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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2 no image |신앙수상| 두려움 가운데에서도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근거_조영대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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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31 2009-12-29
두려움 가운데에서도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근거 “이 땅에서의 삶은 전부가 아닌 나그네의 삶일 뿐” 지난 해는 신종인플루엔자로 인해 세상이 떠들썩 했다. 이로 인해 죽음에 대 한 공포와 삶에 대한 애착이 그 어느 때 보다도 심해진 것 같다. 삶에 대한 애착 갈수록 강열해져 죄로 인해 이 땅에 사망이 들어오고 저주로 인해 가난과 질병과 불행과 환란 이 왔지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저주의 끈이 끊어지고 예수 안에서 새 로운 피조물로 다시 태어났음을 우리는 믿는다. 그러나 죄로 인해 세상의 지배를 받고 있는 육의 몸을 입은 우리들에게 죄 와 질병과 공포와 가난과 불행과 환란에서 이미 벗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마귀 의 속임수에서 벗어나지 못해 괴로워하는 성도들이 많다고 생각된다.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 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 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골 2:15)는 말씀처럼 하나님은 이미 마귀를 무장 해제시키셨다. 그들은 겁만 주지 우리를 건드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우리가 마귀 앞에서 두려움을 가질 때 더 두렵게 되지만 반대로 마귀를 물리 칠 때 그들은 도망친다는 것이다. 이 마귀는 우리가 마음으로 허용하는 만 큼 우리에게 역사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분명히 우리 위해 십자가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이미 해 방 되었다. “너는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 하지 아니 하리로다 천 명 이 네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 하리로다 오직 너는 똑똑히 보리니 악인들의 보응을 네가 보리로다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를 너의 거처로 삼았으 므로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그 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 라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 다”(시 91:5-12)라고 시편은 선포하고 있다. r 우리는 어려운 문제들을 만나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들이 있다. 여러 가지 다양한 문제들을 놓고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해서 믿음으로 기도하며 해결되기를 기도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과거에 예수님 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가난과 질병과 저주와 죽음과 고난과 질고 를 해결하셨음을 믿고 있다. 우리는 바로 그 십자가 사건을 근거로 해서 믿 음으로 기도하여 해결함을 받는다. 그러나 우리는 즉각적인 문제 해결을 원 하고 있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한 지역을 지나가시다가 잎사귀만 무성하고 열매 없 는 무화과나무를 보고 저주한 사건이 있다. 저주하신 그 즉시 말라 죽지는 않았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미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그 순간 잎은 무성했 을지 모르지만 뿌리는 죽어 서서히 줄기를 통해 잎사귀로 올라오고 있었으 며 그 다음날 말라죽었음을 모두가 눈으로 확인하였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기도하고 나서 이미 받은 줄로 믿으라 고 말씀하시며 의심하는 자는 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문제 해결 의 근본 되신 말씀을 붙잡기보다는 지금 현재의 상태 만을 바라봄으로 믿고 기다리지 못하여 의심하게 되고 문제를 해결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 믿음의 근거는 말씀이다. 근본 문제는 기도하므로 이미 해결된 것이며 그 결과는 믿음의 산물로 즉각적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천천히 나타나게 되 는 경우도 많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나 또한 이 말씀을 깨닫기 전에는 하나 님의 응답을 의심하게 되고 실컷 기도해놓고 아무런 변함이 없는 현상들만 바라보며 의심하게 되고 결국 얻지 못하는 믿음 없는 행동으로 일관 되었던 것을 고백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우리가 기도할 때 에 일정 시간이 지나고 나면 분명히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셨음을 알게 하시 는 경우도 많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육체의 문제들은 이미 예수님의 십자가 로 극복되었음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주변에 있는 많은 어려 움 가운데 있는 자들을 보면서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많다. 소망 없는 불신자들처럼 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가끔씩 가족들을 생각하면서 “어느 누구가 먼저 이 세상을 떠난다면 나는 어떻게 반응하게 될까?” 상상해 보 기도 한다. 에스겔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 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에게 이스라엘의 심판을 예언하게 하시면서 엄청난 일을 명령하심을 보게 된다. “인자야 내가 네 눈에 기뻐하는 것을 한 번 쳐서 빼앗으리니 너는 슬퍼하거 나 울거나 눈물을 흘리거나 하지 말며” 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의 아내를 죽게 하시고 그 죽음을 통해서까지도 예언의 도구로 사용하 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만약 이 땅의 삶이 끝이라면 얼마나 무자비한 일이 되겠는가? 그러나 분명 히 성경은 이 땅에서의 삶이 전부가 아닌 나그네의 삶이라고 말하고 있다. 천국 가는 시험무대인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닮아 가도록 훈련하는 장 소에 불과한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죽음의 두려움 도 질병도 가난도 어떠한 문제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땅의 삶은 천국가는 시험무대 모든 것을 극복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담대하게 믿고 기도하며 나갈 때 우 리가 육을 입고 있는 동안에는 그 현상들이 존재할지 모르지만 이미 그 뿌리 는 말랐음을 확신하게 될 것이다.
481 no image |목회수상| 안식년을 마치고 새해를 맞이하며_김수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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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53 2009-12-29
안식년을 마치고 새해를 맞이하며 "목회자의 소망은 성도들이 행복해 하는 것" 저는 지난 일 년 동안 안식년을 가졌습니다. 건강에 어려움이 있어서 건강 회복을 위해서, 그리고 재충전을 위해서 안식년을 가졌습니다. 동시에 저 스 스로 저 자신과 목회를 되돌아 볼 기회를 가졌습니다. 목사 부재 중 최선 다한 성도들 제가 없는 동안 성도들이 자기의 자리를 열심히 지켜주었습니다. 교회 역사 가 짧아서 교회에는 어른들이 별로 없어서 젊은 안수집사들이 큰 짐을 맡아 서 수고하였습니다. 목사가 교회에 신경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자기들끼 리 아름아름 교회를 운영하였습니다. 미국에 있는 동안 교회는 잘 운영이 되었고 오히려 성도들도 늘었습니다. 이 정도면 제가 없는 부재의 공백을 잘 메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역자들 도 자기들의 몫을 열심히 했습니다. 눈을 반짝거리며 긴장해서 일을 했습니 다. 모든 것이 큰 문제가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돌아와서 2주일쯤 되니 여기저기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들려왔습니 다. 마치 엄마 아빠가 장기간 출타한 동안 자식들이 가정을 꾸려나가기 위해 서 수고를 많이 했지만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것과 같았습니다. 부모가 같 이 있어서 투정도 부리고 응석도 부려야 하는데 그것을 부릴 데가 없었습니 다. 부모의 부재는 생각보다 컸습니다. 긴장한 동안에는 잘 몰랐지만 긴장이 풀 리면서 쌓였던 사연들을 내놓기 시작한 셈입니다. 저는 한 편으로 감사하기 도 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안쓰럽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때론 불평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이 이야기의 핵심은 한 가지 입니다. "나를 돌봐주세요!"입니다. 다른 표현을 쓰자면 "나를 좀 안아주세 요. 힘들어요"입니다. 2009년 한 해는 경제적인 압박이 심했습니다. 자영업을 하는 가정들은 아직 도 힘이 부치고 있습니다. 월급쟁이들도 긴장하며 지냈습니다. 모두에게 쉽 지 않은 한 해였습니다. 경제적인 압박, 관계의 어려움, 자식 교육에 대한 피곤함, 다른 사람을 돌봐야 하는 스트레스, 교회 일 을 해야 하는 사명감 등 등. 지도자일수록 더 힘이 들었습니다. 이제 제가 돌보아야 할 차례가 되었 습니다. 가만히 생각하니 저 때문에 교회가 지난 3년 동안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2007년에는 예배당을 건축해서 입당했습니다. 모두가 한 맘으로 수고했습니 다. 2008년에는 간에 암이 발견되어서 저도 어려웠고, 교회도 어려웠습니 다. 믿음으로 기도하고 주님의 평안을 찾는 계기가 되었지만 교회의 에너지 가 밖을 향해서 나가지 못했습니다. 서로 위로를 했지만, 저 자신은 정작 영 적인 자녀들을 깊이 돌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2009년에는 제가 밖에 나가 있었습니다. 제 자녀들을 또 다시 깊이 돌보지 못했습니다. 영적인 부모, 지도자, 목자라고 불리는 목사의 부재는 생각보다 컸습니다. 그래서 2010년에는 무엇을 해야 저들이 만족과 평안을 다시 회복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담임목사의 위치가 이렇게 중요 한 것임을 새삼 깨닫고 있습니다. 같이 있을 때는 몰랐는데 건강을 여의치 않으면서 떨어져 있다 보니 가슴 깊숙이 느껴졌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가슴속에 와 닿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이 사도로서 마땅히 n권위를 주장할 수 있으나, 도리어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살전 2:7, 개역개정). 목사가 아비처럼 자기 자녀를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는 때가 있습니다(살 전 2:11). 그러나 동시에 젖을 먹이는 어머니처럼 따뜻하고 온유한 마음으 로 안아주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아비처럼만 하면 딱딱하고, 어미처럼만 하 면 너무 부드럽습니다. 두 가지가 같이 가야하지만 지금 저의 목회 현장은 부드러운 어미의 역할이 많이 필요한 때입니다. 상처를 보듬어주어야 할 때 입니다. 지친 영혼을 붙잡아주어야 할 때입니다. 감히 내가 이것을 다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주 님으로부터 받은 사랑과 위로가 없으면 도저히 할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저 도 질그릇 같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고후 4:16). 그래서 저는 목사란 '위험 한 위로자'라는 명칭으로 부르고 싶습니다. 위기의 때에 남을 위로하지만, 자기의 위로로 위로하면 자기가 위험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위로로 위로하면 위험을 바꾸어 복을 나누어주기 때문입니다(고후 1:4) . 그 들에게 충분한 위로 베풀기로 2010년에는 나의 성도들에게 큰 위로와 격려를 주고 싶습니다. 그들이 행복 해하는 것이 저의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480 no image |목회수상| 어떤 목사의 잠깐 스친 고뇌_김근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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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25 2009-12-17
