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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2 |제언| ‘칼 귀츨라프 기념관 건립 참여 헌의 안’ 배경_박원열 목사 파일
편집부
1695 2016-08-23
‘칼 귀츨라프 기념관 건립 참여 헌의 안’ 배경 <박원열 목사, 고대도교회> 총회를 앞두고 칼 귀츨라프 기념관 건립 헌의 안건에 대한 배경 설명을 드리게 된 이유는 이 안건이 불러오게 될 오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과 동시에 총회 총대님들께 미리 헌의 안에 대해 충분히 숙지케 하므로 회의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함입니다. 2001년 86회 총회에서는 이미 고대도를 칼 귀츨라프 선교지로 선포하였고, 고대도 교회를 기념교회로 지정하여, 2004년 칼 귀츨라프 기념교회를 건축한 후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을 하나님 앞과 총회 앞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금번 총회에 상정된 헌의안의 내용을 통해 “또 다시 칼 귀츨라프 기념관 건립 헌의 안이 도대체 무슨 말인가?”하는 의문을 당연히 갖게 되리라 여겨집니다. 따라서 저는 11년 째 칼 귀츨라프 기념 고대도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로서 이 헌의 안을 올리게 된 배경을 상세히 설명 드리는 것이 마땅한 저의 책무라 여겨 몇 가지 내외적인 배경 설명을 부득이 드리게 되었습니다. 1. 헌의안 이해를 위한 배경 칼 귀츨라프 기념 교회가 설립된 후 매년 방문객 수가 초교파적으로 꾸준히 늘어가고 있습니다. 2016년에는 8월 현재까지 5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미 기념 교회를 다녀갔습니다. 방문 목적은 수련회를 비롯해서 선교단체 졸업 여행, 선교지 탐방 등 다양합니다. 올해 6월과 7월에는 한국 기독교 의사협회(박상은 회장)에서 의사이기도한 칼 귀츨라프가 최초로 선교했던 고대도를 방문하기도 했고, 심지어 한국교회사를 공부하던 교회가 직접 현장을 방문하기 위해 이곳 고대도 기념교회를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저는 방문객들에게 “한국 개신교 최초 선교사로서의 칼 귀츨라프의 생애와 최초 선교지로서의 고대도”에 대한 강의를 통해 선교 외적인 다른 요소보다 복음 전파의 본질적인면의 중요성에 초점을 맞추며, 한국교회에 선교 의식을 고취시키므로 제2, 제3의 칼 귀츨라프가 되어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삶을 살자고 강의해 왔습니다. 2011년 보령 시장이 고대도를 방문했을 때 제가 관광도시인 보령에 개신교 최초 선교사 칼 귀츨라프의 콘텐츠의 중요성에 대해 말씀드리게 되었는데, 이를 주의 깊게 듣고 있던 관광과 과장이 180주년 기념행사를 보령시 주관으로 해보겠다고 약속하셨고, “칼 귀츨라프 선교 180주년과 181주년 행사”를 보령시 문예회관에서 개최하게 되면서부터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급기야 보령시는 관광 콘텐츠 개발에 역점을 두고 적극적으로 고대도 해양 문화 관광지 조성 사업 추진을 위한 타당성 조사 용역을 의뢰(플랜 아이 컴퍼니)하였고, 그 최종협의회 자료가 8월9일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8월 8일(월)에는 충남노회 이재홍 노회장 목사를 비롯한 2분의 목사와 고대도 김흥태 이장이 보령시청을 직접 방문하여 행정 국장과 관광과 과장을 만나 보령시의 칼 귀츨라프 사업 전반에 대해 구체적으로 듣고 그 실행 의지를 구두로만이 아니라 2000만원을 들여 만든 용역보고서를 통해 다함께 직접 확인한 바 있습니다(총회시 보령시 최종용역보고서 상정할 예정). 2. 향후 계획을 위한 방안 보령시 마스터 플랜에 따르면 고대도 섬 전체를 “하나님이 사랑하신 섬GOD愛島”로 명명하고 칼 귀츨라프 선교사의 삶의 스토리를 도출하여 고대도 섬 전체를 한국개신교 최초 선교지로 개발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은 아래와 같습니다. <그림 1-1> 기본구성안 개념도 <표 2-2> 베를린하우스(가칭) 공간 구성-완공 후 “칼 귀츨라프 기념관”으로 바꿀 예정 참으로 놀라운 것은 수년 전부터 고대도 교회와 온 성도 그리고 이장을 중심으로 마을 주민이 꿈꿔왔던 고대도의 선교지화 계획이 마치 때가 되매 무르익은 것처럼 하나님의 섭리로 인해 구체적으로 실현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국 루터교단에서는 보령시와 2017년 마틴 루터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해 보령시와 동등하게 재원을 출연해서 칼 귀츨라프 기념관 건립 사업에 참여하기로 하였습니다. 루터회 한영복 부총회장이 보내온 내용 그대로를 인용하면 “CTS와 CBS에서도 한국교회를 대상으로 모금 운동을 적극 전개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으며 기념관에는 칼 귀츨라프와 관련한 다양한 자료들을 전시하여 고대도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 홍보할 뿐만 아니라 한국교회가 함께 이용할 수 있는 숙박 시설과 세미나실을 확보해 연구 및 수양 시설로 활용할 수 있게 하되 칼 귀츨라프 기념관 운영 주체를 칼 귀츨라프 기념 고대도 교회와 주민들이 맡는 조건이라면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또한 고대도 마을에서도 이장과 마을 주민 전체가 하나가 되어 칼 귀츨라프 기념관 부지 매입비 6억 3천만 원을 마을 공동 기금에서 부담하겠다는 의사를 이미 결의해 놓은 상황입니다. 뿐만 아니라 보령시-원산도-안면도를 잇는 공사가 3년 전 착공하여 2018년 완공예정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공사가 완공되면 칼 귀츨라프 기념교회가 있는 고대도 섬까지는 배로 불과 5분 거리로 좁혀져 한국 개신교 최초 선교지 방문객들의 접근이 훨씬 용이해질 것으로 예상 됩니다. 현재 백석대학교와 대구 동일교회(고신) 오현기 목사를 중심으로 칼 귀츨라프 학회에서는 다양한 학술적 연구와 발표를 3회째 진행하고 있고, CBS와 CTS, 기독 타임즈를 비롯한 다양한 매체들을 통해서 한국 최초 선교사 칼 귀츨라프와 고대도 섬에 대한 관심을 확산시키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이 진행되어 오는 동안 제가 ‘한 개교회를 중심으로 수양관을 세우는 식의 접근은 절대 반대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부터 불협화음이 일어나 혹독한 오해를 받기도 하고 총회 총회장과 총무 방문 시 상당한 곤란을 겪기도 하셨지만, 우리 고대도 교회와 고대도 마을, 그리고 보령시의 입장은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지난 8월 8일 보령시 방문 시에도 충남노회장과 일행 목사, 그리고 김흥태 이장이 합석한 협의회에서도 추진 주체인 보령시의 분명한 입장은 한국교회 전체가 참여함으로 칼 귀츨라프 기념관 사업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밝힌바 있습니다. 보령시 행정 국장과 관광과 과장이 크리스천으로서 이 일에 사명감을 가지고 자신들의 임기 안에 일이 이루어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자세로 임하고 있다는 점도 참으로 고무적입니다. 마치는 말 이것이 바로 칼 귀츨라프 기념교회를 섬기고 있는 목회자로서 칼 귀츨라프 기념관 설립에 관한 헌의 안건을 올리지 않을 수 없었던 직, 간접적 배경입니다. 보령시 실무자인 행정 국장도 고대도에 칼 귀츨라프 기념교회를 건립한 합신 교단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여 한국교회 전체가 적극적으로 참여해 달라고 요청한 바 있습니다. 향후 보령시를 중심으로 고대도 기념관 설립 추진위원회가 설치되고 범시민적으로 추진될 때, 기독교계에서 적극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 주어야 충청남도 도비와 국비를 받아 올 수 있다는 관계자의 말을 충남노회장과 함께 간 일행들이 직접 들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 합신 총회에서도 이에 더욱 적극 참여하여 그동안 지키고 보전하여 온 고대도 칼 귀츨라프 기념교회의 명맥을 유지하고 보령시의 기념관 건립 사업에 종교계의 대표로써 주도적 참여를 하여야 할 시점에 이르렀습니다. 이에 따라 총회 대표성을 지닌 두 명의 전담위원을 선출하여 고대도 기념관 설립 추진위원회(보령시 주관)의 활동에 긴밀하게 참여토록 허락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부디 101회 총회에서 모든 총대님들의 현명한 판단과 결정을 바라오며 이상으로 칼 귀츨라프 기념관 건립 헌의 안건 상정 배경 설명을 마칩니다.
721 no image |수필| 어린 시절 풍경화_이강숙 집사
편집부
1542 2016-08-02
어린 시절 풍경화 <이강숙 집사, 열린교회> “어려운 이웃을 만나거나 돕는 분들을 보면 마음이 숙연해지고 자신을 돌아다보게 되는 것은 어릴 적 큰아버님이 주신 교훈 때문” 노을이 붉게 물드는 저녁이 되면 어린 시절 방학 때마다 찾아가던 시골집이 생각난다. 서울에 살던 나는 방학 때마다 할머니 댁을 찾아가곤 했다. 서울에서 멀지 않은 경기도 근교의 할머니 댁은 덜컹거리는 시외버스를 2시간 정도 타고 종점에서 내려서 또 마을까지 십여 리를 걸어야 했다. 지금은 자가용이 많아 손쉽게 다녀올 수 있지만 그 시절에는 시내버스를 타고 또 시외버스를 타고 그리고 또 걸어야 갈 수 있었다. 그 시골길을 걷다보면 여름엔 노오란 참외가 열린 참외밭을 지나고 여기저기 질퍽하니 깨져 벌겋게 나뒹구는 수박밭을 지난다. 참외 서리와 수박 서리가 흔하던 그 시절에는 농작물을 지키기 위해 원두막을 시원하게 지어놓고 매미소리와 여치소리를 자장가 삼아 낮잠을 즐기시는 이웃집 아저씨를 보기도 했다. 훌쩍 키가 큰 옥수수는 수술을 흐드러지게 늘어뜨리고 옥수수 꽃을 바라보며 서로 사랑하는 눈길로 한여름을 보내고, 그 결실로 노랗게 영근 옥수수는 나의 간식거리가 되곤 했다. 겨울이면 집집마다 새끼 꼬는 재료인 짚을 쌓아둔 볏가리가 하늘높이 서 있었고 나즈막한 담장 넘어 덜컹 탁, 덜컹 탁 노래 소리는 짚으로 만든 가마니를 짜는 소리였다. 요즘이야 비닐로 견고하게 만든 포대가 인기가 있지만 그때만 해도 짚으로 만든 가마니가 최고의 자루였다. 물론 조금만 움직이면 쌀이 빠져 나오기 일수였지만 그 가마니 짜는 일, 새끼 꼬기는 농한기인 겨울에는 유일한 일거리였다. 겨울이 되면 한강을 끼고 있는 할머니 댁은 얼어붙은 강을 건너야 했다. 여름철에는 여유로의 나룻배를 타고 건넜다. 가끔은 나룻배가 건너가는 동안 배 안에 있는 물을 바가지로 퍼내며 가기도 했다. 겨울에는 나룻배가 꽁꽁 얼어 있어서 사람들은 걸어서 강을 건너야 했다. 그러나 겨울 강을 건너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얼음의 두께가 고르지 못해 잘못하면 빠지기 쉬워 여간 위험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이 긴 작대기로 먼발치를 먼저 뚜드려 보고 확인하며 건너는 방법이었다. 혹독하게 추운 날이면 얼음장에서 호령하는 소리가 찌렁찌렁 울음을 토해내기도 했다. 이렇게 힘들게 마을 어귀에 들어서면 성황당 고목이 호화찬란한 끈으로 묶인 채 나를 반겼다. 이 마을에 평안과 안위 그리고 소망을 담아 놓았을 정성이었다. 서울에서 내려온 하얀 얼굴에 체크무늬 원피스와 흰 블라우스를 입고 두꺼운 스웨터로 감싼 모습을 구경하러 나온 동네 개구쟁이 친구들이 어디서 알고 왔는지 여럿이 모여 반겨 주곤 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동네 뒷산에 올라서서 보면 강이 훤히 보여서 마을에 누가 오는지를 미리 알 수 있었다. 나도 어느새 여름철엔 시원한 강을 내려다보면서 나룻배가 떠다니는 모습을 좋아하게 되었다. 성황당 바로 옆에 있는 작은 가게가 딸려 있는 기와집은 그곳에서 터를 닦고 산지 무척 오래된 부잣집임을 알려 주었다. 지금도 소슬대문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 작은 가게는 간단한 의약품도 팔고 담배도 팔고 문구류도 파는 일종의 슈퍼였다. 그 옆에 작은 초가집이 여러 채 있었고 할머니 댁으로 올라가는 작은 언덕길 옆에는 냇가가 있었다. 그 냇가에는 징검다리가 놓여 있었는데 그 중 어떤 돌다리는 중심이 잘 잡혀있질 않아서인지 징검다리를 건너다 빠지기 일쑤였다. 여름마다 이곳에서 친구들과 물고기 잡기를 자주 했는데 홍수가 나면 어김없이 신발 하나를 떠내려 보내 어린 내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일을 당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서울에서 날 데리러 오시면서 아예 여분의 신발을 하나 더 사 가지고 오시곤 했다. 이윽고 할머니 댁 대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에 외양간이 있는데 내가 눈이 커서 큰아버지는 그 황소를 가리키며 내 친구라고 하셨다. 그래서 난 할머니 댁에 가면 먼저 소를 보며 인사를 나누곤 했다. 지난 방학에는 어린 소였는데 어느새 많이 자라 어른 소가 되어 있기도 했다. 여름철 마당에는 의례 멍석이 펼쳐져 있었다. 여름밤 찐 감자에 옥수수를 바구니에 듬뿍 담아 한 켠에 놓아두고 모깃불을 피워놓은 마당에 누워 밤하늘을 바라보며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많은 신들의 별들을 찾으면서 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때 먹었던 감자와 옥수수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이때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 멍석이었다. 그 옛날에는 멍석말이를 해서 곤장을 치기도 했다고도 한다. 시골의 저녁은 참 일찍 찾아왔다. 높은 산이 있어서인지 어느새 놀다보면 어두워져 아이들은 저마다 집으로 돌아가 동생을 돌보기도 하고 엄마를 도와 밥을 짓는 아이들도 있었다. 할머니 댁은 다른 집에 비해 높아서 이 집 저 집에서 굴뚝마다 연기가 나는 것이 보였다. 어느 날 큰아버님과 함께 앞마당에 나와 여물을 썰고 계시는 걸 돕고 있다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다른 집들은 다 굴뚝에서 연기가 나는데 몇 집만 아무 소식이 없었다. 나는 궁금한 나머지 큰아버님께 여쭈어 보았다. 그러자 큰아버님은 "날 따라 오너라" 하시며 쌀뒤주로 가셔서 바가지에 쌀을 담아주시며 서너 집 중에 한집을 가리키시며 갖다 주고 오라고 하셨다. 얼른 빠른 걸음으로 그 집에 가져다 드리니 아주머니는 고맙다는 인사를 여러 번 하시는 것이었다. 돌아와서 어떻게 아셨느냐고 물으니 양식이 없으니 불을 땔 일이 없지 않느냐고 하셨다. 그러시더니 또 한 번 쌀을 담아주시면서 다른 집을 일러주셨는데 그 집은 연기가 나는데도 다녀오라는 것이었다. 마음속으로는 너무 궁금했지만 일단 심부름을 먼저 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서 되물으니 말씀하시기를 검은 연기가 아닌 회색 연기는 연기가 나지 않으면 양식이 없는 것을 알게 되니 체면상 그저 군불만 때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세상살이가 다 그리 쉽지는 않다고 하셨다. 그때는 지금보다 더 살아가기가 힘든 세월이었으니 어린 나이에 그 말의 의미를 다 알지는 못했지만 어려운 이웃을 돌봐주시는 큰아버님이 존경스러웠다. 비록 작은 사랑이지만 실천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이제 나이가 들어 어려운 이웃을 만나거나 이웃을 돕는데 앞장서시는 분들을 보면 마음이 숙연해지고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이것은 어린 시절 큰아버님의 작은 교훈이 나를 성숙하고 넉넉하게 만들어주신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은 고향 산에 평안히 잠들어 계시는 인정 많으신 할머님과 나에게 사랑을 듬뿍 안겨주신 큰아버님, 고향은 수몰되어 갈 수 없는 곳이 되었지만 그러나 내 마음에는 언제나 살아있는 나침반이 되어 주고 있다. 여전히 병풍처럼 붉게 물드는 노을이 걸려 있을 그 산마루가 그립기만 하다.
