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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no image <수상> 14층 아파트에서 죽은...삼남매를 생각하며-오동춘장로
rpress
2920 2003-07-24
http://www.rpress.or.kr/files/sinkan/331odc.hwp14층 아파트에서 엄마 함께 죽은 인천 어린이 삼남매를 생각하며 오동춘 장로 / 화성교회 14층 아파트에서 엄마 함께 죽은제55회 제헌절날 오후 6시 10분경 인천 부평 구 청천동 ㅅ아파트 14층에서 떨어진 엄마와 삼남매가 동반자살을 한 비극이 일어났다. 인천 가정동에서 카드빚 3천만원 돈에 시달리며 실직하고 집 나간 남편마저 없는 집에서 자식 셋 데리고 근근히 살던 손 아무개 여인은 자식을 자기 소유 물로 알고 자기 죽은 뒤의 고통을 염려한 나머지 “엄마 죽기 싫어, 살려 줘” 울부짖는 일곱살 딸부터 잔인하게 14층 고층 아파트 창밖으로 내던졌 다. 그 다음에 다섯살 아들을 내던지고 세살난 딸은 자기가 안고 뛰어 내렸 다. 일가족 네 명의 목숨이 삽시간에 다 꺾인 것이다. 이 얼마나 애통한 비극 인가? 무엇보다도 비통한 일은 한참 밝고 곱게 자랄 세 어린이가 부모 잘못 만난 죄 로 인생의 꽃으로 한번 피워보지도 못한 채 엄마 손이 악마의 손으로 변하여 시커먼 죽음의 강에 던짐을 당한 일이다. 천사같은 어린 세 자식이 무슨 죄 가 있다고 엄마하고 동반자살을 해야만 하는가? 엄마는 살고 싶지 않다. 죽 고 싶다고 해도 “엄마 죽기 싫어, 살려 줘” 하며 애원하는 일곱살 먹은 딸 을 왜 고층 아파트에서 창밖으로 내던졌는가 말이다. 주일날 오랜 만에 찾아온 여제자가 다섯살 아들과 세살 딸 남매를 데리고 나 를 만나러 왔다. 제자의 딸을 안아주며 이런 예쁘고 귀한 어린 자식들을 인 천 어느 엄마가 고층 창밖으로 내던졌구나? 하는 생각에 전신이 오싹해지며 그 죽은 어린이 셋이 너무 불쌍하여 심장을 송곳으로 찌르는 고통을 느꼈다. 성경은 천하를 다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목숨이 사람의 생명이라 하는데 새파 랗게 자라는 어린 세 자식의 목숨이 가장 믿고 의지해야 할 그 엄마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했으니 참으로 원통하고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치권에서는 억대의 돈을 먹고 오리발을 내미는 판에 돈 3천만원의 카드빚 때문에 네 사람의 목숨을 헌신짝같이 내버린 엄마의 행위는 용서받을 수 없 는 끔찍한 일이다. 34세의 손 아무개 여인이 자식도 한 인격체인데 자기의 소 유물로 생각하고 물건 내던지듯 자식 셋을 창밖에 던진 그 무지는 참으로 개 탄해 마지 않을 일이다. 어린 자식들을 무참히 죽인 살인행위가 아닌가? 성경은 “자식은 여호와의 주 신 기업으로 오직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예수님은 “누 구든지 내 이름으로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라”고 일깨 워 주시면서 극진히 어린이를 사랑하신 것이다. 어린이날을 만든 소파 방정환 선생은 오직 어린이 사랑으로 일생을 마쳤다. 모든 어른들이 방정환 선생처럼 어린이를 사랑해야 한다. 1957년 5월 5일에 발표된 어린이헌장대로 어린이들은 어들들의 사랑을 받으며 어린이로서의 당 당한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어린이를 돈의 대상으로 유괴하여 학대하며 부 모에게 거액의 돈을 효구하는 유괴범죄도 철저히 막아야 한다. 낳은 자식을 팽개치며 이혼하는 부부도 법의 준엄한 심판을 받아야 한다. 제 자식을 소유 물로 착각하고 동반자살하는 어리석은 부모가 다시는 없게 사회계몽과 돕는 사회복지 시설이 강화되어야 한다. 도대체 우리 어린이들이 누굴 믿고 안심하 고 살아갈 수 있겠는가? 우리 어른들의 깊은 반성이 절실 히 필요하며 인천 세 어린이의 비참한 죽음은 바로 우리 모든 부모의 책임임을 절감해야 할 것 이다. 나라에서도 어린이 보호대책을 더욱 철저히 세워 어린이가 비극을 겪는 일이 다시는 없게 해야 한다. 국민들도 서로서로 사랑하며 이웃 사랑의 희생 봉사 정신이 투철해야 하겠다. 학교에서 밝게 공부하며 생활한 일곱살 큰딸은 제헌절날 현장학습을 가야 했 으나 돈 3,800원이 없어 못가고 엄마한테 끌려가 그만 비참한 죽음을 맞게 된 것이다. 검은 돈이 판치는 나라에 부모의 빚돈 때문에 슬피 죽은 어린이 셋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기는 아픔을 금할 수 없다. 우리 믿는자들은 더욱 앞 서 기도하며 어린이 사랑에 온 정성을 다 쏟아야 할 것이다. 착하고 예쁜 세 어린이는 하나님 사랑 속에서 하늘나라에서 밝고 기쁘게 뛰놀며 살아가길 빈 다.
61 no image <목회수상> 인생은 떠남-김명혁 목사
rpress
3106 2003-07-24
http://www.rpress.or.kr/files/sinkan/331kmh.hwp“인생은 떠남” 김명혁 목사/ 동서울노회 인생은 나그네요 만남이요 나눔이요 버림이요 기쁨이란 말을 나는 자주 한 다. 그렇다 인생은 만나서 나누며 즐겁게 살도록 지음 받은 존재이다. 그러 나 나는 “인생 오도”를 묵상하다가 최근에 한두 가지를 추가하게 되었다. 인생은 즐거움과 기쁨임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결국은 헛됨이고 떠남이란 말이 다. 인생은 떠남이다. 이중표 목사는 인생은 별세라고 정의했는데 나는 그 말 에 동의하면서 인생은 떠남이라고 말하고 싶다. “인생 칠도”이다. 첫째 구약의 중요한 주제의 하나는 떠남이다. 아브라함이 본토 친척 아비 집 을 떠났고 롯이 소돔을 떠났으며 이삭이 그랄을 떠났다. 요셉은 이상한 방법 으로, 타의로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고향을 떠나 타향 애굽에 종으 로 팔려갔다. 모세는 떠남의 삶을 반복하다가 마지막에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 끌고 애굽을 떠났다.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상 주시는 자를 바라보며 가 나안 땅을 향했다(히11:27). 애굽을 떠난 출애굽의 주제는 구약의 주제들 중 의 가장 중요한 주제의 하나이다. 출애굽의 주제는 나중에는 바벨론을 떠나 는 출 바벨론의 주제로 이어졌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 은 떠남의 생활을 거듭하다가 결국 약속의 땅에 이른다. 둘째 신약의 중요한 주제의 하나도 떠남이다. 예수님은 “하늘 영광 떠나서 이 세상에 종으로 섬기러” 오셨다. “종 되신 왕”으로 오셨다. 세상에서 구 속의 사역을 다 이루신 후에는 세상을 떠나 하늘로 가셨다. “세상을 떠나 아 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요13:1).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 희에게 유익이라”(요17:7). 예수님은 우리들도 예수님을 따라서 떠남의 삶 을 살도록 본을 보여주셨고 떠남이 유익이 된다는 높은 차원의 진리도 보여주 셨다. 이 진리를 터득하고 실천하며 산 사람이 사도 바울이었다. “우리가 담 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고후5:8, 빌1:23,딤후4:6). 사도 베드로도 나중에는 “이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고 고백했다(벧후1:14). 셋째 오늘을 사는 우리 신자들도 떠남을 준비하는 삶을 살 아야 할 것이다. 유 교적 전통과 경제성장의 국가정책 가운데서 살아가는 오늘의 신자들이 자칫 떠남의 사실을 망각하고 살아갈 수도 있다. 가인처럼 세상에 성을 쌓으며 세 상의 부귀를 즐기면서 살아가는 잘못을 범할 수도 있다. 김삼환 목사는 오늘 한국교회 신자들의 가장 큰 문제점의 하나는 종말신앙을 상실하고 있다는 것 이다. 떠남은 부정적인 의미도 있지만 사실은 긍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가나안 땅으로 들어감을 의미하고 하늘 아버지 집으로 돌아감을 의미하기 때 문이다. 인생은 떠남의 생활 즉 나그네의 생활을 거듭하다가 나그네의 생활 을 마감하고 세상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게 된다. 인생은 떠남이다. 떠남을 준비해야 한다. 미국의 신자들에 비해 우리는 유언 이나 유산을 미리 남기는 것을 꺼려 한다. 떠남을 준비하는 한 가지 방법은 우리에게 맡기신 달란트를 모두 사용하는 것이다. 떠남을 준비하는 또 한 가 지 방법은 다윗이나 어거스틴이나 프랜시스나 루터나 김치선 목사나 박윤선 목사나 한경직 목사처럼 많이 울면서 회개의 제사를 드리는 것이다. 세상에 대한 미련과 애착을 버리는 것이 좋다. 가볍게 후회 없이 떠나야 한 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긴 모든 은사들을 마음껏 사용하고 가볍게 떠나야 한다. 몸이 부서지도록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들을 많이 하고 후회 없이 떠나 야 한다. 자리도 너무 오래 차지하려고 할 필요는 없다. 재산을 너무 오래 소 유하고 있을 필요도 없다. 보물을 모두 하늘에 쌓은 후 가볍게 만족스럽게 떠 나야 할 것이다.