어떤 목사의 잠깐 스친 고뇌 ‘전체 성경’ 안에서 ‘오직 성경으로’ 해석해야 김성수 교수님이 합신에서 ‘구약개요’를 강의할 때 일이다. 강의 도중에 어떤 학생이 질문을 던졌다. “교수님은 성경을 하나님 나라나 혹은 언약의 관점에서 해석합니까?” 성경 해석 관점에 대해 질문해 김성수 교수님은 잠시 침묵하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성경에서 말하는 대 로 해석합니다.” 이때는 누구나 할 것 없이 학생들은 ‘김성수 교수님은 성 경신학적으로 성경을 해석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지 금에 와서 김성수 교수님의 책을 보면 우리가 말하는 소위 성경신학과 조직 신학이 함께 섞여 있다. 우리들 중 대부분은 자신이 성경을 성경신학과 조직신학 중 하나를 선호하 여 해석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성경신학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조직신학적 해석을 멀리하고, 반대로 조직신학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성경신학 적 해석을 멀리한다. 물론 거기에는 나름대로 적합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름 의 적합한 이유는 사실 적합하지 않다. 이 두 가지 해석에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 그것은 성경을 성경 안에서 논리 와 사실(진리)을 가지고 조직한다는 것이다. 성경을 문맥에 따라 혹은 일정 한 구절을 연결하여 해석할 때라도 다른 부분의 성경으로 도움을 받아야 한 다. 왜냐하면 그 문맥이나 지정한 구절에서만 논리와 사실을 조직하는데 턱 없이 부족하여 오류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반면에 단지 성경의 한 구절만을 가지고 논리와 사실을 조직할지라도 앞뒤 문맥을 배제하고 해석할 수 없다. 왜냐하면 문맥에 맞지 않는 매우 엉뚱한 해석을 자의적으로 해석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은 ‘전체 성 경’ 안에서 그리고 ‘오직 성경으로’ 해석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성경을 해석할 때 전체 성경 안에서 논리와 사실을 통해 읽기 쉽고, 보기 쉽고, 알기 쉬운 해석을 내놓았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 아닐까. 단 지 어떤 사람은 소위 성경신학적으로 좀더 표현했을 뿐이고, 어떤 사람은 소 위 조직신학적으로 좀더 표현했을 뿐이다. 이 런 점에서 김성수 교수님의 답변이 더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김 교수님은 ‘이것이다, 저것이다’라고 나누지 않았다. 단지 성경을 드러낸 것뿐이다. 성경의 메시지에 초점 맞춰야 성경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구원의 약속을 그의 백성들에게 보여주신 계시 이다. 이런 점에서 성경을 대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관점으로 성경을 해석하 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성경이 말하고 있는 그 사실을 떠나면 그 어떤 관점도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479 no image |목회수상| 튤립과 칼빈주의 _손성은 목사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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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7 2009-12-02
튤립과 칼빈주의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 과정 튤립 속에 담겨 있어” 작년 추수감사절에 이어 금년 추수감사절에도 튤립을 구입해서 교우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 빨간색깔과 노란색깔의 꽃이 필 튤립구근을 두 개씩 봉투 에 넣고 또한 ‘튤립 잘 심는 법’이라는 글도 함께 넣었습니다. 튤립 구근 교인들에게 나눠줘 무언가 나눠주면 기쁘고 또한 무언가 공으로 받으면 기분이 좋은게 사람인 것 같습니다. 이번 주일에까지 튤립 몇 개 얻을 수 없느냐고 여쭤오는 분들 이 계십니다. 추수감사주일 때 피치 못할 일로 참석치 못하였다면서 말이지 요. 이럴 경우도 있을 것이라 싶어서 여분의 것들을 남겨두었다가 잘 심으 라 면서 나눠주었습니다. 지난 해에는 50만원으로 800개를 구입했는데 금년에는 구입하는 요령도 생 겨 서 50만원에 1250개를 구입하였습니다. 더 많은 교인들이 튤립을 심고 겨우 내 땅 속 혹은 화분의 흙 속에 숨어 있다가 봄이 되면 싹이 트고 부활절쯤 활짝 피어오르는 꽃들을 보면서 즐거워할 것을 생각하니 벌써 그 꽃을 본듯 마음이 두근거립니다. “거금 50만원씩이나 털어서 왠 튤립을?” 하시는 분들이 계시겠지요. 튤립 구근을 나눠주고 심자고 하는 것은 그 예쁜 꽃을 보자는 뜻만 있는 것이 아 닙니다. 꽃을 키우기까지 정성으로 주님의 창조세계를 감상하며 감사하자는 뜻도 있고, 실은 더 중요한 신학적 의미가 있습니다. 이 신학적 의미를 어떻게 목회적으로 강조할까 고심하다가 결행하게 된 셈 이 지요. 바로 ‘튤립’이란 말 자체가 그 유명한 칼빈주의 5대교리를 상징하 는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튤립이란 말의 T-U-L-I-P라는 글자 속에는 다섯 개 의 중요한 칼빈주의, 즉 개혁주의신앙의 원리가 담겨 있습니다. T-Total Depravity(전적 타락), U-Unconditional Election(무조건적 선택), L-Limited Redemption(제한적 구속), I-Irresistable Grace(저항할 수 없는 은혜), P-Perseverance of the Saints(성도의 견인), 이 다섯 개의 신앙원 리 를 조금은 부드럽게, 조금은 인상적으로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튤립 r 구근을 나눠주고 함께 심으면서 이 신앙의 요목들을 음미하자는 뜻입니다. 이 다섯 개의 교리가 영어로만 아니라 한글로도 새겨지면 얼마나 좋을까 고 심하다가 그 첫말들을 모아서 전적 타락의 ‘전’, 무조건적 선택의 ‘무’, 제한적 구속의 ‘제’, 저항할 수 없는 은혜의 ‘저’, 성도의 견 인 의 ‘성’을 모아서 ‘전무제저성’이란 말이 나옵니다만 ‘튤립’이란 말 처 럼 쏘옥 들어오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이 말들을 넣어서 문장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튤립은 전무후무한 제일의 저력있는 성도의 신앙원리입니다.” 이 문장 속에 바로 ‘전무제저 성’이란 첫글자들이 들어가 있습니다. “튤립은 전무후무한 제일의 저력있는 성도의 신앙원리입니다”라는 이 문 장 을 기억하면서 튤립을 떠오르게 된다면 튤립으로 상징되는 칼빈주의 5대교 리 가 연상될 법도 합니다. 왜 이렇게 튤립교리를 강조하려는 것일까요? 바로 이 다섯 개의 교리는 한 마디로 압축해서 ‘은혜’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 다. 이 다섯 개 교리의 첫 번째와 마지막은 인간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전적 타락’ 교리는 인 간이 스스로는 자신을 구원할 수 없을 정 도로 타락해 있음을 강조합니다. 그러한 인간이 영원한 복락과 천국에 이를 수 있도록 성도로 삼으시고 그 성도를 끝까지 참고 인내하셔서, 즉 ‘견 인’ 하신다는 것이 마지막 다섯 번째의 교리인 ‘성도의 견인’ 교리입니다. 이 첫 번째와 다섯 번째 교리 사이에 있는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교리 는 모두 하나님에 관한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그 타락한 인간을 구원 하시는 것에 대해서입니다. 성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선택’, 성자 하나 님의 ‘제한적 구속’, ‘성령 하나님의 저항할 수 없는 은혜’를 통해서 전 적으로 타락한 인간들이 구원함을 입어서 성도의 견인의 과정 후 천국에 이 르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고 보니 성부와 성자와 성령, 곧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원사역이 이 튤 립 교리 다섯 개의 한 가운데 있는 셈입니다. 한 마디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 혜로 구원함을 입게 되는 과정이 이 튤립 속에 담겨져 있습니다. 교회의 성 도들은 바로 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인생들입니다. 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인생들이 영원한 영광 가 운데 들어갈 것 을 소망하면서 오늘도 튤립을 화분에도 심고, 아니 내 마음 속에 심는 것입 니다. 칼빈주의 5대 교리 마음에 심기를 “튤립은 전무후무한 제일의 저력있는 성도의 신앙원리입니다.” 튤립을 심 읍시다. 바로 지금이 적기입니다.
478 no image |선교단상(4)| “MK를 아십니까?” _이기종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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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51 2009-12-02
“MK를 아십니까?” 이기종 총무, 합신세계선교회 매 학기 말이 되면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다. 날씨가 추워지고 방학이 시작되 면 선교사 자녀들(Missionary Kids)은 기숙사를 비워주고 어디론가 새 거처 를 찾아 떠나야 한다. 대부분의 대학들이 방학 때는 기숙사를 운영하지 않 기 때문이다. 방학 되면 기숙사 나와야 하는 선교사 자녀들 수년전 필자의 아들도 방학 때가 되면 결혼한 사촌 형이나 외삼촌 집, 고시 촌을 전전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친척집 신세를 지는 것이 다 큰 청년으로 서 그리 편안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물론 친척들 입장에서도 어렵기는 마찬 가지일 것이다. 방학이 쉼을 주는 것이 아니라 친척들이나 주위 사람 신세 를 지고 눈치 보는 기간이 될 수 있다. 선교사의 생활비와 사역비로 대학등록금을 마련하기도 벅차기 때문에 잠시라 도 돈을 주고 머물 장소를 찾는다는 것은 무리이다. 선교관이나 안식관이라 는 것이 더러 있지만 안식년 선교사들에게도 ‘하늘의 별 따기’이다. 선교 사들에게도 선교관을 2개월 이상 허락하는 경우는 드문 현실이다. 그러니 MK 들에게까지 차례가 돌아갈 수 없다. 대부분의 대학생 MK들은 부모들로부터 공부를 잘 해서 장학금을 받아야 한다 는협박 아닌 협박(?)을 듣는다. 뿐만 아니라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 다. 이미 부모로부터 지원을 받기 어렵다는 것을 아는 MK들이기에 자신들의 생활비는 스스로 해결한다. 어려서부터 많은 아픔 겪으며 성장해 어려서부터 거처를 여러 번 옮기고 타문화권에서 적응해야 하는 MK들에게는 많은 아픔이 있다. 여러 번 학교를 전학하면서 친구들과 이별한 경험이 있 기 때문에 친구를 깊이 사귀지 않으려고 하는 성격이 생기는가 하면, 선교 지 학교에 다니면서 외국인이라고 놀림감이 되거나 소위 ‘왕따’를 당하기 도 한다. 때로는 이슬람이나 공산주의 사상 교육을 받아야 한다. 러시아에서는 유색인 종 차별로 MK가 구타, 폭행을 당하기도 한다. 심지어 심한 정신적 장애를 겪 는 MK들도 있다. 그래서 외국인들이 세운 선교사 자녀학교나 국제학교에 가 게 되는 MK들도 있다. MK들 중 상당수는 한 국에 들어와도 서툰 한국말 때문에 애를 먹고 자기정체 성에 대한 혼란을 겪어 가면서 성장해 간다. 군에 입대해서도 한국문화, 특 히 군 문화에 적응하느라 성장통을 겪어야 하고, 휴가 나와도 찾아 갈 집이 없어 방황하기도 한다. 가장 힘들고 혼란스러울 때에 함께 해주고 따뜻하게 격려해 줄 가족이 곁에 없다는 것이 MK들의 정서적 성장에 어려움을 주고, 때때로 건강하지 못한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것은 물론 선교사들에게도 큰 아픔이 된다. 어느 선교사 부인은 아들이 입 대하던 날 아침도 못 먹고 혼자 훈련소에 들어갔을 것을 생각하며 선교지에 서 온종일 울먹이고 있었다고 한다. 울지 못하게 야단치는 남편 눈을 피해 혼자 훌쩍거리며 중얼거렸다. “나는 엄마도 아니야!” 선교사 자녀들의 아픔에 관심 기울여야 한국선교사 자녀들의 글을 모아 엮은 책, “하늘 아이들”(예영커뮤니케이 션 출판)을 읽으면서 눈물이 나 계속 읽어 내려갈 수 없어 조금씩 끊어 읽어 야 했다. ‘과부 사정 과부가 안다’고 MK들의 아픔이 가슴 깊이 져며 왔기 때문이다. 선교사들도 우리와 똑같은 부모이다. 그들도 자녀가 힘들어 할 때 가슴앓이를 해야 하는 평범한 부모들이다. 모든 것을 초월한 영웅이 아니 다. MK들의 문제를 언제까지 한국교회가 무관심할 것인지 자문해 본다. MK들의 문제는 현재 선교사들의 삶과 사역뿐만 아니라 선교의 미래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MK들은 독립성, 적응성이 매우 뛰어나고 영어와 현지어를 유창하 게 구사해 언어나 문화적 장벽 없이 선교할 수 있는 차세대 선교사요, 하나 님 나라의 보배이기 때문이다. MK에 대한 사랑과 관심 그리고 지원은 미래 선교계를 짊어 질 일꾼들을 길러내는 일인 것이다. 현재 우리 합신세계선교 회 소속 선교사는 400여명으로, MK가 336명이나 있다. MK를 미래 선교계 짊어질 일꾼으로 군 복무중인 MK에게 면회를 가거나 선물을 보내는 것도, 한국에서 학교를 다 니고 있는 MK들이 연말연시와 방학 때 마음 편히 머물 수 있는 거처를 마련 해 주는 것도, 김장김치를 나누고 된장찌개를 끓여서 같이 먹는 것도, 그리 고 그들의 아픔을 들어주고 함께 나누는 것도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 대접 하는 것’임을 기억하자.