720 no image |목회수상| 자작나무 숲 가는 길_최광희 목사
편집부
1626 2016-08-02
자작나무 숲 가는 길 <최광희 목사, 행복한교회> “어느 순간 예고도 없이 하얀 자작나무 숲과 같은 신세계가 펼쳐질 것입니다” 저는 목회하느라 언제나 가족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저의 세 아들은 집사 임명을 받은 적도 없지만 교회에서 집사도 되었다가 청소부도 되었다가 가끔은 전도사가 되기도 합니다. 올해는 이런 가족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가족들을 데리고 2박 3일이나 휴가를 떠났습니다. 마침 친분이 있는 군인 가족이 있어서 도움을 받아 강원도 인제에 다녀왔습니다. 인제군 원통면은 제가 대학생 시절에 대학생 병영 체험을 왔던 곳인데 무려 35년 만에 와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옛날에는 ‘인제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 하던 인제인데 지금은 교통도 좋아지고 좋은 관광지도 많아진 것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우리나라가 그만큼 잘 사는 나라가 된 증거입니다. 인제에 오기 전에 검색을 해 보니 원대리 자작나무 숲이 꼭 가볼만한 곳이라고 추천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인제에 오자마자 숙소에 짐도 풀기 전에 자작나무 숲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상황이 제가 바라던 것과는 좀 달랐습니다. 제가 바란 것은 차에서 내려 한 100미터 쯤 걸어가면 하얀 자작나무 숲이 펼쳐지고 시원한 그늘과 편안한 벤치가 있어서 두런두런 대화하고 즐기는 것이었습니다. 가지고 온 간식이 있다면 더 분위기가 좋겠죠. 그런데 주차장에 차를 두고 자작나무 숲이라는 곳으로 걸어 들어갔는데 자작나무는 아직 보이지 않고 비탈진 산길이 시작되었습니다. 미리 검색해본 정보로는 900미터 코스가 있고 3키로 미터 코스가 있다 길래 가볍게 900미터만 다녀올 참이었는데 들어가다 보니 갈림길이 나왔습니다. 내려오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넓은 길은 많이 가파르다고 합니다. 그래서 좀 좁고 평탄한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완전히 기대 밖이었습니다. 이 세상에 편한 길이란 없습니다. 저는 자작나무 숲으로 가는 길이 마치 천국 가는 길과 같다고 생각하며 그 길을 걸었습니다. 날씨는 덥고 습도는 높은데 길은 가도 가도 끝이 없고 자작나무는 몇 그루 보이는가 싶더니 다시 흔한 잡목들이 펼쳐지기를 반복했습니다. 옛날에 군복무하며 행군하던 생각이 났습니다. 가볍게 생각하고 동행하던 아내에게 힘들면 무리하지 말고 그냥 돌아가자고 했지만 아내는 오기가 발동해서 자작나무 숲을 보고야 말겠다고 했습니다. 간간히 내려오는 분들에게 물어보면 조금만 더 가면 자작나무 숲이 있다는 희망적인 말을 들려주었습니다. 우리 신앙생활에서도 먼저 은혜를 체험한 분의 간증이 힘든 성도에게 꽤 위로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가다가 시원한 물이 흐르는 계곡을 만나 손도 씻고 시원한 물 한 모금 마시고 나니 힘이 좀 났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천국 길에도 때로는 시원한 계곡을 만나게 하셔서 새 힘이 솟게 하십니다. 그런데 거기서부터 길은 더 험해지고 좁았습니다. 좁은 숲속이라서 좀 시원해지긴 했지만 습도는 더 높아지고 땀은 비 오듯 했습니다. 막내아들은 그만 가고 싶다고 돌아섰다가 다시 힘을 내기도 했습니다. 도대체 내가 뭐하는 짓인지, 그깟 자작나무 숲을 봐서 무엇을 하겠다고 이 고생을 해야 하나 싶었습니다. 내려오는 분에게 더 자주 자작나무 숲에 대해 물어봤더니 여전히 조금만 가면 된다고 했습니다. 남은 것은 오기 밖에 없어서 계속 올라갔는데 갑자기 눈앞이 환해졌습니다. 온 산에 모든 나무가 하얀 자작나무 숲이 나타났습니다. 거기에는 신세계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연신 감탄하며 카메라는 꺼내서 360도를 회전하며 동영상을 찍었습니다. 조금 뒤쳐진 아내도 드디어 자작나무 숲에 도착해서는 첫 마디가 이걸 못 보고 갔으면 얼마나 후회할 뻔 했느냐고 했습니다. 줄줄 흐르는 땀을 좀 식히고 기념사진을 찍은 후에 돌아오는 길은 아까 사람들이 가파르다고 말해 주었던 코스를 선택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결국 우리가 산길 3킬로미터를 다 올라오고 말았습니다. 사실은 완만한 길로 오느라 더 멀리 돌아서 올라온 것입니다. 다른 코스로 내려오는 길은 넓고 평탄해서 좋았습니다. 만일에 다시 온다면 이 길로 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길을 3킬로미터 계속 내려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가파른 길을 계속 걷는 것보다 차라리 돌부리도 있고 계곡도 있던 그 길이 나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천국까지 갈 때에 누구나 한 길을 택해서 걸어갑니다. 누구는 목사로 살고 누구는 사업가로 살고 혹은 음악가로 혹은 농부로 살아갑니다. 또 이 남자 혹은 저 여자를 택해서 가족이 되어 함께 살아갑니다. 그런데 어떤 길을 가든지 누구나 자기 길이 가장 힘들다고 생각하며 다른 사람의 길을 부러워합니다. 그냥 살기도 힘든 세상을 믿음으로 살자니 훨씬 힘이 들어 때로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천국을 포기하고 싶습니다. 때로는 은혜 받은 분들의 간증에 용기를 내고 때로는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억울해서 오기로 걸어갑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예고도 없이 하얀 자작나무 숲과 같은 신세계가 펼쳐질 것입니다. 그러고 나면 다른 사람에게 포기하면 후회하게 된다고 자신 있게 말하게 될 것입니다. 자작나무 숲으로 가는 길은 천국 가는 길의 모형이었습니다.
719 no image |제언| PMS의 미래를 생각한다_허드슨 선교사
편집부
1290 2016-08-02
PMS의 미래를 생각한다 <허드슨 선교사, 전 PMS 총무> PMS의 전신은 총회 선교부이다. 2004년도에 “총회 선교부”는 “총회(합신)세계선교회”라 명칭을 변경하고, 영문 표기는 “PMS(Pioneering Mission Society)”라고 쓰게 되었다. 그로부터 12년의 세월이 흘렀다. PMS는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 12년 전 “선교회(PMS)”로 독립함에 따라, 매년 9월 교단 총회에서 선교부장과 부원을 위촉받던 “총회 상비부” 체제에서 벗어나, 매년 10월 “선교회(PMS)” 자체의 이사회 총회에서 PMS 임원을 선출한 후 다음해 교단 총회에서 인준을 받게 되었다. 그만큼 PMS 운영의 자율성과 전문성, 책임성이 높아졌던 것이다. 이는 선교행정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 매우 바람직한 변화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12개 성상이 흐른 지금, PMS는 어떤 변혁이 또다시 필요할까? 12년 전에는 자율성 확보가 관건이었다면, 지금은 오히려 교단의 품으로 돌아가서 교단의 교회를 품고 “교단 선교회”로서 탈바꿈해야 할 때이다. 그래야 희망의 미래가 열릴 것이다. 이것은 필자가 2013년 3월부터 금년 1월까지 3년 가까이 PMS 본부에서 봉직하면서 몸으로 느낀 작은 결론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결론에 이르렀을까? 필자 재임 중에는 교단 교회들 가운데, PMS와 관계하는 교회는 250여 교회 정도였다. 아마 지금도 크게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교회들은 선교를 아예 하지 않는 교회일까? 그렇지 않다. 아마도 다른 선교단체를 통해서, 또는 교회가 직접 선교사와 손잡고 선교를 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 한국에는 WEC, GP, OMF, 바울선교회 등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에 등록된 선교단체만도 123개이며, 12개 교단 선교부가 있다. 그런데 PMS와 현재 관계하고 있는 합신 250여 교회들 중에도 PMS를 123개 선교단체 중 하나쯤으로 관계하고 있는 교회도 많다. 그렇다면 과제는 자명하다. PMS가 명실상부한 “교단 선교회”로 거듭나도록 지금 배전의 노력을 경주할 것인가? 아니면 안주해서 점점 더 123개 선교단체 중 하나 정도의 선교기관으로 위축되어갈 것인가? 지금 PMS는 큰 전환기에 접어들었다. 지난 7월 7일 본부 사무실을 이전, 서울 송파구 시대를 마감하고 수원 장안구 시대로 접어들었으며, 이에 따른 리모델링 비용 마련도 시급하다. 적극적으로 교단 교회들 및 성도들의 참여를 유도해서 함께 가야 할 때이다. 소액이더라도 매달 5,000원씩 정기후원하는 성도들을 다수 확보하면 재정 압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이 방법은 이미 OMF와 고신선교회(KPM)에서 성공적으로 정착시켰기 때문에 한국 선교계에서는 널리 알려진 사례이다(OMF는 실질적으로 3,600명 정도가 매달 합 1,800만원씩, 고신선교회는 4,690명이 매달 합 2,345만원씩 정기후원하고 있다고 한다). 월 5,000원 소액 후원자를 다수 확보하려면 PMS 본부에서 분명한 의지와 목적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추진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본부 총무 외에 본부 선교사를 2-3 가정 더 확보해서 선교사들이 헌신적으로 각 교회를 순방하면서 “선교축제주일”을 운영, 지역교회의 선교활성화를 도와야 한다. 이것은 선교사들 힘만으로는 안 되고, 본부 집행부에서 “선교회(PMS)”는 역시 선교사가 중심이 돼서 움직이고 활발하게 일 할 수 있도록 밀어주고, 그렇게 구조를 만들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와 아울러, PMS 운영에 범교단적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적극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교단 교회들과 PMS가 한 마음이 되어 함께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숨어 있는 재정(예를 들어 선교에 뜻있는 장로님이나 권사님 등을 통해서)을 찾아서라도 선교센터 리모델링 비용을 다각도로 마련해 주시리라 믿는다. 이에 PMS는 어찌해서든지 교단 내의 뜻있는 많은 분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오랜 기간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분들은 이제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하면서 자진해서 백의종군하는 위치로 물러선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다. 교단 총회장의 임기는 1년일 뿐만 아니라, 연임하는 사례도 극히 드문데 반해, PMS 이사장 임기는 2년, 회장 임기는 3년이다. 또한 각각 중임까지 가능하다. 따라서 현 규정상으로는 한 분이 이사장 4년, 회장 6년, 합 10년까지 장기적으로 PMS를 이끌어 갈 수 있다.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다 보니 그 목사님의 교회도 피로감이 누적될 뿐만 아니라, PMS는 교단 전체를 아우르기보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인적 구성이 좁아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제 신임회장의 취임을 계기로 금년 10월 PMS 이사회 총회는 범교단적인 관심을 이끌어 내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축제의 한마당이 되길 간절히 기도드린다. 작은 변화와 실천이 밝은 미래의 물꼬를 터가는 것이 아닐까? “합신이 잘 돼야 하고, PMS가 잘 돼야 한다”라고 하시던 어느 임원 목사님의 사랑 어린 호소가 귓전을 때린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간 수고하셨고, 앞으로 수고하실 임원 및 이사님, 성도님들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친히 PMS의 밝은 미래를 열어 가시리라 믿는다.
