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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2 no image |선교단상(23)| 참된 기쁨_이기종 목사
편집부
2280 2012-05-29
참된 기쁨 < 이기종 목사 · 합신세계선교회총무 > “하늘의 기쁨은 돌밭을 고르는 자나 거두는 자나 함께 누릴 수 있어” 현대인들이 점점 잊고, 아니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것 중 하나가 ‘기쁨’이 아닐까 생각한다. 특히 척박한 환경과 긴장 속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은 더욱 그럴 수 있다. 그들이 사역하고 있는 곳은 우리나라보다 후진국이거나 환경적으로 열악하고, 선교를 방해하는 지역이 대부분이다. 사역의 진전이 생각처럼 빠르지 못한 상황에서 고군분투하는 중에 협력교회들의 후원이 점점 줄어들고, 자녀들 교육비는 날로 늘어가니 기쁠 일이 줄어드는 것 같다. 오랫동안 갖고 싶었던 것을 선물로 받았을 때, 꼭 배우고 싶었던 그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아주 소중한 사람을 만나고 대화할 때 우리는 반가워하고 기뻐한다. 그렇다면 수많은 기쁨들이 우리 주위에 많은데 과연 참된 기쁨이란 무엇이며,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기쁨이 스스로의 선택이나 지혜에서 온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온전한 설명으로 보기에는 무언가 부족한 듯하다. 국어사전에서는 기쁨을 ‘마음이 즐거운 상태, 또는 욕구가 충족되었을 때의 즐거운 마음이나 느낌’이라고 정의한다.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Erich P. Fromm)은 존재 안에서 의미를 찾는 종교나 철학 체계에 있어서는 ‘기쁨’이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기쁨은 자기실현이라는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에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체험이며, 그것은 절정에 이르렀다가 급작스레 끝나버리는 ‘절정의 체험’이 아니고 오히려 사람의 고유한 능력이 생산적으로 전개됨에 따라 수반되는 정서의 상태라고 한다. 기쁨이란 몰아(沒我)의 경지, 순간의 ‘불꽃’이 아니고 존재에 내재하는 ‘불씨’라고 말한다. 사실 우리는 기뻐하기 힘든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급변하는 이 세상의 풍조와 가치관, 그리고 견디기 힘든 현실을 바라보며 기쁨을 계속 유지하고 사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온전한 기쁨을 누리며 살 수 있는 원천인 하나님이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선교사들에게는 특별한 기쁨이 있다. 누구에게나 전도의 열매는 귀하고 소중하지만 선교지에서 얻는 영혼의 열매는 얼마나 큰 기쁨과 힘이 되는지 모른다. 요즈음 아내는 매일매일 기쁨 속에서 살고 있다. 선교지에서 만나 전도한 자매를 한국으로 초대하여 같이 지내며 이곳저곳 구경도 시키고, 밤늦도록 이야기하며, 깔깔거리며 웃는다. 그 모습을 보면 옆에 있는 사람도 저절로 미소가 생기며 기쁨이 넘친다. 진정한 기쁨은 사랑할 때 생겨나며, 손익계산이 없는 곳에서 생겨나며, 하나님 안에서 무조건적으로 그분의 사랑을 나눌 때 생겨난다. 동기 목사 한 분이 그 자매와 함께 우리 부부를 봄이 한창인 아름다운 곳으로 초대했다. 정성을 다해 섬기시는 그 모습 속에서도 기쁨이 있음을 보았고, 또한 그 기쁨 역시 전파되어 옴을 느꼈다. 기쁨은 본인뿐 아니라 옆 사람에게도 행복한 마음을 가져다준다. 하나님이 주셨던 감사의 기쁨이 점점 커지고 넓어진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요 15:11). 사랑하고 사모하는 영적 자녀와 형제들이 있었기에 사도 바울은 감옥에 있으면서도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이라고 말하며(빌 4:1) 기쁨의 서신을 쓸 수 있었을 것이다. 여러모로 어려운 환경과 상황에 있는 선교사들이 생명의 열매들을 얻고, 그 열매들이 장성함에 이르도록 도우며 진정한 기쁨을 누리기를 늘 기도한다. 비록 아직 열매가 없어 황무지의 돌밭을 고르는 일을 하고 있어도 하늘나라 확장과 열매를 기대하며 늘 기쁨의 생활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늘나라의 기쁨은 돌밭을 고르는 자나 거두는 자나 함께 참여한 모두가 누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교사들은 언어를 배우는 일도 기쁨으로, 비자 문제 때문에 수시로 이웃 나라를 드나드는 일도 기쁨으로, 아이들 교육문제를 생각하면서도 기쁨으로 해야 한다. 그럴 때 옆에서 지켜보는 선교 현지인들이 하나님에 대해 알고 싶어 할 것이다.
561 no image |목회수상| 지난 봄 노회는 화합과 사랑의 잔치였습니다_정봉채 목사
편집부
2446 2012-05-14
지난 봄 노회는 화합과 사랑의 잔치였습니다 < 정봉채 목사, 새하늘교회, 경기북노회장 >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께서 경기북노회도 거듭나게 해 주실 것” 지난번 봄 노회가 열리던 그날은 마치 어린 시절 소풍가던 날 들뜬 심정으로 아침 일찍 나섰습니다. 멀리 38선 이북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에 위치한 조용한 시골 교회인 아미성도교회(담임 정종은목사)에서 갖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노회 장소를 이곳으로 정한 이유는 목사 안수식이 없는 봄 노회는 노회 소속 교회들 가운데 작은 교회, 멀리 있는 교회를 방문하여 이런 기회를 통해 그 교회를 위로 격려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시찰별로 모여 자동차를 타고 1시간 30여분 동안 자동차에서부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노회의 잔치는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우리를 기다리는 아미성도 교회가 더욱 그랬습니다. 멋쟁이셨던 사모님께서 몸빼 바지를 입으시고 성도님들과 정성껏 음식을 준비해 주시던 모습, 연로하신 분들이 손수 산에서 꽃을 꺾어 리본을 만들어 한 분 한 분 달아 주시는 그 사랑은 가슴 뭉클했습니다. 또한 밥상이 없어 교회당 바닥에 앉아서 식사를 했지만 백학 호수와 임진강에서 손수 잡아 대접해 주신 풍성한 점심은 감동의 연속이었습니다. 이번에 저는 제8회 경기북노회에서 늦깎이 노회장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지난 노회에서 부회장, 서기로 섬기던 후배들이 한사코 사양하며 선배를 배려하고 예우해 주신 마음들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너무 고맙고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장신에서 오신 차상용 목사님을 부회장으로 선임해 준 것 또한 감사할 뿐입니다. 그뿐 아니라 이번 노회는 오후 5시 전에 폐회를 하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전 서기이신 이희승 목사의 지혜로, 노회 전 준비모임을 통해 각 상임부서별로 안건을 심의하므로 회의 시간을 줄일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앞으로 계속해서 상임부서의 활동을 적극 활성화해서 사안을 상임부서에 위임하고 전체 회의에서는 필요한 몇 가지 사안만 다룬다면 시간을 더 단축할 수 있을 것같아 더욱 희망을 갖습니다. 노회가 이렇게 빨리 끝나는 것을 모두 환영하면서 단축된 시간으로 유익한 세미나와 족구 게임 등을 하자는 데 마음을 모으며 서로에게 박수를 보냈습니다. 이번 노회가 많이 웃고 모든 의논을 기쁘게 결정한 데는 마이크가 한 몫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 교회에 마이크가 없어 불편하기도 했지만 또한 유익하기도 했습니다. 큰 소리가 나올 수도 없었고 오래 발언을 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지요. 그리고 단일 안건에 대한 발언권을 한 분에게 두 번만 드리겠다는 양해를 구하고 회의를 진행한 효과도 있었습니다. 물론 회의가 끝나고 회원의 발언권을 의장이 제한하는 것은 월권이라는 지적도 받았지만 금년 임기기간 동안만이라도 저는 그 방법을 고수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노회를 열심히 참석을 했지만 노회를 앞두고 마음은 늘 무거웠습니다. 가장 큰 부담은 장로님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인격도 질서도 예의도 신앙도 무시한 채 격론을 벌리고 폭언을 서슴지 않는 회의태도를 보면서 너무 부끄럽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이것이 과연 우리가 그토록 회복하고 싶었던 개혁노회 인가?’ 이번 노회 마지막 시간에 한 선교사님이 나와 인사하시면서 “제가 10여 년 전 중국으로 선교를 가게 되었는데 그 때 노회가 이렇게 은혜롭고 화목한 노회였다면 선교를 안 갔을 것입니다. 오늘 노회를 참석하고 너무나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라고 말하여 함께 웃었지만 의미심장한 이야기이기도 했습니다. 벌써부터 저는 설레는 마음으로 다음 노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번 노회에서 우리 모두가 오래전 꿈꾸어 오던 개혁노회 그 희망의 꽃 봉우리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온전케 해 주실 하나님께서 우리 노회를 진정 위로와 소망, 화합과 사랑이 있는 잔치의 노회로 거듭나게 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우리 경기북노회에 이미 봄은 오고 있었습니다.
