 싹 다 제거해 버리지 않고 왜 교회를 이 모양으로 내버려두실까요? 너무 놀랄 필요가 없습니다. 천국이 그럴 것이라고 이미 예수님이 말씀하셨는 걸요. 그러면 전능하신 하나님은 왜 가라지를 제거하지 않으실까요? 그것도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이 다친다고요. 그냥 두었다가 추수 때 가라지를 거두어 불사르게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천국의 특징이라고 하셨는 걸요. 시골에 가 보면 대부분의 논밭은 잘 관리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종종 곡식(벼)보다 잡초(피)가 많아 보이는 밭이 있습니다. 피가 벼보다 키가 커서 피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어떤 고구마 밭은 풀밭인지 헷갈리는 밭도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이건 완전히 풀밭이구나 하고 말합니다. 그런데 가을에 가 보면 풀만 자란 줄 알았던 그 밭에서 고구마가 많이 나옵니다. 피가 더 많은 줄 알았던 그 논에서 벼를 많이 수확합니다. 지금 교회는 가라지가 너무 많아서 우리도 속상하고 불신자도 실망합니다. 하나님이 속히 가라지를 제거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가라지를 뽑지 않으십니다. 잡초가 곡식과 뿌리가 얽혀 있어서 잡초를 뽑으면 곡식이 뽑혀 나오듯이 교회 안에 있는 가라지는 성도와 여러 가지 인간관계로 엮여 있어서 가라지를 뽑으면 성도가 같이 상처를 받습니다. 혹자는 말할 것입니다. 곡식이 좀 다치더라도 가라지를 제거해야 한다고요. 그런데 잠깐만요, 그 뽑혀나갈 곡식이 바로 당신이라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안 되죠. 그게 누구든지 가라지를 뽑다가 함께 뽑혀나가면 절대로 안 됩니다. 우리 하나님은 그 한 성도를 아껴서 지금 수치를 당하면서 참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게 풀밭이지 무슨 고구마 밭이냐고 욕해도 그게 고구마 밭이 맞습니다. 그 속에서 고구마가 잘 자라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렇게 가짜들이 득세하는 교회가 무슨 거룩한 교회냐고 욕해도 교회 맞습니다. 그 속에서 성도가 자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라지 뽑는 데 혈안이 되기보다는 곡식이 잘 자라게 하는 데 심혈을 기울여야 합니다. 가라지를 주목하고 비난하기보다는 내 믿음이 굳게 서는 데 더욱 힘써야 합니다. 참으로 교회를 저주하지 말고 축복하며, 우리 자신이 가라지가 되지 않도록 근신해야 할 것입니다.
768 |마른 땅에 단비를| 방문 선교 수기-베트남에서 나그네로 살아가는 사람들_최현재 목사 첨부 파일
편집부
1179 2017-09-06
마른 땅에 단비를-방문 선교 수기 베트남에서 나그네로 살아가는 사람들 < 최현재 목사_미주한인예수교장로회 남가주노회 > 표시도 흔적도 없을 사역, 예수님의 십자가의 그 은혜를 되새기며 말없이 걸어가기를 베트남의 호치민 탄션넷 국제공항에 도착해서 처음 접하게 되는 공산당 군 관계자들의 태도는 매우 불손하게 느껴졌다. 이들의 태도를 보며 공산 치하에서 은밀하게 믿음을 지키며 살아야하는 성도들의 삶을 떠올려 보았다. 종교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당국으로부터 여러 불이익을 당하며 살아가야 할 텐데… 교회란 간판조차 내걸지 못하는 지하교회와 등록된 교회는 공산주의 국가에서 공존하는 교회 형태이다. 필자가 방문하였던 교회는 전자에 속해 외부에는 간판도 없다. 필자가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성도들뿐 아니라 주변의 믿지 않는 이웃들도 모여든다. 이런 저런 통증을 호소하며 찾아 온 환자들에게 강의와 진찰도 하며 그들의 아픔을 위로한다. 통증의 이유가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그 질고들을 피할 수 있을지 등을 강의하는데 레위기 11장의 그 방법을 도입한다. 2절에 “ 육지의 모든 짐승 중 너희가 먹을 만한 생물은 이러하니….” 당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왜 구체적으로 먹어야 할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들을 강조하셨을까? 그들의 형편과 사정을 아시는 주님께서 단순 명령의 형태로 말씀 하신 것이라 생각한다. 모든 강의의 전제는 하나님께서 면역이라는 가장 위대하고 힘 있는 의사를 우리 몸에 두셨다는 것이다. 그 면역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다면 많은 질고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내용의 강의 후에 치료가 이어진다. 이 교회 저 교회를 방문하며 강의와 설교 중에 필자는 지난 16년 동안의 사역 중, 아프리카와 필리핀, 인도 등지에서 만나 치료하였던 청각 장애자에 관한 내용을 이야기 했다. 그때 온 성도들의 시선이 한 사람에게로 향했다. 그 청년은 청각 장애자였다. 설교 후 그 청년을 앞으로 불렀다. 13세 때에 심한 고열로 병원에 입원했는데 강한 항생제를 투여로 고열은 내렸지만 그 이후 청력은 모두 잃고 말았다고 하였다. 한 통계에 의하면 인도의 청각 장애자의 수는 약 600만 명, 필리핀은 약 250만 명이라 한다. 다른 나라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 유추해 본다. 한 인도의 부자 사업가가 이 문제에 의문을 가졌다. “왜 우리나라에는 이렇게 청각 장애자들이 많을까?” 