718 |제언| “기독교개혁신보와 카톡 친구가 되어 주세요!!”_안정위 장로 파일
편집부
1416 2016-07-19
“기독교개혁신보와 카톡 친구가 되어 주세요!!” <안정위 장로, 기독교개혁신보사 IT담당, 세대로교회> 지난 6월25일자 기독교개혁신보 8면에 “카카오톡으로 <기독교개혁신보>를 받아 보세요!” 제언을 통하여 기독교개혁신보와 ‘카톡친구되기운동’이 시작 되었습니다. 우리 교단은 물론 타 교단의 성도까지도 관심을 가지고 친구가 되고 있으며,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많은 분들이 기독교개혁신보와 카톡친구가 되었습니다. 이 ‘카톡친구되기운동’을 통하여 우리 기독교개혁신보 독자들의 저변이 확대되고 있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간단하고 편리하게 스마트폰을 통하여 기독교개혁신보를 구독할 수 있는 ‘카톡친구되기운동’에 많은 참여와 호응을 부탁드립니다. 지난 호에 소개드린 카카오톡에서 “기독교개혁신보”와 친구 되는 방법을 다시 한 번 더 상세하게 소개하겠습니다. 첫째 방법은 카카오톡 앱을 통하여 친구가 되는 방법과 두 번째 방법은 큐알코드를 스캔하여 친구가 되는 방법, 세 번째 방법은 지정 URL을 접속하여 친구가 되는 방법 등 세 가지 방법을 통하여 기독교개혁신보와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1. 카카오톡 앱을 통하여 기독교개혁신보와 카톡친구 되는 방법 ■ 카카오톡 앱을 설치하고 실행합니다. ■ 카카오톡에서 친구 창으로 이동합니다 ■ 상단의 플러스 친구추가 버튼을 클릭 합니다 ■ 상단 플러스 친구찾기 검색창에 "@기독교개혁신보"를 입력 후 우측 상단의 찾기를 클릭합니다 ■ 잠시 후에 "기독교개혁신보"가 검색되어 나타납니다 ■ 우측에 있는 플러스 친구추가버튼을 클릭합니다 2. 큐알코드를 통하여 기독교개혁신보와 카톡친구 되는 방법 큐알코드를 스마트폰에서 스캔하면 간단하게 기독교개혁신보와 카톡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3. 해당 URL을 접속하여 친구가 되는 방법 http://plus.kakao.com/home/@기독교개혁신보 인터넷 주소로 접속하면 기독교개혁신보와 카톡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위에서 본 것처럼 세 가지 방법 중 한 가지 방법으로 기독교개혁신보와 카톡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기독교개혁신보와 친구가 되면 카카오톡을 통하여 최근 발행된 기독교개혁신보를 스마트폰에서 즉시 볼 수 있습니다. 우리교단의 온라인 소통이 확대 될 수 있도록 기독교개혁신보와 “카톡친구되기운동”에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간편하게 스마트폰에서 카카오톡을 통하여 기독교개혁신보를 구독해 주시고 기독교개혁신보의 발전을 위하여 좋은 의견도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제 다양한 디지털 방식을 통하여 기독교개혁신보와 독자간의 소통이 긴밀하게 되면 우리 교단의 발전은 물론 전 세계 선교에 큰 영향을 끼치는 기독교개혁신보가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감사합니다.
717 no image |목회수상| 하나님의 선한 손길의 도우심_남웅기 목사
편집부
1518 2016-07-19
하나님의 선한 손길의 도우심 <남웅기 목사, 바로선교회> “거지 나사로 같은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들먹이는 것은, 주의 이름을 부르는 곳이라면 예외 없이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한 줄 믿기 때문입니다” 수원 원천동에 합신 건물이 들어서면서 입학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그때가 1985년이었으니 벌써 30년 세월이 훌쩍 지나버렸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우리교회는 하나도 변한 게 없습니다. 예나 제나 안타까움이요, 난처함이요, 애면글면 그 자체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아무 것도 못한 채 우두망찰하며 시간만 축낸 건 아닙니다. 우리는 비록 건물은 세우지 못했으나 그 엮어 온 역사를 자랑하며, 내세울 규모는 없으나 부르고 싶은 노래는 엄청 많습니다. 거지 나사로 같은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들먹이는 것은, 주의 이름을 부르는 곳이라면 예외 없이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한 줄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 이것이 어디 우리 교회만의 일이겠습니까? 모든 약한 교회에도 동일한 하나님의 영광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미처 못다 부를 노래의 주제는 에스라처럼 ‘하나님의 선한 손길의 도우심’입니다. 즐겨 듣는 이 없을지라도 우리는 이 노래를 불러야만 합니다. 제가 여러 번 그 은혜를 경험하게 된 것은 이를 널리 증거하게하기 위한 그분의 뜻인 줄 믿기 때문입니다. 먼저, 1995년도 대구 상인동 가스폭발사고에서의 선한 손길의 도우심을 들 수 있습니다. 사고시간은 그해 4월 28일 07:52입니다. 그 사고현장은 늘 엄청 많은 차로인해 장시간 정체되던 곳이었습니다. 당시 제 집은 사고현장에서 차로 불과 5-6분 거리입니다. 당시 저는 제 아이를 통학시키면서 매일 너덧 명의 동네학생들을 통학시켜주던 참이었습니다. 물론 무보수였습니다. 그런데 며칠 새 그들이 하나둘 줄어들더니만 사흘 전에는 급기야 제 중3 아들만 제 승합차에 달랑 남게 되었습니다. 제 아들뿐이라면 다른 길로 갈 수도 있었습니다. 그간 굳이 상인동 그 사고현장을 지났던 것은 오로지 다른 학생들의 편의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내일은 다른 길로 가보자’ 아들과 약속까지 했지만 이틀 전에도 우리는 습관상 그곳을 통과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작심하고 다른 길로 접어든 바로 그날 그 시간 그 곳에서 사고가 나고 말았습니다. 흡사 롯과 그 가족이 소돔성을 벗어나던 것 같은 섬뜩한 경험입니다. 또한, KBS 우리말 겨루기 녹화장에서 하나님의 선한 손길의 도우심을 들 수 있습니다. 2013년 7월 9일은 특별한 경험의 날입니다. 고유어를 익히는 기쁨으로 그 방송을 즐겨보다가 녹화에 참여하게 됐는데, 어쩌다가 달인까지 되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제게 대해 한글박사니 우리말 천재니 부르지만 실상은 헛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그때 우승자를 가리는 문제에서 단번에 500점을 얻어 전세를 뒤집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나온 제시어가 <밑절미>였습니다. ‘<사물>의 <기초>를 이루는...’ 까지는 알겠는데 <본디>부터 있던 부분’에서 ‘본디’라는 말은 초침 돌아가는 순간에야 떠오른 영감이었습니다. 마지막 15문제 십자말풀이는 어쩜 저를 위해 출제한 것처럼 모두 아는 문제였습니다. 그땐 정말 소름 돋는 듯한 짜릿함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19년에 걸친 제 간경화에 그분의 선한 도우심의 손길이 있었습니다. 제가 간염으로 사경을 헤매던 때가 1998년 봄이었고, 2001년도엔 간경화 진단을 받았으며, 급기야 2004년 9월부턴 새벽기도를 중단해야만 했습니다. 근데 불과 며칠 전, 7월 11일의 기적이었습니다. 물론 최근 2-3년간 B형 간염 균의 수치를 헤아리는 DNA 수치가 100단위에서 안정되더니만 지난 4월초엔 마침내 0이 됐습니다만, 이처럼 굳어진 간이 회복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날, 모처럼 <파이브로 스캔>이란 검사를 했습니다. 통상 간 조직검사, 간 탄력도 검사라고도 합니다. 1부터 100까지 수치 중에 5미만은 정상인의 간, 10이상은 간경화라고 합니다. 2008년도 첫 번째 검사에선 16.3이 나왔는데 7월 12일 조사에선 4.4가 나왔습니다. 아직 항체가 생기지 않아 약은 계속 먹고 있지만 정말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 성도들이 기뻐하고 노회원들이 축하하는 가운데, 비록 보이는 것으로 드러낼 게 없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노래할 수 있게 된 게 모두 감사제목입니다. 이제 미처 못다 부른 노래를 목청껏 부르며 진액을 쏟겠습니다.
716 no image |목회단상| 서울서 둘째로 잘하는 집_전상일 목사
편집부
1379 2016-07-19
서울서 둘째로 잘하는 집 <전상일 목사, 석광교회> “누가 보더라도 맛과 멋이 어울러 지고, 속이 꽉 찬 교회 되길” 종로구 삼청동에 가면 이름이 독특한 맛집이 하나 있습니다. ‘서울서 둘째로 잘하는 집’ 이라고 하는데, 단팥죽을 전문으로 하는 집입니다. 이 맛집은 오전 11시에 문을 열고 밤 9시면 문을 닫는 데, 갈 때마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풍경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1976년 4월 19일 문을 연 이래, 그 자리에서 단일 메뉴인 팥죽으로 40년을 이어왔고, 그것도 이제는 입소문을 타고 삼청동에 가면 꼭 들러야 할 집이 되었으니 성공한 맛집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이 블로그를 통해 칭찬한 것을 보면서 역시 ‘맛 집은 다르기는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다지 비싸지 않은 가격대에 달랑 나온 팥죽 한 그릇이 뭐가 다르겠나 싶다가도, 막상 음식을 접하는 순간 엄지손가락을 치켜 들 수밖에 없습니다. 설탕을 사용하지 않고 팥을 곱게 갈아서 오랜 시간 끓인 팥죽 위에 계피가루와 은행, 찐 밤, 팥 알갱이로 고명을 올린 음식은 누가 봐도 맛깔나고 정성까지 담겨 있으니 소문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이 집을 여러 번 드나들면서 상호에 의문점이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냥 ‘제일 맛있는 집’이라고 해도 괜찮을 텐데, ‘왜 두 번째 맛있는 집’이라고 정했을까?” 사람들의 의하면, 겸손한 마음으로 배우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고도 하고, 장사 전략의 일환으로 그렇게 했다고 하고, 팥죽집 사장님의 어머니가 첫째이고, 가업을 이은 자신은 둘째이기 때문에 그렇게 정했다고 합니다. 그건 그렇다 치고, 분명한 것은 이 집이야 말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첫째라는 것입니다. 이 집을 다녀 온 후로 지금까지도 여운이 남는 것은 그 맛과 멋이 단연 일품이기 때문입니다. 대개 유명하다는 맛집의 경우 겉은 화려하고 구미는 당기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집은 겉(유명세)과 속(내용)이 같았습니다. 근처 주변에는 여전히 ‘원조’라는 간판으로 소비자의 마음을 사려는 맛 집들이 많았지만, 고객들의 마음을 쉬 훔쳐가는 집은 별로 없었기 때문에 이 집에 자꾸 내 마음이 베임을 당하는 것 같습니다. 하여간 삼청동의 이 팥죽집, ‘서울서 둘째로 잘하는 집’을 갈 때마다 마음이 자꾸 끌리고, 뭔가 여운이 남는 것을 애써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들의 교회가 이랬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교단이 이와 같았으면 좋겠습니다. 목회자인 저도 그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우리는 두 번째라고 말했으면 좋겠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맛과 멋이 어울러 지고, 속이 꽉 찼으면 좋겠습니다. 쉽게 접하는 교회 홍보물과 주보 겉면에 새겨진 교회소개를 보면 마치 우리들의 교회는 완벽한 듯 보입니다. ‘3대 부흥이 일어나는 교회’, ‘가고 싶은 교회, 머물고 싶은 교회, 자랑하고 싶은 교회’, ‘가정 같은 교회, 교회 같은 가정’, ‘가정을 살리고 교회를 살리고 세상을 살리는 교회’, ‘같은 말, 같은 마음, 같은 뜻을 하는 교회’ 등등. 그렇다고 이런 표어가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저 또한 유사한 표어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겉에서 보는 것처럼 그 내용까지도 감동과 여운을 주고, 주님을 기쁘게 해드렸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다른 교단이나 교회에 비해서 연약해 보일지라도, 교회 프로그램이나 행사들이 그리 세련되어 보이지 않더라도, 그 안에서 회복되고 치유되고 사람 살리는 일들이 계속되는 교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어떤 분은 교단에 대한 자부심이 지대한 분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자기 목회가 개혁주의의 선봉에 서있다고 늘 말합니다. 교회설립과정, 설교연구방법과 전달방식, 본문과 찬송가 선택, 목회방향설정에 대해서 늘 첫째라고 말합니다. 직접 그렇게 말하지는 않아도 다른 스타일의 목회를 쿨(Cool) 하게 인정하지 않는 것을 보면, 본인이 언제나 정답이며 첫째라는 생각을 하는 듯합니다. 물론 우리는 어느 장로회 교단보다도 그 정체성이나 정통성에 있어서 단연 최고이며 둘째가라면 서러운, 단연 개혁주의 신학에 있어서 보루(堡壘)입니다. 그래서 어깨에 힘 좀 들어간 채로 신학교도 다녔고, 개혁교회를 만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 교회들의 모습과 목회자들의 현장을 보면, 이것은 순전히 우리들만의 착각과 나르시스에 빠지지 않았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정작 수십 년간, 목회 현장에서 싸우다보니 비로소 우리는 첫째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제야 강단 앞에 바싹 엎드려 엉엉 울어야 생명을 살리는 설교, 하늘의 능력을 덧입는 목회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만이 결코 원조나 정통이나 첫째가는 교단과 교회가 아니라는 점을 절실히 깨닫고, 겸손히 엎드려 주의 긍휼을 구할 때에야 그리스도 예수의 영광의 광채가 나타남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보잘 것 없는 모습으로 광야에 서서 자신은 결코 첫째(메시아)가 아님을 외쳤습니다. 자신은 늘 둘째이며, 첫째인 그리스도를 예비하러 온 자임을 천명했습니다. 주님은 이러한 세례 요한을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첫째로 높여주셨습니다(마 11:11). 이 글을 마치면서 다시 한 번 ‘서울서 둘째로 잘하는 집’의 대박 비결을 반추(反芻)해봅니다. 이 집은 스스로를 둘째라고 낮추었다는 점입니다. 또한 단품메뉴, 곧 초심을 잊지 않고 단팥죽 하나로 40년을 승부했다는 점입니다. 무엇보다도 겉보다 속이 꽉 차있었다는 점입니다. 우리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좋은 포도주 맛이 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우리를 향해 맛과 멋이 다 있다고 엄지를 치켜 들으시고 칭찬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왠지 오늘 같은 날에는 삼청동의 그 팥죽집이 더욱 생각이 납니다.