560 no image |초대시| 살아있는 것에 대한 살아가는 이야기_조심연 목사 (1)
편집부
2820 2012-04-17
559 no image |제언| ‘권징조례 전면 개정안 노회 수의건’에 대한 소견_이차식 목사 (1)
편집부
3614 2012-04-04
‘권징조례 전면 개정안 노회 수의건’에 대한 소견 < 이차식 목사, 덕일교회 > “박윤선의 권징조례는 철저히 성경에 기초한 자랑스런 좌표” “권징조례 전면개정안은 박윤선의 권징조례로 되돌리는 것” 제94회 총회에서 중서울노회가 권징조례에 대한 전면 개정을 헌수위에 요청한 바 있다. 당시 중서울노회가 권징조례의 개정을 제안한 근거는 대략 다음과 같았다. ① 현 권징조례가 담고 있는 권징에 대한 개념과 치리회 등의 개념에 대한 오해, ② 재판상의 편리성을 위한 내용으로 권징에 대한 본래 목적과 기능에서 벗어난 점, ③ 오직 성경에 기초를 두어야 할 권징조례가 세속적 형사규칙과 절차가 들어와 있는 점, ④ 현 교회 정치와 권징조례 사이의 근본적인 문제점 등이었다. 이점에 대해 모 노회에서 권징조례연구위원회를 만들어 오랫동안 연구 검토하여 작성한 안을 헌수위에 보내왔다. 헌수위는 여러 차례 모임을 가지면서 그 노고에 감사한 마음으로 그 안을 현행권징조례와 박윤선의 권징조례와 함께 비교 검토하였고, 제72회 총회가 수정 채택한 권징조례(이하 박윤선 권징조례라 칭함)를 바탕으로 약간의 자구적인 수정만을 하여 총회에 보고하였으며 지난해 제96회 총회는 헌수위의 요청을 받아들여 노회 수의를 하게 함으로써 각 노회가 수의를 하게 이른 것이다. 이에 총회헌수위가 박윤선의 권징조례를 채택한 근거가 무엇이었는지 짧은 소견이지만 피력해 보고자 한다. 1. 어떠한 사람이나 치리회라도 인위적인 법을 만들어 양심을 묶어 놓는 법을 내릴 수 없다. 치리회나 교회가 신자들의 양심을 묶어놓는 법을 만들어서 하달할 수 있는가? 이러한 측면에서 고 박윤선의 권징조례(제72회 총회 1987.9.22. 숭신교회에서 수정채택)는 권징의 의미를 인위적 법이 아닌 “그리스도의 법의 실시”로 규정하고 있다. 권징은 예수그리스도께서 그 교회에 설립하신 법도를 시행하는데 초점이 있으며 세상 법처럼 인간의 죄를 드러내고 재판을 하는데 초점이 있지 않다. 세상 법은 정의를 세우기 위해서 형법이 있으며 죄에 대한 형벌 때문에 형사소송 규칙과 같은 외적 형벌을 시행한다. 반면에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과 죄인에 대한 구원을 목적으로 추구하기 때문에 법정에서처럼 어떤 식으로 수사가 진행되어야 하며 며칠 동안 할 것인가 등의 획일화된 규칙이나 법들을 나열할 필요가 없다. 주님의 교훈하신 말씀에는 이런 표현들이 없다. 단지 독특한 환경에 따라 취급하되 회개의 표징이 나타나고 영적 목적이 성취되었으면 더 이상 권징시행이 계속 될 이유가 없다. 이러한 사상이 박윤선의 권징의 의미(그리스도의 법실시)에서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 2. 교회 권징은 재판중심이 아니라 증거중심이다. 박윤선 권징 제1장 제4조에 의하면 권징을 할 만한 사건을 ‘확실한 증거가 있는 죄과’(마 18:16)로 규정한다. 총회는 자체의 힘으로는 신자들의 양심을 구속할 명령 선포의 권위를 가지지 못한다. 총회는 교회헌법을 해석할 ‘전권’이 있다고 하면 안 된다. 웨스트민스터 원본이나 미국 북장로교 헌법에는 ‘전권’이라는 말이 없다. 총회는 오직 성경의 진리에 근거하여 성경의 가르침의 방식대로 그분의 말씀을 수종들뿐이다. 이러한 권징의 근본 원리들이 한국의 어느 교단의 권징보다도 합신교단 초기 1987년에 수정 채택한 박윤선의 권징에 잘 드러나 있다고 사료된다. 권징의 목적은 재판만으로 성취되지 않으며 무엇보다 교회는 증거단체이지 세력단체가 아니다. 교회는 주님의 영예추구와 죄인의 구원을 목적으로 한다. 마태복음 18장의 말씀에 의하면 권징은 교회 직원으로부터 출발하지 않고 성도로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교회를 섬길 때 결과는 주님께 맡겨드리고 그분의 가르침의 방식대로 순종하면 그만이다. 3. 교회 법규는 법의 균형 잡힌 나열보다는 내용을 중시해야 한다. 박윤선의 권징조례 제2장 제9조의 “마 18:15-17의 중요성”이라는 주제는 권징에 있어서 항상 교회가 잊어버려서는 안 되는 원리이다. 이 구절은 권징에 있어서 우리가 반드시 따르지 않으면 안 될 원리이다. 권징에는 자가 권징, 상호 권징, 교회의 권징이 있다. 권징의 실행은 당회가 하는 것이지만 한사람의 경고나 두세 사람들의 진지한 권면이 먼저 선행되지 않고는 당회조차도 어떤 내용을 다룰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 구절은 은밀한 죄에 대해서만 적용하도록 규정된 것이다. 공공연한 죄의 경우 이를테면 거짓교리나 이단 공적 분리와 같은 공적 죄의 경우는 공적 책망과 때로는 신속한 재판도 필요한 것이다. 그러한 경우라도 교회의 권징의 동기, 과정 그리고 목적은 세상법정에서 하는 것처럼 여러 규칙들을 세워놓고 획일화된 그것에 따라 행하게 되면 교회속성을 놓쳐 버리게 되어서 교회가 오히려 상처받고 사분오열되고 교회답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박윤선의 권징조례는 모든 조항과 기본 정신이 철저히 성경에 기초를 두고자 애쓴 흔적이 타 교단의 여느 권징조례 보다도 여실히 드러난다. 4. 그러면 왜 합신 교단이 개혁주의 방향으로 권징조례를 수정할 필요가 있었는가? 원래 권징조례의 필요성은 제2회 장로회 총회(1912.9.1)와 제4회 총회(1915년), 제6회 총회(1917년) 때 출판의 필요성을 결의한 바 있다. 제6회 총회에서는 정치, 권징조례, 예배모범은 웨스트민스터 책을 번역하여 출판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제7회 총회(1918.8.31-9.5)에서는 곽안련씨가 저술한 정치문답 조례집에 포함된 장로회 각 치리회 규칙을 본 총회의 회 규칙으로 정하였다. 이때 정치 예배모범 권징조례가 출판된 것이다. 이후 제12회 총회(1923.9.3-13)때 조선 예수교 연합 총의회 조직을 위한 규칙을 채택했다. 당시의 조직을 보면 조선예수교 장로회 남 감리회 미감리회, 조선선교회, 장로교나 단체, 감리교 그 교단 영국성서공회, 조선그리스도교 등이 가입되어 있었다. 제15회 총회(1926.9.11)에서는 캐나다 장로회가 1925년 7월 캐나다 감리교회와 캐나다 회중교회와 연합하여 캐나다 예수교 연합교회가 발족되어 캐나다 예수교 연합회 조선 선교회로 개명한다. 이와 같이 장로교, 감리교, 회중교회, 성공회 등이 연합된 상태에서 제16회 총회(1927.9.9-15)에서 헌법을 수정했다. 곽안련이 참고한 J. A. Hodge의 글(1882년판)에도 개혁주의 교회정치에서 벗어난 부분들이 있었으며, 초기 선교시에 한국에 온 선교사들의 선교지향적인 성향 때문에 연합과정 속에서 개혁주의 교회의 정치 유산을 물려주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제24회 총회(1935.9.6-13) 때는 총회재판국이라는 용어가 나오고, 제26회 총회 (1937.9.19-16) 때는 상회라는 단어가 나온다. 이러한 것은 초기한국교회가 태동시에 주님의 가르침에 기반을 둔 교회 정치에 관한 내용을 전수받지 못하였으며 선교정책을 우선한 에큐메니칼 사상을 따랐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다 보니 제22회 총회에서는 여성 장로 자격 부여와 여성 총회 총대 헌의안이 제출되기도 한다. 제27회(9월 27일) 총회에서는 조선예수교장로회 교회의 표지를 지키는데 가장 힘을 기울여야 할 총회가 신사참배를 가결하여 스스로 권징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만다. 교회 헌법의 정치나 권징은 이미 개혁주의 고백서들 속에서 정리되어 나왔어야 한다. 그러나 초기 한국 교회가 채택한 12신조에는 정치나 권징이라는 단어조차도 찾아 볼 수가 없다. 한국 장로교회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정식으로 채택한 것은 선교초기가 아니라, 1세기가 지난 1967년 무렵에서야 정식으로 채택한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서 합신은 태동시에 비개혁주의적인 표현들을 성경적으로 수정하였다. 5. 권징은 시벌<재판과 형벌>의 개념으로 보아선 안 되며 교회 전체의 질서와 성도의 훈련의 개념으로 보아야 한다. 권징은 교회의 순수성을 유지하고 율법에 순종케 함으로 교회 안에서 모든 질서와 훈련을 함양하기 위한 것이다. 단순히 권징을 시벌의 개념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장로교회의 초기 권징조례에 보면 권계라는 항목이 있다. 권계라는 것은 권징을 교회 전체의 질서와 성도를 훈육하는 것을 의미한다. 현행 권징조례에서는 성경에 의하여 제정된 교회의 규칙과 권징에 관한 법을 어긴 일이 있을 때 권징의 대상이 된다. 실제 범죄 행위에 국한하고 있다. 그러나 박윤선은 권징사역에 대해서 신자들이 솔선하여 순종을 배우기 위해 자가 견책과 상호감독이라는 교리(마 18:15-17)를 따라 계속 훈련받는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로마 교회에서 기타 고위층 교직자들만이 교회를 감독하는 계급제도와 다르다고 하였다(헌법주석 박윤선, 영음사, 1991, p148, 149). 우리 헌법의 정신은 시벌 이전에 자신부터 권징하며, 그리고 사랑 가운데 신앙생활 전반에 걸쳐 서로 살피고 봉사하고 권계하는 것이다. 교회정치와 권징조례의 사상이 계급적인 용어가 있어서 상충되지 않고 맞물려서 함께 움직이는 것이다.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삶이 함께 묶어져 가는 것이다. 6. 교회 권징이 실현되어야 할 방식 권징에는 3가지가 있다. 3가지 권징 중 첫 번째는 자기 자신에 대한 권징이다. 만일 우리가 기꺼이 자신들을 권징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우리가 행해야 할 것을 진실하게 말해줄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자신을 살펴보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고전 11:3) 우리 자신들을 살피는 것, 이것은 자기 훈련이요, 자기권계 즉 자기권징이라 할 수 있다. 권징은 자기 자신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다음에 상호간의 권징이 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을 권징하지 않으면 그때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권징해야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 자매로서 믿는 자들은 서로 서로 의무를 지는 것이다. 우리는 사랑으로 죄인들을 타일러야 하며 만일 그가 듣지 않으면 증인들을 데려가야 한다. 주님께서도 마 18:15,16에서 이러한 상호권징에 대해 말씀하신다. 마지막으로 교회권징이 있다. 우리는 마태복음 18장에서 또한 교회권징에 대해서 읽는다. 우리가 사랑 가운데 죄인을 돌이키기 위해서 죄 짓는 자에게 두 세 증인들을 데리고 가도 끝까지 듣지 않을 때에, 주님은 그 문제를 교회에 말하라고 권고하시고 회개가 없다면 교회는 죄인을 출교해야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앞에서 언급한 권징의 단계들이 긍정적 결과를 가져올 수 없을 때에만 적용되는 마지막 단계의 권징이다. 마치는 말 오늘날 우리는 교회권징에만 너무 치우쳐 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들을 권징(훈련)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이것을 해야 하고, 만약 우리가 계속 듣지 않으면 그 교회가 책임을 지게 된다. 누군가 출교되기 전에 길이 오래 참으며, 사랑으로 권면하였으나 회개를 거부할 때는 교회의 당회가 지혜롭게 그 죄인을 돌이키기 위해서 모든 역량을 모은다. 그래도 회개하려하지 않고 고집을 부리며 완고할 때는 재판을 하든지 당회가 수찬 정지나, 출교를 하는 것이다. 어떠한 자라도 은밀한 죄인인 경우에는 짧은 기간 동안에 쉽게 재판을 하고 출교되어서는 안 된다. 교회가 3번째 단계의 권징을 실행하기 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회개를 위한 기회와 넘치는 자비가 주어져야한다. 왜 권징에 있어서 이것이 강조되는가? 주님은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고 징계(권징)한다고 말씀하셨다(계 3:19). 권징(징계)을 위한 참된 동기는 사랑이다. 사랑가운데 책망한다. 책망하지 않고 죄인을 파멸(출교)시켜 버린다면 사랑의 부족이나 죄악된 무관심 때문일 것이다(잠 3:12). 권징이 없는 교회는 사랑이 없는 교회이다. 마음으로 회개와 삶의 변화가 있기까지는 교회권징이 계속되어야 하며 출교가운데서도 사랑의 완성을 알게 되어야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의 완성을 보여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면 시작해선 안 된다. 이 인내의 사랑의 결말이 죄인을 회복시키게 되도록 기도해야 한다. 어쩌면 권징의 방식이 너무 지치고 어렵다고들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권징을 말하면 이 시대에 뒤떨어진 이상한 것으로 생각하거나, 이에 무관심하거나 포기하고 항복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우리 교단이 주님의 말씀만을 수종드는 교단이 되기를 소망한다.
