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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2 no image |목회수상| 목회대학원 동계강좌를 다녀와서_서형범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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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1 2008-02-13
목회대학원 동계강좌를 다녀와서 서형범 목사_신동교회 “목회 사역 감당 위한 새로운 안목 열려” 흐르는 땀방울을 수건으로 닦아내었다. 하얀 손수건에 피가 묻어 나온다. 어 디서 피가 날까? 다시 한번 얼굴을 훔쳐보았다. 왼쪽 코였다. 코피가 터진 것이다. 성도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연신 닦아내며, 눌러 막았다. 다행히 피 가 멎었다. 무사히 설교를 마치고 예배가 끝났다. 설교 시간에 코피 터지기도 새벽부터 시작된 사역은 새벽기도회, 리더반, 주일학교, 낮예배, 오후예배, 양육반, 제자대학 등 주일 사역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밤 9시다. 오늘따 라 예배당 건축을 위한 설계사와의 미팅이 2시간 있었다. 내일 새벽설교를 준비하고 6시 수원행 고속버스를 타기 위해 미리 짐을 챙겼다. 어제 군대에서 100일 휴가 온 작은 아들과도 함께 보낼 수가 없다. 1월 7일 부터 시작되는 합신 동계강좌에 신청해 놓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아내는 통 영에서 열리는 사모세미나를 포기해야 했다.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함께 신청한 김 목사로부터 전화 가 왔다. 진해에서 차를 가지고 간다며 함께 가자는 것이다. 교대로 운전하 며 가는데 얼마나 졸리는지 깜박 깜박 졸며 그래도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 다. 4년 전과는 사뭇 다르다. 그때는 생소했고, 교단 통합으로 인한 목회대학원 과정을 이수하기 위해 참여한 기간이였기에, 물론 자율에 의하였지만, 그리 고 합신 동문이 되겠다는 목적이 있었기에..... 이번 동계강좌는 내가 듣고 싶은 강좌가 개설되어서 노회 서기에게 부탁하 여 노회 추천으로 참석하게 되니 새삼 감회가 새롭기만 하다. 시간마다 넘쳐 나는 은혜로운 강의는 그동안의 피곤을 씻게 했고, 요한계시록의 새로운 안 목을 열게 해 주는 귀한 시간이었다. 특강으로 들려주신 말씀들을 통하여 이 시대의 설교자로서, 목회자로서 내 가 서 있어야 할 위치가 어디인지를 다시 한번 다짐하는 시간들이었다. 목회 자의 자기 개발과 성공적 리더십을 강의해 주신 노상현 교수는 30-40년의 목 표를 바라보고 나만의 기도문을 가져야 한다며 언더우드 선교사의 기도문을 들 려주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대 부흥의 모습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기도하신 그 모습 이 눈에 어른거리며,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언더우드 선교사 의 기도를 응답하여 주신 성령님의 강력한 기름 부으심이 그날 강의실을 사 로잡았다. 할렐루야! 지난 2007년은 건강한 교회를 세우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었다. 두 날개 양육시스템을 적용한 후 주일 평균 출석 25명의 성도가 1년 만에 60여명으 로 부흥케 해 주셨다. 한 분은 포항에서 이사 왔고, 두 분은 믿다가 낙심한 지 몇 년 만에, 나머지는 우리교회에서 처음으로 주의 이름을 불러보는 자들 이다. 진주 지역의 복음화가 5%도 되지 않는 복음의 불모지에서 일어난 하나 님의 역사요, 은혜였다. 새 가족들을 양육하고 하나님 나라의 친 백성으로, 제자로 세워가는 일. 주 님이 디자인하신 건강한 교회로 든든히 세우는 일. 어떻게 보다는 무엇으로 이 은혜를 지속적으로 감당할 것인가 기도하던 중 목회대학원의 동계강좌에 참석하게 되었다. 동계 강좌를 마치면서 기대했던 것보다 더 큰 은혜였고, 새롭게 단장한 숙소 는 그동안 쌓여있던 육신적 피로를 씻어주기에도 부 족함이 없었다. 열강하 여 주신 교수들께 감사드린다. 특히 식당에서 맛있는 식사를 제공해주고, 밤 새도록 따스한 밤을 보낼 수 있도록 보살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베 풀어 준 은혜로 또다시 영적 전투 현장에서 승리를 다짐해 본다. 할렐루야! 영적 전투에서 승리 다짐해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 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 라”(계12:17).
381 no image |목회수상| 내 어릴 적에 불렀던 ‘예수 사랑하심은’_이은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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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80 2008-02-13
내 어릴 적에 불렀던 ‘예수 사랑하심은’ 이은국 목사_용연교회 “주님 향한 처음 사랑 결코 변하지 않아” 병원에 한 번 가 볼 수 있도록 차량 지원을 부탁해 왔다는 소식이 닿았다. 불신 가정이면서도 용기를 내서 교회에 도움을 청한 것이다. 며칠동안 말이 어눌해 지고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몸져누운 남편을 보살펴 온 최할머 니가 반색하며 나를 맞이해 주었다. 최할머니의 어려운 부탁 받게 돼 스스로 가눌 수 없을 만큼 무거워진 몸을 겨우 부축해서 앉히고 나서는 한 층 더 어려운 부탁을 건네 왔다. “목사님! 어떻게 해야될지 모르겠슴니더! 어떻게 좀 도와주이소!”라며 하소연을 하는 것이다. 몇 마디 들어보니 딱 한 형편이라서 어느 병원에서부터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할지도 모르니 목사님 이 좀 도와주시면 좋겠다는 것이다. 단순히 태워드리기만 하면 되는 그런 부 탁인줄로 알았다가 그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뒤 늦게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부탁을 받은 나 역시 돈도 없고 뾰족한 수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부랴부랴 찾아 간 곳은 겨우 알고 지내 온 인근의 노인병원으로 가서 원장한 테 들이밀듯 사정이나 해 보자는 계산이 떠올랐다. 어떻게든 도와 드려야겠 다는 마음 하나로 어렵사리 병원을 찾았으나 오늘따라 원장은 출타중이란 다. 부탁도 제대로 못해 본 체 별 도리가 없었다. 겨우 사정을 해서 다른 한 의사를 통해 간단한 진료를 받아 소견을 들어 볼 수 있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뇌경색에 의한 구강주변의 마비 현상으로 음 식물을 삼킬 수 없으며 보다 중한 상태로 진행될 수도 있으니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치료 가능한 병원으로 가보는 것이 좋겠다”는 말이었다. 환자는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와 시늉을 하면서 그냥 집으로 돌아갈 것을 요 구하는 듯 했다. 기왕지사 시작된 걸음이니 일반병원으로 가 보기나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에 가서 응급진료를 해 본 결과 뇌경색으로 확인되었고 곧장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수술 전에 비용을 지불해야 만 이 진료가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저 발을 동동 구르며 함께 한 가 족은 환자를 휠체어에 앉혀 둔 채 돈을 구 하러 어디론가 자리를 뜨고 나 또한 이렇게 어려운 사람을 교회가 한 번 도 와야 할텐데 어쩌나 하는 생각과 마음뿐 아무것도 더 이상 해 드릴 수가 없 었다. 이 날 그들과 함께 한 시간동안에 나는 마치 죄 지은 듯한 심정이 되 었고 그저 안타까움으로 가득한 가슴을 매만지며 패자의 발걸음으로 돌아서 야만 했다. 이 일을 겪은 후 몇 차례 마을 이장에게 부탁을 해서 이렇게 어려운 가정이 있으니 도와 주어야 되지 않겠느냐고 얘기를 드렸지만 그 집은 도시에 사는 아들 하나가 사는 형편이 괜찮아 도움을 줄 수가 없다는 답변 밖에 없었다. 교회를 비롯한 몇몇 단체를 통해 다만 간헐적인 도움의 손길이 하나 둘 이어 졌을 뿐 그 어려움은 계속되었다. 아마 서너 달 지났을 무렵이다. 할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오시게 되었고 그 때 부터 최할머니는 뜻밖에 교회에 다니겠노라며 첫발을 내딛었다. 주일낮과 밤 시간은 물론 최할머니의 열심은 놀랍게도 수요일 밤과 새벽기도회까지 이어 졌다. 시간마다 꼬박 꼬박 출석을 하면서 짧은 기간 동안에 함께 하는 교인 으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다. 은혜로운 나날이 계속되어 오던 어느 날 “할머니가 쓰러졌슴니더!” 누군가 로부터 다급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개인적으로 자유롭 게 기도하는 시간에 최할머니가 그만 졸도하는 일이 벌어졌다. 어느 누구도 예기치 못했던 사건으로 큰 일이 아닐 수 없었다. “119를 부릅시다!” “우 짜겠노!” “이제 더 이상 늦은 것 같아요...” 조용했던 기도회 시간은 금방 어수선하고 초조한 분위기가 되고 말았다. 갑 작스레 일어난 일로 어찌할 줄을 몰랐다. 다만 할머니의 두 손을 꼭 붙잡고 아무 말 없이 기도할 뿐이었다. “주님, 결코 주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 없 으시기를...” 이 한가지 간절한 기도뿐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최할머니 는 정신을 회복하셨고 비로소 성도들의 죄여든 가슴이 트이고 온갖 두려움 은 사라지게 되었다. 어찌된 일이었을까? 최할머니는 그 날 새벽 감기몸살로 인해 새벽기도회에 참석하기에 어렵고 몹시 힘겨워 하신 것이었다.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 고 여전히 주님 앞에 나와서 힘껏 견디다 견디다 정신을 잃고 그만 쓰러지 고 말았다며 되레 송구스러워 하면서 마치 어린아이처럼 어쩔 줄 몰라 하셨 다. 아- 하! 주님을 향한 처음사랑이 바로 이런 것이로구나! 많은 성도들에게 좋 은 본보기가 되었다. “목사님, 이상하게도 새벽기도 시간이 되면 잠에서 깨 어나고, 내 맘속에서 얼마나 기쁨이 넘쳤든지...... 이번 일로 생긴 어지러 움증이 가시면 곧장 교회로 달려갈 것입니더!” 약을 타 먹기도 힘들고 차편을 이용하는 일 마저도 쉽지 않은 최할머니, 수 술 후 주사바늘을 통해 음식물을 공급받아야 하는 남편을 두고 살아가는 힘 겨운 가운데서도 오히려 최할머니는 과감한 결단을 내리셨다. “지금까지 네 번 제사를 지내왔으나 이제부터는 하나님께 예배드림으로써 모든 것을 새 로 시작하렵니더!” 어떻게 그런 어려운 결정을 내리시게 되셨느냐는 물음에 환히 웃으시며 “내 어릴 적에 불렀던 찬송 때문입니더!”라는 전혀 예상을 초월한 답변을 내 놓으셨다. 할렐루야! 칠십여 년 동안 마음속에 묻혀서 갇혀야만 했던 그 고백이 고난 의 풍파를 통해서 다시금 주님 앞으로 나아올 수 있게 하셨고, 이제 그 입으 로 주를 시인하며 새롭게 주님을 만날 수 있게 하신 성령의 역사하심을 감 사 드릴뿐이다. 칠 십 년 가슴에 묻었던 찬송 불러 “예수 사랑하심은 거룩하신 말일세 우리들은 약하나 예수 권세 많도다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그 날 최할머니의 집에서 울려 퍼진 눈물어 린 고백은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감동적이고 복된 시간이었다.
380 no image |신앙단상| 참된 회개는 온 인격의 몸부림이다_나택권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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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52 2008-02-13
참된 회개는 온 인격의 몸부림이다 나택권 장로_호산나교회 “사람에게 지은 죄가 곧 하나님께 지은 죄” 못된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잘못된 길과 그릇된 길도 가면서 거짓말을 한다 고 시편 기자는 고백했다(시 58:3). 이처럼 인간의 본성에는 누구나 할 것 없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범죄의 경향이 있기 때문에 갓 태어난 아이라 할지라도 죄인의 위치에 있게 되는 것이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죄인’ 우리 인생은 세상을 살면서 누구나 할 것 없이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는 존재 로서 죄를 범할 수밖에 없다. 파스칼이 말하기를 이 땅위에 살고 있는 인간 은 죄를 범하고도 죄를 범하지 않은 것으로 착각하는 죄인과 또 하나는 죄 를 범한 후 자기 죄를 깨닫는 죄인이 있다고 했다. 이것을 증명하듯 허식과 위선 속에 살면서도 법률이 인정하는 죄는 저지르 지 않았다고 자랑하며 의인인체 하면서 세상을 활보하며 다니는 도덕적 교만 이 가득한 사람들 이 많다. 또 권력과 부의 안락한 자리에서 서민의 고통은 아랑곳없이 자기 만족과 만용 속에서 살고 있는 무리들도 수없이 많다. 그리 고 권력에 편승하고 교권을 만용하는 교회 지도자들이 있는가 하면 자신도 모르게 지은 죄의 옷을 입고 다니면서도 만인에게 공개된 죄인을 향해 비웃 고 업신여기고 저들을 꾸짖는 종교적 교만이 가득한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거룩하고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이 내적으로 순결할 것을 요구하시며 우리 인간의 중심에 항상 진실할 것을 원하고 계신다.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사소한 범죄까지도 하나님을 향한 범죄였다고 고백하고 회개할 것을 원하고 계신다. 죄를 자각하고 회개하되 단순히 이지적인 자각이 아니 라 전인격적인 자각이 있어야 함을 원하신다. 성경에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같이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의 책망 을 듣고 자신의 범한 죄를 회개하기를 ‘내가 저지른 잘못을 알고 있으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다’고 자각한 것처럼 죄과는 철저하게 자각되어야 한다. 다윗은 나단에게 말하기를 ‘내가 여호와께 죄를 지었소’라고 고백했지만 사실은 다윗의 범죄는 우리 아와 밧세바에 대한 인간적인 범죄(살인, 간음)이 었지 하나님께 대한 범죄는 아니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하나님 께 대하여 범죄하였다고 고백한 것은 비록 다윗이 인간을 향한 범죄를 지었 지만 결국은 하나님의 주권을 침범한 하나님을 향한 범죄라는 사실을 인정 한 것이다. 요셉은 보디발의 종 되었던 시절 “주인집에는 저보다 높은 사람이 없으나 마님께서 주인의 아내이므로 제가 어떻게 행악을 저질을 수 있겠으며 그것 은 하나님께 죄를 짓는 일이다”고 말함으로써 사람에게 짓는 죄도 하나님 을 향한 범죄라는 사실을 고백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지은 사소한 범죄까지도 이 또한 하나님을 향한 범죄였다고 죄과를 철저히 고백하고 회개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독교는 인간의 죄성 때문에 지은 죄과를 회개하라고 외치는 것부터 시작한 다. 회개하지 않으면 심판을 면할 수 없고 또한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지른 죄 일지라도 회개하면 용서받는 것이 기독교의 근본 교리이다. 지금 교회 강단에서는 성도들의 요구(기복 신앙)에 대한 맞춤형 설교만이 있 고 회개를 외치는 강단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교회 강단에서도 세례 요한같 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외쳐야 한다. 이 외침에는 분명한 소망이 있고 강력한 명령이 있다. 그 소망은 천국이고 그 명령은 회개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건설하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 그분의 시민으로서 살아 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회개가 선행되어야 한다. 회개는 단 순한 눈물이나 슬픔과 같이 감정적인 차원에서 끝나는 자기 반성의 수준이 아니라 지난 시절의 잘못된 가치관과 삶에서 돌이키는 온 인격의 몸부림이어 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통치를 자신의 삶에 인정하는 한 방법이기 때문이 다. 그러므로 나 중심의 삶을 깊이 회개하고 어느 곳, 어느 때나 하나님의 주권 과 그분의 통치를 인정하여 하나님 나라 건설의 주역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 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요구에 합한 자로 살려고 한다면 죄를 가까이 해서는 안되며 항상 마음속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달라고 원해 야 하며 하나님으로부터 지혜와 능력을 부여받아야 한다. 회개만이 올바른 관계 갖게 해 참된 회개만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 다. 이 러한 회개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반드시 수행해야 할 의무이며 또한 그리스도의 왕국에 들어가기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준비와 자격이다(행 11:18; 17:30).
