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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2 no image |기고| 深衍(심연)의 기도_조심연 목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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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89 2009-01-06
深衍(심연)의 기도 조심연 목사_시인, 미국거주 주여! 이 시간 주님 앞에 고요히 무릎꿇어 비오니 긍휼히여겨 주옵소서. 이 제도 새날을 열어 가슴에 채우면, 세월과 함께 깊어가는 인생의 모습을 봅니 다. 젊음은 등에 짊어지고, 세월을 잊은 마음 안에 살고 있습니다. 이제는 거칠고 험난한 세월의 무게를 주님 앞에 내려 놓으며, 겸허한 자세로 조용 히 마음모아 기도드립니다. 주여! 연약한 나로 하여금 온전히 십자가의 길을 걷도록 새 힘을 주옵소서. 날마다 허락하신 일을 통하여, 참되시고 사랑이신 주님의 모습을 체험하게 하옵소서. 주님과 동행하는 시간에는 샘솟듯 하는 목표가 새롭게 일어나게 하옵소서. 간구하오니 청년의 때와 장년의 때를 지나고 노인의 때를 맞기 전 에 백옥같이 순전한 깨끗함을 허락하옵소서. 유아기 때처럼 해맑은 미소를 잃지 않게 하옵소서. 소년의 때처럼 밝고 건강한 성장으로 소망을 갖게 하옵소서. 청년의 때처럼 용기 있고 정의로운 심장을 허락하옵소서. 장년 의 때처럼 거친 세파에 흔들림이 없는 균형잡힌 삶을 허락하옵소서. 노년의 때처럼 겸허하고 진솔하여 외모에 걸맞는 멋을 허락하옵소서. 주여! 언제나 주어진 일에 감사하게 하시고, 나이에 맞는 생각과 실천하는 삶을 통하여 이 땅에서 행하는 모든 일들이 한 점 부끄러움이 없게 하옵소 서. 거룩한 주님의 자녀로 신뢰받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자연 속에 있는 만물이 시절에 맞는 옷을 입듯, 내게 허락된 시간의 흐름속 에서 고난으로 너무 추하지 않게 하옵소서.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으며, 사치 하지 않으며, 시간이나 물질을 낭비하지 않으며, 세상의 유행에 민감하게 반 응하지 않으며, 때때로 지나친 욕심으로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무너지지 않 게 하옵소서. 보다 좋은 인류를 위하여 비전을 갖게 하시고, 가슴에는 열정과 꿈을 가지 어 소신 있는 결단을 내리게 하옵소서. 글을 가까이하여 마음을 다스려 여 유 있는 생각을 갖게 하시고, 좋은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생활이 되게 하옵소 서.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름같이, 작게 출발하였지만 흐를수록 깊어 지고 넓어져서 포용력이 커지는 것처럼, 나의 인생이 유 연한 멋을 연출하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인생이 적신으로 왔다가 적신으로 돌아가지만 인류를 위하여 최고의 축복으 로 내려주신 성경말씀을 믿으며, 허락받은 시간을 관리하고, 물질을 관리하 고, 인생을 관리하여, 은혜의 길을 가게 하옵소서. 헤아릴 수 없이 크고 놀 라운 은총과 베푸신 사랑을,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과 나누게 하시고, 말씀 에 순종하는 사명자로 살게 하옵소서. 오! 주여, 나로 아름답고 품위있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 深衍(심연)의 뜻은 깊고 넓다는 의미로 깊은 기도를 뜻합니다. http://cafe.daum.net/jealousysound
441 no image |간증문| 가장 소중한 선물_김덕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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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27 2009-01-06
가장 소중한 선물 김덕선 목사_예람교회 “비명 소리와 피투성이가 된 사람들의 고통 소리로 이미 차 속은 아비규환 이 되어 있었다” 2005년 10월 2일의 일이었다. 이른 아침 거제도에 있는 산상기도회에 다녀오 겠다고 아내가 길을 재촉했다. 뭐 그렇게 멀리까지 가서 기도해야 하냐고 만 류해 보지만 산상기도회에 가본 적이 많지 못했노라 하며 간곡하게 부탁하 는 아내 앞에서 혼자 다녀오라고 허락하며 못내 아쉬웠다. 아내의 재촉에 기도회 따라나서 거절 못하는 내 성격도 성격이지만, 10월 2일임을 선명히 기억하는 이유도 그렇듯 다음날이 내 생일인데 그래도 미역국이라도 한 그릇 얻어먹어야 하는 데 하는 서운함도 있었는지 모르겠다. 아내가 준비하는 동안 불현듯 한 장면이 스쳐 지나간다. 아내가 타고 가던 버스가 교통사고를 당하는 불길한 장면이 나타난다. 이번에 보내면 다시 못 볼 것 같다는 불안감이 나를 엄습한다. “이번에는 내가 직접 운전해서 같이 다 녀오자”고 했더니 아내는 영문도 모 른 채 너무 좋아한다. 한술 더 떠서 당신도 이번 생일을 맞이하여 목회의 새 로운 전환점을 마련하는 기회로 삼으면 좋겠다며 짐짓 이번 기도회의 의미 를 덧붙이며 대견해하기까지 한다. 평소 같으면 아내가 이런 식으로 주도하는 것이 썩 즐거운 기분이 아니었겠 지만 아내를 잃고 싶지 않은 마음에 실실 웃으면서 좋게 받아들인다. 그러 다 아내는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철야기도 후에 긴 장거리 운전은 무 리일 것 같다며 고속버스를 타고 가자고 한다. 순간 다시 불길한 장면이 떠 올라 갈등이 일어났지만 그러마 하고 선선히 허락하고 길을 나섰다. 나서고 보니 50번째 생일 기념으로 아내가 제안한 산상기도회가 의미 있다 생각하니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 아침 8시 20분, 고속버스에 올라타서도 불 길한 장면이 떠올라 운전석 바로 뒤의 자리를 부탁해 앉았다. 아내에겐 굳 이 안전벨트까지 챙기며 좌석을 뒤로 젖히고 철야 기도를 위해서 잠을 청했 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갑자기 눈을 떠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일어나 성경을 읽 기 시작했다. 옆 좌석의 아내는 고단하게 잠에 빠져있고 차안에 는 열 두세 명의 승객들 역시 다들 한밤중이다. 그때 갑자기 고속버스는 차선을 벗어나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았다. 나는 본능적으로 아내 머리위로 떨어지는 그 무언가를 막기 위해 한 손으로 아내의 얼굴 부위를 가리고, 다른 한 손은 손잡이를 굳게 잡았다. 잠시 후 고속버스가 중앙분리대를 다시 들이받으면서 버스는 다시 크게 흔들렸다. 비명 소리와 피투성이가 된 사람들의 고통 소리로 이미 차 속은 아비규환이 되어 있었다. 고속버스 기사는 안전벨트를 느슨하게 맨 상태로 복도에 주저 앉아 졸도한 상태였고 사람들은 고통과 두려움으로 어떻게 할 줄을 몰라 했 다. 그 순간 하나님께서 내게 침착한 마음을 주셨다. “네가 이 고속버스를 안전 하게 정차한 후에 승객들을 보호하라. 운전자가 이탈된 상태로 흔들리는 고 속버스를 그래도 둔다면 차가 통째로 전복되거나 충돌하여 대형사고로 이어 질 것이다.” 나는 눈을 뜨고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저는 한 번도 고속버스를 운전 해 본적이 없습니다. 지금 핸들이 어떻게 감겨있는지 잘 알 수 없습니다. 이 승객들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도록 침착성과 지혜를 주세요.” n버스 기사는 안전벨트가 늘어진 상태에서 복도에 주저앉아 있기 때문에 운전 석에 앉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달리는 버스에 선 채로 고속버스 핸 들을 잡았다. 그리고 정말 차분히 신중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고속버스가 한 10미터 정도 앞으로 반듯하게 가다가 멈춰 서자 비상등을 켜고 기어를 중 립에 놓았다. 정말 침착하고 신중하게, 또 지혜롭게 처신했다. 승객 가운데 누군가가 119전화를 해서 긴급구조대를 요청했다. 앰뷸런스가 도착하고 나는 그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도와주기 시작했다. 피투성이로 된 사람에게 가방에 있는 옷을 꺼내 닦도록 하고 날아간 책들과 지갑, 옷, 안경 테들을 하나씩 주워갔다. 부상자들을 태운 앰뷸런스가 청주 하나병원에 도착했다. 승객들은 응급조치 를 마치고 병상에 누워있고 환자 보호자들이 소식을 듣고 여러 저기서 달려 오기 시작했다. 보호자들은 가장 덜 다친 나에게 사고 경위를 물어 왔다. 30분 정도 기절했다가 깨어난 운전기사는 자신이 졸음 운전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지 난데없이 차량 앞 유리가 깨어져 있냐고 불평을 터트릴 뿐, 다른 환자들은 입을 모아 나를 가리키며 내 가 핸들을 잡아 차를 서게 하지 않았다면 큰 사고가 날 뻔했다고 가족들에게 이야기를 했다. 버스 회사측에 서도 오늘 큰일을 해주셨다고 감사해 했다. 그 순간 나는 뭉클한 감동과 커다란 도전을 받게 되었다. “하나님 아버지! 졸음운전을 한 운전사로 인해 많은 승객이 죽을 뻔했던 상황 속에서 부족한 저를 도구로 사용해 주셔서 오늘의 대형 사고를 막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앞으로 제가 목회하면서 저 졸음 운전했던 운전자의 자리에 서지말고 이 사 람 덕분에 살게 되었다는 고백을 듣게 하옵소서.” 환자들은 대부분 가까운 병원, 또는 서울로 이동했다. 그러나 나와 아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곳에 보내신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믿고 부상으 로 고통스러워하는 아내와 함께 칠흑 같은 밤을 뚫고 플래시를 비추면서 구 간구간 로프를 잡고 가파른 산 정상에 도착했다. 그 밤에 기도회는 특별한 은혜와 나의 목회시간들을 돌아보는 특별한 경험이 었다. 밤새도록 뜨겁게 부르짖은 후에 해가 뜨기 시작했다. 새벽 산 정상에 서 뒤죽박죽 된 케이크와 함께 한 50번째 생일날 아침은 정말 감격스러웠 다. 토요일이었던 생일 날 저녁 집에 도착하니 그때부터 아프기 시작했다. 아내 는 얼마나 고통스러워하는지 얼굴에는 맞은 상처와 가슴의 통증으로 괴로워 하고 나 역시 목이 삐끗하였는지 돌아보기조차 힘들었다. 다들 정형외과, 흉부외과를 얘기하며 병원에 입원해야 보상 문제나 후유증 이 없을 거라 걱정해주었으나 나는 마음 한 구석에 이 사건의 모든 전후를 알려 주신 분이 계시기 때문에 걱정이 되지 않았다. 더욱이 교회에 자리를 비우면 안 된다는 생각이 병원 행을 결정하지 못했던 더 큰 이유인지 모른 다. 아내 역시 교회를 섬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 때문에 통원 치료를 하기로 했다. 두어 달 치료 과정을 마치니 보상 문제가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 부부에게 백 오십 만원의 보상금이 나온다 한다. 누구나에게 그렇듯 빠듯한 살림살이 에 적지 않은 돈인 게 사실이다. 게다가 다른 것을 처분해서 또한 백 오십 만원이 생겼다. 합쳐서 삼백 만원, 갑자기 거금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아내는 불쑥 이렇게 말한다. 내가 하나님께 삼백 만원을 헌금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는데 기도 응답을 받았다고. 그래,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 았다면 생명도 없었을 거라는 데에 생각이 미치니 물질 앞에서도 담대함과 감사가 앞선다. 아내의 결정에 가슴만 찡해와 그런 한편으로 가난한 목회자의 아내로 비켜가기 힘든 물질의 유혹 앞에서 먼저 하나님 앞에 바치는 일에 기뻐하는 아내의 모습을 바라보며 목회자가 무엇인지 하는 마음에 가슴이 찡함은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가장 큰 생 일 선물이 바로 아내인걸 알기 때문이다.
440 no image |목회수상| 속속들이 익을 때까지_최광희 목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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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84 2008-12-31
속속들이 익을 때까지 최광희 목사_행복한교회 "귀하게 쓰임 받는 사람일수록 많은 훈련받는 법" 겨울철 간식으로 단연 으뜸은 고구마일 것이다. 고구마는 암도 예방하고 노 화를 방지하며 변비를 치료하고 성인병도 치료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고 구마는 구워먹고 쪄먹고 튀겨 먹고 맛탕도 해 먹을 수 있지만 가장 손쉬운 것이 쪄서 먹는 것이다. 잘 익어야 제 맛내는 고구마 고구마를 찔 때 냄새가 나기 시작하면 다 익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솥뚜껑을 열고 젓가락으로 찔러본다. 이때 손가락 만한 고구마는 금새 다 익지만 주먹 만한 고구마는 젓가락이 들어가다가 턱 걸린다. 이때 속이 덜 익은 고구마 가 다 익을 때까지 솥뚜껑을 닫아 두어야 한다. 고구마는 잘 익어야 소화 흡 수가 잘되고 덜 익은 고구마는 맛이 없어서 먹다 버리는 수가 있기 때문이 다. 사람은 고구마가 아니지만 익는 과정에서는 고구마와 비슷하다. 하나님은 요 셉을 잘 익혀서 귀한 직책에 사용하려고 애굽으로 유학을 보내셨다. 보디발 의 집에서 성결 훈련을 시킨 후에 감옥에서 겸손과 인내 훈련을 시켰다. 그 리고 그 모든 과정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만 의뢰하는 훈련을 시켰 다. 그러다가 어느날 요셉이 충분히 잘 익었는지 하나님이 찔러 보셨다. 요셉은 감옥에 있는 죄수이지만 다른 죄수를 돌보는 간수 보조역할을 했는데 어느 날 그 감옥에 바로의 신하 두 사람이 들어온 것이다.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 과 떡 맡은 관원장은 어느날 징조가 있는 꿈을 꾸고는 뜻을 몰라서 근심하 고 있었다. 성경이 없던 그 당시에 꿈은 하나님의 계시 수단이었는데 야곱도 꿈쟁이였 고 요셉도 꿈쟁이였다. 즉 요셉은 꿈을 통해서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뜻에 민 감하였다. 두 신하의 꿈을 들은 요셉은 삼일 후에 술 관원장은 복직되고 떡 관원장은 처형되리라고 해석해주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감옥에서 나가는 술 관원장에게 요셉은 그가 복직되면 자기의 억울함을 기억 하고 구명해줄 것을 부탁하였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술 관원장은 요셉을 까 마득히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만 이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꾸고 뜻을 몰 라 번민할 때에야 요셉을 생각해내었다. 보통 성경에서 어떤 기간을 말할 때 일수 혹은 햇수로 말하는데 여기서는 만(滿) 이년이라고 못 박아 말하고 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술 관원장이 너무 배은망덕하고 요셉이 억울할 것 같 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속에 들어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하나님이 요셉이라는 고구마를 찌다가 다 익었는지 찔러 보았는데 아직 덜 익은 부분을 발견하고 잠시(만 이년) 솥뚜껑을 덮어두신 것이다. 요셉은 오로지 하나님만 의지하는 훈련을 받는 중이었는데 인간적으로 연줄 이 될 기회를 보자 그 줄을 꼭 잡고 매달렸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지없이 그 줄을 잘라버리시고는 도울 힘이 없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 이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만약에 술 관원장의 구명운동으로 요셉이 출옥했다 면 무엇이 되었을까? 어쩌면 사업가가 되었거나 어쩌면 아버지의 직업을 이 어서 목축업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7년 대흉년 때에 모든 가축이 다 굶 어죽고 쫄딱 망해 버렸을 것이다. 당장 일이 쉽게 풀리기를 바라는데 하나님이 좀 더 솥뚜껑을 덮어두시는 이 런 일은 요셉뿐 아니라 어느 시대에 누구나 경험하는 것이다. 그리고 더 중 요한 일을 맡길 사람일수록 하나님은 더 길게 더 힘든 훈련을 시키신다. 엔지니어가 되려면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되는데 목사가 되려면 신학대학원까 지 졸업해야 하고 영적으로도 그만큼의 기간과 강도 높은 훈련이 필요하다. 신자들 중에서도 하나님이 더 귀하게 쓰실 사람은 그에 알맞은 훈련을 하여 세우신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이만큼 익었으면 뜨거운 솥에서 꺼내어 주시면 좋을 것 같은데, 하나님이 계속 가열을 하시고 계시는 것은 아직 나에게 덜 익은 부 분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미숙한 면 없도록 기다려야 하나님이 나를 구석구석 속속들이 익을 때까지 기다리게 하시는 것을 믿고 기다리면 하나님의 때에 아름답게 사용되리라 믿는다.
