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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2 |생각하는 신앙| 폭설의 산맥에서 체험한 이웃 사랑_이재홍 목사 파일
편집부
1312 2017-02-21
<생각하는 신앙> 폭설의 산맥에서 체험한 이웃 사랑 < 이재홍 목사_ 모항교회 > 곤경에 처한 우리를 두 번씩이나 도와 준 누군지도 모르는 그들 한국에서 직장을 다니다 1992년 아내와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미 동부 뉴저지 주에서 1년을 살고 서부 로스앤젤레스로 이사를 했다. 1993년 3월 중순쯤 동부에서 서부로 자동차를 타고 대륙횡단을 한 이사 길이었다. 도중에 버지니아 주의 셰넌도어 산맥에 있는 관광 명소 루레이 석회암 동굴에 가 보기로 했다. 그렇게 산맥을 넘어가는데 예상치 못하게 1m 넘는 폭설이 내렸다. 거대한 산을 넘어가려다 눈 속에 갇혀 다시 돌아 갈 수도 없었기에 조심조심 진행하면서 내리막길로 차를 운전했다. 눈길이 얼어붙어 그토록 조심했는데도 끝내 차가 미끄러지더니 내리막길 우측 눈이 많이 쌓인 곳에 처박히고 말았다. 눈은 계속되고 차량 통행도 드문 깊은 산길이었다. 많이 기다리던 중 멀리서 차량 한 대가 다가왔다. 눈구덩이에 빠진 우리 차를 보고 멈추더니 백인 남자의 가족이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차에서 삽과 도구를 꺼내어 눈을 치우기 시작했다. 한참을 치우더니 차에 줄을 연결하여 눈 속에 박힌 차를 빼내 주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일이 그리 쉽진 않았다. 그래도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오랫동안 시도했다. 마침내 차가 눈 속에서 간신히 빠져 나왔다. 무척이나 감사했다. 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미국 땅 인적 없는 폭설의 산속에서 옴짝달싹도 못했을 텐데 말할 수 없이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들은 당연히 할 일을 했다며 그들의 길을 다시 갔다. 우리도 한숨을 돌리고 목적지인 루레이 동굴을 향해 출발했다. 그 당시 미국 동부지역은 갑자기 폭설이 내려서 가는 곳마다 눈으로 덮여 있었다. 조심조심 목적지를 향하다가 루레이 동굴 근처에서 또다시 차가 미끄러져 눈 속에 빠져버렸다. 3월이라 애초에 눈을 대비한 도구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탓이었다. 이번엔 더 큰 일이 났다. 계속된 눈으로 인해 드물게 오가는 차마저 거의 기대할 수 없었다. 한참을 망연자실하고 있을 때 기적처럼 차 한 대가 우리 앞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아까 도움을 주었던 바로 그 차가 아닌가? 일을 보고 돌아오던 길인 것 같았다. 그들은 우리를 보더니 온 가족이 또 차에서 내려 싫은 기색도 없이 눈을 치웠다. 그리고 아까와 같은 방법으로 줄을 연결해 눈 속에 박힌 차를 다시 빼내 주었다. 사랑과 희생의 마음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같은 상황으로 두 번째 도움을 받고 우리는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은혜의 주님께서 그들을 보내주신 것이 분명했다. 그때 절실히 깨달은 것이 있다. 바로 이웃 사랑의 의미이다. 성경에 가장 큰 계명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라 했다. 그러므로 이웃 사랑을 몸으로 실천해야겠다는 마음이 새삼 들었다. 또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고 했다. 이웃사랑은 구체적인 착한 행실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한다. 해마다 주민 초청 잔치를 한다. 지역 주민을 품고 기도하며 섬기고 복음을 전하는 행사이다. 이 과정에서 매번 느끼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웃을 위해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착한 행실을 보여줘야겠다는 것이다. 이웃을 이해하고 돕고 고통을 함께 극복해가는 것이 이웃 사랑의 실천일 것이다. 폭설의 산맥에서 곤경에 처한 우리를 두 번씩이나 도와 준 누군지도 모르는 그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감사와 감동이 밀려온다. 우리도 곤경에 처한 누군가에게 그런 사랑을 실천한다면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진정한 이웃이 되어 오랜 감동으로 기억될 것이다.
741 |마른 땅에 단비를| 그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려고_박상준 파일
편집부
1295 2017-02-21
<마른 땅에 단비를> 그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려고 < 박상준_GP, 총회협력 일꾼 > 그들이 가지 않는 곳에 가서, 그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려고 부단히 애를 썼다 인도네시아에서 나에 대한 호칭은 ‘선생님’이다. 말만 선생이 아니라 직접 한국어와 영어를 가르치는 선생이다. 물론 가르치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런 가르침을 통해 젊은이들, 그리고 청소년과 어린이들을 섬기는 것이 목적이다. 교역자가 되기 전 한국의 교회에서 불리던 그 호칭이 지금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것 때문에 그들에게 좀더 쉽게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도 부담 없이 나에게 와서 묻기도 하고, 자신의 삶을 나누기도 한다. 주말에 집중된 한국어 교육사역 이외에, 주중에는 영어교육 사역을 진행하고 있다. 영어 교육의 대상은 어린이와 청소년이고, 장소는 도시에서 가까운 시골의 이슬람 마을에서 이루어졌다. 대부분의 가정들이 생활이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녀들에게 영어 과외를 받게 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곳에서 우리는 무상으로 영어를 가르쳐 주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있다. 그 아이들 중 대부분의 아이들은 무슬림이지만, 우리 부부가 출석하고 있는 현지 교회 성도의 자녀들도 있다. 처음에 영어교육을 시작한 장소도 그 교회 한 성도의 가정집 작은 거실이었다. 시작한 지 1년 만에 마을 지도자의 반대로 영어 교육이 잠시 중단되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운 간섭으로 교육이 재개되면서 교육장소도 바뀌게 되었다. 그 작은 마을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던 작은 집을 이전하여 신축하면서 기존의 그 작은 집에서 우리가 영어교육을 하도록 허락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그 공간은 아이들이 방과 후에 학습할 수 있는 환경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집 안팎을 대폭 수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들이 앉아서 공부할 수 있는 책상을 제작하는 것까지 포함하여 그 나라 노동자 한 사람이 약 서너 달 동안 일하고 번 것을 쓰지 않고 모아야 마련할 수 있는 돈을 들여 수리를 하였다. 나는 내가 다니는 현지 교회가 이런 사정을 알아주고 조금이라도 사역에 동참하도록 찬조를 요청했다. 그런데, 얼마 후 그 교회에서는 그동안 내가 그 시골에서 영어를 교육하게 된 이유와 방법, 그리고 집수리에 들어간 비용 등에 대한 보고서를 요청하더니, 마침내 수리비용 전부를 교회가 대신 지불해 주는 것이었다! 이것은 그 교회가 교회 밖에서 하는 나의 사역을 인정한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나의 사역을 교회의 한 선교사역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2016년 6월 첫 번째 주일, 한국으로 본국 사역을 위해 떠나오기 전 마지막 주일예배를 그 교회에서 아내와 같이 드리고 있었다. 설교를 마친 담임목사님은 사전에 아무런 예고도 없이 우리 부부를 교회 앞으로 불러냈다. 그리고 그동안 우리가 해 온 사역과 처음 그 교회가 시작될 때부터 우리가 함께해 온 것을 말씀 하시면서 감사를 표현했다. 1년 간 인도네시아를 떠나 한국에 가 있겠지만 1년 후에 꼭 다시 와서 우리와 같이 예배를 드리며 함께 사역을 하자고, 그렇게 할 줄로 믿는다고 말씀하셨고, 성도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교회는 우리 부부를 위해 인도네시아 전통의복인 바틱을 선물로 주었다. 나와 내 아내는 감격스러웠고, 그동안 한 교회에 꾸준히 다니면서, 교회 밖에서 해 온 사역을 인정받은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이 일로 우리는 단지 외국인으로서 현지 교회에 출석하는 성도 중 한 사람이 아니라 교회와 함께 사역하는 사역자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물론, 일꾼이 선교비로 연약한 현지 교회를 도우면서 함께 사역할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현지 교회가 외국인 일꾼을 적극적으로 돕는 현실이 되기까지 신뢰관계가 형성되기는 쉽지 않은 현실이다. 누가 이런 말을 했다. 그 나라 교역자들이나 성도들이 할 수 있는 일을 대신하려고 하지 말고, 그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일꾼이 되라고. 그렇다. 지난 10년 동안 나는 그들이 가지 않는 곳에 가서, 그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려고 부단히 애를 썼다. 그 애씀이 열매를 맺는 그날을 고대하며 오늘도 기도의 끈을 놓지 않는다.
740 no image |살아가며 섬기며| 작은 개를 통해 배운 것_박종훈 목사
편집부
1382 2017-02-08
<살아가며 섬기며> 작은 개를 통해 배운 것 < 박종훈 목사, 궁산교회 > “말은 안 통해도 행동으로 보여주는 확실한 전달법” 사택 입구에 털이 무성한 발발이를 키운다. 마당에 작은 집을 두고 목 끈을 달아 제한된 범위에서 활동하지만 아이들이 좋아하는 아주 순한 개다. 이웃 동네 할머니가 세례 기념으로 분양해 주었는데 성품 좋은 원 주인을 닮아서인지 오고가는 사람들에게 짖기보다는 그저 좋아 꼬리를 흔들며 반가워한다. 지나가며 한 번씩 밥그릇을 확인하곤 하는데 어느 날 그릇에 검정콩알만 한 것들이 먹다 남은 사료와 함께 있었다. 자세히 보니 털이 있는 동물에 기생하며 흡혈하는 진드기였다. 온 몸에 숨바꼭질하듯 숨은 진드기를 몇 마리 잡아 자기가 먹는 밥통에 놓은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근래 식욕도 저하되고 마른 것 같았다. 말이 통하지 않는 녀석은 자신의 피를 빨아대며 병을 옮기는 이 진드기 퇴치를 위해 얼마나 괴로웠을까? 목줄이 없이 자유롭다면 아마 진흙탕에 가서 뒹굴든지 물속에서 목욕을 해서라도 진드기를 없앴을 것이다. 흑염소도 진드기에 노출돼 있지만 그들은 울타리 안에서 방목하기에 몸에 붙은 진드기를 철망 울타리에 비비며 퇴치하곤 한다. 하지만 이 개는 제한된 장소에서 스스로 해결 못하는 처지인 것이다. 주인과 말이 안 통하니 진드기를 없애 달라는 하소연 대신 나름 의사 전달 방법으로 평소 주인이 자주 보는 밥통에 진드기를 잡아 넣어둔 것이다. 그제야 개의 몸을 다시 살펴보니 온몸에 진드기가 득실댔다. 그대로 두면 죽을 수도 있었다. 몇 번 분무기로 살충도 했지만 워낙 심해 결국 가축병원에서 사 온 주사요법으로 겨우 치료를 했다. 동물이기에 말로 의사 전달을 못했지만 행동으로 알려준 발발이를 보며 내 자신의 목회사역을 뒤돌아본다. 이곳에 와서 태어난 막내가 군대 복무를 앞두고 있으니 지금은 제 2의 고향이라고도 하겠다. 기독교문화와는 거리가 먼 시골이라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어려움이 많다. 더구나 배움이 적은 노인들은 우리로선 알기 쉬운 용어도 뜻을 잘 몰라 괜한 오해도 하고 웃음을 자아내는 일들이 많았다. 반복 또 반복해도 돌아서면 잊어버리며 처음 배운 것만 전부로 알고 고수하는 그들에게 할 말을 잃곤 한다. 그럼에도 말씀을 전하는 사명감으로 지금까지 이어 왔고 앞으로도 가야 할 길이다. 아마 모든 농어촌 목회자들이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전달법은 있다. 바로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 시골이란 곳이 원래 유리로 지은 집처럼 서로에게 너무 개방된 구조이다. 그래서 그 동안 본이 못 되는 미숙함도 많았지만 더 좋은 본을 보이려고 노력 중이다. 눈에 보이는 것만 전부로 아는 그들에게 사람의 본분을 보여주려 했다. 가부장적 분위기에 익숙한 마을에서 부부가 서로 아끼며 책임과 의무를 감당하는 모습과 지나친 노동으로 몸을 상하는 그들에게 쉼과 여유를 통해 인생을 즐겁게 사는 이치를 알려주고자 했다. 점점 힘들어지는 관행 농법이 아닌 자연을 활용한 농법으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려 노력 중이며 가진 게 적어도 서로 주고받는 행복을 누리는 삶을 보여주려 한다. 자기 일에 바쁜 중에도 이웃에 봉사하고 마을을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 서로 수고하는 본을 보이려 한다. 지금은 비록 바라만 보고 있지만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속담처럼 언젠가는 좋은 본을 받아 자연스레 동행하는 교회와 마을의 공동체가 되리라 소망한다. 어쩌면 그들이 뭔가 깨달았을 때는 이미 극도로 고령화 되어 모든 게 마음뿐인 상황일지도 모르지만 성급한 마음으로 좌절하지 않고자 한다. 내 생애에 선한 기초만 놓고 가도 누군가는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날이 오리라 여긴다. 기독교는 기다림의 종교라 하듯이 조금씩이나마 이 마을에 성경적인 문화가 곳곳에 스며들기를 소원한다. 말로는 안 돼도 행동으로는 보여줄 수 있어 그나마 감사하고 소망의 끈이 있기에 오늘도 인내하며 삶의 즐거움을 누린다. 주님은 작은 개와의 행동의 소통을 통해 이 귀중한 이치를 가르쳐 주셨다.
