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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462 no image |제언| 교회법의 본질과 운영의 묘_나택권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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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29 2009-08-18
교회법의 본질과 운영의 묘 나택권 장로_총회부총회장 “제도적 교회법이 교회 발전에 올무 되지 않아야”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매일 새로워지고 범사에 머리되신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가야 한다. 교회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그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 지 계속 자라가야 한다. 계속해서 성장해야 하는 교회 만약 그리스도인 개인이나 공동체가 자람이 없다면 그 개인이나 공동체는 침 체되거나 변혁이 되고 말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교회의 자람은 곧 교회의 개 혁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교회 정치의 목적은 땅끝까지 그리스도의 삶과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하는데 있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교회정치 또한 바르게 운영해야 한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교회 정치에 대하여 명확한 입법정신과 그 이념을 올바르게 이해 하고 기술적으로 운영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근래에 와서 교회법을 지 나치게 강조하다보니 율법주의로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 이로인해 교회의 혼 란도 가중되고 있다. 총회 정책위원회에서는 ‘총회장과 임원의 역할에 관한 심포지엄’을 개최한 다고 한다. 이것을 볼 때 현재 운영되고 있는 본 교단의 총회장과 임원의 역 할이 장로교회 정신과 실제 현상 사이에서 괴리와 긴장감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운영되고 있는 총회가 현실적 환경 요청 때문에 마치 상설치 리회에 가깝게 점차 변화되어 운영되고 있다는 판단인 것 같다. 장로교회는 교권이 행사되기 쉬운 정치체제를 피하기 위하여 교회의 상설치 리회로 당회나 노회에 한정하였고 총회는 1년에 한번 회집하는 임시 치리회 로 하였다. 따라서 현행 교회정치체제에서 총회는 임시 치리회로 간주되어 회의가 열리는 동안만 임원이 존재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않다는데 논 의의 초점이 있다. 총회는 노회 총대들로 이루어진 일시적인 치리회로서 업무가 끝났을 때에는 폐회가가 아니고 파회를 한다. 또한 미진된 모든 업무는 특별히 지명된 위원 회에 맡기게 된다. 아울러 총회로서의 치리회는 끝나게 됨으로써 임원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 총회 파회시 “교회가 나에게 위탁한 권한으로 지금 총회는 폐회함이 가한 줄로 알며 이 총회와 같은 새 총회가 다시 00년 00월 00일 00곳에서 회집하 게 될 것입니다”라고 한 총회장의 파회선언에서 임시 치리회의 성격을 발견 할 수 있다. 그러나 새총회의 개최를 말하는 총회 회집(교회정치 제9조)을 보면 “예정 한 일시와 장소에 총회장이 출석하지 못할 때는 부총회장 혹은 전 총회장의 사회로 개최하고”라는 조항을 본다면 총회는 파회되었지만 임원은 그대로 존속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 우리가 교단 명칭을 말할 때 '대한예수교장로회(합신)'라 하지 않고 '대 한예수교장로회(합신) 총회'라고 한 것에서 총회를 하나의 상설치리회로 가 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총회장의 임무를 볼 때 총회장은 본회를 대표한다고 하여 교단 일을 위하여 필요할 때마다 교단의 대표자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총회 가 위임한 안건들을 처리하기 위하여 상비부를 둔다든지 임원회에 위임한다 든지 하는 안건들에서 총회가 상설치리회 성격을 가지게 되므로 총회 파회 후에도 총회장이란 호칭이 직명처럼 사용되어지고 있으며 또한 총회장을 교 단장으로 간주되고 있다. 또한 총회장은 총회 총대가 아니라도 새 회장이 선임될 때까지 시무할 수 있 다. 그 이유는 총회장은 새 회장이 선임되어 교체될 때까지 시무할 의무와 권한이 있기 때문이다. 이상의 예를 보아서도 총회장과 임원은 총회가 열리는 동안만의 임원이 아니 라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처럼 변화된 체제 속에는 장로교 의 기본원리를 파수하면서도 현실적 요청에 잘 적응해 가는 지혜로운 모습 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흔히들 말하는 교회정치에 있어서의 교권배제를 위한 노력한 흔적들을 발견하게 된다. 장로교회의 정치개혁은 교회가 얼마만큼 장로교 원리를 따라 개혁하느냐에 따라 개혁인가 변질인가를 판가름하게 된다. 또한 개혁은 현상유지란 있을 수 없는 개념이며 참된 개혁은 끊임없이 개혁해 나가는 것이다. 교회법은 교회가 갖고 있는 기능을 정상적으로 발휘하거나 적극적으로 발휘 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따라서 교회법을 운영함에 있어서 외형적인 법조문 이나 조항에 얽메이지 말고 법의 정신이 부각되도록 해야 한다. 반면에 법 이 정치성으로 인해 원칙과 본질과 정신을 상실하여 율법적으로 치우치지 않 도록 정치적 결정이나 정치적인 재판이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성경에 근거해야 하는 법 정신 교회법이 올바르게 운영되기 위해서는 법의 정신이 회복되어야 하고, 그리스 도의 계시의 정신으로 밑받침되는 영적인 법치가 회복되어야 한다. 필요 이 상의 교권을 의식해서 총회가 개혁하고 발전해 나가야 하는 일에 제도적인 교회법이 올무가 되지 않도록 교회정치가 운영되어야 할 것이다.
461 no image |목회수상|“아름다운 교회 이야기”_전홍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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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00 2009-08-05
목회수상 “아름다운 교회 이야기” 전홍구 목사·평안교회 “교회는 크든 작든 하나님의 교회이며 그리스도의 지체” 요즘 작은 교회 살리기 운동을 펼치는 목회자들이 있다. 참으로 아름다운 운 동이 아닐 수 없다. 사회의 불균형 현상 갈수록 심해져 오늘날 야기되는 사회문제 가운데 하나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돼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사회는 더욱 불균형 현상으로 치닫고, 개인 이 기주의와 집단 이기주의 현상으로 분열과 투쟁과 폭력 사태로 극한 상황을 이루고 있다. 한국교회의 문제 가운데 하나 역시 교회 이기주의라 하겠다. 자기 교회만을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교인쟁탈전까지 벌어지곤 한다. 이는 하나님 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슬프게 하는 짓이라 하겠 다. 교회가 주님의 몸이라고 말하면서 그 지체를 찢어버린다면 그 몸이 어떻 게 되겠는가? 혹자는 말하기를 성도들로 하여금 자기 교회와 목사를 자랑하도록 해야 교회 가 성장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렇게 가르치기 전에 모든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고전 1:2)이며 그리스도의 몸(고전 12:27)이라는 것을 먼저 가르쳐야 할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한국교회는 성장이란 명목 하에 서로의 경쟁이 불붙기 시작했 다. 선의에 경쟁이란 미명하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어떤 목사는 이렇게 말한다. 교인을 빼앗기는 목사가 바보라는 것이다. 주님의 이름을 빙 자한 자기만을 위한 생존경쟁과 같기도 하다. 겉으로는 주님의 몸 된 교회라고 하지만 지역에 교회가 세워졌는지, 교회가 언제 없어졌는지 무관심이다. 자신의 몸의 지체에 작은 가시 하나만 찔려도 아파하며 치료할 줄 알면서도 주님의 몸 된 교회에 대해서는 무감각하다. 아 니, 옆에 있던 교회가 없어 졌다고 기뻐하는 목사도 있다. 지 교회의 아픔 과 기쁨이 우리의 모두에게 아픔이요, 기쁨으로 생각할 때 진정한 교회의 모 습이 아닐까! 여기 아름다운 교회의 한 모습을 소개할까 한다. 필자가 목회하는 지역에 10 여 년 동안 비닐 하우스로 현재 30여명의 성도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는 교회 이다. 다름이 아닌 경기중노 회(합신) 소속 수남제일교회(송경환 목사)이다. 겨울에는 매우 춥고, 한여름에는 최고 40?를 맴돈다. 이 지역 사람들 다수 가 사업에 실패하고 재기를 위하여 찾아온 사람들이다보니 살만하면 더 나 은 삶을 향하여 타 지역으로 이사하는 성도들이 다수이다.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 늘 겸손한 목사님 부부를 본 다. 마을의 애경사는 도맡아 챙기다보니 좋은 목사로 평판이 자자하다. 목회 자들과의 관계에서도 애경사에 빠짐이 없는 매우 멋진 목사이다. 하우스 예배당을 벗어나기 위하여 온 성도들이 힘을 합쳐 교회 건축부지 130 평을 구입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꿈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어느 날 군포제일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권태진 목사가 간경화로 고생한다는 송 목사의 소식 을 듣고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로 감동을 받아 교회건축에 협력하기 로 성도들과 결정하게 된 것이다. 드디어 2009년 7월 19일(주일) 오후 4시 에 군포제일교회 성도 60여명과 지역 교회 여러 목사님들과 성도들이 모여 감격의 예배당건축을 위한 기공예배를 드리게 되어 지역교회에 훈훈함을 더 해주고 있다. 이 같은 일은 큰 교회라 서 할 수 있는 것만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 실 군포제일교회는 새 예배당 신축을 위하여 준비하고 있는 교회이다. 부채 도 많이 있는 줄 안다. 또한 신축을 위해서는 더 많은 부채가 예상되는 교회 이다. 하지만 권목사는 자신이 교회를 개척할 당시 천막교회로 시작한 적이 있기에 하우스교회당의 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터라 어려운 교회 의 사정을 헤아릴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한국교회에 이러한 아름다운 일들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 교회는 크던 작 던 하나님의 교회이며 그리스도의 지체인 것이기에 모두 소중한 것이다. 한 국 교회는 80% 이상이 미자립교회라고 한다. 하지만 모두 그리스도의 핏값으 로 세워진 교회들이다. 교회는 모두 그리스도의 교회여야 모든 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해야 한다. 힘 있는 교회가 어려운 교회의 약함 을 감당해주는 미덕이 있는 한 한국교회는 소망이 있다. 이러한 미덕의 불씨 가 더해진다면 한국교회는 참으로 더욱 아름다운 교회로 영광과 찬송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460 no image |초대의시| 하늘의 마음_박은준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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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89 2009-07-08
459 no image |선교지보고| 인도네시아의 예루살렘 니아스 섬_박발영 목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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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84 2009-07-08
인도네시아의 예루살렘 니아스 섬 박발영 목사_한우리교회 “전체 인구 95%가 기독교인, 한국교회 관심 보여야” 2004년도에 발생한 쓰나미 사건으로 인도네시아 니아스 섬과 인연을 맺게 되 었다. 2004년 12월 26일 아침 7시 58분에 리히터 규모 9.1의 강진이 발생했 났다. 이 지진은 최근 40년 동안 일어난 지진 중에 가장 강력한 것이었으며 엄청난 재해를 불러온 사건이었다. 2004년 발생 쓰나미로 인연 맺게 돼 당시 우리 교단은 인도네시아 구호 활동을 펼치게 되었고 이때 계기가 되어 재난 지역을 찾게 되었다. 그러나 구호활동을 적시에 펼치지 못하고 있을 때 얼마 되지 않아 니아스 섬에서도 8.9의 강진이 또 일어났다. 이에 인도네시아에 있는 안성원, 박성오 선교사님들과 함께 니아스 섬에 들 어가게 되었다. 당시 니아스 섬은 지진으로 인해 초토화 되어 있었다. 건물 80%가 파괴되었고 사망자 수는 2000여명에 이르렀다. 니아스 섬을 누비면서 구호물자를 전했지 만 이는 큰 재난을 당한 니아스 섬 주민들에게는 별 도움 이 되지를 못했다. 니아스는 인구 70만 명에 기독교 인구는 95%에 이르며 제주도의 2.5배 크기 이다. 주민의 95%가 기독교인 이 섬 주민들은 예배당이 무너진 것을 가장 비 통해 하고 있었다. 한국에 돌아와 이 소식을 여러 교회에 알리게 되었고 도 움을 요청하였다. 남포교회 박영선 목사님께서 이 소식을 듣고 니아스 교회 예배당을 복구하 기 위해 당회를 소집하여 의논을 하게 되었고 니아스 교회 예배당 복구비로 2억원을 지원하기로 결정을 하였다. 그리고 남포교회에서 이시응 장로님과 박정남 장로님을 파송하여 예배당 복구 사업을 돕도록 하였다. 그 이후 수차례 니아스를 방문하면서 300여개 교회를 도울 수 있었다. 이 일 로 인해 니아스에 있는 5개 교단과 교단 지도자들 그리고 3개 신학교와의 인 연을 맺게 되었다. 니아스 교회는 약 70년 전에 한 마을에서 부흥이 일어나 섬 전체 주민이 복 음을 받아드리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현재 니아스주민 95%가 기독교인이고 니아스에 약 3000여 교회가 있다. 그리고 3개의 신학와 크고 작은 5개 교단이 있다. 그 중 70%가 30대 이하의 젊은 사람들이다. 니아스 젊은이들은 다른 부족보다 총명하다고 한다. 니아스 섬은 분명 이슬 람이 90%인 인도네시아에서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다. 현재 니아스는 초등학 교, 중학교, 고등학교가 있지만 일반 대학은 없고 대학 과정은 신학교만 있 을 뿐이다. 그래서 대학 과정 교육을 받으려면 신학교를 가야 한다. 이 섬의 직장인들은 소수의 공무원(공무원은 모두 모슬림들이다), 초등고 교 사들과 목사가 전부인 셈이다. 목사는 그 가운데서 가장 존경받는 직장인인 셈이다. 그래서 많은 젊은이들이 신학교를 가고 싶어 한다. 니아스 섬은 경제적으로 잘 살 수 있는 여건을 찾아 볼 수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섬에 영적인 복을 부어주셨다. 95%가 기독교인 섬은 세계 어느 곳에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부흥이 시작된지 70년이 지난 지금은 주일학교 성경 교육이나 개인 신앙교육이나 양육 프로그램 없이 예배 중심으로만 자라 온 니아스 교회는 덩치는 크지만 아직 미숙한 교회이다. 교회에는 예배와 양육이라는 두 날개가 있어야 하는데 날개가 하나 밖에 없 는 셈이다. 어려운 현실 문제가 발생하면 무당을 찾아가서 상담을 하고 무당 을 불러서 굿을 한다고 한다. 그러나 니아스 교회는 무한한 저력이 있다. 니 아스 교회가 다시 영적으로 깨어나고 양육훈련을 받는다면 총명한 젊은 신학 생들이 인도네시아 전역으로 파송되어 인도네시아 선교사역을 감당 할 수 있 을 것이다. 이미 니아스 출신 목회자가 인도네시아 전역에 많이 퍼져있다. 그리고 지난 6월 15-19일에는 영적 각성 집회가 있었다. 니아스 안에 있는 3개 신학교가 연합하여 대 각성 집회를 개최한 것이다. 새벽, 오전, 오후, 저녁 집회를 3 일 동안 하였다. 연 인원 3600여명이 참석하였다. 3개 신학교가 연합하여 집 회를 한 것은 신학교 창립이래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이번 집회를 돕기 위해서 주 강사이셨던 김용의 선교사님(순회선교단 대표) 과 통역을 담당한 안선원, 박성오, 김도예 선교사 그리고 회계를 담당하신 남포교회 박정남 장로님, 한국 기독교 실업인회 부회장이신 박건석 장로님 등 8명이 동행을 하셨다. 이번 집회를 통해서 선교사가 되겠다는 헌신자가 33명이 나왔다. 인도네시아 선교 전초기지로 발전 지금 니아스 교회는 70년 전 니아스 섬에 있었던 대 부 흥을 재현하기 위해 꿈틀거리고 있다. 머지않아 니아스 교회는 인도네시아 전역을 감당하는 선 교 모판이 될 것이다. 니아스 교회에 대 부흥이 다시 일어나도록 한국교회 의 관심과 기도를 부탁드린다.