439 no image |목회수상| 목사의 설교와 회중의 반응_문민규 목사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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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50 2008-12-30
목회수상 목사의 설교와 회중의 반응 문민규 목사_반석교회 "섬기는 종의 자세로 설교에 최선 다해야" 연말이 되면 내가 목회를 바로 하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전에는 예배 후에 교인들이 "목사님 설교에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하고 깍듯이 인사를 하는 신자들이 꽤 있었는데, 요즈음은 "수고하셨습니다" 하고 인사하 는 교인도 별로 없다. 목사 설교에 대한 반응 궁금해 왜 그럴까? 내가 설교를 잘못해서 그럴까, 그런데 반드시 설교자 탓만은 아 닌 것 같다. 말씀에 대한 갈망과 은혜에 대한 사모함과 특히 설교자에 대한 고마움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래서 가끔 수고했다는 인사가 고작이고 은 혜 받았다는 말은 꺼낼 생각도 못하는 것 같다. 수고했다는 인사나마 할 줄 아는 교인이라도 많았으면 좋으련만 그것도 한 둘이고 대다수의 교인들은 별 표정이 없다. 그렇다고 우리 교인들이 과묵해 서 그런 것도 아니다. 그러면 내가 하는 설교 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살 펴보지만 그것도 아니다. 설교에는 문제가 없다고 그렇게 단정지을 수 있는가 하고 말하는 사람이 있 을지 모르지만 나는 설교를 할 적에 설교문을 노트에 쓰고 그 내용을 가지 고 설교를 한다. 그래서 그 내용을 보면 설교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우리 집 아이들이 지금은 다 자라서 가끔 아버지의 설교를 비판하는데 내용 을 가지고 비판하는 것은 아니고 전달에는 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래 도 설교의 중심 내용에 대해서는 바른 것 같다고 말해 주니 감사한 일이다. 어떻든 수고했다는 말이라도 없으면 서운한 생각이 든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존경하는 목사님 한 분이 생각이 난다. 서울 한남동에 서 처음 목사횃불회에 참석했을 때 일이다. 그 목사님은 목사의 길에 대해 서 말씀을 해주셨는데, 그 분은 설교를 하고 예배를 마친 직후 예배당 문 앞 에서 교인들을 향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를 한다는 것이다. 감사하다는 인사는 교인들이 해야 하는데, 예배를 인도하고 땀 흘리며 온 정 성을 들여 열심히 설교를 한 목사가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한다는 것이다. 왜 설교한 목사가 감사를 해야 하는가? 예배당에 와 서 예배를 드려주니까 감사하다는 것인가, 끝까지 설교를 들어주어서 감사하 다는 것인가, 목사는 목이 쉬도록 설교를 하였는데 교인들에게 감사하다고 인사까지 한다는 것이다. 그 분은 말하기를 "스승이 제자의 발을 씻기는 법은 세상에는 없지만 주님 께서 먼저 제자의 발을 씻겨 주시지 않았느냐"고 하면서 설교를 잘했다고, 은혜를 받았다고 하는 칭찬보다는 말씀으로 교회를 섬기는 자로 부름을 받았 기 때문에 인사로 대접받는 것보다는 교인들을 섬기는 일이 우선이라는 것이 다. 어려울 때 외면하는 교인들이 있어 힘들어하는 목회자들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목사의 길을 외면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교인들이 조금이라도 어려 운 일이 생기면 목사가 찾아가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열심히 설교를 하지만 내내 졸고만 있던 교인일지라도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뒤에서 목 사를 폄하하고 비난할지라도 교회에 예배하러 나온 것을 보고 감사하다 하 고, 목사를 멀리하려는 자들에게 찾아가며 무례히 행하는 자들이라도 보고 포옹하려고 하는 것이 목사의 길이 아닌가? 이러한 가르침으로 초짜 목사에 게 권면하는 그 목사님의 가르침이 새해를 준비하는 나로 하여금 마음의 자 세를 새롭게 한다. 성도를 섬기는 것은 당연한 일 설교에 대한 교인의 반응을 살피는 것보다 앞서 대우받고 섬김 받으려만 하 지 말고, 말씀 맡은 자로서 묵묵히 말씀으로 섬기면서 모든 일에 섬기는 종 의 자세를 가지고 목사의 길을 가야 하겠다.
438 no image |긴급진단| 북아프리카 이슬람지역의 상황과 전망_서평화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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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65 2008-12-17
긴급진단 북아프리카 이슬람지역의 상황과 전망 서평화 선교사 “위장 개종, 위장 결혼 등 무슬림화 작업 경계해야” 21세기의 북아프리카는 다양한 문화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 북아프리카의 교 회는 초대교회 교부들, 즉 성 어거스틴과 터툴리안 그리고 키프리안 같은 신 학자와 목회자들이 있었으며 알렉산드리아 신학을 만들어 낸 곳이기도 하 다. 그러나 원주민인 베르베르 종족과 이 지역을 장악한 아랍인들은 19-20세 기의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의 식민지 문화와 이슬람문화의 복합적인 영향을 받아왔다. 세계 인구 20%가 무슬림화 돼 아랍의 이슬람 세력들은 7세기말 카르타고를 시작으로 북아프리카의 ‘마그 레브’ 국가를 완전히 점령하였다. 그후 북아프리카의 찬란했던 초대교회의 역사는 이슬람 종교와 문화 그리고 정치 세력에 의해 잠식되었다. 세계교회 는 북아프리카 복음화의 장벽인 아랍-이슬람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와 창의 적 접근이 불가피한 상황 이다. 현재 북아프리카의 국가들은 아랍마그레브연합(L'Union du Maghreb Arab)이 라는 북아프리카 경제 협력기구를 형성하고 있다. 마그레브는 아랍어로 ‘해 가 지는 곳’이라는 의미가 있다. 아랍마그레브연합의 5개 국가인 모리타니 아,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 리비아의 공통점은 99%이상 이슬람교를 국교 로 수용하고 있고, 형법(개종권유불가, 개종불가)상 기독교 선교는 불법으 로 간주한다. 이슬람은 아랍어 ‘타슬람’이라는 단어에서 파생한 ‘복종’을 의미하며, 무슬림은 ‘복종하는 자’라는 의미이다. 꾸란에는 알라신과 그들의 선지자 무함마드에게 복종하는 것과 다섯 가지 종교적인 의무 1) 샤하다(Shahada-알 라신의 믿음에 대한 증언), 2) 살라트(Salat-하루 다섯 번의 기도 의식), 3) 자카트(Zakat-구제와 기부), 4) 사움(Saum-라마단 기간 낮 시간 금식), 5)핫지(Hajj-메카 순례)를 규정하고 있다. 무슬림들은 무함마드를 알라신의 선지자라고 한다. 무함마드는 자신의 부족 인 꾸라이쉬 종족의 신 ‘알라’를 유일신으로 채택하였고, 그가 죽은 이후 에 추종자들은 AD 9세기에 아랍어 꾸란을 확정했다. 그러나 꾸 란에는 메카에서 받은 계시와 메디나에서 받은 계시가 상호 모순 을 드러내고 있다. 이를 합리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슬람의 조직신학에서 는 ‘나시크’(Nasjkh) 교리와 ‘만수크’(Mansukh) 교리를 통해 ‘이전 계 시’가 ‘이후 계시’에 의해 그 계시의 효력이 자연적으로 취소된다고 가르 친다. 꾸란과 무함마드의 언행록인 ‘하디스’(Hadith)를 기준으로 행동하는 이슬 람 근본주의자들의 대(大) 지하드(Holy War)는 매우 공격적인 양상을 지니 고 있다. 반면에 소(小) 지하드 그룹은 약 2000여 개로 100만 명 이상의 무 슬림 포교사들이 전 세계에서 활동 중이다. 그들은 꾸란과 ‘하디스’에서 ‘타키야’(Taqyah) 교리를 적용하여 평화와 화해를 가장할 때, 개종 강요시, 전쟁시 등의 거짓 증언으로 위장한다. 또 한 이와 같은 교리를 기준으로 문화적 접근, 이슬람 포교(문서배포, 꾸란), 노동자 신분, 국제 교류(유학생, 위장 결혼) 및 다양한 종교적인 활동을 하 고 있다. 현대의 이슬람은 계속 성장하여 전 세계 인구의 약 20%가 무슬림화 되었다. 오늘날 15억 이상이 넘는 무슬림이 전 세계에 퍼져 있고 아시아에는 전체 무 슬 림의 2/3가 살고 있다. 이슬람 세계의 무슬림 가운데 아랍계 무슬림들이 2 억 7천만 명-3억 명으로 약 20%를 차지하고 있으며 비 아랍계 무슬림들이 80%로 나타나 있다. 현재 유럽 내의 무슬림은 5천 4백만 명에 달하고 있는 가운데 프랑스내의 무 슬림 인구가 약 5백 5십만 명, 영국 내에는 6백여 만 명으로 인구의 10%가 넘어섰다. 또한 영국 외에서 입국하여 거주하는 무슬림들에게 ‘샤리아’ (Sharia) 이슬람법을 허용했으며 영국 내 모스크는 약 1,800여 개, 꾸란 학 교가 3,000개가 있다고 밝혀졌다. 최근 2008년 3월 31일 두 명의 프랑스 복음 전도자가 기독교 서적과 기독교 관련 컴퓨터 소프트웨어와 불어, 아랍어 전도지 책자를 소지하고 배포하다 가 북아프리카 사하라 Z지역에서 체포되었다. 기독교 전도자가 개종권유시 6 개월에서 3년 간 징역형 및 벌금형을 부과하는 형법에 의해 형을 집행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아프리카의 기독교 사역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명령에 순종하여 창의적 접근 방법으로써 지역개발 및 구호사역(의료, 양로 원, 고아원, 학교, 미혼모 쉼터 등), 문화사역(음악, 미술, 태권도, 스포 츠), 문 서번역, 지역 연구소 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사역하고 있다. 또한 지하 신학교를 통해 현지인 기독교 지도자 육성을 꾀하고 있다. 결과적 으로 실제적인 선교 전략의 귀결점은 현지의 교회와 현지인을 중심한 교회 개척이라고 볼 수 있다. 더욱 효율적인 선교를 위해서는 팀 사역과 협력 사 역의 필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구체적 이해 창의적 접근 필요 세계교회는 21세기의 이슬람과 영적 전쟁 가운데 직면해 있다. 그러므로 우 리는 북아프리카 이슬람에 대한 연구와 대안을 준비해야 만 한다. 하나님의 선교는 오늘도 아랍 이슬람 지역에서 택한 자를 구원으로 부르신다(사60:7).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사 해 돋는 데서부터 지는 데까지 세상을 부르셨도다”(시 50:1).
437 no image |목회단상| 제주선교의 길목에서_유익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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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95 2008-12-11
제주선교의 길목에서 유익순 목사·제주성도교회 “교회들이 외면한 지역 이단들의 표적되어 있어” 화랑마을, 6.25 전쟁이 끝난 후 오갈 데 없는 다친 병사들이 모여 살던 곳이 다. 해안동에 있는 작은 마을이 바로 그곳이다. 전도하러 나서게 된 무교회 지역 해안동으로 가는 길로 막 접어드는데 ‘화랑마을’이라고 세긴 돌로 만든 안 내 석이 그 안에 또 다른 마을이 있음을 알려준다. 그런데 그 안 길로 할머 니 한 분이 걸어가고 계셨다. “오늘은 저 분을 태워주는 것으로 사역을 대신할까?” 생각하며 차를 돌려 “태워 드릴까요?” 말을 건넸다. 할머니는 냉큼 “나야 태워주면 좋지!”라 며 차에 오르신다. 화랑마을이라는 지명은 6.25전쟁이 끝난 후 오갈 데 없는 다친 병사들이 모 여 살던 곳이라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안내 석을 따라 쭉 들어가 면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막다른 곳에 작은 마을이 있다. 마을이라야 고작 여덟 가구가 살고 있는 작은 동네다. 할머니는 몇 안 되는 집들을 모두 지나 더 갈 곳이 없는 마을 제일 안 쪽의 마지막 집에 살고 계신다. 내 집 안에 승합차가 들어 온 것이 무슨 자랑거리 라도 되는 것처럼 신이 나서 집 안으로 들어오라고 성화를 내신다. 들어가 잠시 기도를 마치고 나니 출입구 쪽에 여호와증인 집단의 전단지가 눈에 들어왔다. “영적 전쟁이로구나”는 생각이 직감적으로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자녀들을 서울로 모두 떠나보낸 할머니는 지금 홀로 살고 계신다. 일흔 나이 답지 않게 지금도 밀감농사를 짓고 있는 할머니는 여느 보통 할머니와는 달 리 지혜로우시고 그 하시는 말씀으로 봐서 마을의 리더인 듯 보였다. “어디서 무엇하는 분들이요?”라는 물음에 약간은 당황해하며 ‘목회자’라 고 대답하는 우리의 말에 처음부터 좀 달리 보였다며 스스럼없이 종교 이야 기를 꺼내놓으신다. 할머니도 때로는 교회를 좀 다녀보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두어 교회에 출 석도 해 보았으나 잘 되지 않았단다. 그런데 지금은 여호와증인 단체에서 정 기적으로 다녀간다는 것이다. 잠시 주방으로 가신 할머니는 며칠 전 딴 것이라며 밀감을 내 오시고 울안에 서 직 접 딴 것이라며 주먹보다 훨씬 큰 홍시감 두 개를 들고 오신다. “먹을 복이 있는가보네...” 하며 말문을 연 할머니의 이야기는 그칠 줄을 모르고 이어진다. 선친 이야기, 공부 잘 했다는 자녀 이야기, 살아온 인생 이야기 등 그동안 혼자 꾹 참았던 이야기 보따리를 한없이 풀어놓으신다. 이야기는 계속되어 내친 김에 저녁식사를 하고 가라고 식탁을 가리킨다. 한 사코 거절하고 나서는 우릴 보고 “이것도 인연이니 자주 와요”라고 하신 다. 강원도 정선, 영월, 충북 단양, 제천에 이르기까지 내 작은 힘닿는 데까지 해 오던 무교회 지역을 향한 사역! 그동안 제주에서 한 교회를 세우는 데에 너무 많은 시간들을 썼다.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이면 어김없이 아내와 함께 떠나는 무교회 지역 선교사 역, 작은 교회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곳이 벌써 서너 군데나 된다. 쑥대처 럼 그늘에 가려 일만 하는 사람들은 이따금 찾아오는 이단들의 표적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들을 향해 떠나는 제주선교의 길에는 그 끝이 있을 수 없 다. 일전에 뵙게 된 어느 노 교수님이 “목회자가 하나의 교회를 섬기는 사역만 으로 목회를 다 했다고 생각해 서는 안 된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소망 이 없다고 교회들이 외면하고 있는 시골 한적한 곳에 이단들이 판을 치고 있 기 때문이다. 휴일이면 승합차를 타고 떼로 몰려와 집집마다 우글거리고 있다. 과거에는 육지 농촌마을이었지만 이제는 제주도는 물론 낙도를 따지지 않는다. 곳곳에 이단들이 판을 치고 있어 교회가 없는 곳이면 세워야 하고, 세울 수 없는 곳이라면 찾아가기라도 해 야 하지 않겠는가?