379 no image |긴급진단| 기도와 하나님의 작정_이종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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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89 2008-02-13
기도와 하나님의 작정 이종연 목사_아틀란타바이블칼리지 교수 말씀 통해 계시된 하나님의 작정 신령한 분별력 바탕으로 기도해야 기도만큼 도깨비의 방망이처럼 여겨지는 것도 없다. 더우기 ‘작정기도’에 는 아연실색일 뿐이다. 거창하게 40일 금식기도가 아니더라도, 감히 하나님 의 작정을 고쳐 바꾸어놓으려는 기도를 많이 본다. 빌지 않는 이보다 나을 까? 기도에 나타난 천태만상의 원인은 무엇일까? 우리는 기도계시를 이미 마 스타 한 경지에 있겠지만 오늘의 주제에 귀기울여 보자. 하나님은 작정과 계시, 언약을 통하여 뜻을 이루어나가신다. 성경을 볼 때, 전체의 흐름에서 나오는 대원칙을 존중해야만 한다. 여기에 충실해야 아전인 수로 성경을 곡해하지 않는다. 기도와 작정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누구에게 나 넘나든다. 기도계시는 아무래도 타락을 발판으로 풍성해진다! 믿음에 속한 옛 선진들 을 볼 때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그 큰 죄악에서 어떻게 벗어났을까? 그렇다 면 우리도 무작정 그렇게 하면 될까? 단순한 문제는 아니다. 하나님과 단절 된 것을 뚫도록 베푸신 방도가 빌기이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단절 뚫는 방편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도 상하고 애통하는 심령을 불쌍히 여기신다. 이것도 따져보면 기도를 방편으로 하며, 하나님의 작정을 의식하던 하지 않던 밀접 하게 얽혀있다. 하나님의 비밀을 오직 계시하신 범위에서 기도로 교통한 다. 히스기야가 죽을 병에서 기도로 15년을 더 산 것은 단순히 개인기도의 개가 일까? 모든 기도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다. 그럼 메시야이신 그리스 도의 기도는 어떤가? 하나님의 작정을 뒤바꾸는 기도를 드리신 적이 있을 까? 그 겟세마네의 마지막 기도에서도 못내 하나님의 작정을 따르셨다. 하나님 의 뜻만을 따르시기에 보내신 목적을 이루시려고 빌기에서도 벗어나지 않으 셨다. 흔히 작정기도를 한다는데 무엇을, 왜 그렇게 하려는지, 응답이 빠르 다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고? 자기를 평가하여 제대로 인식하려면, 어떤 교회의 어떤 지체인지 먼저 규명 하여 확신해야만 한다. 사람의 생사화복을 정하시고 그대로 집행하신다. 하 나님은 변함이 없으시다. 이것이 진실이다. 사람의 마음은 만물보다 썩었 다. 하나님이 먼저 보여주지 않으시면 앞날을 놓고 하나님 앞에 작정이란 불 가하다. 기껏 욕심과 무지를 빌기로 겉치장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개인보다는 전체를, 나보다는 다른 이를 먼저 생각해야만 한다. 기도가 자 기 것인가? 함부로 기도해주겠다니. 너무도 개인주의의 극치이다. 기도는 겉치레에 빠져선 안돼 교회와 지체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안다면 그렇게 경망스럽겠는가? 왜 앞 날이 그렇게도 궁금할까? 지금 무엇을 심어서 무엇을 거두었길래. 교회의 역 사적 전진, 아니 계시의 진전에 발맞추어 보편한 내용을 배워서 그것을 빌어 야 한다. 그래서 개교회주의는 기도에서도 위험을 초래한다. 자신의 앞날이 보장된 것을 알아야만, 교회도 섬기고 이웃도 사랑하겠다는 심산일까? 성경 계시와 바른 선포를 힘입는 것 말고는 작정이란 성립하지 않는다. 담넘어 가려는 강도의 상태, 넓은 길을 흠모하는 외식일 뿐이다. 하나님의 주권을 넘보지 말자. 선택의 도리만 하더라도 지나치게 사색에 빠 지면 자신이 이미 하나님의 자리를 찬탈했는지 조 차 모르게 된다. 기도에서 도 보면 도취되어 여러 심리현상이 발생하면 하나님이라도 된 양 헛소리를 한다. 결국 예수님을 팔아 점쟁이 노릇하며 복채를 챙긴다. 이미 성경 안에 도 그런 종류들이 많이 있다. 기도는 앞날을 놓고 하나님과 힘겨루기하는 것 이 아니다. 자신이 얼마나 비참한지를 먼저 알고 아뢰어야 한다. 지난날을 철저하게 먼저 돌아보라는 것이다. 섭리는 하나님 손 안에 있다. 현재에 충실하라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그 많은 결핍을 말씀 앞에서 발 견하고, 얼마나 많은 부채가 있는지를 안다면, 어찌 하나님의 작정에 침범하 려고 하겠는가? 제 앞가림도 못하면서 무슨 작정기도인가? 기도조차 하나님 의 작정에 들어있다. 바른 기도에서 하나님이 작정하신 대로 펼치시는 작정 을 알아간다. 그리스도와 고도의 신령한 사귐을 이루는 가운데 드리는 기도 를 그리스도는 받아서 아버지 하나님께 나아가신다. 결국 그리스도께서 받으 셔야 하는데 이것을 먼저 알아야만 한다. 바른 기도 통해 하나님 작정 이뤄 주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했다고 그 날에 자칭 설쳐대지만, 얼마나 무서운 경고를 내리시는가? 마지 막 때, 이른바 종말에 대한 가르침을 잘 받자. 고도 의 현실주의자가 함부로 작정기도를 한다. 미래학도 보면 말도 안 된다. 그 이튿날의 괴로움은 그 이튿날이 한다. 의식주에 얽매여 세상과 사람과 자신 과 마귀를 두려워하여 도피책으로 기도로 뻥을 쳐서야 되겠는가? 때때로 작 정한 기도의 응답같아도 하나님은 내버리시려고 응답처럼 보여주시기도 한 다! 기도는 현재이다. 계시의 약속만이 작정에 속한다. 기도와 하나님의 작정은 신비이다. 하나님은 그 뜻을 선지자에게 보이시고 정하신대로 이루어나가신다. 그 작정을 제대로 배워간다면 어찌 기도를 쉴 까? 그릇되이 기도를 할까? 약속에 오직 소망을 두는 나그네라면 역사의 그 길이 왜 좁다고 불평할까? 바른 기도의 인내를 아는가? 안나라는 늙은 계집 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한살메 동안 기다리다 만나지 않았던가? 언약을 예언과 선포의 형식으로 차츰차츰 이루어가심을 바라보자. 기도는 개인의 흥 망성쇄를 논하지 않는다! 오직 하나님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에. 작정을 모르는 근본무지를 누구나 인정하자! 그래서도 빌어야 하지만, 작정 을 알만큼 계시하셨으니 그 범위에 대해 서는 참된 지식을 갖추어나가야, 무 지와 부패 가운데 안주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게된다. 내일 일을 자랑 하지 말자. 이 말은 현세를 비관하지 말하는 뜻도 있다. 작정을 빌기로 이루 어나가심을 잊지 말자. 성령님이 이끄시는 기도 가운데 앞날의 소망이 뚜렷 해진다. 하나님이 작정하신 모든 것을 믿는다. 무시로 성령님 안에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을 곱씹어보자!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해야 기도는 하나님의 비밀과 교통하는 방편이다. 신령한 사람의 특권이다. 자기 포기와 전적부패를 전제하고서 이루어진다. 거룩하신 신께서 사귐의 대상으 로 받으셔야, 비로소 중보자의 사역에 속한 일에 빌기로써 참여하게 된다. 그 기도를 들으셔서 작정을 알리신다면 무엇보다 으뜸으로 진리를 듣게 하신 다! 말씀을 깨닫도록 하신다. 신령한 분별력이 믿음의 장성에 발맞추어 하나 님의 깊은 것까지도 알도록 이끄신다. 바른 기도가 없다면 하나님의 작정을 못 믿고, 안다 해도 오해하여 멸망에 이른다! 선자와 사도, 교회역사에서 개혁자들은 얼마나 기도에 전력했던가? 오직 하 나님께 소망을 두었기에 정하신 길을 푯대를 향하여 부단히 전진하였다. 빌 기에도 얼마나 장성하였는가? 그 열매인 성경과 신학, 교리작품들은 당대를 뛰어넘어 오늘도 이야기하고 있다. 하나님의 작정은 이렇게 이루어진다. 교회에서 목회자의 대표기도에 어떻게 사귀는가? 말씀봉사와 기도에 전력한 사도의 교훈을 떠올린다. 기도로 하나님은 작정을 이루시고 섭리하심을 믿 고, 중보자 그리스도의 기도를 배우자.
378 no image |목회단상| 목사와 운동_김종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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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82 2008-01-30
목사와 운동 김종렬 목사_참빛교회 “목사의 돈과 시간은 내 것 아닌 하나님의 것” 목회의 적이 이성, 재물, 신학의 문제라면 개척 교회 8년여 동안 이 문제가 발생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 큰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마음 속 아주 작은 음욕도 위험하다는 것을 알게 하셨고, 재물은 필요할 때 정확하게 채워주셨 고, 신학은 미흡한 부분을 보강해 주셨습니다. 목회는 하나님의 은혜로 하는 것 그런데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심각한 문제들을 발견하고 연단의 시간 을 갖게 되었습니다. 십자가를 깨닫는데 오래 걸렸습니다. 주님은 물처럼 부 드럽고 낮아지는 사랑과 불처럼 살아있고 선명한 진리를 원하셨습니다. 그리 고 육체와 마음의 부패한 생각을 십자가에 못 박고 기도와 주 기도를 통해 예수님 부활의 능력과 지혜 갖기 원하셨습니다. 최근에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저는 운동을 좋아했고 잘 했습니다. 운동이 저에게 활력을 주었습니다. 제가 아들에게 공부보다 운 동을 더 권하고 기뻐 했던 것이 생각할수록 잘 한 일 같습니다. 아들의 몸과 마음이 건강해 졌습 니다. 고등학생 되는 아들에게 요즘 농구 안 하느냐? 했더니 지금 운동할 시 간이 있겠냐고 반문합니다. 학원에서 시험 본다고 합니다. 저는 지금 무릎에 보조기를 차고 목발을 하고 다닙니다. 3주 전에 무릎 전 방 십자인대 재건 수술을 했습니다. 지난여름 성경학교시간에 주일학교 아이 들을 태우고 물 썰매 타고 내려오다 다쳤습니다. 돈이 없어 수술을 못하고 있었는데 사랑의 교회 국 집사님(사랑의 정형외과)이 무료로 치료해 주었습 니다. 그 병원은 전 직원이 매일 뜨겁게 기도하고 격일로 환자까지 동참하 여 예배했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 나라 임재를 경험했고 가정처럼 포근함 을 느꼈습니다. 재작년에 저는 선배의 초청을 받아 헌신 예배 강사로 갔었습니다. 일찍 가 서 후배들과 탁구 치고 저녁 먹고 또 탁구를 한 후에 설교를 했었습니다. ‘성도님들은 열심히 기도했는데 목사는 정작 기도는 뒷전이고 탁구에 정신 나갔었구나’라는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그 동안 새벽기도에 충분히 기 도하지 못하면서도 조기 축구를 한 경 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저의 우측 어깨는 이미 습관성 탈골로 고통을 많이 받았기에 하나님께서 좌 측 무릎을 징계하신 것입니다. 이제 꼼짝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저는 새해 아침에 요나처럼 병원 침상에서 기도의 사람이 되고 싶다는 고백과 회개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목사 한 명 만드시려고 이처럼 은혜를 베푸시는 것을 느꼈습니다. 운동을 하면 좋은 점이 많습니다. 열린 마음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꾸 준히 노력하면 실력이 향상되고, 정확성을 높입니다. 그러나 폐단도 있습니 다. 운동은 상대방을 제압해야 합니다. 이 점이 그 동안 저의 대인 관계를 괴롭혔습니다. 상대방을 이겨야 한다는 전투적 사고가 있었습니다. 지금 시대는 상대방을 존중해야 합니다. 더 이상 일방적이고 독재와 권위주 의는 외면을 받습니다. 우리는 지금 상대방이 있는 게임을 하고 있다는 것 을 잊으면 안됩니다. 상대를 이해하고 감동시켜야 합니다. 설교문을 작성 할 때도 청중의 질문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불신 친구가 “목사와 의사는 맨 날 아프다고 징징대는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니 힘들겠다. 의사는 술이라도 마시지만 목사는 어떻게 스트레스를 푸는 가?”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대부분 이 질문의 답은 운동이라고 말 할 것입 니다. 그러나 성경은 ‘기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린 학생도 공부에 위기의식을 가지고 운동할 시간이 없다고 하는데 목사들 은 하나님 종이라 하면서, 기도보다 운동에 많은 시간을 들이는 것은 세속적 인 것으로 보입니다. 불가피하게 건강을 위해 몸에 맞는 가벼운 골프를 할 수 있습니다. 승마를 하고 우주여행을 한다 해도 후배들의 존경과 박수 받 을 선배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분은 이미 자기 부인과 희생에서 후배들의 검 증을 통과한 분들입니다. 목사들은 성도와 후배와 주님의 질적 검증의 대상입니다. 성도와 후배가 존 경하지 않는데 주님이 인정하시겠습니까? 성도와 후배의 존경을 받아도 자신 은 주님 앞에 부끄러운 자임을 고백하며 때로는 눈물 흘려야 할 것입니다. “내가 번 돈 내가 쓴다. 내 인생 즐기는데 네가 무슨 상관이냐?” 하는 발 상은 자본주의 생각입니다. 목사의 돈이 내 돈이고, 목사의 시간이 자신의 시간입니까? 헌금이고 하나님의 돈이며, 주님의 일을 위해 주어진 시간입니 다. 돈과 시간 사용이 성도들과 후배와 주님이 볼 때 부끄럽지 않아야 할 것 입니다. 저는 부족한 것이 많아 부끄럽습니다. 성도들과 후배들을 잘 섬기지 못하 고, 존경받는 선배가 못되어 부끄럽습니다. 저를 위로해 주실 분은 오직 주 님이십니다. 저의 간절한 바람은 목사들 모두가 하나님의 위로를 받아 예수 님의 은혜와 성령님의 감동을 받고 성도들과 후배들로부터 존경과 사랑 받기 를 원하는 것입니다. 모든 성도들에게 존경받는 목사 되어야 목사가 무엇을 하던 사람 눈치 안보고 자유할 수 있습니다. 목사들이 세속 에 매이지 않고 자유로웠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가 될 것입니다.