558 no image |초대시| 누가 생명의 주를 죽였는가_김동환 집사
편집부
2694 2012-03-20
557 no image |목회단상| 창발하시는 하나님의 우연(2)_정요석 목사 (1)
편집부
3051 2012-03-20
창발하시는 하나님의 우연(2) < 정요석 목사, 세움교회 > “하나님의 섭리 믿을수록 더욱 하나님 말씀 따라 살아야” 창발적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을 룻의 발걸음에서 찾아볼 수 있다. 모압 여인 룻은 젊어서 남편을 잃고 역시 홀로 된 시어머니의 하나님과 고향을 따라 베들레헴으로 돌아왔다. 지금도 쉽지 않은 과부 두 사람의 삶이 그들에게 닥친 것이다. 그래도 룻은 다른 남자에게 가지 않고 시어머니의 하나님과 고향을 택한 그 믿음과 씩씩함으로 밭으로 가서 이삭을 줍고자 하였다. 룻이 밭에 가서 베는 자를 따라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죽은 시아버지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서 주웠다. 그리고 때마침 보아스는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룻이 이삭을 줍는 것을 보았다. 룻은 우연히 그 밭에 들어갔을까? 그 우연은 맹렬한 전쟁터의 아합 왕에게 무심코 날아온 화살의 그 우연이다. 필연임을 말하는 우연이다. 룻은 밭에 처음 나가기 전에 시어머니에게 “내가 밭으로 가서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라고 말했는데, 룻은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입은 것이다. 시어머니의 백성을 자기의 백성이라, 시어머니의 하나님을 자기의 하나님이라 고백한 룻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우연한 발걸음을 통해 주어진 것이다. 보아스는 룻에게 자기 밭에서 자기의 소녀들과 함께 일하며 소년들이 길어 온 물을 마시라고 큰 친절을 베풀었다. 그는 룻이 남편이 죽은 후에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것을 들었다며 여호와께서 그 일에 보답하시어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이들의 이러한 주고받음은 나중에 부부로까지 이어졌다. 우리가 이렇게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면 믿을수록 우리는 더욱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게 될 것이다. 비록 지금은 어려워도 하나님 말씀에 따라 살면 어느 날 자기의 발걸음을 우연히 인도하여 어떠한 사람을 만나게 할 것이고, 어떠한 좋은 진로로, 사업으로 연결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지금 외양간에 소가 없고 밭에 먹을 것이 없어도 끝내 인도하실 하나님을 인하여 마음에 평안과 설레임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룻기는 왜 사사기와 사무엘상 사이에 있을까? 룻기 마지막 절은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는 족보를 기록하면서 보아스가 다윗의 증조 할아버지라고 말한다. 사사기 마지막 절은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고 말한다. 그리고 사무엘상·하는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다스리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을 때 하나님은 참된 왕 예수 그리스도의 선조 다윗을 준비하셨다. 그런데 그 다윗이 바로 룻의 우연한 발걸음을 통하여 보아스를 만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찾고 선을 행하는 힘없는 과부의 우연한 발걸음을 이렇게 크게 쓰시는 것이다. 그녀의 우연한 발걸음이 다윗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에게까지 연결된다. 룻기 마지막 절들의 족보는 마태복음 1장에 그대로 나온다. 창세기는 1장 1절에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말하면서 무에서 유로 창조된 천지에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를 말하여 준다. 마태복음은 1장 1절에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고 말하면서 룻기의 족보를 포함하여 아브라함부터 예수님까지 이르는 계보를 말하여 준다. 창세기는 인류의 창조와 아담의 실패와 인류 일반의 삶과 택한 아브라함의 후손들의 삶에 대하여 말하고, 마태복음은 그 택하신 아브라함과 그 후손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끝내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는 것을 말하여준다. 하나님의 이렇게 큰 일에 룻의 우연한 발걸음이 사용되는 것이다. 인생에서, 목회에서 우리의 성공은 무엇일까? 결코 외형이 아닐 것이다. 우연히 날아온 화살에 죽은 아합을 보자. 그는 한 나라의 왕으로서 엄청난 권력과 재력과 명예를 22년간 누렸다. 이렇게 긴 시간 누리려면 나름의 판단력과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 교회를 크게 하시는 목사님들을 보면 교회가 아니라 회사를 다니거나 사업을 해도 크게 성공할 분들이 많다. 일들에 대한 집중력과 사람의 마음을 얻는 리더십들이 좋다. 그렇다고 해서 이분들이 모두 우연한 발걸음과 무심코 쏜 화살을 통하여 창발적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성취욕과 감각이 우선될 수 있다. 성공한 이는 룻처럼 결정을 할 때 하나님이 무어라고 하는지를 생각하는 이다. 시어머니가 룻에게 너의 백성과 너의 신들에게로 돌아가라고 했을 때 자기의 기뻐하는 바가 아니라 하나님과 시어머니가 기뻐하시는 바를 좇는 그 결정이 성공이다. 그녀는 이미 그 때에 하나님의 은혜를 먹고 산 것이다. 보아스와의 만남은 그녀가 먹은 그 은혜가 눈으로 보여진 것뿐이다. 그녀의 믿음은 바라는 것들을 실상처럼 이미 보았고, 보이지 않는 것들을 확실한 증거처럼 분명히 보았다. 매사에 믿음으로 이렇게 하나님을 경외하며 결정하는 이가 고수이다. 하나님은 그녀에게 다윗의 증조할머니가 되는 기쁨을 주었지만,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유리하고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당하다 죽은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이들도 비록 눈에 보이는 보상은 없었지만 그 믿음을 인하여 하나님과의 교제를 그 순간 크게 느꼈고, 스데반처럼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을 것이다. 나는 이 믿음을 소망한다. 그런데 나는 8년이 흘러감에도 6층이 아닌 4층인 교회당을 보면서 아직도 때때로 아쉬움이 들고 화가 치밀기도 한다. 하나님은 이런 나도 빚어 가실 것이다.
556 no image |목회단상| 창발하시는 하나님의 우연(1)_정요석 목사 (24)
편집부
3236 2012-03-06
창발하시는 하나님의 우연(1) < 정요석 목사, 세움교회 > “하나님은 우회하시는 것 같아도 반드시 선과 악 갚으시는 분” 개미는 일개미, 수캐미, 여왕개미, 병정개미 등으로 나뉘어 각자 맡은 일만을 열심히 한다. 그런데 개미집은 매우 세분화되어 음식과 알과 부화한 애벌레를 각각 두는 방, 이들을 먹일 버섯을 기르는 방, 냉난방까지 되어 있는 방이 있다. 개미 한 마리 한 마리를 살펴보면 도저히 이러한 사회구조와 집을 지을 수 있어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이들은 이런 정교한 집을 지을 수 있을까? 이처럼 각 구성 요소로 볼 때는 생각지 못했던 기능이나 현상이 전체적인 구조를 통해서 돌연히 출현하는 현상을 창발성(emergence)이라고 한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과학자들은 이렇게 갑자기 튀어나오는 특성을 이용하여 갑자기 생명이 튀어나왔고, 이것이 어떤 시점에 이르면 갑자기 진화하여 고등동물이 되었고, 또 인간의 역사에 있어서 다음 단계로의 발전도 이루어졌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창발성이 바로 하나님에게서 옴을 확신한다. 개미만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사회를 포함한 모든 것들은 각 구성 요소에 있어서는 별 볼일 없지만, 그 전체로 어떤 기능과 방향성을 갖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작동시키시기 때문이다. 열왕기상 22장을 보면 북이스라엘이 남유다와 연합하여 아람과 전쟁을 벌인다. 아람왕은 이 전쟁의 주동자가 아합인 것을 알고 지휘관 32인에게 먼저 그를 죽이라고 말했다. 아합은 아람왕이 이런 명령을 내릴 것을 짐작하고 왕복을 벗어버리고 일반군인처럼 변장을 했다. 그래서 아람의 지휘관 32인은 왕복을 입은 자를 찾아 쫓아갔지만 그가 남유다의 여호사밧왕인 것을 알고는 포기했다. 아합은 이런 것을 보며 자기의 계략이 맞아 돌아감에 흐뭇했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때 아합은 한 병사가 우연히 쏜 화살에 맞았고, 전쟁이 너무 맹렬하여 제 때 치료를 못받아 피를 너무 많이 흘러 죽고 말았다. 부하들은 병거 바닥에 고인 피를 사마리아 못에 가져가 씻었고, 개들은 그 피를 핥았는데, 성경은 이것이 여호와의 하신 말씀대로 되었다고 말한다. 아합은 나봇의 포도원이 탐이 나 그를 모략하고 죽인 후에 포도원을 빼앗았는데 하나님은 엘리야를 보내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아합의 피도 핥을 것이라고 예언하셨고, 이 예언은 우연히 날아온 화살에 의해 그대로 집행된 것이다. 이 화살이 ‘우연히’ 날아온 것일까? 아니다. 한 병사가 우연히 쏘는 화살 하나도 결코 우연이 아님을 ‘우연히’라는 단어를 통하여 성경은 더 강하게 말할 뿐이다. 아합, 이세벨, 죽임을 당한 나봇, 유다 왕, 아람 왕, 그리고 세 나라의 많은 병사들, 이들 모두는 독립적으로 활동을 한다. 자기의 생각과 판단에 따라 행동한다. 그런데 그 보다 더 높은 차원에서 하나님이 일하신다.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무시하지 않고 모두 내포하면서도 그들을 뛰어 넘어 창발적으로 일하신다. 우리 교회는 2003년에 교회당 건축을 했다. 그때 앞에 있는 아파트 주민들이 6층은 너무 높다며 콘크리트 타설 때 실력행사를 하여 레미콘 차가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구청이 적법하게 허가한 건축공사를 막은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역 주민들의 정서를 고려하여 4층으로 타협을 했다. 하지만 이 타협으로 우리 교회는 말 그대로 수억 손해를 봤고, 여러 계획이 망가졌고, 나 자신의 리더십도 흔들렸다. 실력행사를 하며 건축을 방해한 주민들이 미웠고 분노스러웠다. 이 힘듦을 나는 기도도 하고 성경도 보고 내가 좋아하는 운동도 하며 이겨내려 했지만 쉽지만은 않았다. 미련과 분노와 불안이 얼마나 사람 몸을 망가뜨리는지 체험했다. 건축을 하다 목사님들이 아프고 죽기까지 한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그런 중에 이것들을 이겨내는데, 원수 갚는 것이 하나님에게 있다며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는 롬 12장 말씀이 큰 도움이 되었다. 무심코 날아가는 화살 하나를 통해 징벌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마음을 가라앉히게 했다. 우리 교회의 건축이 옳다면 창발적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은 우리 눈에는 우회하시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반드시 선과 악을 갚으실 것이라는 믿음이 마음을 달래주었다. 이렇게 마음을 추슬러 나가니 주민들이 왜 방해하는지, 그분들의 마음은 어떠한지도 눈에 들어왔다.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도, 성경을 많이 보는 사람도, 교회 일을 많이 하는 사람도 신앙이 좋겠지만, 해가 지기 전에 화를 푸는 사람이 최소한 나에게 있어서는 신앙의 고수이다. 사람이 행한 선과 악이 어디로 없어지지 않고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정확하게 나타날 것을 그대로 믿는 이들이 신앙이 좋은 것이다. 사람은 자기의 욕심어린 목적과 혈기를 짐짓 경건한 신앙의 모습으로 나타낼 수 있다. 화려한 미사여구로 미화한 교회당 건축에는 목회자의 욕심과 성도들의 허영이 더 크게 자리 잡을 수 있다. 정말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을 믿고 그분의 말씀에 따라 자기의 생각과 일을 맞추어 가는 자이다. 억울히 죽음을 당한 나봇의 가족들의 신앙의 승리는 무엇일까? 아마 그 일을 잊는 것일 것이다. 아합의 가족들이 그대로 살도록 내버려 두는 일이다. 최대의 복수는 상대방을 잊는 것이고 상대방이 그대로 살게 놔두는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성향대로 살다가 무심코 날아오는 화살에 피를 흘리며 죽어갈 것이다. 우리는 오히려 우리의 보지 못한 죄가 없는지 우리 자신을 살펴야 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5장이 섭리에서 말하듯 하나님은 그 잘못들에 대해서도 우리들을 징계하시어 우리의 부패성을 알게 하시고 겸손케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도 “내 원수는 남이 갚는다”는 격언으로 복수를 미루는데, 우리는 창발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인하여 더욱 잊어야 할 것이다. 정말 고수는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한다.