436 no image |선교지방문기|한인이주 150년 역사 가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_안만길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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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07 2008-12-03
선교지방문기 한인이주 150년 역사 가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추위와 고독일지라도 감사의 제목으로 받아들여” 안만길 목사_염광교회, PMS이사장 러시아 동부지역 현지 선교부 조직과 선교사들을 살피고 격려하기 위하여 합 신세계선교회(PMS) 이사들(안만길 목사, 조덕래 목사, 이기종 총무)이 방문 하게 되었다. 방문지는 블라디보스토크와 인근 지역이었다. 현지 선교부 조직 위해 11월10일 오전 10시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현지 시간으로 오후 1시에 도착하 였으니 과히 먼 지역도 아니었다. 정득수 선교사 내외와 이상록 선교사가 마 중 나와서 반갑게 만났다. 그곳은 이미 낙엽이 다 지고 초겨울의 쌀쌀한 날 씨였다. 그러나 그곳도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예년에 비하여서는 그렇게 춥지가 않다고 한다. 연해주 선교는 구소련이 붕괴한 1991년부터 시작하여 17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연해주 선교는 실상 한인이 연해주로 이주한 150년 전부터 시 작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블라디보스토크 국제학교의 숙소에 짐을 푼 후 황돈연 교장의 안내로 학교 를 돌아보았다. 국제학교로서 러시아 초등학생들과 외국인 학생들, 선교사 자녀들이 함께 공부하고 있었다. 그 규모가 훌륭하였다. 다음날 시내와 이곳에서 사역하는 합신 소속의 선교사들을 방문하게 되었 다. 그러면서 타 교단의 선교사들도 방문하게 되었는데 블라디보스토크 동부 교회(통합)를 방문하였다. 예배당의 규모가 큰 것이 그 지역을 압도하는 것 같았다. 오후에는 손니치 문화센터에서 합신 소속의 선교사들이 모여서 간담회를 가 지며 지부를 조직하고 함께 교제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지부장에는 정득 수 선교사, 총무 겸 서기는 이상록 선교사, 회계는 이보영 선교사가 선임되 었다. ‘손니치’라는 말은 태양, 햇살이라는 의미가 있는데 사랑의 교회가 이곳에 세운 문화센터로서 김보리스 선생이 열심히 사역하고 있었다. 러시아 와 한국의 문화적인 교류를 증진하는 사역을 주로 하고 있다. 그 다음날 이곳에서 40여분 떨어진 작은 도시 아르쫌을 방문하였다. 이곳은 정득수 선교사와 이상록 선교사가 사역하고 있는 곳이다. 아르쫌 화목교회 와 로뎀 교회 등을 방문하였다. 로뎀 교회는 통합측에서 오신 분이 여성의 몸으로 홀로 사역하고 있었는데, 그는 러시아 사람들이 꽃을 좋아하는 것에 착안하여 이 동네를 꽃으로 뒤덮 을 꿈을 가지고 꽃씨를 나누며 사역을 하고 있었다. 조만간 그 동네는 아름 다운 꽃들이 사방에서 피어나 향기를 뿜으며 아울러 선교의 향기로 변해 갈 것이 분명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후 사도행전 교회, 에덴 교회 등을 돌아보고 함께 교제를 나누며 선교사 사택도 심방하였다. 이상록 선교사 댁을 심방하여 현재 사모는 항암치료차 한국에 나가 있어 함께 위로하며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상록 선교사는 블라디보스토크 장로회 신학교에서 교수 사역을 하고 있다. 수요예배는 아르쫌 장로교회에서 드리게 되었다. 정득수 선교사가 사역하는 교회로 벽돌로 아름답게 예배당을 지었다. 폐 벽돌을 광산에서 구입하고 휘 어진 중고 철근을 청년들과 함께 펴가면서 6년에 걸쳐 지었다고 한다. 지금도 교육관을 짓기 위하여 기초공사를 마치고 벽돌을 쌓아둔 것을 볼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건축비를 주시는 대로 짓는다고 하였다. 욕심 을 부리면 서 무리하게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예배당을 볼 때 정선교사의 피와 땀이 배어 있는 교회인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선교사의 땀과 눈물과 인내가 이런 열매를 맺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곳 순박한 성도들과 함께 수요예배 를 드리고 교제하였다. 아르쫌 교회는 그 지역에서 더 떨어진 농촌 마을의 문화센터를 매주 마다 빌 리고 현지 청년들을 파송하여 지역 아이들에게 복음전파사역을 감당하고 있 었다. 비용도 많이 들지 않는 사역이고 아울러 매우 효과적인 사역임을 알 수 있었다. 효과적 선교 방법 찾아야 이처럼 동토의 땅 연해주에서 사역하고 있는 선교사들은 추위와 고독과 싸우 며 사역을 감당하고 있었다. 아울러 그들을 위해 더 많은 기도와 더불어 합 신선교부의 전략적인 지원이 필요함을 느낄 수 있었다.
435 no image |신앙수상| 내 인생의 귀중한 멘토이셨던 그 분_윤순열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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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42 2008-11-12
내 인생의 귀중한 멘토이셨던 그 분 윤순열 사모_서문교회 “이 시대에 참된 지도자상의 모범을 보여주신 분” 성큼 다가온 가을이 벌써 늦가을로 접어들었습니다. 들녘에 누런 벼들이 달 빛을 받아 더욱 찬란하게 빛나니 마음은 풍요와 넉넉함으로 가득 채워집니 다. 청소년 시절 지도하신 목사님 찾아가 지난 주일은 오후예배를 마친 후 제가 청소년시절을 보냈던 저의 모교회인 서울의 교회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저희는 목사님께 저녁식사를 대접해 드 리려고 일찍이 서둘러 목적지에 도착하였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저희에게 부 담을 주지 않으시려는 듯 저렴한 감자탕 집으로 저희를 안내하였습니다. 목사님께 더 귀한 것을 대접하고 싶은 저희는 건너편에 붙은 횟집 간판을 보 고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화려한 간판과는 달리 안은 약간 허름하 였습니다. 조금 있으니 약간의 반찬과 물수건이 놓였습니다. 모듬회를 주문 하고 일반적인 횟집에서 하듯이 풍성한 부재료 서비스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한참을 기다려도 아무것도 오지 않고 물조차 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약간 짜증이 나서 서빙벨을 눌렀습니다. ‘왜 아무것도 안 주시는 거예 요?’ 그랬더니 종업원은 ‘이 곳은 다른 것은 없고요 회를 중심으로 매운탕 만 드시는 곳이에요. 그리고 물은 셀프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곳은 일반 횟집의 풍성한 부재료 중심의 고가 횟집식당이 아 니라 모든 것을 생략한 회와 매운탕만 나오는 저렴한 가격의 식당이었던 것 입니다. 목사님께서 재빨리 말씀하셨습니다. ‘횟집가면 회를 먹어야지 다 른 것이 많이 나오면 회가 나올 때 이미 배가 불러서 먹을 수 없는 것이야. 이런 곳이 좋은 곳이야’ 라고 말씀하시면서 식사를 하셨습니다. 얼마 안 되는 반찬도 다 떨어졌습니다. 벨을 누르며 모자라는 것을 주문하시 는 사모님을 보며 목사님은 저희가 미안해 할까봐 이런 곳이 회를 많이 먹 을 수 있고 저렴하고 좋은 곳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식사를 하셨습니다. 제가 목사님을 처음 만나게 된 것은 지금부터 약 34년 전입니다. 그곳은 철 거민들로 이루어진 열악한 환경의 일명 달동네였습니다. 달동네 언덕 위에 베니어판으로 지어진 교회는 아주 초라한 모습으로 서있었습니다. 얼마 되 지 않은 장년성도와 저 또래의 많은 청소년들 그리고 굉장히 많은 주일학생 들이 있었습니다. 겉보기와는 달리 교회는 생기가 넘쳤습니다.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한 집 에 보통 3-5명 정도였으니 예배를 드릴 때면 콩나물시루 같이 빽빽하였습니 다. 아이들이 많으니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귀한 줄도 모르고 떠들고 말을 안 들으면 ‘너 그럼 집에가’ 곧 잘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제가 원래 다녔던 교회는 잘 지어진 규모가 제법 큰 교회였으나 그곳에서 저 는 잘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던 때였습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너무 나 초라한 베니어판 교회당, 교회 안의 강대상은 베니어판 강대상이었고 의 자는 목사님께서 손수 만드신 못이 툭툭 튀어나온 보잘 것 없는 의자였습니 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저는 그곳에서 어머니의 품속 같은 따스함을 느꼈습니 다. 처음으로 뵌 목사님은 어머니 같은 따스함이 느껴지며 또한 너무나 인자 하신 인상이셨습니다.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니 귀에 쏙쏙 들어오는 것이 너 무나 신선하였습니다. 예민한 청소년 시기였던 저는 모든 것이 편안하고 고 향집에 온 듯한 온화한 분위기에 저의 마음이 흠뻑 빠져들었습니다. 그 후부터 저는 새벽기도, 수요일, 금요구역예배, 주일 낮, 밤 모든 예배와 행사에 적극 참여하므로 저의 신앙은 급속도로 성장하며 자랐습니다. 특별 히 음악을 좋아하고 찬양에 소질이 있었던 저는 성가대에서 솔로로 활동을 하며 결혼식 축가는 도맡아서 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추운 겨울밤에 우리는 손을 호호 불어가며 골목골목 다니면서 찹쌀떡 장사를 하여 그 이익금으로 건축헌금을 드리기도 하였습니다. 성탄절이 돌아 오면 카드를 손수 그려 팔기도 하였습니다. 예배당을 건축할 때는 포크 레 인 부를 돈이 없어 흙을 삽과 곡괭이로 직접 파서 릴레이로 쭉 서서 흙을 날 라서 지하실을 완공하였습니다. 누구도 말릴 수 없는 대단한 열정이었습니 다. 또한 유난히 많았던 주일 학생들 그 당시에는 주일날 아침 6시에 주일학교 새벽기도가 있었는데 달동네 골목골목을 다니면서 아이들을 깨워서 교회로 데려와 졸린 눈을 비비며 새벽기도 하던 기억도 있습니다. 여름 성경학교가 시작되기 몇 주전부터는 어깨에 큰북을 메고 북을 치면서 골목골목을 누비 던 기억도 있습니다.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여름 성경 학교가 한참일 때 교회 문을 열면 훅하 고 뿜어 나오던 땀 냄새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교회에는 선풍기가 한 대도 없어 집사님들 집에 있던 선풍기를 총동원하여 틀어놓고 월요일부터 금요일 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목요일쯤부터는 아이들이고 선생님이고 할 것 없이 목이 꽉 잠겨 말소리가 나오지를 않았습니다.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달동네 베니어판 교회당에서 젊음을 불태우시며 잠자 고 있던 청년기의 열정을 깨워주셨던 목사님 그분은 저의 생애에 잊을 수 없 는 영적인 멘토이십니다. 저는 목사님을 만난 후 순수한 청년의 열정을 고스 란히 주님께만 드릴 수 있었습니다. 가난하고 고단했던 철거민 달동네에서 목사님은 권위를 앞세우지 않으시고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다가가셔서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며 상처받은 마음들 을 복음으로 어루만지셨습니다. 그분은 항상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제 여러분은 밑바닥까지 다 내려갔으니 더 이상 내려 갈 곳이 없고 올라갈 일만 남았다’고 소망을 불어넣으시며 열변을 토하셨습니다. 또한 각종 문제들로 편할 날이 없어 방황하며 상담을 요청하면 밤을 새워가 며 그들을 상담하며 용기를 주시며 몸을 아끼지 않으시던 분이셨습니다. 참 으로 소탈하시면서 서민처럼 낮아지시면서 그들의 애환을 어루만지셨던 훌륭 하신 목사님이십니다. 이성 문제로 방황하던 저희 청소년들에게는 자신의 젊었던 시절 몇몇 이성들 에게서 흠모를 받았으나 실수하지 않고 지혜롭게 해결하셨던 이야기들을 곧 잘 밤을 지새우시면서 우리들에게 해주셨습니다. 저희는 목사님의 말씀이 얼 마나 좋은지 기다리실 사모님은 고려하지 않고 목사님과 대화하는 일에 흠 뻑 빠져 있기도 하였습니다. 제 인생에 아주 중요한 시기인 청소년기에 목사님을 만난 것은 큰 복이며 무 엇보다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목사님은 저에게 영성, 지성, 감성 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신 삶의 훌륭한 멘토이십니다. 또한 그분은 자기를 철저히 낮추셔서 명예를 외면 하셨습니다. 예성교단의 총회장으로 여러 번 추대되었으나 단호히 거절하시며 자기는 평생 동안 명예 를 얻지 않을 것을 하나님께 서원했다고 말씀하시며 자기를 지키셨습니다. 얼마 전에 신문지상을 장 식하던 교단장 쟁탈전 사건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모 습입니다. 참된 지도자가 없어서 안타까운 이 시대에 참된 지도자상의 모범 이 되어 주셨던 너무나 아름다우신 분이십니다. 상처받은 많은 사람들은 아버지같이 따뜻하고 인자하신 목사님을 만나는 순 간 그곳에서 안식을 찾은 듯 좀처럼 떠나지 않고 목사님의 사랑의 넓은 그늘 에서 쉼을 얻는 듯했습니다. 많은 성도들로 인하여 바쁘고 피곤하실 텐데도 차별 없이 약한 자에게는 더 자상하게 보살피시는 모습이 저에게는 항상 감 동의 물결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 교회는 수천 명의 성도가 있지만 36년 간 성도들이 대를 이어 충성하고 한번 들어오면 좀처럼 떠나지 않는 아주 특이한 교회입니다. 그리고 특별히 잘난 사람도 별로 없는 평범한 사람들, 누구보다 고난의 골짜 기를 헤매던 사람들이 지금은 삶의 용기를 얻고 신앙의 용장으로 거듭난 사 람들이 많은 곳이 그 교회입니다. 세월은 무심하게 흘러 감수성 많던 청소년이었던 저도 이제는 중년이 되었습 니다. 존경하는 목사님께서도 3년 후 은퇴를 앞두고 계십니다. 그러나 34년 이 지난 지금도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 없으 신 그 분의 그 인자하심, 자상하 심, 절절한 사랑에 저의 가슴이 뭉클 합니다. 변함없는 목사님 뵙고 가슴 뭉클해 사람들은 인생을 살면서 고단한 삶에 쉴 그늘을 찾아 헤매다가 큰 그늘을 만 나면 그곳에서 쉼을 얻기를 원합니다. 큰 나무 같았던 그분 그분의 그늘아 래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쉼을 얻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희도 그 분처럼 주님의 큰 나무가 되어 많은 사람들을 쉬게 하고 싶습니다.