739 no image |생각하는 신앙| 생애 처음 성경 읽기_허 순 목사
편집부
1414 2017-02-08
<생각하는 신앙> 생애 처음 성경 읽기 < 허 순 목사, 예수우리교회 > 내 신앙과 삶을 성경 위에 세워 준 한 사람의 애정 어린 조언 고등학교 1학년 때인 1977년 무더운 여름. 나는 학교가 아닌 순천에 있는 결핵요양소에 있었다. 폐결핵 때문에 학교를 휴학하고 요양 중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곳에서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하였다. 요양소는 남자 병동과 여자 병동으로 구분되어 있었고, 예배는 식당에서 드렸다. 어느 날. 예배를 마치고 식당에서 내려오는데 누군가 내 곁을 지나가면서 쪽지를 슬며시 건네주었다. 내게 쪽지를 건네 준 사람은 요양소에 입소한 후에 알게 된 누나였다. 누나는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친근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고, 나를 평소에 친동생처럼 여기며 따뜻한 말 한마디로 힘을 실어주곤 했다. 누나가 내게 건네준 쪽지를 들고 병실에 돌아온 후에 살며시 펼쳐 보았다. 쪽지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한 마디 글이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순아! 나는 지금 성경을 열심히 읽고 있는데 너는 성경을 어디쯤 읽고 있니?” 내게는 짧지만 강력한 글이었다. 마치 내 마음 한 구석을 예리하게 파고드는 것 같았다. 결핵 요양소에 입소한 후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교회를 다녔지만 아침 7시에 시작하는 기도회와 예배에만 열심히 참석하였을 뿐 따로 성경을 읽지는 않았다. 성경의 순서도 잘 알지 못해서 예배 시간에 성경을 찾으려면 옆 사람이 찾는 것을 보고 곁눈질해가며 찾을 때였다. 성경을 읽지 않는다고 간섭하거나 야단을 치는 사람도 내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누나가 내게 준 쪽지를 읽는 순간, 예수님을 믿고 교회를 다니기는 했지만 성경을 읽지 않고 있던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때부터 성경을 읽자고 결심했다. 신약성경 마태복음부터 읽기 시작했다. 성경에 대한 기대를 안고 마태복음 1장을 펼치자마자 나오는 것은 사람의 이름들이었다. 성경에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의 이름이 나올까 하는 궁금증을 마음에 품고 성경을 읽어 나갔다. 그러나 성경을 읽을수록 도무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답답한 마음이 들었지만 성경 읽기를 중단할 수는 없었다. 약속한 것은 아니었지만 누나가 준 쪽지 글이 마음 한 구석에 깊이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 성경을 읽을 때, 누나가 내게 전해 준 그 짧은 쪽지가 내게 큰 힘이 되었다. 지금 뒤돌아보면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한 내게 좋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주변에 있었다는 것에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그 중 한 사람이었던 누나가 내게 성경을 어디쯤 읽고 있느냐고 쪽지 글을 전해주지 않았다면 나는 성경읽기를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누나의 관심과 애정 어린 조언 덕분에 초보신자인 나는 처음으로 성경 읽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껏 내 신앙과 삶을 성경 위에 세워 준 계기였다. 한 사람의 따뜻한 조언이 다른 한 사람의 신앙을 바르게 세우는 역할을 한다. 교회 안에서건 밖에서건 서로에 대한 깊은 관심과 사랑이 누군가의 믿음을 바른 길로 이끄는 밑거름이 된다는 것을 다시 생각하는 날들이다.
738 no image |마른 땅에 단비를| 인도에서 생긴 일_이승준 선교사
편집부
1213 2017-02-08
<마른 땅에 단비를> 인도에서 생긴 일 < 이승준 선교사, 광주외국인근로자쉼터 > 많은 기도 속에 지난해 12월 5일부터 12월 14일 까지 9박 10일간 인도 선교여행을 잘 마치고 왔다. 그런데 인도에 가서 이번처럼 추위에 떨어 본 적이 없다. 가는 시기가 대부분 겨울인 것은 다른 계절에는 더위가 심해서 다니기 어렵기 때문이다. 겨울이라도 낮에는 30도쯤 되기 때문에 반팔 옷과 여름바지를 입었었는데 이번에는 날씨가 추워서 예비로 가지고 간 긴팔 셔츠를 낮에도 입고 다녔다. 히말라야의 추위가 내려왔는지 워낙 춥게 지내다 보니 도시를 떠나 시골로 갈 때는 출국할 때 입었다가 가방에 넣어 두었던 파카와 겨울바지를 꺼내서 갖고 가야 했다. 밤에는 사방에 구멍이 난 방에서 자기 때문에 시골의 사역자가 비교적 두꺼운 이불을 주었지만 어쩔 수 없이 파카와 바지를 입고 자야 했고 추워서 아침에는 불 앞으로 가야했다. 25년 전에 방글라데시에 있을 때도 겨울에 안개가 끼면 그토록 춥고 사람들이 얼어 죽곤 했는데 이번에 인도에서도 날마다 안개가 끼었다. 파카를 안 입었으면 어쩔 뻔 했나 생각하며 다녔던 여행이었다.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을 다시 만나는 즐거움 몇 년 전에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즐거움이었다. 처음 인도를 간 것은 쉼터에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석 달인가 있다가 돌아간 숑꼴실이라는 형제를 꼭 만나서 신앙을 단단히 해주어야겠다는 간절함 때문이었다. 그 부인과 처남을, 그리고 형님의 가족들, 소개 소개로 젊은 형제자매들을 정신없이 전도하면서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하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였다. 갈 때마다 그 사람들을 만난다. 마약을 먹다가 예수님을 믿고 새사람이 되어 남쪽의 큰 도시에 가서 열심히 일하는 형제, 죽은 사람처럼 누워 있다가 기도해 준 이후에 회복되어 예수님을 믿고 시집 간 자매, 예수님을 영접하고 시집 간 숑꼴실의 다른 조카... 일자리도 없이 힘들었던 어느 과부는 예수님을 영접한 이후에 직장을 얻고 어렸던 남매가 많이 자라 있었다. 온 가족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행복하였다. 이제는 그 동네에 가면 사람들이 반갑게 알아본다. 그 목사 언제 오냐고 자기들끼리 얘기도 한다는 말을 듣고 속으로 많이 기뻤다. 인도 비하르, 네팔 지역의 전도와 세례식 네팔과 접경인 비하르 주(州)는 전도자들이 네팔로 넘어가서 전도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곳이다. 이번에 세례식을 하며 바로 그 네팔에 있는 교회의 20명이 넘는 교우들이 비하르 주로 넘어와서 모두 56명이 세례를 받았다. 2014년, 2015년에 세례를 받은 사람들도 120여명이 된다. 인도에서 가장 가난한 이곳, 그리고 동일하게 가난한 네팔 변방에서 하나님께서는 추수를 하고 계신다. 2년 전 내가 돕는 전도자들이 네팔에서 전도를 하다가 어느 자매의 무고로 체포되어 감옥을 간 적이 있었다. 죄목도 전도자들 몇 명이 자매를 추행하였다고 하여 15년형을 받을 위기에 빠졌다고 한다. 모든 교우들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셔서 무고하였던 자매는 도주를 했고 같이 공모했던 사람들도 재판에서 오히려 잘못을 인정하여 전도자들은 모두 무죄방면이 되었다. 그 일 이후 네팔의 교회가 크게 부흥을 하여 120-130명이 모인다고 한다. 전도자들이 한 달 정도 감옥에 있는 동안 고생을 얼마나 했는지 모두 얼굴이 반쪽이 되어 나왔는데 놀랍게도 감옥에서 전도를 하여 그들 중 몇 명은 요즈음에도 교회를 나온다고 한다. 하나님은 위대하시다. 이번에 새롭게 한 전도자를 소개받아 이제 돕는 전도자가 모두 10명이 되었다. 쥬엘, 디빡, 죤두두, 빠간소렌, 람소렌, 마르쿠스, 솜하스다, 수닐하스다, 빔바스키, 모돈하스다, 이들이 다 하나님의 신실한 일꾼으로 잘 사역하도록 기도가 필요하다. 하나님의 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737 no image |마른 땅에 단비를| 물가놀이_김형남
편집부
1157 2017-01-25
<마른 땅에 단비를> 물가 놀이 < 김형남, 아시아 일꾼 > “물속에 그를 잠기게 하고 막 일으키던 순간, 내 목울대가 갑자기 치솟으며 울컥했다” 매번 그렇지만, 그 날 아침은 유난히 시간을 다그치며 집을 나섰다. 어깨 가득 짐들을 짊어지고, 20여분을 걸어 C국인들과 약속된 좁고 비탈진 곳에 도착했다. 그 번잡한 곳을 굳이 약속 장소로 잡은 것은 ‘쉬’의 집이 그 곳에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17세를 갓 넘긴 꽃 같은 나이에 쓰러져, 20년의 세월을 일그러진 채로 자신의 볼품없는 처지처럼 그 비탈진 곳에서 살아오고 있었다. 오래지 않아 배불뚝이 ‘리씬’이, ‘물가 놀이’를 위해 미리 예약해 놓은 중형 버스를 타고 짐짓 늠름하게 가파른 길을 올라온다. 한 번도 늦어 본 적 없는 ‘쟝’ 교장이 오늘은 두 딸과 아내를 특별 손님으로 초대해 데리고 오느라 헐레벌떡 늦었다. 18명이 다 모이니, 마치 참새가 방앗간에 모인 듯, 버스를 뜨겁게 달구었다. 버스가 성큼 회색 도시를 막 벗어나자 저마다 고린내를 풍기면서 시끌쩍했다. 재미에 겨워 방정을 떨던 ‘따이’는 웃음을 참느라 신음했다. 그때, 깔깔거리는 웃음 사이로 갑자기 가느다란 흐느낌이 새어 나왔다. ‘쉬’였다. 곧 그치려니 했지만 흐느낌은 통곡으로 변했다. 누구보다도 아내가 당혹해 했다. 허겁지겁 ‘쉬’ 옆으로 자리를 옮긴 아내 보기가 민망하다. 오늘이 있기까지 아내가 쏟은 피와 땀이 얼마인데, 초장부터 파장 분위기라니. 나는 숨이 콱 막혔다. 그러나 한술 더 떠 나를 헷갈리게 한 것은 통곡하는 쉬를 안고 좋아 죽겠다는 양, 헤 벌린 입으로 히죽거리며 웃는 아내의 모습이었다. 아내로부터 사정을 조목조목 듣던 모두가 길고 편하게 숨을 내 쉬었다. ‘쉬’가 난데없이 떨어진 폭탄처럼 아내로부터 사랑을 소나기처럼 받으니 행복에 복받쳐 우는 것이란다. 장애를 천형인 듯 속절없이 끌어안고 홀로 된 노모와 살아오며, 낯이 깎이고 아니꼬운 일을 체념하듯 받아들이고 살아 왔던 모녀가 아니었던가. 사람들의 곱지 않은 진득한 시선이 창피해 숨도 못 내쉬고 참아 왔던 ‘서러움 한 덩이’, 그게 통곡이라는 카타르시스로 터져 나왔던 모양이다. 버스가 좁은 시골길을 휘휘 돌아 물가 놀이하기로 작정해둔 곳에 도착했다. 모두가 숨을 죽인 채 버스에서 내렸다. 전화로 ‘세례 어쩌고..’ 하면서 말할 수 없어, ‘물가 놀이’는 세례를 준비하며 만든 우리 끼리만의 암호였다. 전엔 여관을 빌려 욕조에서 침례를 했지만, 이번 참엔 마음을 다 잡고 아예 밖으로 나온 것이었다. 며칠 전에 덜컥 찾아 온 차가운 초가을 날씨에 모두 기가 죽었었는데, 우연치곤 딱 거짓말 같은 뜨뜻한 바람이 기뻐 촐랑거리는 우리 일행들을 진작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큰 아들 녀석이 떡 벌어진 어깨로 ‘쉬’를 업고 앞장을 서고, 우린 그 꽁무니를 따라 줄줄이 일렬횡대로 가파른 계곡 밑으로 더듬거리며 내려갔다. 물은 생각 밖으로 깊었고 경사가 심했다. 기도가 절로 나왔다. 겅중거리며 한참을 휘젓고 다닌 끝에 적당한 곳을 찾았다. 묶어 놓은 배에 모두 올라 우선은 진을 쳤다. 육자배기 한가락 뽑듯 찬송을 부르고, 세례가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일장 연설을 했다. ‘쟝’이 제일 처음으로 물 안으로 들어 왔다. 복음에 반응하고 해외 일꾼인 나보다 더 열심인 아름다운 청년, 그래서 항시 고마운 청년. 그리고 육십을 훌쩍 넘은 ‘리’, 평생 회교를 섬기다 자폐증을 앓는 청년 아들의 장애를 가슴 저미는 아픔으로 끌어안고 살아오다, 더 이상 무너져 내릴 수 없는 연약한 무릎으로 주님 앞에 선 배불뚝이의 아비. 물속에 그를 잠기게 하고 막 일으키던 순간, 내 목울대가 갑자기 치솟으며 울컥했다. 그러나 왠지 울음을 토해내는 것이 어설플 것 같아 침을 애써 꿀꺽 삼켜 진정시켰다. 다음 차례는, 평생 한(恨)을 먹고 살아 왔던 그의 아내 ‘이’.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원통함을 부둥켜안고 살아오다 주님을 만나 이제는 동역자가 된 어여쁜 숙녀 ‘헝’. 영화에서나 봄직한, 천사보다도 아름다운 통렬한 미소를 날리며 물 안에 들어 선 ‘쉬’의 어미 ‘티엔’. 라틴댄스에 인생을 걸고 살아오다 주님을 만난 딸 같은 ‘따이’.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듯 흉측한 장애를 얼굴에 달고 사는 묘족 소녀 ‘콩창’. 그녀로 인해 그 씨족 마을 역사에 처음으로 선포된 원색적 복음. 마지막으로, 물이 무서워 배에서 기다리고 있던 ‘배불뚝이’와 늘어지는 몸을 가눌 수가 없어서 배 위에서 기다리고 있던 ‘쉬’. 응어리져 맺힌 것을 풀지 못해 억울하고 분한 가슴으로 살아 왔던 그들. 두 마리 암탉을 잡아 왕자처럼 점심을 즐기고는 고즈넉한 계곡 자락이 내려다 보이는 조그만 밭두렁으로 다시 하나 둘씩 모여 들었다. 그리곤 몇몇이 저 산자락 너머에다 대고 고함들을 꽥꽥 괜히 질러 댄다. 아내 구미경은 집에 돌아와서까지도 눈물을 훔치며 며칠을 킥킥댔다.