555 no image |제언| 중국 선교와 선교 중국_김충만 선교사 (1)
편집부
2927 2012-02-22
중국 선교와 선교 중국 < 김충만 선교사, 합신세계선교회 > 한국 교회에 있어서 중국 선교의 과제는 늘 큰 비중과 책임으로 인식되고 있다. 중국은 한국과 지리, 문화적으로 가까운 나라이면서 선교의 도움이 가장 필요한 나라이며 수많은 미전도 종족을 포함하고 있는 국가이다. 그러다 보니 한국 교회는 선교를 말할 때 늘 중국 선교를 우선적으로 논의하고 있고 많은 관심과 기도가 집중되고 있다. 1993년 한중 수교 이후 근 20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중국의 위상은 국가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많은 변화와 성장을 이룩하였다. 중국 교회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많은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교회의 질적 변화와 부흥을 경험하고 있으며 이제는 외부의 선교적 도움을 받는 교회에서 타민족을 향해 선교하는 교회로 바뀌고 있는 시점이다. 이러한 중국 교회와 선교 현장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한국 교회는 중국 선교를 이해함에 있어서 예전의 생각들과 전략들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는 것 같다. 몇 마디 간단한 중국어로 캠퍼스에서 전도가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하고 있고, 또 경제적 문화적 도움을 주면 한국인에게 쉽게 호감을 가질 것으로 생각한다. 성경만 들고 가면 신자들이 모일 것이며 중국어를 몰라도 조선족 동포를 통해 얼마든지 설교할 수 있을 것으로 아직도 생각하고 있다. 중국 선교 초창기에는 특별한 훈련과 준비 없이도 선교할 수 있는 국가가 중국이었다. 그저 나가서 전하면 열매를 얻을 수 있는 선교지였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중국이 아니다. 급성장하는 중국의 경제력 속에서 복음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어야 하고 한족과 소수민족들간의 갈등 속에서 복음으로 서로 하나 되기를 가르쳐 주어야 한다. 세계 경제의 대국이 되어가는 지금에도 이혼과 자녀 문제로 깨어져 가는 중국 가정들에게 성경이 말하는 가정의 소중함도 알려 주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선교 현장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한국 교회는 중국 선교를 이해함에 아직도 20년 전의 중국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제는 중국 선교의 주도권을 중국 교회에 넘겨줘야 할 때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중국교회 스스로 전도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의 역할로 그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물론 우리가 보기에는 아직도 연약하고 미성숙해 보이지만 중국 교회를 성장시키고 세우시는 분은 우리가 아닌 삼위일체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한다. 앞으로 중국 선교를 위한 우리의 사명은 철저하게 그들이 필요로 하는 부분을 도와주는 일이라 생각한다. 자국민의 전도는 이제는 그들 스스로에게 맡기고, 우리는 교회를 이끌어갈 지도자와 중국교회에게 바른 신학을 전수해 주며 타문화 선교를 위한 올바른 헌신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어야 한다. 아직도 복음에서 소외되어있는 변방의 소수민족 복음화를 위해서는 중국교회와 함께 논의하고 힘을 합해야 한다. 또한 점차 그 숫자가 늘고 있는 한국 내 중국 유학생들 사역에도 한국교회가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한국 교회에 있어서 중국 선교는 앞으로도 가장 중요한 선교의 영역으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중국 선교의 분야와 역할은 이전과는 확연히 다르게 펼쳐질 것이다. 변화하는 선교지 현실에 맞는 합당한 선교적 준비를 위해 한국 교회는 더 많은 관심을 갖고 기도해야 할 것이다.
554 no image |제언| 교과서 진화론 관련내용 개정되어야_강경민 목사 (154)
편집부
4263 2012-02-07
교과서 진화론 관련내용 개정되어야 < 강경민 목사, 일산은혜교회, 경기북노회장 > “진화론은 무신론적 전제이며 사실상 종교적 이데올로기일 뿐” 우리나라의 과학교과서는 생물의 기원과 역사, 지구의 기원과 역사를 다루면서 소위 진화론을 표준적 과학으로 명시하고 있다. 교과부 고시 제1997-15호에 따른 중학교 교육과정 해설(Ⅱ)에서는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다. “진화설명에서 창조론은 다루지 않는다. 창조론은 종교적인 측면에서 진화론은 과학적인 측면에서 논의되므로 근본적으로 접근방법이 다르다. 그러므로 진화론과 창조론을 대비시켜 논의하거나 설명함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교과부의 교육과정 해설서가 언급한대로 진화론은 과학이고 창조론은 종교적 교리인가? 참으로 터무니없는 발상을 교과부가 자행하고 있다. 창조론이 성경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상이지만 그렇다고 창조론을 주장하는 모든 단체가 기독교적 신앙배경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진화론만이 참된 과학적 진실이라고 믿는 이데올로기적 허구를 반대하는 비기독교인들로 구성된 지식인그룹들도 많다. 학문은 정직해야 한다. 예컨대 ‘생명은 생명으로부터만 유래한다’는 생명속생설은 성경을 믿든지 안 믿든지 과학적 세계에서도 보편적 상식이다. 진화론은 생명의 기원을 과학적 방식으로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창조론자들이 진화론자들에게 줄기차게 지적하고 있는 ‘중간형태의 부재’ 문제도 과학적으로 충족한 설명을 못하고 있는 것은 엄연한 과학적 진실이다. 창조론자들이 유신론적 전제를 깔고 있듯이 진화론은 무신론적 전제, 다시 말하면 모든 초월적 요소를 배제하려는 자연주의적 신념을 배경에 깔고 있다. 그것은 사실상 종교적 이데올로기일 뿐 진정한 과학이 아니다. 진화론이 자연주의와 결합하여 견고한 무신론적 철학사상을 절대화시키는 것은 결과적으로 인간을 철저하게 비인간화시킴으로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과 종교의 자유를 침범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국가교육을 책임지는 최고의 교육정책 담당기관이 헌법을 위배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범법기관이 되는 참담한 현실을 그대로 받아드릴 수 없는 노릇이다. 한국교회는 종교적 독선주의 또는 집단이기주의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방식을 지양하고 합리적이고 보편타당한 사회적 상식을 동원하여 꾸준히 교과내용의 변경을 요청해야 한다. 만일, 교과부 지침이 과학교과서 집필과정에 ‘창조론’을 삽입하겠다고 한다면 한국교회가 표준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창조론이 준비되어 있는가? 기독교 안에서 심지어 복음주의 신학자들 안에서도 창조론에 대한 견해가 다양함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예컨대 6000년 지구(우주)연대와 홍수지질학만이 성경적 입장이라는 신학적 독선을 넘어서야 한다. 성경의 문자적 영감론을 믿는 것이 곧 성경을 과학교과서라고 믿는 것은 아니다. 창조의 과학적 비밀을 밝히는 것은 성경학자들의 몫이 아니라 과학자들의 몫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내부에서는 창조론에 대한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신학적 마귀사냥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창조과학회가 진화론의 허구를 과학적 방법으로 증명할 수 있었다는 것은 지대한 공헌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창조과학회의 일정한 입장이 유일한 성경적 표준이라고 생각하면 엄청난 부작용을 가져올 것이다. 한국교회가 진화론에 관한 교과부 내용의 개편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만 매우 합리적이고 개방적인 태도를 가지고, 창조론을 종교적 이데올로기가 아닌 과학적 진실이 되도록 노력하는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553 no image |초대시| 나의 길_김동환 집사 (22)
편집부
3201 2012-01-30
552 no image |선교단상(22)| 신임 선교사를 파송하며_이기종 목사 (2)
편집부
2983 2012-01-30