434 no image |목회수상| 천국의 식탁_서현철 목사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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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85 2008-11-12
천국의 식탁 서현철 목사_복음의빛교회 “잘 노는 자녀들 보는 아버지의 흐믓한 심정 느껴” 오래 전 청년시절 주일학교 교사회의 때였다. 나는 ‘누가 부활 주일 글자 를 만들어서 강대상 뒤에 붙여야 되지 않느냐’고 했더니 ‘그러면 서 선생 이 하면 되겠네’ 해서 솜씨 없는 이 사람이 했다. 번번이 솜씨 없는 글 쓰게 돼 오랜 후 지난 봄 증도(천국의 섬)에 갔다가 식사시간에 나는 ‘누가 이번 여 행을 글로 쓰면 좋을 텐데’라고 했더니 ‘그러면 서 목사가 쓰면 되겠네’ 해서 재주 없는 이 사람이 썼다. 이후로 나는 다시는 이런 실수를 되풀이하 지 않으리라 했다. 하지만 나는 우리의 길이 우리의 생각과 뜻대로 만은 안 된다는 것(잠 16:9; 렘 10:23)을 잊고 있었다. 영월 다하누촌에서 맛있는 식사시간을 가진 후 인근에 있는 ‘한반도 지형, 선돌’ 구경을 하고 나오는데 뒤에서 누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 돌아보 니 K 목사님이다. 지난번 증도 다녀온 글을 잘 읽어보았노라고 하신다. 나 는 순간 짧은 흐뭇함과 아울러 얼른 내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K 목사님은 이번 영월 다녀온 이 일도 글로 써 보는 게 어떠 냐고 하신다. 나는 묵묵부답. 하지만 K 목사님은 두 번, 세 번 강조하신다. 잠시 후 휴게소에서 감자떡 하나를 건네시면서 또 한 번 말씀하신다. 나는 속으로 ‘아예 단단히 감자떡으로 풀칠을 하시는구나’싶었다. 뭘 쓰지? 막상 쓰려고 해도 뭘 써야 할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 다. 우리는 그렇게 야유회를 다녀왔었다. 우리는 버스 타고 영월 가서 싸고 맛있는 한우고기 먹고, 밥 먹고, 마침 가 는 날이 장날이라 시골 장터 구경하고, 앞에 흐르는 하천 한번 걸어보고, 또 나지막한 산 위에 있는 정자에도 한번 올라가 보았다. 그리고 가까운 주 변의 경관 한번 둘러보면서, 함께 사진 찍고, 함께 나누는 대화 속에서 터 져 나오는 조크와 유쾌한 농담, 우리는 쉴 새 없이 웃고 즐거워했다. 우리는 예배드리지도 않았고, 말씀을 보지도 않았고, 기도하지도 않았다. 우 리 중에 아무도 기도의 사람같이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말씀의 사람같이 보 이는 사람도 없었다. 경건하게 보이는 사람도 없었 다. 그리고 목사같이, 사 모같이 보이는 사람도 없었다. 적어도 이 사람이 보기에는 다들 반듯하고 빈 틈없는 양복, 양장 차림 대신, 아무데나 퍼질러앉아도 좋을 몸빼바지 차림 을 한 ‘하나님의 자녀들’뿐이었다. 우리 세대에 ‘거룩한 열정’ 등 몇몇 귀한 책을 내놓고 있는 존 비비어. 그 가 신학교 시절, 한번은 급우들이 와서 함께 축구하자고 할 때 비비어는 자 기는 성경을 읽어야 되기 때문에 바깥에서 공놀이를 할 수 없다고 했다. 급 우들이 밖으로 축구 하러 가고 난 후 비비어는 읽던 성경을 계속 읽는데 아 무것도 마음에 부딪힘도 없고, 힘만 드는 것을 느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제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해서 성경 을 읽고 있는데 왜 이렇게 말씀이 들어오지 않습니까?’라고 하자 그때 그 의 내면 깊은데서 올라오는 조용한 음성 하나. ‘너도 밖에 가서 축구하고 놀아라.’ ‘하나님을 추구함’의 저자 A.W. 토저가 한번은 자신의 젊은 동역자 곁을 지나면서 던지는 장난기 섞인 한마디는 ‘그저 이것을 기억하게. 인생은 전 부 그렇게 심각한 것만은 아닐세, 그것을 잊지 말게’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의미 있어 보이는 어떤 프로그램도 없었 다. 한마디로 그날 우리는 함께 잘 놀다가 왔다. 하지만 그날 우리의 모임 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셨고, 무척 흐뭇해 하셨으리라고 생각한다. 내 개인적인 경험 한 가지를 말해본다면 몇 년 전 우리 집 아이들이 지금보 다 더 어렸을 적이다. 시골 할머니 댁에 가서 초동이(개 이름)를 데리고 온 마당과 밭으로 뛰어다니며 웃고 즐거워하는 녀석들의 모습을 보고 있는데, 내 마음 한 켠에서 흐뭇한 감정이 올라오는 것을 경험했다. 내 자식이 잘 노 는 모습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이러할진대, 당신의 자녀들이 잘 노는 모습 을 보시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 마음이야 오죽하시랴 싶었다. 천국의 식탁 미리 맛 본 듯해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시 133:1) 함 같이, 그날 우리의 모임은 하나님 보시기에 복되고 귀한 아름다운 모임이었 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함께 한 두 차례의 식탁 경험(영월, 여주)은 단순 한 식탁이 아닌 주님의 정하신 그날, 만민 중에서 불러내신 천천, 만만의 ‘하나님의 자녀들’이 함께 하며 천상에서 펼쳐질 어마 어마하고 영광스런 식탁을 이 지상에서 미리 맛본 작은 ‘천국의 식탁’ 경험이었다. -이 글은 가을노회 끝난 후 교역자야유회 다녀온 뒤에 쓴 것입니다.-
433 no image |목회수상| 은혜의 도구로 쓰임 받는 삶_김명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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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44 2008-10-29
은혜의 도구로 쓰임 받는 삶 김명혁 목사·강변교회 원로/선교목사·한복협 회장 “모든 것이 망극하신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나는 요사이 이곳 저곳에서 말씀을 전할 때마다 자주 고백하는 말은 나의 삶 을 돌이켜볼 때 이리로 보나 저리로 보나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것 이 없음을 고백하는 말이다. 나는 예배와 집회를 인도하기 위해 이곳 저곳으로 달려갈 때마다 자격 없음 을 절감하며 무거운 마음을 지니곤 한다. 기도도 무시하고 말씀도 무시하고 성결도 무시하는 죄인이 또 예배와 집회를 인도하러 가는구나! “하나님 아 버지 나를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이번에도 나의 죄를 사하시고 나를 은혜의 도구로 사용해 주시옵소서!” 무거운 마음을 지니고 절박한 호소의 기도를 드리곤 한다. 이번에 독일로 가 는 비행기 안에서도 꼭 같은 호소의 기도를 드렸다. 그런데 이번 독일 슐란 트하임 게뮨트에서 모인 연합수양회에 하나님께서 특별한 은혜를 부어 주셨 다. 특별 한 은혜받은 독일 연합수련회 40-50여 명 내외의 신자들을 가진 5개의 작은 교회들로부터 백여 명 이상의 신자들이 함께 모였다. 3시간, 4시간 또는 6시간 떨어져 있는 여러 곳으로부 터 대부분이 젊은이들로 구성된 100여명 이상의 신자들이 각각 10만원 정도 의 등록금을 내고 높은 산 속 허름한 수양관에 함께 모였다. 절반 이상은 유학생들이었다. 5개의 교회에서 목회하는 5분 목사님들과 사모 님들도 함께 모였다. 15명 정도의 아기들과 어린이들도 함께 모였다. 1년에 한번씩 함께 모이는 모임이라 서로들 만나서 너무 반가워하며 좋아했다. 나는 이번 연합수양회에서 1시간 30분 가량의 긴 설교를 다섯 번 했다. 오 늘 한국교회는 말보다, 설교보다, 감성보다, 흥분보다, 프로그램보다, 음악 보다, 이적보다, 체험보다 주님 닮으려고 하는 진실하고 소박한 삶이 필요하 다고 지적하며 조용한 설교를 계속했다. 그리고 주님 닮으려고 하는 진실하고 소박한 삶은 첫째 나그네처럼 만나서 나누며 버리는 삶이고, 둘째 약하고 착하게 주변으로 찾아가는 삶이고, 셋 째 자기를 부인하며 항복하는 삶이고, 넷째 무엇보다 최고로 중요한 사 랑을 베푸는 삶이고, 다섯째 결국에 가서는 자기를 희생하는 제물 되는 삶을 살 고 제물 되는 죽음을 죽는 삶이라고 지적했다. 그와 같은 삶을 성 프랜시스, 길선주 목사님, 이기풍 목사님, 주기철 목사 님, 손양원 목사님, 장기려 박사님, 한경직 목사님 같은 우리 믿음의 선배들 이 살았다고 지적했다. 말씀을 경청하는 수양회 참석자들의 마음가짐이 순수하고 간절하고 눈물겹도 록 아름다웠다. 하나님께서 부족한 나의 설교를 너무나 크게 복을 주셨다. 모두가 하나님의 망극하신 긍휼과 자비와 은혜 때문이었다. 연합 수양회를 위해서 기도한 한국교회 성도들의 기도 때문이기도 했고, 은 혜를 사모하는 수양회 참석자들의 순수하고 간절한 영혼들 때문이기도 했 다. 다섯 분 목사님들과 사모님들의 양무리들을 위한 간절한 기도와 사랑 때 문이기도 했다. 집회 시간마다 젊은이들은 눈물과 아멘으로 화답했다. 토요일 오후 마지막 다섯 번째 집회를 인도하며 마지막 설교를 했다. 예배 후 젊은이들이 떠나지 않고 줄을 서서 내가 안아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 부분이 젊은 여자 청년들이었지만 남 집사님들도 있었고 독일 남성도 있었으 r 며 목사님들의 사모들도 있었다. 나는 젊은이들을 하나하나 안아주면서 저들이 가슴에 지니고 있을지 모르는 ‘애틋한 향수’를 함께 느꼈다. 아버지에 대한, 어머니에 대한, 가족에 대 한, 고국에 대한, 고국 교회에 대한 ‘애틋한 향수’를 함께 느꼈다. 아니 저들은 모두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품을 그리워하는 ‘애틋한 사모의 정’ 을 지니고 있으면서 나의 품에 꼭 안긴다고 생각했다. 나는 저들이 모두 측은하게 보이기도 하고 예쁘게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 는 저들 모두를 품에 꼭 안아 주었다. 나이 지긋한 권사님 한 분도 안아달라 고 해서 꼭 안아드렸고 나중에는 김익진 목사님의 사모가 헤어지기 전에 안 아달라고 해서 꼭 안아 주었다. 이번 연합회 수양회의 총무의 역할을 한 이창배 목사님은 프랑크푸르트 공항 까지 나를 배웅하러 나와서 눈시울을 붉히면서 진심 어린 감사의 인사를 했 다. 이번 수양회 참석자들이 모두 깊은 감동과 은혜를 받으며 너무너무 좋아 했다고 말했다. 수양회 때마다 간혹 의견의 일치가 되지 않은 때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모두 가 한 마음 한 뜻이 되었다고 말했다. 특히 외롭고 지쳐있는 다 섯 분 목회자 들과 사모님들이 큰 위로와 격려를 받았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불로 불로…” 식의 부흥집회를 했는데 이번에는 신앙의 선배들 이 보여준 주님 닮은 진실한 그리고 헌신적인 삶을 살자고 조용히 호소하는 말씀에 깊은 감동과 깨달음을 받았다고 말하며 그 감동과 깨달음이 오래오 래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내가 참석자들에게 초콜릿을 하나씩 나 누어준 것이 너무 감동적이었다고 말했다. 모두가 하나님의 망극하신 은혜 와 긍휼과 자비와 사랑 때문이었다. 수양회 전날까지만 해도 춥고 흐렸는데 수양회 기간 동안에는 날씨가 따뜻하 고 화창했다. 나는 내가 가는 곳에는 언제나 날씨가 화창하다고 웃으며 말했 다. 나는 이창배 목사님과 헤어지기 전 공항에서 두 손을 맞잡고 간절하고 뜨거운 감사와 간구의 기도를 드렸다. 이리 보아도 저리 보아도 하나님의 은 혜가 아닌 것은 하나도 없었다. 하나님의 망극하신 은혜와 긍휼과 사랑에 눈 물의 감사와 찬양을 드릴뿐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일 뿐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앞으로도 주님의 은혜 와 위로와 사랑의 도구로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손이 필요한 자들에 게는 주님의 손이 되게 하시고, 주님의 품이 필요한 자들에게는 주님의 품 이 되게 하시옵소서! 이번 독일 나들이에 함께 하신 주님께 무한한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10월 15일 독일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목에서
432 no image |목회수상| 사랑하는 존경하고 보고 싶은 박윤선 목사님..._김명혁 목사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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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3 2008-10-01
“사랑하는 존경하고 보고 싶은 박윤선 목사님을 생각하며” 김명혁 목사 (강변교회 원로/선교 목사, 한복협 회장, 합신 명예교수) 나는 지난 2007년 10월 22일 저녁 갑자기 ‘보고 싶어지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그 글은 다음과 같이 시작되었다 : 갑자기 보고 싶어지는 사람들이 생각났다. 어머니와 아버지와 어린 아들 철 원이를 비롯해서 보고 싶어지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 중에 몇 사람들의 이름 만 적어본다. 우선 박윤선 목사님이 보고 싶어진다. 가식과 꾸밈이 없는 분이었다. 어린 아이와 같은 단순하고 소박한 미소를 지닌 분이었다. 그리고 나에게 특별한 믿음과 사랑과 애정을 나타내 보이신 분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야기하 지 말라고 하시면서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나에게 자주 말씀하시던 분이었 다. 그분은 무엇보다 기도와 말씀과 하나님께 사로잡혀서 사신 분이었다. 나는 박 목사님이 세상에 계시던 마지막 한 주간 목사님을 매일 찾아뵈면서 마 지 막 모습을 지켜보았는데 나는 지금 박윤선 목사님이 보고 싶다. 그리고 그 글은 다음과 같이 이어졌다. “나는 장경재 목사님이 보고 싶어진 다...” “나는 한경직 목사님이 보고 싶어진다...” “나는 김치선 목사님 이 보고 싶어진다...” “나는 이성봉 목사님이 보고 싶어진다...” “나는 강원용 목사님이 보고 싶어진다...” “나는 이중표 목사님이 보고 싶어진 다...” 나는 지난 2008년 8월 31일 밤 갑자기 ‘주님 앞에 섰을 때의 나의 모습’이 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그 글은 다음과 같이 시작되었다 : 저는 얼마 전에 자동차를 운전하고 가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내 가 앞으로 아버지 집으로 올라가서 주님 앞에 섰을 때 나의 모습이 어떠할 까? 기뻐 뛰는 모습일까? 소리 지르며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모습일까? 아니 라고 생각했습니다. 소리 없이 흐느끼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그런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죄송하고 부끄럽고 고마워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흐느껴 우는 그런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 평생 사는 동안 주님 위해서 산다고 떠들었지만 사실은 불순종과 정욕과 위 선과 교만으로 가득했던 것을 되돌아보면서 얼굴도 들 수 없고 입도 열 수 없어서 그저 고개를 떨구고 흐느껴 우는 그런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해 보 았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나를 주님의 입에서 토해 내지 않으시고 한 평생 붙드시며 사용하셨을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너무 부끄럽고 너무 죄송하고 너무 고 마워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흐느껴 우는 그런 모습이 주님 앞에 섰을 때 의 나의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마치 누가복음 7장에 나오는 죄인인 한 여인이 눈물을 쏟으면서 그 눈물로 주님의 발을 적셨듯이 나도 그런 모습을 지니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 보았습 니다. 그 글은 다음과 같이 이어졌다. “저는 또 하나의 나의 모습을 그려보았습니 다. 