715 no image |목회수상| 나에게 맡겨진 일의 가치_이대원 목사
편집부
1258 2016-07-19
나에게 맡겨진 일의 가치 이대원 목사, 제주선교100주년기념교회 “하나님의 은혜 앞에서 오늘도 우리의 일에 최고의 가치 부여해야” 1908년 9월 7일에 조선예수교장로회(독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이기풍 목사는 한국 최초의 선교사가 되어 제주도로 파송을 받았다. 이기풍 목사의 순교적 복음의 불씨는 전 제주도를 불태웠고 그 열매로 100년이 지난 지금 410여개의 교회에서 수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곳 제주에서 성도들의 명예와 자랑과 복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 교단에서도 매우 의미 있고 뜻깊은 이곳에 지난 5월 10일 제주선교100주년기념교회라는 이름으로 교회를 설립하였고 필자는 초대 목사로 부름을 받았다. 제주도는 무속신앙이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고 가족, 친족 간의 전통과 유산이 매우 강하여 한 영혼을 전도하기란 여간 만만치 않은 특수한 지역이다. 게다가 역사적으로는 4.3 사건 이후 아픔의 골이 깊어 타지인과 소통하는 일조차도 적지 않게 버거운 것 역시 복음 전함에 큰 걸림돌이 된다. 필자가 이곳 제주100주년기념교회에서 여장을 풀고 목회를 시작한 지도 2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남포교회에서 오랜 세월 부목사로 섬기면서 양들을 사랑으로 돌보고 많은 영혼들에게 도움을 주었다고 자부하던 내 자신은 취임 2개월이 지나서야 비로소 머쓱해짐을 느끼게 되었다. 그동안 동역자들과 교회 사무실 직원들과 남포교회 성도들이 필자에게 너무도 많은 사랑과 도움을 주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일들을 내 자신이 해결하고 책임져야하는 소위 맥가이버(미국 드라마 주인공 이름)식 목회를 해야 한다. “떠나요~ 둘이서 모든 것 훌훌 털어버리고~ 제주도 푸른 밤~ 그 별 아래~~” 많은 이들이 즐겨 애창하는 노랫말처럼 어떤 분들은 세계 7대 자연경관에 선정되고 누구나 인생 말년에 한번쯤 살고픈 제주에서 목회를 하니 부럽다며 아낌없는 박수와 격려를 보내온다. 그런데 그 흔한 제주도의 비경을 돌아보고 바닷가에 위치한 멋진 카페에서 선글라스를 끼고 값비싼 커피를 마시며 자연을 음미할 여유조차 없음이 지금의 필자의 처지이다. 눈뜨면 한밤중에 가득 채워진 예배실 제습기의 15L 물통 두개를 8시간마다 비워야 하고, 이름 모를 다양한 벌레들과의 전쟁이며, 객실에 손님 맞을 준비, 퇴실 후 청소, 이불과 타올 세탁 및 건조 등 해야 할 일이 태산이다. 게다가 교회 앞의 약 100여 평 되는 잔디와 잡초들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자는 것인지 돌아서기만 하면 왜 그리도 성큼 자라는지 모를 정도이다. 그래서인지 지난 세월 동안 도와주신 모든 분들의 고마움을 잊을 수 없다. 교회당을 떠나 잠시도 자리를 비울 수 없다. 지나는 관광객들이며 급한 볼일 보는 이용객들을 위해 항상 열려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혼자말로 “아, 이것 또한 목회구나” 하며 하늘을 한번 쳐다보고 웃는다. 그리고 감사하게 된다. 이곳에 100주년교회가 설립된 이후 5명의 새 가족이 탄생했다. 이 일을 통해 한 영혼의 가치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귀하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배우게 된다. 이들 앞에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일이 너무나 감격스럽고, 예배를 마치고 헤어질 때면 이들을 보고 싶어 하면서 한 주간이 또 기다려진다. 작년 초에 합신 6회 동기 모임자리에서 한 친구가 물어왔다. “이 목사! 교회를 사임하고 무엇이 가장 섭섭하더냐?” 즉답했다. “설교를 못하는 거다.” 강단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수 있음은 목사에게는 최고의 명예요 기쁨이다. 강대상 아래 한 영혼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목사를 바라보는 그 시선을 어찌 말로 다 설명할 수 있겠는가. 설교를 잘하고 못함은 그리 중요치 않다. 하나님께서 편을 드시면 한 영혼이 은혜를 맛보고 치유되며 회복을 입는다. 하나님의 일을 너무 거창하게 생각지 않아야 한다. 말씀전하는 일과 내가 속한 모든 영역 안에서 지극히 평범하고 지루하다시피한 일상이 곧 하나님의 일이다. 그래서 매주 반복되는 말씀선포와 주님의 양을 사랑함과 잔디를 깎고 빗자루를 벗 삼아 자족하며 내 자리를 묵묵히 지키며 살아감 속에서 목회의 부요함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를 충성되게 여겨서 이 자리에 있게 하시고 그 일을 맡기신 것이 곧 하나님의 은혜 앞에서 오늘도 우리에게 주어진 일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해야 하겠다.
714 no image |제언| “자살을 살자로!”_김대근 목사
편집부
1318 2016-07-19
“자살을 살자로!” <김대근 목사, 북서울노회 특수전도목사> “계층과 지역에 맞게 준비한 프로그램 통해 자살을 미연에 방지해야” 얼마전 KBS 명견만리에 출연한 손봉호 교수가 우리 사회의 진정한 변화와 희망은 두 가지 곧 기부문화와 자원봉사문화라고 제시하였다. 예수님은 죄로 더러워진 세상에 오셔서 그 분의 모든 것을 기부하셨고 또 복음전파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시면서 자원해서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셨다. 이에 근거한 기독교는 영혼 구원, 생명, 사랑의 참 종교이다. 강도 만난 이웃을 지체하지 않고 달려가 만전을 다하는 선한 사마리아인에 관한 예수님의 비유는 모든 기독자에게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가슴 시린 말씀이다. 그러나 우리는 대부분 그렇게 살지 못한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감옥에서 스스로 자결하려고 했던 간수를 일보 직전에 막아줌으로 자살을 방지하고 아울러 간수와 그 가정을 구원하였다. 또한 이 계기를 통해서 빌립보 지방을 유럽 선교의 전진기지로 삼은 것은 대단히 괄목할 만한 사건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OECD 국가 중 10년 연속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그러나 이 글을 쓰면서 그래도 작은 기대와 긍정의 마음을 가져본다. 일 년에 1만 5천 명 정도가 가족과 우리 사회에 감내하기 힘든 트라우마와 자살 전염성을 안겨주고 떠난다. 일 년에 세월호 같은 배가 몇 척이나 침몰되고 있는지 모른다. 1년에 5천명 전 후의 자동차 사고 사망자보다 3배나 된다. 우리 사회는 단지 “성장통” 정도로만 생각하고 그 누구도 나서서 책임을 지지 않는다. 현장에서 목격된 드러난 사실은 자살자의 절반이 종교인들이고 우리 개신교 교인들의 숫자로 상당수에 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 교회는 지난 십수년 간 각고의 노력으로 교회가 가장 앞장서서 자살자 수 10만 명당 30명에서 20명 이하로 줄였다. 영국 교회는 지역별로 죽음의 주일을 준비하여 웰 다잉(Well Dying)에 대해 토론하고 고민하며 기도의 시간을 가진다고 들을 적이 있다. 삶과 죽음은 한 발자국 거리다. 결코 숨길 일이나 두려운 것이 아니다. 얼마 전에 모 교회 예배실에서 평일 날 교인이 자살했다는 이야기를 접했을 때 가슴이 “턱” 하고 무너지는 아픔을 느꼈다. 최근에 읽은 책 중에 “상한 감정의 치유”(데이빗 A 씨맨즈, 송헌복 옮김)에서 마틴 루터가 우울증에 관한 글을 썼다는 것을 읽었다. 간략하게 인용한다면 루터는 우울증 환자들에게 ①홀로 있지 말라, ②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구하라, ③노래하라! 음악을 즐기라, ④하나님께 찬양하고 감사하라, ⑤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에 깊이 의존하라, ⑥확신 있는 태도로 휴식을 취하라고 제시하고 있다. 종교개혁 당시 중세 유럽의 암담한 상황을 우리가 알기에 더욱 이해와 공감이 간다. 우울증은 자살의 치명적 수순으로 나아간다. 사탄과 어두움의 세력이 병이 든 우리 사회에 우는 사자와 같이 덤벼들고 있다. 20여 년 전부터 서울 노원구청에서 직장 선교회 지도 목사로 섬겨온 계기로 인해 자살예방 이웃사랑 봉사 단장을 맡아 봉사하고 있다(현 생명지킴이 Gate-Keeper 1,500명과 심리상담요원 100분). 4천 여명에 가까운 위험군 대상자가 있는데 거의 옥탑방과 반 지하에 사시는 어르신들이다. 그동안 강단에서만 주로 가르치고 지도해 왔는데 이제는 현장으로 직접 찾아가고 전화와 직접 만남으로 인해 겸손과 낮아짐을 너무나 많이 배우고 깨닫게 된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가난하고 병들고 힘없는 그리고 희망을 잃어버린 분들을 위해 얼마나 빈자리를 남겨 놓고 있는지 곱씹어 생각한다. 모든 것의 대안은 아니지만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몇 가지 제안을 드리고 싶다. 첫째, 대상자 분들 중에는 교회를 다니다가 시험과 상처로 떠난 분들이 상상외로 너무 많다는 사실이다. 교회는 잘 훈련된 전담팀을 만들어 조금은 어려운 일이나 선택과 집중을 통해 다시 주님께로 돌아오도록 그런 분들에게 기회를 드렸으면 한다. 둘째, 교회는 최근 구청, 시, 군 그리고 동주민센터에 위기의 개인과 가정들을 위해서 체계적인 시스템이 어느 정도 갖추어져 있다(구·정신건강증진센터, 동은 복지팀). 그래서 우울증으로 인한 위험한 가정을 연계하여 함께 지속적으로 협력할 필요가 있다. WHO 보고에 의하면 2020년이 가면 우울증과 심장질환이 암질환보다 오히려 가장 위험하다고 예측하고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도 얼마든지 우울증에 걸릴 수 있다. 셋째, 근자에 와서 우리 사회는 독거 어르신, 이혼, 경제적 파산, 우울증에 시달리는 청년 등 위험군이 많다. 미국 사회도 자살예방 연구 단체가 연구한 바에 의하면 75가지의 위험 리스크가 있다고 한다. 교회는 그들을 위해 개별적인 중보기도와 공동체적인 양질의 프로그램을 계층과 지역에 맞게 준비하여 그들을 향한 관심과 배려와 그들과 함께 있음을 전달해 줄 필요가 있다. 이제 대한민국은 물량 복지에 한계가 와있다. 이럴 때 교회는 마음 복지, 사회 복지로 황폐한 우리 사회에 끊임없는 용기와 새 희망을 주어야 할 것이다.