477 no image |목회수상| 목사님들, 예수님 잘 믿으세요_박봉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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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15 2009-12-02
목사님들, 예수님 잘 믿으세요” “지도자들부터 각성하고 말씀대로 실천해야” 영락교회 원로 한경직 목사님이 남한산성 거처에서 요양 하실 때 교계 원로 및 중견 목사 몇 분이 병 문안을 갔을 때의 이야기다. 믿는다면서도 믿지 않는 사람 많아 한 목사님을 방문하여 건강에 대해 문안드리고 이런 저런 교계 안밖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 나서 한 목사님께 한 말씀을 부탁 드렸다고 한다. 한 목사님 은 잠간 생각을 하신 후에 하시는 말씀이 “목사님들, 예수님 잘 믿으세요” 라고 하셔서 그 말씀을 들은 목사님들이 매우 당황해 했다고 한다. 한경직 목사님 말씀은 한국 교회 현황을 깊이 생각하시고 하신 말씀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교회사 이래 사탄의 공격에 노출되어 있는 지상교회는 항상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문제가 있을 때마다 그 중심에서 교회 지도자들이 먼 저 각성하고 회개하며 말씀에 의지하여 바르게 행동할 때 교 회 정체성은 회 복되었다. 현재 한국교회 문제들의 해결도 지도자들이 먼저 각성하고 회개하 고 말씀대로 실천해야 할 것은 두말할 것이 없다. 2세기 때 터툴리안이 당시 이단지도자들에게 말하기를 “Credendo, Non credunt”라고 하였다. 이 말을 의역하면 이단 지도자들이 ‘믿는다고 하지 만 실제로는 믿지도 않고 실천하지도 않는다’는 말이다. 현재 목회자들 중 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는 하지만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으니까 교인들도 변하지 않고 외부에서도 기독교의 가치관을 무시할 따름이다.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가 주장한 무교회주의(기존교회의 제도를 따르지 않 는것)가 잘못되었다고 비판은 받지만 그가 주장한 ‘잘못된 교회주의’에 대 해서는 지금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건물을 우상처럼 받드는 교회, 자기 파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연합 정신을 잃어버린 교파 교회,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기독교의 기본 정신을 망각한 제 도적 교회, 굳어진 교리와 형식화된 성례전” 등이 그것이다. 그는 교회를 없애자는 것이 아니고 교회주의를 없애자는 것이다. 즉 제도로 서의 교회, 의식으로서의 교회, 껍데기만 붙잡는 교회를 개혁하고 오직 기독 교 신앙의 핵심인 예수님의 십자가의 속죄와 부활의 대업을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붙잡자는 주의이다. 목회는 예수님의 일을 계승하는 것이다. 그것은 기도와 말씀의 기초 위에 성 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수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목회자들이 성령의 인도 하심을 따르기보다 사탄의 작전인 물질욕, 명예욕, 권세욕, 이성욕에 함몰되 고 경영학과 심리학 등을 의지하여 자기 욕심과 자기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이 걱정스럽다. 개척교회를 시작하던 시절이 있었다. 힘들게 30여명이 모였는데 교회가 자립 하기 위해서는 50여명은 모여야 했기에 하나님께 투정스러운 기도를 했다. “하나님 금년 말까지 장년 50명을 주시지 않으면 목회를 그만 두겠습니 다.” 그런데 기적같이 그 해 말에 50여명이 모였다. 예배당도 아파트 주변 넓은 데로 옮기고 내부 수리도 깨끗하게 하고 나서 새 벽에 기도하기를 “하나님 이제 장년 200명을 주세요, 하나님 200명을 주세 요” 하며 또 투정스런 기도를 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너 200명 가지고 무엇 할려고 하는냐”고 물 으실 때 나는 벌떡 일어나 손 을 높이들고 잘못했다고 항복했다. 사실 나는 신학교 재학 시절부터 주님이 문제가 많은 교인 10명 만 주시면 잘 목양해 보겠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내가 목회하는 군인교회에서나 한국장 로교총연합회 목회자교육원에서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 열 사람이 잘 양육되 기를 소망한다. 얼마 전 서울의 중견 교회 목사님이 년말에 말씀하시기를 “금년에도 나는 목회를 실패한 것 같다”고 하여서 “교인이 수 백명인데 무슨 말씀이냐” 고 했더니 금년에도 제대로 된 교인을 한 명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답하는 것 이었다. 참으로 지당한 말씀이다. 교회는 어느 시대이나 사도 바울 같이 변화된 한 사람이 필요하다. 그리고 목사나 신자는 주님과의 관계성이 정상화 되어야 한다. 주님과는 거래의 관 계도 아니고, 도덕적 의무나 책임적인 이성적 관계도 아니며, 주님의 피와 생명으로 이어진 애정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교회의 많은 단체가 연합과 일치에서 연합을 먼저 주장하지만 성경적으로 말 하면 먼저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이 성령으로 일치하게 하신 것으로 연합해 야 한다. 성령의 거듭나게 하심이 우선되어야 한국 교회가 실망스러워 보이지만 최근에 의식있는 많은 목회자들이 바른신 학과 바른교회, 바른생활을 위해 힘쓰고 애쓰며 예수님을 잘 믿으려고 노력 하는 모습에서 한국교회의 미래를 바라보게 한다.
476 no image |신앙수상| 야곱의 아름다운 황혼_민경희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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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26 2009-12-02
야곱의 아름다운 황혼 첫째 날. 11월 2일 월요일 아침 9시. 송파제일교회에서 모였다. 박병식 목사님, 엄원 규 목사님 내외분, 임운택 목사님 내외분, 정판주 목사님 내외분, 한재의 목 사님 내외분, 박윤성 목사님. “기온이 갑자기 뚝 떨어져서 많이들 못 오실 것 같던데...” 서로 염려하시며 안부를 물으셨다. 김정식 목사님께서 역곡동교회 버스로 사모님과 함께 오셨다. 출발! 설악산으로! 이번 여행은 문상득 목사님께서 경친회를 섬기기로 하셨 단다. 언뜻 혼자 스치는 생각에 ‘경친회 신고 인사인가?’ 했지만 아무에게 도 묻지는 않았다. 간식 봉투를 받았다. 제주특산품인 백년초 초콜릿, 귤, 음료수, 아~! 양갱! 각종 영양갱이 있다. 양갱은 정말 추억의 간식 아니던 가. 그러면서 별것 아닌 것으로 마음이 따듯해진다더니 좋은 여행을 예감한 다는 것에 피식 웃음이 났다. 경춘고속도로를 가다가 홍천으로 들어섰다. 갑자기 겨울이다. 이 미 함박눈 이 수북이 쌓이고 눈발이 날린다. 아니? 어쩜! 저절로 탄성이 터졌다. 아이 처럼 좋아하시는 목사님들, 사모님들. 카메라를 꺼내고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으시다가 결국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었다. 웃음소리, 웃는 얼굴... 서로 서로의 모습을 보는 것으로 이미 여행은 행복했다. 가슴이 두근거릴 만큼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졌다. 마지막 단풍을 보리라 기 대했는데 노랑, 갈색, 빨강... 그 나뭇가지에, 잎에, 수북하게 쌓인 낙엽위 에 눈이 덮였다. 오묘한 색을 간단하게 말로 표현할 수는 없다. 아무튼 절경 의 단풍과 한겨울 눈꽃을 함께 보는 것은 아마도 일생에서 단 한 번뿐일지 도 모른다. 그리고 원통, 미시령을 넘어 설악으로... 눈은 점점 함박눈이 되 고 짧은 탄성조차 나오지 않는 풍광에 눈이 부시다. 문상득 목사님 내외분과 김정태 목사님을 만났다. 같이 떠난 것보다 눈 속에 서, 설악에서 그렇게 만나서 더 반가웠는지도 모른다. ‘설악 스케치.’ 상호가 멋지다. 들기름으로 무친 얌전한 나물들은 유명한 진부령 쪽의 나물집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맛있었고, 음식점과 나란히 있 는 ‘설악스케치 까페’는 까만색 나무집과 간판이 어울려서 커피 맛도 괜찮 을 성 싶었다. 권금성으로... 눈은 계속 내리고 나는 카메라도 없고 청바지에 얇은 점퍼, 편하다고 신고 온 낡은 구두는 눈 녹은 물이 스민다. 아! 남편 말에 순종할 것을. “뭐 그리 춥겠어요?” 신문을 뒤적여 날씨를 보니 서울 최저기온 2 도, 최고 9도, 그 정도쯤이야. “카메라? 무거워. 지난주 송계계곡에서 예쁜 단풍 실컷 봤는데요 뭐.” “등산화? 답답해서 싫어. 운동화? 싫어요.” 주일 저녁 10시에서야 나는 이 여행을 알았고 해야 할 일이 많아서 짐 꾸릴 시간도 없었다. 아! 나는 그 렇게 간단히 길을 떠난 것이다. 남편이 나 모르게 준비한 모자와 두꺼운 머플러를 두르며 고마움을 멋쩍은 웃음으로 때우고 케이블카를 탔다. 생전 처음이다. 이런 눈꽃을 본 것이. 와! 평생처음이다. 이런 단풍과 눈꽃을 함께 보는 것은 진짜 처음이다. 나만이 아니다. 모두들 그 말을 크게 소리 내서 했다. 재미있는 것은 대학생 으로 보이는 청년들이 눈밭에 발이 빠지고 미끄러지면서 멋진 포즈를 잡고 사진을 찍고, 웃고 큰 소리를 지른다. “와우! 내 평생 처음이다~아”. “야 ~호! 내 생애 최 고의 날이다아아~~” 잊지 말아야지. 어른들 말씀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기억하자. 2009년 11월 2일. 정상에서 만난 뜨거운 커피한 잔, 게다가 에스프레소 커피 라니...! 동해고속도로를 타고, 검푸른 바다와 거대한 파도, 하얗게 부셔지는 포말. 단풍과 눈과 바다. 오색에 있는 숙소인 그린야드에 도착. 어둠이 내리고 작 은 반짝이 등으로 장식된 동화에 나오는 것 같은 예쁜 호텔에 짐을 풀었다. 서울에서 영월로 영월에서 오색까지 눈길을 오신 윤석희 목사님을 만났다. 호텔 입구에 선채로 다시 영월로 돌아가시겠다고. “문자 메시지 그런 거 잘 못하는 사람인데, 눈이 와서 더 쓸쓸한 것 같다고... 이렇게 문자가 와 서 다시 가보려고요.” 야! 멋있다. 괜한 너스레인지 모두 안다. 사모님의 쾌유를 기도하며 속으로 흐르는 눈물이 우리 안에 있다는 걸. 얌전한 나물들과 더덕구이 멧돼지 구이. 청명한 하늘엔 보름달이 떴다. 아! 글쓰는 사람이 표현력이 부족해서 참으로 촌스럽지만 “처음이다, 이렇게 맑 은 밤하늘과 이렇게 밝고 둥근 달은.” 오후 7시 30분. 예배. 김정식 목사님 사회, 기도 정판주 목사님, 설 교 엄원규 목사님. 찬송가 405장입니다. 김정식 목사님 말씀에 머리가 잠시 사고를 못했다.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상은...도 아니고,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도 아니 고.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와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 다.” 어르신들이 힘차게 찬양을 하신다. 눈을 감고 몸을 박자에 맞춰 흔들흔들 하 시면서. 말년에는 38Kg이던 아버님은 돌아가시던 날 숨을 거두시기까지 자녀 들과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고 찬송하셨다. 군대천사가 보이신다던 시아버님 모습이 오버랩 되면서 나는 목이 메어 소리가 나오질 않는다.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거기서 우리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 찬양하리라.” “설교는 엄원규 목사님이 해주십니다. 본문은 창세기 48장 15절-20절. 제목 은 ‘야곱의 아름다운 황혼’입니다.” 아~! 무엄하게도 나는 순간 “캬! 설 교 제목 죽인다” 그런 생각을 했던 거다. 그러나 생각이랄 수도 없는 것이 그냥 번개처럼 스쳤다. “황 혼, 석양, 낙조는 해가 넘어가기 직전을 말합니다. 해가 넘어가려는 찰 나의 빨간 광채입니다.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해는 빛의 소임을 다하고 지는 순간에 사람들이 볼 수 있습니다. 넘어가는 해가 아름답게 보이듯이 나 의 황혼도 아름답게 보였으면 좋겠습니다. 야곱처럼 아름답게 보였으면 좋겠 습니다.” 설교는 이렇게 시작됐다. 야곱의 황혼은 자녀들의 복을 구하고, 하나님의 기업이 계승되기를, 자녀들 의 믿음이 계승되기를 기도했습니다. 잔잔하게 조금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그러나 우렁찬 소리로 설교는 이어졌다. 요셉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위한 기도를 하는 감동적인 장면은 설 명이 필요 없었다. 아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면서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지기를 위해 기도해야 하기에 “아들아 안다. 내가 안다” 조용히 읊조리며 안타까워하는 아들의 마음을 다독이는 아버지. 믿음의 후손인 손자를 축복하 는 할아버지. 침상머리에서 경배 드린 후 자녀들을 위한 축복기도를 마치고 열조에게로 돌 아간 야곱. 그의 험난한 인생여정을 끝내고 평안히 주께 돌아가는 야곱의 아 름다운 황혼의 모습이다. 그가 가장 아 름답게 빛나는 순간이다. 설교가 끝나고 539장 찬송. “이 몸의 소망 무엔가 우리 주 예수뿐일세. 우리 주 예수 밖에는 믿을 이 아주 없도다. 굳건한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 라.” 예배가 끝나고 기도하시는 목사님들과 사모님들을 둘러보며 찬송가 가사를 조그맣게 읽는다. “세상에 믿던 모든 것 끊어질 그날 되어도 구주의 언약 믿사와 내 소망 더욱 크리라. 바라던 천국 올라가 하나님 앞에 뵈올 때 구주 의 의를 힘입어 어엿이 앞에 서리라.” 얼마나 아름다운 찬양시인가, 얼마 나 아름답고 귀한 분들인가. 기다리시는 주님을 바라고 사시는 분들, 그분들 곁에서 같은 믿음으로 잠잠 히 따르는 고운 자태의 사모님들. 아름다운 노을을 본다. 이제껏 보지 못한 눈부신 석양을 본다. 저녁 10시. 예배가 끝나고 대구영안교회 장로님과 권사님들이 마련하신 따듯 한 마음이 가득담긴 선물 보따리를 받아들었다. 둘째 날. 한파주의보, 바람이 차다. 임석영 총회장님과 사모님께서 눈길에 오셨는데 ‘설악스케치’ 주소만 가지 고 계셔서 평택에서 안동, 안동에서 속초로 새벽 2시까지 얼어붙은 낯선 도 시를 헤매시다가 불편한 잠을 주무시고 아침에 합류하셨다. 하조대에서 심호흡도 하고, 속초 앞바다를 보면서 회도 먹고, 말린 생선도 사고, 엿도 사먹고. 바람결에 눈이 날린다. 바람결에 낙엽이 떨어진다. 하얀 눈, 노랑 눈, 빨강 눈, 갈색 눈.... 모두모두 눈꽃이 되어 떨어진다. “야곱의 아름다운 황혼....”과 경친회 귀하신 목사님들을 보면서 겨울나무 를 생각한다. 봄에 싹 티울 새잎을 위해서 우거졌던 잎을 모두 떨어뜨려 발 가벗고 서서, 떨어진 잎들은 쌓여 거름이 되고, 마른가지 위로 뻗어 하늘을 향하는 겨울나무와 목사님들이 비슷한 것 같다. 경친회가 더 풍성한 모임으로 견고하게 자리잡으면 좋겠다. 나들이 할 때마 다 버스가 가득 차서 힘있는 여행을 하면 좋겠다. 믿음의 후손들과 섬기시 는 교회와, 합신과 총회를 위해 기도하고, 세계선교 사역지를 위해 기도하시 는 귀한 분들을 섬기는 교회가 더 많아지면 좋겠다. 아! 그리고 나는 현장을 사진으로 남기는 것과는 다른 일, 정지된 추억이 아 니라 그 풍경 속에 고운 웃음과 탄성, 감사와 찬양을 담아 기록하는 일꾼으 로 한자리를 내 주셨으면 좋겠 다. 그 충만한 은혜의 자리에서 아름다운 노을 을 계속 보고 싶다.