736 no image |살아가며 섬기며| 거짓은 진리 앞에 나설 수 없다 _천한필 목사
편집부
1304 2017-01-25
<살아가며 섬기며> 거짓은 진리 앞에 나설 수 없다 - 신천지와의 영적 전투 이야기 - < 천한필 목사, 예다임교회 > “무시하고 비판하던 정통 교회의 목사에게 고개 숙인 신천지” “진리를 위한 싸움과 한 영혼에 대한 책임을 포기하지 않기를” 목회 경험이 아직 많지 않은 필자는 최근에 또 한 번 이단 신천지에 빠진 여대생에 대한 상담 요청을 받았다. 요청자는 그녀의 언니였다. 그 여동생은 현재 평택의 신천지 간부라 했다. 가족들은 그녀를 이단 상담소까지 데려가고 싶어 했지만 당시엔 그럴 여력이 없었다. 그렇다고 가족이 아닌 필자가 강제로 데리고 갈 수도 없었다. 신천지 측에서 법적 대응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도울지 고민하다 필자 나름 제시한 대안은 언니가 그 여동생과 일주일에 한 번씩이라도 꼭 성경 공부를 하라는 것이었다. 교재는 그리 대단한 건 아니고 필자가 연구, 정리했던 ‘갈라디아서 성경 읽어내기’와 ‘신천지 거짓 교리 비판’에 대한 자료를 그 언니의 이메일로 보내는 정도였다. 언니는 그 자료들로 일주일에 한 번씩 여동생과 성경 공부를 했다. 그것만으로도 언니는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그러다가 신천지 측에서 상황을 알아차린 듯, 갑자기 여동생이 언니에게 긴급 제안을 해왔단다. 매 주마다 프린트 자료를 읽으며 시간을 보내지 말고, 차라리 사자대면을 하자는 것이었다. 이는 성경공부를 회피하려는 핑계로 판단됐다. 아마 신천지 측에서는 대면 토론을 제안하면 대부분의 목사들이 회피할 줄로 예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사자대면을 즉시 수락하였고, 시간과 장소를 알려 달라 하니 공공장소가 아닌 평택의 신천지 집회소에서 토론하자 했다. 이번에도 그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여러 번의 논의 끝에 공개 토론 날짜를 2016년 12월 8일 목요일 저녁 7시로 정했다. 그리고 우리 쪽에서는 공개토론을 위해 꽤 많은 인원과 촬영 및 언론기자도 대동하겠다고 알렸다. 이때부터 필자도 평택의 신천지 집회소에 직접 가서 열리는 공개토론에 영적 전투의 각오로 준비를 했다. 아울러 같은 노회원으로 교단 이대위에 계신 목사님께 동참을 요청했다. 이런 요청에 응함이 결코 쉽지 않음에도 선배 목사님은 흔쾌히 수락하셨다. 또한 이대위원장 목사님까지도 동참하겠다고 하셨다. 더욱이 필자가 섬기는 교인들까지 참여할 뜻을 밝혔다. 필자는 큰 위로와 격려를 얻었다. 기도하며 한 번 부딪쳐보자는 강한 다짐을 되새겼다. 그런데 신천지 측에서는 고민하더니 또 다른 조건을 내세웠다. 평택의 신천지 강사는 1000여명 규모를 대표하는 자인데 필자가 과연 그에 걸맞은 수준의 대표성이 있느냐는 것이다. 또한 공식 요청 절차에 따른 서류를 보내라고까지 했다. 너무 어이없고 황당했다. 먼저 토론을 제안하고서는 우리더러 요청 서류를 보내라니 말이 되는가? 그 와중에 정해진 일정이 다가오자 그들은 갑자기 태도를 달리했다. 공식 요청 서류를 보내면, 그것의 적합성을 따져보고 공개토론 일정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필자는 신천지 측에 좀 더 분명한 입장을 전달했다. ‘나는 당신들이 약속을 여러번 변경한 것까지 다 양보했다. 그러니 12월 8일 목요일 저녁 7시의 공개토론 약속을 지키든지, 포기하든지 책임지고 결정하라. 아무 연락이 없으면 토론에 자신이 없다는 것과 성경 지식에 대한 실력이 없음을 인정하는 것으로 알겠다.’ 그럼에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게다가 평택의 신천지 총무라는 이 모 씨는 어떻게 알았는지 그 언니의 이메일 주소로 신천지 교리 내용 몇 개를 보내왔다. 그래서 필자는 그 언니를 통해 ‘신천지 교리에 자신 있고 공개 토론할 의향이 있다면, 평택의 신천지 집회소로 우리 기존 정통 교회 측의 사람들을 초대하여 공개 강의 하라’고까지 전달했다. 하지만 역시 아무 반응이 없었다. 결국 신천지의 기권패가 확실해졌다. 그들이 그토록 무시하고 비판하던 정통 교회의 목사에게조차 고개를 숙인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여기서 멈추고 싶지 않았다. 신천지에 빠진 그 여동생에게도 집중하였다. 신천지는 그녀를 전혀 보호도 책임지지도 못한다는 사실을 각인시켜 주었다. 또한 그 언니에게 계속해서 여동생과 주 1회 성경 공부를 하게 했고 언니와 정통 교회는 여동생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전했다. 지금이라도 평택의 신천지 측이 공개토론을 제안한다면, 필자는 얼마든지 수락할 것이다. 신천지의 주장이 얼마나 거짓인지 하나하나 밝혀줄 것이다. 이후에라도 모든 신천지는 공개 토론에 응하길 바란다. 원한다면 필자가 섬기는 교회로 초청하여 공개 토론을 할 생각도 있다. 언제든 응하기를 바란다. 이단에 빠진 자들에게 최상의 전도는 성경으로 토론하고 설득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성경 실력과 준비도 없이 이단자들과 갑론을박 논쟁하는 것은 자칫 바울이 말한 대로 아무 유익이 없을 수 있다. 불필요한 논쟁을 피할 필요는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목사인 우리에게 이단 상담 요청이 들어온다면, 그 순간 우리는 목회에 도움이 되는지 여부를 떠나 한 영혼을 책임지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진리를 위한 싸움을 어떤 식으로든 피할 수는 없다. 많은 교회들이 신천지를 반대하고 환영하지 않는다는 대외적 경계 표현은 하고 있다. 그러나 좀 더 적극적으로 신천지와 공개적 성경 해석 논쟁도 불사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이단에 빠진 교인들이나 그들의 가족을 그저 방관하거나 이단 상담소에만 맡기는 자세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좀 더 강하게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주님과 함께라면 겁낼 것이 없다. 한국 교회의 평범한 목사의 성경 실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신천지가 확실히 알도록 해야 한다. 거짓은 진리 앞에 나설 수가 없다. 이것이 이번 전투에서 필자가 분명히 느낀 점이다. 한국 교회의 목사들이 진리를 위한 치열한 싸움과 한 영혼에 대한 책임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면 신천지 같은 사이비는 스스로 두려움을 가지고 자멸해갈 것이다.
735 no image |생각하는 신앙| 그리스도인의 자존심과 품위_김인석 목사
편집부
1364 2017-01-10
<생각하는 신앙> 그리스도인의 자존심과 품위 < 김인석 목사, 칼빈장로교회 > “진리 위해 고난과 불이익 감수하며 영원히 주님 위해 살고자 하는 자세 가져야” 잘 알듯이 욥기 6장은 친구들을 향한 욥의 첫 번째 변론이다. 22절에서 욥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언제 너희에게 나를 공급하라 하더냐 언제 나를 위하여 너희 재물로 예물을 달라더냐" 이때의 욥은 누가 보더라도 가장 가련한 자였다. 그는 가진 재물과 자녀들을 잃었고 아내마저 떠났으며 게다가 육체의 질병까지 덮쳐 그에게 남은 소망이란 죽음뿐인 듯했다. 방문자들은 위로는커녕 욥에게 책망과 충고의 말을 던졌다. 그러나 욥은 방문자들의 충고에 동의할 수 없었다. 아니 자신과 그들의 인식 사이에는 현저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다. 욥은 방문자들에게 말하기를 자신은 목숨을 구걸한 적이 없었으며 동정과 궁핍함에 목말라 하는 사람처럼 굴지 않았다고 단호히 말했다. 욥이 방문자들의 도움을 거절한 이유가 무엇일까? 욥은 동방에서 유력한 사람이었다. 재물과 명예와 권위로 존경받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욥은 가장 비참하고 가련한 처지가 되었다. 욥의 거절은 마지막 남은 자존심일까, 아니면 자격지심일까? 방문자들은 비참한 욥을 동정하였다. 그들이 처음 욥을 발견했을 때 욥은 겉옷을 찢고 티끌을 날려 머리에 뿌리며 칠일 동안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들의 의는 욥의 허물을 발견했고 책망했다. 그들의 선은 욥의 결핍을 채워주려고 했다. 그러나 욥은 첫 번째 것은 부인했고 두 번째 것은 거절했다. 욥의 부인과 거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자존심과 품위’에 대해 생각해 본다. 욥의 고난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방문자들은 범죄의 결과라고 생각했다. 욥은 자신이 그와 같은 환난에 처할만한 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믿고 있었다. 방문자들은 과거에 큰 영화를 누리던 경건한 자가 은밀한 죄로 꺾여 비참한 처지가 됐다고 생각했다. 그들에게 욥은 이웃의 도움으로 연명해야 하는 비루한 사람에 불과했다. 심지어 그들은 자신의 충고를 따라 죄를 고백하고 여호와께 용서를 빈다면 더 좋은 일들이 있을 것이라고 설득하기까지 한다. 욥은 자신을 돌아보거나 선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아도 방문자들의 책망에 수긍할 수 없었다. 또한 그는 일정한 음식과 재물의 충족만으로 위로를 얻는 자로 평가받기를 거부했다. 설령 삶이 더 비루하게 될지라도 그는 근거 없는 비난 때문에 더 높고 큰 가치와 목적을 버릴 수 없었다. 이생의 평가와 만족에 기대어 적당히 타협하기보다는 차라리 죽음으로써 정당한 자존심과 품위를 지키려고 한 것이다. 이러한 자존심과 품위란 무엇일까? 초대교회 성도들은 모진 핍박과 고난의 현장에 끌려나왔을 때 마음으로도 입술로도 주님을 부인하지 않았기에 그 대가로 순교의 길을 갔다. 그리스도인, 곧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고귀한 이름의 자존심을 지킨 것이다. 그것이 그들의 품위였다. 비근하게 일제강점기 한국교회사를 돌아보자. 부당한 일제의 신사 참배 요구가 어떤 이들에게는 그럴듯한 변명에 기대어 타협하기 쉬운 종류의 일이었다. 그러나 또 다른 이들에게는 도저히 마음이나 행위로 단 한 순간도 동의할 수 없는 문제였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존심을 지키며 죽음의 길을 택했다. 그렇게 하여 지상에서 가장 고귀한 품위를 보여 주었다. 우리는 그들을 순교자라고 부른다. 역사의 종국까지 대대로, 그리고 영원히 그들은 거룩한 자존심과 품위를 지킨 자들로 기억될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자존심과 품위란 모든 조건이 넉넉히 갖춰지고 아무런 부족함이 없는 데서 발휘되는 것이 아니다. 또한 가난하고 비루한 처지에서 즉흥적으로 발휘되는 것도 아니다. 이런 저런 삶의 정황이란 겉옷에 불과하다. 그리스도인의 자존심과 품위는 하나님의 진리를 위해, 또 그 진리가 요구하는 삶을 위해 기꺼이 불편과 부당한 대우와 배고픔과 배척과 죽음을 당할지라도 억울해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영원히 주님을 향해 살고자 하는 자세이다.