실제로 필자가 인도 비사카파트남 및 콜커타 순더반 지역 등을 방문하였을 때 마을마다 청각장애자학교 간판(School for the Deaf)들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사재를 들여 많은 연구원을 고용하여 역학 추적 조사를 실시하였다. 결론은 항생제의 무리한 투여가 청각 장애의 원인이라는 점이었다. 이 시대에 약물 남용으로 생기는 부작용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생하고 있다. 범람하는 각종 환경 호르몬들, 화학 약물 등 오염 물질들이 음식과 공기 등을 통해 몸의 면역 기능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그런데 부작용이 많은 약물을 오용하거나 과다 투여하여 몸의 방어 기능을 무력하게 만드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는가. 우리는 이 점에 유의하며 많은 불량 음식들을 절제하고 자연 속의 과일, 채소, 곡물 등을 잘 섭취하는 일로서 현대의 많은 질병들을 예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청년을 앞에 불러 눕혀 치료를 시작하는데 온 교인들이 필자를 중심으로 원을 만들어 지켜본다. 혹시 “치료를 해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어찌할까?” 염려한다면 얼마나 큰 부담이 되었을까? 그러나 “이러한 치료가 예수님의 사랑을 표현하는 수단이며 많은 사람들을 접촉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것”이란 그동안의 믿음이 있었다. 주시하는 교인들에게 이 점을 분명히 밝히며 오해가 없기를 당부했다. 놀랍게도 그 청년은 치료 40분이 지났을 때 약간 들리기 시작한다고 했다. 귀 주변에서 손바닥을 쳐 보고 목소리로 확인도 하면서 여러 방법으로 청각의 정도를 점검하였다. 어떻게든 그 청년이 들리기 시작한다면, 즉 조그만 변화가 시작되었다면 큰 희망이 있었다. 청년이 일상생활에서 청각이 점차 회복되어 모든 영광과 감사를 주님께 돌릴 수 있다면 그것이 필자가 가장 원하는 바이다. 이번 베트남 여정에서 기억에 남는 일이 또 있었다. 한 빈민가의 가정교회를 방문했는데 그 중 어떤 할머니와 딸이 허리가 아프고 두통이 심하다며 도와달란다. 이때 그 교회 목사님께서 지난주일의 청각 장애자 치료 사역을 소개하였다. 마침 이야기를 듣던 할머니와 딸이 자신의 아들을 당장 데려와야겠다며 일어섰다. 그 할머니는 손자와 딸이 교회에 출석하며 예수님을 믿는 것에 심한 불만을 쏟으며 한 평생 핍박하고 교회 출석을 막았다고 한다. 약 한 시간 후 저녁 8시경 딸이 아들과 함께 왔다. 아들은 24세 청년으로 역시 갓난아기 때 고열이 있었고 항생제 투여 후 청력을 잃었으나 오른쪽 귀는 약 15퍼센트 정도 간신히 들리는 정도였단다. 엄마는 아들이 13세쯤에 말을 안 듣는다고 화가 나 뺨을 심하게 후려 갈겼다 한다. 그 후 아들은 그나마 희미하게 들리던 한 쪽 귀의 청력마저 잃어 완전히 못 듣게 된 것이다. 사정을 듣고 필자의 마음이 안타까워 그 가족을 치료하기 전에 “할머니 이제 제가 당신이 사랑하는 손자의 청각을 치료하려고 합니다. 이제 치료 전에 나와 당신의 딸, 손자가 믿는 하나님께 먼저 기도를 한 후에 시작할 것인데 우리와 함께 우리의 신이신 하나님께 기도를 함께 해 주실 수 있겠어요?”라고 부탁하였다. 할머니는 망설이다 결국 “네, 함께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필자는 할머니와 손자의 손을 포개어 잡고 간절히 기도했다. 아들과 엄마와 할머니, 온 가정을 위한 주님의 은혜를 갈구하던 중 엄마의 흐느낌이 들렸다. 그 슬픔과 서러움이 복받쳐 내장이 끓어오르는 듯 신음 소리 같은 흐느낌이 계속되었다. 지난 24년 동안 아들과 얽힌 사연과 기억들, 그나마 들리던 한쪽 귀마저 자신이 심하게 뺨을 때려 못 듣게 했다는 죄책감으로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기도 후 치료를 마치고 약 40분이 지났을 때 비로소 들리기 시작한다는 표현을 하였다. 참으로 놀랍고 주님께 감사했다. 사역을 다 마친 후에 청년이 말했다. “제가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은 후에 내가 할 일이 무엇일까 기도하며 찾던 중 나와 같은 청각장애자 청년들이 눈에 띄어서 그들과 SNS를 통해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정기적인 교제 모임을 만들어 이제 약 40여 명이 되었습니다. 혹시 내년에 베트남을 재방문하면 이 친구들을 치료해 주실 수 있나요?” 필자는 “내년에 다시 방문할 테니 그 청년들을 다 모아 강의와 치료하는 프로그램을 잘 만들어 봅시다”라고 대답해 주고 일정을 마무리 하였다. 인도와 필리핀의 청각장애자들이 그렇게 많다면 베트남의 사정도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렇듯 많은 장애자들은 어떤 회복을 기대하기보다 상황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적응하며 사는 일 이외에는 없다고 여긴다. 그러나 필자는 그들에게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결단코 포기하지 말 것을 부탁한다. 실제 회복된 사례들이 많기에 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경험들을 하며 눈길을 청각 장애자들의 세계로 돌려 그들을 죽을 때까지 섬긴다 해도 어떤 표시가 날까? 별 표시도 흔적도 없을 사역이지만 오늘도 우리 주 예수님의 십자가의 그 은혜를 되새기며 말없이 계속 이 길을 걸어가기를 다짐한다.