458 no image |신앙수상| 마음의 양식 - 다시 돌아 보는 삶의 의미_양호 장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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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77 2009-06-24
마음의 양식 - 다시 돌아 보는 삶의 의미 양 호 장로 ·남포교회 ·서강대학교 교수 “평생동안 추구해 온 욕심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기를” 고교동문이며 LA 영락교회 장로이던 김명조 군이 얼마전 소천하였다. 그해 송년모임에 와서 기도를 하던 그 맑은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한데 장례식날 관속에 누워있는 그를 보니 아주 수척한 얼굴로 굳어 있었다. 내일 닥칠 일조차 알지 못하는 인생 이제 그 영혼은 육체를 떠나 영원히 썩지 않고 고통과 환란이 없는 하늘나라 에서 행복한 영생을 누리게 되었으나 이땅에 남아있는 우리는 내일 닥칠 일 을 알지 못하는 불쌍한 존재임을 잊고 아직도 육신의 안락은 한없이 자기를 위해 있다고 믿고 싶어하며, 곧 닥칠 죽음과는 자신을 연관짓고 싶어하지 않 는다고 다시 깨닫게 되었다. 주위에 가까운 분들이 하나 둘 떠날 때마다 우리는 잠시 허망한 삶을 돌아보 는 돗한 순간을 갖지만 곧 잊어 버리고 갖가지 현실적, 물질적 행복 을 추구 하는 일상으로 돌아간다. 오늘도 나는 ‘행복이란 무엇인가? 어떤 삶을 살아야 후회없는 삶이 되는 것 인가? 행복한 황혼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는 어리석은 인간이 다. “아마도 행복해지기 위해서 교포은행의 CEO 자리도 스스로 그만두고 나 오지 않았던가? 과연 후회없는 만족한 삶은 있는 것인가? 과연 행복이란 무 엇인가? 행복이란 어떤 상태를 말하는가? 결국 인간은 한평생 이 문제에 답 하려고 나름대로 노력하고 몸부렴치다가 사라져 가는 것이 아닌가?” 스스 로 반문해 본다. 유대인의 성전 탈무드에서는 행복을 재는 방법으로 두 가지를 들고 있다. 하 나는 ‘얻음’에 따라 행복을 재고 있다. 다른 하나는 ‘잃음’으로 재는 방 법이다. 이 방법은 건강과 질병의 관계와 비슷하다. 평소에는 건강을 감사 할 줄 모르다가 건강을 잃을 때에야 비로소 건강을 되찾고자 한다. 아픔이 나 괴로움을 느끼게 되어서야 건강할 때가 행복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보람과 소중했던 것을 잃어 버렸을 때에야 행복했던 것을 회상하게 된다는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환난과 고통을 통해서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 시련 을 극 복하는 신앙이 더욱 깊게 성숙해진다고 가르친다. 그 연단을 통해서 구약의 ‘욥’과 같이 인내와 고난 속에서도 믿음을 굳게 갖고 하나님 안에서 행복 하게 되는 것이다. 몇해 전 은행을 떠난 후에 내가 깨닫고 있는 마음의 양식은 “겸손할수록 허 리를 굽히고, 남의 비판에 경청할 수 있는 용기”였다. 37년 간의 은행 생활 을 스스로 접고 은퇴했을 때에 많은 비판에 직면했었다. 그러나 합리적이지 못한 경영과 의사 결정이라는 환경 때문에 스트레스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 는 미국의 한인은행 CEO들의 정신적 고통은 건강을 해치는 뱀의 독보다 더 해로울 수 있음을 체험한 나는 현실적으로 잃을 것이 더 많을 수도 있는 사 직을 결정했을 뿐이다. 지금 돌아보아도 나는 올바른 결정을 했다고 생각한다. 비록 현실적인 잣대 로는 실패했다고 여겨질지라도 그에 대응할 만한 큰 교훈을 얻었기 때문이 다. 더욱 더 겸손해지리라고 생각하고, 남아 있는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할 수 있게 됨으로써 마음 속에 진정한 평안을 얻는 길을 다시 보게 되었고 무 엇이 우리의 한시적 삶속에서 더 소중한 것인지를 다시 기억하게 된 나는 은 행장 시절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다. 그토록 돈이 많은 빌 게이츠나 워렌 버햇도 결국은 행복해지기 위해서 자선 사업쪽으로 남은 여생의 목표를 잡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남을 행복하게 하는 자선을 통해서 자신도 행복해 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자선(Charity)이 라는 말의 어원은 라틴어로 ‘그리스도인의 사랑’이라고 한다. 또 ‘베푼 다’는 뜻이다. 돈으로 얻을수없는 행복을 이웃을 위해서 베풂으로써 자기 자신도 행복해 짐 을 깨달은 사람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를 깨달은 성공한 삶을 사는 행 복한 사람일 것이다. 흔히 행복은 크고 좋은 일에서만 온다고 생각하지만 사 실 행복이란 가장 보람 있다고 생각하는 어떤 일을 완성하였을 때 찾아 오 는 것이 아닐까? 남아프리카의 넬슨 만델라는 교도소에서 27년을 복역했는데 그는 교도소 마 당 한 귀퉁이에 조그마한 밭을 가꾸어 보람과 기쁨을 누리며 희망을 포기하 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1993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얼마 전에 현존하는 사람들 가운데 가장 장수하던 126세의 노인이 노환으로 사망하였다. 필자의 나이보다 두 배를 살다가 가셨으나 과연 행복한 완성된 삶을 살았는지는 본인 만이 알 일이다. 평생을 순례자로 살며 그 누구보다 도 많이 성경의 복음을 전파한 빌리 그램함 목사도 이제 90세의 나이가 되 어 모든 사물이 때가 되면 그 기능이 저하되듯 육체가 쇄약해지고 기억력의 감퇴 때문에 그가 가장 즐겨 암송하는 다윗의 시편 23편을 다 외우지 못한다 고 한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 나의 평생에 선하심 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라는 이 시편은 다윗이 쓴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택함 받은 성도가 구원에 이르는 과정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 성도는 당장 사망의 음침한 골짜 기로 빠질지라도 완성된 삶을 살아 만족과 안식의 상태에 있음도 묘사하고 있다. 이제 인생의 황촌에 서서 인간적인 육신의 어려움에 적응하며 살아야 하는 빌리그램함에게 이 시편 23편은 완성된 삶,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여야 하는 가를 가르쳐 주었으나 어떻게 늙어가야 하는 것은 가르쳐 주지 않았다고 그 딸 안네 그래함 로츠(Anne Graham Lotz)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고 한다. 우리는 누구나 예외없이 늙어가고 인 생의 황훈을 맞이한다. 불란서 대통령이 었던 미테랑은 사회주의자였고 무신론자였다. 말년에 암으로 투병하던 그는 사후 세계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두려움 속에서 말년을 지냈다고 한다. 필자를 포함하여 늙어가고 있는 주위 분들이 받아들이고 싶어하지 않지만 또 아직 그 단계는 아니라고 강변하며 일상의 쾌락과 욕심으로부터 빠져 나 오기 싫어하지만 황혼기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되는 것은 삶을 마무리 하기 위한 자세와 죽음을 맞이하는 마음의 준비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빌리 그래함 목사같이 평생을 인생의 허무함과 하나님 안에서의 삶의 영원성 을 전파하던 분마저도 이제 인생의 황혼을 맞아서야 겨우 죽음을 맞이할 마 음의 준비가 되었음을 고백하고 있음을 생각할 때에 우리 평범한 세속인들 이 과연 인생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과정으로 죽음을 준비하며 변화된 삶을 살 수 있겠는지는 의문이다. 평생을 생활의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가족을 부양하고 주일날에는 교회에 가서 진정한 삶의 의미를 주님 안에서 찾고 있는 많은 평범한 크리스찬들의 의식 속에 인생의 황혼은 궁극적인 가치를 가지지 못한 이 세상 삶의 마 지 막 단계로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인생의 의미와 목표를 성취욕과 재물과 출 세와 기타 등등에서 찾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은 인생 자체가 미완성으로 끝 날 수밖에 없음을 겁내고 집착하며 때로는 추한 모습도 보여준다. 사후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사람의 지혜와 세상적 가치는 궁극적으로는 무 의미해지는 것을 알면서도 매일 매일의 시간의 흐름 속에 사는 그 동안은 그 리고 죽음이 바로 코앞에 닥칠 때까지도 그 무의미한 것들을 놓고 싶어하지 않는다. 쿠바를 47년 간이나 다스려온 피델 카스트로도 이제 82세의 노인이 되어 병상에 누워있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약한 황혼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 다. 인생의 황혼 아름답게 가꾸어 가야 미완성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삶일지라도 또 종교를 갖고 있지 않은 무신론자일지라도 인생의 황혼을 아름답게 가꿀 수 있도록, 그리하여 평생동 안 추구해온 욕심과 이기적인 가치관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또 언 제 닥칠지 모르는 죽음으로부터의 초대를 준비하며 다시 한번 자신의 모습 을 들여다 보아야 할 때이다.