734 no image |살아가며 섬기며| 아우라지 산골에서_최용철 목사
편집부
1146 2017-01-10
<살아가며 섬기며> 아우라지 산골에서 - 어느 농촌 목사의 소소한 이야기 - < 최용철 목사, 정선 유천교회 > “은혜의 만나를 먹으며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면 족할 것” 얼마 전에 개혁신보사 신임 편집국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정선 아우라지에서 경험하는 자잘한 이야기들을 글로 써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신문에 올릴 만한 글을 쓸 재능과 자질이 안 되는 사람이라 말씀드렸지만, 그렇게 따지면 글을 쓸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며 반문하심에 그럼 한 번 시도해 보겠노라 하였습니다. 이것이 이글을 쓰게 된 동기입니다. 저는 강원도 정선 산골에서 20명도 안 되는 성도를 만 17년을 섬긴 농촌 목회자입니다. 그것마저도 삐걱거리며 목회를 하고 있는 아주 평범한 목사입니다. 또한 한 여인의 남편이며, 세 아이의 아빠인 가장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가장 역할에 있어서도 그렇게 신통치 못합니다. 젊은 시절에야 말씀이 충만한 교회, 말씀으로 이루어지는 가정에 대하여 자신감 충만하였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말씀이 전달되어도 그것이 이루어지는 현실과는 큰 간극이 있음을 발견합니다. 제 자신이 말씀으로 잘 훈련된 인격이 되지 않았는데 누구한테 무엇을 요구한단 말인가 하는 자괴감에 빠질 때도 종종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 교회에서 소소하게 터지는 갈등과 반목의 사건들, 그리고 말씀 가운데 바로 서지 못하는 저의 가정을 대면하게 됩니다. 아! 이렇게 인생이 흘러가다 결국 목회를 마치게 되고,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것이구나,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의 인생은 소소한 인생으로 마감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절망감이 생기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만 두려움이 있는 부분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맡은 자로서 교회에 하나님이 주시려는 은혜의 분량들이 저 때문에 막히면 어쩌나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 땅에 세워진 주님의 통치 기관인데, 그리고 그것을 현시해야 할 책임이 우선적으로 교회의 목회자에게 있는데 그것을 알아차리는 일이나 잘 나타내는 것도 녹록치 않은 사실에 괴로움이 있는 것입니다. 아직도 극복이 안 되는 제 자신의 사소한 게으름, 나태함, 무절제함, 이기심 등은 손가락에 박힌 가시처럼 저를 괴롭힙니다. 아마 이러한 요소들이 주의 은혜를 가로 막고 있는 보이지 않는 장애물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교인들이 영적으로 성장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감히 탓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가정의 자녀들이 세속에 물들어가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면서도 제대로 호통을 치지 못하는데 누구를 탓하랴 하는 심정을 갖게 됩니다. 사람 나이 50이면 지천명(知天命)이라 하였는데 지학(志學)도 못하였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부임 초기에는 학생포함 35명이었던 성도가 지금은 21명으로 줄었습니다. 제가 부임하고 6명이 소천하시고, 학생들 대부분은 고등학교 졸업하고 도시로 떠나간 지 오래고, 시험에 빠져 잠시 쉬고 있는 성도도 있습니다. 게다가 농촌 인구는 계속적으로 감소 추세이고, 전도의 문은 잘 열리지 않습니다. 그래도 은혜를 주셔서 요즘은 혼자 사시는 심장병 환자 할아버지, 신장병 환자 할머니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가 생겼고, 만성신부전증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아 요양오신 할머니 한 분이 새신자로 나오셔서 교회에 기쁨이 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농촌교회가 그렇듯이 우리 교회 또한 70, 80 대가 주를 이룹니다. 어느 농촌교회의 목사의 기도 제목이 “주님 우리 교회 성도들 오래 살게 해 주십시오” 라는 말에 웃음이 나오기보다는 공감되는 바가 큽니다. 진심 어린 공감대가 형성되었습니다. 그저 성도가 적어도, 지금보다 더 줄어든다 해도 주님이 주시는 은혜의 만나를 받아먹으며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면 그것으로 족하리라는 것이 무지렁이 같은 머나먼 강원도 아우라지 고을 목사의 소소한 바람입니다.
733 |에세이| 옹이_이종섭 목사 파일
편집부
1827 2017-01-10
<에세이> 옹 이 < 이종섭 목사, 찬미교회> 잣나무 숲을 산책하는 아침. 눈부시면서도 신비로운 햇살이 비친다. 맑고 신선한 공기가 스며든다. 한 걸음 두 걸음 걸을수록 가벼워지는 몸과 마음. 나도 한 그루 나무가 되는 것일까. 발을 딛고 선 땅에서 올라온 수액이 뼈와 혈관을 타고 온몸 구석구석 퍼져간다. 하늘을 바라보는 눈에서 투명한 가지들이 공중으로 뻗어 푸른 잎사귀들을 틔운다. 걷다가 쉬다가 하면서 산책을 하는 동안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아니 지금까지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옹이가 보인다. 한번 눈에 띈 옹이는 여기저기 수두룩하게 보이고, 옹이를 맞닥뜨린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주변의 잣나무들을 살펴보니 멀쩡한 잣나무는 한 그루도 없다. 모든 나무가 다 옹이를 가지고 있다. 한두 개가 아닌 서너 개씩의 옹이를. 가지를 잘라낸 단면마다 찐득한 눈물이 흐른다. 갓 생긴 상처에서는 맑고 투명한 이슬방울이 흘러내리고 오래된 상처에서는 검푸른 피눈물이 고약하게 쏟아진다. 그 피눈물이 깨끗하게 마르고 나서야 어여쁘게 만들어지는 옹이. 한 나무 안에 상처가 깊어가는 옹이가 있고 상처가 아문 옹이가 있다. 잣나무 숲은 옹이를 만드는 공장이고 잣나무는 옹이를 맺는 수목이다. 옹이들을 보면서 떠올리는 나 자신의 상처들. 크고 작은 상처가 생길 때마다 아파하고 신음하며 눈물을 흘리던 날들이 한 그루 두 그루 나무가 되어 숲을 이루고 있다. 멀리서 보면 푸른 나무들만 보이지만 숲에 들어서면 기둥에 난 상처와 눈물과 옹이가 보이는 숲. 내가 지나온 길에 숲이 보여 다행이지만 가지들이 보여주는 숲속에는 그 숲을 키우기 위한 상처와 옹이가 무수히도 많을 터. 잣나무 숲에서 피톤치드가 나와 나를 정결하게 하듯이 저 멀리 보이는 내 과거의 숲에서도 더욱 진한 피톤치드가 나와 나를 새롭게 한다. 그때는 나를 몹시도 힘들게 한 상처에서 이런 향기가 나다니. 내 생각이나 습관들이 타인과 부딪혀 하나 둘씩 꺾이거나 잘려나갈 때마다 나는 무척이나 힘들었다. 견디기 힘들어 속으로 끙끙대며 지내야했던 날들이 부지기수. 한두 번 경험하면, 아니 어느 정도 경험하면 그런 일들이 다시는 없어야 했건만 나도 다른 사람들도 모두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여서 서로서로 상처를 주면서 살 수밖에 없었던 세월이었다. 그렇게 지나온 세월의 숲을 다시 산책하며 나 자신을 살펴보는 잣나무 숲속. 어렴풋하게 볼수록 치유는커녕 꼭꼭 숨겨놓은 아픔이 덧나고 말지만 뚜렷하게 보면 볼수록 이해와 터득에서 비롯되는 현재의 유익과 성숙을 얻을 수 있는 법, 잣나무 숲에서 옹이를 발견한 아침에 평생의 유익이 될 옹이의 묵상이 가슴에서 자라고 있다. 그때는 옹이만 남기고 잘려나간 가지들이 무척 아까웠을 것이다. 옹이가 클수록 그 허탈함도 크고 깊어 먹먹한 가슴으로 허공만 바라봐야 했던 날들. 옹이를 남긴 채 사라져버린 가지들은 나뭇가지 중에서 가장 큰 가지들이어서, 낫에 찍혀 말려졌다가 아궁이 불쏘시개가 되어버리는 신세가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내가 아꼈던 것들을 송두리째 빼앗겨버릴 때의 기분도 마찬가지여서 그 속상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때 옹이가 흘리는 눈물은 나무를 지저분하게 만들었다. 처음에는 이슬같이 영롱한 눈물을 흘렸으나 가면 갈수록 시커먼 구정물을 흘려 나무 가까이 가지도 못하게 했고 그 나무를 붙잡지도 못하게 했다. 향도 좋을 뿐만 아니라 반듯하게 잘 자라고 있는 나무를 애써 저렇게 고통스럽고 지저분하게 만드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때 나는 너무 어려서 그 이유를 생각하기도 전에 옹이의 거친 흔적들을 먼저 볼 수밖에 없었고, 그때마다 옹이를 껴안고 우는 내 손과 옷에 언제 아물지도 모르는 상처의 진액이 엉겨 붙어 안 그래도 힘들 수밖에 없는 상처를 더욱 힘들게 했었다. 옹이로 인한 나무의 손해와 상처도 많지만 옹이가 주는 이득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떠올린다. 작은 그릇일수록 자신의 손실 그 자체만 생각하나 큰 그릇일수록 손실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성과를 바라보는 법, 오늘은 마음의 크기를 조금이라도 늘려보기로 다짐한다. 그 마음에 잘 마른 옹이를 담아 고운 손으로 어루만져 본다. 옹이가 있어야 자라는 나무. 가지치기를 해서 옹이를 만들지 않으면 숲에 가지들이 빽빽해 일을 할 수가 없다. 열매도 제대로 수확할 수가 없다. 뿐만 아니라 옹이가 있어야 숲을 산책할 수 있다. 옹이는 나무와 나무 사이에 공간을 만든다. 그 공간 사이로 사람이 산책하고 오솔길이 생긴다. 잣나무 숲속에 난 오솔길 산책을 마칠 때쯤, 나도 상처를 통해 자랐다는 것을 고백한다. 그 상처로 인해 다른 사람을 배려하게 되었고 어려움을 헤아리게 되었다. 그러므로 내가 가지고 있는 옹이들은 내가 잘 자랐다는 증거. 이제 다른 사람이 내 곁을 지나가다 내 뾰족한 가지에 찔려 신음하거나 내 섣부른 가지에 걸려 넘어질 일이 없다. 오히려 다른 사람이 내 곁을 지나가기 좋아하고, 나를 바라보다 내 몸에 새겨진 옹이를 보며 자신을 조용히 돌아보게 될 것이다. 나를 산책하면서 내가 뿜어내는 향기를 맡게 될 것이다. 잣나무 숲을 나와 집으로 가는 길. 고개를 돌려 잣나무 숲을 바라보니 푸드득 날아가는 산비둘기 한 마리. 허공에 흩어지는 잣나무 냄새. * 이종섭 목사는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 <바람의 구문론><물결무늬 손뼈 화석>등의 시집을 상재하였으며 수주문학상, 시흥문학상, 민들레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732 no image |목회수상|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_조대현 목사
편집부
1341 2017-01-10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 < 조대현 목사, 지영교회 > “교회가 어려움과 혼란기에 있지만 다시 진리이신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교회는 말씀과 기도 이외에 어떠한 것도 첨가해서는 안돼” 목회를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어떠하심과,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알며, 순종하며, 그분의 뜻을 늘 시인하고 이루어 드리려는 신앙적 태도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따라서 목회자로서 어제도 오늘도 미래에도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이다. 바울이 그의 목회 경험을 통해 아들처럼 생각했던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는 목회적 신앙을 강조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만이 우리 삶의 가장 큰 진리요 중요한 기준이기 때문이었다. 이미 지금은 다원주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진리에 대한 절대성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의 권위에 대해 도전하며, 사람의 생각으로 하나님의 절대성을 상대성으로 바꾸려는 시도가 대담하며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바울이 로마서 1:18-21에서 언급한 것처럼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는” 일이 세상은 물론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자연스레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후기 현대주의를 표방하는 사회에서 가치의 다양성이 허용되고 소수의 입장과 가치관일지라도 받아들이는 시대적 경향이 교회 안에도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이런 흐름은 종교다원주의의 신학을 만들어내었고 성경에 대한 권위와 무오성에 심각한 도전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도전은 결국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는 결론을 내어놓기까지 했다. 이 흐름에 편승한 신앙적 성향은 자기중심적이며, 이기적인 신앙으로 하나님의 뜻 보다는 자신의 뜻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신앙의 기준을 하나님이 아닌 자신에게서 찾는다. 이러한 논리는 받아드릴 수 없다. 왜냐하면 원죄로 인해 끊임없이 발생하는 죄의 굴레 속에서 영원히 죽어야할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해 영생을 누리며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로 섬기는 삶이 구원이란 사실을 성경이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14:6은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신다. 다른 종교들이 말하는 신(god)은 우리 기독교의 하나님과 비교조차 될 수 없는 존재들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거짓 신이기 때문이다. 예레미야 10:10-14에서는 “오직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왕이시라 그 진노하심에 땅이 진동하며 그 분노하심을 이방이 능히 당하지 못하느니라 너희는 이같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천지를 짓지 아니한 신들은 땅 위에서, 이 하늘 아래에서 망하리라 하라 여호와께서 그의 권능으로 땅을 지으셨고 그의 지혜로 세계를 세우셨고 그의 명철로 하늘을 펴셨으며 그가 목소리를 내신즉 하늘에 많은 물이 생기나니 그는 땅 끝에서 구름이 오르게 하시며 비를 위하여 번개 치게 하시며 그 곳간에서 바람을 내시거늘 사람마다 어리석고 무식하도다 은장이마다 자기의 조각한 신상으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하나니 이는 그가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 것이요 그 속에 생기가 없음이라.”고 선언하신다. 이 시대는 하나님의 절대성 및 사도들이 전해준 십자가와 부활 신앙과, 우리 믿음의 선조들이 물려준 사도신경적 신앙고백에 도전하며 그것을 파기할 것을 요구한다. 그렇다 해도 우리는 과거 우리의 선조들이 목숨을 걸고 신앙을 지켰던 것처럼 그 복음을 지키며 우리의 후세에 전해야 할 것이다. 요한복음 17:17 후반부에서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라고 진실을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친히 증명하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변함이 없으시고 그 자체로 생명력이 있음을 나타내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그 자체로 충족하며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교회가 많은 어려움과 혼란기에 들어있지만 이제 다시 진리이신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할 것이다. 교회는 마태복음 16:16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하늘 아버지로부터 온 정당한 신앙고백 위에 세워졌다. 