377 no image |목회수상| 사랑받는 기쁨_김수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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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89 2008-01-30
사랑받는 기쁨 김수영 목사 ·나눔교회 ·횃불트리니티신대원교수 “사랑을 받아보니 주는 기쁨도 알게 돼” “나을 수만 있다면, 암은 걸려보는 것이 낫다”고 어느 누군가 말했다. 아 마도 암에 걸렸던 분이 경험을 했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을 들었을 때, 단지 “그럴 수 있겠다”라고만 생각했다. “새로운 경 험이겠지, 그러나 이런 말을 쉽게 할 수는 없지. 암이란 것이 얼마나 사람 을 힘들게 하는데.” 암으로 인해 변화된 사람들 많아 목회하면서 암 때문에 삶이 무너져 내린 사람들을 보았다. 암은 그 사람이 가졌던 고귀한 정신을 갉아먹고 초췌하게 만들곤 하였다. 위암, 유방암, 췌 장암, 대장암, 간암, 육종 등 다양한 암을 경험한 사람들을 기억할 수 있 다. 잘 싸워서 이긴 분도 있고, 잘 싸웠지만 진 분도 있다. 잘 싸우지 못한 분들도 있다. 옆에서 다양한 분들을 지켜보면서 “내가 암에 걸린다면 나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상상해 보곤 했다. “나는 잘 감당할 수 있을까? 암이란 위기를 만날 때, 나는 평정심을 잃지 않을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곤 하였다. 작년 10월 12일, 금요일 세브란스에 결과를 보러갔다. 바로 며칠 전에 초음 파 검사와 피검사를 했기 때문이다. 초음파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그런데 암과 관련된 수치가 높게 나왔다. 그러자 담당의사가 CT 촬영을 해서 자세 히 보면 좋겠다고 했다. 그날 오후에 CT 촬영을 했다. 촬영결과를 보러 다시 의사를 만났다. 의사가 컴퓨터 스크린을 보여주면서 간에 암이 있다고 설명을 하였다. 한 4cm 정도. 초기를 지나서 2기로 접어들 었다고 설명했다. 의사의 설명을 듣고 있는데, 내게도 암이 생겨났구나 하 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한 가지 이상한 것은 두려움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 었다. 오히려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 묘한 감동으로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내 생명의 연한이 주께 있음을 고백하였다. 의사 앞을 빠져나와, 병원 안에 있는 버거킹으로 향하였다. 검사를 하느라 고 식사를 못했기 때문이었다. 평소에 좋아했던 버거킹에 가서 최근에 나온 제일 맛있는 것으로 주문을 했다. 그리고 버거킹과의 마지 막 만찬을 가졌 다. “버거킹아, 이제 앞으로 너를 볼 일어 별로 없을 것 같다. 그러니 오늘 너 와 작별을 고한다. 너를 맛있게 먹어주겠다. 내가 간암에 걸렸으니, 너를 먹 을 날이 없을 것 같지?” 맛있게 식사를 한 다음에,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내는 나를 위로해 주 느라 여러 말을 하였다. 사실 나는 위로가 크게 필요하지 않았다. 이미 하나 님께서 내게 직면할 마음을 주셨다. 어디서 이런 평정심이 나왔는지 모른 다. 누군가 나를 위해서 기도하였을까? 이런 가능성을 가정하며 살았기 때문 일까? 내가 설교한 대로 ‘죽음 앞에서의 존재’를 연습해서일까? 하여간 감 사하게도 어떤 치료나 과정이라도 달게 받으리라는 마음이 생겼다. 색전술을 받았다. 허벅지에 있는 큰 동맥을 뚫어서, 간암 덩어리 바로 앞까 지 관을 보내서 화학약품을 주입하는 기술이다. 부분 마취를 하고 시술을 하 기 때문에 시술하는 동안 의사들의 하는 말을 다 들을 수 있었다. “어어. 이렇게 잘 안 들어가!” 이 말은 저승사자의 말처럼 들렸다. 동맥 을 따라 관을 흔들어대는 의사의 손길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역시 시 술을 받는 동안에는 내 귀가 대단히 민감하게 반응하나보다. 나는 계속 기도 하고 있었다. “주님, 의사의 손길을 도와주소서. 암세포에 화학 약품을 잘 주입할 수 있 게 해주옵소서. 마음의 깊은 평안을 주소서.” 그 시간에 많은 성도들이 같이 기도하고 있었다. 담임 목사가 시술을 받고 있으니 비상사태일 수밖에. 친하게 지내던 많은 지인들이 기도하고 있었다. 미국에서, 유럽에서, 중국에서, 아프리카에서 하늘의 하나님께 기도의 화살 을 쏘아대고 있었다. 가르치고 있는 신학생들이 금식을 선포하며 기도해 주 었다. 온 지역에서 오는 기도에 하나님의 보좌가 조금은 시끄러웠을 것이 다. 기도의 커넥션도 생겨났다. 나의 병을 위해서 그때 이후로 기도하는 분 들이 개인적으로, 커넥션을 만들어서, 모여서 기도해주었고, 지금도 기도하 고 있다. 색전술은 잘 끝났다. 3개월이 지난 지금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2달마다 피검 사와 CT 검사를 해야 한다. 앞에 어떤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성도들의 기도 속에서 주님과 함께 갈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 다. 감사하다. 나는 사랑의 빚을 지고 있다. 많은 분들이 기도 외에도 관심과 방문 과 다양 한 도움을 베풀어주었다. 지난 세월 동안과 앞으로 올 세월의 모든 것을 다 합쳐서 사랑을 받았다. 정신없이 앞을 보고, 사람을 만나고, 목회하고, 가르 치고, 사랑을 받는 것이 무언지를 잘 모르고 살았다. 그런데 아프고 나서 사 랑받는 것이 무엇인지를 온몸으로 깨달았다. 기도를 해주던 사람이 기도를 받는 것이 무엇인지를 깊이 배웠다. 방문을 하 던 사람이 방문을 받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관심을 주던 사람 이 관심을 받는 것이 무엇인지를 경험하였다.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얼 마나 황홀한 일인가! 나는 조그만 사랑을 베풀 뿐이었는데. 그것도 부족하 고 부족한 사랑이었는데. 이런 사랑을 받아도 되나? 쑥스러웠지만 받기로 했다. 주님이 내게 주신 사 랑은 나를 더 쑥스럽게 만드는 것이지 않은가! 그 사랑도 받았는데. 사랑을 있는 그대로 받기로 했다. “이렇게 큰 사랑을 주시니, 앞으로 이것을 갚으 려면 오래 살아야 되겠습니다.” 대화하는 가운데 꼭 빼놓지 않고 말하는 부 분이다. 사랑을 있는 그대로 받을 줄 알아야 주님께서 목회는 사랑이라는 것을 가르쳐주시나 보다. 강의실에서 배울 수 없는 것을 수술실에서 배우게 하시나보다. 암 앞에서 배우게 하시나 보다. 이제 나도 “나을 수만 있다면 암에 한번쯤은 걸리는 것도 좋아요”라고 말 할 수 있게 되었다.
376 no image |수필| 앞서가시는 아버지_김금희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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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5 2008-01-30
김금희 집사_충만교회 소설 ‘태백산맥’에 흠뻑 빠져있던 대학 1학년 여름, 나는 아버지와 함께 지리산에 다녀왔다. 그 날의 경험은 살아가면서 어려운 일들을 만날 때마다 선명한 기억으로 되살아난다. 아버지 따라 노고단 아침 맞이해 밤기차를 타고 구례에 떨어져 새벽 4시부터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칠흑같 은 어둠에 묻힌 우리는 어디가 오르막길이고 내리막길인지 구분하기 어려웠 고 한 걸음도 나아가기가 두려웠다. 하지만 거기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앞 서가시는 아버지를 더듬으며 길을 따라 걷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걷다가 안 개 속인지 구름 속인지 분간할 수 없는 꿈결같이 아름다운 노고단의 아침을 맞이했었다. 3년 전, 학교를 옮기면서 나의 오랜 숙원이었던 학업을 시작했다. 새로 옮 긴 직장은 내가 어느 덧 중견의 나이에 접어들고 있음을 깨닫게 해주었고, 그에 합당한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요구하였다. 그리고 내 자녀가 학교에 들 어가게 되면서 돌보아야 할 가정사는 더욱 늘어났다. 낮에는 밭을 갈고 밤에는 형설을 밝혀 공부하는 생활이 그렇게 내가 바라던 것만큼이나 열정적이지도, 낭만적이지도 않았다. 그저 알 수 없는 캄캄한 길 을 더듬어 찾았던 그 해 여름처럼 막막하고 두려웠으며, 늦은 밤 잠자리는 돌베개를 베고 자는 것처럼 고단했다. 넓은 지식의 바다에서 문맹자와 같은 나의 처지를 깨달을 때는 참담하였다. 고단했던 근자의 3년 간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향한 나의 마음이 한결같도록 지키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하나님께 감사의 고백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직장과 학업과 가정의 모든 일들이 나의 능력에 과분한 것들이었기 때문에 잘 해내기 위해 서 어떻게든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금요 기도는 일주일간 숨 가쁘게 달리던 나를 멈춰 세우고 내 주변의 일들을 하나님 앞에서 다시 생각하게 하 는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과 이웃을 위해 중보 기도하는 귀한 시간이 되었다. 다 른 기도 때문에 나를 위한 기도를 잊게 되어도, 또한 내가 스스로 조바심 내 어 취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는 나의 필요에 맞게 때에 따라 채워주시는 것 들을 발견하 게 되었다. 나의 갈 길 인도해주시는 하나님 어려운 고비마다 기도하면서 이제 겨우 학업을 마치게 되었다. 캄캄하고 막 막한 길을 더듬으며 나의 앞에 먼저 가시던 아버지만 믿고 따라갔던 그 여름 의 일은 내 평생의 복선이자 이루어야할 과업이 되었다. 앞으로 가야 할 알 수 없는 내 인생의 여정 속에서 흔들림 없이 한결같이 아버지를 따라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
375 no image |기고| 우리에게 개혁주의는 무엇인가?_김상래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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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64 2008-01-30
우리에게 개혁주의는 무엇인가? 김상래 전도사_대구산격제일교회 오늘날 우리는 종교와 종교간의 벽이 허물어지고 교파와 교파간의 경계를 넘 어 교회일치 운동이 미덕인 것처럼 인식되어 지고 진리와 비진리 사이의 경 계가 희석되어 지고 절대적 진리를 인정하지 않는 상대주의화된 시대 즉 포 스트 모던(Post Modern) 시대를 살고 있다. 이러한 시대를 살아가는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 좀 더 신학적인 용어로 표현 하자면 넓은 의미의 복음주의자라고 자처하는 많은 사람들은 복음주의와 개 혁주의의 차이를 구분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복음주의와 개혁주의의 차이 는 분명 존재한다. 복음주의라는 말 속에 개혁주의도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 만 그렇다고 해서 복음주의가 곧 개혁주의는 아닌 것이다. 1. 개혁주의는 말씀 위에 서 있어야 한다 종교개혁자들이 언급하기를 즐겨 했던 ‘개혁된 교회는 계속해서 개혁되어 야 한다’는 모토가 함의하고 있는 개혁주의 는 교회는 언제나 오염될 수 있 기에 끊임없이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만이 교회의 살 길이라는 ‘Sola Scriptura’ 즉 오직 성경을 의미한다. 개혁주의는 말씀주의이며 이는 곧 말씀이 가라고 하는 곳까지 가며 말씀이 서라고 하는 곳에서 서는 것을 의미한다. 영역에 있어서는 전방위적으로 정 도에 있어서는 철저하게 계시된 모든 말씀을 전적으로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것 바로 그것이 개혁주의자 들이 가져야할 기본적인 태도라 할 수 있을 것이 다. 바로 이 지점에서 복음주의와 개혁주의의 근본적인 태도의 차이가 드러난 다. 복음주의자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계시된 모든 말씀이 아닌 자기의 욕망에 따라 취사선택한 일부의 계시와 교 리만을 받아들인다. 자기 자신이 판단하기에 합리적이고 유익하게 느껴지는 특정 교리들은 열렬하게 지지하고 환영하지만 자기에게 불리하거나 불합리 해 보이는 교리들은 언급조차 하지 않는 경우를 보게 된다. 2. 자기 본위 신앙은 개혁주의가 아니다 물론 복음주의자들이 결코 성경의 절대적 권위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실 질에 있어서는 그 계시된 모든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의를 위한 고난, 죄의 대한 보응과 심판, 신자의 거룩한 의무 대한 메시지 같이 부담(?)을 주는 메시지보다는 복과 평안을 주시는 하나님, 사랑과 은혜 가 풍성한 자비의 하나님에 대한 계시를 선호하고 즐겨 찾는 것이 오늘날 한 국교회의 현실임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선지자와 사도들의 터 위에 세워진 거룩한 교회의 일원이 되었지만 교회를 교회 되게 하는 그 말씀과는 상관없는 자기 본위적인 신앙생활을 영위하는 그리스도인들도 그리스도인 들인 것처럼 행세하는 것이 작금의 한국 교회의 현실이다. 결국 계시 그 자체가 주체가 아닌 자기 자신이 계시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 자기 중심적이고 현세 구복적인 종교를 만들어 내고 자기의 탐 욕에 따라 종교를 이용하는 악한 신앙인들도 그리스도인으로 자처할 수 있 는 일이 복음주의 내에서는 빈번하게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계시된 모든 말씀에 따르고 순종하기 위해서 사소해 보이지만 본질적인 교리 를 수호해 내기 위해서 자기의 목숨을 내어놓기까지 핍박과 고난을 마다하 지 않으며 고백과 신조들을 세워갔던 우리 신앙의 선진들이 오늘날의 교회 를 방문한다면 자기 소견대로 행하는 인본주의 사상이 판을 치는 오늘날의 교회는 얼마나 낯선 곳이 될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3. 자신의 아상(我相)부터 버려야 한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계시된 모든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 하는 것을 표방하는 개혁주의자로서의 삶을 살기를 그렇게 힘겨워 하는 것일 까? 왜 그 길은 그렇게 좁고도 험한 길일까? 사도행전 7장에서 스데반이 구속사적으로 구약역사를 전개시키면서 청중이었 던 유대인들의 우상숭배와 형식적인 종교 생활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결국 메 시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장본인이 자신들이었음을 선포했을 때 자신들 을 죄인으로 규정하는 말씀 선포자인 스데반을 돌로 쳐죽이기에 이르게 되 는 장면을 보게 된다. 자신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못박은 죄인임을 인정하기보다는 그 말씀에 대한 반발감으로 살인하게 되기까지 이르는 장면을 보면서 인간이 말씀 앞에 직면 하면서도 그 말씀으로 인해 자신이 무너지고 깨뜨려 진다는 것이 얼마나 어 려운 일인지 보게 된다. 왜 그렇게 자신의 경험과 이성을 통해서 습득된 가 치 체계를 버린 다는 것 은 어려운 일일까? 