60 no image <목회수상> "야! 네 자신이나 위해서 울어!" -최영배 목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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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77 2003-07-10
http://www.rpress.or.kr/files/sinkan/cyb.hwp "야! 네 자신이나 위해서 울어!" 최영배 목사(충청노회) 느헤미야는 바사제국의 아닥사스다 왕의 술맡은 관원장을 지내던 경건한 신앙 을 지닌 유대인이다. 그는 조상 때부터 포로생활을 시작하던 피지배 민족의 사람으로서 고급 관리 직에서 올라 세상 말로 성공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에게 근심 걱정이 있었는 데,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에 대한 것 이었다. 그래서 동생 하나니를 통해 예루살렘 형편을 알게 되었는데, 예루살렘에 사 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큰 환난을 만나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훼파되 고, 성문들은 다 타버렸음을 들었다(느 1:3). 이 말을 들은 느헤미야는 "앉아 서 울며, 수 일 동안 슬퍼하며 하나님 앞에서 금식하며 기도하였다"(느 1:4). 그 후 5절부터는 무너진 하나님의 도성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회복을 위해 기도한다. 이 말씀을 오늘 날 우리에게 적용해 보았다. 오늘 날 하나님의 도성, 하나 님의 나라가 어디인가? 신앙고백이 있으며, 성삼 위 하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하나님의 통치를 받 고 있는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가 아닌가? 그런데 오늘 날 한국교회의 모습이 어떠한가? 마이너스 성장이라고 이구동성으로 탄식하며 말하기도 한다. 개척교회를 시작 하면 자립하기가 너무나 힘이 든다고 한다. 전도가 잘 안 된다고 한다. 복음 을 전해도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완전 불신자가 예수님을 영접하 여 신자가 되는 경우가 점점 희박한 시대라고 한다. 대부분이 교인 이동을 하 고 있을 뿐이라고 한다. 심지어는 여기 저기서 개척교회 시작한지 수 년 만 에 교회를 폐쇄하는 소리가 꽝꽝 들린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복음은 생명이고 능력이 아닌가? 한국교회가 사회로부 터 배척 당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소금이 맛을 잃으면 밖에 버리워 발 에 밟힌다고 한 주님의 말이 현실로 보여지는 것 같다. 교회가 세상에서 맛 을 내는 단체로 보여졌다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지난 주일 낮에 사도행전 10장의 고넬료의 신앙에 대하여 설교했었다. 고넬료 는 이방인이었지만, 온 가 족, 하인까지도 함께 하나님을 경외했고, 백부장으 로 100명의 부하 군사들을 통솔하면서 직업 속에서 소금의 맛을 내어 부하 병 사 중에 경건한 자들이 생겨났다. 또한 베드로를 초청해서 진리의 말씀을 들 을 때 전도 차원에서, 일가와 친구들을 초청했고, 일가 친구들은 관심을 갖 고 호응하여 함께 참여해 베드로의 설교를 들었다(이들은 베드로의 설교를 듣 다가 모두 성령 부어주심을 받고 물세례도 받았다). 고넬료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항상 깨어 기도하는 자였고, 그러면서도 늘 자기 가 믿는 하나님의 도를 가족과 일가 친구들 그리고 직장 속에서 전파하는 자 였다. 그런데 그냥 전도한 것이 아니라, 많은 구제를 하였다고 하였는데, 이 것은 고넬료가 "사랑의 사람"이었음을 대변해 준다. 그는 사랑의 사람이었 다. 고넬료의 사랑은 단순한 인도주의적 사랑 실천이 아니라. 하나님 경외하 는 신앙에서 나온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사랑의 사람이었다. 이렇게 온 족속에게 칭찬 듣고, 하인과 부하 병사로부터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고 인정받는 성도들이 한국교회에 많다면, 오늘 날 한국교회가 이렇게 되었을까?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도성의 무너짐과 황폐함을 보면서 여러 날을 슬피 울 며, 금식하였듯이, 한국교회를 보면서 목회자들과 모든 성도들이 슬피 울어 야 할 때가 아닌가? 그래서 새벽기도회를 마치면서 성도들에게 말했다. "오늘은 우리 모두 한국교 회를 위해 웁시다!" 말한 후에 나도 한국교회를 위해 울기 위해 강단 아래에 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무너지는 한국교회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울려고 하 자. 내 마음에서 한 소리가 들려왔다. "야! 네가 한국교회를 위해 울어! 너 자신은 어떻고? 한국교회를 위해 거창하 게 울 자격이나 있냐? 야! 네 자신이나 위해서 울어!" 순간 부끄러웠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고사하고 내 자신의 게으름과 이기심과 교만과 무례함과 불순종 등등. 나 자신을 위해 울기 시작했다. 엉엉 울었다. 부르짖으며 울었다. 한참 울다가 내 가정을 위해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서 야 한국교회를 위해 울 수 있었다. ' 우리 모두 축대와 담이 다 무너져 내린 자신의 영적 모습을 보면서 울고, 자 기 가정을 위해 울고, 그리고 한국교회를 위해 울며 기도할 때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느헤미야에게 무너진 예루살렘 성을 재건할 기회를 주셨듯이 우리 에게도 그러한 기회를 주시지 않을까?
59 no image <기고> 갈 곳이 없으면 우리 집으로 가자-이기학 목사
rpress
3104 2003-07-09
http://www.rpress.or.kr/files/sinkan/330igh.hwp"갈 곳이 없으면 우리 집으로 가자" 이기학 목사/ 경북노회 '따르릉..,' '여보세요.' '목사님, 저 원기(가명)입니다.' '그래, 몇 시에 출소했어?' '예, 지금이요, 저는 지금! 여기 다방인데요...' '그래, 기달려, 여기서 거기까지 50분 거리이니, 그 때까지 다방에서 기다 려...' '...예!' 다방에 도착하여 보니, 이 친구는 없었다. 왠지 허전한 마음으로 주변을 찾아 보니, 100미터 전방에서, 두 손을 높이 들고 '목사님!' 하며 어린아이같이 내 품으로 아기가 아빠의 품으로 빨려 들어오듯 안기는 것이다. '그래 그동안 수고했지?' '아닙니다.' 우리는 다방에 들어가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여러 이야기 중에 이 형제는 두 번 다시 춘천으로 가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래, 어디로 갈 거야? 갈 곳이 없으면 우리 집으로 가자!' '목사님, 잠시 서울에 같다가, 부산으로 갈 것입니다. 부산에 갈 곳을 정해 두었습니다.' '그래, 이제부터, 여기 청송뿐만 아니라, 교도소는 끝이다.' '목사님. 제가 전과 5범인데, 전 이번이야말로, 여기서 제 자신을 발견한 것 같고 많은 깨닫음이 있었습니다. 그전에는 김천이나, 대전, 안양에 있을 때에 는 별로 못 느꼈는데, 여기 와서는 정말, 많은 것을 느꼈고, 예수 안에서 내 가 해야 할 일을 찾았습니다. 목사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그래, 어떻게 보면, 네가 여기에 온 것은 너에게 있었어. 하나님의 복이요, 은혜 일 것이야.' '예, 만약에 제가 감호처분을 받지 않고, 그냥 있었다면, 이처럼 깨달음은 없 었을 것입니다. 저에게는 이번 감호가 하나님의 부르심이었고, 나도 할 일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부모님을 원망했고, 가족들도 증오했는데, 이제는 사랑합니다. 제가 예수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다른 감호자같이 이번 에 금식을 하면서 원망, 불평, 그리고 저주까지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은 감사합니다. 목사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이 친구야! 감사는 주님께 하고, 이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고, 그 분 안에서 그 분의 뜻을 바라보고 사는 믿음의 사람만 되는 거야. 형제가 알다시피, 세상 의지하면 할 수록, 거기에는 거짓과 위선이 가득하고, 마치 늪과 같아서, 형제의 심령뿐만 아니라, 삶도 마멸시키고 말지' '...' '목사님, 앞으로 예배 안에서 주님 의지하면서 살 것입니다. 기도해 주세 요.' '그래, 힘이 들면 언제든지 전화하고, 아니면, 와' '..., 예.' 우리는 이렇게 헤어 졌다. 한 형제의 고백 속에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 영혼을 사 랑하고 섬기고 이해하는 것은 곧 주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고 계시고, 우리를 얼마나 아끼시고 계시는지 또 한번 체험하게 되었다. 우리 주변에 소 외된 분들을 사랑하고 돌아보는 것은 곧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는 그 깊이 를 알게 하는 주님의 선물과 같은 것이다. 오늘 한 형제의 새로운 다짐을 들으면서, 이렇게 기도한다. "주님, 오늘도 나에게 당신의 마음을 알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58 no image <기고> 휘트필드와 웨슬리의 부흥운동-이화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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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09 2003-06-25