바울은 디모데전서 3:15에서 이것을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고 선언한다. 그러므로 올바른 교회의 표지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선포함과 바른 성례와 권징의 신실한 시행이다. 교회가 교회 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주인 되실 때이다. 종교개혁자들이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라.”는 신앙으로 개혁했던 것처럼 영적전투의 최전선에 있는 목회자들이 세속적 프로그램과 무분별한 확장주의에서 떠나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교회를 통치하실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드리는 일이 그래서 중요하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되심은 우리가 믿어 의심할 수 없는 진리이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씀과 기도로 목회할 것을 당부한 것은 말씀이 곧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목회의 의미가 없고, 기도 없이는 그것을 이룰 수 없기에 마지막 유언과도 같은 말씀을 후배 목회자인 디모데에게 당부했으리라. 그 당부는 오늘 말씀을 맡은 모든 목회자에게 동일한 유언일 것이다. 또 한 가지 목회자가 말씀과 기도로 돌아감이 시급한 이유는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세의 때에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은 성경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딤후 3장). 말세가 깊어질수록 목회자와 성도들은 성경에 깊어져야 한다. 성경만이 우리를 온전하게 하여 하나님의 선하신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교회 안에 유행처럼 번져가는 현상은 하나님에 대한 열심은 있는데, 하나님께 대한 관심은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무엇을 좋아하시는 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것은 하나님을 알자는 것이며, 그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내 삶에서 인정하고 나타내는 것이어야 한다. 신앙의 기본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안다면 믿어야 하고, 믿으면 순종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이다. 순종 없이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것은 실은 죽은 믿음이다(계3:1). 죽은 믿음으로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없다. 따라서 교회는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가 되기 위해 말씀과 기도 이외에는 그 어떠한 것도 첨가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입에 쓸지언정 다원화의 혼란한 시대를 맞은 성도들에게 꼭 선포해야할 참된 신앙이요, 말세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 내게 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교회를 돌보시기를 원하신다.
731 no image |목회수상| 새해에는 더 높이 오르고 더 멀리 바라보자_박발영 목사
편집부
1284 2016-12-27
새해에는 더 높이 오르고 더 멀리 바라보자 < 박발영 목사, 한우리교회 >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심판하신다는 사실 알고 있어야” 새해를 앞두고 교회 청년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청년들이 질문에 답변하는 형식으로 진행하였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서 새해의 희망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첫 번째 청년의 질문 : 우리는 ‘새해는 지나간 해보다 더 나은 새해가 되겠지’라는 소망을 가지고 시작하지만 매년 한 해를 마무리할 때는 ‘올해도 속았구나’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특히 2016년도는 최순실 게이트 사건으로 인해 더 실망하고 더 절망감을 느낍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이 세상을 주관하고 계신다고 하는데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니까 악인들이 더 출세를 하고 더 잘 살고 더 형통한 반면 착하고 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은 더 억울한 일을 당하며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이 세상이 왜 이렇게 부조리가 많고 뒤죽박죽입니까? 우리 젊은이들은 어디서 희망을 찾아야 합니까?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 : 먼저 성경은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를 구분하여 말하고 있다. 이 땅에는 크게 두 나라가 공존한다. 구약 식으로 말하자면 소돔 고모라 애굽 바벨론 앗수르 블레셋이 세상 나라이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는 이스라엘이었다. 신약 식으로 말하자면 교회가 하나님 나라이고 그리고 나머지 모든 나라는 세상 나라이다. 미국 중국 일본 대한민국도 세상나라이고 교회만 하나님 나라이다. 그런데 성경에서 세상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던가? 성경을 보면 이 세상을 대표하는 나라가 바벨론이다. 성경은 바벨론을 어떤 곳이라고 말씀하고 있던가? 바벨론은 귀신의 처소이고, 사단이 왕 노릇하는 곳이고, 더러운 것들이 가득한 곳이고, 죄악이 창궐한 곳이고, 음녀들이 부귀영화를 누리며 설치는 곳이라고 묘사한다. 그래서 세상나라는 원래 뒤죽박죽이고 부조리가 많고 죄악이 창궐한 나라라는 것이다. 이것이 세상나라의 모습이다. 그런데 또 한 가지 알아야 한다. 훌륭한 대통령이 나오면, 그래서 정치를 잘 해 주면 대한민국이 하나님 나라로 바뀔 것으로 착각하지 말라! 세상나라는 여전히 세상나라 일뿐이다. 표면적으로 조금 좋아지겠지만 거기서 거기란 뜻이다. 링컨 같은 대통령이 나올지라도 대한민국은 여전히 세상나라일 뿐이다. 애굽 왕 바로가 애굽을 통치하던 때와 고레스 왕이 바사왕국을 통치하던 때를 비교해 보라. 바로는 이스라엘을 핍박하며 마귀노릇을 하였다. 고레스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이스라엘에게 우호적인 정책을 행하였다. 그래서 성전을 건축하도록 도와줬다. 천사 노릇을 한 것이다. 고레스 왕이 이스라엘에게 천사 노릇을 했다고 “바사”라는 나라가 하나님 나라가 되었는가? 아니다. 세상나라는 여전히 세상나라일 뿐이다. 표면적으로 조금 달라져 보이지만 아니다. 세상나라는 세상나라일 뿐이다. 거기서 거기다. 세상나라는 처음부터 주님이 재림 하실 때까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세상나라에 너무 기대를 걸지 말라는 뜻이다. 지도자가 바뀌어서 아무리 좋아 봐야 그것이 그것이다. 두 번째 청년의 질문 : 그러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 :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에게 “세상에서 나오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롯에게 소돔과 고모라를 떠나라고 하셨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애굽을 떠나라고 하셨고, 계시록에서는 바벨론에서 나오라고 하셨다. 세 번째 청년의 질문 : 하나님 나라라고 하는 교회도 세상나라와 똑 같지 않습니까? 세 번째 질문에 대한 답 : 이 세상에 와 있는 하나님 나라인 교회는 가라지와 알곡이 함께 공존하는 기간이다. 그래서 뒤죽박죽처럼 보일 수가 있다. 건축에 비유하자면 공사중이란 뜻이다. 공사장에 가보라! 얼마나 뒤죽박죽이던가. 그러나 주님이 재림하시면 완성된 나라인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릴 것이다. 네 번째 청년의 질문 : 과연 그런 날이 올까요? 네 번째 질문에 대한 답 : 반드시 온다! 바다는 멈춰있는 것이 아니라 흐르고 있다. 이것을 해류라고 한다. 해류를 다시 둘로 나누는데 바람에 의해 상층부에 형성되는 표층해류(풍성순환)와 온도와 염도차이로 형성되는 심층해류(열염순환)가 있다. 표층해류는 유속이 빠른 편이지만 심층해류는 아주 느리다. 그래서 심층해수가 전 대양을 순환하는데 약 1000년 정도의 긴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교훈을 배운다. 세상 나라는 표층 해류이고 하나님의 섭리는 심층 해류와 같다는 것이다. 바다 표층에서는 태풍이 불고 세월호 사건이 터지고 전쟁이 벌어지고 온갖 일들이 벌어지지만 그런 것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심층해류는 목적지를 향하여 도도히 흘러가고 있다. 역사도 마찬가지이다. 이 세상에서는 온갖 별별 일들이 다 일어나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을 향하여 심층 해류처럼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성도의 삶은 자수(刺繡)와 같다. 자수는 앞에서 보면 작품이 되어가지만 뒷면에서 보면 엉망이다. 우리 편에서 보면 엉망이 된 것 같지만 하나님 편에서 보면 작품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 땅에서 일어나는 혼돈과 무질서 즉 어둔 모습을 보면서 낙담하지 말아야 한다. 성도의 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그 나라와 그 땅에 대한 소망이므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앞서간 믿음의 선지들처럼 이 세상을 나그네와 외국인처럼 믿음으로 살아 갈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심판하신다는 것과, 세상의 종국이 어떻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리차드 바크(Richard Bach)의 「갈매기의 꿈」이라는 소설에 나온 갈매기 조나단처럼 높이 올라 더 멀리 보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재림 후에 성취될 새 하늘과 새 땅까지 믿음으로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730 no image |제언| “그들은 별을 보고 따랐더라”_남웅기 목사
편집부
1187 2016-12-14
“그들은 별을 보고 따랐더라” (동방박사와 관련된 고정관념 깨뜨리기) < 남웅기 목사, 바로선교회 > “동방박사들이 마굿간에서 아기 예수를 만났다는 편견 깨뜨려야” 성탄절이 코앞에 닥쳐왔습니다. ‘성탄절!’하면 물론 아기 예수이시지만 곁따라 떠오르는 동방박사 이야기 또한 빼 놓을 수 없습니다. 익숙한 동방박사들 이야기 베들레헴 인근의 목자들 외에는 유대인들 모두가 메시야의 오심에 대해 깜깜 무소식이었을 때, 하나님은 유독 동방의 점성가들에게만 알려주셨습니다. 그들은 결정적일 때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은 사람들입니다. 평소 연구하던 하늘의 별들을 통해 메시야 오심을 감지(感知)한 그들은 황금과 유향과 몰약 등의 예물을 갖추어 유대 땅으로 찾아 나섭니다. 그분이 메시야라면 그분을 찾아 경배하는 일만큼 삶의 우선적이며 값진 일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들이 재산을 털어 예물을 준비하고, 그 멀고 험한 길에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마침내 유대 땅을 찾은 것은 그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에 한 발자국 더 들어가는 비결은 우리의 고정관념을 벗어나 성경이 말씀하고자 하는 본뜻을 바로 헤아리는 데 있는 줄 압니다. 우리는 때때로 그 고정관념 때문에 하나님이 알려주시려는 본뜻을 지나쳐버릴 경우도 있고, 우리의 무지로 인해 엉뚱한 지식을 붙잡고 있을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개역한글성경에서 ‘홀’(笏)이라고 기록되었던 임금의 지팡이가 금번 개정개역성경에선 생뚱맞게 ‘규’圭)로 번역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생뚱맞은 게 아니라 이전 성경이 잘못 번역된 탓이었습니다. 사전적 의미로 보면 홀(笏)은 벼슬아치가 임금을 만날 때에 손에 쥐던 물건인데 비해, 규(珪)는 천자가 제후를 봉할 때 쓰던 것으로 설명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동방박사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다음 몇 가지는 우리가 되새겨 볼 대목입니다. 1) 박사들이 동방에서 예루살렘을 찾아올 때 별을 보면서 따라 왔으리라는 것은 고정관념입니다. 마태복음 2장 9, 10절에 의하면, 박사들이 헤롯을 만난 후 예루살렘을 출발할 때의 장면을 이렇게 그리고 있습니다.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더라”(마 2:9). 박사들은 ‘길을 인도하던 그 별’이 아니라 ‘동방에서 보던 그 별’에 주목합니다. 그들이 스스로 찾아갈 수 있는 길을 굳이 별이 앞서 인도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2)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께 경배하러 당연히 베들레헴으로 갔을 거라는 것은 지레짐작입니다. 동방박사들의 경배는 성경 어디에도 베들레헴이라고 밝혀놓지 않았습니다. 다만 박사들이 예루살렘을 찾아 메시야 탄생에 대해 물었을 때 헤롯이 베들레헴을 지목해서 말했을 뿐입니다. 근데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갑자기 나타나 박사들을 인도합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동방에서 올 때 그 먼먼 길에서도 인도하지 않던 별이 갑자기 나타나서 박사들을 인도하기 시작했다는 게 말입니다. 그때 박사들은 베들레헴을 목적지로 삼아 출발했지만, 그 별은 베들레헴이 아닌 다른 곳으로 인도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므로 아기 예수님이 동방박사들을 접견한 곳은 베들레헴이 아닌 것만은 분명합니다. 이는 근거 없는 억측이 아니라 합리적인 추론입니다. 누가복음 2장 21-38절은 아기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할례를 받는 기사가 나옵니다. 그 기사의 마지막 39절은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주의 율법을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갈릴리로 돌아가 본 동네 나사렛에 이르니라”(눅 2:39). 할례 후 나사렛으로 곧장 가셨다면, 베들레헴으로 향하던 박사들 앞에 굳이 그 별이 황급히 나타나서 길을 인도하던 이유가 풀릴 것도 같습니다. 설령 누가복음 2장 39절이 마태복음의 애굽 피난을 빠뜨린 축약문장이라 치더라도, 베들레헴 구유만은 아닌 게 분명합니다. 호적을 마치면 서둘러 귀가하는 게 상식이지, 도대체 남의 구유에 몇 달이고 죽치고 있을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것도 동방박사가 올 때까지 말입니다. 물론 어떤 이들은 박사들이 아기예수 탄생일에 맞춰서 미리 출발했을 것으로 가정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헤롯이 동방박사들에게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물었다는 건(마 2:7) 그 때를 탄생일로 인식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다만 우리의 고정관념이 베들레헴 구유로 이미 굳어져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울 뿐입니다. 극적인 아기 예수와의 만남 어쨌든 박사들이 헤롯이 가르쳐 준 베들레헴 대신에, 메시아 탄생을 알려주었던 그 별의 인도함을 받았으며, 갈 바를 알지 못한 채 즐겨 따른 끝에 마침내 아기예수를 찾아서 경배한 그 대목이 감동입니다.