767 |은혜의 뜨락| 전문인 선교 훈련을 수료하고_안정위 장로 첨부 파일
편집부
2022 2017-09-06
은혜의 뜨락 전문인 선교 훈련을 수료하고 < 안정위 장로_세대로교회 > 새로운 선교적 대안인 전문인 선교사 배출에 성원과 기도가 필요하다 지난 2월초 GPTI (한국전문인선교훈련원) 원장 이취임식에 참석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이때부터 나를 선교훈련에 참여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었던 것 같다. 전임 김광석 원장님과는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관계였고 신임 박민부 원장님도 몇 해 전부터 북경에 강의하러 가서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라 안 갈수 없는 행사였다. 이 취임식 예배에 조금 늦게 도착 했는데 마침 귀에 익은 말씀이 들렸다. 우리교회 담임목사이신 양승헌 목사님의 축사가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양승헌 목사님은 GMF(한국해외선교회) 이사장 자격으로 오셔서 말씀을 전하시는 중이었다. 참으로 소중한 인연들이 한자리에서 만나는 기회가 되었던 것이다. 선교훈련 참여를 결정한 동기에 얽힌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거두절미하고 박민부 원장님의 선교 훈련 참여 권면을 받고 기도하며 아내와 상의하게 되었다. 아내는 좌고우면 없이 단번에 훈련에 같이 참여하자고 하였다. 7~8년 전에 바쁘다는 핑계로 훈련을 거절하였던 내 모습이 떠오르며 이제 더 이상의 핑계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불순종으로 보이는 상황이 되었다. 3월 첫 주 토요일 개강예배부터 7월 마지막 토요일까지 5개월 동안의 꽉 찬 훈련이 시작되었다. 매주 토요일 오후 1시부터 저녁 9시까지 8시간 동안 거의 분단위로 짜인 훈련 과정은 몸도 힘들었지만 훈련 받는 동기들과의 서먹한 분위기가 더 힘든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그 익숙하지 않은 훈련이 4월 중순 1박 2일의 MT를 거치면서 점점 즐거워지고 훈련생들을 만나는 것이 부담이 훨씬 줄어들었던 같다. 5개월 동안 체계적이고 잘 짜인 커리큘럼에 따라 최고의 교수진이 전해 주시는 선교 전반의 강의를 통하여 선교에 대한 이해가 넓고 깊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 강의와 더불어 매주 선정된 도서 1권씩 읽고 독서보고서를 작성하고 자신의 일주일간의 일상생활을 정리하는 주간 보고서 작성이 있었다. 영적 민감성을 보기 위한 관찰 보고서도 제출하였는데 이런 것이 한 주간의 일상생활에서 최우선이 된 것이 전문인 선교사 훈련의 중요한 과정이었다. 교회에서의 선교는 무엇인지? 선교사는 누구이며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선교는 왜 해야 하는지? 선교가 왜 중요한지? 선교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선교에 대한 일반적 무지에서 조금씩 이해의 눈을 떠가고 있었다. 각 교회 선교위원회에서 섬기는 분들은 가능한 이 훈련을 수료하기를 진심으로 권하고 싶다. 교회에서의 선교에 대한 막연한 접근보다는 올바른 인식이 먼저 중요하다는 것을 깊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훈련 과정에서 주님께서 주신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는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게 되었다.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 가며 힘든 훈련이 점점 즐거워지는 과정도 체험하였다. 같이 훈련을 받는 동기들의 모임을 동역회라고 한다. 이 동역회의 중보기도를 통하여 우리가 더 주 안에서 강건해지며 영적으로도 성숙해 가고 있음에 주님께 감사를 드린다. 훈련을 마치며 지난 시간을 회고해 보면 지금껏 누구보다도 바쁘게 살아왔다고 자부해 왔는데 헛되게 바쁜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남은 삶을 어떻게 주님 나라 확장에 사용 하실 지 기대가 생겼다. 