713 no image |목회수상| 마른 꽃_정요석 목사
편집부
1299 2016-07-05
마른 꽃 < 정요석 목사, 세움교회 > “늙을 때 유일하게 남는 것이 무엇일지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10여 년 전에 읽은 박완서의 “마른 꽃”을 한 달 전에 다시 읽었다. 자식들을 모두 결혼시키고, 몇 해 전에 남편을 잃은 주인공 여자는 대구에서 열리는 조카의 결혼식에 참여하였다. 막차의 고속버스를 타고 상경하며 우연히 옆에 앉은 노신사와 연정(戀情)이 생겼다. 내년이면 환갑이 되는 그녀였지만 그 남자 앞에서 열여섯 살 먹은 계집애처럼 깡총거리는 자신의 모습에 놀랐다. 그 나이에 이런 느낌을 가질 수 있다는 걸 누가 믿을까! 그녀는 그녀가 얼마나 수다스럽고, 명랑하고, 박식하고, 재기가 넘치는 사람인가를 처음 알았고 만족감을 느꼈다. 자식들이 둘의 연정을 바라보며 처음에는 바람난 딸을 훈계하듯 대했지만, 그 남자가 교수로 은퇴하여 적당한 재산이 있다는 것과 자식들도 자리 잡고 잘 산다는 정보를 들으며 재혼을 부추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녀는 그 남자를 인해 들뜨고 행복한 마음, 자식들의 전폭적인 협조 그리고 그 남자의 열렬한 구애가 있음에도 재혼을 단념하였다. 이유는 조 박사와의 연애감정은 젊었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데, 정욕이 비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서로 충족되는 연애는 겉멋에 불과한 것이었다. 정욕으로 눈이 가리지 않으니 상대방의 늙음과 허물이 빤히 보였다. 박완서는 그 느낌을 아래처럼 수려하게 잘 묘사하였다. “아무리 멋쟁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이 닥칠 늙음의 속성들이 그렇게 투명하게 보일 수가 없었다. 내복을 갈아입을 때마다 드러날 기름기 없이 처진 속살과 거기서 우수수 떨굴 비듬, 태산준령을 넘는 것처럼 버겁고 자지러지는 코곪, 아무 데나 함부로 터는 담뱃재, 카악 기를 쓰듯이 목을 빼고 끌어올린 진한 가래, 일부러 엉덩이를 들고 뀌는 줄방귀, 제아무리 거드름을 피워봤댔자 위액 냄새만 나는 트림, 제 입밖에 모르는 게걸스러운 식욕, 의처증과 건망증이 범벅이 된 끝없는 잔소리, 백 살도 넘어 살 것 같은 인색함, 그런 것들이 너무도 빤히 보였다. 그런 것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견딘다는 것은 사랑만 있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같이 아이를 만들고, 낳고, 기르는 그 짐승스러운 시간을 같이한 사이가 아니면 안 되리라. 겉멋에 비해 정욕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재고할 여지는 조금도 없었다. 불가능을 꿈꿀 나이는 더군다나 아니었다.” 박완서는 64세가 되는 1995년에 이 소설을 썼다. 그 나이가 되면 정서보다 정욕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아는 나이이리라. 50 중반에 접어든 나도 예전에는 어떤 이가 게걸스럽게 먹으면 식탐이라고 탓했지만 이제는 건강한 식성으로 보여진다. 약 20년 전 남서울노회에 처음 왔을 때에 선배 목사님들이 참 잘 드셨다. 익지 않은 고기까지 서로 먼저 드실 정도라, 고기는 “허락”을 받은 후에 먹어야 한다고 유머를 할 정도였다. 그런데 이제는 60대의 그분들이 드시지 않는다. 모이면 건강과 은퇴와 손자 이야기를 하신다. 연륜과 부드러움이 있기는 하지만, 동시에 도전과 패기가 사라진 초로의 슬픔과 스러지는 비장미는 어쩔 수 없다. 나는 십년 넘게 노인요양센터의 원목으로 있다. 노인이 마지막으로 먹는 것이 두유이다. 그 두유마저 못 마시면 이제 죽음이 가까이 있는 것이다. 두유를 겨우 마시며 눈꺼풀도 움직이기도 힘든 노인에게 어떤 정욕이 있을까? 그 상황에 닥치면 어떤 말이 가장 정확하게 와 닿을까?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고,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을 뿐이다. 나는 찬송가를 부르거나 성경을 읽을 때 간혹 그 아름다운 정욕도 지나가고 두유만 겨우 먹는 나의 늙음의 때를 생각한다. 늙을 때 유일하게 남는 것이 무엇일지를 생각하는 것이다. 찬송가의 가사이고 성경 말씀이다. 인생을 살 때에 다른 잔머리를 굴릴 필요도 없고 오직 그 말씀대로만 생각하고 행동하면 되는 것이다. 영원 속에서 살아남는 그 말씀만이 옳은 것이다. 그러면 종종 눈가가 적셔온다. 신자는 “영원”이 있기에 “마른 꽃의 때”도 의미가 있는 것이다. 정욕이 줄어들며 비로소 하나님을, 영원을 깊이 깨닫는 것이다. 영원을 존재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할 뿐이다.
712 no image |목회단상| 목회 성공인가? 충성인가?_허태성 목사
편집부
1377 2016-06-21
목회 성공인가? 충성인가? < 허태성 목사, 강변교회 > “진정한 목회의 목표인 열매를 맺기 위해 힘써 나아가는 동역자 되기를” 목회자들 사이에서 언제부터인가 서로 간에 목회의 형편을 묻지 않는 것이 불문율의 미덕이 되었습니다. 저 자신도 누군가로부터 ‘요즈음 목회가 어떻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으면 ‘그저 하나님 은혜 가운데 잘 지내고 있습니다’라는 대답으로 질문의 예봉을 피하여 두루뭉술한 대답을 한 적이 많은 것 같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요즈음 목회가 많이 어렵다고 느껴집니다. 무슨 큰 문제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전처럼 등록 교인 수가 증가되고 헌금액수가 늘어나는 것을 경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신학교를 갓 졸업하고 개척교회를 하던 목회 초년병 시절이었던 1990년대만 해도 부흥이라고 이름 붙일만한 가시적인 성장이 있었기에 저는 저의 목회가 성공하고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 후 한 조직교회의 담임목회를 하던 2000년대에도 저는 저의 사역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때도 조금씩이라도 양적 성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010년대 중반을 지나고 있는 요즈음은 제가 목회에 있어서 실패하고 있다는 자괴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등록교인 수도 더 이상 늘어나지도 않고 오히려 주일예배 출석인원은 더 줄어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와 정비례하여 교회 재정도 매년 조금씩 줄어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인가?’라는 고민을 가지고 기도를 하며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 보지만 명확한 답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제는 ‘한국교회’라는 배가 서서히 기울어져 침몰해가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됩니다. 목회가 아무리 어려워도 목회자가 된 것을 한 번도 후회해 보지는 않았지만 성장이 멈추어버린 시대를 무기력하게 지내면서 아무런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저의 부족함과 무능함에 목회의 즐거움과 목회자의 긍지를 잃어버리고 만 것 같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저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목회에 성공이 어디 있어? 그런 것은 물량주의와 세속주의에 빠진 잘못된 목사나 갖고 있는 태도야. 나는 누가 뭐래도 바른신학과 바른교회와 바른생활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개혁주의 목사야. 진리를 더 깊이 탐구하여 설교하고 설교한 대로 살아가기를 힘쓰는 경건한 목사로 살거야. 거짓 없이 진실하게 설교하고 신실한 자세로 목양하는 일에 마지막까지 충성을 다 할거야.. 주님은 나의 중심을 알아주실 거야. 목회가 잘 안 되는 것은 내가 잘못해서가 아니고 이제 말세가 되어서 성경의 예언대로 사람들의 마음이 완고해져서 그런 것일 거야’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주변을 살펴보니 저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요즈음도 성공적인 목회를 간증하는 책을 저술하고 ‘이렇게 목회하라!’는 세미나를 하는 소수의 목회자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다수의 많은 목회자들은 성공 대신 충성을 목회의 목표로 삼고 그저 순교자와 같은 심정으로 목회현장을 참아내고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아, 이제 교회의 부흥과 성장의 시대는 정말 지나간 것이란 말입니까? 요즈음 책을 한 권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뉴욕에 있는 리디머(Redeemer) 교회의 담임목사인 팀 켈러(Timothy Keller)가 쓴 센터 터치(Center Church)라는 책입니다. 그 책을 보면, 가장 세속적인 도시인 뉴욕 한 복판에서 30여년 가까이 복음중심의 목회를 하면서 많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그는 계량적 성공(Sucess)을 가리켜 목회를 잘하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역의 유일하고 참된 범주가 충성(Faithfulness)이라고 주장하는 것에도 반대합니다. 성경은 그 이상의 다른 무엇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것이 바로 열매 맺음(Fruitfulness)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전도의 열매, 회심의 열매, 경건한 성품의 열매, 성령의 열매와 같은 것 말입니다. 진정한 열매를 맺는 것으로 목회가 평가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성공도 아니고 충성만도 아닌 열매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언제부터인가 열매가 잘 보이지 않는 목회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흐르는 세월을 따라 목회하다 보니 어느새 우리 교단에서 더 이상 젊다고만 할 수 없는 중진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계수해보니 하나님께서 정년까지 목회를 허락하신다 해도 목회를 한 날보다 목회를 할 날이 훨씬 더 적은 지점에 도달해 있습니다. 한국교회에 대한 책임감이 느껴지고 저를 포함한 우리 교단의 목회자가 어떤 길로 가고 있는지를 바라보며 적잖은 고민을 하며 지냅니다. 경건한 성품과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며 ‘꿩 잡는 게 매’라는 식의 성공일변도의 목회가 정답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또한 결과가 어떻든 충성만 하면 된다는 주장도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목회자로서의 책임과 부담을 지나치게 경감시키고 있으며 현실의 도전으로부터 숨어버린 소극적 자세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개혁주의신학을 추구하는 자들에게 답이 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이제 우리의 목회는 ‘성공이냐? 충성이냐?’의 지나친 이분법적인 구도를 탈피하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진정한 목회의 목표인 열매를 맺기 위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왜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는지 저의 목회를 다시 한 번 깊이 살펴보고 다시 힘써 보려고 합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도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요15:8).
711 no image |목회수상| 애소(哀訴)_이은상 목사
편집부
1512 2016-05-10
애소(哀訴) < 이은상 목사, 동락교회 > “때론 하나님 앞에서 연약함 호소하는 것도 건강한 신자 모습” 교회 여성도들 모임에서 합창을 하다 함께 운적이 있었습니다. 그 노래는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한 채 고기 잡는 아버지와 철모르는 딸 있네~’로 시작되는 미국동요 ‘내 사랑 클레멘타인’(Oh, My Darling Clementine)입니다. 이 노래는 미국 서부개척시대의 ‘골드러시’라 불리던 때에 금광을 찾아 일확천금을 꿈꾸며 서부로 몰려왔던 포티나이너(forty-niner)들에 의해 만들어진 노래라 합니다. 당시 이들은 열악한 환경과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고 영양실조와 인디언의 습격 등으로 많은 수가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또한 자신들이 캐낸 황금이 자본가들의 배만 불려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허탈감에 빠져 자조 섞인 노래를 부르게 되었답니다. “동굴과 계곡에서 금맥을 찾던 한 포티나이너에게 클레멘타인이라는 딸이 있었지…” 이 노래의 배경처럼 그리스도인들도 가끔은 인생을 한탄하며 자조 섞인 슬픈 노래를 부르고 싶을 때가 있다고 봅니다. 마음이 푹 가라앉고 모든 일을 팍 놓고 싶을 때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이지요.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이 슬픈 정서를 노래하는 것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요? 믿음이 떨어졌다고, 아니면 항우울제 처방이라도 내려줘야 할까요? 혹은 금식기도를 통해 마귀를 무찌르고 영적전투에서 승리하라고 권면해야 할까요? 이에 대한 해답을 성경의 인물의 통해 찾을 수 있는데 바로 욥입니다. 욥은 고통에 빠졌을 때 인생무상을 읊조리게 됩니다. 허무하고 힘든 인생 하루라도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 단 하루만이라도 마음 편한 날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넋두리를 합니다(욥14:1-6). 이 욥기14장의 내용은 논리적, 이성적 분석보다는 그냥 할 말도 없고 대책도 없는 인생이 혼란가운데서 넋두리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박영선, 욥기설교). 한편 정암은 욥의 넋두리를 끈질긴 신앙의 애소(슬픈 하소연)라고 표현했으며 그리고 이런 신앙인을 높은 차원에 속하는 신앙인이라고 하였습니다(박윤선, 욥기주석).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도 고통과 어려움에 처하면 울고불고 한탄하며 인생 넋두리를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성경은 ‘우는 자들의 울음을 믿음으로 멈추게 하라’ 하지 않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하였습니다(롬12:15) 그렇다면 왜 신자에게 슬픈 정서가 필요할까요? 그것은 바로 신자는 연약함을 깨달을수록 하나님께 더욱 더 소망을 두기 때문입니다(시39:4, 7). 인간이 스스로 비관하게 될 때 자신감은 내려가고 하나님을 향한 신뢰감은 올라가게 된다는 말입니다. 눈물이 반드시 패배나 비겁함이나 연약함의 표현은 아닌 것입니다. 울부짖음은 믿음의 진리를 찾아나서는 문이며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희미하게 알아가는 길입니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전능자 하나님을 찾게 되는 슬픈 정서는 도리어 자신만만하다가 신앙의 길에서 뚝 떨어져버리는 것보다 더 낫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교회지체가 혹여 슬픔에 빠져있다면 ‘믿음이 없어서 그렇다’라고 판단하면 안 됩니다. ‘죽고 싶다’거나 ‘못 살겠다’라는 표현을 반드시 신앙의 타락으로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다만 실존 안에서 겪어내는 정서적표현인 것입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이런 강한 정서도 멋있지만 ‘하나님 차라리 얼른 데려가 주세요. 저는 더 이상 못해먹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이런 정서도 건강한 신자의 고백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매사에 주여, 주여 하는 자들이나 억지로 괜찮아, 괜찮아 하는 자들이나 같은 외식증입니다. ‘울면 안 돼’라는 노래가 성탄절만 아니라 가부장적 집안이나 노란리본 현장에서도 히트 치곤 하지만 이 노래는 금지곡이어야 합니다. 세상 밖에서는 눈물 젖은 두만강을 부르다가 교회만 오면 십자가군병들로 모드를 속히 바꾸지 말고 주께 애소를 불러봅시다.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소리 맘이 설레어/다 못 찬 굴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옵니다‘(섬집아기 2절). 그래서 우리는 “주님, 저는 실존 안에서 지금 무지 슬픕니다. 어찌해야 합니까?”라고 울부짖기도 하는 것입니다.