자기가 죄인임을 인정하고 자기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면 자기가 평 생 쌓아온 자기 의가 휴지조각이 되어 버리고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서 철저 히 죄인이 되어버리기에 이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이다. 그 만큼 인간에게 있어서 자기 생각이 틀렸고 자기 생각이 잘못되어 있다는 것 을 인정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죽기보다도 더 어려운 일인 것임을 볼 수 있 다. 3년 동안 예수님과 동행하였던 예수님의 제자들마저도 구약성경에 끊임없이 계시된 메시지와 예수 그리스도의 직접적인 가르침이 있었음에도 시대가 갈 망하던 메시야 대망사상과 결탁한 오염된 메시야관을 버린 것은 예수 그리스 도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사건을 거처서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 이후임을 보 아서도 알 수 있다. 그만큼 시대 사조와 결탁되어 자기 존재 깊은 곳에 뿌리 깊이 자리 잡고 있는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주께 복종시키는 작업이 어려운 작업임을 알 수 있다. 4. 시대적 풍조로부터 벗어나라 냉정하게 우리 자신을 객관적으로 관찰해 보면 우리는 어느 시대에 태어나 든 그 시대의 아들들이 됨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 시대에 태어나 이 시대의 사조 속에서 교육받고 세뇌되어진다. 하나님의 거룩한 계시의 말 씀에 기반하기 보다는 이미 우리의 가치관과 사상들은 벌써 이 시대의 세속 화된 미디어와 교육이 제공하는 시대 사조 속에 철저하게 물들어 있게 된 다. 철저히 실용적이고 감각적이며 자기 중심적인 배금주의 사상, 세속적인 성공 주의, 과업 지상주의, 종교심을 탈을 쓰고 교묘히 들어온 양적 성장주의와 마케팅과 심리학과 엔터테인먼트에 물든 철저하게 대중의 욕구에 영합하는 인본주의적인 사조가 주님의 거룩한 교회에서도 어색하지 않게 수용되고 있 는 것이 작금의 현실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거듭 났다고 고백하는 많은 신자들의 사고와 가치관도 일 반인들의 사고 기저에 깔려 있는 그 가치들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거듭났다고 말하지만 우리의 사고 체계는 여전히 계시 된 말씀보다는 이 시대의 사상에 훨씬 더 젖어있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 이다. 이러한 시대 풍조 속에서 우리의 생각과 가치관의 근간을 형성하는 사고체 계 들이 일점일획 양보할 수 없는 진리의 체계 앞에서 휴지조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얼마나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일까? 얼마나 고통스러 운 자기 부인과 자기 깨어짐이 있어야 할 것인가? 얼마나 겸손하게 말씀 앞 에서 자기 자신을 교정해 나가는 길고 긴 작업들이 필요한 것인가? 단언하건 대 자기의 전존재를 건 사투 없이 이러한 작업들이 결코 가능하지 않을 것이 다. 5. 마치는 말 자기의 전인격과 존재를 건 고도의 진리를 향한 추구와 정직하게 말씀 앞에 서 여전히 버티고 있는 자기의 아집과 독선들을 내려놓으려는 결단이 없다 면 각자 자기 소견대로 행하고 세속적인 잡동사니 같은 사상이 난무하는 작 금의 때에 정확무오한 성경적 사고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아도 과언 이 아닐 것이다. 예레미야 선지가가 말했던 것처럼 말씀 앞에서 먼저 무너지고 뿌리가 뽑히 지 않고서는 온전히 세워질 수 없고 새롭게 건설되어 질 수 없을 것이다. 날 마다 한 치도 가감할 수 없는 순전한 계시 앞에서 정직하게 자신을 돌아보 고 시대의 오류와 스스로 조작한 자기 자신의 사고와 생각들을 끊임없이 교 정하고 생각을 변화시켜 나가는 것 바로 그것이 자신을 끊임없이 개혁해 나 가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을 개혁시켜 나가는 사람들만이 개혁된 교회는 날마다 개혁되어 야 한다는 명제 앞에서 목숨을 바친 우리 신앙의 선진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 은 진정한 개혁주의자들이 될 것이다.
374 no image |수상| 3단계 인생_홍기현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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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4 2008-01-30
"3단계 인생" 홍기현 장로_인천신석교회 “겸손하면서도 당당하게 살기를” 지난 2007년 11월 18일, 은퇴 6일을 앞두고 마지막 대표 기도를 하면서 아래 와 같이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정년으로 장로 은퇴해 “돌아오는 토요일에 있을 장로 은퇴 및 권사 취임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끝 은 곧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법적으로는 은퇴를 하지만 아무 쪼록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 날까지 인생의 현역으로서 어느 권사님의 말씀처 럼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봉사를 하면서, 선하고 아름다운 일에 본이 되게 하시오며, 앞서 가는 그 뒷모습이 영원히 아름답기를 원합니다. 우리 겉모습 은 날로 늙고 후폐해 가지만, 우리 속 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지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인생을 3단계로 나눈다면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 단계는 1세부터 30세까지로 성장과 준비의 단계라 할 수 있으며, 두 번째 단계는 30세부터 70세까지로 발전과 성숙의 단계라고 할 수 있으 며, 70세부터는 세 번째 새로운 단계로서 지나온 70평생의 경험과 안목을 살 리고 거기에 감사한 마음을 더하여서 우리 이웃을 위하여 봉사하며 인생을 엔조이(enjoy) 할 수 있는 자유롭고 경건한 기간으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3 단계 인생’이 ‘9988 234’, 즉 아흔 아홉까지 팔팔하게 살다 가 이, 삼일 동안 인생을 마무리하고 내 고향 하늘 나라로 돌아가기를 원한 다면 다음 몇 가지 인생의 지혜를 필요로 할 것이다. 첫째, 몸과 마음의 건강이다. 건강을 위해서는 ‘하하하, 허허허, 호호호’ 웃으면서 긍정적이고 진취적이 어야 하며, 옳다고 생각이 되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면 내가 좀 힘이 들고 시간과 돈이 들더라도 밀고 나가야 한다. 제자들의 발을 씻겨 남 섬기 는 종의 도를 몸소 행해 보이신 예수님처럼 그리고 바울처럼은 못할지라도 우리는 심호홉, 바른 자세, 적당히 움직임으로써 현상 유지를 위해서 노력 을 해야겠고 더 나아지기를 바래는 것은 결코 욕심이 아닐 것이다. 둘째, 경제적 독립이다.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려는 생각은 안 하는 것이 시대 정신에도 맞고 정신 위 생에도 이로울 것이다. 하나 님이 부르시는 그 날까지 현역으로서 생산적이어 야겠다. 히노하라 시게아키씨는 96세의 나이에도 일본 세이루카 국제병원 이 사장겸 명예원장으로서 환자를 돌보고 있다고 한다. 물론 그는 이 일을 무료 봉사로 하고 있다.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현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찾아서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나 그네 인생이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잘했다 칭찬을 들을 수 있도록 애써 노력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은퇴 후 새인생 기대해 이러한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아래와 같이 기도하면서 기꺼이 은퇴의 길을 가고자 한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지난 70평생 동안 대과 없이 지나오게 하시고 2008년을 새로운 마음으로 시 작케 하시니 감사합니다. 허물 많고 부족한 이 자식을 그냥 버려 두지 마시옵고 친히 인도하여 주시옵 소서. 앉아서 도움을 받기보다는 일어나서 스스로 사랑하게 하시오며, 겸손 하면서도 당당하게 하나님에 백성임을 항상 잊지 않게 하시옵소서. 근면하 며 절제하고 성실한 자세로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실버(Silver)이지만 남을 위해서, 그것이 곧 나 를 위하는 것이기에, 무엇인 가를 할 수 있다는 사명감으로 일할 수 있음을 항상 감사하면서 최선을 다하 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373 no image |목회단상| “은퇴 그리그 그 이후”_김명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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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69 2008-01-30
“은퇴 그리그 그 이후” 김명혁 목사_강변교회 원로목사, 한국복음주의협의회장 “나는 하나님의 인도 가운데 살았다고 고백했다” 지난 1월 13일 주일 오후 3시 많은 성도들의 사랑과 축복을 받으며 은퇴 및 원로/선교 목사 추대 예배를 감동과 은혜 가운데 드렸는데 강사 분들이 지나 친 과찬의 말씀들을 하셔서 몸 둘 바를 몰랐다. 30년 목회 은퇴하게 돼 박병식 목사님은 부족한 사람을 가리켜 “진실하고 성실하고 단순하게 그리 고 사랑을 베풀며 살아온 사람”이라고 과찬을 했고, 정진경 목사님은 부족 한 나를 가리켜 “내 마음을 다 열어 보이고 내 마음 한 구석에 자리를 허용 할 수 있는 친구”이며 “욕심이 없이 검소하고 청렴한 생활을 한 사람”이 라고 지나친 과찬을 했다. 너무너무 고마우면서도 하나님 앞에서 황송함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모두가 하나님의 망극하신 은혜와 긍휼과 자비 때 문이었고 성도들의 뜨거운 사랑과 눈물 때문이었 다. 은퇴를 하면서 아쉬운 마음과 함께 홀가분한 감사의 느낌을 지녔다. 30여 년 동안 사랑과 정을 나누며 살아온 성도들과의 헤어짐은 아쉬운 마음을 지 니게 하고도 남았다. 은퇴를 앞둔 몇 주 동안 상당 수의 성도들이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눈물을 흘렸다. 손을 붙잡고 징징거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자기들은 우울증에 걸리려고 하는데 목사님은 그렇게도 신이 나느냐고 못마 땅함을 나타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떤 사람은 그냥 우는 것이 아니라 흐느 끼면서 눈물을 쏟아내었다. 그리고 물로 얼굴을 씻어냈다. 은퇴 예식이 있 던 주일날 아침 초등부 어린이들은 나의 은퇴를 못내 아쉬워하면서 나에게 달려들어 나를 안고는 안은 대로 그대로 오래 있자고 말했다. 목사님 못 보 면 어떻게 하느냐고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은퇴를 하면서 아쉬운 마음과 함께 홀가분한 감사의 느낌을 지니게 된 것도 사실이다. 부족하지만 한 개 교회를 30여 년 동안 담임하던 목회의 사명을 마치고 마음에 드는 후임에게 목회를 인계하게 되었으니 홀가분한 감사의 느 낌을 지니게 된 것이 사실이다. 그 후임이 부드럽고 겸손한 신앙의 인격을 지녔고 필요 한 목회의 경험을 지닌 나의 제자이니 더욱 더 홀가분한 감사의 마음을 지니게 되었다. 나는 앞으로 이곳 저곳을 찾아다니면서 하고 싶은 일들, 아니 주님께서 나에 게 맡기실 일들을 보다 자유롭게 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홀가분하고 감사한 지 모르겠다. 나를 필요로 하는 작은 교회들과 선교사들을 찾아다니면서 저 들을 위로하고 격려와 사랑의 손길을 펼 생각을 하니 신이 나기도 한다. 내가 은퇴한 후 작은 교회들을 돌아볼 생각이란 소식이 국민일보의 기사와 “CBS 라디오 초대석”을 통해 전해지지 여기 저기서 전화가 걸려왔다. 지 난 1월 18일부터 거의 매일 걸려 온 전회의 내용들은 다음과 같았다. “평소에 감히 목사님 같은 분을 모시리라고는 감히 생각도 못했는데 목사님 을 모실 수 있다니 설레임과 흥분과 기대에 찹니다. 너무 감사하고 용기를 얻게 됩니다.” “우리 교회처럼 너무 작은 교회에 목사님을 모실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모실 수 있다면 너무나 큰 영광입니다.” “우리 교회에는 80여명의 성도들이 있었는데 근처에 큰 교회가 세워진 후 50여명의 성도들이 그 교회로 이전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프고 속 이 상했 는데 목사님을 모시고 예배를 드릴 것을 생각하니 설레임과 기대에 차게 됩 니다.” “한 번만 모시기는 너무 아쉽습니다. 며칠 계속해서 집회를 인도하실 수는 없는지요?” “수요일 저녁에도 오실 수도 있는지요?” “목사님이 오시면 교회에 환영 현수막을 만들어 부치려고 합니다.” “작은 개척교회인데 은 퇴 목사님 한 분을 설교자로 모실 수는 없는지요?” 국악예술신학교 학장인 유명해 목사는 전화를 걸고 내가 작은 교회들을 찾아 갈 때 자기도 같이 갈 수 없느냐고 물었다. 형편이 허락되는 대로 같이 가도 록 하자고 말했다. 작은 교회 목회자들이 너무 뜨거운 반응을 나타내 보이 는 것을 바라보면서 나는 서글픔과 감사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밖에 없었 다. 나는 즉시즉시 전회를 걸고 상당 수의 작은 교회들을 방문하기로 약속 을 했다. 앞으로 아주 바쁘게 보람되게 묵묵히 달려가게 될 것 같다. 은퇴 후 맞는 첫 주일, 첫 번째 방문지로 강원도 정선으로 달려갔다. 3시간 30분을 달려서 유천교회에 도착했다. 아담한 교회당이 눈 앞에 나타났고 최 용철 목사가 교회 앞에 기다리다가 우리를 반갑게 맞았다. 어린이들 8명을 포함해서 30여명의 성도들이 함께 모여 예배를 드렸는데 모두들 너무너무 반 가워하며 좋아했다. 나는 처음에 어린이들을 상대로 어린이 설교를 했다. 어릴 때부터 한 평생 사는 동안 제일 중요한 것은 믿음과 사랑이라는 말을 했다. 내가 어릴 때부 터 믿음과 사랑으로 살았더니 슬픈 일도 아픈 일도 있었지만 한 평생이 얼마 나 행복했는지 모른다는 말을 했다. 나는 다윗처럼 어릴 때부터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고 고백하며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한 평생을 행복 하게 살아왔다고 고백했다. 예배 후에는 정성껏 마련한 시골 음식을 모든 성도들이 함께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내가 가지고 간 떡과 초콜릿을 아이들과 성도들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너무너무 좋아했다. 조그만 교회를 찾아가서 조그만 사랑을 나누 는 일이 너무너무 좋았다. 가는데 3시간 30분 오는데 5시간 이상이 걸렸지 만 행복한 하루였다. 교회 섬긴 은혜 감사해 부족한 사람에게 주님과 주님의 교회를 섬기며 달려갈 수 있는 마음과 건강 과 여건을 마련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크고 놀라울 뿐이다.