http://www.rpress.or.kr/files/sinkan/329lhy.hwp휘트필드와 웨슬리의 부흥운동 이화영 목사 18세기에 영국에는 두 명의 위대한 부흥사가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죠지 휘 트필드요 다른 한 사람은 죤 웨슬리입니다. 두 사람은 같은 연배로서 옥스퍼 드대학에서 함께 공부를 했습니다. 그들은 함께 홀리클럽에서 경건훈련을 하 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에 먼저 두각을 나타낸 사람은 휘트필드입니 다. 휘트필드는 첫 번 설교를 할 때부터 엄청난 반향을 일으킬 정도로 시작부 터 대단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휘트필드가 초청 받아 설교하는 교회마다 자리가 모자라서 사 람들이 되돌아가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되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기존교회 목 회자들의 시기와 질투도 점점 더 증가했습니다. 그러자 휘트필드는 평소부터 생각해 오던 야외설교를 어느 탄광촌에서 시작했습니다. 이 때만 해도 웨슬리 는 엄숙함이 결여된 야외설교는 마귀의 짓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 니다. 처음에 몇 백 명이 모이던 휘트필드의 야외집회가 불과 몇 번만에 수 만 명이 모이는 거대한 집회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휘트필드는 주로 예수님처럼 자그 마한 산자락에 올라가서 산밑에 모여있는 사람들에게 설교를 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설교를 들으려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났습니다. 이 때문에 휘트 필드는 자기 혼자서 설교를 감당하기 힘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죤 웨슬리에게 편지를 보내서 와서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휘트필드는 죤 웨슬 리가 와서 도와주리라는 기대를 별로 하지 않았는데 놀랍게도 죤 웨슬리가 왔 습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이 나눠서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얼마쯤 그렇게 하다가 휘트필드는 그 곳을 웨슬리에게 맡기고 자신은 다른 곳 으로 복음을 전하러 떠났습니다. 송삼용 목사가 지은 휘트필드의 전기를 보면 휘트필드도 한 때 자발적인 휘트 필드 지지조식을 운영한 바가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휘트필드는 그 조직이 국교회와의 분리를 가져온다는 이유로 조직에서 손을 떼고 맙니다. 그 후로 그는 오직 연합만을 강조하며 복음을 전해했습니다. 그리하여 그가 세상을 떠 남으로 자연스럽게 그의 부흥운동도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만일 휘트필드 가 자 신의 조직을 계속 유지발전 시켰더라면 오늘날 영국에는 칼빈주의 혹은 청교도 사상으로 무장한 건전한 개신교회가 존재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 고 그 단체는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데 큰 영향력을 끼치게 되었을 것입니 다. 휘트필드의 뒤를 이어서 죤 웨슬리가 설교하자 사람들이 휘트필드의 설교 때 처럼 모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죤 웨슬리는 휘트필드와 다르게 부흥운동 을 했습니다. 그는 "세계는 나의 교구다" "세계를 복음화 하자"라는 큰 비전 을 제시하고 성도들을 묶어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국교회와 분리를 각오 하면서까지 조직적으로 부흥운동을 했습니다. 날이 갈수록 웨슬리가 만든 조 직은 점점 더 거대한 조직으로 발전해서 웨슬리부흥운동을 힘있게 도았습니 다. 결국 그 조직은 국교회와 분리가 되어서 감리교회가 되었습니다. 그 조직 은 웨슬리가 죽은 후에도 계속 유지, 확장되며 부흥운동을 벌였습니다. 그리 고 지금까지 웨슬리의 부흥운동을 지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당시의 영국국교회의 변질과 타락을 볼 때 웨슬리의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 합니다. 만일 휘트필드가 끝까지 자신의 추종자들을 조직화해서 그 조직을 후 세에 물려주었다면 영국의 교회는 지금보다 훨씬 더 건전해 졌을 거라고 생각 합니다. 또한 세계 복음화에도 큰 기여를 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영국 부흥운동의 역사는 연합이나 설교도 중요하지만 비전제시와 조직 도 매우 중요한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57 no image <수필> 지네와 닭-박종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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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55 2003-06-25
http://www.rpress.or.kr/files/sinkan/329pjh.hwp지네와 닭 박종훈 목사/ 전북노회 주일 예배를 마치고 장년 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밖에 나오자 아이들은 서로 승합차로 달려간다. 중일학년인 남석이가 앞자리에 타려고 손잡이를 잡고 있 고 바로 뒤에서 막내아들인 초등삼년인 서진 이가 서 있었다. 먼저 온 남석이 가 있지만 운전기사이고 목사인 아버지의 빽(?)으로 앞자리에 탈 요량으로 뒤 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작은 일도 공평해야 하기에 먼저 온 남석이를 앞자리에 태웠다. 장 년을 비롯 중학생들과 초등학생들 모두 같이 예배를 드리고 인사를 나누다 보 면 조금 늦게 나온다. 아이들은 서로 앞자리를 타려고 이처럼 줄을 서서 기다 리는 것이다. 차를 막 출발하려는데 남석이가 앉은자리의 발 밑에서 손가락보다 긴 지네가 스멀거리며 남석이의 발등에 오르는 것이다. 그러자 기겁을 하며 놀라며 발 을 치우자 지네는 엄지발가락을 물고서는 재빨리 도망 가버렸다. 남석이는 참을 수 없는 고통스런 얼굴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지네가 어쩌다 차안에까지 들어왔는지..... 우리 집에는 지네가 서식할만한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고목이 된 밤나무 가 있고 텃밭에는 닭들이 있어서 닭뼈를 좋아하는 지네가 살기에 안성맞춤인 것이다. 예전에는 닭들을 마음껏 놓아기르기 때문에 지네 같은 벌레를 잘도 찾아서 먹어치우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정원이나 채전밭의 피해로 인해 일정한 우리에 가두고 키운 다. 지네는 닭의 뼈를 좋아하고 닭은 지네를 좋아하며 서로가 밥이 되고 먹이 가 되는 자연의 오묘한 상극(相剋)을 보며 우리 인간사회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다. 지네에 물리면 얼마나 고통스런지 나는 전에 경험을 했다. 몇 년 전에 아들 방에서 잠을 자는데 몸위로 사각거리며 기어가는 물체에 반사적으로 손을 대 자 주사바늘에 찔린 듯 극심한 통증이 왔다. 불을 켜서 살펴봤으나 아무것도 없었다. 아픈 부위를 보니 벌겋게 부어 오르 며 무엇에 물린 자국이 선명하게 보였다. 분명 무엇에 물린 것 같으나 정체 를 알 수 없었지만 직감적으로 지네에 물린 것으로 판단했다. 그 동안 지네 에 물린 적은 한번도 없었기에 그 고통 또한 처음 느꼈다. 어린 시절 사 나운 벌도 쏘이고 쐐기의 독을 쏘이고 여러 독충의 독을 맛보았지만 이처럼 심한 고통은 없었다. 한 시간정도 지나자 고통이 사그라졌고 결국 지네였음을 발견 하게 되었다. 남석이는 눈물을 글썽이며 통증을 호소하지만 그저 시간이 지나면 괜찮을 것 이라 위로해 주었다. 그 때 함께 타고있던 수정이가 하는 말 '우리 할머니는 닭 벼슬 때문에 죽을 뻔하다 살았어요.' 그 때서야 생각이 났다. 민간요법에 지네에는 닭 벼슬의 피가 해독한다는 것 을 들었던 것이다. 수정이는 서울에서 살다가 귀농한 부모님을 따라 이제 시 골 생활 삼 년째이지만 할머니의 지네물린 것을 보고 알았던 것이다. 아이들을 집에 우선 데려다 주고 남석이는 다시 교회로 데리고 왔다. 가위를 준비해서 닭장에 들어가니 닭들이 뭐 먹을 것을 주는 줄 알고 달려든다. 그 중에서 벼슬이 좀 큰 닭을 잡아서 벼슬을 가위로 조금 자르자 피가 한 두 방 울 나온다. 놀란 닭은 비명도 못 지르고 다소곳이 몸을 맡긴다. 그 즉시 지네가 물린 발 가락에 닭 피를 발라주었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통증이 가라앉은 다는 것이 다. 과연 지네의 독은 닭의 피가 특효임을 증명해 주었다. 신기한 눈으로 구경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지금도 차 안의 어딘가에 숨어있을 지네의 소탕작전에 나섰다. 조그만 틈새도 들어가는 지네를 불러도(?) 나올 리 없기에 독가스를 뿌렸다(에프킬라) 지네도 독을 주었으니까 사람이 만든 독 맛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러자 꼭꼭 숨어있던 지네가 허둥대며 나오는걸 가위로 잡아서 두 마리로 만 들어 주었다. 그리고 아직도 놀란 가슴으로 멍하니 주저앉은 그 닭을 향해 지네를 던져주 자 금방 달려들며 한 입에 삼켜 버리는 것이다. 참으로 자연은 독이 있으면 해독하는 것도 자연 속에 같이 있다는 것을 아이 들과 함께 체험했다. 극심한 고통을 준 지네의 독을 닭의 피 한 방울이 해독 (解毒)한다면 죄(罪)로 인한 영원한 독(毒)을 예수님이 흘리신 보혈(寶血)이 야 말로 .....