475 no image |선교단상(3)| 선교사 파송, 포화 상태인가?_이기종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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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07 2009-11-04
선교사 파송, 포화 상태인가? "총회 선교사 후원 비중을 50%이상으로 늘려야" "우리 교단의 규모나 미자립 교회가 많은 현실을 감안한다면, 선교사 후원 및 파송이 포화 상태인데, 앞으로 선교사를 더 보낼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 을 받을 때가 있다. 대답은 자명하다. 주님의 지상명령과 교회의 사명이 선교이므로 우리는 계속 해서 선교사들을 보낼 수 있다. 아니 보낼 수 있도록 몇 가지 현안들을 점검 해 볼 필요가 있다. 이번 총회 보고 자료에 의하면, 우리 교단 800여 교회 중 242개 교회가 선교 사 후원에 참여하고 있다. 이는 전체의 약 30%로, 나머지 550여 교회는 선교 사 후원을 전혀 하고 있지 않은 셈이다. 첫 번째 가능성이 여기에 있다고 본 다. 더 많은 교회들이 선교에 동참할 기회가 있는 것이다. 선교에 참여하지 않는 교회 아직도 많아 물론 합신세계선교회(PMS) 이외의 타 교단이나 단체 소속 선교사를 후원하 는 경우도 있고, 선교사 개인계좌로 송금하는 경우도 있어 총회 보고 자료 에 나타나지 않는 교회들이 있을 것이다. 후자의 경우, 즉 합신 선교사이지만 선교사 개인계좌로 송금하는 경우는 선 교사의 도덕성, 선교 재정의 투명성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는 점에 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다. 전자의 경우, 즉 우리 교단 총회 선교사가 아닌 선교사를 후원하는 비중 역 시 아주 높다는 현실이 심각성을 가지고 있지만, 또 다른 가능성을 시사해 주고 있다. 합신 교단 A교회의 경우 150가정 이상을 후원하는, 즉 선교에 아주 열심인 대형교회인데 총회 선교회로 후원금이 입금되고 있는 총회 관련 선교사(파 송, 협력 포함)는 10여 가정이다. 반면에 B교회의 경우 120여 가정 후원 중 총회 관련 선교사는 20여 가정이며, C교회는 115 가정 후원 중 총회 관련 선 교사는 30여 가정이다. 즉, 한 교회당 100가정 이상 열정적으로 후원하고 있는 이들 세 교회를 합 해 보면 총 385가정 후원 중 총회 관련 선교사가 60여 가정이므로 약 15% 정 도에 불과하다. 총회 소속 선교사에 대한 후원 비중 너 무 낮아 이처럼 우리는 타 교단이나 타 단체 소속 선교사 후원에 열려있을 뿐만 아니 라 후하지만, 우리 교단 선교사가 타 교단 교회에서 후원 받기란 '하늘의 별 따기'만큼 힘든 현실을 고려해 봐야 할 것이다. 우리 교단 교회는 총회 선교사에 대한 후원 비중을 최소 50% 이상으로 점차 늘려가야 한다. 그렇게 하면 새로운 선교사 후보를 발굴, 지원하고 파송할 수 있다. 한편 총회 자료를 보면서 또한 의아해지는 것은 꽤나 잘 알려진 교회임에도 선교사 후원 수나 금액 면에서 너무 적은 경우이다. 우리 교단의 강점 중 하 나가 선교요 개척 정신임에 비추어 볼 때 스스로 성찰할 필요가 있다. 그런 반면 우리 교단에 열정적으로 선교하고 있는 교회들이 의외로 많은 사 실에 크게 고무된다. 몇몇 교회만 살펴보자. 가장 많은 수의 총회 선교사를 후원하고 있는 '사명의 교회'는 교회 전체 예 산의 29%를 힘써 선교비로 사용, 총 89가정 후원 중 62가정의 총회 선교사 를 후원하고 있다. 총인구 5,000명의 미전도종족을 입양해 13년째 최선을 다해 사역하고 있는 송파제일교회는 총 92가정 후원 중 52가정의 총 회 선교사를 후원하고 있다. 은평교회는 교인이면 누구나 2개의 헌금봉투를 갖는 교회로 유명하다. 즉 국 내선교 헌금봉투와 국외선교 헌금봉투인데 이에 따라 현재 160여 농어촌교회 와 108 가정의 해외선교사를 후원하고 있다. 이 중 총회선교회로 입금되는 선교사는 45가정이다. 또한 화평교회는 총 53가정 후원 중 31가정이 총회 관 련 선교사이다. 선교를 교회의 사명으로 알고 최선 다해야 지면 관계상 일일이 다 열거하지는 못했지만 이외에도 우리 교단에는 선교 를 교회의 사명으로 알고 최선을 다하는 참으로 귀한 240여 교회들이 있어 서, 교단 규모에 비해 많은 수의 선교사를 파송할 수 있었고 또한 양질의 선 교를 하는 교단으로 자부한다. 이제 한걸음 더 나아가 아직 미 참여중인 70%의 교회들이 교단 선교에 참여 하는 한편 현재 참여중인 30%, 240여 교회들이 총회 선교사 후원 비중을 50% 이상으로 늘려 간다면 우리 교단은 앞으로도 주님이 원하시는 만큼 계속 선 교사를 파송할 수 있다. 이렇게 된다면 다시 오실 주님을 사모하며 "모든 민족 주 볼 때까지" 교회 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으 리라 확신한다.
474 no image |목회수상| 뒤집어짐_서현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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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31 2009-10-21
뒤집어짐 “우리가 받은 구원의 기쁨 정당하게 반응할 줄 알아야”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포스트시즌 가을야구의 열기가 한창 뜨겁다. 경기장 은 끝물야구를 놓치지 않으려는 사람들로 연일 넘쳐난다. 경기장 분위기는 경기 시작 전부터 이미 그 열기가 달아오른다. 경기가 9회 말까지도 그 결과 를 알 수 없을 때에는 때 관중들은 손에 땀을 쥐게 되고 긴장의 수위는 높아 진다. 끝물 야구 열기 연일 뜨거워 투수가 던지는 공 하나 하나에, 타자가 휘두르는 방망이 하나 하나에 탄성 과 탄식이 교차된다. 그러다가 자신이 응원하는 팀에서 결승 끝내기 안타나 홈런이라도 나오는 날이면 난리가 난다. 한마디로 말해서 ‘뒤집어지는 것’ 이다. 펄쩍펄쩍 뛰는 사람, 옆 사람과 부둥켜 안고 좋아하는 사람, 비명을 지르는 사람 그리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다. 감동, 감격, 열광, 환호, 뒤집어짐은 비단 운동경기에서만 보는 것은 아니 다. 우리가 살 아가는 주변의 여러 얘기들 속에서 우리는 인간 승리, 인생역 전 이야기를 듣게 된다. 한동안 인터넷을 통해서 전세계 수 많은 사람들을 열광케 하고 뒤집어지게 한 이야기를 우리는 알고 있다. 영국의 ‘브리튼즈 갓 탤런트’에서 탄생시킨 별 볼 일 없었던 무명의 두 사람. 곧 ‘폴 포츠 와 수잔 보일’ 이야기이다. 많은 사람들이 저들의 동영상을 여러 번 보았다고 했고, 보고 있는데 자신 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더라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사실 진짜로 뒤집어 지는 이야기를 하자면 성경을 따라올 책이 없다. 대강 이야기한다 손으로 꼽 을 수조차 없다. 홍해를 가르고 건넌 이야기, 여리고 성 무너뜨린 이야기, 엘리야의 하늘에 서 불을 내린 이야기, 에스더에서 보는 극적인 대 반전이야기, 오병이어와 물 위를 걸은 이야기 등등 성경에 나와있는 사례를 다 언급하자면 숨이 찰 지경이다. 그 중에서도 절정의 뒤집어지는 이야기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 가에서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이야기’일 것 이다. 그러나 그것이 절정의 끝이 아니었다. 오순절(행 2장)에 임한 성령의 바람, 성령 의 불은 보잘 것 없고 별 볼일 없 었던 제자들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저들은 승리의 바람을 탔고, 이기게 하는 불에 점화되어 거역의 도성 예루살렘을 뒤집었다. 어쩌면 이 글을 일고 있을 즈음이면 각 경기장의 야간 조명등 불빛은 이미 꺼져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의 열광, 환호, 승리의 기쁨, 감격도 이미 잦아든 모습일 것이다. 야구, 축구 그리고 또 다른 이 세상에서의 승리의 기 쁨, 감격은 풀의 꽃과 같은 잠시 동안의 짧은 것이다. 그것은 곧 식어지고 잊혀지고 사라진다. 그것은 어떤 개그맨의 말마따나 ‘그까이거’ 에 불과 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 주님의 승리, 이기심(호 13:14; 고전 15:55; 골 2:15; 요 16:33; 요일 4:4; 5:4; 계 5:5)은 영원한 승리, 영원한 이김이다. 그것은 결 코 우리 안에서 잠시 기뻐하다가 사라지거나 잦아들어 버릴 그런 것이 아니 다. 그것은 우리의 존재 밑바닥에서부터 뒤집어지게 하는 그러한 승리, 이김 인 것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러한 주님의 승리에 동참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은 이 땅의 운동장에서 느끼는 승리의 기쁨보다도 못해 보이는 것 같다. 누군 가 이런 말을 한 것 이 생각난다. “그 전날 운동장에서 그토록 흥분하며 열 광, 환호하던 사람들이 다음날 주일 예배에 나와서 앉아 있는 모습은 마치 인디언 목각 인형을 갖다 놓은 것 같다”고 했다. 우리 중에 ‘이 말은 나와 는 상관없어’라고 말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믿는 우리를 위하여 어마어마한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죄사함 받음, 하나님의 자녀 됨, 의롭다 여김 받음, 구원 받음 등등. 그러나 자칫 우리 신앙생활의 햇수가 오래 되다 보면 처음의 그 감격이나 기쁨은 다 사그 라지고 그 대신에 익숙함, 친숙함의 겉모습만 가지고 차지도 덥지도 않은 미 지근한 모습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우리 주님께서도 ‘장터에서 노는 아이들’(마 11:16,17) 비유를 통해서 당 시의 사람들의 불신과 냉담에 대해서 말씀하신 바 있지 아니한가. ‘피리를 부는데도 무엇이 못마땅한지 춤추는 시늉도 하지 않고, 곡을 하는 데도 무 슨 심사인지 우는 시늉도 하지 않고, 싫증이 났는지 시더분해 하던 그 사람 들’ 이야기가 오늘 우리와는 무관한 이야기일까? “친숙은 경멸을 불러일으킨다”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이 혹 우리를 두고 하 는 말은 아닌지 우리 자신을 살펴 볼 일이다. 우리는 믿음의 경주장 안에 있 는 불빛이 꺼져 있지는 아니한지, 혹 우리 안의 구원의 감격의 수위가 잦아 들지는 않았는지 돌아 봐야 할 것이다 구원의 감격 잦아들지 않아야 우리는 승리하신 주님으로 인하여서 ‘인생역전, 존재역전, 신분역전’과 같 이 완전히 뒤집어진 상태가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은혜를 입은 우리가 주 님 앞에서 뒤집어지는 반응을 보이지 아니 할 때에는 이러한 우리로 인하여 서 우리 주님께서 뒤집어지실지도 모르겠다.