아브라함과 모세와 다윗 그리고 길선주 목사님, 주기철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 이성봉 목사님, 김치선 목사님, 박윤선 목사님, 한경직 목사님 등 신앙의 선배들 앞에 무릎을 꿇고 감사와 존경과 사랑을 표시하고 또 표시하 는 나의 모습을 그려보았습니다. 내가 지옥의 형벌에 떨어지지 않고 아버지 집으로 올라오게 된 것은 첫째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긍휼과 자비와 은혜와 사랑 때문이지만, 둘째는 신앙의 선배들이 나의 몸과 영혼에 심어준 회개와 믿음과 눈물과 사랑의 씨앗 때문이기 때문입니다.” 그 글은 내가 너무너무 부끄러워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흐느껴 울다가 어머 니와 아버지와 어린 아들과 가족들과 사랑하는 성도들을 만나 너무 반가워하 고 행복해 할 것이라는 글로 이어졌고 마무리되었다. “저는 너무너무 부끄러워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흐느껴 울다가 너무너무 반 갑고 너무너무 고마워서 소리내어 웃으면서 행복해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영 원토록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긍휼과 자비와 지혜와 권능 과 위대하심을 무릎을 꿇고 두 손 높이 들어 찬양하고 또 찬양하고 또 찬양 할 것입니다.” 여기서 내가 고백할 수 있는 것은 박윤선 목사님은 이 세상에서의 나의 삶 의 의식 중에는 물론 저 세상에서의 나의 삶의 의식 중에도 언제나 그 중심 에 자리 잡고 계신다는 것이다. 나는 지난 10여 년 동안 설교를 준비할 때 다른 사람들의 주석은 거의 보지 않았지만 박윤선 목사님의 주석은 가끔 찾 아보곤 했다. 나는 지난 2006년 10월 박윤선 목사님을 기리면 서 ‘하나님께 붙잡힌 기도 와 말씀의 사람 박윤선 목사님’이라는 제목의 글을 쓴 일이 있는데 그 일부 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 지난 30여 년 동안 나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분은 나의 스승 박윤선 목 사님이시다. 나의 한 평생에 있어서 이성봉 목사님, 김치선 목사님 등이 나 에게 깊은 신앙적 감화를 미친 분들이지만 박윤선 목사님은 나의 삶에 지대 한 영향을 미친 분으로 내가 가장 존경하고 가장 좋아하는 목사님이 되셨 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나는 언제나 박 목사님과 상의하곤 했다. 박 목사님도 나를 퍽 좋아하셨다. 박 목사님은 시간에 상관없이 나에게 전화를 거시고 하 시고 싶은 말씀을 하시곤 했다. 때로는 질문도 하셨고 때로는 ‘이 말은 다 른 사람에게는 하지 마’라고 하시면서도 하시고 싶은 말씀을 하시곤 했다. 나는 박 목사님이 언제나 좋았다. 신앙적 감화와 인격적 감화 때문이었다. 박 목사님은 인간적으로는 소년처럼 단순하고 순박하고 정다웠고 신앙적으로 는 하나님만 아시는 분이었고 하나님께만 붙잡혀 사신 분이었다. 나는 마지막 1주일간 세브란스 병원에 계신 박 목사님을 거의 매일 찾아 뵙 곤 했는데 그때야말로 기도로 일관한 기간이었다. ‘산에 가서 기도하다가 죽고 싶다’고 고백하시기도 했다. ‘소위 박 목사의 의를 제해 달라’고 호 소하며 기도하시기도 했다. 박 목사님은 결국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 시옵소서’라고 부르짖으며 주님 품에 안기셨다. 박 목사님은 기도로 일관된 삶을 사신 분이었다. 박 목사님의 삶은 평생토 록 말씀을 사랑하고 연구하는 주경신학자의 삶으로 나타났다. 박 목사님의 삶은 또한 겸손과 진실과 착함의 인격으로 나타났다. 그의 얼굴에는 항상 잔 잔하고 순박한 소년의 미소가 깃들어 있었고 가식이나 꾸밈을 모르는 진실 이 풍기고 있었다. 박 목사님은 또한 인간 관계나 교파 또는 문화적 관계에 있어서 폭 넓은 이 해와 시야를 가지고 계셨다. 여성 사역에 있어서도 개방적인 입장을 취했 다. 박 목사님은 개혁주의적 삶을 몸소 실천하신 분이었다. 하나님 중심적 뜨거 운 신앙과 삶의 원리로 나타남을 보여주셨다. 그리고 칼빈주의 신학은 배타 적 분리주의가 아니라 적극적 포용과 교제의 삶인 것을 나타내 보여주셨으 며 세상사에 무관심한 반 문화주의가 아니라 구제 사 역과 선교 사역 등에 적 극적인 관심을 나타내는 문화 변혁주의인 것을 가르쳐 주셨다. 나는 나의 평생에 하나님과 기도와 말씀에 붙잡혀 사신 나의 스승 박윤선 목 사님을 만나게 하시고, 그 분과 함께 일하게 하시고, 그 분으로부터 배우게 하시고, 그리고 그 분의 사랑을 받게 하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나의 스승 박윤선 목사님께 무한한 감사와 존경과 사랑을 표한다. “박 목사님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제대로 살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나는 지금도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고 좋아하던 박윤선 목사님이 보고 싶다. 시인 고훈 목사는 한경직 목사님이 세상을 떠난 후 한 목사님을 목이 메어 부르면서 다음과 같이 그의 허전함을 토로한 일이 있었다 : 아무 말 없으셔도 무슨 일 안 하셔도 당신은 우리의 힘이셨습니다. 한 사람 을 만인만큼 소중하게 만인을 한 사람 대하시듯 어떤 요구에도 거절 못하시 고 누구의 의견에도 손들어주시고 단 한 사람에게도 섭섭함 주신 일 없으신 한국의 성자여! 한국의 작은 예수여! 모든 것 가지고도 아무것도 없으신 가난한 목자, 아무 것도 없으면서 모든 것 다 가지신 사랑의 목자여. 우리가 오늘 여기 이토록 슬픈 것은 아무리 둘 러봐도 당신 같은 목자는 하나도 없는 이 텅 빈 세상이 너무 슬퍼서 입니 다. 나도 지금 고훈 목사와 비슷한 심정으로 박윤선 목사님을 애타게 그리워한 다 : 목사님은 아무 말 없으셔도, 무슨 일 안 하셔도 우리의 본이셨고 우리의 위 로와 힘이셨고 우리의 즐거움과 기쁨이셨습니다. 목사님은 진실이 무엇인지 를, 겸손이 무엇인지를, 믿음이 무엇인지를, 사랑이 무엇인지를, 소망이 무 엇인지를, 몸으로 삶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우리가 오늘 여기 이토록 허전하고 슬픈 것은 아무리 둘러봐도 목사님 같은 목자가 없는 텅 빈 세상이 너무 슬퍼서입니다. 목사님 보고 싶습니다. 목사님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목사님 죄송합니다. (2008년 9월 20일 아침 수서 사무실에서 김명혁 목사 드림)
431 no image |목회수상| 의지와 소욕의 경계선에서_유익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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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62 2008-09-23
의지와 소욕의 경계선에서 유익순 목사·제주성도교회 “목회의 길에는 ‘의지’마저도 무거운 짐일 수 있어” 자주 만나는 목사 한 분이 요즘 많이 부르는 복음성가를 작사한 사람이 바 로 자기 조카라며 자랑을 했습니다. 그 가사가 참으로 좋습니다. 내가 주인 삼은 모든 것 내려놓고 내 주되신 주 앞에 나가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 내려놓고 주님만 사랑해 주사랑 거친 풍랑에도 깊은 바다처럼 나를 잠잠케 해 주사랑 내 영혼의 반석 그 사랑 위에 서리 성공한 목회자가 아니니 명예가 있을 리 없고, 개척교회 목회자가 부자가 아 닌데 나는 무얼 내려놓을까 돌이켜 보게 되었습니다. 스물 여섯 나이에 훤칠한 장정들이 떡 버티고 서 있는 강원도 정선의 한 시 골교회를 시무했습니다. 서툰 전도사가 하는 일이 뭐 하나 제대로 되는 일 이 없자 남몰래 울기도 하였고, “우리 목회말고 딴 것 하자”며 아내에게 투정을 부리던 일도 생각이 납니다. 당시 교회는 초등 학교에서 교실로 쓰던 낡은 목조건물을 예배당으로 쓰고 있 었던 터라 그 한 쪽에 붙어 있는 사택은 허술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겨울이 되면 자다가 일어나 한 밤중에 아궁이에 불을 지펴 싸늘하게 식은 방바닥을 따뜻하게 데워야했고, 밥 지을 물을 길어 오려면 우물에 가서 두레박질을 해 야 했습니다. 빨래라도 하려면 동네를 가로질러 멀리 동굴 속에 있는 빨래터 까지 가야합니다. 이렇게 시작 된 목회가 벌써 이십 팔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여러 곳을 찾아 교회를 개척했고, 예배당을 짓고 정든 교인들과 눈물로 헤어지기 를 반복했습니다. 육지에서 마지막으로 개척한 교회의 남은 장의자 몇 개를 싣고 제주에 온 것 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예배당을 네 번씩이나 옮겼습니다. 건물 없는 설움 을 단단히 겪고 있는 것이지요. 처소를 옮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 다. 많은 재정과 시간과 인력이 들어야 합니다. 개척을 하다 보면 초기에는 일군이 없습니다. 그럴 때면 하는 수 없이 목회 자가 막노동을 해야 하지요. 아무도 보지 않는 깊고 어두운 지하에서 혼자 벽을 뚫으며, 망치질을 하며, 쇠를 자르며 여러 날 동안 예배 당을 꾸며야 합 니다. 너무 힘이 들어 일어설 힘조차 없을 때도 있고, 없는 재정은 못 하나 사는 것도 힘겨울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마음으로 “이제 곧 교회가 부흥하면 이 모든 고생, 그리고 이 모든 재정 손실을 다 갚을 수 있을 것이라고, 그리 고 때가 되면 곧 땅을 사고 교회를 건축하게 될 날이 올 것”이라며 ‘의 지’를 다지기도 합니다. 만일 이마저 사라진다면 이 외딴 섬 제주에서 더 견디지 못할 것만 같았습니다. 의지는 큰일을 하게 하고 또 많은 일을 하게 하며 때로는 기적을 일으키기 도 합니다. 그러므로 목회자에게 있어 ‘의지’ 그것은 참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의지’는 때때로 ‘주의 일’ 혹은 ‘사명’이라는 말로, 더러 는 ‘열심’이라는 말로 포장되기도 합니다. 그 ‘의지’가 만일 목회자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일에 쓰인다면 자칫 소욕 의 껍데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멋진 설교를 하겠다는 것도, 성도들의 열심 을 일으키겠다고 다그치는 것도, 어마 어마한 교회를 건축하겠다는 것도 결 국 자신의 성취와 야심을 채우는 일에 불과하다면 그 의지는 목회자 자신을 위한 ‘소욕의 껍데기’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달랑 ‘의지’ 하나만 가지고 찾은 제주 개척의 길에서 고난의 끝이 보이지 않을 때, 지금의 목회 현실이 더 나은 내일을 향한 전주곡이길 바라며 벗어 나고 싶을 때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 벗어나고픈 감정을 근사한 교회를 시무 하는 ‘하룻밤 꿈’으로 대신할 때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목회가 극한의 고통에 다다를 때 그 ‘의지’마저도 버리게 하였습 니다. 오히려 그것이 내게 짐이 됨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나를 번민케 하고 조급하게 하는 것임도 알게 하셨습니다. 이젠 그것마저도 내려놓아야 할 것 같습니다.
430 no image |신앙단상|지금은 교회가 하나님의 임재 증거할 때이다_나택권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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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18 2008-09-23
신앙단상 “지금은 교회가 하나님의 임재 증거할 때이다” 나택권 장로_전국장로연합회 회장, 호산나교회 지금 세계 곳곳에서는 식량위기를 당하고 있다. 카브리해의 아이티와 카메 룬, 이집트 등지에서 식량가격 폭등을 견디다 못해 일어난 시위로 많은 사람 이 죽어가고 있다. 아프리카, 아시아 등 17개 국 이상에서 쌀, 보리, 옥수 수, 밀 값 등이 터무니없이 올라 어수선한 형편이다. 식량난에 허덕이는 지구촌 사람들 이를 두고 세계은행 총재 로버트 졸릭은 식량 값이 급격히 뛰면 1억 여명이 굶주리는 위기가 닥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식량의 위기의 원인은 중국과 인 도가 소득이 올라감에 따라 제대로 먹기 시작하므로 식량 수요가 급증한데 있다. 또 하나는 지구의 온난화로 가뭄이 계속되어 호주와 같은 식량 생산량 이 큰 나라가 생산의 절대감소에 그 원인이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식량 사정도 자급률 28%밖에 안 되며 쌀만 빼고는 대부분 외국산 에 의존하고 있 다. 이와 같은 현시대의 식량위기는 비록 육신의 식량위기만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영적 생명의 굶주림에 빠져들게 하고 있다. 저들은 인간이 만든 자기개발과 자아향상을 위한 프로그램을 너무 많이 섭취함으로 써 오히려 병들어 가고 있다. 또한 수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지침과 소망을 얻기 위해 점술집이나 심령술 등을 하고 있는 곳을 찾아간다. 저들은 인생의 소망을 필사적으로 갈망한 나머지 점쟁이 집이나 심령술사를 찾아가서 건네주는 부적 같은 판에 박힌 대본을 영적통찰로 착각하고 믿어 수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일들은 인생의 소망과 영적인 문제를 책 임져야 할 교회로서는 수치요 심각한 과오가 아닐 수 없다. 세상은 이처럼 영적으로 굶주려 있다. 이러다 보니 수많은 사람들이 사이비까지도 받아들이면서 인생 저편에 있는 그 어떤 것에 접촉하려고 애쓰고 있다. 저들은 우리 인생의 소망이 어디에 있고 어느 곳에 있는지 몰라 헤매고 있다. 이러한 현상들에 대하여는 전적 인 책임이 교회에 있고 교회가 비난도 받아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 다. 왜냐하면 크리스천들의 삶이 주의 말씀대로 살지 못했고 소금과 빛으로 역할을 잘 감당하지 못하는 데에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수없이 많은 복음전도를 저들에게 하였다 하더라도 저들이 전도를 받 아들이지 못한 이유는 우리에게서 하나님의 모습을 보기보다 인간의 모습을 더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저들은 부모나 친구나 이웃을 따라 한 번쯤은 교 회에 와 본 사람들이지만 그러나 저들이 교회에 정착하지 않고 바로 떠나는 이유는 교회의 영적 찬장에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 있다는 것을 저들의 눈으 로 보았기 때문이다. 교회에 하나님 임재의 신선한 빵이 있다면 굶주린 사람들이 이 소식을 듣고 신선한 빵을 얻기 위해 줄을 서는 굶주린 사람을 볼 수가 있을 것이다. 교회 에서는 인간의 모습만을 보였고, 교리를 가르치고 전도책자를 주었으며 어줍 지 않은 설득을 하였다 하더라도 그들이 원하는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 했으며, 하나님을 만나보지도 못했고 다만 이 세상의 것들로 삶을 가득 채우 고 굶주림을 충족시키고 있는 것으로 비추어 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물질적으로 번영하게 하는 한편 영적 인 영역에서는 걸 인처럼 먹는 생활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 저들의 책략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하나님 임재의 빵 부스러기를 조금만 얻어먹어도 만족하게 되었 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온전히 임하는 신선한 빵을 원해야 한다. 이를 위해 지금까지 우리의 행한 잘못을 먼저 눈물과 회개로 하나님께서 오실 자리를 준비하도록 하자. 그리고 교회마다 하나님의 신선한 영적인 빵을 채우도록 하나님의 도우심과 능력을 강구하도록 하자. 교회는 신선한 영적 양식 공급해야 교회는 인생의 참 소망을 알리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한다. 그 리하여 저들에게 크리스천의 참 삶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교회에 신선 한 빵이 있으면 굶주린 자들이 모여들게 마련이다.