372 no image |목회단상| 천재의 생각보다 뛰어난 하나님의 말씀_이창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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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62 2008-01-23
천재의 생각보다 뛰어난 하나님의 말씀 이창주 목사_하나비전교회 “ 이적 행할지라도 말씀 넘어설 수 없어” 아이큐 500의 인간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더 신뢰할 만하다. 우주를 초월하지 도 못하고, 짧은 수명에, 짧은 지식과 지혜를 가진 인간은 적어도 창조주의 가르침에는 절대로 미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지혜, 하나님 초월 못해 개미는 사람과 비교가 안 되는 미미한 존재이다. 이처럼 사람의 존재는 창조 주 혹은 존재 세계를 관할하는 신과는 비교가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각을 신의 생각보다 우월하다고 하는 것은 너무나 엄청난 교만이 다. 하나님의 가장 어리석은 것이 인간의 가장 지혜로움보다 더 지혜롭다(고전 1:25). 신의 말씀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고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겸손하지 못한 것이다. 보다 잘 이해하려고 해야 한다. 우리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것을 원시적 종교 의식이라고 한다 면 성경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고 부정하는 것은 무슨 의식인가? 성경의 가 르침을 절대적 진리로 믿는 것이 무모해 보일 지 모르겠다. 하지만 먼저 예 수 그리스도와 성경을 믿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내가 성경을 절대적 진리로 믿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현실의 나의 삶 속에 서 정확히 일치하기 때문이다. 즉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믿음이 허상이 아 닌 실제임을 경험한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어떤 철학자의 말보다 어떤 종교 의 가르침보다 합당하다고 믿는 것이다. 바른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고 적용함에 있 다. 성경이 하나님 계시를 전하는 책으로서 절대적 진리를 전하고 있지만 문 제는 그 성경을 오해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같은 성경에 대한 해석이 약간씩 차이가 있어도 중대한 부분에서 심각한 차이가 없다면 서로의 차이 를 인정하지만 중대한 오류를 가질 때엔 이는 아주 위험하다고 판단하여 소 위 ‘이단’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단은 성경은 근거로 아주 위험한 일들을 도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바른 기독교 신앙은 테러가 아닌 진실한 사랑의 설득력에 의지하는 것이다. 테러를 행하는 신앙이야말로 무지한 것이다. 예수님은 천지를 만드시고 다스 리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도 테러로 사람들의 마음을 이끌려고 하시지 않았 다. 위협할 때 사람들은 그것이 아무리 옳은 것이라 할지라도 거부하려는 자 유의지적 본능이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처음부터 우리 인간의 자유적 결단 을 강제하시지 않으신 것이다. 하나님으로 자처하나 하나님의 영이 아닌 미혹의 영들이 있다. 사도 요한은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 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요일 4:1)라고 말씀하였다. 기독교 신앙의 언저리에 많은 사람들이 미혹의 영을 성령으로 알고 따르는 이들이 있다. 대부분의 경우, 잘 못되었다고 판정을 받으나 어떤 경우에는 위대한 주의 종으로 행세하는 경우도 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저를 존경하 기 때문에 이단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그러나 잘 못된 것을 규정하는 것 역시 성경에 그 근거를 둔다. 사람이 어 찌 영의 신비한 것을 자신의 임으로 잘 되었다 그렇지 않다 판단하겠는가? 그러므로 바른 성경의 이해의 시각을 통하여 제 아무리 엄 청난 이적을 행하 는 지도자라 할지라도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다른 것을 믿는 사람들의 특징은 자기 자신과 가정, 하나님 의 교회, 그리고 사회를 해롭게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곧이곧대 로 순종하는 일로 말미암아 사회적 다수의 분위기와 달라 갈등을 일으킬 수 는 있을 것이다. 이런 형태는 사회를 해롭게 한다기보다는 말씀과 다른 기존 의 세력이 그것을 용납하지 않아서 생기는 갈등이다.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고 실현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현재의 우리의 삶 속에서 도 실현된다. 천국은 반드시 실재하는 것을 어떻게 믿는가? 이것은 하나님 을 인격적으로 신뢰하고 그 말씀을 실천했을 때 세상에서도 천국을 경험하 기 때문에 그분이 말씀하는 실존하시는 하나님과 또한 그의 세계를 얼마든 지 확신하는 것이다. 말씀 실천할 때 천국도 경험해 하나님의 말씀은 더 이상 믿을까 말까 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자연스런 상 식이다. 마치 1 더하기 1은 2라고 말하는 것이 상식이듯이 성경을 통해 말씀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상식이다. 단 이것을 깨닫지 못한 이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371 no image |목회단상| 이 빠진 빗_황대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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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29 2008-01-17
이 빠진 빗 황대연 목사_한가족교회 “각자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 다해야” 어제는 이발을 했습니다. 저는 값싸고 깨끗한 남성전용 이발소 B클럽을 이용 하는데, 함께 다니던 아들 녀석은 너무 아저씨같이 머리를 깎는다고 저 좋아 하는 스타일의 미용실로 가버린 지 오래입니다. 프로의식 가진 이발사 만나 저는 어차피 아저씨니까(?), 그리고 여자들 많은 미용실에 들어가기가 좀 멋 쩍기도 하고, 미용실에서 머리를 깎아주는 스타일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 서 그냥 B클럽을 고수하고 있는 중입니다. 마침 아침 시간이라 좀 한가합니다. 그 덕분에 내 머리를 커트해 주는 아가 씨와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이발 가위는, 다 쓰면 갈아서 쓰나요?” “아뇨... 갈아서 쓸 수도 있지만, 손에 맞지 않게 되어서 그냥 버리죠. 그 런데 한번 사면 꽤 오래 쓴답니다.” “아 그렇군요. 하긴 요즘 워낙 값싼 중국제들이 많으니까요.” “중국제는 못씁니다. 지금 쓰고 있는 가위, 이거 이래봬도 십만 원이 넘습 니다.” “예에? 그게 그렇게나 비쌉니까?” “웬걸요? 비싼 것은 백만 원도 넘는걸요?” 저는 내심 놀랐습니다. 여기 새로운 세계가 있구나 싶어 점점 흥미가 생겨 물어 보았습니다. “그럼 이발도구는 여기(B클럽)에서 제공해 줍니까?” “아뇨! 그건 각자 구입합니다. 저희는 여기 그만두면 자기 이발도구 다 챙 겨갑니다. 한마디로 어디든 자기 가위 하나만 있어도 먹고 살지요. 그런데 손님들은 그걸 모르시는 것 같아요. 어제 어느 손님이 전기 줄을 건드려서 여기 놓여져 있던 제 전기바리캉이 땅에 떨어졌는데, 그것도 하나에 이십만 원이 넘는 겁니다. 뭐라고 말도 못하고 정말 속상하더군요.” “아 그러셨겠군요...” 아가씨는 일부러 인지는 모르겠지만, 머리를 천천히 다듬으며 말을 이어 갑 니다. “이 플라스틱 빗도 말입니다... 십 년 넘은 거예요. 비록 이가 다 나가고, 몰골이 흉해 보이지만, 이 빗이 아니면 이상하게 머리가 잘 안 깎여요. 다 른 빗은 손에도 안 맞고...” 저는 그녀에게 묻습니다. “이 일에 종사한 지 얼마나 되었어요?” “십 년 조금 넘었어요. 그리고 이 집에서만 칠 년 째예요.” 그렇게 이발을 마치고 머리를 감는데, 문득 나는 목사로써 얼마나 성경을 사 랑하고, 애지중지 귀하게 여기며 읽고 묵상하는가 하는 생각이 가슴속으로부 터 밀려 올라왔습니다. 머리카락은 한 번 잘못 잘라도 계속 자라 올라오니까 또 다시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혼 하나를 실족케 하면 영영 돌이킬 수 없기도 하는 데... 빗 하나도 십 년 넘게 사용해 나보다 스무 살 남짓 어려보이는 저 젊은 아가씨가 몇 천 원 받고 자르는 머 리칼을 위해서도 저렇게 프로의식을 가지고 일하는 데, 하나님의 소명을 받 았다고 하면서도, 엄위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라고 하면서도 말씀 읽 고 묵상하는 일에 너무 가벼웠던 것은 아닌지 반성해 봅니다.