457 no image |목회수상| '제주'가 선교지인 이유_유익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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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67 2009-06-24
'제주'가 선교지인 이유 유익순 목사·성도교회 “제주 선교에 교단적 역량 힘껏 기울여야” ‘선교’는 타 문화권 전도를 일컫습니다. 즉, 선교라 함은 타 민족에게 가 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타 민족에게 타 문화가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타 문화권에 속해 있는 제주도 제주를 한 번이라도 와 본 사람들의 공통된 반응은 “너무나 이국적이다” 라고 말합니다. 분명 우리나라임에도 너무나도 다른 이국적인 분위기가 있다 는 겁니다. 포괄적 선교 개념으로 볼 때 제주는 이미 타 문화권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래의 대화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혼저 옵서. 제주도 사투리로 말 호난 무신거옌 고람 신디 몰르쿠게?” “게메 마씀, 귀 눈이 왁왁하우다.” “경 해도 고만히 생각 호멍 들으민 조 금씩 알아집니다.” “제주도 사투리 촘말로 귀하고 아름다운 보물이우 다.” “호쏠 물어보게 마씀. 양, 공항더래 가잰허민 어떵 가민 될껀고 예.” “예, 이리옵써, 이 길로 쭉 가민양, 저기 옛날 기와집 바졈수게 저기 우다.” “경허곡, 삼성혈 있지 않으꽈? 거긴 어떵 가민 될껀고예.” “이 남문통 질로 그냥 굳작 올라강양 칼호텔 있수다. 칼호텔 지낭 동더레만 가 민 그엠에 소낭 밭 마씀.” “경허민 몇 분 걸리면 되코양?” “혼 십분 정 도 걸리면 될 거우다.” 제주도는 서울시의 약 3배 면적에 달하는 우리나라에서 최남단에 있는 섬입 니다. 육지와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지리적 조건과 또 기후를 비롯한 여러 환경적 요인들은 제주를 특별한 섬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아열대 지방에서나 볼 수 있는 많은 식물들이 있는가 하면 연 중 기온이 영 상을 유지합니다. 지리적 조건만이 아니라 언어와 문화적으로도 육지와는 다 른 확연한 차이를 보입니다. 특히 제주 방언은 제주의 3대 보물이라 할 만 큼 특이합니다. 특이한 만큼 토박이가 아니면 구사하기가 어렵고 알아듣기 도 쉽지 않습니다. 제주는 아직도 ‘포제’라고 해서 ‘마을 제사’를 지냅니다. 마을 제사 기 간이 되면 약 15일 동안 동네에 빗장을 쳐 놓고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합니 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여러 행 사를 진행합니다. 만약 그 영역 안에 교회 가 있으면 안 되기 때문에 마을에 교회가 서는 것을 싫어합니다. 초창기 우 리 교회가 동네 안에 있을 때는 마을 입구에 빗장을 치지 않고 교회를 제외 하느라 마을 입구에서 훨씬 들어온 곳까지 들여다 막곤 했습니다. 제주에 아직 남아있는 것 중에 ‘괸당’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괸당이란 친 척을 말합니다. 괸당은 이주 강한 씨족중심의 공동체 문화입니다. 이를 괸당 문화라 합니다. 괸당문화가 복음에 깊이 영향을 주는 이유는 친척이라는 거 대 공동체 안에 믿는 사람이 생기는 것을 허용치 않기 때문입니다. 이는 복음을 전하는데 절대적인 장애 요소가 됩니다. 물론 그 반대일 수도 있습니다. 예 컨데 괸당을 주도하는 사람이 믿게 됐을 경우 그 파급효과가 커 가족 대부분이 믿게 되는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경 우는 아주 미미합니다. 또 다른 독특한 문화적 특징 중 하나가 ‘신구간’입니다. 신구간은 매년 입 춘 전 그러니까 절기상으로 대한 5일 후부터 입춘 3일 전까지의 약 일주일 에 해당되는 기간을 가리킵니다. 이 시기에 제주의 모든 신들은 임무교대를 하기 위해 하늘의 옥황상제를 만 나러 가는데 소위 신들의 부재시기에 이사를 하거나 집 수리를 하면 탈이 없 다 하여 제주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 기간에 집중적으로 이사를 합니다. 지금은 제주도 세시풍속의 하나로 보는 경향이 있으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 이 집을 팔고 사거나 빌리는 일을 이 기간 중에 하고 있습니다. 목회가 어려운 것은 제주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입니다. 특히 개척을 하여 무 난히 성장한다는 것은 그 경우를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현실 을 반영한다고 하더라도 제주의 교회들은 그 형편이 더욱 심각합니다. 선교적 특성부터 충분히 살려야 앞선 시기에 세워진 몇몇 교회를 제외하고는 새로 개척되거나 작은 교회로 남아 있는 교회들은 이미 굳건하게 멈추어진 성장의 시계를 바라보며 낙심하 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선교지의 특성을 가진 곳에서 선교적 특징을 고려하 지 않은 목회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이라도 각 교단이 제주 목회를 선교적 측면에서 이해하고 지원함으로써 정체된 제주 교계에 활력을 불어 넣어야 할 것입니다.
456 no image |초대의 시| 그루터기_서요한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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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53 2009-06-11
455 no image |MK 소식| 하나님의 꿈을 꾸고 사는 고은이의 한국 생활_정고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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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88 2009-05-27
하나님의 꿈을 꾸고 사는 고은이의 한국 생활 정고은_한국외국어대학교 “거룩하고 흠 없는 하나님의 자녀 되기를” 안녕하세요! 가정의 달 5월을 맞이하여 인사올리는 한국외대에 재학 중인 러시아 MK (Missionary Kids, 선교사 자녀) 정고은입니다. 올해도 고등학교 졸업하시 는 MK 후배님들 힘내시고, 대학 입시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대하시고 언 제나 힘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에게 나누고 싶은 말씀은 부모님하고 같이 있는 동안 그 분들에게 “사랑한다”고 꼭 한 번 얘기하세요! 부모님 떠나서 지내다 보면 그렇게 말 씀 안 드린 게 후회될 수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노래 중 하나입니다. 누군가 널 위하여 누군가 기도하네 내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 때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날 위해서 누가 제일 기도를 많이 할까요? 부모님이 아닌가 싶습니다.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힘든 일은 없는지, 건강한지, 좋은 친구들은 많이 사귀는 지, 공부는 따라 갈 만한지, 기도는 하는지 등등. 요즘 학교에서 우경 언니와 함께 아침마다 큐티를 합니다. 우경 언니는 저 희 학교 국제학부 졸업반입니다. 수업 들어가기 전 언니랑 말씀 묵상하고, 기도하고 하루를 시작합니다. 학교에서 하나님 안에서 교제할 수 있는 동역 자가 있다는 것이 저에겐 큰 복입니다. 학교 들어오기 전 기도했던 것이 생각납니다. “하나님! 좋은 선배들, 동기 들, 룸메이트, 교수님들 만나게 해 주세요. 그리고 먼저 제가 좋은 동기, 좋 은 룸메이트, 좋은 학생이 될 수 있게 도와주세요”라고 귀한 만남을 위해 기도했는데, 우경 언니와의 만남은 기도의 응답인 것 같습니다. 제가 한국생활에 어떻게 적응했는지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빨리 적응할 수 있었던 것 중 하나는 봉사활동과 통역 아르바이트 였습니다. 사회에서 다양하고 유익한 경험들을 많이 해본 저에게는 큰 공부 였습니다. 좋은 분들 만나고 각각 다른 분야 일도 배우면서 그들로부터 조언도 많이 받 았습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만났던 것이 더 보람 있었 던 시간들이었습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 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를 사랑 안에서 그 앞 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 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 1:4-5). 얼마 전에 아침 큐티하면서 은혜 받은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그분 안에서 복 주실 계획을 세우셨다고 말씀합니다. 저를 거룩하고 흠이 없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실 계획이시라는 말씀에 저는 하나님의 꿈을 기대합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어떤 꿈을 주시는지, 그리고 어떤 일을 제가 하게 될지도 궁금합니다. 아래 글은 제 친구 미니 홈피에서 읽었는데, 너무 마음에 와 닿아서 올려 봅 니다. 이 글은 나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큰 일 이루기 위해 힘을 주십사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겸손을 배우라고 연약 함을 주셨습니다.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는 건강을 구했더니 보다 가치 있는 일을 하라고 병을 주셨습니다. 행복해지고 싶어 부유함을 구했더니 지혜로워지라고 가난을 주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자 성공을 구했더니 뽐내지 말라고 실패를 주셨습 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삶을 누릴 수 있는 삶 그 자체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구한 거 하나도 주시지 않았지만 내 소원 모두를 들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못하는 삶이었지만 내 맘속에 진작 못한 기도는 모두 들어 주셨습니다. 나는 가장 많은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454 no image |제언| 대법원 전원 합의체 5월 21일자 판결에 대하여_이승구 교수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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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25 2009-05-27
대법원 전원 합의체 5월 21일자 판결에 대하여 이승구_합신 조직신학 교수 “전문인 검증 장치 및 객관적 재판 절차 마련되어야” 인공호흡기를 제거해 달라며 식물 인간 상태에 빠진 김모(77,여)씨 가족이 신촌 세브란스병원 운영자인 연세대학교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호흡기 제거 를 명한 원심을 확정한 2009년 5월 21일자 판결에 대해서 대법원 판사 합의 체 중 소수 의견에 동의한다는 것을 밝힌다. 특히 원고의 상태 및 의사 추정에 대한 반대 의견에 찬동하면서 본 사안에 있어서 “환자가 회복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진입하였다고 단정하기 어렵 다”는 점을 주목하고자 한다. 소수 의견서에서 진술된 대로 “환자가 회복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이르렀 는지는 사망을 직접 초래하는 연명치료 중단의 허용 여부를 가르는 중대한 요건이므로 그 판단에는 신중을 기하여야 하고, 실제로 그 판단을 함에 있어 서는 환자를 계속적으로 진료하여 옴으로써 환자의 상태 를 직접적으로 얻은 자료에 의하여 가장 잘 알고 있을 담당 주치의의 의견이 원칙적으로 존중되 어야”할 것이다. 그런데 “원고를 치료하여 온 피고의 담당 의사가 극히 적은 가능성이기는 하지만 원고의 의식 회복가능성이 5% 미만으로라도 남아 있고 원고의 현재 상태를 기준으로 하더라도 그 기대 여명이 적어도 4개월 이상이라고 판단하 고 있는 점 등에 비추어, 원고가 의식 회복 가능성이 없다거나 원고가 짧은 시간 내에 사망에 이를 것이 명백하다 할 수 있는지 의문이고, 원고가 회복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있다고 쉽사리 단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이 사건에서 원고의 뇌가 비록 전반적으로 심한 위축을 보이고 뇌간 및 소뇌도 심한 손상으로 위축되어 있으나, 아직 뇌사 상태에 는 이르지 아니한 지속적 식물 인간 상태라는 점에 대하여는 담당 주치의와 감정의의 의견이 일치되어 있고”, 이는 “다수 의견도 인정하는” 것이라 는 소수 의견에서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이 사건 소제기 당시 및 제1심 변론종결 당시 원고의 기대 여명은 1년 내지 2년이라는 것이었고, 현재에 있어서도 적어도 4개월 이상이라는 것 이므로, 원고를 가리켜 앞에서 본 바와 같은 의미에서의 이른바 돌이킬 수 없는 사망의 과정에 진입하였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다”는 명백한 사실 을 적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수 의견에 따라 판결한 것을 매우 안타깝 게 여긴다. 또한 “설령 원고가 회복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이르렀다고 하더라도, 연 명치료 중단을 구하는 원고의 ‘추정적 의사’가 있다고는 할 수 없다”는 데에도 동의한다. 앞으로 이와 비슷한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에 명백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 는 문건에 의해서만 본인의 의사를 확인하도록 하지 않고, 본인의 의사를 추 정하여 제시하는 것은 여러 정황 속에서 오용될 가능성이 많은 것이므로 허 용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본 판결의 다수 의견에 따른 대법원 판결은 추정에 의해서 본인의 의사를 찾 을 수 있다는 것을 허용하는 판례가 되기에 원고의 추정적 의사를 언급하는 다수 의견과 판결에 강한 이의를 제기하면서 소수 의견에 동의하는 바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이런 문제에 대한 법제화가 진행 될 때에는 이번 대법원 판 결을 구속력 있는 것으로 여 기지 않을 수 있기를 촉구하는 바이다. 또한 향후 이런 문제에 대한 법제화를 위한 논의를 위해 다음과 같이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한다. 즉, 연명치료 중단의 법적 판단절차에 대한 별 개 의견 중 “민법 제947조 제2항(‘후견인이 금치산자를 사택에 감금하거 나 정신병원 기타 다른 장소에 감금치료함에는 법원의 허가를 얻어야 한다’ 고 규정)을 유추 적용하여 후견인은 의료인에게 연명치료의 중단을 요구하 는 것이 금치산자의 자기결정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최선의 판단인 지 여부에 관하여 법원의 허가를 받는 절차도 가능하다”는 진술을 존중하면 서 모든 사안을 법원의 재판에 의해 처리하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 한다. 이에 최소한 다음과 같은 절차를 따라야 한다고 여겨진다. ① 어떤 환자가 명확히 회복 불가능한 시점에 이르렀다는 결정을 매우 신중히 하기 위하여 당분간은 말기 암 환자의 경우만으로 한정해서 법제화하는 것을 허락하되, 이런 경우에도 ② 명확히 회복 불가능한 시점에 이르렀다는 당 기관 의사 2 명 이상의 소견과 다른 병원 의사 2명 이상의 소견에 근거한 각 병원 의료윤 리 위원회의 결정에 따라서만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453 no image |서간문| 내 생애 유일의 스승, 박병식 목사님께_권성영 사모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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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44 2009-05-13