56 no image <제언> 감호자들의 단식을 보면서...-이기학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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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64 2003-06-12
http://www.rpress.or.kr/files/sinkan/328jeyen.hwp감호자들의 단식을 보면서... 이기학 목사/경북노회 지난 5월 23일 점심부터 6월 2일까지 10일간 청송감호소에서는 하루에 5백명 에서 6백여명의 감호자들이 사회 보호법 폐지 및 가출소 대폭 확대 등을 요구 하며 집단 단식을 했다. 이번 단식을 통해 다시 한번 사회적으로 인권의 소중 함이 대두되는 사건이었다. 보호감호는 제 5공화국 전 전두환 대통령 정권 시절 범죄와의 전쟁이 선포된 이후 삼청교육대와 함께 시작됐다. 감호제도는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법령으 로 '죄를 범하여 그 형을 종료한 자로 보호하여 교육 개선함으로써 사회 복귀 를 촉진하고 사회를 보호한다'는 명목아래 법원에서 일률적으로 실형과 상관 이 없이 판결을 한다. 이로써 5공 이후 법원 판결에 의해 지난 23년간 수많은 사람들이 7년간 보호 감호를 받아 온 것이다. 감호자들은 범죄의 대가인 실형과 관계없이 상습범이 라는 이유 하나로 7년이라는 시간을 '갱생'이라는 구호 아래 제2의 수감생활 을 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 특히 감호자들의 단식이 있기 전, 강금실 법무부장관이 청송 지역을 방문했 을 때 만나지 않고 그냥 간 것에 대한 서운한 감정도 있었던 것 같다. 청송에 서는 이번 감호자들의 단식기간 중 교정국장, 보호국장이 감호자 대표들과 면 담을 하고 감호자들의 사정을 많은 부분 들어주기도 하였다. 그리고 민변 등 26개 인권단체로 구성된 사회보호법폐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 회(공대위)에서도 2차례 다녀가고, 지난 6월 3일에는 국가인권위원회 차관급 위원과 변호사 등 6명이 감호자들과 면담을 통하여 감호자 인권 문제 해결에 새로운 계기를 낳기도 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감호자들은 자신들의 죄의 대가인 실형을 다 받았음에도 불구 하고 교도소의 수형자들과 똑같은 처우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일을 통 해 진정 감호자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교회와 교계는 감호자 들의 문제를 좀더 적극적으로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이다. 단식 사건이 있기 전, 한 감호자가 필자에게 와서 말하기를 '현재 이 감호소 안에서 보이지 않는 신앙의 핍박이 있습니다. 신앙의 핍박으로 인하여 일부 사람들은 신앙을 개종하고 있습니다'고 했다. 어떤 신앙의 핍박이 있기에 다 른 종교로 개종까지 하는지 물어보았더니 비기독교신자들이 기독교는 말로만 하나님의 사랑, 이웃 사랑을 했지 정작 이웃 사랑과 어려움 속에 처한 사람들 의 형편를 돌아보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고 했다. 그리고 다른 종파에서는 그 종파 내 인권위원회가 사회보호법 폐지를 위해 다 방적으로 노력하고 있는데 기독교 인권위원회는 아무런 대책이 없는 것이 참 종교가 아니라고 핍박하면 믿음이 없는 연약한 성도들은 종교를 개종하게 된 다는 것이다. 이번 감호자들의 문제를 통하여 기독교 인권위원회는 무엇을 했는지 몹시 궁 금하다.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진정 인권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있는지 반문을 해보고 싶다. 교도소에 수감된 수형자들이나 감호자 처분으로 감호병 과를 받은 사람들이나 우리들은 다 동일한 하나님의 형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보지 않고 진화론에 의한 자연의 일부 나 포유류에 속한 지능 있는 동물로 생각하는 것은 조건이나 근거에 의해서 수용자, 감호자, 출소자들을 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권의 논리를 사회의 윤리와 도덕의 차원에서 다룰 것이 아니라 사람 의 권리가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다시 한번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
55 no image <교직자수련회를 다녀와서> 20년 후, 우리의 모습은-윤순열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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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34 2003-06-12
http://www.rpress.or.kr/files/sinkan/328ysy.hwp 20년 후, 우리의 모습은 … 윤순열 사모/ 서문교회 기다림과 설레임속에 5월 19일부터 3박 4일간의 일정으로 개최되는 총회수련 회를 경주에서 맞이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참석한 수련회는 그 장소부터가 우 리 부부에게는 신혼여행의 달콤한 추억이 깃든 곳이어서 가슴을 벅차오르게 했다. 인천에서 5시간을 달려와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호텔에 도착하니 벌써 많은 목사님들과 사모님들 그리고 각처의 교회에서 수고하시는 교직자님들이 오셔 서 반갑게 인사들을 나누고 계셨다. 1년만에 보는 정다운 얼굴들 … 그동안 목회현장에서 지친 몸과 마음들이 이곳에 와서 동역자들을 보는 순간 동병상 련의 나눔에서 오는 평안함이 밀려오는 것 같다. 깨끗하게 단장된 숙소에 들어서니 새로 신혼여행에 온 것처럼 마음이 들뜨고 온몸에서 힘찬 기운이 솟아난다. “하나님의 은혜로! 지혜로운 건축자로”란 주제로, 매일 매일 매시간 매시 간 정해진 순서에 따라 정성껏 준비한 여러 목사님과 강사님들의 말씀과 강의 를 들으며 참석한 모든 사람들은 분에 넘치는 위로와 용기를 받았으며 또한 새로운 도전에 정신을 가다듬기도 했다. 하루 일과를 마치면 밤 늦게까지 그동안 각자의 처한 형편에 따라 목회현장에 서 일어났던 고충들이며 동기들의 근황을 물어보면서 정담을 나누다보면 어느 새 자정을 훌쩍 넘기고서야 잠자리에 들 수 있었지만 피곤한 줄도 모르고 시 간은 흘러갔다. 꿈같은 며칠이 지나고 바로 내일이면 집으로 가야하는데 이대로 시간이 멈추 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 부부는 20년전의 추억을 떠올리며 함께 신혼의 첫날밤을 보냈던 호텔에 들렀다. 호텔로비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옛날을 생각해본다. 풋풋한 청춘으로 만나 20 년을 지내면서 우리는 스무살, 열세살 남매를 둔 부모가 되었고, 벌써 머리 는 희끗희끗한 중년의 나이로 접어들었다. 그러면 20년후의 우리의 모습은 어 떻게 될까 생각해본다. 잠깐 사이에 20년이 흘러갔는데 앞으로의 20년도 그렇게 순식간에 흘러갈 것 이다. 하얀머리에 주름진 얼굴 은퇴한 노목회자 … 세월 은 우리를 그대로 놔두지 않는다. 너무나 빠른 세월앞에 할 말을 잃는 다. 모쪼록 20년후 인생의 황혼기가 되었을 때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많은 이 익을 남겨 주님께 칭찬듣는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서게 되기를 바랄 뿐이 다.
54 no image <목회수상> 그가 남긴 난초-황대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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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7 2003-05-29
http://www.rpress.or.kr/files/sinkan/327hdy.hwp그가 남긴 난초 황대연/ 한가족교회 목사 우리 집 베란다에는 크고 작은 화분이 이십여개가 있습니다. 제 기억에 돈을 주고 산 것은 거의 없습니다. 주인으로부터 버림받아 아무렇게나 길 한 켠에 나뒹굴던 것을 주워 온 것도 있고, 건강이 불편한 성도가 이제는 더 이상 키울 수 없다며 꽃 좋아하는 사 모님 드린다고 몇 개 넘겨준 것도 있습니다. 대부분 화초를 좋아하는 아내가 분갈이를 하고, 영양제를 투입하고 하면서 지 극 정성으로 살려낸 것들입니다. 아내는 잘 키워서 그중 잘 생긴 놈들은 교회에다가 가져다 놓기도 하고, 잘 포장해서 카드와 함께 개업하는 성도에게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그 중에 하나, 베란다 한쪽에 있는 조그마한 동양란은 벌써 5년 이상을 잦은 이사 속에도 소중히 우리 가족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 녀석은 가끔씩 잊을 만하면 앙징맞은 꽃 봉우리를 터뜨리며 온 집안을 향 기로 가득하게 만들며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켜 줍니다. 이 동양란을 볼 때마다 문득 문득 P형제가 생각이 납니다. P형제는 개척초기, 누가 전도하지 않았음에도 지나다가 '한가족교회' 이름이 마음에 들어 와봤다며 그야말로 바람결에 날아든 민들레 홀씨 같은 사람이었 습니다. 그는 무슨 사고로 거의 몇 달을 식물인간처럼 살았고, 그 사이 그의 아내는 하나있는 딸, '온누리'를 남겨 놓고 가출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딸 하나가 딸린 34살짜리 이혼남이었던 것입니다. 기적적으로 살아난 그는 그야말로 '먹고살기 위해' 일을 했는데, 무슨 기계를 파는 영업 사원으로 전국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허허로운 가슴으로 집에 돌아오다 '한가족교회' 간판을 보고 무작정 찾아 들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개척교회 교인이라고 해야 10여명 남짓 있는 작은 교회였습니다. 그 무렵 저는 목사 안수를 받았음에도 뒤늦게 또 합동신학대학원에 들어가 공 부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것은 괜찮은 데 헬라어, 히브리어로 연일 코피가 터 질 때였습니다. 한창 시험을 앞둔 어느 날, 젖은 목소리로 그가 전화를 해 왔습니다. "목사님, 시간 있으시면...언제 얘기 좀 하시죠..." "예, 지금 급하신 일인가요?" "아,아뇨... 교회에서 뵙죠." 그 주일, 그는 볼품없이 생긴 조그만 난초 화분 하나를 들고 왔습니다. "사모님... 이거 꽃 피면 그래도 이쁩니다. 제가 하도 돌아다니다 보니 이젠 잘 못 키울 것 같네요..." 그리고 그는 주일이면 출장이 겹쳐서 교회에서 자주 볼 수 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온누리'아빠가 상담을 청하는 전화를 다시 해왔습니다. 하지만, 그가 시간이 있을 때는 내가 시간이 없었고, 내가 시간이 있을 때는 그는 지방에 출장을 가고 없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맞질 않아 어그러지길 얼마를 했는데.... 어느 늦은 밤, 그가 사망했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회사 야유회를 갔다가 보트가 뒤집혀서 익사를 했다고 했습니다. 그는 흑산 도 출신이라 수영을 잘 하는 사람이었는데... P형제의 장례를 마치고 저는 깊이 깊이 좌절했습니다. 알량한 공부한답시고 목사가 되어 가지고 성도를 제대로 돌아보지 못하고, 그 렇게 내게 무엇인가 말을 하고 싶어했는데 상담도 못해준 것이 한꺼번에 죄책 감으로 무겁게 짓눌렀습니다. 결국 학교를 휴학을 했고, 새벽마다 울었고, 낮 에는 방황했습니다.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셨든지, 아니면 목회 안하고 어디 도망이라도 갈까 생각 하셨든지 그 와중에 교인들 몇 사람을 붙여 주셨습니다. 죽은 자를 묻고 돌아와서도 산 자들은 밥을 먹듯, 나는 초췌한 모습으로 억지 로라도 설교를 해야 했고, 하나님은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가 남기고 간 난초가 꽃이 피고 지기를 벌써 몇 번 하는 사이, 내 심령의 아픔도 조금씩 아물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조금 있으면 그가 남긴 난초에 또 꽃이 필 것입니다... 내 중심에 새로 피어난 '한 영혼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처럼.