473 no image |목회단상|노회 회의와 의사 소통_전송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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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31 2009-10-21
노회 회의와 의사 소통 전송수 목사, 해맑은교회 “통상적인 민주절차 대로 따르는 것이 원만한 방법” 창세기 11장을 보면 본래 인류는 언어와 말이 하나이었다. 그러나 인간들이 한 뜻, 한 마음이 되어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려는 시도를 하였다.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하나님과 겨루려 하고 자신들의 이름을 내려는 시도를 한 것 이 바로 그것이다. 의사 소통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 이에 하나님은 인간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서로 교통하지 못하도록 하였 다. 말은 하여도 서로가 그 뜻을 깨닫지 못하게 된 것이다. 결국 이들의 시 도는 이뤄지지 않았다. 미뤄 짐작하건데 의사 소통이 안 됨으로 일이 진척 될 수 없었을 것이고 서로가 서로에게 등을 돌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서로 의사를 소통하지 못하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없다. 작게는 젊 은 남녀가 만나 사랑을 하게 되고 결혼을 하여 한 가정을 이룰 때는 큰 희망 을 갖고 가정을 이룬다. 그러나 대부분의 부부가 신혼 초에 많은 이견으로 갈등을 겪게 된다. 남편이 말하는 의미와 아내가 말하는 의미가 각 가정의 문화에 따라 서로 달라서 서로에게 자신의 진정한 마음이 잘 전달되지 못하 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서로는 상대방에 대하여 자신을 무시한다고 오해 를 하게 된다. 이 갈등을 잘 해소하지 못하면 신혼 초부터 결혼관계가 깨지 기도 한다. 친구 사이에 마찬가지이다. 지금까지 친하게 지내던 친구 사이가 한 순간에 적대관계로 변하기도 한다. 친한 친구 사이이기 때문에 허물없이 한 말이나 행동이 상대방에게 영 다른 의미로 전달되어서 상대방이 매우 불쾌하게 여기 게 된다. 그렇게 되면 한 쪽에서는 잠을 자다가 홍두깨를 맞는 격으로 황당 해하고, 반대쪽에서는 그런 표정을 짓는 친구가 더욱 무례하게 보인다. 심하 면 친구 사이가 단절되는 아픔을 겪기도 한다. 많은 식견이나 품위를 가진 사람들도 예외는 아닌성 싶다. 대한민국 국회에 서 종종 벌어지는 난장판을 보면 저분들이 과연 품위와 식견을 가진 분들이 하는 행동인가 의문이 들기도 한다. 내가 믿기는 대한민국 국회의 여당 국회의원과 야당 국회의원들 모두가 애 국 자라고 생각한다. 분명 이들은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임에 틀 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정책을 다뤄야 할 때 사생결단을 하 고 싸우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현 이명박 정부에서 세종시를 원안대로 하려하지 않으려는 일을 가지고 여당과 야당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여당의 생각은 국가 백년대 계를 위해서 세종시를 추진할 경우 심각한 행정비용의 지출과 업무의 비효율 로 인하여 국가 경쟁력이 약활 될 것이기 때문에 백지화 내지는 대폭적인 수 정이 불가피하다고 보는 것 같다. 반면에 야당 입장에서는 이미 합의된 일이기도 하거니와 수도권의 과밀화를 해소하여 수도권 조밀화로 인하여 교통이나 환경 문제들 수많은 비용을 줄이 고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더 이상은 수도권 과밀화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을 하는 것 같다. 다 국가를 위하여 하는 말일 것이다. 그러 나 여야 의원들은 상대방의 주장이 애국적이지도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한 것 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국론분열 양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런 갈등을 어떻게 해소하여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보통 이런 경 우에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진단한다. 그러나 이 말 이 맞는 말이지만 심각한 함정이 있는 진단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상대 방의 말을 경청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가 아니다. 상대방의 말을 아무 리 경청해도 상대방의 의도에 대하여 말하는 사람과 다르게 보면 결코 합의 점을 찾을 수 없다. 그런 의도가 아니라고 말하면 할수록 상대방은 오히려 그런 의도가 강하다고 단정해버리기 일쑤다. 이렇게 되면 더욱 큰 분쟁으로 이어진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모든 일의 결정권자는 하나님임을 인정해야 한 다. 내 생각,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일이 이뤄지지 않을 것 같지만 모든 일 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다. 국가의 경영에 일조하는 국회의원들도 국가의 모 든 일의 결정권자가 결코 아니다. 물론 대통령도 결정권자가 아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결정권자이시다. 그러므로 개인의 문제에서나 사회 혹은 국가의 문제에서 통상적인 민주절차 를 밟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옳다. 내 의견, 내 뜻대로 안 되었다고 낙심 할 필요도 없다. 어떤 사안에 대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의견을 제시하고 정책 을 제시하고 통상적인 민주절차를 밟아 결정되는 대로 따르는 것이 분쟁을 없애는 방법이다. 전국 노회들이 노회를 치렀다. 노회를 하는 동안 혹 내가 결정권자처럼 행동 하는 일은 없었는지 뒤돌아 볼 일이다. 내 의견을 고집하거나 내 의견에 동 조하지 않았다고 다른 노회원을 적대시 하거나 하지는 않았는지! 내가 낸 안 건 대로 되지 않았으니 노회가 매우 혼란스러울 거라고 흥분하지는 않았는 지! 내 고집만 내세우는 것이 문제 어차피 인간은 성령으로 하지 않고는 일치된 생각을 가질 수 없다. 그렇다 고 하더라도 이 분쟁을 줄이기 위해서는 내가 모든 일의 결정권자가 아니고 하나님 만이 모든 일의 결정권자라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472 no image |신앙단상|진주를 돼지에게 던지지 말라?_최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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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3 2009-10-07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지 말라? 최재호 본보 객원기자 최근 가까운 이들과 대화중에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성경구절이 있다. 바로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지 말라’는 구절이다. 좋게 말해 교회를 바르게 세 워가려는 의도와 열정에서 종종 터져나오곤 한다. 바른교회에 대한 열정 앞서 기도 특히 직분자를 세워가는 일에 대해 이런 말을 하곤 하는데 직분자의 정체성 (직분의 의미), 직분의 자격 요건, 직분의 사역에 의해 세워져가는 교회 등 에 대해 교회가 무지하고 무관심함을 탓하고 안타까워했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교회에서 오래 전부터 수도 없이 이야기해 왔었고 대답 없는 현실속에서 안타까움이 분노로, 분노가 절망으로 이어져왔던 것 같다. 우리가 개혁교회를 추구한다면 개혁교회가 고백해 온 대로 성경이 절대표준 이 되고 역사적 신앙고백들이 우리의 잣대가 되어 하나의 무형교회를 이 시 대 우리가 속한 교회 가운데 구현해내는 것이 우리의 본분이 되어야 하지 않 는가 하면서 말 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의 존재목적이라고 앵무새처럼 읍조려왔다면 우리 교회 의 지향점도 바로 그러해야 하며, 성경말씀이 제시하는 교회의 본상을 구현 해내는 것이 곧 하나님의 영광임을 우리 모두가 늘 기억해야 하지 않는가. 하지만 현실교회가 그러하지 못함을 보면서 너무도 혼자 아파하고 괴로워하 며 심지어 절망하고 포기하곤 했다. ‘설마’가 ‘역시’가 되면서 그 깊이 는 더 깊어가고, 다가오는 충격의 정도는 점점 커지다 어느 순간 절망과 포 기하는 모습을 내게서 발견하며 흠칫흠칫 놀라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오 늘도 돼지를 진주에게 던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지인에게 하고는 이제와 다시 돌아보는 시간을 가진다. 잠시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거의 완전한 돼지인 나에게 주어진 그분의 진주 를 생각해보기로 했다. 그동안 너무 무례하게 너무 쉽게 생각하면서 진주를 ‘던져왔지’ 않은가? 그러면서 내가 가진 진주를 더 자주 더 신중하게, 더 따뜻하게 전해보기로 한다면 어떨까... 만약 하나님께서 돼지인 나를 그냥 버려두셨다면 어찌 되었을까를 생각하면서, 내가 발견한 진주가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니는가를 새겨보면서. 너무도 쉽게 돼지와 나를 구분하려 한 점, 주의 피로 구속받은 백성일지 모 를 성도들까지 돼지라고 여긴 것은 아니었던가를 반성한다. 아직 어리거나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아 깨어나지 못했을 뿐인데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그들 을 어찌 그리 쉽게 정죄하였단 말인가. 또 나는 왜 이처럼 쉽게 포기하고 절 망하였단 말인가. 그래, 이땅에 사는 날 동안 계속해 가자. ‘돼지처럼 보일지라도 돼지가 아 닌 이들에게’ 진주를 전하는 일을.... 그 누구라도 쉽게 정죄할 수 없어 힘이 들 때마다 돼지였던 나를, 지금도 돼지 같은 나에게 진주가 전해졌음 을 기억하고 새겨보면서 너무 쉽게 나를 분리하고 쉽게 포기하려는 내 생각 들과 싸워보자, 그것이 먼저 나에게 진주를 보게 하고 간직하게 한 그분의 뜻임을 기억하면서 말이다.