710 no image |목회수상| 노인과 교회 _이예원 목사
편집부
1561 2016-05-10
노인과 교회 < 이예원 목사, 원주 새동네 교회 > “부모를 공경하라는 명령은 하나님의 가족 공동체에 주신 것” 헤밍웨이 명작 ‘노인과 바다’에 등장하는 노인은 바다에서 청새치를 두고 상어와의 외롭고 처절한 싸움을 벌이며 자신의 늙어 가는 삶을 그리고 있다. 과연 나이 늙어 감이 무엇일까? 나이 늙어 감은 복일까? 저주 일까? 정말 외롭고 쓸쓸하게 인생을 마감해야 하는 시기인가? 점점 나이가 늙어 감에 따라 기억력도 약해지고 몸도 온갖 종류의 약으로 겨우 지탱하며 통증과 쇠약한 육체를 유지해가야 한다. 이쯤 되면 나이 먹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저항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생리적 현상으로 받아드릴 수밖에 없지만, 늙어갊을 저항할 수 만 있다면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온 삶의 집중을 예방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는다. 치매 예방, 암 예방에 수많은 식물과 운동법이 화두이다. 한국인만큼 음식들이 어디에 좋은지 많이 아는 사람들도 드물다. 심지어는 암 치료를 포함한 온갖 노인 질병 보험이 노인들의 질병을 해결해 줄 것처럼 선전한다. 이제 60을 향해 가며 늙어 가고 있는 시골 교회의 목사인 내가 이러한 현상들을 문화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넘어 공감대를 형성하는 나를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나는 어떻게 준비해야하는지 이제라도 고민을 시작해 본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싸움이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의 소망이 점점 더 가까이에 있을 진데 왜 이렇게 늙어 가고, 죽어 가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와 영생의 가치관으로 이루어 가는 문화가 만들어 지지 않을까? 어쩌면 우리 교회의 본질적 가치를 우리 스스로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가족이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며 섬기는 하나님의 가족이다. 여호와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성령으로 거듭남으로 재창조해주신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이 관계는 피로 이루어진 혈육의 관계보다 더 가치가 있고 더 친밀감이 있어야 한다. 누구든지 창조주 하나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른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한 아버지 안에서 살아가는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요 아버지요, 아들과 딸들이며, 손자들이다. 그래서 부모를 공경하라는 십계명의 명령은 부모에게 한 명령이 아니다. 이것은 자녀들에게 하신 첫 명령이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교회에게 자녀들에게 다시 확인 시키시는 이유가 여기 있다. 실제로 누가 내 부모일까? 하는 질문이다. 혈육의 부모와 형제들에게만 자녀로서 형제로서 공경하고 돌봄의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 사도 바울은 당연히 개개인의 육체적 부모에 대한 책임을 강조한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딤전 5:8). 그러면서 이전에 다모데에게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버지에게 하듯 하며 젊은이에게는 형제에게 하듯 하고, 늙은 여자에게는 어머니에게 하듯 하며 젊은 여자에게는 온전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딤전 5:1-2)고 명하면서 우리가 돌보아야 할 부모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가족에까지 확대하고 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명령은 개인에게만 주신 것이 아닌 하나님의 가족 공동체에 주신 것이다. 그러니, 노인의 문제는 바로 내 문제이고 내 교회가 해결해야 될 명령이다. 때문에 교회는 노인들이 늙어가며 인생을 쓸쓸히 외롭게 마감하게 해서는 안 된다. 죽음이라는 바다에서 외롭고 처절하게 혼자 싸우게 해서는 안 된다. 교회는 죽음을 하나님 나라 영생의 소망이 가득한 삶이 되도록 함께 삶을 공유해야 할 지 고민해야 한다.
709 no image |제언| 우리에게 기쁨이 되는 성찬_전두표 청년
편집부
1439 2016-04-26
우리에게 기쁨이 되는 성찬 < 전두표, 시광교회 청년부 > 흔히 설교는 들리는 말씀이라 하고, 성찬은 보이는 말씀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예배에서 설교와 성찬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전자에만 무게가 쏠리는 것이 오늘날 교회의 현실입니다. 칼빈은 매주 성찬을 하길 원했습니다. 성찬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비단 칼빈만이 아니라 성찬이 중요하다는 것은 교육 받은 신자라면 잘 알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성찬이 중요할까요?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영적으로 만나는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성찬은 식탁 교제라고도 부릅니다. 성찬은 가시적으로 예수님과 신자들이 한 식탁에서 교제를 나누는 것을 상징합니다. 그 안에 담긴 내적 의미는 한 식탁에서 떡을 떼고, 잔을 나눔으로써 그리스도를 맛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임재를 경험하고, 그분이 주시는 은혜를 누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찬의 의미와 중요성을 모두가 알지만, 막상 그것에 임하면 은혜를 맛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왜 은혜를 맛보지 못할까요? 주일 예배와 같이 습관을 따라 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교회에서 성찬은 기념식, 또는 연례행사가 된지 오래입니다. 아니 어쩌면 죽은 자를 기리는 제사처럼 여기는 경우도 더러 있을 정도입니다. 사실 교회에서는 여건만 허락된다면 매주 성찬을 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저 역시 매주 성찬을 행하는 것에 동의합니다. 성찬을 통해 누릴 은혜를 생각하면 당연히 매주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두가 이 의견에 동의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앞에서 지적한대로 성찬이 또 다른 습관이 될 수도 있고, 교회마다 규모 등 여건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매주 행하는 성찬이 또 다른 예배의 행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매주 성찬을 시행하게 되면 아마 처음 얼마간은 은혜를 누릴 것입니다. 그 은혜로 감사와 기쁨을 느끼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쩌면 오래 지나지 않아 감사와 기쁨이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예배 시간이 길어졌다는 불평이 쏟아질 수도 있습니다.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습니다. 제가 전에 출석했던 교회에서는 성찬을 매달 첫날 새벽기도 시간에 했었습니다. 그리고 부활절 등 절기에도 시행했습니다. 아마 대부분 교회에서도 그렇게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교회가 한 달에 한 번이나 몇 달에 한 번 성찬을 할 것입니다. 매주 시행하는 교회는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교회에서 매주 성찬을 시행하기에 앞서 성도들은 왜 성찬에 참여하여야 하는지, 그리고 성찬이 성도들에게 얼마나 많은 유익을 주는지, 나아가 성찬이 담고 있는 신학적인 의미들을 숙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성도들로 하여금 "그래, 이렇게 좋은 성찬을 왜 하지 않았나!" 하는 마음으로 성찬에 대한 기쁨과 기대를 갖게 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 목적대로 기쁨과 기대가 가득하여 매주일이 잔치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리스도의 임재가 충만하여 모든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게 되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성찬을 통해 그리스도의 임재를 맛보려면 성찬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 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사전 교육을 통해 모든 성도가 성찬의 의미와 이유를 정확하고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참된 교회의 3대 표지로서의 설교를 회복해야 합니다. 설교자는 말씀을 올바르게 선포해야 합니다. 여기까지는 교회, 그 중 목회자가 해야 할 노력입니다. 그런데 성찬의 유익을 맛보기 위해서는 목회자의 노력뿐 아니라 성도들의 동참과 노력도 필요합니다. 성도들은 한 주 동안 말씀대로 살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예배, 말씀과 성찬을 통해 맛본 은혜로 한 주를 살아야 합니다. '성찬을 통해 만난'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살아계심'을 의식하고 확신하는 가운데 그분을 의지하며 한 주를 살아야 합니다. 비록 그리스도를 의지하려 했지만 죄와 분투하다가 쓰러지고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낙망하는 한 주가 될지라도 우리는 주일이 되면 그리스도의 보호하심과 도우심으로 지난 한 주를 살았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매주 행하는 성찬을 통해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한 식탁에서 먹고 마시며 살아계신 그분께 감사의 찬송을 올려 드리게 될 것입니다. 그때에 성찬은 죽은 신을 기리는 제사가 아니라, 부활하여 지금도 살아계신 주님과 배부르게 먹고 즐겁게 마시는 기쁨의 천국 잔치가 될 것입니다.
708 no image |목회수상| 다시 들여다보기, 깊이 들여다보기_이영국 목사
편집부
1494 2016-04-12
다시 들여다보기, 깊이 들여다보기 < 이영국 목사, 새론교회 > “우연이라고 치부하고 넘기기엔 운명같은 만남들을 마주해야 해”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게 하고 추억과 욕망을 섞어 봄비를 내려 무뎌진 뿌리를 깨운다. 겨울은 우리를 따뜻하게 했다. 망각의 눈으로 온 땅을 뒤덮고, 메마른 줄기로 자그마한 생명을 먹여살렸다. 여름은 우리를 놀라게 했다. 소나기를 뿌리면서 슈타른베르거 호수를 넘어 우리는 주랑에서 멈춰 섰다. 그리고는 햇빛을 받으며 계속 뜰로 나아갔다. 그리고는 커피를 마시고, 한 시간 가량 이야기를 나누었다. 4월이면 어김없이 되뇌게 되는 T.S 엘리엇의 시이다.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워 낸다 할지라도 그것이 추악한 추억과 인간의 욕정이 뒤섞인 결과물이라면 만물을 약동시키는 4월이 오히려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시인은 이야기한다. 시리디 시린 겨울이라도 망각의 눈(forgetful snow)이 용서의 힘으로 대지를 감싸준다면 메마른 줄기에서나마 그 생명을 연명케 하기에 오히려 따스하였노라고 시인은 말한다. 여름의 녹음이 아무리 무성하여도 그 열매 없음은 우리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하다. 커피를 마시며 재잘거리는 수다소리가 거리에 넘쳐 나지만, 그것이 현대인의 어깨 위에 ‘원죄'처럼 짐 지워진 ‘고립과 단절’로부터 우리를 구원할 수 없기에 시인의 눈은 이리도 정확히 계절을 비틀어 이야기하는가 보다. 1996년 4월 11일,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일, 나에게는 결혼하기 좋은 날이었다. 가장 기뻐해야 할 결혼기념일이 4년마다 돌아오는 총선일과 겹치는 때면 봄날에 흐드러지게 흩날리는 벚꽃길이 남발된 고성의 공약들로 혼탁하여 절로 눈살이 찌푸려지는 계절로 돌변하니 이 일을 어쩌란 말이냐? 벌써 두 해가 흘렀던가? 묻을래야 묻을 수 없고,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추억의 날, 4월 16일은 망각의 눈(forgetful snow)을 뚫고 쭈뼛이 고개를 쳐든다. 딸이 졸업한 ‘화성고’ 아이들이 제주도에서 수학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던 날 아침, 딸과 같은 반에서 1년을 함께 공부하다 ‘단원고’로 전학 간 세영이가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다가 차가운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날이다. 세영이가 배 속에서 보냈다는 페이스북의 메시지가 아직도 선하다. 아랍인이 빼든 칼에 반사된 햇빛이 망막을 찔렀다는 이유로 권총의 방아쇠를 당겨 살인을 저지르고 마는 이방인 ‘뫼르소’의 상황처럼 눈이 부시게 푸르른 봄이 오히려 내 망막을 찔러댄다. 세영이의 시신이 수습되던 날, 영정사진 앞에서 하염없이 울던 딸의 모습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엘리엇의 말처럼 4월은 참 잔인하기도 하다. 그대가 기쁠 때 그대 가슴속을 깊이 들여다보라. 그대에게 슬픔을 주었던 그것이 오늘 그대에게 기쁨을 주고 있음을 알리라. 그대가 슬플 때 그대 가슴속을 다시 들여다보라. 그대에게 즐거움을 주었던 그것으로 인하여 지금 그대가 울고 있음을 알리라. 레바논 청년 ‘칼릴 지브란’은 슬픔이 그냥 슬픔이 아니고, 기쁨이 그냥 기쁨이 아니라고 말한다. 슬픔도 기쁨도 깊이 들여다보고, 다시 들여다보면 희한한 화학 반응을 일으킨단다. 그래! 그렇긴 하다. 우리가 처해있는 현실이 살만 하다고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노릇처럼, 또한 지금의 현실이 암울하다 하여 그 슬픔 속에 좌정해 있을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살기 위해서라도 삶의 경황들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고, 다시 들여다 볼 일이다. 신앙인에게는 우연이라고 치부하고 넘기기엔 저어한 운명같은 만남들을 이미 준비하고 계신 분이 있지 않은가? 떨어진 꽃잎들 속에서도, 또 개화를 기다리는 봉우리들 속에서도 애써 그 분을 찾지 않으면 살기 힘든 계절이다. 정오의 태양빛보다 밝으신 분은 바울의 눈을 실명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스한 봄, 갈라진 돌 틈 사이에 우리를 숨기시고 손으로 가리시며 뒷모습이라도 보이기 원하시는 그 분을 만나야 한다. 그래! 그 분을 만나지 못한다면 숨 쉬기조차도 버거운 찬연한 봄이다.