53 no image <제언> 건전한 사이버 문화정착을 위한 제언-이강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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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2 2003-05-29
http://www.rpress.or.kr/files/sinkan/327je-2.hwp건전한 사이버 문화정착을 위한 제언 이강근 목사/ 부산노회 "목사님! 어쩔 수 없이 가명을 사용하여 글을 올릴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 습니다." 필자와 가까이 지내는 목사님 한 분이 전화를 주셔서 털어놓으신 고충이다. 그렇다. 일리 있는 말이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이럴 수밖에 없는 다양한 상황이 존재한다. 때문에 가명(익명) 사용이 상당한 순기능 역할 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혁신보 게시판에 글을 올리는 일에 있어서 원칙은 실 명제로 가야한다. 사람들은 오늘 이 시대를 다양성 시대라고 말한다. 또 사람 들은 이런 다양성의 시대에서 자기만의 분명한 원칙이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 다고도 한다. 곧 자기만의 분명한 원칙이 있어야 다른 다양한 원칙들을 수용 할 수 있다고 한다. 자기만의 분명한 원칙이 없는 사람은 자기만의 잣대가 없 는 사람이기에 다양한 다른 주장들에 대하여 관용(빌4:5; 참고)을 베풀 수 없 게 된다고 한다. 따라 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나만의 원칙을 튼튼하게 세워 가는 일은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겠다. 사실 예수를 믿는 우리는 이미 분명한 원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복 음이라는 잣대이다. 복음이라는 이 잣대는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고 믿지 않으 면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이 복음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후자는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 부여된 잣대라 할 수 있 다. 그 누구보다도 목사 된 우리 자신들에게 주어진 잣대라 할 수 있다. 목 사 된 우리 자신이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앞장서야 하고 모범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실명이 옳으냐 가명(익명)이 옳으냐 의 문제는 이 큰 틀을 바탕으로 논의되어야 마땅하다는 생각이다. 개혁신보 게시판에 글을 올린 어떤 분이 가명(익명)도 매우 유용한 경우가 있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물론 옳은 말이다. 그 점을 분명히 인정한다. 때로 대담하고도 거침없는 의견을 말하고 싶으나 자기의 이름을 걸고 하기에는 난 처할 때가 있음이 사실이다. 누군가에게 너무나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어 떤 의견을 말해주 고 싶은데 자기 이름을 걸고는 골란 할 때도 분명 있다. 또 우리 나라 문화적 특성이 너무나도 쉽게 갑론을박으로 흐른다는 아쉬움 때문 에라도 자기 이름 걸기가 골란 할 때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명(익명)이 필 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정말 가명(익명)을 사용하는 많은 분들이 이런 어려움 때문에 가명을 사용하는 것일까? 오히려 사이버 상에서 가명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이 '자유'를 남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자유를 남용하는 것이기에 상대 의 인격을 존중하지 않는 언어들을 너무 쉽게 사용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심 한 경우 거의 폭력에 가까운 말들을 거침없이 사용하게 되는 것 아닐까?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그 큰 관점에서 이 자유는 절제되어야 한다 고 생각한다. 아니 그런 유혹을 과감하게 뿌리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태복 음 5장 22절을 보라(엡 4:25 , 29 , 31-32 ; 참고). 자유에는 분명 책임이 따 르는 법이다. 개혁신보 게시판은 다른 여느 게시판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 생각한다. 그것 은 합신이라는 이름을 건 우리 목사들-다른 분들도 참여하고 있지만-의 게시 판이 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같은 동역자들이 논의를 벌이는 게시판이라는 말 이다. 그렇다면, 이 논의는 서로 사랑함을 전제로 이루어져야 하지 않겠는 가? 서로를 존중하는 자세로 신사적인 주장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진정한 사 랑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셨던 것과 같은 아픔을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닐까? 진정으로 사랑의 충고를 하고 싶거든, 또는 거침없는 의견을 말하 고 싶거든 아픔을 감수해야 하지 않을까? 그 사랑(의견)에 책임을 다하는 심 정으로 자기 이름을 분명하게 걸어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우리는 너무나도 분명한 이 원칙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굳이 이런 논의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 다. 이 '사랑'이라는 큰 틀의 입장에서 가명(익명)보다는 실명을 사용함이 마 땅하다고 주장한다. 이런 분명한 원칙을 중심으로 가명(익명)의 허용 정도 에 대하여 더 논의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52 no image <제언> 한 턱 쏘세요-김승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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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86 2003-05-29
http://www.rpress.or.kr/files/sinkan/327je.hwp 한 턱 쏘세요 인천노회 김승식 목사 예전엔 "한 턱 내라"던 말이 요즘은 "한 턱 쏘라"는 말로 바뀌었습니다. 자세 히는 모르나 아마도 방송 드라마 주변에서부터 파생된 말이 아닐까 합니다. 어느 날 사람들로부터 "쏜다"는 말을 전해 들으면서 별 말이 다 생기는구나 했는데 지금은 전국적으로 유행되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이런 용어를 사용 하지 않으면 짐짓 시대에 처진 사람, 현실감각에 뒤진 사람이란 소리나 들을 까 해서인지 저 역시 이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명예를 지닌 직책을 맡았을 때 주변사람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 는 용어가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축하한다"는 말이요 또 한 가지는 "한 턱 쏘라"는 말입니다. 감투를 썼으니 한 턱 내놓아야 하지 않겠느냐며 공공연 히 압력(?)을 행사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말들이 우리 신자들 세계나 목회자들 세계에서도 아주 자연스럽 게(?) 오가는 것을 볼 때가 많습니다. 물론 승진이나 합격 등 좋은 일이 생겼 을 때 한 턱 내는 것이야 좋은 일이고, 한 턱 내란 소리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겠으나 교회 안에서의 직분이나 직책에 대해 이런 관념을 가지고 있다면 좀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총회장이 되셨으니 한 턱 쏘십쇼." "노회장이 되셨으니 한 턱 쏘셔야죠." 회 장이 되셨으니 한 턱 쏘시라, 장로가 되었으니 한 턱 쏘시라, 이런 식으로 교 회 내 직분이나 직위 맡음을 무슨 벼슬자리나 한 것처럼 인식한다고 하면 세 상적인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감투란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니 이렇게 풀이하고 있었습니다. 1. 말총 따위로 만들어 머리에 쓰는 옛 의관의 한 가지. 2. 탕건. 3. 복주 감투. 4. 벼슬. 감투를 썼으니, 벼슬자리를 했으니 가만있어서야 되겠느냐는 협박(?)에 못 이 겨 억지춘향 격으로 갈비냄새를 풍긴다던가 금일봉을 내놓는 관행 따위는 이 제 멀리 해야 될 때가 아닐까요? 혹은 우리가 그렇게 밀어줬는데도 불구하고 입 싹 닦고 만다면서 성토(?)하는 비성경적이고 수준미달의 자세도 버려야할 악습은 아닐런지요. 교회 내에서 주어지는 모든 직책 과 직위는 벼슬이 될 수 없고 감투가 될 수 없습니다. 모두가 다 섬김의 직분이요 봉사의 직분입니다. 총회장이 되셨던 지, 노회장이 되셨던지, 학우회장이 되셨던지, 장로 직분을 받으셨던지- . 세상 감투야 명예로운 것이고, 높은 자리인줄 모르나 그리스도 안에서의 감투 (직분)는 모두가 섬김의 직분입니다. 이제 직분을 맡았으니 시간적 물질적 희 생이 전보다 더 할 것이 자명합니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직분을 맡은 자들에게 "한 턱 쏘세요" 하는 대신에 이렇 게 말합시다. "저희들이 한 턱 쏠게요. 힘내서 일 많이 하세요." 아마도 이런 풍토가 생겨진다면 교회 내의 모든 직분은 지금보다 더욱 신성하 고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51 no image <수필> 이층나무 침대-박종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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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4 2003-05-14
http://www.rpress.or.kr/files/si nkan/326pjh.hwp 이층 나무 침대 박종훈 목사·전북노회 작년 겨울부터 계획했던 일이지만 여러 가지 바쁘고 날씨관계로 미루다가 이 제야 겨우 원목으로 이층 침대를 만들었다. 교회당 종탑공사를 하고 남겨진 원목을 자르고 다듬고 끌로 파고 불로 나무의 아름다운 결을 살리면서 뚝딱거 리며 여러 날을 거쳐 드디어 막내아들인 서진이의 전용 방(?)을 지원이 형이 자는 방에 만들었다. 언제부턴가 서진이는 당당히 자기 방을 요구했다. 유난히도 뭘 만들기를 좋아 하며 혼잣말로 뭐라고 주고받는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절로 웃음을 머금게 했다. 특히 테이프를 제일 많이 사용하여 온갖 작품을(?) 만들고서 자랑스레 보여주는 것까지는 좋지만 뒤처리를 하지 않아 앉은자리마다 어지럽힌 흔적으 로 인하여 꾸중을 듣자 자기 방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그동안 누나방에서 자다가 형이 맘에 들게 하면 형방에서 자기도 하고 때로 는 엄마 옆에서 자더니 어느 날에는 거실에서 혼자 자겠다고 우기는 것이다. 그러면서 형과 누나는 자기 방이 있는데 왜 내 방은 없냐며 항의하는 것이 다. 집을 지을 때 제한된 공간이라 당연히 아들들이 한 방을 사용할 것으로 계획 하고 지었지만 서진이로서는 자신만의 방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이층침대를 생각했던 것이다. 이왕이면 튼튼하고 실용적인 침대를 만들고자 가능한 못을 사용하기보다는 홈 을 파고 서로 짜맞추는 공법을 하다보니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한 치만 틀려도 원하는 대로 모양이 나오지 않기에 조금은 전문적인 기술을 필요로했다. 일하면서 나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지금의 나의 사는 집보다도 적은 공간에서 삼남일녀와 양부모님 여섯 식구가 부대끼며 안방과 조그만 옆방 하나로 단란하게 살았었다. 물론 좁은 집이지만 감히 방 넓혀주라는 말은 꺼내지도 못했다. 그저 밥먹고 학교 다닌 것으로도 감사히 여기는 시절이었다. 조금 커서는 주로 나는 다른 집에서 잠을 자고 들어오는 형편이었다. 내가 중학교 다닐 때 흙담으로 된 헛간에다 동생들과 열심히 다락 비슷한 것 을 만들었다. 나무막대를 걸치고 자리를 깔고 그럴듯한 모양을 갖추고 눕기도 하며 처음으 로 내 손으로 만든 뿌듯함에 만족을 느꼈었다. 그러나 나중에 이 모양을 발견 한 아버지로부터 철거명령과 함께 호된 꾸지람을 들어야 했다. 사실 그때에 나의 재능을 발견할 수 있었지만 아버지나 나 역시도 모르고 지나갔었다. 아버지로부터 자녀를 위해 손수 무엇을 만들어 받은 기억이 없는 나로서는 이 제 아버지가 되어 이처럼 자녀들을 위해 직접 만들 수 있다는 이 현실에 작 은 행복을 느꼈다. 다른 직업이나 또는 도시에서 목회했다면 이런 환경과 여유가 없으리라 본 다. 장차 이들이 자라서 한 가정의 부모가 되었을 때 나의 이 모습을 기억하고 좋 은 영향이 되었으면 한다. 둘이 누워도 될 만한 넓은 나무침대에 두꺼운 송판을 마루처럼 깔고 책상과 책꽂이를 겸하여 만들고 보니 훌륭한 공부방이 되었다. 방에서는 일어서야 밖 의 정원이 보였지만 이층나무 침대는 누워있어도 한 눈에 보이는 밖의 풍경 에 스르르 눈이 감겨온다. 올 여름에 점심을 먹고 나른한 오후에 시원한 나무침대에 잠깐의 낮잠(午寢) 을 즐기는 시간이 기다려진다.