471 no image |선교단상(2)| 유럽의 이슬람화를 지켜보며_이기종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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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28 2009-10-07
유럽의 이슬람화를 지켜보며 이기종 총무·합신세계선교회 “기독교가 힘이 없는 곳에 이슬람 확산되고 있어” 작년 1월에 한국을 방문했던 영국의 기독교 역사학자 앤드류 월스(Andrew F. Walls)가 자기 고향을 방문했던 때를 회상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지금은 여든 살이 넘은 그는 자신이 출석했던 교회뿐만 아니라 고향의 많은 교회들이 모스크나 식당, 술집으로 변한 것을 목도했을 때의 착잡했던 심경 을 토로했었다. 그가 서아프리카에 선교사로 떠날 때는 상상하지도 못한 일 이었다. 그는 “교회와 선교는 모든 곳에서 시작하여 모든 곳으로 갈 수 있 다. 단 하나의 중심(Single Center)은 없다.... 서구를 재복음화 해야 할 필 요가 있다”고 강조했었다. The Economist 지(誌)는 에펠탑 꼭대기에 이슬람의 상징인 초승달이 걸린 합 성사진을 표지에 싣고 ‘유라비아’(Eurabia)라는 표제를 내 건 적이 있다. 현재 유럽은 가히 ‘유라비아’(유럽과 아라비아의 합성어)라고 불릴 정도 로 이 슬람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한때 융성했던 기독교가 점점 힘을 잃 어가고 있는 반면, 이슬람은 파죽지세로 유럽 전역에 확산되고 있다. 이슬람에 흔들리는 유럽 이처럼 유럽이 숨죽이고 이슬람을 바라보고 있는 상황은 남의 일 같지 않 다. 유럽인의 출산율은 계속적으로 낮아지고 있는 반면, 유럽에 진출한 무슬 림의 출산율은 여전히 높은데다 취업, 이민 등 유입 인구도 증가하고 있어 서 유럽의 인구 판도가 크게 변하고 있다. 유럽인 가운데 무슬림의 수는 약 5,400만 명(2007년)으로 전체 인구의 7%에 달한다. 언론들은 2015년까지 유럽의 무슬림 인구가 지금의 두 배가 될 것이 라며 ‘유럽 이슬람화의 심각성’을 보도하는 한편, 유럽의 이슬람화가 보 다 빠르게 진행됨에 따라 유럽 각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주 택, 외교 정책 등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게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영국은 1,000개 이상의 교회가 모스크로 바뀌었으며, 무슬림 인구가 250만 명으로 지난 30년간 30배 이상 증가하였다. 20세기 초반 강력한 개혁주의 국 가였던 네델란드는 이제 태어나는 신생아의 50%가 무슬림이며, 15년 후면 전 인구의 절반이 무슬림이 될 것이라고 한다. 프랑스는 무슬림 인구가 500 만 명이며 20세 미만의 30%가 무슬림이고 특히 파리, 니스, 마르세이유 등 은 20세 미만의 45%가 무슬림이다. 독일, 벨기에 등 다른 나라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무슬림 증가에 따른 사회적 갈등 확대 이슬람의 확산은 유럽의 주요 국가들에 사회적인 문제들을 야기하고 있다. 무슬림의 주류사회 진출을 견제하려는 세력과 이에 맞서는 무슬림의 반발은 점차 과격일로를 치닫고 있다. 유럽의 각 국가들은 이러한 사회적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골머리를 앓고 있다. 1988년 9월 영국에서 출간된 살만 루시디(Salman Rushdie)의 소설 ‘악마의 시’는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살만 루시디는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숨어 지내야 했고, ‘악마의 시’를 번역한 이탈리아인이 습격을 당했으며, 일본 의 이가라시 히토는 살해당했다. 2005년 7월 런던의 지하철과 버스 폭탄테러로 52명이 죽고 700명이 부상을 당하였는데 영국에서 자라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 의해 감행된 것으로 보 도되었다. 최근 영국에서는 ‘영국내에 더 이상의 모스크는 허용할 수 없 다’며 이슬람 반대 극우단체가 나서는 등 이슬람에 대한 반감이 심해지고 있다. 2005년 프랑스에서는 무슬림에 의한 전국 규모의 폭동으로 한 달 이상 비상 사태가 선포되었으며 350개 도시에서 6,400대의 차량이 불타고 1,600명이 체 포되어 사회가 일시 마비되었다. 지난 6월에는 사르코지 대통령이 부르카(무 슬림 여성의 전통의상)를 입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을 발표한 이후 무슬림 사 회의 분노가 커지고 있다. 지혜로운 대비책 필요 이러한 시점에서 한국교회는 유럽의 상황들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대비해야 할 것이다. 토요 휴무제, 저출산과 인구의 고령화, 외국인 근로자와 다문화 가정의 증가 등 여러 정황들로 볼 때 우리가 유럽의 전철을 밟지 않으리라 는 보장은 없다. 2005년 11월 서울에서 개최된 중동 이슬람지도자 선교대회에서는 한국을 2020년까지 이슬람국으로 만들겠다는 전략이 구체화됐다고 한다. 모스크 건 립, 이슬람 문화센터 설립, 이슬람 대학 건립, 이슬람 관련 서적과 자료 출 판이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한국 내에 들어온 무슬림들에게 어떻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복음을 전해야 할 지 지혜롭게 생각해야 할 때이다. 무슬림들이 모두 과격한 테러리스트는 아니며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적대감을 갖거나 두려워 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 곁으로 다가온 이웃들이다. 성도들을 보호하고 동력화하기 위하여 이슬람과 코란을 바르고 구체적으로 이해하도록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여러 신학교 내에 이슬람 관련학과를 신설하여 전문가를 양성할 필요도 점증하고 있다. 이슬람 전문가 양성 필요 참고로 현재 세계인구 66억 명 중 이슬람은 14억 명(21%)으로 세계인구 5명 중 1명은 무슬림인 셈이다. 개신교 인구는 4억 명이다. 이슬람은 높은 출산 율과 다양한 세계화 전략으로 2025년에는 30%에 달할 전망이다. 세계인구 3 명 중 1명은 무슬림이 되는 것이다.
470 no image |초대의 시| 가을 신부_조심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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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4 2009-09-23
469 no image |목회수상| “두 도시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_손성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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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06 2009-09-23
“두 도시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 손성은 목사·삼일교회 “자기를 부인할 때에 바로 참된 나를 알게 돼” 이 글을 쓰면서 하늘을 보니 구름 한 점도 없이 무척 푸르기만 합니다. 그 저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도 푸르러지는 것 같고 즐거워집니다. 마음의 하늘 에도 한 점 근심과 염려의 구름없이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근심과 염려 없는 삶 추구해 어떻게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어쩜 그것은 떳떳함을 갖는데 있을 것입니다. 하늘을 바라보아 한 점 부끄러움없이 살기를 바랬던 윤동주 시인 처럼 우리도 그러하기를 바래 봅니다. 그렇게 떳떳한 삶이야말로 제대로 자 신을 알고 또한 참된 자신을 만난 삶일 것입니다. 그런 떳떳함은 자기에 대해서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를 버려 남 을 구하려고 하는 삶에서 보여질 것입니다. 자기 목숨을 버릴 수 있다는 각 오로 살아가니 두려울 것도 없고 염려할 것도 없는 셈이지요. 놀랍게도 이 런 자 기 희생의 이야기가 챨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의 핵심 내용입 니다. 디킨스의 이 ‘두 도시 이야기’는 프랑스혁명 전후의 프랑스 파리와 영국 의 런던이라는 두 도시를 교차하는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입니다. 이 소설의 내용을 짧게 요약하려면 아무래도 소설의 끝에서 밝혀지는 사건부터 이야기 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습니다. 프랑스의 의사 마네트는 어느 곳에 불려가서 방탕한 귀족 두 명이 천민 출신 의 한 가족을 살인, 강간하고 멸족시켜 버리는 천인공노할 사건을 듣게 됩니 다. 이것이 소문나게 될 것을 두려워 하는 그 귀족들에 의해서 18년동안 파 리의 바스티유감옥에 억울하게 갇혀 살고 있다가 이전에 이용하던 은행의 런 던담당직원의 도움을 받아서 풀려나게 되고, 그 동안 생존하여 아름답게 자 란 딸 루시(Lucie)와 함께 런던에서 살게 됩니다. 이 귀족들 중의 한 명의 조카가 소설의 남자 주인공 다네(Darnay)입니다. 다 네는 귀족신분의 특권에 대해서 혐오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 모든 특권과 재산을 포기하고 런던으로 건너와서 살다가 프랑스의 첩자라는 누명을 쓰고 는 재판을 받는 중 변호사의 재치와 그 변호사의 친구이면서도 묘하게도 피 고인 다네와 얼굴이 너무나도 유사하게 생긴 카턴(Carton)의 변호에 의해서 풀려나게 됩니다. 다네와 카턴의 얼굴이 너무나 닮았다는 것이 이 소설의 중 요한 고리들 중의 하나입니다. 의사 마네트에 있어서는 다네는 철천지 원수의 조카였습니다. 다네에 대한 재판에 대해서도 딸과 함께 방청하면서 깊은 관심을 갖고 지켜보았습니다. 소설은 진미는 서로 얼굴이 비슷하게 생긴 다네와 카턴이 이 의사의 딸 루시 를 좋아하게 된다는 것에 있습니다. 자유분방하던 카턴은 루시와의 몇 번의 대면을 통해서 자신의 방탕하고 자유 분방한 삶에 대해서 깊은 반성을 하게 되고 진실된 삶을 살기로 다짐게 되 고 루시를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할 결심을 하게 됩니다. 비록 루시의 마음 이 다네에게 있는 줄을 알면서 말입니다. 루시의 아빠 마네트는 자기의 원수의 조카인 줄도 알면서 루시의 진실된 사 랑을 알고 결혼을 허락합니다.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던 다네에게 편지 한 장 이 전달됩니다. 프랑스에 있는 자기 숙부는 죽임을 당했는데, 그 재산을 관 리하던 사람이 억울하게 갇혀있다는 소식을 듣고 다네 자신 이 증인이 되어주 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의협심이 있었던 다네는 자기 집안과 관련된 일로 한 사람이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지금 모든 귀족들을 그 당시 고안된 단두대의 시퍼 런 칼날로 죽여버리고 있는 파리로 들어가게 되어 결국 법정에 서게 됩니 다. 뒤늦게 파리로 돌아온 의사 마네트의 바스티유 감옥 경력에 도움을 받아서 다네가 풀려나는 듯 했지만, 마네뜨가 감옥생활하던 중에 써두었던 글 때문 에 다네는 방탕한 귀족의 조카인 것이 드러나게 되고 어처구니 없게도 그만 사형을 선고받게 되지요. 그런데 소설의 진미는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게 감옥에 갇혀있는 다네에게 루시를 사랑하였던 카톤이 들어와서 다네를 최면시켜 밖으로 내어보내고 얼 굴이 비슷한 자신이 다네인 것처럼 변장해서 대신 갇혀 있다가 단두대의 이 슬로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단두대에 목이 잘려 죽기 전 카톤은 이렇게 마지막으로 속삭입니다: “나는 아노라, 지금 내가 하려는 행동은 내가 지금까지 행해 온 중에서 가장 훌륭 한 행위이며, 지금 내가 가려는 길은,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중에서 가장 평 안한 길이라는 것을 .” 사랑하는 여인을 위한 이 순애보적인 희생과 사랑이 마음이 뭉클하게 합니 다. 하지만, 단순한 인간적 사랑만이 아닙니다. 소설속에서도 여러번 카톤 이 스스로 다짐하면서 반복하는 성경구절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그의 희생이 신앙적인 희생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잃고자 하면 얻을 것 이요 얻고자 하면 잃게 되리라.” 남을 위해서 자기를 버릴 줄 알게 되고 부 인할 줄 알게 될 때 그때에 바로 참된 나를 알게 되고 참된 나를 만나게 됩 니다. 먼저 참된 나를 알고 있어야 떳떳함 속에 참된 내가 있는 것입니다. 하늘을 보아도 한 점 부끄러움이 없 는 하루, 그 하루가 바로 오늘이기를 소망합니다.