내 생애 유일의 스승, 박병식 목사님께 권성영 사모_안산샘터교회 목사님,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저 성영이예요. 몇 해 전부터 스승의 날이 될 때마다 더 늦기 전에 목사님께 제 마음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 다. 마치 사랑하는 연인에게 공개적으로 프로포즈를 하는 것처럼 목사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것이 몹시 조심스럽고 떨리고 설레입니다. 1978년 여름이었습니다. 길에서 뛰어 놀다가 여름성경학교를 홍보하는 언니 오빠들에게 이끌려 송파제일교회에 발을 들인 것이…. 많이 가난했던 송파 에서, 그리고 더 많이 가난했던 송파제일교회 일곱기둥 예배당에서 저는 목 사님께 말씀을 배우고 신앙을 배웠습니다.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곧 쓰러 질 것 같았던 예배당의 일곱 기둥과 낡은 방석, 그리고 나무 신발장. ‘무궁 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던 예배당 앞 마당…. 지금의 송파제일교회 예배당 장소로 교회가 이전될 때 저는 우리집이 부자라 도 된 것처럼 신이 났었습니다 . 수요예배를 마친 후 교인들이 모래를 나르 고, 벽돌도 한 장씩 나르며 모두가 함께 예배당을 지었던 일도 생생합니다. 얼마였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린 마음에 건축헌금을 작정하고 용돈을 아 끼며 헌금했던 것도 생각납니다. 헌당예배를 드리는 날 2층 예배당에서 하나 님께 감사하며 울기도 했답니다. 목사님은 모르셨죠? ^^ 목사님, 기억하세요? 수요예배시간에 역대상, 하와 열왕기상, 하 강해 설교 하셨던거요. 많은 왕들이 하나님을 배역하고, 특히 이방 아내와 결혼하여 영 적으로 패망했던 왕들을 말씀해주셨습니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저는 그 설교 를 듣고 집에 걸어가면서 불신자와 결혼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답니다. 그때는 모두들 형편이 어려운 시절이라 집에 공부방이 제대로 없었습니다. 목사님께서 예배당 유아실을 공부방으로 사용하게 해 주셔서 시험기간마다 유아실에서 공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가끔, 시험기간이 주일과 겹치면 저녁 예배를 마치고 밤 11시쯤 목사님이 살며시 오셔서 밤 12시 넘어서 공부 시작 하라고 하셨습니다. 주일에는 공부하는 거 아니라고. 주일에는 TV도 보면 안 되고, 돈도 사용하면 안 된다고. 저는 목사님께 그렇게 철저히 주일 성수 를 배웠습니다. 목사님은 워낙 말씀이 없으신 분이라 목사님 옆에 있으면 얼음이 되는 것같 았습니다. 여덟살때부터 결혼하기 전까지 20년을 넘게 목사님을 뵈었는데도 목사님은 늘 어렵고 조심스럽고… ^^ 그래서 선뜻 목사님의 가르침에 정말 감사한다고, 목사님을 존경한다고 고백하기가 쉽지가 않았습니다. 이제 마흔살이 된 제가, 한없이 못난 제가 하나님의 교회를 개척하여 섬기면 서 이제야 용기를 내어 목사님께 고백합니다. 목사님, 저의 영적인 스승이 되어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제 영혼에서 배어나오는 신앙의 빛깔과 질감은 모두 목사님에게서 배운 것들이랍니다. 예배시간에 들었던 말씀, 중고등부 수련회에서 배웠던 성경, 철야기도 시간마다 들었던 목사님의 눈물 섞인 기 도소리….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목사님에게서 전수받은 신앙이 얼마나 귀 한 것인지를 절감합니다.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이 제 생애 가장 큰 복이었다면 송파제일교회에서 목사 님의 가르침을 받은 것이 제 생애 두 번 째 큰 복입니다. 목사님께 받은 사 랑과 송파제일교회에서 누린 은혜의 시간을 평생 잊지 않고 가슴 깊이 새기 겠습니다. 목사님은 제 생애 최고의 유일한 스승이십니다. 목사님을 존경합니다!!
452 no image |제 언| 총회 체육대회를 마치고_한광수 목사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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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66 2009-05-13
총회 체육대회를 마치고 한광수 목사_사명의교회 “남보다 더 많이 봉사해야 한다는 의식 가져야” 제4회 총회장기 노회대항 체육대회를 은혜롭게 잘 마치게 되어서 감사하다. 운동하기에 아주 좋은 봄 날씨에 많은 노회 목사 부부들이 참석하여 함께 어 울려 체육대회를 치룰 수 있게 되어 정말 감사하다. 체육선교회 회장 및 여 러 진행 위원들이 헌신적으로 수고에 아끼지 않고 박수를 보낸다. 노회대항 체육대회 무사히 마쳐 이렇게 함께 모여서 교단적인 체육대회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다른 교단에서 는 하기 어려운 일이다. 교단 설립 25주년 대회를 마치며 발족된 ‘목회동역 자 체육선교회’가 이끌어 오면서 작년부터 종목이 6개로 늘어났다. 대회 운 영 요강도 잘 만들어 졌으며 노회별로 선수들의 실력이 고려되어 대진표까 지 만들어져 짜임새가 있었다. 더욱이 제주노회까지 참석하여 모든 노회가 다 참석한 것 같아서 총회 체육 대회라는 이름에 손색이 없는 것 같아서 좋았다. 시 상도 노회별로 주어서 노 회의 단합을 이루어 내는 일에 일조했을 것이다. 아마도 선수들은 돌아가는 길에 식당에 들려서 푸짐하게 식사를 즐겼을 것으로 여겨진다. 아울러 다음 번에는 더 잘하기 위해서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다. 목사들에게 운동은 큰 보약과 같을 것이다. 친구를 사귈 수 있을 뿐만 아니 라 건강도 유지하며 휴식도 취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체육 에는 스포츠맨십이란 것이 있다. 이것이 무시되면 많은 시간을 소비하며 운 동을 했다 하더라도 마음이 시원하지 못할 것이다. 스포츠맨십에는 3대 요소로 구성된다. 첫째는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가리는 ‘공정의 정신’이요, 둘째는 악수에서 시작하여 악수로 끝나는 ‘우애의 정 신’이요, 셋째는 승리의 영광을 위하여 있는 힘을 다하는 ‘투쟁의 정신’ 이다. 이 세 가지 원리가 스포츠의 생명이다. 사실 우리는 하나님의 일꾼이 요 주의 종으로 자처하는 목사들의 모임이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이 보고 배울 수 있도록 성화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번 체육대회는 어떠하였을까? 사모들의 발야구에서는 심판의 판정에 대해 서 심한 불만을 보인 노회가 있었다. 어떤 노회에서는 사모가 아닌데도 데리 고 와서 노회의 옷을 갈아입히고 함께 시합에 참여시켰다고 한다. 릴레이에서는 60대가 원래 있었는데 왜 뺐느냐는 항의도 있었으며 선수의 진 로 방해 때문에도 말이 많았다. 어떤 릴레이 주자는 진로의 방해를 받았다 고 느껴서 중간에 뛰지 않고 바통을 가지고 그냥 서 있다가 한 바퀴 돌고 오 는 선수들 틈에 끼어서 그냥 뛰는 바람에 그 조에서 3등으로 들어갈 수 있었 다. 탁구시합에서는 선수 명단의 순서가 중요하다. 왜냐하면 순서를 잘못 짜게 되면 노회의 전력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한번 순서를 정해 서 내면 바꾸지 말아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이것이 잘 감독되지 못했다. 어 떤 노회에서는 왜 처음부터 선수가 중복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말해주 지 않았느냐는 항의도 있었다. 특히 탁구시합장은 여건이 너무 안 좋은 상태 였다. 어떤 사모는 본부에 와서 운영위원 중 어떤 분은 자격이 없다고 큰 소리로 따지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또 어떤 목사가 항의를 하자 대꾸해주는 분이 말하기를 “총회장에게 가서 따지십시오”라고 하는 말도 들을 수 있 었다. 그러나 실상 이것은 총회장과 상관이 없는 대회이다. 총회 주관으로 열린 것 이 아니라 체육선교회에서 주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체육선교회가 발족되어 4회까지 대회를 이끌어오면서 많은 수고를 하 였다. 이들의 노력으로 노회 목사님들이 운동으로 함께 친목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도와주기를 바란다. 이전에 노회장 연석회의에서 총회 상비부에 속하기보다 비 상임기구 로 남아서 체육대회를 주최하는 것이 좋다는 중지를 모았다고 한다. 그러나 계속하려면 보완해야 될 것이 필요하다. 우선 그 이름에 ‘선교’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 것이 옳지 않다고 여겨진 다. 이제까지 많은 수고를 한 ‘목회동역자 체육선교회’를 노회마다 조직 이 되어있는 ‘교역자회’와 연계해서 ‘교역자 연합회’로 운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어쨌든지 노회를 다 동원하여 총회적인 차원에서 치루는 큰 행사이며 여러 명이 헌신해야 가능한 일이다. 앞으로 더 잘하려 면 계속하여 수정 보완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몇 가지를 더 제안해 본다. 어느 종목에서 1등을 하였 다면 다음 번에 는 쉬게 하며 심판권을 주는 것은 어떨까? 왜냐하면 우리의 목적이 많이 참 석하여 친목을 도모하고 우애를 다지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함께 운동은 했지만 정작 소속도, 이름도 모르는 분들이 너무도 많았는데 이름표라도 달 아주었으면 좋겠다. 최선을 다한 이들에게 박수를 끝으로 세상에서 하는 것과 똑같이 행운권 추첨을 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 선수를 찾아내어 VIP상을 준다면 더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남보다 더하는 것이 당연한 목사들이기 때문이다.
451 no image |짧은글 긴여운| 불신자들보다 더 앞서야 할 신자들_장재훈 목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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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4 2009-04-15
짧은글 긴여운 불신자들보다 더 앞서야 할 신자들 장재훈 목사_내흥교회 베이비파우더에서 석면성분이 검출된 사건으로 대형마트 등 유통업체에서 관 련 매출이 크게 줄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석면함유 의약품 1122개 품 목에 대해 판매금지를 내렸다. 또한 유명화장품업체 2곳에서도 석면이 검출 되어 파문이 일고 있다. 식품의 유해성 함유 여부를 알아내는 것은 먹어보거나 사용해 보고 판단하 는 것 아니다. 의심이 드는 식품이나 그렇지 않은 식품이나 수집 채취해서 연구소로 가져가 정밀 검사를 통해서 판정하는 것이다. 맛이 있고 없고, 교회가 성장하고 안 하고, 분위기가 좋아지고 안 좋아지 고, 부흥하고 안 하고, 당장 문제가 있고 없고는 유해성 함유 여부를 판가름 하는 기준이 아니다. 만일 이러한 방법을 통해서 유해성 여부를 판단하는 자 가 있다면 코미디 중의 코미디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불량한 프로그램을 사용한 일부 목사들 중 에는 이런 말들을 하는 분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자신이 사용해 보니, 관련 프로그램을 사 용하는 이웃 교회를 보니 아무런 문제가 없더라”고 말이다. 한 마디로 ‘먹 어보니 그 속에는 석면도 들어있지 않고 니코틴도 없고 농약도 없고 식중독 균도 없더라’고 말하는 것과 동일하다. 유해성 함유 판정은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주부 개인이, 시민이, 개인 목사 나 신자가 사용해 보고 맛을 보고 ‘문제가 있다 없다’를 판단하는 것이 아 니다. 객관적으로 공인된 연구기관에서 정밀 검사를 통해서만 드러난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 총회 회원들과 교회와 신자들만큼은 제발 겸손한 마음 과 자세를 갖추고 이웃의 조언과 충고에 귀를 기울이고 전문기관의 연구 보 고서를 존중하는 겸손한 지혜자들이 되었으면 한다. 말만 부드럽게 하고 인사만 잘한다고 겸손이 아니다. 잠언을 보면 교만하고 완고한 자들은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만 행동한다고 한다.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절대 권력을 가진자들이나 독재자들이 주로 그리했다. 그래 서 결말은 비참했다. 이에 성경은 “교만은 패망 의 선봉”(잠 16:18)이라고 하였다. 바라기는 거듭나고 겸손한 목사와 신자라면 무엇을 하든지 불신자들 보다는 마음과 언행과 자세에서 한참 앞서가야 할 것이다.