50 no image <목회수상> “저희 아들 놈이 또 잡혔습니다”-이기학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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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93 2003-05-14
http://www.rpress.or.kr/files/sinkan/326igihak.hwp“저희 아들 놈이 또 잡혔습니다” 이기학 목사/ 경북노회 언제가 서울에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목사님, 저희 아들 놈이 또 잡혔습니다.” “아니, 왜요?” “이 놈이 그 동안은 주일에 교회를 잘 다니다가, 글쌔, 교회에서 다른 분으 로부터 무슨 말을 들었는지 그때부터 갑자기 교회에 다니지 않고 있다가, 교 회에 가자하면 ‘나는 자격이 없어요’ 하면서 예배를 드리지 않다가, 언제부 터인지 모르지만 그 전의 친구들을 만나고 다니다가, 며칠동안 보이지 않다 가 경찰서에서 전화가 와서 가보니, 거기에 있지 뭡니까.” “목사님, 어떻게 해요.” “…” “권사님, 죄송하지만, 진정 아드님를 위해 기도했습니까?” “아드님의 영혼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자녀에게 본이 되는 모습을 보였습 니까?” “…” “지금부터라도 기도하고 주님 앞에서 우리가 먼저 주님의 자녀답게 삽시다. 그럼 아드님도 교도소에서 변화되어 돌아올 것입니다.” 흔히, 살다 보면 예기치도 못한 일들로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아픔을 겪는 일 을 목도 할 때가 있다. 어제까지만 해도 건강해 보이던 사람이 급성 암에 걸 려 생사의 길을 헤매고, 아침까지만 해도 반갑게 인사하던 사람이 교통사고 로 먼저 세상을 떠나는 일 등등 요즘 같은 시대엔 너무나 허다하다. 이런 뜻하지 않은 상황에 처할 때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에게서나 언제나 사랑스러운 자녀인데도 불의의 사고를 당하 고, 어려운 환경에 처하게 될 때, 당황하고 의아할 때가 종종 있을 것이다. 영국의 변증학자 C.S.루이스는 그의 책 ‘고통의 문제’에서 이렇게 말을 하 고 있다. ‘고통은 하나님께서 잡은 메가폰’이라고… 사랑하는 이가 받는 고통을 옆에서 지켜보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정말 주 님께 매달리는 것뿐이란 걸 느낄 때가 종종 있다. 지금, 교도소에서는 자신의 행위로 인하여 오는 고통 때문에 자살을 몇 번이 나 시도했다가 주님을 만나서 소망으로 살아가는 분들이 적지 않게 있는데, 그 분들이 막상 출소를 하면 갈 곳이 없다는 것이다. 누가 믿어 주는 사람도 없고, 그렇다고 지난 과거를 알고 따뜻하게 감싸주 기보다는 오히려 그 과거 가 문제가 되어 다시 교도소로 가는 길 잃은 영혼들이 있는 것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강도 만난 자를 도와주었던 사마리아인같이 행하라고 하셨 다. 주님의 사랑을 알지 못해 방황하고 처절히 살고자 하는 전과자라는 명찰 을 단 영혼들에게 예수 안에서 소망을 주는 교회나 성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이 되어 주신 것 같이 주님을 구주라고 고백하며 이 땅에 주님의 나라가 아름 답게 확장되기를 원하는 성도라면 우리 또한 십자가의 순종을 몸으로 행해야 할 것이다(요일 3:16). 성도는 입으로만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는 자가 아니다(요일 3:18-19). 삶의 진실함으로 한 영혼 한 영혼들에게 주님의 사랑으로 이웃의 허물과 아픔, 고 통, 상처 그리고 눈물까지 이해하고 그들에게 예수의 사랑을 알게 하여야 한 다.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 에게 주신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요일 4:6).
49 no image <기고> 이 단-변이주 목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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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81 2003-05-14
http://www.rpress.or.kr/files/sinkan/326idan.hwp이 단 변이주 목사/ 전북노회 뛰어난 검술과 날쌘 몸놀림으로 탐관오리의 집을 습격하여 약탈한 재물을 가 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어 의적 소리를 듣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를 비호하여 숨겨주기도 하며 감싸주었기에 오랫동안 잡히지 않고 탐관오리 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 도적이 백성들에게 나눠준 것은 탈취한 것의 극히 일부 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 도적은 백성들의 환심을 사고 제 잇속을 크 게 챙겼던 것입니다. 사탄이 성도를 속이는 것도 마찬가지 수법입니다. 처음에는 약간의 유익을 주 는척 하여 성도를 미혹한 후 미끼에 걸려들면 제 놈의 노예로 삼아버리고 맙 니다. 적은 미끼로 엄청난 이익을 챙기는 놈, 그 놈이 바로 사탄인 것입니 다. 사탄은 오늘날 라는 미끼를 던져서 아주 쉽게 많은 것을 낚아 채고 있습니다. 종교와 도덕성을 포기한 죤·듀이는 자기와 타인과의 관계, 자기와 피조물과 의 관계에서 유용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옳다고 주장했습니다. 옳고 그름에 대한 이러한 견해를 ‘실용주의’라고 하는데 그러나 사실은 그 반대가 옳습니다. 즉 ‘실용적이기 때문에 유익한 것’이 아니라 ‘유익하기 때문에 실용적’이라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우리 목회자들 중에도 이 실용주의의 미끼에 걸려 헤어나지 못하는 이 들이 많은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부흥’에 노이로제 상태가 돼버린 일부 목회자들 중에는 교회에 활력소가 된다 싶으면 거기에 어 떤 함정이 숨겨져 있는지 살펴보지도 않은 채 미끼를 덥썩 물어버리는 경우 가 적지 않습니다. ‘꿩 잡는 게 매’라고,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교회만 부 흥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이단들이 즐겨하는 일들도 서슴없이 목회현장으 로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이단의 의미를 한 번 생각해봅니다. 이단이란 글자 그대로 異端― 즉 ‘끝이 다른 것’ 혹은 ‘끝에 가서 다른 모양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 니다. 이단이란 한참 지난 다음에야 본색을 나타내기 때문에 ‘속았구나!’하 고 한탄할 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함정에 빠진 뒤인 것입니다. 의적을 가 장한 도적, 천사를 가 장한 악마, - 이것이 이단의 정체라는 사실에 경각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이단에 속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한 번 와서 들어보고 판단하라’는 말로 부추기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속담에 ‘똥인지 된장인지 꼭 먹어 봐야 아느냐’ 하는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말 속에는 어리석은 행동을 질책하는 뜻이 있는가 하면 지혜롭지 못한 행 동을 할 경우 어떤 모양으로든지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만 된다는 뜻도 포함하 고 있습니다. ‘똥인지 된장인지’는 냄새로 알아봐야지 일단 만져보거나 먹 어본 뒤에는 그것이 똥이든 된장이든 뒤처리에 한동안 애를 먹어야 하기 때문 입니다. 얼마 전에 분수를 모르는 어떤 목회자가 수천 만원의 돈을 길거리에 뿌려 물 의를 빚은 일이 있습니다. 그렇게 한 이유가 ‘이웃과의 나눔을 실천한다’ 는 것이었고, 방송 인터뷰에서는 “이게 설교다. 돈을 움켜쥐지 말고 뿌리 자. 우리는 뿌리고 나누는 삶을 살자”고 했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만, 이런 말 같지 않은 말에 공감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거지에게 동냥을 줄 때에도 돈을 뿌려주지는 않습니다. 하물 며 그리스도의 사 랑을 나누겠다는 사람이, 그것도 성직자가 돈을 뿌린다는 것은 도대체 말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비록 그가 주장하는 내용에 이단적인 요소가 발견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것은 이단 못지 않게 나쁜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교육을 받고 그 내용을 목회에 적용한다는 건 아무리 너그럽 게 봐준다 해도 합당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48 no image <수필> 콩 고물로 행복한 여자-장인선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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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5 2003-04-30
http://www.rpress.or.kr/files/sinkan/325jang.hwp콩 고물로 행복한 여자 장인선/ 염광교회 집사, 시인 나는 원래 푼수형에 아부과에 속하는 여자다. 내가 책을 내고 확실히 느끼는 것은 "장인선"은 여전히 무명이고 가난하다는 사실이다. 책을 낼 때 "잘난 척"을 무지했다. 조금 있다 나 유명해지니까 나한테 잘 보이래면서 책을 강매 했다. 그런데 현실은 "강매"한 나를 사랑하는 사람만 알고 아무도 "장인선"모 른다는 사실이다. 웃기는 일이다. 완전 착각으로 유명해지고 부자가 되는 것 으로 알았다. 이제 현실로 돌아와서 엄마와 언니에게 전보다 더 열심히 아부를 해야 한다 는 사실이다. 원래 "자존심"같은 것은 "약"에 쓸려고 해도 없는 사람이라 "아 부"가"생활화"됐다. "아부"를 잘하면 "콩 고물"이 많이 생긴다. 그리고 생활 이 편해진다. 나는 또 "덩달아 부자"다. 나는 "가난"한데 "엄마와 언니"가 부자라 옆에 있 는 나는 "덩달아 부자"다. 내 능력으로는 굶어 죽기 딱 알 맞은데 주님의 "은 혜"로"복"이 많아서 아무 걱정 없이 잘 먹고 잘 산다. 아마 그래서 내 성격 이 "내 배 째라"형인가 보다. 예를들면 엄마가 일 못한다고 야단치면 오히려 내가 뻔뻔하게 웃으면서 내가 일해서 돈 벌 것 아닌데 무슨 걱정이냐고 하니 까 엄마도 기가 막혀서 웃는다. 내 용돈은 거금 10만원이나 된다. 그것으로 나는 충분히 행복하다. 10여년 전 에 용돈이 5천원인 적도 있었다. 그 때는 나도 몰르게 "얌체"짓을 많이 했지 만 지금은 아주 "얌체"는 아니고 조금 "얌체"다. "행복"은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누군가로 부터 "사랑"을 받는다는 "확 신"이 그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 그것으로보면 무지 "행복"한 여자다. 우 선 "주님의 특별한 사랑"을 항상 느끼고 "엄마"에게는 "기쁨 조"로 엄마 의 "사랑"을 받고 있고 "언니"에게는 정말 미안하고 고맙지만 언젠가는 "복 음"을 전할 수 있으니까 가장 큰 선물을 줄 수 있고 "언니"도 세상적인 "형 제 애"지만 나에게 헌신적으로 사랑한다. 나는 지금이 너무 행복하다. 얼굴만 봐도 행복해 지는 엄마가 항상 그림자처 럼 옆에 계시고 언니에게 멍청하고 답답하다고 자주 혼나지만 언니가 있고 가 장 중요한 것은 "주님의 은혜"로 "복"이 많아서 "노후 걱정"도 없고 세상에 서 가장 편한 여자로 사니까 여기에서 "욕심"만 내지 않으면 세상에서 가 장 "행복한 여자"로 살 것이다.