468 no image |목회수상| 내가 방치한 환경_최광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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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49 2009-09-17
내가 방치한 환경 “우리가 앞장서 주변 환경 깨끗이 정돈해야” 최광희 목사·행복한교회 내 왼쪽 무릎에는 2센티 정도 길이의 흉터가 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에 유리조각에 베인 자국이다. 버려진 유리병 조각에 무릎 베여 내가 살던 시골집은 바로 옆에 농수로가 있었다. 평소에는 말라 있다가 양수 장에서 강물을 퍼 올려 공급하면 도랑에 물이 흘렀다. 당시에 강물은 손으 로 움켜서 먹을 수 있을만큼 깨끗했으니 강물을 퍼 올려서 공급하는 도랑물 에도 아이들이 목욕을 할 수 있었다. 야트막한 도랑에서 물장구치며 놀던 어느날 바닥에 있던 깨진 유리조각에 무 릎이 베였다. 요즘같으면 병원에서 꿰매었겠지만 옛날 시골에는 병원도 없 고 그냥 빨간약만 발라서 치료했다. 여름 내내 고생을 많이 하고 겨우 나은 자리가 지금도 커다란 흉터로 남아 있다. 사람들이 농약을 치고 나서 농약병을 한쪽에 안전하게 모아 놓아야 할텐데 왜 아무데나 집어 던지는지 모르겠다. 그것도 깨서 버리면 얼마나 위험한지 모른다. 엊그저께는 우리 교회 앞 길가에 누군가 소주병을 깨뜨려서 버려 놓 은 것을 보았다. 출애굽기 21장에는 사람을 받는 소와 그 소의 임자에 대한 처벌법이 나와 있 다. 소가 받는 버릇이 있는 줄 몰았을 경우 살인소만 죽이면 된다. 하지만 소의 버릇을 알고 경고를 받았음에도 단속하지 않아서 소가 사람을 받아서 죽였다면 소 임자까지 죽이라고 되어 있다. 또 사람이 구덩이를 파서 방치했 다가 남의 가축이 빠져 죽었을 경우에 대한 배상법도 나와 있다. 이 두 가 지 교훈을 종합하면 내가 방치한 환경에 다른 사람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하 라는 말씀이다. 우리는 소를 기르지 않는다. 그러나 자동차는 운전하고 다닌다. 어떤 사람 은 차를 아무데나 주차하고 떠남으로 다른 행인이나 운전자들을 불편하게 만 든다. 때로 소방차가 지나갈 수 없게도 만든다. 주차해 놓은 차가 시야를 막 아 다른 차들이 사고 날 위험에 처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음주운전을 해서 사고를 내거나 ‘살인’을 저지르기도 한다. 차를 늘 운전하고 다니는 우리는 나의 부주의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구덩이를 파서 방치해 둘 땅이 없다. 그러나 구덩이가 아니더라도 내 가 방치한 환경 때문에 다른 사람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예 를들어 내가 흘린 물 때문에 다른 사람이 미끄러지지는 않을지 돌아보아야 한다. 어느날 교사강습회에 강의를 하러 갔더니 교사들이 700명이나 모였다. 이분 들이 일제히 정수기에서 물을 마시고 컵에 조금 남은 물을 정수기 물받이에 부어 버렸나보다. 정수기 물받이는 하수구가 아닌데 계속해서 물을 부어서 넘쳐 바닥에 흘렀다. 그래도 계속해서 물을 부어 교회 로비가 강이 되어 있 는 것을 우리 스텝들이 열심히 닦고 있었다. 교회 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는 종업원이 따로 있지 않다. 식사 후에는 내가 더럽게 한 환경에 다른 사람이 불쾌해 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예배당 에서 예배를 드린 후에도 내가 앉았다가 일어선 자리에 휴지나 쓰레기라도 떨어져 있지 않은지 살펴서 그 자리에 오는 다음 사람이 유쾌하도록 마음을 써야 한다. 혹시 유리병에 담긴 음료수를 마셨다면 그것이 깨어져서 다른 사람이 다치 지 않도록 주의하고 꼭 재활용 함에 버려야 한다는 것은 유치원생도 다 아 는 상식이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화장실에 가면 이런 글귀가 있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 주변 사람 배려하는 마음 갖어야 성도는 세상 사람보다 한걸음 앞장서서 내가 머물 자리를 아름답게 만들어 야 할 것이다.
467 no image |선교단상| 선교보안 : 선교사 보호를 위해 주의할 필요_이기종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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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1 2009-09-17
선교보안 : 선교사 보호를 위해 주의할 필요 이기종 총무·합신세계선교회 “위험지역 선교사의 실명을 인터넷, 주보에 사용치 말아야” 이기종 총무·합신세계선교회 이슬람권, 불교권, 힌두권 그리고 사회주의권 국가에서 사역하는 선교사의 신분 보호를 위해 주의할 필요가 있다. 선교사 신분 노출 주의해야 2009년 8월 현재 합신세계선교회(회장 한광수 목사이하PMS) 소속 선교사 중 상당수의 선교사가 사역하는 곳이 보안지역과 위험지역에 위치해 있으며, 앞 으로도 PMS는 복음의 불모지인 전방개척지역에 우선적으로 선교사를 배치할 계획으로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선교사의 신분 노출은 선교사의 생명 위협, 추방, 선교사역 의 제약 등으로 이어질 뿐만 아니라 선교계와 기독교계에도 큰 영향을 미치 고 있다. 2년 전에 있었던 아프간 사태와 최근 예멘사태 등 인질 피랍사건 때, 선교사의 신분이 언론에 보도되어 사태를 자극하 며 악화시켰던 일이 있 다. 해외에서 인질, 피랍, 테러와 관련된 일이 발생했을 때 일부 언론사나 반기 독교인들은 인터넷 등을 통하여 사건 당사자와 연관된 교회나 선교단체의 정 보를 1차적으로 수집한다. 그리고 선교지의 사건, 사고 당사자가 기독교와 관련된 인물이라고 확인되면 그들은 문제를 확대하여 개인과 교회 혹은 선교 단체를 어려움에 빠뜨리거나 기독교에 부정적인 영향을 확산시키려고 한다. 일반적으로 선교사 신분의 노출은 소포, 편지, 종교관련 책, 테이프, 비디오 와 같은 것과 전화, 이메일, 인터넷 등 통신 수단을 통해 이루어 진다. 인터 넷의 검색 사이트에서 선교사의 이름으로 검색하면 선교사에 관한 정보가 올 라 온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렇듯 교회나 개인이 선교사의 실명을 교회 홈페이지나 카페와 같은 인터넷상에 올리면서 선교사의 신분이 손쉽게 드러 나는 문제점에 대해 유의해야 한다. 우선 1차적으로 한국 내에서는 위험지역 선교사의 실명보다 가명(사역명)을 사용해야 한다. 이미 인터넷이나 게시물에 본명으로 기재된 것은 조속히 가 명으로 변경해야 한다. 한편, 선교지 내에서는 본명을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 분이다. 각 교회 홈페이지나 개인이 운영하는 카페 등에서 몇 가지만 조심한 다면 예상치 않은 피해로부터 선교사를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선교사가 위치하고 있는 국가나 지역명은 영문 이니셜(예컨데, X국, Y국)로 표기하고 메일이나 편지 그리고 전화 등을 사용할 때도 선교사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말고 선생님, 부장님 등과 같이 표기해야 하며 내용에 있어 서도 기독교적인 용어는 삼가야 한다. 또한 보안지역과 위험지역으로는 개인이나 교회가 직접 전화나 편지, 이메 일 등을 발송하지 말고 선교단체의 자문과 확인을 거친 후 발송하는 것이 안 전하다. 설교 테이프, 종교서적의 발송도 유의해야 한다. 한 예로 금년 U국에서는 선교사의 요청이 없었는데도 선교사와 친분이 있는 사람이 좋은 의도로 한국에서 보낸 우편물이 해당 정부의 검열에서 적발돼 선교사가 수 차례 끌려가 조사를 받고 벌금을 내게 되었고 그 선교사는 요주 의 인물로 감시 대상이 된 사례가 있다. 신분노출로 인한 불이익 발생해 우리교단 내의 모든 교회의 홈페이지, 주보, 게시판 그리고 개인의 카페, 블 로그 등을 다시 한 번 점검해보고 위험지역에서 사역하는 선교사의 실명이 사 용되지는 않았는지, 이메일 주소나 우편물에서도 이름이나 용어 사용이 잘 못되지는 않았는지 점검해야 할 때이다.
466 no image |제언| 총회에 대한 총대들과 성도들의 자세_이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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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66 2009-09-17
총회에 대한 총대들과 성도들의 자세 이광호 목사_실로암교회 해마다 가을이 되면 한국교회의 각 교단들에서는 정기총회를 개최한다. 전국 에 흩어진 교단 산하의 노회와 지 교회에 속한 목사와 장로들이 모여 현안 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이다. 교단에 따라서는 총회 때 외국에 있는 자매교단의 사절단들이 참가하기도 한 다. 인종과 지리적 형편에 관계없이 고백을 같이하는 흩어진 교회들과 교제 를 나누며 보편교회의 의미를 확인한다는 의미를 가지게 된다. 이 글에서는 각 교단의 총회를 앞두고 바람직한 총회가 되기를 기대하며 총 대들과 성도들이 취할 자세를 점검하고자 한다. 1. 총대들의 자세 총회에 참석하는 총대들은 소속된 교회와 노회를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그들 은 개인적인 자격이 아니라 공적으로 파송 받은 자들이다. 그러므로 총대들 은 개인의 주장이 아니라 자신을 파송한 교회의 의사에 따라 모든 직무와 논 의에 참여해야 한다. 해마다 한번씩 모이는 총회 기간에 교권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적 분위기가 조성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 자리가 서로 간 친목과 교제를 나누는 사 교의 장이 되어서도 곤란하다. 어떤 사람이 차기 임원에 선출될 것인가 하 는 점이 주된 관심사가 될 수도 없다. 교단 총회는 지상에 존재하는 교회의 순결 유지와 연관된 매우 소중한 모임 이다. 총회는 각 교회와 노회들이 청원한 여러 사안들에 대한 논의를 하고 결정하는 일을 하게 된다. 그리고 교회를 향해 끊임없이 밀려들어오는 세속 적인 풍조를 해석하고 방어하는 일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 또한 우 후죽순처럼 생겨나는 이단사상들에 대한 성경적인 검증과 그에 대한 논의 결 과를 흩어진 교회들에 알려 경계하도록 한다. 이런 점에서 교단 산하의 모든 교회와 성도들은 총회에서 논의된 문제들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총회는 단순히 목사와 장로들만의 회 의가 아니라 교단 산하의 범 교회적인 총회이기 때문이다. 2. 성도들의 자세 성도들이 총회의 논의와 결정 사항에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는 국민으로서 자신이 속한 국가와 그 가운데 발생하는 제반 문 제에 적절한 관심을 가지는 것과 같다. 우리는 세속국가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것 이상으로 교단과 총회에 정당 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모든 성도들은 교단의 제반 문제들에 관심을 가지고 그에 대한 내용을 알아야만 하는 것이다. 또한 자기 교회가 속한 교단의 총회장을 비롯한 임원들이 누구인지 알 필요 가 있다. 신학을 비롯한 중요한 내용을 관장하는 부서의 책임을 맡은 인물들 에 대해서도 그렇다. 물론 모든 교인들이 반드시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라할 지라도 성숙한 성도들은 어느 정도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 교회에 속한 교인들이 그에 대해 전혀 무관심하다면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 니다. 성도들은 교단과 총회에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지상에 올바른 교회를 세워가는 데 함께 참여하게 된다. 또한 그렇게 함으로써 배도에 빠진 악한 지도자들의 교권주의적 행태와 전횡을 어느 정도 방지할 수 있다. 이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대통령이 누구인지, 정부의 각 부처 장관이 어떤 인물인지,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의 국회의원이 누구인지 어느 정도 관심을 기울이는 것과도 같다. 그것은 단순히 그들의 이름 을 기억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이념과 가치관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국가에 봉사한다는 자들이 본분을 버리고 부정과 비리를 행한다면 마땅히 그것을 지적해야 한다. 이처럼 교단내의 어떤 인물들이 어디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중요한 신학 적 문제에 어떤 식으로 대응하는지 지켜보아야 한다. 그리하여 진리에 둔감 하거나 맡은 바 직무에 태만한 자들이 있으면 그에 대한 강한 비판을 해야 한다. 이는 물론 성숙한 성도들의 성경에 근거한 자세에 의한 것이어야 하 며 감정적이거나 세상의 시류에 따르는 태도로 인한 비판이 되어서는 안 된 다. 3. 바람직한 총회를 기대하며 한국교회의 각 교단 총회가 목사와 장로들의 형식적인 잔치가 아니라 전체 교회를 위한 책임 있는 공회가 되기를 바란다. 총회가 지상에 존재하는 교회 의 순결을 지키며 보존하는 중요한 역할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총회에 참석하는 총대들은 총회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적극적인 간섭아래 놓 여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465 no image |초대의시| 닻_정승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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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96 2009-09-03
464 no image |제언| 개발 인플루엔자 공격에 속수무책인 한국교회_허성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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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82 2009-08-18