450 no image |선교지소식| C국 서남지부 방문기_배윤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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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08 2009-04-15
C국 서남지부 방문기 “이곳이야말로 우선적으로 선교해야 할 지역” 배윤호 목사-은평교회 이번 C국 서남지부 방문은 지부장인 김 선생님의 요청으로 이루어졌다. 서남 지부에 속한 Y성과 X성에서 사역 중에 있는 총회 합신세계선교회(PMS) 선교 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이분들의 구체적인 형편도 듣고 아울러 위로와 격려를 해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접촉 방법 다양화로 복음 전파해 서남지부에는 은평교회에서 파송한 선교사 두 가정이 있어서 은평교회 해외 선교위원회 위원장님과 선교부 소속 위원 세 분과 동행을 했다. 파송 선교사 들은 물론 같은 지역에서 사역하고 있는 선교사들을 만나서 교제를 나누는 중에 그 지역 형편을 보다 자세하게 이해할 수 있으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북경을 거쳐 Y성 수도인 A시에는 밤에 도착했다. 다음 날 바로 A시 합신 선 교사님들의 모임에 참석했다. 부부를 포함해 14명의 선교사들이 참석했다. 이벤트 기획 회사를 운영하는 모 선교사의 사무실에서 모였다. 요새 한창 선 교 이슈가 되고 있는 선교사역으로서의 사업(Business As Mission)의 현장에 서 모인 셈이다. 아직은 시작 단계이지만 비자 해결도 되고 더불어 현지인들에게 기술을 가르 쳐 주어서 선교 전략으로 사용하게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역시 안정된 비자 해결이 장기적 사역을 위해 우선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라는 것을 실감 했다. 대부분의 선교사들이 아직까지 학생 비자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좋은 돌파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분 한 분 사역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유치원 운영, 대학생 캠퍼스 전 도, 주일학교 교사 및 목회자 훈련, 초등학교 교사 전도 및 양육, 장애아 사 역 등 은사와 부르심에 따라 다양한 사역들을 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 세 가 정은 Y성 주변 미전도종족들을 택해서 전도 및 교회 개척 사역을 진행한다 고 했다. 이 분들의 이야기를 듣는 중에 발견한 점은 한 지역에서 장기적으로 사역하 고 있는 분들이 많지 않다는 점이었다. 비자와 신분의 불확실함과 그에 따 른 당국의 감시 때문에 할 수 없이 옮겨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또 다른 이 유라면 사역의 비 전과 목표가 분명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강의 요청이 이미 있었기 때문에 Y성에 와 있는 선교사로서 자신의 Vision Statement(비전 문구), Mission Statement(사명 선언), Core Value(핵심 가 치)가 무엇인지 각각 생각해 보게 하고 실제로 그 문구로 만드는 방법에 대 한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를 가졌다. 그 다음 날 Y성의 유명한 관광지 한 곳을 돌아보면서 한 소수민족을 접할 수 있었다. 어떤 선교사가 사역하는 농아인들을 만나서 식사와 더불어 교 제, 그들이 만들어 판매하는 각종 수공예품 가게도 방문했다. 김 지부장 가 족과 시간을 보내고는 그날 밤 함께 X성의 B시에 도착했다. B시에서는 5가정을 만나서 A시보다는 긴 시간을 교제했다. 그곳 선교사들의 사역 내용은 A시의 선교사들과는 조금 달랐다. B시 시내에서 직접 교회를 개 척하거나, 목회자 재교육을 하는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그중 한분은 X성에 있는 소수 민족 중 하나인 이족을 위해 꾸준히 준비하고 접촉하는 선교사도 있었다. 선교사들의 사역 이야기를 들으면서 A시와 같은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 눈 후에 직접 비전 문구 등을 만 들어 발표하는 시간도 가졌다. X성의 수도인 B시는 C국 서남부 지역의 중심 도시이며, 주변 소수민족들로 나아가는 선교 전략적인 관문 도시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이곳에는 여러 국 가와 다양한 단체들로부터 많은 선교사들이 모여 있고 다양한 종족들을 위 한 시도들이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티벳(장족이라고 부름)으로 갈 수 있는 관문이 바로 B시이다. B시에서 여행 허가증을 받아야 하고, 이곳에서 티벳으로 가는 비행 편과 버스 등이 연결된 다. B시 시내에서 쉽게 티벳 사람들을 볼 수 있었는데, 이들이 모여 사는 지 역에는 최근 티벳 사람들의 독립요구 때문인지 무장한 경찰들이 그 입구를 지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다음에 이곳을 방문할 기회가 다시 오면 꼭 티벳 땅을 밟고 기도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B시에서 자동차로 두 시간 떨어진 지진 발원지를 찾아갔다. 지진 피해 지역 을 보면서 지진의 피해가 얼마나 컸는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백 명 이상의 학생 시체를 꺼내지 못했다고 하는 무너진 학교 건물, 아파트, 시장 등을 그 대로 놓아두고 있어서 방문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안타깝게 만들었다. 우리 선교사 들이 힘을 모아서 피해 지역 주민들을 도왔고, 그 결과 믿는 사 람들이 생겼다는 감사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지진 현장을 돌아보면서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일어났던 쓰나미가 떠 올랐 다. 그 때 쓰나미 때문에 수많은 이슬람인들이 주님께로 돌아왔는데 이곳도 주님의 섭리가 거기에 있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선교사들도 그 지 역 사람들에게 왜 이곳에서 지진이 일어났느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C국 서남부 지역을 방문하면서 결론적으로 바울 사도의 선교 목표가 마음에 보다 실감 있게 와 닿았다. “이 일로 인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또 내가 그리 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기록된바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5:19-21). 복음 전파의 기회 활짝 열려 이 지역이야 말로 바울이 말하는 우선적으로 선교해야 할 지역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449 no image |목회수상|“예수 그 양반 옛날에는...” 윤순열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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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95 2009-03-04
“예수 그 양반 옛날에는...” 윤순열 사모_서문교회 “변할 것같지 않던 그 분의 신앙에도 변화 나타나” 지금은 고인이 되셔서 하늘나라에 계시지만 문득 그 집사님을 생각하면 절 로 웃음이 나올 때가 많습니다. 어느 수요일 저녁예배시간에 그분은 딸과 사 위의 부축을 받으며 편치 않은 몸으로 교회에 첫발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그 후 그분은 신앙생활 중에 갖가지 에피소드를 낳으며 우리의 가슴에 귀중한 한분으로 남아있습니다.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는 집사님 신앙심이 깊었던 큰딸은 친정어머니인 그분에게 오랫동안 전도를 하였으나 그분은 거부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고혈압이던 그분의 건강에 이 상이 나타났습니다.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진 것입니다. 그분은 뇌수술을 받고 병환 중에서 딸의 전도를 받아드리고 교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수술한 부위가 아직 완쾌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모자를 푹 눌러쓰고 온전치 못한 걸음걸이로 그분은 모든 예배 에 열심히 참석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분 은 예배 중 목사님의 설교와 자기의 생각이 맞지 않으면 즉석에서 반론하는 일이 종종 있어서 설교자를 곤혹스럽게 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시간이 주일 낮 예배이건 저녁예배이건 새벽이건 상관없이 즉석에서 반론 하는 통에 잠시 예배가 소란스러워지기도 하였습니다. 앞자리에는 나이 드 신 할머니들이 쭉 앉아 계셨는데 때로는 그분이 반론할 때 동의까지 얻어가 며 말씀하는 바람에 설교자인 남편이 몹시 곤욕스러워하기도 하였습니다. 어느 날은 목사님이 설교 예화 중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지구가 태양 주 위를 돈다’는 말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지구가 왜 돌아, 태양이 도는 것이지”라고 말하는 바람에 온 장내가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할머니구역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바쁜 젊은 사람들과 달리 어르신들은 구역예배에 모두 빠짐없이 참석하여서 예배 분위기가 참 좋았습 니다. 예배가 끝나면 과일이나 고구마, 부침개 등으로 풍성하게 대접하여 흥 겨운 파티 분위기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날도 많은 분들이 참석하여 예배를 드리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구 역공과 는 마가복음 내용을 다룬 예수님의 사역을 말씀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 은 이 세상에서 계실 때 각종 병자들을 불쌍히 여기사 중풍병자, 소경, 귀머 거리, 간질 병자들을 치유하셨습니다. 그분은 오늘날도 변함없이 우리의 연 약함을 불쌍히 여기시고 치료해 주십니다.” 이렇게 설교하고 있는데 갑자 기 그분이 말문을 열었습니다. “예수, 그 양반 옛날에는 병도 잘 고쳐 주시더니 요즘에는 효험이 없어.” 거침없이 툭 말을 뱉었습니다. 그러자 옆에 앉으신 할머니 한분이 “다 그 냥 하는 소리지, 그걸 다 어떻게 믿어”라고 맞장구를 쳤습니다. 그러자 분 위기가 점점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이 말에 권사님은 민망하셨던 지 “예배시간이 왜 이리 소란스러워”하고 제지를 하였습니다. 어느 날은 그분 집에서 구역예배를 드리는 중에 요엘서를 주제로 나온 성경 구절을 읽고 있었습니다. “팟종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 긴 것을 늣이 먹고 늣이 남긴 것을 황충이가 먹었도다.” 그런데 예배 중 그분의 안색이 몹시 좋지 않았습니다. 분명 그분의 심기가 불편한 것 같았습니다. 그러더니 잠시 후 더 이상 은 못 참겠다는 듯 “우리 집은 왜 이렇게 말씀 괘가 안 좋아, 먹고 먹고 다 먹고 우리 집은 뭘 먹어” 라며 홱 토라지고 말았습니다. 전들 어쩌겠습니까. 마음대로 정할 수 없는 차례대로 이어지는 공과내용이 니 제 마음대로라면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라고 전하였을 것을 그렇 게 못하여 할머니를 화나게 만들었으니 난감했습니다. 그러던 그분이 세월이 흐르며 이슬비에 옷 젖듯이 믿음이 조금씩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엉뚱한 면은 없어지지 않아 가끔씩 크고 작은 에피소드 를 남기기도 하였지만 많은 모습이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특별히 작은딸 문 제를 통하여 그분의 믿음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단란했던 작은딸 가정에 사위가 외도를 하면서 가정이 풍비박산이 나는 일 이 생겼습니다. 순하디 순한 작은딸은 아무런 힘도 없이 아이들을 빼앗기고 이혼을 당하여 친정집에 와있게 되었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친정어머니인 그분이 얼마나 애통해하는지 옆에서 볼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어느 날 그분은 비장한 각오를 하고 저희에게 찾아왔습니다. 지금부터 3일 금식을 하겠노라고 하였습니다. 저희는 말렸습 니다. 그분의 건강이 완쾌된 상태가 아니어서 불편한 몸으로 생활하고 있는 것을 알기에 금식하지 말고 그냥같이 기도하자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결심을 바꾸지 않고 3일을 금식하였습니다. 그리고 새벽마다 앞자리에 앉으셔서 한나처럼 애통해하며 눈물로 부르짖었습니다. 그렇게 몇 개월이 흘러갔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뇌리에서 차츰 그 일을 잊 어가고 있던 어느 날 봄 대심방이 돌아왔습니다. 아파트단지가 각종 봄꽃으로 만발한 따스한 봄날에 그 가정을 심방하게 되었 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현관문 입구에서부터 우리를 맞이하는 모습이 예전 같지 않았습니다. 예배 중에는 ‘아멘, 감사합니다’ 하면서 우리들이 송구 스러울 정도로 정성을 다하였습니다. 무언가 몹시 좋은 일이 있으신 듯 기분 이 매우 좋았습니다. 예배가 끝난 후 권사님이 말씀하였습니다. “이 집에 아주 좋은 일이 있어 요. 사위가 와서 싹싹 빌고 딸을 데려 갔대요.” 우리는 이 말을 듣고 너무 나 놀랐습니다.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던 작은딸의 가정이 다시 회복되어지 는 기적을 맞보고 그분은 그렇게 기뻐하였던 것입니다. 딸의 가정이 살기가 어려울 때는 착실하게 가정을 지키던 사위가 돈이 생기 면서 부인을 배척하고 한눈을 팔면서 가정이 깨어지는 불행이 찾아왔습니 다. 사위는 순하디 순한 부인의 약점을 이용하여 아이들을 빼앗고 이혼을 하 여 쫓아내버렸습니다. 그리고 사귀던 여자와 신바람 나게 새살림을 차리고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몇 개월 후 어쩐 일인지 그 여자가 종적을 감추고 소리 소문 없이 바 람과 함께 사라져서 소식이 없다고 합니다. 여자가 없는 집은 살림이 엉망이 고 철없는 어린아이들은 엄마를 찾고 그때서야 사위는 부인 생각이 나면서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처갓집으로 찾아와서 잘못을 싹싹 빌더랍니다. 그때 를 놓치지 않고 그분은 다시는 딸을 괴롭히지 않고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각 서를 철저히 받고 딸을 돌려주었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여자가 들어와서 본부인이 알뜰살뜰 사느라 장만하 지 못했던 헌가구들을 새것으로 바꾸어놓고 집수리까지 해놓았더랍니다. 그 래서 작은딸은 알뜰살뜰 사느라 바꿀 엄두도 못낸 가구들을 다른 사람이 와 서 다 수리하고 바꿔놓은 집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물론 신앙을 가지고 새 출 발하였답 니다. 그 일을 통하여 변할 것 같지 않던 그분의 신앙에도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음 은 물론입니다. 그분을 향하신 하나님의 드라마틱한 계획은 그분을 놀랍게 변화시키셨습니다. 극적인 반전으로 놀랍게변화돼 그후 그분은 집사의 직분도 받고 열심히 신앙생활하다가 주님의 나라에 갔습 니다. 그분의 기도는 또 열매를 맺어 남편되는 할아버지가 열심히 신앙생활 을 하고 있습니다.