전문인 선교사 훈련과정을 통하여 주님께서 보여 주신 IT 순회선교사로서의 비전과 사명을 잘 감동하도록 주변 많은 분들의 기도를 부탁드린다. IT 순회선교사라는 개념은 현재는 익숙하지 않지만 잠깐 그 사역에 대한 소개를 하면 한 달에 한 번 정도 현지에 나가 현지에서 불편함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컴퓨터와 스마트폰 활용과 관련한 전반적인 선교 현장 중심의 지원을 하고 돌아오는 사역이라 할 수 있다. 현지의 열악한 선교 현장에서 스마트폰만 잘 다루어도 시간과 비용을 절약하며 사역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선교 현장에서 필수적인 부분들만 모아 '선교와 IT'라는 사역 분야를 개척해 나가는 비전으로 사역하는 것을 IT순회 선교사역이라고 정의한다. 세대로교회에서 시무 장로직을 은혜 중에 마치고 주님의 선한 인도하심으로 선교에 눈을 뜨게 하시고 선교라는 큰 과제를 새로이 주신 것에 감사한다. 우리 한국교회가 국제 환경의 변화에 따른 새로운 선교적 대안으로서 전문인 선교사들을 많이 배출할 수 있도록 성원과 기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GPTI (한국전문인선교훈련원)의 훈련 과정을 은혜롭게 마칠 수 있게 해 주신 주님께 영광을 드리며 훈련 기간을 수료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신 담임목사님과 성도들께 감사를 드린다. 불편한 건강 중에도 끝까지 훈련을 함께한 아내에게 고마움을 전하면서 여생을 오직 주님만을 위하여 살아가길 기도한다.
766 no image |목회수상| 겉의 말씀과 속의 말씀_김수환 목사
편집부
1351 2017-08-23
목회수상 겉의 말씀과 속의 말씀 < 김수환 목사, 새사람교회 > 진리를 옳게 분별하고 전하려면 ‘겉의 말씀’이 아닌 ‘속의 말씀’을 찾아내야 한다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키고 있는 안식교 교인들에게 주일예배를 드려야 되지 않느냐고 이의를 제기하면 자기들만큼 오직 말씀대로 믿는 사람들이 없다고 강변한다. 극단적인 문자주의(文字主義 literalism)와 ‘겉의 말씀’의 대표적인 예이다. “표면적인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이면적 유대인이 참 유대인이라”(롬2:28)고 말씀하신 것처럼 성경 역시도 겉만 보면 안 된다. 이면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안식교인들과 동일한 오류에 빠질 수 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이상화1901-1943)라는 유명한 시가 있다. 여기에서의 ‘봄’은 단순히 계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빼앗긴 조국의 국권이 회복되는 때를 은유적(隱喩的 metaphor)으로 표현한 것이다. 문자로 표현된 ‘봄’이 ‘겉의 말씀’이라면 ‘빼앗긴 국권이 회복되는 것’은 그 ‘봄’이 내포하고 있는 ‘속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만일 이 부분을 ‘문자적인 봄’으로만 이해하면 이 시를 쓴 저자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것이 되고 만다. 대부분의 성경은 이 시와 같이 은유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께서도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셨다”(마13:34, 막4:34)고 하신 것처럼 하나님 나라의 교훈은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문자적으로 기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속성을 은유적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볼 때에 문법적으로만이 아니라 그 본문이 궁극적으로 지향하고 있는 의미, 즉 이면의 말씀을 찾아내야 한다. 우리가 문법적인 1차적 해석을 중시하는 이유도 바로 2차적인 의미를 제대로 찾아내기 위한 것이다. 