신임 선교사를 파송하며 < 이기종 목사 · 합신세계선교회총무 > 오랜 준비 과정과 훈련을 거쳐 신임 선교사들이 하나 둘씩 파송을 받아 선교지로 나가는 일은 매우 기쁘고 감사한 일이다. 우리 총회 세계선교회는 본부 행정/재정 시스템을 강화하고, 선교사뿐만 아니라 선교사들의 자녀들과 부모님들까지 돕는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해외 선교지에도 지부와 지회를 조직하여 서로 긴밀히 교제하고 사역을 협의하며 협력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고, 신임 선교사들이 부임하면 체계적으로 도울 수 있게 되었다. 신임 선교사들이 선교지에 도착하면 먼저 들어온 선임 선교사들이 새로 부임한 선교사 가정이 거주할 주택, 언어 학교, 자녀 학교를 미리 알아봐 주고 비자 취득, 통신 이용 등 초기 정착을 돕고 있다. 총회 선교회가 차츰 합신선교의 구심점이 되면서 신대원 재학생들 중에 총회선교사 지망생이 늘어나고 있다. 이미 타 선교단체 소속으로 현지에 나가서 사역하고 있는 선교사들 중에도 총회 선교회 소속이 되고 싶어 문을 두드리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신임 선교사 파송과 관련하여 생각해 볼 점이 몇 가지 있다. “평안하세요? 저는 합신세계선교회 이사장으로 섬기고 있는 강인석 목사(시흥평안교회)입니다. 존경하는 목사님께 부탁드립니다. 신년도 예산 편성 시에 선교비 지출 예산을 증액하시거든 합신 총회 소속 선교사를 우선적으로 배려해 주시길 간곡히 부탁합니다. 타 선교단체 소속 선교사도 도와야겠으나, 같은 총회의 후배 선교사님들이 800여 교회밖에 없는 작은 교단에서 후원 모금이 어려운 점을 감안해 주시길 부탁합니다. 합신교단을 사랑하시는 목사님의 따뜻한 선처를 기대합니다.” 언젠가 이런 문자메시지를 받아 본 분들이 있을 것이다. 첫째로, 생각해 볼 것은 신임 선교사들이 후원 교회를 찾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여러 가지로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나 무엇보다도 우리 교단의 규모가 작은 편인 데다가 교회 수의 증가도 적고, 미자립 교회의 비중도 큰 편이라 할 수 있으니 어려울 수밖에 없다. 둘째로, 신임 선교사가 선교 후원을 많이 하고 있는 큰 교회에서 후원을 받기도 어렵다는 점이다. 이미 선교사들을 많이 후원하고 있기 때문에 추가로 후원할 예산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기존 후원 선교사들에 대해 전면적인 검토가 필요한 때이다. 실제로 우리 교단의 대형 교회들을 보면 100가정 이상 선교사를 후원하고 있지만 그 중 우리 교단 총회선교사 후원은 고작 20가정 혹은 30가정 미만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비단 대형 교회들뿐만 아니라 다른 교회들도 상당수 비슷한 실정이다. 즉, 타 교단 소속 선교사, 타 선교단체 소속선교사, 또는 무소속 선교사 등에 대한 후원 비중이 너무 높다. 예장교단, 예장교단 교회에서는 타 교단 소속 선교사에 대한 후원은 하지 않도록 되어 있다고 한다. 이제는 모든 교회가 좀 더 적극적으로 총회선교사 후원 비중을 높이도록 검토해야 한다. 다른 선교사들을 많이 후원해서 후원할 자리가 없다고 말하지만, 막상 80퍼센트 이상이 합신 총회 소속 선교사가 아닌 선교사 명단이 적힌 주보를 들여다보면서 교회를 나설 때, 마치 낯선 고향에서 부모형제로부터 밀려난 듯한 소외감이 밀려온다고 어떤 선교사는 말한다. 셋째로, 파송 교회를 찾는 일이 어려워지고 있다. 소위 중, 대형 교회에서 부교역자로 사역한 사람들의 형편은 그래도 나은 편이지만 소형 교회, 개척 교회에서 사역하던 사람들의 경우에 파송 교회를 정하는 일이 쉽지 않다. 중, 대형 교회에서 목회 사역을 배우고 싶어도 기회가 잘 주어지지 않는 현실이므로 작은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했지만 교회의 재정 형편상 파송을 해 주지 못하게 되면 파송해 줄 교회를 찾아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어떤 교회에서는 파송은 해 주지만 ‘1년이나 2년 후에는 계속 후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말을 듣고 떠나는 신임 선교사의 마음은 얼마나 무거울까? 모든 교회들이 나름대로 선교 후원을 하고 있지만 800여 교단 교회 중에 300여 교회만 선교 후원에 참여하고 있는 실정이다. 선교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 500여 교회가 월 1만원이라도 선교 후원에 참여하자는 ‘모든 교회 월 1만원 운동’에 동참한다면 여러 선교사 지원 사역을 계속할 수 있게 된다. ‘총회 소속 선교사에 대한 교회의 후원 비중을 최소한 50퍼센트 이상으로’ 점차 늘려 간다면 신임 선교사들의 발걸음도 훨씬 가벼워질 것이다.
551 no image |목회단상| 합신, 자랑스럽지 아니한가!_심훈진 목사 (1)
편집부
3356 2011-12-27
합신, 자랑스럽지 아니한가! < 심훈진 목사 · 동작중앙교회 > “신선한 모습으로 좋은 모델답게 정체성 세워나가길” 합신 출범의 세월이 벌써 30년이나 지났다. 지나온 시간 속에서 합신에 소속되어 사역하는 자로 결코 후회하지 않고 감사할 뿐이다. 이 합신의 자랑스러움을 여러 동역자들과 성도님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최근 어느 부흥단체 중진급 조찬모임에 참석하여 대화하던 중 이런 말을 들었다. “모 장로교 교단은 살아있는 사람의 이름(호)을 이용하여 교단의 명칭을 만들어서 사람 냄새가 나서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는 것 같다. 합신도 얼마든지 박윤선목사님의 이름을 따서 ‘정암’이라는 교단칭호를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지 않은 것을 보니 합신은 바른 교단이다.” 다른 교단의 사람들이 우리의 형편과 상황을 꿰뚫어 보듯이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정암’이라는 이름으로 교단을 하자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인데 그들은 우리 교단이 박윤선 목사님의 정신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으며 얼마든지 ‘정암’이라는 칭호를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있기 때문이다. 미국에 처음 부흥집회를 가게된 동기는 미국의 어느 교회의 목사님이 진실하고 바른 부흥사를 보내달라고 하여 선별되었다는 본부의 연락을 받고 본부장을 만났는데 그의 말이 고민을 많이 하다가 진실하고 바른 목사가 누구인가 찾던 중에 그래도 ‘합신’ 출신이 바르지 않겠는가 결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합신은 신학이 강하여서 잘 배웠으리라 믿고 추천한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들으니 짐이 무거움을 느꼈다. 처음 미국에 간 곳이 워싱턴이었다. 합신을 대표하는 부흥사라는 자부심으로 정말 바른 모습으로 열심히 했다. 이후 계속 미국에 다니게 되었다. 한 번은 톄네시의 모 장로교회에 가게 되었다. 담임 목사님께서 소개하면서 ‘한국장로교단 중 가장 바르고 깨끗한 교단인 합신에서 목회하는 목사라고 소개를 하였다. 집회가 끝나고 어떻게 우리 교단 아는지 물었더니 그분도 한국에 자주 나가고 친구 목사님들이 말하길 합신교단과 수원에 있는 합동신학교가 앞으로 건전하게 성장할 좋은 교단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10년 전만 해도 그렇게 잘 모르던 우리 합신이 이제는 많이 알려졌다. 교단 안에는 잘못된 정치가 없고 신선한 모습으로 장차 한국장로교의 좋은 모델이 될 것이라고 다들 평가하고 있다. 한번은 모 신학대학 신학기 수련회 1일 강사로 간 적이 있는데 합신 교단의 목사라고 하니 모 교수가 깜짝 놀라면서 합신은 신학이 강한데 어떻게 부흥사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밖에서 주로 뛰어다니고 있다고 웃으면서 답했더니 그 교수는 합신 출신이시면 강의를 해야 한다면서 합신의 위상을 높혀 주는 것을 보았다. 한번은 본 교회에 어느 중견 나이의 한 분이 등록을 하면서 3층의 목양실에서 차를 마시게 되었는데 그는 감사의 표시를 하며 좋은 신학교 나오셨다고 하면서 잘 지도해 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무슨 말씀이냐고 했더니 그는 합동신학교를 졸업하셨는데 좋은 학교라는 것이다. 생전 처음보는 사람인데 어떻게 합동신학교를 어떻게 아느냐 했더니 친구들에게 들었고 잘 아는 목사님께 들었는데 총신에서 교수님과 학생들이 나와서 세운 학교이며 총신보다 더 좋은 학교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자기가 섬겨할 교회이며 지도를 받아야 할 담임 목사님이 어떤 분인지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목사의 신상을 알아보았다며 양해를 구했다. 법대를 나와 법관이되려고 하다가 합신을 졸업하고 우리 교회 부교역자로 온 강도사 한 분이 있었는데 지금은 목사님이 되어 다른 교단에서 봉사하고 있다. 그 목사님도 우리 합신에 온 동기가 다른 교단의 목사님이 소개하여 합신에 오게 되었다고 한다. 자신의 교단신학교에 보내지 않고 합신에 보내면서 바르게 교육받을 학교라고 소개했다는 것이다. 합신에 대한 이미지가 우리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확대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두려워해야 한다. 우리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합신에 대한 기대와 바램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부흥사도 아니지만 여기 저기 강사로 다니다 보면 초교파 모임에도 자주 참여하게 된다. 그때마다 우리 교단에 거는 기대가 큼을 느끼고 있다. 어떤 중견 부흥사는 합신이 무너지면 한국장로교도 다 무너진다는 말을 서슴지 않고 하였다. 그럴 때마다 합신의 사람으로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그만큼 부담도 느끼게 된다. 우리는 과거 개혁이라는 교단 명칭에서 합신으로 교단명칭을 바꾸었다. 그래도 개혁의 정신은 살아 있다. 합동신학교는 우리 교단을 시작한 모태이며, 합신의 교단이 오늘날 신뢰를 받고 있는 것은 ‘바른신학, 바른교회, 바른생활’이라는 교단이념 때문이라고 본다. 우리 신문이 전 세계에 널리 보내지고 있다. 이처럼 자랑스런 교단지를 가지고 다니며 만나는 사람마다 나눠주고 있다. 어떤 목사님은 너무 신학 냄새가 난다고 한다. 그래도 또 달라고 한다. 때로는 일반 성도들에게도 나눠준다. 신문 제명도 합신기독신보로 했다. 개혁명칭에서 합신이 좋아 한 마음으로 명칭을 변경했으면 이제는 합신을 자랑스럽게 내보여야 한다. 그리고 모든 매스컴에 당당하게 우리를 드러내고 보여주어야 한다. 또한 우리 모두 조심스럽게 우리의 이름답게 우리의 아름다움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2012년에는 더 큰 믿음으로 합신을 자랑하고 바른 신앙으로 주님의 영광을 널리 펼치는 교단이 되기를 소원한다.