448 no image |기고|‘부흥, 합신 리바이벌 축제’에 초대합니다_조봉희 목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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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21 2009-02-04
‘부흥, 합신 리바이벌 축제’에 초대합니다 조봉희 목사_합신총동문회장, 지구촌교회 우리 합신 총동문회는 목회의 발전소와 지원 센터가 되기를 꿈을 꾸고 있습 니다. 그동안 모든 동문들이 쌓아온 공적을 기초로 힘찬 엔진을 돌리고자 합 니다. 과거 회상적 명사에서 미래 지향적 동사로 전진하고자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미래 선택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합신 1회부 터 29회까지와 목회대학원 동문 모두가 한 마당에 모이는 합신 리바이벌 비 전 공유 축제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 합신 동문들이 그 순수한 의 지와 열정을 함께 분출시켜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1905년 일본과 을사조약을 맺음으로써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 당했습니다. 1907년 고종마저 일제의 강요에 의해 퇴위 당하는 민족적 위기 를 맞아 유사 이래 가장 어두운 터널에 진입했습니다. 이런 민족적 아픔과 절망적 상황에서 기독교 신자들의 절규하는 기도운동이 전국적으로 퍼져나갔 n습니다. 을사조약 다음 해인 1906년 평양과 서울에서 성령대망 기도대회를 열었습니 다. 이때 선교사들은 세계 도처에서 성령의 임재와 부흥이 전개되고 있음을 소개해주었습니다. 당시 존 스톤 선교사가 “조선에서는 누가 성령 충만을 받고자 하느냐, 원하는 자는 거수하고 기립하라”고 외칠 때 당시 신학생이 오, 장로였던 길선주가 일어섰습니다.(사진 1) 바로 그 다음 해인 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 부흥사경회에 성령의 불이 떨어 졌습니다. 집회 때마다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어 교회마당까지 자리를 깔 고 앉았습니다. 함경도 원산에서부터 부흥의 불길은 계속 남진하여 전국 강 산을 성령의 열기로 불붙여 나갔습니다. 이처럼 한국교회는 최 단기간 동안 에 2천년 기독교 역사상 전무한 부흥을 일으켰습니다.(사진 2) 백낙준 박사는 이렇게 해석합니다. “그것은 장차 한국 민족을 당신의 백성 으로 삼으시려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였다.” 한국교회는 고난을 통해 성령 의 능력으로 부흥한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1894년 청일전쟁이 일어났을 때만 해도 북녘 땅의 평양은 기생 과 환락의 도성, ‘한국의 소돔’으로 불렸었습니 다. 그런데 불과 15년이 채 지나지 않은 1907년에 평양은 거룩함으로 불타는 ‘동방의 예루살렘’으 로 바뀌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놀라운 변화가 가능했을까요? 성령 충만한 부흥을 통하여 절망 당한 사회에 소망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부흥운동이 민족과 나라의 재건운동을 가져왔고, 그야말로 새로운 사회(New Society)를 만든 것입니다. 우리 한국교회가 뜨겁게 부흥할수록 사회는 모두가 감탄할 만큼 새롭게 달라 져갔습니다. 해리스 선교사가 한 말을 그대로 인용하면 “수천 명이 글 읽기 를 배우기 시작했고 술주정꾼, 도박꾼, 도적놈, 오입쟁이, 살인, 도박, 광신 적 유학자들, 구태의연한 불교신도들, 수천 명의 잡신 숭배자들이 새 사람으 로 바뀌었으니” 세상이 맑아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령의 부흥과 함께 사 회가 새롭게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다. 이런 영적 부흥으로 학교가 설립되고, 문맹 퇴치 운동이 일어나고, 병원이 설립되고, 금주 금연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으며,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 고, 무속과 우상숭배에서 해방되고, 일제 식민지 정책에 대항할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 독립운동을 일으키 게 되었습니다. 한 마디로 교회가 부흥하는 길만이 민족을 살리고 사회를 새롭게 변혁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근대교회 부흥의 최고 선구자인 챨스 피니는 교회의 부흥운동 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불화와 증오, 그리고 악한 험담들이 오고 간다면, 그때가 바로 부흥을 사모해야 할 시기이다. 교회 안 에 세속적인 풍조가 자리 잡아 가고 있다면 그때 역시 부흥이 필요한 시기이 다. 교인들이 천하고 추잡한 죄악들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면 그것은 바로 교 회가 일어나 신앙의 부흥을 달라고 하나님께 울부짖어야 할 때이다.” 요즘 우리나라의 상황을 직시해볼수록 그 어느 때보다도 교회의 뜨거운 부흥 이 절실하게 요구됩니다. 더욱이 국가 경제의 회복을 위해서도 먼저 영적 부 흥회복이 필요합니다. 부흥(Revival)이라는 말 그대로 교회가 부흥할수록 사 람들은 삶의 활력을 회복합니다. 힘을 되찾게 됩니다. 생기와 원기를 되찾 게 됩니다. 사회가 소생합니다. 지금이야말로 부흥 회복이 필요한 때입니 다. 어느 신학자의 말대로, 부흥이란 “땅위에 임하는 하늘이요, 땅에서 체험하 는 하늘이다”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부흥 체험을 사모해야 합 니다. 목말라 해야 합니다. 갈망해야 합니다. “부흥이란 그 누구도 분명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일단 일어나면 모든 사람들이 알 수 있는 어떤 것입니 다.” 이번 합신 리바이벌 축제를 통하여 우리 모두 땅에 임하는 하늘을 체험하는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부흥현장을 만들어 보십시다. 금세기 영적 지도자 멕스웰(John Maxwell)은 부흥의 현상 여섯 가지를 다음 과 같이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첫째, 사람들이 기도한다. 부흥하는 교회일수록 기도가 뜨겁다. 둘째, 하나님이 임재하신다. 하나님을 개별적으로 깊이 체험하는 은혜가 넘 친다. 셋째, 사람들이 회개한다. 진정한 부흥은 옛 생활의 죄를 정리하고 거룩함으 로 나아간다. 넷째, 하나님이 사람들을 새롭게 소생시키신다. 부흥 체험을 통해 활력과 열 정을 되찾는다. 다섯째,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도하며 사랑을 나눈다. 부흥 시대를 맞 이할수록 전도와 사랑이 뜨거워진다. 여섯째, 하나님이 사람들을 훈련시키시고 능력을 주셔서 주변에 변화가 일어 난다. 우리는 이런 부흥을 목말라합 니다. 갈망합니다. 사모합니다. 기대합니다. 그 래서 이번에 합신 리바이벌 비전 축제를 개최하는 것입니다. 우리 합신을 통 해 한국교회에 새로운 성령의 불길을 퍼뜨리고 싶습니다. 저 북녘 땅까지 Gospel Crusade를 북진시키고 싶습니다. 만주 벌판과 시베리아 평원을 넘어 예루살렘까지…… 현대교회는 단순히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식(survival mentality)에서 새 역 사의 지평을 이루어 가는 부흥의식(revival mentality)으로 전환되어야 합니 다. 그저 근근이 현상 유지하는 교회가 아니라 새 시대, 새 역사를 주도하 는 부흥의식을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합니다. 요즘 한국교회는 우리들의 마음을 새롭게 해주고 위축된 심령에 신바람을 불 어넣어주시는 성령의 불길이 다시 필요합니다. 청교도 설교자인 토저(A. W. Tozer)는 새로운 부흥의 필요성을 이렇게 호소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부흥이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우리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부흥이 필요하다.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부흥이 필요하 다. 자기희생에 개의치 않는 부흥이 필요하다.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불과 물을 지나는 것을 특권으로 여 기는 부흥이 필요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 리는 세상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고 성령님의 영향을 너무 적게 받는다.” 경애하는 합신 동문들이여! 이번 동문수련회에 선후배 모두가 함께 모여 마가 다락방을 만들어봅시다. 위로부터 내려오는 능력을 받아 새로운 목회 엔진을 돌려 봅시다. 사모님들 도 모시고 오셔서 부부가 함께 성령의 동력으로 부흥의 파도를 일으켜봅시 다. 우리가 사모하고 갈망하는 만큼 21세기 사도행전 29장을 써내려갈 것입 니다. 경애하는 동문 여러분을 합신 리바이벌 축제에 열렬히 초청합니다(Warm Welcome to Hapshin Revival Festival).