429 no image |기독교 유적지 탐방기|하나님의 의와 진리를 구하는 성화의 여정_최청인집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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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00 2008-09-03
http://www.rpress.or.kr/files/sinkan/515sinesan.jpg기독교 유적지 탐방기 하나님의 의와 진리를 구하는 성화의 여정 최청인 집사_남포교회 성경에 나오는 역사적 사실들을 접하다보면 이에 대하여 의문이 생기고, 구 약과 신약에서 나오는 지명과 지형을 몰라서 혼란을 겪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마다 느끼는 소원은 ‘이스라엘이 출애굽 하여 광야생활 40년 간을 거쳐 가나안에 들어가서 어떻게 성쇠하고 어떻게 살았는지 확인하고 싶었 다. 또한 주 예수님이 어디에서 어떻게 이 땅에 오셔서 우리들에게 천국을 소망할 생명의 말씀을 주셨으며, 우리의 죄를 사하시려고 십자가에 달려 죽 으시고 3일 만에 부활, 승천하셨는지 직접 유적지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 다’고 생각하며 소망하였다. 우리의 소망이 이루어져 남포교회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장로, 안수집 사, 권사의 부부로 23명이 드디어 기독교 유적지 탐방길을 나서기로 하였 다. 계획하는 만남 에서부터 즐거웠던 우리는 이집트, 요르단, 이스라엘 3국 을 2008년 4월 7일부터 17일까지 11일간 일정으로 돌아보기로 하였다. 11일 동안의 일정 시작해 이집트에서는 카이로 공항에 내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인 피라미드 를 관광하고 예수피난동굴교회에서 헤롯왕을 피하여 숨으셨던 지하 동굴을 확인하였다. 바로의 공주가 모세를 건진 곳이라는 마리아 곱틱교회와 모세 가 기도하고 떠났던 모세기념회당도 보았다. 출애굽 길은 이스라엘 민족이 걸어갔던 수르광야-신광야-시내광야를 달리며 마라의 샘물, 엘림, 르비딤 골짜기를 거쳐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10계명을 받은 시내산을 등반하였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민둥산 사막 능선이 아침햇 살에 붉게 물들어 성산의 장관을 이루었다. 아카바만 상류 타바국경을 통하여 요르단에 입국, 구약의 땅 에돔에서 와디 럼(Wodi Rum)을 지나 아론의 장지 호르산을 보았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인디아나 존스의 무대였던 페트라도 관광하였다. 왕의 대로(Kings Hiway, 민 20:17)를 따라가다 세례 요한이 순교한(마 14:1-12) 헤롯왕 궁전 인 마케루스를 둘러보고 암몬에서 쇼 핑도 하였다. 호르산은 아침 햇살에 붉게 타올라 메드바에 있는 성조지교회에서 모자이크로 만든 성경 지도를 보고 느보산(비 스가산)에 도착하여 여리고성을 건너보았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에 들 어갔으나 모세는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들어가지 못하고 장사되었는데, 놋뱀 이 높이 서 길르앗 온 땅을 지켜보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알렘비 국경을 통하여 이스라엘에 입국하여 여리고성 우편을 지나 예루살렘 으로 향하였다. 가는 길에 베다니교회에 들려 죽어 장사된 나사로를 예수님 이 살려낸 지하 무덤을 보았다. 예루살렘은 동과 서로 나뉘어 동예루살렘은 아랍인이 거주하며 아랍글씨의 간판과 지붕의 까만 물통이 얹혀있었다. 반면에 서예루살렘은 유대인이 거주 하며 지붕에 하얀 물통을 얹어 놓았다. 목자들의 양무리교회와 들판교회를 거쳐 유다 땅 베들레헴에서 예수님이 탄 생하신 곳으로 표시된 지점을 보았다. 예수탄생교회는 겸손의 문을 통하여 안으로 들어가는데 순례객이 많아 줄을 서서 한참을 기다렸는데, 성캐더린교 회가 매년 12월 25일 예배를 드린다고 한다. 예루살렘은 동서로 갈라져 있어 예루 살렘성전은 솔로몬 시대에 건립하였으나 수없이 파괴되고 재건되면서 회 교도 이슬람의 전당이 되기도 하였으나 지금은 이스라엘 민족이 점령하여 구 약의 예루살렘 성전이 되었다. 예루살렘성은 거룩한 성, 평화의 성으로 감람 산 쪽 기드온 골짜기에서 스데반문(사자문)을 통해 입성하였다. 이 성은 이 방인이 모리아산에 세운 황금사원으로 인해 예수님이 ‘돌 하나라도 돌 위 에 남지 않고 무너뜨려 지리라’고 하셨던 곳이며, UN감시로 이스라엘이 치 안한다. 성내에서 길을 따라 병 고침을 받기 위해 몸을 씻던 베데스다 연못을 보고, 성모 마리아가 태어났던 안나교회에서 합창하였다. 십자가 달림은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고 감람산에서 잡히시어, 동굴감옥에 갇히셨다가 다음날 빌라도 법정으로 갔으며, 채찍 당하고 가바다에서 선고받았다. 우리는 이사야서 53장을 낭독하고 찬송하며 십자가의 길을 갔다. 에치호모 란 아치문을 통해 골고다 언덕을 걸으며 피아돌로르사, 어머니 마리아와 만 난 곳, 알렉산더와 루포에 대신 십자가를 지운 곳, 두 번째 쓰러진 곳, 예루 살렘의 딸들에게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 녀를 위하여 울 라’ 하셨던 곳, 세 번째 쓰러지신 곱트교회 입구를 지나 예수님의 무덤에 도착하였다. 십자가의 길 비아 돌로도사 무덤성전은 AD 325년 콘스탄틴 대제의 어머니 헬레나가 발견하고 대제에 의 해 세워졌다. 파괴되어 1149년에 다시 건축되었는데 예수님의 빈 무덤 위에 3층으로 둥그런교회, 칼바리움, 마투리움이 있다. 이곳에서는 예수님의 옷 을 벗기셨던 곳, 십자가에 못 박혔던 곳,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던 곳, 세마 포에 염하였던 곳, 묻히시고 부활하신 곳이 있고, 예수님의 무덤성전 또는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대성전이 세워져 있다. 통곡의 벽을 지나 북문을 나오니 예수님 무덤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동 굴들이 있다. 다윗성에 들러 저 아래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목욕을 하고 있었을 집을 내려다보았으며, 마가의 다락방에서 유월절 최후의 만찬과 오순 절 성령의 강림을 생각하며 기도를 하였다. 가야바 대제사장 집에 들르니 예수님이 죽음을 예언하시며 갇히신 감옥이 있 고, 예수님을 아느냐는 물음에 베드로가 3번씩이나 모른다고 부인한 곳이란 다. 예수님이 부활 후 40일 만에 승천하시면서 남기신 발자국이 있는 예수승 천교회, 예수님이 주기도문을 가르치셨고 한국어를 포함한 66개 국어로 벽 에 써 놓은 주기도문교회와 예수님이 타고가신 나귀를 매었던 벳바게교회를 둘러보았다. 전망대에서 예루살렘 전경을 둘러보고 내려오며 겟세마네동산에서 2,000년 수령의 감람나무를 보고, 8개국이 건축한 만국교회와 마리아의 무덤교회에 들러 스데반 집사의 순교교회를 보았다. 기독교 유적으로 가득 찬 예루살렘 에인켈렘에 들르니 요한의 탄생교회가 있고, 돌무화과와 계자씨 식물이 자라 고 있다. 카페들이 많고 연인들이 데이트를 하는 곳이라기에 자몽주스를 사 먹었다. 요한의 집과 마리아방문교회를 둘러보고, 소경을 고친 실로암 연못 으로 가보니 기드온에서 예루살렘으로 통하는 지하수로가 나있다. 다음날 욥바 항구와 아이알 골짜기를 지나 항구도시 가이샤라에 가니 빌라도 가 헤롯왕에 바쳤던 궁전이 있다. 원형극장에서 소음 테스트를 한다며 찬송 가 몇곡을 불렀다. 해변에는 수영장과 목욕탕의 흔적들과 경기장, 아푸아교 송수로가 있다. 갈멜산에 도착하니 엘리야 선지자가 바알신을 물리친 불의 제단 무라카 가 생 각나고, 노새를 타고 가던 압살롬이 저주받아 상수리나무에 머리카락이 걸 려 죽은 사건이 생각난다. 우리일행은 주일이라 예배를 드리고, 므깃도평야 를 내려다보면서 잠시 통성 기도를 하였다. 므깃도성은 므낫세지파에 분배하 고 솔로몬 궁전이 있었던 곳으로 동서남북을 연결하는 교통의 중심지이자 요 새지로서 전쟁시에 사용한 지하 우물이 유명하다. 교통 중심지이자 전쟁 요새지 므깃도 나인성을 지나서 나사렛에 들르니 마리아가 살던 집으로 천사 가브리엘이 예 수님의 탄생을 예언했던 마리아수태고지교회와 예수님이 사신 가브리엘교회 가 있다. 지하 동굴집에 축사와 목공소도 있다. 이웃마을 가나교회에 들르 니 예수님이 혼인잔치에서 처음 표적을 나타내시며 사용했던 항아리가 있 다. 이 항아리는 축하객들이 손을 씻도록 퍼주는 물을 담았는데, 예수님이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셨다. 갈릴리 호수에 도착하여 선상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빵과 포도주로 성찬예식 을 가졌다. 거라샤와 가버나움을 지나서 북쪽으로 올라가 6일전쟁에서 이스 라엘 영토로 점령한 눈 덮인 헬몬산(변화산) 밑에 가보고 되돌아 오는 길에 지하수가 솟아나는 가이사라 빌립보, 단, 헬몬강을 보았다. 우리는 예수님이 많은 말씀을 남기셨던 베드로교회와 팔복교회, 오병이어교 회를 둘러보며 기도와 찬양을 하였다. 갈릴리 호수 아래 세례터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물세례를 주고 있으나 예수님 당시에는 더 밑 야르테니트에서 세례 하였단다. 예수님이 시험당한 시험산과 여리고성, 엘리사가 소금을 뿌려 정 화시킨 슐탄샘과 삭개오가 올라갔던 뽕나무를 보고 엔게디를 지나왔다. 헬몬산을 배경으로 펼쳐진 갈릴리호수 1947년도에 A.D.68년의 사해사본이 발견되어 성경역사를 재확인한 쿰란에 도 착하니 12시에 우리말로 안내방송을 한다. 에메랄드색 씽크워드 사해는 북쪽 의 진흙과 남쪽에 소금이 나는데, 물에 누워 체험하니 가라앉지 않고 짠물 에 얼굴이 따갑다. 맛사다는 헤롯왕 궁전요새 도피성으로 로마군의 정복에 이스라엘 민족의 항 쟁이 있었던 곳이다.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으로 솟아난 소금산에는 소금기둥 이 된 롯의 아내가 외로이 서 있다. 타바국경과 이집트 스웨즈운하를 거쳐 카이로에서 대한항공으로 돌아왔다. 마음이 참 즐겁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여 행이었다. 이번 탐방으로 알게 된 보람된 점은 첫째, 이스라엘이 출애굽한 광야길을 따 라 지명과 유적들을 답사하니 성경의 기록들이 역사적인 사실임을 확인하였 다. 또한 예수님이 육신으로 세상에 오셔서 말씀으로 선포하셨던 성경의 내 용들이 실질적인 사실로서 생생하게 증거되고 있음을 알 수가 있었다. 예수피난교회, 마라의 샘물, 아론이 장사된 호르산, 요한이 처형 당한 마케 루스, 성조지교회 모자이크 성경지도, 느보산과 여리고성, 나사로의 무덤, 삭게오의 뽕나무, 엔게디, 벳바게, 시험산, 갈멜산, 헬몬산이 그대로 있었으 며, 마리아수태고지교회, 가브리엘교회, 안나교회, 예수탄생교회, 양무리교 회, 들판교회, 예수승천교회, 주기도문교회, 요한탄생교회, 마리아방문교 회, 베드로교회, 가나교회 등에서 옛 유적지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성경 기록은 역사적 사실을 담고 있어 헤롯왕의 여섯개 궁전과 빌라도법정부터 에치호모 아치문을 거치는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님의 무덤과 부활을 기념하는 대성전에 이르는 십자가의 역사 와 쿰란 동굴에서 발견된 성경의 정본과 사본 등 유적들이 확실히 성경역사 를 증명하고 있다. 왕의 대로(Kings Hiway ; 민20:17)와 가나안 땅이 성경 의 지리적인 위치, 지형, 기후, 문화와 같다.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것인지 발로 뛰며 눈과 귀로 가슴에 새겼었다.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려고 예수님이 십자가를 메고 가셨던 골고다의 길을 걸 어가서 십자가의 형틀에 달려 죽으신 모진 고통의 현장을 둘러보니 크신 사 랑에 감동하여 눈물과 목이 메인다. 부활하신 예수님으로 새롭게 태어난 자 신을 알고 구원의 복음이 무엇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나와 같은 죄인을 위하여 우리 죄를 사하시고 그리스도의 날에 우리를 자랑 하게 하시려는 우리 주 예수님께 대하여 그저 감사의 기도와 찬송이 절로 나 는 감동어린 천국잔치에 동참하는 여행이었다. 구원의 복음을 다시 확인하기도 둘째, 우리가 잘못 이해하고 있지 않나 하는 의문이 있다. 예수님이 가나교 회 혼인잔치에서 하객들이 손을 씻도록 퍼주는 항아리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 켰던 표적이다. 지금까지 나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세상에 오신 전능적인 능력의 표적으로만 이해하였는데,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나니 손 을 씻어 깨끗하게 하는 물을 포도 주로 만든 것은 능력 이외에 예수님의 피 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리라는 계시의 표적이 포함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셋째, 이스라엘을 점령하고 핍박했던 헤롯대왕과 강성한 로마 군대는 하나님 의 구원계획에 따라 시대적 영웅으로 탄생해 이스라엘을 회개시키고 구원받 게 하는 도구로 사용되었으며, 헤롯이 남긴 유적들은 오늘날 복지 가나안을 지키는 이스라엘 민족의 생계수단으로 보장된 자원이 되었다. 이스라엘의 국민성, 지정학적 위치, 자원 등을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하나도 나을 것이 없는데 오직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의하여 이 땅에 오신 예수님으 로 인하여 남긴 성역들에 찾아오는 순례자 관광수입으로 이스라엘이 살아가 고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관광자원의 보고가 된 근동지역 넷째, 유대교인이나 이슬람교인 등의 이방인 교도들이 하나님으로 대표되는 성자 예수님에 대하여 얼마나 두려워 경계하고 있는지를 알 수가 있었다. 아 기 예수님의 탄생을 막으려고 베들레헴 근처 모든 남자 아기를 죽이는 사건 에서도 그러하였지만,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동쪽의 감람산으로 오시리라 는 믿음에서 지금도 예루살렘 성의 동문을 굳게 막아두고 있다. 예수탄생교 회 돔건축물은 하늘로 트여 있었던 것을 예수님이 재림시에 하늘에서 오심 을 막으려고 지붕을 바람구멍 하나 없이 튼튼하게 만들어 덮어씌우는 것에 서 찾아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스라엘과 대한민국을 비교하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 와 복이 얼마나 큰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지정학적 위치와 지리적인 지형, 지질, 기후 등으로 어디서나 푸른 숲이 울창하고 맑은 물이 흐르는 우리 금 수강산과 부지런하고 온유한 우리 국민성으로 견주어서 여기가 복지 가나안 이고 천국이라 여겨진다. 성경을 읽고 가나안을 생각할 때는 이스라엘을 동경하였으나 가보고 확인하 고서는 우리나라가 더 없는 은혜와 복을 입은 나라로 확신하고 하나님께 감 사하며 하늘에 소망과 하나님의 의와 진리를 구하는 성화 길로 정진하고 싶 다.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 확신해 성지순례를 통해 영광의 잔치에 참례함으로서 부름받아 나선 이 몸 하나님 의 사랑 안에서 끊어질 수 없고, 나그네가 아닌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덧입은 천국의 백성이 되어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에 연단 하여 선에 속하며, 용서와 사랑을 실천하여 거룩하고 복이 있는 자로 영원 히 바로 서게 하실 줄을 의심치 않는다. 사진설명_시내산 아침전경
