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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19 (15:08:08)

 

성경읽기가 짐이 될 때

 

< 도지원 목사, 예수비전교회 >

 

말씀 안에서 하나님 만날 때 하나임 사랑도 점점 자라게 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단순히 우리가 성경을 읽는 것이 아니다. 그분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성경을 사랑해서 성경을 읽는 것이다.

 

성경에 대한 사랑이 없이 성경을 읽는 것은 형식에 그치고 짐이 될 뿐이다. 그래서 스티븐 J. 니콜스는 성경을 제대로 읽으려면, 시편 11997절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거기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 그에게는 성경을 사랑하는 것이 성경읽기와 묵상의 동기가 된 것이다.

 

우리는 이와 비슷한 말씀을 시 11948절과 147-148절에서도 볼 수 있다. “또 나의 사랑하는바 주의 계명에 내 손을 들고 주의 율례를 묵상하리이다.” “내가 새벽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주의 말씀을 묵상하려고 내 눈이 야경이 깊기 전에 깨었나이다.” 그래서 아더 핑크는 말했다. “성경의 진실성에 대해 동의하는 정도로는 충분치 않다. 우리는 성경을 애정을 갖고 마음에 새길 필요가 있다.”

 

따라서 성경읽기가 짐이 될 때 우리는 성경을 사랑하는 것으로 돌아가야 한다. 루터는 이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묵상하는 것과 단순히 생각하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묵상하는 일은 진지하고 깊이 그리고 열심히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일종의 마음으로 되새기는 것입니다 . . . 그러나 모든 일에서 자신의 뜻을 하나님의 율법에 고정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율법 안에서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자신이 원하고 사랑하는 것을 가장 깊은 내면에 열심히 되새기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싫어하거나 헛되다고 생각하는 것은 쉽게 지나칠 뿐만 아니라 그것을 깊게, 열심히, 오랫동안 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을 하는 데 의지가 마음에 뿌리를 내릴 때 묵상은 저절로 나옵니다.”

 

루터는 성경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것을 읽고 묵상하는 것으로 연결되는 것임을 말한 것이다.

 

그렇다면 만일 성경을 사랑하는 것이 없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성경읽기와 묵상을 그만두어야 하는 걸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럴 때 우리는 성경읽기와 묵상을 훈련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훈련할 때 우리는 성경을 사랑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성경읽기와 묵상을 훈련하는 것만으로 성경을 사랑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훈련을 통해서 우리는 중요한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J. D. 그리어는 이와 같은 훈련의 유익을 이렇게 설명한다.

 

영적 훈련에는 복음으로의 깊은 젖어듦이 동반되어야 한다. 복음은 마음의 갈망과 욕망을 변화시킨다. 사실 훈련의 목적은 복음을 생각하고, 묵상하고, 그 안에서 행동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영적 훈련은 우리를 복음의 능력으로 이어주는 줄과 같다. 이것들 자체에 능력이 없지만 그 능력이 흘러나오는 곳으로 우리를 연결시킨다. 복음으로 가는 문이지만, 복음 자체는 아니다. 당신이 성경은 읽기 싫고 대신 TV를 보고 싶다고 가정해보자. 스스로를 성경을 읽게 만드는 것이 단순히 율법주의인가? 아니다. 당신은 영혼에 하나님의 말씀을 먹여 당신의 마음이 그것을 사랑하도록 훈련시킨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그 안에서 하나님을 만날 때 그분과 그분의 말씀을 향한 당신의 사랑은 점점 자라게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성경읽기와 묵상을 훈련하는 것은 도널드 휘트니의 말대로 우리를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이다.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지 훈련이 아니다. 하지만 훈련은 우리를 하나님의 은혜에 연결시켜주는 통로 역할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읽기와 묵상을 훈련하는 것은 중요하다. 특히 성경을 사랑하는 것이 없어 성경읽기가 짐이 될 때 더더욱 그러하다.

 

119편에는 주의 말씀을 즐거워한다는 고백과 주의 말씀을 사랑한다는 고백이 각각 열두 번 정도 나온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고백이 넘쳐날 수 있다면, 성경읽기가 더 이상 짐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 때에 우리도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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