47 no image 다시듣는 故박윤선목사 설교-주의 백성의 헌신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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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74 2003-04-30
http://www.rpress.or.kr/files/sinkan/325park.hwp주의 백성의 헌신 본 문: 시 110:3 故 박윤선 목사 우리는 주님의 백성된 것이 감사하다. 주님의 백성이면 주님의 나라에서 사 는 자이다. 주님의 나라처럼 귀한 나라는 없다. 1. 거룩한 헌신 "거룩하다" 함은 '끊는다'는 뜻이다. 그것은 죄를 죽이는 운동이다. 신자 의 특징은 죄를 끊는 노력을 계속함에 있다. 병균을 늘 죽여야 육신의 생명 을 보존함과 같이 우리는 계속적으로 죄를 죽여야 영혼의 생명을 보존한다. 죄 중에도 특별히 하나님께 대한 계명(1-4 계명)을 범한 것이 더 큰 죄다. 우 리는 이런 계명들 앞에서 더욱 자신을 살피고 죄를 찾아내는 대로 즉시 끊어 버려야 된다. 2. 즐거이 헌신함 고후 9:7에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 하였다. 하나님 께 나의 몸을 바치는 것이 즐겁지 않으랴! 그에게 헌신함은 실상 그의 장중 에 나를 맡김이고 나를 보관시킴이다. 우리를 멸망 가운데서 구원해 주신 주님이심을 알진대 우리가 감심으로 우 리 자신을 그에게 바치지 않겠는가! 아프리카에서 사자에게 물려 거의 죽게 된 어떤 흑인이 있었다. 마침 클락이라는 선교사가 이 소식을 듣고 그를 잘 간호해 주었으므로 그는 살아났다. 그때에 그는 너무 감사하여 클락 선교사 를 찾아와서 그 자신과 그의 아내와 그의 자녀들까지 다 평생 그 선교사의 종 이 되기를 원하였다. 그와 같이 우리는 우리를 구원해 주신 주님께 감심으로 헌신해야 된다. 홍인종을 위해서 헌신한 부레이나드 선교사는 비 오는 날에 말을 타고 가다가 마음 속에 주님을 위하여 헌신할 생각이 뜨거워졌으므로 즉 시 말에서 내려 길 가에 꿇어 앉아 기도하고 하나님께 헌신하기로 결심하였 다. 우리는 인도에서 사역한 초대 선교사 케리(Carey) 박사를 잘 안다. 그는 청년 시절에 구두 만드는 일을 하였다. 그때에 그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 하여 마을마다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다. 그는 자기의 수입을 모두 다 전도 비 용으로 사용했다. 3. 새벽 이슬 같이 헌신함 "새벽 이슬"은 사람이 모르는 가운데 밤 사이에 내려서 모든 초목을 적셔 준다. 그와 같이 주님을 위하여 헌신하고 일하는 자는 고요히 봉사해야 된 r 다. 주님을 위하여 일하는 자는 자기의 명예나 생계를 위주해서는 안된다. 주 님을 위하여 헌신한 자는 이미 받은 구원의 은혜에 감격하여 주님의 일을 할 따름이다. 우리는 그렇게 봉사함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특별한 은혜를 많이 받 는다. 4. 청년 시절의 헌신 본문 3절에 말하기를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라고 하였다. 사람 은 노년기보다 청년 시절에 의욕이 강하며, 또한 일할 수 있는 힘도 주님으 로 말미암아 많이 받을 수 있다. 실상 청년들은 주님을 믿고 주님의 은혜를 받았다면 대망을 가질 만하고 또 가져야 한다. "주의 청년", 곧 주님을 믿고 구원의 은혜를 받은 청년들에게는 땅 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할 의욕이 있어 야 된다. 이런 비죤(Vision)을 가지고 살아야 할 청년들이 다만 먹을 것과 입 을 것만을 위하여 몸을 바치는 것은 실상 사는 운동이 아니고 죽는 운동이다.
46 no image <목회수상> 갇힌 자들에게 위로의 손길을-이기학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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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97 2003-04-15
http://www.rpress.or.kr/files/sinkan/324igh.hwp갇힌 자들에게 위로의 손길을 이기학 목사 행복한 사람은 물질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자신의 존재를 알고 존재의 가치 에 대해서 바르게 알게 될 때 행복해 지는 것이다. 그런데 존재의 본질과 가 치를 알게 되는 것은 세상의 학문이나 문화, 배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 님 앞에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 과 부활, 그리고 다시 오심을 바라보고, 주님의 신실하심과 그 분의 다함이 없는 은혜를 받아드릴 때 오는 것이다. 행복이 바로 주님의 말씀 앞에 설 때 오는 것이라면 성도는 너나 할 것 없이 행복한 삶일 것이다. 성경은 말하기를 복이 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말씀을 주 야로 묵상하는 자이고 주의 말씀을 듣고, 읽고, 지키는 자라고 하셨다(시1:1- 3, 계1:1-3). 성경은 성도가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 때 주님과 동행하는 자라고 한 다. 그런데 주님과 동행하는 성도가 이웃을 돌아보지 않고 사람의 행위에 의 해서 평가를 하고 편견 속에 조건적인 관 계를 한다면 그것은 성경적이 아니 라 세속적인 것일 것이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이웃의 연약함을 돌아본 사람들은 주님으로부터 인정 을 받았지만 조건적인 사람들은 주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마 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고 하셨다. 45절에는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주님을 외면한 것이라고 하셨다. 주님은 또한 선한 사마리아인을 비유로 하시면서 '이와 같이 너희도 하라'고 우리에게 이웃을 돌아볼 것을 명령하셨다. 이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는 것 이다. 히브리서 13절 3절에 보면 '너희도 함께 갇힌 자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 고'란 말씀이 있다. 우리는 모두 죄의 사슬에 갇힌 자들이다. 사람의 논리에 의해서는 법을 위반하여 실정법에 접촉된 사람 즉 교도소에 갇힌 자들이 죄 의 사슬에 갇힌 자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죄의 사슬에서 갇힌 자들이기에 드러난 죄의 질량보다 보이지 아니한 죄의 문제에 더 무게를 주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요 성 도라고 하는 우리는 죄의 문제를 하나님 앞에서 보지 못하고 사회 법에 의해 서 보고 사회법으로 인하여 교도소에 수감된 수용자들에게 너무나 냉혹한 눈 과 편견을 갖고 있는 것 같다. 하나님의 나라를 상징하는 교회와 성도는 이웃을 평가하거나 아픔을 줄 자격 이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주님의 눈으로 옥에 갇힌 영혼들을 보는 것이 아니라 세속의 눈으로 보고, 평가하지 않는가? 현재 우리 나라는 43개의 교정 시설이 있다. 여기에 6만 3-4천명의 사람들이 구치소, 교도소, 감호소에 수감되어 있는 실정이다. 또한 전국에 만명이상의 교정위원들 중에 목사나 선교회 등등 교정에 헌신하는 분들도 많이 있다. 교정(종교)위원들은 사회적으로 문제시되는 사람들의 영혼들을 그리스도의 사 랑으로 접근하여 복음을 전하고 있다. 현재 수용자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교 도소에서 주님을 영접한 분들이 많다. 그런데 이들이 출소를 해서 일년 안에 50% 이상이 재범을 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바로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교도소의 믿음은 어린아이 와 같은 믿음이다. 아무리 교도소에서 엘리야와 같은 믿음이 있다 하더라도 거기는 갇힌 공간이기에 사회에 적응 능력이 없는 이들에게는 살얼음판에 있 는 아이와 같다. 그러다 보니 어린아이가 엄마 품을 그리워하듯이 출소한 분들은 교회를 찾아 가고 교회를 통하여 위로와 소망으로 사회에서 승리하고자 하는 분들이 많이 있다. 물론 그 중에 몇 명의 사람들은 교회를 이용하고 목사에게 짐이 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교회는 마땅히 찾아오는 영혼들의 지난 행적을 보지말 고 받아 주어야 할 것이라고 본다. 세상에서 소외된 영혼들은 교회에서 치유를 받는다. 그런데 교회에 와서 지 난 행적 때문에 상처를 받는 영혼들의 상처는 누가 치유를 할 것인가?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상징한다. 그러기에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속성을 가 지고 있는 것이다. 교도소의 영혼들은 지난 행적에 의해 사회적으로 격리를 받아야 마땅하지만, 교회로부터 격리나 편견의 대상이 되지 말아야 할 것이 다. 그들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존재들이고,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 이 그들에게도 적용이 되기 때문이다. 가족이 가족을 사회적인 모순으로 외면 하고, 손가락질 한다면, 그는 누구에게나 손가락질 받을 것이다. 오늘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진정 이웃의 허물과 아픔, 지난 과거까지 덮어주 고, 소망으로 주는 교회, 하나님 나라 속성을 드러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주님은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고 하였고, 강도만나 사람을 도와 주었던 사마리아 사람처럼,우리도 행할 것을 원하고 있다. 이 시간 주님 앞에서 조용 히 이웃을 향한 우리의 눈을 발견해 봤으면 한다