729 no image |목회수상| 어느 노부부의 영적 걸음마_이은국 목사
편집부
1300 2016-12-13
어느 노부부의 영적 걸음마 < 이은국 목사, 용연교회 > “생명있는 고귀한 영적대화야말로 얼마나 복되고 값진 것인지!” 주일 저녁나절에는 파김치가 되기 일쑤다. 절대다수 노령층으로 이루어진 농촌교회는 목사의 일을 도울 사람이 거의 없다보니 팔방미인이 따로 없다. 새벽부터 이리 뛰고 저리 뛰느라 잠시 쉴 틈조차 없을 정도다. 그야말로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꽹과리까지 치는 기분이다. 지난 4월 마지막 주일 늦은 오후, 쉼이 절실하고 몹시 지쳐 늘어질 무렵 낯선 의문의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주인공은 수도권의 한 교회에 출석하는 안수집사로 고향에 계신 부모님의 영혼구원을 위해 계속 기도해 오던 중 먼저 목사님한테 부탁을 드리게 됐다는 것이다. 그분은 오는 주일 어떻게든 강권하여 부모님을 모시고 낮예배때 참석할 예정인데 일이 잘 되도록 기도를 부탁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어머니는 확실하나 아버지까지는 아직은 불확실하기는 하다며 소상히 설명까지 했다. 이렇게나 흔치않은 반가운 소식이 있을까? 흐릿했던 정신이 순간 맑아지고 번뜻거렸다. 부모님이 누구시냐 물었더니 평소 마을에서 만날 때면 유난히 친절하게 대해주시고 매년 6월 개최하는 주민초청전도주일에도 꼬박 꼬박 참여해 주신 어르신이라 익히 구면이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서울에 사는 우리 작은아들과 며느리도 교회를 다닌다며 슬쩍 귀뜸해 준 것까지도 떠올랐다. 계속되는 집사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신이 출석하는 교회에서는 다음 주일 총동원전도주일 행사를 앞두고 있는데 전도대상자를 멀리 고향에 계신 부모님으로 작정했고, 이런 경우 자신이 출석하는 교회에서도 적극 환영하고 고향나들이를 흔쾌히 배려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마침내 한 주가 지나고, 주일아침에 전화가 걸려 왔다. “목사님, 오늘 제가 부모님을 모시고 교회로 가겠습니다. 교회서 만나뵙지요.” 과연 노부부는 자랑스런 아들의 손에 이끌려서 교회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깨끗한 매무새를 하고 마음까지도 고쳐먹고서는 예배자로서의 첫 발걸음이다. 마을에서 익히 알고 지내는 사이였지만 오늘만큼은 함께 예배를 드리기 위해 출석한 노부부를 대하면서 감회가 새로웠다. 또 대부분 또래인 성도들이 얼마나 반가워했는지 모른다. “아이고 왔능교?” 짧막한 인사 한마디 고작이지만 그 깊이를 결코 헤아리기 쉽지 않으리라. 분명코 새로운 친구가 되었고 주님의 자녀로서의 손을 맞잡으며 서로 반가워했다. 많은 세월 보내고 이제 주님 앞으로 오게 된 새생명에 대한 기쁨과 축복스런 환영이 배어났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께서 친히 불러주신 것이요 오직 주님께서 예비하신 주님의 자녀입니다! 팔순 노부부의 걸음마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첫 번째 출석 후 심방 때는 뜻밖의 진솔한 고백이 쏟아져 나왔다. “이제 한 가족이나 마찬가지라서 이런 말 저런 말 다 합니다.” “목사님한테 말씀을 드리고 나니 제 마음이 시원합니다!” “아는 것도 없고 아시다시피 몸이 많이 불편해서 짐지우는 것 같은데 괜챦겠습니까” “이미 승려생활을 하고 있는 동생이 있고, 저는 마을에 있는 절에 등록이 돼 있구요 올해도 이미 등을 달았는데 괜찮겠습니까?” 자신의 형편과 살아 온 얘기들을 나누며 잠시 머문 것이 두 시간을 훌쩍 넘어섰다. 적극적 질문도 멈추지 않았다 “이제 교를 믿는 거 좀 알려주십시오.” “제가 이러려고 (행사때가 아닌 정식교인 되려고)그동안 교회에 다녔던가 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묵은 응어리들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가 보다. 십 수 년 동안을 한 마을에 살면서 지금까지 나눈 이야기란 단순한 인사치레에 불과했으나 이렇듯 생명있는 고귀한 영적대화야말로 얼마나 복되고 값진 것인지! 6개월 지난 지금 팔순의 노부부는 매주일 어김없이 기다리고 준비한 듯 잘 다듬은 모습으로 목사가 손수 운전하는 승합차에 오르며 반가운 인사를 건넨다. “목사님요, 아들한테 전화를 해서 목사님의 말씀이 귀에 잘 안 들어 오는데 우짜노...” 물었더니 “어머니 이제 겨우 1학년인데 뭘 아시겠어요, 열심히 교회 출석하시면 됩니다”라고 했다며 해맑은 표정을 지었다. 그야말로 이제 한식구가 되어 손수 농사지어 거둔 들기름 한 병과 채소 그리고 정성스럽게 잰 고기갈비, 믹스 커피 한 통을 가져오셨다.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일찌감치 스스로 섬기는 모습을 터득하셨다. 올가을 주민들이 모두 참여하는 축제로 열리는 면민체육대회도 함께하기를 권하는 주변 사람들한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교회를 가야하기 때문에 함께 할 수 없다”며 새로운 관계설정에 따른 갖가지 두려움과 주저함을 말끔하게 극복하고 이른바 자원하여 왕따로 살아갈 각오가 벌써부터 시작된 것이다. 교회 안에서도 막내에 대한 화제거리가 멈추지 않는다. “영감님의 건강이 많이 좋아졌네요. 얼굴 표정이 달라지고 활기가 넘쳐요. 말씀도 곧잘 하시고, 식사도 잘 하시고... 새사람이 됐네요...”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 하신 말씀이 가슴에 와 닿는다. 주님 더 많은 새 생명들을 보내 주시고, 보다 풍성하고 은혜로운 교회가 되게 해 주옵소서!
728 no image |목회수상| 하나님께 완강한 한 인생의 낙조를 보며_김성렬 목사
편집부
1528 2016-11-29
하나님께 완강한 한 인생의 낙조를 보며 < 김성렬 목사, 소망동산교회 > “예수를 구주로 영접했다면 멋있고 아름다운 인생 살고 있었을 것” “목사님! 우리 할아버지 심방을 좀 가 주실 수 있을까요?” “예, 그렇게 하죠. 지금 교회로 오세요.” 양 할머니의 전화다. 나는 아내와 함께 양 할머니를 태우고 요양원으로 향한다. 요양원에는 할머니의 남편이 금년 90세의 고령으로 요양원에 누워있다. 이 분은 필자가 교회를 개척한 후 처음으로 전도를 한 대상이다. 이유는 교회에서 가장 가까운 이웃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벌써 15년이 흘렀다. 이 분을 주목하게 된 것은 교회를 개척하고 전도를 하는 중에 제일 먼저 만난 사람이었고 그는 신망이 두터운 이 지역의 유지였고 동네 사람들의 정신적인 지주였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이 우리 교회에 나오면 그만큼 주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가 수월할 것 같았고 전도의 효과가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이 분에게 모든 심혈을 기울여 전도했다. 그는 이 지역에서는 드물게 명문대학을 나온 인텔리요 엘리트 인사였다. 도시사람들이 들으면 웃을 일인지 모르겠지만 50-60여 년 전에는 시골에서 명문대학을 나온 사람이 거의 없었고 군대를 장교로 갔다 온 사람은 더더욱 희귀했다. 이런 정도의 학력과 이력이면 당시에는 지역의 인물이었고 국회의원 후보로도 나설만 했다. 그는 전역 후 농업행정분야에 투신해 토지개량조합(지금의 농어촌진흥공사)이라는 기관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유능하고 공사가 분명한 그의 품행은 직장 내 상하의 사람들로부터 인정과 신망을 얻었으며 승승장구하였고 최고의 자리인 조합장에까지 올랐으며 명예롭게 은퇴할 수 있었다. 이 분을 만났을 때는 은퇴를 한 후 한참 지났을 때였다. 그는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으며 그의 집은 구석구석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며 이 분에 대해 탐색을 한 결과 복음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았고 하나님에 대해서는 의외로 완강한 태도에 내심 놀라게 되었다. 그래도 이런 저런 구실과 명분을 내세워 이 분을 접하게 되었고 열심히 복음을 전했다. 그 결과 그의 부인인 양 할머니를 전도하게 되었다. 양 할머니로부터 들은 바로는 이 분이 공직에 있을 때 공정하고 청렴한 처신으로 따르는 사람들이 많았고, 불의를 보면 타협하지 않았으며, 약한 사람들에 대한 너그러운 마음에 그의 집에는 항상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고 한다. 그는 또한 집안의 장남으로 4-5명의 동생들을 가르치고 시집 장가를 보내는 등 집안의 대들보요 부모의 역할까지 훌륭하게 감당할 만큼 형제우애도 깊은 사람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그는 자연히 집안의 형제들과 주변사람들의 신망을 얻게 되고 지역의 일꾼으로 주목을 받게 되어 지역민들로부터 정계진출의 권유를 끊임없이 받았지만 한사코 이를 거절하며 자신의 분수를 잃지 않으려는 겸비함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도 의아한 구석이 있었으니 하나님에 대한 완강하고 부정적인 태도였다. 들은 바에 의하면 그의 자녀들은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친구의 전도를 받고 인근 교회에 열심히 다녔다고 한다. 웬만한 부모들은 자기가 교회에 다니지 않아도 자녀들이 교회에 다니는 것은 간섭하지 않는 것이 사회의 분위기였다. 더구나 지식인일수록 교회를 보는 시각이 긍정적이고 호의적인 반응을 보여주던 때였다. 그런데 그는 심하다고 할 정도로 자녀들의 교회 출입을 핍박했다. 어느 주일날에는 주일예배에 참석한 자녀들이 예배가 진행 중인데도 교회에 들어가서 끌어내는 해프닝 을 벌였다고 한다. 예배를 인도하던 목사님은 그 광경을 보고 얼마나 당혹스럽고 민망했을까? 그 교회의 장로님들이나 교우들 중에는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하는데 그들은 이 광경을 보고 얼마나 충격이 컸을까? 그 정도로 끝낸 것이 아니라 자녀들을 집에 데려와서는 다시는 교회에 가지 않겠다는 말이 나올 때까지 매질을 했다고 한다. 이 일로 인해서일까? 그의 자녀들은 지금까지 교회에 다니지 않고 있다. 그들도 지금은 초로의 나이가 되어 늙어가고 있다. 그동안 그에게 하나님의 존재하심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구원의 도리를 전심을 다하여 전하였다. 그는 자신의 인격과 예절을 발휘하여 상대방의 말을 가로막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었다. 그러나 그 반응은 항상 냉랭하고 싸늘했다. 조목조목 자신의 지식과 삶의 경험,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의 허물을 집요하게 지적하며 하나님을 외면했다. 그에게서는 두 얼굴을 보는 것 같았다. 자신에게는 나름대로 엄격하며 주변 사람들에게는 후한 인심과 배려를 잘 하면서도 하나님께는 완강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아마 자기 의(義)에 사로잡혔기 때문일 것으로 보인다. 이 분과 만난 지 15년이 흘렀어도 그는 여전히 예수를 받아들이지 않고 배척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교회에는 영혼들이 하나 둘씩 전도되어 모이게 되었고, 필자는 지금까지 하나님께 완강한 이 영혼을 예수님께 인도해 보려고 영적 전쟁을 계속하고 있는 중이다. 양 할머니는 지금도 예배 때마다 눈물로 예배를 드린다. 남편을 생각하고 자녀들을 생각하면 기가 막힌다며 신음과 절규를 하며 살고 있다. 우리 교우들은 이 분과 이 가정을 보면서 깊은 교훈과 두려운 신앙체험을 하고 있다. 할아버지가 하나님 앞에 머리를 숙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했다면 저 분의 인생을 얼마나 멋있고 아름다운 인생을 살고 있었을까? 저분이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의 진리를 깨닫고 살았다면 저분의 가정과 자녀들의 인생은 지금쯤 얼마나 달라져있을까? 또한 저분을 통해서 주변의 많은 이웃들이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인생을 살고 있지 않을까?’ 우리 교우들이 안타까워하는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다짐들을 한다.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예수를 잘 믿어야지!”