개발 인플루엔자 공격에 속수무책인 한국교회 허성철 목사_서문교회 “잘못된 법조항으로 교회와 주민들 위협받고 있어” 지금 온 세계는 신종인플루엔자(Influenza) 공포의 위협을 받고 있다. 독 감, 유행성 감기의 일종으로 감염되면 7일 이내 37.8도 이상의 열이 나고 심 하면 사망에 이른다고 한다.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신종인플루엔자 만큼이나 교회와 주민을 위협하는 또 다른 신종인플루엔자가 우리를 긴장시키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재 개발 및 재건축’으로 흔히 말하는 ‘뉴타운 건설’이다. 그 진원지는 다른 나라가 아닌 우리 정부와 각 지자체이다. 1만여 교회 사라질 위기에 있어 얼마 전 한 기독교 언론에서 1340여 개발지역에서 1만여 교회가 사라질 위기 에 있다는 보도를 한 사실이 있다. 이 보도를 접한 개발지역 교회의 목회자 와 성도들은 아픈 가슴을 또 한 번 어루만져야 했을 것이다. 정부 정책 차원에서 오래되고 낙후 된 구 도심권을 개발하여 지역을 발전시 킨다는데 누가 반대할 사람이 있겠는가? 문제는 사회 통합을 허물고 분쟁과 갈등만 일으키는 대안 없는 잘못된 개발제도이다. 시행중인 개발 법과 보상 현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문제가 되는 개발 법 가운데 모법이라 할 수 있는 ‘택지개발촉진법’(이하 택조법)이 있다. 이 법은 1981년 전두환 군사정권이 만든 법이다. 이 개발의 특징은 개발이 익 극대화를 위해 소유자들에게 아주 낮은 보상금을 주어 원주민을 아무 대 책 없이 내쫓는 정책이다. 택조법을 근거로 하여 개발지구마다 적용되는 법 가운데 ‘도시 개발법’, ‘도시개발 정비법’,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 등 일반인들에는 너무나 생소한 많은 법들이 있다. 주민과 건설업자가 함께 시행하는 민영개발(조합)이나 정부 공기업(주공, 토공)이 주도하는 공영개발 (강제수용) 모두 이러한 법 조항에 근거하여 개발한다. 잘못된 구시대적 법조항이 원인 그 결과 교회당 역시 공익성, 공공성, 교육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인 정하지 않고 슈퍼마켓 수준으로 취급하며 낮은 보상으로 무조건 내쫓고 있 는 것 이다. 개발법도 문제지만 보상금 관리체계도 국세법과 국토해양부 지침 이 서로 다르다. 이런 잘못된 제도를 고치지 않고 막무가내로 개발을 추진하 고 있는 것이다. 한 실례를 들면 보상가액은 평당 170 만원인데 종교용지 감정가는 평당 700 만 원이라면 누가 수용하겠는가? 주민들에게는 낮은 보상으로 이주할 수 없 는 형편이다보니 현실보상을 요구 하는 것이다. 결국 개발은 교회나 원주민 모두에게 감당키 어려운 경제적 부담만 가중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통계에 의하면 개발지역 주민 정착률은 15-20%뿐이고 교회는 60교회 중 1개 교회만 남는다는 어느 전문가의 보고에 모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참으로 가 슴 아픈 현실이다. 각종 개발이 겉으로 보기에는 호재 같으나 그 속을 살피면 악재라는 이중성 을 띠고 있다. 이러한 잘못된 개발방식과 제도를 고치기는커녕 역대 정권과 정치인들은 지금도 개발 논리만 앞세워 상황과 필요에 따라 새로운 개발법 을 만들어 국가공기업과 건설업자들의 이윤을 창출하는데 일조하며 공생관계 를 유지해 오고 있다. 이런 현실에 대해 관계 공무원도 지금의 개발제도가 악법이라 인정하고 있 n다. 법령을 제정하는 정부와 고위 관계자도 이를 인정하며 지금의 개발 법 에 대해 새로운 대체입법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같이 하고 있다. 개발에 대한 인식과 사회 갈등 해소해야 문제는 다수의 교회와 지도자들이 개발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지금 한국교회는 개발이라는 신종인플루엔자의 공격으로 해체 위기에 처해 있다. 수도권 지역 교회가 심각한 상태다. 사회 약자인 서민들도 속수무책으 로 당하고 있다. 개발지역의 문제와 피해는 밖에서 보고 듣는 것보다 매우 심각하다. 간혹 개 발에 대해 대화하다 보면 소통이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소통이 어려운 사 람도 있다. 개발에 대한 인식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교회와 주민들이 개발로 인해 당하는 심적 경제적 고통은 당사자가 아니면 알 수 없다. 정부는 개발이 공익을 위한 사업이라 말하지만 주민이 느끼는 현실은 그렇지 않다. 국민의 권익을 도외시하며 절망의 나락으로 내몰고 있 기 때문이다. 개발은 서로에게 불신과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불씨가 되었으며 이제는 사회 적 문제로 자리 잡고 말았다. 지금까지 함께 웃고 지내던 이웃, 교회 관계 가 개발이 쳐놓은 이해관계의 올무에 걸려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 다. 지난 숭례문 방화사건, 용산참사 모두 개발로 인해 발생된 사회적 아픔 의 한 일면이었다. 잘못된 제도 개선 위해 한국교회 앞장서야 개발이라는 신종인플루엔자의 공격으로 신음하며 폐쇄 위기에 있는 교회를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할 수 없다. 개발로 인해 앓고 있는 교회와 사회를 속 히 치유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교회는 교단 교파를 떠나 하나 되어 야 한다. 어느 누구에게도 하소연 하지 못하고 약자가 되어 눈물로 기도하 는 교회와 소외된 주민을 위해 관심과 사랑의 손을 내밀어야 한다.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기독교 지도자, 모든 기관, 대형교회들은 연합의 중심 에서서 교회가 개발이라는 광풍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선도하는 선장의 역할 을 해야 한다. 주님 앞에서 모든 이해관계를 내려놓고 교회와 민족을 위하 여 잘못된 제도를 개선하는 일에 하나 되어야 할 것이다. 개발현장에서 일어나는 교회와 주민들의 절규의 소리에 귀 기울여 주기를 호 소한다. 인천만 해도 개발 예상지역이 140여 곳이 넘는다. 개발 시행 시기 만 다를 뿐 인 천은 신도시를 제외한 구도심권 전역이 개발 권역에 있다. 우리 총회는 노회별 지교회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 살펴주기를 부탁드린다. 총회 안에는 여러 상비부와 특별위원회가 있다. 그동안 우리 총회가 한국교 회를 위해 많은 일들을 해 왔고 지금도 하고 있다. 우리 총회와 개 교회 차 원에서 기념교회도 세웠다. 또한 세워야할 기념 교회도 있다. 교회를 세우 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세워진 주님의 교회를 지켜야 할 책임도 있는 것이 다. 주기철 목사님을 비롯한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이해관계를 떠나 오직 교회 를 지키기 위해 순교까지 하였다. 교계지도자들은 당면한 현실 앞에서 무엇 이 바른길인지 우선 순위를 찾아야 할 때이다. 총회 내 특별 대책위원회 조직하길 주님께서 우리에게 개발이라는 문제를 통해 개교단주의, 개교회주의를 극복 하고 하나 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주셨다고 생각한다. 범 교단적으로 연대 하여 지금과 같은 피해가 없도록 정부에 적극적인 제도개선을 촉구해야 한 다. 여러 교단이 이 일을 위해 대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우리 총회도 시대적 사명을 가지 고 금번 총회를 통해 특별 대책위원회를 만 들어 당면한 교회 문제를 심도 있게 살피는 일에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463 no image |총회특수전도부 사역 보고| 외진 곳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_박영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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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54 2009-08-18
외진 곳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 박영수 목사, 총회특수전도부장 “적극 후원해 주신 전국 교회 앞에 진심으로 감사해” 먼저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올려 드립니다. 또한 특수전도부회원들에게 진 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지금 와서 지난 회기를 되돌아 볼 때 정말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올 수 없 었던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한 회기 동안 베풀 어 주신 은혜와 사랑을 감사함으로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 사업은 2009년 3월 17일(화요일 오전 6시-오후 9시)에 특수전도부 부원 6명과 함께 청송교도소 방문이었습니다. 청송교도소는 전국에서 가장 험한 사람들을 교도한다는 곳으로 교도관을 따라 철책문을 무려 다섯 개를 통과하면서 철책 문마다 비밀 번호를 누른 후 들어가서 재소자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들어가면서 매우 섬뜩하기도 했으나 기도하는 마음으로 들어갔 기에 이내 평온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큰 강당에는 200여명의 재소자들이 앉아 있었는데 그 주위에는 교도관들이 옆구리에 총을 차고 앉아서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을 보면서 너무나 마 음이 아팠고 무슨 말씀을 전할까 하다가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예수 그 리스도의 복음의 능력에 사로잡히는 것만이 문제 해결의 지름길임을 확신했 기에 복음 설교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큰 은혜를 주심으로 마쳤으며 후에 가지고 간 음료와 간식을 제 공하고 교도관들과 환담을 나눈 후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돌아오면서 한 장 로님은 ‘말로만 듣던 곳을 직접 와서 보고 경험하게 되니까 새롭게 깨닫게 되었고 큰 감동을 받게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두 번째 사업은 2009년 4월 9일(토요일 오후 2시-5시)에 경기도 양주군 백석 면 제26사단 신병교육대 신앙 훈련 및 진중세례식이었습니다. 강당에 약 400 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말씀을 전한 후 260여 명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한 명, 한 명 강당 앞으로 나와서 무릎을 꿇고 엎으려 세례를 받았는데 이 자리에는 여섯 분의 목사님들과 여섯 분의 장로님들이 함께 참여하였으며 한 결같이 큰 은혜 를 체험하게 되었노라고 고백했습니다. 참으로 감동을 받았던 것은 사단교회 박춘근 목사님은 ‘불교계의 영향이 얼 마나 거센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신병교육대 훈련생들은 불교계가 75% 이상 이 참석했고 기독교계는 25-30%도 참석하지 않아 몹시 안타까웠는데 최근에 다시 역전을 시켰노라’고 하면서 ‘단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으니 계 속 기도를 부탁한다’고 했습니다. 미리 제공한 간식과 음료를 함께 나누며 환담한 후 돌아왔습니다. 세 번째 사업은 2009년 6월 13일(토요일 오후 1시-3시)에 수원 남문교회(총 회장 이선웅 목사님)에서 탈북자 합동결혼식이었습니다. 약 200여명이 참석 한 가운데 5쌍 10분이 합동결혼식을 올렸는데 총회장 이선웅 목사님의 주례 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며 살 것을 권면하였습니다. 특히 이선웅 목사님은 특수전도부의 어려운 사정을 알고 예배당을 선뜻 허락 해 주었으며 200여 명의 하객들을 위한 식사를 제공해 주었고 주례까지 해주 었습니다. 이 지면을 빌어 진심으로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표합니다. 이어 금천구의 구의원님의 권면과 탈북자 사무총장 석사현 장 로님의 축사에 이어 한 탈북자 대표의 답사가 있었습니다. 답사에서 그는 ‘받은 은혜를 잊 지 않고 성실하게 또한 열심히 예수 잘 믿고 살겠노라’고 말함으로써 모든 하객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었습니다. 결혼식을 마친 후 탈북자 10명은 특수 전도부의 장로님들과 더불어 제주도로 여행을 떠났으며 참으로 행복한 시간 을 가졌습니다. 네 번째 사업은 2009년 7월 12일(주일 오후 3시-5시)에는 성남 문무대에서 ROTC 장교 훈련생 영성훈련 및 진중세례식이었습니다. 문무대 대강당에서 1500여 명의 장교 후보생들이 참석한 가운데 1부에서는 북서울노회 삼일교회 (정화영 목사)의 전도 및 찬양팀들이 약 50분간 선악과를 비롯한 다섯 가지 의 테마를 가지고 1500여 명의 장교 후보생들에게 폭소와 감동을 자아내게 했습니다. 그 감동을 이어 2부에서 총회장 이선웅 목사님의 짧고도 감동어린 말씀으로 설교하신 후 예배를 폐회했으며, 3부에서는 연예인 및 CCM 가수들의 공연이 있었습니다. 더욱 풍성했던 것은 제4부에서는 7명의 목사님과 7명의 장로님 들이 함께 한 가운데 250여명의 장교 후보생들이 강당으로 올라와 무릎을 꿇 n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참으로 감동적인 것은 모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ROTC 장교훈련소가 생긴 이 래 1500여명이 기독교로 모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말이었습다. 또한 이 선웅 총회장님을 비롯 증경 총회장님들(정판주 목사, 김훈 목사)이 참석하여 서 더 풍성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특별히 삼일교회 정화영 목사님과 전도 및 찬양 팀들에게 이 지면을 통해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끝으로 이 모든 사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재정적으로 적극 후원해 주신 전 국 교회 목사님들과 교회 앞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또한 특수전도부의 부 원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특히 재정을 맡아 수고해 주신 정문영 장로님 과 서기로 수고해 주신 최종설 장로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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