370 no image |목회수상| 동생의 죽음을 회상하며_김승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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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85 2008-01-09
동생의 죽음을 회상하며 김승식 목사_인천영광교회 “제멋대로 살았지만 마침내 주님 품에 안겨” 내 바로 밑의 동생 의식이와 이별을 한지도 벌써 일 년이 지났다. 아직 한 창 나이인 56세를 일기로 먼저 하늘나라로 간 동생이 오늘따라 생각이 나서 이 글을 쓴다. 나는 5남매 중에서 형과 누나를 위로 두고 있고 밑으로 남동생 둘을 뒀는데 바로 밑의 동생이 의식이다. 나이는 나보다 3살 밑이다. 내 동생 의식이는 한 마디로 말하면 ‘기인’(奇人)이라는 표현이나, 아니면 ‘돌연변이’ 아 니면 영화 제목처럼 ‘괴물’이라는 표현도 어울릴 것이었다. 동생에 대한 에피소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동생은 어려서부터 가출을 잘 했다. 동생의 가출 편력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군에 가서 장기복무를 신 청해서 하사관이 되고 결혼도 했는데 그러면서도 여전히 군에서도 가출을 해 댔다. 부대에서 소동이 난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고 그래서 병사들이 여러 번 우리 집을 찾아 왔다. 그러나 우리 집에서도 동생의 행방을 알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가출 편력까지 심했던 동생 어느 해도 그런 사단이 일어났는데 부대가 발칵 뒤집혔다. 소식도 없이 잠적 했으니 말이다. 부하들이 우리 집을 찾아오고 난리가 났는데 나중에 알고 보 니 부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산꼭대기에서 사흘을 있었단다. 상사 진급이 안 된데 대한 항의성 시위였단다. 그래도 남자답고 운동도 잘하고 동료들에 게 인기가 좋았다고 한다. 그러던 그가 20년 군복무를 마치고 전역을 했다. 수원 신갈에서 괜찮은 음식 점을 개업했다. 음식 솜씨가 좋아 손님들이 많았다. 특히 영양 삼계탕은 이 집만의 독특한 메뉴였다. 그대로 잘 이어갔다면 아마 꽤 돈도 벌었을 것이 나 이 년이 못 되어 문을 닫게 되었다. 동생이 가게 일을 안 보고 밖으로 나 돌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바람을 피우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할 일 없이 저수지에 나가 진종일 앉아있다 들어오는 식이었다. 제수씨 혼 자 애쓰다가 결국 문을 닫고 말았다. 그 이후로 동생은 점점 이상하게 돼가더니 결국 알코올 중독자가 되기까지 내려갔다. 자원해서 용인정신병원 알코올 클리닉에 들어갔다. 그러나 알코 올 크리닉을 받는 동안뿐 얼마 후엔 다시 재발되고 말았다. 폐인처럼 살던 그는 몇 년 후에 나의 권유로 재차 병원에 입원을 했으나 그것도 잠시뿐이었 다. 그 후로 그는 거의 술로 살았다. 가정을 돌본지는 오래고 주머니엔 자살 용 밧줄을 넣고 다녔다. 결국 몸은 망가질 때로 망가지고 간경화와 간암으 로 이어져 56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해야 했다. 56세 일기로 생을 마감해 동생은 물 한 모금 넘기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렀는데 영적으로도 절망적이었 다. 눈을 감기 한 달 전까지도 그 중심에 주님이 없었다. 자기는 하나님을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장로 아들로 태어났을 뿐 아니라 큰 형이 장로요, 작 은 형과 동생이 목사인 집안에서 이런 별종이 태어나 속을 썩이다니! 화도 나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너 그러다 지옥가면 어쩔래?” 하니 “지옥이 있는지 없는지 가봐야 알 지” 하는 대답이 나왔다. 그 다음부터는 다 죽어간다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한 달 이상 찾아가 보지 않았다. 형제들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했다. 철저히 외롭고, 철저히 고립시켜 놔야 주님을 붙잡을 거란 생각에서였다 . 아버지 상 태가 안 좋다는 조카딸의 전화가 와도 아예 전화를 받지도 않았다. “형제도 다 필요 없구나, 친구도 다 필요 없구나!” 그것을 철저히 깨닫게 해주고 싶었다. 동생은 눈을 감기 보름 전쯤에 마음 문을 열고 주님을 영접했다. 교회 목사 님이 오셔서 예배를 드리는 것을 허락하더니 서서히 마음 문을 열었다. 죽음 앞에서 주님 맞아들여 그가 눈을 감기 나흘 전. 중창단 목사님들을 이끌고 방문을 했다. 인생 마지 막을 맞고 있는 그에게 찬양을 들려주고 기도해주고 싶어서였다. 피골이 상 접한 그의 모습은 동생의 모습으로 알아보기조차 힘들었다. 이미 죽음의 그 림자가 짙어 있었다. 목사님들이 부르는 찬양을 듣고 나더니 그가 눈물 가득 한 얼굴로 “한 곡만 더 ” 할 때 내 눈에도 이슬이 맺혔다. “한 곡만 더…” 하는 손짓조차 너무 힘겨워 보였다. 찬양이 끝난 뒤 “선영이 아빠야, 자기 입으로 직접 하나님께 기도를 해 봐 라” 했더니 자신을 일으켜 달라고 했다. 간신히 일어 앉은 그가 눈물을 흘 리며 기도를 했다. 혼신의 힘을 다해 간신히 기도를 하는 동생의 얼굴에 눈 물과 콧물이 함께 흘러내렸다. “하나님 아버지! 제가 이 세상에서 제일 잘난 줄 알고 내 멋대로 살아왔습 니다. 저를 용서해 주옵소서....... ” 동생은 눈을 감기 하루 전인가, 두 손을 벌리며 큰 소리로 “천사! 천사” 를 외쳤다고 한다. 아마도 이상을 본 모양이었다. 아무튼 그가 마지막에 주 님을 영접하고 주님 나라에 들어간 것은 기적에 속하는 일이었다. 그가 모태신앙이면서, 명목상 집사이면서, 겉으론 신자이면서도 불신앙의 삶 을 살았던 것은 교회에 대한 그의 부정적인 자세 때문이었다. 어쩌면 모태신 앙으로 자랐으면서 그렇게 날라리로 신앙 생활을 해올 수가 있었을까? 동생의 구원은 기적 큰 형은 장로가 되고 누님은 권사이고, 나와 동생은 목사가 되었건만 어찌하 여 불신앙의 길을 걸어 왔던가? 그것은 교회의 부정적인 면만 보며 비판해 왔던 까닭이었다. 물론 그가 평소에 교회에 대하여 비판하던 말이 전혀 틀 린 말들은 아니었다. 대표적인 것이 “우리 교회가 예배당을 짓고 아직 빚 이 남아있는데도 목사님은 그랜저를 팔고 다이너스티를 사셨어. 그래도 되 는 건가?”였다. 아직은 젊은 나이의 아우는 이렇게 먼저 주님께 갔다. 성도들 의 많은 죽음 을 지켜본 나였지만 사랑하는 동생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는 내 감정은 전 혀 새로운 것이었다. 가슴의 한줄기 허허로움은 장래의 소망 때문에 사라졌 고, 가슴에 남을 어떤 한(恨)같은 것은 주께서 그 영혼을 구원해 주심에 대 한 감사함 때문에 씻겨 졌다. 사랑하는 아우야! 아우야!
369 no image |목회수상| 물벼락과 감사_이진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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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7 2007-12-26
물벼락과 감사 이진수 목사_은혜교회 "물 퍼낼때 아무도 귀찮다고 외면하지 않아" “목사님, 큰 일 났습니다. 온 천장에서 물이 줄 줄 줄 흘러내리고 야단났습 니다.” 아니 장마철도 아닌 이 청청한 가을날에 무슨 물벼락? 한편 핸드폰으로 들려 오는 집사님의 당황한 목소리에서 사태가 굉장히 심각함을 짐작할 수 있었 다. 그러나 나는 당장 가 볼 수가 없었다. 가을노회를 마치고 강원도에서 교 역자 수련회에 참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늦가을에 터진 물난리 아내와 함께 교역자 수련회를 마치고 부랴부랴 교회로 돌아왔다. 교인들로부 터 어떻게 된 것인지 현장을 둘러보며 자세히 들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나 는 가슴이 뭉클했다. 물벼락을 맞아 천장의 일부가 파손되었고, 피아노 건반 은 올라오지 않는 것이 있었고, 드럼 안 에는 물이 차서 흔들면 출렁이고 있 었지만, 나는 이렇게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의 생각은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지금 은 60평 남짓한 지하상가 의 예배당이지만 그 때는 18평 남짓한 2층 상가의 예배당이었다. 어느 날 새 벽기도회에 나갔는데 화장실 천장에서 물이 줄 줄 줄 새고 있었다. 놀라서 옥상으로 올라가 보니 옥상의 물탱크실이 한강이 되어있는 게 아닌가! 혹독 한 겨울 추위에 물탱크 파이프가 얼어 균열이 생겼던 것이다. 날이 풀려 얼 음이 녹으면서 균열된 파이프를 통해 물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물탱크 물을 잠그고 그 때부터 바가지로 물을 퍼내기 시작했 다. 겨울 새벽어둠 속에서. 얼마나 퍼내었을까? 어느 듯 소매가 젖고 양말 이 다 젖었다. 아내와 내가 지쳐갈 무렵 서글픈 생각이 밀려왔다. 이럴 때 여러 성도들이 다 함께 와서 물을 퍼낸다면 얼마나 좋을까? 일도 빨리 끝낼 수 있고 외롭지도 않고... 그러나 새벽기도는 대부분 아내와 둘이서 하기 일수. 그렇다고 새벽에 전화 해서 나오라고 할 만한 성도도 딱히 없었다. 그저 주일날 예배에 참석해 주 는 것만도 고마운 정도였으니까. 아! 이런 일이 생기면 성도들이 교회를 사 랑하여 자기 일처럼 발 벗고 나서는 교회의 목사님은 얼마나 좋을까? 하나 님! 저는 왜 이렇게 리더십이 없나요? 왜 이렇게 초라한가요? 하나님은 한 목회자의 여린 마음을 위로해 주고 싶으셨나 보다. 용기를 가지 고 주님의 교회를 섬기게 해주고 싶으셨나 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교회 성 도들이 얼마나 교회를 사랑하고 있는지를 보여주셨다. 이번에도 물벼락이었 다. 위층 음식점의 배관이 잘못되어 그 집에서 붓는 구정물이 다 우리 교회 당 천장으로 쏟아졌다. 나도 아내도 없는 상황. 그런데 교인들이 자기 일 같이 나와서 그것을 다 수 습했다. 앰프에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비닐로 덮었다. 예배당 바닥 전체에 발목까지 찬 그 구정물을 휘젓고 다니며 다 퍼내었다. 더러운 물이 흘러내 린 벽과 교회의자들을 걸레로 다 닦았다. 어떤 이는 몸살을 했고, 어떤 이 는 몸에 두드러기가 났다. 얼마나 힘들었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때 성도들은 아무도 귀찮다고 외면한 사람이 없었다. 다 나와 그 힘든 일을 한 것이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서 나의 마음은 더 이상 그 때의 겨울 새벽처럼 춥지 않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사랑이라는 포근한 이불로 덮어주셨기 때문이다. 강원도에서 들었던 한 집사님의 핸드폰 목소리가 지금도 내 귓가에, 내 마음 에 따뜻하게 맴돈다. 성도들 한 마음으로 물 퍼내 “목사님, 죄송해요. 되도록이면 목사님과 사모님께서 목회자 수련회에 즐겁 게 참석하시도록 해드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연락 안 드리고 저희들이 처리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아무래도 목사님의 지시를 받아야 할 것 같아서...”
368 no image |목회수상| 번성하라_권학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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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47 2007-12-26
번성하라 권학도 목사_대문리교회 "항상 풍성하게 채워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해"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시고 “생육하고 번성하라 땅을 정복하라”(창1:27) 고 말씀하셨다. 우리나라의 저 출산 문제는 이제 누구나 공감 있게 느끼는 중요한 문제이 다. 대통령 직무실인 청와대에도 저 출산문제를 다루는 부서가 있다. 우리나 라 국회에서도 이 문제는 종종 다루어지고 있다. 지자체 행정이 이루어지고 있는 우리나라 형편이기 때문에 각 지역에서는 어떻게 하면 인구가 줄어들 지 않을까 하며 출산 장려정책을 펴 나가고 있다. 이 문제는 우리나라 사회 전반에 미치고 있는 상황이면서 교회에도 치명타 로 찾아왔다. 그리하여 농촌에서는 어린아이들의 출산 울음소리를 듣기 힘들 어졌고 어린이 주일학교도 줄어들고 있다. 옛날보다 피임이 쉬운 것도 이유 가 되었다. 우리나라 평균 출산 통계율은 2007년의 경우 1.08이라는 수치가 나와 있다. 우리나라가 옛날보다 경제적으로 살기가 많이 좋아졌음에 도 불구하고 “낳 기 힘들다”, “기르기 힘들다”는 이유로 자녀를 낳지 않는 것이다. 나는 산골 농촌, 교회 없는 동네에 와서 교회를 개척하고 만 16년이 거의 다 되어가고 있다. 처음 이사 올 때 큰 딸 은진이가 난지 한 달 반 되었을 때 이사를 와서 자녀 여덟을 더 낳고 육남 삼녀 아홉 자녀를 낳아 키우고 있 다. 생육과 번성은 하나님 명령 두 번의 유산을 당하면서 아픔을 당한 적도 있다. 연년생이 여섯 명이다. 큰 딸 은진이가 고1, 둘째 은찬이가 중2, 셋째 은정이가 중1, 셋째 정찬이가 초 5, 다섯째 영찬이가 초4, 여섯째 강찬이가 초2, 그리고 일곱째 은혜가 여섯 살, 여덟째 예찬이가 세 살, 아홉째 경찬이가 돌이 지나고 11개월째 되었 다. 어머니도 모시고 있고 12명의 대가족이 행복하게 살고 있다. 하나님 앞에 큰 죄인이지만 주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고 주님의 은혜로 감사하며 하 루 하루를 즐겁게 살고 있다. 인생살이가 어찌 어려움이 없을 수가 있을까 그러나 주님의 은혜로 극복하며 살고 있다. 주께서 공중 나는 새도 먹이시고 들에 피는 백합화도 아름답게 피게 하시듯 우리의 먹을 것도 주시며 입을 것도 주시며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시겠 다고 약속 하셨다. 그 주님을 신실하게 믿는 것이다. 그 주님께서 우리의 자 녀도 낳게 하시고 키워 주시리라고 믿는다. 하나님의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 을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내어 주신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우리의 자녀 들을 키우시지 않겠는가. 나는 결혼하여 지금까지 나와 아내, 자녀들, 어머니, 못 먹어서 굶지도 않았 고 옷이 없어 헐벗은 적도 없다. 항상 풍성하게 채워주셨다. 늘 그 은혜를 감사한다. 우리 가족도 부족하여 다투면서 성장하기도 한다. 그 때 그 때마 다 회개하고 주님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 우리 가정의 행복한 소식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찾아오는 사람이 점 점 더 많아졌다. KBS, MBC, SBS, 그 외 기독교 TV들, 다양한 TV 방송사들, 신문, 잡지사들, 여기저기에서 방영도 하고 기사도 실었다. 감동에 감동으 로 연결되어 나갔다. 지금도 종종하고 있고 앞으로도 이러한 일들이 계속 있 을 것이다. 우리는 죄인들이지만 말로서 삶으로서 주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을 알 고 있기 때문에 기도하면서 이 일에 임하고 있다. 찾아오는 사람 맞아들이 r 고 서로 사랑하며 주안에서 교제를 나누고 주께로 인도할 사명을 우리는 받 았다고 믿고 있다. 우리는 다 하나님 앞에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말로 서, 삶을 통해서 주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그러한 마음으로 나는 하루 하 루를 살고 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들고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말씀은 예전이나 지금이 나 주님오실 때까지 우리 인간에게 복을 주시며 하신 말씀이기 때문에 그 복 된 말씀에 우리는 기쁘게 순종해야 한다. 복된 말씀 기쁘게 순종해야 세계 교회사에도 항상 이 말씀은 강조되어 가르쳐 왔다. 우리는 자녀를 하나 님이 주신대로 잘 낳아야 하겠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 르쳐야 하겠다. 그리하여 십계명 제 2계명에 약속한 대로 우리의 자녀 손 수 천대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복을 받아야 하겠다.