447 no image |제언| 고백 신학으로의 복귀해야 할 당위성_장수민 목사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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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42 2009-01-21
고백 신학으로의 복귀해야 할 당위성 장수민 목사, 칼빈아카데미 대표 기독 지성인이라면 지금이야말로 정통신앙(正統信仰)의 회복이 절실히 필요 한 시대임을 절감할 것이다. 그런데 정통신앙의 회복을 위해서는 정통신학 (正統神學)의 도움이 필요하다. 올바른 신앙을 위해서는 반드시 신학이라는 토대가 필요하고, 성경은 이 토대의 기반이 된다. 신학과 성경은 동일한 진리 체계를 형성하여 우리를 거듭나게 해서 우리의 신앙이 올바른 모습을 취할 수 있도록 예수 그리스도를 밝히 드러내 보여준 다. 이때 신학은 진리 표현에 있어서 성경과는 다소간 다른 형태를 취한다. 왜냐하면 신학은 성경의 계시 체계와 배치되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서 다양 한 표현 형태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하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1. 역사적 전통신학 정통신학의 출발점은 성경이고 또한 반드시 성경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성 경신학' 혹은 '성경의 신학' 또는 '성경에 대한 객 관적 신학'이란 용어를 사 용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정통신학이란 말을 쓰는 데는 필 수적인 이유가 있다. 그것은 교회가 시간의 역사 속에서 신학의 왜곡과 변질을 통하여 제 모습을 상실하는 불행한 과거를 겪었기 때문이다. 이 왜곡과 변질의 신학과 과감히 맞서 싸우면서 본래의 성경 진리 체계를 회복하는 과정이 있었는데 이러한 사실을 가리키려는 의도로 정통신학이란 말을 사용하는 것이다. 결국 현상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지금 우리 앞에는 정통신학과 가짜신학이 놓여져 있다. 성경의 진리체계와 어긋나는 신학은 가짜이다. 이때 가짜신학 은 언제나 인간의 행복에 중점을 두는 인본주의 신앙 형태를 취한다는 데서 공통점을 드러내 보이며, 그러한 성격상 양적으로도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 다. 오늘날 이들 가짜신학에 의한 가짜 신앙이 득세하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그러므로 정통신학의 회복, 곧 정통신앙의 회복이 필요하 다. 그런데 정작 문제의 심각성은 우리 안에서 나타난다. 왜냐하면 지금 성 경으로의 복귀를 주창하는 정통신학권 내에서조차 성경적 신학의 정체성 확 립에 혼 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원론적인 의미에서 보자면, 정통신학의 회복이란 칼빈주의(Calvinism) 로의 복귀를 떠나서는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칼빈을 우상처럼 받들겠다는 의도가 아니다. 지금까지 우리를 한결같이 진정한 경건, 곧 살아계신 참 하 나님께 대한 살아있는 신앙으로 인도해준 신학자로서, 자기 자신이 전개한 신학과 신앙의 실천에 있어서 칼빈만큼 성경 사상에 확연했던 사람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2. 칼빈 사상의 재발견 최근 들어 칼빈주의 신학의 정체성 확립이 겪는 혼란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 는 신학자들이 늘고 있는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현상이다. 이들은 아리스토 텔레스의 철학에 기초하여 로마 카톨릭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가 확립한 신학 체계인 스콜라주의(Scholasticism)가 정통신학권 내 에서 부흥하는 현상을 우려의 눈빛으로 간파한다. 물론 개혁주의 교회권 내에 개신교 스콜라주의가 하나의 발전 형태를 취해 나온 것은 어제오늘에 시작된 일은 아니다. 본래 칼빈의 성경적인 신앙과 신 학 형태는 그가 그것의 건조성과 합리주의성 때문에 스콜라주의를 철저하게 외면했다는 데서 잘 나타났다. 그러기에 칼빈은 이후 개혁주의 교회의 신앙 고백의 원천 역할을 했던 자신의 걸작 기독교 강요를 신학대전(Summa Theologiae)이 아닌 경건대전(Summa Pietatis)으로 호칭했던 것이다. 필립 샤프(Philip Schaff)는 자기 시대의 개신교가 걸렸던 질병 중의 하나 로 합리주의(rationalism)를 들었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 무서운 암적 요소 인 신앙주의(believism)가 하나 더 끼어 든 상황이다. 이 신앙주의는 이신칭 의 교리를 오해한 합리주의와 인본주의가 결합하여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이러한 현상은 스콜라주의 신학이 어거스틴이나 칼빈의 예정론과 같은 교리 를 경건과 신앙으로써 대하기보다는 합리적으로만 이해하려고 하는 오류에 빠져 있는 데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칼빈은 살아 있는 신앙과 경외심으로 예정론을 다루었지만 오늘날 현대 스콜 라주의자들은 이성과 논리를 앞세워 분석과 사변으로 일관한다. 그래서 전택 설이니 후택설이니 하는 용어의 정립과 이에 대한 논리적 이해와 설명에만 집착하지, 실제적으로 이 예정론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으로는 제대로 연 결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n루이스(C. S. Lewis)가 그의 명작 '순전한 기독교 신앙'에서 말한 바는 주목 할 필요가 있다(Mere Christianity, p. 155.). "오늘날 새로운 것인 양 자랑 스럽게 내보이는 하나님에 대한 개념들의 상당수는 훌륭한 신학자들이 수세 기 전에 이미 시험해보고 퇴짜놓았던(rejected) 것들이다. 그러므로 현대 영 국에 유행하는 종교를 믿는 것은 퇴보(retrogression)이다." 사실 신앙의 성향적인 측면에서 볼 때 루이스는 영국 성공회 소속의 신자이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누구보다도 복음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사람으로 서 옛날 청교도 목회자였던 리챠드 박스터(Richard Baxter)를 존경했고, 그 가 항상 강조했던 '순전한 기독교 신앙'에 대한 메시지를 좋아해서, 이렇게 자신의 작품명으로 사용하기까지 했다. 오늘날 기독교가 우려할만한 정도로 퇴보하고 있는 현상을 직시하고 대안을 찾되, 제대로 찾아야 한다. 사실 겉으로 볼 때에는 기독교가 하루가 다르게 진보하는 것 같다. 하룻밤만 자고 나면 호기심에 사로잡힌 현대인들의 욕구 를 만족시켜주는 그들의 생각에 들어맞는 새로운 것들이 부지기수로 나타나 고 있다. 3. 오직 성경과 전체 성경 개혁주의 정통 신학권조차도 내부적으로 혼란에 빠져 있는 이 위기의 시대 에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해야 성경이 제시하는 신앙의 길을 제대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하지만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성경으로 돌아가면 된다. 그 리고 성경으로 돌아가려면 지금 유행처럼 퍼지고 있는 '변질된 정통신 학'과 '실용주의 현상신학'이 아니라 진정한 칼빈주의자들이 수립한 '경건신 학'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것은 칼빈의 기독교 강요(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자체에 주목하는 일이요, 그것이 기반을 제공한 역사적 개혁교회의 신앙고백 문서들 로 돌아가는 길이다. 우리의 신앙 개혁은 '신앙고백적 신학'의 토대 위에 세 워져야 한다. 헤세링크(I. J. Hesselink)는 "고백되지 않는 신앙고백은 죽은 신앙이요, 참 된 신앙이 존재하는 곳에는 항상 신앙고백이 존재한다"라고 한 오스터헤이븐 (M. E. Osterhaven)의 말을 소개한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의 입장에서 실효적인 측면에서 우선적으로 붙잡아야 할 '하나되는 세 개의 신앙고백' 두 쌍이 있다. 처 음 한 쌍은 벨기에 신앙고 백,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도르트 신경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음 한 쌍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두 쌍의 신앙고백과 요리문답은 개혁주의 교회가 생명처럼 여긴 신학이 며, 색채에 있어서 철저하게 칼빈주의적이며, 이 기반 위에서 역사적 개혁주 의 교회의 정체성이 확립되었다. 따라서 이 두 쌍의 하나되는 세 개의 신앙 고백은 오늘날 우리가 구현해야 할 실제적인 신앙의 모습과 방향을 제시함 에 있어서 성경적으로 아주 정통적이며 매우 실효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공식화된 신앙고백은 성경해석의 지침이다. 개혁교회 성도들은 이러한 신앙 고백 학습을 통하여 자신의 신앙을 성경적으로 고백하면서 세워나가는 것이 다. 사실 신학이라는 지침이 없이는 성경은 신자 개개인에게 너무 방대하고 복잡 한 계시 체계이다. 게다가 오늘날 '오직 성경'(sola scriptura)에 근거했다 고 주장하지만, '전체 성경'(tota scriptura)이라고 하는 주연된 사상 체계 와는 전혀 맞지 않는 주장들이 상대적으로 난무하고 있다. 따라 서 반드시 신학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때 이 신학은 개인의 머리에서 나 온 무슨 획기적인 학문적 결과가 아니라 '역사 속에서의 교회의 고백'을 통 하여 성경적으로 인증된 것이어야 한다. 마치는 말 역사적 개혁주의 교회의 신앙고백과 요리문답들의 중요성은 절대적 가치를 갖는다. 신앙고백이 없이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종교적 환상이다. 교회 의 검증을 받지 못한 신학, 곧 정통성을 상실한 머리만의 인본주의적 스콜라 주의 신학은 시대마다 다양한 옷을 입고 나타나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삼는 종교주의자들을 끊임없이 양산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 주변에 진정한 신앙체계인 신앙고백과 요리문답 교육들 이 사라지고, 정통주의 신학자들이 일찌감치 점검해 보고 퇴짜 놓았던 신앙 형태들이 득세하는 데서 여실히 증명되고 있다. 이제 이 혼돈의 시대에 한 순간도 주저말고 역사적 개혁주의 교회의 신앙고 백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것은 신앙고백과 요리문답의 각 조항들을 단순히 앵무새처럼 암송하고 반복하자는 의미가 아니다. 이 시대의 성도들이 성경 진리 체계에 일치하는 신앙의 삶을 살아감으로써 그 러한 삶을 실제로 살아내었던 역사적 개혁주의 교회의 생명과 연합되기 위 해서는 반드시 계승하라고 요구하는 교회의 의무적인 유산임을 분명하게 깨 달아야 할 것이다.
446 no image |목회수상| 가장 감동적인 눈물의 선교헌금_김명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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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74 2009-01-14
가장 감동적인 눈물의 선교헌금 김명혁 목사(강변교회 원로/선교목사,한복협회장) "죽어 가는 북한 아이들 생각하며 통곡하기도" 나는 지난해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가장 감동적인 눈물의 선교헌금을 받 았다. 멀리 아프리카의 잠비아에서 온 선교사 한 사람으로부터 받은 눈물의 선교 헌금이었다. 눈물의 북한 선교헌금에 감동받아 15년 전부터 아프리카 잠비아에서 선교사역을 하고 있는 강남진 선교사 부 부 가 금년 7월 한국으로부터 온 교계 신문을 통해서 북한 동포들이 굶어 죽어 가고 있다는 서글픈 소식을 접했다고 한다. 그런데 굶어 죽어가는 북한 동포들을 살려야 한다는 호소를 김명혁 목사와 법륜 스님 등이 함께 벌이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고 한다. 그 소식을 접한 강남진 선교사는 깊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며칠 후 임명호 사모 선교사가 누군가가 통곡을 하는 소리가 들려와서 가까 이 가 보았더니 통곡하며 우는 사람이 바로 자기의 남편이었다고 했다. 강 남 진 선교사는 그 소식을 접한 날부터 지금까지 하루에 밥 한끼만을 먹으면서 슬픔의 눈물을 계속해서 흘리고 있다고 한다. 북한동포들이 굶어 죽어간다 고 하는데 어떻게 밥 세끼를 먹을 수 있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강남진 선교사는 특별한 후원자도 없지만 그 동안 기도와 눈물과 사랑으로 교회를 개척하고 고아원과 학교를 세우면서 잠비아인들을 섬겨오고 있다. 그 동안 두 끼씩 금식하면서 굶어 죽어가는 북한 동포들을 돕기 위한 선교 헌금을 모으기 시작했다. 마침 첫 손자를 보게 된 임명호 사모 선교사가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하게 되 었다. 남편은 눈물로 모은 선교헌금 100만원을 아내에게 건네주면서 한국에 가면 김명혁 목사라는 사람을 찾아서 선교헌금을 전해주고 오라고 했다. 아내는 지난 월요일 한국에 도착해서 오랜만에 만난 아들에게 부탁해서 인 터 넷에 들어가서 김명혁 목사의 소재지를 찾았다. 그것이 바로 지난 월요일이 었는데 오늘 수요일에 나의 사무실로 찾아온 것이었다. 나는 선교지에서 온 선교사를 그래도 삼겹살 정도는 대접하려고 했는데 기 어 코 5천원짜리 된장찌개를 먹겠다고 했다. 경기도 어렵다고 하는데 된장찌개 로 족하다고 했다. 나는 강 선교사가 손자를 보러 왜 함께 오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남편은 비 행기 탈 돈이 있으면 잠비아 사람들을 도와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고 한 다. 나는 아직도 이런 선교사가 있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마음에 깊은 감사 와 감동을 느꼈다. 나는 눈물로 모아서 보낸 선교 헌금을 귀하게 받아서 고이 간직했다. 굶어 죽어가는 북한 어린이들에게 사랑의 먹거리를 보내는데 쓰도록 나의 최선을 다 하려고 한다. 이 눈물과 사랑의 선교헌금을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오 병 이어의 기적이 나타날 수 있게 하시기를 기원한다. 북한아이들 위해 오병이어 나타나길 하나님 아버지 우리들의 탐욕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들도 눈물과 사랑의 헌 물을 바치게 하셔서 우리들로 하여금 굶어 죽어가는 북한 동포들을 살리게 하시옵소서! 사랑과 눈물의 선교 헌금을 보낸 강남진 선교사부부와 저들이 하는 사역을 축복해 주시옵소서.