428 no image |목회수상| 열려진 마음_조용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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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20 2008-09-03
목회수상 열려진 마음 조용대 목사_중문제일교회, 제주노회장 “이웃 향해 활짝 열린 교회 되어야” 얼마 전 평일에 교회 앞에 서 있는데 처음 보는 중년 부인이 머뭇거리는 모 습으로 다가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라 고 묻자 “예, 들어가서 기도하려고 하는데 그래도 될까요?”라고 물어 왔 다. 평일에 예배당 문 닫힌 곳 많아 “그럼요, 얼마든지 기도하고 가십시오!”라고 대답하고서는,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그런데, 하나님의 교회는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셨는 데 왜 그런 질문을 하시느냐?”고 다시 묻게되었다. 그 분의 대답하시는 말 이 “교회당 문을 잠근 교회가 많아서요!”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 교회당 문은 24시간 잠그지 않고 항상 열려져 있으니까 기도하시고 싶으실 때에는 언제든지 오셔도 됩니다”라고 말씀을 드렸다. 그리고 나서 생각해 보니까, 정말로 주변에 여러 교회들이 있는데, 하나같 이 예배 시간에만 문을 열고 평일에는 도난 방지를 위해서 문을 잠근다고 하 는 말이 떠올라서 마음이 여간 편치가 않았던 일이 있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 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이처럼 예수님은 어떤 부류의 사람도 가 리지 않고 청하시고 계시는데, 그 주님의 명령을 받아 수행한다고 하는 교회 들이 예배당 문을 닫아걸고서는 교회를 향해서 나아오는 사람들을 이 세상적 인 잣대를 가지고 교회에 유익이 될 사람으로 생각이 되면 받아들이고, 조금 이라도 손해를 끼칠 사람으로 여겨지면 매몰차게 배척하는 현상이 오늘날 주 님의 교회라고 칭하는 곳에서 심심지 않게 일어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지난번에 우리 제주노회가 육지에 있는 교회들을 탐방한 일이 있었다. 건강 한 모습으로 성장하는 교회의 특징 중에 하나가 그 교회가 위치하고 있는 지 역을 섬기기 위해 하나같이 예배당 문을 열어 놓고서, 그 지역 주민들을 위 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가지고 사역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그러한 교회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 이러한 교회의 모습이 주님이 원하시 는 참 교 회의 모습이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음 속에 큰 감동과 도전을 받았으며, 돌아가서 우리 교회도 더욱 더 그러한 모습의 교회로 변화되어져야 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었다. 특히 우리가 사역하고 있는 제주도는 관광객들과 나그네들이 많이 찾아오는 지역으로, 히브리서에서 가르쳐 주신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 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히 13:1-2)고 하신 말씀을 실천할 수 있는 좋은 환경과 여건을 갖추고 있 는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손님 접대 결코 소홀할 수 없어 이제 선교 백주년을 맞이한 제주도에서 우리 합신교단의 총회가 열릴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아브라함이 자기 장막 앞을 지나가던 나그네들에게 달려 가서 기쁨으로 영접하여 복된 역사를 이루었던 것처럼, 금번 총회에 오는 모 든 손님들을 감사와 즐거운 마음으로 영접함으로써 하나님의 크신 역사를 이 루어 가는 복된 기회로 삼는 간절한 바램을 품어본다.
427 no image |초대의 시| 고통_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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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4 2008-08-27
426 no image |기고| 다시 가 본 평양의 새 변화 흐름_조봉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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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9 2008-08-27
다시 가 본 평양의 새 변화 흐름 군사강국 지향에서 경제 번영 지향으로 궤도 수정 생색내기 후원 아닌 순수한 사랑으로 통일 앞당겨야 조봉희 목사·지구촌교회 지난 8.15 광복절에 조선 그리스도교 연맹 초청으로 평양을 다시 가게 되었 다. 남북나눔운동 대표 회장 홍정길 목사님을 단장으로 각 대학의 북한문제 전문 교수 8명과 함께 가게 되어 더욱 효과적이었다. 금강산 사건으로 남북 관계가 다소 긴장된 상황에서 북한을 방문한다는 것 은 오히려 악재를 호재로 활용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혹시라도 또 다른 사고가 발생하면 문제가 더 복잡해지기 때문에 훨씬 더 많은 배려를 해주었 다. 그래서 북한 사정을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다. 급속하게 변하고 있는 북한 한 마디로 북한은 상당히 빠른 속도로 변화가 진행될 것으로 내다보인다. 전 문가들에 의하면 러시아나 중국식 사회주의가 아닌 베트남식 사회주의를 채 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앙집권적 공산당 체 제를 유지하면서도 경제발 전을 이루어나가겠다는 새로운 변화추구다. 확실히 북한은 새로운 변화의 흐름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나는 지난 25 년 동안 구소련 지역, 러시아 선교를 해오면서 공산주의 체제의 비참한 패망 과 선교를 통한 하나님 나라 은총의 회복 역사를 생생히 보아오고 있다. 북 한의 현재와 미래 추이도 비슷한 흐름으로 진행될 것이 분명하다. 열두 가지 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첫째, 당원들의 태도가 매우 진솔해졌고 개방적이다. 이제는 더 이상 감추려 들기 보다는 있는 모습 그대로 개방하고 오픈하는 발전적 용기를 보여주고 있다. 둘째, 많은 젊은이들이 중국으로 진출하여 외화벌이를 하고 있다. 과거보다 호구이전이 용이해져서 지방에서도 많이 해외로 진출하고 있다. 더구나 중 국 관광객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새로운 선교 전략이 필요하다. 셋째, 자전거가 굉장히 많아져 가고 있다. 북한 제품보다 중국제가 더 나아 상당량을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다고 한다. 넷째, 사람들의 옷차림이 매우 좋아졌다. 아마도 특권층 해외 유학파 자녀 들 같은데 극소수이긴 하지만 그들이 입고 다니는 옷 차림새는 완전히 서구적 이다. 우리나라 신세대들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다. 여하튼 남자들은 운동화 에서 구두로, 여성들은 보자기나 국방색 배낭에서 핸드백으로 대부분 바뀌었 다. 다섯 째, 차량 증가다. 차들이 꽤 늘었다. 아주 오래된 차들은 많이 사라졌 고 그 대신 운전대가 오른쪽에 있는 일본차들이 많이 수입되어 있는 상태인 데, 이제부터는 교통안전을 위해 오른쪽 핸들 차량 수입은 규제한다고 한다. 여섯째, 국제전화의 개방이다. 우리 남한과의 통화만 제한하고 어느 나라든 지 직통 전화가 가능하다. 나도 미국에 있는 아들과 자유롭게 통화했다. 국 제 택배 서비스업체인 DHL도 영업 중이다. 일곱째, 전기 사정이 매우 좋아졌다. 가로등도 많아졌고, 밤 10시에 시내를 돌아보아도 가게들이 아직 열려 있고, 대부분의 노점상들이 성업 중이다. 여덟째, 아파트 건설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고층 아파트도 많이 지었 고, 오래된 아파트들을 새롭게 단장하며 깨끗한 색상들로 새롭게 칠하는 등, 최근 러시아 경제 발전을 벤치마킹하여 아파트의 외장 타일을 떼어내는 리모델링과 함께 컬러풀하게 페인팅을 하고 있다. 염려스러운 것은 생산시설 을 많이 건축해야 경제가 활성화되는데 소비시설 중심적으로 건축하고 있어 북한은 여전히 거시적 경제보다는 미시적 경제에 급급하고 있음이 여실하 다. 단회적 성장으로 멈출 위험성이 높은 것이다. 아홉째, 대학 도서관의 전산화 시스템의 획기적 발전이다. 북한 최고의 기 술 향상을 주도하는 김책공업종합대학 인트라넷 시스템은 젊은이들로 하여 금 컴퓨터와 인터넷에 대한 실력 향상의 모판이 되고 있다. 특히 강의실마 다 동영상 강의 시스템은 HP 신제품들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과 목들은 동영상을 통해 언제든지 접속할 수 있다. 열째, 학생들뿐만 아니라 직장인들까지도 외국어 열풍이 불고 있다. 그 동 안 반미 감정으로 등한시했던 영어 공부가 일순위이고 그 다음으로 중국어, 러시아어, 일본어 등 외국어 학습에 매우 적극적이다. 중앙당원들도 이제는 더 이상 미국 놈이라고 하지 않고 미국 사람이라고 부른다. 열한째, 봉수교회와 칠골교회의 교인들 연령대도 어느 정도 젊은 층으로 바 뀌었다. 그들 신앙의 진위를 판가름하기 이전에 젊은 세대가 투입되고 있다 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최근에 젊은 세대 몇 명이 목사 안수를 받았다. 조선 그리스도교 연맹에 의하면 현재 36명의 목사가 있다고 말한다. 가짜냐 진짜냐를 떠나서 새로운 변화의 물결이 흐르고 있음은 매우 희망적이다. 열두째, 북한의 새로운 정책 변화이다. 2008년도를 기점으로 군사 강국에서 경제 번영으로 전환하고 있다. 특히 이번 아리랑 축제를 관람했는데 북경 올 림픽 개막축제보다 월등하다. 5만 명의 학생들이 카드섹션을 하고, 각 분야 별 연출 5만 명과 함께 10만 명이 동원된 거대 축제다. 그런데 아리랑 축제 의 마지막 클라이맥스 주제가 너무나 인상적이다. 새로운 주제로 업그레이드 했다. 북한은 이제 군사 강국 지향에서 경제 번영 지향으로 공공연히 궤도 수정을 선언하고 있다. 전 인민에게 경제 발전의 꿈을 각인시키고 있다. 매일 같이 전국 각지의 인민들을 수만 명씩 동원하여 경제 번영에 대한 꿈을 품도록 세 뇌하고 있다. 아마도 배고픈 인민들에게 장밋빛 환상을 품게 하므로 위기를 극복하려는 심 리 전술도 있을 것이지만 고난의 행군을 통과한 그들은 우리나라 새마을 운 동과 같은 새로운 경제 발전을 시도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경제 번영에 대한 기대 높아 직장에서도 각자의 능력과 성과에 따라 인센티브 제도를 실시하여 물가상승 에 맞춰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있다. 현재 평양에서의 기본 월급은 3천원에서 4천원인데, 실제로는 2만원 정도(?) 있어야 살 수 있다고 한다. 북한 역시 어느 사회주의 국가와 비슷하게 빈익빈 부익부의 양극화 현상은 심각하게 벌어질 것이다. 한국 교회는 북한을 더욱 더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어야 한다. 힘겹게 일어나 려고 할 때 조금만 힘을 실어주어도 쉽게 도약할 수 있다. 그러나 일어서야 할 때 못 일어나면 다시 일어나기가 어렵다. 우리가 지게를 지고 일어설 때 누군가가 뒤에서 잡아주고 밀어주면 쉽게 일어나는데, 그때 못 일어나면 완 전히 주저앉아 버린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기가 더욱 힘들어진다. 교단이나 교파, 계파별로 생색내기 후원을 하지말고, 순수한 사랑으로 깔끔 하게 도와줄수록 새 역사의 지평을 쉽게 이루어 가는 모멘툼이 될 것이다. 미리미리 실제적으로 도와야 조금이라도 통일 비용이 절감되고, 통일 이후 의 후유증을 예방할 수 있다. 한국교회가 견인차 되어야 이제 우리 한 국교회는 그 동안 해외선교에 정열을 쏟은 것보다 더 적극적으 로 총동원하여 북한선교에 주력해야 한다. 북녘 땅은 우리에게 가장 멀고도 가까운 사마리아 지역이다. 따지지 말고 도와야 한다. 우리는 한 민족, 한 겨레다. 통일 한국을 앞당길 수 있는 일에 교회가 앞장서야 한다. 오직 아가페 사랑 의 구체적 실천으로 북녘 동포를 가슴에 끌어안고 도와주어야 결국 대륙 선 교가 가능해진다. 우리 한국교회가 최선을 다하는 만큼 하나님은 통일의 날을 앞당겨 열어주 실 것이다. 그리고 세계 선교를 주도해나가는 더 큰 복을 누릴 것이다. 우 리 모두 거시적 비전을 품고 북한 선교에 총력을 쏟아야 할 것이다.