707 no image |제언| 목사의 칭호 개정안 노회 수의를 앞두고_박현곤 목사
편집부
1586 2016-03-29
목사의 칭호 개정안 노회 수의를 앞두고 < 박현곤 목사, 상곡교회 > “장로회 정치 정신을 손상하지 않는 호칭의 변경은 가능해” 우리 합신 헌법에서 ‘임시목사’라는 칭호는 위임된 ‘담임목사’가 아니라는 의미로 쓰인다. 특히 미조직교회 목사는 그가 누구라도 임시목사이며, 당회가 조직되고 위임될 때까지는 ‘임시’라는 뜻으로 쓰인다. 그런데 임시목사에는 부목사, 교육목사 등으로 호칭되는 임시목사들이 또 있다. 내용상으로는 확연히 구분되지만 ‘임시목사’라는 용어 자체로만 보면 구분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차별하자거나 구별하자는 뜻으로 하는 말은 아니다. 다시 말해 목사의 칭호가 담임목사 외에 여럿 있는데, 위임된 담임목사가 아니면 모두가 임시목사라는 말이며, 임시목사 중에는 청빙 절차와 시무 상태에 따라 구분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당회 결의로 청빙되는 부목사, 교육목사, 협동목사 등은 그 자체로 칭호가 정해진다. 하지만 장로회의 기본권을 행사하기 위해 입교인 모두가 모여 결의하는 공동의회와 노회의 결의로 청빙되어, 정해진 기간 동안 전적으로 맡아 시무하는 목사는 그냥 ‘임시목사’이다. 따라서 그는 정해진 기간이지만 사실상 담임하고 있는 목사이면서도 ‘담임목사’라는 용어를 사용해서는 안 되며, 원칙적으로 주보나 월력에 ‘임시목사’라고 써야 한다. 아무리 장로회 정치체제를 신봉하는 사람이라도 자신이 시무하는 교회에서 주보나 월력에 ‘임시목사 아무개’라고 쓰는 목사는 거의 없다. 그러나 실제로는 자신도 그러하면서 이론에만 붙들려 임시목사를 고집하는 이들이 있기도 하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임시’라는 용어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기도 한다며 볼멘소리를 하는 이들도 있다. 합신이 채택하고 있는 ‘담임목사’의 칭호를 다른 장로교단 모두는 ‘위임목사’를 칭호로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임시목사’의 칭호는 ‘전도목사’로 개정한 기장측을 필두로 통합측은 ‘담임목사’로, 고신측은 ‘전임목사’로, 합동측은 ‘시무목사’로 개정하였다. 유독 합신측만 위임목사를 ‘담임목사’로 호칭하면서, 위임을 받지는 못했지만 정해진 기간 동안 전임으로 시무하는 목사를 ‘임시목사’로 부르고 있다. 물론 우리도 개정을 위한 시도가 여러 번 있었으나 무산되고 말았다. 왜 그럴까? ‘임시’라는 호칭을 빼버리면 개혁파 장로회 정치체제를 포기하는 듯 생각하기 때문이며, ‘담임’을 ‘위임’으로 바꾸면 박윤선 정신이 훼손당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듯하다. 필자도 미천하지만 누구 못지않게 성경적이라 이해하기에 개혁파 장로회 정치체제를 신봉하며, 박윤선 정신을 좋아하는 목사이다. 그러나 너무 용어 문제에 묶여 있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 한편, 주께서 당신의 교회에 계시의 전달자를 파송하실 때 강도권과 성례집행권을 위임하여 보내시는 것이며, 그 교회를 전적으로 책임지고 맡아 보살피라고 위임하여 보내시는 것이다. 혹 청빙 대상인 목사가 아직 미심쩍어 1년간만 조건부로 청빙한다 해도, 주께서 그 기간 동안 그 교회에 노회를 통하여 위임하여 보내시는 것이다. 당회가 없어 임시로 보내시더라도 그 미조직교회에 주께서 친히 위임하여 보내시는 것이다. 사실상 어떤 형태의 교회라도, 그리고 얼마 동안이라도 주께서는 처음부터 위임하여 보내시는 것이지 임시로 보내시지 않는다. 그래서 원래부터 개혁파교회는 목사의 칭호에 그 임시목사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지금 담임목사를 ‘위임목사’로, 임시목사를 ‘전임목사’로 바꾸자는 헌법 개정안이 노회 수의 과정 중에 있다. 개정안대로 가결된다면 ‘담임목사’는 ‘위임목사’로, ‘임시목사’는 ‘전임목사’로 바뀌게 된다. 그런데 위임이건 담임이건, 임시건 전임이건 의미상으로는 서로 같거나 비슷한 뜻으로 통하고 있다. ‘전임목사’라 해도 내용상으로는 헌법 조문에 명시하고 있는 대로 그 시무기간은 1년이다. 결국 임시라는 뜻이다. 칭호의 문제일 뿐이지 내용은 변함없이 지금껏 사용하던 임시목사와 같다. 그 개념을 정리해 보자면 이렇다. ‘위임목사’는 해당 교회의 공동의회와 노회의 결의로 청빙, 위임되어 계속 시무하는 담임목사요, ‘전임목사’ 역시 해당 교회의 공동의회와 노회의 결의로 청빙되어 정해진 기간 동안 전적으로 맡아 임시 시무하는 담임목사이다. 즉 ‘위임목사’도 담임목사요, ‘전임목사’도 담임목사이다. 시무하는 담임목사의 여건에 따라 위임목사와 전임목사로 구분된다고 하겠다. 물론 의미상으로 볼 때 전임목사는 정해진 기간 동안만 시무하는 임시 담임목사인 셈이다. 따라서 평소에는 담임목사로 호칭할 수 있으며 법적 칭호로는 ‘위임목사’ 혹은 ‘전임목사’를 사용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부목사, 교육목사, 협동목사는 공동의회가 아닌 당회와 노회의 결의로 청빙되어 1년간 시무하는 임시목사들이다. 이들은 모두 그 칭호에 맞는 사역을 하는 임시목사들이다. 따라서 ‘담임목사’는 ‘위임목사’로 개정하여 담임목사라는 호칭은 함께 쓰게 하고, 원리상으로는 임시이지만 사실상 담임 시무하고 있는 목사에게도 그에 맞는 칭호를 붙여 주어야 마땅하다. 그 칭호로는 ‘전임목사’가 적합할 것이다. 교회법 학자들 중에서도 임시목사 사용이 불편하다면 절충안으로 ‘전임목사’ 칭호를 추천하고 있다. 이런 개정안에 대하여 우려를 표명하는 의견들이 더러 있는 것 같다. ‘임시’라는 용어를 없애면 마치 장로회 정치가 무너지기라도 하는 듯 생각하는 것 같다. 어떤 노회는 노회원 전체가 반대하기도 하였다.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현실적으로 칭호만 바뀌는 것일 뿐 내용은 임시의 내용을 충분히 담고 있기에, 개정안은 장로회 정치체제를 전혀 손상하지 않고 그 원리를 그대로 따르는 것으로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706 no image |목회수상|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_박발영 목사
편집부
1650 2016-01-26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 박발영 목사, 한우리교회 > “교회가 세상의 힘을 가진다고 해서 세상은 절대로 달라지지 않아” 영어로 개혁주의는 'Reformed'로 'Re'와 'form'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단어이며 원래의 상태로 회복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새로운 것을 도입한다는 뜻이 아니다. 맨 처음에 제작된 완성품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개혁의 참뜻이다. 즉 우리가 새로운 것을 도입하여 고치는 것이 개혁이 아니라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이 참 개혁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개혁주의는 성경을 신앙과 생활의 절대적인 유일한 권위로 믿는다. 개혁주의는 성경의 권위를 강조하고,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삶을 강조한다. 그래서 개혁주의 실천은 “이 성경을 가지고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여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자 하는 것에 목표를 두고 끊임없이 개혁해 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개혁주의 교회란 “성경을 가지고 성경이 말하는 교회를 목표로 삼고 성경을 가지고 끊임없이 개혁해 가는 교회“를 말한다. 이 지상에는 완전한 신학도 완전한 교회도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러므로 끊임없이 성경을 가지고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여 끊임없이 교회를 개혁해 가야 하는 것이다. 개혁주의 교회가 성경을 가지고 교회개혁을 멈춘다면 개혁주의 교회라고 할 수가 없다. 맬컴 워츠는 “참된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끊임없이 교회를 개혁해 가는 교회로서, 성경의 진리를 옹호하고 선포하는 교회를 말한다”라고 했다. 그렇다면 성경을 가지고 교회개혁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우리는 끊임없이 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 교회는 과연 성경이 말하는 그 교회인가? 우리가 섬기는 총회는 성경이 말하는 그 총회인가?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성경이 말하는 그 기독교인가? 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런데 요즘 교회들은 고지론(高地論)에 빠져 있는 것 같다. 고지론이란 전투에서 고지를 점령해야 그 전투를 이기고 영토를 장악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그리스도인이 세상의 소금과 빛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우리 사회 파워 집단을 장악하여 그곳에서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여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고지의 정복이 가장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지론은 출세와 성공을 꿈꾸는 젊은이들의 피를 뜨겁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나눔을 실천하기 위해서라도 교인들이 세상의 복을 많이 받아야 한다는 기발한 논리를 마치 교리인양 주저 없이 교회에서 가르치고 있는 것이 또한 우리 현실이다. 알게 모르게 이 고지론 사상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자리를 깊게 차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신앙인 관점에서 생각할 때 이것은 철저히 반성경적이며, 의미를 주의 깊게 헤쳐 보면 사실상 '탐욕'을 부추기는 위장된 '기복신앙'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것들은 개혁주의 교회에서는 받아 드릴 수 없는 사상임이 분명하다! 다시 말해서 고지론은 성경이 말하는 그 기독교 사상이 아니라는 뜻이다. 한 때 교회가, 즉 교황이 황제를 임명할 만큼 세상의 힘을 가졌을 때가 있었다. 그 때가 바로 중세시대였다. 그 때 기독교가 어떠했는가? 바로 그때 기독교는 가장 타락했다. 헤르만 바빙크가 네델란드 수상이 되어서 목회자들이 내각에 많이 들어가 정치를 하였을 때가 있었다. 그 유명한 3대 칼빈주의자가 수상으로 있고 목회자들이 장관을 하고 있었으니까 사회가 달라졌을까? 아니다! 오히려 범죄율이 더 많았다고 한다. 통계에 따르면, 우리 사회의 파워 집단이라 불리는 국회의원, 정치가, 판검사, 변호사, 의사, 교수, 그리고 기업인들 중에 기독교 신자가 무려 30-40%에 이른다. 당장에 국회의원은 40%가 그리스도인임에도 권력자들의 부정부패는 최근 하늘을 찌르고 있다. 그리고 현재 동성애법이 통과 될 상황에 있고 간통죄가 폐지되고 불륜공화국이 되어가지 않은가? 작금 한국교회는 대단히 많은 고지를 이미 점령한 상태이고, 또 과거부터 이미 점령해온 바 있다. 심지어 기독교인 대통령도 벌써 세 번이나 배출했다. 그런데도 왜 그리스도인이 세상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가? 그리고 왜 교회는 갈수록 타락하고 복음의 빛은 퇴색해 가고 있는 것인가? 교회가 세상의 힘을 가진다고 해서 세상은 절대로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한 한 예이다. 그래서 쉐이퍼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그리스도인이 추구해야 할 최상의 가치는 세상의 성공도 부도 행복도 아니다. 그리스도인이 추구해야 할 최상의 가치는 하나님 자신과 거룩일 뿐이다. 만약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성공과 행복을 쫒는다면 그것 때문에 망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가난하고 힘없는 자리에만 있어야 한단 말인가? 그런 말은 결코 아니다. 물질도 윤리도덕도 선행도 성공도 행복도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쫒을 때 따라 오는 것들 일 뿐이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올 수도 있고 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이 따라오든지 오지 않든지 상관없다. 세상 가치관과 세상 잣대로 성경을 판단하지 말라! 고지에 오르면 선한 일을 할 수 있으니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라는 말에 속지 말라. 우리의 고지는 오직 하나님자신일 뿐이다. 하나님을 절대가치로 쫒았는가? 복음을 절대가치로 쫒았는가가 중요하다. 그래서 “주님이면 충분하다, 복음이면 충분하다”는 고백이 나와야한다.