367 no image |전도간증문| 친구들아, 내 말좀 들어보소_채점부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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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5 2007-12-20
친구들아, 내 말좀 들어보소 채점부 장로_대구동흥교회 “이 세상에서 예수 믿는 것이 가장 큰 복” 세상에는 갖가지 많은 친구들이 있는 데 그 중에 격식이나 예의를 갖추지 않 고 허물없이 가깝게 지낼 수 있는 친구라면 죽마고우인 초등학교 친구라 생 각합니다. 저의 고향은 경남 의령군 신반이며 부림 초등학교를 나왔습니다. 유달리 정 이 두텁고 사이가 좋아 매년 모임을 갖는데 서울, 부산, 마산 각처에서 성공 한 친구들이 초청하기도 하고 모임에서 소요되는 경비들을 선뜻 내어 주는 친구들도 있어 모임이 활성화되었습니다. 이번 10월에 제주에 있는 한 친구의 장남 혼인식에는 남, 여 50여 명이 참석 했는데 혼인식 후 한라산 어귀 경치 좋은 곳에 펜션 5군데를 빌려 숙박하면 서 제주의 명물인 흑돼지와 해산물, 맛 좋은 음식을 먹고 2박 3일 동안 제주 도 곳곳을 관광하면서 어린 시절로 돌아가 아름다운 추억을 많이 쌓았습니 다. 만날 때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친구들이 저를 보고 장로님 하면서 대우 를 해 주는데 그런 친구들을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할 좋은 기회를 늘 생각하고 있다가 이번 제주도 관광이 주님께서 주신 절호의 기회라 생각 이 들어 마음먹고 준비를 하였으며 여러 코스 중에서 제일 긴 시간을 잡아 친구들에게 증거한 말씀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다음은 친구들 앞에서 전도 한 내용입니다. 초등학교 친구들에게 복음전해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고 했습니다. 엿 새 동안에 말씀으로 빛과 어두움, 하늘과 땅, 바다 해 달 별 등 각종 식물 과 과실수, 물고기와 새, 동물을 창조하시고 마지막으로 사람을 만드셨습니 다. 흙으로 사람의 모양을 만드셨는데 이것이 육체입니다. 흙으로 사람을 만드셨 기에 흙에서 나오는 모든 것을 먹고 살아가며 죽으면 흙으로 돌아갑니다. 흙 으로 만든 육체에 하나님의 생령을 주시어 영원토록 살도록 하셨는데 다른 동물들과의 차이가 하나님이 주신 영원한 생명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만드시고 거처할 에덴 동산을 주셨습니다. 이 에덴 동 산은 파라다이스, 낙원이라고도 하는데 그 곳에 주님은 영생을 주시는 생명 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선악과를 주셨습니다. 나체로 생활할 정도로 인 간이 살아가는 데 최적의 기후와 환경을 주셨고 의식주 걱정이나 질병, 돈벌 이할 필요가 없고 자유로우며 자기가 하고 싶은 데로 하는,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을 갖춘 곳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동산나무의 실과인 생명나무는 마음대로 따먹되 동산 중 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실과는 먹지 말라고 하셨고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하지 말라 하면 더 하고 싶고 꼭 해야 직 성이 풀리는 존재인가 봅니다. 뱀의 유혹으로 선악과를 먹음으로 범죄 하였 는데 이것이 원죄입니다. 이 원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왔고 그 죄의 대가로 지옥에 가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지옥갈 수밖에 없어 하나님께서는 그 죄의 대가로 심판을 내리셨는데 먼저 뱀에게는 “너는 배 로 땅에 기어다니며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여자와 그 후손과 원수가 되 며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하고 뱀은 여인의 후손에게 발꿈치를 상 하게 할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와에게는 “잉 태하는 고통과 남편을 사모하며 순종하고 다스림을 받을 것이다”고 하셨고 아담에게는 “종일 땀을 흘리며 일을 해야 먹고 살 수 있고 땅이 저주를 받아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생겼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간다”고 심판하셨으며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을 창조하시고 사람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 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고 하시며 모든 만물을 다스리라”고 모든 만물을 위탁해 주셨습니다. 이 땅 모든 것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하 나님이 주신 이 땅을 관리하는 관리자입니다. 우리가 현재 소유하고 있는 모 든 것이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는 하나님의 재산이었고 우리가 죽고 나면 하 나님은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빌려 주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태어날 때는 순서가 있지만 죽을 때는 순서가 없는 불안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이 영원한 것인 양 건강을 지키며 돈을 벌며 행복 한 삶을 위해 모든 것을 걸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우리의 삶은 잠깐 있 다가 없어지는 안개요, 들의 풀이요, 떨어지는 꽃과 같고 잠깐 머무는 나그 네 같은 인생이라고 하셨습니 다. 인생은 잠깐 머무는 나그네 같아 이쯤 말씀을 증거하다가 친구들을 보니까 자는 친구가 있는 가하면 애써 외 면하는 친구도 있어 최희준씨의 하숙생을 한 곡조 불렀습니다. “인생은 나 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갔느냐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이 정 이란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정처 없이 떠나간다”라고 부르니 자던 친구도 깨어나고 박수가 터져나왔습니다. 그리고 다시 전도를 시작했습니다. 인생은 이와 같이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정처 없이 떠도는 나그네 인 생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날 때에는 순서가 있지만 죽을 때는 순 서가 없고 오래 머물 수 있는 세상이 아니기에 이 세상에서 너무 많은 소유 와 집착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께 위탁받은 것이며 잠시 맡겨진 임무라는 사실을 기억 할 때 세상의 즐거움이 더 이상 우리의 삶을 얽매이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는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지어 졌기 때문입니다. 9988234란 말이 한 때 유행했습니다. 99년을 팔팔하게 살고 이삼일 앓다 가 죽는 것이 가장 행복하게 살다가 생을 마감한다는 뜻입니다. 100년을 살 수 있지만 그 후에는 영원이라는 시간 속에서 영생을 살게 됩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영원히 살도록 우리를 만드신다고 말씀하셨 습니다. 우리가 오래 살고 영원히 살고 싶어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은 하 나님이 우리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심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이 땅 에서 사는 동안 우리가 선택해야 할 사항들이 많이 있지만 죽은 후에 선택 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뿐입니다. 그 두 가지는 천국과 지옥입니다. 우리 가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이 세상에서 우리 의 행위에 따라 우리가 천국과 지옥 중에서 어디에서 영생을 보낼 것인가가 결정됩니다. 천국과 지옥 둘 중 하나 결정돼 과연 우리가 영원히 거할 천국은 어떻게 갈 수 있을까요? 성경 말씀에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나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천국 가는 길은 오직 한 길 곧 예수를 믿음으로만 갈 수 있습니다. 흔히들 종교는 다 같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말하지만 천국 가는 길은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면 갈 수 있습니다. 현재 이 땅에서의 삶이 전부라면 예수 믿는 사람만큼 어리석고 무의미하며 불쌍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먹을 것 다 못 먹고 해 보고 싶은 것 다 못 해 보고 인생을 즐길 줄도 모르고 착하게 절제하면서 살아야 하고 따분하게 교회에서 황금 같은 주말을 보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죽음이 끝이 아 니고 영생이 보장되기 때문에 우리가 이 땅에서 하는 모든 행위에 따라 영원 한 결과가 따릅니다. 그러나 이 구원을 거부하고 예수를 믿지 않으면 이 세상에서 죽음으로 끝나 는 것이 아니라 지옥에서 영원한 세월을 보내야 할 것입니다. 지옥에서 자해 하거나 죽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죽을 수도 없고 죽지도 않고 영원한 고통만 있는 곳이 바로 지옥이라는 곳입니다. 지금의 삶이 영원한 천국을 위한 준비 과정입니다. 그것은 예수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예수를 믿는 자에게는 천국 약속돼 사랑하는 친구들이여! 내가 이런 말을 할 때 내 말을 믿을 수도 있고 믿지 않을 수도 있으며 지나가는 이야기로 흘려 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든, 우상과 미신을 믿든, 아무 것도 믿지 않든 지금은 우리 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선택 뒤에 따르는 결과에 대해 서는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과연 어떤 선택이 가장 현명 한 선택이 될까요?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 다. 예수를 믿기 원하거나 더 자세히 알기 원하시면 아는 사람을 따라 가까 운 교회에 나가 영원한 천구를 소유하는 친구들이 다 되시길 원합니다.
366 no image |목회수상| 보고 싶어지는 사람들_김명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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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8 2007-12-13
보고 싶어지는 사람들 김명혁 목사_강변교회,한국복음주의협의회장 "목회의 지평을 열어준 분들께 그저 감사할 뿐" 어느 날 갑자기 보고 싶어지는 사람들이 생각났다. 어머니와 아버지와 어린 아들 철원이를 비롯해서 보고 싶어지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 중에 몇 사람들 의 이름만 적어본다. 우선 박윤선 목사님이 보고 싶어진다. 가식과 꾸밈이 없는 분이었다. 어린 아이와 같은 단순하고 소박한 미소를 지닌 분이었다. 그리고 나에게 특별한 믿음과 사랑과 애정을 나타내 보이신 분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야기하 지 말라고 하시면서 마음 속에 있는 생각을 나에게 자주 말씀하시던 분이었 다. 그분은 무엇보다 기도와 말씀과 하나님께 사로잡혀서 사신 분이었다. 나는 박 목사님이 세상에 계시던 마지막 한 주간 목사님을 매일 찾아뵈면서 마지 막 모습을 지켜보았는데 나는 지금 박윤선 목사님이 보고 싶다. 나는 장경재 목사님이 보고 싶어진다. 그분은 착하신 분이었다. 자기 주장 을 내 세우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먼저 도모하신 분이었다. 나는 여 러 번 장 목사님과 해외 여행을 했는데 얼마나 편하고 즐겁고 행복했는지 모 른다. 공항 로비에서 들어 누어 자자고 하면 들어 누어서 잤고 수영장으로 들어가 자고 하면 들어갔다. 그분은 사랑이 많으신 분이었다. 대접하기를 좋아했고 무엇을 사면 언제나 본인이 먼저 값을 지불하시곤 했다. 그분은 진실하신 분 이었고 다른 사람을 존경하는 분이었다. 나는 지금 장경재 목사님이 보고 싶 다. 나는 한경직 목사님이 보고 싶어진다. 그분은 약하고 겸손하고 부드럽고 착 하신 분이었다. 모두를 품고 모두를 아우르는 마음이 넓으신 분이었다. 한 목사님은 또한 정이 많으신 분이었다. 나는 특별한 인연으로 내가 한 살 때 부터 한 목사님과 가까이 지내게 되었는데 내가 홀로 월남한 후 한 목사님 은 언제나 나의 손을 붙잡고 “아버지, 아버지” 하시며 나의 아버지를 부르 시곤 했다. 양극화가 극심한 이 시대에 그리고 한국교회 안에 존경받는 지도 자가 많지 않은 이 때 나는 한경직 목사님이 보고 싶다. 나는 김치선 목사님이 보고 싶어진다. 그분은 내가 고등학생과 대학 생 시절 나에게 깊은 신앙적인 감화를 끼치신 분이다. 선지자 예레미아처럼 새벽마 다 울면서 회개하셨고 새벽마다 “성령이여 강림하사” 찬송을 부르면서 성 령의 은혜를 사모하시던 분이었다. 그분의 간절한 회개와 은혜 사모가 어느덧 나의 회개와 은혜 사모로 바뀌어 지곤 했다. 그리고 나를 아들처럼 사랑과 격려로 대하시곤 했다. 영적으로 혼란하고 불순한 이 시대에 나는 순수하게 기도하며 간절하게 부흥을 사모하 시던 김치선 목사님이 보고 싶다. 나는 이성봉 목사님이 보고 싶어진다. 그분은 내가 중학생 시절, 내가 홀로 월남하여 대구에서 피난생활을 하던 시절, 나의 감성과 지성과 의지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분이었다. 나는 이성봉 목사님이 인도하던 부흥회에 빠 지지 않고 참석하며 그분이 전하는 은혜의 말씀을 헐떡거리며 받아먹곤 했 다. 그 당시 나는 그분이 하라는 대로 모든 것을 했다. 부흥회 마지막 날 새벽마 다 안수기도를 받으며 좋은 목사가 되기를 소원하곤 했다. 이 목사님은 나 를 알아보시며 칭찬하시곤 했는데 나는 지금 이성봉 목사님이 보고 싶다. 나는 강원용 목사님이 보고 싶어진다. 그분은 폭 넓은 역사의식과 민족의식 을 가진 분이었고 모두를 품고 아우르는 넓은 분이었다. 내가 그분의 진보적 인 입장을 비판하곤 했는데 그분은 나를 받아드리곤 했다. 결국 나는 그분 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었고 특히 그분의 마지막 복음적인 입장을 존경하게 되었다. 강 목사님은 부족한 나를 받아드리고 격려하고 사랑하셨다. 그분의 측근 한 분이 최근에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강 목사님이 김 목사님을 짝사랑했지 요.” 아직도 양극화의 갈등을 경험하고 있는 이때 나는 강원용 목사님이 보 고 싶다. 나는 이중표 목사님이 보고 싶어진다. 이 목사님은 세상에 대한 애착을 벗어 버린 순수하고 착한 분이었다. 나와 이 목사님은 사랑과 정을 나누던 사이였 고 마음과 생각을 나누던 사이였다. “나에게 님으로 만나주신 목사님께 눈 물겹도록 고마운 생각이 든다”라고 글을 써서 나에게 보내주기도 했다. 나는 이 목사님과 마음과 생각을 모아서 “제가 잘못했습니다” 라는 회개 기도 모임을 마련하기도 했다. 순수함과 착함이 점점 사라져 가는 이 때 나 는 이중표 목사님이 너무너무 보고 싶어진다.