425 no image |수필| 작은 안식처_윤순열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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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83 2008-08-27
작은 안식처 윤순열 사모_서문교회 “농부의 심정으로 아름다운 교회당 가꾸고 싶어” 저희가 살고 있는 집은 앞에는 전망 좋은 골프장이 펼쳐져 있고 저 멀리 계 양산 자락이 구름에 가린 아름다운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 좋은 동향 집입니다. 처음 시골에 계신 부모님을 모셔 이 집을 장만하게 된 사연은 이 렇습니다. 전망 좋은 집 싼값에 장만하게 돼 이 집은 동향이라는 이유로 다른 집보다 싼값으로 나와 있었습니다. 넉넉지 않던 자금 때문에 부모님과 함께 거할 집 마련에 고심하던 저희는 부동산의 안내로 이 집을 보게 되었습니다. 부동산 사무원의 안내에 따라 계약금, 중 도금, 잔금 대출 등의 설명을 듣고 저희는 그 집을 덜컥 계약하였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중도금 날짜가 되었을 때 부동산 사무원의 실수로 계산 착오 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이미 모든 일은 진행되 고 있는 상황인데 저희는 온힘을 다하여 그 집에 입주가 아니라 입성하였습 니다. 만약 부동산 사무직원의 계산 착오가 없었다면 자금 부담 때문에 그 집에 도 전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비인기 방향이었던 동향이 지금은 오히려 전망 좋은 조건으로 떠올라 주변의 남향 집 보다 더 인기 있는 집이 되었습 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방법은 저희가 생각하지 못했던 기이한 방법으로 인 도 하셔서 저희의 필요를 채워 주셨습니다. 저희가 살고 있는 동네는 과거 에 인천의 변두리로서 시골 마을이었습니다. 지금은 이곳을 개발하여 아파트 가 들어서고 주변에는 온통 푸른 들판과 파랗게 펼쳐진 논밭으로 가득한 도 심 속의 전원마을입니다. 요즘 같은 여름철에는 숲에서 매미가 청아하게 울어대고 산책로 옆에 있는 드넓은 논에서 저녁이면 개구리들이 합창을 시작하는 아름다운 마을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개구리 소리가 시끄러워서 스트레스가 된다고 야단이지만 저 는 개구리 소리를 들으면 어릴 때 시골에서 듣던 아련한 추억이 떠올라 논가 에 가서 한 참씩 그 소리를 듣고 오기도 합니다. 또 하나 저희 마음을 사로잡는 곳이 있다면 다른 곳의 논들 보다 유난히 어 여쁜 저희 동네 논입니다. 여름에는 푸른 잔디를 깔아 놓은 듯하고 가을이 면 누렇게 익은 벼들이 출렁이는 황금 들녘, 논가에는 녹음진 산들이 병풍처 럼 둘러쳐 있어 눈길을 뗄 수 없는 너무나 아름다운 들녘입니다. 또한 저희는 약간 떨어진 곳에 있는 빈 땅에 주인의 양해를 구하여 제법 큰 텃밭을 일구었습니다. 요즘 저희는 아침저녁으로 텃밭에 가서 채소를 가꾸 는 재미에 푹 빠져 있습니다. 처음 텃밭을 가꿀 때 저희는 종묘상에 가서 각 종 씨앗을 있는 대로 다 샀습니다. 상추, 치커리, 양상추, 부로콜리, 부추, 고추, 수박, 옥수수, 감자, 고구 마, 대파, 강낭콩, 완두콩, 검정콩, 청대콩, 꽈리고추, 김장고추, 피망, 마 디호박, 맷돌호박, 단호박, 머우대, 허브, 토마토, 쪽파, 대파, 깻잎 등 누 군가 저희 밭을 오만한 밭이라고 그러더군요. 오만가지를 다 심어서 생긴 별 명이라나요. 또한 밭 옆에 있는 작은 숲속에서는 뻐꾸기가 뻐꾹 뻐꾹 울어대 고 수꿩이 우아한 자태를 드러내며 푸드덕 날아오르기도 합니다. 저는 새벽 기도를 하면서도 꽈리고추 애호박 딸 생각에 마음은 온통 밭에 가 있기도 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호박, 빨갛게 익어가는 고추, 향 긋 한 깻잎 싱싱한 채소들을 거두어 성도들과 나누어 먹고 옆집에도 부지런 히 나누어줍니다. 오늘은 김 집사님 댁에 방울 토마토, 꽈리고추, 깻잎, 호박 등을 한 아름 안 겨 주었습니다. 저희가 섬기는 교회는 집에서 자동차로 한 10분 정도 떨어 진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곳은 뉴타운 개발로 인해 교회를 포함한 온 동네가 몸살을 앓고 있는 곳입니다. 얼마 전부터는 보상이 시작되어 많은 사람들이 정든 동네를 떠나 이주하는 상황에 있습니다. 교회 성도들도 이주하기 전부터 뒤숭숭하더니 이주가 시작 된 지금은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불안정한 상태입니다. 우리 부부는 이런 상황 앞에 어찌할 바 모르고 성도 한 가정이 움직일 때마 다 심한 가슴앓이를 하곤 했습니다. 이런 상황 가운데 텃밭은 저희 부부에 게 작은 위안이 된 것 같습니다. 새벽기도가 끝나면 오는 길에 꼭 들러서 방 울토마토, 호박, 고추, 깻잎 등을 거두어 오는 것이 저희의 작은 기쁨이기 도 합니다. 며칠씩 비가 오지 않고 햇볕이 쨍쨍 내리쬐면 하늘을 보며 비를 기다립니 다. 전에는 비가 내리면 세차한 차가 더러워 질까봐 언짢아하였는데 이제는 r 농사 잘 되려면 비가 와야 한다고 반가워하는 제법 농부의 냄새가 풍기는 모 습으로 변모되었습니다. 자연과 어울릴 새 예배당 기대해 머지않아 고구마를 캘 때쯤 되면 저희 교회당은 새롭게 마련한 임시 예배처 소로 이주해야합니다. 교회당은 아담하고 예쁘게 짓고 나머지 넓은 땅에는 봄에 유채 꽃씨를 뿌려 노랗게 물들일 것이고 가을이면 메밀꽃으로 예배당 을 하얗게 수놓을 것입니다. 작은 예배당을 하얗게 감싸줄 환상적인 메밀꽃 필 무렵을 기다려봅니다.
424 no image |목회수상| 새옹지마(塞翁之馬)_장석진 목사 (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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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60 2008-08-20
새옹지마(塞翁之馬) 장석진 목사·광주월산교회 “최악의 순간에도 결코 절망은 하지 말아야” ‘인간만사가 새옹지마’라는 말이 있다. 세상만사가 변화무쌍하므로 인생 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예측할 수 없다는 뜻이다. 누구나 변화무쌍한 세상에 살고 있어 산은 높아지면 다시 낮아지고, 파도는 치솟다가 다시 가라앉고, 달도 차면 기우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높은 자리에 있을 때 교만하지 아니하며 낮 은 자리에 있어서 비겁하지 말 것이며, 형편이 좋아졌다고 뽐내지 말고, 고 난가운데 있다고 기죽지 말라는 교훈이다. 옛날 중국 북방의 요새 근처에 새옹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그에게는 아주 훌륭한 말이 한 마리 있었다. 그런데 그 말이 도망쳐 버렸다. 마을 사람들 은 새옹의 불행을 위로하자, “누가 아오? 이 일이 복이 될는지”라고 답했 다. 두 달이 지난 어느 날, 그 말이 오랑케 준마를 데리고 돌아왔다. 마을 사람 들이 이를 치하하자 새옹은 태연 하게 말했다. “누가 아오? 이 일이 화가 될 는지”라고 답했다. 그런데 어느 날 새옹의 아들이 그 말을 타다가 다리가 부러졌다. 마을 사람 들이 이를 위로하자, 새옹은 조금도 슬픈 기색 없이 태연하게 말했다. “누 가 아오, 이 일이 복이 될는지”라고 답했다. 그로부터 일년이 지난 어느 날, 오랑케가 대거 침입해 오자 마을 청년들은 징집되어 전쟁에서 모두 전사했다. 그러나 새옹의 아들만은 절름발이였기 때 문에 징집되지 않아 무사했다고 한다. 비슷한 의미로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는 말이 있다. 재앙이 바뀌어 오히려 복이 됨을 이르는 말이다. 이것을 물리학적으로 말하면 ‘총량 불변의 법 칙’이 된다. 다시 말해 좋은 일은 나쁜 일의 다른 모습이고, 나쁜 일은 좋 은 일의 다른 모습이라는 의미이다. 인생이란 결국 좋은 일과 나쁜 일을 다양하게 경험하는 파도타기와 같은 것 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절망적인 현실에 너무 집착하 지 않는다. 즉 파도가 아니라 바다, 바다가 아니라 우주, 더 나아가 그 우주 를 섭리하시는 절대자의 역사(役事)와 신비를 보게 될 것이다. 한 철학자는 “인생은 절망의 반대편에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모든 일이 항상 잘 될 수는 없다. 언제나 즐거울 수는 없다. 때로 말할 수 없는 고독 이 우리를 엄습할 때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인생의 양면을 볼 줄 알아야 한 다. 빛과 어두움이 함께 공존한다. 밝은 날과 흐린 날이 함께 공존한다. 무더운 여름날이 있으면 열매 가득한 가을날이 있고, 추운 겨울날이 있으면 꽃피는 봄날이 있다. 우리에게는 절망스런 날이 있으면 반드시 희망의 날이 찾아온 다. 인생을 뒤집어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모든 삶에는 거울 안의 또 다른 세계 가 있다. 행이 불행이 되고, 불행이 행이 되는 새옹지마의 변화가 있다. 절 망과 좌절의 극한 상황 속에서도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는 놀라운 역전의 기 회가 있다. 누구든지 절망감을 가질 수 있다. 절망스런 환경에 처할 수 있 다. 그러나 절망할 자유는 없다. 그리스도인들 삶의 원칙은 세상과 달라 오직 진리 안에서 자유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감사할 수 있다. 절망의 순간에도 최선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을 소망하며 배워간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와 함께 절망을 십자가에 못 박았기 때문이다.
423 no image |목회단상| 지구위성의 선장이신 주님을 모르는 사람들_권한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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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52 2008-08-20
지구위성의 선장이신 주님을 모르는 사람들 권한국 목사·연청교회 “손바닥으로 하늘 가릴 수 없어” 나는 어린이 주일학교 담당 사역을 7년을 하였다. 기독교교육연구회 간사도 2년을 하였다. 어린이들과 함께 하다 보니 만화를 무척 좋아하게 되었다. 지구에 대한 관심 높여줘 얼마 전 1982년에 제작된 일본애니메이션인 ‘마크로스’라는 만화영화를 보 았다. 마크로스는 어느 검색사이트를 들어가 검색하여도 전면을 가득 채우 는 설명이 나올 정도로 우리나라 청장년들이 다 아는 만화영화다. 1984년까지 속편이 제작되어 일본은 물론 미국에서 ‘재패니메이션’ 열풍 을 일으켰단다. 작년에는 미국 할리우드의 워너브러더스사가 마크로스의 판 권을 사들여 실사영화를 제작하기로 한 만화영화다. 그 내용은 길이가 1키로 나 되는 거대한 위성(우주전함의 모습을 한)이 지구에 떨어지는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우주로 날아다니는 이 위성은 자체에 중 력이 있어 이 안에서 사람들은 사고 팔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학교도 다니고 장사도 하고 인간생활을 거의 다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위성은 자체의 보호막(중력을 보호함)이 있어 허락받지 아니하면 이 보호막을 뚫고 나갈 수도 들어올 수도 없다. 마치 이 지구를 축 소한 것 같은 위성이다. 이 위성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자기들이 위성에서 사는 지 모른다. 장성하며 자기들이 사는 곳이 위성이며 우주를 날아다니고 있는 것을 알면서 겪는 내 용이다. 목회자가 보기에는 그저 그런 아이들 영화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내 용이다.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가 거대한 위성임을 알게 되는 것은 대부분 철이 들고 나서부터 이다. 이 위성은 우주를 한없이 달려가는 흙과 물과 공 기로 되었지만 어느 곳에서도 바로 서서 살 수 있고 그렇게 빠르게 움직여 도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전혀 영향을 받지 않도록 완벽한 보호막으로 둘러 싼 우주선이다. 우리 주님께서 선장이 되사 지구를 운전하시지만 사령탑도, 엔진도, 이 지구 를 움직이는 그 어떤 기계도 보이지 않아서 인지 사람들은 이 지구가 저절 로 생겼다고 하고 저절로 움직인다고 한 다. 원둘레가 38만 키로나 되는 위성이 우주를 초속 465 킬로미터로 날아다닐 정 도이면 그 위성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는 상상에 맡기겠다. 이 지구위성은 거의 다 자동으로 움직이도록 제작하셨지만 무선으로 조종하는 사령탑(천국) 에서는 그 함대 안의 모든 것을 다 보고 듣고 통제할 수 있다. 급하면 정지 시키기도 하시고 더 빨리 가게도 하실 수 있다. 때로는 지진처럼 일부분의 땅을 움직이게 할 수도 있다. 그러면 사람들이 다 치지만 때로 인간들이 너무 극악무도함으로 그 지역을 초토화시켜 징벌하시 기도 하신다. 주님이 간섭하지 않아도 저희들끼리 싸우고 죽이고 하여 스스 로 자멸하기도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주님이 통제하신다. 우리의 주님은 이 지구위성 내의 모든 일을 모르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 다. 그리고 언제인가는 이 지구라는 위성을 폐기 처분하실 것임을 말씀하셨 다. 우리는 우리 주님이 계신 저 천국, 그리고 이 지구가 아닌, 이 물질의 세계가 아닌 새 하늘 새 땅의 영적인 나라에 가서 살 자들이다. 이 지구위성의 주인이시고 함장이신 주님께서 주님을 이 지구위성의 주인으 로 인정하지 않는 어리석은 사람 들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셨다. ‘주(선장이 신)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우리 목회자들은 이 사실을 선포하기 위해 주님으로부터 임명받았다. 주님 은 이 지구위성에서 벗어날 속죄의 비밀을 기록한 성경을 주셨고 그 성경을 보존하고 가르치는 교회를 세워 주셨고 바로 그 성경과 교회를 통하여 복음 을 선포할 책임을 우리들에게 맡기셨다. 이 사실을 사실적으로 믿는 사람이 예수믿는 사람이요 주님의 사람이다. 그 런데 많은 목사들이 이 사실을 믿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정년이 되어 은퇴 하고도 원로니, 공로니, 증경총회장이니 하며 주님 앞에서 기도하고 정한 법 을 이상하게 해석하여 목사회원이라고 버티고 있다. 또한 교회 등기를 자기 이름으로 해 놓고 평생 주님의 이름을 팔아 교회를 운영하고서 은퇴할 때 돈을 요구하며 등기 이전을 안 하기도 한다. 또한 마 치 교회를 자기 개인기업인양 자식에게 상속하는 목회자도 있다. 지구의 주인은 예수님 이 지구위성의 주인께서 무선 CCTV를 통해 다 보고 듣고 계시는데 손바닥으 로 하늘을 가리듯 이 말, 저 말을 하며 합법이라고 말한다. 주님 면전에서 는 행할 수 있는 믿음의 일들이 아닌 것이 분명한 것 같은데 저들은 믿음으 로 한다고 하니 그저 할 말이 없고 씁쓸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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