앞의 이상화의 시에서처럼 ‘빼앗기다’ 혹은 ‘봄’과 같은 문자적인 뜻을 잘 모른다면 2차적 의미는 더욱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요3:12)하신 말씀에서와 같이 우리가 땅의 일(역사 혹은 문법)을 잘 아는 만큼 하늘의 일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러기에 약간의 국어 실력만 있어도 성경 해석은 훨씬 더 용이해진다. 사실 신학은 바로 시작하기엔 버거운 학문이다. 순수기초과학, 문학, 그리고 철학과 같은 과정을 거쳐야만 성경을 제대로 해석해 낼 수 있는 것이다. 성경과 신앙은 보이는 형이하학적인 문제가 아니라 세상 건너편의 형이상학적인 문제를 땅의 것으로 풀어내야 하기에 우선 땅의 것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단순한 종교적 열의나 신비적인 요소만을 기대하며 연구를 게을리 하는 것은 우리의 책임을 하나님께 떠넘기는 직무유기요, 불신앙인 것이다. 우리는 성경 한 구절을 읽고 대충 묵상한 것을 들고 강단에 올라가는 것을 삼가 조심해야 한다. 어느 전문가 이상으로 성경연구에 심혈을 기울여야한다. 우리는 목사가 되기 위해서 강도사고시를 치르고, 노회에서 인허를 받는다. ‘강도’라는 말은 ‘진리의 말씀을 강론하다’는 말이다. 그것은 단순한 ‘겉의 말씀’이 아니라 ‘속의 말씀’을 찾아내고 분별해 낼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다는 말이다. 바울은 “다른 복음은 없으며 만일 천사라도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1:7-9)라며 ‘다른 복음’에 대하여 엄중 경고한다. 여기 ‘다른 복음’은 바로 ‘율법주의’를 말한다. 율법주의는 “율법을 지켜서 구원 받는다”는 의미만이 아니다. 이면의 말씀을 발견하지 못하고 표면의 말씀만을 전한다면 또 다른 율법주의자이다. 율법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며, 그것을 통해서 진리이신 예수에게까지 나아가야 한다. 만일 예수에게 나아가지 못하고 율법 자체, 즉 ‘겉의 말씀’에 머물러 있으면 그것이 바로 다른 복음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전파하는 말씀 안에 다른 복음이 섞여 있지 않도록 잘 분별해 내야 한다. 어느 아버지가 말을 듣지 않는 아들을 향해 “당장 이 집에서 나가고, 다시는 들어오지 마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만일 순진한 아들이 이 말을 액면 그대로 이해하고 집을 나가서 들어오지 않는다면 정말 어리석고 불행한 아들이다. “집을 나가라”는 말은 아버지께서 몹시 화가 나셨다는 말이지, 정말 “집을 나가라”는 말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경을 해석할 때 종종 이런 식의 오류를 범할 때가 있다. (하늘)아버지의 말씀을 문자적, 혹은 표면의 말씀으로만 해석하여 숨어있는 아버지의 뜻을 놓치게 된다는 말이다. 만일 우리 목회자들이 ‘속의 말씀’을 발견하지 못하고 ‘겉의 말씀’만을 전하게 된다면 집을 나가 버린 자식과 같이, 본의 아니게 성도들을 하늘 아버지의 집인 천국으로부터 밀어내는 무서운 과오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성경은 철저할 만큼 표면의 말씀과 이면의 말씀, ‘겉의 말씀’과 ‘속의 말씀’의 구조로 되어 있다. 우리가 가시 달린 밤송이를 그대로 먹을 수 없기에 알맹이를 둘러싸고 있는 껍질을 모두 벗겨 낸다. 이와 같이 ‘겉의 말씀’도 그냥 먹을 수 없기에 ‘겉의 말씀’을 벗겨내고 ‘속의 말씀’을 찾아내야 한다. 가시 달린 밤송이 같은 ‘겉의 말씀’을 그대로 설교 단상에 올려놓을 순 없다. 그것은 우리 성도들이 먹을 수 있는 참 양식이 아니다. 성경(헬라어)에는 “본다”는 말이 4종류(옵타누마이, 에이돈, 불레포, 호라호)나 된다. 말씀을 맡은 자들은 그런 영적 시각으로 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겉의 말씀’이 아니라 ‘속의 말씀’을 찾아내는 작업을 필수적으로 해내야 한다. 그래야 진리를 옳게 분별해 내고 전하는 이 시대의 참 설교자요, 참 목회자인 것이다.