550 no image |제언| 교단의 주일학교를 위하여_정봉채 목사 (21)
편집부
3225 2011-12-27
교단의 주일학교를 위하여 < 정봉채 목사 · 새하늘교회 > “상설 교육국 설치해 전문위원 두어 연구케 해야” 미국에서 오래 목회를 하고 한국에 돌아와서 감사했던 것은 한국사회의 놀라운 성장과 발전된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나라에 주신 특별한 은혜와 복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세계적인 불황에도 그나마 안정적인 경제, 그리고 IT 산업과 문화는 세계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어 자랑스럽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가슴 아픈 것은 한국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부분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중의 하나가 주일학교의 참담한 현실입니다. 왜 주일학교가 이렇게 침체되었는가? 주일학교 없는 한국교회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라는 생각을 하면 심한 자책감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주일학교는 한국교회 소망과 성장의 텃밭이었습니다. 지금까지 한국 교회 부흥의 배경에 주일학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70년 후반부터 찾아온 주일학교 침체는 90년대 와서 주일학교 학생 수가 급격하게 감소하기 시작했고 이런 주일학교의 영향은 매년 기독교인이 감소하는 심각한 사태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주일학교의 침체를 한국교회 미래를 어둡게 하는 경고로 받아야 합니다. 물론 주일학교 교육의 큰 장애는 외적인 문제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질만능의 급변하는 사회와 무너지고 있는 가치체계, 학력지상주의 등은 다윗 앞의 골리앗처럼 거대한 장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골리앗과 같은 이 문제 앞에 교단이나 교회는 오래 전부터 창의적이고 적극적인 교육 개발이 없이 답보상태에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교육프로그램을 보면 성경중심의 신앙 교육의 본질을 잃을 뿐더러 기독교 교육 철학도 없는 흥미위주의 세상 문화를 아가기에 급급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모습이 안타까운 것은 방향을 잃고 방황하는 민수기 시대를 연상케 하기 때문입니다. 건강한 개혁 교단을 세우고 신실한 신학교를 성장시키며 세계선교를 위하여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발전시켜 온 우리 합신이지만 주일학교 교육을 보면 역시 70년대 수준을 면하지 못하고 있어 더욱 가슴 아픈 것입니다. 우리의 급선무는 전문교육목사를 양성하여 교육을 전문적으로 기획하고 운영하며 우리 교단의 특성에 맞는 교육프로그램 패러다임을 모색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학교에서부터 선교사와 목회자를 양성하듯이 교육 전문가를 양성해야 합니다. 주일학교 교육과정이 전문화되어야 합니다. 교육과정(커리큘럼)은 매우 전문적이고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연구와 개발이 필수적입니다. 그리고 교단별 교사 훈련이 강화되고 체계적으로 준비되어야 합니다. 주일학교 어린이는 교사 수준을 넘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무엇보다 우리 교단의 미래를 위하여 교육부를 상설 교육국(교육전문기관)으로 승격시켜 전담 총무와 전문위원을 두어 개발 연구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연코 주일학교 없는 교회는 미래가 없습니다. 또한 주일학교의 부흥 없이 교회부흥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주일학교는 교회만이 아니라 정치, 사회, 경제, 문화의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미래의 전당입니다. 우리 교단이 이 중요한 사명을 위해 깨인 의식을 가지고 노력하며 쓰임받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549 no image |성탄절메시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신비로움_임석주 목사 (1)
편집부
3541 2011-12-21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신비로움 < 임석주 목사, 창원참좋은교회 > 하나님께서 보낸 천사 가브리엘이 갈릴리 나사렛 동네의 처녀 마리아에게 수태고지를 하고(눅 1:26-35), 이것이 틀림없는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기 위해 아기를 낳지 못하던 마리아의 친척 엘리사벳이 늙은 몸이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아들을 배어 지금 여섯 달이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눅 1:36). 마리아는 너무 기뻐서 엘리사벳을 찾아갔고, 엘리사벳의 영접을 받은 후에 마리아는 이렇게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 손으로 보내셨도다...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및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눅 1:46-55). 마리아의 찬송 시는 한나가 사무엘을 낳고 사무엘상 2장에서 하나님을 찬송한 내용과 아주 흡사합니다. 이것은 마리아가 구약성경과 그리스도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었던 경건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1장에 보면 마리아의 약혼자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육신의 부모가 되는 마리아와 요셉은 경건하고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두 사람은 그리스도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실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 정도는 알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 미가서 5장 2절에는 그리스도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실 것을 이렇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이것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여자의 후손으로 오시는 그리스도가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실 것을 분명하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방박사들이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고 물었을 때, 이스라엘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주저 없이 베들레헴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마 2:2-6). 아마도 그리스도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다는 말씀은 유대인들에게는 어린이들도 알고 있는 상식이었을 것입니다. 성령으로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는 배가 불러오기 시작합니다. 임신 9개월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마리아와 요셉은 베들레헴으로 가지 않습니다. 성경에 그리스도가 태어나실 곳이 베들레헴이라고 예언이 되어 있는데 이들은 왜 베들레헴으로 가지 않았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게 하려면 베들레헴으로 가야 하는데 왜 이들은 가만히 있었을까요?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8Km 떨어진 곳으로, 나사렛에서는 145Km나 떨어져 있는 곳입니다. 만삭된 여인이 나귀 같은 이동수단을 이용해서 하루에 10Km내지 20Km정도를 간다고 가정하면 1주일에서 2주일이 소요되는 거리입니다. 마리아가 베들레헴에 도착해서 마구간에서 예수님을 낳은 것을 보면 마리아가 나사렛에서 출발할 때 예수님을 잉태하고 9개월이 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마리아와 요셉은 나사렛에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만에 하나 마리아가 나사렛에서 예수님을 출산한다면 예수님은 성경에 예언된 그리스도로 인정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대한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여자의 후손으로 오시는 그리스도를 약속하시고 무려 4천년이 지나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여자의 후손이 태어나는 순간인데 예수님이 나사렛에서 태어난다면 4천년 동안의 기다림과 하나님의 약속은 수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이것을 몰랐을리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나사렛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왜 이들은 베들레헴으로 가지 않았을까요? 마리아와 요셉은 베들레헴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과 환경적인 인도를 기다린 것입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하고 9개월이 지나 이제 곧 출산이 임박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인도가 없었기 때문에 이들은 계속해서 기다린 것입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경건하고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약속이 아담으로부터 4천년이 지난 지금 자신들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사실 앞에 감히 서두르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끝까지 기다린 것입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마리아의 배속에 성령으로 잉태된 아기 예수님이 첫 사람 아담의 실패를 회복시키고 죄인들을 구원하러 오신 마지막 아담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자신들도 첫 사람 아담과 하와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인도를 기다려야 한다고 굳게 믿었던 것입니다. 이들은 성경의 역사를 통해 사람의 생각이 하나님의 일을 그르치고, 사람의 조급함이 하나님의 일을 방해한다는 것을 알고 오직 믿음으로 기다릴 줄 아는 훈련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만류하는 베드로에게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마 16:23)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위하는 열심으로 주님 편에서 말을 한 것이지만 하나님의 일보다 자기의 생각이 앞 선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사단에게 이용을 당했고, 예수님은 내 뒤로(예수님보다 앞섰다는 것) 물러가라고 하신 겁니다. 결코 주님보다 앞서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뜻보다 내 열심이 앞서지 않게 하십시오. 특히 당위성을 가진 일 앞에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십시오. 하나님의 구속 역사에서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람들은 바로 이런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기다리던 마리와 요셉을 하나님은 환경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눅 2:1-5). 마리아와 요셉은 이것이 하나님의 인도요, 하나님의 시그널이라고 믿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로마법에 의하면 12살 이상의 여인들도 모두 납세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호적을 해야 했지만 대개는 집안의 가장이 가족을 대신해서 호적을 하러 갔기 때문에 반드시 모든 사람이 호적을 하러 갈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임신 9개월이 넘은 마리아가 요셉과 함께 베들레헴으로 갔다는 것은 이것을 하나님의 환경적 인도로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리아와 요셉이 이렇게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서 베들레헴으로 간 것과 두 사람이 미리 베들레헴으로 출발했다고 했을 때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의 마구간 탄생입니다. 만약에 마리아와 요셉이 미가서 5장 2절 말씀을 기억하고 자신들의 생각대로 베들레헴으로 미리 출발했다면 그들은 예수님의 출산을 위해 최소한 여관방을 하나 구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마구간에서 태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래 기다리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서 갔는데 방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의 신비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목자들에게 전해진 그리스도에 대한 표적이 됩니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눅 2:11-12). 구약의 사람들은 초림의 주님을 기다리면 살았지만 우리는 재림의 주님을 기다리면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묵상하며 우리의 존재와 삶으로 주님 오실 길을 예비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548 no image |목회수상| ‘다음 칸’을 주시는 하나님_서종식 목사 (19)
편집부
3067 2011-12-14
‘다음 칸’을 주시는 하나님 < 서종식 목사, 살렘교회 > “힘들고 실망스러울 수 있지만 결코 신앙의 길 포기할 수 없어” 지하철 신도림역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어떤 아저씨가 큰 가방을 들고 지하철에 올라탔습니다. 번잡한 출퇴근 시간이 아닌지라 다들 자리에 앉아서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는데, 큰 가방을 들고 탄 이 아저씨는 자리에 앉아있는 승객들을 한번 휙 둘러보고는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만 어색하게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 손잡이를 잡더니 익숙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자 ~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가 여러분 앞에 나섰습니다. 오늘 목적지까지 가시는 길에 좋은 물건 하나를 소개해 드리려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가방 안에서 뭔가 하나를 끄집어냈습니다. “자 ~ 플라스틱 머리에 솔이 달려 있습니다. 이게 무엇일까요? 네, 칫솔입니다. 얼마에 여러분에게 드릴까요? 단돈 천 원입니다. 뒤를 한번 돌려볼까요? 여기에 영어가 쓰여 있습니다. ‘Made in Korea’ 무슨 뜻이겠습니까? 수출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수출이 잘 되었을까요? 아니요, 망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에게 아주 싼값으로 드리겠습니다. 하나만 드리면 정 없으니까 두 개를 한 세트로 모시겠습니다.” 그리고는 칫솔 한 개를 더 빼들어 두개를 한 세트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또 승객들을 향해 “여러분, 제가 오늘 여러분에게 몇 개를 팔 수 있을까요? 예, 당연히 모르시죠, 저도 굉장히 궁금합니다.” 그리고는 “자 ~ 하나씩 받아 보십시오” 하며 자리에 앉아 있는 승객 모두에게 하나씩 쭉 돌렸습니다. 그리고 한 바퀴 돌아서 돌아와서는 다시 승객들을 향하여 묻습니다. “여러분, 제가 몇 개를 팔았을까요? 4개 팔았습니다. 얼마 벌었을까요? 4,000원 벌었습니다! 제가 실망했을까요? 네- 실망했습니다. 그래서 그만 둘까요? 아니요, 저는 그만두지 않습니다. 왜냐?” 그리고는 조금 망설이더니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는 “저에게는 다음 칸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인사를 꾸뻑하고 지나가더랍니다. 지하철을 탔던 승객들이 한바탕 웃고 난리가 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글을 쓴 사람은 웃으면서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를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 아저씨가 칫솔 몇 개를 팔면서도 실망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나에게는 다음 칸이 있다’고 하면서 당당하게 가는 그 뒷모습을 보면서 “아! 희망을 저버리지 않는 저 아저씨는 반드시 성공하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2011년도 참, 어렵고 힘든 일이 많은 한해였습니다. 세계가 어려웠고, 나라가 어려웠고, 교회도, 성도들도 그 어느 때 보다도 더 어려운 가운데 지나 왔습니다. 저 자신을 돌아봐도 참 힘든 일이 많은 한 해였고, 실망스러운 일이 많았던 한 해였습니다. 한 가족같이 지내며 언제나 우리 곁에 있어 줄 것 같았던 사랑하는 교우들의 죽음, 평생을 함께 믿음 안에서 동고동락할 것 같았던 교우들의 이사와 이동,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경제의 어려움 가운데 발만 동동거리며 힘들어하는 교우들의 모습,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가슴 아픈 사연들을 가지고 기도하며 하나님 앞에 나왔지만 너무나 기가 막힌 현실의 거대한 벽 앞에 다시 움츠려들고 낙심하며 하소연하는 교우들... 이런 저런 일을 겪으며 힘들어하는 교우들을 바라볼 때마다 주께서 맡겨주신 양떼를 목양하는 목사로서 나의 능력 없음과 무지함과 저들을 도울 힘이 없음을 알기에 교회 앞에나 저 자신에게조차 어렵고 힘든 실망스런 한해였습니다. 그 어느 해 보다도 실망스런 한해였습니다. 그래서 그만 둘까요? 아니요, 저는 그만 두지 않습니다. 저에게는 다시 기회를 주시고 또 다음 칸을 주시고 모든 것을 나를 위해 준비해 놓고 계신 하나님 아버지가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올해가 힘들고 실망스러웠던 것이 사실이지만 저는 절대 그만 두지 않습니다. 지하철에서 몇 개의 칫솔을 팔고도 실망하지 않고 미소를 머금으며 ‘나에게는 다음 칸이 있습니다’라며 당당하게 인사하고 사라졌던 그 아저씨처럼 저에게도 ‘다음 칸’이 있습니다. 아니 그 아저씨의 ‘다음 칸’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엄청 난 ‘다음 칸’이 있습니다. 그 ‘다음 칸’을 준비해 놓고 계신 하나님이 저에게 뿐 아니라 우리 사랑하는 교우들의 하나님이시기에 저는 안심이 됩니다. 오늘이 약간 힘들고 실망스러울 수 있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습니다. ‘다음 칸’을 예비해 놓고 계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 8:32). ‘다음 칸’을 늘 예비해 놓고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그 은혜 속에 오늘도 희망의 빛을 보며 달려갑니다. 주님, 죽도록 늘 ~ 충성하겠습니다.