365 no image |기고| 한 사회에서의 그리스도인의 역할_나택권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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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64 2007-11-14
한 사회에서의 그리스도인의 역할 나택권 장로_호산나교회 정치는 도덕성 함양으로 사회 체질부터 바꾸는 것 교회의 참된 역할이 죄로 인해서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죄인들에게 하나님 의 은혜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라면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도 죄악된 세 상에 복음을 전파하여 한 명이라도 더 그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라 할 수 있 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이며 그리스도인의 사명이다. 교회의 복음 전파는 지상 사명 그런데 일부 급진적 신학 배경을 가진 교회에서는 말하기를 그리스도인은 사 회의 구성원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 땅에 파송받은 존재로 서 마땅히 사회의 모든 정치, 경제, 문화에 간섭하여 하나님 나라를 이 땅 에 구현해 가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물론 그리스도인이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동안 어쩔 수 없이 그 시대의 다양한 정치 상황과 문화와는 단절됨 없이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 하지 만 모든 일에서 세상 사람과는 다 른 처신과 대처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교회의 정치 참여라는 것은 교회가 다른 목적을 위해 세워진 국가 정치에 개 입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공동체를 구성하는 개인에 대한 정치 참여를 논 쟁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고 교회 공동체가 집단적으로 정치 참여하는 것은 문제가 된다고 보는 것이다. 원래 국가라는 것은 일정한 경계선으로 구획되어진 지역 사회에 성립하는 정 치 조직으로서 국가의 정부 형태가 어떤 종류이든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정치는 정치 조직으로서의 국가에 주어지는 국가 고유 영 역이다. 이와 같이 정치가 국가에 주어지는 고유 영역임에도 하나님의 일이 라고 하여 교회가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정치는 국가의 통치 능력이며 운영하는 활동력이므로 교회가 정치에 개입하는 것은 마땅치 않다. 예수님께서는 국가에 해야 될 일과 하나님께 해야 할 일이 따로 있다고 말씀 했다(마 22:21). 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 라는 답변은 헤롯왕과 같은 현실 타협을 용납하지 않으며, 또한 열심당과 같 은 환상적 민족주의도 지지하지 않는다. 바울과 베드로도 이와 같은 맥락에 서 세상의 권세자에게 취할 태도를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롬 13:1-4; 벧 전 2:13-17). 이러한 내용들은 정치와 종교와의 관계나 그리스도인의 현실 참여 문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원리를 제공해 주는 명언이라 할 수 있다. 교회가 교회의 이름이나 교회를 대표하는 목회자가 직접 개입하는 방법으로 국가 정치 영역에 참여한다면 이는 국가가 교회에 대하여 신앙 활동의 자유 함을 주는 것에 반하는 행위로써 옳지 않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교회나 그리 스도인은 간접적이나마 도덕성 회복을 위한 적극적인 참여와 그리스도인의 최상의 환경을 보호받기 위해서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한다(딤전 2:1-2). 한 사회에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이 많다면 그리스도인들이 적은 사회보다는 더 깨끗하고 도덕적인 사회가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기대는 오직 복음과 진리를 전파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성경적인 삶을 살게 될 때만이 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현 사회가 부정부패가 많고 죄악이 만연하다면 이 는 그 만큼 그리스도인들이 적다는 것이므로 더욱 더 복음 전파하는 일에 힘 써야 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것이 우리 믿는 자들의 의무이며 교회의 사명이다. 그리스도인들이나 교회가 복음 전파를 통해서 사회의 도덕성을 회복시키는 일을 등한히 하면서 특정 정당이나 특정인의 선거운동 등에 그룹으로 앞장서 는 것은 바람직한 행위가 아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행위가 아 니기 때문이다(빌 1:27). 그리스도인이 개인적으로 정치를 할 수도 있지만 정치가 그리스도인 모두의 역할과 책임은 아니다. 순수한 동기로 정치에 참여한다고 해도 그것은 하나 님께서 기뻐 받으실 일이 될 수 없는데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에 사는 동안 결코 한 순간도 불신자들과 다른 공기를 마시고 살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과 성도와는 가야 할 길이 상반된다는 사실과, 하나님 보시기에는 결코 중간지대란 존재하지 않으므로 그리스도인은 빛의 자녀로서 마땅히 빛 되신 그리스도안에 거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빛을 어두움 가운데 비 쳐 어두움에 거하는 자들을 빛의 자녀가 되게 해야 할 적극적인 책임이 있다 (고후 6:11-18). 그리스도인들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올바른 투표권 행사가 있 다. 투표권 행사는 대의 정치의 꽃으로서 내 가 직접 대표자를 뽑는 투표를 하는 것이며 이 보다 더 중요한 선택은 없다. 그리스도인의 분별력 있는 투 표권 행사가 튼튼하고 밝은 사회 건설을 위한 권리 행사이며 주어진 의무이 기도 하다. 그리고 국가 정부의 제도권 안에서 참여할 수 있는 국민투표, 사 회활동 등은 그리스도인의 정치에 참여 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진실과 정의가 없는 정치 사회는 희망이 없는 사회이다. 유토피아같이 깨끗 하고 좋은 세상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어느 정당이나 정당정책이나 프로그램 이 아니라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이 정치를 구성하는 요원들을 잘 선택하는 데 있다. 그리고 이 구성원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에 의하여 새사람으로 거듭 난 자들로서 넓고 깊게 자리 잡고 있을 때에만 이루어 질 수 있다. 교회와 그 리더들은 정치인으로 부름 받은 것이 아니다. 그들의 근본적인 사 명은 복음 전파와 도덕성 회복에 있고 정치는 정치인이 해야 할 업무이다. 정치는 정치인들에게 맡겨야 “믿지 않는 사람들과 멍에를 함께 매지 마십시오. 의로운 것과 불의한 것 이 어떻게 짝이 될 수 있겠으며 빛과 어둠이 어떻게 사귈 수 있겠습니까(쉬 운성경 고 후6:14).
364 no image |신앙칼럼| 진리의 말씀대로 사는 삶_박용구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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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67 2007-11-14
진리의 말씀대로 사는 삶 박용구 장로_군포제일교회 “세속적 생각이 교회에 유입되지 않도록 조심해”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저는 시골에서 태어나 농사하는 부모 의 순수한 농심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시골교회로 부르셨고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게 되면서 섬김의 기쁨을 점차 체험하 게 되었습니다. 농사일 배우며 성장해 또한 예수님을 사랑하고 교회에서 사랑받는 아내를 만남으로 군포제일교회 의 성도가 되었고 35세의 젊은 나이에 장로가 되어 십자가의 사랑을 받고 있 습니다. 제 아내는 우리 교회의 등록 1번이 되어 29년 동안 교회에서 담임목 사님과 성도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을 보고 인간의 행복은 만남으로 이루 어지고 유지되는 것을 매일매일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도 좋은 만남을 감사 하고 상대를 잘 만나주기 위해 말씀을 묵상하며 성도들이 대표로 뽑아 목회 의 협력자가 되라는 기대에 어긋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r 과거에는 제가 제 인생의 주인으로 살았고 교회의 결정에 참여하는 것으로 대단한 기쁨이 있었으나 장로 된지 14년이 된 지금은 말하는 것조차 두렵고 하나님의 뜻은 나의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담임목사님의 가르침으로 알게 되 었습니다. 저는 우리교회에 초대장로가 되어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지 않아야 된다는 것 을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특히 장로가 교회의 중요한 일이나 목회자가 기도 하며 결정한 일에 세속적인 영향을 주어 성령의 인도를 방해하지 않을까 하 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진리의 말 씀이 나의 신앙 생활이 되었고 부족하지만 어여쁘게 보시고 하나님이 많은 복을 주셨습니다. 헌법에 당회나 제직회에서는 필요에 따라 장로신임투표를 할 수 있다는 것 과 박윤선 목사님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담임목사님과 함께 장로들도 필요할 때 신임을 묻기로 당회에서 결의를 했습니다. 저는 두 번의 신임투표를 하 여 개인뿐 아니라 교회단합에 유익이 되었고, 성도들의 사랑으로 절대적인 지지를 받아 서로 신뢰하고 섬기며 헌신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건강한 교회에서 사회복지에 동참함으로 지역사회에서도 교회와 더 불어 사랑받으며 군포시니어클럽(노인일자리전담기관)의 관장으로, 대학에 서 사회복지실습 강사로, 가정에서 두 딸의 아버지로 행복한 삶을 살도록 인 도하셨습니다. 섬기는 마음으로 봉사해 특별히 저는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와 본 교단을 사랑하는 담임목사님의 영향 을 받아 교단을 사랑하고 교회가 사회복지를 하는데 필요한 정보제공과 하나 님이 맡기신 일에 생명 다할 때까지 최선을 다하리라는 결단을 다시 한번 마 음에 새기게 하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363 no image |목회수상| 속없는 아내, 쓸개빠진 여자_이은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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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98 2007-11-14
속없는 아내, 쓸개빠진 여자 “임파선과 쓸개 절제 수술을 받았답니다” 이은상 목사_동락교회 제 아내는 목사인 남편을 두었습니다. 7년 전 제가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개척교회를 시작할 때 룻처럼 순종으로 따라나선 여자입니다. 제 아내는 ‘목사 아내는 남편이 없다’는 말처럼 남편에게 말로만 사랑받고 실제론 별 로 관심 받지 못해 사랑 결핍증이 약간 있는 연약한 사모입니다. 늘 사랑결핍증에 걸려 있어 그럼에도 여느 개척교회 사모처럼 교회의 요구대로 겉모습은 선머슴처럼 힘 이 세고 팔뚝도 굵습니다. 또한 성도들에게 화려하지도 초라하지도 않게 보 이려고 화장대 앞에 좀 오래앉아 있는 중년여인입니다. 교인들의 바램에 실 망을 주지 않기 위해 할 말이 많아도 침묵으로 꿀꺽하기를 잘하고 가정에 고 난이 와도 실실 잘 웃습니다. 그리고 제 아내는 남다른 점이 있는데 그것은 속도 없고 쓸개가 빠진 여자라 는 겁니다. 왜냐하면 제 아내는 세 달 전 위암 판정을 받고 위와 주변 임파 선과 쓸개 절제 수술을 받았기 때문이지요. 그때부터 제 아내는 저에게 소갈 머리 없는 여자라는 말을 자주 듣곤 합니다. 그래도 저는 제 아내가 행복하 다고 확신합니다. 그 이유는요? ♣ 스트레스로 속 썩일 일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하하! 속이 없으니까요. 사모의 자리는 정말 감당하기 어려운 자리입니다. 특히 현대 사회의 목회자 사모는 정확한 정체성도 부여받지 못한 채 여러 가 지 역할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먼저 과거로부터 전통적인 사모상을 요구받습 니다. 가령 사모는 언제나 따뜻하고 언제나 웃는 얼굴이어야 하며 사모는 자랑도 실수도 없어야 합니다. 사모는 수수한 옷차림에 무던한 성격이어야 하며 부 지런해야하고 미덕이 많아야 합니다. 또한 사모는 현대사회의 발전과 더불 어 과거와 또 다른 사모상을 요구받습니다. 가령 사모는 돈도 있어야 하고 재치도 만점 모든 일에 능한 슈퍼우먼이어야 합니다. 전도도 잘해야 하고 한 명의 교인도 놓치지 않도록 구역도 잘 돌봐 야 하고 설거지도 깨끗이 해야 하고 음식도 맛깔스러워야 하며 인테리어에 도 눈썰미가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과거와 현대 사이의 이중적 사모 역할은 사모로 하여금 많은 스트레 스를 받게 할 것입니다. 이런 중압감을 밖으로 표현할 수 없으니 소화불량 이 걸려도 몇 번 걸려야 하겠죠? 그러나 저의 아내는 속이 없으니 소화불량 도 없을 겁니다. ♣ 저의 아내가 행복한 이유는 남편의 사랑을 진짜 받습니다. 목사들은 말을 잘하기 때문에 아내를 사랑하는 방법도 말로만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내에게 말로만 사랑할 수 없습니다. 예전에 는 저도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게 안됩니다. 왜냐하면 저 의 아내는 환자이기 때문에 보호를 받아야 합니다. ‘설거지 하느라 얼마나 힘드냐’고 말하면 안되고 설거지를 해줘야 합니 다. ‘배가 얼마나 고프냐’라고 말로하면 안되고 죽이든 밥이든 끓여줘야 합니다. 물론 생각만 해줘도 얼마나 좋겠냐고 하는 남편들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사랑’은 성도들로부터 너무 많이 받아 와서 이제는 지겹 기까지 합니다. 사모는 약자입니다. 그러므로 사모에게 정말 필요한 위로는 생각도 아니고 말도 아니고 행동입니다. 병든 자에게나 가난한 자에게는 립서비스가 소용없 습니 다(약2:16). 아니 말만 앞세우는 것은 도리어 마음을 힘들게 할 수도 있 습니다. 생각만 해놓고 실제로 행동한 것처럼 착각하는 남편은 사모에게 큰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저의 아내는 저의 행동사랑을 받고 살아가기에, 헌심 (獻心)이 아닌 헌신(獻身)을 받기 때문에 아마 지난날보다 행복할겁니다. ♣ 이 땅에, 지구촌 구석구석에 땀 흘리며 사모자리를 지키는 여인들에게 사 모곡을 불러 보겠습니다. 속없는 여자들이여, 쓸개 빼고 사는 사모님들이여, 힘을 내세요, 힘을 내세 요, 우리 주님이 아시잖아요.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 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목회자 아내들이여, 주께서 다 아시잖 아요. 진정한 위로자인 우리 주님 (히 4:15 : 우리의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한 부분을 알고 계십니다. 이 땅 에 계실 때 그분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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