765 no image |생각하는 신앙 | 염치가 사라져 가는 교회와 사회_장재훈 목사
편집부
1238 2017-08-23
생각하는 신앙 염치가 사라져 가는 교회와 사회 < 장재훈 목사, 내흥교회 > 성령님의 통치를 받는 그리스도인들 만큼은 염치가 풍성해야 염치(廉恥)란 ‘결백하고 정직하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을 뜻합니다. 양심과 이성을 소유한 인간이라면, 특히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이라면 실수든, 고의성이 있든지 없든지 자신의 부적절한 언행에 대하여 누군가에게 미안해 하고 부끄러움을 아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교회 안팎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사건사고들을 보면 당황스럽고, 소름이 돋는 경우가 한둘이 아닙니다. 사람다운 일, 그리스도인다운 일과는 거리가 먼 행태를 보이고도 너무나도 당당하고 뻔뻔하고 부끄러움을 모릅니다. 도리어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하면서 억울해 하고 자신의 잘못에 대하여 지적하고 책망하는 자에 대하여 역정을 내고, 매섭게 노려보고, 보복심을 갖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같은 모습은 현재 국정농단에 대한 재판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타인에 대한 폭력, 살인, 폭언, 갑질을 하고도 염치를 모릅니다. 탈세, 불법, 반칙, 거짓말, 권모술수를 부리고도 부끄러워 할 줄을 모릅니다. 교회 밖에서만 염치가 사라져 가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도 염치가 사라져 가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총회와 노회, 지교회의 제직회와 당회와 공동의회 등에서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고함을 지르고, 폭언을 하고, 발언권을 주지 않고, 발언을 하는 자를 향하여 야유를 하고, 심한 경우 용역을 동원하여 강제로 끌어냅니다. 교회 출입도 막습니다. 어떤 안건 처리에 있어서 다수의 힘을 이용하여 속전속결로 밀어붙입니다. 공금 사용에 대하여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습니다. 교회가 세상처럼, 바티칸처럼, 비밀조직처럼 비밀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서도 염치가 없고 당당합니다. 이러한 모습과 태도는 모두 양심과 신앙이 시멘트처럼 굳어져 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양심과 신앙에 있어서, 부적절한 언행과 죄에 있어서 염치가 사라지는 것은 매우 큰 위기입니다. 간경화로 죽어가는 사람의 대부분은 간이 부드러워야 하는데 돌처럼 굳어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본래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양심과 신앙이 부드럽습니다. 죄와 부적절한 언행심사에 매우 민감합니다. 그 이유는 새 영, 즉 성령 하나님이 찾아오시고 통치하시기 때문입니다. 향후 세상은 더욱 염치가 사라져갈 것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짐승처럼 사납고 시멘트처럼 굳어져 갈 것입니다. 하지만 성령 하나님의 지배와 통치를 받는 그리스도인들만큼은 염치가 풍성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악을 덜 행하며 사회의 본이 됩니다. 나아가 염치가 있어야 교회 공동체나 누군가에게 마음의 상처나 아픔을 주었을 때, 부끄러운 일을 행했을 때에 회개하고 사과합니다. 이래서 염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바라기는 교회에서나 사회에서나 그 누구보다도 섬김의 자리에 있는 지도자들만큼은 최소한 부끄러움을 아는, 염치 있는 자로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764 |개척, 그 눈물과 기쁨| 세종기쁨의교회 3년 개척 이야기_정명섭 목사 첨부 파일
편집부
1534 2017-08-02
개척, 그 눈물과 기쁨 세종기쁨의교회 3년 개척 이야기 < 정명섭 목사, 세종기쁨의교회 > 지금까지 하나님이 일하시고 역사하셨다. 앞으로 더 기대된다. 1. 개척을 준비하며 *가정예배 - 2013년 10월. 개척을 위한 가정예배를 시작하였다. 가정예배 때 사도행전 말씀을 한 장씩 읽으며, 교회를 세워 가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묵상하고 가족들과 함께 기도하였다. 개척을 위한 10개월의 가정예배는 가족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는 시간이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다’ 한국교회 위기는 주일학교의 위기이다. 각 교단마다 주일학교가 없는 교회가 50%를 넘어가고 있는 것이 오늘의 한국교회 현주소다. 더욱 위기는 중,고등학생들의 복음화율이 3%라는 것이다. 선교적으로 전인구에서 기독교 인구가 3%이면 미전도 종족으로 분류된다. 다음세대가 미전도 종족이 되고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말씀으로 양육하여 세우는 교회, 한국교회 제2의 교회학교 부흥을 꿈꾸며 다음세대를 세우는 교회>가 우리 부부에게 주신 소명이요 우리 교회의 비전이다. (골 1:28-29) *교회탐방 및 세미나 참석 - 2014년 1월 교회 사임 후, 8월 세종시로 이사하기 전까지, 부교역자 때는 할 수 없었던 여러 교회들의 주일, 수요, 새벽, 금요예배에 참석하였다. 교회 탐방을 하며 짧게는 2-3주, 길게는 2개월 동안 교회를 출석하며 다양한 사역들을 지켜보고 교회의 배려로 사역프로그램에도 참여할 수 있었다. 