705 no image |제언| “복 주옵소서!”가 맞다_이선웅 목사
편집부
1934 2016-01-12
“복 주옵소서!”가 맞다 < 이선웅 목사, 남문교회 원로 > “하나님, 축복해 주옵소서!”라는 표현 더 이상 사용하지 말아야 새해가 되면 사람들의 공통의 인사말이 있다. 그것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이다. 이 말은 “내가 당신에게 복을 주겠다!”라는 말이 아니다. 복 주시는 이가 당신에게 복 내려 주시기를 바란다는 축원의 말이다. 따라서 이 말은 다름 아닌 축복의 말인 것이다. 그렇다. 그 누구도 새해 인사를 하면서 “새해 축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하지 않는다. 대신에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하고 있다. 이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는 “축복은 사람이 사람에게 하라”고 말씀하신다. 신명기 10장 8절에 ‘레위 지파를 구별하여…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하게 하셨으니’라고 하였고, 민수기 6장 23절에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라고 하였으며 민수기 6장 27절에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고 말씀하였다. 창 12:2-3, 레 9:23, 신 11:29, 수 8:33에도 보면 분명히 사람이 축복하면 복은 하나님께서 내려주시겠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지 ‘축복’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성경의 원어를 살펴보면 ‘복’은 히브리어로 아쉬레이고, 헬라어로는 마카리오스이다. 그리고 둘 다 “복이 있을지어다”라고 선포하거나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복을 받게 되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창 39:5, 신 12:15, 시 1:1, 마 13:16, 엡 1:3, 계 14:13). 반면에 ‘축복’ 또는 ‘축복하다’는 의미의 히브리어 바라크나 헬라어 율로게오는 “좋은 것을 받도록 구하다”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창 27:41, 시 129:8, 롬 12:14, 고전 4:12). 국어사전에도 보면 ‘축복’은 명사로 ① 행복을 빎, ② 신의 은혜를 구하여 빎으로 되어 있다. 한자(漢字)의 ‘祝’(축)자를 보더라도 빌 축(祝) 자를 쓰고 있다. 성경 어디에도 “하나님께서 축복하신다”라는 표현이 없다. 그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복을 주시는 분’이지 ‘복을 비는 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오늘날 한국 교회 안에 “하나님 축복해 주옵소서!”라고 말하는 이들이 셀 수 없이 많은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아마도 일본말의 영향을 받은 과거 지식인들의 표현 방식 때문이거나 샤머니즘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일본말에는 ‘축복’이라는 말과 ‘복’이라는 말에 있어서 개념상 차이가 분명치 않다. 일본말에는 ‘축복’이라는 말이 ‘신이 내리는 복’이라는 의미로도 쓰이고,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 복을 빈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그런가 하면 샤머니즘 사상이 깊이 뿌리내려져 있던 동양인의 생활권에서 복을 빌어주는 무당은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 때문에 자연스럽게 또는 무의식중에 “하나님, 축복해 주옵소서!”라고 말하게 되었을 수도 있다. 경위야 어쨌든 이런 것들은 분명히 잘못된 표현들이다. 당연히 바로잡아야 한다. 감사한 것은 수년 전부터 예장통합교단과 예장대신교단 등 몇몇 교단에서 총회 때에 이 문제를 다루고 “하나님, 축복해 주옵소서!”는 잘못된 것이므로 “하나님, 복 주옵소서!”로 고쳐 쓰기로 결의하고 현재 시행하고 있다고 하는 사실이다. 또 수년 전부터 새로 발행되고 있는 새찬송가에도 보면 전에 ‘하나님의 축복’으로 되어 있던 가사들이 모두 다른 용어로 바뀐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찬송가 10장(통 34) <전능왕 오셔서> 2절의 ‘택하신 백성을 축복해 주시고’는 ‘택하신 백성들 복 내려 주시고’로 바뀌었다. 찬송가 208장(통 246) <내 주의 나라와> 5절의 ‘하늘의 영광과 베푸신 축복이’라고 되어 있던 가사는 ‘베푸신 은혜가’로 바뀌었고, 찬송가 449장(통 377) <예수 따라가며> 3절의 ‘순종하는 자를 항상 축복해 주시리라’는 ‘항상 복 내려 주시리라’로 바뀌었다. 늦게나마 이렇게 바로 잡힌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이제는 설교자들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복’과 ‘축복’을 분명하게 구별해서 사용해야 하겠다. 설교자들은 성경 원어를 매우 중요시 여기고 있으며 단어 하나하나와 그 의미를 철저히 관찰하고 해석하는 분들이다. 그런 분들이 잘못된 것을 발견하고 나서도 계속 전처럼 “하나님, 축복해 주옵소서!”라고 표현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이제 우리 모두 혹시 내가 “하나님, 축복해 주옵소서!”라고 말함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함부로, 경솔하게, 무질서하게, 출 20:7) 부르는 것은 아닌가 하고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나도 축복하고, 하나님보고도 축복해달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나와 동등한 자리로 끌어내릴 수는 없다.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이요, 그 사람의 사상이요, 그 사람의 신앙이요, 그 사람의 생활이다. 불변의 진리를 담은 성경을 삶의 표준으로 삼는 교회 내의 신앙적인 언어는 근본적으로 성경의 교훈과 교회사적 삶의 쓰임에 일치하여야 한다. 복 주시는 분에게 예우 갖춰야 이제라도 건전한 교회의 언어문화를 갱신하고 창달하여 다음 세대에게 바른 교회 용어를 물려줘야 한다.
704 no image |제언| 노회, 곧 공교회를 회복하자_나종천 목사
편집부
1649 2015-12-29
 노회, 곧 공교회를 회복하자 < 나종천 목사, 한사랑교회 > “노회의 공교회 회복을 위한 운동이 건강한 지 교회 이루게 해” 장로회 정치 제도는 제네바의 존 칼빈에 의해 시작되었고 스코틀랜드의 존 낙스에 의해 발전되었다. 스코틀랜드에서 종교개혁을 시작할 때 처음에는 탄압이 아주 심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교회를 바르게 세우려는 목사와 장로들이 매주 월요일 모여서 일종의 수양회 같은 것을 가졌다고 한다. 원래는 성경 공부를 하고 교제를 하기 위해 모였는데, 이것이 차츰 발전되어 교회에 대한 여러 문제들을 의논하게 되었으며 나중에는 여기서 결정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생겨난 것이 ‘노회’(presbytery)이다. 노회(老會)란 장로회(長老會)를 뜻한다. 곧 목사와 장로들이 모여서 교회의 문제를 의논하고 결정하는 모임을 말한다. 이 ‘노회’가 중심이 되어 교회의 문제를 결정하는 정치 제도가 곧 장로회 정치 제도이다. 노회가 곧 교회이다. 즉 공교회를 말한다. 노회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나뉘어 여러 지교회가 되었다. 즉 노회 전체 교회가 모일 수 없어 지역에 교회를 노회가 세우고 목사를 파송하여 목양을 하도록 하였다. 서로 협의하여 교리순전 보전하고, 권징 동일하게 시행하며, 영적 지식과 바른 진리를 전파하며, 배도와 부도덕을 금지해야하는데 이를 노회의 직무 가운데 중요한 직무 중 하나이다. 지 교회의 형편을 살피는 일은 시찰회가 한다. 노회는 시찰위원의 규정들을 통하여 교회를 감독하며 목사를 감독하는 노회의 치리권을 시행하기 위하여 시찰위원들을 두고 있으며, 시찰위원은 수시로 교회를 순방하고 목사를 순방하여 교회의 영적 형편, 교회의 재정형편, 전도형편, 각 기관들의 형편을 살피고 지도하며, 필요하면 노회에 보고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노회가 추구하는 개혁주의 교회를 이루는데 있어 아주 중요하다. 합신이 출발 할 때 바른 바른교회란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주인이 되시며 교회의 통치자가 되시는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는 운동이다. 한국교회에서 인간적인 요소가 지나치게 강하게 나타나서 음모와 술수 금전과 지방색 및 파벌의식으로 인해 교회가 분열되고 혼란이 일어난 잘못된 교회관을 깨고 그리스도가 머리로 한 바른교회의 이념을 주창하게 되었다. 교회 안에서 인간 중심의 사상을 배제하고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참된 인도자가 되시는 바른교회 운동에 앞장서고자 하였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노회 공교회의 회복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교회의 형태를 보면 성장에 눈이 어두워 다른 지교회의 교인 데려오기, 많은 프로그램을 통한 교인들의 눈길 끌어 모으기, 어느 분이 말한 것처럼 작은 교회에 빨대를 데고 빨아버리는 추태들, 이것이 오늘의 교회의 모습이다. 지교회 당회의 중요 사역이 교인의 이명이다. 교인의 이명 하나를 살필지라도 개혁주의 교회가 갖고 있는 공교회로서의 한 몸의 지체임을 얼마나 중요하고 신중하게 다루고 있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 이명을 실시한 교회가 있는가? 교회가 분립인지, 분리인지도 분별하지 못하고 교회를 깨는 행위는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찢는 행위이다. 교회를 깨고 찢는 행위는 이단과 같이 무섭게 징벌했다. 왜냐하면 주님은 교회의 머리요 성도는 그 몸의 각 지체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쉽게 교회를 떠나고, 다르다고 쉽게 나눌 수 있는가? 이것은 무서운 죄악이다. 몸을 찢는 행위이다. 이것이 개혁주의 교회가 가지고 있는 교회론이다. 따라서 각 노회로부터 공교회 회복을 위한 중요한 회복운동을 했으면 한다. 신학적인 정리와 그리고 노회의 공교회 회복을 위한 운동이 있어야 건강한 교회를 이룰 수 있으리라 생각할 수 있다. 한 예로 노회 목사들의 사례비문제이다. 노회에 속한 지교회의 목회자들의 생활고를 들어보면 가슴이 미어진다. 지체가 힘들어있는데 그 힘듬이 당신의 무능함이라고 등을 돌려야하는가? 우리가 이렇게 하고도 사도신경에서 고백한 것처럼 거룩한 공교회를 믿는다고 말할 수 잇는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제 나, 우리 교회를 뛰어넘어 ‘거룩한 공교회를 믿사오며’라고 신앙을 고백한 것처럼 공교회의 회복을 위한 운동이 우리 안에서 일어나 건강한 교회의 모습을 이루어 가는 노회, 장로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703 no image |목회수상| 죽음, 반드시 연습해야 한다_김승주 목사
편집부
1652 2015-12-29
 죽음, 반드시 연습해야 한다 < 김승주 목사, 참빛교회, (사)안양호스피스선교회 회장 > “죽음은 현실이고, 호스피스는 자기 죽음의 가장 의미 있는 연습” 우리의 인생이 이토록 소중한 것은 유일회적이며, 누구도 대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어떤 경우에라도 실패해서는 안 될 것이 인생입니다. 비결이라도 있을까요? 겸손 우리는 단 한 순간도 은혜 없이는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정작 은혜를 주실 분의 관심은 겸손한 자에게만 있습니다. 살아가노라면 긍지는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더구나 그분의 종으로서의 긍지는 필요합니다. 그러나 도(度)가 넘으면 곤란합니다. 대개가 끝이 안 좋았습니다. “나는 예외니까”하다가 넘어 간 사람이 한 두 사람이 아닙니다. 양자 간의 차이는 무엇이겠습니까? 긍지가 신전의식을 가졌다면, 교만은 그것이 없습니다. 늘 믿음을 말하면서도 안하무인(眼下無人)입니다. 성공적 인생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하던지, 항상 그 분 권위 아래 자리를 잡아야 안전합니다. 섬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이 땅에서의 삶은 종으로 살아가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신•불신을 막론하고 존경을 받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존재론적 의미보다는 그분의 섬김의 삶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겸손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 겸손의 진위 여부는 ‘섬김’에서 입증되었습니다(마20:28). 만일 어떤 위인이 섬김의 정신은 빠진 채 그저 겸손해 보이기만 한다면 비굴이나 위선의 다른 표현일 수 있습니다. 가끔 은사에 따라 ‘하늘의 별’을 따기도 합니다. 하지만 주변에서 너무나 많은 적(敵)을 만듭니다. 독선 때문입니다. ‘주의 뜻을 행 했다’기 보다 ‘자기 의(義)를 드러낸 것’ 뿐입니다. 사역자들에게 특히 경계해야 할 부분입니다(마7: 21~ 23). 죽음 연습 히브리서 9장 27절 말씀은 '한번 죽는 것은 정해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죽음, 아무도 비켜 갈 수 없습니다. 세상은 온통 사건이 있지만 내 생애에서 죽음만한 대형 사건이 있을까요? 짐이라면 이만한 무게의 짐이 있을 까요? 코스라면 죽음만한 난(難)코스가 있을까요? 언젠가 김지하 선생님이 출연하신 방송을 본 적이 있습니다. 잘 아시는 대로 그분은 소위 ‘오적(五賊)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기도 한 매우 강성(强性) 분위기의 인사입니다. 민주화 과정에서의 일화들을 나눈 후, 사회자가 “이제 민주화도 이루어 졌으니 개인적 관심사 있다면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을 때,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죽음이지요”라고 답하는 것을 보면서 ”참으로 순수하고 정직하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정도의 인사라면 체면 상 다른 이야기로 에둘러 표현을 할만도 했을 것입니다. 이 엄청난 난 코스를 연습 한번 하지 않고 넘을 수 있습니까? 살아가면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일은 반드시 연습을 하게 됩니다. 입시를 잘 치르기 위해서는 많은 예제를 풀어봅니다. 수능을 치른 집 대문에 쌓여 있는 엄청난 책 더미를 보며 놀란 적이 있습니다. 하다못해 운전면허를 취득하는데도 코스와 주차. 주행 등 얼마나 많은 연습을 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너도 나도 성공을 노래하고는 있지만, 진정한 성공은 마무리가 아름다워야 할 것이고,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서는 죽음도 반드시 연습을 해 두어야 합니다. 어느 국제 야구대회에서 승리한 투수에게 비결을 물었습니다. 그는 “누워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 일생에 이토록 중요한 게임이 다시는 주어질 것 같지 않았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니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으며 몰래 나와서 달빛을 벗 삼아서 수천 개의 공을 던졌다. 비결이라면 그것이 비결이다”고 대답하더라고 했습니다. 유언장 죽음의 정면 돌파를 위한 효과적 프로그램 중에는 호스피스가 있습니다. 과정 중에는 전문 지식 외에도 유언장, 사전의료지시서 작성. 그리고 형편에 따라 입관체험까지도 하게 됩니다. 이때 관 앞에서 자신이 쓴 유언장을 읽으며 격한 감정에 눈물바다를 이루기도 합니다. 확실한 중간 결산입니다. 서양 속담에 “장례식장에서는 모두가 철학자가 된다”는 말이 있듯이 죽음과 맞닥뜨린 상황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삶이 더욱 진지해 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호스피스에서 만나는 분들 대부분은 최악의 상황에서 만나게 됩니다. 육체적으로도 그러하지만, 정신(정서)적, 사회적, 영적..등으로 겪는 총체적 고통으로 너무나 황폐해 져 있고 대부분이 분노. 원망. 불안 등으로 마음이 굳게 닫혀 있습니다. 그러하던 분들이 종사자들의 인격적이고도 헌신적인 돌봄에서 서서히 마음이 열리게 되고, 결국 복음을 받아 드리게 되면서 죽음에 대한 새로운 이해(천국의 유일한 입구)와 함께 어디에서도 누려 본적이 없는 참 평안함 속에 지내다가 부르심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전 과정을 반복해서 지켜보면서 은연중에 “저렇게만 마칠 수만 있다면 나도 죽을 수 있겠구나”는 생각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이것 만해도 얼마나 큰 연습이 되겠습니까? 죽음을 위하여 준비가 잘 되어 있는 분들도 막상 죽음을 선고 받으면 당황하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하물며 별 관심도 없이 지내던 분이라면 말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이따금씩은 상당한(?) 위치에 있던 분들도 마지막 순간까지 죽음을 받아 드리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하는 경우를 보고 있습니다. 성경 지식은 해박해도 연습이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겸손하게, 그리고 헌신적 삶을 살았다 할지라도 마지막 과정이 불안과 원망과 아쉬움 속에서 마쳐진다면 아름다운 마무리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호스피스, 결코 여유 있는 사람들의 유희(遊戱)가 아닙니다. 죽음은 현실이고, 호스피스는 자기 죽음의 가장 의미 있는 연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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