45 no image <목회수상> 주님을 배우며-전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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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89 2003-03-27
http://www.rpress.or.kr/files/sinkan/jhyun.hwp 주님을 배우며… 전 현 목사 북서울노회 주님이 가신 그 길을 거닐며 우리도 주님을 닮은 아름다운 마음을 가꿀 수 있 으면 좋겠다. 외적인 아름다움이야 누구나 쉽게 가꿀 수 있지만 내적인 아름 다움을 가꾼다함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평생에 걸쳐 꾸준히 가꾸어야 하는 것이기에 더욱 힘들다. 우리의 마음이 장미만큼 화사한 아름다 움이 아니더라도 백합화만큼 청초한 아름다움이 아니더라도 달밤에 겸손하게 피어나는 박꽃만큼의 소박한 아름다움만이라도 가졌으면 좋겠다. 외식이나 가식이 없는 있는 그대로를 나타내 보려고 하는 마음의 박꽃과 같 은 마음을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 억지로 지어내는 어색한 표정이 아니라 마 음속 깊은 곳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진실된 아름다운 표정으로서의 마음만이 라도 가졌으면 좋겠다. 누리를 밟게 비추어주는 태양만큼의 강렬한 빛이 아니더라도 밤하늘을 밝게 밝혀주는 달빛만큼의 황홀한 빛이 아니더라도 우리를 아는 이들의 마음을 조 금이라도 즐겁게 기쁘게 할 수 있는 그런 밝은 빛으로 우리네 마음이 따뜻한 빛을 밝힐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성경 마태복음 5장 14절에 귀를 기울여보자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주님 을 배우며 우리는 참된 주님의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우리네가 주님을 사랑하면 주님은 그 이상으로 우리에게 무한한 보답을 해주 며 우리네가 주님을 배반하지 않으면 결코 주님도 우리를 배반하지 않으며 우 리네가 우리 자신의 빈 마음을 그대로 주님 앞에 내어 보이면 주님은 우리네 의 빈 마음에 온유, 사랑, 겸손, 진실을 가득 채워줌으로써 참된 주님을 깨닫 게 해준다는 것을 배울 수 있으리라. 우리는 주님의 인내를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 인내하는 마음으로 사랑을 기 다리고, 겸손해지고, 진실을 가졌으면 좋겠다. 오늘은 이기심과 합리주의로 가득 찬 현실이라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주님을 배우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희 생과 봉사가 많은 열매를 맺고 있음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44 no image <제언> 건강한 성도라면 미숙한 성도 외면하지 말아야-이기학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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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4 2003-03-27
http://www.rpress.or.kr/files/sinkan/323sugg.hwp 건강한 성도라면 미숙한 성도 외면하지 말아야 이기학 목사/ 경북노회 사람처럼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위로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옆으로는 이웃을 섬기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산다는 것이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자녀, 즉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이 땅에 삶의 목적을 두 고 사는 자가 아닌 하나님께 삶의 목적을 둔 주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원 하시는 삶의 내용이 담겨져 있다. 마태복음 25장 31절과 45에서 양과 염소의 비유를 통해 주님은 당신의 생각 을 분명하고 단호하게 표하셨다. 이는 한 마디로 말하여 이웃이 가난하고, 고 아이든 또는 과부이든 설령 죄로 인하여 옥(교도소)에 같혀 있든지 아무런 조 건 없이 돌아보라는 것이다. 조건 없이 돌아보는 것이 바로 우리 주님의 뜻이고 주님의 명령이다. 주님 나 라의 잣대와도 같은 것이기에 우리의 죄와 허물을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조건 없이 사랑의 죽음을 택하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성령의 능력으 로 살아 나신(롬 1:4) 주님을 구주로 고백하는 자들은 마땅히 행해야 한다. 성도는 성 경을 통하여 주님의 사랑을 닮아 그 사랑을 주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 게 궁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주어야 한다. 교도소는 분명 현행법을 어기고 남에게 피해를 줄뿐만 아니라 어떤 이는 살 인, 강도, 폭행, 마약, 금용 사기, 성폭행 등등 여러 가지의 죄목으로 수감 된 사람들이다.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재소자들은 마땅히 손가락질을 받아 야 하며 사회로부터 격리되어야 한다. 그런데 주님은 저들을 돌아보는 자가 주님을 돌아본 자라고 하셨다. 교도소에 수감된 재소자들도 담 밖에 있는 자들과 같이 하나님의 형상이요 하 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는 자이기에 주님은 그들에게도 십자가의 문을 열어 놓 으신 것이다. 그런데 그들을 단지 현행법을 어기고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었다는 점에서 외면하고 돌아보지 않는다면 그는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에 오른 어리석은 자일 것이다. 건강한 성도라면 연약하고 미숙한 성도를 외면하지 않는다. 성도는 주님 앞에 서 자신의 만족과 유익을 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웃의 허물과 연약함, 추 함을 보고 기도하며 그들이 건강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록 자신의 가진 것 을 가지고 힘이 되어 준다. 다시 말해 성도는 사람의 행실로 인한 결과를 보 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의 뜻을 돌아본다. 교도소는 악하고, 추하고, 사회의 암덩어리 같은 분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는 누구든지 들어가고 나온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교도소 문 앞에서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해도 무리한 표현은 아닐 것이다. 교도소에 수감된 담 안의 사람들이 흉악하면 흉악할수록 더욱 돌아보며, 그들 에게 사람이 사람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어야 한다. 세상적 인 편견의 잣대가 아닌 주님의 심장(빌 1:8)으로 다가가야 할 것이다.
43 no image 아들의 옷 -황대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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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7 2003-03-12
http://www.rpress.or.kr/files/sinkan/hdyf.jpg아들의 옷 황대연 목사/ 한가족교회 아내와 바자회를 다녀왔습니다. 교인 수가 5천명이 넘는다는 모 대형교회에서 전도 목적을 담아 지역 주민들 에게 오픈한 바자회였습니다. 아내는 진작부터 바자회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바자회 날짜도 손꼽아 기다린 눈치입니다. 어쨌든 전 아내를 모시고(?) 바자회를 갔습니다. 아내는 어느 코너에 이르러 약간은 상기된 표정이 되더니 열심히 옷을 고르 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옷들은 그래도 옷걸이에 걸려 대우를 받건마는 그 옷들은 무슨 덤핑물건 처럼 그저 수북히 쌓여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누구든 자유롭게 골라서 살 수 있는 코너였습니다. 코너 담당 집사님이 “자아~골라, 골라! 세 장에 처너언~!” 무슨 남대문 장 사꾼 흉내를 냅니다. 저는 피식 웃습니다. 아마 버리기 아깝다고 자발적으로 내놓은 옷가지들, 옷 장사하다가 망한 물 건, 이쁘고 때깔나는 것은 다 뽑혀가고 철 다 지나도록 처진 재고들. 한 눈에 보기에도 그렇고 그런 것이었습니다. 많은 교회 아줌마들(?) 틈에서 아내는 용케 옷 몇 가지를 골라듭니다. 저는 건성으로 “옷 많은데, 그런 건 뭐하러 사?” “인우가 옷이 없어서….” 그랬습니다. 내 아들 인우는 옷이 많지 않았습니다. 이제 중학교 일 학년, 한창 자랄 때라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 가는데, 정작 아이가 입을 만한 옷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전 아이에게 옷을 사줘 본적이 없습니다. (피자나, 짬뽕은 사준 기억이 납니다.) 아이의 차림새는 늘 단정하고 깔끔했는데도…. 큰 고생 모르고 자라온 아내…. 가난한 개척교회 목사의 아내가 되어 그동안 이렇게 저렇게 없는 살림을 꾸려 오며 나 모르는 지혜를 발휘 해온 것입니다. 아이는 유명브랜드도 안 붙어있고, 한 눈에 봐도 새 옷처럼 안 보이는 옷인데 도 입어보며 좋아합니다. 두 모자(母子)의 그 모습을 짐짓 모르는 척 보면서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 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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