총회 전도세미나와 개척하여 전도로 부흥시킨 교회들의 전도세미나를 다니며 우리가 세워갈 교회의 그림을 그리는 시간들을 가졌다. 세종시로 이사하고 3주간은 대전에 있는 작지만 건강하게 세워져가는 3년 미만의 개척교회 3곳을 탐방하였다. 세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님들의 공통된 격려는 ‘개척 잘 했다. 응원한다!’였다. * 후원자 모집 - 교회 개척을 결정한 후, 기도-후원카드를 만들었다. 고향 교회와 사역했던 교회들, 개인적으로 아는 목사님들, 성도들을 찾아가 ‘나는 개척선교사입니다.’라고 인사드리고, 기도-후원카드를 드리며 기도후원자와 물질후원자를 모집했다. 그래서 현재 여러 교회와 기관, 30여명의 성도들이 기도와 물질로 후원해 주어서 지난 3년간 사역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2. 지난 3년의 개척 현장 이야기 2014년 8월 12일 세종시로 이사하여 9월 7일 아파트 거실에서 아내, 두 아들과 첫 예배를 드렸다. 아파트 이사 오는 가정을 방문하여 종량제봉투와 시원한 생수를 전해주면서 환영해 주었다. 초등학교로 등교하는 우리 아파트 단지 어린이들의 안전지도를 시작했다. 어린이, 학부모를 알아가는 사역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침마다 하고 있다. 새 학년 초에 특히 저학년 학부모나 새로 이사 온 학부모들은 꼭 물어본다. “학교 선생님이세요? 뭐하시는 분이세요.” 처음에는 “4단지 주민입니다” 했는데, 요즘은 “기쁨의 교회 목사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면 교회가 어디 있는지 물어보고, 교단은 어디냐고 물어본다. 좀 더 적극적으로 우리 교회와 예배를 알리려고 한다. 가정에서 하는 교회에도 오는 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2015년에는 첫 겨울성경학교를 하고, 매주 수요일 오후에는 상가전도를 하고 토요 놀이학교(어와나, 무비데이, 쿠키데이 등)를 통해 어린이들에게 교회를 알리고 전도하였다. 토요 놀이학교가 활성화되어 어린이들이 많이 왔지만, 주일예배로 연결되지 않았다. 어린이들이 교회는 일주일에 한번만 가면 된다는 생각이 있어서 과감히 토요모임을 그만두고 주일 사역중심으로 전환하였다. 2016년에는 어머니 양육반 시작(신구약 성경)되었다. 4월에는 대학교 시절 함께 활동했던 어린이 선교단체 선생님들과 목사님이 붕어빵전도를 해주기 위해 서울에서 세종시로 와서 150명의 어린이들에게 복음을 전해주었다. 2017년에는 새신자반 양육과 주일 오후 초등, 중고등부 학생들의 제자훈련(복음,전도법,신구약성경)이 시작되었다. 양육반 엄마 두 명을 교사로 임명하고 중고등부 학생들이 스탭으로 섬겨서 여름성경학교를 잘 마쳤다. 6월부터 아빠들을 위해 월 1회 가족초청 금요 저녁식사모임을 하고 있다. 하반기에는 가정심방과 남편들 사업체심방, 세례교육과 세례식(하반기)을 계획하고 있다. 3. 교회 모든 사역은 이웃과 함께 부활절 오후에는 어린이들과 아파트와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부활절 계란을 나누어 주고, 추수감사절에는 과일 상자를 지구대 파출소와 소방서, 경로당에 전달하며 감사를 나눈다. 특별히 설, 추석, 어버이날에는 원주민 아파트 단지 경로당 어르신들을 찾아가 과일을 전해드린다. 2014년부터 주일학교 학생들과 경로당을 찾아가 성탄축하공연을 하였고, 올해는 5월에도 효도 공연을 하였다. 성탄절이브에는 교회에서 준비한 작은 선물(여러 과자들이 들은)을 목사가 어린이들이 있는 가정들에게 찾아가 주는 이벤트를 한다. 아파트 인터넷 카페에 공지하고, 이벤트를 신청한 가정(50~60가정)을 방문한다. 이벤트를 통해 이웃과 교회가 가까워지고, 부모들이 408동 202호에 교회가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부모들이 교회에 대해 호감을 갖게 되어 예배나 교회에서 하는 행사들에 자녀들을 보내 준다. 4. 개척 교회의 애환 가정에서 하는 교회에 어린이들은 아무런 편견 없이 오지만, 어른들은 힘들어 하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아빠들에게는 더 힘들다. 아내가 열심히 양육한 엄마가 남편이 가정에서 예배드리는 교회는 가고 싶지 않다고 해서 보내야만 할 때, 몇 날을 눈물로 보내야 했다. 등교지도나 관계전도를 통해 알게 된 이웃들과 교회를 처음 나온 어린이의 부모가 “교회가 어디 있나요?”고 물을 때, “408동 202호입니다” 라고 말하면 고개를 갸우뚱한다. ‘왜 교회가 가정에 있지?’하는 표정이다. 경제적 상황 때문에 가정에서 교회를 한다고 말씀드리지만, ‘이단이 아닌가?’하는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분들도 있고 찾아와 확인하는 분들도 있다. 그러나 개척교회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부어지는 곳이다. 선배 목사님이 교회 개척한다고 새 복사기를 보내 주시고, 중국선교사가 한국교회를 돕는다고 중국 현지교회 성도들의 헌금으로 빔프로젝트와 스크린을 보내 주고, 생각지도 않았던 분들이 연락이 와서 특별헌금을 하시고, 절기 때 찾아오셔서 예배를 함께 드리고 격려해 주셨다.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넘치는 곳이 개척교회라 생각한다. 재, 우리 교회는 아파트 거실에서 예배드리기엔 적지 않은 인원이 출석을 한다. 그래서 올해는 5월부터 에어컨을 틀고 예배를 드렸다. 9월이면 가정에서 예배를 드린 지 3주년이 된다. 이제는 어린이들과 성도들이 함께 예배 처소를 놓고 기도해야할 때이다. 설립예배도 준비해야 한다. 아내와 요즘 많이 하는 이야기는 “어떻게 하면 교회가 더 교회다워질까? 어떻게 하면 더 본질적인 목회를 할까? 교회만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이다. 지금까지 하나님이 일하시고 역사하셨다. 앞으로 하나님이 하실 일이 더 기대된다.