727 no image |제언| 교회학교의 위기와 대안_김명호 목사
편집부
1793 2016-11-16
교회학교의 위기와 대안 < 김명호 목사, 대림교회 > 한국교회 교회학교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이야기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작년 말에 장신대 박상진 교수가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교회 교육 위기의 원인으로 1위가 부모, 2위가 담임목사, 3위가 교육담당 교역자, 그리고 4위가 교회학교였다. 당연히 교회교육의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1위가 부모들의 기독교적 자녀교육관, 2위가 다음 세대를 향한 담임목사의 관심, 3위가 기독교 교육 생태계 회복, 4위가 교사의 헌신 순으로 이어졌다. 오늘날 교회교육이 쇠퇴하게 된 원인은 교회교육을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는 목회자들의 책임이 크다. 다음 세대의 신앙교육을 교회학교에 맡겨버린 것이 문제다. 사실 다음세대의 신앙교육의 첫 번째 책임은 부모에게 있다. 그럼에 신앙교육을 교회에 위탁하도록 만들었다. 신앙교육을 교회에서 맡아준다고 착각하고 부모들이 해야 할 일을 놓아버렸다. 주일에 한 시간 반 정도 예배드리고 소그룹 활동을 하는 교회학교가 아이들의 신앙교육을 책임질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 문제다. 다음 세대의 신앙교육은 일주일 내내 가정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신앙교육의 주체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 교회는 부모들을 훈련시켜서 자녀들을 잘 양육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자녀에게 신앙을 전수하고 기독교적 세계관을 심어줄 수 있도록 부모들을 지원해 주어야 한다.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신앙교육을 책임질 수 있도록 그들을 신앙교육의 전문가로 세워야 한다. 가정이야말로 자녀를 그리스도의 제자로 세워가는 첫 번째 장소다(신 6:4-9). 자녀들의 신앙교육 문제는 부모다. 가정에서 영적 부흥이 일어나야 한다. 최근에 미국의 노스포인트 가정사역자로 섬기는 레지 조이너(Reggie Joiner)는 “오렌지를 생각하라”는 모토를 가지고 열리는 오렌지 컨퍼런스를 통해 교회와 부모 모두의 영향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소개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직접 세우신 두 기관이 가정(창 1:27-28)과 교회(마 26:18)다. 교회를 진리의 상징인 노란색으로, 가정은 사랑을 상징하는 빨간색으로 본다면, 노랑과 빨강이 합쳐진 오렌지색은 교회와 가정이 협력해서 펼쳐가는 다음 세대를 위한 사역을 상징한다. 교회와 가정이 협력할 때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이제 갓 신학교에 들어간 전도사들이 교회학교의 책임을 맡는다. 그러나 신학교에 몸담고 목회자 후보생으로 2-3년 동안 아르바이트처럼 사역하고 떠나는 시스템으로는 교회교육에 소망은 없다. 교육을 전적으로 책임질 수 있는 교육전문가를 양성해야 한다. 담임목사와 함께 평생을 동역할 전문사역자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여기에는 교육을 담당하는 교역자에게 적절한 대우를 해줄 수 있는 목회환경이 조성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교육 전문가가 꼭 목사일 필요도 없다. 성도들도 교회교육에 책임을 지고 오랜 기간동안 사역할 수 있는 교육전문가가 될 수 있다. 2-3년마다 자주 바뀌는 신학생이 교회학교를 책임지는 것보다는 헌신된 평신도들로 하여금 훈련을 받고 준비시켜서 지속성을 가지고 교회학교의 철학을 세우고 흐름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학교의 위기는 시설이나 기자재 문제가 아니다. 프로그램이 문제도 아니다. 교회의 교육철학의 문제다. 교회가 제자삼으라는 주님의 지상명령에 순종하는 길 밖에 없다. 결국 가정 안에서 수직적 제자훈련이 이루어지도록 부모들을 제대로 제자훈련하는 길 밖에 없다. 교회와 가정이 함께 다음 세대를 세워갈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한다. 우물쭈물할 시간이 없다.
726 no image |제언| 한번쯤 되돌아보는 교회 십계명_강성욱 목사
편집부
1365 2016-11-16
한번쯤 되돌아보는 교회 십계명 < 강성욱 목사, 은혜교회 > 작금 교회 개혁과 관련해 많은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 이와 더불어 아래와 같은 열 가지 주제들에 대해 보다 면밀한 관심을 기울이면 좋을 것이다. 1. 말씀을 중심한 감동이 있는 역동적 예배를 개발해야 한다. 개혁주의 장로교회의 핵심은 말씀이다. 목회자는 어느 예배든 말씀을 열정적으로 선포해야 한다. 목회자는 감동적인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려야 한다. 2. 성령의 역사를 환영하고 끝까지 기도해야 한다. 건강한 교회는 성령의 역사가 있는 교회이며 목회자의 진실한 기도가 있는 교회이다. 기도하되 중간에 포기하지 말고 끈질기게 기도해야 한다. 3. 예수님을 닮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하고 그 지역의 특성을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성도들의 모델은 예수님이다. 성도는 예수님을 닮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또한 교회는 어느 지역이든 그 지역의 특수성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하며 그 지역 사람들의 아픔, 상처, 정서들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잘 살펴야 한다. 4. 목사가 영육간에 건강하고 목회동기와 소명의식이 분명해야 한다. 목회자는 영육간에 건강해야 한다. 영적인 말씀과 기도생활뿐만 아니라 육신적인 건강도 중요하다. 때문에 규칙적인 운동이 필요하다. 또한 너무 중요한 것은 목회자의 소명의식과 목회동기이다. 이 부분이 명확해야 건강하고 아름답게 교회를 세워갈 수 있다. 5. 목사는 주님의 지상명령을 실현하는 일에 매진해야 하며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며 세워가는 일에 힘을 쏟아야 한다. 6. 목표를 분명히 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 적은 교회들은 분명한 목표와 구체적인 계획들이 부족하다. 그때 그때 즉흥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적은 교회일수록 목표를 분명히 하고 장단기적인 목회계획이 철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7. 목회자는 리더쉽을 개발하고 사람을 키워야 한다. 한 교회에서 목회를 오래하다 보면 자기 개발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목사는 늘 자기 자신을 점검해야 한다. 목회자는 끊임없이 자신의 리더쉽을 개발하고 교회 안에 신실한 사람들을 계속 세워 나가야 한다. 적은 교회는 사람을 세우기가 어렵다. 그러나 한명이라도 평신도 지도자가 세워진다면 그 교회는 아름답게 성장한다. 8. 소그룹과 구역조직을 활성화 시켜야 한다. 교회 부흥의 원리는 소그룹이다. 어떤 사람은 큰 이벤트를 통한 갑작스런 부흥을 기대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부흥의 열쇠는 소그룹과 잘 훈련된 구역조직이다. 소그룹이나 구역에서 교제가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만약 이 부분이 계속 활성화되는 교회는 계속해서 부흥 성장할 수 있다. 9. 새신자를 정착시키는 프로그램에 집중해야 한다. 목회사역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새신자 정착이다. 전도도 어렵지만 정착은 훨씬 더 어렵다. 어느 교회든지 이 부분을 해결하지 못하면 절대로 성장하지 못한다. 무엇보다 목회자는 다양한 교회 정착 프로그램을 연구해야 한다. 10. 재생산에 비전을 두어야 하며 주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목회자는 재생산에 비전이 있어야 한다. 고인 물은 반드시 썩는다. 새로운 물이 계속 공급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재생산이 계속 이루어져야 하며, 받는 교회 보다 주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이상과 같은 열 가지 주제들과 관련해 교회가 자신을 새롭게 관찰한다면, 각 교회마다 어디에 우선해야 할 것인가의 방향성을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725 no image |목회수상| 상한갈대_홍문균 목사
편집부
1501 2016-11-01
상한 갈대 < 홍문균 목사, 주은혜교회 > “주님은 ‘상한 갈대’와 같은 우리를 보호하며 강하게 하는 은혜 주셔” 우리들의 감성을 자극하며 이 가을의 정취를 드러내는 자연물들은 여럿이 있습니다. 하늘거리는 코스모스, 온 산을 붉게 물들이는 단풍, 한 없이 우수에 젖게 하는 가을 비, 길바닥에 뒹구는 낙엽, 청명한 가을 하늘, 마음까지 풍요케 하는 황금 들녘, 가을의 얼굴 해바라기와 향기 그윽한 들국화, 탐스런 포도송이와 감나무에 대로대롱 달려 있는 홍시. 그리고 갈대 밭. 갈대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흔들리는 갈대’입니다. 연약한 사람들을 상징적으로 표현할 때 으레 등장하는 시적인 표현은 ‘흔들리는 갈대와 같다’입니다. ‘갈대’는 작은 바람에도 크게 흔들리는 모습으로 ‘흔들리는 마음’의 대명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갈대와 같이 흔들리는 여심’이라든지 ‘사내 녀석이 갈대처럼 흔들리다니...’라며 부정적인 이미지로 많이 사용됩니다. 성경에도 ‘갈대’를 부정적인 이미지로 사용한 곳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앗수르 왕 산헤립의 신하 랍사게가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 왔을 때에 히스기야 왕을 경멸하며 이스라엘을 향하여 “이제 네가 너를 위하여 저 상한 갈대 지팡이 애굽을 의뢰하도다 사람이 그것을 의지하면 그의 손에 찔려 들어갈지라 애굽의 왕 바로는 그에게 의뢰하는 모든 자에게 이와 같으니라”(왕하 18:21)며 애굽을 의뢰하지 말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인간의 연약함과 그 연약한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는 하나님이신가를 설명하기 위해 ‘갈대’를 일례로 사용한 곳도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최악에 처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끝끝내 포기하지 않으시고 돌보아 주실 것을 약속하시는 하나님을 다음과 같이 선언하고 있습니다.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 할 것이며”(사 42:1-3). 예수님께서도 이 성경구절을 인용하시면서 결국 연약하며 무능하며 부러질 수밖에 없는 죄인된 우리들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내는 예수님 자신께서 반드시 구원해 내실 것을 약속하며 소망을 주셨습니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보라 내가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 바 내가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영을 그에게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그는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또한 이방들이 그의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마12:17-21). 겨울이 오기 전에 가을 산천으로 나아가 바람에 한없이 ‘흔들리는 갈대’ 앞에 서 보십시다. 그래서 우리 자신들이 얼마나 연약한 ‘갈대’같은 존재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내십시다. 그리고 우리 자신이 ‘상한 갈대’임을 명심하십시다. 또한 ‘상한 갈대’와도 같은 우리를 보시며 그래도 꺾지 않으시고 보호하시며 강하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결코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언제나 상한 갈대 인생임을 잊지 말게 하옵소서!