547 no image |제언_주일공과 발간에 즈음하여| 우리 교단을 단단히 세워나가는 초석_정성호 목사 (2)
편집부
2956 2011-12-14
주일공과 발간에 즈음하여우리 교단을 단단히 세워나가는 초석 < 정성호 목사_ 총회교육부 서기 > “우리 교단에서 만든 교재 가지고 우리 자녀 가르치는 길 열려” 교단 30년을 맞이하기까지 우리 교단에서는 우리의 신학과 사상을 가진 주일공과(계단공과)를 만들려는 노력을 계속 해오고 있었다. 오랜 시간을 들여 커리큘럼을 작성하고 이미 여러 해 전에 총회에서 커리큘럼이 통과되었다. 이후 실력 있는 집필진을 보강하여 집필을 준비해왔다. 이렇게 하는 것은 우리 교회의 자녀들을 성경 말씀과 그 말씀에 근거하고 그 말씀에서 나오는 우리의 신학으로 양육하는 것만이 교회를 든든히 세워나가는 일이며 나아가 우리 교단을 하나로 내실 있게 세워나가는 초석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외부에서 출판한 교재나 다른 교단에서 만든 교재들을 가지고 우리의 자녀들을 가르쳐오면서 마음 한편에서는 허전한 마음이 있었음도 부인할 수 없다. 이런 노력이 이제 결실을 맺게 되었다. 1. 주일공과 발행에 대하여 2010년에 최초로 어린이 소요리와 청소년 소요리 교재를 발행하게 되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기 쉽도록 만든 교재이다. 이 교재를 가지고 어느 때에라도 일 년간 학생들에게 교리교육을 시킨다면 믿음의 뼈대를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올해에 이르러 드디어 성경을 중심으로 하는 주일공과를 발행하게 되었다. 유초등부 학생들을 위한 교재는 ‘어메이징 스토리’(Amazing Story) 시리즈로 발간된다. ‘어메이징 스토리’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하나님이 시작하시고 행하시며 완성하시는 구원의 놀라운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삼위일체 하나님과 그분의 영원한 작정, 그리고 그분의 거룩한 뜻을 알게 하여 하나님 나라에 속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헌신하는 자녀들이 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진행되는 공과이기 때문이다. 중고등부 학생들을 위한 교재는 ‘인투 더 바이블’(Into the Bible) 시리즈로 발간된다. 세상 문화에 젖어 사는 학생들이 하나님 말씀 속으로 들어가 세상을 인도해 가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해하고, 말씀으로 무장하여 흔들림 없는 믿음으로 세상을 살아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발간될 것이다. 그런 목적 아래 주일학교 교재를 계속 발간할 예정이다. 총회교육부에서 발간한 책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드러내고자 하였다. 성경이 말하는 본래의 뜻을 따라 성경의 핵심을 드러낸 교재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주일학교 학생들에게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경영하심을 알게 하고자 하였다. 나아가 이 교재를 배움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헌신하는 학생들로 자라갈 수 있게 하였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뿐 아니라 배운 말씀을 실생활에 연계하도록 하였다. 피상적인 적용이 아닌 성경의 중심에서 나오는 내용을 적용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발행 목적 아래 주일학교 공과 시리즈는 시간이 지나갈수록 더욱 내실 있고 효과적인 교재로 만들어질 것을 확신한다. 계속해서 발간될 교재를 기대해주시고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져 주시기 바란다. 우리 교단의 자녀들이 우리가 만든 교재를 통하여 성경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며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배워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지게 될 것이다. 이번에 발행된 교재는 3개월 분량(13주)으로 되어 있다. 유초등부 공과는 예수님의 사역과 민수기로 구성되어 있다.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 학생들이 예수님이 하신 구원의 역사를 이해하여 구원에 이르는 믿음에 이르기를 바란다. 민수기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로 훈련받아 주의 나라를 세우는데 쓰임을 받게 될 것이다. 중고등부는 빌립보서, 빌레몬서, 에스라, 느헤미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 속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시고 이루어가시는 은혜의 역사를 경험하고 주님의 사람으로 무너져 가는 하나님의 나라를 다시 세우는 사람들로 세워지기를 소원한다. 2. 구역공과에 대하여 이와 더불어 총회교육부에서는 성도들을 위한 구역공과인 ‘거룩, 하나님의 열망’을 발행하였다. 이번에는 기존 구역공과 스타일을 많이 탈피하기 위해 신선한 시도를 하였다. 첫째, 레위기 구역공과라는 제목을 붙이지 않고 레위기 전체의 큰 주제를 정하여 ‘거룩, 하나님의 열망’이라고 정하였다.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며 구역공부를 하도록 한 것이다. 둘째, 서론격인 ‘들어가는 말’은 호기심을 가지고 성경 속으로 들어가 공부하도록 배려하였다. 셋째, 한 단락 본문해석을 한 후 곧바로 성경 이해에 대한 질문을 두어 성경을 이해하고 다음 단락으로 나아가도록 하였다. 넷째, 마지막에는 적용질문을 두어 성경을 이해한 후 삶에 적용하도록 하였다. 새로운 구성으로 발간한 레위기 성경공부 교재 ‘거룩, 하나님의 열망’을 통해 전국 교회 구역식구들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열망을 깨닫고 거룩한 성도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546 no image |목회단상| 서울대학교가 다가 아니다_김수흥 목사 (1)
편집부
3013 2011-12-14
서울대학교가 다가 아니다 < 김수흥 목사 · 합신 초빙교수 > “자녀들에게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재능 살펴 대학 선택하게 해야” 얼마 전 서울대 출신 몇 명이 모였다. 과(科) 동창회를 위한 모임이었다. 이들은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서 대학교수(박사학위소지자들), 국가고급공무원, 대 기업에서 종사하다가 은퇴한 엘리트들이었다. 동창회 모임 며칠 전 어느 18세의 고등하교 학생이 자기에게 공부를 하라고 꾸중하던 어머니(51세)를 살해하고 8개월 간 시체 매장을 유기하다가 결국 지난 11월 24일(2011년) 발각된 어느 학생 이야기를 꺼냈다. 자기 아이가 전교 1등을 하기를 주문했고 반드시 서울대학교에 들어가라는 뜻으로 방안의 벽면에는 ‘서울대학교’라는 큰 글자를 써놓고 학생을 볶았던 어머니 이야기와 그에 항거하여 어머니를 살해한 학생 이야기를 꺼냈다. 동창 일동은 “서울대학교를 나와도 별 것 아닌데...”라고 뇌까렸다. 그리고 일동은 “그렇다고 어머니를 살해하는 패륜의 시대도 크게 문제라”고 말했다. 이런 일이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것을 본 우리는 참담함을 금할 길이 없었다. 그런고로 몇 마디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첫째, 학부모들은 자녀들이 서울 대학교를 나와도 별거 아니라는 것을 철저히 알아야 할 것이다. 아니 우리의 뼈 속까지 철저히 알아야 할 것이다. 사실은 며칠 전에 만났던 서울대 동창들도 과거에는 서울대학교가 아니면 시시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기를 쓰고 서울대학교에 입학하여 졸업을 한 것이다. 그러나 세월을 지나 은퇴하고 보니 서울대학교를 졸업해도 별게 아니라는 것을 철저하게 깨달았다(전 1:2).학부모들은 자녀들이 서울대학교를 들어가도 별게 아니고 졸업해도 별게 아니라는 것을 철저히 알아야 할 것이다. 둘째, 이 사회는 능력 위주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앞으로 더욱 능력 위주의 사회가 될 것을 알고 자녀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재능을 살펴 대학을 선택하게 해야 할 것이다. 공연히 재질도 맞지 않는 명문대학교에 입학하느라 고생하고 또 졸업할 때까지 억지 공부하느라 고생할 필요가 있겠는가? 셋째, 능력을 길러주는 것 이상으로 더 중요한 것이 있으니 그것은 예수님을 주(主)님으로 믿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공부하게 하고 기도하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다 강조할 수 없는 사안이다. 유대인들은 가정에서나 학교에서 구약 성경공부를 얼마나 많이 시키는지 모른다. 학교에서의 오전 공부는 성경공부이고 오후에는 다른 과목을 공부한다. 하나님 말씀은 학생들의 마음과 머리를 완전히 주장하여 결국 그들은 세계적으로 힘있는 사람들이 되었고 또 앞으로도 그렇게 될 것이다. 유대인들은 미국 경제를 주장하게 되었고 세계 경제를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노벨상 수상자들이 가장 많은 민족이 되었다. 우리의 서울대학교 출신들 중에 누가 노벨상을 받았는가? 우리는 자녀들에게 성경공부를 많이 시켜야 할 것이다. 다른 과외 공부들은 거의 무의미한 것으로 알아야 한다. 필자는 이 중요성을 일찍이 알아서 세 아이로 하여금 15세가 되기 전 신구약 성경을 10회씩 읽히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10회씩 다 읽지는 못했다). 그들은 지금 모두 하나님의 일꾼들이 되어 수고하고 있다. 그리고 손자 손녀들도 신구약 성경을 읽히고 공부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게 하고 있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쓸모 있는 공부를 시켜야 하고 승리하게 만들어주어야 한다. 말로만 글로벌(global) 시대라고 하면서 세계에 내놓을 것이 무엇이 있는가? 아이들로 하여금 성경말씀으로 무장하게 하고 기도하는 사람이 되게 해서 세계에서 머리가 될지언정 꼬리가 되지 않는 자녀들이 되게 해야 할 것이다(신 28:1-14). 우리는 서울대학교를 나와야 우두머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성경말씀으로 무장해야 우두머리가 될 수 있음을 알자. 넷째, 오늘 우리 자녀들로 하여금 일찍부터 성경을 공부하게 하고 기도하는 사람이 되게 한다면 아이들의 윤리와 도덕도 놀랍게 올라갈 것이다. 부모를 공경하고 윗사람을 존경하기에 이르며 사회에서 건전한 인재들이 될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젊은 세대들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지하철에서나 대중교통에서 어른들을 몰라보는 패륜아가 되어 가고 있고 20대의 생계형 도둑이 늘고 있으며 30대의 방랑아가 늘고 있고 자살하는 인구도 증가하는 추세다. 이것은 우리 사회에 그리스도를 주(主)님으로 믿는 젊은이들이 턱없이 적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아이들로 하여금 성경을 많이 공부하게 하고 기도하는 사람이 되게 해서 세계에 우뚝 선 사람들이 되게 해야 할 것이다. 결코 명문대학병(病)에 사로잡히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께 사로잡히게 해서 복된 자녀들이 되게 해야 할 것이다.