445 no image |기고| 작은 교회_윤순열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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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75 2009-01-14
작은 교회 윤순열 사모, 서문교회 "작은 교회 무너지면 한국 교회 미래 없어" 얼마 전 신문에서 어느 중형 교회 목사님의 '그 정도면 됐습니다'라는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개척한 지 12년이 넘었지만 교인 수는 고작 열댓 명에 불 과하고 그것도 절반이 멀리 사는 할머니들인 개척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한 소감을 쓴 글이었습니다. 개척교회 이야기에 감동 받아 담임하는 후배 목사는 그 누구보다 열정이 넘쳤고 성실했고 유능했습니다. 그러나 최고급 아파트 단지에서 급성장하는 신흥교회에 밀려 빛을 발하지 못 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글 쓴 목사님이라도 그 비슷한 처지였을 것이라고 하 였습니다. 그날 저녁 몇 명 안 되는 교인들을 모아놓고 집회를 할 때 종교시장의 빈부 차를 절감했다고 하였습니다. 경쟁에 이길만한 제반 조건을 갖추어 놓으니 가만히 있어도 차고 넘치는 교회들이 있는가 하면 월세로 제대로 못 낸 채 허탈감에 빠진 교회도 부지기수라고 하였습니다. 엄청난 자본과 상품가치를 보유한 대기업을 결코 소기업이 이길 수 없는 이치가 아닌 듯싶습니다. 그날 강사인 그분이 많은 은혜를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교인들이 전부 나와 특송을 하는데 할머니 권사 한 분이 자꾸만 눈물을 훔치시는데 강사이신 목 사님이 눈시울이 뜨거워 졌다고 하였습니다. 음정도 박자도 제대로 맞지 않 는 찬송이었지만 수 백 명의 성가대원들이 부르는 노래보다 더 감동적이었다 고 하였습니다. 바로 그 순간 도시의 유목민들을 유인하기 위해 최적의 조건을 구비한 교회 들이 오버랩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이제 그 정도면 충분할 텐 데도 교인 쟁 탈전은 그 끝을 모르는 듯 보였다고 하였습니다. 이제 그만하면 됐습니다. 작은 교회도 살립시다. 대략 글의 내용입니다. 많은 공감을 하였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전도한 숫자보다 나가는 숫자가 더 많은 소형교회. 그러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가족들과 몇 십 명의 교인들만 남게 되는 것이 작은 교회의 가슴 아픈 현실입니다. 얼마 전에는 옆집이 새로 이사 왔습니다. 전 도를 위하여 화장지 선물세트를 가지고 방문할까하고 있는데 몇 일 후에 현 n관 위에 교패가 붙은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후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 집주인 아주머니와 인사하게 되었습니다. 교회 에 다니는 분이기에 저는 반가운 마음으로 "교회에 나가시나봐요" 하고 물었 습니다. 그 분은 그렇다고 하시면서 반갑게 다가오셨습니다. 얼마 후 그 분 은 저희가 목회자인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자기 교회에서 겪는 신앙 갈등을 저에게 종종 토로하였습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저는 '우리 교회는 이러 면이 좋으니 우리 교회로 오 세요'라는 말이 목까지 올라왔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면 그 교회 목사님 이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하는 생각에 애써 그분의 호의와 초청을 외면하였습 니다. 교회생활에 시험이 오고 갈등이 생길 때 누군가 호의를 베풀며 자기 교회로 오면 괜찮다고 하면 십중팔구는 끌려가기 마련입니다. 그것은 근본적인 해결 책이 될 수도 없고 약점을 이용한 유혹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기 때문에 그 리스도인들은 신앙 양심상 옳지 않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또한 저희는 목회하 면서 그런 식으로 성도들을 잃어버린 가슴 아픈 경험들이 많았음이 떠올랐습 니다. 그 얼마 후 그분의 현 관문에는 새로운 교패가 교체되어서 반짝거리고 있었습니다. 요즘 산책로에서 운동하는 중 그분을 만날 기회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분은 요즘 예비 며느리의 친척 되는 아주 조그마한 개척교회로 옮겨서 신앙생활 을 잘하고 계시다고 하였습니다. 마음이 흐뭇하였습니다. 큰 교회보다 연약 한 개척 교회에 가서 큰 힘을 실어 줄 것 같아 제 일처럼 기뻤습니다. 성도는 달랑 다섯 명이라고 합니다. 목사님, 사모님, 목사님 딸, 옆집 아주 머니, 아주머니의 아들이 전부라고 하였습니다. 목사 안수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젊은 목회자로 아주머니 가정이 온 뒤로는 열정적으로 아주머니 와 함께 매일 전도하며 온 힘을 다하여 열심을 내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저녁에 드렸던 수요예배도 저녁준비 관계로 불편한 아주머니 사정을 고 려하여 낮 예배로 교체하고 새벽마다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한 사람을 위 하여 차량 운행을 해준다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일부 대형교회에서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전도 축제라든가 총동원 주일을 실시한다고 하면 순수한 마음으로 보여 지지 않습니다. 무리한 목표 를 정해 놓고 각종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조직적으 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숫자 채우기 쟁탈전이 벌어지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우리 교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급성장한 교회 전도 왕 사모님 은 저에게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어느 교회가 시험에 들었다는 정보가 들어 오면 그 교회의 리더격인 성도를 찾아갑니다. 그리하여 계속적인 작전으로 그를 끌어내는데 성공하면 그 다음부터는 어렵지 않게 다른 교인들은 자동으 로 끌려온다는 노하우를 자랑 아닌 자랑처럼 이야기했습니다. 그런 방법이 통했는지 그 교회는 주변 교회에서 몇 십 명씩 전도(좀 이상하 지만) 하여 교회를 급성장시켜 그 사모님을 서울의 대형교회에서 전도사례발 표 간증 강사로 활동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바른 신앙의 눈으로 판단 하면 심히 경악할 일이건만 오늘날 이런 일이 평범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교 회 현실에 마음이 서글퍼집니다. 내가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수많은 교인과 더불어 할렐루야를 외칠 때 상가 한 구석에서 가슴을 쓸어내리는 동역자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 얼마나 좋 을 까요. 교회는 유람선이 아니 고 구원선이 되어야 하고 영혼 구원과 교회 부흥을 혼동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전도와 부흥 혼동하지 말아야 작은 교회가 무너지면 한국교회도 미래가 없습니다. 작은 교회도 살립시다.
444 no image |초대의 시| 동해에 씻긴 태양_김영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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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33 2009-01-14
443 no image |제언| 신년 선교목회 계획 제안_최일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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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98 2009-01-06
신년 선교목회 계획 제안 최일환 목사_합신세계선교회 이사,장안중앙교회 “누구나 선교에 동참할 수 있는 방법 많아”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사역은 복음전파요, 이를 통한 영혼 구원과 하나 님 나라 확장이라 믿는다. 그런 거룩한 사역에 우리 합신 교단이 다른 교단 에 비해 뜨거운 열심을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작금 경제적 여건이 여의치 않음으로 인해 교회들도 운영에 어려움이 있다 보니 선교사역을 축소하는 경향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어느 언론사 에서 조사한 바로는 전국의 교회 수는 5만 2905개로 집계됐으며, 이중 93% 에 해당하는 4만 9192개가 소형 교회로 나타났다 한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소원하시는 복음 선교사역을 중형교회나 대형교회만 감당 하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소형교회라도 선교사역에 동참할 수 있는 방법 은 매우 다양하게 있다. 필자가 시무하는 교회도 교역자가 4명이기에 소형교회라 할 것이나 나름대 로 열심히 선교사역을 감당하 고 있다. 소형교회가 할 수 있는 선교사역은 어 떤 것이 있는가? 필자가 시무하는 교회에서 시행하는 몇 가지 선교목회 프로 그램을 소개해 본다. 1. 선교 중보기도 사역 선교는 기도로부터 시작된다. 사도행전 13장의 안디옥 교회도 기도함으로 선 교를 시작했다. 선교사역에서 기도가 차지하는 비중은 실로 막중하다 할 것 이다. 그러기에 교회는 선교사역을 위한 중보기도 사역이 힘써야 할 것이 다. 여기에는 여러 방법이 있는데 주일 오후예배나 수요예배 중 중보기도 시간 을 두어 매 주마다 한 분의 선교사들을 위해 중보기도하는 시간을 넣는 것이 다. 또한 선교 중보기도팀을 만들어 주중 특정 요일에 모여 중보기도를 하 는 것이다. 현재 필자가 시무하는 장안중앙교회는 본 교회가 운영하는 J국의 신학교와 인도에 파송된 선교사가 운영하는 샤론 목회연구원, 탄자니아의 은좀배 신학 교를 위한 '신학교 중보기도팀'이 매주 월요일에 모이고 있고 또한 '천국열 쇠 중보기도팀'이 있어서 후원하는 선교사와 해외 지교회, 그리고 국내 농어 촌 자매교회를 위한 중보기도 팀이 매주 화요일에 운영되고 있다. 또한 북 한 중보팀을 만들어 북한의 지하교회 성도와 탈북자들, 그리고 북한의 개방을 위한 중보기도를 매주 목요일에 하고 있다. 2. 구역의 선교 사역 동참 본 교회는 구역을 운영함에 있어 구역 이름을 선교지 국가 이름으로 명명하 고 그곳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을 위해 구역예배시마다 기도 후원사역을 감 당하고 있다. 예를 들면 필리핀 구역, 루마니아 구역, 인도 구역 등으로 명 명하고 그 구역에 그 나라에서 선교하는 선교사에 대한 기도 책임을 부여하 고 있다. 그리고 구역헌금을 구역 자체에서 관리하고 운용하되 헌금 중 일부는 해당 선교사님들을 위한 선교헌금으로 내도록 하고 있다. 또 선교사가 귀국하여 본 교회를 방문할 때는 해당 구역이 맡아 접대하며 섬기도록 하고 있다. 그 러다 보니 구역이 일종의 작은 선교회 역할을 하고 있다. 3. 남녀 전도회에 맡겨진 선교사역 본 교회는 남녀 전도회가 6개가 있는데 각 전도회에 특정한 업무를 맡겨 봉 사하게 하고 있다. 그중 한 여전도회는 선교사들에게 절기마다 선물을 보내 는 사역을 하고 있고 어떤 여전도회는 장애인 기관에 가서 섬김의 봉사를 하 고 있 다. 그러다 보니 여전도회가 나름대로의 선교사역에 열심히 동참하고 있다. 4. 세계 각국을 위한 선교후원기도 이 사역은 본 교회 전교인들(유초, 학생회, 청년 포함)에게 1년에 한차례 선 교 후원 기도 국을 배정하는 것이다. 전교인 명단을 적어놓고 한사람에게 한 나라씩 지정하여 주는 것이다. 여기에 우리 교회가 J국에서 운영하는 신학교 학생들을 연결시켜 영적 입양 을 하도록 연결시켜 주는 것이다. 그리함으로 매주 또는 새벽기도 때마다 자 기가 맡은 국가와 입양된 학생들을 위해 중보기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것 은 중형교회든 소형교회든 어느 교회든지 할 수 있는 선교기도사역이라 할 것이다. 5. 비전트립(선교지 탐방)과 국내 선교지 여행 이것은 1년에 한차례 이상 선교지에 선교여행을 하는 것이다. 선교는 백문 이 불여일견이다. 아무리 많이 외치고 홍보하며 호소해도 한번 다녀온 것만 못하다. 그래서 필자교회는 1년 1차 이상 선교팀을 만들어 다녀오려고 노력 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적 여건이 어려워 어려우면 국내에 선교유적지를 돌아보는 것도 좋다. 서울 합정동의 선교사 묘지, 용인의 순교자 기념관, 화성의 제암리교 회 등, 당일로 선교와 관련된 여행을 하다보면 보고 느끼게 되고 동기부여 가 되고 있다. 6. 선교사님과의 간담회 선교사들이 교회에 방문하면 예배만 인도하고 돌아가는 경우가 하다하다. 그 러나 그것도 좋으나 선교사님을 초청하여 선교사와의 대회시간을 갖고 중보 기도를 해주는 시간을 갖는 것도 매우 유익하다. 예배시간에 한정된 선교보고는 시간에 제약을 받기에 피상적으로 끝나나 대 화시간을 가지면 좀 더 구체적인 보고를 받게 되고 성도들이 선교에 동참하 는 기회도 된다. 또한 선교사도 즐겁고 보람된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본 교회에서는 2009년부터 이것을 시행하려고 계획 중이다. 7. 전교인 선교헌신 작정주일 이것은 본 교회가 설립된 이후로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시행하는 프로그램이 다. 일 년에 4차례 선교헌신예배를 드리는데 연초(매년 1월 둘째 주)에는 낮 예배시 '전교인 선교헌신작정주일'을 지킨다. 선교작정카드를 제작하여 나누어주고 예배시간 중에 작성하여 작정서를 봉헌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후반기에 한 번 더 작정을 준행하도록 결단하는 예배를 드린다. 나머 지 두 번은 4월과 9월에 오후 예배시 선교사를 초빙하여 헌신예배를 드린 다. 선교는 교회의 가장 큰 사명이다. 그러므로 수시로 강조하고 권해야만 지속될 수 있는 것이다. 8. 어린이 장학후원 사역 본 교회가 새해에 시행하려는 프로그램으로 인도나 탄자니아 등, 아주 극빈 국가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의 도움을 받아 초등학교 학생이나 유치원 원아 를 추천받아 각 가정에 입양하여 장학후원을 하게 하는 제도다. 월 1-2만원 이면 아이들이 학교를 다닐 수 있고 학용품도 구입하고 좋은 여건 속에서 자 랄 수 있다. 본 교회가 파송한 인도의 선교사가 운영하는 고아원은 80여명이 있는데 초등 학교도 겸하고 있다. 그런데 한 달 운영비가 100만 원 정도 소용된다. 80명 을 먹이고 가르치고 교사들의 임금을 주는 경비다. 또 필자가 교장으로 섬기 고 있고 본 교회와 몇몇 교회가 후원하여 운영하는 H신학교는 학생들이 전 원 장학금으로 공부를 하는데 1인 식비만 한달 2만원이다. 또한 탄자니아에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아이들은 부모가 에이즈 로 죽어 학교를 다니기 어려운 아이들이 많다. 이들 도 월 1만원이면 학교를 다니거나 유치원을 다닐 수 있다. 이렇게 어려운 학생들과 어린이를 입양하 여 돕는 사역은 작은 것이나 장차 엄청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사역이다. 특히 한 가정에 한 명, 두 명만 낳고 더 이상 낳지 않는 가정 현실을 지적하 면서 선교지에 사는 어린이를 영적 자녀를 입양하여 돕도록 권면하며 일을 추진하려 한다. 과거 우리가 어렸을 때 초등학교에서 받아먹었던 옥수수 빵 과 분유, 우유, 粥(죽)은 서구교회가 후원하여 받아먹은 것으로 현재 우리 의 기초체력을 세워주었다. 그러기에 이제 그 빚을 갚는 운동을 전개할 여건 이 되었다고 본다. 마치는 말 선교는 대형 교회만 하는 전유물이 아니다. 작은 교회도, 개척교회도 얼마든 지 할 수 있는 것이다. 필자가 소개한 여러 프로그램이 신년도 목회 계획에 반영되어 열매를 맺기를 소원한다. 주님은 지금도 추수할 일꾼을 찾고 계신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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