724 no image |제언| 총회 헌의안 기각에 대한 소회_임용민 목사
편집부
1517 2016-10-04
총회 헌의안 기각에 대한 소회 <임용민 목사, 새소망교회> “총회의 결의는 언제나 표준문서와 헌법에 기초해 있어야”’ 이번 총회에서 두날개에 대하여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소요리문답과 교회정치 그리고 예배 모범에 기초하여 신학적 판단을 해달라는 헌의가 기각됐다. 기각은 소송을 수리한 법원이 그 심리 결과로 소송이 이유가 없거나 적법하지 않다고 판단하여 무효를 선고하는 것을 말한다.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에 호소한 헌의를 기각하려면, 표준문서에 근거한 답변이 기초가 돼야 한다. 또한 표준문서에 호소한 헌의이기 때문에 그 위에 근거로서 개혁신학에 근거한 성경적 답변을 제시해야 했다. 그러나 총회는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 찬반 투표를 통해 두날개에 대한 신학적 판단을 호소하는 헌의를 기각해버렸다. 총회에서 찬반을 물어서 판단할 수 있는 안건들은 표준문서에 입각해서 문제가 없는 행정적인 건들에 한정된다. 반면에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에 호소한 헌의는 진리 문제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최소한 본회에서 그것을 기각하려면, 신앙고백서와 대소요리문답과 교회정치 그리고 예배모범을 낭독한 다음에 그에 따라 두날개의 조항을 살핀 후에 가능할 것이다. 제101회 총회는 바로 이 점에서 실수한 것이다. 또한 이것은 총회의 모든 총대들이 웨민 표준문서를 따라 말하고 판단해야 할 의무를 방기한 것이다. 무려 4개 노회가 치리회의 권능으로 헌의한 사항을 총회가 표결로 처리한 것은 치리회의 권능을 사실상 무시한 것이 될 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총회의 모든 총의는 성삼위일체 하나님만 영광을 받도록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에 기초해서 드러나야 한다. 우리 총회는 실제로 총회 소집 선언서(헌법 총론 Ⅳ장)에 합신 총회 산하 모든 교회는 다음과 같은 통일적 근거를 가지고 소집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제1조, 우리는 총회의 명칭을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개혁, 현 합신)이라 하며, 총회의 역사성에 의거하여 제66회 총회로 소집한다. 제2조, 우리는 한국 장로교회의 신학적 전통인 성경적 개혁주의 신학을 고수하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대·소요리문답, 교회정치, 권징조례 및 예배 모범을 우리의 교의와 규례의 표준으로 삼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현실이 하나님의 진리를 후퇴시키는 수단이 될 수 없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버린 것이다. 웨민 표준문서에 호소한 헌의는 그 자체로 받아들여지고 엄중하게 살펴야만 한다. 왜냐하면 우리 총회는 웨민 표준문서를 따라 목회하기로 선언하고 선서하여 모인 거룩한 총회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이것을 기각하려면 성삼위일체 하나님 그분 자신의 뜻이 전체가 살펴진 진리의 총화로만 가능한 것이다. 때문에 총회는 그 헌의안이 표준문서에 근거한 것인가를 기민하게 확인해야 한다. 이 일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총회의 의장이다. 항상 총회 의장은 총대들의 발언이 표준문서에 합당하지 않은 것이라면 기각해야 한다. 왜냐하면 총회는 행정회가 아니라 예언회, 즉 거룩하신 성삼위일체 하나님 그분 자신의 뜻을 받는 진리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총회의 의장은 총대들의 발언을 표준문서에 따라 살피지 않음으로 정작 기각해야할 개인적인 발언은 기각하지 않고, 진리에 호소한 4개 노회의 호소를 기각한 꼴인 된 것이다. 결국 숫자로 확인하는 방식으로 기각된 총회의 두날개에 대한 신학적 판단을 요구하는 노회의 헌의는 여전히 기각될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이 아무리 자신들의 숫자로 진리를 억압했어도, 그 호흡이 코에 있는 존재들의 미련한 행태일 뿐이다. 기각할 수 없는 자들이 기각하고, 기각할 근거를 따르지 않고 기각했으니 그 자체가 무효가 되는 것이다. 칼빈은 이런 일들에 대해 디도서 1장 주석에서 다음과 같이 명확하게 경고하며 설명한다. “훌륭한 목사란 항상 경계하는 가운데 있어야지 침묵함으로, 악하고 해로운 교리가 잠입해 오는 것을 허용하거나, 악인들을 그냥 내버려두는 그런 교리를 확대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목사가 고집불통이며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의 입을 어떻게 막을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제기된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일수록 논쟁에서 패배할 경우 잠잠하지 않으며 공개적으로 반박을 받을수록 더욱 더 무례하게 나오기 때문이다. 그들의 악의에 불이 붙을수록 그들은 완전히 수치심을 상실하게 되고 만다. 나의 대답은 이것이다. 곧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검으로 얻어맞고 진리의 능력에 의해 수치를 당했으면 교회는 이들에게 침묵할 것을 명령할 수 있다. 그래도 반기를 들 경우에는 믿는 자들과의 교제에서 끊어 해독을 끼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할 수 있다. ‘저희 입을 막을 것이라’하는 말은 그들이 소란을 피우는 것을 그치지 않더라도 그들의 헛된 이야기를 반박하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정죄받는 사람은 그가 제 아무리 잡담을 계속한다 해도, 더 이상 할 말이 없게 되기 때문이다.” “단 한 사람의 신앙이 전복될 위험에 있다 해도,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속된 단 하나의 영혼이 파멸될 위험에 처해있다 해도 목사는 즉각 그것을 저지하기 위해 자신을 무장해야 마땅하다. 사도 바울은 온 집들이, 마땅치 아니한 것을 가르치기 때문에 전복되고 만다는 점을 우리에게 지적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건전한 교훈에서 머리카락 하나의 차이라도 보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알 수 있다.” 우리는 진리의 터요 기둥이 교회의 직원이다. 진리를 수종드는 주님의 종이다. 그러므로 진리가 훼손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교회 안에 거짓된 가르침의 유효성을 모두 제거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진리의 말씀을 따라 교회를 온전히 세우지 못한 행위를 다시 바로 잡아주실 것이다.
723 no image |수필| 아름다운 이순(耳順)을 꿈꾸다_고숙경 집사
편집부
1381 2016-09-06
아름다운 이순(耳順)을 꿈꾸다 < 고숙경 집사, 열린교회 > “오십의 산들바람 곁에서 이제는 두근거리는 육순 소녀의 꿈 꾸고 있어” 여자나이 사십대를 상상하기조차 난감해하던 때가 있었다. 여자라는 카테고리는 젊음, 아름다움, 신비로움 등 극히 주관적인 개념으로 둘러싸여져 있어 왔다. 나이 어린 시절에 막연히 사십이 저 먼 얘기 같았으니 여자나이 사십 이후가 마치 내게는 예외적인 무엇이거나 아예 상상하기 싫었거나 둘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런데 먼 일이었다고 생각조차 않던 나에게 사십대가 불현 듯 찾아왔다. 사람들 관심의 중심에서 멀어지고 생물학적 기능과도 작별을 고해야하며 소외와 쇠락함의 실루엣과 만나야하는 낙화 같은 모습이랄까? 무언가 표현하기 쉽지 않은 상실을 직면하는 나이가 찾아 온 것이다. 하지만 시어머님께서 이십대의 며느리에게 “나이 칠십이 네 옆에 있느니라”고 하시는 말씀 앞에서 내 나이 사십대는 더 이상 크게 여겨지지 않았다. 그때까지도 여전히 철부지 며느리로서 그 뜻을 알아내기가 불가하였고, 그 진중한 뜻은커녕 어머니는 어찌 저런 말씀을 하시는지 이해조차 하지 못했다. 젊은 내가 알아듣지도 못하고 그 말씀 자체만으로도 지레 늙어버리는 듯하였다. 말이란 영향력이 있는지라 나는 늙음 앞에 지레 고개 숙인 애늙은이였을지도 모른다. 예쁜 살림살이라든가 뭔가 자리 차지하고 오래오래 써야하는 물건들에 대한 흥미도 없었다. 백화점에서 사은품으로 주는 품목을 고를 때도 쓰고 없어지는 걸로 택했고, 명품이라든가 밍크털옷이라든가 이런 것도 허무했다. 한 때의 젊음인데 오히려 더 즐기고 밝히고 할 수도 있었을 터인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반대쪽에 있었다. 지금 생각하건데 오히려 나의 기질적인 소인도 한 몫을 했으리라 여긴다. 부모 슬하에서 공부하고 남편 잘 만나 시집가서 자식 낳고 잘 키우고 그 집 사람 노릇하라는 사회화를 내면화한 우리 세대 여자의 일생은 그게 미덕이었다. 나 역시 고3 담임 선생님의 백퍼센트 결정으로 대학을 갔고, 조신하게 있다 시집가서 살아야 한다는 암묵의 짓눌림에 저항 한 번 못해보고 기도 열심히 한 응답이라고 믿고 결혼하여 이제껏 살아오고 있다. 누군들 선한 선택을 하지 악한 선택을 하랴만 시각의 한계, 사고의 부자유함, 사회적 전통과 관습 등 이러한 내외부적 제한으로 택해진 사안들의 불안정성은 이루다 말로 형용하기 어렵다. 폭탄도 터지고 쓰나미도 만나고 총칼 들고 싸우는 전쟁이 아니라서 그렇지 사람 사는 세상인데 사람이 차마 다 겪지 못할 일들을 보고 듣고 그러면서 살아내고 있다. 이런 차에 사람만큼 존귀하며 사람만큼 내버려진 존재가 또 있을까 싶다. 그렇지만 사람은 선택이라 말하나 하나님은 섭리자이시고, 사람은 나이 먹음의 마이너스를 말하지만 하나님은 장년자와 노년자의 아름다움을 깨우쳐주신다. 이래서 참 좋다. 사소한 감정에 휘둘리는 풋내가 좀 덜해지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먼저 길을 알려주고, 역지사지도 할 수 있게 되고, 새옹지마에 끄덕이고, 피부의 탄력과 선은 변했지만 지난 세월의 흔적이 솔직히 드러나서 편하고, 앞으로 남을 흔적에 소망을 두고, 관계가 어떻든 예의를 갖추되 허세나 척은 하지 않을 정도의 자유로움도 알았다. 사실, 여자는 생물학적 여자로서 아름다운 게 아니고 좋은 여자가 되어가며 그 아름다움의 심연을 걷게 된다. 그 향기는 나이의 다소에 있지 않고 내면적 인품의 성숙과 겸손과 지혜로움에 기원한다. 그래서 억지로 꾸민 아름다움은 공포스러울 따름이다. 팔순의 연세에 아름다우신 분도 보았고, 겹겹이 진 주름의 향이 만져보고 싶을 만큼 맛난 분도 본다. 아쉬운 건 언제나 그랬듯이 매체를 통해 들려오는 아름다움의 캠페인은 전혀 비공감이다. 누가 상정한 아름다움인가. 상업적이고 미디어적인 아름다움에서는 화폐 냄새는 날지언정 향기는 없다. 나이 좀 들어가니 또 좋은 점은 분별력이 생긴다는 것이다. 사람을 볼 줄 알고, 사리사욕에 휘둘림이 적고, 영원한 것이나 궁극의 것에 대한 집중이 좋다. 그렇게 영의 탄력과 궁극을 향한 묵묵한 전진 속에 사십의 연소함을 뒤로하고, 오십의 산들바람을 곁에서 맛보며 매우 두근거리는 육순 소녀의 꿈을 꾸고 있다. 하여 중간 산 높이 정도를 몇 개 넘은 친구들끼리 모의를 했다. 운동하고 건강관리 잘하고 있다가 샌디에고에서 알라스카까지 포휠 드라이브를 하고 거기서 비행기타고 다시 샌디에고로 귀로하는 환갑잔치를 하자고 한 것이다. 이십 중반에 헤어져 아직 실물 확인 못한 친구도 카톡으로 실시간 소통을 하고, 이 아주머니들이 할머니에 폭 빠지기 전에 생애 최초의 일탈로 환갑잔치 아이디어를 내는 똘똘한 친구 덕에 소풍날 받아놓은 애가 되어버렸다. 그 중에서도 내가 제일 문제의 인물이고, 조국 대한민국을 열심히 살아내는 일인이다. 그러니 나 스스로 '부디 건강하거라‘ 다짐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 나를 딸로, 엄마로, 아내로, 며느리로 삼아 주셔서 감사하고 이제껏 보살펴주신 은혜가 아니면 이리 있겠는가. 만사가 모두 감사할 일이다. 그래서 나이 먹을수록 야무진 꿈이 생기기도 한다. 아름다운 연로함을, 소박하고 따스한 품음을, 햇살 같고 시원한 그늘 같은 나눔을 꿈꾼다. 그래 하나님께 간청해본다. “하나님, 저 잘 늙어가고 있나요, 봐주세요. 꼭 그리 되고 싶어요.” 그리고 친구들에게고 말하고 싶다. “친구들아, 제일 겁나는 건 너무 알아진다는 사실이야. 보기 좋은 것과 안 봤으면 싶은 그 경계가 도드라진다는 거야. 변하기는 점점 어려워지니 좋은 아줌마의 아름다움의 최대치에 접근해 가자. 우리처럼 재야에 묻힌 여인네들의 속닥거림이 진짜인거야.” 이것은 여자인 나만의 주장일지도 모르지만 어쩌랴. 우리는 나름 식민적인 이 땅을 살아가는 독립 운동가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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