545 no image |선교단상(21)| 나를 위해 기도하라_이기종 총무
편집부
3809 2011-12-14
나를 위해 기도하라 < 이기종 목사 · 합신세계선교회총무 > “선교의 명제 앞에서는 모두 ‘선교사적 삶’ 살아야 근래에 와서 신임 선교사들이 파송 예배를 드리고 선교지로 출발하는 일이 이어지고 있다. 금년 4월 이후로 신임 선교사 파송이 한동안 뜸했는데 그 이유는 허입심사 받으랴, 선교훈련과 영어훈련을 받으랴, 후원할 교회를 찾으랴 이런저런 준비를 하느라 어느 정도의 기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필요한 모든 과정을 마치고 한 가정씩 출국하게 되는데, 파송식에서 느끼게 되는 남다른 감회들이 있다. 물론 한 가정이 선교지에 복음 전하는 일을 위하여 파송되니 선교사나 파송교회에 축하하고 감사할 일이다. 그럼에도 그들을 면담하고 지도하는 과정 중에 쓴소리를 하기도 하고, 번거로워 보이는 절차들을 요구하기도 했으니 어찌 감회가 없으랴. 최근에는 영어 과목 필기시험을 치르기도 했으니 맘속으로 미웠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파송장을 받아든 그들과 아무것도 모르며 철없이 뒹구는 자녀들을 바라보노라면 어느새 부모와 형제 같은 애틋한 마음이 든다. 장차 겪게 될 선교지 환경과 삶들을 생각하면 안쓰러운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나름대로 준비되고 훈련됐다고는 하지만 신임 선교사는 아직은 연약한 부분이 많다. 그래서 그들을 위해 많이 기도해 주어야 한다. 위대한 선교사인 사도 바울은 서신서 여러 곳에서 “나(우리)를 위해 기도하라”고 요청했다(엡 6:19; 골 4:3; 살전 5:25; 살후 3:1). 선교지는 마귀의 공격이 더 심하기 때문에 선교사들을 위해 기도해 주어야 한다. 사탄은 어떻게든지 선교사를 넘어뜨려서 자기 영역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사탄의 최상의 전략이다. 건강, 물질 사용, 성적 유혹, 자녀 교육 문제 등으로 공격을 거듭한다. 건강 때문에 고통받는 선교사들이 많은 이유를 알 만하다. 선교사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듯 그렇게 엄청나게 헌신되고 항상 충성스럽기만 한 것이 아니며, 모두가 영웅은 더더욱 아니다. 너무 과대평가 받는 것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사도 바울은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라고 말했다(엡 3:8). 그렇다면 우리의 강함은 어디서 올 수 있을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만 강해질 수 있다. 십자가의 보혈로 구속받은 자만이 알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그 은혜 가운데서 살아야 한다. 그래야만 복음을 증언할 수 있고, 충성된 다른 사람을 세워 나갈 수 있을 것이다(딤후 2:1,2). 과외 학생모집하는 광고지에 보니 공부를 잘하려면 목표, 열정,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신앙생활도 잘하려면 목표가 예수 그리스도이고, 열정이 있어야 기쁨, 헌신, 충성이 있으며, 자신감이 있어야 담대함이 나온다. 파송식은 그들을 그저 먼 선교지로 보내는 행사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동역자’로서의 시작을 다짐하는 데 의미가 있다. 이 세상의 ‘동업자’(同業者)는 이익이 없으면 갈라서겠지만 ‘동역자’(同役者)는 같은 사명을 가지고 함께 가는 사람이다. “큰 교회에는 선교위원회나 선교부가 있으니 거기서 알아서 하겠지”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한 생각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동역자이다(고전 3:9). 흔히 ‘보내는 선교사’와 ‘가는 선교사’라고 구분하여 말하면서 보내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하지만, 적절한 표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는 선교의 지상명령을 받은 제자들이기 때문에 선교라는 명제 앞에서는 보내는 자와 가는 자를 구분할 것 없이 우리 모두가 ‘선교사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즉, 우리 모두는 주님의 제자요, 선교사라고 할 수 있다.
544 no image |제언| ‘예장고신’과의 합동 논의에 즈음하여_임형택 목사 (123)
편집부
4444 2011-11-15
‘예장고신’과의 합동 논의에 즈음하여 < 임형택 목사, 숭신교회 > “3대 이념을 교단 정체성으로 받는 교단과 통합 논의해야” 지난 96회 총회 중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친선사절단이 다녀갔다. 총회 마지막 날에는 서기가 그들이 주고 간 예장고신과 우리 교단과의 합동 제안에 관한 공문을 읽었고, 총회는 이를 접수하여 총회치리협력위원회(위원장 장상래 목사)에 보내기로 가결했다. 그에 따라 총회 치리협력위원회는 10월 5일 예장고신과의 ‘합동추진위원회’를 구성키로 하고 권태진 총회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위원회를 구성했다. 기독교개혁신보의 기사를 읽고 합동이 기정 사실화된 것처럼 보여 이에 의견을 개진코자 한다. 교회의 하나 됨을 고려할 때 신학적 동질성을 공유한 교단들이 연합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리 여겨진다. 예장고신 교단이 우리 교단에 합동을 제안해 온 것도 그런 점에서 당위성이 있다. 우리 교단도 헌법에 근거하여 그 제안을 접수한 것 역시 정당하다. 그러나 두 교단의 합동 추진의 이유가 그것뿐인지는 살펴보아야 한다. 신학적 동질성을 이유로 하는 교세 확장이 두 교단의 합동 추진의 주목적은 아닌지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장고신의 오랜 숙원사업 중 하나가 서울과 수도권에서 교세를 확장하는 것이라는 사실은 오래 전부터 알려진 사실이다. 예장고신 신대원을 천안으로 옮긴 것도 그런 목적의 일환이 아니었던가? 교세 확장을 통해서 무엇을 얻겠다는 것인지 분명치 않지만 우리 교단에도 교세 확장에 깊은 관심이 있는 분들이 있다. 개혁신학이라는 동질성은 그분들에게 더 없이 좋은 명분일 것이다. 만일 명분처럼 신학적인 동질성이 유일할 목적이라면 예장고신이나 합신은 왜 예장합동과는 합동을 추진하지 않는가? 왜 예장개혁과는 합동을 추진하지 않는가? 교세 확장이 감춰진 속내라면 그것은 위험한 동거가 될 것이다. 그 동거로 얼마나 많은 정치적인 암투와 분쟁을 겪어야 할 것인지 고려해야 할 것이다. 80년대 예장합동의 총신과 그 교단에서 겪었던 아픔을 또 다시 되풀이하지 않겠는가? 본 교단과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의 출발은 예장합동과의 신학적 이질감 때문이 아니었다. 금번에 교단역사편찬위원회에서 출간한 ‘합신 30년’이 밝히고 있는 것처럼 총신의 도덕적 해이와 그 교단의 지역 간 대립에서 비롯됐다.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교수들은 교수들대로 그에 대한 의사를 표출한 결과였다. 그래서 우리 교단이나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는 ‘바른신학, 바른교회, 바른생활’을 이념으로 내 걸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바른신학, 바른교회, 바른생활’은 우리 교단과 신학교의 정체성이 됐다. 예장고신과 합동했을 때 이런 정신을 유지하고, 계승하고, 발전시킬 수 있겠는가? 고신 교단이 그들의 정체성을 포기하고 우리의 이념을 합동된 교단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이겠는가? 만일 받아들이지 않는데도 합동을 추진한다면 정치적 야합이 되기 십상이다. 정서적인 교감도 없고, 내면적 동질성이 없는 동거가 얼마나 오래 가겠는가? 이것 역시 합동을 추진하기 전에 고려해야 할 것이다. 두 교단을 합하는 것만이 유일한 연합이며, 대안이겠는가? 양 교단의 신학교 교수와 학생의 교환과, 강단의 교류와 선교사역의 공유나 대사회 사역의 공유를 통해서도 연합할 수 있다. 두 교단의 합동에 비하면 이것은 지극히 작은 일이다. 두 교단의 합동에서 앞서 이와 같은 교류가 선행된다면 정체성의 교류와 공감이 가능해질 것이다. 외적인 합동이전에 내면적인 합동이 가능해질 것이다. 두 교단의 합동을 그때 추진해도 되지 않겠는가? 기독교개혁신보에서 보도한 ‘합동추진위원회’ 명칭은 두 교단의 합동이 이미 결정된 사항이고, 무조건 합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때문에 각 노회의 의견이나 합동에 신중론을 펴거나 반대론을 펴는 이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은 이상해 보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합동추진위원회’는 합동을 찬성하는 분들과 다른 뜻을 가진 교회와 목사들과 장로들의 의사에도 귀를 기울여 주기를 바란다. 교세 확장을 추구하기 이전에 우리 교단의 화평을 항상 우선해야 할 것이며 ‘합동추진위원회’가 이 점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음을 우리 모두에게 보여줌으로써 신뢰를 쌓아가기를 바란다.
543 no image |초대시| 고비 사막에서_박종찬 청년 (21)
편집부
3433 2011-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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