763 no image |생각하는 신앙| 복음의 재발견과 영적 갱신_도지원 목사
편집부
1383 2017-08-02
생각하는 신앙 복음의 재발견과 영적 갱신 < 도지원 목사, 예수비전교회 > 종교개혁의 본질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내면에서부터 일어난 영적 갱신 종교개혁이 오늘 우리에게 갖는 의의는 복음의 재발견에 있다. 마이클 리브스는 그 점을 이런 말로 잘 설명했다. “종교개혁은 무엇보다 부정하는 운동, 다시 말해 로마에게서 벗어나자는 운동이 아니었다. 종교개혁은 긍정하는 운동, 곧 복음으로 나아가자는 운동이었다. … 오늘날에도 종교개혁이 타당성을 가지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종교개혁이 단순히 500년 전의 역사적 상황에 맞선 반동에 불과했다면, 그것이 단지 16세기에 나온 ‘전진’에 불과했다면, 종교개혁은 끝났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그러나 종교개혁은 늘 복음에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프로그램이었기에 결코 끝날 수가 없다.” 그러기에 루터 자신도 오랫동안 은폐되어 있던 복음의 의미와 아름다움을 보게 되었을 때, 그러한 재발견이야말로 ‘돌파구’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루터가 당시의 기독교를 바라볼 때 우선적으로 문제를 삼은 것은 도덕적 상태가 아닌 교리였다. 그는 이 점에서 종교개혁의 샛별로 불리는 존 위클리프나 그의 영향을 받은 얀 후스와 달랐고, 가톨릭 종교개혁자들과도 달랐다. 여기에 대해 롤란드 베인톤은 이렇게 기록했다. “루터의 첫 외침은 선원에 대한 견책이 아니었다. 그가 반대한 것은 배였다. 그는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삶을 공격했다. 나는 교리를 공격했다.’ 중세 가톨릭교의 악폐가 아니라 복음의 악용으로서 가톨릭교 자체가 그의 공격의 대상이었다.” 루터는 교황청과 관련된 지도력이나 윤리의 문제보다도 복음과 관련된 교리에 집중했고, 그것은 복음의 재발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러한 복음의 재발견을 통해 루터는 영적 갱신을 경험했다. 그는 복음이 주는 영적 자유와 기쁨, 확신과 능력을 맛본 것이다. 그리고 그는 교회와 세상을 흔든 변화의 도구가 되었다. 영적 갱신이 어떻게 루터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부르는 복음을 통해 일어나는지 그의 설명을 들어 보자. “만일 그것(영혼)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다면 그것은 부요하여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하나님의 말씀)은 생명, 진리, 빛, 평화, 의, 구원, 기쁨, 자유, 지혜, 능력, 은혜, 영광 그리고 모든 헤아릴 수 없는 복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 만일 그리스도와의 접촉이 (병을) 낫게 한다면, 이러한 가장 부드러운 영적 접촉, 이러한 말씀의 섭취는 얼마나 더 말씀에 속한 모든 것을 영혼에 전달하겠는가. 그때에 이것은 행함이 없이 믿음을 통해서만 영혼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의롭다 하심을 받고, 거룩해지고, 진실하고 평화롭고 자유롭게 되며, 모든 복으로 채워지고, 요한복음 1장 12절이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말한 대로 참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방법이다.” 이처럼 종교개혁의 본질은 제임스 패커가 지적한 대로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내면에서부터 일어난 영적 갱신”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오늘날 교회가 어떻게 새롭게 회복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그것은 새로운 프로그램과 방법론의 도입을 통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지도력의 혁신이나 도덕적 상태의 개선을 통해서도 아니다. 그것은 오직 복음의 재발견을 통해서이다. 팀 켈러는 “지속적이고 더 깊은 영적 갱신과 부흥의 열쇠는 지속적인 복음의 재발견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설명은 이렇다. “사람들은 이 교리들을 보긴 하지만 이해할 수 없다. 교리 시험에서 A학점을 받을 수도 있고, 구원의 교리를 정확하게 설명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진정으로 우리 삶에 가져오는 의미와 능력에 대해서는 전혀 보지 못한다. 이런 의미에서 복음은 반드시 수많은 정통 교회들 안에서 재발견되어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에 깨달아지고 적용되어야 한다. 이런 일이 진정으로 일어날 때,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이 회심하고, 무기력하고 약한 그리스도인들이 강건해지며, 비신자들이 아름답게 변화된 그리스도인 회중들을 보고 마음 깊이 매력을 느낄 것이다.” 오늘 우리에게도 영적 갱신을 위해 복음의 재발견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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